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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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상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3부작 부서진 대지 시리즈. 세 권 모두 휴고 상을 수상한 경이로운 소설입니다. 1편 <다섯 번째 계절>에 이어 2편 <오벨리스크의 문>이 연말에 한국어판 출간되어 후딱 읽어봤어요.


작년 1월에 1편을 읽고 1년여 만에 2편을 이어 읽으려니 내용이 가물가물거려서 제가 쓴 리뷰를 다시 읽어봤어요. 스포를 안 하려고 애쓴(?) 리뷰였던지라 이런... 여전히 인물들이 가물거립니다. 읽단 읽자 모드에 돌입해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삭아빠질"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자동 기억 소환되는 신기한 일이! 다섯 번째 계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캐릭터들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산도 움직일 수 있는 조산력을 가진 오로진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오로진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호자, 인간형 생명체이지만 돌로 이뤄진 스톤이터, 그리고 평범한 일반인들 등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진 존재와 평범한 인간들이 공존하는 세계입니다.


갑작스레 땅이 찢어지며 재앙이 닥친 고요 대륙. 이 재앙은 다섯 번째 계절이라 불리는 혹독한 시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번에는 인간의 멸종을 부를 만큼 강력합니다.





1편 <다섯 번째 계절>에서는 주요 인물들의 생애와 각 능력에 집중했다면, 2편 <오벨리스크의 문>에서는 재앙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둘 밝혀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두려움과 공포의 존재인 오로진. 조산력을 타고난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주변을 얼려버리거나 재난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기관에서 훈련을 받는 오로진들은 영웅으로 취급받으면서도, 평범한 이들의 주변에서 함께 생활하는 오로진들은 없애야 할 대상이 되지요.


능력을 들켜 아버지에게 맞아 죽은 주인공 에쑨의 아들처럼 말이죠. 부서진 대지 시리즈는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오로진 딸을 찾기 위한 에쑨의 여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습니다.


2편 <오벨리스크의 문>에서는 아버지와 딸 나쑨의 이야기가 드디어 펼쳐집니다. 그 엄마에 그 딸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나쑨의 조산력. 나쑨의 능력이 생각 외로 강력하더라고요.


1편 마지막에서 "달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끝맺음을 했는데, 당시엔 달이 없던 세계였어요. 아니, 달이 존재했었지만 어떤 이유로 달이 사라져버린 세계인 겁니다.


<오벨리스크의 문>에서는 기이한 조산력의 작동 방식, 하늘 높이 떠 있는 거대하고 비현실적인 수정 조각인 오벨리스크, 달과의 연결 고리가 하나씩 밝혀집니다. 그 과정에서 초자연적 존재 대지와의 관계 역시 놀라운 비밀을 안고 있어 세계관이 정말 경이롭습니다.


1편에서 에쑨의 수호자(이지만 주인공 입장에서는 사악한) 역할이었던 샤파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어요. 에쑨에 이어 딸 나쑨과의 인연이 이어져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되네요.


2편에서 에쑨의 주 무대는 오로진이 대장으로 있는 작은 지하 마을입니다. 옛 연인이자 오로진 최고의 능력자 알라배스타와 에쑨의 가슴 아픈 재회가 이뤄지기도 했고, 혹독한 계절을 앞두고 마을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하는 등 스펙터클한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에쑨의 껌딱지인 호아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이 대박이었어요. 호아의 정체를 알게 되면 1권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 겁니다.





부서진 대지의 세계관은 기존 장르소설에서 못 봤던 소재와 구성 방식이어서 진입 장벽은 있을 수도 있는데, 적응되는 건 시간문제예요. 2편 읽는 내내 이번에도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어요.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에쑨이 한 단계 성장할 때마다 희열이 쫘악!


원서로는 완결된 소설이어서, 부서진 대지 마지막 피날레 3편도 올해 지나기 전엔 나오리라 믿습니다. 대지와 인간의 전쟁이란 큰 틀은 환경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이 시대 지구와 인류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네가 누구냐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과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라는 말처럼 인종 차별적이지 않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평소 성과 인종 차별 문제에 목소리를 높인 N. K. 제미신 작가의 소설이니까요.


인식의 틀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에쑨의 성장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하 서사는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딱일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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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갈 곳이 없을까요? 웅진 세계그림책 197
리처드 존스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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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이 혼자 떠도는 개, 페르의 이야기를 가슴 뭉클한 감동을 담아 보여주는 유기견 그림책 <정말 갈 곳이 없을까요?>. 웅진 세계 그림책 197번째 책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기견 이야기입니다.

빨간 스카프를 맨 채 홀로 떠돌고 있는 강아지 페르. 비에 젖어 처량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탑니다. 나뭇잎은 갈 곳이 있는지 어디론가 유유히 떠나가지만, 강아지 페르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밤새 무작정 나뭇잎을 따라가는데...


페르의 발길은 낯선 도시로 향합니다. 빨간 스카프를 맨 걸 보면 누군가의 돌봄을 받은 반려견이었을텐데...무슨 이유로 홀로 떨어져 헤매고 있는 걸까요.



회색 콘크리트 도시에서 풀죽은 모습으로 거닐고 있는 페르. 모두가 어디론가 갈 곳이 있어 보이지만, 페르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페르가 곁에만 와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롭습니다. 서글픔이 와락 몰려듭니다.

너무 무서워 짖었더니 못된 녀석이라는 반응만 되돌아옵니다. 그저 배가 고플 뿐인데,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인데. 사람들은 벽을 쌓고 거부합니다. 필요에 의해 키웠다가 쉽게 버림받는 동물들. 세상이 보듬어주지 않는 유기 동물의 두렵고 쓸쓸한 마음을 표현한 그림책 <정말 갈 곳이 없을까요?>

그림책에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손길을 내밀고 유기견과 교감하려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소녀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을 반겨 주는 이 어린 존재에게 꽂히는 페르. 그림책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현실 가족이라면 아이가 데려온 유기견을 진심으로 온전히 반기는 가족이 100퍼센트라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더 짠해지고 더 응원하게 됩니다.


그림책을 보는 연령에 따라 해석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갈 곳이 없을까요?>는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 너머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편견 때문에 거부 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소외된 채 지치고 외로운 이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로도 만날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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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가소성 - 일생에 걸쳐 변하는 뇌와 신경계의 능력 DEEP & BASIC 시리즈 3
모헤브 코스탄디 지음, 조은영 옮김, 김경진 해제 / 김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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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걸쳐 끊임없이 변하는 뇌. 예전에만 해도 다 자란 뇌는 굳어 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뇌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이제 우리는 압니다. 근래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런던 택시기사 이야기일 겁니다. 런던 택시 기사의 공간 탐색과 관련된 해마 뒷부분 회색질 밀도가 대조군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는, 특정 지식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종합적인 기억 훈련이 뇌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뇌는 사용자의 필요에 적응하는 역동적인 기관입니다. 경험과 행동에 따라 평생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반대급부로 잘못된 편향을 불러오기도 했는데요, 두뇌 훈련 게임을 통해 뇌를 리셋할 수 있다는 광고처럼 마법에 가까운 치유의 힘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구글 검색창에 rewiring your brain을 검색하면 습관 고치기는 물론이고 사랑, 행복, 직장에서의 성공 등 인생의 의미까지 찾을 수 있는 뇌 재배선하기. 의도적으로 뇌를 성형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우리의 호기심을 단박에 사로잡는 주제입니다.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뜻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진실이 궁금해집니다.


영국 신경생물학자이 과학 작가 모헤브 코스탄디의 책 <신경가소성>은 얇은 분량임에도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신경가소성의 작동 원리를 알려줍니다. 신경은 어떻게 뻗어나가는지, 어떤 종류의 자극이 뇌 재배선에 영향을 끼치는지, 신경 손상과 장애는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내는지, 생애 주기에 따라 신경이 변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신경가소성의 개념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성인의 뇌에서 신경줄기세포가 발견되면서 신경가소성의 수많은 유형과 메커니즘이 규명되었다고 합니다. 신경가소성은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특정 시기에만 일어나기도 하며, 여러 유형이 동시에 또는 별개로 유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뇌는 아동기 말에서 성년기 초까지 가소성이 장기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 상태로 발달하고, 시력 또는 청력을 잃거나 뇌가 손상되었을 때에는 수주, 수개월, 수년 동안 서서히 변화가 유도된다고 합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도 많은 결과들이 뒤바뀌면서 뇌신경 분야는 빠르게 변했습니다. 성인의 뇌는 평생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어내고 원치 않는 것을 제거합니다. 시냅스 형성과 가지치기와 연관된 학습, 기억 파트는 학부모라면 특히 주목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여전히 '~하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가 많네요.


성인이라면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성인 뇌에서 신경 발생과 신경줄기세포를 발견한 거예요. 성인의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 발생이 어떤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진 않았다고 합니다. 성인의 신경 발생에 뒤따르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는 걸 함께 알아둬야 합니다. 걷잡을 수없이 분열하고 전이되면서 발생하는 암처럼 뇌에 종양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인지력 감퇴를 막는 과학적인 방법이라며 뇌를 훈련시켜 기능과 전반적인 뇌 건강을 증진하는 상업적 뇌 훈련 게임에 관해서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전이효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고 합니다. 뇌를 훈련하느라 한 게임을 잘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향상될지 모르지만, 게임과 무관한 인지 기능의 향상으로까지 이어지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뇌는 경험의 영향을 받으며 꾸준히 형태를 갖춰나간다는 건 분명합니다. 장기적인 훈련은 뇌의 구조와 기능의 장기적인 변화로 이어집니다. 운동선수, 음악가 등을 대상으로 한 경험에 바탕을 둔 신경가소성 연구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외국어 학습에 돌입할 분들도 꽤 되실 듯한데요, 제2언어를 학습하는 것은 신경 보호 효과도 있고 노년에 알츠하이머 및 기타 신경 퇴행성 질병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기억을 형성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능력, 뇌 손상으로부터 적응하고 회복하는 능력을 위해 알아본 <신경가소성>. 상상 이상의 결과를 선사하기도 하고 기대한 것에 못 미치는 연구 결과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현재까지 알려진 신경가소성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뇌가 서로 같을 수 없고, 교과서적인 뇌라는 것은 없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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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상상력 -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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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그림, 음악, 영화를 넘나들며 예술적 모험으로 인도한 전작 <예술 수업>에 이어, 보이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구현하는 법을 세기의 창작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책 <예술적 상상력>. 예술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좀 어렵게 느꼈는데, 명저 <생각의 탄생>과 결을 같이하는 책이어서 낯설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피카소가 스물한 살에 그린 그림 <두 자매>. 누가 수녀이고 누가 창녀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어두운 분위기의 고개 숙인 왼쪽이 수녀이고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창녀라고 합니다. 대부분은 반대로 생각하기에, 우리의 편협한 통념을 건드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합니다.


기존 관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은 피로한 것으로 때로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상상하고 창조하는 일이 근본인 예술 세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예술작품을 알겠다는 것은 낯설고 새로운 세상을 이미 만들어진 논리로 풀려는 닫힌 자세에게 나온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을 꿰뚫어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며 삶을 고양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저 아름답고 감상적으로만 대했던 예술. 이 책은 예술에 담긴 진면목을 통해 창조의 토대인 예술적 상상력을 이야기합니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에서 이젠 기계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시대입니다. 무엇이 인간인지, 인간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오종우 저자는 '사유'라는 키워드를 내놓습니다. 사유는 측정할 수 없고 수치화할 수 없는 그것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만 있는 사고방식이지요. 이것이 사람다움의 바탕이 됩니다. 사유가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한나 아렌트의 《예수살렘의 아이히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사유 부재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문제의 본질을 보려는 사유는 기성 논리에서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연합해 새 논리를 창조하게 해줍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예술이라고 한 파울 클레의 말처럼 상상하고 사유하는 예술 행위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없었던 세계를 가시와 가청의 영역으로 탄생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술은 그 자체가 창조이면서 다른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상상력을 준다." - 예술적 상상력


기존 인식에 틈이 생겨 새로운 논리가 생긴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결합해 세상을 재구성할 때 일어납니다. 익숙하지 않은 연결 때문에 순간, 공간이 발생하고 바로 여기서 사유가 생성된다는 거죠. 창의성은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만든 틈에서 발현되는 겁니다. 바로 새로운 생각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에필로그에서 들려준 루블료프의 전기를 다룬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감동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먹먹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였어요.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사람다움의 의미를 이야기한 <예술적 상상력>. 수록된 QR 코드로 바로 영상과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저자가 말하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와닿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재발견하기도 했어요. 줄거리 대충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완독할 마음 없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고전 중의 하나였는데 <예술적 상상력>에 인용된 문장들이 어쩜 그토록 인상 깊게 다가오던지요.


상상력의 근원인 예술이 무엇인지, 그 예술이 어떻게 문명을 일으켰는지, 예술이 무슨 모습으로 현실과 만나는지 보여주는 <예술적 상상력>.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이룰 수 없고,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은 이미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인생을 창조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 창조적인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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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불평등 시점
명로진 지음 / 더퀘스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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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에 대한 이야기 <전지적 불평등 시점>.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준 책 <짧고 굵은 고전 읽기>로 배우 명로진에서 작가 명로진의 모습을 저는 처음 알게 되었었는데, 이번 에세이도 기대 이상이네요. 슬쩍슬쩍 튀어나오던 사이다 유머를 <전지적 불평등 시점>에서는 제대로 터뜨렸습니다.


꼬붕, 시다바리, 지랄 같은 단어가 적나라하게 등장하며 "유머와 해학을 가미한 스토리로 21세기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헤집는" 책 <전지적 불평등 시점>. 노력이 다 같은 노력이 아니라 몇 배 더 어려운 노오력을 해도 힘든 돈 없는 자들의 설움에 공감하며 지랄맞은 갑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배우, 교수, 작가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명로진 저자여서 에피소드 배경도 예술계, 학계 등 몸담은 곳 이야기가 많아요. 그 외 이슈화된 기사를 토대로 이 사회의 가진 자들의 행태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명로진 저자가 말하는 가진 자들이란 사장, 회장, 대표, 건물주 등 말그대로 경제적 자유를 가진 자들입니다. 아이들 장래희망에 이미 건물주가 등장했던 건 아시죠?


사람을 고용한 걸 인격 전체를 24시간 동안 구매한 줄 아는 갑질들. 신입사원 군대식 연수 논란으로 들썩이는 일이 아직도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알려주는 저자의 이야기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김산해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내용을 인용하는데요. 신조차 노동을 싫어해서 신을 대신해서 일할 '사람'을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를 통해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명제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남을 위해 하는 노동 자체가 모욕 당하는 일이었어요. 휴식이야말로 신성한 것입니다.


노동하기 좋은 환경이란 말도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특히 이 시대 노동은 치욕이라고 말합니다. 나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노동이기 때문이라고요. 공자 왈, "네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씀이 사무치게 다가옵니다.


"타자에 대한 분노는 무기력과 함께 자아를 향하고, 자아와 타자를 오가며 분노하는 동안 그들의 에너지는 고갈된다." - 전지적 불평등 시점





<전지적 불평등 시점>에서도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봅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2천여 년 전에 이미 벌어졌고, 여전히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걸 보면 갑갑하긴 하지만요.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건 비정규직이고, 그들은 더 이상 끌어 쓸 돈도 없는 워킹푸어이기도 합니다. 화병 나는 현실에 막힌 대부분의 우리들.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되지요.


라떼는 말이야 과자가 나올 정도로 꼰대를 비꼬고 풍자하는 시대입니다. 돈 없는 나를 지키고 싶은 을에게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사이다처럼 속을 확 뚫어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인상적인 책 <전지적 불평등 시점>도 그런 점에서 딱 필요한 타이밍에 나온 책 같아요. 책 마지막에 실린 스무 살 아들에게 주는 글은 세상의 모든 을에게 남기는 조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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