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시작점에서 읽어야 할 책 - 모든 아이디어는 기획서로 완성된다
심정아 지음 / 천그루숲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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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무리 밤새워 만든 기획서라도 결정권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예쁜 PPT에 불과합니다. 아이디어는 공중에 흩날리는 연기일 뿐, 그것을 현실로 바꾸는 무대는 바로 기획서!


『기획의 시작점에서 읽어야 할 책』은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 캠페인을 직접 기획하고, 예능 프로그램 및 디지털 플랫폼과 협업하며 매일 기획서를 써 내려간 국내 최고 광고대행사 제일기획 현직 마케터 심정아 저자가 자신만의 노하우를 체계화한 실무 지침서입니다.


글로벌 브랜드부터 국내 대기업까지, 수천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부터 실험적인 디지털 캠페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경험을 가진 저자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기획이 어떻게 막막함에서 출발해 설득으로 귀결되는지 보여줍니다. 


저도 기획서를 단순히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문서나 보고서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먼저 기획자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좋은 기획서란 무엇인가? 반드시 통과되는 기획서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결정권자의 입장에서 기획서를 바라보라고 주문합니다. 그들이 기획서를 보며 느끼는 쾌감은 명쾌한 논리 덕분에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다는 안도감입니다.


어떤 기획이든 결정권자가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획서의 본질이라는 말로 기획자가 해야 할 역할을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기획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설득해 결정권자들에게 파는 문서라는 정의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기획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4가지 핵심역량 ― 정리력, 논리력, 생각력, 설득력 ― 은 기획의 4대 기둥입니다. 요즘 같은 정보 과잉 시대에 결정권자들은 길고 복잡한 문서를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군더더기를 제거해 한 번에 읽힐 수 있게,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고수의 기획서입니다. 


저자는 논리력을 기획의 초석이라 강조합니다. 좋은 기획서는 '이걸 왜 해야 하죠?'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는 기획서입니다. 기획서에는 전략과 실행이라는 두 축이 있으며, 각각 ‘왜’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를 담당합니다. 전략단과 실행단의 구분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3단계 논리 흐름, 문제 해결법, 인사이트 도출 방식은 실제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생생한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치열한 경험에서 길어 올린 논리적 사고의 힘을 전수합니다.


많은 주니어 기획자들이 가장 막막해하는 순간은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순간입니다. 저자는 이때 필요한 것은 번뜩이는 천재성보다는 훈련된 생각회로라고 합니다. 기획의 확장은 생각력에서 비롯됩니다.


포스트잇 생각법, 조인트 생각법, 반수면 생각법 같은 구체적인 훈련 방식을 소개합니다. 아이디어는 앉은 엉덩이로 쌓아낸 정보의 결과물이라는 말은 뼈아프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조인트 생각법처럼 자료와 생각, 그리고 의외의 연결을 통해 전혀 새로운 기획이 탄생하는 순간은 기획자의 가장 짜릿한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논리와 아이디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저자는 설득력을 기획의 마지막 관문이자 결정적 차별화 요소로 강조합니다. 진짜 설득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하듯, 논리는 기본이지만 진짜 승부는 공감과 감동에서 갈리는 겁니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스토리텔링, 컨셉 설정, 호감을 얻는 인트로 기법 등을 소개합니다. 모든 기획서에서 컨셉이 필수는 아니겠지만, 마케팅 기획서에서는 컨셉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며 컨셉의 중요성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결정권자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 기획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파트는 기획자들의 훈련법 노트라 할 만합니다. 기획서 필사, 역추적 훈련, 단어와 문장 수집 등 실무에서 적용 가능한 방법들이 펼쳐집니다.


기획서 필사의 효과는 의외였습니다. 선배들처럼 좋은 기획서를 쓰고 싶다면 일단 좋은 기획서를 내 손으로 따라 쓰면서 꼭꼭 씹어 먹는 시간을 투자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좋은 글을 필사하듯, 좋은 기획서를 손으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구조와 흐름, 단어 선택의 뉘앙스를 체득할 수 있는 겁니다.


『기획의 시작점에서 읽어야 할 책』은 기획이라는 사고법을 훈련하는 교본입니다. 저자의 풍부한 현장 경험 덕분에 오늘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 도구로 가득합니다. 주니어 기획자나 취업 준비생뿐 아니라 프리랜서 크리에이터에게도 유효한 보편적 기획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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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해방 - 알츠하이머병 세계적 권위자가 30년 연구로 밝힌 뇌 건강 프로젝트
묵인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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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수이자 치매융합연구센터 센터장으로 30년 넘게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기전과 치료제 개발을 파고든 세계적 권위자 묵인희 교수의 『치매 해방』.


치매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 혹은 내가 사는 집의 구조조차 잊어버리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2050년 치매 환자 300만 명 시대를 앞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치매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묵인희 교수는 치매를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바라보자고 합니다. 치매의 오해와 진실, 조기진단의 중요성, 치료와 예방까지 최신 과학적 연구성과를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며 실천 가능한 생활 지침도 함께 전합니다.


흔히 치매를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치매는 노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명확한 질병으로 봅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의 70%를 차지하며 단순 건망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건망증과 알츠하이머병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잊어버리는 기억의 범위,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즉,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잊었다가 나중에 떠올리는 것은 건망증이지만, 열쇠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해지는 것은 치매의 신호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치매를 단일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치매는 수많은 원인과 다양한 경로로 발병하는 다면적 질환군이라고 합니다. 원인과 진행 속도, 치료 가능성 역시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치매=망각이라는 단순화된 등식을 떠올립니다. 『치매 해방』은 이런 오해를 걷어내고 과학적 시선으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치매는 오랜 세월 뇌 속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병입니다. 증상이 드러나 병원을 찾을 때는 이미 발병 후 10~15년이 지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를 치매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합니다.


최첨단 진단 기술의 발전 덕분에 조기진단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혈액검사를 통한 바이오마커 측정, 인공지능을 활용한 MRI 분석은 이미 임상에서 활용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특히 AI 기반 영상 분석은 뇌 위축과 혈관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해 치매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는 도구입니다.


조기진단은 빨리 아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증상의 진행을 늦추고, 약물 치료나 생활습관 교정을 가장 효과적인 시점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매 치료와 관련한 희망의 문은 점차 열리고 있습니다. 저자는 최근 FDA 승인을 받은 아밀로이드 베타 제거 항체 치료제를 설명합니다. 아두카누맙과 레카네맙 같은 약물은 뇌에 쌓이는 독성 단백질을 직접 제거하여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모든 환자에게 획기적 치료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질병의 본질에 접근하는 약물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료계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시도도 소개됩니다. 디지털 치료제입니다. 스마트폰 앱, 게임, VR 등을 활용하는 디지털 치료제는 인지 기능을 훈련시키고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VR 기반 인지 훈련은 환자들의 공간 감각을 되살리고, 음악 치료는 정서적 안정을 돕는 사례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치매 치료의 본질을 맞춤형 다학제 치료에서 찾습니다. 약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 미술·음악·운동·사회적 교류 같은 비약물적 요법이 환자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한다고 합니다. 치매가 단순히 뇌 속 세포의 문제를 넘어, 인간 전체의 존엄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치매 해방』의 핵심은 예방에 있습니다. 저자는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이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뇌가 손상되거나 노화가 진행되더라도 인지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힘, 즉 뇌의 근육 같은 것입니다.


인지예비능이 높은 사람은 병리 변화가 있어도 증상이 늦게 나타나거나 경미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뇌 속 병리 변화를 지니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일찍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지예비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저자는 항산화 식단, 규칙적 운동, 양질의 수면, 사회적 활동 등의 생활 습관을 강조하며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소개합니다. 어쩌면 뻔한 조언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보니 잘 지키고 있다는 말을 하기 어렵더라고요.


묵인희 교수는 치매 극복을 개인과 사회의 연대 과제로 규정합니다. 치매는 환자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사회적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매 해방』은 치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준비 가능한 도전으로 바꿔주는 책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뇌 질환이 과학과 실천을 통해 극복 가능한 프로젝트로 변모하는 순간, 치매 없는 100세 시대를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준비된 노년의 실용적 가치를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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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말해 줄래?
하미라 지음 / 좋은땅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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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누군가 괜찮냐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괜찮다고 답하는 우리들. 하지만 실상은 감정적 피로감에 찌들어 있진 않은가요?


괜찮은 척에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감정의 언어를 되찾아 주는 따뜻한 에세이 『괜찮다고 말해 줄래?』.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지 않은 순간을 지나면서도, 마치 훈련된 배우처럼 괜찮은 척을 해내곤 합니다.


​22년차 방송작가이자 감정치유 에세이스트인 효담 하미라 작가는 그 억눌린 감정의 회로를 풀어내며 무너짐, 가면, 울림, 직면, 비교, 틈, 허용, 연결, 회복 그리고 믿음에 이르는 내면의 여행을 보여 줍니다.





감정의 첫 균열, 무너짐.  왜 나만 아플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열며, 처음으로 자신이 무너진 순간을 담담히 고백합니다. 일상의 작은 상처가 쌓이고 쌓여 결국 마음의 저수지가 텅 비어 버린 순간을 묘사하며 감정이 말라 버린 날을 들려줍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공감을 느끼는 지점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능숙하게 괜찮은 척을 해왔는지 일깨워 줍니다. 저자는 방송작가로서 누구보다 감정을 잘 표현할 줄 알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아무렇지 않은 척으로만 꾸며 왔다고 합니다.


빛나는 척, 웃는 척, 당당한 척. 하지만 그 척들 뒤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있었다는 고백이 와닿습니다. 다양한 인간관계 심지어 가족 앞에서도 늘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그동안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괜찮은 척의 피로감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숨겨 두었던 감정이 불시에 울림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자는 문득, 스치듯, 꿈틀이라는 단어들로 그런 찰나를 표현합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노래 한 소절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감정은 억눌린다고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를 흔듭니다. 이 울림의 경험은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어집니다.





저자의 전환점은 직면의 장입니다. 처음으로 자신이 느끼는 불안, 공허, 분노를 정직하게 불러냅니다. 자기 인식을 피하거나 미루던 사람이 각성을 하는 시점입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무너져도 돼, 울어도 돼. 이 문장들은 짧지만 힘이 있습니다. 직면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자기 회복의 출발선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됩니다.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용기나 미소 하나 같은 사소한 경험이 닫힌 마음의 문틈을 열어젖힙니다. 저자는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이 무너진 자신에게 숨통을 트이게 했던 순간을 기록하며, 그 미세한 틈이 얼마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는지 보여줍니다.


회복은 특별한 사건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자가 말하듯 평범한 하루가 가장 큰 회복의 증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를 내리고, 익숙한 길을 걷는 것. 그 사소한 일상이 가능해졌을 때, 감정은 비로소 다시 살아납니다. 억지 긍정이 아니라 실제 회복의 과정을 현실적으로 보여 줍니다.


저자는 나를 믿기로 했다는 다짐으로 글을 맺습니다. 자기 확신과 자기 돌봄은 결국 동일한 지점에서 만나게 됩니다. 믿음은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눈물겨운 위로보다는 담백하게, 다정한 철학을 전하는 하미라 작가의 『괜찮다고 말해 줄래?』. 감정의 가면을 벗고, 무너짐에서 회복으로 가는 여정을 함께 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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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 관한 100개의 질문 - 프로 디자이너에게 묻고 싶은 디자인이라는 일
Ingectar-e 지음, 이소담 옮김 / 모스그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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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프로디자이너들이 보는 책이라 생각해서 어렵게 생각했다가, 좌르륵 넘겨본 순간 단숨에 빠져들었습니다. 폰트와 색을 조합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게 되는 고민거리를 모두 다루고 있는 책 『디자인에 관한 100개의 질문』. 디자인 입문자는 물론이고 현직 디자이너에게도 정체성을 점검하고, 실무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처럼 펼쳐볼 수 있는 책입니다.


브랜딩, 그래픽, 웹 디자인을 아우르는 디자인 사무소 ingectar-e가 집필한 이 책은 스튜디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고민을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디자이너의 사고방식과 일의 흐름을 친근하면서도 전문적으로 풀어낸 안내서입니다.





예쁜 포트폴리오를 위한 장식용에 가까운 책이 아닙니다. 디자이너들의 진짜 속마음과 현실적 고민을 제대로 이해한 실무진이 쓴 진짜 가이드북입니다. 마치 선배 디자이너가 신입에게 속삭이는 절대 학교에서 안 가르쳐 주는 현실 조언과도 같습니다.


목차를 훑는 순간, 그동안 질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그냥 흘려보냈던 주제, 늘 피상적인 답변만 접했던 부분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 책이라면 그런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밀려왔습니다. 『디자인에 관한 100개의 질문』은 클라이언트, 레이아웃, 폰트, 배색, 인쇄, 학습 & 마음가짐에 관한 주제를 다룹니다.


개인의 창의적 산출물을 넘어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됩니다.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클라이언트는 '더 세련되게, 더 고급스럽게, 더 임팩트 있게'라는 추상적이면서도 모호한 표현을 씁니다. 이때 디자이너는 그 표현이 지시하는 맥락을 탐구해야 합니다.


의뢰인의 언어를 시각적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번역가가 됩니다. 클라이언트의 욕망과 시장의 맥락을 해석하는 일이 곧 디자인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저자는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 준비 사항에서 견적 산출 방법, 원만하게 조율하는 팁 등을 소개합니다.


갈등 상황에서의 태도에 대한 조언도 도움 됩니다. 무리한 요구를 받을 때 거절 대신 조건을 조율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처럼, 디자인은 결국 협업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세페이지를 만들 때나 학교 신문을 만들 때 레이아웃의 중요성을 실감한 경험이 있습니다. 레이아웃은 디자인의 골격이자 무대 위 무대감독 같은 역할을 합니다. 레이아웃을 단순한 틀로만 취급할 수 있는데, 레이아웃은 내용의 논리와 시선의 흐름을 동시에 통제하는 장치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화면의 균형은 단지 눈에 보이는 정렬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가 느끼는 리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레이아웃의 미묘한 힘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폰트는 메시지의 정서를 형성하는 얼굴입니다. 폰트 선택은 말투를 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문장도 고딕체로 쓰이면 현대적이며 또렷한 인상 톤이 되고, 명조체로 쓰면 품위 있고 신중한 울림이 됩니다.


『디자인에 관한 100개의 질문』에서는 폰트의 종류를 나열하기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지를 풀어냅니다. 서체 선택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단계이지만, 사실은 전체 디자인의 감도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ingectar-e 디자인사무소는 색채와 배색 관련 서적을 다수 집필한 만큼, 배색 파트의 설명도 세밀합니다. 색은 즉각적인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언어입니다. 색채를 다룰 때 가장 흔한 실수로 좋아하는 색을 무작정 쓰는 것 아닐까요?


디자인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맥락에 맞는 배색을 찾는 과정입니다. 저자는 색 고르기는 클라이언트의 의향과 정보, 분석이 받쳐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게다가 '요즘 느낌'을 잘 포착할 수 있는 팁까지, 색을 잘 다루는 것은 결국 맥락을 읽는 감각임을 보여줍니다.


디자인이 디지털 화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 세계와 맞닿는 순간은 인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디자인에 관한 100개의 질문』에서는 제작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룹니다. 인쇄소와의 소통 방식, 색이 화면과 다르게 표현되는 이유, 종이 질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사례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의 학습법과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와닿았습니다. 매일의 학습이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관찰력과 사고방식을 훈련하는 과정임을 일깨웁니다.


디자인 책 고르는 법, 번아웃에 빠졌을 때의 대처법, 동기부여를 되살리는 방법, 장기적으로 경력을 유지하기 위한 태도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조언이 이어집니다. 멘토의 따뜻한 상담처럼 읽힙니다.


클라이언트와의 소통부터 인쇄 등 실무 프로세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6개 영역에 걸쳐 100가지 질문과 답변을 체계화한 『디자인에 관한 100개의 질문』.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어도 됩니다.


디자인의 주관적 특성상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식의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기 쉬운데, 이 책은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짚어주고 있어 도움 됩니다. 이론서가 주는 지적 만족감과 매뉴얼이 주는 실용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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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윤리 -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는 우리의 선한 본성에 대하여
이권우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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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30년 넘게 도서평론가로 활동하며 고전부터 현대 철학·과학·역사까지 넘나드는 글쓰기를 이어오는 이권우 저자가 맹자를 소환합니다.


『최소한의 윤리』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위기들 - 불평등·전쟁·기후 위기 속에서 도덕적 합의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지 묻습니다. 그런데 맹자를 불러낸 까닭은 무엇일까요? 두려움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은 이익과 욕망을 좇는 계산 대신 최소한의 인륜과 관계성을 지켜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윤리』는 2300년 전 맹자의 목소리를 빌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질문에 답합니다. 이익과 욕망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최후의 보루, 바로 인의(仁義, 사랑과 의로움)의 정신을 재발견하는 여정입니다.





맹자와 양혜왕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위기에 몰린 양혜왕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안이 무엇이냐고 묻자, 맹자는 "왕께선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답합니다. 양혜왕이 어떻게 선량한 의도에서 시작해 결국 빌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왕이 내 나라를 어떻게 이롭게 할까 고민하면 대부(지배층)는 내 가문을 어떻게 이롭게 할지 고민하고, 서민 역시 자기 한 몸을 이롭게 할 방안을 찾게 마련이다"라는 맹자의 통찰을 현대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와 연결해 해석하는 대목이 빛납니다.


국민을 위한다, 회사를 위한다는 말이 사실은 내 권력을 위한다는 변주에 불과할 때, 우리는 양혜왕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결국 빌런이란 영웅을 흉내 내지만 욕망에 매몰된 얼굴입니다.


맹자는 이익의 정치가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간다고 보았습니다. GDP 성장률을 내세우며 사회적 불평등을 방치하는 정치, 기후 위기를 알면서도 탄소세를 회피하는 정치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덕의 정치는 관계와 신뢰를 기반으로 합니다. 저자는 이를 공멸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정치적 상상력이라 부릅니다.


맹자가 제시한 대안은 인의(仁義). 부모를 사랑하고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 부정의에 맞서는 용기입니다. 저자는 이를 관계의 윤리로 해석합니다. 온라인 혐오 댓글을 멈추게 하고, 기후 위기의 현장에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게 하는 힘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한 욕망을 부추기는 존재론의 시대를 끝장내고, 관계론의 세상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데 있다."라며 관계론의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라 역설합니다.


저자는 맹자를 지성사 최초의 진화 철학자라 부르며 고대의 사유를 지금 여기로 소환합니다.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아이가 우물에 빠질 때 누구나 본능적으로 구하려 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은 현대 진화학자 프란스 드 발과 장대익 교수의 공감 본능 연구와도 연결됩니다. 뇌 속 거울뉴런의 작동이 바로 맹자의 성선설을 뒷받침한다는 겁니다.


맹자는 인간의 차별성을 사단(四端)에서 찾았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인간이 짐승과 다를 수 있는 네 가지를 뜻합니다. 저자는 이를 네 가지 윤리적 본능으로 번역합니다. 오늘날에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도덕 직관과도 연결됩니다.


트위터에서 혐오 발언을 보고 불편해지는 마음은 ‘수오지심’이고,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습관은 ‘사양지심’입니다. 맹자의 언어와 우리의 일상이 이처럼 닮아 있다는 점에서 윤리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옛말이 아닙니다.


센스있는 소제목을 보며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독재하는 ‘또라이’는 갈아치울 수 있다."라며 맹자는 폭정을 일삼는 왕을 폐위시켜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현대 정치와 제대로 겹쳐지지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법과 제도를 무력화하고 민주주의를 장식품으로 만든다면, 시민은 맹자의 말처럼 갈아치울 권리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맹자가 강조한 인륜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철학입니다. 저자는 이를 오늘날 네트워크 사회와 연결합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고립된 개인은 결국 존재 기반을 상실합니다. 반면 관계성에 뿌리를 둔 윤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유지하는 최소 조건입니다.





맹자는 중용을 삶의 도리로 삼았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칼날 위를 걷기보다 어려운 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극단적 진영 논리를 넘어 중용을 실천하는 길은 그래서 더 절실하지만, 동시에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거대한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 대신, 일상에서 인의를 실천하는 삶. 『최소한의 윤리』는 이를 두고 희망의 대열에 끼어 살고 싶은 사람의 태도라 표현합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윤리는 결국 삶의 습관과 태도에서 구현된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고전 읽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윤리』. 맹자의 언어를 21세기 담론과 연결하며 치밀한 독서와 현실 인식에 바탕한 진정한 고전 해석입니다.


맹자가 2300년 전 전국시대의 위기를 마주하며 제시한 인의의 정신이, 공멸의 위기에 놓인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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