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89년의 여름 어느 날쯤으로 기억한다. 시내 극장을 돌며 순찰하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뒷구멍으로 들어가서 봤던 인디아나 존스 3’ 는 한 동안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카우보이 모자, 낡은 가죽 재킷, 어떤 악당도 때려 잡는 가죽 채찍의 인디는 꿈 속에서도 나타나곤 했다. 그 당시 문과가 아닌 이과였던 난 인디와 같은 고고학자가 되고자 과감히 교무실을 밀치고 들어가 문과로의 전과를 요구하다 흠씬 얻어터지고 꿈을 접었었다. 성배가 보관되어 있는 페트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난 그 때의 추억에 잠겨있었다. 철없던 시절의 한낱 치기로만 여기기에는 간절했던 그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만약 전과를 하였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꿈이란 철이 들고 세상을 하나 둘 알아 갈수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일까? 인생에 가정법처럼 무의미한 건 없지만 한편으로 그것처럼 새로운 삶의 시각을 열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꿈은 잊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이의 가슴 깊은 곳으로 잠시 들어갈 뿐. 어느 날, 그 꿈의 언저리를 살며시 쓰다듬는 손길을 느낀다면 선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기지개를 켜고 살며시 일어나는 것이다. 페트라로 향하는 길 위에는 내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한 고등학생의 꿈이 동행하고 있었다.

 

 

<페트라 가는 계곡길>

 

 

최후의 성전 페트라로 진입하는 길은 수직으로 깍아지른 절벽 사이를 한참 통과하여 지나간다. 돌바닥을 디딪는 여행자들의 발자국 소리는 절벽 사이를 메아리쳐 성전에 잠든 기사의 선잠을 살며시 깨우는 듯 했다. 좁을 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은 형언할 수 없는 빛의 향연을 펼쳐 보였는데, 빛의 굴절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바람에 올라탄 빛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색조였다. 수 천년 동안 그 바람이 쓰다듬었을 적갈색의 바위는 오랜 세월 품어온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인도의 타지마할은 복도를 통과하는 순간 어둠 속에서 갑자기 짠!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페트라는 햇살과 바위와 바람이 연출하는 빛의 향연을 지나 바람마저 차단 당한 듯 깊어진 절벽의 어둠이 살며시 내려올 즈음 황금빛의 찬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그것은 빛을 향해서 서서히 나가가는 느낌을 안겨주었는데 절벽의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맞은 편의 절벽 한 면을 차지한 황금빛의 웅장한 페트라는 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바위 틈새의 황금빛을 쫓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딪던 그 순간의 두근거림이 아쉬워 몇 번을 되풀이 해 그 길을 걸어보곤 했다. 사실 인디가 도착한 성전은 페트라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 성전을 기점으로 산 꼭대기까지 고대 도시의 폐허가 펼쳐져 있었다 흡사 카파도키아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 카파도키아가 요정의 손길로 만들어졌다면 페트라는 신의 숨결로 만들어진듯 했다.

 

<페트라 초입>

 

<인디아나 존스3의 성배가 보관된 성전 - 성배를 찾아 들어갈 길은 없다. 그저 작은 방 하나>

 

 

발길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낡은 나무 판자에 쓰여진 세상의 끝이라는 글을 따라 난 길을 올랐다. 페트라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성전을 지나 올라간 돌 언덕 너머에 세상의 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색칠한 듯 완전히 다른 색으로 치장한 절벽과 산들. 온화한 황토빛의 완만한 산들이 음울한 진회색의 날선 절벽으로 바뀌는 순간 페트라를 지은 이들의 발길은 그 색감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으리라. 색의 경계가 이루어지는 절벽 위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더 이상 나아가기를 거부한, 발길마저 꿈마저 차단당한 그 곳에 세상의 끝은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페트라 정상의 성전>

 

 

<세상의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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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5-3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과였는데 문과로 옮기기 어려운 시절이었었어요.. ㅋㅋ

"인생에 가정법처럼 무의미한 건 없지만 한편으로 그것처럼 새로운 삶의 시각을 열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꿈은 잊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이의 가슴 깊은 곳으로 잠시 들어갈 뿐. 어느 날, 그 꿈의 언저리를 살며시 쓰다듬는 손길을 느낀다면 선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기지개를 켜고 살며시 일어나는 것이다. 페트라로 향하는 길 위에는 내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한 고등학생의 꿈이 동행하고 있었다"

"페트라는 햇살과 바위와 바람이 연출하는 빛의 향연을 지나 바람마저 차단 당한 듯 깊어진 절벽의 어둠이 살며시 내려올 즈음 황금빛의 찬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아...이 구절들 너무 좋아요.. ^^ 정말 적어두고 싶다..



뒤에 이어지는 글은 쓰고 계신가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12-05-31 17:11   좋아요 0 | URL
이과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네요.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문학관련 분으로 생각했었거든요. 에,뭐랄까. 비행기가 너무 높아서 어질어질합니다. 저는 그냥 그때의 느낌이라든지,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를 글로 적어보려고 했어요. 고민도 좀 하지요. 저에게는 소중한 여행기니까요.

뒤에 이어지는 글은 여전히 요르단 어딘가 일겁니다.

icaru 2012-05-3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웅장하고, 어쩐지 쓸쓸하고요. 으아으아..

잉크냄새 2012-05-31 16:53   좋아요 0 | URL
그쵸? 웅장하지만 어딘지 쓸쓸한 느낌. 저도 그때 느꼈던것 같아요.

風流男兒 2012-05-3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때 문과로 꼭 옮겼어야 했는데.. 라는 나름의 아쉬움이 남아 있긴 합니다. 물론 이과였기에 덕본것도 많았지면, 결국 대학은 문과로 들어간 걸 생각하면.. 조금 쌩뚱맞지만, 전 경복궁의 돌담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면, 이상하게 여기가 서울의 끝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몇번 있었어요.

여하튼, 제가 꼭 가봐야 하겠다는 많은 곳에, 잉크냄새님의 흔적이 남아있군요.
부럽고, 즐거워요. 생생한 경험을 글로 본다는 사실과 다시 가겠다는 생각을 또 품게 된 것에도요. ㅎㅎ

잉크냄새 2012-05-31 16:55   좋아요 0 | URL
이과 출신들이 많군요. 전 대학 역시 공대로 갔지만 공대에서도 전과 하려다 물리 빵구 나면서 좌절했던 경험이...ㅎㅎ

페트라는 제가 가본 유적지 중에서 가히 최고라고 생각해요. 원래 여행을 해도 유적지나 박물관 같은 곳을 잘 안가는 편인데, 페트라 만큼은 반드시 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언젠가 꼭 가실 날이 올겁니다. 원하면 이루어지니까요.

차트랑 2012-05-3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인들님께서 언급해주신 부분은
정녕 적어둘 만한 '어록'입니다~

어찌 이리도 좋은 어록을 남기실 수가 있는 거지요??
마치
'소현'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와 견줄 수 있는 표현력이 감동받습니다.
쩔어요~^^

잉크냄새 2012-05-31 16:57   좋아요 0 | URL
또 다시 비행기에 승선하네요.^^
좋은 글을 쓰시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장 적절하고도 아름다운 표현으로 할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테니까요.

2012-05-31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3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도 안돼!!!
이렇게 아름다운 묘사를 하시는 분이 이과라니!
말도 안돼요!!!

잉크냄새 2012-06-01 09:11   좋아요 0 | URL
흠,,,오늘 다들 왜 이러실까? 누가 보면 댓글 알바 푼줄 알겠어요.ㅎㅎ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은 저 페트라 자체의 풍경이었어요. 페트라 앞에 섰을때 진짜 말도 안돼 라고 외칠뻔 했으니까요.

차트랑 2012-05-3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 안~되요 되요 ㅠ.ㅠ

잉크냄새 2012-06-01 09:12   좋아요 0 | URL
저 풍경 자체가 말이 안되게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요.
저런 유적지라니...지금도 페트라 초입을 떠올리면 두근두근 합니다.

2012-06-01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06-0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디아나 존스 3에 나왔던 페트라네요.잃어버린 성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장소지만 영화를 보면서 참 멋지단 생각을 했지요.그런곳에 가신 잉크냄새님이 넘 부럽습니당^^

잉크냄새 2012-06-01 13:45   좋아요 0 | URL
네,인디아나 존스3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죠. 페트라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헤아릴수 없을 정도인데, 그때 당시 요르단 사람들은 스필버그에게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이 여행은 이미 꽤 시간이 흐른 여행기랍니다.

프레이야 2012-06-0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요르단의 페트라까지 여행하셨군요.
오래전 여행이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나 봐요, 잉크냄새님 기억속에요.
부러워요~~ 세상의끝,으로라니요. 세상의 끝! 가보고 싶어요.

잉크냄새 2012-06-04 11:26   좋아요 0 | URL
네, 한참이 지난 여행기죠. 미리 올렸어야 더 생생했을텐데 한동안 여행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아직 써야할 여행기가 많이 남아있어요.

rosa 2012-06-0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 4월부터 1년간 연구년(안식년) 휴가를 떠날 예정입니다.
힘들 때는 여행 계획을 짜고, 세계일주 바이블..같은 책을 사다 열심히 경로 수정해보고 있어요. 페트라는 세계일주를 한 많은 여행객이 추천하는 곳이지만 제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런 곳이 있구나,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년 전의 여행기록도 이렇게 살뜰히 올리시는 것을 보고 반성했어요.
열심히 적었던 여행공책을 다시 꺼내 살펴 봅니다.
틈틈히 기록을 정리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지난 여행기록들이 하나둘 제 서재에 옮겨진다면, 그건 모두 잉크냄새님 덕분입니다.^^

잉크냄새 2012-06-05 13:51   좋아요 0 | URL
와, 1년간의 여행이 되는건가요? 부러운데요.
여행의 기억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도 잘 잊혀지지 않지만 그래도 뭔가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어서 그때 거쳐간 도시들을 하나둘 적어보고 있어요.
님의 멋진 여행기 기대해 봅니다.

rosa 2012-06-05 22:40   좋아요 0 | URL
1년간 여행을 떠나려고 했는데 어쩌면 연구도 조금 하게 될지도 몰라요. ^^;
원래 예정하고 있던 것과 조금 달라질 수도 있는데, 연대 차원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 기회가 되면 일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하고 있답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요.
여행기는 남겠지만 멋지진 않을 거예요. 기대하지 마세요.^^;;;

잉크냄새 2012-06-06 09:46   좋아요 0 | URL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멋진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일과 더불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있는 여행이 되겠네요.
 

나를 키운 팔 할은 바람이라는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를 이 곳에 오래 머물게 한 팔 할은 바람과 골목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듯 하다. 다마스커스에 첫 발을 내딪던 그 날도 나를 처음 맞이한 건 바람이었다. 도로 변의 나뭇잎을 어루만지며 줄곧 나를 따라온 바람인지, 터줏대감처럼 줄곧 골목 어귀에 자리하고 있던 바람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버스를 내리던 순간 나를 감싸고 휘리릭 한 바퀴 돌풍처럼 말려 올라간 바람은 알 수 없는 편안함을 안겨주었는데 흡사 오랜 시절 기억 속에 무의식적으로 자리잡은 고향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투리 같은 편안함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명칭이 어색하지 않게 도시는 골목 골목에 수 천년 세월만이 품을 수 있는 오래된 채취와 오랜 세월 퇴적되어 조금씩 온기를 뿜어내는 포근함과 골목을 떠돌며 지친 이들의 방문을 살며시 두드리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 해가 기울어 골목을 빗겨 지나갈 때 쯤이면 골목은 감추어둔 또 하나의 빛깔로 채색되곤 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저 오래되고 묵은 색조라는 두리뭉실한 말로만 표현할 수 있는 어스름이 조용히 잦아들어 가고 있었다. 골목을 배경으로 달동네 같은 언덕 마을에 저녁이 내리면 세월의 무게에 내려앉은 별이 낮에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듯 재잘거리며 빛나고 있었고 별들마저 하나 둘 잠들 시간이면 숙소의 빼꼼히 열린 창 사이로 잠들지 않은 바람이 들어와 머물곤 했다. 다마스커스에 머문 내내 난 그렇게 바람과 더불어 골목을 서성이며 돌아다녔다.

 

 

 

<다마스커스 골목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골목>

 

 

<숙소앞 골목 해질 녘>

 

이때쯤 난 우연찮게도 누군가의 발자취를 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리아에 들어온 이후 머문 숙소에서 항상 하루의 차이로 못 만난 사람, 안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숙소를 찾아 들어가 저녁때쯤 여행 정보를 찾을 겸 방명록을 뒤지다 우연찮게 읽게 된 글의 주인공일 뿐이다. 그녀가 남긴 글은 만년필 (불분명하다) 로 한자 한자 눌러쓴 듯 정성스러웠고 글은 미려할 뿐 아니라 사색적이어서 난 그녀가 추천한 장소를 찾아 다녔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오곤 했다. 알레포에서도, 하마에서도 내가 도착한 날, 그녀는 어김없이 떠났고 그렇게 한편의 글을 남겨 놓았다. 다마스커스에 도착한 첫 날도 혼잣말로 그 사람은 오늘 이 곳을 떠나겠군주절거렸다. 골목을 돌아 어렵사리 찾은 숙소에 짐을 풀고 방명록을 살펴보았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이 곳 숙소를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숙소 모퉁이를 돌아서다 마주친 서너 명의 한국인중 한 명이 그녀였다고 한다. ‘, 한국 사람 같은데….’ 라며 언뜻 서로 뒤돌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여행은 겨울 나무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길에 오르면 낙엽 지듯 자신이 가진 욕망의 덩어리를 하나 둘 내려놓는 것 같다. 길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인지를 조금씩 보여주곤 했다. 난 아직도 가끔 그녀가 어떤 모습의 겨울 나무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다마스커스 골목에서 - 매일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아마 실연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싶다. 좀 슬퍼보였다>

 

 

마르무사로 향하는 길은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황무지를 가로지른다. 황량한 황무지 사이에 붓자국처럼 놓여있는 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광활한 계곡의 입구 쯤이었고 계곡을 따라 1킬로 남짓 더 올라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의 한 면을 차지하고 위태롭게 서 있는 마르무사는 넘어가는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는데 황무지의 노을이 아름다운 건 황량한 황토빛 산을 넘어가는 저녁의 그림자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느 종교의 옛 유적지인 것 같은 이곳은 별도의 수행자는 보이지 않고 오래도록 거주하는 여행자들이 그곳을 관리하고 있는 듯 싶었고 여행자들은 암묵적으로 그들만의 역할이 정해진 듯 나름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수장쯤으로 보이는 이는 언뜻 2~3살 연상으로 보이는 프랑스 여자였다. 저녁 식사 후 프랑스 여자의 권유로 그들의 종교 의식에 참여했다. 좁은 바위 틈새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넓은 장소가 나타나고 몇 군데 밝혀진 촛불이 어둠을 가까스로 몰아내는, 암벽화가 동굴 벽면에 그려진 암굴 교회였다. 로빈 훗에나 나올 듯한 후드티를 둘러쓴 그들이 진행하는 의식은 경외감과 더불어 이질감을 동반하여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가만히 동굴에 기대어 앉았다. 수 천년의 세월 중세 어느 수도승의 간절함이 느껴질 듯 싶어 벽면을 살며시 어루만지다 잠시 잠이 들었다. “졸지마후드티를 둘러쓴 프랑스 여자의 속삭임에 눈을 떴다. 솔직히 순간 쫄았다.

 

 

<골목에서>

 

종교를 경험한다는 것은 값진 경험이다. 우연찮게 길에서 만난 아랍 청년들을 따라 들어간 모스크에서 그들의 의식을 따랐다. 매일마다 듣던 그들 의식의 소리에 매료되어 있던 나로서는 그들의 제안에 흔쾌히 따랐다. 예배를 하기 전 먼저 입을 3번 헹구고, , 얼굴, , 머리, , 다리를 차례로 세 번씩 헹군 후 예배를 드렸다. 등에 짊어진 배낭을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나를 그들은 이런 성스러운 장소에서 별걸 다 걱정하네 라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을 믿는 이들의 간절함이 당신께 이르고 당신의 축복이 그들께 이르길 비나이다.’ 신을 믿되 특정 종교를 갖지 않은 나는 어느 종교의식이든 이런 식으로 그들을 축복하곤 했다. 의식을 마치고 뒤로 물러나 앉아 그들의 의식을 더 지켜보았다. 어떤 간절함이 있어 하루에 5번씩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을 축복하고 저런 선한 얼굴로 신을 축복하는가. 신 앞의 인간은 그 간절함에서 있어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인간을 종교로 구분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신앙이라는 것이 그저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기도하는 간절한 만큼의 크기면 어떨까, 버거운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버리고 싶은 짐의 무게만큼이면 어떨까.

 

 

<반짝이 모스크라고 이름 붙이다>

 

 

<물 파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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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5-1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포근한 여행기입니다.
또한, 말씀해주신 그녀가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과연 어떤 모습의 겨울나무로 살아가고 있는지...
제가 다 궁금해진답니다^^

여행기를 읽으니
왜 여행을 떠나라고들 말씀하시는지...
그 이유를 이제는 알 듯 도 합니다...
누군가가 술집에서 다마스커스 어짜고 하면서 마치 직접 가본 것 처럼 떠들면
그게 저인 줄 아세요^^

잉크냄새 2012-05-15 09:41   좋아요 0 | URL
혼자 떠난 여행이었는지라 길 중간 중간 사람이 문득 그러워지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골목 어귀에서 한국말이 들려온것 같은 환청에 이끌려 한참을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찾아 헤매보기도 하고요.

이제, 술집에서 팔미라와 다마스커스를 이야기하는 누군가를 만날수 있겠군요.ㅎㅎ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15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랑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네요.
여행길의 로맨스, 꺄ㅡ
상상만 해도 즐거운데요? :)
여행기가 아름다워서 간만에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듭니다.

잉크냄새 2012-05-15 09:49   좋아요 0 | URL
지금은 그저 중동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을 뿐이죠.
여행길의 로맨스를 한번쯤 꿈꿔보지 않은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길을 혼자 돌아다녔답니다.
저도 훌쩍 떠나고픈 마음은 항상 가슴 언저리에 남아있어요.

icaru 2012-05-1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정말 멋있어요! 사진도 글도..

여행이 낳은 명문이에요. 다음 부분이요~

여행은 겨울 나무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길에 오르면 낙엽 지듯 자신이 가진 욕망의 덩어리를 하나 둘 내려놓는 것 같다. 길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인지를 조금씩 보여주곤 했다. 난 아직도 가끔 그녀가 어떤 모습의 겨울 나무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조금은 쓸쓸한... ㅎ

뮤지컬 김종욱 찾기, 가 생각나는 여행기예요. ㅎㅎ 혹시 보셨어요? 잉크냄새 님?

후드티를 둘러쓴 차림의 사람들 속에 종교 의식이라니,,, 우아..중세의 콜레라가 떠올라요. ㅠㅠ) 이래서 어릴적 각인이 무서운 거죠...
어릴 적에 봤던 것 중에 페스트였나 흑사병이 창궐한 성에 시체들이 즐비하고 후드 차림의 수도사들이 시체를 치우는 그런 장면요.. ㅠㅠ)

잉크냄새 2012-05-21 11:47   좋아요 0 | URL
김종욱 찾기에서는 어느 정도의 만남이 전제되기도 했지만 전 그저 발자취만 따라서 간 경우니 좀 다르죠. ㅎㅎ 그 골목 꺽어지는 곳에서 언뜻 마주친 것이 마지막이니까요.

중세의 후드티를 보면 전 로빈훗이 먼저 떠올라요. 어두운 암굴 교회에서 후드티를 쓴 사람들의 의식을 볼때 사실 조금 불안하기도 했답니다.
 

어스름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그 소리는 어김없이 마을 전체를 고요한 평온함으로 휩싸고 있었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 낯설지 않다고 느낀 것은 심장 언저리에 와 닿는 파형이 기억 속의 어느 지점과 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길게 꼬리를 끄는 그 소리에 나도 눈을 감고 기억 저편을 더듬어 보곤 했다. 해질녘 짝사랑하던 소녀의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소년의 등뒤로 울리던 성당의 종소리, 어두운 밤 길을 잃고 헤매다 찾아 든 산사에 울리던 풍경 소리, 시체 한 구가 온전히 타들어가는 시간을 뒤로하고 울리던 힌두 의식의 어수선함, 기억은 그 소리들 사이를 꿈결처럼 날곤 했다. 소리가 잦아들 무렵 눈을 뜨면 하나 둘 켜지는 등불이 어둠을 조금씩 물아내지만 골목 한 구석에 움크린 소리들은 바람이 불면 그런 기억 한 조각을 또 다시 불려내게 만들곤 했다. 이슬람 의식을 알리는 이 소리는 하루에 다섯번 울리는데 새벽녘 잠이 덜 깬 얼굴로 창을 활짝 열고 심호흡으로 맞아드리던 처음과 하루의 상념을 어둠의 무게로 땅으로 끌고 들어가던 마지막 소리가 가장 정겨웠다. 그 소리가 들리던 시간 만큼은 시간이 정지된 듯한, 오직 나만이 깨어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는데, 여명이 밝아오는 어스름의 언저리가 만져질 듯 느껴진다든지, 어둠의 장막이 극장의 커튼처럼 살며시 내려앉는다든지 하는 꿈 같은 노곤함에 젖어들곤 했다.

 

 

<팔미라 유적지로 가는 길 >

 

 

시리아를 여행한 후 다시 터키 지중해 연안을 돌아 이스탄불로 올라가려는 여행 계획이 바뀐 것은 아마도 이 곳에서 본 아파미아 때문일 것이다. 팔미라는 워낙 유명한 곳이지만 아파미아는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지중해 연안의 고대 유적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아파미아를 보는 순간 더  이상 그리스 시대의 유적을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실망이라든지 감탄과 같은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고대의 폐허 아파미아는 고즈넉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 북유럽인으로 보이는 중년 부부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따스한 햇살은 순백의 유적을 더욱 눈부시게 했으며 초록잎을 흔드는 가벼운 산들 바람은 고대인의 혼백을 다시금 불러내어 봄을 만끽하는 듯 싶었다. 반면,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무지 한 가운데를 세 시간 가량 질주해야 도착하는 팔미라는 웅장함의 무게만큼이나 황량했다. 유명세를 입증이라도 하듯 카탈루니아 민속 공연단이 민속춤을 추고 있었는데, 춤조차 고대 신을 축복하는 하나의 초라한 의식처럼 보였다. 언덕 위의 아랍성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휘몰아치는 모래 바람은 사막의 여왕의 신비를 감추려는 듯 팔미라를 휘감고 다시 아랍성문 안으로 빨려들어가곤 했다. 초록 풀빛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은백색의 아파미아는 황토빛 모래 황무지의 거센 바람 속에 오랜 세월 상처 입은 팔미라와는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아파미아가 거울 앞에 앉아 긴 삼단머리를 곱게 빚질하는 아프로디테라면 팔미라는 금방 전투에서 돌아온 듯 붉은 피를 뿌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레스였다.

 

 

 

<아파미아 유적지>

 

 <팔미라 유적지>

 

시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유독 봉고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르비스라 불리는 이 봉고는 장거리 버스 노선을 제외한 단거리 노선을 주로 운행한다. 도시 안의 교통은 세르비스로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금을 내는 방식이 의아하기도 하고 정답기도 하다. 세르비스에는 별도의 요금함이 없는데 차에 오른 사람은 자기 앞의 사람에게 돈을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운전석 뒤에 등을 맞대고 앉은 손님이 돈을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리아에 있는 동안 세르비스에서 거의 요금을 내지 않았는데 요금을 안 내려는 꼼수를 쓴 건 아니었다. 보통 버스 안내양의 역할을 대행하는 손님이 한 눈에 봐도 이방인 티가 훌훌 풍기는 나에게 손사래를 치며 버스비를 내지 못하게 한다든지, 혹은 이미 걷어간 돈을 살핀 운전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버스비를 다시 돌려주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 것이다. 어떤 날은 그저 싱긋이 웃음으로 화답하며 무임승차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이 얼마나 화기애애하고 장려할만한 미풍양속인가. 사실 이 즈음에 예멘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발생해 신경이 곤두설 즈음이었지만 세르비스 안에 흐르는 그들의 마음은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고도 남을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팔미라앞 스페인 카탈루니야 전통 민속춤 공연>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유독 친절한 것은 이방인 접대를 명예시하는 유목 민족의 피가 면면히 이어져 온 이유이고, 그들의 경전인 코란에도 이방인 접대를 하나의 커다란 덕목으로 삼음이 또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 공원이건 유적지건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가면 그들은 어김없이 집으로 초대하곤 하는데 한 이슬람 영감님을 만난 건 아파미아 유적을 돌아보고 오는 길이었다세르비스를 기다리며 도로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사과를 베어 물고 있을 즈음 검은 옷으로 온 몸을 휘둘러 감고 약간은 어색한 선글라스를 낀 영감님이 오토바이를 멈추었다. 숙소가 있는 도시로 돌아가려면 이 곳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역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곳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준다는 말을 미끼로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전혀 어색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집과 마당과 마당 한 켠에 꾸며진 작은 화단이 내 어린 시절 기억 어딘가에 자리잡은 큰 집의 이미지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큰 아들 내외와 작은 아들, , 손녀를 차례로 소개받고 인사를 나눈 후 마당 한 켠에 자리잡은 돌로 만든 식탁에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가부장적 권위인지 식탁이 좁아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여자들은 식탁을 같이 하지 않고 이층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나와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은 미소를 띄곤 했다. 어린 손녀만이 영감님 무릎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방인이 먹는 모습을 낱낱이 살펴보고 있었다. 히잡을 쓴 중동 여성을 가까이에서 정면 촬영한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영감님이 모든 사진에 낀 것은 영감님 습성이 사진 찍히길 좋아하는 것인지 여성만을 사진 찍히게 할 수 없다는 영감님의 말이 사실인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크락데 슈발리에성 -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이 점령후 10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성. 아쉽게도 론니 플레닛에는 십자군이 100년을 수성한 역사로 표현되나 십자군이 100년을 약탈 점령한 성이란 표현이 명확한 입장이 아닐런지, 어차리 약탈의 역사란 건 다 아는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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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4-0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마에는 위에서 언급된 유적지가 하나도 없다.커다란 물레방아가 좀 유명한 도시다. 다만 숙소로 잡고 팔미라, 크락데 슈발리에성, 아파미아 등을 하루 코스로 다니기에 좋은 곳이어서 여장을 풀었다. 좀더 아래 홈즈도 그런 중간 기착지로 괜찮은 곳이다.

Forgettable. 2012-04-09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안그래도 봄바람 살랑살랑 떠나고 싶어서 흔들거리는데 아주 바람을 불어 주시네요. 그리고 언제나 감동하지만 글 참 좋습니다. 저도 이런 묘사 한 번 해봤으면^^

잉크냄새 2012-04-10 09:23   좋아요 0 | URL
아마 저도 봄바람 살랑살랑 거리는 바람에 오랫만에 여행 이야기를 또 적어본건지도 모르겠네요.
봄은 그런 마력을 지닌것 같습니다. 마음을 붕 띄워서 어디론가 발길을 내딪도록 등 떠미는 그런 마력 말이죠.

못난 글 항상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icaru 2012-04-1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잉크냄새님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다녀오신게 아니신가!!!
여성 혼자만 찍히는 사진을 방지코저, 모든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신 선글라스 영감님 이야기도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네요~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슈발리에 성이 제게는 큰 임팩트를 주는데, 성 아래 광경은 어떤지 몹시 궁금해지네요 ㅎㅎ 더불어 처음으로 근접하여 촬영하였다는 히잡을 쓴 중동 여성의 모습도요 ^^

잉크냄새 2012-04-10 13:32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사진 찾아봤더니 영감님이 대머리네요. 히잡쓴 따님들도 햇살을 받아 다 찡그린 표정이네요.ㅎㅎ

크락데 슈발리에성은 과연 저 곳이 함락될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거대하고 잘 보존되어 있더군요. 단순히 요새라기 보다는 그 전쟁이 있기전에는 아름다운 성이었음을 보여주는 복도의 회랑이라든가 암튼 난공불락의 요새안에 또 다른 미적 요소를 감추고 있습니다. 성 아래 풍경 또한 대략 60도의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근처 입구의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 또한 좁은 언덕을 통과하기 때문에 접근이 상당히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은,,, 그냥 당나귀가 비탈에 위태하게 서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더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4-1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아름다워요 +.+
이슬람 의식을 알리는 소리...
저는 인도에서 자다가 그 소리만 들리면 알 수 없는 두려움, 불쾌감 같은 것들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고요한 정적을 가르는 그 경건한 소리가 낯설고 무서웠어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요?
시간이 지나고 기억도 흐릿해지니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잉크냄새 2012-04-10 13:45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는 그 소리가 낯설었어요. 특히 도심에서 듣는 소리는 더 낯설게 느껴지곤 했답니다. 이슬람 의식의 저 소리가 처음으로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사프란볼루에 머물때입니다. 제가 언덕 중간쯤의 3층에 머물렀는데 아침 저녁으로 낮게 깔린 전통 가옥의 지붕들 위로 잦아들던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답니다. 그 후로도 도시보다는 인적 드물고 전통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인 그런 곳에서의 저 의식을 알리는 소리는 알수없는 편안함을 항상 느끼게 해주었답니다.

風流男兒 2012-04-18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도 감탄만 하고 갑니다.
사진만 봐도 가슴이 벅차는데, 실제로 보면 또 어떨까요.
설렘을 안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잉크냄새 2012-04-18 13:44   좋아요 0 | URL
여행을 마치고나서 그 여행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사진만한게 없는것 같아요.
비자와 출입국 도장이 잔뜩 찍힌 여권, 풍경을 하나둘 안고 있는 풍경 사진, 전통 시장 구석구석에서 사 모은 작은 기념품들, 그리고 기억들...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떠올리게 하는 것이 한장의 사진 같습니다.

검둥개 2012-04-1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네요. 덕분에 좋은 대리여행했어요 ^^

잉크냄새 2012-04-23 14:16   좋아요 0 | URL
오랫만이네요. 잘 지내시는지요?
저도 지금 사진을 보면 기억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차트랑 2012-04-24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여행과는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군요 ㅠ.ㅠ
저는 겨우 국내를 하루 횅 하니 다녀오는 정도거든요^^
지난 번에 가장 멀리 여행차 간 곳이 울진이었답니다.
국내에서 왔다갔다 하는거죠^

오늘 방문이 처음이지만
눈에 익은 닉네임들도 보입니다.

저의 활동 범위가 제한 적인 것은 여행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알라딘의 이웃들도 마찬가지네요^^

좋은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되면 또 따라서 가 보고싶어지고 그렇다니까요^^

잉크냄새 2012-04-25 10: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한국의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게 조금씩 여행하게 되죠. 저도 물론 그랬으니까요. 전 직장을 옮길 즈음에 시간내어 장기 여행길에 올랐답니다. 그때의 이야기를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올리고 있답니다.

종종 인사나누겠습니다.

차트랑 2012-04-26 23:54   좋아요 0 | URL
아...네..고맙습니다.
참 좋은 여행이었겠다 싶습니다.
자주 이곳 저곳을 다니고 싶은데 여의치 못하답니다.
검둥개님의 말씀처럼 이곳 서재에서
'대리여행'을 할까봅니다^^

여건이 되시는대로 소개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평안하세요..

잉크냄새 2012-04-27 11:05   좋아요 0 | URL
허접한 여행이라 대리여행이 될려나 모르겠네요.

글재주가 없는지라 여행기 한편한편 올라오는 간격이 아주 길답니다.^^

차트랑 2012-04-27 20:07   좋아요 0 | URL
어이구, 무슨말씀을요 잉크냄새님,
충분히 대리가 가능합니다!
제가 안가보고도 은근 가본 척 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페어퍼랍니다^^
그러므로
경험이 그만큼 잘 전달된 좋은 글입니다.
어느 술자리에서
지중해, 이슬람 어쩌구 떠드는 사람있으면
그게 바로 저인줄이나 아세요 쿠더덩~^^

잉크냄새 2012-04-28 16:55   좋아요 0 | URL
그 이야기 소재를 위해서도 부지런히 써봐야 겠네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다음 목적지는 '다마스커스'랍니다.

차트랑 2012-04-28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잉크냄새 2012-05-02 10:09   좋아요 0 | URL
네 ^^

뽈쥐의 독서일기 2012-05-2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넘 멋져요. 특히 창문에 앉아 노래하고 있는 청년 사진이요!

여행에서 좋은 경험을 하셨네요. 부러워요. 저도 겨울나무가 되고 싶어요..^^

잉크냄새 2012-05-30 09: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창문에서 노래하는 청년은 이 페이퍼가 아니고 다른 도시인데...ㅎㅎ
농담이고요 종종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그 도시가 하나의 색채로 기억되는 경험이 종종 있다. 인도 자이살메르가 골목 곳곳에 부서져 내리던 황금빛으로 기억되는가 하면 바라나시는 화장터 주변을 감돌던 엄숙한 기운과 묘하게 어울리던 회색과 검정의 어느 중간색으로 기억되곤 한다. 시리아 국경을 넘어서던 알레포행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감탄사를 뱉어내고 말았다. 아마 터키에서 느끼지 못한 중동에 대한 나의 색감이 딱 맞아떨어진 때문이리라.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이 풍경마저 갈라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는데 터키의 녹색 산림이 순식간에 시들어 황토빛 벌거숭이 산으로 변한 듯 하고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민가는 회색 콘크리트의 무거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삭막한 내륙의 도로 위에서 문득 고향의 비 내리던 항구가 떠올랐다. 비 내리는 잿빛 항구는 그 비내음 속에 항구 특유의 비린내를 품곤 하는데 묘하게 얼버무려진 비와 바다의 내음은 음울한 항구의 잿빛 하늘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곤 하였다. 그 잊을 수 없던 유년시절의 비 내리던 풍경이 햇살 찬란한 중동의 어느 삭막한 길 위에서 묘하게 일치해 버린 것이다. 때론 눈부신 태양이 더 우울할 때도 있다. 지금도 한 대의 버스가 달리던 황량의 그 길위의 풍경을 잿빛인지 황토빛인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알레포 전경 - 알레포 성 위에서 바라본 시내 풍경>

 

 

중동의 이미지를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검은색 챠도르를 고를 것이다. 온 몸을 감싼 챠도르 사이로 반짝이는 두 눈, 그것이 내포하는 중동의 여성에 대한 억압. 책을 통해서든 매체를 통하여 내가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중동 문화의 한 단면일 것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챠도르를 입은 여성들과 종종 눈이 마주치곤 했는데 챠도르 사이로 슬쩍 보이는 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는 모습이 낯설고 어색했다. 성에 대한 억압이 어느 한쪽 성에 대한 편향된 억압임을 여실히 보여주던 풍경은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치던 삼류 에로 극장과 화려한 여성 속옷 가게였다. 가슴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성의 나체가 그려진 극장의 간판은 온 몸을 검은 장막으로 감싸고 지나가던 여인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창문 너머 붉은 색의 화려한 속옷을 입은 마네킹 앞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던 가게 앞 검은 챠도르 차림의 여성은 아내의 속옷을 직접 고른 듯 쇼핑백을 들고 나온 남편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뜨면서도 못내 아쉬운 듯 눈길을 쉽사리 거두지 못하는 눈치였다. 속옷을 고르는 선택권마저 차압당한 느낌이었다. 한동안 벽에 기대어 길을 오가는 숱한 차도르의 물결을 바라보았지만 어떤 거센 바람이 불어 그들 삶의 이면이 벗겨지고 재구성될지 이방인의 눈으로 가늠하기 힘든 일이었다.

 

 

<알레포성 - 다리 위의 작은 검은 점이 사람이다>

 

 

알레포로 향하는 버스에서 만난 일본 여행자는 꽤나 여행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숙소에 대한 정보도 없는지라 그를 따라 숙소를 잡았다. 저녁 식사후 그가 중동 남자들이 즐기는 무언가를 소개해준다길래 무작정 따라나섰다. 이미 어두워진 골목길을 따라서 도착한 곳은 물담배를 파는 곳이었다. 여행을 한 도시마다 그곳 사람들이 여유로운 저녁 나절을 보내는 장소가 있곤 했다. 터키 골목의 은은한 불빛 아래 찻집이 있었다면 시리아는 어두운 골목 유리문 뒤로 뽀얀 연기를 품으며 물담배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쳐다보는 그들 사이에 자리를 하였다. 시샤 라고 불리는 물담배는 파이프에 물을 넣은 후 맨 위 쿠킹 호일로 싼 부위에 석탄을 올린다. 파이프로 흡입하면 가벼운 물소리와 함께 연기를 흡입하게 되는데 재료가 과일인지라 과일향이 많다. 그때 피운 향이 무엇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장미향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슬람 전통 복장부터 퇴근 길의 양복 입은 신사까지 각양각색의 그들과 눈웃음을 주고 받으며 한 시간 가량을 피고 나왔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물담배 연기가 뽀얗게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담배를 한시간 피면 일반 담배 200개비와 맞먹는다고 한다. 얼씨구나.

 

< 알레포 물담배 가게에서>

 

 

어느 시인은 잘 빨아서 다리미로 잘 다리기까지한 와이셔츠를 세탁기에 집어놓고 돌리는 순간, 어디론가 떠난다고 한다. 물론 저런 운치 있는 표현을 붙일 수 없지만 즉흥적이고 대책 없기는 별반 차이가 없지 않나 싶다. 첫 여행 이후 이상한 버릇이 생겼는데 단 하나의 여행지만 선택한다는 거다. 그 여행지에서 다음 여정을 정하는 건 그때 그때의 몫이다. 시리아로 떠나기 전 머물던 숙소의 주인에게 물어본 것은 시리아 알레포로 가는 버스편과 비자 발급 여부 뿐이었다. 시리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만난 한국 여행자기 알려주기 전까지 시리아가 한국과 국교 수교가 맺어지지 않은 상태임을 알지 못했다. 어느 여행자처럼 허벅지에 여권을 테이프로 감는 정도는 아니지만 가방 제일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숙소를 찾지 못해 위험한 어둠 속 밤길을 하염없이 거닐 때, 끊어진 차 편으로 역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때, 곤혹스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다음 여행은 미리 준비해야지 하고 수도 없이 다짐하지만 아직도 나의 여행은 즉흥적이다. 그래서 바람을 좋아하지 라고 스스로 웃어넘기면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어느 마을로 걸어 들어가곤 한다. 아마 다음 여행도 그러하리라. 제 버릇은 개 못주니까.

 

<알레포행 버스 안에서>

 

 

 

< 알레포 시장에서 스카프 팔던 아저씨- 누가 저런 문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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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1-0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역시 진지한 문체 뒤의 은근한 유머가 빠지지 않으시는군요 ㅋㅋ
시리아는 가볼 생각도 안했던 나라인데.. 중동은 어쩐지 우울한 이미지라서요. 역동적이진 않죠?

갑자기 물담배가 그립네요 ㅎㅎ

잉크냄새 2012-01-03 15:33   좋아요 0 | URL
네, 전반적으로 과묵한 분위기지만 그리 우울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사람들도 처음 어색한 분위기만 넘어서면 아주 낙천적인걸 느낄수 있어요. 사람들도 아주 친절해요. 유목 민족의 후예들답게 이방인에게 관대하고 친절합니다. 사실 중동 남자들이 여자 여행객들에게 친절의 수준을 넘어서서 너무 치근덕거리는 것이 문제죠.

물담배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2012-01-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1-04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을 좋아하는 분에게 마침한 여행이로군요ㅎㅎ 한 시간에 200개비라... 대단하네요. 물담배라고 해서 전 외려 순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과일향이 난다니 기회가 되면 딱 한 모금만 경험해보고 싶네요^^

잉크냄새 2012-01-04 12:26   좋아요 0 | URL
바람, 관련 이야기는 나중에 한번 써볼까 합니다. 여행과 바람은 무관한듯 하면서도 아주 밀접한 사이거든요.

저도 물담배가 아주 순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피워보아도 몸에 전혀 무리가 느껴지지 않고요. 다만 한시간 피워보면 좀 어질어질 합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1-0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루트를 정해놓긴 하나 그 루트가 꼭 합리적이지 않은 루트로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즉흥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해요. 전 늘 전부 다 보고 싶기도 하고 한 군데만 집중해서 보고 싶기도 한 마음 때문에 갈팡질팡 했거든요.

잉크냄새 2012-01-04 12:28   좋아요 0 | URL
루트를 정하고 그 일정대로 움직이는 분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저도 님처럼 루트가 발길 닿는대로 변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일정의 문제로 정해진 루트로 움직였는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발길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곤 했어요.
전 여행지에서 무언가 특정한 것을 보는것보다는 오래된 골목을 거닌다던가 하는 목적성없는 것에 더 이끌리곤 했지요.

風流男兒 2012-01-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예전에 강남역 어디에선가 인도+동남아시아+중동을 약간 섞어놓은 듯한 바에서 물담배를 펴본적이 있었어요. 좋다. 고 하면서 계속 피워댔는데, 시간당 담배 200개피라니. 놀랍네요.

여행을 항상 준비하려고 하지만, 저도 결국은 즉흥적으로 가게 되더라구요,
돌아 생각해보면 즉흥으로 가지 못하면 항상 못가게 되는 게 여행이었던 듯도 하구요.

그나저나 마지막 아저씨 칼을 들고 계시는 게 압권인데요. 게다가 시어머니라니 ㅎㅎㅎㅎ
정말 대단해요

잉크냄새 2012-02-03 11:16   좋아요 0 | URL
가끔은 즉흥적인 선택으로 어려움을 겪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후회하지만 한번 습관되어진 습성은 쉽게 변하지 않나 봅니다.

시어머니께 선물을 권하는걸 보니 저 문구는 남성분이 써준것 같네요.ㅎㅎ

2012-02-13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3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중충한 날씨는 계속되었다. 비 내리는 흑해 연안의 어느 민박집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던 시간을 뒤로 하고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것은 보슬비가 촉촉히 내리던 한밤중이었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 희미하게 서있는 표지판을 뒤로하고 무작정 언덕을 올라 언덕 맨 끝에 자리한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칡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찾아간 숙소는 다음날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눅눅한 날씨에 지친 나그네의 발길을 달래주려는 듯 오랜만에 나타난 햇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풍경을 더욱 환하게 비추어, ‘, 과연 이 곳이 진정 지구별에 존재하는 도시인가하는 감탄과 함께 아침도 잊고 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꽂힐 때까지 달에 첫 발을 내디딘 암스트롱인양 언덕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게 하였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달아나 정착한 돌산의 동굴은 이제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숙소로 탈바꿈 되어지고 있었지만 언덕 위에서 바라보이는 마을 풍경은 경박스럽거나 소란스럽지 않은 아직 태동하지 않은 태고의 신비인양 조용하고 고요했다. 면허도 없이 빌린 오토바이를 타고 궤레메 외곽을 달리는 길은 또 다른 풍경을 떡 하니 꺼내놓았는데, 각양각색의 무지개 떡인 양 화려한 지층으로 축적된 로즈 밸리, 스머프 버섯집의 기원이 된 파샤바 등 도화지처럼 펼쳐진 풍경은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풍경 속의 한 점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가파도키아 마을 풍경>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는 내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든가 아니면 영혼의 구석 어딘가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있을 욕망의 덩어리를 버려야 한다든지 하는 의무감 비슷한, 어쩌면 강박관념이라 표현해도 좋을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한 싶었다. 인도-네팔 45일간의 1 여행을 마치고 남미와 중동을 저울질하다 중동으로 떠나온 이번 여행은 그저 발이 가져다 주는 자유로움을 따라 걷고 있는 했지만 그래도 가슴 어딘가에는 설명할 없는 덩어리가 문득 느껴지곤 하였다. 그런데 터키 카파도키아의 어느 동굴 호텔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 게바라", 오랜 세월 습관처럼 의미 없이 반복되는 삶이 지겨워질 무렵 여행을 떠나 삶의 이면을 다시 한번 바라보라고 떠민 이가 그였다. 그가 의대생 시절 오토바이 한대로 떠난 남미 여행이 나에게 길을 떠나도록 오랜 세월 재촉했고, 속삭임에 발을 내딪은 것인데, 그의 여행기를 다시 읽으며 내가 떠난 의미를 다시 떠올려보게 것이다. 너무 욕심은 부리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욕심만으로 일도 아니지만나무는 겨울에도 자라고 있음을 나이테가 보여주듯 자유로운 떠남 어딘가에도 영혼은 조금씩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내리던 터키의 어느 시골 버스 안에서 창문 밖으로 그려지던 그리운 이들의 서늘한 눈매,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충만하다.  



<카파도키아 열기구 - 세계 열기구 3대 포인트중 한곳>

가끔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 나를 부르는 손짓처럼 느껴지고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거울로 희롱하는 햇살의 장난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내 몸을 감싸는 대지의 기운이 다 그런 듯 하여 일손을 놓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피죤 밸리라 불리는 언덕은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햇살에 녹기 시작한 눈이 질퍽거리고 있었고 아직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세우게 만들었다. 어제의 흔적인지 오늘 아침 먼저 내려간 이의 흔적인지 뭉그러진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럽게 계곡을 내려가다 바람을 타고 실려온 소리에 사로잡혔다. 계곡 안을 부딪히며 메아리치는는 소리는 그 방향을 쉽사리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는데 그나마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알 수 없는 소리 속에 나의 마음을 이끄는 어떤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 듯 싶다. 비탈진 언덕을 미끄러지며 올라 도착한 곳에서는 나를 이끌던 그 소리로 온통 가득 차 있었다. 교회 종소리보다는 경쾌하지 않고 절의 풍경 소리보다 묵직하지 않지만 초원을 쓰다듬는 바람과 어울리는 투박하지만 콧노래가 그냥 나올듯한 경쾌한 소리였다. ‘멜하바를 외치며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던 어느 늙은 목동이 이끌던 양떼의 풍경 소리였다. 어느덧 눈이 녹기 시작한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울리던 양들의 합창은 잊을 수 없는 감흥를 선사해주었다 
 


 

< 카파도키아 양치기>

땅덩이 넓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듯이 터키 또한 야간 버스 시스템이 훌륭하게 갖춰져 있다. 여행 시간 확보를 위해 주로 야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는데 몸이 적응하니 밤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감흥에 젖어 들곤 했다. 지저분하고 깨진 창문 사이로 새어 든 바람으로 얼어 죽을 뻔한 인도의 야간 버스와는 달리 터키의 야간 버스는 천국을 향해 가는 어느 길 위에 있는 듯 편안하다. 차장은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터키 청년들인데 주로 간식을 챙겨주거나 중간 경유지에 내려야 하는 손님을 일일이 챙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끔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몸을 뒤척이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고 어느새 차장이 옆에 다가와 손을 내밀라고 한다. 잠결에 손을 내밀면 레몬 향이 가득한 스킨을 손에 뿌려주는데 아직 의식이 채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손 위의 레몬 향을 맡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향기로운 꿈을 꾼 느낌이랄까. 그 버스 안에서 꿈과 의식의 거리는 머리와 손의 거리에 불과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꿈과 레몬 향 사이를 오고 가노라면 마치 레몬밭 사이를 헤매다 꿈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카파도키아 명물 항아리 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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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2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는 겨울에도 자라고 있음을 나이테가 보여주듯 자유로운 길 떠남 어딘가에도 영혼은 조금씩 자라고 있을 것이다"


"비 내리던 터키의 어느 시골 버스 안에서 창문 밖으로 그려지던 그리운 이들의 서늘한 눈매,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충만하다"


"가끔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 나를 부르는 손짓처럼 느껴지고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거울로 희롱하는 햇살의 장난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아.. 기억해두고 ..두고 두고 꺼내 보고 싶은 글들이예요..
잉크냄새님..
이런 글들을 쓰실 수 있는 잉크냄새님이 부럽습니다.
더 깊어지고 더욱 마음 저 깊숙한 곳들과 만나고 있으시군요..


저도 그 양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합창을 듣고 싶습니다.
저 끝 어디에서 제 자신과 깊숙히 깊숙히 대면하고 싶습니다.

잉크냄새 2011-11-28 10:25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항상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년도 더 지난 여행기를 지금 쓰려니 기억이 가물거려 그 당시 일기에 썼던 내용들에 아직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감정을 살로 붙여 조금씩 엮어가고 있습니다.

여행기를 쓸때마다 다시금 길을 나서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비연 2011-11-27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곳에 가본 적이 있죠. 아직까지도 마음에 인상깊게 남겨둔 곳 중 하나이구요..
잉크냄새님 글을 보니 더욱 그리워지네요...아..

잉크냄새 2011-11-28 10:16   좋아요 0 | URL
비연님도 다녀오셨군요. 터키도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만한 여행지죠.

전 그곳에 3일 정도 머물렀는데 연휴를 이용해서 짧은 여행을 오시는 한국분들도 많으시더군요.

BRINY 2011-11-28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키 다녀온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레몬향 콜론수의 향기가 아직도 남아있답니다.

잉크냄새 2011-11-29 10:39   좋아요 0 | URL
그 레몬향의 정체를 콜론수라고 하나 보네요.
아마도 터키를 떠올리면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을 기억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風流男兒 2011-12-1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돌산 사진, 조용하게 시선을 담게 만드네요.
언젠가 꼭 가봐야겠어요.
언제나 눈과 마음 모두 즐거워지는 사진 감사해요 ^^

잉크냄새 2011-12-13 12:4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눈을 뜬 첫날 아침, 마을과 어울러진 돌산에 흠뻑 취해 밥도 잊고 마을 언덕을 돌아다녔답니다.

꼭 시간내셔서 한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2012-01-01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3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