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
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姿勢(자
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마지막 편지를 띄운 것이 4년전의 일인것 같다. 괜히 목련꽃을 넣어 보냈던가. 남루하고 초라한 봄의 끝을 알리는 편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별을 편지로 보내지 않았으니 다 즐거운 편지였으리라. 그리운 누군가에게로 전해진 편지는 그리움에 쉬이 우표가 떨어졌으리라.

찬바람 쌩쌩 훈련소 동초 근무 화장실 백열등 아래서, 덜컹 덜컹 자세도 잡기 힘든 비내리는 경춘선 뒷자리에서, 눈부신 목련꽃 그늘 아래서....그리운 이에게로 보낼 사연이 무에 그리 많았던지.

늦은 사무실, 펜을 잡고 몇자 끄적여본다. 그리운 이름 하나조차 불러볼 여유 잃고 사는건지 헛헛하다가, 나이 든다는 건 그리움 간직할 가슴한켠조차 비우지 못하는건지 서글프다가, 그래도 내게도 즐거운 편지를 쓰던 추억이, 에머랄드빛 우체국 창문앞의 발걸음이 가벼워지던 추억이 있음에 슬며시 미소짓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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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가끔 그런 글 쓰던 날들이 있어 지금 그래도 행복함을 느낍니다.

paviana 2006-03-2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카드 보내고 얼마전에 편지를 한통 보내려고 온 집안을 다 뒤졌는데 편지지가 한개도 없더라고요. 참 메마르게 살고 있어요.

비로그인 2006-03-2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멋줴이~
근데요, 목련꽃 하얀 이파리를 넣을 땐 싱싱하지만 받을 땐..그니까 받는 사람 입장에선..똥색으로 고마 시들어..왠 천조각인가 하진 않을런지..그래요, 많이 그리우신 게죠? 며칠 후에 제 앞으로 즐거운 편지 한 통이 도착하겠군요. 잉크님 맘 다 안다구요! 어찌할 수 없는 제 맘도 알아주시길..ㅠ,.ㅠ

플레져 2006-03-2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맘 알아주실때 제 맘도 덤으루다가 알아주시면.........될듯 ^^
(맘 속에선 안되겠니? 라고 쓰고 싶었으나~~~ㅎㅎ)

Laika 2006-03-2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 간 친구가 이메일 끄트머리에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었던 너의 편지가 그리워~" 라고 썼길래. 오랫만에 편지를 썼어요. 그런데, 왜 예전과 달리 그리 쓸말이 없는지...
큰 글씨로 허~한 마음 채워 넣어보냈지요.

stella.K 2006-03-2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수가...로맨티스트였군요. 어쩌면 좋아요. 흐흑~!

잉크냄새 2006-03-2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 소중한 추억은 곧 행복감인가 봅니다.
파비아나님 / 무섭도록 두껍게 느껴지던 규격편지지를 다 써 보겠다고 벼르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 편지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복돌이님 / 참, 표현을 하셔도 똥색이 뭐요. 님 맘은 아는데, 워낙 편지를 쓰지 않아서요.^^
플레져님 / 아우, 님들 맘 잘 알지요.
라이카님 / 작년이었죠. 달라이라마가 계신 티벳의 멕그리드 간즈 ( 맞나 모르겠네요 )에서 날아온 한통의 엽서를 참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스텔라님 / 로맨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죠.^^

파란여우 2006-03-2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답장 빨리 못해 드려서 죄송해요.
보내주신 편지지에 아롱다롱 새겨진 하트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몰랐어요
저도 꽃편지지 고르느라 늦는거 다 아시죠? 호호.ㅋ^^

stella.K 2006-03-3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잉크님이 여우님께 친필 편지를 보내셨단 말씀이옵니까? 잉크님 여우님을 너무 좋아하시는가 봅니다. 질투나옵니다. >.<;;

잉크냄새 2006-03-3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복돌님보다 한술 더 뜨시는군요. 마지막 편지를 보낸 4년전에는 여우님을 알지도 못했거늘...ㅎㅎ 그래도 뜬금없는 답장이라도 보내주세요.
스텔라님 / 여우님이 자칭 뻥9단 이라는 걸 아시면서...

icaru 2006-03-30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 잉크냄새 님의 즐거운 편지 속 주인공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염소키우며~ 그렇게... ~~

비로그인 2006-03-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염소..흥! 두 분이 그렇고 그런 사이란 말이죠? 이참에 알라딘 말이죠. 업종을 바꿔버려요! 결혼이벤트회사루요!! 제 생각이 기발 & 기특하지 않습니까!? 음하하하..

잉크냄새 2006-03-3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어, 이카루님까정~~~~
복돌이님 / 님 생각이 가발 & 가당찮지 않습니까? 음하하하..

파란여우 2006-03-3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뻥이란 무엇일까
주는 걸까, 받는 걸까
줄 때는 꿈 속 같고, 받을 땐 허망해라
뻥에 살고오~~ 뻥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세월~~~~월월~~~

잉크냄새 2006-04-04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월월~ 은 그 유명한 견공들 메리/쫑/해피의 울음이 아닌지요.^^

2006-04-06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6-04-1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뒷북이지만, 글 참 좋네요.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화사한 봄.. 입니다.

잉크냄새 2006-04-1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어디로 갔을까요. 빨리 찾아보세요.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우주님 / 봄은 그런 계절인가 봅니다. 감상에 빠지고 싶은 날들의 모임...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치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상처난 가슴을 안고 돌아서던 사람들 어깨 위로 잔설처럼 쌓이던 외로움을 보면서 상처는 곧 아물어 향기가 나리라 위로했다. 가슴이 울어 두 눈이 충혈된 사람들 뺨 위에 깊게 묻어난 투명한 눈물 자국을 보면서 눈물은 곧 마를 것이라 위로했다. 설령 애틋한 마음 표현하지 않더라도 뜨거운 국수김이 먼지낀 유리창을 뒤덮는 국수집에서 가슴속 울컥울컥 국수를 먹지 못했던가. 

산다는 것이 때론 홀로 눈물자국 간직하는 것이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눈물자국 간직한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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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8-1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수 같이 먹을 뒷모습이 쓸쓸한 사람도 없어서 혼자서 라면 끓여먹고 왔습니다. 제가 첫인사 드리는 건가요? 즐겨찾기는 진즉에 해놓았었는데, 게으른 손가락을 갖고 태어난 죄입니다. 오며 가며 자주 뵈어서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편하게 그냥, 글 남기고 갑니다.

마늘빵 2005-08-1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제 어느분 서재에 김치말이 국수가 뜨더니.. 또 잉크냄새님도 국수를 드시고 싶다구. 아.. 먹고잡다. 쓰읍..

ceylontea 2005-08-1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따뜻한 국물에 국수 말고.. 오이를 채썰어 소금, 고추가루, 깨소금넣고 살짝 무친 것과 먹으면 너무 맛있고 좋더라구요... 음.. 또 먹고 싶당..
저 예쁜 글에 먹는 이야기만 잔뜩.. 히히.

icaru 2005-08-1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 속을 휜히 보여도 암시럽지 않을 그 사람들...
과..국수를 저도 먹고잡슴다....그립숨다...~~

비로그인 2005-08-1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래 부연설명한 구절들. 캬.. 시보다 더 시스러운(!) 주옥같은 글입니다. 아무래도 아니 되겄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덜! 두루마리 화장지 둘러메고 단체로 통곡하면서 멸치냄새 찐한 '울컥울컥 국수' 한 그럭씩 때립시다!! 우웁..팽~T^T

잉크냄새 2005-08-10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 안녕하세요 돌바람님. 처음이 아니십니다. 예전에 stonywind시절에 남기신 댓글 보았답니다. 제가 못찾아뵈었죠. 저도 그냥 편하게 님 서재로 날아갑니다.
아프락사스님 / 오, 드럼 공연후의 김치말이 국수 한 그릇인가요...눈앞에 선합니다.
실폰티님 / 잘 지내시죠...지현이랑 같이 드셨나봐요. 무슨 종류의 국수죠. 이러다 국수 종류 다 나오겠네요.^^
이카루님 / 맞아요. 내속을 훤히 보여도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들...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첫구절이 생각나는 사람들이죠.
복돌이님 / 울먹죽죽 국수가 아니고 울컥울컥 국수 입니까? 한 그럭만 때리쇼. 코는 돌려서 풀고...팽~

ceylontea 2005-08-1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냥.. 국수죠.. 다시마, 멸치 넣고 국물 만들고... 소면 삶아서.. 계란 하나 풀고, 파 쓸어넣고.. ^^

검둥개 2005-08-1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 참 좋네요. 추천하고 퍼가요... :)

水巖 2005-08-1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은은하게 아려오는 그런 시이군요. 울컥 ~
저도 추천하고 퍼 가겠습니다.

미네르바 2005-08-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라 멋지게 댓글을 달고 싶은데, 왜 국수 먹고 싶다라는 생각부터 들까요?
저도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눈물자국 간직한 사람"이거든요. 그럼, 저와 따뜻한 국수를 먹을래요^^

(큰소리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눈물자국 간직한 사람~ 요기요기 붙어라 (엄지 손가락 내밀었음) 그래서~ 잉크냄새님과 함께 국수 먹자구요(너무 큰소리로 말해서 목이 쉬었음^^)

잉크냄새 2005-08-1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 /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 내리네요. 이런 날 국수가 더 땡기죠. 후루룩~~
검정개님 / 황지우님의 <거룩한 식사>라고요. 님 서재에서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딱 님 취향이다 싶네요.
수암님 / 휴가다녀오신 사진 잘 보았습니다. 소나기도 아니고...가랑비처럼 은연중에 슬며시 스며드는 그런 애잔함이 느껴지더군요.
미네르바님 / 알라딘 주인장들이 거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눈물자국 간직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네요. 근데 엄지에는 몇분이나 붙었나요?^^

연우주 2005-08-1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가장 마지막 문장, 참 좋네요...

2005-08-11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8-1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라님 / 연보라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우주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전부다..ㅎ 저도 님의 서재 시 밑에 달린 아름다운 댓글을 읽었답니다.
속삭이신님 / 지금 확인하고 처리했습니다. 표로롱~~~

플레져 2005-08-1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오늘... 연이은 국수 삶아 먹기 실천 중입니다 ^^*

잉크냄새 2005-08-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 님의 서재에서 두 그릇의 국수를 보고 오는 길입니다. 또 여우님 서재에서 한 그릇....아무래도 암암리에 국수 바톤 잇기가 펼쳐지는건 아닌지...

파란여우 2005-08-1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국수보단 잉크님 서재 국수를 더 많이 준비해야겠는걸요.
손님들의 내방이 이리 많으니^^

잉크냄새 2005-08-1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제 서재의 손님수가 어찌 님의 서재에 비교하겠습니까. 그걸 조족지혈이라고 한다죠...ㅎㅎ 국수는 여우님이 준비하셔야 할듯....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이미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속에 준비해 둔 다섯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아버지,
나이를 먹고 철이 들수록
아버지란 단어는 이 세상 가장 외로운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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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7-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읽은 장영희 교수님의 책에서... 아버지의 고독과 죽음을 말하는 문학 작품으로... ..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을 이야기했었거든요... 어제까지 붙잡고 있었던 책이어선지...기억이 나요 ^^

stella.K 2005-07-1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잉크님도, 이카루님도.^^

진주 2005-07-1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분들이 다 모였네요^^(주제랑 상관없는 얘기)

잉크냄새 2005-07-1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님의 서재에서 장영희 교수님 책 리뷰를 보고 왔어요. 좋은 책 읽고 계시네요.
스텔라님 / 반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주님 / 저도 반가워요.

비로그인 2005-07-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참..아릿하네요. 돌아가신 아부지 휜 등도 생각나고.. 글고 저두 '반가운 분'들 속에 낑궈 주세요. 같이 놀아요!

파란여우 2005-07-1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은 아부지의 꾸부정한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아, 이거 반갑다는 인사 모드인가요? 그럼, 방가방가...^^

Laika 2005-07-1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아부지!!
아부지한테 문자 한번 날려야겠네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7-20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님 뵈어요. ^^ 휴가 잘 보내시라고 제 서재에 답글 달았지만... 덕담은 여러 번 해도 입 닳지 않으니깐... 좋은 휴가시간 보내시라구요... ^^
그런데 이 시를 적으실 때 뭔가 쓸쓸한 일이 있으셨던 건 아닌지...

잉크냄새 2005-07-20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 그런 기억이 떠올랐군요. 글고 님도 반가운 분에 낑궈드렸으니 판 벌리고 놉시다.
여우님 / 님 서재의 아버지에 관한 페이퍼 내용이 잠시 생각납니다.
라이카님 / 아, 그러고보니 님 아버님의 문자 메세지 페이퍼 본지가 꽤나 된것 같네요.
이안님 / 오랫만이죠. 덕담은 아무리 들어도 귀도 닳지 않는답니다. ^^ 뭔가 쓸쓸한 일은 아니고... 일요일날 통화한 아버님의 목소리가 한동안 가슴에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 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 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 두고 안타깝던 날이 있었다. 
우체국, 구태여 유치환의 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마냥 그리운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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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7-0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 시집 좋아하는데요. 새삼 이렇게 읽으니 더 좋습니다. ^^

파란여우 2005-07-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좋아해요^^

Laika 2005-07-0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5-07-08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7-0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 안도현의 시집중 그런 시집이 있었군요. 바닷가 우체국...왠지 낭만적인 냄새가 풀풀 풍겨지는군요.
여우님 / 도현을 활용한 언어유희...멋지구리합니다.
라이카님 / 너무 멋진 사진입니다. 지중해 어느 해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드네요. 이 사진 페이퍼에 삽입할께요. 멋진 합작품입니다.
속삭이신님 / 이제 사막으로 갈 일만 남았군요. ^^ 저도 사막은 특별한 이유없이 한번 정도 다녀오고 싶은 곳입니다.

Laika 2005-07-0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네덜란드"의 "볼렌담" 갔을때 찍은 사진입니다. 맘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미네르바 2005-07-08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우체국에서 편지를 써 보았던 저는 왜 여지껏 인생을 모를까요? ^^

잉크냄새 2005-07-0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 아, 어쩐지 눈에 익는다 싶었거든요. 작년 님의 서재에서 보았기에 기억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었나 봅니다.
미네르바님 / 전 유치환의 시를 읽고 우체국에서 편지도 쓰고 싶었고, 우체국 창문 너머로 하늘과 행인들을 바라보기도 했죠. 별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이죠.^^

비로그인 2005-07-1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혼자 잘났다고 폼 재며 살 세상, 아닌 거 같습니다. 이 시 뜨는 거 보자마자 카메라 들고 동네 우체통 찍으러 갔습니다. '바닷가는 아니지만 잉크냄새님, 우체통 통째로 받으세요, 헷..선물이에요."라고 수줍게 올리려는 순간, 더헙! 라이카님이 오리지날 '바닷가 우체국' 사진을!! 눈에서 초강력 레이저빔 발사되면서 슬슬 꽈배기 먹은 사람처럼 심사가 뒤틀리더니 오늘은 그래도 질투심이 쪼까 진압 되는 바람에 글 남깁니다. ㅡㅡa
헤헤..라이카님! 사진 정말 죽여요!!

비로그인 2005-07-1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은 안 달아주셨지만 분명히 몰래 들어와 읽으셨을 거야.. 수상해..어디선가, 먹물 냄새가 난다구..아닌가, 저녁에 쩝쩝거렸던 먹물 오징어튀김 냄샌가..킁킁..

잉크냄새 2005-07-1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 복돌님의 동네 우체통이 무지 궁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중 하나가 빨간 우체통이라고요. 그리고 아마도 잉크냄새가 아니라 먹물 오징어 튀김 냄새가 맞는것 같아요. 이 기회에 먹물냄새로 아이디 바꿔볼까요? ^^

비로그인 2005-07-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동네 우체통은 아무리봐두 넘 지저분해요. 동네 조무래기들이 다닥다닥 껌을 붙여놔서 술 취한 저녁에 보면 외계인이 서 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라구요. 글고 오징어 먹물냄새 비릿하니 안 좋았거덩요. 긍께로 기냥 지금의 닉을 사수하시쪙!

icaru 2005-07-2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물냄새~ 하니까 붓글씨 쓸 때 묵향이...맡아져서...고즈넉했는데... 딱 그앞에 오징어를 들이대니까는... 푸히히... 그래도 오징어는 술 안주로 심심풀이로... 짱이에요 짱!!

잉크냄새 2005-07-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 그래도 그런 우체통이 더 정겨운 법이지요. 그리고 닉은 사수합니다. 다만 잉크와 냄새를 따로 떼어 뒤의 것으로만 부르지 마세요
이카루님 / 아, 묵향...머릿속에 아련히 떠오르네요. 지금도 애들 붓글씨 쓰는지 모르겠네요. 전 붓보다는 펜글씨를 즐겨썼지만 왠지 나이들면 자신을 다스리는 것에 붓글씨만한 것도 없는것 같아요.

montreal florist 2009-09-19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진 시군여, 파란색 하는 배경에 빨간색 우체통도 예뿌구여
 

- 박수근의 그림

- 허 만하 -

잎 진 겨울나무 가지 끝을 부는 회초리 바람 소리 아득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나무와 함께 있다. 울부짖는 고난의 길 위에 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한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다른 아이 손을 잡고 여덟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아득하고 먼 길, 길 끝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 위에 광주리를 이고, 또는 지친 빨랫거리를 담은 대야를 이고 바람소리 휘몰아치는 길 위에 있다.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어머니. 짐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손이 모자라는 어머니는 허리 흔들림으로 균형을 잡으며 걸었다. 아득하고 끝이 없는 어머니의 길. 저무는 길 너머로 사라져가는 어머니. 길의 끝에서 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하학길 담벼락에 붙어 서서 따뜻한 햇살을 쪼이던 내 눈시울 위에 환하게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나의 눈시울은 어머니를 담은 바다가 됩니다. 어머니의 바다는 나의 바다를 안고도 흘러 넘칩니다. 어머니 들립니다. 어디까지 와았나. 임정리 아직 멀었나. 어디까지 와았나. 골목 끝에 부는 바람소리. 나는 한 마리 매미처럼 어머니 등에 붙어 있었지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걸었던 바람부는 길을 이젤처럼 둘러메고 양구를 떠났습니다. 나는 겨레의 향내가 되고 싶습니다. 가야 토기의 살갗같이 우울한 듯 안으로 밝고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의 살결같이 거칠고도 푸근한 어머니의 손등을 그리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가 끓이시던 시래깃국 맛을 그리겠습니다. 어머니, 나를 잡아끌던 어머니의 손이 탯줄인 것을 나는 압니다. 잎 진 가지 끝에 바람이 부는 겨울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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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5-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부짖는 고난의 길'이 또 다시 내 시선을 사로잡네요.^^;
...짐이 몸의 일부가 된 채, 허리 흔들림으로 묘하게 균형을 잡고 숱한 길을 걸으시던 우리 어머니가 요즘 많이 늙으셔서 제 맘이 무겁습니다.

水巖 2005-05-2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근미술전 다녀와야겠는데 별르기만 하는군요.

파란여우 2005-05-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미술관이 있는 양구의 고향나무를 한 번 보고 싶군요.

icaru 2005-05-2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 냄새 님... 왜 댓글 지우셨어요.. 흐흐흐...
님... ! 제 서재에 다시 와서 살렴 주셈 ^^
저 박수근의 그림 속 조그만 아이는 잉크냄새 님??

잉크냄새 2005-05-2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미술이나 그림에 전혀 조예가 없지만서도.... 그의 그림은 왠지 정감이 가네요...어머니를 조근조근 풀어낸 허만하의 글과 박수근의 그림이 왠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그리고 저 꼬마가 아마 저였을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