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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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 치매를 앓는 사람,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을 위한 책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치매가 있어도 좋은 삶은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웁니다.2014년 58세에 조기 발병 치매 진단받은 저자는 20년간 영국국민의료보험에서 일했지만 사회나 병원 모두 치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치매활동가로 살게 됩니다. 저자가 치매 환자를 대표하진 않지만, 간병인 없이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8년여를 살아가고 있는 치매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솔직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나이프 대신 숟가락, 찻잔은 머그잔으로 바꾸어야 하는 생활. 치매 진단 이후 그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하얀 접시에 색이 흐릿한 음식을 주면 치매 환자는 접시에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맛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양손이 더 이상 협력하지 않기 때문에 고기를 자르는 일도 힘들어집니다. 고기를 씹을 때 얼마나 오래 씹었는지 얼마나 더 씹어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뜨거운 음식도 인지하지 못해 입안에 알게 모르게 화상 자국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면 그저 치매 환자는 까다로운 사람이라 판단해버리고,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서로 힘들어집니다. 패턴 있는 카펫은 방향 감각을 상실해 넘어지지 않으려 바닥을 보느라 시간을 낭비합니다. 매끈한 대리석 바닥은 수영장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검은색 매트는 싱크홀처럼 느껴집니다. 카펫과 벽의 색이 같으면 걸어 다니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이런 감각 왜곡에 대한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도 이 책을 읽고서야 치매의 증상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을 앗아가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치매는 이렇게 일상의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오감에 대한 왜곡이 심해집니다. 우리는 뇌 안에서 복잡한 질병이 생기고서야 비로소 일상의 잡다한 일들이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인지 기능, 감각 경험, 운동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치매를 진단받은 저자는 부끄러워하기보다 대처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펜을 불 위에 올리는 요리보다 데워먹는 간편식 위주로 음식을 먹고, 모든 생활에서 알람은 필수로 설정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사 시간을 알지 못하고, 얼마나 걸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감각에 대해 환각을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면 저자는 30분 테스트를 하기도 합니다. 자리를 떠났다가 30분 후에도 그대로면 환각이 아니라는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거라는걸요. 환자가 무슨 냄새가 난다고 하면 그 순간 그에게는 정말 그 냄새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치매 환자와 간병인 간의 관계 맺음이 원활해집니다. 


문제는 이런 왜곡 감각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무도 경고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감각의 변화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환자 개개인의 문제이기에 치매와 감각 변화의 관계를 연구하는 게 아직 부족한 현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해결책을 결국 다 마련합니다. 치매 의사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청각 과민증을 겪을 땐 특정 범위의 소음을 차단하는 보청기를 마련했습니다. 훨씬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치매 환자와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구성하느라 눈에 잘 띄는 노란색 테이프를 붙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두 딸을 키운 싱글맘으로 가족 간병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 가족 간병인. 환자마다 기능 감퇴 속도가 달라 예측 불가능한 진행성 질병을 안고 새로운 미래를 헤쳐나가야 하는 치매 환자와 간병 문제에서 치매 환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의 부재를 몸소 경험합니다. 공공 부분이 맡아야 할 일을 자발적 조직에 의존하게 하는 실상을 짚어줍니다. 


그럼에도 각자의 삶을 영위하길 바랐고,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엄마이고 싶었다는 저자의 솔직한 마음은 쓸모 있음에 대한 존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혼자 생활하면서 마주하는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계속 찾아 나선 겁니다. 그리고 이 결심이 오히려 매일 치매를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환자의 회복력을 키우고 앞으로도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실제로 그럴 수 있게 해주는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치매 친환경적인 지역 사회처럼 말입니다. 


치매 활동가로 사는 그를 섣불리 판단하며 비판하기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는 그 행사장에 방금 등장했다 싶지만, 실제로는 몇 주 전부터 경로를 짜고, 가는 길에 지나갈 수 있는 랜드마크 이미지를 인쇄하는 등 준비하는 데만 무척 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 책이 치매 환자가 쓴 기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만큼 치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겁니다. 


여러분은 치매 환자를 떠올릴 때 어떤 이미지인가요. 치매를 보는 인식은 대부분 노망, 정신 착란, 짐, 산송장 같은 이미지 아니던가요. 육신만 남은 겉껍데기라는 이미지로 사회적 낙인을 찍는 치매입니다. 그렇기에 치매 친환경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건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겁니다. 치매의 전통적인 경로를 따르지 않는 경우, 전문가들조차 진단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치매 환자에 대해 모른다고 짚어줍니다. 


치매 병원조차 건물이 엉망입니다. 옅은 색 배경에 은색으로 박힌 표지판처럼 애초에 디자인 단계부터 치매 환자들이 참여한다면 훨씬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중증 치매 환자들이 이용하는 치매 마을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해서도 들려줍니다. 저자는 소셜미디어 활동도 하고, 줌 모임도 가집니다. 어린이용 사이트처럼 직관적인 사이트면 인터넷 활동도 가능합니다. 공공 좌석, 화장실 시설, 떨어진 연석, 건물 경사로, 적절한 도로 표시, 보행자 횡단보도 신호 시간 등 노인 친화적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사항들을 들려줍니다. 네덜란드에는 230여 개 이상의 치매 카페가 있습니다. 대만은 치매 친화적 상점들이 있습니다. 중국은 GPS 추적 장치가 내장된 노란 팔찌 프로젝트를 시행합니다. 노르웨이의 전통 농장을 개방한 그린 케어 모델의 유용성도 알려줍니다.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내 감정은 여전히 존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나는 안다. " - 책 속에서


저자 이외에도 치매 진단 2년 차, 8년 차... 진단 이후에도 여전히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치매의 부정적 선입관을 깨뜨리게 해주는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미화하지도 않고 병의 진행 추이에 따른 감정들을 진실하게 기록하며 변화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유독 상태가 나쁜 날도 있습니다. 진행성 질병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진단받기 전의 나와는 다릅니다. 치매는 분명 사람을 황폐화시킵니다. 하지만 최후를 재촉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압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아주 멀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느라 담당 의사의 서명을 받아낸 저자는 멋지게 스카이다이빙을 해냈습니다. 남이 보면 엉뚱해 보일지 몰라도 언제나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치매를 활용할 줄 아는, 오늘을 살아가는 저자입니다. 


치매 같은 질병에 관해서는 태도가 싸움의 절반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향도 크게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의 변화는 치매 환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부터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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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불러보았다 - 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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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종차별이 있다, 없다? 대부분 없다는 쪽에 손을 들 겁니다. 있더라도 그저 일부의 이야기, 다른 나라보다는 덜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인종주의자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테고요. 우리 사회의 인권, 차별, 통합 문제를 고민하는 정회옥 교수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에서 한국인의 인종 콤플렉스를 들려줍니다. 인종 문제에 콤플렉스가 붙는다는 게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힌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


인종과 관련해 경멸하여 부르는 '멸칭'. 짱깨, 쪽발이, 똥남아, 흑형, 외노자, 튀기, 개슬림... 한 번은 불러보았거나 들어본 단어들입니다. 평소엔 우스개처럼 흐지부지 넘어갈 따름입니다. 우리나라 유명 스타에게 외국인들이 인종차별적 행동을 할 땐 언론 보도로 들썩이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한국에 인종차별은 없다는 말을 당연시할 정도로 한국인은 인종주의에 대해 회피하고 사회적으로도 비가시화된 상황임을 짚어주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 저자는 한국식 인종주의가 언제, 왜 생겼는지 근현대사를 통해 하나씩 보여줍니다. 한국식 인종주의의 역사를 대면할수록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인종 차별과 혐오의 그림자를 만나게 됩니다. ​​


한국식 인종주의는 불평등조약으로 일방적인 개항 이후 비백인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서구 인종주의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서구의 인종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회 담론의 중요한 소통 통로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 《한성순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 모두가 말입니다. 미국을 부강하고 경이로운 문명을 갖춘 나라로 그리며 미국 숭배에 진심인 행태를 보이는 보도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태생적 특징인 피부색을 절대시 하며 인종적 위계 의식을 품게 되는 인종주의는 그렇게 우리에게 각인됩니다. 


문제는 위계적 인종 개념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된다는 겁니다.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비판의식도 마비시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과 한국인은 동병상련인데도 되려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하는 사고방식으로 많은 개화기 엘리트가 이렇게 서구의 인종 개념을 수용합니다. ​​미개한 조선인, 열등한 존재가 되어버린 한국인. 이 열패감은 숭미사상과 함께 그래도 한국인이 흑인보다는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집단적 열등감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더욱 깊어집니다. <한 번은 불러보았다>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상적 차별이 한국인에게 자기비하, 수치심, 열등감으로 스며들었는지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한편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적 민족주의처럼 우리 내부에서 대두된 민족주의는 분노의 공동체가 되었고, 이후 정치적으로 이용됩니다. 왜곡된 민족주의 서사는 단일민족, 우리와 그들로 구별하는 습관으로 이어지며 결국 배타적 민족주의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식민 지배의 트라우마가 회복되기도 전에 한국전쟁으로 반공, 멸공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으로 서로를 배척합니다. 분단과 냉전으로 반공주의적 세계관을 적극 수용하였고, 반공교육으로 획일성과 배타성이 점철된 일원주의를 양산합니다. ​​





과대 성장한 국가의 개입 아래 경제적 성공에 가치 부여하는 근대화 서사에도 민족주의가 이용됩니다. 잘살아보세는 우리'만' 잘살아보자는 의미일 뿐, 경쟁 제일주의 아래에서 한민족은 이상한 방향으로 뭉치게 됩니다. 세계화를 외치는 시대에도 국가경쟁력 강화는 외부 민족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교과서에 실려 달달 외워 시험 쳤고,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그 긴 문장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국민교육헌장. 개인은 희생되고 집단과 민족만 남은 '우리'의 시대였습니다. 내 엄마 대신 우리 엄마, 내 나라 대신 우리나라가 됩니다. '우리'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


2021년 기준 한국 체류 외국인은 중국 84만 명 이상, 베트남 20만 명 이상, 태국 17만 명 이상, 미국 14만 명 이상... 193개국 중 110개국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친백인성이 있는 한국인에게 백인을 제외한 사람들은 철저히 타자화되었습니다. ​저자는 한국인의 무의식에 스며든 한국식 인종주의가 발현되었음에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채 넘어간 다양한 미디어 사례를 짚어줍니다. 한국 사회의 배타적 태도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일상화된 차별과 배제를 보여줍니다. 반창고 색은 왜 베이지색인지 의문을 표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에 녹아있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수많은 편견과 혐오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


일본 관동대지진 때 한국인을 향한 제노사이드처럼 이 땅에서도 제노사이드가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를 겁니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말이죠. 왜곡된 보도로 인해 당시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200여 명의 중국인이 살해당한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타이완 국적의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화족과 달리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한국계 중국인입니다. 하층 계급이라는 이미지로 계급 차별이 더해진 조선족. 범죄를 저질러도 미국인은 개인행동으로 국한해 비난하지만, 조선족일 경우 집단 전체를 비난합니다. 


혼혈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종차별적이라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순결하지 못한 잡종이라는 폄하의 의미라고 합니다. 순혈주의 신화에 사로잡힌 한국인의 극도의 배타성에 대해 들려줍니다. 다문화라는 단어도 우리는 왜곡해서 사용합니다. 서구 출신 백인과 결혼하면 글로벌 가족, 동남아시아인과 결혼하면 다문화로 여깁니다. 순수 한국인 가정은 일반 가족이고, 외국인이 포함되면 한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라는 걸 망각한 채 외국인으로 타자화합니다. ​​


백인-한국인-흑인-동남아시아인으로 이어지는 인종적, 민족적 위계가 존재하는 한국. 백인 교수에게는 외국인 노동자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주 노동자는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나왔듯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시작해 중동 국가의 건설 노동자로 이미 한국인이 해외에서 차별과 혐오를 경험했음에도 이제는 이 땅에서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고정관념으로 점철된 무슬림도 있습니다. 아랍인은 테러리스트라는 공식으로 반무슬림 정서를 부추기는 언론 보도는 여전합니다. 이처럼 우리 안의 타자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례를 낱낱이 짚어줍니다. ​​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둔감성을 지적한 <한 번은 불러보았다>. 식민의 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이들이 아닌 아래 세대들에게 대물림되는 한국식 인종주의.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역사에서 한국인은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 인도네시아에는 한국인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난하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인 바 있습니다. 


K-컬처라 불리는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얻으며 자부심과 만족감을 얻는 한국인들에게 왜곡된 우월감에 대한 경고를 하는 <한 번은 불러보았다>. 150여 년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보며 한국식 인종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 충격의 쓰나미를 맛봤습니다. 잘못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사회에서 성찰과 반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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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 - 선사 시대에서 우주 시대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인류 인싸이드 과학 2
프랑수아 봉 지음, 오로르 칼리아스 그림, 김수진 옮김 / 풀빛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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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흥미로운 과학 속으로. 풀빛의 교양 과학 시리즈 인싸이드 과학 두 번째 책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 선사시대부터 우주 시대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인류 사피엔스의 이모저모를 살펴봅니다. 


지구에서 유일한 인간 종 사피엔스. 약 30만 년 전에 출현한 사피엔스는 어떻게 끝끝내 살아남았을까요.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는 사피엔스의 기원, 인구 증가의 원동력, 생각 표현 방식, 사피엔스가 일군 사회 등 사피엔스의 특성을 짚어가며 우리가 지나온 흔적을 따라가봅니다. 선사학자 프랑수아 봉의 맛깔나는 스토리텔링, 딱 보자마자 프랑스 책이란 걸 느끼게 해주는 오로르 칼리아스의 멋진 그림이 곁들여졌습니다. 


아프리카, 유리사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남극 그리고 달까지. 인류의 발자국은 우주를 향하고 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의 직계 후손으로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사피엔스, 유럽에서 활동한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아시아의 데니소바인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피엔스만이 남았습니다. 


인류는 창의력을 발휘하며 대부분의 지구 환경에 적응해왔습니다. 이 성공은 오로지 사피엔스 단독으로 일구어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자는 행동의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공진화로 사피엔스의 생존기를 설명합니다. 사피엔스의 행동과 생명 유지 활동을 연결시킨 적응 과정이 현재의 인류를 낳았습니다. 중간중간 고고학자와의 대담과 토론을 통해 과거의 사피엔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을 짚어주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고유전학 발달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의 행방도 짐작해 봅니다. 현생 유럽 인구 가운데 4%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는 게 밝혀졌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대한 상상력 중 하나였던 사피엔스의 범죄는 소설과도 같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한순간에 모조리 사라졌던 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 개념과는 상당히 차이 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수십만 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으로 종 분화가 이뤄졌었지만 사실 둘은 기술적 행동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고 합니다. 둘은 긴 세월 동안 섞였고, 현종 혈통에게 생긴 Y 염색체의 부재로 생식 능력이 없어져 네안데르탈인은 서서히 낙오되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든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수만 년간 지속된 세 차례의 빙하기, 온난기를 겪은 종입니다. 





구석기 시대 수렵채집인 시절을 상상해 보게 하는 저자의 스토리텔링은 오감을 자극할 정도로 맛깔나게 진행됩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정말 그런 이유였을까? 하면서요. 죽음을 표현한 선사시대 인류의 행동에도 의문을 던집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최초의 무덤은 약 10만 년 전에 등장했는데, 매장과 관련된 의식의 이유를 여전히 명쾌하게 밝히긴 힘들다고 합니다. 매장 관습과 식인 풍습의 흔적이 동시에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공인된 최초의 무덤보다 앞선 3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유적도 고인류학계의 격렬한 논쟁 거리인 점을 짚어줍니다. 


여하튼 한 사람의 소멸을 기리는 최초의 의식이 등장하고, 현재 인류 보편의 행동인 사회적 특성들이 하나씩 등장합니다. 상징적인 생각을 장신구와 같은 사물로 구현해 몸치장을 한다든지, 눈부신 벽화 예술도 등장합니다. 미술과 장례는 현대성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는 경멸적인 의미로 원시적이라고 평가했던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재평가된 부분을 알게 해줍니다. 선사시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구석기 시대에 이미 현생 인류를 규정하는 보편적인 원칙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후 인류사의 주요 터닝 포인트가 된 신석기 시대에 이르면 진정한 사피엔스의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인구 폭발이라는 결정적 한 방을 만든 요인들을 짚어가며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가 함께 진행하는 공진화를 보여줍니다. 


단 한 장으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에서 사피엔스까지 정리한 도표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고방식을 짚어준 책이었습니다. 행동적, 생물학적 차원에서 영향을 받는 방식이 하룻밤 만에 생겨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 


이제 우주를 바라보는 인류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키고 우주 궤도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사회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과거처럼 수 세기와 수천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더욱 어떤 방향으로 사피엔스가 진화할지 기대됩니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두루 읽기 좋은 수준의 인싸이드 과학 첫 번째 책은 달 기지부터 화성 테라포밍까지 과학자들의 지구 이전 프로젝트를 다룬 <지구인의 우주 살기>입니다. 사피엔스의 다음 목적지를 가늠하는 데 도움 되는 책이어서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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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식물의 세계 -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 이야기
김진옥.소지현 지음 / 다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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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물, 이산화탄소로 양분을 만들어내 살아가는 식물. 그동안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인간의 기술로도 광합성 기계를 아직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기후 위기 대처에도 획기적인 대처법이 나오는 셈이죠. 그만큼 식물의 광합성은 놀랍고도 경이롭습니다. 


한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일생을 살아가는 식물. 아스팔트 틈새에서도 고개를 빼꼼 내미는 식물들을 보면 신기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 재주가 대단한 식물입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진옥 저자와 식물과학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소지현 저자가 함께 쓴 책 <극한 식물의 세계>에서 극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식물 31종을 만나보세요. 


약 46억 년의 지구 역사를 1년으로 바꿔보면, 대략 146년이 1초가 되는 셈이라고 합니다. 1월 1일 0시 지구 탄생 이후 11월 24일이 되어서야 최초의 이끼식물이 출현합니다. 바다의 해조류에서 시작되어 습한 육지로 올라온 이끼식물은 이후 육지화에 적응하는 식물의 출현으로 이어집니다. 11월 27일쯤 되면 고사리식물이 등장하고 겉씨식물도 나타납니다. 12월 21일에는 드디어 현재 지구상에서 전체 식물의 91%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번성하고 있는 속씨식물이 등장합니다. 까마득한 오랜 옛날부터 지구에 적응하며 진화한 식물들. 어떤 방식으로 적응했을까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다 보니 극한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서의 진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타이탄 아룸은 세계에서 가장 큰 꽃차례를 가진 식물입니다. 꽃대에 달린 꽃 전체가 3m에 달한다고 합니다. 워낙 크다 보니 에너지 소모도 많아 몇 년에 한 번 간신히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독면 없이는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를 풍깁니다. 우리가 흔히 시체꽃이라 부르는 바로 그 꽃입니다. 더 놀라운 점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로 열을 발산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냄새가 데워져 더 멀리 퍼져나갑니다. 썩은 고기 냄새를 좋아하는 곤충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꽃가루받이를 위한 전략의 결과입니다. 


아파트 39층 높이로 세계에서 가장 큰 키를 가진 레드우드도 쭉쭉 뻗은 모습이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햇빛을 잘 받으려고 자랐는데 너무 키가 크다 보니 다른 문제가 생길 법하지요. 뿌리에서 줄기, 잎까지 물을 보내는데 에너지 소모가 커집니다. 그래서 또 진화합니다.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할 수 있게 말이죠.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는 진화를 합니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돌연변이가 생겨나야 그 집단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유전자가 섞이는 씨앗 번식도 유리하고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살아남는 식물들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개발로 서식처가 줄어들고, 급속히 변하는 환경에 미처 변화할 시간이 부족한 식물들.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오랜 기간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온 식물들에게 미안해집니다. 메마른 땅이어도, 추운 곳이어도,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이어도 저마다의 환경에서 자리 잡은 식물. 어떻게 이런 곳에서까지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극한의 시스템을 장착한 다양한 식물들을 만나며 감탄사만 터져 나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정확히 아는 똑똑한 식물입니다. 그저 조용한 식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극한 식물의 세계>는 텍스트, 그림, 사진 자료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어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전태형 일러스트레이터의 직관적인 일러스트는 컬러풀한 색감에 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1초에 약 238m를 날아가는 마하 속도의 꽃가루를 방출하는 식물, 항공기 개발에 영향을 줄만큼 정교하게 설계되어 수백 미터를 날아가는 씨앗을 가진 식물 등 번식을 위한 식물의 다양한 전략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단 1g으로 성인 1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강한 독을 품은 식물, 나무를 태운 연기만으로도 피부염과 실명을 일으키는 죽음의 나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식물 등 독한 식물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위험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공기 정화 식물로 한창 유행했던 틸란드시아는 착생 능력의 최강자이기도 합니다. 어디든 달라붙어 살아가는 이 식물의 비밀도 이 책에서 알게 됩니다. 식충식물 마니아들도 많을 텐데요, 양분이 부족한 습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도의 기술을 가진 형태로 진화한 식충식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12월 31일 밤 11시 58분 51초에 신석기 시대가 열리며 인류 문명이 시작된 사피엔스. 식물의 진화 역사와 비교해 보면 아주 짧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 살아남아야 할지 그 심각성이 더 확 와닿습니다. 오늘날 지구 환경은 이 식물들에게 또 어떤 진화를 겪게 할까요. 현대의 빠른 환경 변화는 진화의 원동력이 아닌 멸종의 지름길이 되고 있다고 짚어줍니다. 경이로운 재주를 보여준 극한의 식물들조차 이제는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생물 다양성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생존을 위한 이유 있는 식물의 진화를 보여준 <극한 식물의 세계>. 외국 식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식물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더 친근합니다.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계의 끝판왕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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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푸꾸옥 - 2022~2023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베트남의 다낭, 나트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푸꾸옥. 진주 섬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름답게 반짝이는 바다와 자연의 매력을 한껏 품고 있는 삼림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베트남 최남단에 있는, 우리나라 제주처럼 베트남인들의 휴양지 섬입니다. 


하노이와 호치민에서 매일 항공편이 있어 베트남의 다른 도시와 연계 여행하기에도 편하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도 직항이 개설된 이후 푸꾸옥은 새롭게 주목받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발 빠르게 한식당이나 카페도 생기면서 한 달 살기 하기 좋은 곳으로도 인기 있습니다. 


청정 자연을 품고 있는 베트남의 떠오르는 관광지 1순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생물권 보존지역, 내셔널 지오그래픽 선정 2014 최고 겨울여행지 3위, 미국 허핑턴 포스트 선정 '더 유명해지기 전에 떠나야 할 여행지', CNN이 선정한 세계 10대 해변 사오비치까지 푸꾸옥을 수식하는 찬사만으로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섬의 주요 도시인 즈엉동 마을에서 낮에는 해변을 둘러보고, 일몰의 풍경을 즐기고, 해가 지면 야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갈 것 같습니다. 진주 농장, 후추 농장, 느억맘 공장, 와인숍, 꿀벌 농장 등을 방문하거나 폭포와 사원 등 꽤 쏠쏠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즈엉동 타운을 시작으로 푸꾸옥 섬은 휴양지로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대규모 마트나 쇼핑타운은 없지만 푸꾸옥만의 시내 관광 매력이 또 있더라고요. 먹자골목 등 활기찬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현지 음식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푸꾸옥 야시장은 그야말로 입맛에 딱 맞을 겁니다. 야시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레스토랑도 있고, 다양한 디저트 가게도 있어 단조로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네요. 


푸꾸옥 국립공원이 있는 푸꾸옥 북부도 멋집니다. 생물권 보존지역인 만큼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고, 예스러운 마을을 지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섬의 해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북부에는 빈펄 랜드도 있어 가족 여행에도 제격입니다. 워터파크, 놀이공원, 아쿠아리움, 사파리 등 환상적인 테마파크인 빈펄 랜드도 놓칠 수 없습니다. 


푸꾸옥 동부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해변이라는 사오비치가 있는데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힐 만큼 소문난 해변입니다. 수심이 얕아 가족여행객의 물놀이 해변 장소로도 금상첨화라고 합니다. 푸꾸옥 남부에서는 다양한 해양 액티비티 활동이 특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호핑 투어, 스노클링,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해양 동물이 있는 투명한 바닷속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절반 정도 되는 작은 섬이지만 관광, 휴양, 해양스포츠, 야시장, 리조트 등 다채로운 분위기를 선사하는 푸꾸옥. 섬 곳곳에 베트남의 슬픈 현대사를 담은 장소도 있는 만큼 베트남 다크여행도 빼놓지 말고 함께 하면 더욱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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