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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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분량의 벽돌책이어서 선뜻 도전하지 못하더라도 책 제목만큼은 들어본 바로 그 책! 인류사라는 카테고리를 대중에게 알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1998년 퓰리처상 수상, 서울대 도서관 대출 최장기 1위, 국립중앙도서관 대출 상위 10위 등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현대 고전으로 알려진 인문학 필독서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을 꾸준히 번역해온 강주헌 박사의 번역으로 출간 25년 기념 뉴에디션을 만나봅니다. 이번 2023년 한국어판에서는 한국 독자를 위한 특별서문이 수록되어 있어 서울을 자주 찾았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각별한 한국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총 균 쇠> 원서 자체에 한글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한글의 존재를 몰랐던 그가 집필 자료를 읽던 중 한글을 알게 되었고, 이 책에서도 문자 사회에 대한 파트에서 한글이 등장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반목의 역사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국뽕의 기운을 받는 책이지요.


생리학자에서 출발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리학, 환경사, 문화인류학 등으로 연구를 확장하고 융합해 <총 균 쇠>에서 다양한 분야를 접목한 인류사를 보여줍니다. 빅히스토리 관점의 역사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싫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총 균 쇠> 덕분에 <사피엔스>를 쓸 용기를 가졌다고 합니다.


오래전 책이어서 한물 간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가 <총 균 쇠>에서 던진 질문은 그 시대만의 고민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질문입니다.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원대한 질문에 답하고자 쓴 <총 균 쇠>. 그 질문의 시발점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식민지 뉴기니가 독립을 앞둔 상황에서 뉴기니인 얄리는 뉴기니인과 유럽 백인의 생활 방식 차이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왜 역사는 대륙마다 다르게 전개되었는가로 질문을 확장합니다. 지난 1만 년 동안 부와 과학기술, 정치조직과 인구 규모 등이 특정 지역에서 훨씬 더 빨리 발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종 차별적 관점과 유럽 중심 사관으로 답하는 게 정말 최선일까요? 당시엔 그런 관점이 대세였지만, 저자는 종족 간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에 주목합니다. <총 균 쇠>는 그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700만 년 전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때로부터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때까지 아주 먼 과거에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인류의 초기 진화사를 살펴보며 일부 대륙의 종족이 다른 대륙의 종족들보다 먼저 출발해서 정착하기까지의 차이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줍니다.


이어서 폴리네시아(오세아니아 동쪽 해역에 분포하는 수천 개 섬들의 총칭) 사회들을 통해 수렵 채집 부족부터 원시 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환경적 요인이 인간 사회의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유럽이 신세계를 식민지로 만들게 된 요인을 깊숙이 들여다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유럽인이 총과 가장 지독한 균과 쇠를 갖게 된 이유를 직접적 원인을 찾는 것만으로 끝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궁극적인 원인을 궁금해했습니다. <총 균 쇠>는 농업과 목축의 식량 생산 발전사와 관련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지역은 식량 생산 발전의 전환이 이뤄졌고 어떤 지역은 생태학적으로 적합한데도 전환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작물화 및 가축화 역사를 통해 해답을 찾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근접 원인들을 하나씩 들여다봅니다. 군사력(총), 전염병(균), 과학기술(쇠), 정치조직 및 문자의 기원과 같은 근접 요인과 궁극 요인 간의 연결을 추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 제국주의 시대에 정복자들의 질병이 원주민을 말살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힌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라시아의 질병은 가축화한 동물의 질병으로부터 진화한 것이었습니다. 농업의 시작이 왜 군중 감염병의 진화를 자극했는지 그 연쇄 작용의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불평등한 갈등 관계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농업의 힘을 가진 종족과 가지지 못한 종족, 혹은 농업의 힘을 획득한 시기가 서로 다른 종족들 사이의 충돌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었다." - p145, 총 균 쇠


문자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는데요. 문자를 차용하고 개선한 사회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조직 및 계층화된 계급을 지닌 사회였다고 합니다. 다른 사회로 교역과 정복, 종교를 통해 문자가 전파됩니다. 이토록 강력한 가치가 있는 문자를 왜 일부 사회에서만 발명되거나 받아들여졌는지 다룹니다. 이 역시 지리와 생태가 큰 영향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문자뿐만이 아닙니다. 사상, 과학기술 역시 대륙마다 다른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무엇이 발전을 가로막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하나의 대륙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는 각기 다른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원인들을 두 지역과 대륙에 적용해 비교 연구를 통해 환경의 차이가 문화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려줍니다. 동독과 서독, 남한과 북한 사례처럼 지리적 차이가 없더라도 제도의 차이가 국부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제도라는 요인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들 때의 오류를 경계합니다. 좋은 제도는 근접 원인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그보다 더 영향력이 큰 궁극 원인을 찾아내려고 한 겁니다.


저자는 환경 결정론이라는 해법을 내세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환경적 요인조차 일괄적인 게 아니라 대륙마다 각기 다른 양상을 보였다는 걸 짚어줍니다. 게다가 환경과 무관한 문화적 요인의 역할, 개인의 역할까지 들여다봅니다.


지금 이 세계를 만든 문명이라는 것은 복잡한 제도로 이뤄져 있습니다. 인류사에서 이 복잡한 제도가 모두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궁극적으로 원인을 찾아 거슬러올라가는 <총 균 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책이겠거니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불평등의 근원을 이토록 오래전에 고민했었고, 당시 일반적이었던 인종차별적 관점을 타파하려 애쓴 저자의 혜안에 감탄하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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