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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 인종.명종실록-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 ㅣ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드라마 '여인천하'를 꼬박꼬박 챙겨 보지는 않았지만, 어깨 너머로 본 드라마에서의 문정왕후의 강한 인상만은 기억에 남는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는 인종, 명종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인 왕은 문정왕후였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힘은 강했다. 장성한 세자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앉히겠다는 계획을 세우는데에서부터, 목표대로 아들을 왕 위에 앉히고 수렴청정을 하며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모습까지 인종과 명종은 문정왕후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문정왕후는 조선왕조사에서 가장 비난받는 여자다. 정말 문정왕후가 그렇게 못된 여자였을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친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아이는 궐 밖에 재상가에서 키워진다. 어미의 정도 아비의 정도 모른 채 자랐지만, 아이는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척척 맞출 정도로 똘똘했다. 이에 신하들이 원자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서 여섯 살의 나이에 세자에 책봉되니 그가 바로 인종이다. 궐 안에서의 인종은 식중독 사건, 작서의 변, 목패 사건 등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보낸다. 신하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군주에 가깝게 컸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를 가만히 냅두지 않는다. 고생 끝에 왕 위에 오르지만 아버지 중종이 죽자 유교식 예법에 따라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 몸이 허약해져 결국 아버지를 따라가고 만다. 이후 문정왕후의 바람대로 명종이 왕위에 오르고, 문정왕후의 시대가 열린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명종이 직접 통치를 시작했지만 명종은 자신의 색깔을 좀체 드러내지 않은채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씩 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했던 명종. 결국 이신제신(以臣制臣)의 방법을 쓰기 시작하지만 별 효용을 보이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명종.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펼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저자는 문정왕후에 대한 평가가 박한 이유 중 하나가 그녀가 '여성'이고, '불교진흥책'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분명 그의 말처럼 문정왕후를 태종이나 세조에 비춰봤을 때 딱히 잔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분명 세자를 제거하면서까지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생각을 품는 것은 올바르지 않지만 그녀의 야망을 고려한다면 그녀가 치른 숙청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오히려 남편이었던 중종보다 국정 장악능력이 뛰어났고, 사치나 향락에 빠지지도 않았으며, 유교 인텔리로 당대의 석학들과 마주하고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측근들의 정보와 판단에 의지한 채 정치를 했기 때문에 결국 그 측근들이 나라를 주무르게 됐다는 점이 문제였다. 백성들은 점점 굶주려가는데 그래도 쥐어짜면 뭔가 나온다는 생각으로 백성들을 괴롭혔던 수령들. 그들을 만든 것은 문정왕후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이 아니라 그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생각하며 문정왕후를 표독스러움의 표상으로 그려낸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전, 혹은 이후의 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포스가 약한 두 왕. 그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인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은데, 그동안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대윤과 소윤의 싸움, 문정왕후와 그의 측근들의 이야기, 이황과 조식의 보이지 않는 대결 등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던 책. 두 왕을 다루기엔 다소 적은 분량이지만 읽고나니 분량에 비해 마음이 꽤 무거워졌다. 이후 이어질 선조의 이야기. 좀 더 답답해지겠지만, 어서 읽어봐야겠다. 이제 반환점을 돌기 시작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기운내서 20권까지 어여 출간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