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p71-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중략...)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 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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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없음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해야하는 살아있음의 구체성인 밥! 김훈이 말하듯 밥은 무엇보다도 긍정되어야 하고 무시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만 생존의 가장 기초인 밥마저 스스로의 입질을 유도하는 낚싯 바늘을 품고 있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노동을 강요하고, 더 일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 대해 우리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라는 냉철한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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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무기로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이를테면 가족이나 친구-을 걱정시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속박하고 지배하려 들지. 첫날 말했던, 집에 틀어박혀서 지내는 사람들은 곧잘 불행을 무기로 하는 우월감에 빠지네. 아들러가 “오늘날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지닌다”라고 지적했을 정도야. -p103-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p123-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걸세. 그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집착이나 다름없지. (중략)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것을.-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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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미움과 저자가 말하는 미움은 그 의미가 다르다. 나의 미움은 어리석고 그의 미움은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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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류시화-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 

봄은 떠난 자들의 환생으로 자리바꿈하고 

제비꽃은 자주색이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는 영원의 동의어로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로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으로 

새는 비상을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실존으로 

과거는 창백하게 타들어 간 하루들의 재로 

광부는 땅속에 묻힌 별을 찾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


시인은 그의 다른 시를 통해 "사물들은 저마다 시인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한다"라고 적고 있다. 사물이 품고자 하는 원초적 본질과 드러내고자 하는 언어의 본성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시인이다. 그래서 그들이 들려주는 언어 속에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물의 신비가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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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쟝수성 시탕구쩐 - 쟝수성의 구쩐은 대부분 수로를 낀 옛 도시이다.>


오랫만에 중국을 다녀왔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19년도에 다녀왔으니 근 4년만에 중국을 다녀오게 되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 통제가 어느 정도 완화된 이후에도 중국만큼은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폐쇄적인 정책을 유지하였고 그런 이유로 최소 1년 이상은 더 늦어지지 않았나 싶다. 오래도록 생활한 나라이면서도 역시 외국인지라 다시 들어간 중국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1. 입국 관련

입국 절차는 다시 간소화되었다. 입국시 사전 작성하여 2D 바코드로 제출하던 건강신고서는 폐기되고 공항 입국 신고서로 대체되었다. 핸드폰 로밍시 받게 되는 대사관의 안내 문자가 예전에 비해 구체화되었다. 예전에는 외국에서 문제 발생시 연락하게 될 연락처 정도의 통상적인 문자였다면 지금은 최근 발생한 구체적인 사건의 예시가 주로 포함되었다. 구매 대행, 애인 대행...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중국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간첩법에 대한 경고였다. 별도의 링크를 통해 들어간 싸이트에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 규칙까지 세세히 명기되어 있었다. 


2. 전자 화폐의 활성화 

사실 중국에서의 전자 화폐 활성화는 팬데믹 이후의 현상은 아니다. 카드 사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용카드나 직불카드의 짧은 사용 시기에 알리페이와 위쳇페이로 대변되는 전자화폐 사용이 병행되었다. 인권에 대한 인식 부족과 강력한 중앙 정책에 의해 중국에서의 지불 수단은 화폐에서 전자화폐로 바로 이행했다고 볼 수도 있다.  "거지도 2D 바코드로 구걸한다"는 말이 나온건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다. 문제는 현금과 카드 사용이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다. 사전에 전자화폐를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일쑤다. 현금과 카드를 받지 않는 식당과 택시가 꽤 많다. 여기서 말하는 카드는 비자카드가 아닌 중국국내카드이다. 신용카드는 아예 논외로 치는 것이 낫다. 기존의 것을 불편하게 만들어 새것에 빨리 적응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완벽한 통제 사회로의 첫 단추가 끼워진건 아닐까.


3. 숙박업소 외국인 체크인

예전에는 숙박업소 체크인시 여권만 소지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제는 숙박업소가 사전에 외국인 숙박에 관하여 사전 신청 및 승인의 단계를 거쳐 별도의 외국인 체크인 시스템을 숙박업소 전산망에 구축해야 된다고 한다. 전산망이 구축되지 않은 숙소에는 체크인을 할 수가 없고 관련 정보가 없으니 매일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야 했다. 윈난성이나 쓰촨성처럼 배낭여행자가 많은 지방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하다. 십여년전 배낭여행을 할 때는 도미토리나 외국인이 운영하는 작은 숙소들을 주로 이용했는데 지금은 뭔가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배낭여행자의 얄팍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한다면 이런 변화는 그다지 환영할만한 것은 아니다.


4. 오래된 마을

중국에서 통칭 구쩐으로 일컬어지는 동네는 모두 오래된 마을이다. 대부분이 석조 건물이고 큰 변란을 겪지 않은 덕분에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유명한 곳으로는 윈난성의 따리,리장,샤시 등이 있고 쟝수성의 쪼주앙, 통리,시탕,우쩐 등이 있다. 물론 그 외의 각 성마다 유명한 구쩐들이 존재한다. 윈난성은 주로 소수 민족의 오래된 도시를 볼 수 있고 쟝수성은 수로를 따라 형성된 도시를 볼 수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쟝수성에 위치한 시탕 구쩐을 방문했다. 때마침 중국 고대 복장 축제가 열려 볼거리는 많았지만 넘쳐나는 인파로 한적한 풍취는 포기해야 했다.


<시탕구쩐의 중국 고대 복장을 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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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01-24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에서는 거리 포장마차에서도 전자 화폐로 결제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와! 신기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완벽한 통제 사회를 위한 것일수도 있다는 걸 이 글을 읽으며 깨달았네요. 외국인 체크인 시스템이라는 것도 좀 충격인데요

잉크냄새 2024-01-25 16:10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먹고 자고 움직이고 하는 일반 생활 모두에 개인 정보가 심어진 전자화폐가 이용되면 개인쯤 통제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되요. 게다가 중국은 택시와 시내버스 외의 이동에는 모두 신분증 스캔 검사가 진행되니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 같아요. 얼굴 인식 cctv 도입도 가능한 곳이니까요.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또 없다고 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고향,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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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말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 부정한 자의 입에서 희망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절망을 떠올린다. 이미 원칙과 정의를 왜곡시킨 자가 이제 희망을 더럽히고자 한다. 샘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듯 희망도 부정한 자가 품으면 절망이 된다. 


p.s)아이폰 비번이나 풀고 희망도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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