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발소에서
- 송경동-

어떻게 깍을 거냐는 말에
저번 머리가 참 좋더라 하자
가위질 소리
쉬엄쉬엄 백 번 들릴 게
째각째각 이백 번도 넘게 들린다
아저씨 담배 한대 길게 하고
하품 두서너 번 할 동안도
주인아줌마 면도해주기
머리 감겨주기 말려주기
다 끝나지 않는다
흔쾌히 맞은 나를 시작으로
오늘의 성업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 나름의 축원이려니 하며
깜박 졸음 드는데
누가 내게도 다가와
아, 당신이 한 용접 참 튼실합디다
한 마디만 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

----------------------------------------------------------------------------------------------------

 1.기억
 서글프게 돌아가던 빛바랜 네온, 먼지낀 유리창 위에 휘갈겨쓴 페인트 글씨, 이가 맞지 않은듯 신음하던 미닫이 문, 손님을 평생토록 온몸으로 받아낸 낡은 갈색 소파, 철 지난 성인 잡지, 화물회사나 주류회사에 공급되었을법한 아슬아슬한 여자들의 누드 사진, 김지미 주연의 영화 포스터, 쉐이빙 폼을 대신하던 난로위의 비누거품, 비누거품을 찍어바르던 뭉퉁한 면도솔,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수염이나 깍을법한 면도날, 슥삭슥삭  면도날 갈던 소가죽, 샤워기 대용으로 사용된 파란 통(화단에 물주는 통을 잘라서 만듬), 잘 감지 않던 머리를 시원하게 긁어주던 머리솔(개인적으로 하나 사고 싶다. 얼마나 시원하던지), 남성 화장품임을 온몸으로 증언하던 강력한 향기의 싸구려 스킨과 로션, 억센 손으로 머리를 감져주던 아줌마, 아저씨들에게만 발라주던 포마드 기름....벌써 10여년전의 일이다. 대학교 1학년때 멋모르고 약간 변태스러운 이발소 아저씨에게 머리를 자른후 발길을 끊었다.

2.난감한 질문 :  미장원에서 받는 가장 난감한 질문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머리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없는건지 표현이 부족한건지 몰라도 참 난감하다. 그냥 이렇게 말하곤 한다.  " 머리 자른지 1달 되었거든요."

3.시간
 여자들의 시간 관념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중의 하나이다. 쇼핑과 미장원. 10분을 넘어서면 지루하다. 회사 기숙사 앞의 미장원중 가장 인기있던 미장원은 속도전에 능한 미장원이었다.  "아줌마, 분식집에 라면 시키고 왔거든요." 가장 많이 써먹던 수법이다. 대기 손님 1명인 경우 라면이 불을 일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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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3-19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분식집.ㅎㅎ 저도 이제부터 그런방법을 써먹어야 겠군요 저도 미용실에서 10분이 넘어서면 지루해지거든요 ;;계속 생머리인 이유도 아마 꼬박꼬박 미용실 가서 머리손질할 필요가 없어서인지도 몰라요 ㅎ
그나저나 시속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동네이발소가 있다면 꼭한번 놀러가고 싶네요^^

마늘빵 2007-03-19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죄송합니다. 사상이 불순한지라 이발소 하면, -_- 엉뚱한 것만 생각이.
저는 두달 전 길이로, 한달 전 길이로 잘라주세요, 라고 말해요. ^^

잉크냄새 2007-03-20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한번 같이 놀러 가시죠. 가신 김에 머리도 한번 하고요. 10분이상 걸리지 않는 상고머리나 스포츠 머리로 시원하게.....ㅎㅎ
아프락사스님 / 불순하다기보다는 지금 이발소의 행태가 다 그러하니. 이발소의 하락이 타락을 가져온것인지 타락이 하락을 가져온것인지는 알수 없지만요.^^

얼음장수 2007-03-2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시가 정겨워 읽고 갑니다.
저는 한 때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폰으로 찍어 보여주면서 "이렇게 잘라주세요"라고까지 말했는데, 제가 이상한 건가요. ㅋㅋ. 저는 돈만 많다면 자주 미장원 가고 싶기도 하구요.

은비뫼 2007-03-2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한 시네요. ^^ 시원하게 긁어준 머리솔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써본 이가 정말 시원하다고 하더군요. 푸핫. 참고로 전 미용실갈 때 가볍게 읽을 책이 필요하더군요. 정말 지루합니다. 흐흐.

잉크냄새 2007-03-2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장수님 / 반가워요. 처음 뵙네요. 핸드폰을 사용한 전략이라,,,,창조적 아이디어입니다.^^
은비뫼님 / 그죠, 훈훈한 시죠. 어릴적 다니던 시골 이발소의 풍경이 잔잔히 그려지더군요. 많은 묘사를 하지 않아도 눈앞에 영상이 촤라락~ 펼쳐지더군요.^^

icaru 2007-03-2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끼의 에세이를 보면 십대 시절 이발소에 얽힌 기억과 잔향을 다룬 글들이 더러 있어요. 이발소와 머리깎기라는 체험은 남다른 시적 서정을 주는가 보네 했네요.
그나저나 "머리는 잘 나왔어요?"

잉크냄새 2007-03-2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그런가봐요. 예전에 이발소 관련된 단편 영화를 한번 본적이 있는데 어쩜 그리고 공감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더군요. 머리는 그냥 그래요.^^

비로그인 2007-04-2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쇼핑과 미장원.
쇼핑에 대한건 잘 모르겠지만, 미용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저도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파마를 안하지요 ^^ 머리 한번 말려면 서너시간은 금방 가거든요 휴-
그시간이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한편 볼텐데!

잉크냄새 2007-03-2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 음...남자들도 머리 귀찮다고 스포츠 하고 다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전 10년만에 약간 길러보고 있지만요.
 

고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대학시절 여자친구를 희롱하는 ROTC 선배의 이빨을 3대쯤 날려버리고 최전방으로 끌려간 녀석이다. 제대후 대학이 정나미 떨어진다고 대학을 중퇴하고 가업을 이어받아 10년이 넘도록 고향에서 횟집을 운영중이다. 대부분 고향을 떠나는 어촌의 특성상 명절이나 휴가때 가끔 만나는 친구들의 사랑방 역활을 톡톡히 해내는 곳이 또한 그 녀석의 횟집이다. 고향이라는 곳이 아직 순수함을 내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아직 품게 만드는 곳의 한 장소도 그 횟집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 오랫만에 녀석의 전화가 왔다. 회를 한접시 썰어서 서울로 가는 길에 건 전화였다. "어떤 넘이 서울서 회 배달시키더냐" 는 농에 회신된 녀석의 답변이 참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얼마전 또 다른 고향친구가 횟집에 들러 자신이 아프면 회가 참 먹고 싶을거라고 농담삼아 말을 했었고 실제로 일주일후 대장암으로 서울 모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횟집 친구는 그 소식을 들은후 그 말이 참 가슴에 남았던 모양이다. 회를 뜨면서도 그 생각이 자꾸만 나길래 "에라이~" 하고 횟집을 하루 접고 각종 회를 종류별로 썰어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차가 고장나 버스를 타고.

전화를 끊고 한동안 흐뭇했다. 회 접시를 끌어안고 버스에 있을 녀석의 모습과 감격하며 회를 받을 환자를 생각했다. 분명 그 회에는 순수함과 우정이라는 항암제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따뜻함을 품고 환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암물질 - " 야, 너 지저분한 병 걸렸다며?"
환자 - "어, 대장암이래"
발암물질 - " 어린넘이 몇살이나 먹었다고. 고등학교때 치질도 걸리더니. 평소에 잘 닦아라."
환자 - "너나 잘 닦아라."

---- 잠시 중략 (별로 영양가없는 대화들)----

발암물질 - " 야, 죽지 마라"
환자 - "지랄한다"

참, 대화 꼬라지 하고는.... 평소에 스스럼없다는 것이 이렇게 개떡같은 대화를 연출하기도 한다. 환자에게 신선한, 우정과 순수함이 가득 담긴 회를 썰어 "有朋自遠方來 with회" 하는 항암제같은 친구와 전화나 찍~ 걸어 "뒤나 잘 닦아라, 죽지마라" 라는 발암물질 같은 말을 퍼붓는 넘의 이 엄청난 대조라니...허나 모른다. 그 순수하지만 터프한 횟집녀석이 회를 주는 순간 환자의 강냉이 몇개 날려버릴지도... 

하여간, 환자녀석은 회도 싹 비우고 뒤도 잘 닦고 치료도 잘 받아 조만간 죽을 일은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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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1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

진주 2007-02-1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나이들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잡았습니다. "with 회"에만 팍 꽂히는군요. 그래요, 이왕 오는 친구, 내 좋아하는 걸 들고오면 그야말로 불역락호아죠 ㅎㅎㅎ

paviana 2007-02-1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설연휴 마지막날에 뉴욕에서 有朋自遠方來한다고 해서 회 사줄일만 남아있답니다.내돈 쓸 일을 기다리고 있다니 우습지만, 그래도 즐겁게 기다리고 있어요.
설 연휴 잘 보내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잉크냄새 2007-02-1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 항암제는 저도 따뜻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진주님 / 그렇죠. 불역 very very 락호야.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파비아나님 / 진짜 유붕자 very very 원방래 로군요. 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파란여우 2007-02-1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눈물 나올뻔 했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친구의 추모 1주기가 얼마전이었는데...

마노아 2007-02-1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아름다운 사연이에요. 우정이라는 항암제에 힘입어 건강히 일어나실테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은비뫼 2007-02-17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한 이야기네요. 오고가는 대화도 거침없고요. ^-^
잉크냄새님, 명절 따뜻하게 보내시고 복도 많이 받으세요.

잉크냄새 2007-02-2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아니, 그런 일이...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노아님 / 항암제의 사연만이 아름답죠...ㅎㅎ..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은비뫼님 / 거침없고 약간 지저분하죠...ㅎㅎ...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caru 2007-02-2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훈훈해...
추처언~! 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잉크냄새 2007-02-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따끈따끈하죠? 호빵처럼...ㅎㅎ...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비로그인 2007-03-1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잉크냄새 님 인사 첨드리는 것 같은데...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이런 친구는 언제든지 부러워요. :)

잉크냄새 2007-03-1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님 / 반가워요. 저도 님의 서재로 인사드리러 갈께요.^^
 

대략 60명 가량의 신입사원 충원에 9000명 지원.
150:1의 경쟁자중 인사팀 1차 서류 면접 결과 250명 합격.
250명의 합격자중 우리팀 충원 예정 인원 2명.
2명의 팀원을 뽑기위한 우리팀 서류 면접 합격 인원 18명.
18명중 최종 면접일날 모습을 드러낸 인원 2명.
경영진 최종 검토결과 우리팀 미충원 결정.  

얼마전 내가 신입사원 서류 면접을 진행한 결과이다. 원래는 팀장님들이 각팀 서류 면접을 진행하기도 되어있으나 긴급사항의 발생으로 서류 면접을 대신하게 되었다. 팀장의 지시는 출신학교,성별,학점,토익...위주로 선별해 놓으라는 것이었으나 아직 앳된 증명사진이 선명한 사회 초년생들의 입사지원서를 받아보니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택의 고통이 뒤따랐다. 1시간 정도 배정된 시간을 초과하여 4시간 가량을 그들의 면면을 파악하는데 보냈다.

최종 18명 합격 처리. 일단 가장 관심을 둔 부분은 서류 작성의 성실성이었다. 물론 해당업무와 관련된 전공이 먼저 고려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자기 소개서, 지원 사유, 향후 방향... 이 고리타분한 카테고리는 10년전 내가 입사할때나 변하지 않는구만. 이 지겨운 카테고리는 군대 훈련소에서도 사용했으니 범국민적이라 할만하다. 예전에는 글씨체만 보고도 그 서류의 성실성을 대략 판단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지원이 대세인지라 내용 전체를 읽어보아야한다. 물론 붙여넣기 기능을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글들도 있어서 글씨체의 역활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글의 진실성을 파악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들 가치의 기준이 내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가치의 기준과 엇비슷해야한다는 논리는 얼마나 위험하고 건방진 일인가. 차라리 수치화되고 정형화된 팀장들의 선정 기준을 따를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여간 글의 진실성에 최대한 중점을 두고 18명의 인원을 선발하였다. 

마지막 면접실을 나오다 뒤돌아서 내가 책상위에 올려놓은 자료에게 한번더 애정어린 눈길을 주고 나왔는데 최종 면접일 결과는 2명 지원이라니...어떤 선별기준으로 뽑았냐는 팀장의 답변에 진실성이니 성실성이니 하고 답변하기가 참 궁색했다. 요즘같은 시대에 다중지원이 당연지사지만 허전한 마음이 드는것 또한 인지상정이리라. 어찌되었든 9000명, 특히 내가 서류를 만지작거린 18명의 인원은 어디에서든 잘 되길 바래본다.

p.s)각 팀별 최종 인원의 면면을 살펴보다 발견한 한가지 사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여기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서울대,카이스트,포항공대등의 지원서류는 특정 연구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출신학교 부분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구태여 이유를 달지 않더라도 그들이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편견과 우리 회사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곳에 들어갈것이라는 편견...여러가지 일반화된 편견이 작용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편견은 어차피 쌍방향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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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2-1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허탈하시겠다... 그럼 아예 충원 안 하시는건가요?
붙여넣기 기능을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글들은 과거 글씨체가 했던 역할을 대신하는군요.

잉크냄새 2007-02-1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젊은피의 수혈이 이루어지지 않는거지요. ㅠㅠ 붙여넣기가 뭔 잘못이 있겠습니까마는 선택의 문제앞에서는 그 성실성과 진실성에 다소 영향을 미치는 면도 있는듯 합니다.

마늘빵 2007-02-14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허탈하네요 저도. 미충원. 9000명이 다 날아갔네요. -_-
님의 진실성과 성실성 판단 잣대가 아무리 주관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가장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객관적 수치들보다.

은비뫼 2007-02-1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또 그것을 상대가 느끼는 것 또한 각자의 몫이겠죠. 잉크냄새님은 주관적으로 판단
하시겠지만 그것이 제가 보기에 진정 객관적으로 갖추어야 할 중요 점이라 생각됩
니다. 바쁜 날이셨네요. 편안한 저녁 되시길. ^^

날개 2007-02-1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지원의 폐해이기도 해요..
갈수 있든 없든 일단 지원해두고 보는거죠...
예전처럼 직접 회사에 찾아가서 서류 접수하고 그런거였다면 저렇게 허탈한 결과는 안나왔을 거여요~ 아마도..

춤추는인생. 2007-02-1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어질지 몰라서 복수지원하는 응시자맘을 이해하지 못하는것 아니지만서도.9000명중에 2명이라..
서류보시느라 힘드셨을텐데 잉크냄새님도 많이 상심하셨겠어요.
편안한밤 보내시고 힘내세요 님..


내가없는 이 안 2007-02-1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겨운 카테고리, 맞네요. 그 고리타분한 정형성을 벗어나서는 도저히 판단하기가 힘들까요? 요즘은 이력서도 수십 장(수백 장이던가?)을 써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말이죠.

잉크냄새 2007-02-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 9000명이 다 날라간건 아니고요. 저도 그렇게 믿고는 싶어요. 수치보다 더 중요한 잣대가 분명히 있다고요.
은비뫼님 / 그렇죠.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일, 그 글에서 상대방을 읽어내는 일, 두가지 모두 쉬운 일이 아니죠.
날개님 / 인터넷지원...정보화시대의 장점이지만 남발하게 되니 진정성을 가진 지원자들도 묻혀버린다는게 문제인것 같군요.
춤추는인생님 / 상심까지야 하겠습니까. 그냥 간절함을 간직한 다른 사람들의 기회가 사라진게 좀 아쉽죠.
이안님 / 이안님도 저 카테고리를 작성했군요.^^ 이안님 리뷰처럼 작성했다면 그냥 덜커덕 합격이었을것 같네요.ㅎㅎ
 



 < 조순호의 나무>

 

여백

- 도종환 -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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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7-01-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이 많은 사람에게 끌리면서도 내여백은 슬쩍 감추고 싶은 아이러니.

은비뫼 2007-01-3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여백...아름다운 풍경은 가득 찬 것만이 아님을 느끼게 하네요. ^^

내가없는 이 안 2007-02-01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비어 있는 사람인데요. ^^

水巖 2007-02-0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시도 전부 좋군요. 퍼 갑니다.

춤추는인생. 2007-02-02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들이 만들어 놓은 여백에 등을 기대고 쉬고 싶어지네요..

잉크냄새 2007-02-1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부족하고 빈곳이 많은 것이 어디 님만의 일이겠습니까. 대지에 발디디고 사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죠. 그것을 부족함이 아닌 여백으로 느끼면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나 싶군요.
우몽님 / 그 아이러니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하지만 님의 서재에서 님의 여백이 슬며시 비추어진다는 사실!!
은비뫼님 / 비어있지도 넘치지도 않는 어느 공간의 사이, 그곳이 여백이 아닌가 싶네요.
이안님 / 그거야 뭐,,,저도 마찬가지랍니다.ㅎㅎ
수암님 / 수암님의 서재에서 느끼는 삶의 여유로움과 여백,,,그것에 어울렸으면 좋겠네요.
인생님 / 나무들이 만들어가는 여백,,,그곳에서 님의 안식처를 발견하시길...
 
 전출처 : 릴케 현상 > 바깥에서-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고

 

바깥에서-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고


정확히 10년 전이다. 한국역사의 한 장에 기록을 남겼을 1997년은 IMF의 해였다. 그 해 이후로 나라에는 많은 일이 있었고 내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것이 한묶음으로 꿰어지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많은 징후가 있었다고 한다면…… 내 생의 일부는 그 징후에 붙들려  있었다. 1997년. 나는 제대를 했다. 집으로 와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신문배달. 부산의 조간 국제신문이었다. 날마다 신문의 1면을 건성으로 훑으며 자전거 바퀴를 돌렸다. 11월의 어느 날 IMF라는 단어가 신문 1면에 등장했을 때 날마다 이 괴질과 같은 슬픔의 전염병을 집집마다 던져 넣으며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 그저 자전거 페달을 전속력으로 밟으면 밟을수록 가야 할 어딘가에서 내가 그만큼 멀리 와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뿐.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갈 곳이 멀리/마음이 멀리에 있기 때문이다/(…)/빗속으로/소용돌이쳐 뚫고 날아가는/멧새 한 마리/저 全速力의 힘/그리움의 힘으로/멧새는 어디에 가 닿을까/(…)/다시 생각해도/나는/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 -「바깥」중에서


며칠 뒤 아버지가 나가는 공장이 도산을 했고, 거의 동시에 어머니가 나가는 공장이 도산을 했다. 나는 다리를 다쳤고, 자퇴를 했고, 집을 나왔다. 부산 사하구의 반지하 자취방과 그 주변 다세대 주택에는 자퇴한 친구들이 간혹 있었다. 뜬금없이 뇌호흡 강사가 되어 생활한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김영삼 정부와 삼성의 타협의 결과라고 얘기되던 부산 삼성자동차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방세를 내고 조금씩 저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서면 내 눈높이에 한 뼘 높이의 창문이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처음이었다. 창살 밖으로 재래시장의 아침이 보였다. 아니 저마다의 일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목이 보였다. 아니 발목들 건너편 벽에 세워진 생선궤짝들이 보였다. 아니 그 비린내가 훅하니 느껴졌다. 그날 나는 내가 그들의 바깥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들을 바깥에서 바라보았다. 그 전 내가 아직 어머니의 품안에 있었을 때 나는 기꺼운 풍경이었다.


어미 개가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처음으로 정을 뗄 때가 되었다/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 저 풍경 속으로는/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젖 물리는 개」중에서


나 역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젖 물리는 개’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돌아갈 수 없는 자의 슬픔을 담고 있다. 그 슬픔은 ‘바깥’에 놓인 모든 인간이 공명하는 슬픔이다. 바깥에서 시인은 한결같이 슬픔을 얘기하고 돌아갈 안을 그리워한다.

시집의 첫 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 하나의 돌같이 내 몸이 젖네/(…)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  -「思慕-물의 안쪽」중에서.

시인에게 ‘안쪽’으로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시로서 이루어야 할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이 나왔을 때 나는 「호두나무와의 사랑」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 시는 ‘나는 지난 여름 내내 흐느끼는 호두나무의 哭을 들었다 그러나 귀가 얇아 호두나무의 중심으로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나의 이 고백도 바람처럼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알겠다’고 자책한다.

이 근원적인 슬픔을 품은 채 시인은 세상을, ‘어긋나는 감각의 면 위를 물뱀처럼 오래 걷는다’(「나는 오래 걷는다」중에서). ‘알고도 모르는 척 속은 척 받아넘기’(무늬는 오래 지닐 것이 못 되어요」중에서)기도 하면서.

그래서 시인은 ‘외따롭고/생각은 머츰하다’ 늘 누군가 ‘와서 울고 간다’(「누가 울고 간다」중에서).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자루」중에서)으며 시인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가재미」중에서).

이쯤 되면 나는 시인을 바깥에 선 슬픔의 동반자라고 말한 셈이다. 시인의 슬픔은 너무나 근원적이어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어서 치유할 수도 없지만 슬픔에 빠져 쉬 넋을 놓게 하지도 않는다. 세상을 고해로 보고 중생의 아픔을 큰 슬픔으로 보듬어 준 석가가 깨달은 자가 되었듯이, 슬픔을 아는 슬픔을 들여다보는 눈에는 지혜가 깃드는 법이다. 지혜는 ‘그맘때가 올 것이’(「그맘때에는」중에서)라는 걸 알게 하고, 인간에게 ‘3초씩 5초씩 짧게’ 지나가는 시간이 나비에게는 ‘보다 느슨한 시간’(「극빈」중에서)이라는 걸 알게 한다.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성찰의 대상은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에 관한 시인의 성찰이 「그맘때에는」과 「극빈」에서 돋보인다면 공간에 관해서는 ‘수평’이라는 화두가 돋보인다. 그것은 해설 ‘극빈의 미학, 수평의 힘’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잠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이 시의 화자들은 그 수평으로부터 어떤 사소한 우주적인 동력을 발견한다. “평면의 힘”“무서운 수평”“평면적으로 솟는다”와 같은 역설적인 표현들 속에서, 수평은 수직의 에너지와 움직임을 전유한다.  -127p에서


과연 시인은 슬픔을 지혜의 옆 자리로 옮겨놓을 줄 아는 존재임을 알겠다.

이제 시집 감상을 마치도록 하자. 다시 1997년 이후 즈음을 떠올려 본다. 1년 만에 나는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얼마간의 학비를 장만하고, 부산을 떠나 경남에 보금자리를 옮겨놓은 가족들과 재결합할 수 있었다. 그것이 풍경 속으로 돌아간 것은 아닐 터이지만, 노모를 만난 기쁨을 잠시 떠올려 볼 수는 있겠다.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老母」중에서)

그 후 나는 서울로 올라와 혼자서 직장을 얻어 살다가 작년에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을 했다. 이제 나도 ‘젖 물리는’ 부모가 되는 것일까?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으며 반지하 주택의 창문 앞을 지나는 발목들과 맞은편에 놓여 있던 생선궤짝의 비릿한 감각을 훅 느껴본다. 바깥과의 그 마주침!


나와 오리와 세 마리 쥐가/눈이 마주쳤다 오오 이런!(「오오 이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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