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뇌에 관한 11가지 흥미로운 질문
호르헤 챔.드웨인 고드윈 지음, 이영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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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사랑은 도파민의 장난일까? 자유의지는 환상일까? 호르헤 챔과 드웨인 고드윈의 카툰 뇌과학 수업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복잡한 이론을 직관적인 그림과 유머감 가득한 스토리텔링으로 설명하고 있어 유쾌하게 읽은 뇌과학 입문서입니다.


뇌를 인간 이해의 열쇠로 바라보는 두 저자, 로봇공학자이자 베스트셀러 만화가 호르헤 챔과 신경과학자 드웨인 고드윈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한 가지 실험을 시작합니다.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인 뇌를 인류가 만든 가장 단순한 표현 방식인 만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은 그 실험의 결과물입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시작된 이 대화는 사랑, 혐오, 자유의지, 행복,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11가지 질문으로 확장합니다.





첫 번째 질문 '정신은 어디에 있을까?'는 단순히 신경학적 위치를 찾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깊이감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장에 정신이 있다고 생각한 고대인의 관점에서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그 논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강한 감정을 느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명치가 찌릿거리는 경험을 하잖아요. 이런 신체적 반응을 근거로 심장을 감정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현대 신경과학은 정신은 뇌의 한 영역에만 위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은 조금씩 모든 곳에 존재한다"라는 것입니다. 감정이 심장 박동과 연동된 신체 반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어를 이해하고 조합하는 뇌 영역이 있고, 세상을 감지하고 몸을 움직이는 영역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나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나는 하나의 통일된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기능들의 유기적인 앙상블입니다. 그 앙상블 속에서 '나'라는 감각이 떠오른다는 겁니다. 즉, 정신은 신체의 다양한 기능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다중적이고 유동적인 존재인 셈이지요.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에서는 감정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랑이 보상 시스템이라는 신경 네트워크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감정과 관련된 뇌 회로, 즉 보상 시스템이 약물 중독과도 관련된 뇌 회로입니다. 뇌는 사랑과 마약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감을 주고, 그 경험이 반복을 유도하는 피드백 루프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빠질 때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고, 그 관계에 중독됩니다.


인간의 혐오 감정을 탐구하는 파트도 흥미진진합니다. 타인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뇌가 미워할 대상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뇌는 생존을 위해 위험한 대상을 회피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 기능이 타자 배제로 전이되어, 인종차별이나 혐오 표현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도덕적 비난을 넘어 혐오의 신경학적 구조를 보여주며 '왜 인간은 편 가르기를 멈출 수 없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불편한 진실은 혐오가 실제로는 쾌감을 준다는 것입니다.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뇌의 복측피개영역이 활성화되는데,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행위 자체가 뇌에 보상을 주는 구조였던 겁니다. 왜 인류가 역사 전체에 걸쳐 혐오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어서 출구 효과(doorway effect) 실험으로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뭔가를 찾으며 생각하다가 다른 방에 들어가는 순간, 찾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험해 보셨나요? 열쇠, 휴대폰, 안경... 방금 전까지 열정적으로 찾던 것들이 뇌의 어딘가에서 증발해버립니다.


이 출구 효과는 인간의 기억이 맥락 의존적임을 보여줍니다. 공간이 바뀌면 뇌는 이전 맥락을 종료하고 새로운 인식 체계를 작동시킨다는 것입니다. 버그인가요? 그런데 잊어버림은 결함이 아니라 효율입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자동으로 지워내는 뇌의 청소 기능은 오히려 창의적 사고의 전제 조건이 됩니다. 저자는 망각의 지혜라 부르며, 인간의 뇌가 완벽한 저장 장치가 아니라 유연한 해석 장치임을 강조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질문들은 더욱 철학적입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특히 임사체험은 저자들의 흥미로운 관심사입니다. 임사체험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여기지만 저자들은 이것이 뇌의 특정 부위의 기능 장애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과학적 근거로 설명합니다. 몸을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 밝은 빛 속으로 끌려가는 느낌, 이전 삶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 현상 모두 신경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겁니다.


200여 개의 카툰으로 신경과학을 표현한 장면들이 재미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일수록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도파민의 분비 과정이나 뇌 영역 간의 상호작용은 문장으로만 설명하면 모호해지지만, 그림으로 보면 직관적이 됩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엑소쌤이 이 책을 뇌과학 입문서로 추천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으로 뇌의 작동 방식을 알면 불확실하게 느껴지던 세상이 선명해집니다. 행복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보상 시스템의 조율 상태이며, 인간다움이란 감정과 이성이 협업하는 뇌의 균형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본능을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혐오는 우리의 본능이지만, 그 본능을 거부하고 포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중독은 우리의 뇌 화학이지만, 그것을 알고 극복하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선택합니다.


이것이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인 이유는 가장 발달된 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뇌의 명령에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과학적 탐구를 넘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윤리적 사유로 확장하도록 돕습니다. 뇌 사용 설명서를 넘어 삶의 이해 설명서로 기능합니다.


과학적 교양과 대중적 유머, 그리고 철학적 통찰이 어우러진 뇌과학 입문서 『내가 궁금할 땐 뇌과학』. 뇌를 탐구하지만 인간을 이야기하고, 과학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의 의미로 돌아옵니다. 뇌의 구조를 이해하는 동시에 마음의 구조를 재발견하게 합니다. 뇌를 이해하는 순간, 타인이 이해되면서 과학이 곧 공감의 문법으로 작동합니다.


#내가궁금할땐뇌과학 #호르헤챔 #드웨인고드윈 #알에이치코리아 #뇌과학 #카툰 #인디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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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도 괜찮습니다 - 하루한장, 불안을 극복하는 아들러 심리학
최영원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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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불안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육아에 지친 부모, 노후를 걱정하는 중장년층까지 '불안'이라는 단어는 모든 세대를 지배하는 일상어가 되었습니다. 


심리학자 최영원의 『불안해도 괜찮습니다』는 불안을 삶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나침반으로 다시 읽어냅니다. 불안장애를 겪은 뒤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 회복의 실마리를 찾은 저자의 개인적 체험 위에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대중적으로 풀어냅니다.


불안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불안을 없애려 할수록 오히려 불안은 더 강하게 우리를 붙잡습니다. 불안 루프입니다. 불안을 부정할수록 불안이 강화되는 역설의 구조입니다. 그런데 『불안해도 괜찮습니다』는 이 불안을 결함이 아니라 생존의 신호이며, 변화를 향한 알람이라고 합니다.


아들러는 감정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행동의 한 형태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아들러의 관점에 따르면 불안은 단지 감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우리 내면이 보내는 목적지향적 신호입니다.


발표를 앞두고 느끼는 불안은 망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불안을 나의 적으로 삼을 것인가, 나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으로 삼을 것인가 그 선택의 문제를 짚어줍니다.





이처럼 불안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합니다. 불안의 뿌리가 열등감이 아니라 자기보호에 있다고 말이죠. 흔히 열등감에서 불안이 비롯된다고 생각해왔지만, 불안은 내가 나를 지키려는 방법이었던 겁니다.


불안은 나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입니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밤잠을 설치는 건 실패를 예견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 일에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안을 몰아내는 게 아니라 그 불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읽는 일입니다.


저자는 아들러의 또 다른 명제를 상기시킵니다. 인간은 환경의 희생자가 아니라 해석하는 존재라는 것. 현실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바꿀 수 있습니다. 불안을 다스리는 힘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비롯된다는 이 심리학적 토대가큰 안정감을 줍니다.


불안의 상당 부분은 비교에서 비롯됩니다. SNS를 켜면 누군가의 '좋아요'가 내 하루의 행복을 위협합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 어른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무엇이 칭찬받을 만한 행동인지 어른의 반응을 통해 배운다고 합니다.


저자는 불안의 근원을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는 과정에서 찾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짜 우리의 욕망인지, 혹은 타인이 만들어놓은 욕망의 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 묻습니다.


아들러식으로 말하자면 '과제의 혼동'입니다. 타인의 과제를 내 과제로 착각할 때 불안은 증폭됩니다. 이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과제 분리' 즉,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SNS에서 타인의 행복한 일상을 보며 '나만 뒤처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낄 때, 그 감정은 사실 타인의 기준을 내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입니다. 저자는 "이런 순간에 나만의 기준이 있나요?"라고 되물으라 조언합니다. 오늘의 비교 사회를 사는 이들에게 작은 정신적 해방구로 작용합니다.





아들러와 프로이트를 비교하며 불완전함에 대한 해석을 보여줍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과거의 상처와 무의식에 지배받는 존재라고 보았고, 아들러는 인간이 과거가 아닌 미래에 설정한 목적을 향해 스스로를 끌고 가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프로이트의 결정론적 세계관과 아들러의 목적론적 인간관의 차이를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프로이트식 접근은 "나는 과거의 희생자야"라는 태도로 이어지기 쉽지만, 아들러식 접근은 "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야"라는 태도를 가능하게 합니다.


불완전함은 과거의 상처가 아니라 미래로 향한 동력입니다. 불안을 피하지 않고 내 편으로 삼는 법을 배우는 순간, 불완전함은 더 이상 결함이 아니라 가능성의 시작이 됩니다.


『불안해도 괜찮습니다』는 불안을 해석하는 구체적 기술들을 소개합니다. 작가는 불안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언어로 다룹니다. 나는 왜 불안한가? 대신 불안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로 질문을 바꿔보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불안 이후의 세계, 즉 자기 수용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아들러가 강조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순히 인간관계 차원의 개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곧 삶의 안전망이자 고립과 불안을 가라앉혀 줄 심리적 피난처라고 합니다.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 만성적 불안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입니다. 저자는 불안 극복의 해법을 공동체적 회복에서 찾습니다. 불안을 줄이려면 완벽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불안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겁니다.





『불안해도 괜찮습니다』가 제안하는 마지막 단계는 '불안의 동반자화'입니다. 불안은 성장의 증거라는 문장은 책의 결론이자 선언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불안하더라도 멈추지 않는다면 이미 충분히 성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책은 불안을 없애주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과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책입니다. 최영원 작가는 자신이 불안을 겪은 사람으로서, 불안을 부정하지 않고 생활 속 실천법으로 전환하는 법을 안내합니다.


하루 한 장씩, 40일간의 심리 리추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불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기술을 매일의 짧은 장 안에서 다룹니다. 불안은 나의 적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내면의 언어입니다. 그 언어를 해독할 줄 알게 되는 순간, 삶은 훨씬 덜 흔들리고 훨씬 더 나답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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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돈을 벌었다고요? - 우리나라 산업은 어떻게 발달했을까? 지식 잇는 아이 21
이정환.김은정 지음, 이장미 그림 / 마음이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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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파도를 건너온 한 가족의 시간 여행 『이 일로 돈을 벌었다고요?』. 이정환, 김은정 부부 교사가 함께 쓴 이 책은 과거를 산업의 변화를 통해 현재의 나를 이해하도록 돕는 살아 있는 경제사 수업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이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느끼지 않도록 이씨 가족 4대의 삶을 통해 70년 한국 산업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작농이었던 증조부에서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증손자까지, 각 세대가 경험한 산업 변화는 산업사이자 곧 생활사로 이어집니다. 역사 교과서의 딱딱한 연표 대신 가족의 일기장을 넘기듯 한국 산업의 거대한 흐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한 가족의 밥그릇이 증명하는 대한민국 산업사 70년, 세대를 관통하는 생존의 역사 『이 일로 돈을 벌었다고요?』. 마치 증손자가 증조할아버지에게 건네는 질문 같기도 하고,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산업들을 향해 던지는 의문을 담은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1950년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지주에게 착취당하던 영길의 아버지가 광복 후 농지개혁으로 처음 자기 땅을 갖게 되는 장면입니다. 대한민국 산업사가 '소유'라는 개념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줍니다.


땅 한 평 없던 사람이 땅 주인이 되는 경험. 그것은 생산수단을 갖게 된다는 경제적 의미를 넘어, 한 인간이 역사의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되는 상징적 순간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아이들에게 경제 정책을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서게 합니다. 


유튜브 채널 '엄근진쌤의 수업 레시피'를 운영하며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온 이정환 교사는 추상적인 농지개혁이라는 정책을 한 가족의 희망으로, 삼백 산업(밀가루·설탕·면직물)을 식탁 위의 변화로 풀어내며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입니다.


여성과 청소년 노동력이 대거 투입된 1960년대 경공업 발달기에는 산업화의 그늘을 응시하게 합니다. 복잡한 역사의 결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들의 땀방울이 오늘의 산업 기반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공감하도록 그려냅니다. 증기기관과 방직기로 시작된 영국의 산업화가 100여 년에 걸쳐 진행됐다면, 한국은 불과 10여 년 만에 압축했습니다. 그 속도가 가능했던 건 영희 같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중화학 공업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철강, 조선, 화학. 무거운 물건을 만드는 중화학공업으로의 전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이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절박함을 성수의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1980년대, 성수의 아들 정훈은 자동차 카드에 푹 빠진 초등학생입니다. 이 시대는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전환하는 분기점이었습니다. TV가 안방에 들어오고, 마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자·통신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중산층이 탄생합니다.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경제 구조의 문제점도 만들어냈습니다.


"게임만 해서 뭐 먹고살래?" 2000년대, 성수의 막내아들 지훈이가 아버지로부터 들었을 법한 잔소리입니다. 게임이 오락을 넘어 거대한 산업이 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인터넷 혁명이 있었습니다. PC방 문화,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 온라인 게임의 등장. 한국은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앞선 IT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금융, 유통, 문화, 게임.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돈이 되는 시대. 지훈의 이야기는 한국 경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 역할을 합니다.


2010년대, 웹툰 작가가 된 성수의 손녀 유정이 이야기는 한류 산업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K-POP, K-드라마, K-웹툰, K-푸드. 1960년대 가발을 수출하던 나라가 2010년대에는 문화를 수출합니다. 이 극적인 변화가 한 세기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2020년대, 나이 든 성수는 어린 손자 도윤이와 함께 드론 축구 대회에 참가합니다. 일제 강점기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고, 이제 드론을 날리는 할아버지. 한 사람의 인생에 70년 산업사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성수가 일하던 조선소도 이제는 스마트 팩토리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산업에 대한 언급도 의미 있습니다. 70년간의 압축 성장은 환경 파괴라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장과 환경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순환경제. 도윤이 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4차 산업혁명까지 70년이라는 압축 성장의 시간을 가족의 밥상과 일터를 통해 풀어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드론을 날리는 장면은 세대 간 연결을 상징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이 가족이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거시적 경제사를 가족사로 풀어낸 『이 일로 돈을 벌었다고요?』. 교과서에 나오는 경제 용어들이 가족의 밥그릇, 일터, 꿈과 연결되면서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70년 산업사의 큰 그림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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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한서형 향기시집
윤동주 외 지음 / 존경과행복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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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별빛의 향기로 다시 피어난 윤동주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종로문화재단 윤동주문학관과 국내 1호 향기작가 한서형 작가가 협업하여 펴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숨결을 향기로 다시 불러내는 시집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암흑기 속에서 윤동주 시인이 남긴 시어들은 한 인간이 시대와 맞서는 가장 고요한 저항이었습니다. 폭력의 시대에 침묵 대신 언어를 남겼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1917년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물여덟, 너무도 짧았던 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언어는 80년이 지난 오늘, 향기로 피어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고 노래하며, 시를 자기 고백이자 민족의 기도문으로 바꾸었습니다. 향기시집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별빛, 바람, 그리고 향기. 세 가지 감각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시」, 「별 헤는 밤」, 「십자가」 같은 고요하고 성찰적인 윤동주의 이미지와는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어 재밌게 읽었습니다. 보통 윤동주의 시 세계는 순결한 양심의 고백, 별빛 같은 언어의 서정으로 대표됩니다. 그런데 "이 개 더럽잖니 / 아니 이웃집 덜렁 수캐가…"로 시작하는 「개」에서는 풍자적인 시선을 보여줍니다.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 120편과 시인의 색다른 면모를 만나게 될 산문도 4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세계관이 형성되던 초기 시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기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숨결에 집중하는 자연시가 많습니다.


햇빛, 바람, 구름, 나무, 우정은 그에게 하나의 생태적 언어였습니다. 이 시집에서 한서형 향기작가는 그 자연의 이미지를 향으로 재해석합니다. 유향과 몰약, 편백과 재스민이 섞인 향은 시인이 말한 자연의 호흡을 연상시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향을 맡으며 시인의 자연철학을 후각적으로 감각하게 됩니다.


2부는 한층 인간적입니다. 유년의 감수성이 짙은 작품들이 담겼습니다. 전쟁과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시인이 얼마나 일상의 온기를 갈망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윤동주의 시는 서정적이지만, 그 서정은 결코 나약하지 않습니다. 결핍 속에서도 생을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의연한 청년이었습니다. 한서형 향기작가는 이런 감정을 따뜻한 베르가모트의 향으로 표현합니다. 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도 희망의 온도를 잃지 않은 윤동주의 마음이 그 향 속에 녹아 있는 듯합니다.


윤동주의 순결한 시선은 마치 향수의 잔향처럼 오래 남습니다. 그의 시는 외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내적인 청정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씻어냅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윤동주 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시들이 등장합니다. 「자화상」, 「십자가」,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 그리고 대표작 「별 헤는 밤」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직시하던 고통의 시기, 청춘의 내면이 깊게 새겨진 순간입니다.


"괴롬의 거리 / 회색빛 밤거리를 / 걷고 있는 이 마음"(「거리에서」)이라는 구절에서 느껴지는 것은 시대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의지입니다. 「자화상」에서는 "산모퉁이를 돌아 / 남처럼 생긴 나를 본다"라고 고백합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절박한 시도의 언어입니다.


「별 헤는 밤」의 유명한 구절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은 향기시집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유향과 몰약, 그리고 밤의 여왕이라 불리는 재스민 향이 겹겹이 피어오르며 별빛의 감정선을 구현합니다. 한서형 작가의 별빛 향기는 보이지 않는 시와도 같습니다. 은은히 남아 감각을 깨웁니다.


시인에게 바치는 조용한 제향(祭香)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시와 한서형의 향은 모두 화려하지 않음을 미학으로 삼습니다. 절제된 아름다움, 그 안에서 피어나는 진정성. 향기작가는 시를 읽는 행위를 감각의 연대로 확장시켰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꿈꿨던 해방이 찾아온 지 80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타인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고통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하며 시인이 품었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윤동주 시를 이미 사랑해온 분들에게도 시와 향이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이 시집은 감각을 자극하면서 또다른 사유의 맛을 안겨줄 겁니다. 읽는 시에서 맡는 시로, 별빛처럼 은은한 감동이 마음에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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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아이디어! : 창의적 사고를 학습하는 7단계 법칙
마틴 코르테.개비 미케타 지음, 이지윤 옮김 / 청담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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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창의성은 예술가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생존 도구입니다. 신경생물학자 마틴 코르테와 과학 저널리스트 개비 미케타가 함께 쓴 책 『굿 아이디어!』는 창의성은 배울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책은 창의적 사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학습할 수 있는지 7단계로 풀어냅니다. 뇌의 작동 원리를 토대로 창의성을 훈련 가능한 기술로 바라보게 만드는 점에서 과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책입니다.


마틴 코르테 교수는 뇌의 기억과 학습 과정을 연구해온 신경생물학자입니다. 창의성의 본질을 탐구하며 그가 강조하는 것은 경탄입니다.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새로운 자극을 향해 뇌의 회로를 확장시키는 감정적 반응입니다.


우리가 하루 동안 내리는 결정의 85%는 무의식적인 습관과 굳어진 루틴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자동화된 행동을 선호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연결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언제 경탄을 경험했나요? 경탄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지의 틈을 만들어 기존의 틀을 흔드는 첫 번째 충격입니다. 이미 익숙한 사물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경탄의 뇌적 표현입니다.


"창의성은 즉시 떠오르는 해답 그 너머에 있는, 생경한 답을 찾는 능력이다." - p41~42





『굿 아이디어!』는 창의성이 특정한 사람의 천재적 섬광이 아니라, 뇌의 구조적 상호작용의 산물임을 과학적으로 보여줍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백일몽과 같은 자유로운 연상 상태와 집중력을 발휘하는 사고 상태를 능수능란하게 오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집중적 뇌 활동과 에너지 절약 모드의 느긋한 처리 방식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도록 다양한 연습 과제가 제시됩니다.


창의성은 외부 자극과 내적 고요의 균형 위에 존재하건만, 오늘날 디지털 자극 과잉 사회에서 이 균형은 깨지기 쉽습니다. SNS 알림과 업무 메신저에 시달리는 뇌는 끊임없이 집중 모드에 갇혀 상상의 여백을 잃습니다. 창의성을 되찾으려면 디지털 디톡스 같은 환경적 리셋이 필요합니다.


'나는 매우 창의적이군', '덜 창의적이군'라고 단언할 만큼 창의성은 수치로 측정하지 못하지만, 창의성적 잠재력은 스스로 진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책 속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사고 패턴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필요하다면 즉흥적으로 대처하길 좋아하는가? 누군가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 그것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사고의 다양성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고 패턴에 갇혀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창의성은 남보다 빠르게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다르게 연결할 줄 아는 사고의 유연성입니다.


저자는 창의성을 방해하는 요인을 분석합니다. 스트레스, 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창의적 회로를 차단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창의성을 약화시키는 가장 큰 적은 성과 중심의 압박입니다.


창의적 사고는 실패의 여유 속에서 피어나는 법인데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받는 환경에서는 뇌가 안전한 경로를 선택해버립니다. 창의적 뇌는 단순히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뇌가 아니라, 실패 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뇌입니다. 즉, 창의성은 용기의 또 다른 이름인 셈입니다. 


"창의성은 그 사람이 준비된 영역 안에서만 발휘된다." - p123





『굿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무의식의 산책 시간을 확보하고, 유머와 놀이를 활용하는 등 창의성을 훈련하기 위한 연습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조깅하듯 가볍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연습,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사고법 등 생활 실험으로서 창의성을 체화하도록 돕습니다.


일상에서 두뇌 체조를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자극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동료들의 이름을 거꾸로 불러보기, 쇼핑 목록을 집에서 외운 다음, 메모지에는 초성만 적어 가기, 눈을 감고 샤워하기, 평소에는 전혀 관심 없던 주제에 관한 팟캐스트 찾아 듣기 등 다양한 예시를 만나게 됩니다. 올해는 DIY의 해, 내년엔 연극과 영화의 해, 다음엔 악기의 해, 등산의 해, 박물관의 해... 1년 단위의 장기 프로그램 훈련법도 인상 깊었습니다.


더불어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창의성 기법 중 어떤 것을 선택하면 좋은지 기준도 제시됩니다. 처음에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 중요한지, 구체적인 해결책 한 두 가지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지,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고 싶은지 아니면 이미 떠오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다듬고 싶은지, 명확하게 정의된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그저 막연한 방향성만 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을 넘어 사회적 창의성의 문제로 확장합니다.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인재 부족, 경제 시스템상의 결손, 난민 등 중대한 문제들 앞에 서있습니다. 기업과 교육 현장에서도 창의성은 경쟁력의 자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창의적 사회란 실패를 용납하는 문화와 타인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소통 구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독일의 교육개혁 사례를 통해 창의적 사회는 열린 토론과 비판적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합니다.


루틴은 양날의 검입니다. 우리가 매일 무수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정신적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루틴은 창의성의 가장 큰 적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인생이 그저 루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야 할 때, 관계에서 갈등을 해결해야 할 때,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루틴을 벗어나야 합니다.


『굿 아이디어!』의 해법은 의도적으로 루틴을 깨는 것입니다. 일상의 작은 실험들이 뇌에 새로운 자극을 줍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뇌는 점차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창의적 사고의 문턱이 낮아질 테지요. 창의적 사고가 습관이 되면 그 이후는 자동으로 비틀어서 생각하고, 정해진 틀 너머를 보고, 필요할 때마다 창의성 스위치를 켜는 일이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합니다.


뇌과학이 증명한 아이디어 생산법 『굿 아이디어!』. 새로운 생각은 번뜩임이 아니라 꾸준한 연습과 환경 설계의 결과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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