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부르는 향기 - 과학으로 풀어보는 후각의 비밀
레이첼 허즈 지음, 장호연 옮김 / 뮤진트리 / 2013년 6월
품절


후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위해 후각 없는 삶이 어떠할지 한번 상상해보자. 후각을 잃어버린 후각상실증 환자에게는 모든 것이 바뀐다. 후각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후각을 잃으면 자신과 남들을 알아보는 능력에 장애가 생기고, 우리의 정서적 삶이 교란되며, 음식을 즐기지도 못하고 건강이 나빠질뿐더러 성욕마저 잃게 된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갖기에 최적인 짝을 알아보는 능력도 심각하게 손상된다. 그런데 냄새 맡는 능력을 잃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후각을 잃고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여깅 대해 의사들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드물게 보일 뿐이다. -15쪽

냄새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감정 자체가 될 수도 있다. 내 연구에 따르면, 기억은 연상 작용을 통해 감정 자체로 변용되어 감정의 대리인이 되며,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이를 냄새-감정 조건화라 부른다. 실험실에서 우리는 좌절의 감정과 낯선 냄새를 결부시키면 나중에 그 냄새를 통해 좌절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29~30쪽

냄새를 접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좋다 또는 나쁘다 하는 평가다. 좋은 냄새가 나면 가까이 접근하고 나쁜 냄새가 나면 피한다. 감정도 이와 비슷한 단순한 메시지를 전한다. 기쁨과 관심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감정은 다가가서 손으 내밀고 증식하라는 메시지를 말하고, 그래서 우리가 성공적으로 후손을 만들고 살아남게 한다. 분노나 두려움, 역겨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도망치건 싸우라는 메시지를 전해 우리의 생존을 돕는다. 결국 우리의 감정이 나타내는 접근과 회피의 규약은 냄새가 동물들에게 전하는 것과 같다. -32쪽

아이들이 같은 문화권에 사는 어른과 비슷한 냄새 선호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은 대략 여덟 살부터다. 유아들이 냄새에 대해 선천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자료는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유아나 아이가 어떤 냄새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경험 때문이라는 증거가 많다. 다시 말해서 학습이 냄새 선호를 만들며, 이런 학습은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51쪽

냄새에 대해 우리가 원래부터 타고나는 반응이 있다면 그것은 신중함이다. 유아와 어린아이들은 주위의 어른들이 냄새를 좋다고 판단하든 혐오스럽다고 여기든 상관없이 낯선 냄새를 맡으면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불확실한 것을 만날 때 불편해하는 것은 적응적인 가치가 있다. 이런 조심스러운 성향이 없었다면 선조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들 각자가 세상의 냄새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은 냄새에 대한 특정한 개인의 사연과 문화적 역사,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거기에 부여하는 성격과 의미 때문이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은 없다. 생각이 그런 냄새를 만드는 것이다. -70쪽

나는 정확성과 세밀함, 생생함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냄새로 인한 기억이 보거나 듣거나 만지는 경험을 통해 유도된 기억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지만 그보다 낫지도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냄새가 자극한 기억은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 독보적이엇다. 감정 면에서 탁월했던 것이다. 감각 자극 중에서 냄새가 기억을 유도할 때 우리는 가장 많은 감정을 열거했고, 감정이 가장 강렬하다고 보고했으며, 마치 그 옛날 그 장소에 다시 돌아간 것만 같다고 했다. 또한 나는 향수 냄새로 기억이 자극될 때, 그저 향수 병을 만지거나 보거나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는 향수 냄새를 맡을 때보다 우리 뇌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인 편도체가 한층 더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감정이 유도하는 기억은 다른 유형의 기억 경험과 분명히 다르다. 우리의 마음과 뇌에 독보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85쪽

향기가 날조될 수 있고 그 향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냄새가 없는데도 누군가가 냄새에 대해 하는 말을 우리가 믿는다는 사실은 놀랍게 보인다. 다른 감각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지금 방 안에 흰 코끼리가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갑자기 그것이 여러분 눈에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거짓 향기에는 놀라울 만큼 쉽게 속아 넘어간다. -115~6쪽

유전자와 체취, 매력의 관계는 왕성한 생산력과 건강한 아이라는 생물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며, 현대 사회에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뒤엉켜 있다. 먼저, 남자들은 향수를 뿌림으로써 '거짓 광고'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피임약을 복용한 여자들은 자신과 유전적으로 비슷한, 그래서 물학적으로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냄새를 선호한다. -154쪽

자연과 인공의 구별이 얼마나 허구인지 보여주기 위해 나는 모종의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냄새를 맡게 한 다음 자연 향인지 인공 향인지 추측하게 하거나, 아니면 실제가 어떻든 간에 자연 향이라고 또는 인공 향이라고 말해주었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거나 그렇게 들었거나 상관없이, 자연 향이라고 믿은 사람은 같은 향을 인공 향이라고 생각할 때보다 더 좋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어떤 향기를 두고 인공 향인지 자연 향인지 추측하게 하자 이들이 알아맞힐 확률은 동전던지기보다 나을 게 없었다. 이렇듯 자연과 인공의 구별은 우리의 마음속, 우리의 미적 판단에 달린 문제다. -214쪽

후각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그 소중함을 미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나는 사라들이 후각을 잃어 벼저린 교훈을 얻지 않고도 이 책을 통해 후각의 소중함을 깨닫고 여기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후각이 위의 인간다움에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냄새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삶이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풍부해짐을 알게 된다면 삶의 의미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냄새를 통해 스스로를 알고 남들과의 교류를 활발히 나눈다. 후각은 학습과 기억력의 증진에 도움을 주며 우리의 행동을 바꾼다. 우리는 후각을 통해 강렬한 정서적 삶을 영위하고, 기억을 되새기며, 정신 건강을 누리고, 열정을 불사른다. 후각은 심지어 우리가 누구와 함께 아이를 갖는 것이 좋은가 하는 생물학적 조언도 해준다. 멋진 용모의 사람이 냄새 때문에 매력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 냄새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후각은 실로 욕망의 감각이다. -25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장바구니담기


지금에 와서는, 선장이 그렇게 겁에 질려 버리면서부터 내 인생이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이 사실은 필연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17~8쪽

내가 왜 나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왜 이것들을 택해 썼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며 잃어버린 그 아름다운 날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78쪽

어쩌면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이러한 사고방식과 그의 인생을 나의 것으로 만들 거라는 사실을 내가 미리 감지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다 쓰라고 용기를 주었다. 그가 글을 쓰는 스타일과 모습에는 내가 좋아하고 또 배우고 싶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훗날 온전히 받아들인 만큼 좋아해야 한다. 물론 나는 지금 이 인생을 좋아한다. -81쪽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듯,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본질을 볼 수 있다고. -84쪽

우리는 성을 바라보았다.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깃발이 걸린 탑에 지는 해의 희미한 붉은빛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은 하얀 색이었다. 새하앟고 아름다웠다. 어쩐지 이렇게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존재는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에서 어두운 숲 속의 구불거리는 길로, 언덕 위에 있는 밝고 하얀 건물에 도달하기 위해서 황급히 뛰어가면 그곳에 참가하고 싶은 축제,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길은 도저히 끝이 나지 않는다. 어두운 숲과 산자락 사이에 있는 평지에는 늘 넘쳐나곤 하는 시냇물이 만들어 놓은 더러운 늪이 있다는 것을, 그 늪을 넘은 보병과 포병의 엄호에도 불구하고 비탈길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한 길을 생각했다. -1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쿠드랴프카의 차례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장바구니담기


오레키가 착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준비나 사전 조사가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은 논외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준비했는데도 실패하는 일은 물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타인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내가 실패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므로 타인을 용서하듯 나 자신도 어느 지점에선가 용서해야 한다. -27쪽

충분히 즐긴다. 말은 간단해도 실제로는 제법 쉽지 않은 작업이다. 개인의 이해력의 차만 해도 도저히 무시할수 있는 요소가 아닌데, 기호의 차는 더더욱 큰 요인이다. 같은 마술을 봐도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마술인지 100분의 1도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마술을 보려면 마술사의 눈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제아무리 풍요로운 오락에 접한들 '마음껏' 즐기는 것은 가능해도 '충분히' 즐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33쪽

나는 아닌 게 아니라 온갖 것을 즐긴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재미있어서 호타로가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볼 만큼.-115쪽

하지만 그것이 개인적 체험이라는 부분을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 왔다. 즐긴다는 행위를 순수하게 제공자와 수령자의 관계로 환원하는 게 내 취향이다. 그렇기에 나는 셜록 홈스 취미건 본초학 취미건 가장 친한 친구(어우, 이렇게 쓰니 엄청 창피한걸. 하지만 실제로 맨 먼저 나오는 이름이니 어쩔 수 없다)인 호타로와도, 저 멋진 마야카와도 같이 즐기려 하지 않는다.
좋아한다든지, 재미있다든지, 즐겁다든지. 그런 것은 꽤 나이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빙를 들자면 마음에 드는 책꽂이 같은 것이다. 참고서면 심심풀이용 소설 등을 꽂아 놓은 대외용 책꽂이라면 또 몰라도 내 방 구석에 있는 책꽂이를 타인에게 보여줄 마음은 없다(마야카가 꼭 봐야겠다면 혹시. 마야카는 그런 소리 안 하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제공자와의 일대일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조용히 높여 가며 유유히 즐기고 싶다. -115쪽

하지만 명작은 있을 수 있거든.
긴 세월, 많은 감상자. 그런 것에 계속 씻기고 체로 걸러져서 점점 최대 공약수만 남게 돼. 그걸 편의적으로 '명작'이라고 부르는 거야. 안 그래? 최대 공약수란 표현이 마음에 안 들면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라고 바꿔 말해도 돼. 그거나 이거나 마찬가지니까. -125쪽

저는 모르는 것을 조사하는 일을 가능합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발견하는 일은 가능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게 곧 해결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제게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가 이상하게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가 이상하게 생가하는 일의 절반도 체험으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흙과 물, 볏모를 준비한다고 쌀이 생기는 게 아닌 것과 비슷합니다. 모를 심어 훌륭하게 길러 내는 게 저희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입니다. 오레키 씨는 지금까지 여러 번, 저는 그게 열쇠라는 것조차 알 수 없었던 사실에서 제가 생각지도 못한 답을 이끌어 냈습니다. 후쿠베 씨가 말하는 '빙과' 사건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신세를 졌고, '여제' 사건에서도 멋진 발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221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3-24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3년 10월
장바구니담기


출신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교류를 나눈 후에 돌아가거나 혹은 새로운 여행길에 오르는 역처럼 서점은 책이 마지막으로 당도하는 종착역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시발역이기도 했다. -6쪽

클릭 한 번으로 책은 살 수 있겠지만 그곳에 이야기는 없다. 서점으로 향하는 길목의 풍경, 서점을 가득 채운 공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배려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사소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탐욕스럽게 추구하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점을 찾는지 모른다. -7쪽

책은 물체로서 손에 쥘 수 있는 것으로 물리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계는 있지만, 다시 책을 펼쳐 들면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펼쳐지는 특성에 사람들은 매혹되고 만다. 그 한 권에 실려 있을 그 무언가에 대한 일종의 구체적인 기대감 때문에 사람들은 책을 찾는다. 시간적인 면에서 생각해 보자.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사는 독자는 책 안에 흐르는 무한한 시간 속으로 자신이 해방되는 감동을 맛볼 것이다. 실제로 책장을 펼쳐 읽다 보면 자신의 인생이 정말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농밀한 시간이 그 속에 흐르고 있다. 그 간극, 유한과 무한이 양립하는 그 부분이 바로 책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후지모토 소우-42쪽

도서관은 장대한 우주체계를 연상하게 하지만 서점은 우주이자 동시에 속세다. 사고파는 사람들의 마음과 취향과 욕망이 공명하며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더 나아가 책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갖는 지극히 인간적인 맛이 그래서이다. -히라마츠 요코-77쪽

아름다운 서점에 대해 묻자, 린은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볼 테니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아그네스는 "세심한 배려, 사람과 책을 위한 공간 구성, 유연한 경영, 세계정세와 지역의 영향에 대한 견해를 갖춘 서점 만들기"라고 했고, 레이머는 "단순한 판매원이 아닌 전문 지식을 갖춘 북러버가 일하는 곳"이라고 했다. 캐린은 "다방면의 책이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어서, 전 세계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장소"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린이 자신의 철학을 말했다.
"아름다운 서점이란 독자가 그 책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싶을 만큼 엄선한 책을 진열해야 해요. 열정과 지식을 겸비한 안내원들이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책과 독자와의 만남을 돕는, 언제나 생동감 넘치는 곳이 바로 아름다운 서점이죠"라고 했다. -108쪽

"저희 북디자이너의 일이란 그런 외견상 아무런 특색 없고 밋밋한 스토리에 형상을 입하는 것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손에 집어 드는 순간, 또렷한 첫인상을 새길 수 있게끔 '얼굴'을 디자인해 주는 셈이죠"라고 칩 키드는 설명했다. 뉴욕에서 25년 이상 서적 디자인 작업을 해온 그. "중요한 것은 책 그 자체의 '특별함'을 살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잠재적인 독자, 다시 말해 서점에 발걸음을 한 사람이 읽고 싶은 마음에 손을 저절로 뻗을 수 있게끔 인상적인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이죠. 흔한 일반론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속임수나 마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123쪽

그렇다면 그는 어떤 과정을 거치며 스토리에 형상을 만드는 것일까? "디자인의 영감은 텍스트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단순해 보여도 이것이 제 일의 가장 복잡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원고를 읽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어떤 얼굴을 원하는지 그 대답이 있는 곳으로 텍스트가 저를 이끌어줍니다. 뛰어난 북디자이너는 텍스트 안에 숨겨진 목소리를 충실하게 찾아 듣는 통역사이자, 그 목소리를 디자인이라는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번역가여야 합니다." -123쪽

확실히 그(테세우스 찬)가 디자인한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여행'이 되어, 기억에 남는 '경탄'과 '발견'을 제공하는 장치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
"훌륭한 북디자인이란 레이아웃이나 이미지, 타이포그래피뿐 아니라, 판형과 구성, 그리고 인쇄 품질까지 다양한 요소를 통해 콘텐츠에 내포되어 있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는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예기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영감을 얻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중장비, 화학실험, 재봉처럼 언뜻 보기에 서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은 서점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도 그 책을 손에 쥔 사람의 모든 신경을 매혹하는 힘을 가진 작품으로 승화하는 겁니다." -125쪽

서점은 여행하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소이다. 출발하기 전에도 그렇고 여행지에서,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그렇다. 떠나기 전에는 지도나 여행안내 책자만 눈에 들어오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소설과 평론까지 읽고 싶어진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독서로 정리하고 싶고, 그 독서를 통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된다. 이 두 가지의 경험은 실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눌 수가 없다. 시작은 끝의 일부이며 끝은 시작에 포함되어 있다. -15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구판절판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24쪽

"하긴 세상이 그런 거지. 붙어 있어야 할 때는 그만두고, 내버려두어야 할 때는 매달리고. 한순간 인생이 너무나 멋져서 이게 현실일까 믿기지가 않다가, 이내 지옥 같은 고민과 고통 속을 헤매고! 상황이 잘 풀릴 때는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데-그런데 그렇지가 않지-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이제 절대 위로 올라가 숨쉬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잖아. 그런 게 인생이잖니?"-25쪽

지난 일을 명확하게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만해.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어. 하지만 뭔가를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생각이 이미 머릿속에 있다는 뜻이다.
사실일 리 없었다. 그녀가 단순하게 내린 판단이 사실일 리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로드니가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반겼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사실일 리 없었다! -76쪽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인 현상이라고 자위하기는 쉽지만, 마치 구멍에서 도마뱀이 나오듯 머리에서 기어나오는 수상하고 잡다한 생각들을 억누르기는 쉽지 않았다.
조앤은 머나 랜돌프 생각은 뱀 같고, 다른 생각들은 도마뱀 같다고 생각했다.
열린 공간-그리고 상자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전 인생. 허수아비 자식들과 허수아비 하인들과 허수아비 남편.
아니, 조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바보같이 굴어? 내 자식들은 분명한 현실이라고.
아이들도 요리사도 아그네스도, 그리고 로드니 역시 현실의 인간이야. 그러면 내가 현실이 아닌 거지. 허수아비 아내. 허수아비 엄마. 조앤은 생각했다.
맙소사. 이것이 더 끔찍했다. 그녀는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고 있었다. 시나 더 외워볼까…… 뭔가 기억해내야만 했다. -103쪽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다. 아니, 조종하지 못하나? 상황에 따라서는 생각이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나? 도마뱀처럼 구멍에서 밀고나오거나 초록 뱀처럼 마음속을 슥 지나갈 수 있을까.
어디선가 슥 다가와서……
-111쪽

"시골의 변호사는 인간관계의 약한 면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보는 사람이야-의사를 제외하면 말이지. 그래서 이 일을 하다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 인간이란 원래 나약하고, 두려움과 의심과 탐욕에 약한 존재지. 그런데 가끔은 예기치 않게 이타적이고 용감한 인간을 보게 돼. 어쩌면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은 폭넓은 동정심을 갖게 되는 건지도 몰라."-136쪽

"세상에, 로드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에이버릴은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알아요. 난 그 아이의 엄마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그 아이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지."-146쪽

"결혼은 두 사람이 맺는 계약이지. 두 사람은 온전한 능력을 갖춘 성인이어야 해. 또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고. 결혼은 동반자 간의 계약 같은 거고. 두 배우자가 그 계약의 조항들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곁을 지키겠다고.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부자일 때나 가난할 때나 좋은 일이 있을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나. 교회에서 말로 약속하고 사제가 승인과 축도를 하짐나 그럼에도 그건 계약이야. 신앙심이 깊은두 사람이 맺는, 여느 합의처럼 계약이라고. 일부 의무 조항들은 법적 강제력이 없지만, 책임을 맡은 두 사람에게는 구속력이 있지. 난 네가 이에 대해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만."-153쪽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는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202쪽

어떤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24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