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지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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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사회를 아느냐?"

편의점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삶과 사회를 말하는 책 《편의점 사회학》이 던지는 화두다.

 

파출소나 우체국보다 훨씬 찾기 쉬운 '국민점포' 편의점.

현대 사회의 축도이자 도시 생활의 단면인 편의점을 알면 우리 사회가 보이고 우리 시대가 읽힐 것이라는 기대가 《편의점 사회학의 출발점이다. 편의점의 개념과 역사, 한국사회에 등장하고 확산된 과정, 한국형 편의점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이론적 가이드이자 분석적 프레임을 통해 편의점 사회학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1년 365일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 공화국 시대.

시간, 장소의 편리성과 상품의 상대적 다양성이라는 매력을 가진 편의점의 이면에는 프랜차이즈 체인형이라는 갑과 을의 시스템 속에 또다시 을 중의 을이라는 편의점 알바까지. 편의점 사회의 다양한 명암을 갖고 있다.

 

 

『 오늘날 우리나라의 편의점 업계는 일찍이 마르크스가 예견한 "자본의 집적 및 집중의 증가 현상"을 보여 준다. 소수 거대 자본의 독점력이 나날이 증가하는 가운데 신규 업체가 뚫고 들어가기에 편의점 시장의 진입 장벽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높다.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 p49

 

우리는 과연 편의점에서 무엇을, 그리고 왜 사는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가, 타율적인 조건 속에서 무심코 사게 되는가. 편의점에 의해 '소비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고 길들여지는 측면은 필요에 의해 편의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 의해서 필요가 생기는 논리 구조다. 상품의 세계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소비는 더는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화된 행위라고 한다.

 

흥정, 에누리없이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뿐인 쇼핑의 맥도널드화와 더불어 매뉴얼의 공간, 무관심, 기계적 관계로 인간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편의점의 포스기, 유통관리 부분은 편의점이야말로 정보기술혁명이 이끌어낸 정보산업의 대명사라는 것을 말해준다.

 

 

『 편의점은 유통 분야에 있어서 효율성과 계산성, 예측 가능성, 그리고 통제성으로 대변되는 합리적 근대 사회의 대표적 화신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현대인이 좋아하는 장점과 매력으로 가득하다. 』 - p86

 

한국경제의 세계화 과정에서 유통산업 구조가 생계형에서 기업형으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24시간 사회로 인해 즉시성과 처분성의 수준이 높은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일회용 생활용품 등의 성장 그리고 모바일 시대에 걸맞은 최대한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요구함과 동시에 거대한 관대와 무관심의 배려를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면서도 엄청난 경쟁과 불안, 방황, 위험 속에 버려지는 이 시대의 성격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한마디로 쿨해도 너무 쿨한 것이다. 88만 원 세대의 밥집 역할이면서 ATM 기계, 약국, 간이주점, 택배 등 복합 만능 생활거점인 편의점은 양극화 시대임에도 일탈의 공간으로 작동하므로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잊거나 참게 하는 아편과도 같은 곳이다.

 

 

 

 

『 편의점의 존재 양식이 내포하는 사회적 의미를 자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오늘날 편의점이 불안하고 부정의한 양극화 시대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모종의 버팀목이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 - p145

 

《편의점 사회학》에서 말하는바 대로 편의점을 보면 한국 사회를 읽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편의점이 과연 누구를 위한 '편의'이고, 무엇을 위한 '편리'인가? 편의점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거론한다. 우리 사회가 정작 어떤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지 진지한 물음이 필요할 때라는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적 시선으로 편의점에 대한 사회학적 재발견을 하 《편의점 사회학》을 통해 을의 공간, 편의점 사회의 명암을 엿볼 수 있다. 이 사회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너무나도 생생한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이런 화두를 던지는 저자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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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이야기
세스 고딘 지음, 박세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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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의 최고 기업가 세스 고딘생각을 깨우는 변화의 힘 이카루스 이야기》 

 

널리 알려진 신화 이카루스 이야기는 미노스 왕의 뜻을 거역한 죄로 갇힌 아들 이카루스와 아버지가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탈출계획을 세우는데 아들에게 태양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하늘을 나는데 도취한 이카루스는 점점 높이 올라가다 결국 날개를 잃고 바다에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자신에게 신의 능력이 있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하지만 세스 고딘은 여기에 한가지 교훈을 더 강조한다. 바로 너무 높게는 물론 너무 낮게도 날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면에 너무 가까이 날다가는 날개가 젖어 역시 물에 빠져 죽을 수 있으니까. 

우리 사회는 바로 이 부분을 착각해왔다는 것이다.

낮은 기대와 소박한 꿈에 만족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면서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우리 인생은 안락지대와 안전지대를 조율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나아가고 언제 물러설지를 배우며, 내가 지금 위험지대에 들어섰는지 아닌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 - p29

 

제품 생산의 산업사회에서 이제는 '연결'과 '관계'라는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가치가 창출되는 연결경제의 시대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대부분 사람은 아직도 산업사회의 울타리에 갇힌 사고방식에 세뇌당한 채 살아간다. 줄에서 이탈하지 않는 복종의 습관에 길들어 있다. 이제는 본성에 충실할 때 정말 잘할 수 있는 일들이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다.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야 한다. 저자는 우리 본성에 한 가지 전제를 걸어둔다. 우리 모두 날 때부터 아티스트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 저자가 말하는 '아티스트'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용기, 통찰력, 창조성, 결단력을 찾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카루스 이야기》는 우리가 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하는지, 왜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왜 마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복종과 성취를 중요시하는 표준화된 산업경제에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연결경제로의 이동은 아트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시대에 이 이점을 누리기 위해 마음속의 저항과 싸워 나만의 자산을 확보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경제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그 주도권이 기계가 아니라 연결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의 손으로 힘의 중심이 이동될 뿐이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적인 사고방식의 과거를 벗어던져야 한다. 이카루스 신화는 자만에 대한 경고라는 교훈을 주고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자만'이라고 말한다. 너무 낮게 날지 말라는 경고를 삭제해버린 이카루스 신화의 속임수를 통해 오랫동안 틀에 박힌 습관을 탈피하고 아티스트에게 꼭 필요한 습관들을 이야기한다.

 

『 우리는 우리가 기대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결과에 쉽게 집착한다. (중략) 그런데 긍정적인 결과에 집착하면서, 그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성공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행동을 바꾸기 시작한다. 』 - p127

 

 

 

이 세상 시스템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고, 선택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선택하자.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를 똑바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술을 알려주는 책 《이카루스 이야기를 통해 관성적으로 행동하던 틀을 깨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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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못 고치는 만성질환 식품으로 다스리기 - 내 몸은 내가 지킨다
김달래 지음 / 리스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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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아서 음식을 제대로 이용하면 웬만한 질병을 예방할 수도, 치료도 가능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된 방법으로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꾸준히 실천해서 건강 유지 또는 만성질환을 조금이나마 다스리고 싶은 마음은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생각만큼 쉽진 않다.

 

 

음식의 효과를 실제 사례를 통해 꾸준히 소개해 온 한의사 저자가 쓴 《의사도 못 고치는 만성질환 식품으로 다스리기》는 젊은 날의 건강유지를 위해 그리고 건강을 되찾기 위한 음식의 중요성과 식품 활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증세에 따른 민간 약재 이용법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데 심혈관 질환, 내분비 질환, 호흡기 질환은 물론 외과 질환, 정신과 질환 등 53가지 질병을 다루고 있어 웬만한 만성질환은 다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요즘은 한방 약재도 농약을 치는 게 많아 유기농 재료 구매의 중요성을 당부하고 있으며, 구매한 약재의 올바른 보관법, 약재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에서의 주의사항 등을 꼼꼼히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룬 다양한 식품을 보면,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매 가능한 일반 식품은 물론 왠지 먼 나라 이야기 같은 한방약재라고 해도 요즘은 검색 한 번으로 다양한 구입처를 쉽게 찾아낼 수 있으니 재료를 못 구해서 못 한다는 소리는 안 나올듯하다. 한방약재는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달여야 하나 싶어 번거로움이 먼저 마음에 자리 잡기도 하는데 책에서 소개하는 활용법은 탕약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재료에 따라 10~30분 정도 끓이는 것으로 충분해서 쉽게 활용할만하다.

 

몸에 좋은 식재와 약재는 많고 그만큼 효능도 제각각 다르다.

각 재료의 효능에 맞게 적절히 사용한다면 효과를 훨씬 더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차로 만들어 마시면 건강유지, 질병 개선 외에도 차의 향이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풀 수 있지 않을까. 평소 자주 마시던 커피 대신 약차, 기호 음료로 편하게 마실만한 차가 뭐가 있을지 눈여겨보게 된다. 체질에 안 맞아 부작용이 생길 약재를 피해야 하고, 아이 역시 어른과 다르게 마셔야하니 이렇듯 차로 효과를 보려면 알아둬야 할,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꼼꼼히 알려주고 있다.

 

 

찾아보기 페이지에서는 재료, 한방차별로 정리한 것 외에도 질환별로도 잘 정리되어 있는데,

하나의 질환에도 다양한 식품이 효과가 있는 경우 일일이 재료별로 다시 뒤적이지 않아도 한눈에 찾기 쉬워 은근히 큰 도움이 된다. 

 

 

병원에 가야만 하는 질환이 있는가 하면 고질병처럼 따라다니는 일명 생활습관병도 있다. 음식을 활용한다는 것은 생활 습관, 체질 개선에 좀 더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에서 그나마 우리가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동의보감에도 음식재료들의 효능, 주의사항, 사용법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의사도 못 고치는 만성질환 식품으로 다스리기》는 현대인이 활용하기 편하게 복잡하지 않은 범위에서 잘 정리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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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깨감 스토리텔링 서술형수학 3-2 - 2013년 즐깨감 서술형수학 시리즈
박현정 외 지음,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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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겨울방학동안 우리 아들 3학년 수학 조금 접하고 있답니다.

일반 문제집이었으면 아마 선행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을듯한데

즐깨감 시리즈는 퀴즈 푸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아직 배우지 않은 과정도 가볍게 접하기 좋더라고요.

 

3-2 과정은 아직 여유가 있어서 <덧셈과 뺄셈> 부분만 해봤어요.

기존에 배웠던 세자리수 덧셈뺄셈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네자리수 덧셈뺄셈으로 이어지는지라 갭은 없었네요.

 

나눗셈이 나와서 슬슬 긴장되는 시기기도 하고요.

목차를 쭉 살펴보면 곱셈, 나눗셈이 있어서 2학년때 배운 구구단은 정말 자다가도 툭 튀어나올 정도로 반복 연습이 필요한것 같아요. 잊지말고 심심할때마다 구구단 놀이는 계속~!

 

《즐깨감 스토리텔링 서술형 수학》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의 문제 구성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 교과서 대표 유형을 다루는 기본 문제, 수학익힘책과 비슷한 느낌의 교과서 유형 연습 문제, 그리고 창의서술형 문제... 이 세가지가 각각 동떨어진게 아니라 마지막 단계인 창의서술형 문제를 풀기위한 준비과정으로 앞의 두 가지 구성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1단계 교과서 대표 유형 문제 형태는 네모 빈칸이 아주 많아요.

문제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풀이과정을 최대한 자세히 알려주는 방식이지요

 

2단계 교과서 유형 연습 문제는 문제해결의 순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서술형 답안을 완성해 나갑니다.

 

3단계 창의서술형 문제는 앞의 두 단계에서 연습해 본 방법대로 풀어 보는 코너인데 문제해결 전략과 답안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생각해서 작성해야 하지요. 앞의 두 단계를 충분히 연습해오다보면 이렇게 백지 상태도 크게 두렵지 않게 만드는게 바로 이 문제집목적!

 

별도로 뜯어낼 수 있는 즐깨감 답지는 창의서술형 문제의 경우 1, 2단계처럼 자세한 풀이 과정과 해설이 나와 있어서 큰 도움이 됩니다.

 

문제를 읽는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휘리릭 지나가버리는 것들을 글로 잘 풀어내는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학교에서 원하는 서술형 문제를 푸는데 곤란해지죠.  이렇게 단계적인 연습을 통해 해결해나가도록 하면서 무엇보다도 아이의 흥미를 이끄는 재미있는 이야기와 수학의 만남으로 이런 과정을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 큰 장점인 문제집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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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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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소설은 참 독특하다. 소설인 듯 아닌 듯 모호한 느낌을 줄 때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세키의 문학관 또는 인생관이 어떤 기법으로든 그의 소설 속에 제법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에서는 권력, 돈의 힘에 관한 풍자가 엿보였고 <풀베개>에서는 그의 예술관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이번에 읽은 《태풍》 역시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며 돈과 인품에 관한 그의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태풍》의 이러한 계몽적 성격 때문에 소세키의 소설 중 국내에서는 덜 알려지고 덜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놓치기엔 아쉬운 책이다.

  

소설 《태풍》에는 각각 다른 환경에 처한 세 인물이 등장한다.

인생의 가치관이 뚜렷하게 확립되어있는 문학자 시라이 도야, 부자이면서도 제법 심성이 괜찮은 나카노, 불안한 미래를 안고 사는 작가지망생 다카나야기. 이 세 사람을 통해 소세키 자신의 사유를 엿볼 수 있다.

 

『 비생산적인 말을 늘어놓는 학자나 축음기나 다름없이 항상 같은 말만 늘어놓는 교사가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돈은 어디서 오는가? 수억의 돈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실업가들이 내놓는 티끌 같은 돈 부스러기로 연명해가는 사람이 바로 학자다. 문학자다. 교사이기도 하다. 』  - p17


세 군데의 학교를 전전하다 결국 교직을 던져버리는, 가는 곳마다 이 세상의 현실과 융화되지 못하는 시라이 도야.

돈의 힘으로 살아가면서 돈을 비방하는, 이 세상에 동화될지 동화의 가치에 관한 이중적인 현실, 마음의 고뇌가 드러난다. 자신이 세상에 융해되려고 한다면 그 순간, 도야 자신은 완전히 소멸되어버릴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은 '진정한 인간'으로서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으려 하고 그것이 학문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붓의 힘으로 세상을 깨우치려는, 자신의 길을 지키며 세상에 저항하는 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아내의 처지에서 보면 도야는 돈도 안 되는 바쁜 일만 하는 의지도 없는 남편일 뿐이지만.

 

『 좀 더 인간다운 사람이 있을까? 』  - p38

 

작가지망생 다카나야기는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비관적이고 외톨이 신세라 한탄하는, 어찌 보면 우리네 청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무사태평한 사람과 속 편한 사람은 도저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깊은 내면, 인간의 본질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한다.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감탄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싶어한다.

 

나카노는 도야가 말하는 명문, 부자를 칭송하는 이 세상에서 부자라는 환경속에 나름 중용의 길을 걷고 있는 청년이다. 친구 다카나야기를 물심양면 도와주려고 한다. 소세키의 소설에서는 평소 돈 많은 부자들의 권력, 인간의 도덕심과 혼을 타락시키는 도구로서의 돈의 힘을 많이 드러내는 편인데 이 소설에서는 다른 소설의 등장인물에 비하면 의외의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소세키는 평소 위장병, 결핵, 신경쇠약 등을 앓고 살아서인지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소설 속 인물에게 잘 대입시키는것 같다. 《태풍》에서도 결핵에 걸린 다카나야기를 내세워 몸의 어딘가에 이상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의 부담이 된다면서 건강에 관한 언급을 한다. 

 

도야 선생의 현재모습과 다카나야기의 현재는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다카나야기는 도야에게 동병상련처럼 호의를 가지고 있지만 도야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제에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어려운대로 일하면 충분하다며 너무나도 태평스럽다. 그 이유는 도야가 가진 가치관때문이다. 고통, 궁핍, 고독 이런 인생길에서 만나는 인생 그 자체가 문학이며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이고 그렇게 처리한 방법이나 터득한 것을 종이에 옮겨 놓는 것이 바로 문학서가 되는 것이라 한다.

  

『 당신의 인생은 과거에 있는 것입니까, 미래에 있는 것입니까? 』 - p138

 

스스로 정한 가치관에 만족을 얻으려고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 뿐인 도야. 과거를 돌아보면 죄가 있고, 미래를 바라보면 병이 있는 다카야나기. 이렇듯 도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꿈꾸며 너무 세상 바깥에서 머물고, 다카야나기는 자신을 위한 세상을 사는지라 괴롭다. 둘은 똑같이 세상이란 경계에서 벗어난 외톨이면서도, 반면 둘은 다르다.

 

『 과거가 이러했기 때문에 미래도 이렇게 될 것이라는 억측은 지금까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종의 사기입니다. 성공을 목적으로 인생이라는 길에 서 있는 사람은 이미 사기꾼입니다. 』 - p184

 

국민작가라는 칭호를 받는 소세키답게 《태풍》은 일본 메이지 유신이라는 시대적 사회상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속 도야의 연설을 통해 서양의 이상에 압도되어 눈이 먼 일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노예라고 하기도 하고, 이 시대는 피가 보이지 않는 아수라장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생존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관한 도야의 통쾌한 연설이 나오는 부분은 이 소설이 100년 전 작품이라는 것을 잊게 만들고 현재의 우리 상황처럼 느껴지게 한다.

 

『 '나'에게는 '나'가 있다. 이 '나'를 내놓지 않고 빈둥빈둥하다 죽어버리는 것은 아깝다. 』 - p201

 

도야와 나카노의 나름 완성된 세계관, 아직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고 삶의 방향과 의미를 찾기 위한 다카야나기의 방황을 통해 바위같은 견고한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부딪쳐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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