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런지"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

--------------------------------------------------------------------------------------------------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때 난 오히려 나를 포함한 개개인이 변화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개인의 변화가 모여 세상이 바뀌는 것이라 생각했다. 요즘은 세상이 한번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를 포함한 개개인의 인식의 좌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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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2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바람 2006-01-1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처럼 한 개인에게 오명도 씌우고, 치욕도 씌우고, 좌절까지 덤으로 주는 때가 없었지 않을까, 아무 일도 없었지만, 제 속에서는 늘 이런 것들이 싸우네요. 깊숙이 들어갈수록 마음 단속하기가 참으로 힘들어집니다. 주신 글은 참으로 격려가 되었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걸 어떻게 뱉어야 할지 몰라 눈물이 핑 돌던 찰라였지요. 그저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 한 마디밖에 달리 스님께 드릴 말씀이 없어 먹먹해집니다.

사마천 2006-01-1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듣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늘 새롭네요.

검둥개 2006-01-13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젤 어렵죠. 남한테 뭐라 하는 게 젤 쉽고요. ^^;;;

잉크냄새 2006-01-1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입이 간질간질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혼자 두고 있으려니...당분간 입에 지퍼를 채워야겠네요. 아무쪼록 좋은 소식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돌바람님 / 님의 글이 오히려 저에게 격려가 되었답니다. 하루하루 뜬구름처럼 살아가는 생에서 한번쯤 지나온 생과 남은 생을 돌아보게끔 하는 마력이 님의 글에는 있답니다.
사마천님 / 늘 새롭지만 실천하지 못하기에 시간이 흐른후에도 생소하기만 합니다.
검둥개님 /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것은 세상이 변화된다는 것의 근간이 아닐까 싶네요.

2006-01-20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으로 10주년을 생각케 한 사람은 존 레논이다. 1990 12월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친구의 방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던 노래가 존 레논의 죽음 10주년을 기리는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IMAGINE 이었다. 방안이 온통 소피 마르소의 사진으로 도배된 친구의 방 구석에 동그란 안경과 히피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안경 너머로 조용히 쳐다보고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을 바라보며 킬링필드의 한 장면 속에서 그를 그려보곤 했다.

 

그리고 오늘, 맑은 영혼으로 살다간 한 남자의 10주년이다. 사랑에 아파하는 친구들을 위해 불러주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군입대하는 친구들과의 마지막 밤에 서글프게 불러제끼던 이등병의 편지, 노년의 사랑이 애틋하고 아쉬워 부르던 어느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리고 서른의 삶과 나의 삶과 그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던 서른 즈음에”… 그 고운 노래들을 부르던 그가 죽은 지 벌써 십년이 지났다.

 

광석이 형의 자살 소식을 들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96 1, 인턴 사원을 마치고 나온 몇 푼의 돈으로 만원 짜리 여인숙을 전전하며 남도를 돌아다니던 시절, 기차칸에 기대어 마이마이에서 들려 나오던 그의 노래와 삶의 흔적들을 듣고 있을 무렵, 그는 죽었다. 환갑이 되면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돌아다니고 싶다던 꿈도, 다시 정열적인 사랑을 해보고 싶다던 꿈도 뒤로 한 채 그렇게 떠나갔다. 개학 후, 그의 죽음을 전해 듣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김 목정의 어느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타고 있던 버스 안에서 오열했다던 그를 떠올리다 괜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다. 송강호가 그랬듯이 광석이는 왜 이리 일찍 떠난 거야 라는 해답 없는 생각이 한동안 맴돌곤 했다.

 

창법이나 테크닉이 아닌 영혼으로 노래를 불렀던 우리들의 영원한 형 김광석이 자살을 한지 벌써 십년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의 노래는 시대를, 세대를 넘어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다. 죽어서 노래를 남긴 그는 영원한 가객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영원하다는 것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아닐게다. 그의 노래가 나와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영원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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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06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0년이 되었군요. 내내 가슴 아프게 하며 남아있는 분이네요.

paviana 2006-01-0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 10년이랍니까? 그는 떠나고 전 벌써 그가 간 나이를 지나와있군요.
저도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에를 열심히 불렀던 그 시절이 있었는데요..

아영엄마 2006-01-06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이라...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우리도 그만큼 나이를 먹은 거군요..) 정말 왜 그렇게 일찍 떠난 것인지...

paviana 2006-01-0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올리신 김광석의 노래들을 지금 듣고 있습니다. <어느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의 마지막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에서 참 모라 할 말이 없네요. 우리가 그에게 해줄말을 그가 그렇게 부르고 있네요.
잉크냄새님 자주자주 나타나셔서 이 목석같은 맘에 이런 비한자락 자주 좀 뿌려주세요.

잉크냄새 2006-01-0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 금방 지나온 시간입니다. 그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많이 아파오죠.
아영엄마님 / 함께 나이들어 간다는 것, 결코 서글프지 않죠. 저도 송강호의 그 대사를 들으니...참 아련하더군요.
파비아나님 / 아, 듣고 계시는군요.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버스안에서 오열했다던 광석이 형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지네요. 아, 그리고보니 저도 벌써 광석이 형보다 더 나이먹어 버렸군요.

파란여우 2006-01-0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석이(저와 동갑)가 잠시 운영하던 홍대 앞 라이브 카페에서
여러번 그를 봤지요. 작고 마른 남자. 가을 낙엽처럼 건조해 뵈는 남자였는데
눈동자에 알지모를 서글픔이 있더군요.
그후 그의 죽음과 더불어 그와 연애 관계였던 여가수도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큽니다.
떠난자는 모르겠지만 남은 자는 아쉬운 법이죠.
잘 있냐 광석아~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지..벌써 십년인데...

2006-01-06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6-01-0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광석이 오빠는 왜 그리 일찍 떠난거야..

날개 2006-01-0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석 콘서트를 굉장히 자주 다녔었어요.. 너무 좋아해서.....ㅜ.ㅠ
이 사람 노래만 들으면.. 가슴이 짠~ 합니다...

Laika 2006-01-07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래서 어제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육성을 틀어준거군요...그 목소리 들으며 꿈속으로 빠져들었건만...광석이형도 못만나고....

잉크냄새 2006-01-07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진짜 님과 동갑내기군요. 그의 라이브를 직접 보셨다는 분들 보면 참 부럽더군요.
진주님 / 그것은 송강호 대사인디...
날개님 / 광석이 형이 라이브를 천번도 넘게 했다죠. 요즘 찌라시 가수들처럼 기법과 테크닉에만 의존하느라 라이브도 못하는 것에 비하면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진정한 가객이었죠.
라이카님 / 광석이 오빠가 아닌교? ^^ 그 맑은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셨다면 꿈마저 노래처럼 아늑했겠군요.

비로그인 2006-03-1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스타코비치의 곡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오랫만에 인사 몇 마디 남기고 가요. 그간 안녕하셨죠? 마호가니 책상은 그간 윤이 더 반질반질~ 길이 들었네요. ^^

잉크냄새 2006-03-14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열사님 /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오랫시간 잊지 않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시 뵙게 될줄을 꿈에도 몰랐네요. 너무 반가워요.^^
 

고립, 청춘의 어두컴컴한 한 시기에 (뭐 청춘이 다 어두컴컴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암울했던 한 시기는 누구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인도나 인적이 드문 벽지에 틀어박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프라이데이를 끌어들인 로빈슨, 배구공과 끈끈한 정을 나눈 케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 옷을 뒤집어쓰고 쓰리고를 친 승원(?)에게서 보여지는 고립무원의 적막감보다는 고립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묘한 매력에 잠시 이끌린듯 싶다.

 

영동고속도로가 새단장을 하기 전 대관령을 넘어가는 길은 꼬불꼬불한 2차선 도로였다. , , 안개가 워낙 순식간에 쓸고 지나가는 곳이다. 밤의 대관령 길의 운치는 대관령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강릉이라는 도시이다. 별들을 뿌려놓은 도시 라는 말이 이곳처럼 어울리는 곳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신규 고속도로가 뚫려 구도로로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지만, 객지 생활이 익숙치 않던 학창시절의 대관령 정상에서 느껴지던 비릿한 바다내음과 함께 차창 밖으로 뿌려지는 별들의 향연은 또 하나의 그리움이었다. 동서울에서 주문진으로 향하던 버스는 나에게 있어 택시나 마찬가지였다. 학생 시절, 밤에 올라타는 직행버스의 승객은 나 혼자 유일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기사 양반은 노래 부르며 운전하고 승객은 뒷자리 창문을 열고 담배 피고 맥주 먹고 자고, 그래서 곧잘 버스를 택시라고 부르곤 했다.

 

아마 그때도 폭설이 내리고 있었고 승객은 물론 나 혼자였다. 대관령을 지나던 버스는 투덜거리던 엔진음을 마지막으로 멈추어 버렸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재미삼아 던지던 눈싸움도 지루해질 무렵부터는 하나 둘 대관령을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난 워낙 천하태평인 성격인지라 덮고 잘 신문지나 준비하고 여차하면 차에서 자버릴 생각이었기에 좌석에 누워 밤하늘과 어둠을 묻어버리는 눈발을 보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잔설은 외로움이고 폭설은 아픔이다. 잠시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들다 눈을 뜨니 기사 양반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거의 도착한 상태였다.

 

짧은 고립이었지만 첫경험에서 느껴지던 묘한 매력은 아직도 두 손에 잡힐 듯 남아있다. 자유, 해방감….뭐 이런 정형화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형체가 전혀 없어면서도 다른 무엇보다 또렷이 형상이 느껴지는 듯한 그런 매력, 전라도 지방의 폭설로 고립된 차들을 보다가 문득 그 짧았던 고립의 묘한 매력이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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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2-22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은 고립에서조차 잉크냄새가 설핏 남아 있어요.
(그런데 말예요. 알라딘 밖에서 너무 오래 고립되어 계시면 위험하다는 거 아시죠? 자주 뵙자구요.)

진주 2005-12-2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아무도 댓글을 안 다시고 추천만 누르지....
나만 고립....ㅠㅠ

내가없는 이 안 2005-12-2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고립에서 자유를 느낀다는 표현, 이해할 듯도 합니다. 진짜배기 고립을 원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짧은' 고립은 달콤하겠죠? 버스가 택시화되는 경험, 저도 많아요. 종점 가까운 집에서 살면서 밤늦게 다니는 사람은 늘 막판에 택시가 된 버스를 탄다죠. ^^

Laika 2005-12-2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의 짧았던 고립의 순간을 읽고 또 읽으며 "별들을 뿌려놓은 도시"를 한없이 그리워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또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바라보던 모습 ...
가끔 별빛과 혼동되어 보이던 오징어잡이 배들의 빛 ...
그 밤의 풍경은 아니지만..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진을 두고 갑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네르바 2005-12-24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생각났어요. 짧은 고립의 매력...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나 생각해 보는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요.
아기 예수의 탄생이 님에게도 기쁨이 되는 날이 되길 바래요^^

비로그인 2005-12-2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눈 속에서의 고립!! 짜릿하기도 하지만 좀 무서울 거 같습니다. 전 고장난 엘리베이터 안에 고립되어 있었는데, 자이로드롭처럼 쏜살같이 내려가던 미친 속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쭈뼛!+__+;

잉크냄새 2005-12-2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 고립에 묻어나는 잉크냄새는 뭘까요? 궁금하네요.^^
이안님 / 어쩌면 단내나는 고립을 경험한 것일수도 있죠. 고립,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그러나 한번쯤 가슴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이죠.
라이카님 / 대낮의 대관령이군요. 한밤중에 바라보면 님 말씀처럼 저 멀리 바다에는 오징어배 불빛도 보이고, 공항 활주로의 불빛이 왠지 기착지를 찾는 영혼에게 안도감도 주는듯 하죠.
미네르바님 / 한계령을 위한 연가... 대관령을 위한 연가와 비슷할것도 같네요.
복돌이님 / 무서운 감정이 없더군요. 엘리베이터의 고립, 폐쇄 공포증까지 더해지니 얼마나 겁날까요. 고립이 아닌 공포죠.^^

2005-12-28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01-1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 이크냄새라뇨... 저도 요즘은 짧막한 댓글 하나 쓰기도 쉽지 않네요. 그래도 가끔 소식 전해주시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전출처 : 박가분아저씨 > 그렁거린다, 라는 표현속에는-[안도현]

양철지붕에 대하여-[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하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
*'양철지붕에 대하여'를 읽다 보면
뜨, 뜨거운 어느 해 여름이 생각난다.
세월도 지나고 보면
나달나달 닳아진 실밥같은 거
숱한 추억처럼 흔적만 옛이야기처럼 희미한 거

그렇지
삶에도 적당한 은유가 필요하다면
그렁그렁거린다, 라는 표현속에는
눈물 어룽어룽 잊혀진 노래가사도 생각나고....
쪼작쪼작 껌처럼 오래 씹으며 앙다물던 맹세도 생각나고...
죄처럼 상처를 둘렀으되 온전히 버텨온 지나온 길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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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12-0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많이 상처받고 더 많이 녹슬어 그렁그렁 속앓는 소리였구나.
너를 위해 나도 같이 녹슬어가는 소리.. 속앓음에도 몸 뒤척이지 못하는 그렁그렁 소리...
뜨거운 양철지붕의 빗소리에 저리도 가슴시린 사랑이 있었구나.

2005-12-1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12-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흠...그런 일이 있었군요. 난감하셨겠구려! 지난 여름 뜨겁게 내리쬐던 빨간 양철지붕 표지도 생각나고. 삐거덕 삐거덕 녹슨 못 자리가 바람에 힘겨워 하던 소리도 생각나고, 빗방울 연신 퉁탕퉁탕 거리던 양철지붕 못구멍 사이도 생각나고...

미네르바 2005-12-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양철 지붕 아래에서 빗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 생각해 보네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아요.
양철지붕 아래서 빗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잉크님은 들어 보셨나요? 그냥, 궁금...^^

잉크냄새 2005-12-2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레르바님 / 아주 어릴적 기억이죠. 철 들고 나서는 한번 정도인가 경험이 있었던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하네요.
 

술과 실수는 바늘과 실과 같은 것이라 할수 있다. 술자리에서 어느 정도의 실수는 차라리 인간적이라고도 할수 있지만 두고두고 안주거리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피할수 없는 술 취한 자의 운명이다. 난 취해도 표가 나지 않는 편이었다. 아무리 취해도 비틀거리거나 말이 꼬이지 않으니 친한 사람 몇을 제외하고는 내가 취한지 아닌지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니 결국은 건배의 대상이 되고 실수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술 취한 자들의 회귀본능은 연어보다 뛰어나다. 연어는 그 과정이 고되고 생의 마지막 여행일지라도 맨 정신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남는것 없는 술 취한 자의 회귀본능은 비몽사몽간에 이루어지기에 더 대단하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아침에 보면 그래도 방구석 한자리 이부자리까지 깔고 자고 있는 모습은 가련하다가도 스스로 대견(?)스러워지기까지 한다.

벌써 몇년전의 일이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상태였고, 귀가길에 올라탄 택시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다 왔다고 말하는 기사양반의 목소리에 잠을 깨어 앞에 탄 사람에게 " 야, 택시비 니가 내! " 라고 말하고 술 취한 몸을 추스리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몇걸음 갔을까. 뒤를 따라오는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내 뒤를 쫓아오는 발걸음 소리, 이거 의외로 신경쓰이는 때가 있다. 특히 어두컴컴한 곳에서는 더욱 그랬다.

발걸음을 빨리 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행동강령을 속으로 주절거리면서. 점점 빨라지는 발걸음 소리, 결국 얼마가지 않아 누군가 커다란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누구야" 최대한 강한 어투로 말하는 나에게 그 양반은 점잖게, 그러나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 손님, 혼자 타셨는데요."  택시 기사 양반이었다. 술은 꼭 찬물이나 꿀물로 깨는 것은 아니다. 몸둘바 모르는 챙피함이 술 깨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겪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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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5-12-0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킥킥킥킥....

(교수님이 옆에 계서서 허벅지, 뱃살 잡히는데로 꼬집고 있음 ㅎㅎㅎ)

ceylontea 2005-12-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황당했을 택시운전사 아저씨..
그리고.. 그 순간 잔뜩 긴장했을 잉크냄새님.. ^^
저도 원래 필름 잘 안끊기는데.. 전에 한번.. 결혼 전 혼자 살때.. 집까지 온 기억은 나는데, 그후 어찌했나 기억이 안나더군요..
그래서... 그다음부턴 조심하기로 했죠... 결혼도 안한 처자가 말입니다..
이젠.. 애때문에도 술많이 먹지 못하지만.. 이젠 술먹는것도 귀찮고 싫다는... 그래서... 강하지도 않은 술이 점점 약해진다지요. ^^

울보 2005-12-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난감하셧을까 정말 술이 확깨셧을것 같아요,,

Laika 2005-12-0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누군가 탔을꺼예요...귀신이.....=3=3=3

ceylontea 2005-12-0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너무 무서워요... (징징)

chika 2005-12-05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이거 잉크냄새님이 얘기하시니 더 재밌는거 같아요. ^^

검둥개 2005-12-0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ㅎㅎㅎㅎㅎ ;)

icaru 2005-12-0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중 배짱이 장난이 아니시네요...!
아이고배야!!
3탄..기대해도 되겠심까?

잉크냄새 2005-12-0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분명히 같이 탄것 같았어요. 저보다 기사 양반이 더 겸연쩍었을것 같네요.
아, 그리고 이미지 관리상 3탄은 자제할랍니다.^^

비로그인 2005-1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이고야..무임승차를 하려 하시다니..흐음..술 취한 잉크냄새님 말에요, 사람이 말에요, 자꾸 그러심..

무지 귀엽삼!! 3탄을 연재하라! 연재하라!!

Laika 2005-12-0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재하라! 연재하라!!

잉크냄새 2005-12-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됩니다. 이제 조용히 살아갈랍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12-1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취한 자의 회귀본능, 이거 잘 알지요. 필름 끊겨나가도 중간중간 이어가며 집으로 돌아오는 본능. 깜빡, 하면 서울역. 깜빡, 하면 갈아탄 버스. 또 깜빡, 하면 버스 종점. 뭐 그런 거 아니에요? ^^ 다시 보니까 제가 한참 전에 못 본 페이퍼군요. 그 이후에는 왜 연재 안 해요?

잉크냄새 2006-01-1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 어, 제가 왜 이제야 보게 되는걸까요. 한달이 넘은 댓글, 보실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의껏 달아봅니다.ㅎㅎ 저런 글 연재는 제 청춘의 사망신고인것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