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마호가니 책상 (잉크냄새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제가 많이, 자주 행복하다면, 어쩌면 행복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아버려서겠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21 Apr 2026 03:01:58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잉크냄새</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3910173489430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잉크냄새</description></image><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시를 닮아가는 삶</category><title>엄마 걱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link><pubDate>Thu, 09 Apr 2026 2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guid><description><![CDATA[엄마 걱정<br>-기형도-<br>열무 삼십 단을 이고<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시장에 간 우리 엄마<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아주 먼 옛날<br style="box-sizing: border-box; color: rgb(33, 37, 41);">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시집을 읽다 보면 유독 겉도는 느낌의 시가 있다. '이 시가 과연 이 작가의 시가 맞나?' 싶은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청춘의 이별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우울한 어조로 노래한 시인 기형도의 시가 그러하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집이 된 &lt;입 속의 검은 잎&gt;의 마지막 시로 &lt;엄마 걱정&gt;이 실려 있다. 그가 짧은 생애지만 시인으로 활동한 중간 정도인 1985년에 쓰여진 시인데 시집의 마지막에 겉도는 듯한 느낌으로 실려 있다. 겉돈다 하여 완전히 다른 분위기는 아니다. 여전히 가난한 풍경이지만 백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고 해야 할까. 1989년 3월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생을 마감한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막처럼 올라가던 &lt;엄마 걱정&gt;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마지막 시에서 전해졌다.&nbsp; &nbsp;<br><br>&lt; AI로 생성해보았다. 한글을 이미지 처리하는 건 한계가 있나 보다. &gt;]]></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9/pimg_773910173508771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207013</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Shall We Dance - 중국 리탕</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link><pubDate>Thu, 02 Apr 2026 2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guid><description><![CDATA[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lt;인생&gt;을 보면 결혼식 날 평샤의 남편이 동료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주위를 둘러싼 동네 하객들에게 담배와 사탕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뿐 아니라 아직 전통 혼례 방식이 남아있는 여러 마을에서 예식이 거행되는 건물 앞에 작은 탁자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담배와 껌과 사탕을 쟁반이나 종이컵에 담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풍경을 종종 보곤 했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문을 나선 그 날 언덕 위 장족 전통 가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풍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던 그 집 앞에서 마침 담배가 똑 떨어졌다.&nbsp;리탕理塘은 중국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고도인 4200m의 장족 마을이다.&nbsp;담배 가게를 가려면 한참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와야 했다. 염치 불구하고 두 손 합장하며 "꽁시꽁시恭喜恭喜 (축하해요)"를 외치고 쟁반에 담긴 담배 몇 까치를 들고 나와 담배를 물고 다시 구경을 하고 있었다.<br>잠시 후 한 무리의 청년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탁자에 앉아 있던 노인과 몇 마디 주고 받은 후 나에게 험악한 얼굴로 성큼 성큼 다가왔다. "당신 중국인이냐?" "아니, 한국인이야" 중국어로 답변을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리탕은 티벳 독립 운동 기간 저항이 가장 심했던 도시이다. 티벳 승려의 분신이 빈번히 행하여진 곳이었고 승려중 리탕 출신이 가장 많았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한 지역이었다. 중국인과 외관상 구분이 쉽지 않은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하여 종종 실수로 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심 도로는 CCTV로 가득 했고 몇 십 미터마다 공안을 가득 태운 버스가 도로를 점유하고 있었다. 몇 마디 더 나눈 후 중국인이 아님을 확인한 청년들은 조금 전 굳게 경직된 얼굴이 언제냐 싶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풀었다. 결혼식에 참석할 것을 권하는 그들의 요청을 점잖게 거절하니 거의 끌다시피 하여 건물 이층으로 올라갔다.<br>&lt;잔치집 입구에는 사탕과 담배와 껌이 주로 올라간다&gt;<br>장족의 결혼식은 삼일간 계속 된다. 그날이 며칠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직 축하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듯 장족 음악과 웃음 소리가 가득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층은 대략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과 손님을 접대하는 대형 홀, 그리고 신랑 신부가 축하 손님을 맞이하는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부엌에는 신부측 어머님을 중심으로 동네 아낙들이 모여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전통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이 세월을 과시하듯 벽면에 도배되어 있었고 창을 통과한 한 줄기 햇살이 음식 연기와 먼지의 춤사위로 아늑했다. 천장에는 그을음으로 훈제된 라로우腊肉가 걸려 있었다. 손님 음식이 부족하면 큰 실례가 되기라도 하듯 음식은 층층이 쌓였다. 으레 부엌에서의 한담이 그렇듯 홀로 부엌을 방문한 이방인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는데 동생을 먼저 시집 보내는 언니의 상대방으로 웃음소리와 함께 한참 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렸다.&nbsp;신랑 신부가 하객을 맞이하는 신방은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는데 폐백실과 비슷한 용도로 보였다. 외지인인 나에게는 직접 대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부정을 탄다는 미신적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다.&nbsp;대형 홀에는 기다란 탁자가 가로 세로 몇 줄로 자리 잡고 있었고 양탄자가 깔린 낮은 의자가 양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탁자에는 티벳 전통 음식이 가득했고 막걸리 창과 뚝바 같은 전통 술이 놓여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주전자에는 수유차가 끈적거리는 버터맛을 풍기며 흘러 넘쳤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1.5리터 코카콜라와 500미리 환타가 쌩뚱맞은 얼굴로 자리해 있었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일어나 테이블마다 돌며 축하 노래를 불러 제끼고 노래가 끝나면 다들 잔을 들고 축배를 들었다. 여인들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남성들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고산에서의 음주는 자살이야' 라고 다짐하고 수유차酥油茶를 마시며 최대한 술을 자제했으나 이미 거나하게 술에 취한 건장한 장족들의 강압에 한 잔 두 잔 잔술에 취하여 갔다.&nbsp;&nbsp;<br>&lt;보통 3일 동안 축제가 이어진다&gt;<br>건물 일층은 보통 사람이 거주하는 용도는 아닌 듯 했다. 공간의 구획이 명확하던 이층과 달리 일층은 건물을 지지하는 커다란 기둥 외에는 텅 빈 공간이었다. 다만 잔칫날 만큼은 동네 아낙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며 티벳 전통춤을 추고 있었다. 올라갈 때도 빙글 빙글 돌아가던 춤은 어둑어둑 어둠이 깔려 내려올 때까지 계속 되었다. 오전에 끌려 들어가 해가 뉘억뉘억 넘어갈 때 이층에서 내려왔는데 팔을 잡아 이끄는 장족 여인들에 이끌려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사위는 삶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춤이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듯 그들의 습관처럼 몸에 벤 자연스런 춤이었다. 움직임이 많고 동작이 커 우리 춤사위보다 훨씬 동적이었다. 장족 마을에서는 식사를 마친 저녁 나절 이미 어두워진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나온 여러 마을에서 이미 본 일상적 풍경이어서 금방 춤사위에 합류했다. 춤도 빙글, 머리도 빙글, 카메라도 빙글, 오직 빙글빙글만 존재하는 아주 편안하고 흥겨운 기분이었다. 한참을 빙글거리며 돌아가다 기억이 끊어졌다. 문득 기억나는 것은 흰 물감 묻은 붓을 휘둘러 별자리마저 취하여 빙글거리던 은하수와 노랫가락 흥얼거리며 고도 4200미터의 마을을 헉헉거리며 걸어 내려오던 기분 좋은 취기였다.<br><br>&lt;사진을 찍을 즈음에는 이미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사진도 다 흔들린다&gt;<br><br><br><br><br><br>&lt;무희만큼의 동작은 아니지만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장족 마을 광장에는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몰려와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춘다&g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2/pimg_773910173507955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192908</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책속을 유영하다 </category><title>언제부터 우리는 ‘햇빛’과 ‘햇볕’과 ‘햇살’을 구분하여 말하기 시작했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160316</link><pubDate>Thu, 19 Mar 2026 1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16031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79872X&TPaperId=171603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83/72/coveroff/899679872x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언제부터 우리는 ‘햇빛’과 ‘햇볕’과 ‘햇살’을 구분하여 말하기 시작했을까. 빛과 볕과 살로 변주되는 그 말들은 미세하지만 분명 다른 질감을 지닌 듯하다. ‘햇빛’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지닌다면 ‘햇볕’은 촉각을 환기하며 감각의 주체에게 보다 가까이 있고 ‘햇살’에 이르면 통각이라고 할, 보다 종합적인 어떤 몸섞임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햇빛이 아직 대상화된 거리 속에 있다면 햇살은 피부와 혀에 감기고 마침내 무언가 부드러운 살점을 나의 내부로 밀어 넣는 듯한 교합의 친밀감 속에 있다. 계절로 치자면 봄과 가을에 그것은 햇볕에 가깝고 여름의 그것은 햇빛에 가깝고 늦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초봄에 이르는 그것은 햇살에 가까운 듯하다. 봄가을에 촉각으로 먼저 느끼는 그것은 햇볕이라는 말이 지닌 적당한 따뜻함을 즐기게 한다. 여름날의 햇빛은 그 앞에 살갗을 봉헌하기가 쉽지 않은, 일단은 피해야 할 거리를 유지하기 십상이고, 쌀쌀하거나 몹시 시려운 겨울날을 지나면서 햇살을 그 살의 거처인 양지로 나를 불러들인다. 겨울에 나는 창가나 마당가로 햇살을 찾아다니고 햇살과의 통음을 즐긴다. 겨울 햇살은 내 속에 숨어있던 적극적인 소통의 열망을 드러내게 한다. -p118-<br><br>&lt;시와 사막의 햇빛&gt;<br>햇빛은 공간 속에서 빛난다. 시각에 공간이 더해져야 그 빛이 비로소 선명해지고 배가 된다. 고립무원의 공간만이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다. 바다나 사막 혹은 도시의 빌딩 위 피사체가 햇빛과 하늘과 대상으로 명확히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 조각 구름마저도 배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작열하듯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려와야 한다. 발 제껴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한 치도 허용되지 않는 그 곳만이 햇빛을 안을 수 있다.<br>&lt;옥수수 마르는 마당의 햇볕&gt;<br>햇볕은 시간의 궤와 축을 같이 한다. 눈이 녹기 시작한 골목길 흙 담벼락에 드리워져 하루 종일 시간의 궤적을 그리며 벽을 어루만진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햇볕의 모든 색감을 담는다. 흙의 모든 질감을 어루만지며 젖은 공간이 말라가듯 그렇게 서서히 스며들어 품어 든다. 은은하게 품고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nbsp;햇볕이 어루만진 자리는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아늑함을 품는다.&nbsp; &nbsp;<br>&lt;고향 창가의 햇살&gt;<br><br>햇살은 사물과의 실랑이 속에 살며시 드리워진다. 베란다에 걸린 빨래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기어코 방바닥 한 뼘의 공간에 누워 버린다. 누워서도 흔들린다. 때론 힘에 겨워 커튼에 슬며시 드리워져도 좋다. 그런 날은 바람에 실려와도 좋다. 흔들림&nbsp;만으로도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nbsp;눈꺼풀 위 한 뼘의 공간에 자리한 햇살의 어른거림은 때론 말라서 매미 날개처럼 바스락 거린다. 두 손 저어 보내기 전까지 햇살은 그렇게 실랑이 하다 문득 떠나간다.&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83/72/cover150/899679872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837242</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님아, 그 샴페인 따지를 마오 - 튀르키에(터키) 카파도키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146591</link><pubDate>Thu, 12 Mar 2026 2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146591</guid><description><![CDATA[카파도키아 괴레메 지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 마을 안 골목길은 멀찌감치 하나씩 가로등이 켜져 있어 겨우 길을 잡아 나갈 수 있었다. 대부분 숙소는 문을 닫았고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가로등과 함께 숙소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국적인 풍취와 보슬비가 옷을 적시는 을씬년스러운 분위기는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삐거덕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주인은 퇴근하고 한 여행자가 대신 수속을 해주었다. 늦은 밤 맥주 하나를 시켜 마시며 홀을 돌아보니 이국적인 가파도키아 풍경 사진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양한 색깔의 열기구가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열기구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찍은 사진은 참 멋졌는데 그 뷰포인트가 숙소 바로 뒤 언덕이었다. 게다가 여성은 어딘지 낯익다 싶더니 모델 박둘선이었다.&nbsp;<br>&lt;아침에 바라본 카파도키아는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에서 꾸는 꿈 같았다.&gt;<br>카파도키아를 떠나기 전날 열기구를 타게 되었다. 비용은 20만원부터 80만원에 이르기까지 그 편차가 다양했다. 물론 장기 배낭 여행자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30만원대 초저가 열기구를 신청하였다. 신청한다고 하여 다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변수는 날씨이다. 특히 바람이 센 날은 열기구 운행이 중지된다.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하늘을 온통 수 놓은 열기구의 향연은 하늘이 허락해야지만 가능한 것인데 의외로 그런 날씨는 많지 않다고 한다.&nbsp;그 날은 약간의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내가 타기로 한 열기구는 운행을 하기로 했는지 봉고차가 이른 새벽 문 앞에 도착했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우리 팀이 열기구 풍선을 채우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팀들의 열기구 풍선도 여기 저기서 하나 둘 한껏 바람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운 풍선이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일어서는 장면은 별 것 아님에도 묘한 긴장감과 흥분을 동반하고 있었다.&nbsp;내가 탄 열기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미명에 떠오른 하늘은 사람을 한껏 흥분시켰고 곧 마주하게 된 하늘에서의 일출은 높아진 눈 높이만큼 더 두근거렸다. 뒤를 이어 기지개를 켠 열기구들이 하나 둘 뒤를 이어 하늘로 떠올랐다. 장관이었다. 녹색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흰 돌산을 배경으로 열기구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nbsp;&lt;다행히 먼저 출발한 우리는 하늘에서 일출을 맞이했다&gt;<br>어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열기구는 수평 이동만을 하고 있다. 열기구의 바구니가 언덕 위의 나무가지를 스치는 순간 열기구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자신이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그에게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버너의 화력을 높여 상승을 시도하는데 열기구는 영 올라가지 않았다. 비명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 순간 눈 앞에 돌산이 나타났다. 하늘 위 빈 공간에서는 크게 속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돌산을 향해 날아가는 열기구는 엄청 빠르게 느껴졌다. 쿵~ 급기야 돌산에 열기구가 부딪히더니 아래로부터 불어 닥친 상승기류에 끼기기~ 기괴한 소음을 내며 위로 빠른 속도로 솟구쳤다. 출렁하며 바구니가 돌산 봉우리를 넘어섰다. 상승 기류로 잠시 솟구치던 열기구는 또 다시 수평 이동만을 하고 있었고 조정사는 당황한 얼굴로 혼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고개를 들어 열기구 안을 바라보니 오~ 풍선 측면이 'ㄱ'자 형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돌산에 부닺혀 바람에 끌려 올라갈 때 찢어진 모양이었다. 당연히 바구니에 웅성웅성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걱정과는 달리 급격한 추락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찢어져 펄럭이는 모양새 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출력을 최대로 올려 추락을 최대한 늦추며 돌산이 집중된 곳을 벗어나 넓은 목초지가 나오자 불시착을 시도했다. 불시착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붙어 지면에는 꽤 충격을 받으며 떨어졌다. 추락은 그 이름만으로도 손에 땀이 배었다. 역시 추락하는 것들은 날개가 없었다.<br>&lt;내가 탄 열기구도 한때는 높이 날았던 적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 운행한 열기구가 많지 않았다.&gt;<br>천만다행으로 바구니가 쓰러지지 않은 이유인지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공기가 거의 빠져 옆으로 누워버린 풍선을 보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 두려웠냐는 듯 찢어진 풍선을 배경으로 '치즈'하며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니 공포는 극복하기만 하며 도파민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샴페인 못 따게 하세요" 돌아보니 조정사가 테이블을 설치하고 샴페인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이 달려들어 가벼운 항의와 함께 그의 손에서 샴페인 따개를 빼앗아 버렸다. 샴페인을 따는 것이 열기구 여행의 마지막 행사이며 그럴 경우 환불을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티격태격 실랑이가 벌어지고 조정사는 사무실과 연락을 취하더니 내일 다시 공짜로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난 오늘 여기를 떠날 것이므로 환불을 요구했고 관철되었다. 봉고차가 오는 동안 찢어진 풍선이 나부끼는 것을 보며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 속으로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열기구는 한 시간 코스인데 30분 탔으며 됐고,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지만 평생 상상도 못할 추락도 경험해봤다. 거기다, 아싸! 30만원 굳었다. 거봐, 공포는 지나가기만 하면 도파민 뿜뿜!! 이라고...&nbsp;&lt;님아, 그 샴페인 따지를 마오. 직업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분위기 파악 좀 하자!!&g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12/pimg_773910173505707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146591</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머리긁적이며 푸는 넋두리</category><title>낮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115973</link><pubDate>Thu, 26 Feb 2026 19: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115973</guid><description><![CDATA[오랫만에 들른 오래된 시장 한켠에 위치한 국밥집은 여전히 문이 닫혀 있었다. 한달 전 들렀을 때도 닫힌 출입문에 붙은 A4 용지에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나 싶어 전화해보니 손자가 받았다. 얼마전 국밥집 옆 계단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중이시라는 말에 얼른 나으시라는 인사를 전한 기억이 났다. 옆집에 들어가 국밥을 시켜 놓고 주인장께 옆집 할머니 안부를 물으니 며칠 전 돌아가셨고 이미 장례도 마친 상태라고 했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국밥을 앞에 놓고 앉아 있으니 문득 가슴 한켠이 조금 아렸다. 국물이 넘어가도 아린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식사중 반주를 하지 않는데 오늘은 왠지 그래야만 했다. 한 잔을 비우고 다시 채운 잔은 향을 대신해 탁자 맞은 편에 올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좋은 곳 가시라고.<br>국밥집에 처음 들른 것은 반 년 정도 전이었다. 낡은 재래 시장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문득 고등학교때 이 곳 어디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먹은 기억이 나서 무작정 건물로 들어선 길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아도 그 장소를 찾을 수는 없었고 마침 출출하던 차라 낡은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탁자와 벽지와 식기에서는 손때 묻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고 시장 바깥쪽 유리문을 통과한 햇살이 세월 위에 반사되어 식당 전체가 푸근했다. 고기를 많이 넣어줄까? 라는 말과 함께 나온 국밥은 지금까지 먹어본 국밥중 고기가 가장 많아서 그릇 밖으로 자꾸 넘치려고 했다. 젊은 사람이 밥 한그릇으로 되겠냐며 자꾸 더 가져다 먹을 것을 권하셨다.&nbsp;고기가 너무 많아 계산 별도로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다소 치졸한 의심을 하였는데 젊은 사람 일하려면 많이 먹어야 해서 고기 많이 넣었다는 답변에 스스로 미안해졌다. 그 미안함에 이 곳 근처를 지날때마다 국밥을 먹었다.&nbsp;밥 먹는 동안 할머니는 보통&nbsp;옆 자리에 앉아 손자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식당 한 구석 칸막이로 별도 구분한 좁은 공간에서 아버지를 일찍 잃은 두 손자와 함께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을 살아왔노라고, 그래도 주눅들지 않게 키워보려고 열심히 살았노라고, 지금은 두 손자 모두 공무원이 되었고 첫째는 얼마전 손자 며느리도 데리고 왔노라고 말을 이어갔다. 기억력이 좋지 않으신지 매번 처음 본 손님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nbsp;틀니를 끼지 않으셨는지 오므라진 입술 위에 쪼글쪼글 맺혀진 주름이 인절미 드시던 외할머니 입술 같기도 했고 이 하나 남지 않은 웃음 띈 붉은 잇몸이 아이의 해맑음을 떠올리게도 했다.&nbsp;국밥을 앞에 두고 매번 할머니의 똑같은 삶의 말들을 들어야했는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온 힘을 다해 말한다는 것,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 삶을 대여섯번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뱉어내어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나 가끔 살아날 누군가의 삶이 되어 버렸다.<br>뜻하지 않게 소주 한 병을 다 마셔버리고 나온 어두운 복도, 햇살이 닫힌 출입문 너머 오래되어 윤기가 흐르는 탁자에서 빛나고 있었다. 몽환적인 햇살 사이로 피어오르던 먼지의 어른거림이 누군가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련함이 낮술 때문인지, 어떤 기억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시는 마주칠 수 없는 기분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반주는 싫어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가끔은 홀로 낮술을 마실 일들이 종종 생기는 일을 막을 방법은 없을 듯 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26/pimg_773910173504300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115973</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대항해의 추억 속으로 - 이집트 알렉산드리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073613</link><pubDate>Thu, 05 Feb 2026 18: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073613</guid><description><![CDATA["이슬람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모든 이교도에 대하여 출입을 불허했다. 아테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다 에게해로 나와 크레타 섬을 지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그 곳에는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도서관이 있었다. 이교도인 난 밤이 되길 기다려 몰래 잠입하거나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한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저녁이 찾아 들면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지중해의 붉은 손길이 넘실거렸다 . 붉은 유혹에 책을 덮고 나와 지중해가 바로 바라 보이는 바위에 앉아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 잉글랜드 삼등훈작사 조르바 -<br>일행과 시와 사막에서 헤어졌다.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아부심벨로 떠나는 일행과 헤어져 사막에서 며칠을 더 머문 후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일반적인 여행 코스인 아부심벨을 뒤로 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이유는 그 곳에 기원전 3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건립된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가 작성되고 보관되어 '지성의 햇불'이라 불리는 이 도서관은 오랜 세월 화재와 침략 등으로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유니세프의 지원 아래 재건되었다.&nbsp;이런 역사적 의미와 별개로 이 도시가 내 흥미를 끈 것은 30대 초반 한참 열중하던 온라인 게임 &lt;대항해 시대&gt;의 추억 때문이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온라인 게임에서 잉글랜드 출신 고고학자인 내 케릭터가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애용한 루트 중 하나가 아테네-알렉산드리아 구간이었다. 머릿글에 기록한 내용이 그 당시의 게임 장면이다. 실제 키보드로 화면을 돌려 바라보던 지중해의 풍경은 묘한 동경을 자아냈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게임 속에서 응시하던 지중해의 붉은 석양에 직접 휩싸이게 된 것이다.&nbsp;&nbsp;&nbsp;&lt;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맨 왼쪽에 '월'이 새겨져 있다. '워~얼' 하고 테이프 늘어지는 모양새다.&gt;<br>도서관은 트램이 통과하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길을 배경으로 주변 풍경과는 이질적인 깨끗하고 현대적인 하얀색 건물이었다. 활처럼 약간 휘어진 직사각형의 전면부 넓은 벽면에는 지구상 존재하는 많은 언어가 조각 되어 있었다. 익숙한 몇몇 언어를 제외하면 상형문자라 해도 무방할만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한글도 포함되어 있는데 여섯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가 찾은 건'월','세','름'&nbsp;세 자 뿐이다. 초,중,종성의 조합이라는 이론에만 충실했는지 초,중,종간 간격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왠지 소리 내어 읽으면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가 날 듯 했다. 자음 크기 하나가 알파벳 크기만 하니 한글 한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이 유독 커 보였다.&nbsp;누군가는 그 곳에 새겨진 글자 수로 각 언어의 우월함을 자랑하고자 하는데 재건 관련 유니세프에 기부한 기부금 액수에 비례하는 바가 크다고 하니 문화마저 우열과 차별에 이용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책과 도서관이야말로 그런 편견과 차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이지 않을까.&nbsp;도서관다운 아이디어가 돋보인 건축물이었다.<br>&lt; 도서관 이용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착용했고 챠도르 이상의 복장은 보기 힘들었다.&gt;<br>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면서 가장 관심있게 바라본 것 중 하나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였다.도서관은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장소라 여겨져 특히 눈여겨 지켜보았다. 히잡을 두른 학생들이 모여서 책을 검색하고 열람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왠지 이질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다. 이슬람의 전통 의복은 그 개방성 순으로 나열하자면 히잡-챠도르-니깝-부르카의 순이라 할 수 있는데 히잡이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도서관에도 히잡을 착용한 여성이 가장 많았으며 니깝 이상의 복장을 한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문화가 행동을 규제한다고 한다. 근데 문화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관찰자마저 규제한다. 묘하게도 니깝이나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볼 때마다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는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스스로 규제하게 만드는 자기 검열에 빠지곤 했다.&nbsp;반나절 정도 도서관에 머물렀다.&nbsp;주로 문학과 인문학 관련 서가를 돌아다녔는데 문학 관련 한글 서적은 한 권도 찾지 못했고 인문학 쪽에만 세 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nbsp;<br>&lt;아마 지금은 한강의 소설들이 많이 자리했을 것이다.&gt;<br>숙소로 돌아오는 바닷길은 석양이 지중해를 서서히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시 한 끝을 물들이기 시작한 노을이 굽이 도는 해안길을 돌아 숙소 앞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몰래 내 뒤를 밟아 이 곳까지 침범해 있었다. 오래된 성벽처럼 자리한 방파제 한 끝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nbsp;잠시 후면 하늘과 바다 전체가 붉어질 것이었다.&nbsp;순간 검은 실루엣이 나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석양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석양 속으로 낚싯대를 던지는 노인의 뒷모습이 노을 속에 박제 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풍경이 되어 버린 듯했다. 대항해 시대의 어느 촌부와도 같았다. 구태여 이슬람 복장으로 변장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백년 만에 도래한 것에 감격하다 웃음이 나왔다.&nbsp;대항해시대 내가 타고 온 갤리선이 보이는 듯 했다. 노를 저어&nbsp;다시 아테네로 가야 하나!!!&nbsp;&lt;가끔 풍경이 되는 피사체가 있다&g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05/pimg_773910173502028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073613</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긴 호흡</category><title>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055614</link><pubDate>Thu, 29 Jan 2026 1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0556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1201&TPaperId=170556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13/coveroff/89364712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1201&TPaperId=170556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a><br/>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br/></td></tr></table><br/>쁘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절멸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는 작가가 되었다. 기억해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 여기고 사회가 망각해가는 것을 경계한 그가 1987년 어느 날 자살을 했다. 그리고 10년 후 재일 조선인 2세인 저자는 토리노로 향했다. 쁘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 그의 사상, 증언하고자 했던 시대와 좌절의 시간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디아스포라인 레비의 삶은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 저자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br>스페인 레콩키스타 시기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했고 유대인이란 그저 사라져가는 습관이나 문화에 불과했다. 2차 대전 초기에도 다른 유럽 지역과 달리 유대계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유대인이라는 것은 그저 주근깨가 있고 없고 정도로 생각할 만큼 의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러나 인종법 반포 후 교수와 학우들이 대부분 그에게서 멀어져 감을 느꼈을 때 그는 공동체라는 삶 속에서 자신이 점점 불순물처럼 분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찌와 인종법은 그렇게 유대인과 인종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br>'인간'이라는 보편성 앞에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주근깨'가 있고 없는 정도의 차이라고 믿고 있었다. - &lt;주기율표&gt; p379 -&nbsp;<br>아우슈비치는 그에게서 이름을 박탈했다. 이름의 박탈은 인간이 아닌 사물로의 전환이었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그런 지옥에서 그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체험하고 이겨낸 일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남아 야만의 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의지였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그가 인간으로 살아온 문명의 형식을 전부는 아니라도, 잔해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단테의 &lt;신곡&gt;을 외우고, 동료가 된 프랑스인에게서 프랑스어를 배우며 문명의 틀을 유지했다. 그렇게 그는 살아남았다.&nbsp;<br>우리는 노예로서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박해를 받으며 분명 죽음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따라서 전력을 다해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후에 남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의를 거부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물론 비누가 없고 물이 더럽더라도 세수를 하고 겉옷으로 닦아야만 한다. -p152-<br>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그는 증언을 위한 삶을 살아갔다.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장 아메리'의 비극적인 자살에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뮐러'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레비가 어느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고 연락한 그는&nbsp;화학자인 레비가 그의 전공으로 말미암아 수용소에서 만난 독일인이었다.&nbsp;(문득 &lt;인생은 아름다워&gt; 라는 영화의 레싱 박사가 떠올랐다. 귀도의 절박함이 그에게는 그저 수수께끼에 불과했으니까.) '뮐러'는&nbsp;나찌와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고,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독일인의 집단적 책임이 아닌 나찌라는 개인들의 일탈로 치부하고, 이제 원한이 아닌 공생을 말할 것을 부드럽게 종용하며 관용을 이야기했다. 참혹한 진실은 세월 앞에 무뎌져 갔다. 피해자가 오히려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과 싸워야 했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br>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안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귀,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p221-<br>1987년 그는 자살했다. 유서가 없음으로 그 죽음의 의미는 유추될 수 밖에 없다. '장 아메리'처럼 과거의 추악한 기억에 무너진 것인지, '뮐러'로 대변되는 무지와 무관심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무장한 가해자에 대한 절망인지,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스라엘 시오니즘 유대인에게서 또 다른 나찌의 잔영을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증인으로써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본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nbsp;그는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잔혹했던 야만의 시대를 생존으로 증언했다면 망언과 비양심으로 잊혀지는 망각의 시대를 죽음으로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br>Let our fate be a warning for you (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p285- 어느 수용소 인골이 쌓인 영묘의 표지판에서...<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13/cover150/89364712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1311</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시를 닮아가는 삶</category><title>그런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038598</link><pubDate>Thu, 22 Jan 2026 19: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038598</guid><description><![CDATA[그런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br>-김경미-<br>남자의 오토바이가좁은 골목길앞서가는 폐지 리어카 노인한테<br>너무 작고 말라서잘 보이지도 않던 노인한테<br>미친 듯이 경적을 누르며욕을 해 대는 남자를사귄 적이 있었다<br>그 오토바이 뒤에 앉아서남자의 허리를 껴안고이 사랑이 영원하게 해 주세요빌기나 했던<br>빌어먹을 시절이 있었다빌어먹을!<br>삶은 과거 기억에 시간과 감정을 양념처럼 추가하여 버무린다. 아무리 초라한 삶이라도 아름답게 기억되어야 하기에 과거는 장밋빛으로 버무려지기 마련인데 시인은 그 과거에 가운데 손가락을, 뻑을 날린다. 젊다는 건 아무리 빌어먹을 시절이든, 빌어먹을 놈팽이든 자꾸만 그 앞에 사랑을 먼저 놓으려 하기에 사랑만이 보인다.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 그게 청춘이 아닐까. 광석이 형이 부릅니다. "너무 빌어먹을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nbsp; 빌어먹을!<br><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