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마호가니 책상 (잉크냄새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제가 많이, 자주 행복하다면, 어쩌면 행복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아버려서겠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1 Jun 2026 05:06:38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잉크냄새</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3910173489430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잉크냄새</description></image><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긴 호흡</category><title>경험이 전부는 아니지만 - [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89975</link><pubDate>Thu, 21 May 2026 2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899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931116&TPaperId=172899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75/21/coveroff/k8129311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931116&TPaperId=172899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a><br/>레이먼드 무디 지음, 배효진 옮김 / 서스테인 / 2024년 06월<br/></td></tr></table><br/>임사와 사후 체험 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경험이 그들에게 다시 주어진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계기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종교의 발생 원인이 일정 부분 죽음에 대한, 엄밀히 말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이행일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한 것 만으로도 삶은 충만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직접 임사 체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nbsp;<br>대학교 일 학년 겨울 방학, 고향과 먼 이역만리 전남 광양 제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당 2만원에 생명수당 3천원. 생명수당은 고압전선 설치와 고공 위험 작업에 대한 것이었다. 50미터 이상 수직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 크기의 배전관 안에서 전선을 당겨 올리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잠시 스쳐갔다.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몸은 추락했는데 나는 두둥실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누운 자세로 깃털이 산들바람에 가벼이 날아오르듯 몸은 둥실둥실 떠올랐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눈부시게 하얀 빛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니 전선에 팔과 다리가 걸린 내 몸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살짝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 계속 하늘로 올라갔는데 지금껏 그런 평화롭고 아늑한 기분은 처음인 듯 했다. 먼 곳에서도 나처럼 올라오는 하얀 빛 덩어리들이 보였다. 그때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낯익은 소리였다. 어, 저건 내 이름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아래로 순식간에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고 번쩍 눈이 떠지며 갑자기 주의가 어두워지고 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전선에 걸쳐진 다리가 풀리며 몸이 미끄러지는 찰나 전선을 움켜 잡았다. 이름을 부르며 올라와 등을 받친 친구의 눈은 눈물 범벅이었다. 이 오래된 기억은 공포나 두려움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때 가벼이 올라가던 깃털 같은 순간의 묘한 평화로움과 아늑함이 아직도 기억난다.<br>임사와 사후 체험이 그다지 일반적이지 못한 것은 그것이 희박한 경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시선이 환각이나 망상 ,심지어 정신병과도 같은 병리적 현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만난 체험자들은 그들과 유사한 경험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기도 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체험의 양태는 인종,지역,시대,성별을 막론하고 거의 유사성을 보인다. 온전한 평온함, 처음 듣는 이상하고 불편한 소리,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느낌, 몸과 영혼의 분리, 몸을 감싸는 의문의 하얀 빛... 내가 경험한 임사의 경우 소리와 어두운 미로를 통과하는 경험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그 동안의 영화나 책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학습화된 어떤 경험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삶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공간이 실재하기에 유사한 경험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증명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죽음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기에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nbsp;<br>에피쿠로스 학파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죽음 역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경험에 기인한다. '우리가 살아있을 땐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수 없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역설은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임사,사후 체험자들은 죽음을 경험했기에 그 죽음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대변되는 지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서, 영원한 소멸이 아닌 다른 존재로의 전이거나 더 높은 의식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 오히려 삶보다 평화로왔던 그 경험에서 남은 생의 의미를 다시 찾기도 한다.&nbsp;<br>그럼에도 여전히 죽음은 개별적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75/21/cover150/k8129311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1752146</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책속을 유영하다 </category><title>내 인생은 직불제인 것 같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76758</link><pubDate>Thu, 14 May 2026 19: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767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8064&TPaperId=172767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14/12/coveroff/s602038067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어릴 적 나는 인생을 선불제로 생각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죽어라 공부만 하며 현재를 ‘지불’하면 그만큼의 괜찮은 미래가 주어지는 줄 알았다. 밤을 새워 소설을 쓰고 몸을 축내면 그 대가로 편안한 미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내려올 때는 편하듯이, 고생과 노력은 초반에, 그 과실은 생의 후반에 따먹는 것이려니 했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후불제인 것 같다. 어린 날이 오히려 ‘공짜’였고 지금은 계산을 치르는 중이고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만 같다. -p156-<br><br><br><br><br><br>여행을 목적으로 처음 회사를 퇴직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계속 '왜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는지'에 대하여 지겹도록 질문을 받았다. 실질적인 이유는 사십을 넘기면 다시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이대로 삶이 굳어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대로 말해 버리면 뭔가 바보스러울 것 같아 스스로 '왜'에 대한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었다. 그때 변명처럼 떠오른 생각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살짝 비튼 '가치 보존의 법칙'과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 이라는 시였다. 질량처럼 가치 또한 형태를 달리할 뿐 세상 어딘가 온전하게 존재하리라는 믿음,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알려준 시인의 위로는 내 선택을 잘 포장해 주었었다. 인생은 후불제란 작가의 글을 읽다 내 인생은 직불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얻기 위해 버려야 함을 인정하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직불제가 아닐까 싶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14/12/cover150/s60203806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141292</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 중국 쑤저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63370</link><pubDate>Thu, 07 May 2026 2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63370</guid><description><![CDATA[<br>쑤저우苏州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오나라의 머릿글을 따 오군,오주,오현으로 불리다 고소산姑苏山의 소자를 따서 수나라 시절부터 쑤저우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쑤저우에서 택시를 타고 그 지역에 대하여 물어보면 거의 백 프로 나오는 첫 마디는 '上有天堂 下有苏杭 상요우텐탕 샤요우수항(위에는 천당,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이다. 쑤저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항저우杭州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을 나타내는 구절이다.&nbsp;오나라의 수도였던 쑤저우와 저장성의 행정 중심인 항저우, 역사적으로 두 도시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로서 지리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융성했고 정치적으로 강성했다. 오랜 세월 문화적 향유를 누려온 것과 같이 당대의 시인들 백거이白居易와 이백李白이 &lt;억강남&gt;과 &lt;오서곡&gt;으로 찬양하고 중국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소동파苏东坡가 사랑한 쑤저우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는 놀랍게도 비교적 무명인 당나라 시인 장계张继의 &lt;풍교야박枫桥夜泊&gt;이란 시이다.&nbsp;<br>月落乌啼霜满天 월락오제상만천(웨뤄우티쑤앙만텐) 달 지고 까마귀 울어 서리 가득한 하늘江枫渔火对愁眠 강풍어화대수면(쟝펑위훠뛰쵸우멘)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잠드네姑苏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구수청와이한산쓰) 고소성 밖 한산사夜半钟声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예빤쫑성따오커촨)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br>가장 유명한 시구는 3구와 4구인데 지명을 직접 언급한 3구와 뱃전에 다다른 한밤의 종소리로&nbsp;고향 떠난 나그네의 깊은 객창감을 건드는&nbsp;4구가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시가 유명해진 건 단순히 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수 백년에 걸쳐 당대의 내노라 하는 지식인들 사이에 시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풍교야박이 쑤저우를 중심으로 유명세를 떨치자 시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비판은 종소리에 대한 비판이다. 첫째, 산사의 종은 한 밤에 울리지 않으므로 시인이 한밤에 들었다는 종소리는 허구다. 둘째, 한산사는 풍교와 지척이라 한밤중에 종을 울리면 시끄러워 시와 같은 은은함을 느낄 수 없다. 셋째, 한산사에는 종이 없더라. 당대부터 이어진 비판은 송대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이즈 마케팅에 편승한 시는 어느덧 쑤저우를 대표하는 시가 되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 시를 음송하지 못하는 소주인이 없다고 한다. 시적 사실과 시적 허용의 문제는 예전부터 늘 시 언저리에서 시와 함께 생명을 이어가고 있구나 싶다.&nbsp;<br>&lt;요즘 중국에도 고전 양식의 옷을 입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서시의 후예다.&gt;<br><br>풍교야박의 논쟁을 직접 확인하러 풍교로 향했다. 시구 3구처럼 고소성에서 잠시 벗어난 한산사는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했으나 관광객은 중국 여느 곳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산사 정문을 빗겨 한 바퀴 도니 수향 마을답게 절 주위로도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다리 높이로 보아 한때 절 주변으로 꽤나 큰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풍교는 한산사 뒤쪽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풍교 주위로 단풍나무도 몇 그루 서 있고 다리 한 쪽으로 한산사의 모습도 보이니 시가 완전 허구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한산사의 종은 직접 보지 못했고 종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밤에 오지 못한다는 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장계 선생이 느낀 객창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nbsp;아쉬움을 뒤로 하고 풍교를 건너려니 바로 옆에 3D 체험관이 있다. 풍교야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에 배에 올라탄다.&nbsp;<br>&lt;장계 선생이 시를 읊은 자리는 저 반대편 선상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gt;<br><br>"뱃전에 앉으니 당나라 어느 수향 마을이 펼쳐진다. 바야흐로 봄이다. 동자와 꾸냥이 가져온 차를 한 잔 받아 마시니 배가 서서히 수로를 따라 움직인다.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봄이 수로 양 옆으로 가득하다. 겨울 빨래를 가져 나온 아낙들이 수다스럽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꾸냥이 슬며시 미소짓는다. 배를 타고 꽃을 파는 소녀에게서 수선화와 장미를 받아보고 음식을 파는 배 옆에서 만두를 받아 먹어본다. 봄을 지난 수로는 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웃통을 벗어 제낀 아이들이 수로로 뛰어들고 번잡한 시장에서는 흥정이 한창이다. 한 켠에는 수로 위로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위태롭다. "짜요 짜요" 응원 소리가 드높더니 갑자기 나타난 용선 3척이 앞다투어 질주한다. 그 물결에 두둥실 흔들리던 배는 갑자기 다리 위로 솟구친다. 아래로 한여름 축제가 한창인 고소성이 펼쳐진다. 밤의 불꽃 축제가 고소성 하늘을 뒤덮고 골목골목은 선남선녀의 흥청거림으로 번잡하다. 고소성을 한 바퀴 돈 나룻배가 다시 수로로 돌아오니 어느덧 늦가을, 문득 찾아온 쓸쓸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초승달이 지고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가을 밤 위로 흰 서리가 하늘 하늘 떨어지는데 붉은 단풍 위에 내려앉은 자태가 처연하다. 어디서 본 풍경이다 싶더니 바로 &lt;풍교야박&gt;의 구절이 아닌가. 뱃전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장계 선생이 홀로 술잔을 기울인다. 시중들던 동자가 나를 가르키며 "장계 선생, 이 분도 장안에서 피난온 사람입니다" 하니, 장계 선생은 더욱 깊은 우수에 젖어 긴 장탄식과 함께 술잔을 들고 일어선다. 뎅~뎅~ 한산사 종소리에 잠시 시름 겹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 들어 왼손에 든 술잔 속의 술을 찍어 올려 가을 밤 하늘에 일필휘지로 갈겨쓰며 시를 음송한다. 족자를 들고 나온 동자가 장계 선생에게 시 제목을 청하니 &lt;풍교야박&gt;이라 적는다. 동자의 손을 떠나 족자가 가을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다시 한번 가을 밤에 장계의 시를 적으며 음송을 권한다.&nbsp;뱃전 여기저기서 &lt;풍교야박&gt;이 흘러나온다. 최대한 당대의 목소리로 크게 음송한다.&nbsp;'웨뤄우티쑤앙만텐~~~~' " 고글을 벗고 내리니 뒤에 탄 서생들이 전부 유치원생이다. 음, 초로의 중년이 유치원생과 다투어 시를 음송하다니. 살짝 부끄러웠다. 쑤저우에서 &lt;풍교야박&gt;이 천 년 세월을 살아난 이유이리라.<br>&lt;AI로 풍교의 늦가을 정취를 표현해봤다.&gt;]]></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7/pimg_773910173511705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263370</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머리긁적이며 푸는 넋두리</category><title>무제</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34789</link><pubDate>Thu, 23 Apr 2026 2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34789</guid><description><![CDATA[놀란 얼굴의 여성분이 도서관으로 들어오며 도움을 요청했다. 3층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일요일 도서관에는 여자 직원만 있었으므로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3층으로 향했다. 상급자의 지시와 업무 매뉴얼을 확인하는 여직원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신 통화중이었다. 직원의 요청에 따라 난 남자를 제지할 목적으로 화장실 입구가 보이는 계단 근처에서 기다리며 상황을 주시중이었다. 처음에는 '에이 설마, 남녀 화장실을 헷갈려서 잘못 들어간 거겠지. 미친 놈이 아니고야'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죄송하지만 잘못 들어갔어요' 라고 말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하는 다소 난감한 상황도 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실수가 아닌 의도된 행동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십 여분의 시간이 지나고 통화를 마치고 오는 여직원에게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했고 그 순간 화장실 문이 열리며 건장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십 대 초반의 그는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위협적일 정도로 큰 키와 축구로 단련됐음을 한 눈에도 알만큼 다부진 체격이었다. 내가 제지할 틈도 없이 내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제가 호기심에 눈이 멀어 실수를 했습니다' 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실수 여부를 떠나 범죄인 건 아시죠?' 라고 하니 무릎을 꿇으며 어리석은 호기심에 한 실수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여직원이 매뉴얼에 따라 그의 신상명세와 연락처, 화장실에 의도적으로 침입한 상황에 대하여 녹취를 진행하였다. 신체 구속의 권한이 없음을 고지한 여직원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를 돌려보내고 도서관으로 다시 내려왔다. 도서관 한쪽 구석에 조마조마하게 앉아 있던 여성분이 상황을 물으며 다가왔다. 그때서야 그 여성분의 얼굴을 찬찬히 볼 수 있었는데 두려움과 공포가 눈동자에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당시의 상황을 듣고서야 그가 반년 가까이 스토커처럼 행동했고 오늘은 화장실까지 몰래 침입한 상황이었음을 알았다. 상황의 긴박함을 느끼고 여직원은 피해자 여성과 함께 경찰에 신고했다.<br>&lt;82년생 김지영&gt;이라는 소설을 읽은 것은 한국 출장 후 중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였다. 길지 않은 소설이라 비행 중 다 읽었는데 인상적인 글이었다. 특히 남성이 느끼는 별 것 아닌 일상과 생활이 여성에게는 공포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당시 중국은 인터넷 검열로 다음 등 일부 사이트가 막혀있었고 한국의 상황에 별 관심도 없던 시절이라 이 소설의 평가가 어떠한지는 몇 달이 흐른 다음번 입국때 쯤이었다. 의미 있는 공론의 장이 되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인터넷은 온통 남혐, 여혐, 군대, 출산 등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남녀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대와 출산 등의 문제는 한국에서 충분히 논의되어져야 할 사항이긴 하나 이 소설에서 어떻게 이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인터넷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동일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다수라는 상황은 더 혼란스러웠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입장의 동일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입장을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려면 타인에 대한 상상력, 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때서야 비로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 날 처음 사건을 단순히 실수이지 않을까 하고 받아들이는 감정 자체도 혼란한 상황에 대한 부정 방어 기제의 발현일 수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에서 오는 바가 더 큰 듯 했다.&nbsp; &nbsp;<br>얼마 후 도서관 복도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그 여성분이 가볍게 목례를 한다. 그 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같이 인사하며 바라보니 그 날 보이던 두려움과 공포는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때의 장면들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바래본다. 화장실로 들어간 남성은 경찰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모든 혐의에 대하여 자신의 어리석은 잘못임을 시인했다고 한다. 법적 처벌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법적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살아가길 바란다.]]></description></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시를 닮아가는 삶</category><title>엄마 걱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link><pubDate>Thu, 09 Apr 2026 2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guid><description><![CDATA[엄마 걱정<br>-기형도-<br>열무 삼십 단을 이고<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시장에 간 우리 엄마<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아주 먼 옛날<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시집을 읽다 보면 유독 겉도는 느낌의 시가 있다. '이 시가 과연 이 작가의 시가 맞나?' 싶은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청춘의 이별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우울한 어조로 노래한 시인 기형도의 시가 그러하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집이 된 &lt;입 속의 검은 잎&gt;의 마지막 시로 &lt;엄마 걱정&gt;이 실려 있다. 그가 짧은 생애지만 시인으로 활동한 중간 정도인 1985년에 쓰여진 시인데 시집의 마지막에 겉도는 듯한 느낌으로 실려 있다. 겉돈다 하여 완전히 다른 분위기는 아니다. 여전히 가난한 풍경이지만 백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고 해야 할까. 1989년 3월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생을 마감한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막처럼 올라가던 &lt;엄마 걱정&gt;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마지막 시에서 전해졌다.&nbsp; &nbsp;<br><br>&lt; AI로 생성해보았다. 한글을 이미지 처리하는 건 한계가 있나 보다. &gt;]]></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9/pimg_773910173508771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Shall We Dance - 중국 리탕</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link><pubDate>Thu, 02 Apr 2026 2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guid><description><![CDATA[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lt;인생&gt;을 보면 결혼식 날 평샤의 남편이 동료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주위를 둘러싼 동네 하객들에게 담배와 사탕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뿐 아니라 아직 전통 혼례 방식이 남아있는 여러 마을에서 예식이 거행되는 건물 앞에 작은 탁자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담배와 껌과 사탕을 쟁반이나 종이컵에 담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풍경을 종종 보곤 했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문을 나선 그 날 언덕 위 장족 전통 가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풍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던 그 집 앞에서 마침 담배가 똑 떨어졌다.&nbsp;리탕理塘은 중국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고도인 4200m의 장족 마을이다.&nbsp;담배 가게를 가려면 한참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와야 했다. 염치 불구하고 두 손 합장하며 "꽁시꽁시恭喜恭喜 (축하해요)"를 외치고 쟁반에 담긴 담배 몇 까치를 들고 나와 담배를 물고 다시 구경을 하고 있었다.<br>잠시 후 한 무리의 청년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탁자에 앉아 있던 노인과 몇 마디 주고 받은 후 나에게 험악한 얼굴로 성큼 성큼 다가왔다. "당신 중국인이냐?" "아니, 한국인이야" 중국어로 답변을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리탕은 티벳 독립 운동 기간 저항이 가장 심했던 도시이다. 티벳 승려의 분신이 빈번히 행하여진 곳이었고 승려중 리탕 출신이 가장 많았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한 지역이었다. 중국인과 외관상 구분이 쉽지 않은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하여 종종 실수로 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심 도로는 CCTV로 가득 했고 몇 십 미터마다 공안을 가득 태운 버스가 도로를 점유하고 있었다. 몇 마디 더 나눈 후 중국인이 아님을 확인한 청년들은 조금 전 굳게 경직된 얼굴이 언제냐 싶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풀었다. 결혼식에 참석할 것을 권하는 그들의 요청을 점잖게 거절하니 거의 끌다시피 하여 건물 이층으로 올라갔다.<br>&lt;잔치집 입구에는 사탕과 담배와 껌이 주로 올라간다&gt;<br>장족의 결혼식은 삼일간 계속 된다. 그날이 며칠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직 축하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듯 장족 음악과 웃음 소리가 가득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층은 대략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과 손님을 접대하는 대형 홀, 그리고 신랑 신부가 축하 손님을 맞이하는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부엌에는 신부측 어머님을 중심으로 동네 아낙들이 모여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전통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이 세월을 과시하듯 벽면에 도배되어 있었고 창을 통과한 한 줄기 햇살이 음식 연기와 먼지의 춤사위로 아늑했다. 천장에는 그을음으로 훈제된 라로우腊肉가 걸려 있었다. 손님 음식이 부족하면 큰 실례가 되기라도 하듯 음식은 층층이 쌓였다. 으레 부엌에서의 한담이 그렇듯 홀로 부엌을 방문한 이방인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데 동생을 먼저 시집 보내는 언니의 상대방으로 웃음소리와 함께 한참 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렸다.&nbsp;신랑 신부가 하객을 맞이하는 신방은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는데 폐백실과 비슷한 용도로 보였다. 외지인인 나에게는 직접 대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부정을 탄다는 미신적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다.&nbsp;대형 홀에는 기다란 탁자가 가로 세로 몇 줄로 자리 잡고 있었고 양탄자가 깔린 낮은 의자가 양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탁자에는 티벳 전통 음식이 가득했고 막걸리 창과 뚝바 같은 전통 술이 놓여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주전자에는 수유차가 끈적거리는 버터맛을 풍기며 흘러 넘쳤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1.5리터 코카콜라와 500미리 환타가 쌩뚱맞은 얼굴로 자리해 있었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일어나 테이블마다 돌며 축하 노래를 불러 제끼고 노래가 끝나면 다들 잔을 들고 축배를 들었다. 여인들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남성들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고산에서의 음주는 자살이야' 라고 다짐하고 수유차酥油茶를 마시며 최대한 술을 자제했으나 이미 거나하게 술에 취한 건장한 장족들의 강압에 한 잔 두 잔 잔술에 취하여 갔다.&nbsp;&nbsp;<br>&lt;보통 3일 동안 축제가 이어진다&gt;<br>건물 일층은 보통 사람이 거주하는 용도는 아닌 듯 했다. 공간의 구획이 명확하던 이층과 달리 일층은 건물을 지지하는 커다란 기둥 외에는 텅 빈 공간이었다. 다만 잔칫날 만큼은 동네 아낙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티벳 전통춤을 추고 있었다. 올라갈 때도 빙글 빙글 돌아가던 춤은 어둑어둑 어둠이 깔려 내려올 때까지 계속 되었다. 오전에 끌려 들어가 해가 뉘억뉘억 넘어갈 때 이층에서 내려왔는데 팔을 잡아 이끄는 장족 여인들에 이끌려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사위는 삶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춤이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듯 그들의 습관처럼 몸에 벤 자연스런 춤이었다. 움직임이 많고 동작이 커 우리 춤사위보다 훨씬 동적이었다. 장족 마을에서는 식사를 마친 저녁 나절 이미 어두워진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나온 여러 마을에서 이미 본 일상적 풍경이어서 금방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도 빙글, 머리도 빙글, 카메라도 빙글, 오직 빙글빙글만 존재하는 아주 편안하고 흥겨운 기분이었다. 한참을 빙글거리며 돌아가다 기억이 끊어졌다. 문득 기억나는 것은 흰 물감 묻은 붓을 휘둘러 별자리마저 취하여 빙글거리던 은하수와 노랫가락 흥얼거리며 고도 4200미터의 마을을 헉헉거리며 걸어 내려오던 기분 좋은 취기였다.<br><br>&lt;사진을 찍을 즈음에는 이미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사진도 다 흔들린다&gt;<br><br><br><br><br><br>&lt;무희만큼의 동작은 아니지만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장족 마을 광장에는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몰려와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춘다&g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2/pimg_773910173507955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책속을 유영하다 </category><title>언제부터 우리는 ‘햇빛’과 ‘햇볕’과 ‘햇살’을 구분하여 말하기 시작했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160316</link><pubDate>Thu, 19 Mar 2026 1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16031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79872X&TPaperId=171603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83/72/coveroff/899679872x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언제부터 우리는 ‘햇빛’과 ‘햇볕’과 ‘햇살’을 구분하여 말하기 시작했을까. 빛과 볕과 살로 변주되는 그 말들은 미세하지만 분명 다른 질감을 지닌 듯하다. ‘햇빛’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지닌다면 ‘햇볕’은 촉각을 환기하며 감각의 주체에게 보다 가까이 있고 ‘햇살’에 이르면 통각이라고 할, 보다 종합적인 어떤 몸섞임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햇빛이 아직 대상화된 거리 속에 있다면 햇살은 피부와 혀에 감기고 마침내 무언가 부드러운 살점을 나의 내부로 밀어 넣는 듯한 교합의 친밀감 속에 있다. 계절로 치자면 봄과 가을에 그것은 햇볕에 가깝고 여름의 그것은 햇빛에 가깝고 늦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초봄에 이르는 그것은 햇살에 가까운 듯하다. 봄가을에 촉각으로 먼저 느끼는 그것은 햇볕이라는 말이 지닌 적당한 따뜻함을 즐기게 한다. 여름날의 햇빛은 그 앞에 살갗을 봉헌하기가 쉽지 않은, 일단은 피해야 할 거리를 유지하기 십상이고, 쌀쌀하거나 몹시 시려운 겨울날을 지나면서 햇살을 그 살의 거처인 양지로 나를 불러들인다. 겨울에 나는 창가나 마당가로 햇살을 찾아다니고 햇살과의 통음을 즐긴다. 겨울 햇살은 내 속에 숨어있던 적극적인 소통의 열망을 드러내게 한다. -p118-<br><br>&lt;시와 사막의 햇빛&gt;<br>햇빛은 공간 속에서 빛난다. 시각에 공간이 더해져야 그 빛이 비로소 선명해지고 배가 된다. 고립무원의 공간만이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다. 바다나 사막 혹은 도시의 빌딩 위 피사체가 햇빛과 하늘과 대상으로 명확히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 조각 구름마저도 배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작열하듯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려와야 한다. 발 제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한 치도 허용되지 않는 그 곳만이 햇빛을 안을 수 있다.<br>&lt;옥수수 마르는 마당의 햇볕&gt;<br>햇볕은 시간의 궤와 축을 같이 한다. 눈이 녹기 시작한 골목길 흙 담벼락에 드리워져 하루 종일 시간의 궤적을 그리며 벽을 어루만진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햇볕의 모든 색감을 담는다. 흙의 모든 질감을 어루만지며 젖은 공간이 말라가듯 그렇게 서서히 스며들어 품어 든다. 은은하게 품고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nbsp;햇볕이 어루만진 자리는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아늑함을 품는다.&nbsp; &nbsp;<br>&lt;고향 창가의 햇살&gt;<br><br>햇살은 사물과의 실랑이 속에 살며시 드리워진다. 베란다에 걸린 빨래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기어코 방바닥 한 뼘의 공간에 누워 버린다. 누워서도 흔들린다. 때론 힘에 겨워 커튼에 슬며시 드리워져도 좋다. 그런 날은 바람에 실려와도 좋다. 흔들림&nbsp;만으로도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nbsp;눈꺼풀 위 한 뼘의 공간에 자리한 햇살의 어른거림은 때론 말라서 매미 날개처럼 바스락 거린다. 두 손 저어 보내기 전까지 햇살은 그렇게 실랑이 하다 문득 떠나간다.&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83/72/cover150/899679872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837242</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님아, 그 샴페인 따지를 마오 - 튀르키에(터키) 카파도키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146591</link><pubDate>Thu, 12 Mar 2026 2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146591</guid><description><![CDATA[카파도키아 괴레메 지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 마을 안 골목길은 멀찌감치 하나씩 가로등이 켜져 있어 겨우 길을 잡아 나갈 수 있었다. 대부분 숙소는 문을 닫았고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가로등과 함께 숙소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국적인 풍취와 보슬비가 옷을 적시는 을씬년스러운 분위기는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삐거덕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주인은 퇴근하고 한 여행자가 대신 수속을 해주었다. 늦은 밤 맥주 하나를 시켜 마시며 홀을 돌아보니 이국적인 가파도키아 풍경 사진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양한 색깔의 열기구가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열기구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찍은 사진은 참 멋졌는데 그 뷰포인트가 숙소 바로 뒤 언덕이었다. 게다가 여성은 어딘지 낯익다 싶더니 모델 박둘선이었다.&nbsp;<br>&lt;아침에 바라본 카파도키아는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에서 꾸는 꿈 같았다.&gt;<br>카파도키아를 떠나기 전날 열기구를 타게 되었다. 비용은 20만원부터 80만원에 이르기까지 그 편차가 다양했다. 물론 장기 배낭 여행자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30만원대 초저가 열기구를 신청하였다. 신청한다고 하여 다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변수는 날씨이다. 특히 바람이 센 날은 열기구 운행이 중지된다.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하늘을 온통 수 놓은 열기구의 향연은 하늘이 허락해야지만 가능한 것인데 의외로 그런 날씨는 많지 않다고 한다.&nbsp;그 날은 약간의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내가 타기로 한 열기구는 운행을 하기로 했는지 봉고차가 이른 새벽 문 앞에 도착했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우리 팀이 열기구 풍선을 채우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팀들의 열기구 풍선도 여기 저기서 하나 둘 한껏 바람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운 풍선이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일어서는 장면은 별 것 아님에도 묘한 긴장감과 흥분을 동반하고 있었다.&nbsp;내가 탄 열기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미명에 떠오른 하늘은 사람을 한껏 흥분시켰고 곧 마주하게 된 하늘에서의 일출은 높아진 눈 높이만큼 더 두근거렸다. 뒤를 이어 기지개를 켠 열기구들이 하나 둘 뒤를 이어 하늘로 떠올랐다. 장관이었다. 녹색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흰 돌산을 배경으로 열기구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nbsp;&lt;다행히 먼저 출발한 우리는 하늘에서 일출을 맞이했다&gt;<br>어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열기구는 수평 이동만을 하고 있다. 열기구의 바구니가 언덕 위의 나무가지를 스치는 순간 열기구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자신이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그에게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버너의 화력을 높여 상승을 시도하는데 열기구는 영 올라가지 않았다. 비명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 눈 앞에 돌산이 나타났다. 하늘 위 빈 공간에서는 크게 속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돌산을 향해 날아가는 열기구는 엄청 빠르게 느껴졌다. 쿵~ 급기야 돌산에 열기구가 부딪히더니 아래로부터 불어 닥친 상승기류에 끼기기~ 기괴한 소음을 내며 위로 빠른 속도로 솟구쳤다. 출렁하며 바구니가 돌산 봉우리를 넘어섰다. 상승 기류로 잠시 솟구치던 열기구는 또 다시 수평 이동만을 하고 있었고 조정사는 당황한 얼굴로 혼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고개를 들어 열기구 안을 바라보니 오~ 풍선 측면이 'ㄱ'자 형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돌산에 부닺혀 바람에 끌려 올라갈 때 찢어진 모양이었다. 당연히 바구니에 웅성웅성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걱정과는 달리 급격한 추락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찢어져 펄럭이는 모양새 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출력을 최대로 올려 추락을 최대한 늦추며 돌산이 집중된 곳을 벗어나 넓은 목초지가 나오자 불시착을 시도했다. 불시착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붙어 지면에는 꽤 충격을 받으며 떨어졌다. 추락은 그 이름만으로도 손에 땀이 배었다. 역시 추락하는 것들은 날개가 없었다.<br>&lt;내가 탄 열기구도 한때는 높이 날았던 적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 운행한 열기구가 많지 않았다.&gt;<br>천만다행으로 바구니가 쓰러지지 않은 이유인지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공기가 거의 빠져 옆으로 누워버린 풍선을 보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 두려웠냐는 듯 찢어진 풍선을 배경으로 '치즈'하며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니 공포는 극복하기만 하며 도파민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샴페인 못 따게 하세요" 돌아보니 조정사가 테이블을 설치하고 샴페인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이 달려들어 가벼운 항의와 함께 그의 손에서 샴페인 따개를 빼앗아 버렸다. 샴페인을 따는 것이 열기구 여행의 마지막 행사이며 그럴 경우 환불을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티격태격 실랑이가 벌어지고 조정사는 사무실과 연락을 취하더니 내일 다시 공짜로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난 오늘 여기를 떠날 것이므로 환불을 요구했고 관철되었다. 봉고차가 오는 동안 찢어진 풍선이 나부끼는 것을 보며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 속으로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열기구는 한 시간 코스인데 30분 탔으며 됐고,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지만 평생 상상도 못할 추락도 경험해봤다. 거기다, 아싸! 30만원 굳었다. 거봐, 공포는 지나가기만 하면 도파민 뿜뿜!! 이라고...&nbsp;&lt;님아, 그 샴페인 따지를 마오. 직업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분위기 파악 좀 하자!!&g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12/pimg_773910173505707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14659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