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이어령.정형모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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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최전선은 예언하는 게 아니다. 피투성이로 싸우는 게다."

 

디지로그 주창자,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21세기 지식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볼 수 있는 책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고품격 문화 스타일 <S매거진> 정형모 기자가 매주 한 차례씩 6개월여간 일대일 족집게 과외를 받으며 연재했던 글을 지금 시점에 맞춰 재정리한 글이라고 하네요. 마주앉아 대화하듯 진행하는 글이어서 실감 나더라고요.

 

 

 

이어령 교수의 서재에는 촉각을 곤두세운 일곱 마리 고양이가 있다는데, 바로 컴퓨터를 가리키는 거였어요. Computer Aided Thinking 앞글자를 딴 CAT. 컴퓨터가 내 사고를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노학자의 컴퓨터 활용법은 저보다도 훨 낫네요. 마인드젯으로 정리하고 에버노트, 드롭박스 연계해 여러 대 컴퓨터가 호환 가능하고 동시 작업 가능한 클라우딩 컴퓨팅. 스마트펜을 이용해 쓰고 녹음하면서 이미 10년 전 쓴 책 <디지로그>에서처럼 아날로그를 결합하는 디지로그 활용을 실감했어요. 그의 고양이들은 지의 전투가 격렬하게 진행되는 최전선이었습니다. 

그의 서재만큼이나 활발하게 지의 격전이 진행되는 곳, 와이어드 전자판 사이트도 언급하는데, 책은 이미 10년 전에 나온 생각들로 쓰인 것들이 허다한 상황이지만, 이곳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같이 생각해보는 현장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언론이나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정보는 다루지 않고, 쓸데없는 것에 낭비하고 있음을 꼬집습니다. 중요한 건 죄다 놓치고, 다가오는 문명을 제대로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고요.

 

지의 최전선 중 하나인 3D프린팅의 사례를 드는데, 주문하면 거실 3D프린터가 작동해 순식간에 물건이 생기는 드론 배송과는 비교하지 못할 빛의 속도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D프린팅 활용에 소극적이다 못해 뒤처져있죠. 이어령 교수님은 3D프린팅을 이용해 한국의 전통주택인 초가집을 살리려는 계획을 세우셨더라고요.

 

 

 

 

지정학의 중요성도 일깨워줍니다. 단순히 식민지 쟁탈전이 아닌 해양 대륙 간의 싸움 속에 담긴 숨은 의미를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아주 중요하게 드러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대륙국가인가 해양국가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우리는 반도국가로, 대륙과 해양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한반도의 힘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죠.

 

아시아라는 단어 기원과 의미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놀라웠어요. 동남아라고 우리가 말하는 동남아 지역은 말 그대로 동남쪽으로 가면 그 나라 안 나온다는 것을 언급하며 중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말뚝처럼 서 있지 마. 역사는 강물처럼 흐르는데 우리는 강기슭에서 탄식해야겠어?"

 

바이러스와 문명의 관계도 흥미로웠어요. 바이러스 전염병은 역학이라기보다는 언어의 소통문제라고 합니다.

광우병 사례를 이야기하는데요. 스코틀랜드 농민들이 붙인 이름인 광우병 이름이 주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죠. BSE 라는 공식명칭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에서조차 앞다퉈 광우병으로 불렀습니다.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 쓸데없는 공포심, 혼란을 최소화해야 사회적 부담, 정치적 갈등이 감소할 텐데 언어 소통에 실패했던 사례라고요.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에서는 우리만 강 건너 불구경인 사례가 많이 소개하고 있답니다.

외국에선 난리인데도 우리 신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는 것들을 언급하며 우리는 지의 후방 전선에서 놀고 있는가 하며 안타까워합니다.

 

3D프린터로 바이러스도 찍어내는 세상이란 거 아세요? 노학자의 지식정보력은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생물학자도 의학자도 아닌 ​컴퓨터소프트웨어 회사에서 IT 전공자들이 이런 걸 해내는 세상입니다.

에디슨만 배우는 게 아니라 에디슨이 테슬라를 이기지 못한 이유를 알려줘야 하는 게 교육이라고 하고요.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모든 지적 프로세스는 관심, 관찰, 관계라고 해요.

그의 최전선은 검색을 통해 과거를 Thought 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Thinking 하는 살아있는 인문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 언어의 어원을 파고들어 개념을 끄집어내고 하이퍼텍스트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하네요. 유선, 무선 이야기가 해양 세력, 대륙 세력 지정학 문제로 나아가는... <지의 최전선>에서 그가 풀어내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하이퍼텍스트라고 합니다.​

 

 

 

한국적 사고의 화두가 되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는데,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와 한국인의 거시기 머시기를 비교합니다. 말이나 논리로는 콕 찍어낼 수 없는 세상에서 포용적 단어의 유리함과 그것을 찾는 것이 창조적 삶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공감되더라고요. 좌우지간에... 라는 말을 잘 쓰는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 오히려 장점이 될 근거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어령 교수가 이미 10년 전에 <디지로그>에서 말한 내용을 되짚어보면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변한 게 없긴 하네요. '거대한 문명을 읽는 섬세한 더듬이'라고 정형모 기자는 말하는데 노학자가 검색으로 다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을 왜 우리는 못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운 지의 담론을 보여주는 책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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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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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나 제목만으로는 자기계발서나 에세이 느낌이 드는데 일본소설이네요.

흡인력은 제대로였어요. 앉은 자리에서 뚝딱 다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진 책입니다. 직장인이라면 핵공감할만한 내용이랍니다.

 

​"진짜로 잘난 사람이란 어떤 환경에서나 잘나게 돼 있어. 사회에 나가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도 참을성도 아니야.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가 하는 점이지. 어떤 사람과도 일해 나갈 수 있는 적응력이랑. 말하자면 '생존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거야." - p15

 

 

 

입사 반년 된 신입사원 아오야마의 하루하루는 그다지 낙이 없네요. 야근, 휴일근무, 열정페이...

남들 하는대로 대학교 졸업하고 구직 활동 후 입사 처음에는 나름의 꿈, 희망, 의욕이 있었지만 어느새 지친 얼굴에 공허한 눈동자를 지닌 모습으로 변합니다. 비디오로 되감은 듯한 시간을 그저 소화해 나갈 뿐인 하루하루입니다.​ 생존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부했건만, 사회를 우습게 보았다는 무력감에 절어있는 아오야마의 현재입니다.

 

그러다 승강장에서 우연히 동창생이라며 말을 건 한 남자를 만나면서 변하게 됩니다.

기억에는 없는 동창생이었지만 편한 마음에 주말마다 만나게 되죠. 자신을 니트족이라 하며 그냥 아르바이트나 하는 중이는 동창생. 그러면서도 아오야마에게 진지하게 사회생활에 대해 충고해 주기도 하고요. 그의 별것 아닌 말에 아오야마는 조금씩 바뀌고, 업무에도 좋은 영향을 주기 시작하죠. 이대로라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 믿음도 생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계약을 진행하며 실수를 하면서부터 인생은 다시 꼬이네요. 그 일로 인해 한순간에 자존심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역시 난 뭘 해도 안 되는 건가...하며 자책만 하다가 옥상 자물쇠가 열리는 날만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자살할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아오야마는 '설령 전직한다고 해도 나는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고, 애초에 이런 쓸모없는 남자를 고용해 줄 새로운 회사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의 쓰레기일 뿐인 나를 허락해 주는 이 장소에 계속 있을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만큼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동창생은 아오야마에게 이직을 추천하지만, 이 상태에서는 전혀 자신감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그저 몇십 년만 참으면 된다고도 생각할까요.

 

그런데 아오야마의 기억에 없던 그 동창생에게도 비밀이 있었어요. 기억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죠. 동창생이 아니었으니까요. 왜 그럼 동창생인 척 그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굴고, 조언도 해주고 그랬을까...

동창생의 비밀이 밝혀질 때 마음이 아주 짠해지더라고요.

 

 

 

도망치지도 못하고 결국 애를 쓰다 망가져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도망치는 법을 몰랐기에 회사를 그만두지도, 누군가에게 상담하지도 못하고, 너무 괴로운데도 회사를 그만둘 용기도 없었던 남자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했어요.​

 

아오야마는 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도망치는 법을 배운 셈입니다.

​아오야마의 입에서 "지금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라는 말이 나왔을 때 독자인 제가 더 찌릿하고 통쾌함이 몰려들더라고요.

 

"바꾸기는커녕 이 사회 하나, 이 부서 하나, 마주한 사람 한 명의 마음조차 바꿀 수 없는, 이토록 보잘것없고 장점 하나 없는 인간이 나예요. (중략) 하지만 이런 나라도 한 가지만은 바꿀 수 있어요. 바로 내 인생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어쩌면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것과 이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걸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있어요. " - p199

 

이 책은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미디어웍스 문고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일본 젊은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소설 브랜드 '아스키 미디어웍스'에서 주최하는 문학공모전이라 하는군요. 빠른 전개와 감동 글귀가 마음에 들었어요.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사는 직장인들을 위한 대리만족 스토리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힘들수록 버티라는 말이 더는 안 통하는 시점이 있죠.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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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세계 최고 여행지
김후영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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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다녀온 세계문화유산 여행에서 선별한 58개 세계문화유산을 소개한 책 <세계 최고 여행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류가 창조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다양한 유형의 문화적 아이템을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 현재 195개국 중 124개국 721군데가 지정되었다 하네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제외되기도 한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대체로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지만, 역사적 가치에 더 집중해야 할 곳임은 분명합니다. <세계 최고 여행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는 유럽 17개국, 아시아 9개국, 아프리카 7개국, 아메리카&오세아니아 9개국의 세계문화유산이 소개되어 있는데, 20여 년간이라는 세월이긴 하지만 정말 대단하다 싶어요.

 

 

 

흩어져있는 세계문화유산을 소개하고 있기에 여행루트는 딱히 없습니다.

일반 여행가이드북과는 다른 형식으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테마에 한정된 가이드북이라고 보면 됩니다. 

 

 

 

 

나라별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래, 가치, 역사적 지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사진을 특별히 배운 적 없다 하지만 사진 퀄리티도 좋았어요. 세계문화유산답게 위엄있고,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진 모습 등 찍으면 화보가 되네요. 

 

 

명소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도 많아요. 

 

 

 

 

찾아가기 힘든 곳도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몸소 느끼는 그 감동은 정말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을 듯하네요. 

 

 

 

 

세계문화유산을 다룬 교양서 느낌이면서도, 여행 중에 생긴 에피소드도 조금씩 풀어두고 있답니다.

여행 스토리와 여행 정보 코너에서는 교통, 여행하기 좋은 계절, 특별한 여행 관람 팁,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곳 등 여행책으로 활용하기 좋게 간략히 소개하고 있어요.

 

 

 

 

​<세계 최고 여행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소개한 세계문화유산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스페인 안토니 가우디 건물처럼 건축물이 있고. 피렌체 역사지구, 영국 배스 같은 마을이나 도시 자체가 지정된 곳도 있고. 파리 센 강 주변처럼 강이나 계곡 등 자연환경이 지정된 곳도 있네요. 로마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지만 엄연한 나라인 도시국가 바티칸 시티도 소개되고요.

예전에 읽은 <세계문화유산 100배 즐기기 - 한국편> 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관련 책으로 소장하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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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0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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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에 슬슬 발들이게 되면 주변에서 보통 일본소설 많이 추천해주시던데 제 취향은 유럽, 영미 소설쪽에 더 가까운건지 아직 일본 추리 스릴러에 푹 빠지진 못하겠더라고요 ㅎㅎ그 와중에 한국 추리 스릴러, SF 소설을 맛봤더니만... 꽤 읽을만하더라고요.

 

 

황금가지 밀리언셀러클럽 시리즈에서 나오는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은 이번에 나온 5권을 처음 접해봤어요. 평소 단편은 또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사실 큰 기대는 안 하고 한번 읽어본 책인데 뜻밖에 재밌었어요. 읽으면서 '우리나라 추리 스릴러 수준도 괜찮구나' 생각 들 정도였네요. 작가 10명이 쓴 추리 스릴러 10편이 수록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중복되는 분위기가 없어 좋더라고요.

 

 

 

 

표지 이미지에 등장한 장수풍뎅이가 나오는 첫 번째 단편 《시간의 뫼비우스》가 메인 격이긴 했어요. 제 맘에도 쏙 들었고요.

"이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난 없을 겁니다." 터널의 어둠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거라는 남자. 같은 인생을 반복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기묘한 이야기를 기차에서 만난 여자에게 풀어놓는데, 이런 인생의 반복이란 소재 자체는 흔하죠. 하지만 시간의 뫼비우스는 결론이 정말 탄성을 자아내게 하더라고요.

역시 머리 좋은 사람만 추리 스릴러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ㅎㅎ

 

 

인생을 반복해서 산다는 것.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 반복하게 되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 게다가 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내 의지대로 움직이거나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똑같은 인생을 계속 반복하는 거였거든요. 시간이 되돌아가기 직전의 마지막 내 의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채 그걸 지켜봐야만 한다는 거죠. 과거로 회귀해 끝없이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입니다. 영원불멸의 물리법칙에 갇힌 '나'는 어떻게 시간의 순환에서 풀려날까요. 흥미롭죠? ^^


 

 

​두 번째 단편 《네일리스트》는 이번 책에서 가장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제 취향에서는 이게 제일 재밌었는데요. 불법 성매매 일을 하던 한 여인이 죽은 사건에 담긴 진실을 깨닫는 순간 찌릿해지더라고요.

 

 

 

 

최근에 읽었던 <악의-죽은 자의 일기> 범죄 스릴러 소설을 쓴 정해연 작가의 단편 《누군가》는 엘리베이터 오물 사건 때문에 골머리 썩는... 코믹하게 진행하는 부분이 있어 신선했어요.

그 사이에 투신자살이라는 사건이 들어가는데 추리 스릴러의 무난한 사건에 오물 사건을 슬쩍 던진 부분이 묘미.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추리 스릴러 단편은 《해무》, 《그렇게 밤은 온다》가 기억에 남는데요.

묘귀에 씐 여자의 복수를 그린 《해무》는 그 분위기 자체가 음습했고, 살인 전과자에게 쫓기는 한 여자의 사건을 그린 《그렇게 밤은 온다》는 날 선 감각을 묘사하는 부분이 괜찮네요.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실린 10편 중에서 반 정도는 무척 놀라웠고, 나머지도 재미없다고 느꼈던 건 없었네요. 조선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검은 학 날아오르다》 같은 경우는 생각했던 강도의 추리 스릴러치고는 약했지만, 추리 스릴러라는 장르의 범주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했네요. 결론은 읽을만했다는 것. 이제는 한국 추리 스릴러는 뭔가 시시해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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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의 인문학 - 지도 위에 그려진 인류 문명의 유쾌한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명남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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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겸 저널리스트 사이먼 가필드 저자는 인간이 만드는 지도, 이 지도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으로 서두를 꺼냅니다. 지도를 살펴보면 정복과 착취의 이야기, 발견의 이야기, 점유와 영광의 이야기를... 즉 인류의 역사가 보인다는 겁니다. 지도의 역사에 관한 책은 제법 나와 있지만, <지도 위의 인문학>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교양서로 읽기 괜찮았어요. 

 

 

 

 

조금 특이한 이야기부터 꺼내는데요.

2010년 페이스북 가입자들의 상호 연결성을 표현한 지도입니다. 꽤 놀랍더라고요. 그저 하나의 덩어리일거라 예상했지만, 세계지도로 변하는 모습은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하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지도 위의 인문학>은 지도가 어떻게 생겨났고, 누가 그렸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다양한 과학기술이 더해져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지도의 변천사를 풀어놓습니다.

향후 수백 년간 지도의 기반이 될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 이야기를 하면서는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의 <역사> 이야기까지 나오네요. 지금은 사라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지식의 상징으로 우뚝 서기 위해 자료를 모은 덕분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 제작에 기여를 하기도 했고요.  

 

옛 지도 이미지가 참고자료로 많이 나오는데, 호사스러운 바로크풍 지도... 뭔가 멋스럽긴 하더라고요. 예나 지금이나 지도 제작자는 텅 빈 곳을 싫어했다는데 그래서 천사, 문장, 유니콘, 범선, 바다뱀, 하물며 용까지. 빈 자리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후 1,000년가량 지도의 발전은 이뤄지지 않았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책이 발견되면서 그리고 인쇄 산업 등 기술 발달을 업고 지도 제작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합니다. 당시엔 여행용이 아니라 철학적, 정치적, 종교적, 백과사전적, 개념적 관심사를 진술하는 지도로 추상적인 형태가 많았습니다. 지리적 정확성은 뒷전이긴 했죠. 그래도 르네상스 시대답게 예술인 동시에 과학으로서의 지도, 그래서 최초의 수집 열풍도 이때 일어났다는군요.

 

 

 

저자는 지도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로 빈랜드 지도 (Vinland Map)를 꼽습니다.

북아메리카를 바이킹이 먼저 발견했다는 전설적 이야기의 증거인 빈랜드 지도. 신세계를 기록한 최초의 유럽문서일까? 아니면 날조냐? 이 논란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라는군요. 하긴 이게 맞는 이야기라면 세계사가 바뀌는 거니까요. 

 

 

아메리카 발견과 관련해서는 그 이름부터가 흥미롭게 탄생했더라고요.

당시 지도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철저히 유럽 중심이었는데, 아메리카 발견에 조금이라도 관련한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착오로 붙여진 이름이었대요. 잘못된 오류를 고칠 새도 없이 널리 지도가 퍼지게 되어 이때만큼은 인쇄 산업 발달이 치명적으로 작용해버린 경우입니다.

 

 

 

측량이라는 신기술 발달로 식민지 측량시대가 오면서 차지할 권리 없는 땅에도 이름 붙이고, 정작 지도에는 원주민들의 신전이나 고유의 것들은 생략해버린 채 텅 빈 땅 혹은 기회의 땅인 것처럼 나타내기도 하죠.

 

 

이렇듯 세계를 투영하는 방식이 지도에 고스란히 드러나는군요.

둥근 지구를 평평한 해도로 표현하는 것도 고위도 왜곡이 심한, 유럽 중심의 인종적 편견과 지도학적 제국주의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UN 로고는 우리가 흔히 쓰는 메르카토르 도법이 아닌 북극권을 중심으로 한 방위등거리 도법에 따라 제작된 지도가 사용되고 있죠. 

 

 

지도는 상업적, 기술적 발전을 드러내기도 하고, 의학적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탐정 기법의 전염병 지도, 회로도 같은 지하철 노선도처럼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히틀러가 적의 사기를 꺾으려 여행가이드북 지도의 별 지점에만 폭격기를 보내기도 했을 정도로 지도가 악용된 사례도 있긴 하지만요.

 

 

지도와 관련한 가상의 지형, 보물지도, 속임수 등 황당한 에피소드도 재미삼아 읽을만했어요.

위성항법장치 GPS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도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이야기하는 부분도 공감되었는데, 내가 간 경로를 노골적으로 추적하며 모든 것이 지도화되는, 나 자신을 지도화하는 GPS. 세상과 내가 연결된 느낌은 옛 지도와 오늘날의 지도 어디에서 더 느낄 수 있는지 자문합니다. 기술적으로는 나를 중심으로 표시되는 요즘 지도 앱에 탄성을 할만하지만, 아날로그적 향수는 찾아보기 힘드네요.


지도 안에는 세상의 발전, 세계사가 담겨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지도 위의 인문학>, 청소년부터 읽을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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