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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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여유와 담담함

말랑말랑한 이야기 안에 뜻하지 않은 깊은 울림을 느낄 때 적잖이 당황합니다. 잠시 쉬고 싶어 든 책일 경우 더 합니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를 읽었습니다. 표지 부터 소프트함에 잠시 쉬려고 들었습니다. 읽기 전 김애란에 대한 사전 지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일전의 김연수 작가의 책 또한 작가에 대한 정보 하나 없이 글로써 조우했습니다. 이번 역시 매 한가지입니다. 읽다가 놀라 작가 정보를 찾게 되었습니다. 올해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올 들어 이 두 젊은 작가를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일 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글들입니다. 일상을 일상의 눈으로 보지 않는 작가들은 늘 동경의 대상입니다. 소소한 이야기 속에 숨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은 아무나 가지지 못 합니다. 세심한 관찰과 현상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 그들이 작가가 아닐까 합니다. 사진이란 것을 찍게 되면서 눈으로 인식하는 사물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 짐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며, 현상에 대한 인식의 힘이 넓어지길 바라는 요즘입니다. 바램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큽니다만, 조금씩 메워지길 허황된 꿈이 서서히 실현되길 소망하나 가슴한켠에 쌓아 둡니다.

책 소개 글을 보면 다음 문장이 눈에 뜁니다.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에 대하여"

이 책에서 전 스스로의 연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자기 고백 같습니다만, 스스로 불쌍하다, 힘들게 자라왔다, 그렇기에 살짝 삐딱하게 사는건 당연하단 생각을 해왔기에 더욱 가슴 언저리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는 법, 그리고 담담히 농을 건낼 수 있는 여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 속의 담담함과 여유에 빠진 하루였습니다. 봄볕 가득한 테라스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과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한번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후회 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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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5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맑은독백 2009-05-16 08: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현대인들님. 제가 이 블로그는 자주 들어오지 않아서 이제서야 저도 댓글을 봤습니다.
김애란님의 책은 우연히 주운 보석같은 책이었습니다.
근래 신작이 나와서 그것도 읽어보려 합니다. ^^
 
유쾌한 승부 - 너도 나도 이기는 최고의 협상기술
박승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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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밀어 속에도 협상은 존재한다.

인간사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사람 사는 데 협상은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비단 비지니스 뿐만 아니라 살면서 맞닥드리는 의견 조율은 수없이 많습니다. 나의 의견과 타인의 의견에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인식하며, 타협점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대상만 다를 뿐 목표는 동일 합니다. 심지어 당신과 나 사이의 밀어 조차 이 과정이 없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박승주씨의 너도 나도 이기는 최고의 협상 기술 '유쾌한 승부'를 읽었습니다.

솔직히 초반 책에 대한 인상은 크게 좋지 않았습니다. 문학 작품이 아닌이상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지만, 어설픈 스토리는 되려 거부감을 줍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전달할 내용만 전달하고, 독자 스스로가 곱씹게 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이런 생각 위에서 이 책의 초반은 거부감으로 시작했습니다.

협상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그저 배우자는 심정으로 읽어 나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으로 협상에 대해 고민하길 시작했다는 것은 행운인 듯합니다. 초반의 거부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습니다만, 읽으면서, 평상시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부분들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협상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를 위한 입문서 정도로는 안성맞춤이 책입니다.

책에서 이야기 하는 핵심은 상생의 협상입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타협점을 찾자는 것 입니다. 물론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여러 과정 상의 주의점들도 이야기 합니다만, 목표가 뚜렷하다면 애둘러 간들 어떠하겠습니까? 협상이 승부가 아니라는 생각, 타인에 대한 이해와 논리적인 설득을 바탕으로 내가 줄 수 있는 것과 타인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의 교환을 통한 가치 창출에 욕심과 다툼이 차지할 공간은 크지 않습니다.

전 책을 읽어 가면서 저자가 협상의 근간으로써 강조하는 정보, 시간, 힘이란 단어보다는 오히려 사랑이란 단어가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일전에 읽은 비폭력 대화와 연결지어 봤습니다. 협상이란 이야기 하는 것보다 들어주는게 우선이라는 말에, 도덕적 판단보다는 관찰과 공감이 우선이란 비폭력 대화의 관찰 단계가 떠 올랐으며, 상대방의 입장 이면의 이해에 대해 논 할 때는 느낌 속에 내재된 욕구를 파악하는 단계가 생각납니다. 또한 상생의 장으로 나아감에 욕구에 이은 부탁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매치됩니다.
2009/03/03 - [독서 흔적] - 비폭력 대화

지난 비폭력 대화는 아주 이상적이란 생각이지만 희망을 보았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 책 역시 다분히 이상적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현실에 녹여 낼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어떻게? 라는 질문에는 좀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협상에 있어서 많은 기술적 요소들이 나오지는 않지만 협상을 준비하는 자세, 마음가짐 그리고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이상에서 현실로의 고리는 이어졌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협상에 관심이 있는 분들, 서로간의 의견 타협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분들 가볍게 한번 접해 보시길 바랍니다. 두껍지 않은 부피와 말랑말랑한 스토리텔링이기에 협상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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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소설
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박수현 옮김 / 아르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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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위에 새기는 글들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소설은 감정의 찌꺼기를 내뱉어 놓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감정의 잣대로 제단하는 것은 싸구려 선술집의 대포 한잔 마냥 시시했습니다. 허구의 인물에 가상의 설정은 감정의 동요는 커녕 조소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변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좀더 이성적으로 지혜롭게 될거라 생각했던 제 예상은 우습게도 빚나갔습니다. 없어져야만 했던 감정은 포용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식 이전의 감정의 배제는 모순임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습게 여기던 감정의 언저리에 제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생철학자 디겔 데 우나무노의 '모범 소설'을 읽었습니다. G. 마르케스 이후, 두번째 맞이하는 비 영미문학권 소설입니다. 더욱이 철학자의 소설이기에 집어드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가볍게 읽어 내리는 소설과는 달리 몇 일을 곱씹었습니다. 모범의 의미, 실존주의, 소설의 구성인물, 여러 생각의 편린들이 역자의 해설로 조금씩 짜맞추어졌습니다. 혼자만의 퍼즐 맞추기론 힘들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이 소설은 아마 다음 물음의 해답일 것입니다.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인간상이 소설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어떻게 현실성을 획득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의 답이 세편의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창작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길 원하는 사람입니다. 살아지는 인간이 아닌 살아가는 인간상이 소설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의지 속에 고뇌가 피어나고 내면의 고뇌에 빛을 비추어 언어화 하는 것이 소설가의 몫입니다. 능동적, 열정적, 의지적 행동이 고뇌를 불러일으키며, 여기에 소설의 사실성, 현실성이 부여됩니다.

여기에서 의지는 원하기, 갈망, 소망, 필요성등으로 대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꿈과 소망이 믿음을 낳고 믿음이 소설적 사실성의 근원입니다. 끝없는 애욕의 극단에 훌리아와 라켈, 나 그리고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소설의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더불어 반 이성적인 생철학의 면모 또한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합니다. 논리 즉 이성은 살아 있음을 동일하게 만들고, 같은 모양새를 만든다고 합니다. 인간의 감정에 살아 있음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성의 양면성에 대해 나름의 충격을 받은 부분입니다. 이성, 획일화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 저를 돌아봤습니다. 삶을 삶답게 만드는 감정을 경시한 제 모습에서 애당초 나를 찾는 다는 것이 허황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덮고 나름의 정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서문조차 또 하나의 소설이라 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여전히 이 소설은 제게 질문만을 남깁니다. 생과 소설과 감정과 의지 그리고 믿음 실체없이 뿌연 안개 속을 헤매이는 듯합니다. 저의 몫으로 남은 질문이 여전히 제 가슴을 누릅니다.

'삶이란 때로 어처구니 없는 부조리와 수치스러운 과오로 얼룩질 수 있지만, 이 얼룩은 어쩌면 삶을 삶답게 하는 요인이 된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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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고전에서 답을 찾다
유필화 지음 / 흐름출판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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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필화씨의 'CEO, 고전에서 답을 찾다'를 읽었습니다.

여타의 자기계발서들은 이제 식상합니다. 절대 읽지 말아야겠다 보다는 가급적 자기계발서류는 피하자 주의 입니다. 물론 경영관련 서적입니다만, 시류에 편승한 그저그런 책들이 많기에 일단 의심부터 하고 봅니다. 이 책 역시 피하려다 한 단어에 꽂혀 들게 되었습니다. '고전'이란 단어입니다. 고전은 비단 경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야에 던져줘도 먹을 것이 가득합니다. 물론 이 상찬은 인식한 자의 몫입니다.

고전을 경영이란 옷을 입혀 어떻게 해석할지가 자못 궁금했습니다. 이 책을 든 유일한 이유입니다.
 
8명의 거인들의 입을 빌려, 저자가 찾으려는 답은 인간, 목표, 집중 이 세가지 입니다. 인간 중심의 경영, 그 핵심에는 피터드러커가 있습니다. 고전에서 찾는다에 드러커 선생이 나와 잠시 의아했습니다만, 경영에 드러커 선생이 빠진다면 서운 할 것 같습니다. 인사관리, 리더십, 기업문화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인간입니다. 그 다음이 목표를 선정하고 그 목표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아주 기본적이며, 단순합니다.

경영에 관련된 서적이나, 고전을 바탕으로 술하기에 인용된 서적과 인물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를 다시 보게 되었고, 클라우제비츠, 헤르만 지몬, 세네카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탕이 되는 고전을 시간이 나는데로 읽어봐야 겠습니다.

CEO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때문인지, 양장본이며, 수묵화도 아닌 것이 여백이 그득합니다. 책의 진정한 무게는 글에서 나올텐데, 이런 디자인과 편집은 오히려 독자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단지 과시용으로 책장 한 구석을 채울 목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제 책이 아니라 줄을 긋고, 새기는 되새김질이 부족했습니다. 빌려보기 이젠 쉽지 않겠구나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급히 마무리 하는 글에 긋고 접는 단순한 행동을 못해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변명 뿐입니다.

. 역사로 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역사는 반복된다.

" 지나간 것을 좇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은 마음에 두지말라.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으며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단지 지금 하고 있는 일만을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하라. 흔들림 없이 동요 없이 오직 오늘 해야할 것에 열심히 하라." <중부경전 131, 일야현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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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바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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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폭력적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고해 성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제가 내 뱉는 말들이 다분히 폭력적입니다. 상대에 말에 논리를 가하고 비판을 하며, 옳다 그르다를 결정합니다. 물론 내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인정합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갈거라 생각했습니다.

마셜 B.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를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난 후 지금껏 해온 제 생각에 매스를 대려 합니다. 요근래 블로그스피어 상에 회자되는 글들에서 다분히 폭력적인 말들이 오고 갑니다. 그러려니, 서로의 견해가 다르니 싸울 수도 있다 생각했고, 세상사 다툼없는 의견 교환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소통, 혹은 나와 타자의 소통 사이에 다른 대안에 대해 전혀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연한 추천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들르는 소프트웨어 관련 블로그에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소통에 큰 소리가 오고가는 것을 꺼려하기에 필요치 않은 소통외에는 말을 섞지 않는 모난 성격입니다. 마뜩한 대안을 알고 있지도 않기에 조금씩 소통의 끈은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이쯤에 '비폭력 대화'를 마주했습니다. 읽기 전 부터 큰 기대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그 기대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알고 난 후의 충만함에 사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입소문 내고 싶은 책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추천사의 한 구절입니다.

'이 책은 옳고 그름의 명분, 힘과 권위에 의한 질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이분법적 관점과는 다른 관점, 즉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 상호 존중과 기여, 상생과 통합, 협력과 평화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생각의 전환, 그리고 소통의 다른 방식을 통해서 얻는 것 치고, 과할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습니다. 타인과의 소통, 더욱이 스스로와의 소통에 연민이란 감정을 도구로 존재 자체에 애정을 가지게 됩니다. 거짓말 같습니다, 그리고 피상적인 단어들의 집합 같습니다. 더불어 시도하더라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대화의 마술 지팡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만,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오가는 말들 속에 부유하는 폭력성을 인식하는 것 만으로도 큰 깨우침이 될 듯합니다.

핵심만을 짚어 이야기 하면, 책에서 전하는 요약된 지식 밖에 전달 할 수 없습니다. 요약하겠지만, 저자의 온전한 생각에 닿기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봐야합니다. 이 책 속엔 지식 이외에 온유한 감정이 실려 있습니다.

NVC(NonViolent Communication)의 핵심은 다음의 네단계입니다.
1. 관찰
2. 느낌
3. 욕구
4. 부탁

첫번째 단계는 말 그대로 상황에 대한 관찰을 이야기합니다. 주안점은 가치판단의 배제에 있습니다. 객관적인 상황을 인식하는 단계가 NVC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관찰의 단계에는 공감이란 큰 축이 포함됩니다. 자신의 가치판단 이전에 공감을 통한 대화의 장을 여는 것은 소통에 큰 힘이 됩니다.

두번째 단계는 행동이나 상황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합니다. 아픔, 무서움, 기쁨, 즐거움, 짜증등 구체적인 느낌의 단계입니다. 타인의 느낌이든 자신의 느낌이든 객관적인 관찰 후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스스로의 취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음 단계는 느낌, 즉 감정의 발원지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어떤 욕구 때문에 이런 감정이 생기는지, 혹은 생겼는지를 분석합니다. 우리 자신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데 영향을 주는, 우리 내면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우리 스스로가 지도록 하는겁니다.

마지막으로 욕구까지 분석했다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혹은 스스로가 해주길 바라는 것을 표현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지를 표현한 다음, 뒤따라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표현을 합니다. 부탁과 강요의 차이는 분명히 인식해야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부탁의 단계입니다.

이외에도 분노표출법, 보호를 위해 힘쓰는 방법, 자기 해방과 타인에 대한 조언 및 감사 표현에 대해서 책의 뒷부분을 할애합니다.

복잡해 보입니다. 좀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책 속의 예문을 옮겨 봅니다.

'펠릭스야, 더러운 양말 두 짝이 똘똘 말려서 탁자 밑에 있고, 또 세 짝이 TV옆에 있는 걸 보면 엄마는 짜증이 난다. 여럿이 함께 쓰는 방은 좀더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는 것이 나는 좋거든! 네 양말 뭉치는 네 방에 놓든지, 세탁기에 넣어 놓을 수 있겠니?'

NVC 네단계는 타인과의 대화 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에서도 유효합니다. 더불어 초식을 익힌 후 초식으로 부터 자유로워져라는 말이 있듯이, 대화의 기술을 익힌 후 형식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NVC의 정수는 네 가지 요소를 인식하는 마음에 있지, 실제 주고 받는 말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술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연민이 밑바탕이 됩니다.

다 읽고난 지금 한사람의 NVC가 집단, 좀 더 크게 인간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솔직히 미지수 입니다. 비폭력적인 대화만이 있을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아쉬움이 큰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힘들지만 포기하지 말아야하며, 그런 희망이 좀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되뇌어 봅니다.

관계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발견하는 삶 속에서 폭력이 끼어들 자리는 단언코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분석은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욕구와 가치관의 표현이다.
비교하는 것 역시 비판의 한 형태다.
삶을 소외시키는 말에는 깊은 철학적, 정치적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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