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마호가니 책상 (잉크냄새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제가 많이, 자주 행복하다면, 어쩌면 행복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아버려서겠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21 Jun 2026 21:21:25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잉크냄새</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3910173489430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잉크냄새</description></image><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머리긁적이며 푸는 넋두리</category><title>황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342407</link><pubDate>Thu, 18 Jun 2026 2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342407</guid><description><![CDATA[아직 꿈속인 듯 했다. 주말 아침 분명히 늦은 시간인 듯 한데 주위를 감싸는 공기가 뭔가 달랐다. 이 시간이면 반대편 은행 건물의 유리창에서 반사된 빛이 침대 위까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시간이었다. 오늘은 짜증나는 눈부심 대신 온통 은은한 파스텔톤의 노란 기운이 꿈결처럼 침대 위로 흐르고 있었다. 커튼을 걷으니 창밖은 물감을 푼 듯 온통 노란색 천지였다. 건너편 은행 건물들은 다 사라지고 도로도 가로수도 사라졌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노란색 기운만이 따스하고도 적막했다. 다른 차원의 다른 행성에 홀로 남겨진 지구인이 된 듯 했다. 그 적막함을 깨기 싫어 커피 한 잔을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눈이 익숙해질 즈음 창 바로 앞 가로수들의 윤곽이 살짝 드러났다. 새들이 날아간 자리는 날개짓의 여운이 비행의 흔적을 남기며 서서히 지워져 갔다. 차들은 무대 위 등장 인물들의 퇴장처럼 대낮부터 헤드라이트의 잔상을 남기며 사라져갔다. 의자를 끌어당기며 온 종일 창문 앞에 앉아 노란 무대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 했다. 그건 중국 한 복판에서 만난 황사였다.<br>&lt;AI로 그려보았다. 사람 빼고 비슷한 분위기다&gt;]]></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8/pimg_773910173515769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342407</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집 떠나와 버스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329398</link><pubDate>Thu, 11 Jun 2026 2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329398</guid><description><![CDATA[땅덩이가 넓은 나라를 여행하는 하나의 묘미는 야간 버스에 구겨져 밤을 보내는 일이다. 땅이 넓다 보니 야간 버스가 나라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잘 배치되어 있고 여행자 입장에서도 시간 절약, 숙박비 절약에 이국의 밤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할 수 있다. 특히 튀르키예의 야간 버스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남자 차장이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처럼 격식있는 옷차림으로 밤새 시중을 든다는 점이다. 졸다 깨어나면 밤새 지켜보고 있다 달려왔는지 바로 눈앞에서 멋드러진 콧수염 아래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소 과장된 큰 미소를 지으며 쟁반에 담긴 과자류와 달짝지근한 홍차를 권한다. 홍차를 다 마시면 손을 펼치게 하고 손바닥에 레몬수를 분무기로 가볍게 뿌려준다. 손을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며 잠결에 맡던 레몬향은 얼마나 상큼하던지. 잠의 요정이 아직 떠나지 못한 자리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레몬향은 시간이 지나도 코끝에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다.<br>&lt;갈라타 타위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gt;<br>이스탄불에서 샤프란볼루로 가는 버스는 늦은 밤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였다. 저녁을 먹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일찍 불 끄고 잠 든 도심과 달리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버스 뒷편의 넓은 공간은 듬성듬성 놓인 드럼통에서 붉은 불꽃이 넘실거렸다. 그 주위로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거나 허리를 들썩이며 위아래로 파도타기 하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목마를 탄 몇몇 청년들은 국기를 흔들며 분위기가 애국가인 듯한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흡사 소요 사태가 발생한 듯 싶어 몸을 구부리고 잽싸게 차에 올라타 커튼 사이로 몰래 훔쳐보았다. 어리둥절한 소란은 버스 차장이 출발 시간을 알리며 독촉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청년들이 하나 둘 버스로 다가올 때가 되어서야 다소 떨어져 지켜보던 히잡을 둘러 쓴 중년의 여성들이 버스 주위로 서둘러 모여들었다. 청년들과 가볍게 포옹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손을 놓지 못했다. 버스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자 그녀들은 다시 창 주위로 몰려와 창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며&nbsp;차창 속 청년들을 다시 애타게 바라봤다. 아, 저 눈빛, 낯설지 않다 싶었다. 어머니의 눈빛, 자식을 군대로 떠나 보내던 그 눈빛을 이 곳 타국에서 다시 마주치다니. 참 환송회 한 번 거창하다 싶던 마음이 그 마주침에는 다소 울컥하였다. 울음을 삼키는 여인들의 눈물은 버스가 떠나고 나서야 터질 듯 했다.<br>&lt;블루 모스크&gt;<br>입영 전야를 거창하게 보낸 청년들을 태운 버스가 멈춰 선 것은 이스탄불을 막 벗어난 어느 벌판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바라보니 십여 명의 청년들이 낮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뭔가 싶어 그들을 따라 오르니 중간 즈음에 일렬횡대로 도열하여 노상방뇨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무심결에 그들 옆에 일렬횡대로 줄을 맞춰 노상방뇨를 하였다. 바지춤을 올리다 왠지 묘한 느낌에 옆을 보니 일렬횡대를 삐죽이 빠져 나온 머리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꺼림칙한 마음에 얼른 언덕을 내려오니 몇몇 청년이 따라와 어깨를 잡았다. 돌아보니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이 다소 흥분한 듯 했다. 튀르키예어로 침 튀기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다소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서 있으니 영어가 유창한 청년이 중간에 끼어들어 통역을 해주었다. 말인 즉 "왜 남의 나라에서 노상방뇨를 하느냐"는 항변이었다. 말만 놓고 보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상황을 놓고 보면 나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니들 따라 한건데...." 라는 논리정연한 반론에도 몇몇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는 군입대를 앞두고 고향 앞으로 쏴!를 한거라고..." 음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의식이었던 모양이다. 신성한 의례에, 신성한 땅에 오줌을 갈겼으니 화가 날만 하겠다 싶었다.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그래도&nbsp; "니들 따라 한건데...."라는 막강한 논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입대를 앞둔 스트레스에 묘한 애국심이 들러붙은 상황이 민족주의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nbsp;<br>묘하게 이어지던 대치 상황은 나의 어설픈 외침으로 마무리 되었다. "I was a soldier, too(나도 한때 군인이었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여행 당시 나의 영어 수준이 딱 이만큼이다)" 뭔가 어색한 영어로 군인이라는 동질감에 호소하고자 특히 "too"에 침 튀기며 방점을 찍었다. 다소 당황한 그들을 뒤로 하고 냉큼 버스에 오르니 통역이 다시 통역해주는 듯 했다. 겉옷을 뒤집어쓰고 잠든 척 하고 있으니 soldier 어쩌구 하는 말이 잠시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예비역을 바라보는 훈련병의 입장이랄까. 새벽 한기만큼 낯선 군대라는 두려움을 경험한 이에 대한 경외일까.&nbsp;역시 입장의 동질감은 어떤 분쟁도 막을 내리게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와 막 군인이 될 청년들을 태운 버스는 다시 밤을 달려 여명이 밝을 때쯤 목적지인 샤프란볼루에 도착했다. 나 혼자 내리는 걸 보니 저들의 목적지는 아직 더 새벽을 달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버스를 내리며 곤히 잠든 그들의 영혼에 무훈을 빌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뺑이 까라~~~.' 한때 군인이었던 여행자가 투르크 전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이었으리라.&nbsp;<br>&lt;아야소피아 성당&g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1/pimg_77391017351508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329398</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긴 호흡</category><title>경험이 전부는 아니지만 - [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89975</link><pubDate>Thu, 21 May 2026 2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899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931116&TPaperId=172899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75/21/coveroff/k8129311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931116&TPaperId=172899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a><br/>레이먼드 무디 지음, 배효진 옮김 / 서스테인 / 2024년 06월<br/></td></tr></table><br/>임사와 사후 체험 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경험이 그들에게 다시 주어진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계기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종교의 발생 원인이 일정 부분 죽음에 대한, 엄밀히 말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이행일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한 것 만으로도 삶은 충만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직접 임사 체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nbsp;<br>대학교 일 학년 겨울 방학, 고향과 먼 이역만리 전남 광양 제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당 2만원에 생명수당 3천원. 생명수당은 고압전선 설치와 고공 위험 작업에 대한 것이었다. 50미터 이상 수직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 크기의 배전관 안에서 전선을 당겨 올리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잠시 스쳐갔다.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몸은 추락했는데 나는 두둥실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누운 자세로 깃털이 산들바람에 가벼이 날아오르듯 몸은 둥실둥실 떠올랐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눈부시게 하얀 빛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니 전선에 팔과 다리가 걸린 내 몸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살짝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계속 하늘로 올라갔는데 지금껏 그런 평화롭고 아늑한 기분은 처음인 듯 했다. 먼 곳에서도 나처럼 올라오는 하얀 빛 덩어리들이 보였다. 그때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낯익은 소리였다. 어, 저건 내 이름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아래로 순식간에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고 번쩍 눈이 떠지며 갑자기 주의가 어두워지고 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전선에 걸쳐진 다리가 풀리며 몸이 미끄러지는 찰나 전선을 움켜 잡았다. 이름을 부르며 올라와 등을 받친 친구의 눈은 눈물 범벅이었다. 이 오래된 기억은 공포나 두려움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때 가벼이 올라가던 깃털 같은 순간의 묘한 평화로움과 아늑함이 아직도 기억난다.<br>임사와 사후 체험이 그다지 일반적이지 못한 것은 그것이 희박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시선이 환각이나 망상 ,심지어 정신병과도 같은 병리적 현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만난 체험자들은 그들과 유사한 경험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기도 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체험의 양태는 인종,지역,시대,성별을 막론하고 거의 유사성을 보인다. 온전한 평온함, 처음 듣는 이상하고 불편한 소리,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느낌, 몸과 영혼의 분리, 몸을 감싸는 의문의 하얀 빛... 내가 경험한 임사의 경우 소리와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경험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그 동안의 영화나 책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학습화된 어떤 경험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삶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공간이 실재하기에 유사한 경험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증명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죽음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기에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nbsp;<br>에피쿠로스 학파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죽음 역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경험에 기인한다. '우리가 살아있을 땐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수 없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역설은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임사,사후 체험자들은 죽음을 경험했기에 그 죽음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대변되는 지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서, 영원한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전이거나 더 높은 의식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 오히려 삶보다 평화로왔던 그 경험에서 남은 생의 의미를 다시 찾기도 한다.&nbsp;<br>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은 개별적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75/21/cover150/k8129311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1752146</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책속을 유영하다 </category><title>내 인생은 직불제인 것 같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76758</link><pubDate>Thu, 14 May 2026 19: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767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8064&TPaperId=172767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14/12/coveroff/s602038067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어릴 적 나는 인생을 선불제로 생각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죽어라 공부만 하며 현재를 ‘지불’하면 그만큼의 괜찮은 미래가 주어지는 줄 알았다. 밤을 새워 소설을 쓰고 몸을 축내면 그 대가로 편안한 미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편하듯이, 고생과 노력은 초반에, 그 과실은 생의 후반에 따먹는 것이려니 했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후불제인 것 같다. 어린 날이 오히려 ‘공짜’였고 지금은 계산을 치르는 중이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만 같다. -p156-<br><br><br><br><br><br>여행을 목적으로 처음 회사를 퇴직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계속 '왜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는지'에 대하여 지겹도록 질문을 받았다. 실질적인 이유는 사십을 넘기면 다시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이대로 삶이 굳어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대로 말해 버리면 뭔가 바보스러울 것 같아 스스로 '왜'에 대한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었다. 그때 변명처럼 떠오른 생각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살짝 비튼 '가치 보존의 법칙'과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 이라는 시였다. 질량처럼 가치 또한 형태를 달리할 뿐 세상 어딘가 온전하게 존재하리라는 믿음,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알려준 시인의 위로는 내 선택을 잘 포장해 주었었다. 인생은 후불제란 작가의 글을 읽다 내 인생은 직불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얻기 위해 버려야 함을 인정하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직불제가 아닐까 싶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14/12/cover150/s60203806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141292</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 중국 쑤저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63370</link><pubDate>Thu, 07 May 2026 2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63370</guid><description><![CDATA[<br>쑤저우苏州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오나라의 머릿글을 따 오군,오주,오현으로 불리다 고소산姑苏山의 소자를 따서 수나라 시절부터 쑤저우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쑤저우에서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대하여 물어보면 거의 백 프로 나오는 첫 마디는 '上有天堂 下有苏杭 상요우텐탕 샤요우수항(위에는 천당,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이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항저우杭州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구절이다.&nbsp;오나라의 수도였던 쑤저우와 저장성의 행정 중심인 항저우, 역사적으로 두 도시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서 지리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융성했고 정치적으로 강성했다. 오랜 세월 문화적 향유를 누려온 것과 같이 당대의 시인들 백거이白居易와 이백李白이 &lt;억강남&gt;과 &lt;오서곡&gt;으로 찬양하고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소동파苏东坡가 사랑한 쑤저우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는 놀랍게도 비교적 무명인 당나라 시인 장계张继의 &lt;풍교야박枫桥夜泊&gt;이란 시이다.&nbsp;<br>月落乌啼霜满天 월락오제상만천(웨뤄우티쑤앙만텐) 달 지고 까마귀 울어 서리 가득한 하늘江枫渔火对愁眠 강풍어화대수면(쟝펑위훠뛰쵸우멘)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잠드네姑苏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구수청와이한산쓰) 고소성 밖 한산사夜半钟声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예빤쫑성따오커촨)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br>가장 유명한 시구는 3구와 4구인데 지명을 직접 언급한 3구와 뱃전에 다다른 한밤의 종소리로&nbsp;고향 떠난 나그네의 깊은 객창감을 건드는&nbsp;4구가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시가 유명해진 건 단순히 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수 백년에 걸쳐 당대의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시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풍교야박이 쑤저우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떨치자 시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비판은 종소리에 대한 비판이다. 첫째, 산사의 종은 한 밤에 울리지 않으므로 시인이 한밤에 들었다는 종소리는 허구다. 둘째, 한산사는 풍교와 지척이라 한밤중에 종을 울리면 시끄러워 시와 같은 은은함을 느낄 수 없다. 셋째, 한산사에는 종이 없더라. 당대부터 이어진 비판은 송대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이즈 마케팅에 편승한 시는 어느덧 쑤저우를 대표하는 시가 되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 시를 음송하지 못하는 소주인이 없다고 한다. 시적 사실과 시적 허용의 문제는 예전부터 늘 시 언저리에서 시와 함께 생명을 이어가고 있구나 싶다.&nbsp;<br>&lt;요즘 중국에도 고전 양식의 옷을 입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서시의 후예다.&gt;<br><br>풍교야박의 논쟁을 직접 확인하러 풍교로 향했다. 시구 3구처럼 고소성에서 잠시 벗어난 한산사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했으나 관광객은 중국 여느 곳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산사 정문을 빗겨 한 바퀴 도니 수향 마을답게 절 주위로도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다리 높이로 보아 한때 절 주변으로 꽤나 큰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풍교는 한산사 뒤쪽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풍교 주위로 단풍나무도 몇 그루 서 있고 다리 한 쪽으로 한산사의 모습도 보이니 시가 완전 허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산사의 종은 직접 보지 못했고 종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밤에 오지 못한다는 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장계 선생이 느낀 객창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nbsp;아쉬움을 뒤로 하고 풍교를 건너려니 바로 옆에 3D 체험관이 있다. 풍교야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에 배에 올라탄다.&nbsp;<br>&lt;장계 선생이 시를 읊은 자리는 저 반대편 선상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gt;<br><br>"뱃전에 앉으니 당나라 어느 수향 마을이 펼쳐진다. 바야흐로 봄이다. 동자와 꾸냥이 가져온 차를 한 잔 받아 마시니 배가 서서히 수로를 따라 움직인다.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봄이 수로 양 옆으로 가득하다. 겨울 빨래를 가져 나온 아낙들이 수다스럽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꾸냥이 슬며시 미소짓는다. 배를 타고 꽃을 파는 소녀에게서 수선화와 장미를 받아보고 음식을 파는 배 옆에서 만두를 받아 먹어본다. 봄을 지난 수로는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웃통을 벗어 제낀 아이들이 수로로 뛰어들고 번잡한 시장에서는 흥정이 한창이다. 한 켠에는 수로 위로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위태롭다. "짜요 짜요" 응원 소리가 드높더니 갑자기 나타난 용선 3척이 앞다투어 질주한다. 그 물결에 두둥실 흔들리던 배는 갑자기 다리 위로 솟구친다. 아래로 한여름 축제가 한창인 고소성이 펼쳐진다. 밤의 불꽃 축제가 고소성 하늘을 뒤덮고 골목골목은 선남선녀의 흥청거림으로 번잡하다. 고소성을 한 바퀴 돈 나룻배가 다시 수로로 돌아오니 어느덧 늦가을, 문득 찾아온 쓸쓸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초승달이 지고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가을 밤 위로 흰 서리가 하늘 하늘 떨어지는데 붉은 단풍 위에 내려앉은 자태가 처연하다. 어디서 본 풍경이다 싶더니 바로 &lt;풍교야박&gt;의 구절이 아닌가. 뱃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장계 선생이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시중들던 동자가 나를 가르키며 "장계 선생, 이 분도 장안에서 피난온 사람입니다" 하니, 장계 선생은 더욱 깊은 우수에 젖어 긴 장탄식과 함께 술잔을 들고 일어선다. 뎅~뎅~ 한산사 종소리에 잠시 시름 겹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 들어 왼손에 든 술잔 속의 술을 찍어 올려 가을 밤 하늘에 일필휘지로 갈겨쓰며 시를 음송한다. 족자를 들고 나온 동자가 장계 선생에게 시 제목을 청하니 &lt;풍교야박&gt;이라 적는다. 동자의 손을 떠나 족자가 가을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다시 한번 가을 밤에 장계의 시를 적으며 음송을 권한다.&nbsp;뱃전 여기저기서 &lt;풍교야박&gt;이 흘러나온다. 최대한 당대의 목소리로 크게 음송한다.&nbsp;'웨뤄우티쑤앙만텐~~~~' " 고글을 벗고 내리니 뒤에 탄 서생들이 전부 유치원생이다. 음, 초로의 중년이 유치원생과 다투어 시를 음송하다니. 살짝 부끄러웠다. 쑤저우에서 &lt;풍교야박&gt;이 천 년 세월을 살아난 이유이리라.<br>&lt;AI로 풍교의 늦가을 정취를 표현해봤다.&gt;]]></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7/pimg_773910173511705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263370</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머리긁적이며 푸는 넋두리</category><title>무제</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34789</link><pubDate>Thu, 23 Apr 2026 2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34789</guid><description><![CDATA[놀란 얼굴의 여성분이 도서관으로 들어오며 도움을 요청했다. 3층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일요일 도서관에는 여자 직원만 있었으므로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3층으로 향했다. 상급자의 지시와 업무 매뉴얼을 확인하는 여직원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신 통화중이었다. 직원의 요청에 따라 난 남자를 제지할 목적으로 화장실 입구가 보이는 계단 근처에서 기다리며 상황을 주시중이었다. 처음에는 '에이 설마, 남녀 화장실을 헷갈려서 잘못 들어간 거겠지. 미친 놈이 아니고야'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죄송하지만 잘못 들어갔어요' 라고 말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하는 다소 난감한 상황도 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실수가 아닌 의도된 행동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십 여분의 시간이 지나고 통화를 마치고 오는 여직원에게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했고 그 순간 화장실 문이 열리며 건장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십 대 초반의 그는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위협적일 정도로 큰 키와 축구로 단련됐음을 한 눈에도 알만큼 다부진 체격이었다. 내가 제지할 틈도 없이 내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제가 호기심에 눈이 멀어 실수를 했습니다' 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실수 여부를 떠나 범죄인 건 아시죠?' 라고 하니 무릎을 꿇으며 어리석은 호기심에 한 실수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여직원이 매뉴얼에 따라 그의 신상명세와 연락처, 화장실에 의도적으로 침입한 상황에 대하여 녹취를 진행하였다. 신체 구속의 권한이 없음을 고지한 여직원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를 돌려보내고 도서관으로 다시 내려왔다. 도서관 한쪽 구석에 조마조마하게 앉아 있던 여성분이 상황을 물으며 다가왔다. 그때서야 그 여성분의 얼굴을 찬찬히 볼 수 있었는데 두려움과 공포가 눈동자에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당시의 상황을 듣고서야 그가 반년 가까이 스토커처럼 행동했고 오늘은 화장실까지 몰래 침입한 상황이었음을 알았다. 상황의 긴박함을 느끼고 여직원은 피해자 여성과 함께 경찰에 신고했다.<br>&lt;82년생 김지영&gt;이라는 소설을 읽은 것은 한국 출장 후 중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였다. 길지 않은 소설이라 비행 중 다 읽었는데 인상적인 글이었다. 특히 남성이 느끼는 별 것 아닌 일상과 생활이 여성에게는 공포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당시 중국은 인터넷 검열로 다음 등 일부 사이트가 막혀있었고 한국의 상황에 별 관심도 없던 시절이라 이 소설의 평가가 어떠한지는 몇 달이 흐른 다음번 입국때 쯤이었다. 의미 있는 공론의 장이 되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인터넷은 온통 남혐, 여혐, 군대, 출산 등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남녀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대와 출산 등의 문제는 한국에서 충분히 논의되어져야 할 사항이긴 하나 이 소설에서 어떻게 이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인터넷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동일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다수라는 상황은 더 혼란스러웠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입장의 동일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입장을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려면 타인에 대한 상상력, 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때서야 비로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 날 처음 사건을 단순히 실수이지 않을까 하고 받아들이는 감정 자체도 혼란한 상황에 대한 부정 방어 기제의 발현일 수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에서 오는 바가 더 큰 듯 했다.&nbsp; &nbsp;<br>얼마 후 도서관 복도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그 여성분이 가볍게 목례를 한다. 그 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같이 인사하며 바라보니 그 날 보이던 두려움과 공포는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때의 장면들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바래본다. 화장실로 들어간 남성은 경찰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모든 혐의에 대하여 자신의 어리석은 잘못임을 시인했다고 한다. 법적 처벌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법적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살아가길 바란다.]]></description></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시를 닮아가는 삶</category><title>엄마 걱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link><pubDate>Thu, 09 Apr 2026 2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guid><description><![CDATA[엄마 걱정<br>-기형도-<br>열무 삼십 단을 이고<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시장에 간 우리 엄마<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아주 먼 옛날<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시집을 읽다 보면 유독 겉도는 느낌의 시가 있다. '이 시가 과연 이 작가의 시가 맞나?' 싶은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청춘의 이별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우울한 어조로 노래한 시인 기형도의 시가 그러하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집이 된 &lt;입 속의 검은 잎&gt;의 마지막 시로 &lt;엄마 걱정&gt;이 실려 있다. 그가 짧은 생애지만 시인으로 활동한 중간 정도인 1985년에 쓰여진 시인데 시집의 마지막에 겉도는 듯한 느낌으로 실려 있다. 겉돈다 하여 완전히 다른 분위기는 아니다. 여전히 가난한 풍경이지만 백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고 해야 할까. 1989년 3월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생을 마감한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막처럼 올라가던 &lt;엄마 걱정&gt;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마지막 시에서 전해졌다.&nbsp; &nbsp;<br><br>&lt; AI로 생성해보았다. 한글을 이미지 처리하는 건 한계가 있나 보다. &gt;]]></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9/pimg_773910173508771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Shall We Dance - 중국 리탕</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link><pubDate>Thu, 02 Apr 2026 2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guid><description><![CDATA[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lt;인생&gt;을 보면 결혼식 날 평샤의 남편이 동료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주위를 둘러싼 동네 하객들에게 담배와 사탕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뿐 아니라 아직 전통 혼례 방식이 남아있는 여러 마을에서 예식이 거행되는 건물 앞에 작은 탁자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담배와 껌과 사탕을 쟁반이나 종이컵에 담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풍경을 종종 보곤 했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문을 나선 그 날 언덕 위 장족 전통 가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풍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던 그 집 앞에서 마침 담배가 똑 떨어졌다.&nbsp;리탕理塘은 중국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고도인 4200m의 장족 마을이다.&nbsp;담배 가게를 가려면 한참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와야 했다. 염치 불구하고 두 손 합장하며 "꽁시꽁시恭喜恭喜 (축하해요)"를 외치고 쟁반에 담긴 담배 몇 까치를 들고 나와 담배를 물고 다시 구경을 하고 있었다.<br>잠시 후 한 무리의 청년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탁자에 앉아 있던 노인과 몇 마디 주고 받은 후 나에게 험악한 얼굴로 성큼 성큼 다가왔다. "당신 중국인이냐?" "아니, 한국인이야" 중국어로 답변을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리탕은 티벳 독립 운동 기간 저항이 가장 심했던 도시이다. 티벳 승려의 분신이 빈번히 행하여진 곳이었고 승려중 리탕 출신이 가장 많았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한 지역이었다. 중국인과 외관상 구분이 쉽지 않은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하여 종종 실수로 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심 도로는 CCTV로 가득 했고 몇 십 미터마다 공안을 가득 태운 버스가 도로를 점유하고 있었다. 몇 마디 더 나눈 후 중국인이 아님을 확인한 청년들은 조금 전 굳게 경직된 얼굴이 언제냐 싶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풀었다. 결혼식에 참석할 것을 권하는 그들의 요청을 점잖게 거절하니 거의 끌다시피 하여 건물 이층으로 올라갔다.<br>&lt;잔치집 입구에는 사탕과 담배와 껌이 주로 올라간다&gt;<br>장족의 결혼식은 삼일간 계속 된다. 그날이 며칠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직 축하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듯 장족 음악과 웃음 소리가 가득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층은 대략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과 손님을 접대하는 대형 홀, 그리고 신랑 신부가 축하 손님을 맞이하는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부엌에는 신부측 어머님을 중심으로 동네 아낙들이 모여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전통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이 세월을 과시하듯 벽면에 도배되어 있었고 창을 통과한 한 줄기 햇살이 음식 연기와 먼지의 춤사위로 아늑했다. 천장에는 그을음으로 훈제된 라로우腊肉가 걸려 있었다. 손님 음식이 부족하면 큰 실례가 되기라도 하듯 음식은 층층이 쌓였다. 으레 부엌에서의 한담이 그렇듯 홀로 부엌을 방문한 이방인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데 동생을 먼저 시집 보내는 언니의 상대방으로 웃음소리와 함께 한참 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렸다.&nbsp;신랑 신부가 하객을 맞이하는 신방은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는데 폐백실과 비슷한 용도로 보였다. 외지인인 나에게는 직접 대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부정을 탄다는 미신적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다.&nbsp;대형 홀에는 기다란 탁자가 가로 세로 몇 줄로 자리 잡고 있었고 양탄자가 깔린 낮은 의자가 양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탁자에는 티벳 전통 음식이 가득했고 막걸리 창과 뚝바 같은 전통 술이 놓여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주전자에는 수유차가 끈적거리는 버터맛을 풍기며 흘러 넘쳤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1.5리터 코카콜라와 500미리 환타가 쌩뚱맞은 얼굴로 자리해 있었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일어나 테이블마다 돌며 축하 노래를 불러 제끼고 노래가 끝나면 다들 잔을 들고 축배를 들었다. 여인들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남성들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고산에서의 음주는 자살이야' 라고 다짐하고 수유차酥油茶를 마시며 최대한 술을 자제했으나 이미 거나하게 술에 취한 건장한 장족들의 강압에 한 잔 두 잔 잔술에 취하여 갔다.&nbsp;&nbsp;<br>&lt;보통 3일 동안 축제가 이어진다&gt;<br>건물 일층은 보통 사람이 거주하는 용도는 아닌 듯 했다. 공간의 구획이 명확하던 이층과 달리 일층은 건물을 지지하는 커다란 기둥 외에는 텅 빈 공간이었다. 다만 잔칫날 만큼은 동네 아낙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티벳 전통춤을 추고 있었다. 올라갈 때도 빙글 빙글 돌아가던 춤은 어둑어둑 어둠이 깔려 내려올 때까지 계속 되었다. 오전에 끌려 들어가 해가 뉘억뉘억 넘어갈 때 이층에서 내려왔는데 팔을 잡아 이끄는 장족 여인들에 이끌려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사위는 삶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춤이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듯 그들의 습관처럼 몸에 벤 자연스런 춤이었다. 움직임이 많고 동작이 커 우리 춤사위보다 훨씬 동적이었다. 장족 마을에서는 식사를 마친 저녁 나절 이미 어두워진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나온 여러 마을에서 이미 본 일상적 풍경이어서 금방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도 빙글, 머리도 빙글, 카메라도 빙글, 오직 빙글빙글만 존재하는 아주 편안하고 흥겨운 기분이었다. 한참을 빙글거리며 돌아가다 기억이 끊어졌다. 문득 기억나는 것은 흰 물감 묻은 붓을 휘둘러 별자리마저 취하여 빙글거리던 은하수와 노랫가락 흥얼거리며 고도 4200미터의 마을을 헉헉거리며 걸어 내려오던 기분 좋은 취기였다.<br><br>&lt;사진을 찍을 즈음에는 이미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사진도 다 흔들린다&gt;<br><br><br><br><br><br>&lt;무희만큼의 동작은 아니지만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장족 마을 광장에는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몰려와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춘다&g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2/pimg_773910173507955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