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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odes항구의 크로이소스 거상(巨像) - Colossus
BC 3세기 무렵 소아시아 가까이에 있는 로도스섬에 세워진 청동으로 만든 큰 상으로, 태양신 헬리오스를 표현 한 것이다.

Rhodes항구의 크로이소스 거상(巨像) - Colossus
BC 3세기 무렵 소아시아 가까이에 있는 로도스섬에 세워진 청동으로 만든 큰 상으로, 태양신 헬리오스를 표현한 것이다.
거상(巨像)은 원래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 등을 보고나서 칭한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 로도스 항구에 서 있던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높이가 36 m나 되었으며, 린도스(로도스 섬 동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의 카리오스에 의해 BC 280년경 건조되었는데 BC 224년의 지진 때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불행히도 로도스 항구의 거상에 관해서는 자료가 너무 없다.... 

 - iresys님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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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름을 들어본듯도 하구 아닌듯도 하구...^^; 7번까지 다 읽어야되는데, 왜 이렇게 속도가 느린거죠 알라딘~~ 심장이 터질꺼 같애~~!!
 
 전출처 : waho > 무언가 잡고싶은 마음....당신은 어떤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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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2-0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희망인지 절망인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 곳에서... 그나마 위로 삼을수 있는 하나의 사실은 잡으려고 하는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발끝하나 제껴 세울곳 없는 저 처절함의 끝에 그곳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망우리' 대보름날 하던 놀이중 하나인 '쥐불놀이'를 일컽는 어릴적 내가 살던 바닷가 동네의 사투리이다. 사실 사투리인지 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망우리'라는 표현은 유일하게 우리 동네에서만 들은 기억이 날 뿐이다.

대보름이 다가오면 일단 깡통을 구하러 다녔다. 그때 당시 남양분유통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그 지름과 깊이는 가장 화력을 좋게 할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였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통조림통은 지름이 좁아 화력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곤 했다. 다음으로 준비해야했던 것은 역시 보름달만큼이나 밤하늘을 밝힐 땔감이었다.바닷가를 배회해본 사람은 알수 있듯이 파도에 밀려와 바닷바람에 부드럽게 씻기고 바다햇살에 마른 장작의 화력을 대단하다.

이런 준비가 끝나면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당시 우리동네는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마을로 나누어져 있었다. 보름달이 밤의 가장 가운데로 오기 직전, 동네 꼬마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양쪽 시냇물 옆의 언덕으로 오른다. 그리고 드디어 '망우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보름달보다 큰 원을 그리며, 귓전으로 겨울바람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돌리는 '망우리'가 그 최후의 빛을 발하는 순간, 어느 한명의 손을 떠난 '망우리' 하나가 긴 꼬리를 그리면 시냇물로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양쪽 언덕에서 시냇물쪽으로 긴 꼬리의 유성들이 춤추기 시작한다. 그때 쯤이면 보름달은 밤의 중심으로 옮겨와 아쉬운듯 집으로 돌아가는 꼬마들의 뒷모습을 환히 비춰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설을 지내며 한살을 먹은 것이 아니라, 매년 보름날 돌리던 '망우리'속에 한해의 추억을 담아 보름달을 향해 던져버리며 한살을 먹은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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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2-06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십니다~! 쥐불놀이... 참...귀밝이술은 드셨습니까?

잉크냄새 2004-02-06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밝이술, 그건 생각도 못했군요. 올 한해도 몽롱하게 사는것은 아닐런지 ^^; 며칠전에 먹은술을 귀밝이술이라 우기며 위안을 삼아야겠군요.
 


피디아스의 작품 올림피아의 제우스(Zeus) 신상(神像)

그리스 본토 올림피아의 신전 안에 놓여 있었던 제우스의 큰 상으로, 조상(彫像)의 명인 페이디아스가 만든 것이라 한다.

제우스 상이 있는 올림피아는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 앨리스 지방에 있는 제우스의 신역으로서 완만한 구릉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로 예부터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를 믿었다.  제우스는 고대 로마의 최고의 신 '주피터'와 같이 고대 그리스 신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천둥, 번개와 비바람을 만드는 신이며, 그의 주 무기는  벼락이었다. 제우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신이며,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도시마다 제우스 신을 모신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앨리스 등의 도시 국가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처음에는 땅의 신 크로노스와 여신 헤라를 숭배했지만 뒤에 제우스 신을 숭배하게 되어서 B.C457년에 제우스 신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피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상을 안치하였다.

제우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은 피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피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상을 완성했는데, 그는 제우스의 신성함 위엄과 함께 너그러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걸작 중의 걸작 제우스 상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남아 있지 않다.

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신전에는 양옆에 열세 개씩, 양끝에 여섯 개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 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 있는 제우스 상은 높이가 90㎝, 폭이 6.6m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12m 정도 되는 상은 거의 천장을 닿고 있다.  제우스 상은 나무로 만들어져 그 위에 보석과 흑단,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금으로 된 발 디딤대에 올려져 있는 양다리는 거의 예배자의 눈높이와 일치하였다. 오른손에는 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Nike)상을 떠받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황금을 박아 장식한지팡이(왕홀)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 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꽃과 동물이 새겨진 황금의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어떤 고대인은 제우스상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감상을 토로했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도, 불행과 비극에서 헤어 나지 못하는 사람도 만약 우뚝 서 있는 제우스상을 보게 된다면 고통과 절망을 잊어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림피아라 하면 누구든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를 생각하게 된다.전설에는 헤라클레스가 효시였다고 한다. 제1회 대회는 기원전 776년에 벌어졌고 기원후 217년까지는 4년마다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지방행사에 불과 했지만 나주에는 그리스인의 행사가 되었다. 이 경기는 그리스가 지배권을 잃은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지만 394년에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경기금지 칙령을 내렸고 426년에는 이교의 신전파괴령이 내려짐으로써  제우스 신역은 파괴되었다. 더욱이 522년과 551년의 지진으로 크로노스 언덕이 허물어졌고 그라데오스 하천의 범람으로 신역은 3~5미터 아래 모래층으로 매몰되어 버리고 말았다. 후에 그리스가 독립한 1829년에 프랑스인이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메도프(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기둥,지붕 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1875~1881년에는 독일 정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어 올림피아의 전체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신전도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제우스 신전의 발굴 움직임이 18세기 경부터 일어났고 처음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 1829년 프랑스인이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메도프, 기둥, 지붕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1875년경에 독일 정부의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의해 올림피아의 전체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신전도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1950년대 제우스 신전터에서 피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 iresys님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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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2-0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 7대 불가사의 시리즈 넘 재밌게 보고 있답니다.
 


에페수스(Ephesus)의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아시아의 도시 에페수스에 세워져 있었던 웅장한 신전으로, 대지모신(大地母神)을 조상으로 삼는 여신 아르테미스를 받드는 곳이었다. 두 번 파괴되어진 곳이기도 하다.

에페수스 시는 소아시아에 있는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열두 개 도시 중 하나로서 B.C 6세기 경에 이미 서아시에서 상업의 요충지로 번영하여 가중 부유한 도시로 알려졌다. 이 곳에 바로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던 곳이다.이 신전은 당시 최고 부자였던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B.C 560∼B.C 546)때 세우기 시작하였다.높이 20미터 정도의 훌륭한 이오니아풍의 백색 대리석 기둥을 127개나  사용한 이 신전은 완성되기까지 120년이 걸렸다고 한다.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에페수스를 방문하여 이 신전을 돌아보고는, 기자에 있는 피리미드에도 떨어지지 않는 걸작으로 묘사하면서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헤로도토스가 에페수스를 방문한 지 1세기 정도 지난 뒤 그 훌륭하고 아름다운 신전은 어리석은 한 인간에 의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B.C 356. 10월 "어차피 나쁜 일을 하려면 후세에까지 알려질 수 있는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한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자가 신전을 계획적으로 불태워 버린 것이다.  

그 후 디노크라테스가 불타 버린 신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에페수스의 여인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 등을 팔았고, 왕들은 크로이소스 왕을 본받아 기둥을 기증하기도 했다.더욱이 아시아 원정 길에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은 한층 완성중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았겨 "만일 에페수스인이 이 신전을 나의 이름으로 세워준다면 모든 비용을 내가 내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페수스인들은 다른 나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야심이 강한 에페수스인들은 자신들의 신전을 지금까지 어떤 신전보다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여, 그 당시 가장 훌륭했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신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파르테논은 길이가 69m. 폭이 30m, 높이 10정도로서, 대리석 기둥을 58개나 사용한 신전이었다. 에페수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정도의  규모로 만들기 시작했다. 높이 18m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했고, 길이는 120m, 폭은 60m로 했다. 또한 신전의 건축용 자재는 가장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을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에는 네 방향으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그 규모나 화려함은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제우스와 레토의 딸,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간이다. 처녀 사냥꾼으로 산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라고 하며, 그의 화살은 산욕(産褥)을 치르는 여자를 고통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처녀의 수호신으로서, 순결 정절의 상징이었는데, 처녀의 순결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죽음의 벌을 받은 자 가운데는 오리온이나 아크타이온이 있다. 소(小)아시아의 에페수스에서 신앙되던 아르테미스의 상(像)은 풍부함을 표시하는 듯 살이 쪄 있고 가슴에 무수한 유방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는 기묘한 모습의 동물들이 얽혀져 있다. 고장에 따라 특징 있는 숭배를 받았는데, 옛날에는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하는 고장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와 동일시되었다.아폴론이 태양의 신인 데 반하여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는 월신(月神) 셀레네, 헤카테와 동일화되었기 때문이며, 아르테미스라는 이름도 그리스계(系)가 아니고 옛선주민족(先住民族)의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원래는 대지, 특히 야수들이 사는 들판을 주관하는 모신(母神)으로서 동식물의 다산(多産)과 번성(繁盛)을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 출산과어린이의 발육을 수호하는 신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화려한 신전이 세워지고 영화를 누리게 된 에베소 시에 기독교의 물결이 밀려들어 왔다. 우상 숭배를 금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눈에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는 자신들의 교의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 요한 계시록 제 2장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경고의 편지로 첫사랑을 버린 것을 반성하고 처음 하던 일을 다시 하지 않으면 등경을 그 자리에서 치워버리겠다고 적고 있다. 사도 바울도 이곳에서 우상 숭배를 하지 말 것을 권유하면서 에베소 사람들과 있었던 충돌에 대하여 적고 있다. 형상화된 신의 이미지를 숭상했던 문화와 내면의 신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문화가 서로 마찰을 일으켰으나 아르테미스 신전은 건재했고 기독교는 소아시아와 유렵으로 전파되어 갔다. 기독교도와의 충돌에서도 에베소 사람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고수했지만 신전은 기원 후 260~268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해온 고트인들에 의해 약탈되었고 이때의 방화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에베소의 신전은 화려한 영광에 대한 기억과 거대한 대리석들의 잔해를 남겼다. 사람들은 신전의 잔해들을 주으려고 이곳으로 왔다. 신전에 서 있는 돌이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폐허 위로는 먼지와 흙이 쌓이게 되었고 마침내 땅 밑으로 깊숙히 들어가게 되자 그 마을 사람들도 신전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는 사람들이 없게 되버렸다.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 J.T 와트가 대영박물관의 원조와 11년동안의 노력으로 마침내 지하 7m 지점에서 대신전을 발굴해 냈다. 발굴한 건축용 석재, 기둥, 조각을 토대로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꽤  정확하게 신전의 본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다. 로마의 남쪽 25 km에 위치한 아리키아 부근 네미 호숫가에 있는 디아나 네모렌시스는 가장 유명한 신역(神域)으로서, 이곳에서는 디아나가 여성의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로마의 유명한 디아나 신전은 아벤티누스 언덕에 있다.

- iresys의 홈페이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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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5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사라져버린 유적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네요. 특히나, 전쟁통에 사라져버린 것들이 많구...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그렇구, 세계적으로도요. 이라크 전쟁때도, 고통받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라져버릴 문화유적들도 걱정이 됐더랍니다...마지막까지 기대할께요~ ^^

잉크냄새 2004-02-0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피라미드만이 유일하게 존재한다고 하네요. 자연현상에 의해 사라짐은 어쩔수 없으나, 님의 말대로 인간에 의해 사라진다는 것은 왠지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 금속활자나 석굴암도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받는다고는 하던데... 더 부강해져야 언급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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