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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 (2disc)
이윤기 감독, 전도연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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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아니지
, 안 되지......’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저렇게 매력적인 남녀가 사랑을 해 보겠다는데, 

내가 사랑에 대해서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사랑을 어찌됐건 지켜가야지, 그 사랑이 다소 무관심했거나 상처를 주는 것이었어도 

저렇게 바깥 길을 타는 것은 반칙아닌가라는 생각이 불쑥 솟았다

하지만......

런 생각을 계속해서 이어가기에 그 곳은 너무나도 예쁘고 하얗기만 했다

너무 성급해서 보호본능마저 자극하는 그 사랑에 동의하기 시작한 것인지

영화스럽게 잘 찍힌 그 영상에 매료되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들과 함께 여행했고 사랑했고 조금은 아파했다

'설득'된 것이다.

 

 

 

/는 두 대상을 이어주는 접속조사이다. 

남과 여로 적는 것이 표기법상 맞지만 어쩐지 남 과 여가 시각적으로 더 어울린다

이 영화의 신의 한 수는 그 어떤 수식조차 없이 라는 보통명사를 담백하게 뿌려놓은 것이 아닐까. 

말의 여지도 없는 완전한 불륜 영화’였다. 

자폐를 앓고 있는 자녀까지 두고 있어 그들의 죄책감을 얼마든지 더 부추길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제목은 부끄러운 치정을 떠올리게 하기보다 

아주 단순하게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생각, 마음, 또는 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다 이해하고 다 공감할 필요는 없지만 그저 그렇게 바라봐 보라는 무언의 압력마저 주고 있는 느낌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왜 핀란드여야 했을까 참 궁금했다. 

국내 영화에서는 낯선 배경이다. 사회복지나 교육복지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 훨씬 많이 보게 되는 곳이었다

비단  상민(전도연 분)과 기홍(공유 분)에게 자폐를 앓고 있는 자녀가 있었고 

아이들을 안전하고 탁월한 프로그램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니면

놀라울 정도로 쏟아지는 눈과 키가 하늘에 닿을 듯 뻗어 있는 나무들

그리고 숲속 사우나 요정이야기를 위한 공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


이윤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의 배경을 핀란드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가장 낯선 느낌을 주는 나라 중 하나가 핀란드라고 생각했다"
"핀란드는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아주 멀게 느껴진다" 

"실제로 핀란드를 경험한 사람들도 많지 않고, 언어 또한 생소하다"

"여러 낯선 느낌들이 교차되면서 나타나는 감정의 역류를 그리고 싶었다"


그의 말처럼 낯선 공간, 낯설게 만난 두 캐릭터의 교차를 보고 있는 것도 묘하게 두렵고 설레지만,

낯섦과 낯익음, 생소함과 친숙함의 잔잔한 변주도 흥미로웠다.


 치정을 그린 영화치고는 상당히 담백하고 여백이 많은 작품이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가 가리키는 방향풍경사물그리고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와 제스처

침묵까지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영화다

뭔가 상징성을 담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동행 없이 캠프에 간 아이들이 걱정돼 캠프장 가까이로 찾아가는 기홍과 상민. 

얼음판 위에 눈이 깊이 쌓인 호숫가를 가로질러 가보자고 농담하는 기홍,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발, 흔들리는 나무들까지 모두가 위태로운 선택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몸과 마음에 '죄책감'이라는 더께가 쌓일 때마다 

핀란드의 눈서울의 비는 그것을 한 번씩 씻어 내려 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만 쌓인 눈과 비가 다 녹지 않고 질퍽이는 것이 문제일 뿐.

"너무 멀어요..."

 기차 좌석의 한 칸과 통로를 더한 거리를 너무 멀다고 말하는 기홍. 

가까워지고 싶어요나 여기서 끝내는 게 좋겠어요같은 

통속적인 대사보다 훨씬 감각적으로 느껴졌던 대사다

기홍의 애매모호함이 선명해지는 과정에서 내뱉은 이 말에, 

내가 상민이었다면 가장 흔들렸을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무대인사가 포함된 영화를 보게 되었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이윤기 감독은 

영화를 보며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시길 바란다는, 

오늘 하루 종일 무대인사에서 반복했을

그러나 영화를 만들고 편집하는 내내 가장 중점을 두었을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그의 그 바람이 이 영화 속에 잘 실현되었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 !   아래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높고 길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직선 도로를 달려가는 기홍의 차를 풀샷으로 잡는다

들리는 마음들 사이로 앞으로 곧게 뻗은 길을 선택하는 

기홍을 상징하는 듯한 장면이라 잔상이 오래 남았다. 

반대로 상민은 혼자 탄 택시에서 아들의 전화를 받으며 사랑해라고 말한다

실은 기홍에게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이 아니었을까 싶은 말. 

그녀의 택시는 더 달리지 못하고 도로가에 멈춰선다


공유 배우는 무대인사에서 

“기홍의 선택을 미워하시는 반응을 많이 봤다

하지만 저는 그 이후, 상민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어도 

기홍은 평생 후회하며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맞다...)

상민은 지쳤던 일상으로부터 놓여나왔고 핀란드에 다시 돌아갔으며, 

그곳에서 둘이 함께 시작했지만 기홍이 도망쳐 버린 그 결말을 직접 확인한다

울어버리고, 먼저 고백해버렸으며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언젠가 그녀는 다시 달리겠지만 기홍의 앞에는 멈춰설 곳만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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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처럼 살다 - 사랑과 배신의 작곡가들, 2018 아침독서 청소년 추천 도서
나카노 교코 지음, 모선우 옮김 / 큰벗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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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페라, 글로 배워도 될까?

 

 마 전, ‘김이나의 작사법을 읽다가 생각했다.

 한 곡의 노래가 나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듣는 것과 노래 그 자체로 즐기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좋은 감상법일까?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알고 난 후에 좀 다른 종류의 감동을 느꼈는데......

 진지하고도 긴 물음은 아니었지만 매일 듣는 대중가요가 아닌, 입문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는 오페라를 마주하고 보니 그 이야기가 조금 더 간절해졌던 것 같다.

 

 의 서문이 좋으면 본문도 좋아지는 때가 많다. 이 책의 서문 역시 이어지는 본문을 기대하게 만드는, 읽기 쉽고 편하며 아주 담백한데 매력적인 글이었다. 동시에 오페라를 글로 배워도 될까?’에 대한 적당한 해답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아는 것은 도움이 안 되고 오페라를 즐기는 데 썩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작품만 감상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샛길을 통해 오페라에 입문해도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오페라는 원래 격정적이기 때문에 작곡가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2. 친절하고 쉬운 손을 잡다.

 

 , 영화, 미술, 문화재 등 예술과 예술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인지, 요즘은 일반 독자를 타겟으로 하는 예술 분야 도서도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이 많다.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러니까 쇼팽의 연주곡 몇 개쯤, 톨스토이 작품 몇 개쯤은 알고 있겠지...하는 느낌으로 쓰인 책들이 적지 않다.

 

 지만 있다면 유튜브를 포함한 다양한 경로로 쉽게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오페라 없이도 귀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묘한 경계심은 늘 익숙한 길만 걷게 했다. 이런 분야일수록, ‘친절하고 쉬운 손길이 필요하다.

 

 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신간다운 맛은 적은 클래식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옛스러운 친절함을 갖춘 책이다. ‘친절하고 쉬운 손길은 화려하지 않지만 복잡하지도 않고, 안내를 위한 장치들을 필요한 곳에 과하지 않게 잘 배치하고 있다. 음악과 명화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들을 많이 쓴 저자의 이력을 보면 이 책의 출간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3. 오페라로 이야기하는 법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작곡만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연주가, 가수, 합창단, 연출가, 장치담당, 의상 담당, 조명 담당 등 무대에 관련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 p. 26

 

 이 책에 소개된 여덟 명의 오페라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 누구보다도 베버를 이야기하고 싶다. 오페라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지만 많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병약했던 베버의 이야기는 오페라 한 곡을 보는 듯 폐부 깊숙한 곳에 감동을 남겼다.

 

 무 평범해서 더 비범해 보였던 한 남자. 가정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이 남자의 삶이 그 어떤 정신병이나 히스테리를 안고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특별해 보였던 것 같다. 저자는 그것이 남성의 책임감이나 표현법이라고 했지만, 나는 온전히 베버만이 갖고 있는 사랑법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생계를 위해, 자신의 사후에 남겨질 이들을 위해 그나마 붙어있던 생을 희생하는 아이러니까지 감당하는 삶이 어디 흔할까.

 

 지금은 모두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시대와 공간에 따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야속한 운명의 작품들, 작곡가들 간의 예민한 경쟁의식과 피해의식의 반영물들, 자의식이 강했던 작곡가와 겸손하고 성실했던 작곡가들, 사교계에서의 명성을 이용했던 호색한들과 한 여인을 향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했던 예술가, 그리고 가정을 끔찍이도 생각했던 남편이자 생계를 늘 걱정해야 했던 가장들.

 

 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오페라 작곡가나 작품의 의미 그 이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다. 오페라의 대표작에 대한 단순 정보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 독자들은 이 예상치 못한 전개들에 더 빨리 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가지런하게 나열하려 하지 않고, 사건을 역행적으로 배치하거나, 주인공을 숨겼다가 클라이맥스에 내놓기도 한다. 마치 천일야화를 듣듯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도록 인물과 배경과 사건을 흥미롭게 배치해 낸다.

 

  권의 책을 다 읽는 순간 8명의 오페라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결코 얕지 않은 스키마와 그들이 남기고 간 잔상들에 뿌듯해질 지도 모르겠다.

 

 

4. 샛길에서 진짜 인생을 만나다.

 

                         샛길: 큰길에서 갈라져 나간 작은 길.

 

 샛길은 잘 다듬어져 있지 않고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거친 길일 수 있지만 왠지 더 정겹고 설렌다시에 샛길은 '큰길로 통하는 작은 길'을 의미하기도 한다.

 

 - 예술가의 일상과, 가족, 그리고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를 살펴보는 것.

 - 대단한 명성과 화려한 영광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것.

 - 그리하여, 눈은 넓어지고 나의 일상은 깊어지게 되는 것. 

 

  런 관점들은 작품에 덧씌워진 화려한 왕관의 의미를 퇴색하게 할지 모른다하지만 내 일상과 생계 나의 관계 꿈과 이상 본능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꿈틀거릴 때 쯤 그러한 '이야기'들은 내 생의 감각을 한껏 흔들어줄 것이다.

 

덧붙임: 혹 이 격정적인 오페라를 이야기로만 읽고 말 독자를 위해 삽입한 동영상 QR코드는 덤 ^^

 

            

 <베버 - 마탄의 사수, (테너 최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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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의 작사법 -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
김이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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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었고 빅스와 엑소부터 성시경과 케이윌, 아이유와 이효리, 임재범, 이선희와 조용필까지 모두 다 좋았다. 그녀는 노래의 벌스와 디브릿지 사비에 들어갈 적절한 가사를 쓰듯 책의 기승전결도 기가 막히게 짜냈다. 

 

  꿈만 꾸고 접어버린 꿈 가운데 라디오 방송작가와 작사가가 있다.


 

  좋은 노래 가사와 라디오 오프닝, 클로징 멘트들을 좋아했다. 사연에 맞는 노래를 선곡하는 것은 더더욱 사랑했다.  글이 좋았고, 그걸로 밥을 벌어 먹고 싶었고, 터지고 싶은 감성이 있었지만 앞에 나서 표현하는 끼는 없었다. 무대 밑이나 부스 밖에서 대리만족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것이 화려한 삶 곁에 있으면서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는 꽤 편리한 삶이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팔자가 그리로 흐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어릴 때 길에서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를 우연히 만나는 꿈을 꾸는 것처럼 저 꿈들은 내 몽상 속에 지금도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솔직히 "그녀의 작사법"보다 "그녀의 작사가 되는 법"이 더 궁금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그녀는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간절함은 현실인식과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간절할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은 금방 지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략)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P.15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작사법>을 읽고 나니 분명해졌다. 내가 넘볼 영역이 아니었다는 것이. 조금은 후련했다. 그리고 그녀가 작사한 노래를 몽땅 모아 들으며 좀 자주 울컥해 울었다. 이게 다 김이나의 노래 때문이라고 푸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녀가 끄집어낸 내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의도된 기획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지막 아빠에게 보내는 딸의 편지는 노래를 듣고 있지도 않은데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에게 쑥쓰러워, 새삼스러운 마음에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는 걸 느꼈다.  


  어느새 나는 노래가사가 아닌 그녀의 글 자체가 좋았고, 진심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김훈 작가는 책 속에 글을 쓰는 길이 없다고 했다. 다만 글은 삶에 대한 구체성 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물론 김이나는 책의 제목대로 멜로디의 음가에 따른 글자수를 파악하거나, 라임을 고려한 단어 선택, 전체적인 스토리를 극적으로 구성하는 법 등 기술적인 '방법'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무게중심은 오히려 그녀가 바라보는 사람들과 세상에 있다.


서른을 맞이할 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아무리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그 숫자값은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중략) 작사가라는 직업이 이럴 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을 가사로 쓰면, 남의 진심을 통해 내가 쓴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 P.208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조용필의 <걷고싶다>, 최백호 아이유 <나랑 걷자>, 옥주현 <아빠 베개>

가인과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 윤상 성규 <Re: 나에게>


  작사법을 작문법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책은 꽤 많은 메시지를 던져 줄 것이다. 말이 아닌 이야기, 이야기를 위한 사람, 노래를 부르는 가수, 노래를 듣는 대중의 삶을 연결해 보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곡씩 쏟아져 나오는 노래가 결코 '노래 한 곡' 쯤으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  


  그녀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가수 아이유의 인성을 이야기하고, 아티스트로서 가인과 존재로서 가인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작사가이다. 솔로와 듀엣,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많은 가수가 함께하는 프로젝트 송까지 다양한 형식의 노래를 다루면서 그 노래를 만든 작곡가와 부르는 가수 각각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낸다. 이름만으로도 함께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 임재범, 이선희, 최백호, 조용필의 인생도 조심스럽게, 그러나 명료하게 풀어내기도 한다.

 

  작사가가 되고 싶은, 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글에 대한 욕심보다는 음악을 듣는 귀, 가수의 히스토리와 그에 대한 애정, 팬덤 문화에 대한 이해와 대중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 음악산업 종사자로서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바라봐 온 삶에 대한 냉철하고도 따뜻한 마음이 자신에게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을 감각있는 노랫말로 풀어내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

  

곡은 읽는 게 아닌 들리게 , 좀더 나가면 느끼게 쓰는 것. 


현실과 창작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는 것이야말로 작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P. 249

  작사 과정에 담긴 사연을 읽고 나니 들리는 노래마다 왜 이렇게 아프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그 바닥"의 일부만 들여다봤을 뿐인데  인기 이상의 것들을 감수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업, 허지웅의 평에 따라 '산업의 톱니바퀴이기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의 작업들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 A&R이라는 생소한 직업군이 음반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관한 이야기는 굉장히 새로우면서 '현실 직업'으로서 작곡가든, 작사가든, 기획자든, 혹은 가수나 연주자들의 치열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처럼 작사가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면, 노래를 감상하는 데 좀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작사 과정이 책이 아닌 그저 악보 위에 남아주기를 바라는 창작자와 팬들도 많으리라 본다. 

  

  업계 젊은 축에 속하는 작사가로서 선배 작사가들에 대한 존경과 찬사도 잊지 않으면서,  슈가맨이나 해피투게더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궁극적으로 대중 앞에 이런 책을 낼 수 있는 것도 김이나만 가진 매력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첫 번째 책이었다. 그래서 못다한 이야기와 해버린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많았을 것 같다.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면 책에 대한 애정은 금방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앨범이 발매됐을 때와 책이 출간된 순간의 느낌이 어떻게 달랐는지 묻고 싶다.

  

  그녀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 역시 자신의 몸에 걸맞은 옷을 입는 듯, 자신의 히스토리에 꼭 맞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행복했을 것이고, 소속사의 소속 가수로서 비즈니스적 성과, 아티스트로서의 예술적 욕심, 개별 존재로서의 표현 욕구 이상으로 큰 치유를 느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 어려운 걸, 번번이, 김이나가 해 내고 있고. ^__________^

 

*덧붙임: 추천사 읽다가 감동받는 책도 드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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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틈 - 나만의 지도를 그리며 걷고 그곳에서 숨 쉬는 도시생활자 여행기
김대욱 글.사진 / 예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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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씁쓸~ 하구만!

 

 대학 때부터 함께 임용고사를 준비했던 친구가 작년에 드디어 합격소식을 알려왔다. 가을학기에 발령이 날 때까지 시간을 틈타 예비교사들이 가장 꿈꾼다는 ‘대기 발령 중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내게는 합격이야기만큼이나 여행 이야기도 꺼내기 미안해 하는 친구에게 쿨하게 이야기 했다.

 

“야~ 괜찮아. 괜찮아. 난 매일매일 여행 중이거든? ㅋㅋㅋㅋㅋ”

 

 

 지금 이 순간, 방 안에서도 ‘남 몰래’ 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저자는 여행의 의미, 특히 다른 문화권으로의 여행이 갖는 의미까지 부정하는 것 같진 않다. 다만, 이거다.

하지만 어떡하나. 나의 여행은 여기에 있는 것을. 지금 여기가 바로 여행의 순간임을 인식한 순간 공기를 말랑해지고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그 끝에서 나는 자유를 보고 어제보다 좀더 자란 나를 만난다. (p.6)

 

 체유심조(一切唯心造). ‘아마도 이건, 여행?’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가 떠올랐다. 때때로 지금, 여기를 여행하듯 만끽하라는 말이 위로처럼 들리고 마음먹기 나름이다 싶기도 하지만 한때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거.....씁쓸~하구만”

 

 

2. 첫인상 : “아…… 베끼고 싶다.”

 

 그의 담백한 기억과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나는데 세상에 어떤 이야기보다 위트있고 신선했다. 그는 스스로 훌륭한 여행가라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첫 장에 봐도 분명한 건 그가 자기만의 색을 가진 훌륭한 ‘글쟁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무덤덤함이 애잔함을 밀어낼 때 ‘방’은 ‘방구석’이 됐다. 방구석이 된 방은 답답증을 유발했고, 언제부턴가 나는 방에서의 탈출을 열망했다. 괴상한 모순이었다. 방이야말로 내 최후의 보루였다. (p.15)

 

 에세이를 볼 때면 시나 소설을 볼 때와 다르게 나도 내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고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에는 내 경험과 일상이 어떤 교훈이나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특히 그것을 글로 남길 때는 더더욱.

 그는 가만 가만 자신이 관찰하고 느낀 것을 담백하게 이야기하면서도 무게가 어느 한 곳으로 처지지 않게 가볍고도 안정감 있는 글을 쓰는 사람 같았다. 곁에 두고 한 번쯤 필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님에도 내가 최근에 본 글 중에 가장 매력적인 문장들이었다. 다르게 이야기 하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흉내 정도는 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편안한 문체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발소리만 해도 그렇다. 어린이집이나 학교로 향하는 올망졸망한 발소리, 거기에는 몽실몽실한 신발의 아늑함이 섞여있다. 이 소리가 햇살에 녹아 자박자박 방으로 흘러들어오면 그 조그마한 발의 하루가 그려진다. 그 발이 종일 바라보는 세상은 나의 세상과 다를 것이다. 더 투명하고 아름답지 않을까? 늘 어제와 다른 발바닥으로 아침을 맞는 것. 그 맑음이 부러워, 나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발을 주무르고는 한다. (p. 44)

 

3. 아마도 이건, 여행

 

A.M 03:25 - 새벽의 침묵이 주는 황홀함

A.M. 10:47 - 아이의 시간을 사는 어른의 몸

P.M. 07:10 -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P.M. 09:32 - 당신을 기다리는 불빛

P.M. 11:13 - 내일이 있으니까

 

 

 그가 크레파스로 그린 다양한 조도의 타임라인을 따라가 본다. 문득 나는 저 시간에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혹은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스케줄 표에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이 적혀 있지만 정작 그 안에 ‘나’라는 사람과 사고, 감정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이미 리뷰를 완성하기로 한 시간은 모두 지나버렸다.

 일을 시작하느라 핑계로 책을 놓기 시작했고, 그렇다고 표지나 제목으로만 리뷰를 작성하고 싶지는 않았다. ‘숨 쉴 틈’을 찾지 못하고 늘 걱정스럽고 쫓기는 듯한 마음으로 책 표지만 쓰다듬다 잠들기가 여러 날이었다. 결국은 기한을 한참 넘겨서야 틈을 찾았다. 어떻게든 숨 쉴 틈에 <숨 쉴 틈>을 읽게 된 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기하게도 거기에는 꼭 숨 쉴 틈이 보였다.

나는 그 틈을 통해 숨을 쉬면서 먹먹함을 흘려보내고는 했다.

그건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나만의 짧은 여행이었다. (p. 96)

 

 처음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읽고, 서문과 목차를 볼 때까지만 해도 자꾸만 ‘오타쿠’나 ‘히키코모리’가 떠오르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다. 그 스스로도 그것은 아니라고 한 번 정리해 주기는 하지만. 그는 ‘방’에서 혼자 숨 쉴 틈을 만끽하는 ‘외로운’ 방랑객 같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을 읽을수록 씁쓸할지언정 쓸쓸한 맛은 적었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사람’ 때문이다. 부모님과 여동생, 할머니, 여자친구,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 추억 속의 친구들까지. 특히 좁은 방을 함께 쓰던 여동생이 저자보다 먼저 결혼을 해 독립하고, 아이의 엄마가 돼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꽤 벅찬 서사였던 것 같다. 그가 홀로 고립되지 않고 사람의 온기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 다행스럽게 여겨졌는지 나도 모르겠다.

 

4. 응답하라, 1980년대!

 

 최근에는 포토에세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문가용’ 카메라 한 대씩은 구비하는 요즘, 여행 관련 책은 더더욱 사진의 퀄리티가 매우 좋다. 이병률의 산문집이 대표적이겠다. 그런데 이 책, 사진이 한국을 벗어나지 않고 매우 일상적인 것까지는 좋은데 당장 내 휴대폰을 뒤져봐도 이보다 나은 사진 몇 장쯤은 얼른 찾을 수 있겠다 싶다. 좋은 글에 비해 사진이 좀 아쉽다 하는데 한편으론 이 사진들이 자꾸만 이 책의 성격을 재확인하게 한다. ‘떠나지 않은 여행’, ‘잠들지 않은 방으로 히치하이킹’ . 그런 면에서 사실 그의 글과 가장 잘 맞는 사진이라 해야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자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나와 적어도 2년~3년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 사람 같다. 책받침, 피구왕 통키, 보물섬 프라모델, 게임팩, 대학 캠퍼스의 풍경까지. 처음 검색 엔진을 사용하게 되던 때, ‘돈까스’와 마이클잭슨의 ‘힐 더 월드’에 얽힌 추억까지 나와 너무도 닮아 잠시 흔들렸다. 이 세대에 이토록 공통점이 많은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이 저자와 내가 유독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일까. 그가 소개한 ‘최고로 치는 돈가스 집’이 어딘지 너무 궁금해 졌다. ^^

 

 꼭 1997년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10대와 20대를 따라 응답받는 느낌이었다. 누구보다 1980년대 출생자들에게는 꼭 한 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숨 막히는 긴장 상태가 아니라 ‘숨 쉴 틈’에 읽으면 더 좋을 책......

 

한가한 시간, 그렇게 주변을 가만히 보고 싶다.

운이 좋다면,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게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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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달콤한 칵테일, 

새벽녘 상쾌한 공기, 

해질녘 연보랏빛 하늘, 

폭신하고 부드러운 솜사탕... 

무엇이든 행복해질 것만 같은 표지 디자인이 참~ 달스럽-다.  

전작들보다 훨씬 더 깊은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카운슬링. 

또다시 곽정은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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