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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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전에 공쿠르상 수상작을 눈여겨보다가 챙겨둔 작품인데, 미루고 미루다가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롭게 옷을 입고 나온 이제서야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만나게 되었다. 노란 표지의 느낌도 좋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책의 분위기에는 뭔가 안개 속에 서 있는 듯한 이 표지가 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기억을 잃고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던 주인공. 탐정 일에서 손을 떼고, 그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을 찾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낡은 사진 몇 장, 전화번호 몇 개 같은 작은 실마리로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등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며 자신의 과거 속으로 조금씩 다가간다.

  사실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 때문에 고른 책이었는데, 은근히 무거워 꽤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와 자신의 과거를 찾는다는 설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기억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리"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결국 이 세상에 잠시 나타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기억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확인되어지는 존재는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나'라는 존재가 과연 타인의 시선과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도,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나에 대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전개라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얻는 실마리를 통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될 테고, 다소 극적으로 포장한다면 그런 실마리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가 반짝 하고 기억이 난다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전개에서 벗어난다. 오히려 그런 실마리를 쫓아갈 수록 과거는 점점 손에 잡히지 않게 된다. 자신이었을 이름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허상일 뿐 실재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쫓을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인간이 가진 숙명과 다름없게 느껴졌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불안감, (그것이 허상일지라도) 나 자신으로 오롯이 살아가고 싶다는 자의식. 그것이 그가, 그리고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의 찾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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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6-14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 겠는걸요...이매지님 서평 땜시..

이매지 2010-06-14 15:15   좋아요 0 | URL
아, 저 이 서평 썼다 지웠다 몇 번 했는지 몰라요.
읽은 지 일주일이 지나서 리뷰 쓴 것도 참 오랫만;;
어쨌든 제 리뷰는 마음에 안 들지만, 책은 정말! 매력적이예요 :)

2010-06-14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4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넛공주 2010-06-15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누구인지 잃고..' <-전 이런 스토리에 왜 그리 끌리는지 모르겠어요.제이슨 본 시리즈도 헤벌레.

이매지 2010-06-15 10:02   좋아요 0 | URL
엇, 그러고보니 본 시리즈도 그런 거였죠! 본 시리즈 책으로 곧 나오는 모양이던데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 ㅎㅎㅎ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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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띠지의 문구도 나를 끌어당겼지만, 무엇보다 문학동네 카페에 올라온 '매끈하지 않아요. 절묘하다는 느낌도 없어요. 그런데 가슴이 저릿저릿합니다'라는 이 책에 관한 찬사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 읽기 시작했다. 붐비는 지하철 출퇴근 시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어디선가 바닷내음과 사람내음이 느껴져 어쩐지 일상이 아스라하게만 느껴졌다.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제목이 갸웃할 정도로 이 책 속에서 올리브 키터리지는 주변인으로 등장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선생님, 누군가의 이웃으로 등장하는 그녀는 어쩐지 세상와는 떨어져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라 선뜻 가깝게 다가가기엔 어렵게만 느껴진다. 거구에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사회성도 별로 없어 흔히 만나는 사랑스러운 주인공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을 경험했다고 담담히 털어놓는 모습이나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소녀에게 자신도 굶주렸다고 말하는 모습, 아들과의 관계가 틀어지자 마음 아파 하고 갑자기 쓰러진 남편 헨리를 매일 요양원으로 찾아가는 모습 등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엿보며 어쩌면 올리브 키터리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평생 눈물 한 번 안 흘려봤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할 뿐인 외로운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문화도 환경도 다르지만 어쩐지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웃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고 무뚝뚝하게 살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폐품을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들을 하찮게 보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반찬값을 벌겠다고 자기도 폐품을 주우러 다니는 아줌마도, 자기 자식이 어디서 맞고 집에 돌아오면 당장 상대를 찾아가 욕설을 퍼붓는 아줌마도, 여름이면 늘 옥상에 올라와 파리나 잡으며 소일거리를 하는 할아버지도, 음치 주제에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고딩도, 사흘이 멀다 하고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가족도, 공통점이라고는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 뿐인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 한때는 왜 이웃의 삶에 시시콜콜 참견을 하는 건지 어쩐지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도시에서 어쨌거나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웃을,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아는 척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그리고 바닷가 근처의 작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 때문에 가슴에 상처 하나를 안고 살아가지만,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상처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애써 감추며 살아가는 사람들. 결국 누군가를 통해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는 모습. 그런 모습이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담겨 있었다. 젊은 사람도 등장하긴 하지만, 중년 혹은 노년의 인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단상도, 큰 기쁨과 작은 기쁨으로 삶을 생기를 불어넣어 지탱해가는 모습도, 그리고 단조로운(달리 말하면 평화로운) 일상을 흔드는 사건도,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것은 결코 벗어나고 싶은 무엇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따뜻한 기운임을, 내가 그런 일상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을 이 책은 느끼게 해줬다.

  지나치게 캐릭터에 빠지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있자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다. 책을 덮고 나니 어쩐지 겨울 바다에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느껴졌지만,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엘 듯한 찬 바람이 아닌 약간은 짭짜름하지만 따스한 바람이었다. 이 바람에 한동안 몸을 맡기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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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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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장난 삼아 받아본 검사에서 암 선고를 받는다면 어떨까? 어떤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누군가는 절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삶을 부여잡으려 치료를 시작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을 정리할 것이다. 삶이란 그 시작은 선택할 수 없지만, 마지막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기에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우리 앞에 주어진 많은 선택의 순간 속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후지야마다.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남자 후지야마.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살던 그가 어느 날 폐암 말기에 6개월 선고를 받는다. 믿을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것도 잠시. 그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이 살면서 만나온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유서를 전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연명 치료를 단호히 거부한다. 중학교 시절 첫사랑에서부터 시작해 30년 째 말한마디 섞지 않았던 고등학교 때 절친, 옛 동료, 의절한 형제 등을 만나 그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름의 방식으로 안녕을 고한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조용히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혼자 남는 것을 택할 수 있을까?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후지야마는 홀로 남는 것보다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택한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하지 못했던, 제대로 된 추억을 만들지 못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아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인생의 선배로서의 조언도 해주고, 딸의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아내에게 자신의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기도 하는 등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점점 기력은 쇠해가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후지야마를 채운다.

  방송작가, 영화감독, 극작가, 탤런트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저자의 약력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은 드라마틱하다. 죽음을 앞둔 남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마감해간다는 구성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소설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하는 장면이나 수십 년 전 낙태를 종용했던 여자가 자신의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결혼 전 사귄 애인과 재회해 느닷없이 호텔로 향하는 모습 등이 마치 막장 드라마처럼 평범한 설정을 환기시키는 요소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불과했기에 담담히 후지야마라는 한 남자가 죽음을 향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집중하게 됐다. 아직은 죽음보다는 삶에 가까운 나이이지만, 조금씩 다가올 죽음의 시간. 나는 남은 삶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조용히 가슴 한 켠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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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3 - 땅!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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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눈 여겨보고 있었지만, 3권이라는 분량 때문에 언제 시간이 나면 느긋하게 읽어야지 하고 미루고 있다가 이번 석가탄신일 연휴(그래봐야 주말에 하루 더 붙어 있을 뿐이지만)의 시작을 이 책과 함께 했다. 미뤄오다 읽은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역시 이런 책은 한 호흡에 읽어야 제맛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육상'을 소재로 한 스포츠 소설이다. 때문에 1권 맨 앞에는 일러두기의 방식으로 육상용어나 대회에 관한 설명이 붙어 있어서 '어쩐지 머리가 아파오는 걸' 하는 생각이 들어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넘겼는데, 읽다보니 용어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대로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크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없었고, 육상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육상을 통해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가 됐기 때문이다.

  흔히 달리기는 고독한 스포츠라고 이야기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 혼자만 치르는, 1초가 아니라 0.1초를 다투고, 그 짧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애쓰는 경기. 그렇게 홀로 뛰는 육상은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경기는 고독하지 않다. 계주(이어달리기)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각자 개인 경기를 하면서도 늘 내 옆을 달려주는 친구, 나를 응원해주는 동료가 있기에 혼자 뛰는 것이 아닌 함께 뛰는 것이 된다. 물론 자기 구간을 누가 대신 뛰어줄 수도 없고, 그 구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지만 배턴과 함께 앞사람의 에너지까지 받아 달리는 순간은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이런 류의 소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주인공이 고난을 이기고 최고의 선수가 된다는 류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신지는 너무나 대단한 능력을 가진 축구선수인 형을 둔 고만고만한 축구선수일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비전이 보이지 않는 축구를 그만두고, 우연히 육상부에 가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축구를 그만두고 기껏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나 싶었더니, 육상부에 함께 가입한 어린 시절부터 절친인 렌 또한 비범한 단거리 선수. 마치 교과서처럼 모범적으로, 힘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뛰는 렌의 등을 바라보며 신지는 다시 한번 꿈을 꾸기 시작한다. 육상부 담당 선생님인 미짱은 신지의 잠재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육상을 갓 시작한 신지는 페이스를 조절하는 법도, 긴장에 대응하는 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저 한 레이스 한 레이스 최선을 다해 달릴 뿐. 그런 신지가 1학년, 2학년, 그리고 3학년으로 성장해가며 육상 실력도 성장해가는 모습. 그리고 마침내 현 대회를 넘어 관동 대회까지 뛰는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뛰게 했다. 

  타고난 능력도 있었지만, 엄청난 훈련과 연습으로 기량을 갈고 닦는 신지. 렌을 비롯해서 센바나 다카나시 등 경쟁자들의 러닝을 통해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이를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신지의 모습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신지 뿐만 아니라 천재 혹은 타고난 러너는 아니어도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받아들이고, 땀 흘리는 네기시나 자만함으로 똘똘 뭉쳐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점차 하루고 육상부의 일원이 되는 가기야마, 기록보다는 몸 만들기에 관심을 쏟는 건강식품 마니아 모모우치 등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달리는 모습에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얼마 되지도 않는 분량인데 굳이 3권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었는데, '제자리로!-준비-땅!'이라는 구성이 책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3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가 각 권마다 진행되고 있어 한 권 한 권 끝마치며 어쩐지 함께 조금씩 달려가는 느낌도 들었다. 일본에서는 2008년 4부작 드라마로도 방영된 바 있는 이 작품. 사실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원작을 읽고 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는데 이 풋풋함과 열정, 그리고 애정을 영상으로 만나면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되려 책을 읽고 나니 영상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 망설여진다. 기록을 단축해가며 성장하는 육상이라는 경기. 경기는 짧은 시간 벌어질 뿐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땀방울은 결코 미미하지 않음을, 그리고 함께 달리는 이들이 있기에 외롭지만은 않음을 느꼈다. 사토 타카코의 소설은 <노란 눈의 물고기> 이후 두번째인데 특유의 따뜻함이 참 좋은 작가인 것 같다.  

덧) 드라마 정보는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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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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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만 봐도 두근거리고, 함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설레는 연애 초창기는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단계가 온다. 이 책의 주인공 안토니아는 그런 편안함의 단계를 넘어서 애인인 루카스와 편안한 룸메이트 같은 생활을 유지한다. 사랑한다는 문자 대신에 집에 들어올 때 식빵이나 사오라는 문자를 보내고 아무리 야시시한 속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루카스가 덮칠 생각도 하지 않는 이런 위기 속에서 루카스의 전 애인인 자비네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사온다.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지역으로 이사오는 자비네를 위해 루카스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린피스 활동을 함께 시작하게 된다. 이에 어떻게든 루카스를 자비네로부터 지키기 위한 안토니아의 고군분투는 시작되는데... 

  둔한 건지 안토니아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것인지 자비네와 자꾸만 가깝게 지내는 루카스. 그런 루카스를 보며 점점 초조해하는 안토니아. 그리고 그런 안토니아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안토니아의 베프 카타. 이런 독특한 캐릭터도 읽는 재미를 더했지만, 무엇보다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점점 멀어진다는 설정이 어쩐지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루카스와 당장 결혼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딱히 그렇다고 루카스 외의 대안을 찾을 의지도, 희망도 없었던 안토니아. 그런 안토니아가 루카스의 사랑을 확인하고 되찾기 위한 노력이 가끔은 안쓰럽게도 느껴졌다. 어떤 부분에서는 루카스를 사수하기 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안토니아도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예상이 빗나갔다. 

  밤새도록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는 띠지의 문구처럼은 아니어도, 이 책은 꽤 유머러스했다. 좀 더 진지하고, 좀 더 유머러스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본 것처럼 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류의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잘 맞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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