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사랑
쯔유싱쩌우 지음, 이선영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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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서도 내내 남녀 주인공의 감정이 묵직하게 남아있어 조금은 우울해지기도 하고 씁쓸하긴 하네요.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했듯 그리고 쯔유싱쩌우 작가가 후기에 남긴 것처럼 이런 종류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같은 결말로 끝이 나버린다는 걸. 가슴은 아프지만 오히려 현실적인 사랑이기도 한 새드엔딩 러브스토리 <제3의 사랑>.

 

중국에서 7년간 베스트셀러였다니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은 소설이네요. 드라마로도 방영되었고, 송승헌과 유역비의 사랑을 이어준 영화로 리메이크 되어 작년 가을에 중국에선 개봉하기도 했고요. 아직 국내 미개봉작이네요. 송승헌쪽보다는 책을 읽으며 공감 많이 한 여주 역할의 유역비 연기가 내심 기대되는 영화이긴 합니다.

 

<제3의 사랑> 소재 자체는 사실 별것없어요. 식상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환영받는 재벌남자와 평범한 여자의 러브스토리거든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재벌남 임계정과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 후 혼자 사는 변호사 추우. 둘다 현재 솔로이긴 하지만 임계정에게는 비즈니스 결혼을 위한 약혼녀가 있는 상태고, 추우는 한번 배신당한 사랑 경험 이후 사랑에 대한 불신만 있는 상태입니다.

 

 

 

추우의 여동생이 임계정을 지독히 짝사랑하고 있어 자살시도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자, 추우는 임계정을 여자들 홀리기만 하는 나쁜남자로 생각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엮이면서 그의 매력에 끌리게 됩니다. 사랑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던 추우도 이 남자 앞에서는 심쿵하는군요. 그러니 '나 연애에 너무 굶주렸나봐!' 하며 자책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와의 사랑을 택하게 됩니다. 앞날은 바뀌지 않을거라는 걸 현실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지금 현재의 사랑을 선택한 거죠.

 

 

 

"앞으로의 일은 생각하지 말아요. 그건 내가 생각할게요." - 임계정

 

혼담이 오가며 결혼날짜까지 정해진 상황에서 임계정은 추우에게 몇 년만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남자라면 믿어도 좋아? 가 아니라... 추우는 이때도 한없이 의존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미래의 약속은 하지말고, 지금 사랑하자는 거죠.

 

 

 

 

추우는 사랑에 빠져든 그 순간만 비이성적이었고 나머지 일에는 꽤나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편이랍니다. 임계정 그도 지독한 자제력을 발휘하지만, 추우와의 사랑에서만큼은 해피엔딩을 원합니다. 하지만 해피엔딩을 원하면서도 현실을 놓지 못하는 모습... 솔직히 그게 더 인간다웠어요.

 

전남편은 자기를 용서해 달라며 용서하는 날까지 영원히 기다리겠다 하고, 임계정도 이혼 후를 기약하고, 회사 동료도 그렇고... <제3의 사랑>에서 남자들은 쉽게 약속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쉽게 내뱉은 말은 아니겠지만서도 미래를 장담하겠다는 그들의 말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글쎄요... 그 말에 장단맞추며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을 추우에게 이입하지 않아서 솔직히 다행이다 싶었어요.

 

"나는 정말 그를 사랑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슬픔을 가슴속에 숨긴 채 그렇게 미소 지을 수 있을까." - 추우

 

 

 

 

추우는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강렬한 끌림과 저항 사이에서 헤매는 게 바로 사랑 아니겠어요. 그저 서로 사랑하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다고... 그런 생각 자체가 스스로를 속인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사랑의 결말이 뻔히 보이기에 괴로워합니다. 자신을 위해 그의 인생과 사업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싫고, 임계정 스스로도 그럴 수 없는 상황. 헤어짐과 만남의 반복 속에서 추우의 감정변화는 소설로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을거예요. 영화로는 제대로 표현하지도 관람하면서 캐치하지도 못할 것 같네요.

 

사랑한다면 그를 기다려야 하나... 그 선택을 독자에게 묻는 <제3의 사랑>.

신데렐라 이야기로 빠지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에 더 오래남을 소설입니다. 현실에선 그들의 선택이 정답에 가까울 수밖에요. 그러면서도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가 마음 한구석에서 맴돌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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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도 괜찮아 -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이은의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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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예민해도 괜찮아.

 

이은희 저자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로 만 4년을 대기업 삼성과 싸워 이긴 최초의 여성이라고 하네요. 이후 로스쿨 진학 후 변호사가 되어 약자를 위해 일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예민해도 괜찮아>.​

남성 중심 사회에서 피해 입은 여성, 대기업 갑질에 고통받는 이들, 청춘 열정을 악용당한 젊은이들을 위한 따뜻한 직설은 우리 사회가 통으로 망각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최소한 조금이라도 갑인 상대에게서 받는 불이익이죠.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도 성적 문제라기보다는 권력관계의 문제로 봅니다. 원만한 조직생활을 위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일단 넘겨버리는 약자의 패턴부터 이야기합니다.

 

"내가 당하는 일이, 내가 목격하는 일이 성희롱인지 아닌지 판단이 어려운 순간마다 생각해보자. 그 행위를 거꾸로 내가 직속상관이나 회사대표에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 만약 하기 어렵다면 왜 그런지. 판단을 망설이게 하는 문제의 답이 거기 있다." - 책 속에서

 

결국 No 라고 대응하는 것은 예민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용기 있어서 하는 행동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서른여덟에 로스쿨 진학 결정을 내릴 만큼 맺힌 게 많았겠죠.

삼성과 싸울 때 스스로 선택한 싸움 때문에 불행해지면 안 된다고 늘 다짐했다고 해요. 인생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 사람은 자책에 빠지기 쉬운데, 그 일이 내 인생에서 사고가 아닌 사건이 되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 했던 선택이 경험과 경력이 되기를 바랐다고요.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스쿨에서나 변호사가 된 다음에도 이런저런 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더군요.

점잖은 직업이든, 결혼했든 관계없이 성차별 발언, 성희롱 등이 일어나는 걸 보면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여성차별은 은폐된 차별이 많고, 가해자 대부분이 하는 변명처럼 피해자가 뭘 어찌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옛날보다 살기 편해졌지 않냐는 말에 담긴 함정도 짚어주고요.

 

"애초에 추행은 상대의 성적 매력이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망상에서 태어나 힘의 불균형에서 꽃피는 것이다." - 책 속에서

 

된장녀, 김치녀처럼 속칭 무슨무슨녀 하는 말 자체가 여성 왜곡 시선을 드러내는 거라는군요.

아이들 보이그룹 좋아하는 여학생은 빠순이, 걸그룹 좋아하는 아저씨는 삼촌팬. 김여사는 있는데 김사장은 왜 없는지. 된장녀는 있는데 같은 집에서 똑같이 돈 쓰는 오빠나 남동생을 가리키는 된장남은? 여자가 남자를 돈으로만 본다는 김치녀는 있는데 여자를 외모나 돈으로 보는 남자는?

 

여성혐오를 단순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의 문제로 보지말고, 비겁하고 나약한 혐오자들이 낳아놓은 수많은 을(乙) 혐오 중 한 갈래로 직시해야 한다고 하네요.

 

 

 

노동부 매뉴얼에 맞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기업에서는 하긴 하지만 실상은 가해자 시선에 맞춰져 있는 교육이 많다고 합니다. 해선 안 되는 행동들 위주로 성적 문제로만 접근하고 있죠.

 

이은의 변호사는 상생을 도모합니다. 직장 내 성희롱이 성 문제가 아니라 갑을 관계라는 계급 문제임을 설득하는 데 초점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직장은 노동력을 파는 곳이지 인격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것. 그저 시끄러워지는 것을 예방하려는 방편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예민해도 괜찮아>에서는 피해자의 시선, 가해자의 변명을 통해 성차별, 성희롱 문제의 본질을 파헤쳐봅니다.

그리고 예방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대처.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주변인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 외 다양한 성차별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도 폭력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하고, 사회로 나가기 전부터 두려움과 불이익을 학습하게 만드는 학내 성희롱 문제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놓습니다. 한편, 동성의 여성 상사로부터 외모 비하 발언, 성적 수치심 일으킬 만한 상황이 생겼을 때 현재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정받은 판례는 아직 없다는군요.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조직에서 여성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필요한 경쟁자이자 현재의 횡적인 거리에서 계속 함께 나아가게 될 조직원임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 책 속에서

 

여성들이 가진 근원적인 공포, 스스로 마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태도, 항의한 사람을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구조 등 가부장 의식, 잘못 학습되어 굳어진 의식이 일으키는 다양한 문제는 성적 문제를 넘어선 갑을 관계, 힘의 관계라는 것. 성희롱은 곧 힘희롱이라는 거죠.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다수의 입장에 서는 것이 겸손은 아니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순응이 아니라는 말이 기억 남습니다. ​

 

이 책은 그런 의식 구조에서 변화를 끌어내야만 하는 을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남자든 여자든 성 구분없이 <예민해도 괜찮아>에서 말하는 힘희롱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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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의 요령
와다 히데키 지음, 김정환 옮김, 유상근 감수 /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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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봐도 미치도록 웃긴 책 읽었어요.

수능의 요령이라니~! 책 뒤표지에는 버젓이 수능 벼락치기의 결정판이라는 문구까지!

벼락치기는 무조건 나쁜 공부법일까요? 마감일 효과가 있듯 집중력과 절박함이 상승한 상태에서 더 효율적으로 성적 상승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자존심 다 집어치우고 이 책 필요한 사람들 많지 않을까요?

기초 튼튼히 하라는 말, 알고는 있지만, 그것도 여유 있을 때 가능한 일. 뒤늦게 정신 차렸을 때는 어쩌라고요~

공부의 본질이 아닌, 입시 합격을 위한 요령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이거야말로 정말 실용적인 주제가 아닐까 싶네요.

 

삽질하지 말고 요령과 전략만이 살 길!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점수로 직결되는 암기 요령뿐~!

 

 

 

 

일본에서 입시의 신이라 불리는 정신과의사 와다 히데키.

입시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공부법>, <학력붕괴>, <학력재건> 등의 책도 냈다는군요. 감수를 맡은 유상근씨는 공신닷컴 창립멤버로 저자와 감수자 둘 다 고등학생 때 공부에 눈뜬 경험이 있기에 이런 주제에 딱 맞는 공부법을 전수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합니다.

 

 

 

유상근 감수자는 "구조를 바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이 경쟁구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잘못된 학원과 거짓 공부법에 속지 않고 제대로 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 하는데, 이처럼 입시 구조의 정체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와다 히데키 저자가 <수능의 요령>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수능 시험은 기본적으로 암기력 테스트라는 겁니다. 저자가 입시에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심한 입시의 본질을 간파하고서라고 하네요. 공부 자체의 본질이 아닌, 입시의 본질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해요. 입시 공부를 요령 있게 하자는 의미입니다.

 

 

 

일본인 저자이기에 일본 입시에 맞춘 설명을 하지만, 우리나라 수능과 별다를게 없긴 하더군요.

유상근 감수자도 친절히 우리나라 수능에 맞춘 추가 정보를 잘 제공하고 있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수학은 암기가 아니라 사고력, 유연한 발상이라는 말을 다들 하지만, 대학 입시에는 이런 감각이 필요없다 합니다. 패턴의 분류와 해법이 중요하다는군요. 끙끙거리며 자신의 힘으로 풀려는 자부심을 버려도 된다고 합니다. 당락 결정짓는 7부 능선만 넘기면 된다는 거죠.

 

수포자들은 근의 공식, 행렬의 법칙 다섯 가지 말하라 하면 모른다는 것을 지적해요. 개념과 공식조차 외우지 않기에 그렇다는 거죠. 유상근 감수자가 한 말도 기막히게 재밌는데요. 피타고라스 정리를 외우지 않고 고민해서 푼다? 피타고라스도 정리 완성하기까지 수년 걸렸는데, 언제 시험장에서 만들어낼 거냐며 묻습니다. 일단 외워~!

물론 수시 모집 수리 논술에서는 창의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수능시험과 내신은 암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짚어주고 있어요.

 

 

 

<수능의 요령>은 결국 암기의 요령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암기의 축적량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암기량이 줄어들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복습에 집착하라는 말입니다.

 

나에게 맞는 최적의 복습 시기는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을 이용하면 됩니다.

영어 단문 50개 외우고 일주일 뒤 몇 개나 기억하는지, 전날 암기한 걸 다음날 아침 복습하고 일주일 뒤 몇 개 기억하는지 기록하라는군요. 보통 7~10시간 사이에 급속히 사라진다는데 그래서 아침 30분 유지보수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입시 공부가 괴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근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궁리가 부족해서다. 요령을 발휘해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는 편이 훨씬 능률적이다." - 책 속에서

 

 

 

시간 중심이 아닌 공부량 중심으로 계획 세우라는 것, 고난이도 문제집 해법을 활용하는 법, 노트나 메모 사용법, 슬럼프에 빠졌을 때 탈출법 등 다양한 요령과 전략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 출제경향을 예측하면서 센스있게 외우는 요령도 인상 깊었네요. 족보의 중요성은 역시.

 

기본 암기 과목과 수학 암기 요령의 차이도 알려주고요.

수학은 내 손으로 답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해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도 짚어줍니다. 과목별로 도움되는 책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유용했어요.

 

"입시란 3년에 걸쳐 자신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색칠 공부를 하는 것과 같다. 색칠공부 전체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며 그 부분을 진하게 칠했다면 합격은 틀림없다." - 책 속에서​

 

공부의욕 자체를 끌어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공부법이 있다 한들 소용없죠. 성공경험을 하게 되면 대입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뭔가 공부 열정이 이어질 바탕은 될 수 있고요. <수능의 요령>에서 알려주는 요령과 전략이 분명 인생의 전환점이 될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공부와 입시 제도의 조화롭지 못한 현재 구조 때문에 생긴 거라는 걸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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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이어령.정형모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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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최전선은 예언하는 게 아니다. 피투성이로 싸우는 게다."

 

디지로그 주창자,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21세기 지식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볼 수 있는 책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고품격 문화 스타일 <S매거진> 정형모 기자가 매주 한 차례씩 6개월여간 일대일 족집게 과외를 받으며 연재했던 글을 지금 시점에 맞춰 재정리한 글이라고 하네요. 마주앉아 대화하듯 진행하는 글이어서 실감 나더라고요.

 

 

 

이어령 교수의 서재에는 촉각을 곤두세운 일곱 마리 고양이가 있다는데, 바로 컴퓨터를 가리키는 거였어요. Computer Aided Thinking 앞글자를 딴 CAT. 컴퓨터가 내 사고를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노학자의 컴퓨터 활용법은 저보다도 훨 낫네요. 마인드젯으로 정리하고 에버노트, 드롭박스 연계해 여러 대 컴퓨터가 호환 가능하고 동시 작업 가능한 클라우딩 컴퓨팅. 스마트펜을 이용해 쓰고 녹음하면서 이미 10년 전 쓴 책 <디지로그>에서처럼 아날로그를 결합하는 디지로그 활용을 실감했어요. 그의 고양이들은 지의 전투가 격렬하게 진행되는 최전선이었습니다. 

그의 서재만큼이나 활발하게 지의 격전이 진행되는 곳, 와이어드 전자판 사이트도 언급하는데, 책은 이미 10년 전에 나온 생각들로 쓰인 것들이 허다한 상황이지만, 이곳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같이 생각해보는 현장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언론이나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정보는 다루지 않고, 쓸데없는 것에 낭비하고 있음을 꼬집습니다. 중요한 건 죄다 놓치고, 다가오는 문명을 제대로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고요.

 

지의 최전선 중 하나인 3D프린팅의 사례를 드는데, 주문하면 거실 3D프린터가 작동해 순식간에 물건이 생기는 드론 배송과는 비교하지 못할 빛의 속도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D프린팅 활용에 소극적이다 못해 뒤처져있죠. 이어령 교수님은 3D프린팅을 이용해 한국의 전통주택인 초가집을 살리려는 계획을 세우셨더라고요.

 

 

 

 

지정학의 중요성도 일깨워줍니다. 단순히 식민지 쟁탈전이 아닌 해양 대륙 간의 싸움 속에 담긴 숨은 의미를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아주 중요하게 드러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대륙국가인가 해양국가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우리는 반도국가로, 대륙과 해양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한반도의 힘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죠.

 

아시아라는 단어 기원과 의미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놀라웠어요. 동남아라고 우리가 말하는 동남아 지역은 말 그대로 동남쪽으로 가면 그 나라 안 나온다는 것을 언급하며 중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말뚝처럼 서 있지 마. 역사는 강물처럼 흐르는데 우리는 강기슭에서 탄식해야겠어?"

 

바이러스와 문명의 관계도 흥미로웠어요. 바이러스 전염병은 역학이라기보다는 언어의 소통문제라고 합니다.

광우병 사례를 이야기하는데요. 스코틀랜드 농민들이 붙인 이름인 광우병 이름이 주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죠. BSE 라는 공식명칭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에서조차 앞다퉈 광우병으로 불렀습니다.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 쓸데없는 공포심, 혼란을 최소화해야 사회적 부담, 정치적 갈등이 감소할 텐데 언어 소통에 실패했던 사례라고요.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에서는 우리만 강 건너 불구경인 사례가 많이 소개하고 있답니다.

외국에선 난리인데도 우리 신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는 것들을 언급하며 우리는 지의 후방 전선에서 놀고 있는가 하며 안타까워합니다.

 

3D프린터로 바이러스도 찍어내는 세상이란 거 아세요? 노학자의 지식정보력은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생물학자도 의학자도 아닌 ​컴퓨터소프트웨어 회사에서 IT 전공자들이 이런 걸 해내는 세상입니다.

에디슨만 배우는 게 아니라 에디슨이 테슬라를 이기지 못한 이유를 알려줘야 하는 게 교육이라고 하고요.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모든 지적 프로세스는 관심, 관찰, 관계라고 해요.

그의 최전선은 검색을 통해 과거를 Thought 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Thinking 하는 살아있는 인문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 언어의 어원을 파고들어 개념을 끄집어내고 하이퍼텍스트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하네요. 유선, 무선 이야기가 해양 세력, 대륙 세력 지정학 문제로 나아가는... <지의 최전선>에서 그가 풀어내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하이퍼텍스트라고 합니다.​

 

 

 

한국적 사고의 화두가 되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는데,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와 한국인의 거시기 머시기를 비교합니다. 말이나 논리로는 콕 찍어낼 수 없는 세상에서 포용적 단어의 유리함과 그것을 찾는 것이 창조적 삶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공감되더라고요. 좌우지간에... 라는 말을 잘 쓰는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 오히려 장점이 될 근거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어령 교수가 이미 10년 전에 <디지로그>에서 말한 내용을 되짚어보면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변한 게 없긴 하네요. '거대한 문명을 읽는 섬세한 더듬이'라고 정형모 기자는 말하는데 노학자가 검색으로 다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을 왜 우리는 못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운 지의 담론을 보여주는 책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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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수상작
기타가와 에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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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나 제목만으로는 자기계발서나 에세이 느낌이 드는데 일본소설이네요.

흡인력은 제대로였어요. 앉은 자리에서 뚝딱 다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진 책입니다. 직장인이라면 핵공감할만한 내용이랍니다.

 

​"진짜로 잘난 사람이란 어떤 환경에서나 잘나게 돼 있어. 사회에 나가서 가장 중요한 건 체력도 참을성도 아니야.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가 하는 점이지. 어떤 사람과도 일해 나갈 수 있는 적응력이랑. 말하자면 '생존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거야." - p15

 

 

 

입사 반년 된 신입사원 아오야마의 하루하루는 그다지 낙이 없네요. 야근, 휴일근무, 열정페이...

남들 하는대로 대학교 졸업하고 구직 활동 후 입사 처음에는 나름의 꿈, 희망, 의욕이 있었지만 어느새 지친 얼굴에 공허한 눈동자를 지닌 모습으로 변합니다. 비디오로 되감은 듯한 시간을 그저 소화해 나갈 뿐인 하루하루입니다.​ 생존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부했건만, 사회를 우습게 보았다는 무력감에 절어있는 아오야마의 현재입니다.

 

그러다 승강장에서 우연히 동창생이라며 말을 건 한 남자를 만나면서 변하게 됩니다.

기억에는 없는 동창생이었지만 편한 마음에 주말마다 만나게 되죠. 자신을 니트족이라 하며 그냥 아르바이트나 하는 중이는 동창생. 그러면서도 아오야마에게 진지하게 사회생활에 대해 충고해 주기도 하고요. 그의 별것 아닌 말에 아오야마는 조금씩 바뀌고, 업무에도 좋은 영향을 주기 시작하죠. 이대로라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 믿음도 생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계약을 진행하며 실수를 하면서부터 인생은 다시 꼬이네요. 그 일로 인해 한순간에 자존심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역시 난 뭘 해도 안 되는 건가...하며 자책만 하다가 옥상 자물쇠가 열리는 날만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자살할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아오야마는 '설령 전직한다고 해도 나는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고, 애초에 이런 쓸모없는 남자를 고용해 줄 새로운 회사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의 쓰레기일 뿐인 나를 허락해 주는 이 장소에 계속 있을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만큼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동창생은 아오야마에게 이직을 추천하지만, 이 상태에서는 전혀 자신감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그저 몇십 년만 참으면 된다고도 생각할까요.

 

그런데 아오야마의 기억에 없던 그 동창생에게도 비밀이 있었어요. 기억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죠. 동창생이 아니었으니까요. 왜 그럼 동창생인 척 그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굴고, 조언도 해주고 그랬을까...

동창생의 비밀이 밝혀질 때 마음이 아주 짠해지더라고요.

 

 

 

도망치지도 못하고 결국 애를 쓰다 망가져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도망치는 법을 몰랐기에 회사를 그만두지도, 누군가에게 상담하지도 못하고, 너무 괴로운데도 회사를 그만둘 용기도 없었던 남자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했어요.​

 

아오야마는 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도망치는 법을 배운 셈입니다.

​아오야마의 입에서 "지금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라는 말이 나왔을 때 독자인 제가 더 찌릿하고 통쾌함이 몰려들더라고요.

 

"바꾸기는커녕 이 사회 하나, 이 부서 하나, 마주한 사람 한 명의 마음조차 바꿀 수 없는, 이토록 보잘것없고 장점 하나 없는 인간이 나예요. (중략) 하지만 이런 나라도 한 가지만은 바꿀 수 있어요. 바로 내 인생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어쩌면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것과 이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걸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있어요. " - p199

 

이 책은 제21회 전격 소설대상 <미디어웍스 문고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일본 젊은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소설 브랜드 '아스키 미디어웍스'에서 주최하는 문학공모전이라 하는군요. 빠른 전개와 감동 글귀가 마음에 들었어요.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사는 직장인들을 위한 대리만족 스토리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힘들수록 버티라는 말이 더는 안 통하는 시점이 있죠.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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