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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틱 낫한 스님의 책에 수록된 사진과 같은 풍이군요. 저 얼굴들중 하나가 나의 얼굴이었으면 싶습니다. 아니, 저 얼굴을 비슷하게라고 닮고 싶은 소망입니다.

잉크냄새 2005-03-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편안하고 욕망의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 그런 평안한 얼굴... 닮고 싶네요.

icaru 2005-03-1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요~

잉크냄새 2005-03-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은 저 얼굴을 닮아가시는것 같습니다.
 

시는 시만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시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쓸쓸해진다. 그것은 거의 생리적인 것이다. 시는 알몸의 시만으로 노출되어야 한다. 시는 일상적인 산문으로 분해될 수 없다. 시는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다. 시는 언어의 의미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떠받치고 감싸고 또 그것과 혼연 일체가 되어 있는 향내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시는 벙어리 소녀의 눈빛과 같은 것이다. 시가 전달하는 것은 하나의 침묵이다.

<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p13~14

언젠가 나는 시가 전달하는 것은 벙어리 소녀의 눈빛과 같은 침묵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논리의 손가락 사이를 새나가는 모래라고 했다. 무력한 언어가 잉태하는 안타까움이라고 했다.
참된 예술작품은 말하지 않는다. 시는 시만으로 직립해야 한다. 하늘의 높이에서 얼어 있는 햇살의 폭포같이 수직으로 혼자서 서야 한다.

<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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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05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는 가장 어려운 장르입니다.
시인은 가장 먼저 울며 가장 나중까지 우는 자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침묵의 소리를 읽는 일은 내면을 읽는다는 의미죠?
시는 시 만으로 직립해야 한다는 말에 200% 공감!!!

잉크냄새 2005-03-08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뭔 소린줄 모르고 읽고 있답니다. 시는 시만으로 직립하듯이 제 속의 시로만 살아나는 그런 시들인가 봅니다.
 

1.풍경

 

 

 

 

세잔느는 " 풍경이 내 가운데서 성찰하고, 나는 그 의식이 된다 "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세잔느의 눈이 생빅투와르 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풍경 생빅투와르 산이 화가 세잔느의 눈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보여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수없는 풍경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그 무한한 풍경 가운데의 어느 한 순간의 풍경이 느닷없이 어느 순간의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언젠가 어느 명승지에서 오히려 풍경을 만나지 못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일반적인 아름다운 경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경치들은 나의 시각을 자극했지만 그것들은 그냥 흘러가버렸다. 내가 이름 없는 한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은, 내가 풍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어느 순간의 나를 주박하고 마는 것이다. 

- 허만하 <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 p20~21 -

2.상처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내 초로(初老)의 가을에, 상처라는 말은 남세스럽다.그것을 모르지 않거니와, 내 영세한 필경(筆耕)은 그 남세스러움을 무릅쓰고 있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언어는 마치 쑥과 마늘의 동굴 속에 들어앉은 짐승의 울음처럼 아득히 우원하여 세계의 계면(界面)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이 세계가 그 우원한 언어의 외곽 너머로 펼쳐져 있는 모습이 내 생애의 불우(不遇)의 풍경이다.

- 김훈 < 풍경과 상처 >  p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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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2-2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는 하고 싶은데... 뭐라 입을 뗄지 몰라 하는 저를 보라지요.
님은 풍경에...대해..그렇군요..
저는 음악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지요.. 아주 가끔 있는 일인데요...비 오는 날 사람이 별로 없는 한산한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원래는 이 속(음악)에서 살았는데.. 똑 떨어져... 이 부박한 세상으로 튀어나온 게 아닌가...하는 생각 하지요.... 에고...써놓고보니,,, 에그머니 이게 뭔소리야 싶어 부끄럽네요 ^^;;

잉크냄새 2005-02-2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옮기기는 했지만 읽을때 끄덕끄덕 하면서도 온전히 저의 느낌이 되어 살아나지는 않더라고요. 어떤 극적인 전환점이 있던지, 더 오래 나이들어 보아야 슬며시 그런 느낌이 다가올라나 싶네요. 이상하죠. 비내리는 버스차창밖의 풍경은 남녀노소를 떠나서 그런 묘한 기분으로 다가오거든요. 이십대 초반에는 비가 내리면 가끔 버스를 타고 목적지없이 흘러가곤 했죠.^^

미네르바 2005-02-25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두 책을 참 좋아하지만,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지금보다도 더 나이를 먹고, 더 삶의 경험이 풍부해지면 제대로 이해할까요? 그래도 가까이 두고 가끔씩 펴 보는 책들이네요.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분명 상처를 경유해서 바라본 풍경은 다르게 해석되겠지요. 그럼, 상처없는 풍경은 심심할려나??? ^^

잉크냄새 2005-02-2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풍경과 상처>는 지금 읽고 있는데 글이 어렵네요. 악전고투하며 읽고 있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있어요.

파란여우 2005-03-0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글을 읽는 자체만으로도 상처죠..하지만 글은 잘 쓰잖아요
잉크님! 책을 읽으시면서 부디 상처 받지 마시길^^

잉크냄새 2005-03-0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나 주인공에게 완전히 몰입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고로 김훈의 글을 읽는다고 상처받거나 할일은 없을겁니다. 걱정마시길...^^
 


우리 인디언들도 종교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조상 대대로 그 자식들에게 전해져 왔다. 그 종교는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서로 사랑하라 이르고, 서로 기대어 살라고 일깨웠다.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선 왈가불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는 각각의 사람과 신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P136 ]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갈망과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있는 자의 신, 어린아이의 신, 문명화된 사람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고. 신은 우리의 얼굴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가를 놓고 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신은 다만 이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살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이들을 자신의 품안에 받아들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 인디언들의 변함없는 믿음이다. [ P138~139 ]


신과의 만남이 침묵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인간의 언어가 불완전하고 진리에 훨씬 못미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의 영혼은 말 없는 가운데 신에게 다가가곤 했다. 신과의 만남은 홀로 있음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우리는 믿었다. 신은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우리 자신과 가깝기 때문이다. [ P139 ]


오히예사 < 인디언의 영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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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1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많이 나면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이 인디언 관련책입니다. 잘나자빠진 정치가 어쩌고, 이념이 어쩌고 하는 그런것들 말고요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인디언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요.

플레져 2004-12-0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인디언 관련 책을 읽고 싶어서 늘 주목하고 있어요. 어떤 게 좋으려는지... 이 책을 한번 봐야겠네요. 땡스투..........^^

미네르바 2004-12-02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은 우리가 홀로 있을 때 우리 자신과 가깝기 때문이다. > 그래서 저도 자주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신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이 책 저도 읽어 보아야겠어요.

잉크냄새 2004-12-0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인간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감동적이죠.침묵과 경외감으로 가득한 그들의 삶은 항상 감동적이죠.

플레져님/ 다른 좋은 책 있으면 저에게도 추천해주세요.

미네르바님/ 님은 벌써 신과 가까이 계신 분이잖아요.
 

"그렇지만 감옥에 가는 일만이 죄는 아니야.  죄의 반의어를 알면 죄의 실체도 파악될 것 같은데.  신...., 구원.....,  사랑.....,  빛.....  그러나 하나님한테는 사탄이란 반의어가 있고, 구원의 반의어는 고뇌일테고, 사랑에는 증오, 빛에는 어둠이라는 반의어가 있고,  선에는 악,  죄와 기도,  죄와 회개,  죄와 고백,  죄와.....아아, 전부 유의어야. 죄의 반의어는 뭘까?"

-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p114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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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1-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의 반의어는 뭘까. 분명 머릿속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을것 같은데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파란여우 2004-11-1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 안죄....이런 분위기가 아닌가...두리번 두리번...^^

잉크냄새 2004-11-1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 안파란여우님인가요? ^^ 둘레 둘레....

파란여우 2004-11-13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좋아요 알았다! 무죄!!!!제가 이겼죠? 헤헤

잉크냄새 2004-11-13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마! 정말 이렇게 쉬운 단어인가요. 왠지 정답같으면서도 뭔가 허전해요.
아마 다자이 오사무가 기도니 회개니 고백이니 하는 거창한 단어들을 쭈욱 나열해서 그런가 봅니다.^^ <-- 변명 -,.-

2004-11-16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1-16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바람 2005-05-12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의 반대는 법, 그럼 법의 반대는 선, 선의 반대는 악, 악의 반대는 신, 신의 반대는 사탄, 사탄의 반대는 구원, 구원의 반대는 번뇌, 번뇌의 반대는 사랑, 그렇다면 다시 죄의 반대는? 이건 고등학교 때 했던 끝말잇기나 형용사 찾기 놀이처럼, 어느 순간에 앗, 하고 떠오르는 뭔가가 그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 일본어에서 죄는 つみ、つみ의 반대는 みつ, みつ는 꿀, 그럼 죄의 반대는 꿀! 그런데 내가 이상한 건, 죄와 꿀이라는 이상야릇한 음의 뉘앙스가 일본어에서 그대로 전해지는가 하는 겁니다. 단순히 곰을 뒤집으면 문이 되는 거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