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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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의 제왕, 마쉬왕이라 불린 아버지. 그는 열네 살 소녀를 납치해 14년 동안 감금한 남자입니다. 납치범에게 붙잡혀 있다 빠져나왔을 때 열네 살 소녀는 스물여덟 살이 되었고 납치범을 꼭 닮은 열두 살 딸 헬레나와 함께였습니다.

 

 

 

안데르센 동화 《마쉬왕의 딸》을 모티프로 한 소설입니다. 이집트 공주와 마쉬왕이라 부르는 괴물 사이에서 태어난 헬가의 이야기. 짧은 동화 한 편을 서스펜스 심리 스릴러로 멋지게 탄생시킨 소설 <마쉬왕의 딸>은 늪지대에서 탈출한 후 성인이 된 딸 헬레나의 시선으로 진행합니다.

 

 

 

남편과 어린 딸 둘을 두고 가정을 이룬 헬레나. 지난 15년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의 탈옥 소식으로 평화는 깨집니다. 그동안 남편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나, 헬레나의 과거. 이 일로 남편 스티븐은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으로 떠나게 되자 '나'는 이 상황을 고칠 방법, 가족을 돌려받을 방법은 직접 아버지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늪지대를 빠져나올 수 있는 자, 아버지. 아버지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던 꼬마 소녀와 현재의 내 모습이 얽혀 두려움과 함께 미묘한 감정을 가집니다.

 

나름대로 자신을 12년 동안 돌봐 주었던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애증의 관계입니다. 어머니를 납치하고 감금했던 아버지이지만 나는 어린 시절 그 모든 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웠습니다. 반면 아버지를 닮은 나에게 정을 주지 않았던 어머니. 부모님의 관계를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당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기에 그저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더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나의 관심사를 갖고 놀면서 아주 교묘하고도 철저하게 엄마에게 등돌리도록 만들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어렸을 때 배운 흔적을 추적하는 방법을 이제 아버지에게 겨냥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늪을 다스리는 왕, 마쉬왕. 아버지는 딸이 자신을 추격하리라는 것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도주 과정에서 네 명을 죽인 아버지.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자신을 배신한 헬레나의 대용품으로 삼을 헬레나의 딸들입니다.

 

 

 

아버지와 딸의 추격 장면과 함께 늪지대 오두막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회상을 오가는 구성은 지금 헬레나의 심리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른 아버지는 나에게 그저 순수한 '아빠'였습니다. 하지만 늪지대를 탈출한 건 헬레나의 의지였습니다. 무슨 일로 어린 헬레나에게 사랑이 애증으로 변하게 되는 심경 변화가 생긴 건지 과거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합니다.

 

유괴되어 억류 생활을 했던 여성들의 심리적 상태는 어머니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됩니다. 그것은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다릅니다. 머릿속 어딘가가 부서져 버리고 자율성을 빼앗긴 사람처럼 의지력이 망가져 도망치지 못하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입니다.

 

늪을 떠날 땐 새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유괴범이자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낙인은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를 절망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엠마 도노휴 소설 《룸》과 닮은 소재여서 재밌게 읽은 독자라면 <마쉬왕의 딸>도 만족할 겁니다. 성인이 된 딸 헬레나의 시선에서 지독히도 나르시시즘을 안고 있었던 아버지와 내면이 모두 무너져버린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섬세하게 잘 표현합니다.

 

야생 그 자체를 살아온 헬레나가 사회에 스며드는 과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한 심경 변화를 묵직하게 다루면서도 아버지와 딸의 치열한 머리싸움은 긴장감을 제대로 선사합니다. 무기력한 피해자 여성의 모습을 뛰어넘어 사이코패스 아버지를 사냥하는 여성 영웅적 면모를 보인 <마쉬왕의 딸>. 그저 욱하는 마음으로 치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심리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헬레나, 무척 매력적입니다.

 

"내가 존재하게 된 이유가 아버지라면,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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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프로파간다 - 안전신화의 불편한 진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0
혼마 류 지음, 박제이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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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은 절대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 만일 사고가 나더라도 절대 방사능 유출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민을 원전 추진 쪽으로 선동하기 위한 안전 신화의 유포,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이권으로 맺어진 산관학의 특정 관계자를 일컫는 원자력 무라들을 행태를 파헤친 <원전 프로파간다>.

 

이와나미 시리즈는 이번에도 엄지 척! 일본 광고사와 프로파간다의 역사까지 핵심을 명료하게 정리한 방식으로 원전 프로파간다에 대한 교양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책입니다.

 

 

 

청정에너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강조하며 안전신화로 포장된 원전 예찬 광고와 어용 기사들. 원자력 마피아인 일본 원자력 무라의 효과적인 원전 프로파간다를 보니 입이 쩍 벌어집니다.

 

생활 구석구석에 침투하는 광고를 이용한 원자력 무라는 일본 최대 광고대행사 덴쓰를 주축으로 일본 아홉 개 전력회사, 전기사업연합회, 원자력 무라의 대리인이 된 언론사들을 일컫습니다. 원자력 무라가 약 40년간 쓴 광고비는 2조 4,000억 엔. 도요타나 소니 같은 글로벌 기업도 쓰는 데 50년 가까이 걸리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원자력 무라가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광고업계의 특수성이 반영된데 있습니다. 거대한 광고비 투입과 정보 감시를 통해 언론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일본. 지역 독점 기업체인 전력회사는 사실 거액의 광고비가 필요 없음에도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원자력 무라가 쓴 대규모 광고비는 바로 전기 요금이라는 것.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도 그들이 납부한 전기 요금이 원자력발전 광고에 쓰인 거죠.

 

 

 

1950년대 원전 추진을 국책으로 정한 후 원전을 용인하는 여론 형성을 목표로 한 정부. 원전은 안전하고 꼭 필요한 시스템이라는 의식 침투가 필요했습니다. 원전 건설이 시작된 1960년대 후반부터 2011년 3.11까지 프로파간다를 추진했습니다.

 

석유 위기에 대한 경종, 원전의 경제적 은혜를 강조하며 지진대국 일본에서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원전 프로파간다가 시작됩니다.

 

문제는 국민 대부분이 프로파간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원전 프로파간다가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속고 있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마인드컨트롤하는 것이 프로파간다의 목적이니까요. 애초에 프로파간다는 선전 및 홍보 전략을 뜻합니다. 대중의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을 의미하는 건 일반 광고와 다를 게 없지만, 프로파간다는 정치적 의도를 동반하는 상황에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는 전국 각지에서 원전 건설과 가동이 개시된 시기입니다. 70년대 광고엔 전문가의 설명에 중점 뒀다면 80년대는 친근함을 주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에도 원전에 대한 통렬한 비판 기사는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정확한 정보를 따진 한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장의 목까지 날아갔고 보도제작부 해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지식인, 연예인을 포섭한 광고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90년대. 광고 대상, 빈도, 시기, 내용, 수법에 관한 지침은 싫어도 머릿속에 남게 되게끔 전략 세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혼마 류 저자는 프로파간다의 정수로 정부의 주최로 개최된 '원자력의 날 포스터 콩쿠르'를 손꼽습니다. 일본 전국 초등학생,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한 대회입니다.

 

 

 

전략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협찬하며 원전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나가지 않도록 감시한 원자력 무라. 2000년대 주요 키워드는 친환경 청정에너지입니다. 하지만 원자력은 발전시에만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을 뿐, 원전 건설과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 등 발전하면 할수록 자연환경을 파괴한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2011년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 이후 증거인멸에 박차를 가한 무라 단체들. 홈페이지에 과거 광고를 모두 삭제합니다.

 

 

 

여전히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피난해 있지만 원전 프로파간다는 부활하고 있습니다. 2016년 3월 아베 내각은 원전 재가동 정책을 펼쳤고, 각 지역 전력회사는 새로운 원전 프로파간다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고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여전히 세금을 통한 자금의 윤택함을 과시하고 있는 거죠. 원전이 중지된 탓에 경제 악화 우려 논리를 펴며 이제는 과거의 안전신화에서 안심신화로 변경했습니다.

 

 


원전 프로파간다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언론 방송과 기사는 비판적으로 봐야 하고, 프로파간다 언론에 속하지 않는 독립 언론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며 지지하고, 원자력 무라가 스폰서하고 있는 광고를 게재하는 언론에 항의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프로파간다를 막는 소중한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원전 프로파간다 구조와 역사를 기업 실명을 거론하며 원자력 안전신화 속에 숨은 프로파간다를 속속들이 파헤친 <원전 프로파간다>. 세뇌 당할 것인가, 각성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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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와 마로니에 나무 - 그리고 안네의 성장 이야기, <안네의 일기>
제프 고츠펠드 지음, 피터 매카티 그림, 신여명 옮김 / 두레아이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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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느낌의 펜화가 아름다워 애정하는 피터 매카티 그림이어서 반가웠던 그림책입니다.
마로니에 나무의 시선에서 안네 프랑크 이야기를 들려주는 <안네 프랑크와 마로니에 나무>. 전반부 30여 페이지는 일반 그림책 분위기이고, 이어서 안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글로 구성된 책이에요. 초등학생이 볼만한 그림책으로도 좋습니다.

 

 

 

아버지의 공장을 드나들며 언제나 생기 넘치던 아이 안네 프랑크.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어느 날 공장 뒤쪽 별관에 있는 안네를 발견합니다. 안네는 다락방에서 커튼 틈새로 밖을 내다보곤 했습니다.

 

안네의 가족과 또 다른 가족, 그리고 한 남자. 여덟 명이 머물던 그곳은 나치를 피해 숨어든 유대인의 은신처입니다. 때때로 남자아이와 함께 마로니에 나무를 바라보던 안네.

 

 

네 번의 겨울을 보내고 늦여름 어느 날, 안네는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떠난 방은 안네의 일기와 글을 쓴 종이들만 흩날려져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며 그들을 도와준 한 여자가 안네의 일기와 종이들을 모아둡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돌아온 사람은 안네의 아버지뿐.
한 세기가 끝날 무렵 마로니에 나무도 이제 삶을 충분히 누리고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2010년에 나무도 안네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안네 프랑크 (Anne Frank, 1929~45).

독일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한 동안 1944년 8월 4일 체포되기 전까지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 뒤 별관에 숨어지낸 안네. 수용소에 끌려간 안네는 영국군이 수용소를 해방하기 고작 3주 전 티푸스로 숨집니다.

 

직원이 잘 보관한 안네의 일기는 홀로 살아돌아온 아버지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됩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안네의 일기. 이 일기 속에서 마로니에 나무는 세 번 언급됩니다.

 

 

 

그동안 『안네의 일기』는 나치에 대한 저항 문학이자 사춘기 소녀의 고백으로 한정해 오히려 안네의 일기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는군요. 여느 고전 문학 작품처럼 유명세에 비해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 사실 별로 없기도 합니다. <안네 프랑크와 마로니에 나무>는 『안네의 일기』에 담긴 의미를 짚어줍니다. 한 소녀가 전쟁 기간 숨어 지내며 치열한 내면의 전투 상황을 보여주는 일기라고 말이죠.

 

내밀한 관찰,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적은 『안네의 일기』. 은신처 사람들과 빚어진 갈등, 여성으로서 자기 정체성에 눈뜨며 성장하는 과정이 오롯이 담긴 일기입니다. 홀로코스트가 심하게 벌어졌던 네덜란드에서 나치의 유대인 탄압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기장 덕분에 2년 넘는 은신처 생활을 참아낼 수 있었던 안네 프랑크. 함께 머물던 다른 가족의 아들인 페터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페터와 함께 마로니에 나무가 서 있는 뒤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 장면은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합니다.

 

안네 프랑크가 바라보던 마로니에 나무는 수명을 다하고 말았지만, 안네 프랑크 사업단은 관용과 평화의 상징이 된 마로니에 나무 씨앗을 배양해 묘목으로 길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기증한 묘목들은 지금도 자라고 있습니다.

 

 

 

<안네 프랑크와 마로니에 나무>는 인물에 초점 맞춘 책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어린이책입니다. 전쟁의 비극이라는 묵직한 슬픔과 생명의 소중함을 보여준 마로니에 나무 묘목 이야기는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갈색 펜화는 어떨 땐 몽환적인 부드러운 분위기를, 어떨 땐 갑갑하게 죄어오는 날카로운 느낌을 담아냈습니다.

 

"아득히 멀리 이어진 지붕의 물결,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너무나 짙은 파란색이라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야. 그것을 보면서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동안은, 그리고 살아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는 동안은, 이 햇빛, 맑은 하늘, 이것들이 있는 한은 나는 결코 불행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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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멈추지 않는다
하이럼 스미스 지음, 김태훈 옮김 / 파우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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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관리의 아버지, 프랭클린플래너 창시자 하이럼 스미스의 책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 올해 일흔세 살인 하이럼 스미스는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일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여가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은퇴라고 생각하지만, 하이럼 스미스는 삶에 대한 목적의식과 열정을 강조합니다. 인생 3막이라는 새로운 삶의 단계에서 새로운 정체성에 자신감을 갖도록 목적이 있는 은퇴를 통해 좋은 삶을 만들어 가는 자세와 생각에 관한 책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

 

 

 

은퇴의 정의를 스스로 만들라고 합니다. 은퇴는 요청하지도, 진정으로 원하지도 않은 선물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기회를 선물한다는 걸 인지한다면 은퇴는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이럼 스미스는 은퇴를 어떻게 마주하고 싶은가를 묻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을 마주한 당신은 행복할 준비가 되었는지 묻습니다. 그는 은퇴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곧 삶에서 은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시간과 기회의 선물을 받아 삶의 방향을 바꿔라고 합니다.

 

 

 

 

직업, 직위, 급여로 자신을 정의하려 할 때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라지면 정체성의 일부를 잃기라도 하는 기분이 됩니다. 하이럼 스미스는 나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원천을 바꿔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어디서 가치를 얻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바로 존재 그 자체인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목적 있는 은퇴 생활을 만들까요.

주도적인 하루를 계획하라고 합니다. 계획이 없으면 종일 생기는 일에 반사적으로 대응하게 될 뿐이라고 말이죠. 오늘 뭘 하지? 대신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삶을 살까?'를 질문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기여한다고 느낄 때 더 행복해진다고 하죠. 고독감과 고립감에 덜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려면 개인 헌법을 제정하라고 합니다. 행동을 좌우하는 가치관. 이것이 행동의 추진력이 됩니다.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 지배 가치를 세우고 이것에 따라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계획을 세우라고 합니다.

 

"세상에 기여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끝난다.
세상에 기여하기를 멈추는 순간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죽을 시간만 남는다." - 책속에서

 

 

 

다양한 계획도 몸이 건강해야 가능합니다. 지금은 건강해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더는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처지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그것에 발목 잡히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계획 없이, 목적 없이, 세상에 기여한다는 동기 없이 은퇴하면 거실을 떠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은퇴한 남편 증후군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부부간의 관계 자체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문제가 불거지는 정도가 심해지는 거죠. 이젠 같이 있는 시간이 늘면서 무시하기도 어려워지고 말입니다. 배우자 간의 성공적 협상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목적에 따라 시간을 활용하고 목적이 있는 성공적 은퇴를 선택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 자원봉사, 여행 등 은퇴를 잘 하는 법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와 반대의 사례를 소개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합니다. 열정을 갖고 은퇴 생활을 하겠다는 목적 있는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은퇴를 앞두고 어떤 일에 자신을 바치고 싶은지 찾는 일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기쁨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노력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경제적 기반과 건강이 받쳐주는 사례 위주여서 아쉽긴 하지만, 그렇기에 노년의 삶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더 절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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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씽킹 -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위대함은 어디서 오는가?
가리 카스파로프 지음, 박세연 옮김, 믹 그린가드 정리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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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던 사건, 1997년 가리 카스파로프와 IBM 슈퍼컴퓨터 딥블루의 체스 경기. 이후 우리는 그가 새로운 세대의 체스 기계가 등장할 때마다 대결을 벌이며 인공지능의 탄생과 진화를 목격한 체스 챔피언으로서의 세월을 잊어버린 채, 기계에게 패배한 체스 챔피언이란 것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 은퇴 후 '책임 있는 로봇 연구 재단'의 최고자문위원회 위원을 맡으며 옥스퍼드대학교 마틴스쿨의 객원연구원으로 인류미래연구소에서 학문간 통섭과 인간과 기계의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그의 행보는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처절하게 경험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체스 기계와의 대결을 경험하며 인공지능의 역사를 함께 했기에 오히려 인공지능의 한계와 인간 지성의 위대함에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1985년 서른두 대의 체스 컴퓨터와 다면기 방식으로 대결해 32대 0으로 압승을 거두었고, 그해 스물두 살의 나이로 최연소 세계 체스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뒤 12년 후. IBM 슈퍼컴퓨터 딥블루와의 한판 승부는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에서 역사적인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역전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딥블루는 창조성과 직관을 발휘하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2억 가지 경우의 수를 순식간에 계산하는 무자비한 기계였습니다. 그 대결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고백 <딥 씽킹>.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신기술을 수용하여 미래를 이끌어갈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흐름에 끌려다닐 것인가?" - 책속에서

 

 

 

1990년대 초 이미 체스 프로그램과의 대결에서 몇 번 패한 경험도 있었고, 2003년 딥주니어와의 승부에선 무승부를 겨루는 등 가리 카스파로프는 체스 기계의 진보 과정을 고스란히 경험했습니다.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체스 컴퓨터의 역사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의 혁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봅니다.

 

체스 기계의 실력은 1960년대 초보자 수준에서 1970년대 강력한 플레이를 거쳐, 1980년대 후반 그랜드마스터 등급이 되었고, 1990년대 말 세계챔피언을 꺾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로 도약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체스는 인공지능의 초파리 역할을 상실합니다. 이제 새로운 초파리가 등장했죠. 바둑입니다.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젝트 딥마인드의 알파고는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을 꺾게 됩니다. 딥블루의 시대가 저물고 알파고의 시대가 개막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사고와 기계의 사고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관점 변화에서 이뤄진 결과물입니다. 앨런 튜링이 꿈꾼 인간의 생각을 실질적으로 모방하는 컴퓨터에만 얽매였던 관점을 벗어나면서 혁신이 이뤄집니다.

 

"무언가를 잘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그 원칙을 언제 포기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 책속에서

 

 

 

"나는 지는 걸 끔찍이도 싫어한다."라고 말한 가리 카스파로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우리는 패배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딥블루와의 매치를 생각하면 그조차도 씁쓸해진다고 고백하네요.

 

우리가 기억하는 딥블루와의 매치는 재대결이었습니다. 1996년에 이미 한 차례 대결해 가리 카스파로프가 승리했던 전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심리를 묘사하는 장면은 무척 실감 나서 읽는 저도 긴장하며 읽게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컴퓨터와의 매치에서 승리를 거둔 마지막 세계챔피언이기도 합니다. 이때 IBM은 여섯 번의 게임에서 두 번을 이겼는데 이것으로 주가는 상승했고 IT기업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적 대결이 된 딥블루와의 재대결. "과거의 성공은 미래 성공의 적이다."라는 말처럼 가리 카스파로프에겐 이전의 승리가 악재로 작용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딥블루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IBM 입장에서는 첫 번째 대결에서 깨달음을 얻는 좋은 패배로 작용했습니다.

 

IBM이 주최자이면서 참가자인 두 번째 대결은 은밀하게 적대적인 낯선 분위기로 일관되었다고 합니다. 게임 규정, 일정 등 다양한 조건에 대한 합의를 안이하게 내준 결과는 그가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받기 쉬운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두 번째 대결에서 승, 패, 무, 무, 무 그리고 패. 총 여섯 게임동안 그의 상태를 묘사한 장면은 긴장감을 최고조로 만듭니다.

 

 

 

그 대결에서 벌어진 자잘한 실수들과 소동이 의도적이었는지 가리 카스파로프가 제기한 의문들에 대해 IBM은 자료 공개 없이 묻었습니다. 이미 그들이 원한 것은 얻었으니까요. 더 이상 딥블루는 체스를 두지 않고 은퇴했습니다. 가리 카스파로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딥블루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IBM이 승리를 얻기 위해 공정한 경쟁의 정신을 배반했을 뿐."

 

알파고와 이세돌 바둑 대결에서 경험한 패배의 허탈감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할 겁니다. 알파고는 인간이 개발했으니 결국 인간의 승리라는 자축 아닌 자축이 쏟아졌죠. 딥블루와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대결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이미 벌어졌더라고요. 재밌군요.

 

 

 

그는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해 낙관주의입니다. 기계의 판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요즘 체스 훈련의 행태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만, 그렇기에 더욱 인지 근력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데이터베이스에 의존하는 건 그저 컴퓨터를 모방할 뿐, 창조적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고 말이죠. 지식을 습득하고 기억하는 기능은 우리가 두뇌 설계 방식에 따라 창조적으로 활용할 때 비로소 가치를 발한다는 것을 들려줍니다.

 

우리는 믿음과 경험칙을 토대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것이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가 체스판에서 한 일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인간 특유의 오류와 인지적 약점을 인식한다면 오히려 이런 의사결정은 인간만의 특징으로 남게 될 거라고 합니다. 인간 생각의 위대함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가리 카스파로프는 <딥 씽킹>에서 체스와 체스 기사에 대한 맹목적인 편견부터 걷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컴퓨터 체스의 탄생과 혁신 그리고 인공지능의 역사와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이길 수 없다면 함께하라는 그의 말처럼 기계와 인간의 협업에 초점 맞춰 기술 진보에 관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가리 카스파로프는 체스 컴퓨터의 진화를 최전선에서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숙이 들여다보는 그의 행보를 보면, 인공지능에 관한 담론에 한 발 들이밀어도 될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 생각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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