항조우에서 개최되는 기업 투자 설명회에 참석하였다. 원래 내가 참석할 자리는 아니었으나 사장님이 급한 사정이 생겨 대타로 참석하게 되었다. 장소는 항조우였으나 실질적인 주관은 안휘성 정부 주관이었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도착하니 아직 참석자는 몇 보이지 않았다. 기배정된 자리를 옮겨 제일 졸기 편한 위치로 이동하였다. 잠시후 정부관료인듯한 사람이 도착하였고 각 자리에 배정된 대표이사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으며 다가왔다. 대타 참석이니 내 명함도 아닌 사장님의 명함을 주며 명함을 건네 받았다. 흰 바탕에 빨간색 명칭이 다소 촌스럽단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쳐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듯한 표시이다. 붉은 낫에 붉은 망치, 중국 공산당 이라고 붉게, 선명히 찍힌 명함이었고 그의 직책은 당서기였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지만 공산당원이 차지하는 위치를 볼때 상당한 권력가라 할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70명 가량 참석한 대표이사중 한국인이 한명 있다는 것이 자신의 지역으로 기업을 유치하는데 나름 홍보거리라 생각했는지 연설을 할때마다 한국인을 언급하곤 했다. 또 하나의 악재는 어차피 잘 안들리는 중국어, 잠이나 자자 하고 옮긴 자리가 그의 뒷자리(자리 배정이 한국과 좀 다르다) 였다. 졸지도 못하고 당서기 사진의 뒷배경으로 사진만 무수하게 찍혔다. 설명회가 끝난후 오찬 자리에서도 그는 나름의 홍보거리인 가짜 사장에게 다가와 건배를 제의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겼다. 당서기가 인사하니 대표이사들이야 가만 있겠는가. 줄줄이 사탕으로 딸려 들어오는 사장들과 건배하느라 비싼 음식은 제대로 못먹고 쥬스로만 배를 채웠다. 아까워. 오찬이 끝난 후 "짜이찌엔"하고 악수를 하고 떠나려니 한국어로 헤어질때의 인사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어늘한 말투로 "안녕히 가세요"하고 말하는 그와 악수 대신 가벼운 목례를 하고 헤어졌다. 이데올로기로 인간을 규정하는 일 ( 한때 대한민국의 위대한 교육은 그들을 뿔 달린 악마로 인식시키지 않았던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싶다. 

설명회가 개최된 장소는 시후 옆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오찬이 끝난후 통역으로 동행한 부장과 시후 호수를 걸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항조우로 가는 것이 귀찮아 투덜거리던 나와 달리 그가 콧노래에 흥겨웠던 이유는 항조우에 깊이 남아 있는 추억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유학한 그가 대학 졸업후 중국 내륙 배낭여행을 할때 항조우에서 만난 여인과의 추억이다. 그들이 만난 장소가 시후 호수의 "똰챠오찬쉐(短桥残雪)"였다. <백사전>의 주인공인 빠이냥즈와 쉬씨엔이 갖은 고난 끝에 다시 상봉한 다리로 유명하며 눈이 내린후 잔설이 녹을때 마치 다리가 끊어진듯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도 그녀를 그 다리 입구에서 만났다고 한다. 저녁 일몰을 품고 자전거를 타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는 전설속의 여인을 보았고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한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지만 당시만 해도 같이 할수 없는 그들의 운명을 안 여인이 "인은 있지만 연은 없다(有因但是没有缘分)"는 편지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는 약 두달을 그 헤어짐의 아쉬움으로 앓았다고 했다. 그 다리를 건너다 가슴이 좀 두근거리냐고 물으니 씨익 웃으며 그저 덤덤하단다. 그가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기를 빌었지만 다리를 다 건널때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도 추억은 오늘 하루 그를 아주 행복하게 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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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은 있지만 연은 없다" 는 말이 가슴에 박히네요. 영화 '호우시절'처럼 혹여나 그 인연들에게도 또 한번의 연이 올지 모를 일이지만은요...

읽으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는데 다들 재미없다는 영화를 저는 잘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다리 어디쯤 잉크냄새님만의 또 다른 멋진 로맨스도 기대해봅니다. 사람일은 모르니까요..^^

잉크냄새 2010-06-02 19:27   좋아요 0 | URL
그 다리 말고 시후 호수에 또 하나의 유명한 다리가 있습니다. 소동파가 만들었다고 하는 "쑤띠" 라는 다리입니다.
호수 한쪽을 관통하는 엄청나게 긴 다리이니까 오히려 그 다리가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겠죠.ㅎㅎ
이제는 늙어가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그 뭐시기 다리가 문득 생각납니다.

털짱 2010-07-1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신문 기사에서 사진을 찾아 올리셔야지요!!!!

잉크냄새 2010-07-15 09:47   좋아요 0 | URL
안후이성 지역 신문이라도 찾아봐야하겠네요.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찌할수 없이 해이해짐을 동반한다. 그 해이함으로 인하여 여권을 분실하였다. 여행 초기 침낭 속에까지 넣고 잠이 들던, 잃어버리면 여행 끝이란 생각으로 소중히 다루던 여권이었다. 중국 생활 6개월, 몸에 배기 시작한 익숙함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여권이 이 나라에서 나를 증명할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을 잊게 만들었나보다. 분실신고를 위해 찾아간 공안국 직원이 나에게 "헌 마판(겁나게 귀찮을꺼야)" 이라고 말할때만 해도 이리 귀찮은 행보가 이어질지 몰랐다. 북경의 한국 영사관 - 천진 공안국 - 저장성 근무지로 이어지는 장거리 루트를 따라 여행 아닌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북경 - 천진간 3차례 고속철도 왕복, 천진-상해간 1차례 기차 왕복, 북경-항조우 1차례 기차 편도, 버스를 탄 구간을 포함한다면 대략 8000KM에 윽박하는 거리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는 아니더라도 해저 이만리에 버금가는 거리이다. 지금 신규 발급 여권은 천진 공안국에서 거류허가 대기중이니 미친 척하고 직접 받으러 올라간다면 엄마 찾아 삼만리도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리 귀찮은 행보도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여행이라 생각하고 다녔는데 최고의 기차 여행은 상해-천진간 19시간 완행이었다. 원래는 상해-단동간 36시간 완행이지만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천진이 종착이었다. 인도여행시 탄 델리-자이샬메르 구간도 19시간이 걸렸지만 침대칸이었다. 이번 기차는 잉쪼우(딱딱한 의자)인데 말 그대로 딱딱한 의자에 2명/3명 앉아 가는 기차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외국인은 나 혼자인듯 싶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윗통을 벗고 카드를 치는 중국인부터 노트북 영화를 빙 둘러싸고 마치 동네 하나뿐인 티브이를 보는 모습을 연출하던 중국인까지 기차안의 풍경은 나름 흥미로왔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문화를 접하더라도 멈춘듯 흐르지 않는 시간은 지겨운가 보다. 졸리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여도 시간은 죽은듯 멈추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알려준 건 가끔씩 멈추어서던 역사뿐이었다. 해질녘 도착한 역사는 중국의 베네치아 수조우였고, 한밤중 단잠을 깨운건 일본 제국주의 학살의 현장 난징이었다. 겨우 잠이 들었다 깬 아침 나를 맞이한건 타이샨이었고, 다시 돌아오던 길의 아침 나를 깨운건 호수도시 항조우의 아침 햇살이었다.   

음,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럴때가 아닌듯 하다. 여권이 없는 지금 공안의 검문이라도 받는다면 철창 신세를 져야할지도 모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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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5-29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헉
정말 말도 안되게 귀찮네요! ㄷㄷㄷㄷ
말도 안되, 말도 안되;;;;;;;
잉크냄새님 몸생각도 하셔야지ㅠㅠ 19시간 앉아서 가는 기차라뇨! ㅠㅠ 제 허리가 다 아파옵니다. 휴.. 특히 중국은 아무리 가도 창밖 풍경이 다 똑같다던데; (정말인가요??)
여튼 고생하세요.. ㅠㅠ
중국은 뭐든간에 스케일이 다르구만요 ㅎㅎ

잉크냄새 2010-05-29 09:17   좋아요 0 | URL
귀찮죠. 뭐, 다 제가 저지른 일의 결과니까 받아들여야 하지만요.
중국 기차는 허리는 안 아픈데 엉덩이가 아프답니다. 옆에서 밀치고 들어오는 중국인 엉덩이 방어도 쉽지 않고요.ㅎㅎ
중국 기차 풍경은 제가 동부만 다닌것이라 뭐라 말씀 드리기 힘드네요. 인도만큼 다채롭지 못한것은 사실입니다.

2010-06-02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2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늦게 퇴근한 밤 삐거덕 하고 열리는 현관문을 향해 토하듯 달려드는 어둠만큼 외로운 기분이 또 있을까. 기분이라도 우울한 날이면 그 기분은 몇곱절이나 커지곤 한다. 가방을 던지고 소파에 털썩 앉아 켠 텔레비젼마저 중국어로 도배되어 나오면 그 기분이 쉬 가라앉지 않곤 한다.  어느날 나보다 조금 늦게 중국에 나오신 오래전부터 같이 일해온 부총경리와 술을 한잔 하는 도중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더군요. 

잉크 : 부장님, 아무도 없는 집 퇴근하기 싫은 날이 있는데 강아지나 한마리 키울까요?  

부총 : (한참 보더니) 혼자 있으면 키우지마. 

잉크 : (한잔 쭈욱 마시고) 왜요? 

부총 : (한잔 쭈욱 마시고) 강아지가 외롭잖아. 그냥 너가 외로워져. 강아지를 외롭게 할순 없잖아. 

세상은 그런것 같더군요. 누구나 다른 누군가의 외로움에 기대어 자신의 외로움을 잊어버리려 합니다. 그저 나의 외로움에 난 강아지의 외로움은 생각하지 못한것이더군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의 외로움만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외로움에 눈길을 건네지 못하고 살아온것 같더군요. 어느 시인이 그랬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강아지는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강아지도 외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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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1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1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5-2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장가를 가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3=3=33

잉크냄새 2010-05-21 18:54   좋아요 0 | URL
전 나중에 또 먼길을 여행할 생각인지라....
 

“바른 정(正)의 한 획을 그으며” 

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그가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의 낙인과도 같은 문신에 대한 글인데, 그들을 사회 약자의 위치에 놓고 바라본 이야기이다. 그들의 문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카멜레온의 보호색과도 같은, 가난한 이들의 자기 보호색으로 보는 시각이 흥미로웠던 글이다. 네팔에는 분따 라는 특별한 행태가 존재한다. 과거 마오이스트들이 트래킹 대상자들을 상대로 길을 막고 통행료를 받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는데 그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분따로 인하여 여행 일정이 종종 연기되곤 하는데, 네팔인들이 하루 동안 특정 도로를 막고 통행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행의 불편함을 뒤로하고 그들이 분따를 일으키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국 가난한 이들의 서글픈 이야기들이다. 같은 마을 사람의 장례식 비용 마련을 위하여, 가진 자의 폭정에 항거하여 그 억울함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넘어가는 히말라야의 언저리에서 버스를 가로막는 분따를 만났다. 몇몇 사람이 직접 쓴 비뚤비뚤한 현수막을 들고 길을 가로막고 몇몇 사람이 운전석으로 다가가면 운전수는 일정량의 통행료를 지불한다. 버스 승객 모두 그 행위에 그저 일상의 일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그 작은 항거에 대한 동병상련 때문일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통행료를 지불하던 젊은이마저 환하게 씨익 웃는다.



<박타푸르 더르바르 - 리틀부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더르바르(광장)에는 쿠마리가 산다. 네팔의 미신적인 풍습에 의하여 선발되는 4세의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다.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하여 선발되면 여신으로 추앙받는데 그 마지막이 서글프다. 어린 시절을 저당 잡혀 살며 어떤 교육이나 사회화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초경이 시작되면 불경하다는 이유로 결국 쫓겨나는데 일반인으로 돌아온 쿠마리를 맞아들이는 가족은 단명한다는, 쿠마리와 결혼한 남자는 단명한다는 나쁜 속설로 인하여, 쫓겨난 쿠마리는 평생 홀로 살아가며 생계를 위하여 거리의 여자로 살아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쿠마리는 카트만두 시내 더르바르의 한 건물에 살고 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는 여행자에게 이층 창문으로 살며시 얼굴을 보여주는 쿠마리는 운명의 서글픔을 알고는 있을까. 결국 보지 않았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서글픈 운명이 겹쳐진다면 그 운명의 무게로 발걸음을 띄지 못할 듯 싶었다. 더르바르 광장 뒷골목을 서성이다 여염집의 이층 창문에서 쿠마리 또래 인듯한 아이들을 보았다.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그들의 모습 위로 보지도 못한 쿠마리가 자꾸 겹쳐져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왠지 근접할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지던 박타푸르 광장의 노인>

로컬 버스에 흔들리며 찾아간 박타푸르 더르바르는 흡사 중세 시대로 귀환한 듯한 느낌이었다. 온통 흙색의 도시이다. 인도의 자이살메르가 풍기던 황금빛의 찬란함과는 다른, 흙만이 줄 수 있는 아늑한 온화함이 굴절된 빛으로부터, 막 응달로 접어든 벽으로부터 스며 나와 차분하게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듯한 탑과 사원의 웅장함, 그 사원의 주변에 형성된 민가의 단촐함에서는 대조적인 이분법적 의미보다는 오랜 세월 품고 살아와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조화로움이 느껴졌다. 그러한 골목을 거닌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가장 호사스런 경험일 것이다. 아득한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을 따라 걷다 보면 흡사 내 몸의 일부가 골목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하여 그곳을 벗어나 아득히 먼 길을 떠난다 해도 그 온화함에 살며시 눈을 감고 골목을 걷던 평화로움은 언제나 내 기억의 한 조각을 이루어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 골목은 언제나 포근하다> 

 
내가 머물던 숙소는 한국 여성이 운영하는 네팔짱 이라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카트만두에서 유명한 곳인데 식사를 위하여 찾아 들어간 부속 식당에는 꽤나 유명한 인사들이 히말라야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 들어 남기고 간 사진들로 가득했다. 우연히 그곳에서 포카라에서 막걸리 으로 만난 여행자를 만났다. 하루 일찍 네팔을 떠나는 그와 마지막 을 마시고 들어온 날 우리도 하나의 사진을 붙였다. 포카라에서 만난 네 명의 여행자가 사랑코트에 올라 찍은 사진인데 나머지 두 명은 인도로 향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사진 밑에 우리의 이름을 쓰고 바를 정()의 한 획을 긋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다른 두 명에게는 메일로 통보해 줄 예정이었다. 그는 이년에 한번 정도 네팔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십 년의 세월이 걸릴 거라 말했다. 난 십 년 안에 한 획을 더 그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웃었다. 그 사실이 다소 서글펐지만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밑에는 한 획으로 표현된 우리의 추억이 굵게 가로 지르고 있었다



<바를 정(正) 자의 한 획을 그었다. 누가 또 다음 획을 그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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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4-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인도와 네팔은 언젠가,갈수있을지 모르겠어요.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배낭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벌써 안락한 여행의 편안한 맛을 봐버렸다능 ㅠㅠ

역시 한 번 간 김에 다 돌고 왔어야 했는데..

전 여행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가는중인데 어쩜 잉크냄새님의 여행기는 묵히면 묵힐수록 점점 따뜻하고 깊어지는지요.

잉크냄새 2010-04-11 21:24   좋아요 0 | URL
가슴에 품은 열망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그 길위에 서리라 믿어봅니다.
아직 많은 도시가 남아있어요. 이제 1년의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눈만 감아도, 그 지명만 들어도 그 거리의 모습과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아마 평생동안 그 모습들은 잊혀지지 않을것 같네요.

비로그인 2010-04-1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마리 같은 여인들의 모습은 즉, 형태만 다를 뿐 여성을 학대하고 이용하는 그 근본에서는 공통인 모습은 그러나 21세기라는, 현대의 이세계 모든 도시들에서도 볼 수 있지요. 가장 진보했다는 서유럽에서조차 저는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요..
그 자식들에게 fuck you를 날리기도 했고 때려도 보았고 고함도 지르고 거리 한복판에서 미친여자처럼 싸워도 보았어요. 여자도 사람이라는 걸 시위해야 한다는 건 비참한 일이예요..

잉크냄새 2010-04-11 21:28   좋아요 0 | URL
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악습이죠. 의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 악순환의 고리를 결코 자를수 없겠죠.
시리아에 있을때 발생한 명예살인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다마스커스가 추해보이고 중동인들마저 비겁해보여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와버렸죠.

춤추는인생. 2010-04-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장의 노인사진 참 좋으네요. 뼈만 앙상한 사람을 보면, 미적으로 참 정갈하다 라는 느낌이 들어요.왜 이병률 시인이 시중에 순정 있쟎아요. 살이 붙어 흉이 많다고.
때론 뼈밖에 없는 저 정갈한 사진에는 가릴것 하나도 없는 투명함이랄까. 그런데서 오는 숙연함이 있는것 같네요.
인도에 대한 여러작가의 글들이 있지만. 잉크냄새님 글 참 좋죠.^^
화이팅이예요.!

잉크냄새 2010-04-11 21:3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저 사진 제가 찍은 참 많은 사진중에서도 아끼는 사진입니다. 박타푸르 광장 초입에서 만난던것 같은데 저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보았어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갔지만 결국 노인을 만날수 없었죠. 하지만 그 잔상이 한동안 남아있더군요.

paviana 2010-05-1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부지런했다면 이 글을 한달전에 벌써 읽었을텐데...
아래 사진 속에 잉크님 계신거지요? 어떤 분일지 궁금하네요.
근데 글을 점점 더 잘 쓰시는거같아요. 사진도 그렇고. 비결이 혹 있으신가요? ㅎㅎ

잉크냄새 2010-05-18 15:1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재초기부터 꾸준히 방문해주시잖아요.ㅎㅎ
글은....가슴에,추억에 남아있는 여행의 느낌을 풀어내기에는 전 너무 부족합니다.
 

“옴마니반메흠
여행이 타인의 삶 속으로 한 발짝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면 로컬 버스는 바로 여행의 매력이라 할만하다. 그저 옷깃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 아니라 한정된 공간 속에서 웃음 소리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 만큼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근거를 알 수 없는 동질감이 생기곤 한다. 룸비니에서 포카라로 가는 로컬 버스는 아담한 작은 버스였다. 지붕 가득 짐을 실은 버스는 계곡 옆을 깍은 아슬아슬한 길을 지날 때마다 원심력을 잃고 날아갈 듯 기울어지곤 했다. 아름답고도 위험한 길을 벗어나 산길로 들어갈 때쯤 버스 승객들 사이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 작은 산골 마을로 들어선 버스가 이유 없이 오래 머물렀고 잠시 후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 아리따운 네팔 여인이 나타났다. 분위기로 보아 운전자의 애인쯤으로 여겨지는데, 버스 안에 탄 모든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선물을 주고 밀어를 속삭이던 두 사람에게 드디어 질투에 눈이 먼 네팔 총각들의 날선 눈초리가 날아들고 급기야 거친 말다툼으로 번졌다. 애인을 뒤로 한 채 다시 출발한 버스는 나이든 노인들의 근엄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섰다 갔다를 반복하며 거친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든 적당한 시간과 거리가 존재한다. 천사 같은 애인이 그저 부러웠을 총각들의 마음이 부러움에서 질투로, 다시 분노로 서서히 넘어가던 시간을 운전자는 알지 못한 듯 싶다. 여행자의 신분이기에 적당한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나에게는 산길을 따라 내려오던 천사 같던 그 여인의 모습만이 남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악기 소리에 잠이 깨었다. 나무를 깍아 만든 투박한 두 줄 현악기를 연주하는 소년이 올라탄 것이다. 악동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눈을 가진 열살 남짓의 소년은 변성기 이전 특유의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하는데 흡사 해금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소년은 두세 곡을 더 부른 후 승객들이 건넨 돈과 음식을 받아 사라졌다. 그 소년이 악기를 연주하던 그 순간, 여전히 덜컹거리던 버스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여유로운 승객들 사이에 흐르던 투박한 현의 소리와 꼬마 악동의 노래 소리가 꿈처럼 아스라했다.





<포카라 가는 버스 안에서 악기 연주하는 소년>

사람마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는 듯 싶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혼을 빼앗기고, 누군가는 찬란한 문화 유산에 매료되고, 또 누군가는 휘황찬란한 도시의 풍경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난 삶이 담긴 풍경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편이라 인도의 타지마할보다도 바라나시의 풍경에 훨씬 매료된 듯 싶다. 그런데 이곳 포카라는 신비스런 안나푸르나의 눈덮힌 산봉우리와 그 눈부신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 안는 페와 호수의 잔잔한 잔물결만으로도 숨이 막히지만 적어도 나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옴마니 반메흠이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울려대던 시내의 작은 도로였다. 도로 양 옆으로 기념품 판매점과 음식점이 즐비한 다른 도시에서 흔히 접하던 흔한 풍경이었지만 불교 음악이 끊이지 않고 인상 좋은 네팔인들이 그저 웃으며 살아가는 그 거리의 풍경은 분명 다른 도시와는 차별화된 인상이었다. 풍경과 삶이 겉돌지 않고 서로를 안는 느낌이었다. 풍경은 자연만을 담는 것은 아니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풍경이 더 친숙한 것은 아닐런지. 세월이 흘러 이 길의 돌 한조각을 주워 가만히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이면 설산의 눈부심과 호수의 일렁임이 느껴지고 옴마니 반메흠이 흘러나오던 거리를 거닐던 나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를 듯 싶었다.



<마을 어디든 설산을 이고 있는 풍경>
 


룸비니의 대성석가사에서 만난 그리스 친구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지 자신의 여행과 상관없이 나를 따라 포카라까지 왔다. 사이프러스 출신인 그는 부동산 중개업자인데 산토리나가 멋있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싸게 집 한채 얻어 준다는 멋진 직업의식을 표출하곤 했다. 커다란 키에 대머리인 그는 서양인치곤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더치패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전부 지불하는 적극 추천할만한 만행을 저질러 나를 당혹케 하곤 했다. 친한듯 싶으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마리화나를 피우기 때문이었다. 아침 나절 숙소 이층 탁자에 앉아 정성스럽게 마리화나를 종이에 마는 모습이 참 낯설면서도 깜짝 놀래켜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천진스러움도 느껴졌다. 한밤중이 되면 우린 탁자에 앉아 아프리카 타악기 음악을 듣곤 했다. 마리화나와 타악기 비트음의 상승효과에 열변을 토하는 그에 답해 난 술과 타악기의 궁합을 술을 마시며 몸소 실천해주었다. 그 음에 맞추어 손가락 장단으로 시작한 아카펠라는 발장단까지 더해져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되었다



<타악기에 발장단 맞추던 테라스>

인연이라는 말에는 작은 설레임이 있다. 잔잔하던 마음이 산들바람에 일렁이듯 설레이는건 인연이 필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적한 점심 나절이면 소비따네라는 작은 식당 한 자리를 차지하고 엽서를 쓴다든지, 금새 친해진 여행자들과 이라는 막걸리를 마시며 소일하곤 했다. 어느날,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한 눈이 맑은 아가씨가 계속 나를 주시하였다. 다시 책을 읽다 머리를 들면 마주치는 눈빛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살며시 자리를 뜨려니 황급히 나를 부르며 자신을 알지 못하냐고 물었다. 델리에서 이곳까지 거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도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수원에서 인도 여행 설명회때 만났잖아요.” , 첫 여행의 설레임과 두려움 반으로 찾아간 인도 여행 설명회의 뒷풀이때 내 앞에 앉아있던 아가씨였다. 나보다 여행 일정이 한달 가량 늦게 잡혀 있었고 여자 친구를 혼자 보내야 하는 근심에 안절부절하던 남자친구와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로 술을 마셨었다. 인연이 있다면 인도 어디에선가 만날겁니다. 라며 헤어진 자리였는데 네팔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다니. 만난지 이틀뒤 그녀는 동행들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떠났고 난 카트만두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여행 수첩을 뒤적여 그 곳에 적힌 수많은 인연들을 다시 떠올렸다. 세상의 어느 언저리에서 또 다시 만날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그리움이 여행지의 풍경과 함께 살며시 피어올랐다. 



<사랑코트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와 마차푸르레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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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10-04-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색감의 보라색 벽, 드물게 보는군요.
마지막 사진은 많은 생각을 머금게 했던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 연상됩니다.
포카라..오래전부터 한 번은 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요.
덕분에 내 자리에서 먼 곳의 모습을 생생히 맛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게두요.^^

잉크냄새 2010-04-08 00:50   좋아요 0 | URL
하니케어님, 오래간만이네요.
"잃어버린 지평선"에 소개된 샹그릴라를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포카라는 마음을 얻고 돌아오기에 충분한 곳이라 생각됩니다.

비로그인 2010-04-0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잉크냄새님 여행은 각자의 창으로 세상을 보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다 다르고 .. 정말..그래요..
어느분께서 글에 그러시더군요. 이세상에 몇 십억개의 세상이 있는것이 신난다고, 각자의 사람들이 각자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니 결국 하나인 세상이지만 수십억개의 세상이 있는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님이 바라보는 소중한 세상 이야기를요.. ^^

잉크냄새 2010-04-08 00:53   좋아요 0 | URL
수십억개의 세상이 있고, 그 수십억개의 세상을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줄때 세상은 진짜 그런 다양성속의 조화로움을 이루어갈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직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군요. 그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삶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영글어 가리라 믿습니다.

카삼 2012-07-0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보고가입니다

잉크냄새 2012-07-09 10:04   좋아요 0 | URL
하, 이 오래된 여행기를 봐주시는 분이 계시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