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해바라기
오윤희 지음 / 북레시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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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기자로 활동하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오윤희 작가의 신작 『검은 해바라기』. 소년 범죄라는 사회적 이슈와 가족 심리라는 사적인 영역을 치밀하게 엮어내며 그 속에서 인간 내면의 어둠을 추적합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고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상기시킵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 태연이 사건 의뢰를 받으면서 전개되는 초반부는 소년 수완의 범죄를 둘러싼 침묵과 회피를 중심에 둡니다. 태연은 수완의 변호를 준비하며 그의 가정사를 파고들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법적 유죄와 도덕적 유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수완의 눈빛 속 공허함은 오래된 결핍의 증거입니다.





가슴을 무겁게 만드는 지점은 가정의 침묵이 만들어낸 어둠입니다. 수완의 엄마 여정은 모든 애정을 첫째 아들 지완에게 쏟으며, 문제아인 둘째를 무의식적으로 포기합니다.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이 인생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며, 이 과정에서 비교는 삶의 기본 언어가 됩니다. 『검은 해바라기』 속 수완이 겪는 내적 고통 역시 가족 안에서의 편애뿐 아니라 사회적 경쟁의 압박과 직결됩니다. 이 침묵과 방치가 만들어낸 결과는 소년이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비뚤어진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행위였습니다.


변호사 태연의 시선은 수완의 사건을 쫓는 동시에, 자신이 키우는 딸 재희의 비밀을 엿보게 됩니다. 이중 구조는 가정의 침묵이 특정 집안만의 문제가 아님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아이들의 불안과 고립이 이 소설 속 캐릭터들을 현실적으로 만듭니다.


수완과 지완 형제를 둘러싼 대비가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지완은 타고난 두뇌와 외모, 그리고 주변의 칭송까지 모두 거머쥔 인물입니다. 부모의 기대와 사회의 찬사는 늘 그의 몫이었고, 동생 수완은 언제나 그늘에 있어야 했습니다. 지완의 빛은 수완의 어둠을 필요로 했고, 수완의 어둠은 지완의 빛을 부각시키는 장치였습니다. 이 불균형한 진실 속에서 형제 관계는 파괴적으로 변질됩니다.


“수완이가 어둠이라면 넌 빛이었지. 하지만 어둠 없이 빛이 무슨 존재 가치가 있을까?” 태연이 수완의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깨닫는 것은 범죄의 표면 너머에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빚어낸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빛과 그림자라는 모티프는 비교와 편애가 만든 균열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기능합니다.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며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지완과 수완,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내면 고백이 교차하면서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질문이 무겁게 떠오릅니다.


지완은 겉으로는 모범적인 형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병적인 자기애와 은밀한 악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엄친아 신화가 만들어낸 가혹한 이면을 드러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의 아이콘 뒤에 도사린 어둠, 그리고 그 어둠을 떠안게 된 가족의 고통은 소설 속 허구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검은 해바라기』는 화자가 인물 저마다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전환되면서 한 사건이 얼마나 다양한 시각에서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진실의 다면성을 체감하게 합니다.





가정은 아이에게 안전망인가, 아니면 가장 위험한 덫인가? 오윤희 작가는 기자적 관찰력과 소설가적 상상력을 결합해 범죄와 가족 서사의 접점을 포착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그림자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정서적 고립은 형제 관계를 왜곡시키고 대화를 잃은 가족을 만듭니다. 형만 생각하는 부모와 이미 내 인생은 끝났다는 수완의 목소리 사이에는 관계 단절이 남긴 깊은 심연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심리학의 교재이자 사회적 거울이라는 추천사처럼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당신은 자녀의 목소리를 진짜로 듣고 있는지, 아니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진 않는지를요.


『검은 해바라기』속 등장인물 대부분은 오히려 평범합니다. 자신의 성취를 자녀에게 투사하는 부모,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가는 자녀, 비교와 차별 속에서 자존감을 잃어가는 형제. 이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습니다.


오랜만에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며 느낀 건 긴장감의 결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평범한 가정 속 균열을 추적하는 이야기여서 그렇습니다. 『검은 해바라기』는 사건보다 사람을, 범죄보다 그 이면의 정서를 파고듭니다. 읽고 나면 서늘하지만, 그 서늘함이 오히려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으로 다가오는 사회 심리 스릴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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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왜 자꾸 내 말을 끊을까 로버트 볼튼 인간관계 수업 1
로버트 볼튼 지음, 박미연 옮김 / 트로이목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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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상대가 힘들다고 토로할 때 건네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위로, "그건 이렇게 하면 돼"라는 조언, "정말 잘했네!"라는 칭찬이 오히려 관계를 해치고 있다고요? 로버트 볼튼의 『그 사람은 왜 자꾸 내 말을 끊을까』는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되는 커뮤니케이션 책입니다.


1986년 개정판 출간 이후 40년간 아마존 커뮤니케이션 분야 1위를 지키며 전 세계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의 원제는 『People Skills』. 한국어판은 2권으로 분권되어 출간되는데, 이번에 소개할 1권은 인간관계와 듣기 기술에 집중합니다.


저자 로버트 볼튼 박사는 스스로 인간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포춘 500대 기업을 비롯해 의료계, 교육계,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수만 명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실시한 릿지트레이닝 사를 설립한 인물입니다.


스스로의 약점을 발판 삼아 수만 건의 대화 사례를 분석하고 행동과학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의 법칙을 세웠습니다. 이 책은 잘난 사람의 조언이 아니라 넘어진 사람이 깨달은 실천법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 축으로 듣기 기술, 자기주장 기술, 갈등 해소 기술, 협동 문제 해결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중 듣기는 첫 관문에 불과합니다. 올바른 듣기가 있어야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기주장이 가능하고, 갈등을 성숙하게 해결하며, 협력적 문제 해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듣기는 인간관계의 출발점이자 나머지 세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대화를 인류 최고의 업적이라 부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화는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서로 연결되기 위해 말을 시작하지만, 정작 서로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팀워크가 깨지는 이유도, 가족 간 오해가 깊어지는 이유도 결국은 잘못된 대화 습관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화를 가로막는 걸까요? 저자는 몇 가지 방해요소를 짚어줍니다. 흥미롭게도 이 목록에는 우리가 흔히 긍정적이라 여기는 칭찬, 위로, 충고까지 포함됩니다.


이런 반응들은 대화를 내 중심적으로 끌어가며 상대의 진짜 감정을 놓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할 때 “너는 늘 잘하잖아, 괜찮아”라고 답하는 것은 위로 같지만, 사실상 상대의 감정을 무효화하는 방해요소가 됩니다. 결국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좋은 의도의 함정을 경계해야 하는 겁니다.


저자는 우리가 인생의 70%를 듣기에 쓰면서도 정작 제대로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질문을 통해 상대를 이해한다고 믿지만, 볼튼은 질문에 너무 의지하고 잘못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오히려 질문은 대화에서 장애가 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닫힌 질문은 화자를 방어적으로 만들고 대화의 흐름을 차단합니다. 결국 좋은 질문은 적게 하되, 개방형으로, 그리고 상대의 의제에 초점을 맞출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합니다.





저자의 핵심 기술은 반사적 듣기입니다. 바꿔 말하기, 감정 반사하기, 의미 반사하기, 요약 반사하기라는 네 가지 기법을 소개합니다. “회의에서 무시당한 것 같아”라고 말하면, 단순히 “힘들었겠다”가 아니라 “회의 자리에서 인정받지 못한 느낌이었구나”라고 반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단순한 공감 표현을 넘어, 상대가 자기 감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그 사람은 왜 자꾸 내 말을 끊을까』는 반사적 듣기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지 못하고, 청자는 화자의 말을 자기식으로 걸러 듣기 때문에 진짜 뜻을 왜곡한다며, 결국 반사적 듣기는 이 왜곡의 간극을 줄이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제로 반사적 듣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세세한 지침을 소개합니다. "이해한 척하지 말라. 상대방의 기분을 모두 안다고 말하지 말라. 감정에 초점을 맞추라. 목소리에 공감을 표현하라"라고 말합니다.


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진정한 경청자는 모른다고 인정하고, 상대의 감정에 머무르며, 성급히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빠른 해답을 요구하는 시대에 이런 태도는 오히려 낯설지만, 관계를 오래 지탱하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은 왜 자꾸 내 말을 끊을까』는 제목만 보면 단순히 말 끊는 사람에 대한 처방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화 속 무수한 잘못된 듣기 습관을 점검하게 하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저자가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효과를 입증한 이 기술들은 직장에서의 협상과 협업, 가정에서의 친밀한 대화, 친구와의 관계 회복까지 두루 적용 가능합니다. 우리는 흔히 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잘 듣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관계의 주인공임을 일깨웁니다.


오늘날 SNS에서 ‘내 말 좀 들어줄래?’라는 절규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조용히 마음을 담아주는 경청자의 존재입니다. 로버트 볼튼 박사는 이미 40년 전 이 사실을 간파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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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후의 인간 - 다가온 변화, 예견된 미래
반병현 지음 / 생능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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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이자 창업가, 그리고 연구자라는 다층적 정체성을 가진 저자 반병현 대표. 행정기관 자문, 스마트파밍 특허, 현재의 AI 컨설팅 기업 운영까지 이어지는 그의 이력은 AI를 개념적 논의가 아닌 실질적 도구와 동력으로 다루는 시각을 보여줍니다.


『AI 이후의 인간』은 AI를 둘러싼 과학적 이해와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담아냅니다. 무엇보다 AI가 인간을 대체할까라는 피상적 질문에 그치지 않고, 기술의 뿌리에서 철학적 논쟁까지 확장하며 AI 입문서로 제격입니다. AI가 모든 선택을 예측하고, 추천하고, 심지어 대신 결정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AI의 정체는 빅데이터 해독기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창의적 직관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를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압축하고 패턴을 뽑아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기계라는 인류의 오랜 꿈에서 시작해 규칙 기반에서 통계 기반으로 진화한 AI의 여정을 따라가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1부는 AI의 기술적 기반을 다룹니다. 기계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의 경이로움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1960년대 ELIZA라는 원시적 대화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GPT 계열로 이어진 발전사를 짚어주며 왜 기계가 언어를 다룰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를 학습하는 시대, 과연 창의성의 원천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AI가 때때로 천재처럼 보이는 이유를 우연성으로 설명하면서, 인간의 창의력과 AI의 생성 능력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분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3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예술과 창작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2부에서는 AI가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GPU에서 NPU로 이어지는 하드웨어 전쟁, 클라우드 패권을 둘러싼 거대 기업들의 경쟁, 그리고 오픈소스 AI 생태계의 약진까지 복잡한 산업 구조를 정리합니다.





특히 바이브 코딩 논쟁을 다룬 부분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최근 해고자의 40%는 개발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에서 보듯 고급 기술직이라고 여겨졌던 개발자들조차 AI의 도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AI가 판결문까지 작성할 수 있다는 사례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직이 마주해야 할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자는 기술결정론적 관점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수요자 중심의 사고가 여전히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제시하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3부는 창작의 고통과 공존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술계의 분노와 혼란을 예고합니다. 지브리 프로필 사진 사태를 통해 본 예술가들의 분노는 창작자로서의 정체성과 생계에 대한 위협이 동시에 드러나는 복합적 현상입니다.


저자는 AI 업계를 사이버 도적단이라고 부르는 예술가들의 시각을 진지하게 검토합니다. 동시에 기술 발전의 필연성과 창작자들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기술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출근하는 AI라는 표현은 우리가 곧 마주할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밥 대신 전기를 먹고사는 동료와 함께 일하게 될 때,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이런 업무에 AI를 투입해도 되나요? 라는 질문처럼 공공영역에서 AI 도입이 가져올 윤리적 딜레마를 예고하기도 합니다.


퍼스널 AI에 대한 논의는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가족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AI가 등장할 때, 인간관계의 본질은 어떻게 변할까요? 저자는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과 연결의 욕구라는 철학적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4부는 AI가 불러오는 근본적 철학 문제들을 다룹니다. 불쾌한 골짜기에서 대유쾌 마운틴으로 이어지는 주제를 통해 인간과 AI 사이의 감정적 거리감 변화를 암시합니다.


윤동주 시인을 닮은 AI처럼 기술과 인문학의 만남이 가져올 복잡한 문제들도 보여줍니다. 죽은 시인의 정신을 AI로 구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그것은 추모일까요, 모독일까요?


자율주행 자동차의 딜레마를 통해 제기되는 윤리적 판단 문제, AI 판사는 인간보다 공정할까라는 의문에서 제기되는 정의와 공정성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까지 법리적 정의와 철학적 정의 사이의 간극을 AI가 메울 수 있을지, 아니면 오히려 확대시킬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입니다.


『AI 이후의 인간』은 기술적 원리부터 산업적 파급효과, 인간관계의 변화, 그리고 철학적 질문까지 AI가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을 총체적으로 조망합니다. AI가 가져올 변화를 막연하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전망을 보여줍니다.


지브리 프로필 사진 사태를 통해 본 예술계의 분노, 데이터 포이즈닝 어택 같은 신 러다이트 운동, 그리고 AI 규제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까지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들을 생생하게 담아냅니다.


무엇보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기술을 호기심 많은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차근차근 설명해나가는 책입니다. AI 초보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는 이들도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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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나를 만드는 고전 명화 필사 노트 - 명화 한 점, 글 한 편, 그리고 나를 위한 필사의 시간
박은선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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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이자 16년 차 미술교사 박은선 저자가 엄선한 100일간의 특별한 여행 『단단한 나를 만드는 고전 명화 필사 노트』.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고전 명문장 100편과 명화 100점을 정성스럽게 엮어냈습니다.


읽고, 보고, 쓰는 사유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바쁜 일상 속 멈춤의 미학, 명화와 명문장이 만들어내는 성찰의 시간을 만나보세요. 기쁨, 관계, 사회, 자연, 창조, 지혜, 고독, 시간, 꿈, 나라는 주제로 펼쳐집니다. 인간의 삶을 압축한 키워드이자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질문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각 장의 명화와 문장은 감상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평범한 순간들의 가치를 재조명합니다. 『빨강 머리 앤』 속 앤이 '모퉁이를 돌면 멋진 일이 있을 거야.'라고 말할 때면, 알폰스 무하의 〈봄〉이 떠오른다며, 흐드러진 꽃잎과 햇살 아래로 걸어오는 소녀의 발걸음에 희망이 번져오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런 연결고리가 저자만의 독특한 시선을 잘 보여줍니다. 문학 속 희망적인 메시지와 미술작품이 만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소소한 기쁨들을 포착해 내는 안목을 기르도록 일깨워 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명문장과 입체주의를 대표하는 스페인 화가 후안 그리스의 작품 <기타 치는 할리퀸>을 나란히 두고 저자는 우리는 모두는 조각난 광대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하루라는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존재라며 말이죠.


외부 세계에 맞추어 웃음을 연기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고통이나 허무를 안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비극을 감춘 채 웃고, 웃음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는 모순된 배우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균형이 아닐까요? 완전히 비극적이면 삶을 감당할 수 없고, 지나치게 희극적이면 깊이를 잃습니다. 우리는 비극과 희극 사이 어딘가에서 매일의 삶을 공연합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미켈란젤로의 <과일 바구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에두아르 마네의 <페르 라튀유 식당에서>, 공자 <논어>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나란히 놓았을 때 전혀 다른 시대와 영역에서 태어난 언어와 이미지가 서로에게 다가가며 뜻밖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고, 마치 두 세계가 겹쳐지듯 한층 더 깊은 사유의 장이 열립니다.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혜와 감각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놀라운 울림입니다.





『단단한 나를 만드는 고전 명화 필사 노트』는 그저 명언집이나 미술책이 아닙니다. 쓰기라는 적극적 행위를 통해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책입니다. 단순히 몇 편의 문장을 필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단단한 중심을 쌓아가는 여정을 만끽하게 됩니다. 글과 그림, 그리고 나를 향한 시간이 한데 엮인 결과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속 문장은 인생을 해결해야 할 문제집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며 체험하는 항해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인생에 해결책 같은 건 없고,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힘만 있다는 말은 삶의 본질이 불확실성과 시도에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팔 시네이 메르세의 <열기구> 작품을 보는 순간, 하늘로 떠오르는 열기구는 준비되지 않은 채 떠나는 여정과도 같아 보입니다. 떠올라야만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듯, 삶도 움직임 속에서만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자가 덧붙인 "그저 앞으로, 앞으로"라는 조언은 이 사유를 실천적 지침으로 만들어 줍니다. 완벽한 준비가 없더라도 출발해야만 흐릿한 길이 점차 선명해진다는 조언은 불안과 주저함을 다독이는 따뜻한 격려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이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정돈하고 싶은 이들, 그리고 예술을 일상의 언어로 경험하고 싶다면  『단단한 나를 만드는 고전 명화 필사 노트』를 펼쳐보세요. 필사를 통해 얻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면을 지탱하는 힘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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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당은 없다 - 기후와 인간이 지워낸 푸른 시간
송일만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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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제주라는 특정한 지역의 기억을 넘어,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붕괴의 경고장을 담은 자연에세이 『바당은 없다』.


제주 출생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거쳐 살아온 송일만 저자가 다시 고향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은 절절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바당은 나의 집이었고, 놀이터였으며, 세상 밖의 세상이었다"라는 고백처럼 바다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정체성과 공동체, 그리고 세대의 다리를 놓아주는 존재였음을 일깨웁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바다가 더 이상 있지 않음을 증언합니다. 『바당은 없다』의 첫 장은 풍요로운 바당의 기억을, 두 번째 장은 그것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세 번째 장은 붕괴된 생태계의 경계에 선 인간과 자연의 갈등을, 마지막 장은 이어도라는 상징을 통해 다시 연결될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제주 방언들이 등장합니다. 바다를 뜻하는 제주어 바당을 비롯해 겡이왓, 폴개 등 낯설지만 동시에 토착적 생태지식과 공동체의 생활사를 고스란히 품은 단어들이 살갑게 다가옵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바당의 풍경을 회고하는 저자. 돌 틈을 누비던 게, 여름밤의 반딧불, 계절마다 돌아오던 해조류와 물고기는 제주 사람들의 생계이자 놀이였습니다.


저자는 바당을 '나의 우주'라 표현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바당은 변치 않는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가장 가변적이고 취약한 생태계였습니다.


저자의 회고를 읽으며 저는 도시에서 성장한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공유지의 풍요로움을 떠올렸습니다. 『바당은 없다』는 한 세대가 자연과 맺던 친밀감이자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기록입니다.


이내 경고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바당이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고발합니다. 인위적인 양식 산업이 자연을 대체하는 현상을 짚어줍니다. 제주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겡이왓은 개발과 매립으로 사라지고, 관광업과 행정 편의가 생태를 압도합니다.


백화현상에 대한 언급이 인상 깊었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백화현상을 만들지는 않는다며, 결국 바다가 스스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과도한 간섭과 탐욕이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렸다는 겁니다.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산호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결국 구멍갈파래 같은 침입종이 생태계를 장악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흔히 에메랄드빛 바다라며 감탄하는 관광 엽서 속 풍경은 사실 회복 불능의 상처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다가 맑고 푸르다는 것이 꼭 건강한 생태계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바다의 푸름이 비명이 되어 울려 퍼지고 있음을 저자는 고발합니다.


이어서 붕괴된 생태계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사용하는 표현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난민 어랭이입니다. 서식지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난민에 비유합니다. 인간의 과잉된 소비와 개발이 결국 다른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음을 짚어줍니다. 한쪽의 풍요는 다른 쪽의 결핍을 전제로 한다는 냉정한 현실 말입니다.


행정과 기업이 내세우는 친환경 담론의 허구를 꼬집기도 합니다. 겉보기에는 깨끗한 정화수일지 몰라도, 그것은 이미 자연의 순환이 끊어진 인위적 결과물일 뿐입니다. 생명은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얼마나 이 붕괴에 기여했는가? 관광객으로서, 소비자로서, 혹은 행정의 침묵을 방조한 시민으로서 말입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가 펼쳐집니다. 이어도는 한국인에게 신화적 공간이자 이상향의 상징입니다. 저자는 바당은 바당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며, 인간의 도구적 시선에서 벗어나 바다가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바다는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임을 강조합니다. 바당은 없다는 선언은 상실의 탄식이 아니라,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진짜로 없어질 것이라는 경고와도 같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공유 감각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도는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생태적 책임 그 자체입니다.


바다환경지킴이로 활동하는 송일만 저자는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가 결국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제주 바다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바다가 사라지는 이야기는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구적 현실이며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기후위기의 축소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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