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 이문재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뜨거운 국수의 김이 안개처럼 엄습해오던 비 내리던 저녁 나절,
가슴 한켠을 치달아 올라오는 뜨거운 그리움을 뜨거운 국수발로 가라앉히던 시절에 아련히 떠오르던 얼굴 하나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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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0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점심으로 차가운 국수발 먹었슴다^^

비로그인 2007-08-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 오늘 읽은 것, 이병률님의 끌림 중에서요 :)
구질구질한 댓글보단, 이런 인용이 나을 거 같네요. 잉과장님.

잉크냄새 2007-08-0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 차가운 국수발로 누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죠.^^

체셔냥 / 이거 왠지 동병상련의 회초리 같은 느낌인데요.

플레져 2007-08-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안녕하시지요? ^^
오랜만에 들른 (아, 네, 제 서재는 매일 들르지만 아직 습관이 안되서 브리핑 안보고 훌쩍~ 나가버리곤 해요. 흐흐) 서재에서 찰떡처럼 달라붙는 시를 만났습니다. 문득, 국수는 왜 먹고 싶은건지... 양념같은 원망도 조금 뿌려놓고 갑니다 ^^!

잉크냄새 2007-08-09 09:55   좋아요 0 | URL
플레져님, 오랫만이네요. 문득 생각이 날때는 울컥울컥 국수를 먹어주는 겁니다.ㅎㅎ

2007-08-10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0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0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7-08-0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시인데 오랫만에 웹에서 만나니 새롭네요.
음악은 이 시와 함께 올리신거죠?
국수 먹고싶어졌어요~.
책임지시라고...ㅋ

은비뫼 2007-08-1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시 너무 간만에 읽어요. 그때도 읽고 나서 내 맘과 같아라...했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다시 읽어봅니다. 감사해요, 잉크냄새님~ :)

잉크냄새 2007-08-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 음악은 다른 분에 올려주신 페이퍼에서 흘러나오는 거랍니다. 국수는,,, 이 시는 사실 국수랑 무관하기에 제가 어찌해드릴수가 없나이다...ㅎㅎ

은비뫼님 / 어느날, 어느 시가 가슴에 콕 박히는 날이 있죠. 저도 오래전부터 보던 시인데 얼마전 가슴에 슬며시 자리하더군요.

가시장미 2007-08-1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윽, 시선이 한참을 머물었드래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제 종소리, 세상에서 제일 크게 울려퍼졌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아파서 저 죽으면 어쩌죠? _-_)~ 켁!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인데.
행복만큼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요?
사랑하면 다 줄 수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깟 자존심도 때로는 버릴 수도 있는건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늘 말로만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아프면, 알 수 있겠죠?
제가 아직 사랑을 잘 모르나봐요. 으흐

잉크님. 가슴을 울리는 시 감사해요.
오늘 휴일인데...평온하신 하루 되시길 바래요..

잉크냄새 2007-08-20 12:3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랑이 그리 어려운가 봅니다. 어디 아프지 않은 가슴이 있겠나요.^^

순오기 2007-08-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문재, 전 '노독'이 참 좋더군요.
제 서재에 잉크를 흘려주셔서 따라 왔어요. 축하 댓글도 감사하고요!
어떤 것으로도 통하는 것이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죠! ^*^

잉크냄새 2007-08-29 12:47   좋아요 0 | URL
님의 소개로 "노독"을 찾아서 읽어보았어요.
좋은 시 소개, 감사드려요.
 

개미

- 강연호 -

절구통만한 먹이를 문 개미 한 마리
발 밑으로 위태롭게 지나간다 저 미물
잠시 충동적인 살의가 내 발꿈치에 머문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 외에는 눈길 주지 않는
저 삶의 절실한 몰두
절구통이 내 눈에는 좁쌀 한 톨이듯
한 뼘의 거리가 그에게는 이미 천산북로이므로
그는 지금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게 아니다
누가 과연 미물인가 물음도 없이
그저 타박타박 화엄 세상을 건너갈 뿐이다
몸 자체가 경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노상 엎드려 기어다니겠는가
직립한다고 으스대는 인간만 빼고
곤충들 짐승들 물고기들
모두 오체투지의 생애를 살다 가는 것이다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

-- <- 개미

신문지 앞에 들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건진 시 한수, 과감히 신문 한쪽을 부욱
찢음으로써 내 삶의 절실한 몰두를 이루었으되, 다음 타자의 깊은 시름에 빵꾸난
시름을 하나 더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경배를 짓밟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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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6-13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시름의 상황이었는지.. 상상이 되는데 그거 맞아요? ㅋㅋ
좋은 시 건지셨음다~

잉크냄새 2007-06-1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달 밝은 밤에 긴 칼 옆에 찬 분이나, 천장등 아래 신문지 옆에 낀 넘이나,,,,그 깊은 시름 앞에서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그 시름 앞에서 읽는 시야말로 꿀맛이죠. 오죽하면 해우소라 할까나...ㅋㅋ

프레이야 2007-06-13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좋은 시를 결정적 상황에서 건지셨나 봐요. 제가 좀 업어갈게요.^^

겨울 2007-06-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당 있는 집이라 개미가 바글바글 한데요. 그 발발거리는 움직임은 늘 경이롭지요.
하지만 노상 엎드려 기어다닌다는 사람의 표현을 개미들은 싫어할 듯 해요.

파란여우 2007-06-1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름을 앓으면서도 시를 건지다니...존경합니다. 형님!ㅎㅎ
근데 잉크님,
새서재에서도 지붕이 그대로 따라와줘서 와 이리 좋은지요!(쫌 짤리긴 했는데)

플레져 2007-06-1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누군가 강연호의 시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그 시가 뭐였는지는 생각이 안나는데... 슬픈 로망스였다는 느낌이 남아있어요.
그 시름이 저 시로 탄생한거군요. 시인이 시를 썼으나 독자가 읽음으로서 완성되나니...
좋은 시 감사해요.

잉크냄새 2007-06-1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시름은 놔두시고 시만 업어가세요.^^
우몽님 / 어릴적 개미를 기르곤 하였죠. 유리병의 벽면을 따라 지어지던 개미집의 모습이 어찌 그리 신비하던지요.
여우님 / 왜 그러십니꽈! 누님. 서재지붕을 얹는 기능이 있네요. 기분 전환삼아 잠시 바꿔어볼까 합니다.
플레져님 / 그 시 기억나시면 알려주세요. 슬픈 로망스, 잡힐듯 하면서도 막연한 느낌이네요. 역시 시란 독자를 위한 여백을 남겨둬야 하나 봅니다.

춤추는인생. 2007-06-1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시집은 처음은 보란듯이 열어젖힌 대문에 있지않고 사방으로 열려 있거나 닫혀져 있는 창들중에 있을 공산이 크다라고 말했던 시인의 강정의 말이.시란 독자를 위한 여백을 남겨둬야 한다는 님의 답글을 보면서 문득 떠올랐어요.
님 서재 배경 아주 맘에 들어요.
확 트인 초원위에서 맘껏 달려보고 싶어져요 ^^

잉크냄새 2007-06-15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맞아요. 활짝 열린 대문이 아닌 창을 통해 바라보는 혹은 바라다보이는 삶은 분명 찬듯 차지 않은 여백을 가지고 있지요. 이 서재 배경, 맘에 드는데 서재 대문이 별로라 고민중이네요.
 

老母

- 문태준 -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먹는다
서울 백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

-------------------------------------------------------------------------------

어버이날, 늙으신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이 떠오른다.
그 주름이 아름다운 것은 주름마다에 농익은 삶의 애환을 알기 때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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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0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이 시가 뭉클하게 합니다.
저, 모셔갈래요^^

비로그인 2007-05-0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부모님께 효도하는 좋은 어버이날 보내셨는지요 :)
사진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잉크냄새 2007-05-0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이 시에 어울릴만한 사진하나 추천해주세요. 왠지 어울릴만하 사진이 있을것 같아요.
춤인생님 / 그 거칠고 투박한 손과 얼굴, 그 속의 애환과 무늬, 눈물 날만 하죠.
체셔님 / 불효한지라,,,,항상 죄스러운 마음이죠.
 

무늬들

- 이병률 -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 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십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여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 몸을 향해 깊숙이 꽂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이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

누구였던가요.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지처럼 접을수 없었다는 시인이.
유리창의 오래된 물자국처럼, 무늬들처럼, 밀어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군요.
시간이 지나니 알겠네요.
그리우면 그냥 그리워하면 된다는 것을.
그냥 흔들리며 그리워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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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잉과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ㅜㅜ
누가 이렇게 심란한 페이퍼 올려달랬어요... 진짜 울고 싶잖아요...
어쨌거나 멋진 글이라 추천.

춤추는인생. 2007-04-2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오늘 저랑 통하셨네요^^
이곳 서울은 비가와요. 아침에 빗방울맺힌 창문을 밀다 문득 이시가 생각나서
오전내내 읽고 또 읽었어요.
저도 오늘하루만큼은 마음껏 흔들리는 내자신을 그냥 그대로 봐줄참이예요.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까요.

잉크냄새 2007-04-22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심란하긴요, 그냥 읽던 시집에서 맘에 쏘옥 드는 시라서요.^^
춤인생님 / 그 페이퍼 저도 읽었어요. 봄비가 통하게 해주었나 보네요. 가끔은 그리 흔들려주는 것도 삶이 부러지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 조순호의 나무>

 

여백

- 도종환 -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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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7-01-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이 많은 사람에게 끌리면서도 내여백은 슬쩍 감추고 싶은 아이러니.

은비뫼 2007-01-3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여백...아름다운 풍경은 가득 찬 것만이 아님을 느끼게 하네요. ^^

내가없는 이 안 2007-02-01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비어 있는 사람인데요. ^^

水巖 2007-02-0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시도 전부 좋군요. 퍼 갑니다.

춤추는인생. 2007-02-02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들이 만들어 놓은 여백에 등을 기대고 쉬고 싶어지네요..

잉크냄새 2007-02-1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부족하고 빈곳이 많은 것이 어디 님만의 일이겠습니까. 대지에 발디디고 사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죠. 그것을 부족함이 아닌 여백으로 느끼면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나 싶군요.
우몽님 / 그 아이러니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하지만 님의 서재에서 님의 여백이 슬며시 비추어진다는 사실!!
은비뫼님 / 비어있지도 넘치지도 않는 어느 공간의 사이, 그곳이 여백이 아닌가 싶네요.
이안님 / 그거야 뭐,,,저도 마찬가지랍니다.ㅎㅎ
수암님 / 수암님의 서재에서 느끼는 삶의 여유로움과 여백,,,그것에 어울렸으면 좋겠네요.
인생님 / 나무들이 만들어가는 여백,,,그곳에서 님의 안식처를 발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