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 권현형-

문밖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청에 시달리던 시절이 혹 있으신가

십이월에도  자취 집 앞마당에서
시린 발을 닦아야하는
청춘의 윗목 같은 시절

전봇대 주소라도 찾아가는지
먹먹한 얼굴로 그가 찾아왔다

두 사람 앉으면 무릎 맞닿는 골방에서
뜨거운 찻물이 목젓을 지나 겨울밤
얼어붙은 쇠관으로 흘러가는 소리
다만 듣고 있었다

야윈 이마로 방바닥만 쪼아대다
겨울의 긴 골목 끝으로 날아가는
크낙새의 목덜미를 바라보았을 뿐인데
바람이 문짝만 흔들어도 누군가
문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에서
겨우내 혼자 귀를 앓았다

 -----------------------------------------------------------------------------------------------

낙엽을 휘몰아 떠나가는 소리,

시래기단이 바람에 몸살을 앓는 소리가

누군가 문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던 시절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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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10-2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이름을 불러줄 누군가가 있다면 겨우내 혼자 귀를 앓아도 좋을거 같아요.
잘 계시죠? ㅎㅎ

파란여우 2006-10-24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 집은 동네 끄트머리에 있어요. 파란 지붕에 연두색 대문^^
그러니까 잉크님을 한 번 불러주면 나온다 뭐 이런 야근가요?
그럼 실컷 불러야지.
잉크야! 노올자.... 노올자! 아니 이게 아닌데. 횽아, 봉달 횽아! 봉달 횽!^^

가시장미 2006-10-26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이나 먹자, 꽃아 라는 같은 시인의 시가 문득 떠올라. 인터넷으로 찾았드래요. ^-^
피곤하고 눈은 감기는데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입니다. 으흣

icaru 2006-10-3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3때 지독한 환청에 시달렸었더랬어요....
잘려고 불끄고 누우면 울엄니가 **아! **아! 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데... 그 시각 분명 울엄니는 안방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중이랍지요~
써놓고 보니.. 이거 영 남의 허벅다리 긁는 딴소리 같네요... 풋

잉크냄새 2006-11-03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 겨우내 혼자 귀를 앓던 경험, 이제는 그런 경험도 그리워지는 시절이랍니다.
여우님 / 봉달 횽! 이라 부르던 복돌님이 문득 생각나네요.
장미님 / 음, 저도 그 시를 한번 찾아보아야겠어요. 아, 그리고 이 분이 제 고향분이서더군요.
이카루님/ 오랫만이네요. 그건 환청이 아니라 무언가 공명하는 소리가 아닐까 싶군요. ㅎㅎ

가시장미 2006-11-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렸어요. :) 그냥, 아침부터 잉크냄새가 나서요.. 으흐흐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잉크냄새 2006-11-0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님 / 하하, 아침부터 글을 쓰셨나보네요. 상상력이 빈곤하니 글을 끄적일 꺼리가 없어요.^^
 

쨍한 사랑 노래

- 황동규 -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 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싶다.
그 끊어진 자리 새 살이 돋을까,

상처의 속없는 치유력이 때론 가장 치명적인 독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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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0-1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난 또 '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지는 푸른 모래톱'어쩌고 하는
황동규님의 시라도 올리시려나 했더니....시월이잖우.
독은 버리고 파란 하늘 속으로 눈동자를 적셔봅시다.
아, 바다 가고 싶어요.
어달동 시멘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물오징어회에 쐬주를 한 잔..
처얼썩, 처얼썩. 쏴아아...

플레져 2006-10-1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살아 돋지마라~ 돋지마라~ 해도 그대로 있을 것 같은데요? ㅠ.~
오랜만에 행차하셔서 반가워요 ^^

Laika 2006-10-1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인 상처에 아직 새살이 안 돋아났어요...ㅠ.ㅠ
오랫만에 놀러와서 황동규님 시 읽고 가니 기분이 좋네요.. 잘 계시죠? ^^

paviana 2006-10-1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없이 살고 싶어요'.
나이가 들면서 몸이 늙는것처럼 마음도 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잉크냄새 2006-10-1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흐미, 그런 낯간지러운 시를....
플레져님 / 오랫만이죠. 새살은 엉뚱한 곳에 돋아나고 있다우~
라이카님 / 님도 잘 계시죠. 데인 상처는 오래 갑니다. 데인 곳의 조직이 죽고 조직부터 새로 살아나야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또 놀러오세요.
파비아나님 / 마음없이 산다는 것,,, 어떤 것일까요,,,궁금...

가시장미 2006-10-1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돋아나죠. 당연히.. 돋아나야죠. ^-^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일이기도...한 것 같아요. 으흐 제가 쓰고도 뭔말인지. 참... -_-;

kleinsusun 2006-10-2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처의 속없는 치유력이 때론 가장 치명적인 독일 수도 있다."
- 어려워요. 설명해주세요, BB선배님!^^

잉크냄새 2006-10-24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 / 그렇죠. 당연히 돋아나야죠.
수선님 / 아시면서....ㅎㅎ
 
 전출처 : 페일레스 > 김중식과 백석의 '방'

식당食堂에 딸린 방房 한 칸

김중식

김중식 - 황금빛 모서리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씨氏
홍등紅燈 유리방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씨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식당食堂에 딸린 방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놀구 먹기 때문에 내 살이 바짝바짝 마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적敵을 만들어 창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들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안동김가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공원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지인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서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서해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중국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인도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사, 1993, 16-21.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白石

백석 지음, 이숭원 주해 - 원본 백석 시집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높은 것이 있어서、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한탄이며、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학풍』창간호(1948. 10.)에 발표. 편집 후기에는 백석의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1. 바람 세인 - 바람이 세게 부는.
2. 샅 - 삿자리.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왕골로 짠 돗자리보다 거칠다.
3. 쥔을 붙이었다 - 주인집에 붙어사는 생활을 했다.
4. 누긋한 - 메마르지 않고 눅눅한.
5. 딜옹배기 - 질흙으로 만든 옹자배기.
6. 북덕불 - 북데기(짚이나 풀, 나무 부스러기 등이 함부로 뒤섞여 엉클어진 뭉텅이)로 피운 불.
7. 쌔김질 - 새김질. 반추.
8. 나줏손 - 저녁 무렵.
9. 바우 섶 - 바위 옆.
10. 갈매나무 - 갈매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5미터이며, 가지에 가시가 있다.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이겨내게 하는 상징적 사물로 등장한다.

- 백석 지음, 이숭원 주해, 『원본 백석 시집』, 깊은샘, 2006, 210-212.



  오늘도 '시 vs 시詩對詩'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가 아니라……. -_-; 요즘 『원본 백석 시집』을 비타민 먹듯이 매일 매일 읽다 보니 백석 시인의 시를 상대적으로 많이 소개하게 되네요. 다들 아실 법한 두 편의 시입니다. 그 중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교과서에 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어영역 문제집에 자주 나오는 시입니다. 이번에 과외에서 했던 문제집(좋은책에서 나온 '신사고 언어특강 오감도 시문학편'입니다. 수험생들에겐 매우 추천할 만한 시문학 문제집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좋은책 알바는 아니고 -_-;)에도 나왔드랬죠. 학생들이 이런 시를 문제집에서만 접한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김중식 시인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은 내용상 나오기가 좀 힘들 것 같군요. -ㅅ- 인터넷에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찾아보면 마음대로 연을 나누거나 띄어쓰기, 맞춤법을 고친 게 많은데, 저는 그런 행태가 몹시 못마땅합니다. 그 당시 표기법이 안정돼 있지 않기도 했지만, 백석 시인은 시의 운율과 호흡을 살리기 위해 당시의 표기법을 무시한 흔적이 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겠죠. 이번에는 두 편의 시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제목 말인데요. 과연 이 제목이 무슨 뜻일까요? 그건 바로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입니다. '남南신의주'의 '버드나뭇골(유동)'에 사는 목수 '박시봉'이란 사람의 '집(방)' 말이죠. 이렇게 발신인의 주소를 제목으로 썼는데,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은 결국 화자 자신입니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것처럼 말이죠.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화자는, 여러 가지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눈을 껌뻑거리며 되새김질합니다. 그러다보니 거기에 "눌리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저는 이 대목이 미친듯이 좋습니다. 정말).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저녁 때가 되어 창밖으로 싸락눈이 내립니다.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화자는, 싸락눈의 "쌀랑쌀랑"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합니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는 인천 숭의동의 속칭 '옐로우 하우스'라는 사창가 근처에 있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삽니다. "대학씩이나 나"왔지만 직업이 없어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어머니에게는 "용돈 탈 때만 말을" 겁니다.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를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놀고 먹는다고 욕을 듣지만 정작 그가 해야 할 "세상에 대한 욕"은 "독백으로 처리"합니다. 거기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지금 발 디딘 곳이 "끝"이라 생각하는 화자는 그 끝,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서해"를 지나 "중국"을 거쳐 "인도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를 지나지만 결국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세상에 끝에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두 시 모두 이야기의 전개 양상이 비슷합니다. 점점 더, 점점 더 끝에 몰리게 되지만 끝내는 다시 그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지요.

  평론가 강상희는 『황금빛 모서리』 해설의 부제를 "따뜻한 비관주의자를 이해하기 위하여"라고 붙였는데, 저는 이 표현이 적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 위의 삶에서 '탈출'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겠지만, 그렇다고 우주로 가는 건 아니죠. 다 만나고 "오겠네". 네,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는 비관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사적인 얘기지만 저 역시 경기 파주시의 속칭 '용주골'이라는 사창가 근처에 있는 '연립주택 일층'에 삽니다. 물론 우리 가족이 소유한 집은 아니지요.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이 "쓰레기 하치장"인 것도 아니고,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닌 것도 아니지만 비관하는 화자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건 왜일까요. 저도 어릴 때 "귀가할 때 혹" '빚쟁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나고 싶었습니다(웃음).

  허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화자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와 달리 그 모든 '비관'을 되새김질합니다. 그래서 그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게 되지요. 어찌 보면 이 시의 화자를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더 크고, 높은 것" 앞에서 체념하는, 운명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달리 보고 싶습니다. 외로움만 남은 화자는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옆에 따로 외로이 서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니까요. 저는 화자가 갈매나무를 생각하면서 "굳고 정"하게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런 바람은 제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겠죠.

  심정적으로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화자에 공감하게 되지만 저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화자처럼 살고 싶습니다. '따뜻한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죠(웃음). 그럼 오늘의 '시 vs 시詩對詩'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왠지 일요일 느지막히 일어나 TV를 켜면 나오는 영화 프로그램의 '영화 대 영화'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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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9-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삶의 끝에서도 결국은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페일레스님의 "따뜻한 낙관주의자"라는 말이 참 기억에 남네요.

페일레스 2006-09-2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도 남겨주시고, 감사합니다. 잉크냄새님도 같이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

2006-10-02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10-1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너무 늦어서 오히려 제가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전출처 : 페일레스 > 나희덕과 백석의 '아버지'

못 위의 잠

나희덕羅喜德

나희덕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나는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 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비평사, 1994



고향故鄕

백석白石

백석 지음, 이숭원 주해 - 원본 백석 시집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누어서
어늬아츰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같은 상을하고 관공關公의수염을 들이워서
먼녯적 어늬나라 신선같은데
새끼손톱 길게도은 손을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집드니
문득물어 고향故鄕이 어데냐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곧이라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ㄹ 아느냐한즉
의원은 빙긋이 우슴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쓰+ㄹ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이라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즛이 웃고
말없이 팔을잡어 맥을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삼천리문학』2호(1938. 4.)에 발표.
- 1. 상을하고 - 모습을 하고. 2. 關公 - 관우. 3. 길게도은 - 길게 돋은. 4. 쓰+ㄹㄴ다 - '쓴다'의 뜻에 해당하는 백석의 독특한 시어.

- 백석 지음, 이숭원 주해, 『원본 백석 시집』, 깊은샘, 2006, 142-143.



  이숭원 교수의 『원본 백석 시집』을 드디어 며칠 전에 샀습니다. 영인본처럼 돼 있는 것도 좋고 주해도 잘 되어 있어서 좋은데 차례가 엉망이더군요. 「수라修羅」라는 시를 찾는데 차례에 적힌 쪽을 찾아보니 안 나옵니다. 이상해서 차례를 다시 보니 그 앞의 시 「여승女僧」이 86쪽이고 「수라」는 68쪽이지 뭡니까. 아놔……. 이렇게 쪽수가 틀린 부분이 아홉 군데. 105편의 시가 실린 시집에서 아홉 군데라니요. 시집 『사슴』에 실린 '힌밤'이란 시는 아예 목차에서 누락돼 있더군요. 힘들게 원본을 찾고 책으로 펴낸 저자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이왕 하는 김에 마무리까지 깔끔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국어 과외를 하러 갔다가 문제집에서 나희덕 시인의 「못 위의 잠」을 읽었습니다. 이제 1990년대에 출판된 시도 수능 문제집에 등장하는 시대가 온 것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흐흐. "제비의 원관념이 아버지란 거 알겠지? 그래~서! 주제는 '아버지의 고단한 삶에 대해 느끼는 연민의 정'이라는 거~" 따위 말하고 있는 제 자신이 슬퍼졌습니다만. 아무튼, 이 시를 읽고 나니 백석 시집에 실려 있는 「고향」이라는 시가 생각나서 같이 한 번 올려봅니다. 1990년대 후반에 수능 공부하신 분들은 책보다 문제집에서 백석 시인의 시를 더 많이 접해봐서 좀 뜨악할 수도 있겠지만. 흐흐.

  「못 위의 잠」의 화자는 못 위에서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보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고향」의 화자는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운 의원, 즉 아버지의 친구를 통해서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죠. 한 사람은 딸이고 한 사람은 아들이지만, 어느 집의 자식이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애증이 섞여 있겠죠. 친구랑 며칠만 같이 지내도 좋은 맘 미운 맘이 오락가락하는데 하물여 한솥밥을 먹는 아버지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저 역시 그런 감정을 갖고 있죠. '애'보다는 '증'에 가깝지만. 하하.
  그런데 요즘은 그런 감정도 가끔씩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바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제가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 있는 상황이라면 백석 시인 편을 들었겠지만, 아직은 제 마음이 나희덕 시인에 가까운가 봅니다. 말하자면, 그 때는 몰랐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다고 할까요…….

  나희덕 시인에 대해서 찾아보면서 생각한 걸 몇 마디 적어볼까요.
  그의 성장기는 '고아원'이란 말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먼 친척이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태어난 그는 열 살 때 서울로 올라와서도 고아원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인데도, 부모가 없는 아이들과 함께 자랐죠. 이런 공동체 성향과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종교적 분위기, 거기에 운동권 체험. 이런 것들이 나희덕 시인의 문학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네요. 한 단어로 줄이자면 그 모든 '슬픔'들.
  그가 어느 글(한국일보에서 연재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시의 팔 할은 슬픔이나 연민의 공명(共鳴)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시는 '내 안의 슬픔이 다른 슬픔과 만나 서로 스미고 어루만질 때 흘러나오는 언어. 또는 존재와 존재가 서로 삐걱거리고 뒤척이며 내는 소리들'을 받아적은 것이고, '눈물을 다스리는 힘이 없이는 슬픔을 제대로 노래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못 위의 잠」에서 '눈물'을 똑 떨구는 게 아니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보는 것도 그래서겠죠.
  저는 나희덕 시인이 그의 소원대로 '저 실핏줄들이 모여 언젠가는 슬픔의 강물 하나 만들어낼 수 있기를. 넓게 흐를수록 더 깊이 숨어서 우는 건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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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9-19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관의 어드메에 앓아누어 맥을 짚는 의원의 여래같고 관공같은 모습에서 아버지를, 고향을 떠올리니... 어쩜 이리도 아버지를, 고향을 절제된 슬픔으로 표현했는지...

페일레스 2006-09-2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시를 문제집에서 처음 읽었는데, 가슴이 찡하더라구요. 과외하는 학생도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싶지만... -_-a
 





- 고 찬규 -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와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은

서로를 서로이게 하는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고

천 년을 천 년이라 생각지도 않고

---------------------------------------------------------------------------------------------

나를 나이게 하는 너와

너를 너이게 하는 나는

서로를 서로이게 하는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고

천 년을 천 년이라 생각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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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1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9-0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섬과 바다가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인간은 좀 빠져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프레이야 2006-09-0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파아랗게 물드는 것 같아요.. 나를 나이게 하는 너,, 감사드려요^^

잉크냄새 2006-09-0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별말씀을요. 종종 인사드리지요.
물만두님 / 음, 빠지는 것 보다는 가장 안정적인 구도인 삼각형의 한 꼭지점을 이루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배혜경님 / 눈이 물든다는 것은 아직 청춘이 남아있다는 말이 아닌가 싶네요.

가시장미 2006-09-04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있는 사진이네요.. 올 여름에는 섬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계획을 단단히 세웠었는데.. 몸이 안 좋아서 무산되고 말았네요. 그래도 섬은 늘 그 자리에 있을테니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죠? 잉크님도 그 자리에서 안녕하셨나요? :)

잉크냄새 2006-09-05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이제는 좋아지셨는지요. 늘 그 자리에서 님을 기다려주는 무엇인가를 품고 계시다는 것은 참 행복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