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의 식당
-엄원태-
그 식당 차림표에는
열 가지가 넘는 메뉴가 준비되어 있고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인데
가령, 낙지볶음은 한 접시에 기껏 오천원이다
홀 한쪽에는
주방으로 쓰는 씽크대와 장탁자가 있고
식탁은 세 개
의자는 열세 개 있다
손님은 하루 평균 여남은 명인데,
어쩌다 술손님을 한 팀 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주인아줌마는 기꺼이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식당이
텅, 텅, 비어 있던 어느날
나는 거기서 짠 국밥 한 그릇을
신김치와 콩나물무침으로 먹은 적이 있다
어쩌다 이렇게 조용한 주택가 길목에
이런 식당이 허술하게 문을 열고 있담,
생각하는 것이 상식, 그 상식을
보기좋게 뒤집으며 그 식당은 거기에 있는 셈인데……
한번은 세무서에서 나온 젊은 주사가
조용히 업종 전환을 권유한 바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식당 아줌마는 늘 준비해놓은 반찬 중에서
날짜를 못 이겨 상하기 직전인 것만으로
자신의 식사를 해결하곤 하는데,
그 처연한 혼자만의 식사를
그 앞을 지나다니며 무심히 몇번 보았다
삶이란 게 그런 것은 아닌가
쉬어빠지기 직전의 음식을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느릿느릿 씹어대는, 어떤, 말로는 다 못할
무심함 같은, 그런 나날들의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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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느끼고 공감하는 성향이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변화는 것을 느낄수 있다. 연애편지의 한 줄을 완성하고자 외우던 서정윤의 <홀로서기>의 감성 쩌는 싯구들, 지적 허영심의 충족도 아닌 과시의 환상에 사로 잡혀 외우던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잎>의 아직도,아니 영원히 내 것이 아닌 싯구들...이제는 세월이 흐른 탓일까. 그저 편안히 읽히는 시가 좋다. 일상의 언어가 좋다. 소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조곤조곤 대화하는 듯한, 그래서 그 풍경이 손에 잡힐 듯한, 세상의 모서리에 상처입은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 시선에 내 시선이 겹칠때 시는 내게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