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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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기, 한때 연극배우였지만 내연녀와 그의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법정에 선 무라타라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내연녀를 위해 사체유기를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자백하지만 그 외 혐의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한다. 하지만 과거 공금을 유용하고, 친구에게 사기를 치는 등 '정직'과는 거리가 먼, 어두운 삶을 살아온 무라타에게 상황은 불리하게 흘러간다. 모두가 무라타의 유죄를 확신하는 가운데, 그의 담당 변호사 햐쿠타니만은 그를 믿고 거침없는 변론을 시작한다. 과연 무라타는 자신의 주장처럼 살인자가 아닌 것일까?

 

  <파계 재판>은 전체 이야기가 법정에서 진행되는 독특한 소설이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인 법정 기자의 관점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객관성 또한 유지한다. 당사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지만 외부인 가운데 누구보다 사건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화자를 앞세움으로써 작가는 독자를 순식간에 법정의 방청석으로 불러들인다. 마치 신문에 실린 재판 관련 기사를 읽듯 구경하듯 들여다봤다가 팽팽하게 진행되는 공방에 이내 자리를 뜰 수 없게 된다. 겉으로는 너무나 빤해 보여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는 사건.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사건은 더이상 흔히 일어나는 치정 사건을 넘어서 사회와 사투를 벌인 한 인간의 드라마로 나아간다.

 

  "재판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각본도, 연습도 없는 즉흥극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지도 알 수 없다. 나 역시 하나의 사건을 심리하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조명의 방향이 바뀌어 때로는 핵심과는 별 상관없는, 하지만 인간 관찰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실로 흥미로운 문제를 부각시키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 바 있다"라는 말처럼, 본질적으로 <파계 재판>은 '인간 관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실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법정 서술이 1차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보이는 것' 이면에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날 때 이야기는 (기존의 흐름과는 방향이 틀어질지는 몰라도)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지기 때문이다. 무라타라는 인물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해 증언하는 주변인들, 그를 변호하는 햐쿠타니 등 법정에 서는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이 제3자의 시선에서 꼼꼼히 그려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계 재판>은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와 연관성이 있다. 겉으로 볼 때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사인 우시마쓰. 그는 "설령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백정이라고 고백하지 마라. 한때의 분노나 비애로 이 훈계를 잊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거라 생각해라"라는 아버지의 훈계를 가슴에 새기고 자신이 백정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또 숨기려 한다. 자신이 신평민이라는 것을 망각할 수 있다면,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고뇌에 휩싸이는 <파계>의 주인공 우시마쓰와 <파계 재판>의 무라타는 걸어온 삶의 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결국에는 같은 선상에 놓인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만 하는 삶. 이렇게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비단 이들만이 아닐 것이다. 보이지 않는 편견이라는 시선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 더이상의 신분제가 없다는 사회지만 과연 모두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일까.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치르는 심정으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공부하고, 매일 재판을 방청하러 다녔다는 작가의 열정 때문일까. <파계 재판>은 비전문가가 쓴 법정물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스스로 법정을 체화했기 때문인지 전혀 겉도는 느낌이 없이 서술된다. 이후 작가가 특별 변호사로 선임되어 실제 법정에도 섰다는 <파계 재판> 이후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만큼 그의 작품이 전문성을 지녔다는 의미이리라. 50년도 지난 작품이지만 세월을 뛰어넘는 메시지를 지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책. 법정물이라는 형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편견'에 대한 고찰 또한 인상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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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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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거서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을 묶은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두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가 자기 자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아니 애써 보려 하지 않는 실체와의 대결이라면 <딸은 딸이다>는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의 미묘한 갈등을 그려낸다. 현실에서도 모녀관계는 미묘하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식의 레퍼토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꾸준히 나오지만, 정작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엄마처럼 사는 딸도 부지기수다. 앙숙처럼 만날 때마다 싸우는 모녀가 있는가 하면, 친구처럼 지내는 모녀도 있다. 부자, 부녀, 모자 관계와 달리 같은 여자이기에 생기는 공감(또는 연대)이 둘 사이에는 존재한다.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라는 본문 속의 말처럼 말이다.

  남편을 사별하고 딸 세라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는 프렌티스. 당찬 딸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딸이 성장함에 따라 혼자 남겨질 자신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평범한 사십대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던 중, 세라가 3주간 여행을 떠나고 프렌티스는 그 사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리처드와 사랑에 빠져 재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의외로 세라는 리처드와 앙숙처럼 다투고, 프렌티스는 애인과 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하나뿐인 딸을 선택한다. 자신의 사랑을 희생시킨 프렌티스는 그 일을 계기로 전과 달리 향락적인 삶을 살게 되고, 딸 세라에 대해서도 방임에 가까운 태도로 변한다.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모녀 관계. 이들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것일까.

 

  <딸은 딸이다>는 서로를 위한다고 한 행동이 어떻게 모녀 관계를 뒤흔드는가를 보여준다. 엄마의 행복을 위한다면 저 사람은 안 된다고 재혼을 반대하는 딸, 딸과 애인 사이에서 결국 자신을 희생해 재혼을 포기하는 엄마. 어디선가 본 듯한 패턴의 이야기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이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자신을 "진짜 자신보다 더 좋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혈연관계라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혹은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적절한 조언을 해줬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다. 여러 선택지 중에 자신이 고른 선택지를 '희생'이라고 포장하며 자위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켰는지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이들 모녀 또한 그렇다. 엄마의 재혼을 계기로 서로의 마음에 앙금이 생기지만, 이를 화려한 사교생활을 누리는 것으로 가린 채 서로를 존중한다는 미명 하에 방임에 가까운 태도를 취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딸은 딸이다> 또한 <봄에 나는 없었다>처럼 한 개인의 내적 자각과 맥이 닿는다. 화려한 장막이 거둬진 뒤 드러나는 서로를 향한 진심은 <봄에 나는 없었다>의 그녀가 대면한 자신의 민낯처럼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봄에 나는 없었다>가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갔다면, <딸은 딸이다>에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게끔 이끌어주는 조언자가 있다. 프렌티스와 세라 모녀를 잘 아는 하녀 이디스, 그리고 세라의 대모이자 유명 심리상담사인 로라가 그런 역할을 한다. 물론 이들이 하는 말을 모녀가 받아들이느냐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조금은 냉소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의 대화를 읽으며 모녀 간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했지만, 심리학 이론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등 기존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요소가 배치된 점이 흥미로웠다. 미스 마플이 냉소적으로 변하면 저렇게 될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로라라는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 모녀 간의 감정이라는 미묘한 심리를 풀어가는 전개에 큰 사건은 없었지만, 읽는 내내 긴장하게 됐고, 마지막 장을 읽으며 괜시리 엄마로서의 삶, 딸로서의 삶, 여자로서의 삶 등 다양한 위치로 존재하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휘몰아치는 이야기는 결국 깊은 파장만을 남긴 채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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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5-1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라가 3주간 여행을 떠나고 세라는 그 사이 사랑에 빠져 재혼을 결심한다.→ 재혼을 결심하는 건 세라가 아니라 프렌티스 인것 같은데 오타가 난 것 같군요! ㅎㅎ

이매지 2014-05-16 15:38   좋아요 0 | URL
엇, 정말 그러네요 ㅎㅎㅎ 얼른 수정해야징. 캄사!

다락방 2014-05-16 16:00   좋아요 0 | URL
여튼 제 땡투 받으시고 저에게 맥주 쏘시라능!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매지 2014-05-19 16:44   좋아요 0 | URL
멸치똥을 빼는 영광과 함께. ㅋㅋㅋ
 
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구판절판


하지만 마흔한 살이 되자 한 사람의 미래가 통째로 걸린 일이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인생은 사람들이 막연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탄력적이고 유연했다.
전쟁중에 구급요원으로 봉사하면서 앤은 처음으로 인생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가벼운 시샘과 질투, 소소한 기쁨, 목에 쓸리는 옷깃, 꽉 끼는 구두를 신은 동상 걸린 발, 이 모든 것이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보다 훨씬 즉각적으로 중요했다. 사람들은 엄숙하고 저항하기 힘든 사실에는 아주 빨리 익숙해졌고, 사소한 것들에 연연했다. -16쪽

그녀는 인간의 본성이 지닌 독특한 모순에 대해서도 얼마쯤 알게 됐다. 과거에는 젊은 사람다운 독단에 빠져 사람을 흔히 '착하다' 또는 '나쁘다'로만 평가했지만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배우게 됐다. -16쪽

진실을 부정하지 마.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 갈 동반자는 세상에 딱 하나,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그 동반자와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신과 사는 법을 배워. 그게 답이야.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21쪽

"다 큰 딸에게 결혼한다는 말을 할 때는 누구나 바보 같다고 느껴요."
"사실 난 그 이유를 모르겠어."
"젊은 사람들은 우리가 이제 그런 일과는 무관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우린 늙은이예요. 그들은 사랑을-사랑에 빠지는 것을-청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요. 중년이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건 그들에게 우스꽝스러운 일일 뿐이에요."
"우스꽝스러울 거 하나 없어." 리처드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우리에게야 그렇죠, 우린 중년이니까."-90쪽

케이크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 남에게 어떻게 만들라고 말하기가 언제나 더 쉬운 법이죠. 그 편이 한결 재밌기도 하고. 하지만 인성에는 해로워요. 내가 매일 점점 더 혐오스러운 인간이 되어간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어요.-134쪽

일이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칠 때 쓰는 유용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로라는 말하곤 했다. 또 거짓 없이 겸손과 만족 속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만이 인생의 진정한 조화를 얻는 길이라고 말했다. -172쪽

"희생이 어려운 건 일단 시작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건 계속해서……"
앤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죠, 로라?"
"아무것도. 잘 있어, 앤. 그리고 이 말 한마디만 명심해, 심리학자로서 하는 말이니까. 생각할 시간이 없을 쩡도로 살지는 마."-211쪽

"그래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늙어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제 중년이고 미모도 사그라지고, 앞으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이런, 이 친구야!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앤에겐 튼튼한 몸과 괜찮은 머리가 있어. 중년이 될 때까지는 신경쓸 시간조차 없는 일이 정말 많아. 전에도 내가 말했을 거야. 책을 읽고, 꽃을 가꾸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햇볕을 쬐는 일…… 이 모든 것이 패턴으로 복잡하게 얽힌 걸 우린 인생이라고 하지."-250쪽

"희생이라니! 얼어 죽을 희생!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 앞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런 건 거기서, 자기의 본모습보다 훌륭해지는 그 순간에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 하지."-252쪽

"우리 인생 고민거리의 절반은 자신을 진짜 자신보다 더 좋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기지."-252쪽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 -280쪽

"내가 봐줄 수 없는 일이 두 가지 있어.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고결한 인간인지 자기가 한 일에 무슨 도덕적인 이유가 있는지 떠들어대는 일, 또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꼐속해서 후회하는 일이야. 양쪽 말 다 사실이겠지, 자기 행동의 진실을 깨닫는 거라는 점에서는. 그래야 하는 거고. 하지만 그랬으면 넘어가야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없어. 계속 살아가야지."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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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베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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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이래 내게 진정으로 해를 끼친 것은 역시 인간이었으며 진정으로 내게 공포감을 느끼게 한 것도 역시 인간이었다. -10쪽

애당초 나는 어머니가 말씀하신대로 "이 세상에 들짐승이나 귀신, 요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고 단순히 알아들었으나, 지금에 와서야 나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제아무리 사나운 맹수나 귀신, 요괴라 하더라도 이성과 지혜를 상실하고 양심을 저버린 인간보다는 더 무섭지 않으리라고. 이 세상에는 호랑이, 늑대, 이리 같은 맹수에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이 분명 있고, 또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이나 요괴에 대한 전설도 분명 있기는 있다. 그러나 수천수만의 인간을 비명에 죽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며, 수천수만의 인간을 학대받게 만드는 것도 역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잔혹한 행위를 합법화시키는 것이 암흑 정치요, 이런 잔혹한 행위를 포상하고 권장하는 것이야말로 병든 사회다. -11~2쪽

우리는 눈짓을 교환했다. 도무지 구제할 약이 없는 이 위대한 시인에게 감탄해마지 않을 따름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들 이렇게 치정에 얽매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 치정에 얽매일 줄 모른다면, 위대한 예술가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86쪽

자전거 살 돈이 없는 터라, 우선 대대본부에서 차용했다. 국가에서 경영하는 공급판매합작사에서 면포를 살 수 있는 배급표 두 장을 나눠주었을 때, 아버지는 내 어머니에게 한 장을 남겨주어 모슬린 천 바지 한 벌을 지어 입혔다. 돈이 없으니까 또 우선 대대본부에서 빌려 썼다. 내 어머니는 그래도 이 점이 걱정스러워 내 아버지한테 말했다. "이러다가는 인민 군중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내 아버지가 말했다. "혁명이란 누가 뭐래도 좋은 점이 있어야지. 좋은 점이 없다면 누가 혁명 따위를 하겠어? 마오 주석께서도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 절대평등주의에 반대하려면 장교가 말을 탈 때 사병도 말을 타야 하는데, 타고 다닐 마필이 어디 그렇게나 많겠는가? 누구나 평등하게 말 한 필을 탄다 하더라도 역시 장교가 타는 게 좋을 것이다……"-144~5쪽

"너희들 바깥에 나가서 해야 할 말은 하고 웃고 싶으면 마음대로 웃어도 좋아. 하지만 가슴속에 묻어둔 일일랑 남한테 드러내 보이면 안 되는 거야. 사람이란, 아무 일도 엇었을 때에는 담보가 커선 안 되지만, 일단 무슨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에는 겁쟁이가 되어서도 안 돼. 남들이 아직 널더러 뭐라고 하지 않는데 자기부터 지레짐작으로 먼저 오그라들고 맥이 빠져서야 되겠니. 너희들, 모두 허리 쭉 펴고 떳떳이 다녀야 해. 속담에 '적이 쳐들어오면 장수를 내보내 막고, 홍수가 나면 흙더미로 막아야 한다'고 했어. 이런 세상에서는 넘어가지 못할 산도 있고 건너지 못할 강물도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지 못할 세월은 없는 법이야!" -195쪽

이 세상에서 남자의 인성을 검증할 가장 좋은 사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색, 두번째가 바로 미식입니다. 미색에는 그래도 저항할 사람이 있겠지만 미식에만큼은 저항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사람은 몇 해 동안 여인을 건드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를 사흘 남짓 굶긴 다음, 그 눈앞에 맛있는 과자를 두어 개쯤, 그리고 고깃국 한 대접을 놓고, 그더러 개 짖는 소리를 한 번 흉내 내야만 먹을 수 있다. 개 소리를 내지 않겠다면 못 먹는다고 조건을 달았을 때, 내가 보기에 배겨날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233~4쪽

하긴 세상만사 어느 것이든 곰곰이 따져보면 이상야릇하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철두철미하게 따져보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생각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245~6쪽

우리 같은 세대에 살아온 사람들은 눈물을 너무나 많이 봐왔어! 눈물 짜낸 얼굴 뒤편에 거짓과 위선이 있고 진정과 성실도 있긴 하지만, 역시 더 많은 것이 위선과 거짓이야! 모스크바는 애당초 눈물 따위 믿지 않으니까, 솔직히 네가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라! -4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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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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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셜록 홈스로 추리소설에 입문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가장 많이 접한 소설가는 코넌 도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넌 도일의 작품은 셜록 홈스 시리즈 외에 출간된 게 없다시피 했고, 셜록 홈스 시리즈마저도 몇 번 읽다보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셜록 홈스에게서 시작된 실타래는 이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나를 길고 긴 미스터리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렇게 닿은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였다. 거의 20년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은 아직도 완독을 못 했지만, 애거사 크리스티는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고향처럼 늘 든든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봄에 나는 없었다>가 뒤늦게 깜짝 선물처럼 찾아왔다. 처음에는 왜 필명으로 발표를 한 걸까 의아했지만 책을 읽으며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봄에 나는 없었다>에는 지금까지 '꽤 괜찮은 삶'을 살아온 조앤 스쿠다모어라는 한 중년 여성이 등장한다. 막내딸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바그다드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조앤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블란치와 마주친다. 천박하고 끔찍하게 늙어버린 블란치는 조앤에게 그녀의 가족에 대한 갸우뚱한 몇 마디를 던지고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라는 알쏭달쏭한 질문을 남긴다. 블란치의 말처럼 며칠 뒤 조앤은 날씨 때문에 사막의 기차역 숙소에 발이 묶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진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기억이 파편이 떠올라 조앤을 할퀴고 찌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탈 특급 열차 살인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기발한 트릭들이 등장한다. 독자를 속이고, 독자를 즐겁게 하는 그녀의 '기술'은 언제 어떤 작품을 읽어도 평타 이상의 솜씨를 뽐낸다. 하지만 내가 애거사 크리스티에게 매료됐던 것은 그런 '기술' 때문만이 아니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기교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고찰이 있었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면서도 냉소가 아닌 따뜻한(때로는 담담한) 시선을 보내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이상의 통찰이 담겨 있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여느 추리소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지만 이런 통찰만큼은 여전했다. 

  <봄에 나는 없었다>에는 어떤 잔혹한(또는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도 등장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아니 애써 보려 하지 않는 실체와의 대결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아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철학적인 고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상처받고 두려워하는 한 여자가 등장할 뿐이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 도망치고 싶고, 외면해버리고 싶지만 그것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기에 <봄에 나는 없었다>는 더 오싹하다. 상대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의 시선만 신경쓰지 않았는가? 새로운 나로 다시 한번 시작해보고 싶지 않은가? 어쩌면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런 식의 숱한 자문 끝에 내린 결론을 <봄에 나는 없었다>로 담아낸 것이 아닐까. 삶이란 어쩌면 조앤이 그러했듯이 마음속 가장 여린 부분을 찔러대는 조각난 상처를 그러모아 애써 살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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