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쓰기, 제일 처음 접한 것은 국민학교때 펜글씨를 시작하면서였다. 그때 당시로서는 너무 좋은 재질의 종이위에 그 글의 의미를 알수없었던 각종 시나 글들이 적혀있던 펜글씨 교본은 하나의 자존심이라고 해도 될것이다. 사실 어느 책보다도 소중히 들고 다녔다.

처음 삐뚤삐둘한 글씨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해도 몇 페이지당 한개씩 예제로 나와있던 세로쓰기는 그 생소함과 신비함에서 감히 범할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지곤 했다. 고학년이 되어야 쓸수 있다고 느끼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경계가 있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세로쓰기는 쉬운것이 아니다. 내 나름대로의 세로쓰기 도전에 앞서 필요한 것을 적어본다.

첫째, 글의 아래로 내려긋는 획이 힘이 있어야 한다. 아래로 내려긋는 획이 얼마나 힘과 절도가 있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글로 다가온다.

둘째, 글자의 크기가 동일해야 하며 특히 줄을 확실히 맞추어야 한다. 글자의 크기는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시 차이가 눈에 확 뛴다. 특히 내려긋는 획의 길이를 얼마나 조절하느냐도 관건이다. 줄 맞추는 것은 직접 한번 써보면 쉽게 알수 있을것이다.

셋째, 문단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가로쓰기의 경우도 문단이 줄바꾸기에 큰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로쓰기의 경우는 문단이 중간에서 끊어지거나 하면 묘하게 전체 그림이 성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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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2-0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로 쓰기도 어렵지만 일기가 더 힘든던데...습관이란 무서워서...익숙하지 않으니 낯설어서 힘든가?

icaru 2004-02-0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자요...쓰는 것도 그렇지만...읽는 것도 어렵죠오...요즘도 일본에서 나온 중고등학교 국어 국정교과서 보면 다 세로쓰기더라구요...걔들은 그게 수준있고 교양있는건가봐요... 하긴 우리도 과거 60, 70년대 나온 단행본 소설책같은 거 보면 다 세로쓰기더군요... 저도 중학교 다닐 때까지 세로 글씨로 나온 청소년 세계 문학전집 본 거 같아요..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거...

잉크냄새 2004-02-09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가끔 폼 잡느라고 세로로 써보면 운치가 묻어날때도 있답니다. ^^; 특히 규격편지지에 쓸때...

icaru 2004-02-1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낭만적이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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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2-0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선만 보면 상상력에 날개를 단다.

비로그인 2004-02-0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역시 멋지군요...^^

waho 2004-02-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런 생각을...

paviana 2004-02-1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 하늘,파란 바다, 흰구름,흰 범선 멋지네요..

icaru 2004-02-1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1. 불순구고(不順舅姑)거

남편이 장인장모에게 불효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재산의 반만 주고 내쫓을수 있다. 물론 남편이 자기 친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은 자기 집안 내력이다.

2. 무자(無子)거

남편 때문에 자식이 생기지 않으면 아내는 바람을 피워서 임신을 할 권리가 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남편에 대해서는 그 아내가 재산의 반을 주고 내쫓을수 있다

3. 음행(淫行)거

아내는 남편의 허락없이도 체팅을 하거나 바람을 피울수 있으나 남편은 아내 몰래 체팅을 한다거나 방송을 한다거나 바람을 피우다 들키면 그 아내는 재산의 반 중에서 위자료를 뺀 금액을 주고 내쫓을수 있다.
물론 옷은 홀라당 벗겨서 내 쫓는다 ㅋㅋㅋㅋ

4. 투(妬)거

남편은 아내가 바람을 핀다고 질투를 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계속 질투를 할 경우 아내는 재산의 반을 주고 남편을 내쫓을수 있다. 물론 위자료같은건 주지 않아도 된다.

5. 악질(惡疾)거

음주 흡연등으로 건강을 해친 남편이 정력감퇴등으로 아내를 줄겁게 해주지 못할시에는 군말없이 재산의 반과 위자료와 살든 집을 아내에게 주고 나가야 한다.

6. 구설(口舌)거

여자는 수다스러운 것이 자연스러운것이나 남자는 말이 많으면 안됨으로 어떤경우에도 처가집 식구들 흉을 봐서는 안된다. 그런 남편은 아내로부터 재산의 반만을 받고 쫓겨나도 이의를 제기할수 없다.

7. 도(盜)거

아내는 남푠의 비상금을 뒤질 권리가 있으나 남자는 여자와 달리 손버릇이 나쁘면 안된다, 도벽이 있는 남편은 그 아내로부터 재산의 반을 받고 쫓겨나도 항의할수 없다.

*. 부칙
이 가족법은 호주제 폐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함과 동시에 발효되고 남녀 역평등이 이루어져 정부조직내에 여성부가 폐지되고 남성부가 신설되면 자동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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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2-0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칠거지악은 말도 안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신 칠거지악을 가만히 살펴보면서 이건 전혀 말이 안되는 이야기 뿐이잖아..(여자의 입장이지만.)라고 생각을 했는데.. 옛날 우리나라의 여성분들은 이런 말도안되는 항목들 때문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었다. 라는 것이 떠오르더군요...
요즘은 이런 것들은 사라졌으니^-^;(아직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잉크냄새 2004-02-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말이 안되는 항목입니다. 신칠거지악이라고 비꼬아 가부장적인 세태를 풍자하고 있지만 현실은 아직 이런 잔재가 사회 곳곳에 형태를 달리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거지요.

겨울 2004-02-0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크게 웃고 갑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나름대로 가부장적 가정에서 핍박을 받고 자라서인지 이런 것만 보면 가슴이 뻥 뚫립니다.

waho 2004-02-0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고 갑니다. 이런 게 실제로 효력 발휘한다면 제대로 살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요?
 


알렉산드리아 - 파로스(Pharos) 등대 

BC 250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항구 부근의 작은섬 파로스에 세워진 등대로, 높이 솟아 있는 석조건조물의 정상부분에 불을 태우는 장치가 있으며, 렌즈나 거울이 쓰였다고도 한다.

1994년 가을에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깊이 7m 정도의 바다 속에서 등대의 잔해 수백점을 건지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파로스 등대의 신비가 조금이나나 벗겨졌다. 발굴팀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4.55m, 무게 12톤의 여신상을 기중기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발굴팀은 아직도 바다 속에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 등이 잠겨져 있어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발굴된 잔해 또는 조형물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은 파로스 등대의 비밀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대부분이 대리석 돌로된 등대의 높이가 135m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 등대는 3개의 층계로 만들어졌다.  맨 아래층이 4각형, 가운데층이 8각형, 꼭대기 층은 원통형이었다. 각 층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지어졌다(기울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음). 등대 안쪽에는 나선형의 길이 있어서 등대 꼭대기의 옥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탑 위에는 거대한 동상(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마도 알렉산드 대왕이나 태양신 헬리오스의 모양을 본떴을 것으로 여기지고 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c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B.C28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떻게 등대에 불을 지폈을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파로스 등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등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단단한 돌로된 등대가 무너진 것은 12c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1100년과 1307년의 두차례의 큰 지진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20세기 초반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등대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그 모습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이 등대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존재하고 있다. 기원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한 아라비아인들은 이 등대에 달린 거울로 빛을 한 방향으로 모으면 해상의 배를 태울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고 말을 전한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파괴된 이야기도 대단히 신기하다. 등대가 파괴될 당시에 이것이 있던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와 같이 아라비아인에 의해 정복되어 있었는데 그 적대국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비잔틴 제국이었다. 이 제국의 황제는 간계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황제는 칼리프(회교의 교권과 왕권을 통합한 지위) 알와리드의 궁정에 비밀 지령을 내린 사자를 보냈다. 황제의 사자는 칼리프의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앞잡이들을 풀어 등대밑에는 이집트국왕이 지녔던 금은 보화가 가득하다고 거짓 소문울 내게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집트 고관들은 이 사실을 칼리프에게 알렸고 칼리프는 망설이다가 등대의 철거 명령을 내렸다. 등대의 철거가 한창 진행되어 거의 반을 허물었을 때 칼리프는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때는 늦었다. 복구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이 등대를 건축할 수 있는 건축술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대한 구면 거울도 파괴되어 산산히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쯤 남은 등대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알렉산드리아에는 배의 길잡이가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14세기까지 반 정도 부서진 상태로 계속 서 있다가 대지진으로 완파되었다. 그후 여러번 등대를 재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를 축조할 기술이 없었다. 이 기술이 가능한 때는 20세기 들어와 강철 구조의 사용 등 건축술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서야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iresys님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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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파로스의 등대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군요. 세계7대 불가사의라고 하지만, 역시 그리스로마, 이집트 쪽에 많이 치우쳐있어서, 지금은 많이 바뀐거 같네요. 저 유적들이 다 보존되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잉크냄새 2004-02-0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라미드가 외계인의 흔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끔은 이런 불가사의들이 인간의 작품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전출처 : icaru > 발자국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분주하게 오가던 때가 있었지.

바쁜 게 좋은 걸까? 다시 바빠져야 할까?

아.....

아무리 바빠진들 삶의 짐은 가벼워지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한곳에만 지독히 머물러 있는 듯한  내가  참 무겁다...

 

 

 

사진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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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2-0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어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이는 내 누이뿐만은 아니다. 젊음의 방황이 아프도록 느껴지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