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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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의 `말`에 대한 기록. 시대에 대한, 책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프로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감성 근육을 키우는 짧지만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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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통 2015-05-1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프로필 사진의 강아지가 좋아서..요.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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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케 하는 제목을 본 순간부터 '이 책은 읽어야 해!' 하고 강한 지름신이 왔던 나쓰키 시즈코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 국내에는 이미 몇 권의 책이 출간된 작가인데, 묘하게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만났다.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W의 비극>이나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떠오르게 하는 <제3의 여인> 등 고전 미스터리를 맛깔나게 변형하는 작가인 듯하다는 인상이었는데,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를 읽으니 그런 인상이 영 잘못된 건 아니었던 듯했다. 아무튼 언제나 믿고 보는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잘 알려졌다시피 고립된 섬으로 초대된 사람들이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노래 가사에 맞춰 한 명씩 살해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의 배경도 이와 마찬가지로 항해중인 선상으로 설정된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죄로 판결받았지만(혹은 유죄로 의심받지도 않지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살인으로 몰고간) 사람들을 한 명씩 단죄한다는 설정 또한 두 작품 모두 동일하다. 제목이나 대강의 얼개뿐 아니라 디테일 면에서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그리고 누군가 사라졌다>는 닮은꼴이다. 인디언 섬은 인디아나 호로, 하나씩 사라지는 인디언 인형은 등장인물의 띠와 동일한 십이지 인형으로 변형되는 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클로즈드 서클, 그러니까 폐쇄된 공간에서의 살인이라는 장치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 모두 나름의 솜씨를 뽐낸다. '다음엔 내가 살해당할지도 몰라' '대체 범인은 누구지?' 하는 식의 의문을 끊임없이, 최후의 2인이 남을 때까지, 아니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도 그런 긴장과 불안은 유지된다.

 

  까딱하다가는 오마주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아류로 남을 것 같았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는 의외의 전개를 통해 영리하게 유사 설정작이 가질 수 있는 덫을 피해간다. 아니, 오히려 꾸준히 독자에게 '이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프레임'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몇몇 다른 설정을 간과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독자의 뒷통수를 친다. 단순한 오마주, 패러디가 아니라 원작의 똑똑한 재해석이라는 보기 드문 기교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뿐 아니라 뒷부분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또다른 걸작을 결합시킴으로써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의 단죄는 얼얼하게 끝이 난다. 마지막 몇 페이지의 사족과도 같은 마무리만 아니었더라면 더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쓰키 시즈코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엔 충분한 마무리였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긴 했지만,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솜씨도 꽤 볼만했던 작품. 애거사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그녀의 작품과 비교하며 읽는 맛이 있을 테고, 미스터리 초심자에게는 미스터리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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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5-03-1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해두었는데 이것도 어서 읽어 봐야겠습니다. ^^

이매지 2015-03-21 09:58   좋아요 0 | URL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ㅎㅎㅎ
 
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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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교토에 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몇 대째 이어가는 가게가 지척이라는 것이었다. 100년 정도 된 식당은 노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오래된 가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가업을 잇는 일에 대해서 한국과 인식이 다르고, 전쟁 등 외부적인 상황 또한 우리와 달랐으니 단순하게 비교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무심하다. 사대문 안에서 옛 자취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기껏해야 'ㅇㅇ터' 같은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옛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피맛골만 해도 그렇다. 재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하에 그 자체로 문화사적 의미가 있는 피맛골은 부서지고 멋대가리 없이 높게 솟기만 한 고층 빌딩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수많은 전통이 사라졌고, 또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흔적을 기억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키고 싶었다. 그랬기에 <백년식당>으로 박찬일 셰프와 함께 노포 기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전에 읽었던 <어쨌든, 잇태리>와 <노포기행>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본인의 체험담 위주의 글쓰기와 취재를 통한 글쓰기라는 태생적인 차이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유머러스하면서도 음식에 대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은 여전했다. '맛있어서 오래된 식당' 즉 노포를 찾아 국내 방방곡곡을 찾아나서지만 30년만 되어도 노포 축에 들 정도로 우리나라에 노포는 드물다. <백년식당>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노포들은 50년을 너나드는 식당들로 선정되었다.

  <백년식당>에 소개된 노포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식당뿐 아니라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대목이 아닐까 싶었다. 일단 맛있다. 맛이 없는데 오랫동안 살아남을 식당은 없을 것이다. 즉, 기본에 충실하다는 이야기다. 둘째, 주인이 직접 일한다. 노포의 주인들은 고령에도 새벽같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데도 '한결같은' 맛을 지키기 위해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애쓴다. 셋째, 직원들이 오래 일한다. 50년 넘게 근속한 직원이 있을 정도로 노포는 '평생 직장'처럼 직원과 함께 세월을 뚫고 나아간다. 우래옥이나 청진옥처럼 내가 가본 식당이 아니고서야 글만 읽고 그 맛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노포의 활기찬 분위기만큼은, 그리고 그곳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고집에 가까운 의지만큼은 강하게 전해졌다.

  노포에 대한 책이지만, 민중들의 배를 채워준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육개장이 보신탕의 이미테이션으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원래 저렴했던 갈비가 올림픽 이후 '가든' 열풍과 과소비가 시작되면서 고급 부위로 변모하는 것이나 어묵과 오뎅의 관계 등에 대해 읽어가노라면 우리가 익숙하게 먹던 음식에 어떤 역사가 담겨 있는지 그 미시사를 살펴볼 수 있어 즐거웠다. 국밥의 밥이 단순히 따순 밥을 말아주는 것이 아니라 토렴, 즉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 헹궈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토렴을 하면 밥알 속까지 따뜻해지면서 국밥의 온도가 먹기 적당하게 변한다고 한다. 온도도 알맞을 뿐만 아니라 밥 알갱이의 씹히는 맛도 살아 있어 맛에도 좋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내내 군침을 삼키다가 결국 오랜만에 청진옥에 들러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을 먹었다. 오랜 세월을 버티며, 단단해진 맛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이 집에서 쉬이 다리를 꼬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는다. 역사 앞에서는 다들 공손해져야 하는 법이니까"라는 박찬일의 말처럼, 나 또한 공손히, 그리고 감사히 앞으로도 살아남은 노포에서 역사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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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1-1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래옥으로 달려갔어요! ㅋ

이매지 2015-01-13 15:24   좋아요 0 | URL
으헝. 우래옥도 가고 싶네여.
저는 열차집이 막 땡기더라구요. ㅎㅎㅎ

유부만두 2015-01-1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같이 가요!!! 백년식객 합시다 ^^

이매지 2015-01-14 09:00   좋아요 0 | URL
백년식객 ㅋㅋㅋ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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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 후 50년이 지나서야 기적처럼 부활해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이 소설의 홍보 문구를 보고 처음에는 '다소 과장 섞인 찬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싶었기에 '어디 한 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듯이 이야기에 몰입했다. 담담하게, 그리고 때로는 휘몰아치듯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몇 번씩 답답함에 가슴을 치면서도 자꾸만 '내가 스토너였다면' 하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사실 <스토너>는 독창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한 남자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라는 소설의 시작처럼 스토너는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도 일상을 견디어가는 삶을 택해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남자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50년이 지난 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이러한 개략적인 줄거리 때문이 아니다.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모습에서 고독한 인간의 뒷모습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농사일을 도우며 묵묵히 살아온 스토너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농과대학에 진학하나 2학년 때 영문학 개론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급기야 "넌 교육자가 될 사람"이라는 타과 교수의 말을 듣고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결국 아버지의 뒤를 잇는 농부가 아닌 공부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자의 길로 들어서 한눈팔지 않고 그 길을 걷는다. 공부를 하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스토너의 삶은 그렇게 특별한 굴곡 없이 '평범하게' 흘러간다. 히스테릭한 아내의 모습에도, 동료 교수와의 트러블에도, 아이와의 관계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어긋나도 스토너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때로는 그 감정을 속으로 삭이며, 때로는 애써 무시하며 살아간다. 타인을 대하는 자신의 서투름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학생들을 향한 애정이나 연구에 대한 열정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은 흔들림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앞날에는 즐겁게 여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아도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던 그의 삶에도 사랑이라는 반짝이는 순간은 찾아온다. 반짝이는 빛이 사라지는 순간, 그의 등은 더욱 굽어들고, 굽어진 몸만큼 그는 내면으로 침잠한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라는 작가의 인터뷰처럼 스토너는 종신교수라는 직책도 얻었고, 고독하긴 하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도 있으며, 삶을 뒤흔든 사랑에도 빠져봤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그의 이야기에 눈물짓는 것은 그가 '슬프고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다. 스토너가 그랬듯 우리의 삶도, 아니 나의 삶도 그렇게 고독하게 흘러가고 있어서였다.

  스토너가 인생의 마지막에 그랬듯 나 또한 책을 놓으며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자문했다. <스토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한다고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아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바탕 울음을 터트리게, 그리고 조금은 어깨에 힘을 뺄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결국 고독하고 상처받은 우리를 치유해주는 건 사람임을, 문학임을 <스토너>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스토너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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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5-01-0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너처럼 사는거 쉽지 않은 일 아닐까요? 그라는 개인으로 보면 행복했을 것 같은데요. ^^
문학에서 다루기 힘든 저런 삶을 어떤 식으로 그렸을까 궁금해져서 보관함에 가져갑니다. ^^
앗 이매지님 잘 지내셨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매지 2015-01-07 08:58   좋아요 0 | URL
싫은 소리 들어도 참아내고,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ㅎㅎ
작가의 말처럼 그는 훌륭한 삶을 살아냈을지도, 행복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담담하게 삶을 그려간다는 점에서 저는 <올리브 키터리지>도 많이 생각나더라구요.
오랜만에 빼꼼히 등장해도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바람돌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해한모리군 2015-01-0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의지를 가지고 살아낸 모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매지 2015-01-07 08:58   좋아요 0 | URL
요새 들어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요. ㅎㅎ
휘모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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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홀레 시리즈의 중간 권에 해당하는 <스노우맨>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를 처음 접했던 터라 <스노우맨>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었다. 자세한 과거사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사연이 있는 이 남자. 고독하지만 고립되지는 않는, 끊임없이 알코올의 유혹에 시달리는 이 남자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스노우맨>의 흥행 덕분인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역주행하듯 출간되기 시작했고, 그 덕에 시리즈의 첫 권인 <박쥐>를 손에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북유럽의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이야기가 그려지리라 기대했지만, 의외로 <박쥐>는 무더운 계절의 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한 노르웨이인 여성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에 수사를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해리 홀레. <스노우맨>에서는 반장님이었지만, <박쥐>에서는 아직 혈기왕성한 풋내기 형사일 뿐이다. 처음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경찰과 형식적으로 공조 조사를 시작하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수사일 뿐 누구도 해리 홀레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런 증거도, 그 어떤 증인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범인의 검거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며 주변인 조사 정도를 마치고 돌아가라고 하지만, 탐문 과정에서 한두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눈에 들어오면서 해리 홀레는 사건에 점점 발을 들이게 된다.

 

  <박쥐>의 중심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애버리진이 놓인다. "애버리진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잘 안 가서요"라는 목격자의 증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서 애버리진은 원래 이 땅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당한 이들이다. 해리 홀레와 콤비로 수사에 나서는 앤드류 형사 역시 애버리진이라 홀레에게 호주 원주민의 비극적인 역사나 왈라-무라-버버로 이어지는 애버리진의 전설, 그들의 애환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넨다.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자연에, 애버리진이라는 집단에 압도당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박쥐>에서 애버리진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애버리진에 대한 국가 정책. 가난한 부모에게서 떼어내 더 나는 조건에서 양육하겠다는 명목으로 원주민의 부모에게서 아이를 강제로 빼앗아 백인 가정에 보내게 한 정책 등은 놀랍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사건 자체의 치밀함보다는 그들의 검은 피부처럼 어둡게 그림자를 드리운 애버리진에 대한 이야기에 더 눈이 갔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권이기 때문에 <박쥐>에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요 네스뵈의 작가로서의 데뷔작이기도 해서일까. 다소 아쉽기도 했다. 작가는 이 작품이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라 유일하게 반복해서 읽는다지만, 서술의 얼개를 생각한다면 <스노우맨>보다는 미흡하다. "뭔가 잘못됐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은 독자를 끌어들였지만, 이후 전개에서 해리 홀레가 본인의 입으로 너무 친절히 자신에 대해 소개해준다랄까. <스노우맨>의 해리 홀레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그에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지 그의 사연에 몰입을 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가 겪은 일련의 사고와 그후의 행로에는 눈길이 갔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겪는 사건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해진 했지만 말이다. 작가도, 캐릭터도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요 네스뵈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 엿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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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T 2014-12-16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게눈감추듯 읽어치웠는데, 「박쥐」는 뭔가 꾸역꾸역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때문에 바로 「레드 브레스트」로 건너뛰어버렸었죠ㅎㅎ 결과적으로 해리 홀레시리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문체나 분위기나 너무 제 타입에 쏙 맞는 작가더라구요.

이매지 2014-12-24 11:26   좋아요 0 | URL
저도 <박쥐>는 이상하게 잘 안 읽히더라구요. ㅎㅎㅎ
<레드 브레스트>는 조금 괜찮은가봐요. 저도 얼른 해리 홀레 시리즈에 다시 빠져봐야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