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흑해 연안을 따라 터키 동부로 이동하고자 하는 계획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아마스라'라는 흑해 연안의 작은 어촌 마을로 향하게 된것은 '아마스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큰 몫을 차지했다. 붉은 지붕의 작은 어촌 마을의 사진보다도 그 위에 자리한 마을의 이름에 한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아마스라' 를 조근히 속삭여보면 아스라히 멀어져가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흐릿한 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발길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어촌 마을로 향하는 언덕길은 터키 겨울철 우기 특유의 날씨들 동반하였는데 빗물이 흐르는 창밖으로 지나치는 나무의 녹색 옷차림은 그 음울한 기분을 다소나마 달래지고 있었다. 차를 갈아타고 넘어가는 마지막 고개에서 바라본 작은 마을은 손바닥을 들어 가려질만큼 작은 곳이었다. 푸르른 바다를 배경으로 붉은 지붕을 어깨동무 삼아 자리잡은 마을은 동화속에서 구술되던 마을이라 할만했다.   

<아마스라- 북해 연안의 어촌 마을> 



세상의 어느 촌이나 마찬가지로 이곳 또한 젊은이가 떠난 마을을 노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한국전쟁과 월드컵으로 한국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곳 노인들에게 배낭을 메고 나타난 동양인이 신기했던지 바닷가를 산책하던가,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가 하면 영락없이 나타난 흰 수염의 터키 노인들에게 질문공세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들과 대화를 하거나 허름한 카페의 한 구석에서 바라보다 보면 터키 노인들에게서는 늙어감에 대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인생의 막바지를 향해가는 고독과 두려움보다는 현재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는 느낌, 최선을 다해 늙어간다는 느낌이 묻어난다. 세월의 바람에 조용히 풍화되어 가고 있는 자연스러운 늙음이다. 문득 인도에서 마주친 노인들이 떠올랐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인도 노인에게서 과거와 미래에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면 터키 노인에게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조화로움이 묻어난다고 할까. 그들이 바라보는 삶의 지평 너머에는 또 다른 삶이 푸른 돛을 달고 넘어가고 있는것 같았다.   

<아침 언덕 산책길에>

터키 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잠들기 전 두세 시간 동안 조용히 피우던 장작을 말하고 싶다. 이스탄불을 제외한 겨울철 터키의 숙소는 방마다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국민학교 시절 도시락을 데워 먹던 그 난로와 똑같은 것이었다. 촉촉히 떨어지는 비를 뒤로 하고 어둑어둑해진 골목을 돌아 들어서면 삐걱 열리는 문소리를 확인한 주인 양반이 한동이의 장작을 들고 나타나 오래된 잡지의 한쪽 면을 부욱 찢어 불을 붙이곤 사라진다. 전등을 끄고 장작을 한두개 집어넣으며 소파에 앉아 상념에 잠기다 문득 뒤를 바라보면 내 영혼의 그림자가 보이곤 한다. 한밤중 촛불을 응시해본 사람은 알고 있지 않을까. 그 불빛의 흔들림이 내 영혼의 흔들림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를 투과하여 뒷편의 벽면에 흔들리고 있다. 그건 그림자가 아니라 영혼의 투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듯 했다. 신처럼 완벽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불빛의 흔들림에 그저 속적없이 흔들리는 영혼. 그 속절없는 영혼이 바라보는 가운데 부끄러운 일기를 쓰거나 그리운 이에게 한통의 엽서를 띄우곤 했다. 두세시간후 영혼이 조용히 잠들면 나도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곤 했다.   

<언덕의 제일 좌측에서 혼자 머물다>

일주일 동안 샤프란볼루에서의 단 하루를 빼고 비가 촉촉히 내렸다. 겨울철 우기로 접어든 터키의 날씨는 사람을 축 쳐지게 만들어 여행 경로를 바꾸게 만들었다. 터키 중부에 자리잡은 카파도키아를 마지막으로 터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물론 한국 물가와 맞먹는 터키 물가에 질린 이유도 없지는 않다. 흑해 연안을 따라 터키 동부를 돌아보려던 계획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새로운 여행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아마스라의 어느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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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5: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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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14: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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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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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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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2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ㅋㅋ 크게 숨 한번 들이켜고 갑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구요^^

잉크냄새 2011-03-24 15:00   좋아요 0 | URL
저에게 후와님 만큼의 사색의 크기와 글솜씨가 있었다면 그 여행의 흥취를 더 잘 표현할수 있었을텐데요...아쉬워요..

후와님도 건강 유의하시길...

2011-03-22 1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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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3-2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찬찬히 한참 들여다 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계시네요.
옛날 천원 짜리 지폐를 가지고 마당 쓰는 마당쇠를 찾아보는 숨은그림 찾기가 유행이었어요.
답은 마당 다 쓸고 들어갔다...였구요.
언덕 제일 왼쪽의 집도, 지난 사진의 그네도 한참을 들여다 봤어요~^^

저는 장작은 고사하고, 촛불에 비춰 제 영혼의 흔들림을 한번 봤음 좋겠어요.
답은 불낼라...아닐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 2011-03-24 15:24   좋아요 0 | URL
앗,찌찌뽕.
예전 알라딘에서 이렇게 거의 실시간으로 댓글 다는 것을 찌찌뽕이라고 했지요.ㅎㅎ

제 사진이 그런 마력이 있군요. 거의 혼자 여행을 다니다보니 풍경 말고는 제 사진을 찍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로 설명하다보니...ㅎㅎ

2011-03-29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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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1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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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6 0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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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1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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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0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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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2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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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5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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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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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청소부의 꿈, 한 장 사진에 이끌리다"

길 가다 만난 어느 여행자가 한국에서 추천할만한 것을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세 가지를 말할 것이다. 하나는 끊어질 듯 아스라히 이어진, 달리는 버스 창으로 손을 들어 그 곡선을 따라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정겨운 시골의 산 능선이고, 둘은 느끼함으로 범벅이 된 그들의 속을 달래줄 고추 가루 흠뻑 묻은 김치와 반찬수 헤아리기 곤란한 전통밥상이고, 셋은 신발 벗고 누워 잠이 들어도 좋을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이다. 여행 중 가장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대부분의 나라가 화장실 사용이 무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도는 화장실 옆에 사용료 수급원이 앉아 지키면 대부분 그 옆에서부터 길게 줄을 지워 노상방뇨 하는지라 나도 그 옆에서 동참하곤 했다. 터키는 그 비용을 지불하는데 한국 문화에 익숙한데다 배낭여행자 특유의 경제 관념에 익숙해지면 그 돈이 그리 아까울 수가 없다. 비싼 곳은 무려 1유로나 하는 곳을 보았으니. 또한 여행이 길어질수록 10시간 이상 걸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자연스레 생리작용에 대한 통제력이 향상되곤 한다. 1유로의 건방진 유혹을 뿌리치고 샤프란볼루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 올라탔다. 경험상 다음날 새벽 도착하여 찾아들 숙소까지 문제없을 듯 싶었다. 얼핏 잠이 들었다 깨어난 곳은 고속도로 중간이었다. 차는 잠시 정차한 상태였고 잠결에 바라보니 훈련소로 향하던 청년들이 도로변 산기슭에 올라 일렬로 소변을 보고 있었다. 이게 왠 횡재냐 싶어 허겁지겁 기어올라 그들 옆에 일렬횡대를 유지하며 의식에 참여하였다. 잠시 후 왠지 나를 의식하는 눈초리가 느껴져 바라보니 터키 청년들이 전부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 기운이 느껴져 먼저 내려오니 한 청년이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왜 남의 나라에 와서 노상방뇨를 하나요?”
너희들이 하니 나도 하지. 이걸 자업자득이라 하니라
잠시 말문이 막힌 청년이 다시 조심스레 이야기를 걸었다.
저기, 우린 내일 훈련소에 입소할 예정이고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고향 앞으로 쏴! 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나름의 의식이죠
자업자득이란 말로 그의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반격에 다소 주춤하였다.
나도 한때 군인이었느니라
불쑥 이 말을 던지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잠든 척 하고 있으려니 성스러운 의식을 마친 젊은이들이 차에 오르며 조심스레 한마디씩 했다.
, 저 사람 예전에 군인이었대

<샤프란볼루 마을 풍경 - 반대편 언덕의 나무 한그루와 그네>

한때 굴뚝 청소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시절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주인공 꼬마가 검댕을 잔뜩 묻히고 굴뚝 청소를 하다 바라본 북유럽 어느 마을의 지붕 풍경에 사로잡힌 시점이었음은 분명하다. 굴뚝 옆에 주저앉아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어른스러운,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 지붕들의 끝없는 이어짐은 나에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고 이스탄불의 한 숙소에서 집어든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샤프란볼루로 이끈 것이었다. 그곳은 터키가 아닌 북유럽의 어느 마을인 듯 싶었다버스가 정차한 곳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고 언덕을 따라 쭈욱 이어진 길은 아직 여명이 다 밝아오지 못한 새벽이었다. 거미줄의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골목길은 오래되어서 낯설지 않은 숨결을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었다. 1층은 다소 투박한 석조 건물이었고 2층부터는 목조 건물의 형태였는데, 2층 건물은 1층보다 넓어 밖으로 튀어나온 건물의 아랫부분을 큰 나무 기둥을 사선으로 석조 건물에 박아 지탱해 놓은 형태였다. 그리하여 내가 걸어가는 좁은 골목의 윗부분은 이웃집의 창문이 상당히 가깝게 위치하여 서로 손을 뻗는다면 연서 한 장을 전달할 수도 있는 거리였다. 2층 목조건물은 사방이 직접 나무를 깍아 만든 유리창틀로 온통 채워져 막 떠오르기 시작한 햇살을 받기 시작한 동네는 가볍게 반짝였고 창과 창 사이로 겨우 들어선 햇살은 골목길을 서서히 은은하게 물들였다. 누군가 창을 열고 아침을 맞으면 창틀은 나무만이 지닐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을 골목길에 흘리고 있었다




<샤프란볼루 지붕 풍경 -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샤프란볼루에서의 일상은 단조롭고도 평화로웠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창 옆에서 주인 아저씨가 가져온 아침 식사를 마치면 신발끈을 묶고 부지런히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저 창 너머의 누군가는 내 발걸음 소리에 잠을 깨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햇살의 은은함과 창틀이 들려주는 경쾌함 울림이 일상의 분주함으로 사라질 즈음이면 가볍게 점심을 먹고 언덕에 올랐다. 그곳은 푸른 초원이 멀리 눈 덮힌 산을 배경으로 아득히 펼쳐져 있었는데 그 배경에 방점처럼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와 그네 하나가 소설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본 나무 옆의 비꺽거리는 그네에 앉아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을 바라보곤 했다.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검댕 묻은 소년의 어깨 위로 지나가던 바람과도 같았다. 내 어깨 어딘가에 내려앉았던 삶의 찌꺼기들은 살며시 바람에 실려 마을의 지붕위로 살며시 내려앉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집안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하나 둘 사라질 운명이었다. 언덕의 그림자가 지붕위로 번질 즈음이면 언덕을 내려왔다. 골목의 오래된 가로등이 하나 둘 불 밝히기 시작할 즈음 또 다시 창문의 경쾌한 울림이 들린다. 저 창을 만든 오래 전의 목공은 알고 있었을까. 그가 조심스레 깍아 만든 창틀의 가벼운 울림이 홀로 길 떠난 나그네의 마음을 이리도 어루만질 것을.  




<아침 산책길 찻집에서 - 차 한잔 얻어마시며>

중동 지역이 배낭여행자에게 각광받는 이유중의 하나가 이방인에게 베푸는 그들의 친절함이라 한다. 특히, 그들은 낯선 이방인을 집으로 초대하여 차를 대접하는 것으로 그들의 호의를 보여준다. 이방인 접대를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긴다는 유목민 특유의 핏줄이 아직 흐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러한 율법을 담고 있는 이슬람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 외곽을 따라 길게 움푹 파인 계곡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기 보다는 방향을 알되 돌아오기 곤란한 지점에 놓인 것이다. 두 시간 가량 숲을 헤치고서야 가시넝쿨을 온몸 가득 붙이고 올라오다 한 청년을 만났다. 약 한 시간 전부터 계곡 위쪽에서 나와 방향을 같이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준 청년이다. 그는 샤프란볼루의 한 호텔에 근무하는데 그도 산책을 나왔다 계곡 아래서 허둥대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를 따라 찾아간 그의 집은 소박했다. 담장 밖 건초 더미에는 흰 망아지가 홀로 풀을 뜯고 있었고 낮은 담장 작게 놓인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인 거실엔 난로 위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소박한 소파와 아래 깔린 거친 양탄자는 난로의 열기를 품어 아늑했다. 그의 동생과 약혼녀를 포함한 네 명은 난로 옆 양탄자에 둘러앉아 어설픈 영어나마 가능한 모든 말들을 쏟아냈다그들의 사진을 몇 장 담고 돌아오던 어느 다리 위에서 그는 하얀 볼펜을 건넸다. 골목길을 돌아서며 바라보니 그는 아직 그 다리 위에 서 있었다. 누군가 나의 뒷모습을 저리 오래 바라보아 주었던 적이 언제런가. 외로움은 같은 크기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 움큼의 관심과 애정이 이리도 마음을 감싸 안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는 작은 점이 될 때까지 그 다리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샤프란볼루 골목의 구두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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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 2010-07-13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맨 아래 사진에 시선이 오래 머뭅니다.
좋은 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잉크냄새 2010-07-13 17: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BRINY 2010-07-1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온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제 기억 그대로의 사진이라 더 반갑습니다.

잉크냄새 2010-07-14 09: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 마을의 저 풍경은 8년이 더 지난다 해도 그 모습을 지키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디 2010-07-13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긴 휴가를 받아놓고 여행을 떠날지에 대해 살짝 망설이고 있었는데 올려주신 글에 마음이 벌써 날아갔습니다. 작년에 터키에서 줄창 이스탄불에만 머물지 말고 흑해지역으로 올라가볼걸 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__)(^^)

잉크냄새 2010-07-14 09:22   좋아요 0 | URL
아무 정보도 없이 찾아간 터키인지라, 그저 이스탄불,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방명록에 붙어있던 한장의 사진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님도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

2010-07-14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5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7-1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면 항상 마음이 분주해 져요~
(항상 시간이 부족한 거 같아요~ㅠ.ㅠ)
그냥 한번 읽고 지나가는 걸론 왠지 부족한 거 같고,
붙들고 앉아 있다보면 빨려들어 넋을 놓고 앉아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저는 오늘,
'누군가 창을 열고 아침을 맞으면 창틀은 나무만이 지닐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을 골목길에 흘리고 있었다.'
요기까지예요~

아직 채 못읽어 추천은 누를 수가 없어요~
어느날 추천의 숫자가 하나 업그레이드 돼 있으면 제가 다녀갔구나 하세요~^^


잉크냄새 2010-07-14 09:21   좋아요 0 | URL
그저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 글을 읽으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벌써 기록했어야할 여행기를 1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하나둘 올리고 있고 그것도 한달에 한두번 밖에 못올리고 있네요.

님이 방문하실때 저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이 서재에 흐르리라 생각합니다.ㅎㅎ

2010-07-14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5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7-15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장실이 유료가 많다니...그저 으슥한 언덕에서 실례하는 수밖에 없군요.

잉크냄새 2010-07-15 16:26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도 군대를 갔다 오셨으니 터키에서는 슬쩍 실례하셔도 무방할 겁니다.ㅎㅎ
특히, 터미널에서 화장실이 유료일때는 참 할말이 없더군요. 그것도 비싼 곳은 1유로 가까이 하더군요.

양철나무꾼 2010-07-17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 서재 이름을 제 맘대로 '시간도둑'으로 정했어요~
자꾸 넋을 놓게 돼,시간이 쪼개져 있을 땐 들어올 수가 없어요.
오늘도 페이퍼 하나를 제것으로 만들지 못하네요~
눈꺼풀이 방바닥이랑 뽀뽀하자네요~^^

잉크냄새 2010-07-17 09:53   좋아요 0 | URL
시간도둑...좋네요. 갑자기 밥도둑이 생각나며 게장이 묻어있는 밥 한그릇이 떠오릅니다.ㅎㅎ
지금 돌아보면 뭔 글을 그리도 주저리 주저리 많이 썼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 옛날의 일이지만...

2010-08-06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9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0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0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9월1일 오후 4시에...9월 문안 인사 여쭐려고 왔다갑니다.
저 위의 그네가 숨어있다는 사진도 한참 보고 가구요~

저 사진을 대문사진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여?
(그럼 다른 사진들이 서운해 하려나~)
저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09-19 23:07   좋아요 0 | URL
덧.추석 문안 인사 여쭐려구요~^^

잉크냄새 2010-11-06 14:56   좋아요 0 | URL
아, 오랜 시간이 흘렀군요.
추석 문안인사에 이제야 답글을 답니다.
양철나무꾼님도 잘 지내시길...

風流男兒 2010-11-2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터키에 다녀오셨군요. 언젠가 꼭 가봤으면 하는 도시였는데 ^^
정말 좋으셨겠어요!!

잉크냄새 2010-11-26 15:21   좋아요 0 | URL
네, 터키도 워낙 많은 여행지가 있는지라 시간 여유되시면 오랜시간 걸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2010-12-2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3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오스의 손길을 피해 달아나다 "  


밤은 끝없이 이어졌다. 벌써 훤히 동이 틀 시간이었지만 밤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손길을 외면하고 자꾸만 달아나고 있었다. 비행기 꼬리에 살짝 얹혀질 아침 햇살을 피해 어둠은 서쪽으로 줄행랑치고 있었다. 벌써 깨어난 몸의 감각기관들은 기지개를 켜고 있었지만 어둠을 응시하는 마음 한구석은 아직 꿈이었다. 아니 진짜 꿈이었을지 모른다. 비행기 날개를 따라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고개 들어 바라보던 전설마냥 아득한 별의 속삭임이 아니라 내 귓가에 살며시 잦아드는 그런 속삭임이었다. 어깨 높이에 매달린 별은 그 눈높이 만큼이나 정겨웠다. 허리를 구부리고 자세히 보아야만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풀꽃처럼 손에 잡힐 듯 어깨에 내려앉는 별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바라보던 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인도 델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별을 보지 못했다. 첫 여행의 가벼운 흥분으로 저 아래 반짝이는 인간의 꿈을 보았다. 저 곳이 캘커타일까? 바라나시일까? 내가 곧 발디딜 땅에 대한 호기심에 하늘을 보지 못했다. 지금의 밤은 우편을 싣고 밤하늘을 비행하던 생떽쥐베리가 바라본 하늘이 그대로 펼쳐진 듯 싶었다. 그 별들 사이를 유영하던 그를 살며시 품어버린 지중해를 떠올리곤 그가 불시착한 별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후 도착한 이스탄불은 아직 어두웠다. 밤은 한참이나 더 계속되었다.  



<술탄 아흐멧의 블루 모스크>

비 오는 새벽 거리는 을씬년스러웠다. 술탄 아흐멧의 고풍스런 건물 사이 골목을 돌아 나온 택시가 공원의 어느 한 곳에 멈추어 섰을 때도 그곳의 풍경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 숙소를 찾아 한 바퀴 빙 돌았지만 허탕을 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비 내리는 벤치에 앉아 담뱃불을 붙이는 순간, 새벽녘의 푸르름을 배경삼아 환영처럼 떠오르는 블루 모스크가 보였다. 아! 짧은 감탄 속에 담배마저 떨어뜨리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저 푸르름, 어딘가 낯익다 싶더니 모든 세상의 새벽의 푸르름이 떠올랐다. 각각의 지역마다 그 채색을 달리하지만 그가 품어 안는 세상의 빛은 똑 같은 것이었다. 맥그로드 간즈의 안개빛 새벽도, 바라나시의 주황빛 새벽도, 포카라의 황금빛 새벽도 그 푸르름이 나를 감싸고 돌 때 깊은 바다 속으로 침전하는 아늑함에 빠져들곤 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술탄 아흐멧의 한쪽 편은 아야소피아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벽, 비에 젖은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 새벽을 맞이한 그 곳은 묘하게도 블루 모스크와 아야소피아 성당의 중간쯤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이번 여행은 이슬람과 천주교 두 신의 축복 속에 시작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술탄 아흐멧의 아야소피아 성당>

윗통을 벗어 제끼고 트럭에 올라타 터키 국기를 휘날리며 큰 소리를 외치던 젊은이들을 보았을때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줄 알았다. 가슴속 깊은 울분을 토해내듯 터져 나오는 함성과 그것에 화답하는 자동차의 경적소리는 분명 시위였다. 이스탄불의 버스 정류장은 온통 그런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잠시 후 사람들로 빙 둘러 만들어진 원 속에서 젊은이들이 부모님들을 모시고 나와 춤을 추었다. 나도 낯선 손에 이끌려 원 안으로 끌려가 잠시 몸을 흔들다 뻘쯤하게 나왔버렸다. 이 시위 같기도 하고 축제 같기도 한 행위가 무엇인지를 안 것은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였다.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기며 버스에 올라타던,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젊은이들의 촉촉히 젖어드는 눈빛, 까치발을 세워 겨우 버스 창문에 손바닥을 보이며 유리창 두께만큼의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끝내 울어버린 어머니의 눈물, 그 어머니의 눈물 뒤로 말없이 울음을 삼키던 아버지의 서먹한 눈동자. 굳이 한국의 군입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세상의 모든 부모 자식의 이별을 대변하던 눈들이었다. ‘그래, 터키도 징병제였지.’ 다음 목적지인 샤프란볼루로 떠나는 버스에는 훈련소로 향하던 수많은 젊은이와 이미 그 눈물을 경험한 여행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울컥해버린 슬픔의 전이, 서로 맞잡지 못한 어머니와 아들의 유리창 두께만큼의 그리움이 오늘 만큼은 그 어느 그리움보다 아득했다.  



<돌마바르체궁 내부>

여행지에는 아쉬운 그 무언가를 남겨두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한다. 특히 그 여행지가 다시 돌아와야 할 길 위에 있을 때에는 더욱 간절하다. 갈라타 타워에 올라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볼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저 해협을 유람선으로 건너 아시아를 밟는 것은 여행의 마지막으로 미루고 싶었다. 어차피 다음 목적지가 터키 북부인지라 아시아 지역이었지만 해협을 직접 건너는 일만은 마지막으로 미루고 싶었다. 지중해 해변을 거쳐 올라오려던 계획이 변경되어 이집트에서 비행기로 지중해를 통과하여 돌아온 다음 날 보스포러스를 건넜다. 터키는 떠날 때처럼 여전히 우기인지라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문득 인도-네팔 소나울리 국경을 넘던 일이 생각났다. 국경에 양발을 걸치고 대지의 어머니에게 인위적으로 그어버린 선을 쓱쓱 문지르며 느꼈던 아쉬움, 인간의 오만함이 인위적으로 만든 틀이 그 땅에 살아가는 이들을 규정한다는 씁쓸함. 가깝게 마주보는 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서양의 문명이 얼마나 많은 반목과 충돌을 거듭하였을까. 빗방울이 굵어지는 사이 유람선은 어느덧 아시아 선착장을 찍고 유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맞은편이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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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10-06-2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 잘 읽고, 보고 내려오다가 맨 아래에서 열불!!!

잉크냄새 2010-06-24 18:40   좋아요 0 | URL
저 연인의 모습 때문인가요?
그리 부러운 모습이 아니거늘...ㅎㅎ

털짱 2010-07-14 22:0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언니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잉크냄새 2010-07-15 09:48   좋아요 0 | URL
두 분 사이에 그런 협약이 있었군요.

blanca 2010-06-2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터키에 가셨군요...저한테 터키에서 온 파란 눈동자(행운을 준다고 했던가?)가 있는데...똑같은 곳을 가도 잉크냄새님은 더 크고 깊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 가 보지 못했지만 사진이랑 글이랑 보며 마치 가 본 듯한 느낌을 가져 봅니다. 이젠 유럽인가요?

잉크냄새 2010-06-24 18:41   좋아요 0 | URL
네, 그 행운의 터키석. 터키 곳곳에 팔고 있죠. 하지만 터키뿐 아니라 중동 모든 나라에 팔고 있더군요.
유람선을 타고 아시아 대륙을 찍고 유럽 대륙으로 넘어오는 길입니다. 실제 여행은 아시아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2010-06-24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5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5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6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4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5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6-25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여행서를 내신 적이 있나요? 글이며 사진이며 예사롭지 않네요. 다들 알고 있는데 혹시 저만 엉뚱한 소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담 용서하세요.

"어깨 높이에 매달린 별은 그 눈높이 만큼이나 정겨웠다."

이런 문장을 보면 누구든 잉크님이 다녀오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어질 겁니다^^

잉크냄새 2010-06-25 11:05   좋아요 0 | URL
전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일반 직장인입니다. 벌써 시간이 지난 여행이지만 그때의 기록과 사진과 기억을 추스려 저만의 여행기를 하나하나 적어나가는 중입니다.
다행이네요. 제 글을 읽고 누군가 제가 걸어간 그 길을 떠올려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6-3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잉크냄새님.
현대인들님 블로그에서 꼬리 잡고 들어왔어요~^^
글이 참 정겹네요.

시간을 두고 쬐금씩 아껴 읽어야 겠어요~

잉크냄새 2010-06-30 11:54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저도 현대인들님 서재에서 뵈었었는데 인사를 못드렸네요.
제 서재는 그저 넋두리나 푸는 서재인지라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저도 종종 뵙지요.

전호인 2010-06-30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때쯤 옆지기와 아이들을 문화체험 삼아 터키를 보냈었습니다.
동서양과의 문화(문명?)이 교차되는 지점, 터키.
여러가지 체험을 하고 온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각인시킨 듯 하여 기분도 좋았어요.

잉크냄새 2010-06-30 18:51   좋아요 0 | URL
작년 이맘때쯤이면 제가 귀국하고나서군요.
인도에서 어린 두 아들딸을 데리고 여행하는 제 나이 또래의 여성분을 만났습니다. 대학때부터 배낭여행을 시작한 그 분은 지금도 아이들의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더불어 여행을 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여행이 그 아이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리라 느꼈던 것이 문득 떠오릅니다.
참, 반갑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07-2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이라는 장르소설을 읽느라고 한동안 터키에 대해서 엄청 공부하며 머리 아파했던 게 떠올라요.

이 글을 3년쯤 전에 봤음...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돼서,좀 수월했을텐데...

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경험을 앞지를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잉크냄새 2010-07-23 13:08   좋아요 0 | URL
네, 경험이 지식보다 오래 남죠.
책을 통한 지식과 경험의 획득은 한계가 있죠. 지금은 중국에서 중국인을 경험중인데...어렵네요...ㅎㅎ
 

광대뼈가 주는 정겨움 중국 홍콩 -

홍콩은 실제 여행계획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환율상승에 따른 엄청난 비행기표 값에 대한 보상 심리로 1 2일의 스탑 오버를 신청한 곳이 홍콩이었다. 새벽 5시경의 홍콩은 아직 어두웠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간 무간도의 배경이 되었다는 침사추이는 아직 어둠에 휩싸여 황량했다. 몇몇 24시 편의점과 거리 청소를 시작한 청소부들의 부산함 사이로 골목을 거닐다 문득 이번 여행 중 여명도 밝지 않은 새벽 골목길을 걸어본 일이 처음임을 느꼈다. 도망치듯 빠져나간 델리 공항의 새벽과는 비교도 안되는 여유로움이라니. 인도인들이 종종 파키스탄인이나 네팔인이 아니냐고 묻곤 했다. 그 즈음 자전거 일주를 마치고 떠난 뒤라 얼굴이 검게 탄 상황을 인정하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파키스탄인 이냐고 묻는 그들의 저의는 아주 저열하고 비겁한 행위였다. 인도에서 가장 치욕적인 욕이 짤루 파키스탄(꺼져, 파키스탄 놈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 웃으며 파키스탄인이냐고 묻던 그들의 엷은 미소 뒤에 깔려있던 비굴한 저의와 입가로 흐르던 저열한 히죽거림이 다시금 느껴져 서글펐다. 인종과 국적과 정치적 견해로 한 인간을 판단하고 모욕하는 비열한 행위라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다시 한번 그 입을 놀리는 놈을 만나면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쳐야지 하는 마음을 가진 후로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네팔인이냐고 묻던 물음, 인도-네팔의 소나울리 국경을 넘으면서 , 그렇구나 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입국 사무소로 안내하여 하나 하나 꼼꼼히 알려주던 작은 키의 나이든 직원의 친절함은 인도에서 겪지 못한 행동이라 다소 당황스러웠는데 호기심으로 그를 한참 바라보다 발견한 것은 넓은 얼굴과 광대뼈였다. 그 얼굴이, 그 광대뼈가 주는 평안함과 정겨움이라니. 네팔 곳곳에서 마주치는 광대뼈들은 그 누구보다 정겨웠다. 비슷한 얼굴이 비슷한 마음을 가졌으리라는 알수없는 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 여명이 다가오지 않은 홍콩의 황량한 골목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홍콩 야경 >

첫날 홍콩의 야경은 환성적이라 할만했다. 소리와 빛의 향연은 30분 정도 진행된 걸로 기억한다. 침사추이와 반대편 선착장을 왕복하는 유람선에 몸을 싣고 물결의 일렁임에 몸을 맡겼다. 건물 사이를 흐르는 빛의 순간적인 소멸 뒤로 살며시 떠오르는 지난 여행의 추억은 여행 막바지의 감흥을 정리하기에 충분했다. 흔들리는 배 난간에서 마시는 한잔의 맥주는 다소 아쉬워지는 마음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둘째 날은 공항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시금 찾아 든 길이었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물길을 거스르다 거대한 장벽에 사로잡힌 기분이 들었다. 빛의 향연 한쪽에 자리잡은 SAMSUNG이라는 거대한 간판은 그 감흥을 완전히 깨뜨렸다. 인도 다람살라의 산골 마을에 자리잡은 핸드폰 대리점을 보고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면 홍콩 야경의 한쪽을 차지한 거대한 간판 앞에서는 막막한 서글픔이 느껴졌다. 자본주의 총아라 할 수 있는 홍콩의 당연한 모습이라 여겨지면서도 저 부도덕한 기업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떠올릴 이곳의 많은 이들의 모습이 서글펐다. 첫날의 풍경만 담고 떠났어야 했거늘, 홍콩의 야경은 그렇게 씁쓸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아있다



 <홍콩 침사추이 거리에서>

홍콩이 명품 쇼핑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약간의 발품을 팔면 정겨운 재래식 시장 풍경을 만나게 된다. 특히, 관상어들이 비닐 봉지 한 움큼의 물에 담겨 가게 문마다 걸려있던 관상어 시장, 길 모르는 이방인을 인도하는 향기로움과 회색빛 도시를 감싸고 도는 색감의 다채로움이 거리를 수놓던 꽃 시장, 그 꽃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 길에 아무도 살지 않는 숲에 누워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지저귀던 새 시장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의 시장은 시장 골목 양 옆을 차지한 난전 형태의 골동품 시장인데 옛 것에 대한 안목이 있다면 꽤나 값어치 있는 골동품을 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물건들이 많다. 그 시장에서 19세기 후반대의 1달러짜리 동전을 구했는데 안목은 없지만 꽤나 값어치 나가는 물건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보관 중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선 것은 범선 시절에나 사용했을 법한 나침반이었다. 그저 북극성만으로 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열망을 마구 헤집어 놓았지만 왠지 여행 막바지의 여흥과는 맞지 않아 손에서 놓아버렸다. 아마도 그 길이 떠나는 길이였다면 나침반을 샀을 것이다.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잠시나마 돌아오고 싶은 길이었다



<유람선 선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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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10-06-0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북극성만으로 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열망을 마구 헤집어 놓았지만 왠지 여행 막바지의 여흥과는 맞지 않아 손에서 놓아버렸다. 아마도 그 길이 떠나는 길이였다면 나침반을 샀을 것이다.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잠시나마 돌아오고 싶은 길이었다.]
홍콩다녀오셨군요. 전 홍콩하면 쇼핑과 아경 이 둘뿐인데.. 역시 잉작가님의 눈으로 바라본 그곳의 풍경은 남다르네요.
건강하고 좋아보이시네요.^^

잉크냄새 2010-06-05 11:05   좋아요 0 | URL
어차피 다시 떠날 길임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때 살걸 하는 후회를 종종 하곤 한답니다. 범선의 선장실에 가끔 등장하는 그런 류의 나침반이었는데 영화에서 볼때마다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때 쭈그리고 앉아 나침반을 바라볼때는 왠지 이걸 사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것만 같더군요.

비로그인 2010-06-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스텔에서 지난 주 한 뉴욕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젊은 브라질 출신의 아가씨와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브라질인의 생김새의 편견을 보기 좋게 벗어나 지극히 미국적인 모습의 친구였는데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는 다시 미국으로 가기전에 잠깐 독일에 여행을 온 친구였어요.

아시아인인 제가 여행을 다니며 겪게 되는 난감한 인종편견의 일들 몇가지를 이야기 했더니 원래 자신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으면 더 그런 경우가 많은거라고, 그리고 불어를 잘 못해 프랑스인들에게서 무시당했던 이야기들도 해주더라구요.

저는 지난주 우체국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과 싸웠었어요. 여자였는데 아주 기본이 안된 여자였죠.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한국남자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참 많은데 그 여자도 상대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할 수 있는 기본됨을 상실한 사람이어서 "너 독일인 맞니?" 그랬더니 "그래 "라고 그러길래 "대부분 독일인 들은 너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다들 예의를 갖출줄 알고 겸손하지..너같은 행동을 하지 않거든"이라며 따졌더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급 공손하고 친절해지더라구요..
아주 뭐 같은 경우였는데 브라질 친구와의 대화에서 제가 그랬죠.. 한국을 와본 적이 없는 이들이 꼭 한국을 무시하더라. 아시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긴 아시아안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좀 잘사는 국가가 못사는 국가를 무시하지요-여자는 무시하면서 유럽인이 아시아인인자기를 무시했다고 열내는 적지않은수의 한국남자들 보면 좀 웃겨요>>

개인을 한 인간으로 존중할줄 모르는 사람들이 언제고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까봐요..이부분 아주 할이야기가 많아요.. 저도..

잉크냄새 2010-06-05 11:20   좋아요 0 | URL
개인을 한 인간으로 존중할줄 모르는 사람들은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입니다. 스스로 뒤돌아보고 넓게 보지 않으면 그 틀을 깨고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인도 맥그로드간즈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가 초대해서 10명 정도의 서양인들이 참석한 술자리에 잠시 동행했었는데 유독 미국과 영국 출신들이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더군요. 아마 그들의 역사적 배경이 무의식중에 유전처럼 전해져온 것일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근데 왜 우리는 같은 피해자의 입장으로 서로 연대하고 아파하고 역사와 미래를 고민해야할 동남아를 그렇게 비하하는지... 1세기만에 식민지,동족간 전쟁,독재,산업화,무늬만 민주화,자칭 선진국 등 유래를 찾을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어 진정한 문화를, 우리를 돌아볼 기회가 없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군요.

비로그인 2010-06-06 10:09   좋아요 0 | URL
엄밀히 말하면 같은 피해자는 아니죠. 아시와와 유럽이라는 카테고리로만 따지자면 그럴지 모르지만 그 안에 또 여성과 남성이 있지요. 아시아인이면서 여성.. 그건 굉장한 의미를 함축한다는 걸 여행을 다니면서 저는 더 배운 것 같아요. 그나마의 같은 피해자 선이 아닌 엄밀히 말하면 여성은 그 더 아래에 있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성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는 한국의 남성적 문화가 있지요.

여행오면 한국남자들이 꼭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있어요. 유럽여자들이 아시아 남자들은 남자로 취급도 하지 않는다고.. 그나마 아시아 여자에게는 환상이라도 있다고.. <그 환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저에게는 이런말 또한 실실 웃으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내뱉는 한국남자들이 황당할따름이지요>-가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망을 보아요. 너희는 머리만 빈게 아니라 가슴도 비었구나.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지요

잉크냄새 2010-06-06 16:27   좋아요 0 | URL
전 여행중에 특별하게 차별받은 경험은 없었던것 같아요.남성인 영향이 크겠죠. 여행중 만난 몇몇 여성 여행자에게서 그런 이야기들을 전해들은 적은 있어요. 한국의 남성적 문화...한국 근대 교육과 군사문화의 잔재.저도 그 때가 아직 상당부분 습성처럼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한가지 위안이 되는건 그것이 그릇된 것임을, 벗어던져야할 잔재임을 알고 의식적으로 변하고자 하는 의지라 생각됩니다.

yamoo 2010-06-0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가을에 홍콩을 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여행 많이 다니는 후배 따라가는 건데, 가본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네요..포스팅보니 가고싶은 마음이 무럭무럭~~ㅎ

잉크냄새 2010-06-10 10:35   좋아요 0 | URL
네, 여행으로 가볼만한 곳입니다.
재래식 시장쪽으로 한번 가보세요. 홍콩 야경이나 쇼핑보다 더 기억에 남을듯 합니다.
좋은 여행되시길...

비로그인 2010-06-1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서재에서 가끔 뵈었는데 처음 인사드립니다. 여행작가이신가요?
글이 읽기 유연하십니다. 홍콩사진을 보니까 출장으로 몇 번 갔던 기억이 나서 아는체를 해 봅니다. 지금은 중국에 계신가봐요?

잉크냄새 2010-06-21 09: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이 늦어버렸네요.
이곳 중국은 단오절이 휴무랍니다.
여행작가는 아니고요, 그냥 일반 직장인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3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하기야 두 나라로 갈라질 때 엄청난 유혈충돌이 있었지요.

잉크냄새 2010-06-24 10:1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여행할 즈음에 발생한 뭄바이 테러로 인하여 인도-파키스탄의 암리챠르 구간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카슈미르 지방에는 총격이 공공연히 발생한다고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4 17:07   좋아요 0 | URL
인도는 중국과도 국경분쟁이 있고 또 타밀족 문제도 있고...굉장히 유혈충돌이 많은 나라지요.

잉크냄새 2010-06-24 18:39   좋아요 1 | URL
국경문제와 관련된 그런 사항을 접하면 인도는 또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진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5 16:23   좋아요 1 | URL
하하하...두 얼굴이야 인간이 사는 곳이면 다 있다고 봐야죠.우리는 일본이 이중적인 나라라고 하는데 주한외국인들은 한국인이 이중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잉크냄새 2010-06-25 17:20   좋아요 1 | URL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린 이중성은 일반 여행자들이 느끼는, 혹은 책을 통하여 소개된 인도인 특유의 가치관과 달리 저런 국경분쟁이 일어나는 부분이 더 큰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부분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5 18:53   좋아요 1 | URL
맞아요.우리나라에도 인도에 대해서 류시화같은 분이 소개한 것만 생각하면 갠지스 강의 구도자가 어쩌구...하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좀 살벌한 것 같아요.저는 민족분쟁 쪽에 관심이 많아서 인도에서 무서운 일이 많이 일어난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잉크냄새 2010-06-26 10:06   좋아요 1 | URL
네, 한국에 소개된 바와 같이 인도인의 가치관은 특이합니다. 일반 대중의 가치관은 분명 다른 문화와 비교할수 없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분쟁을 일삼는 정치인은 세계 어디나 똑같나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0-07-25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가 고파서 그런가요~
소동파가 생각난다고 하려고 했는데,동파육이 생각난다고 할 뻔했어요~^^

'떠남과 돌아옴, 그 길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더라도 발이 내딪는 방향이 다르듯 가슴이 내딪는 방향도 다르다.'
이 구절,가슴에 담아가요.

잉크냄새 2010-07-26 17:08   좋아요 1 | URL
동파육이 뭐죠? 전 못먹어본 음식 같네요.
어설픈 넋두리가 님의 가슴속에서 더 옹글고 아름다운 의미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양철나무꾼 2010-07-28 02:14   좋아요 1 | URL
일종의 돼지고기 장조림인데 뜨겁게 먹는 음식이예요~
동파육과 짝을 이뤄 얘기되는게,오향장육이구요.
떠남과 돌아옴,얘기를 해서 동파육과 오향장육의 대(댓)구를 떠올렸었어요~
(Hot dish&cold dish)
입장의 다양함에서 인종의 다양함으로 생각이 뻗어나갔고,
그 어디 쯤에서 님의 말랑말랑한 영혼(마리여사 마냥~^^)을 엿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10-07-28 12:52   좋아요 1 | URL
그런 음식이 있었군요.
말랑말랑한 영혼이라는 단어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바른 정(正)의 한 획을 그으며” 

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그가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의 낙인과도 같은 문신에 대한 글인데, 그들을 사회 약자의 위치에 놓고 바라본 이야기이다. 그들의 문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카멜레온의 보호색과도 같은, 가난한 이들의 자기 보호색으로 보는 시각이 흥미로웠던 글이다. 네팔에는 분따 라는 특별한 행태가 존재한다. 과거 마오이스트들이 트래킹 대상자들을 상대로 길을 막고 통행료를 받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는데 그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분따로 인하여 여행 일정이 종종 연기되곤 하는데, 네팔인들이 하루 동안 특정 도로를 막고 통행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행의 불편함을 뒤로하고 그들이 분따를 일으키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국 가난한 이들의 서글픈 이야기들이다. 같은 마을 사람의 장례식 비용 마련을 위하여, 가진 자의 폭정에 항거하여 그 억울함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넘어가는 히말라야의 언저리에서 버스를 가로막는 분따를 만났다. 몇몇 사람이 직접 쓴 비뚤비뚤한 현수막을 들고 길을 가로막고 몇몇 사람이 운전석으로 다가가면 운전수는 일정량의 통행료를 지불한다. 버스 승객 모두 그 행위에 그저 일상의 일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그 작은 항거에 대한 동병상련 때문일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통행료를 지불하던 젊은이마저 환하게 씨익 웃는다.



<박타푸르 더르바르 - 리틀부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더르바르(광장)에는 쿠마리가 산다. 네팔의 미신적인 풍습에 의하여 선발되는 4세의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다.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하여 선발되면 여신으로 추앙받는데 그 마지막이 서글프다. 어린 시절을 저당 잡혀 살며 어떤 교육이나 사회화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초경이 시작되면 불경하다는 이유로 결국 쫓겨나는데 일반인으로 돌아온 쿠마리를 맞아들이는 가족은 단명한다는, 쿠마리와 결혼한 남자는 단명한다는 나쁜 속설로 인하여, 쫓겨난 쿠마리는 평생 홀로 살아가며 생계를 위하여 거리의 여자로 살아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쿠마리는 카트만두 시내 더르바르의 한 건물에 살고 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는 여행자에게 이층 창문으로 살며시 얼굴을 보여주는 쿠마리는 운명의 서글픔을 알고는 있을까. 결국 보지 않았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서글픈 운명이 겹쳐진다면 그 운명의 무게로 발걸음을 띄지 못할 듯 싶었다. 더르바르 광장 뒷골목을 서성이다 여염집의 이층 창문에서 쿠마리 또래 인듯한 아이들을 보았다.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그들의 모습 위로 보지도 못한 쿠마리가 자꾸 겹쳐져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왠지 근접할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지던 박타푸르 광장의 노인>

로컬 버스에 흔들리며 찾아간 박타푸르 더르바르는 흡사 중세 시대로 귀환한 듯한 느낌이었다. 온통 흙색의 도시이다. 인도의 자이살메르가 풍기던 황금빛의 찬란함과는 다른, 흙만이 줄 수 있는 아늑한 온화함이 굴절된 빛으로부터, 막 응달로 접어든 벽으로부터 스며 나와 차분하게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듯한 탑과 사원의 웅장함, 그 사원의 주변에 형성된 민가의 단촐함에서는 대조적인 이분법적 의미보다는 오랜 세월 품고 살아와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조화로움이 느껴졌다. 그러한 골목을 거닌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가장 호사스런 경험일 것이다. 아득한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을 따라 걷다 보면 흡사 내 몸의 일부가 골목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하여 그곳을 벗어나 아득히 먼 길을 떠난다 해도 그 온화함에 살며시 눈을 감고 골목을 걷던 평화로움은 언제나 내 기억의 한 조각을 이루어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 골목은 언제나 포근하다> 

 
내가 머물던 숙소는 한국 여성이 운영하는 네팔짱 이라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카트만두에서 유명한 곳인데 식사를 위하여 찾아 들어간 부속 식당에는 꽤나 유명한 인사들이 히말라야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 들어 남기고 간 사진들로 가득했다. 우연히 그곳에서 포카라에서 막걸리 으로 만난 여행자를 만났다. 하루 일찍 네팔을 떠나는 그와 마지막 을 마시고 들어온 날 우리도 하나의 사진을 붙였다. 포카라에서 만난 네 명의 여행자가 사랑코트에 올라 찍은 사진인데 나머지 두 명은 인도로 향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사진 밑에 우리의 이름을 쓰고 바를 정()의 한 획을 긋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다른 두 명에게는 메일로 통보해 줄 예정이었다. 그는 이년에 한번 정도 네팔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십 년의 세월이 걸릴 거라 말했다. 난 십 년 안에 한 획을 더 그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웃었다. 그 사실이 다소 서글펐지만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밑에는 한 획으로 표현된 우리의 추억이 굵게 가로 지르고 있었다



<바를 정(正) 자의 한 획을 그었다. 누가 또 다음 획을 그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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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4-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인도와 네팔은 언젠가,갈수있을지 모르겠어요.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배낭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벌써 안락한 여행의 편안한 맛을 봐버렸다능 ㅠㅠ

역시 한 번 간 김에 다 돌고 왔어야 했는데..

전 여행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가는중인데 어쩜 잉크냄새님의 여행기는 묵히면 묵힐수록 점점 따뜻하고 깊어지는지요.

잉크냄새 2010-04-11 21:24   좋아요 0 | URL
가슴에 품은 열망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그 길위에 서리라 믿어봅니다.
아직 많은 도시가 남아있어요. 이제 1년의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눈만 감아도, 그 지명만 들어도 그 거리의 모습과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아마 평생동안 그 모습들은 잊혀지지 않을것 같네요.

비로그인 2010-04-1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마리 같은 여인들의 모습은 즉, 형태만 다를 뿐 여성을 학대하고 이용하는 그 근본에서는 공통인 모습은 그러나 21세기라는, 현대의 이세계 모든 도시들에서도 볼 수 있지요. 가장 진보했다는 서유럽에서조차 저는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요..
그 자식들에게 fuck you를 날리기도 했고 때려도 보았고 고함도 지르고 거리 한복판에서 미친여자처럼 싸워도 보았어요. 여자도 사람이라는 걸 시위해야 한다는 건 비참한 일이예요..

잉크냄새 2010-04-11 21:28   좋아요 0 | URL
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악습이죠. 의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 악순환의 고리를 결코 자를수 없겠죠.
시리아에 있을때 발생한 명예살인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다마스커스가 추해보이고 중동인들마저 비겁해보여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와버렸죠.

춤추는인생. 2010-04-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장의 노인사진 참 좋으네요. 뼈만 앙상한 사람을 보면, 미적으로 참 정갈하다 라는 느낌이 들어요.왜 이병률 시인이 시중에 순정 있쟎아요. 살이 붙어 흉이 많다고.
때론 뼈밖에 없는 저 정갈한 사진에는 가릴것 하나도 없는 투명함이랄까. 그런데서 오는 숙연함이 있는것 같네요.
인도에 대한 여러작가의 글들이 있지만. 잉크냄새님 글 참 좋죠.^^
화이팅이예요.!

잉크냄새 2010-04-11 21:3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저 사진 제가 찍은 참 많은 사진중에서도 아끼는 사진입니다. 박타푸르 광장 초입에서 만난던것 같은데 저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보았어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갔지만 결국 노인을 만날수 없었죠. 하지만 그 잔상이 한동안 남아있더군요.

paviana 2010-05-1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부지런했다면 이 글을 한달전에 벌써 읽었을텐데...
아래 사진 속에 잉크님 계신거지요? 어떤 분일지 궁금하네요.
근데 글을 점점 더 잘 쓰시는거같아요. 사진도 그렇고. 비결이 혹 있으신가요? ㅎㅎ

잉크냄새 2010-05-18 15:1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재초기부터 꾸준히 방문해주시잖아요.ㅎㅎ
글은....가슴에,추억에 남아있는 여행의 느낌을 풀어내기에는 전 너무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