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마호가니 책상 (잉크냄새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제가 많이, 자주 행복하다면, 어쩌면 행복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아버려서겠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7 Oct 2026 10:43:19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잉크냄새</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3910173489430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잉크냄새</description></image><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그때도 사과는 드렸지만... 이제서야 다시 사과 드려요 - 인도 오르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557821</link><pubDate>Tue, 06 Oct 2026 2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557821</guid><description><![CDATA[&lt;오르챠는 일몰이 아름다운 마을이다&gt;<br>쟌시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는 늦은 밤 11시 경이었다. 며칠 머물던 오르챠에서 쟌시로 떠난 것은 해가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8시경 이었다. 당시 오르챠는 인도에서 꽤나 오지로 통하던 곳이었고 몇 대 되지 않는 택시는 이미 역으로 떠난 후였다. 오르챠에서 일행이 된 대학생 커플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머물게 되었고 마칠 즈음에는 이미 한 대의 택시도 남아 있지 않았다. 꽤나 난감한 시간을 보내고 식당 주인과 숙소 주인까지 발벗고 나서고서야 젊은 청년이 끄는 지붕이 없는 오토릭샤 한 대를 대절할 수 있었다. 18킬로 정도의 산길로 대략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작은 동네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니 검은 도화지를 하얀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거친 붓으로 몇 번 휙~휙~ 훒어 버린 듯 하늘은 온통 별들의 향연이었고 계곡 사이의 하늘은 붓의 뒷길을 쫓아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릭샤 청년이 샛길로 빠져 들어갔다. 친구를 같이 태워가고 싶다길래 흔쾌히 허락하고 다시 콧노래에 빠져들었다. 친구를 태운 릭샤는 다시 길을 에돌아 나와 산길을 달려갔다.<br>삼십 분 내내 불빛 하나 없는 길을 오직 오토릭샤의 불빛에 의지해 달렸다. 근데 어느 순간 앞자리에 동승한 릭샤 청년과 그의 친구가 자꾸 속닥거리며 어깨 너머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 동작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몇 차례에 걸쳐 계속되었고 마음 속에 의심의 덩어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는 남미와 더불어 최악의 여행 난코스로 여겨졌다. 남자는 강도를 당했고 여자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도 여행 코스의 특성상 그런 소문들이 삽시간에 퍼졌는데 델리에서 택시 강도를 당한 동양인 여행자와 인도 중부 고어에서 강간 살해된 북유럽 여행자의 소문이 돌고 있던 시기였다. 곧 의심은 눈덩이처럼 커져 확신으로 바뀌었고 다음 소문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온 몸을 감쌌다. 인도인치고 건장한 체격의 두 청년이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사건에 대비해 배낭 속에 몇 단위로 분할해 소지하던 돈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별다른 상해 없이 최소한의 돈만 지불하고 이 사태가 끝나기를 바라며 몸을 뒤척이던 순간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 묵직한 물건이 느껴졌다.&nbsp;&nbsp;<br>&lt;매일 일몰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니게 된다&gt;<br><br>그건 일명 맥가이버칼로 불리던 스위스 군용 나이프였다. 칼을 발견한 순간 한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의 추가 균형을 맞추려는 듯 급격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모험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 칼날을 펴 꺼내 들었다. 평소 과일이나 깍던 둔탁해 보이던 십 센티 길이의 칼날은 그날 따라 살의라도 품은 듯 하얗게 빛났다. 물론 나의 의도는 상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칼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하여 그 맘을 포기하기를 바란 것이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칼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최선인데 왠지 그들도 돌아보지 않았다. 칼의 존재를 모르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식으로 칼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괜히 먼저 들이밀어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오르챠를 떠나올 때 대학생 커플이 건네준 사과 봉지가 생각났다. 배낭 옆에 들어있던 사과를 꺼내 깍았다. 그리고 잘라낸 사과를 칼과 함께 움켜 쥐고 두 청년의 어깨 사이로 들이밀었다. "eat ." 사과가 얹어진 칼을 본 것일까. 움찔 하는 그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행히 의도대로 칼의 존재는 알린 듯 했다. 쟌시역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나머지 사과 서너 개를 시간에 맞춰 깍았고 그들에 넘기고 나도 먹었다. 긴장감에 줄창 피워대던 담배 필터에 바짝 마른 입술이 달라붙어 떨어져 나왔고 필터에 찝찌름한 피가 묻어 나왔다. 문득 나의 모습이 아귀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nbsp;<br>마지막 사과가 건네지고 얼마 뒤 드디어 역의 불빛이 보였다. 릭샤가 정지하기 전 뛰어내려 길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릭샤 청년 둘도 릭샤에서 내려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무니 입술에서 또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안도감에 기이한 웃음이 터졌다. 한참 허리를 구부려 웃음을 뱉어 내었다. 담배를 다 피울 동안 두 청년은 말없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왜 떠나지 않지? 한참을 서로 응시하다 담배꽁초를 버리고서야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줄까 말까. 괘씸하기는 했지만 놀란 눈으로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다 심호흡을 하고 길을 건너 두 청년 앞에 섰다. 그리고 백 루피를 꺼내 건넸다. "one fifty, two hundred" 안도감에 따블을 건넨 것이다. 바라나시 역으로 걸어가는 내내 심장은 여전히 두근 반 세근 반 두근거렸다.&nbsp;<br>난 이 사건을 재치로 위험을 넘긴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고 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법정 스님의 &lt;인도 기행&gt;에서 다음 구절을 보고 말았다.<br>"인도에서는 시외에 나갈 때는 택시나 릭샤를 가릴 것 없이 운전석에 반드시 조수를 한 사람 태우고 둘이서 다닌다. 어쩌면 승객이 도둑으로 돌변할지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도 기행 p89-<br>그러니까 말이죠, 사건을 릭샤 청년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보면,&lt;숙소 아저씨의 호출이 온 것은 어둠이 내린 저녁이었다. 몇 번을 거절했으나 반협박성 요구에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윗 동네에 사는 크리슈나가 같이 가주겠다기에 돌아오는 길에 여행자라도 태워 돌아올 요량으로 승낙했다. 탑승한 여행자는 한국인으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국인을 처음 보는 크리슈나도 그 모습이 재밌는지 연신 뒤돌아보며 웃었다. 오랫만에 만난 우리도 이런 저런 이야기로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니 콧노래가 그쳤다. 그리고 뭔가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뒤를 돌아본 크리슈나가 놀란 얼굴로 칼에 대해 들릴 듯 말 듯 이야기했다. 칼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행객이 뭐가 아쉬워서 강도짓을 한단 말인가. 순간 우리 둘의 어깨 사이로 사과가 들이 밀어졌다. 사과 밑에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칼날이 함께 놓여 있었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수시로 사과와 칼날이 우리 둘의 사이를 파고 들었다. 돌아보니 입술에는 피가 붉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귀같았다. 드디어 역에 도착하니 건너 편으로 냅다 튀었다. 그리고 한참을 서서 웃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돈을 따블로 주고 헐레벌떡 멀어져 갔다. 저건 미친 놈이 틀림없다. fucking korean!&gt;<br>&lt;저들의 삶은 이해의 범주를 뛰어넘는다&gt;<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6/pimg_63926915289362323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557821</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책속을 유영하다 </category><title>존댓말과 반말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522422</link><pubDate>Thu, 17 Sep 2026 20: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52242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8646&TPaperId=175224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02/11/coveroff/895469864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한국어 사용자들은 문장 하나를 말할 때마다 그렇게 상대와 자신의 지위를 확인한다. 너는 나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나는 너에게 존댓말밖에 쓰지 못할 때 나는 금방 무력해진다. 순종적인 자세가 되고 만다. 그런 때 존댓말은 어떤 내용을 제대로 실어나르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도전적인 아이디어들이 그렇게 한 사람의 머리 안에 갇혀 사라진다. 나의 자존을 지키지 못하는 언어, 틀렸다고 꾸중 듣기 좋은 말을 자주 쓰고 싶을 리 없다. 단기적인 대책은 상사, 선생님, 윗세대와 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장기적인 대책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다. 한국의 세대 구분이 그렇게 촘촘하고 계층 간 단절이 심한 것, 이 사회가 그토록 출세 지향적인 것은 언어 탓이 꽤 크다고 생각한다. ‘존댓말 쓰고 반말 듣는 상황’을 다들 피하고 싶지 않나. 오래도록 그런 처지에 내몰려 억울함이 쌓이고 묵으면 한이라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p282-<br>처음 중국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 중 하나가 중국 직원들의 억양과 말투였다. 직원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쓰는 언어는 동등했다. 그들 사이의 언어와 나에 대한 언어가 다르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그들과 나 사이의 나이와 직책과 서열을 언어와 관련 짓고 있었다. 동등한 언어의 사용, 그들 사이의 말이 나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때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데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해외 고객의 공정 감사에 대응할 일이 많았다. 영어와 중국어권 고객과의 협상 자리의 언어는 평이하고 동등했다. 대화에 높낮이가 없었고 조심스런 격식만이 느껴졌다. 반면 (일본어는 잘 모르지만 분위기상) 일본과 한국 고객과의 언어는 나를 얼마나 낮추고 있는지, 그리하여 당신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는 보여주려는 무의식적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사용할 때 나의 언어 습관은 무척 달랐고 행동의 양태도 달랐다. 스스로 느낄 뿐 아니라 제삼자도 흥미롭고 의아하게 지켜보던 모습이었다. 한국어가 훌륭한 언어인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nbsp;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존댓말이 갑질의 언어로 변질될 때 존대는 굴종을 요구한다. 훌륭한 한글이 존댓말로 대표되는 동방예의지국의 언어가 아니라 반말이 사라진 평등한 나라의 언어이기를 원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02/11/cover150/89546986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021193</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긴 호흡</category><title>이제 저주에서 깨어날 때입니다 -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507995</link><pubDate>Thu, 10 Sep 2026 2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50799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7531&TPaperId=1750799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34/57/coveroff/89012975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7531&TPaperId=1750799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a><br/>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br/></td></tr></table><br/>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기후학자인 저자는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책의 첫 장을 시작한다. 트로이의 공주인 카산드라는 어릴 적 우연한 사고로 예지력을 얻었으나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 댓가로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린다. 트로이는 목마로 인해 멸망할 것이니 성으로 들이지 말고 태워버릴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예언자이다. 저자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지구와 기후학자인 자신의 입장을 결국 멸망해버린 트로이와 예언자 카산드라에게 감정 이입하며 그 고단한 심정을 풀어가고자 한다.<br>기후 위기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이미 익숙해서 무감각해진 단어가 되어 가고 있다. 정치적 입장과 경제적 제약 등의 문제로 공동의 목표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저자는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외피를 빌려 기후 위기의 지구를 이야기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경이로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위기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이권 단체들에 대한 분노, 기후 위기의 진범인 인간으로서의 죄책감, 기후 위기가 몰고 올 자연 재해와 그로 인해 인간 사이에 저질러질 죄악에 대한 두려움, 인간으로 인해 사라질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도, 오존층의 보호 등 지금껏 인간이 이루어낸 작은 성공으로 말미암은 실날같은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 등 아홉 가지의 감정으로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nbsp;<br>다시 카산드라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신화 속 카산드라의 저주는 구혼을 거절당한 찌질남 아폴론에 의하여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 속 카산드라의 저주는 누구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있을까. 현재 기후 위기의 대책으로 거론되는 플랜A는 기온의 상승을 초래하는 온실가스의 배출을 중단하는 것이고 플랜B는 지구 공학적 방법으로 지구가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플랜A는 무조건 가야 할 길이고 플랜B는 인간 오만함의 극치라고 평가한다. 플랜B에 해당하는 공학적 방법으로는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복사열을 조절하는 방안과 탄소 순환을 조작하는 이산화탄소 제거의 방안 등이 거론되는데 이 방법들은 아직 유의미한 규모로 시행되지도 않을 뿐더러 극도로 위험한 불완전 요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학적 방법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같은 이권 단체가 탄소 제거라는 먼 미래의 전망을 이용해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또한 그들이 기후 위기의 불확실성을 강조하여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을 통념화하려는 의도라고 분노한다. 그것이 그들이 걸고 있는 저주이다.&nbsp;&nbsp;<br>신화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 카산드라의 저주를 끝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저주의 멍에를 지고 많은 이들이 애초에 없던 길을 걸었다. 그들의 발자국 뒤로 남은 그 길은 이제서야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적 같은 구원은 없다. 다만 기후 모델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 낙관적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인간만이 유일한 변수라는 말이다. 지구의 미래는 인간의 두 손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인간만이 희망이라는 뻔뻔한 자기기만적 망상에는 빠지지 말자. 다만 결자해지일 뿐이다.&nbsp;&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34/57/cover150/89012975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345786</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중동의 속옷 가게 - 시리아 하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492298</link><pubDate>Thu, 03 Sep 2026 2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492298</guid><description><![CDATA[&lt; AI가 그려줬어요 - 속옷 가게와 삼류 극장 간판은 같은 거리에 있지 않았다&gt;<br><br>길 건너편의 어떤 풍경에 매료되어 걸음을 멈췄다. 화려한 여성 속옷 가게 앞에서 서성이던 한 여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별것 아닌 모습에 발걸음을 멈춘 것은 그 곳이 중동의 어느 도시였고 그 여성은 검은색 차도르로 온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중동 어느 거리에서 상반신을 훤히 나체로 드러낸 여성이 그려진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무채색 거리에 레이스가 달린 붉은 속옷을 걸친 마네킹이 쇼윈도우를 통해 노출된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기실 궁금했던 것은 검은색 차도르를 착용한 그 여인이 어떤 선택을 할까 였다. 들어갈까 아닐까. 감히 사진기를 꺼내 찍을 엄두는 못 내고 가만히 지켜 보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편인 듯한 남자가 나와 쇼핑백을 그녀에게 건넸다. 아! 이 여성은 속옷 고를 자유마저 차압당하고 살고 있구나. 이 또한 차도르라는 폐쇄적인 이미지가 가져온 편견일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3/pimg_63924063830408434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492298</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책속을 유영하다 </category><title>색깔별로 꽂아볼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462373</link><pubDate>Thu, 20 Aug 2026 20: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46237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988&TPaperId=174623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5/48/coveroff/k53213798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지금 살고 있는 방 두 칸짜리 이 집에는 허리까지 오는 낮은 책장이 각 방과 거실에 놓여 있다. 천장까지 높게 올라가는 책장은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아무래도 싫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작업방 책장의 책들은 색깔별로 구분해 꽂아두었다. 이렇게 색깔별로 책을 꽂으면 책 장르가 마구 뒤섞여 의외의 조합이 생기는 게 재미있다. 시집 옆에 과학책, 페미니즘 책 옆에 경제학 책. 색별로 정리하면서 내 책 중에는 흰색 표지 책이 가장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색에 비해 흰 책이 4~5배 이상 수가 많다. 다 꽂아놓고 보니 발견한 사실인데 그 이유가 뭔지 무척 궁금하다. 누군가 책표지 색에 대해 쓴 논문이 있을 것도 같다. -p73-<br><br><br><br>책장을 정리해야 할 때가 생긴다. 여유 공간을 두고 정리한 책들의 틈새에 하나 둘 신간이 자리하면서 드디어 더 이상 꽂을 공간이 생기지 않을 때 다시금 배치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마다 책을 분류하고 꽂는 방식은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분류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장르-작가-제목순 등 탐색의 편이성을 염두에 둔 분류법이 일반적일 것이다. 이랑 작가의 책 분류법은 독특하다. 그녀는 책의 겉표지 색깔에 따라 정리한다. 아,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역시 아티스트는 다른가 보다. 나중에 책을 찾을 때의 불편함이야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왠지 책장에서 다양한 색깔의 무지개를 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방 한구석의 책장을 바라본다. 아쉽게도 무지개는 피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흰색과 검은색, 무채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중간중간 노랗고 파랗고 빨간 꽃들이 듬성듬성 피어나겠다 싶다.&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5/48/cover150/k53213798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054879</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아버지가 없는 나라 - 중국 루구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436154</link><pubDate>Thu, 06 Aug 2026 20: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436154</guid><description><![CDATA[<br>중국 쓰촨성에서 윈난성으로 넘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꽃이름을 도시명으로 가진 판쯔화攀枝花라는 곳을 거쳐 윈난 리장丽江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험난한 중국 내륙 지형이지만 청두成都-판쯔화 攀枝花사이 기차가 놓여 있어 가장 무난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다. 또 하나의 길은 가장 유명한 길이자 인내와 고난의 길이기도 한 차마고도를 지나는 길이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 리탕理塘을 거쳐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넘어가는 버스로만 서른 시간 넘게 걸리는 쉽지 않은 여행길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길 하나가 더 있다. 쓰촨과 윈난 중간에 형성된 둘레가 50 킬로에 달하는 커다란 호수 루구후泸沽湖를 지나는 길이다. 루구후 외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고 교통이 불편하여 그다지 이용되지 않는 길이었다. 판쯔화를 거치는 너무 상투적인 길에 대한 거부감과 언젠가 라싸로 넘어가는 길로 남겨 두고픈 기대감에 두 길을 제외하고 루구후를 거치는 길을 지나게 되었다.<br>청두에서 기차로 8시간, 그리고 다시 시골 버스로 8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 초입에는 자연목으로 만들어진 아치형의 커다란 대문 중간쯤에 '루구후'가 어설프게 양각 처리되어 있었다. 초입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던 '여인천하, 남성천당' 이란 표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마을에서 호수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온 곳에 위치한 어느 전통가옥에 숙소를 잡았다.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여행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늦은 밤 어느 집 마당에 동네 여인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불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당 한켠에 걸터 앉아 한참을 구경하는데 왠지 남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있었고 여인들만의 춤판에 홀로 있기 어색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젊은 사내가 운영하는 술집에 머무르니 주인장이 루구후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루구후는 모쒀족이 자치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 56개 소수민족중 유일하게 모계 사회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그 표어의 의미는 모계 사회를 나타내는 하나의 의미로 쓰여진 듯 했다.&nbsp;<br>모쒀족摩梭族은 모계 중심의 사회이다. 어머니를 가장으로 하여 가족이 형성된다. 부부는 연을 맺기는 하나 같은 집에서 살지 않는다. 남자는 여인의 집으로 와서 밤을 지새고 아침이 오기 전 떠나간다. 특별한 혼례의 절차가 없다. 마음이 맞으면 남자가 담을 넘어 여자의 방문을 두드리고 여자가 문을 열어 받아들이면 암묵적인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결혼의 형태를 주혼走婚이라고 한다. 결혼의 구속력이 없으니 이혼의 강제력도 없다. 여인은 마음이 떠나면 남자의 가방을 창가에 걸어 놓으며 남자는 이를 인연이 다한 것으로 여기고 돌아선다. 그러다 보니 한 집안에 같은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이 같이 생활하게 된다. 부부금실이 좋으면 모두 같은 아버지를 두게 되지만 금실이 별로면 모두 다른 아버지를 둔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고 장성한 딸들이 다시 독립하여 또 다른 모계를 이루게 된다. 외삼촌들은 어머니를 이어 장녀가 부양하게 된다. 모쒀족 여인 '양 얼처 나무'의 책 '아버지가 없는 나라'를 보면 부정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그리움과 눈물겨운 애정을 표현한 것과 달리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냥 핏줄에 대한 긍정 외에는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호칭이 없는 듯 그냥 이름만을 건조하게 적을 뿐이었다. 모든 경제 생활이 어머니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며 남자들은 산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집 건축 수리 등 일부 일에만 관여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주로 차마고도를 따라 마방의 삶을 이어갔다.<br>모쒀족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풍습이 있다. 작지만 그들만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개에 대하여 가족 같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신화에 따르면 태곳적 하늘이 열리고 신들이 세상의 모든 동물을 일렬로 세워 생명을 부여할 때 개 뒤에 인간이 있었다. 개가 60년의 수명을 얻게 되고 인간이 15년의 수명을 얻게 되었는데 개가 슬퍼하는 인간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지금의 수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년 춘절에는 정성들여 음식을 장만하여 개에게 인간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음식을 대접하는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금기시되고 있다. 그래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으면 방문을 박차고 나가 돼지나 닭에게 대신 욕을 한다고 한다. 어리둥절한 가축에게 "인간 같은 놈"이 최악의 욕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개에게는 욕하지 않는다.&nbsp;<br>루구후는 아침 햇살이 특히 인상깊었다. 아침부터 뭔가 저녁처럼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첩첩이 둘러싼 산을 넘어 여명보다 훨씬 늦게 호수에 도착한 햇살이 갈대 여기저기서 조금씩 비집고 들고서야 고즈넉함은 사라져갔다. 뱃사공들도 모두가 여인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키보다 훨씬 큰 삿대를 둘러 매고 석양을 거니는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다. 이를 드러내고 환히 웃는 그녀들의 모습에 측은지심은 한낱 나그네의 객창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대숲 사이 사이를 삿대를 저으며 나아가는 그들의 나룻배를 빌려 한나절 호수를 유람하였다. 돌아오는 길 호수가 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올라가 보았다. 저기 아래로 두 대의 나룻배 사이 커다란 목재를 걸친 배가 지나다닌다. 그들 또한 여인들일까. 그들의 거친 생존력이 아직껏 모계 사회을 이어가는 원천이 되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6/pimg_63921643621372909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436154</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시를 닮아가는 삶</category><title>두꺼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408107</link><pubDate>Thu, 23 Jul 2026 2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408107</guid><description><![CDATA[두꺼비<br>-박성우-<br>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nbsp;<br>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녀석을 껴안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살짝 만져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독을 뿜어대는 통에 내 양 눈이 한동안 충혈되어야 했다 아버지, 저는 두꺼비가 싫어요&nbsp;<br>아버지는 이윽고 식구들에게 두꺼비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셨다 칠순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날이 새기 전에 막일판으로 나가셨는데 그때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 자전거 손잡이에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nbsp;<br>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nbsp;<br>아버지는 지난 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nbsp;<br>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br>-------------------------------------------------------------------------------------산소호흡기의 들썩거림에 맞춰 하얀 이불보 옆으로 삐죽히 빠져나온, 한 몸인 듯, 숨에 겨운 듯 같이 들썩거리던 검은 두꺼비의 거친 떨림을 본 적이 있다. 또 어떤 날은 영안실 유리 뒤편에서 마지막 숨결을 몰아 쉬고 삼베에 싸여가던 두꺼비를 본 적이 있다. 녀석은 죽어서도 독을 뿜어대었다. 새집을 결국 얻지 못하고 떠났다. 손을 바라본다. 노동에서 비껴선 내 손에는 더 이상 두꺼비가 살지 않는다.]]></description></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긴 호흡</category><title>남성 우정에 대한 고찰 -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395774</link><pubDate>Thu, 16 Jul 2026 20: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3957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0669&TPaperId=173957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40/14/coveroff/89364806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0669&TPaperId=173957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a><br/>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01월<br/></td></tr></table><br/>영국의 스탠드업 코디디언인 저자가 자신의 결혼식에 신랑 들러리를 부탁할 친구가 없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맞닥뜨리고 스스로의 우정을 돌아보며 통찰해 낸 남성 우정에 대한 글이다. 개인의 경험 위에 인문학적,사회학적 분석을 더해 현대 사회 남성 우정의 실질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주제를 코미디언다운 재치있는 글과 스토리텔링으로 큰 몰입감을 선사한다. 다만, 블랙코미디의 특성상 변기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음담패설류의 화장실 유머는 철 지난 개그 콘서트의 아련한 몸부림으로 비춰져 아쉬울 수도 있다.<br>작가는 그의 경험에 근거해 남성이 나이 들수록 친구가 사라지는 이유를 찾아내는 여정을 떠난다. 과도한 남성성의 과시로 인한 관계의 균열(거친 말과 행동으로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남자라는 꽤 튼튼한 갑옷을 걸치고 파탄날 때까지 버틴다), 감정 표현을 두더지 잡기 게임으로 인식하는 유해한 남성성(분노라는 감정 외에는 몸 속에 지방처럼 저장하고 활활 태운다.다른 감정은 다 때려잡고 오직 분노만이 표출된다), 관계의 지속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감정 노동의 결핍(능동적으로 만남을 주선하는 감정 노동을 회피하며 감정 노동의 많은 부분을 아내나 여친에게 위임한다) 등 남성성 자체의 문제와 성적 요소의 접근 방식 차이에 의한 여사친 관계 문제(전부는 아니지만 남녀간 성적 요소 차이는 관계 단절을 유발한다), 소설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한 관계 자체의 소실(소통이 아닌 은둔과 고립을 위해 미디어를 이용하기도 한다), 인간-AI 간의 새로운 관계의 부상(부족한 인간 관계의 대체가 아닌 새로운 관계의 형성으로 받아들여진다) 등 사회적 문제까지 다방면에 걸쳐 접근한다.&nbsp;<br>우리는 우정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한다. 화초처럼 가꾸고 돌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잡초처럼 봄만 되면 언제나 다시 피어나는 다년생 작물로 여긴다. 우정도 늙어가고 낡아간다는 것을 잃은 후에야 겨우 알아낼 뿐이다. 공기처럼 나를 감싸고 있는, 다만 인지하지 못하는, 언제라도 부르기만 하면 달려와 줄 것만 같은 영원한 존재도 아니다. 인생의 커다란 결단과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히든 히어로도 아니다.때론 술에 취해 '저 친구는 나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어!' 라고 호기롭게 말한다. 그 충성심과 관대함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정은 인생이 상처 입었을 때 홀연히 나타나 큰 감동을 주는 이벤트가 아니라 같이 즐길 수 있는 매일매일의 만남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nbsp;<br>작가는 결국 그의 이십대 가장 절친인 두 여사친을 결혼식 들러리로 결정한다. 그의 우정 여정에서 다시 만난 친구들과는 '밥 한 번 먹자' 라고 말하면 그냥 인사치레가 아닌 밥 한 끼 먹는 걸로, '술 한잔 하자' 라고 말하면 그냥 술 한잔 하는 걸로 인생의 방향을 튼다. 아니, 밥 한번, 술 한잔의 인사겉치레 성향은 동서양이 똑같구만! 어찌 되었든 그 밥과 술이 생명뿐 아니라 우정을 지속하는 삶의 영양분임을 결혼식 들러리 고찰을 통해 알아낸 이유일 것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40/14/cover150/89364806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6401431</link></image></item><item><author>잉크냄새</author><category>가슴에 남은 풍경</category><title>인도의 극장은 카스트 제도를 닮아 있었다 - 인도 바라나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ink/17383050</link><pubDate>Thu, 09 Jul 2026 20: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nk/17383050</guid><description><![CDATA[<br>인도의 극장은 카스트 제도를 닮아 있었다. 극장 자체가 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극장 좌석이 앞좌석부터 브론즈,실버,골드,플래티넘으로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마치 카스트 제도를 극장 좌석에 넣어버린 모양새였다. 등급은 좌석 위치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게 옷차림 등 신분을 짐작할 수 있는 외부적인 요인으로도 구분되어졌다. 브론즈에는 길거리에서 주로 만나는 릭샤꾼이나 뱃구레를 거침없이 드러낸 여인들의 싸구려 사리처럼 지저분하고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고 실버, 골드로 올라갈수록 눈부신 사리의 장식처럼 옷차림도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인원수는 브론즈가 압도적이었고 극장 전체의 분위기도 브론즈 인원들이 이끌었다. 당시 본 영화는 인도 액션 영화 &lt;가지니&gt;였는데 나쁜 놈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의 장면이나 주인공이 악인에게 얻어터지는 장면에서는 극장 안을 가득 메우는 감탄사와 푸념이 터져 나왔다. 인도 발리우드 마샬랴 영화 특유의 뜬금없는 중간 댄스 장면에서는 흥에 겨운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몸을 흔들며 동참하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브론즈에 비해 실버와 골드는 왕족이 위엄을 갖추듯 무표정에 무반응으로 조용히 관람했고 플래티넘은 브라만의 신비주의를 품은 듯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난 신분에 걸맞지 않게 왕족의 좌석에 앉아 천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nbsp;<br>상영 시간이 세 시간이 넘었는데 중간중간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대니 체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왁자지껄한 모양새가 시체말로 교양 없는 폼이기도 하고 요즘의 극장 관람 문화와는 동떨어져 있으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언저리에 소환되는 장면이다.&nbsp;문명은 이런 본능을 억제하고 포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은 아닐런지. 영화의 성격에 맞게 놀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은 액션답게, 멜로는 멜로답게,코미디는 코미디답게. 유안진은 그의 수필집 &lt;지란지교를 꿈꾸며&gt;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 군밤을 깔 때는 아이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말자고 했다. 가끔 영화는 인도인처럼 신명나게 보는 것은 어떨까.&nbsp; &nbsp; &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9/pimg_6391922392286531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nk/1738305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