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헤는 밤

- 2MB -

청수가 막고 있는 광화문에는
촛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거리 속의 촛불들을 다 속일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떠오르는 사기를
지금 다 못 치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임기가 4년 8개월이나 남아있는 까닭입니다.

촛불 하나에 거짓말과
촛불 하나에 빠큐와
촛불 하나에 기만과
촛불 하나에 위장과
촛불 하나에 컨테이너와
촛불 하나에 부시사마, 부시사마

부시사마, 나는 촛불 하나에 내가 좋아라하는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BBK때 책상을 같이 했던 경준이의 이름과
에리카 킴, 임연숙,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얼굴이 못생긴
마사지걸들의 이름과, 돈많은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컨테이너,
뉴라이트, 대운하, 747, 미국소,
'불함시수 문열','라이어 조중동 왤캐' 이런 소설가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촛불이 아스라이 멀 듯이.

부시사마,
그리고 당신은 멀리 백안관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촛불빛이 내린 청와대 뒷산 위에
'대운하'라고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외치는 촛불에는
촛불값 댄 배후가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배후를 찾아 조지고 냄비국민들이 사그라들면
청계천에 파란 녹조류가 피어나듯이
'대운하'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삽질소리 무성할거외다.

 

컨테이너로 성을 쌓겠소 (부제:어떤 소통)

-2MB-

컨테이너로 성을 쌓겠소
청와대까진 한참 거리
물대포로 쏘고
방패론 대가릴 찍지요.

촛불이 설친다 쫄리 있소
'아침이슬'은 공으로 들으랴오
미쿡소가 찝찝하면
안 사처먹어도 좋소

왜 사냐고?
주글래?

 

광화문 촛불밝은 밤에

-2MB-

광화문 촛불밝은 밤에 뒷산에 홀로 앉아
컨테이너 앞에 깔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들려오는 '명박퇴진'에 똥줄 바짝 타나니

 

------ 출처 : 다음 아고라 <악어의 눈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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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8-07-0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회사내에 알라딘에 막혔다. 증권,게임,도박 싸이트에 적용되던 것이 왜 온라인 서점에 적용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 이것도 다 2MB 언론장악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파란여우 2008-07-03 20:16   좋아요 0 | URL
음, 제가 잠시 온라인 경마좀 했더니 그게 전염된 듯합니다.
돈놀이 환장하는 2MB를 포섭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니 회사내에서 알라딘 차단했어도 이해해주세요.
거국적인 사업이니!ㅎㅎ


잉크냄새 2008-07-10 17:55   좋아요 0 | URL
이 시간대에나 댓글이 가능합니다.흑흑
항상 건강하시죠?

Mephistopheles 2008-07-0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 살리기 횟불을 들겠다고 전당대회에서 떠들더군요...
그러니까 국민들 가슴에 불을 싸지르는 방화범이 되겠다는 소리일지도 몰라요..ㅋㅋ

잉크냄새 2008-07-10 17:56   좋아요 0 | URL
촛불은 더 활활 타올라야죠.

하얀마녀 2008-07-1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컨테이너로 성을 쌓겠소
저게 가장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잉크냄새 2008-07-18 10:53   좋아요 0 | URL
전, "촛불헤는 밤" 이 더 와 닿더군요.
국어 교과서에 실려야죠.
 

곱창

-임희구-

흰눈이 팡 팡 팡 쏟아지는 밤
양철 깔대기에
능글능글한 돼지창자를 까뒤집어 놓고
썩은 똥찌꺼기를 훑어낸다
돼지똥을 만진다
라디오에선 주의 탄일을 축하 축하하고
고무통 속 찬물에 담긴 돼지창자에선
죽어 나자빠진 똥냄새기 퍼진다
모락모락 퍼진다
진동한다
손가락이 얼어터져
손가락이 똥이 될 것만 같다
찜통 속 펄 펄 펄 끓는 물이
똥 뺀 창자를 기다린다
얼어터지다 불속으로 들어가는
기가 막힌 돼지창자의
싯누런 똥냄새 울려퍼지는
즐거운 메리 크리스마스

-------------------------------------------------------------------------

문득 사십이 넘은 시인은 곱창을 먹을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시인에게 곱창이 돼지똥내라면 나에게 창란은 창자속내인것 같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겨울밤길, 명태덕장 한쪽 구석 장작불 옆 어머니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쭈빗쭈빗 몇번을 망설이다 들어가 밤늦도록 명태상덕을 하거나, 코다리를 하거나, 명태배를 가르거나, 창란속 창자를 후벼빼곤 하였다. 명태 비린내는 익숙하기도 했거니와 그 당시 친구들 모두의 냄새였기에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유독 창란 창자의 냄새는 나에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냄새라는 자의식이 들곤했다. 수업시간, 손톱밑이나 소매끝, 바지가랭이 한쪽 끝에서 비누냄새를 기어코 뚫고 올라오던 창자 냄새는 때론 창피했고 때론 서글펐다. 그 냄새가 괜시리 서글픈 날도 어머니 옆으로 훌쩍 뛰어가 다시 명태와 창자를 후빈 것은 냄새가 주는 수치심보다는 어머니와 부끄러운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시인, 당신 곱창을 먹는지요. 전 요즘 창란을 잘 먹습니다. 십년을 넘게 코끝을, 입속을 떠돌던 냄새였지만 지금은 을메나 맛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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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4-0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주문진 명태를 누가 줘서 손질하다가 당신 생각이 잠시 났어요.
난, 곱창도 잘 먹고, 순대도 잘 먹고, 창란젖도 잘 먹어요.
하지만 여전히 홍합은 맨 목구멍으로는 잘 못먹겠더라고...
그렇게 가는거지 뭐.

춤추는인생. 2008-04-0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경필대회던가요? 서글펐던 꼬마아이가 언덕위에서 일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그냥 말없이 돌아섰다는... 그꼬마는 잘 지내는지, 안부전해주세요^^

전 명태아주 좋아해요. 전으로도 잘먹고 조려주면 그것도 맛있게 잘먹어요. 뿐만이던가요. 창란젖도 잘 먹고. 명란젖도 잘 먹고. 오징어도 잘먹어요^^
서정적인 페이퍼에 먹는이야기만 잔뜩하고 가서 죄송해요(실은 방금집에 들어왔는데, 뭘 더 챙겨먹을까 고민하던차에 안먹기로 했는데, 요거쓰고
냉장고문을 열어볼 작정이예요^^)

하얀마녀 2008-04-0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왜 뜬금없이 돼지족발이 먹고 싶은 건지...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 한 번 먹어줘야 할까봐요.

잉크냄새 2008-04-0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여우님께는 홍합이었군요. 명태를 가르다 생각난 것이 저라니, 영광이네요. 언제 창란젖 한통 보내드릴께요. 아, 그리고 곱창은 독쟁이에서 언제 한번 같이 드시죠.^^

춤인생님 / 그 꼬마를 다시 보려고 페이퍼를 뒤적였는데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옛추억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고 그냥 지금의 저에게 안부를 전해주었답니다. 창란,명란,명태젖을 드셨으면 동해안 명물 젖갈을 다 드셨군요.
혹시, 냉장고에 고등어가 보여서 구워드신건 아닌지...

마녀님 / 그럼 혹시 마녀님은 돼지 발톱을 다듬던 기억을 넘어, 이제 족발계의 신화가 된것은 아닌지요.

파란여우 2008-04-02 20:14   좋아요 0 | URL
독쟁이는 쓰레빠 질질 끌고 걸어 나가는 동넵니다.
곱창모임 좋죠. 인경호에서 막걸리도 한잔 캬아~

잉크냄새 2008-04-03 12:43   좋아요 0 | URL
독쟁이 곱창이 갑자기 아른아른 거리기 시작하네요.
요즘도 학생들이 인경호에서 막걸리 마실까요? 부랑아처럼 떠돌던 학생때 참 잘 마시고 잘 자고 그러던 곳인데,,,ㅎㅎ

가시장미 2008-04-0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회사에서 계속 달달한 것들을 먹었더니, 이 글 보는 순간 양념곱창이 확~ 땡기는데요. ㅋㅋㅋ 곱창이랑 막창을 먹을 때 즐겨가는 곳이 있는데..내일 친구들을 만나서 그곳에 갈까해요. 잉크님 덕분에 오랜만에 쇠주에 곱창을~!! ㅋㅋ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다행이에요. 저 오늘 생일이거든요. ^^ 한동안 감기도 앓았고, 날씨고 꾸물꾸물해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오늘은 좀 기분이 좋아요.

잉크님도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시죠? 으흐 (지가 기분이 좋으면 남도 좋을거라 생각하는 단순한 가시장미ㅋㅋ)

잉크냄새 2008-04-03 18:35   좋아요 0 | URL
이거 독쟁이 곱창파가 결성될것 같은 조짐이 보이네요.
여성분들이 은근히 곱창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털짱 2008-04-0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서재에 들어오니 갑자기 속이 쓰릴 만큼 곱창이 먹고 싶어지는군요.^^

잉크냄새 2008-04-11 15:14   좋아요 0 | URL
털짱님, 뜨끈한 곱창전골 드시면 훌훌 털고 벌떡 일어나실듯 싶네요.

털짱 2008-05-1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라 바람나신 것을 이해합니다. 다들 그러니까요.^^

파란여우 2008-06-1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른대로 불어봐요! 곱창 먹으면서 누구하고 눈 맞았다해도 서재가 이게 뭡니까.

잉크냄새 2008-07-0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청님,털짱님,파란여우님 / 이렇게 안부물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구소련 시절 모스크바에 개가 두 마리 있었는데, 한 마리는 퉁퉁 살이 찌고, 한 마리는 비쩍 말랐단다. 마른 개가 살찐 개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서 먹을 게 나서 그렇게 피둥피둥 살이 쪘니?" 살찐 개가 대꾸한다. "바보. 저기 가면 파블로프 연구소가 있잖아. 거기 가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어 봐. 그럼 잠시 후 조건 반사된 인간이 들어와서 종을 땡땡 치고 먹을 걸 갖다 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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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3-26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양반은 농담도 참 학술적으로 하시네...ㅋㅋㅋㅋ

잉크냄새 2008-03-26 13:03   좋아요 0 | URL
저런 반전이 있는 농담이 좋더군요.
역시 똘똘한 할배입니다.

라로 2008-03-2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에코는 의외로 농담을 많이 했더라구요,,,,그 책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 그거 읽어 보면 이 양반 참,,,하면서 웃었다죠~.^^;;;
잉크냄새님 잘 지내시죠????^^

가시장미 2008-03-27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재미있네요! 조건반사~~~ 오랜만에 들어요 ^^
에코의 책으로 아이들과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이라는 책이었는데요 환경문제를 재미나게 이야기해볼 수 있었어요. 근데 정말 농담도 논리적으로 하시네요 으흐

아침부터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출근했어요. 벌써 목요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시간이 너무 안 흐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빨리 주말이 와서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흑!

잉크냄새 2008-03-27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 나비님도 잘 지내시죠? 그 책은 읽은지가 오래서인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네요. 세상사 뒤틀고 비틀어보기였던것 같기도 하고요.

장미님 / 논리로 비논리를 파헤쳐버릴때 느끼는 묘한 재미가 있어서 좋네요. 봄날 주말에 푹 잔다는 건 저처럼 늙다리에게나 있을법한 일인데,,,,ㅎㅎ

가시장미 2008-04-03 17:42   좋아요 0 | URL
저 늙다리예요. 벌써 29이에효. ㅠ_ㅠ

잉크냄새 2008-04-03 18:34   좋아요 0 | URL
저도 더 늙다리예요.ㅎㅎ

하얀마녀 2008-04-03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이렇게 사람을 웃기는 수도 있군요. 하지만 뭔가 불공평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제가 너무 옹졸해서일까요?

잉크냄새 2008-04-04 13:19   좋아요 0 | URL
글쎄요....

털짱 2008-04-0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낚시에 걸린 물고기는 자신이 낚시꾼을 낚았다고 생각한다"ㅋㅋㅋ

잉크냄새 2008-04-11 15:14   좋아요 0 | URL
와, 이 멋진 응용력...ㅎㅎㅎ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 이라는 책이 있읍니다.

이 책은 1990년~1998년 ...약 8년에 걸쳐서 중국학자5명과 일본학자7명 그리고 그 외 일본사관학교 (육사.해사) 장교및 중국인민박물관장. 한국해군사관학교장교들의 도움으로 총 32권으로 발권 된 책이죠

이 책은 크게 이순신 장군 생애를 다룬 5권.(이순신은 누구인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2권 . 명나라가 본 이순신1권.

1500~1600년시대의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나라 10권.
이순신과 임진왜란 5권. 토요토미 대 이순신 2권.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내용이 25권.
그리고 역사적 근거로 가설을 부친 내용이7권으로 나누어 진 책입니다.

이중에서 좀 특이한 것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장군님에 관한 책이 2권이나 된다는 것인데... 이순신 장군께서 난중일기를 남기시듯.. 일본장수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서적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와키자카와. 도도. 등등 .....특히 이 두 사람은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기록이 유별 나다고 합니다...아마 같은 수군이라서 그랬겠지요...

1. 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전에 kbs1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와키자카 후손들이 매년 이순신 장군님 탄생 때 온다는거....와키자카가 이순신 장군님을 알게 된 건 한산도 대첩 때인데... 와키자카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성격이 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바라보는 것과 일본에서 바라보는 건 차이가 있겠지만...아무튼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였는데, 명예를 중요시하였으며, 차를 좋아했으며, 함부로 살생하기보다는 덕을 베풀어서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뭐 랄까 그런 묘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2천의 군사로 약 5~10만명(정확한설은 없음. 우리역사에는 5~6만 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이라고 함)정도 되는 조선육군을 물리친 명장 중에 명장입니다... 그러한 명장이 듣지도 못한 장수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를 하였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한 예로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 였을 거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갔다.)

2천의 군사로 5만 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 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 번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지만 와키자카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글이죠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이순신 장군님 탄생일 때 오는가 봅니다

2. 명의 사신이 본 이순신

그리고 "운덕 " 이라는 명나라의 사신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후일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하루는 어두운 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 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 듯 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 속을 통제사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 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 바람 속으로 거닐고 있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한번 따라가 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 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현장으로 가는 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 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 중 효행 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이더라...10살 의 어린 나이에 병사가 되어 왔음에 이 아이가 포로가 된후 이를 딱히 여긴 통제사영감이 별도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10살에 포로가 되었으니 벌써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왜군의 아이는 조선말을 배웠으며 간간히 통제사 영감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사람을 보면 누가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내가 본 저 두사람은 조선 장수대 왜군이 아닌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통제사 염감이 저러하다면,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3. 명의 도독 진린이 본 이순신

명나라의 황제 신종(만력제)은 조선에서 진린도독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는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튀어날 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루 지닌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 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 하옵 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 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 척 만이 남았으며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 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 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황제 폐하 바라 옵 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 이순신 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 폐하게 충(忠)을 다 할것이 옵니다.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4. 책의 저자인 쟝웨이링 교수가 본 이순신

1990년 3월 하북에서 제1차 중.일 합동 연구회(이순신)를 가졌다. 이순신??? 내가 알고있는 이순신은 조선시대 임진 왜란때 장수였던거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이 연구회엔 나의 절친한 동료학자의 권유로 참석하였으며 그해에 그저 잠시나마 자리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사실 조선의 역사에 대해선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던터라, 나는 그저 일본교수진들의 말만 들을뿐..... 그러한 내게 작으나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화면 가득 보여지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북선이라고 불리는 배였다. 저런 배가 400여년전에 있었단 말인가...(본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시각으로 보고있었다. 아무리 나라가 다르다지만... 그 시각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고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차이는 중일간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보는 것.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이 아닌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을 보는 것이었다. 일본교수진들은 이 연구회를 이순신이라고 붙였다.

즉.. 임진왜란 자체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서 바라보고 찾고 연구하고 가설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 중국 어느 누구에게도 연구해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는 그 학술회가 끝나는 데로 일본교수의 도움으로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한 책자를 얻을 수 있었다. 7권으로 이루어진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관한 책이었고. 나는 그7권을 단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으며, 책을 손에서 놓은뒤 내게 있어서 가느라한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순신....참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은 인물.지금까지 우리 중국학자들은 임진왜란은 일본의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조선의 왕 선조는 그들을 막지 못하고 의주로 몽진을 하여 우리 명나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명나라는 국력을 소비한 나머지 지금의 청에 의해 멸하고 만다. 이것은 우리 중국과. 한국 북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도 별 차이 없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날 연 학술회에선 이 모든 것을 흔들어버리는 아니 뒤엎는 가설을 내 놓은 것이다. 바로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5. 장웨이링 교수가 말하는 우리의 거북선...

1997년 10월.

한번은 내게 북경대에서 초빙을 받아서 학생들과 토의를 한적이 있었다. 제는 청나라의 멸망에 관해서 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가져 온 거북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 있냐고 묻자 250명의 학생중 단 한 명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하였다.

어쩌면 역사학자인 나도 이 거북선을 이순신 인물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처음 보았으니..학생들이 모른다고 답하는 건 어쩌면 무리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학생들이 이 거북선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볼 기회를 주고 난 후.. 나는 질문을 바꾸어서 왜 청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고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는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으며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질문을 바꾸어서 그렇다면 그 당시 전쟁에서 여러분이 아는 영웅중 단 한 명 다시 태어나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위인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학생들의 답변은 내가 예상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잠시 창 너머를 바라보았고... 한참동안이나 내가 강단의 창 너머만 바라보자. 이에 이상했는지 학생들은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나는 이에 만일 지금 또다시 지금 중국이 청나라처럼 되었고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거라고 답해주자.. 모두들 의아해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어떤 위인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고.. 나는 그 질문에 거북선을 다시 한번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데로 배다.

지금부터 400년전에 만들어진 전투함.. 이 전투함을 만든 이순신... 400년 전에 조선과 일본의 전생 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에 말한다....

많은 학생들과 같이 참석한 많은 다른 교수들도 의아해 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저기서 이순신이 누구냐고 서로 묻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간단히 임진왜란에 대해서 30분 정도 시간을 내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당시 일본과의 전쟁에서의 활약상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순신을 선택한지 아느냐고 물었으나 이 역시 학생중 단 한 명도 알지 못하였다.

단지 어느 한 학생이 교수님 이순신은 해군 아닙니까? 나는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해주었다. 바로 해군이기 때문에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가 망한 건... 아편 탓도 있고.. 황제 탓도 있다.. 정치적 이유도 맞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유능한 해군장교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수군장수 이순신은 5000명도 안 되는 군사와 50척도 안 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도 없이 모두 승리를 이끌어 조선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청국과 같은 처지였다... 당파싸움에 휩 쌓여 있었고.. 병력이라야 5만도 안 되는... 그러한 조선을 이순신장군이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안에는 바로 이 거북선 전투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들은 모두 육지에서 뛰어난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 중국역사에는 세계에 내 놀만한 수군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중국은 대륙국가였다... 하지만 대륙만큼이나 우리 중국은 바다가 넓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들며.. 교수님 그렇다면 주유가 있지 않읍니까? 라고 말하였고 나는 그에 질문에... 주유는 훌륭한 지휘관이다.. 그러나 주유는 이순신 장군과는 격이 다르다.... 주유는 양쯔강에서 활약한 장수지 진정한 해상 지휘관은 아니다..

영국을 보라.. 네덜란드를보라 스페인을보라.. 그들은 나라는 작아도 바다를 가졌기에 그리고 그 바다를 점령하였기에 세계 최고의 국가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청나라는 거대한 대륙국가 이였지만 바다를 몰랐기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년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바다로 바다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열렸던 임진왜란 모의전쟁에서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국에 점령되었다... 라는 결과를 말해주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거북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순신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이 거북선은 내가 여러분에게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그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 거북선은 나대용 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거북선을 생각하고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수군은 임진왜란 1년 전 만해도 허약한 병사들이었으나 그 허약한 병사를 단 1년 만에 40만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나서도 1시간정도 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아보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까지도 하면서....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쟝웨이린 교수님은 1989년에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는 주요 책임자중 한분이 였으며, 1990년 이 학술회를 시작으로 해서 연구하시던 중 1995년 고구려 역사 편입하는 작업에서 손수 물러 나셨다고 한다. 쟝웨이린 교수님은 이 책 머릿말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역사학자란 후세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란 두 가지의 부끄러움이 있다. 한 가지는 숨기는 것이다. 히틀러가 200만 유태인을 죽인 것 보다 그 역사를 감추려하는 역사학자들이 더 부끄러운 것이다. 나의 조국의 부끄러움보다 역사 앞에서 그 진실을 숨길 때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또 한가지의 부끄러움을 말한다면,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정한 위인은 자기가족만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전한 위인이란 모든 만인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이며.. 나는 그 위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6. 일본의 아리모토라는 역사가가 본 이순신

세계의 전쟁영웅은 피로 만들어진다. 전쟁영웅은 만인들에게 우러러 보게끔 만든다. 알랙산더 대왕도 그러했고 케사르도 그러하였고, 징키스칸도 그러했고, 나폴레옹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이러한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크리스챤인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그분.... 이순신 장군을 볼 때면 문득 그분이 떠오른다.... 두 분다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순신 장군은 단순히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피로 혁명을 일으키기보다는 바로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시고 가셨다.

이순신 장군은 그 처절한 전쟁 속에서 忠.孝.義.愛.善 을 가르치신 분이 섰다.그러고 보니 한국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영웅 이순신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성웅 이순신"


7. 장군님의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1996.4월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중에서 14부인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 중에서 .....

< 혁 명 과 죽 음 >

이순신의 혁명..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수많은 전공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정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는 단 한번이라도 혁명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먼저, 우린 만일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이순신 장군은 혁명에 성공과 함께 조선의 멸(滅)과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 장군에겐 2만여명의 수군과 약 5천여 명으로 추정 대는 의병.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이남. 경상도 부근에 이순신을 따르는 군(軍)의 수는 1만 여명에 이른다. 총 3만 5천 여명에 다다르고 이 군대에 대응할 조선의 군대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순신에겐 두 가지의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심과 명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명나라의 군대였다. 명나라 군대 역시 이순신에 대한 반감이 컸으며, 명나라의 장수 유정은 바로 곧 명나라의 황제를 대신 하는 것이기에 이순신에겐 유정을 넘어서야 1차적인 혁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혁명 후 명나라 황제의 질타를 과연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였다.

조선의 왕 선조는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키자 바로 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을 것이다. 명나라의 황제가 도와준다면 이순신의 군대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자신을 도와줄 군대가 올거라 생각지만, 뜻밖에도 명나라에서는 군대가 아닌 사신이 온다.

조선 조정으로가 아닌 명나라의 장수 유정에게........ 명나라의 황제는 조선의 왕 선조가 아닌 이순신 통제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왜 였을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였다. 그 당시 명나라의 국력은 임진왜란(정유)으로 인하여 국력이 크게 약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북으로의 오랑케(훗날 청)의 견제가 심해져 있었으니.. 전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강력한 이순신 군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일 일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나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이미 조선의 민심 역시 이순신에게 있는 것을 알기에)
바로 이순신에게 손을 들어 주는것.. 이것은 또한 명나라에게도 커다란 이득인 것이다...

힘없는 선조가 조선의 왕이 되기 보다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이순신을 도와 그에게 왕의 자리를 주고 그 이순신의 군대로 하여금 후에 명(明)을 위협하는 오랑케를 견제 하자는 것이다.

명나라의 문록(文錄)을 보면. 조선으로 건너간 명나라 장수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에 의하면.. 폐하 이 전란이 끝나면 즉시 조선의 수군 통제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부르소서 그로 하여금 북의 오랑케를 견제토록 하소서.. 이순신 통제사는 능히 우리 명(明)의 후환을 없애 줄 것이라 신(臣) 진린은 굳게 믿사옵니다....등등) 이에 명(明)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의 군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자 라는 대신들의 논의(論議)가 이었음 알 수 있었다. 이는 이미 명나라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 선조에게 우리 명(明)의 도움을 받았으니 조선도 명(明)을 도우라...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오라 하라. 이미 각본은 짜여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혁명을 하든 안 하든... 이미 명나라에서는 훗날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혁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 이었다. 왜였을까? 중국역사 조선의 역사..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런 한 일에는 반드시 쿠테타든 혁명이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니면 토사구팽이라도....그런데 이순신은 쿠테타도 혁명도 토사구팽도 모두 거절하였다. 이순신은 오직 죽음만을 선택 한 것이었다. 이순신 과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에서는 명나라가 이순신장군님을 끌어들여서 북의 오랑케(훗날 청나라)견제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들은 단순히 이순신 장군께서 혁명을 이룩하면 조선이 발전되었을 거라고 단정을 내리곤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정세란 매우 이해관계가 복잡한 일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어쩌면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셨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일으키고 명나라가 이순신을 도와줘서 낭떨어지에 몰린 조선왕 선조와 조정대신(이순신의 반대파세력)들이 뜻밖에도 일본과 손을 잡게되고 비밀 협약을 한다면...과연 조선은 어떻해 되었을까 하는? 혹시.. 이순신 장군은 그러한 모든 과정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이순신 장군은 너무나도 치밀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드라마를 보고 흥분해서 가설을 내세우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정확히 아셨던 분이십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 장군님께 질문을 던져 봅니다. 장군님 당신은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도 두려워셨읍니까? 조선이 피로 물들여질 것이라는 걱정이 그리도 두려우셨읍니까?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신 건가요?

2000년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장군님도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건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일을 주관 하셨지만 미약한 인간의 몸이셨던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당신 앞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립니다...장군~~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책이 총32권... 그것도 한국 학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학자들에 의해 저서가 된 책...... 그들은 우리를 알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린 저들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역사에 대해서 만큼은 더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참고: 이순신 장군 가계 (참조글 주소 참고)

그의 가계는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로부터 내려오는 문반(文班)의 가문으로, 이순신은 그의 12대손이 된다. 그의 가문은 4대 때에 조선왕조로 넘어오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5대조인 변(邊)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와 홍문관대제학을 지냈고, 증조부 거(#거21)는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할아버지 백록(百祿)이 조광조(趙光祖) 등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주장하던 소장파사림(少壯派士林)들과 뜻을 같이하다가 기묘사화의 참화를 당한 후로는 아버지 정도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던 만큼 이순신이 태어날 즈음에 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그러하였음에도 그가 뒤에 명장으로 나라에 큰공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유년시절에 어머니 변씨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때문이었다. 변씨는 현모로서 아들들을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가정교육을 엄격히 하였다. 그는 위로 희신(羲臣)·요신(堯臣)의 두 형과 아우 우신(禹臣)이 있어 모두 4형제였다. 형제들의 이름은 돌림자인 신(臣)자 위에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에서 복희씨(伏羲氏)·요(堯)·순(舜)·우(禹)임금을 시대순으로 따서 붙인 것이다. 그의 시골 본가는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백암리이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생가인 서울 건천동에서 자란 듯하다

(출처 : Tong - kennith60님의 kennith60님의 기본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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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8-03-1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더라도 굵은색 부분은 꼭 다시 읽어보세요. 왜 이순신 장군이 흔한 영웅이 아니라 인간이고 성웅이라 일컬어지는지 새삼 느끼실겁니다.

Mephistopheles 2008-03-1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고 요즘 열심히 방송하는 조선조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보면서 과연 조선이란 나라의 존재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때의 조선과 별반 다를 바 없어보여요..쩝.

마노아 2008-03-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 보니 전율이 흘러요. 이 글 처음 쓰신 분은 이거 다 쓰느라 고생하셨겠어요. 별찜이에요!

하얀마녀 2008-03-1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역시 저분은 알면 알수록 흠모하게 된단 말이지요.

잉크냄새 2008-03-1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차장님 / 요즘은 그 당시의 정치권과 같은 더러운 세력은 존재하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의로운 이는 없는 상황이네요.

살청님 / 이순신 장군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어요. 김훈의 칼의 노래가 열풍을 일으킨것도 그런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춤인생님 / 전투를 앞둔 날, 잠자리에서 식은땀을 흠뻑 흘리며 두려움을 느끼던 사내이기도 하죠. 칼의 노래는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마노아님 / 그렇죠. 저도 가벼운 떨림이 있더군요.

마녀님 / 한번이 아니라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곤 하죠.

2008-03-15 0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17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짱 2008-03-2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안에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만물이 기운생동하는 소리에 마음이 절로 들썩거리는 나날입니다.^-^
때늦은 수험생 흉내를 내느라 알라딘을 자주 찾지 못해 오늘은 봄안부를 전합니다.
잉크냄새님이 계신 남쪽은 벌써 만물이 활짝 피지 않았나요.
그냥 까닭없이 설레일 수 있어 좋은 계절입니다.^-^

잉크냄새 2008-03-24 13:09   좋아요 0 | URL
저번주 남도여행을 다녀왔어요. 올해 날씨가 늦게 풀린탓인지 아직 봄의 화사함보다는 겨울 끝물의 음산함이 남아있더군요.
그냥 까닭없이 설레일수 있다는건 행복이 아닐까 싶네요.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 정현종 -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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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인간은 과거의 어느 한 트라우마에 고착되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신공장 이전후
한시간의 출퇴근 버스속에서 상념에 잠기다 보면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는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제는 잊혀진 기억이라 생각했는데,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비 개인 저녁 나절의 국밥집, 그저 허기진 배를 뜨끈한 국물로 채웠다는 원초적인 포만감
만으로도 쉽사리 놓고 오던 우산같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퇴근버스의 차창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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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9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짱 2008-03-0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을 많이 그리워하던 살청님께서 가장 좋아하시겠군요.
살청님은 서재를 잠시 닫으신다고 하시던데.
다시 뵐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잉크냄새 2008-03-03 13:25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뵈어서 기쁘네요. 이제 자주 인사드리죠.

2008-03-02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3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8-03-0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초적인 포만감만으로 쉽사리 뭔가를 두고 나오던 저도 많이 공감요~

춤추는인생. 2008-03-0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박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 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엔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 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페이퍼를 읽다보니 다시 생각났어요. 박성우의 <건망증>이.
덕분에 저도 고즈넉한 이밤에 가만가만 읇어보고가요.




잉크냄새 2008-03-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오랫만이네요. 뭔가를 쉽사리 놓고 오시나봐요.ㅎㅎ

춤인생님 / 이 시 언젠가 저에게 선물하셨던 시인데, 다시 읽어도 맘에 와 닿네요.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운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