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고집
- 김현태 -
겨울이 다 지나도록
여태 저 놈, 허공을 붙들고 있다
이제 그만 내려와도
되련만,
이 악물고 버,티,고, 있다
내려와, 아랫묵에 등 지져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는데
무슨 생고집인지
나뭇가지의 목덜미 놓아주지 않는다
바람이 들어닥칠 때면
홍시는 손아귀 힘을 더욱 준다
그럴 때마다, 그래서 얼굴이 붉어진 것이다
홍시는 끝끝내 버티려 한다
봄이 올 때까지만
홍시는 아는 것이다
자신마저 훌훌 털고 쪼르룩 내려온다면
홀로 긴 겨울을 버터야 하는
나뭇가지의 아픔을
홍시, 조금은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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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버틴 홍시는 결국 까치밥이 되겠지요. 어느해 초겨울 늙은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까치밥을 향해 무던히도 많은 돌을 던졌군요. 장독 뚜껑이 깨지고, 기와지붕이 깨지고... 요놈, 요놈들 소리에 까르르 웃으며 참 도망도 많이 쳤군요. 자신마저 훌훌 털고 내려오지 않은 홍시의 마음을 조금만 알았더라도 그렇게 돌을 던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원규 시인은 까치밥은 까치를 위해 남겨놓은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양팔이 땅에 닿도록 품고 있던 그 많은 감들을 다 떨구고 홀로 긴 겨울을 나야하는 감나무의 애틋함이 아쉬워 남겨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을이 서글프지만은 않은 계절인가 봅니다. 그토록 애틋한 감나무와 홍시의 풍경이 있고 그 사랑을 바라볼수 있는 따뜻한 가슴들이 남아있는 계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