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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전면개정판) -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옮김 / 시유시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피자헛에 갔다가 색다른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계산을 하려고 서있는데 계산대 근처에 대외비문서 하나가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에 슬쩍 들여다본 그 문서에는 피자 만드는 법에 대한 순서가 나와 있었다. (어떤 재료를 올려서 몇 분간 조리와 같은) 물론, 어디에 위치한 피자헛에 가던지 맛이 같은 것으로 미뤄보아 표준화된 규정이 있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렇게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랄까? 그런 경험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이 책을 읽게됐고, 사회에 이미 깊숙히 자리한 맥도날드화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맥도날드화란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 사회와 그밖의 세계의 더욱더 많은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이다. 이는 단순히 패스트푸드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정치, 가정 등의 사실상 사회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도 맥도날드화는 적용된다. 저자는 맥도날드화의 특성을 크게 4가지(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로 나눠 이런 특성들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가 맥도날드화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어떤 의식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맥도날드화를 이루는 요소는 4가지이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다.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 이 세가지 요소는 효율성을 위한 것, 혹은 그 수단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포드가 자동차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조립라인을 설치했듯이 맥도날드도 햄버거, 음료수, 후렌치프라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조립라인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내가 피자헛에서 본 문서처럼 규정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 햄버거 패티 하나의 무게는 굽지 않은 상태에서 45.36그램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기울여진다. 0.45킬로그램의 고기로 10개의 햄버거를 만든다. 조리전 햄버거 패티의 지름은 정확히 9.84센티미터이고, 빵의 지름은 정확히 8.89센티미터이다. 맥도날드는 '지방측정기'를 자체 개발하여 햄버거 고기의 지방함유량 19퍼센트 선을 정확히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지방 함유량이 19퍼센트 이상일 경우 굽는 동안 고기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어 햄버거가 빵보다 커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용물이 많아보이게 빵 밖으로 살짝 내용물이 나와야한다는 규정도 있다고) 이런 점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곳에 가던 맥도날드에 대해서는 일정한 예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어떤 이들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여행 중에 맥도날드를 여러번 이용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예측가능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맥도날드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맥도날드가 합리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맥도날드의 합리화는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빨리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간 맥도날드에서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점이나, 샐러드바나 ATM기기처럼 고객이 돈과 함께 노동력까지 지불하는 현상 등은 다시 생각해보면 비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공장의 기계처럼 창의성은 배제된 채 반복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어떤가? 맥도날드화된 세상에서는 노동자는 로봇처럼 작업을 하고, 음성이 녹음된 인형처럼 프로그램된 말만 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이나 '창의성'은 철저히 무시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예상이 틀리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지 5년여가량이 지난 지금은 더욱 더 맥도날드화가 가속화된 것 같다. 넘쳐나는 프랜차이즈 가게들,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인간적인 것을 무시하는 태도. 이 사회는 이제 합리화라는 가면을 쓰고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 합리화는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의 것이 아닌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고도로 합리화된(소비자에겐 불합리화겠지만) 사회에서 벗어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합리화에 감춰진 진실을 통찰하고 그것을 통해 비판의 눈을 갖고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좀 더 영리하게 맥도날드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꺼운 책은 아니었고 단락도 짧은 편이라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내 주변의 사회현상들을 떠올리며 읽느라 책보다 더 넓게 사회를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합리성을 강조하며 비합리적인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