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1 | 112 | 113 | 114 | 11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출처 : icaru > 발자국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분주하게 오가던 때가 있었지.

바쁜 게 좋은 걸까? 다시 바빠져야 할까?

아.....

아무리 바빠진들 삶의 짐은 가벼워지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한곳에만 지독히 머물러 있는 듯한  내가  참 무겁다...

 

 

 

사진 김연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02-0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어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이는 내 누이뿐만은 아니다. 젊음의 방황이 아프도록 느껴지는 그림이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러스 영묘(靈廟) - Mausoleum

BC 350년 무렵 소아시아의 페르시아인 총독 마우솔로스의 죽음에 즈음하여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건축하게 한 거대한 능묘이다.

페르시아 제국 카리아의 총독 마우솔로스를 위하여 그리스의 할리카르나소스에 건조된 장려한 무덤기념물이다. 면적 29×35.6 m, 높이 50 m. 할리카르나소스의 묘묘(墓廟)라고도 한다. 마우솔로스의 생전에 착공되었으나, 그가 죽은 뒤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완성된 시기는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죽은(BC 350) 뒤로 추측된다. 설계는 사티로스와 피테오스가 하였다. 동서남북의 장식조각은 각각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오스, 브리아크시스가 담당하였다.
각 면의 조각/프리즈는 발굴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또, 로마인은 비슷한 대규모의 분묘건축(墳墓建築)도 마우솔레움이라고 일컬었다. 마우솔레움은 그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다.

역시 자료가 넘 부족하다ㅠㅠ

-iresys님의 홈페이지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Rhodes항구의 크로이소스 거상(巨像) - Colossus
BC 3세기 무렵 소아시아 가까이에 있는 로도스섬에 세워진 청동으로 만든 큰 상으로, 태양신 헬리오스를 표현 한 것이다.

Rhodes항구의 크로이소스 거상(巨像) - Colossus
BC 3세기 무렵 소아시아 가까이에 있는 로도스섬에 세워진 청동으로 만든 큰 상으로, 태양신 헬리오스를 표현한 것이다.
거상(巨像)은 원래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 등을 보고나서 칭한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 로도스 항구에 서 있던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높이가 36 m나 되었으며, 린도스(로도스 섬 동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의 카리오스에 의해 BC 280년경 건조되었는데 BC 224년의 지진 때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불행히도 로도스 항구의 거상에 관해서는 자료가 너무 없다.... 

 - iresys님의 홈페이지에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2-06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름을 들어본듯도 하구 아닌듯도 하구...^^; 7번까지 다 읽어야되는데, 왜 이렇게 속도가 느린거죠 알라딘~~ 심장이 터질꺼 같애~~!!
 
 전출처 : waho > 무언가 잡고싶은 마음....당신은 어떤가요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02-0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희망인지 절망인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 곳에서... 그나마 위로 삼을수 있는 하나의 사실은 잡으려고 하는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발끝하나 제껴 세울곳 없는 저 처절함의 끝에 그곳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망우리' 대보름날 하던 놀이중 하나인 '쥐불놀이'를 일컽는 어릴적 내가 살던 바닷가 동네의 사투리이다. 사실 사투리인지 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망우리'라는 표현은 유일하게 우리 동네에서만 들은 기억이 날 뿐이다.

대보름이 다가오면 일단 깡통을 구하러 다녔다. 그때 당시 남양분유통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그 지름과 깊이는 가장 화력을 좋게 할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였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통조림통은 지름이 좁아 화력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곤 했다. 다음으로 준비해야했던 것은 역시 보름달만큼이나 밤하늘을 밝힐 땔감이었다.바닷가를 배회해본 사람은 알수 있듯이 파도에 밀려와 바닷바람에 부드럽게 씻기고 바다햇살에 마른 장작의 화력을 대단하다.

이런 준비가 끝나면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당시 우리동네는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마을로 나누어져 있었다. 보름달이 밤의 가장 가운데로 오기 직전, 동네 꼬마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양쪽 시냇물 옆의 언덕으로 오른다. 그리고 드디어 '망우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보름달보다 큰 원을 그리며, 귓전으로 겨울바람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돌리는 '망우리'가 그 최후의 빛을 발하는 순간, 어느 한명의 손을 떠난 '망우리' 하나가 긴 꼬리를 그리면 시냇물로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양쪽 언덕에서 시냇물쪽으로 긴 꼬리의 유성들이 춤추기 시작한다. 그때 쯤이면 보름달은 밤의 중심으로 옮겨와 아쉬운듯 집으로 돌아가는 꼬마들의 뒷모습을 환히 비춰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설을 지내며 한살을 먹은 것이 아니라, 매년 보름날 돌리던 '망우리'속에 한해의 추억을 담아 보름달을 향해 던져버리며 한살을 먹은 것이 아닌가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icaru 2004-02-06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십니다~! 쥐불놀이... 참...귀밝이술은 드셨습니까?

잉크냄새 2004-02-06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밝이술, 그건 생각도 못했군요. 올 한해도 몽롱하게 사는것은 아닐런지 ^^; 며칠전에 먹은술을 귀밝이술이라 우기며 위안을 삼아야겠군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1 | 112 | 113 | 114 | 11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