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선조실록 -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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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읽어온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은 책이라 약간은 부담스러웠는데, 읽다보니 분량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새 없어지고 책에 빠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선 전기와 후기를 가를 때 흔히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만큼 임진왜란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서 조선의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 과연 임진왜란의 전과 후, 그 속에서 선조는,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다소 답답한 마음을 안고 한 장 한 장 책을 읽어갔다. 

  기록된 역사는 사관의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선조 실록>은 <수정 선조 실록>이 나올 정도로 어떤 사관, 다시 말해 어떤 사림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냐에 따라 그 내용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기존의 실록과는 달리 불확실함이 많았던만큼 저자는 이번에는 다른 자료들이나 연구를 많이 참고했다고 말한다. 분량도 기존의 이야기보다 많았지만 속에 담긴 빽빽한 글자들도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흔히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우리나라를 침략한 나쁜 놈들. 이라고 생각한다. 임진왜란과 36년 간의 일제통치가 이런 사고를 낳은 것인데,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일본에 대한 비호감보다는 나라가 이 꼴이 될 때까지 대체 조정에서는 뭘 한 것이냐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끊임 없이 패를 갈라 싸우는 조정의 대신들. 실력으로 성공하기보다는 뒤에서 샤바샤바를 잘 해서 승진을 하는 무인들,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못했던 군졸 등등 위아래가 모두 썩어들어가고 있었던 시대. 이이나 이황을 비롯한 시대를 바꿀 힘을 가진 이들이 있었지만 왕은 이들의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본의 수상한 움직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임진왜란을 맞이한다. 누구보다 백성을 위했어야 할 왕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여차하면 명으로 건너가겠다는 생각으로 삼십육계 줄행량을 치기 바빴고, 전장에서 목숨을 바쳐 싸워 공을 세운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보상조차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전장에서 공을 세운 이들보다는 자신과 함께 도망갔던 이들에게 보상을 해주기까지 한다. 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이고, 누구를 위한 왕인 것인가. 나라가 위급할 때 자신의 몸을 바쳐 위기를 헤쳐갈 생각을 해야할 이들이 백성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시대는 달라져도 바뀌지 않은 것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리며 자신에게 오는 모든 책임에서 회피하려고 했던 선조. 그와 대비되게 이 시대에는 '경장'의 꿈을 키웠던 이이도, 적의 동태를 파악, 분석하고 이를 통해 감히 일본이 선뜻 공격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수군을 키웠던 이순신도, 자신의 가산을 탈탈 털어 의병을 일으킨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위기를 넘긴다. 역사에 '만약'은 통하지 않는다지만 만약 이들이 없었더라면 분명 조선은 이 때 망하지 않았을까? 나라에서 개뿔 해주는 건 없어도 언제나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분연히 일어나 싸우는 수많은 백성들. 그들을 위해줄 진정한 성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영화를 보듯이 지나갔던 10권이었다. 이어질 <광해군 일기>도 어여 읽어봐야겠다. 이제 마라톤으로 치면 반환점을 돈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막판까지 힘을 잃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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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 인종.명종실록-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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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여인천하'를 꼬박꼬박 챙겨 보지는 않았지만, 어깨 너머로 본 드라마에서의 문정왕후의 강한 인상만은 기억에 남는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는 인종, 명종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인 왕은 문정왕후였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힘은 강했다. 장성한 세자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앉히겠다는 계획을 세우는데에서부터, 목표대로 아들을 왕 위에 앉히고 수렴청정을 하며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모습까지 인종과 명종은 문정왕후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문정왕후는 조선왕조사에서 가장 비난받는 여자다. 정말 문정왕후가 그렇게 못된 여자였을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친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아이는 궐 밖에 재상가에서 키워진다. 어미의 정도 아비의 정도 모른 채 자랐지만, 아이는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척척 맞출 정도로 똘똘했다. 이에 신하들이 원자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서 여섯 살의 나이에 세자에 책봉되니 그가 바로 인종이다. 궐 안에서의 인종은 식중독 사건, 작서의 변, 목패 사건 등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보낸다. 신하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군주에 가깝게 컸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를 가만히 냅두지 않는다. 고생 끝에 왕 위에 오르지만 아버지 중종이 죽자 유교식 예법에 따라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 몸이 허약해져 결국 아버지를 따라가고 만다. 이후 문정왕후의 바람대로 명종이 왕위에 오르고, 문정왕후의 시대가 열린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명종이 직접 통치를 시작했지만 명종은 자신의 색깔을 좀체 드러내지 않은채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씩 왕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했던 명종. 결국 이신제신(以臣制臣)의 방법을 쓰기 시작하지만 별 효용을 보이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명종.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펼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저자는 문정왕후에 대한 평가가 박한 이유 중 하나가 그녀가 '여성'이고, '불교진흥책'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분명 그의 말처럼 문정왕후를 태종이나 세조에 비춰봤을 때 딱히 잔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분명 세자를 제거하면서까지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생각을 품는 것은 올바르지 않지만 그녀의 야망을 고려한다면 그녀가 치른 숙청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오히려 남편이었던 중종보다 국정 장악능력이 뛰어났고, 사치나 향락에 빠지지도 않았으며, 유교 인텔리로 당대의 석학들과 마주하고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측근들의 정보와 판단에 의지한 채 정치를 했기 때문에 결국 그 측근들이 나라를 주무르게 됐다는 점이 문제였다. 백성들은 점점 굶주려가는데 그래도 쥐어짜면 뭔가 나온다는 생각으로 백성들을 괴롭혔던 수령들. 그들을 만든 것은 문정왕후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이 아니라 그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생각하며 문정왕후를 표독스러움의 표상으로 그려낸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전, 혹은 이후의 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포스가 약한 두 왕. 그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인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은데, 그동안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대윤과 소윤의 싸움, 문정왕후와 그의 측근들의 이야기, 이황과 조식의 보이지 않는 대결 등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던 책. 두 왕을 다루기엔 다소 적은 분량이지만 읽고나니 분량에 비해 마음이 꽤 무거워졌다. 이후 이어질 선조의 이야기. 좀 더 답답해지겠지만, 어서 읽어봐야겠다. 이제 반환점을 돌기 시작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기운내서 20권까지 어여 출간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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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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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의 선택'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대중에게 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주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법은 뭔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부당한 권력 앞에서도 법에 대한 거리감때문에 쉽게 법적대응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을 걸기보다는 그저 상대방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저 법은 돈 있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빽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만큼 법은 현실을 규율하고 있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법은 비현실적인 개념일 뿐이다. 이 책은 그렇게 법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법에 한 걸음 가까이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두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 부당한 압력이나 이해관계에 눈 돌리지 않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지만, 저자는 디케의 가려진 눈에 관심을 갖는다.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 진실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그는 그 뒤에 감춰진 디케의 눈이 어떤 모습인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법조계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법은 알고 있으면 살아가는데 꽤 유용한 학문이다. 최소한의 관심, 그리고 최소한의 정보라도 법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차이가 난다. 사회에서는 누가 자신의 권리를 챙겨주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일반인들도 법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법에 대한 인식이 높을수록 그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상식은 사회 구성원들이 만드는 것이지만.)

  전직 검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초반에는 자신의 경험이 나오지만 외국의 사례가 더 많이 소개되고 있어서 아쉬웠다. 뭐 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사례가 국내냐 국외냐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국내의 사례를 읽을 때 더 관심을 갖고 읽었던 것 같다. (특히 결혼식 하객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화환을 3개 이상 놓으면 위법인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헌법의 풍경>처럼 법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이나 반성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일반인들이 법이란 이런 개념이구나, 이럴 땐 법이 이렇게 작용하는구나 등 법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고 법에 관심을 갖게 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는 책인 것 같다. 지금까지 읽어본 법학 입문서 가운데에서 가장 대중적인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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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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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 2에서는 희노애락이라는 키워드로 무게감있는 내용과 가벼운 내용들이 섞여 있었는데, 시즌 3에서는 건강보험이나 수도의 민영화, 광우병,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등 시사적인 내용들이 많이 등장해서 평소 시사에 약했던 이들에게는 단기 속성으로 시사에 대해 공부하게 해주는 과외선생님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프리다 칼로, 아스토르 피아졸라, 팀 버튼, 미야자와 겐지와 같은 문화적으로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부터 노점상을 지키기 위해 분신을 한 떡볶이 노점상 아저씨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지식 e 시즌 3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시사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서 이전보다 살짝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른 교양서에 비해서는 비교적 가볍게 읽었다. 지난 번에 <지식 e - 시즌 2>를 읽으면서 영상으로 접하는 지식 e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져서 홈페이지에서 찾아서 몇 편을 봤는데 음악이 있어서 그런지 그냥 책으로 볼 때와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음악 선곡도 굳.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최근엔 음반으로도 <지식 e>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알아둬야 할 지식들. 그 지식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지식 e의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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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3-0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지식e가 좀 가벼워진 것 같아 자기검열이 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프로거든요. ^^

이매지 2009-03-03 12:3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제는 지식 e가 인지도가 있어지니까 외압때문이 아닐까 싶어지네요. 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 중종실록, 조광조 죽고... 개혁도 죽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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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의 폭정에 고통을 받았던 사대부와 백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시작된 중종의 재위는 참 길고도 별 특색없이 진행된다. 당연한 목표이지만 중종과 공신들은 연산 이전의 복귀를 지향한다. 하지만 반정의 주역들이 연산 시절에 누릴 것을 다 누렸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연산의 협력자들에 대한 청산 작업은 미미했고 또 다른 반정을 막기 위해 개나 소나 공신으로 책봉하며 포섭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로 이 부분이 중종의 재위 기간 내내 발목을 잡는 문제로 남고 만다. 공신 문제를 지렛대 삼아 심지어는 권력이 대간에 있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로 성장하는 대간과 공신의 확대로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는 등 중종은 내외적으로 다양한 불씨를 품고 그저 성실히 일하기만 한다.

  조선 초에는 정도전이 있었다면 중기에는 조광조가 있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중종 때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조광조다. 사색을 통한 원리 탐구, 경학 위주의 공부, 근본을 앞세우는 원칙적인 자세 등 전형적인 유학자의 모습을 보이는 조광조. 그는 중종의 신임을 등에 업고 개혁을 단행한다. 하지만 공신세력의 불만과 중종의 태도 변화로 인해 기묘사화를 통해 제거되고 결국 개혁은 수포로 돌아간다. 이후 유생들은 학문에 힘쓰지 않게 되고, 대간은 건강성을 상실하게 됐으며 일부 대간에게 힘이 쏠려 점차 권신화되는 병폐가 생겨난다. 조광조 이후에는 김안로에게 힘을 몰아주는데 김안로는 과거에 자신의 복귀를 반대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는 경빈 박씨의 잔당이라 몰아 붙여 제거해버리니 조정은 왕보다 김안로에게 굽실거리기 일쑤고, 수많은 겸직을 통하여 인사나 정책 결정에 관해서는 사소한 것까지 그의 사전 허락을 거칠 정도로 왕 이상의 권력을 누린다. 물론 그도 이후 조광조처럼 중종의 변심으로 숙청되지만 말이다. 

  조광조와 김안로의 경우로 미뤄볼 때 중종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할 도구로 특정 신하를 키운다. 하지만 그 신하의 권력이 너무 커질 때는 늘 여론에 귀 기울이고 온화하며 우유부단했던 성격은 어디갔는지 사라지고 독선적이고 냉혹하며 과감한 모습으로 권력을 교체해버린다. 자신이 연산처럼 언제든 폐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중종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대신들의 눈에 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살아왔는데 조광조나 김안로의 힘을 꺾는 순간만큼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단순히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결단력과 계획력을 가지고 일관된 원칙으로 장기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 생각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랬다면 39년이라는 긴 재위기간동안 그저 제자리 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착착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이전에도 그랬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몇 번이나 떠올랐다. 특히 과거 세력의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유야무야 시간을 흘려보내고 결국 그 문제가 꼬투리로 남게 되는 것이 일제 이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못해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고, 경빈 박씨를 핑계 삼아 반대파를 제거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빨갱이 논쟁이 새삼 떠올랐다. 그 외에도 왕보다 더 실세로 자리잡는 신하의 모습이나 정치인들의 싸움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모습 등이 마냥 과거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그리고 책의 끝부분에 장금이가 잠깐 소개되는데 실록에는 고작 10줄 내외로 쓰여있었던 인물을 하나의 캐릭터로 살려내 드라마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런 저런 사건은 많았지만 자신만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채 신하들에게 휘둘렸던 중종. 그의 왕으로서의 이념의 부재가 안타까웠던 8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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