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영감 - 포토그래퍼 조선희 사진 에세이
조선희 지음 / 민음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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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영감靈感의 나비가 날아들 것이다

 

그동안 작업했던 조선희의 작품을 보면 놀랄 노자다. 써니, 건축학개론, 감시자들, 숨바꼭질, 관상, 변호인... 등 세간의 관심을 듬뿍 받았던 영화의 멋진 포스터가 그녀의 셔터로 만들어졌고, 톱스타들의 앨범 재킷이나 광고, 패션 사진 등 차라리 조선희의 손이 닿지 않은 걸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을 받는 사진작가다.

 

톱스타들이 가장 찍히고 싶어하는 포토그래퍼 조선희의 사진 에세이 《조선희의 영감》에는 그녀사진 철학, 영감을 창조로 끌어내는 법이 담겨있다.

 

 사진은 멈춘 걸 찍는 것이 아니다. 다만 멈춘 것처럼 찍히는 것이 사진이다. 』 - p194

 

글을 쓰는 작가에게 필요한 글감도 일상에서 시작하듯 조선희 사진작가 영감의 근원은 소소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같은 걸 보더라도 누군가에겐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갈 뿐이듯 영감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열어 놓아야' 한다. 어떤 순간에 불현듯 불쑥 찾아오는 의도나 의지와 상관없는 그러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마음을 내버려 두어서는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영감이다.

 

영감 혹은 모티브를 받아도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마주, 패러디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리터칭이라는 디지털 시대에는 더더욱 무엇을 위해 그렇게 찍었는지 그 의도 혹은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조선희만의 색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두텁고 거친 질감을 좋아하는 조선희 사진작가. 그녀의 사진을 보면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고흐의 거친 붓 터치감에 끌리고, 관심 없던 꽃도 두터운 질감의 꽃을 보며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도 했다 한다.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는 것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음을 알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린 카메라의 기본에 대한 함정에 빠져 있다. 』 - p66

 

『 사진을 찍을 때 우리가 본 것을 찍은 듯해도 실은 오감을 통해 느낀 것을 마치 본 것을 찍은 양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 - p71

 

낯섦은 사진 찍는 이를 관찰자로 만든다. 그 관찰자는 낯섦에 용기를 얻어 셔터를 누르게 된다. 』 - p89

 

 

『 일상 속에 있었다면 아프고 귀찮아서 혹은 카메라가 고장 날까

보지도 보이지도 않았을, 느끼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는 없을까?

그러면 나의 오감이 늘 깨어 있어

영감으로 가득 차 있을 텐데...... 』  - p109

 

사진을 한지 23년 차인 프로사진작가로서의 반성도 덧붙인다. 아무 목적 없이 사진을 찍어 본 것이 언제였더라며 사진이 삶 자체가 되기를, 도구가 되지 않길 바라는 그녀의 바람은 우연의 미학, 찰나의 예술인 사진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 책에 몰입하는 동안 온갖 고민과 욕심과 번뇌를 버리게 되니 '비움'이고

읽으며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며 그 속에서 나를 찾게 되니 '채움'이 아닌가? 』 - p148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을 수 없다고 하고, 각자의 영감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더 크고 깊은 영감이 자라나도록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하면서 사진 찍기에 관한 그녀만의 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일상을 좀 더 꼭꼭 씹으며 살고 싶다는 조선희 사진작가.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창의력, 창조성을 높이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그 어떤 책보다도 이 책 한 권이 주는 영감이 더 많았다. 그녀의 글과 사진을 통해 나의 시간을 뒤돌아본다. 로맨틱하면서도 영혼이 녹아있는 사진과 한 구절 한 구절 놓칠만한 문장이 없을 정도로 공감되는 그녀의 감성 깊은 글을 읽다 보면, 단지 사진의 영감을 얻기 위한 노하우를 원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혹은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만나는 감성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 주는 영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조선희의 영감》을 통해 내 삶의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영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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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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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에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등단한 전민식의 세 번째 소설 《13월》은 소수에 의해 이 사회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체제, 감시 사회화된 현대, 개인정보의 개방성에 관해 폭로하고 있다. 꽤 무거운 주제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일 수 있다.

 

1988년 서울의 한 조리원에서 일어난 화재에서 한 명의 산모 사망기록에도 남지 않는 신생아 한 명의 행방불명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정부산하기관 목장연구소라 불리는 비밀기관 소속으로 '밥'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관찰대상과 심적 거리를 두며 일거수일투족 남자를 관찰하는 여자 수인, 그리고 마이크로 칩을 자신도 모르게 몸에 지닌 채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의 관찰대상인 남자 재황. 수인에게 허락된 건 인식기의 불빛 이동 경로를 보며 사견 없이 관찰 기록을 정리하는 것뿐이다. 수인은 재황의 스물여섯 번째 관찰자였다. 관찰대상에 따라 움직이는 관찰자의 삶은 보통의 일상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무료하고 고독한 일이었다. 수인이 바라보는 재황은 순수하고 선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지금껏 집, 도서관, 아르바이트하는 주유소만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확한 시계처럼 생활했던 밥이 요즘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몇 년 만에 만난 보육원 고향 지기인 PC방 사장 겸 포주 노릇을 하는 광모와의 만남 이후부터다. 광모와 재황은 서로 걸어가는 길이 다르고 재황에게는 지우고 싶은 과거였지만 외부로부터 언제나 방패가 되어 줬던 광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끊으려 해야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의무 같은 족쇄였다. 

 

『 선하게 산다는 건 사치일지도 모른다. 』 - p39

 

이 관찰의 목적은 인류 전체의 생존과 번영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라는 정도의 정보만을 가진 수인은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녀의 내부에 의문이 소리없이 쌓이고 있다. 특이할 것 없는 인간의 평생을 관찰해서 뭘 얻겠다는건지, 이 실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하필 왜 밥인지... 수인은 지성 있고 순수한 밥이 광모라는 친구 때문에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일을 하게 된 것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얼른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자신의 원래 궤도로 돌아오길 내심 기다리게 된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미래를 설계할 힘은 있다고 믿는다. 이런저런 사이 결국 광모의 손아귀에서도 못 벗어나고, 문학상을 받은 소설이 표절이 밝혀지는 등 그가 쌓아올린 것들이 거품처럼 사라지고 있는 것을 연민의 심정으로 대하게 되는 수인이다. 용역 깡패일까지 하며 지금까지 이룬 걸 포기하는 그의 모습에 그저 보고 기록하면 그만인 존재인 관찰자의 한계를 느낀다.

 

 

 

 

『 명심하게. 대상의 삶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대상은 물론 우리 자신의 미래까지도 위태로워진다는 걸 말이네. 』 - p51

 

『 인간이 평등하다고? 다 웃기는 소리야. 인간이 지구를 더럽히기 시작한 이후 그런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너희 같은 놈들한텐 애초에 오기도 힘들지만 만약 기회가 왔을 때 놓치면 죽을 때까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몰라. 』 - p 97

 

 

지금까지 무심한 척 살아왔지만 자신의 부모에 대한 궁금증,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재황에게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무엇일까.

 

 

 

 

프란시스 골턴에 의해 우생학 논쟁이 일어난 19세기의 일은 현재에도 여전히 암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의 능력이나 성질이 선천적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며 유전자만 잘 조절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완벽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의 우생학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눈먼 자들의 오용으로 엄청난 악을 낳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3월》은 인간을 퇴화시키는 수많은 위험 중 부적격자를 옹호하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의 윤리와 도덕은 결국 인간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믿고, 적격자를 선별해내고 적격자의 능력을 찾아내고 부적격한 유전자를 제거해 결국 소수에 의해 이 사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인류발전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요소인 무분별한 애정, 자비, 옳은 결정 앞에서 망설이거나 주저, 회피하는 것 등은 인류발전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최고의 유전자를 주고 환경은 최악으로 조성해 준 밥의 조건은 바로 이런 인간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실험대상으로 삼는 수많은 자료 중 하나일 뿐이다.

더불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내 위치를 단 몇 초 만에 알아내는 세상에서 현대 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가, 운명에 끌려다니는가.......

인간 개량의 목적 아래 운명 혹은 우연 따위의 단어가 무서워지는 《1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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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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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두 페이지를 읽으며 벌써 캬~! 를 연발한다. 인간 세상의 고달픔을 참 멋들어지고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현암사 소세키 시리즈 시니컬한 잡변이 가득 담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B급다운 영웅담 <도련님>에 이어 세 번째 책 《풀베개》는 이전의 책에 비해 소세키의 예술관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이다. 라는 문장에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구샤미 선생이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린다고 고뇌하는 장면이 오버랩되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서른 살 화공 '나'는 봄의 산을 어슬렁어슬렁 오르면서 시, 그림의 본질에 관한 생각을 잇는다. 『 우리의 성정을 순간적으로 도야하여 순수한 시경에 들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 』 자연풍경을 보면 좋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왜 좋은지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 막막했는데 소세키의 이 문장을 읽으며 아~!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의리나 인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비인정(非人情)을 위해 떠난 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런 잡념 없이 초연하게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마음으로 쌍방에서 함부로 인정의 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비인정 여행을.

속된 정에서 벗어나 어디까지나 화공이 되기 위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보며 인기척 없는 한적한 산중에 한 줄기 길을 걸으며 만난 찻집에서 하이쿠도 지어보면서 시도 되고 그림도 되는 경치를 누린다.

 

 

외딴 마을의 온천, 봄밤의 꽃 그림자, 달빛 아래 나지막한 노랫소리, 으스스 달밤의 모습... 이런 풍류에 습관적으로 이치를 내세우게 되자 어떻게 하면 시적인 입각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기도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닥치는 대로 열일곱 자 하이쿠로 정리해 보는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써내려간 하이쿠를 다음날 누군가가 비슷하게 따라 덧붙인 장난스러운 사건에 온천장 여자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 우리 두 사람 사이는, 이 시에 나타난 처지의 일부분이 사실이 되어 어떤 운명의 가는 실로 동여매어 있다. 운명도 실이 이 정도로 가늘면 마음의 부담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단순한 실이 아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지개의 실, 들판에 길게 뻗쳐있는 안개의 실, 이슬에 반짝이는 거미줄이다. 끊으려고 하면 금방 끊을 수 있으며, 보고 있는 동안에는 굉장히 아름답다. 만약 이 실이 순식간에 두꺼워져 두레박줄처럼 단단해진다면? 그럴 위험은 없다. 나는 화공이다. 저 여자는 보통 여자와 다르다. 』 - p65

 

『 운명은 돌연 이 두 사람을 한 집에서 만나게 했을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 - p121

 

불행에 짓눌리면서도 그 불행을 극복해보려는 얼굴을 가진 여자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나'.

운명의 상대처럼 다가오면서도 그 끈은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내 버릴 수 있다고 한다. 비인정 여행을 하다 보니 여자를 대하는 부분도 그러하구나.

 

『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그림이 될까. 아니, 이 마음을 어떤 구체성을 빌려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 - p90

 

『 아름다운 것을 더욱더 아름답게 하려고 안달할 때, 아름다운 것은 오히려 그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 p105

 

마음이 이끄는 기운에 끌리는 그림을 궁리하면서 생각하는 부분인데 추상적인 정취를 표현하고자 하는 시와 그림의 본질에 관한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 온천장에 온 뒤로 사실 '나'는 아직 한 장의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좋은 색으로 가득 차 있는 자연을 느끼는 것만으로 풍족하다. 사색만 가득할 뿐이다.

 

『 연민은 신이 모르는 정이고, 게다가 신에게 가장 가까운 인간의 정이다. 』 - p138

 

'나'가 말하는 연민은 인간을 떼지 않고 인간 이상의 느낌을 낸다.

온천장 여자의 표정에는 이 연민의 정이 없어서 그림을 그리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 하지만 그 여자의 '연민'은 현실로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전쟁터로 떠나는 사촌과 전남편을 보내고서야 묻어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지막 '연민'을 품은 모습 역시 '나'의 마음의 화면 상태에서 머물지만 실제로 가슴 속에 완성된 그림은 어떤 그림일지 궁금해진다. 비인정인 '나'의 여행의 결말은 결국 인정으로 끝나는 것인가? 통속적인 정이 아니라 미적으로 승화된 정이겠지만. 정, 의, 직 행위로 보이는 천하 공민의 모범이면서 낭만스러운 인정 세계와 그저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며 자연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인정 세계의 이야기가 결국엔 기차를 빌려 현실 세계의 고통 속에 삶의 목적이 있지 않은가라는 의미로 와 닿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처럼 거드름 피우는 인간 부류에 대한 경멸이 나타나는 부분, 돈 냄새에 찌든 시정의 속물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 자기 개성의 몰살 등 메이지 유신 이후의 현대 문명의 폐해를 꼬집는 것은 여전하다. 기차역 장면에서는 자유의지로서의 '기차를 탄다'가 아닌 '기차에 실린다'는 표현을 하며 개인이 가져야 할 자유의지를 전쟁이라는 제국주의 장면에 넣어 국가에 개인의 삶과 죽음을 종속시키는 것으로 자기본위에 관한 이야기를 슬며시 집어넣기도 한다.

 

소세키는 이 소설을 일컬어 하이쿠적 소설이라고 했다. 예술론이 가득 담긴 예술가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소세키의 문학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풀베개》를 꼭 읽어야 하겠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무던하게 진행되는 구성이라 소설 같지 않은 소설, 산문을 읽는듯한 느낌이 강한 《풀베개》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사색을 할 때의 묘사다. 눈 앞에 그림으로 그려지듯 세세한 서술은 기품이 있다. 자연을 표현하는 서술은 자극 없는 오묘하고 형용하기 어려운 즐거움을 주면서 봄과 동화된 느낌이다.

고요함을 묘사하는 장면이나 온천물에 몸을 담근 장면, 특히 목욕탕에 들어온 여자의 몸을 묘사하는 부분은 가히 예술적이다. 노골적이지도 않고 속세의 때가 묻지도 않은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적 묘사에 감탄하게 된다.

곳곳에 여자의 자살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교묘히 깔아둬서 읽는 내내 은근 초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세키의 책을 현재까지 세 권을 읽어왔지만, 소설마다 같은 작가인가 할 정도로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 소세키 작가의 나머지 소설은 어떤 문체, 어떤 주제일지 무척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 풀베개의 배경이 된 구마모토에는 풀베개 마을이 형성되어 소설 속 배경이 잘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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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롭게 -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 사진공양집
일여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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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입적하실 때 더는 펴내지 말라는 유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생전 모습이 담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질수록 더 맑고 향기로운 사회가 되리라는 믿음 때문에 현 길상사 주지스님과 민간봉사단체 (사)맑고향기롭게의 허락을 맡고 이 책이 출간되었다. 도톰한 양장본에 하얀 표지, 법정스님의 흑백 사진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난다.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 사진공양집 《날마다 새롭게》

정성을 다해 찍은 사진을 부처님께 올린다는 의미의 '사진 공양'. 공양을 올리기 위해 길상사에 들러 사진을 찍어 온 저자 일여의 《날마다 새롭게》는 길상사에 깃든 나눔의 정신, 한국 불교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길상사는 절이 되기 전 술과 음식을 팔던 요정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고기를 파는 음식점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그곳을 시주한 김영한 여사와의 인연이 길상사의 유래가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길상사의 주법당인 극락전은 내부는 민가 한옥과 다를 바 없이 단청이 없는 단출하고 담백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는 종교를 따지지 않는 개방성 덕분에 많은 이들이 길상사를 찾는다.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을 이룰 때

그 삶에는 신선한 바람과 향기로운 뜰이 마련된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 법정스님

 

법정스님의 미공개 모습 사진이 가득 담겨있는데 법정스님의 단출한 삶을 사진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날카롭게 빛나는 눈매, 서릿발처럼 엄한 모습, 깐깐해 보이는 기품있는 모습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내세우지 않는 자연스러운 감사와 겸손의 모습과 손가락을 튕기는 버릇이나 대화에 집중할 때의 버릇 등 법정스님 생전에 "일여는 기자라 그런지 별걸 다 찍어" 라는 말씀처럼 소소한 일상이 담겨있다. 길상사에 마지막 법문을 하러 오신 날 폐암의 고통을 참아내며 기침을 많이 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코끝이 시큰해진다.

 

『 법정스님이 가장 좋아하신 음식은 국수였습니다. 입적 1주기 때 영전에 올린 음식도 국수였지요. 스님은 물미역도 좋아하셨다고 덕조스님은 회상합니다. 법정스님은 덕조스님에게 떡국 끓이는 방법을 딱 한 번 알려주셨는데 그대로 끓이지 않으면 안 드셨다고 합니다. 표고버섯을 우린 물에 미리 불린 떡을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후 땅콩버터를 넣은 떡국을 스님은 참 잘 드셨다고 합니다. 』 - p79

인간미 넘치는 법정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땅콩버터를 넣은 떡국의 맛은 어떤 맛일까.

 

자연의 색과 어우러진 길상사의 풍경과 나눔의 미소, 법정스님의 곧음이 드러나는 사진이 가득 담긴 《날마다 새롭게》는 쌉싸롬하면서도 끝 맛이 개운한 우리의 차, 은은한 향기가 나는 꽃차와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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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동물복지의 모든 것 -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박하재홍 지음, 김성라 그림 / 슬로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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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친절한 인류를 꿈꾸는 래퍼 박하재홍 저자의 책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방류 사건으로 동물 권리에 관해 조금이나마 언론에 조명된 지난해였다. 게다가 서울시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동물보호과'가 신설되어 적극적인 행정 반영 의지를 표현하기도. 이렇듯 동물복지의 시대가 열리는듯 하지만서도 한편에선 강남 모 아파트내 길고양이 감금 사건처럼 우리 주변의 동물복지에 관해 안타까운 일이 많은 현실이다.

 

전시동물과 반려동물, 농업이나 제조업에 이용되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동물들의 상황을 분석하고 복지 방안을 모색해보는 동물복지에 관한 책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 동물복지는 동물권리의 아래 개념이다. 동물권리란,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이 동물에게도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철학이다. 동물에겐 기본적으로 본성에 따라 살아갈 권리가 있으니, 사람은 동물의 본성을 마음대로 침해하며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동물권리의 이론이다. 이에 비해 동물복지의 개념은 좀 더 유연하다. 동물을 이용하되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심한 공포나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 그것이 바로 동물복지다. 』 - p9

 

책 제목이 의아했다.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는 돼지는 지능이 높고 활발하므로 지루한 걸 못 참는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2003년 유럽연합의 동물복지 규칙 개정때 유럽연합 회원국은 모든 돼지에게 의무적으로 장난감을 제공하도록 조치하겠다는 규정이 포함되었고, 덴마크의 경우 진흙 목욕 수렁 제공이라는 규정까지 추가되었다. 좁은 공간에 돼지를 가두면 물이나 진흙이 없는 상황에서 돼지는 배설물을 온몸에 발라서라도 체온을 식여야 한다고 한다. 본래 깨끗한 걸 좋아하는 돼지지만 우리 현실이 돼지를 더러운 동물로 만들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충남 '새농민 농장'의 친환경 돼지농장을 기점으로 서서히 돼지 농장의 복지향상이 확대되고 있긴하다.

 

 

 『 동물복지는 현실적인 원칙이다. 사람의 통제하에 살아가는 모든 동물이 기본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규칙과 제도를 정하는 것이다. 규칙과 제도를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내놓게 되면 강제력을 지닌 법으로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동물복지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자비며, 인간을 돕고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p13

 

항생제에 쩔은 동물을 섭취한 인간

원래 가축의 전염병을 방지할 목적으로 사료에 첨가했던 항생제. 그런데 사료 1톤에 항생 2~3kg을 섞었더니 돼지, 소 닭의 성장 속도가 50%나 증가하는 결과가 나옴으로써 항생제 남용의 사태가 벌어졌다. 설마 우리나라는 아니었겠지? 천만의 말씀. 2002년에는 축산물에 사용한 항생제 비율이 전 세계 최소 수준이었으며 스웨덴에 비해 30배나 많은 양이었다. 2006년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축산물 항생제 사용은 호주의 37배나 되었었고 공장식 축산의 대표 국가인 미국보다도 2.5배나 더 높았다는 것. 다행히 2011년에야 항생제 사료를 금지 조치했지만 솔직히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믿지 못할 지경이다.

 

자연상태의 닭의 수명은 20년 넘게도 살 수 있지만 공장식 축산 닭들은 육계용은 35일이라는 초고속 생을 살고, 산란계 역시 채 2년을 넘기지 못하는 짧은 생을 산다.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은 '동물복지 생산시스템'을 적용한 닭고기 식품으로 생지옥 같은 기존의 도축현장과 달리 동물복지 생산시스템이 적용되는 도축장의 닭고기를 사용한다고 홍보했다. 이러한 동물복지 생산시스템의 확대는 급물살을 타야한다. 세계 최대 육우 수출국인 호주에서도 소들에게 '인도적 도살'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 사육, 운송, 도축에 이르는 전 과정의 동물복지 제도가 앞으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와 함께 연결될 계획이라니 반가운 소식이다.

 

 

서울대공원의 뻐드렁니 호랑이 크레인의 사연이나 얼마전에 있었던 호랑이 사육사 사망사건 등 동물원의 실태, 제돌이를 통해 알려진 돌고래 산업, 그외 쇼 동물들 역시 법적 제도가 미흡한 상황이다.

 

 『 노아의 방주처럼 진정한 피난처로 거듭날 수 있는 동물원에만 면허가 발급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 - p103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개,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준비없이 맞이한 반려동물을 유기동물로 전락시키는 습관, 새로 사고 버리는 악순환의 고리, 공장식 축산 농장들과 다를바 없는 형편인 강아지 공장 등 애완동물을 예뻐하는 동물애호가가 아닌, 반려동물을 존중하는 동물보호 인식이 필요하다. 베를린의 경우 동물보호소 입양률이 98%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로마시는 반려견 산책을 매일 정기적으로 강제하는 법이 있어 개 산책을 게을리하면 벌금을 물릴 정도다.

 

반려동물로 인한 사람 사이의 갈등은 사회적 갈등으로 번진다.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좋은 답안을 찾아야 한다. 2012년 울산에서 애견운동장 설립으로 공원관리소의 민원처리 부담과 이웃갈등 감소의 효과가 실질적으로 있었고 이후 몇군데 반려견 놀이터가 생긴 상황이다. 길고양이 관련한 정책도 올바른 방향으로 좀더 박차를 가해주면 좋겠다.

 

 『 동물을 존중하는 정서는 사람에 대한 차별 의식을 줄어들게 한다. 』 - p219

 

동물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하고 동물을 '배려'하는 마음은 지성있는 우리 인간이 노력해야 한다.

누가 이 땅이 우리 인간만의 것이라 했던가.......

 

그간 동물보호, 동물복지 관련 책은 전문서적의 느낌이 강했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 저자가 직접 쓴, 우리나라 현재의 상황에 맞는 동물복지 실황을 부담없는 에세이느낌으로 쉽게 다가오는 언어를 가졌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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