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목성, 금성


어제 저녁에 아이들을 보러 가는 길에 하늘을 보니 손톱 모양 달과 거기서 비스듬히 대각선 아래로 두 개의 밝은 별이 보였다. 폰을 열어서 별자리 앱을 열었더니 달과 목성과 금성이 일직선 상에 놓인 상태였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직선으로 모여있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다. 얼른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오늘 아침에 잠시 SNS 를 살펴보다가 나처럼 달, 목성, 금성이 모여있는 사진을 찍어서 올린 사람이 있는 걸 확인했다.


아마 평생 지구라는 행성 밖으로 나가볼 일이 없을 테니 저 달과 목성과 금성 등을 가까이 볼 일도 없겠지. 달이라는 위성이 지구의 크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위성이라는 이야기와 달이 조금씩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떠올리며 달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긴 목성에 대해서도, 금성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다. 한 편으로 평소엔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그저 우연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는데, 마침 저 셋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그게 대단히 신기한 일인 것처럼 여기는 것도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너희는 각자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지구에 사는 우리에겐 가지런히 줄을 서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인데 말이다. 목성이나 금성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날 일이다.


이름


여기서 다시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달은 왜 달일까? 목성과 금성의 이름은 요일 이름과 겹치는 것 같은데, 어쩌다 나무와 쇠(혹은 금?)의 행성이 되었을까? 영어 이름으로는 제우스(로마 이름 쥬피터)와 아프로디테(로마 이름 비너스)로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건 알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 이름(혹은 중국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들어본 기억이 없네.


이름이 가진 이미지가 정말 중요하다보니 작명이라는 행위는 참 어려운 일이다. 소설이랍시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 보려고 몰두 할 때마다 항상 제일 망설여지고 오래 걸리는 작업은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적절한 이름을 찾아내는 일이다. 지금까지 완성한 몇 안 되는 소설들 중에 그나마 제일 무난하게 괜찮게 썼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그 졸고를 읽어본 몇 안되는 지인들의 평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글은 주인공 두 명의 이름을 모티브로 전체 이야기와 구성을 완성했었다. 이름만 잘 지어도 이야기 하나를 거의 완성할 수도 있었던 것.


소설 주인공 이름을 지을 때에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 또 얼마나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일인지는 자명하다. 혹시나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발음이 좀 어색하지는 않은지? 좀 더 예쁜 느낌의 이름을 없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내 이름에 만족하고 크게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학창시절에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놀림을 받기도 했고, 가끔은 내 이름이지만 발음이 좀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좀 더 어감이 좋았으면, 좀 더 둥근 발음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평생 쓸 이름을 신중하게 정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 큰 아이 이름을 정할 때에는 우리 부모님과 장모님께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셨다. 좀 촌스러운 이름도 있었고, 작명소에서 지어줬을 것 같은 이름도 있었다. 나와 애들엄마는 독립운동가의 호를 따온 이름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어감은 좋으나 워낙 독특한 이름이라 좀 마음에 걸려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출생신고를 1달 안에 해야 한다고 해서 1달 동안 더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 이름으로 하자고 애들엄마와 대략적인 합의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이런 저런 이름들을 보내곤 하시던 양가 부모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견이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결국 우리더러 알아서 하라며 참견을 그만두셨다. 거의 1달이 다 될 때까지 더 좋은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고, 결국 처음에 생각했던 그 독립운동가의 호를 이름으로 하고 출생신고를 했다. 아, 엄밀히 말하면 그 독립운동가는 그 이름을 호로 사용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새로 지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어쨌든 그 이름을 한자까지 그대로 따왔는데, 한자의 해석은 그 분과 다르게 했다.  


그리고 몇 해가 흘렀다. 당시 아내는 둘째는 전혀 생각이 없다고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 친구들, 지인들이 차례로 둘째를 낳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둘째를 갖고 싶어졌다고 심경의 변화를 내게 전했다. 그리고 금방 둘째를 가졌다. 둘째 이름을 어떻게 정할지는 정말 고민이었다. 첫째 때와는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약간 농담 식으로 했던 생각이 큰 아이의 이름을 따온 독립운동가와 아주 친한 동지였던 다른 독립운동가의 호에서 이름을 따올까 하는 것이었다. 그 호는 어감이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매우 독특한 이름이었고, 내 성과 썩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기도 해서 나로서는 정말 농담처럼 했던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애들엄마는 그거 좋다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음, 애들엄마는 너무 쉽게 그 이름이 좋다고 정해버린 듯한데, 나는 뭔가 좀 아쉬워서 그 이름 보다는 다른 이름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옥편을 뒤지고, 인명 사전을 찾아보고, 새로운 글자 조합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주위에서 큰 아이 이름을 잘 지었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 이름을 지을 때 도와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았어서 더 부담이 되고 어깨가 무거웠다. 이번에도 출생신고 기한 1달까지 최대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더 좋은 이름을 찾고 또 찾았다. 결국 다른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고, 마감 기한이 다가올 수록 나도 애들엄마에게 설득당했다. 그 이름도 나쁘지 않네. 에서 그 이름 괜찮네. 로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그 두 독립운동가가 절친이었으며, 역사에 분명한 궤적을 남긴 훌륭하신 분들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다만 큰 아이와는 달리 작은 아이의 이름은 한자까지 가져올 수 없는 글자였다. 한자는 발음이 같은 글자 중에 의미를 새로 부여해 정해야 했다.


그렇게 두 아이의 이름을 아주 특이하게 정하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 특이한 아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초등 3학년쯤 되었을 때 동네에서 공동육아 방과후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참여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아이들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듣는 분을 만났다. 역사학 교수였다. 역사학자라면 당연히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이름들을 실제로 아이들에게 지어줄 생각을 했냐고 엄청 신기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두 독립운동가들의 남한 내 인식이 좋지많은 않을 사람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듣고 쉽게 그 두 분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그런 배경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독립운동가들은 다른 한 분까지 셋이서 트로이카로 활동했었다. 나는 굳이 만약 셋째를 낳으면 또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전혀 쓸데없는 고민이었지만. 그 나머지 한 분은 두 분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많이 낮고 활동 기간도 짧다. 두 분에 비해 일찍 일제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르셨고 나중에 석방된 후에는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호도 없었다. 다른 대안은 있었다. 그 두 분 보다 훨씬 더 유명한 한 사람의 호를 갖다 쓰는 일인데, 그 이름도 정말 독특했지만 어감 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물론 셋째를 낳을 일은 없었기 때문에 전혀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들의 이름이 확실히 독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큰 아이의 이름은 워낙 특이해서 그랬고, 작은 아이는 이름만으로는 그렇게 특이하지 않지만, 내 성과 붙이면 특이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둘 다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큰 아이는 초등 고학년 시절에 이미 자기 이름을 검색해보고 내가 존경해서 새로 바꾼 이름을 빌려온 그 분의 존재를 알았던 모양이다. 이 녀석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 내게 자기 이름을 빌려온 분이 누구냐고 묻곤 했다. 작은 아이는 아직 자신의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확실히 모르는 눈치인데, 저번에 왜 자기 이름을 이렇게 지었냐고 물었을 때 설명해 준 적은 있었다. 다만,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아, 이렇게 적어 놓고 아이들 이름을 밝히지 못해서 유감이다. 개인 정보에 민감해야 할 시대를 살아가다보니 아이들 실명을 오픈된 공간에 밝히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오늘도 한창 바쁜 날인데 어제 저녁에 본 달과 목성, 금성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 이름까지 주저리 주저리 떠드느라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버렸네. 얼른 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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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7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2-25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운동가 호를 이름으로 쓰시다니... 좀 무거울 것 같으면서도 한국 독립을 위해 애쓴 사람을 기억해서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알아보시는 분도 있군요


희선

감은빛 2023-03-17 18:34   좋아요 0 | URL
독립운동가의 호라고 하면 좀 무겁거나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어감이 좋아서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희선님. 늘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3-02-25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이름 지을 때 정말 고민많이 하죠. 감은빛님 아이들 이름 진짜 막 궁금해지네요. 누굴까 하면서.... 설마 경성트로이카 인물들은 아니겠죠 하다가 진짜 그럴까 싶기도 하고요. ㅎㅎ
저는 아이들 이름 지을때는 무조건 가볍게 짓자였어요. 뭔가 이름이 좀 대단한 아이들이 그 이름에 눌린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경우를 좀 자주 봐서였던듯요. 그래서 저희집 아이들 이름은 굉장히 가볍습니다. ^^

감은빛 2023-03-17 18:38   좋아요 1 | URL
궁금하시죠? ㅎㅎㅎㅎ
경성트로이카는 아닙니다. 그보다 조금 더 이전에 활동하신 분들이예요.

이름에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긴 해요.
저도 막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아서 이름을 이런 뜻으로 지었다가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계셨는데, 그 이름을 따왔을 뿐이다.
뭐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줬어요.
아이들도 재미있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바람돌이님.
 

오늘


바쁜 하루하루를 지내며 요일만 대충 기억하고 살고 있었다. 날짜 가는 줄 모르다가 어떤 중요한 약속이나 일정이 닥쳐야 '아, 오늘이 며칠이구나.' 하고 깨닫곤 했다. 오늘도 그랬다. 피곤과 감기몸살 기운으로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고 출근했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일을 하다가 문득 오늘이 2월 22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작년 오늘 여기 알라딘에 20220222 라는 숫자가 재밌다는 글을 남겼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북플 앱을 열고 작년에 썼던 글을 열어봤다. 저 숫자 이야기 말고도 자각몽에 대한 내용과 아이들의 코로나 확진 이야기를 담아두었더라. 아, 그랬구나 작년 이맘때 아이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나는 아직 걸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나 역시 걸렸었는데, 그냥 가볍게 지나간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1년 사이에 몸이 좀 으슬으슬한 몸살 증상이 1번 있었는데, 이틀 정도 지나 나았었고, 최근에 감기 기운과 함께 아주 약한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이것도 한 3일만에 나았다. 이 정도가 코로나였을까? 어떤 분들은 후유증으로 한 달 이상 고생을 하시기도 하던데.


어쨌거나 오늘도 2월 22일이다. 작년처럼 20220222는 아니지만, 20230222도 재미있는 숫자이긴 하다. 내가 숫자 2를 좋아해서 유난히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만, 모르고 지나칠 뻔 했던 날짜를 보고 작년에 쓴 글을 기억해 낸 것도 나의 이 재미없는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이자 활력이다. 과연 내년 오늘은 이 날짜를 인식하고 이 글을 썼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을까? 내년에도 또 뭔가 끄적여서 3년 연속 여기 서재에 저 0222 란 숫자에 대한 글을 남길까? 알 수 없지만, 이런 쓸데없는 궁금함을 가지는 것 역시 갑갑한 일상에서 작은 재미가 될 것이다.


다 지나갈거야


요즘 내가 유난히 피곤해보이고 뭔가 안쓰러워 보이나 보다. 선배들과 후배들이 그런 말들을 건네곤 한다. 힘을 좀 내라고. 날개를 펴라고. 좀 위축되어 보인다고. 더 잘 할 수 있는데, 어떤 틀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어떤 말들은 맞고 어떤 말들은 틀릴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어디까지 맞고, 어디부터 틀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다 맞을 수도, 다 틀릴 수도 있다. 그저 나 같은 인간에게도 이렇게 신경써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최근 글에도 썼었는데, 변화가 큰 시기라 고민도 많고 일도 많다. 살다보면 당연히 이런 시기도 있을 수 밖에 없는 거라고, 누구나 한 번은 다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막상 그 과정 안에 있는 사람은 힘들 수 밖에 없고, 언제까지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지치고 힘들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결국은 지나갈 거라는 사실. 이게 영원히 갈 수는 없는 거니까. 일본 만화에나 나올 법한 무슨 타임 루프 같은 것에 걸린 것이 아니라면. 아니 그런 류의 만화를 보면 타임 루프에 걸렸더라도 결국은 방법을 찾아서 다 빠져나오지 않나. 그러니 지금은 충분히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자. 그냥 이런 나 자신을 내버려 두자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끝날 일이면 빨리 기분을 바꾸고 상황을 바꿔버려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여 이 상황을 끝내 버리라는 내 마음의 목소리. 글쎄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괴롭고 힘들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그 다음 목소리는 몰라! 몰라! 다 몰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발 닿는 대로. 상황이 만들어지는 대로 움직일거야 라고 말한다. 안다. 나는 아마 마지막 목소리처럼 움직일 것이다. 내가 평생 겪어본 나라는 인간은 지금까지 늘 그랬다.


7분 늦음


이 글을 시작할 대 적은 것처럼 2월 22일이 0222라는 숫자로 연결되는이야기를 하려고 쓴 글이라 11시 59분까지는 이 글을 완성하고 등록하기 버튼을 누르려고 했는데,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어느새 12시를 넘겨버렸다. 이로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같은 날에 글을 남기려는 계획은 어긋나 버렸다. 내년에는 3년 연속 같은 날에 같은 주제로 글을 올려야지 하는 계획 역시 지금 이 순간 실패해버렸다. 이미 제목으로 적어넣은 숫자 역시 바꿔야 하나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아, 그건 너무 귀찮다. 그냥 올려 버려야지.


밀린 일이 많아서 한 두 시간 더 일을 하다가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급 피곤해진다. 그냥 집에 가야겠다. 내일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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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2-23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는 오늘 2월 22일이었어요,, 저는 날짜를 쓰는데 2월 22일 22년이라고 쓰고 싶은 유혹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아무튼 감은빛님 코로나 요즘 증상이 오래 안 가는 것 같아요.. 코로나이든 아니든 그건 이젠 별로 안 중요한 것 같구요,, 건강하셔서 기뻐요. 암튼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시고 집에 들어가셨죠??^^;;

감은빛 2023-02-24 10:29   좋아요 0 | URL
라로님. 저도 잠시 작년 생각하다가 그럼 2222년은 언제 오나?
이러다가 아, 이건 200년 후!
인간의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해도
이미 반 백살 가까이 살아버린 저로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연도였군
하고 깨달았습니다.

2월이 이제 며칠 안 남았네요.
3월이 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 유난히 더 아쉬운 요즘입니다.

페크pek0501 2023-02-2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의 오늘 어떤 글을 올렸는지 북플을 보고 알았어요. 북플의 좋은 기능 같아요.
글 제목 보고 안 건데 2, 라는 숫자가 많네요.
좋은 선후배들에게 위로를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 지나갈 것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관점의 문제


올해는 일터에서 변화가 많은 시기이다. 변화가 많으니 논의할 거리도 많고 논의해야 할 자리도 자주 열리며, 함께 논의해야 할 사람들도 많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여러 이유로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쉽게 동의와 합의를 이뤄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의 언어와 관점을 고집하며 다른 의견만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들을 자주 겪으면 정말 피곤해진다. 분명 큰 틀에서는 다른 의견이 아닐 수 있는데, 사소한 부분에서 집착하다보면 그 차이가 커 보이기도 한다. 바꿔서 맞출 수 있는 분도 있고, 긴 논의 과정에서 이미 조율해온 의견이기 때문에 쉽게 수정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누구 하나 틀린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을 아마 없을 것이다. 다른 의견이 있을 뿐. 그 다른 의견을 어떻게 취합하여 최선의 방안을 만들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가끔은 소위 말하는 '급'을 따지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이나 의견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지위를 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아무리 옳은 말을 하고 아무리 좋은 의견을 제시해도 그 사람의 지위가 낮으면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 거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다 있구나 싶다.


물론 나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완벽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관점에서 어떤 문제 혹은 어떤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무언가를 끝까지 고집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있다. 가능하면 서로 맞춰가는 것이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목적이라고 믿으니까.


힘 빠지는 날


요즘 일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행정적인 업무들이 엄청 몰리는 시기이고, 앞서 언급했듯이 논의할 내용들이 많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매장에서도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생겨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업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은 다른 방법을 몰라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담배를 찾게 된다. 아마 4년 정도 거의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평소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 일주일에 한 두 개비 피우면 많이 피운 것이었으니.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반 갑 가까이 피울 정도로 양이 늘었다. 담배 한 갑을 사면 예전에는 한 달 정도 지나도 다 피우지 못했는데, 요즘은 이틀을 못 가서 또 담배를 사야 한다. 이런 모습을 스스로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다시 담배를 좀 줄여야지. 완전히 끊지는 못 하더라도 양은 좀 줄여야지 생각을 하는데, 늘 생각만 하게된다. 또 스트레스 요인이 발생하면 나도 모르게 흡연 구역을 찾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궁극적인 해답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성격이 되어야 할텐데, 사람 성격이 그리 쉽게 바뀔 리가 없으니 그것도 문제다. 이래저래 문제만 발견하고 해결책은 찾지 못하는 구나.


이래저래 우울한 날인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 두 분이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찾아오셨다. 요즘 내가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많이 힘들다는 걸 짐작하신 듯하다. 15분 후면 매장을 닫고 퇴근이다. 이 분들은 벌써 한참 전에 오셔서 매장 문 닫을 때까지 기다려 주시면서 매장 손님이 오면 대신 응대도 해주시고, 계산도 해주시고 계시다. 이런 분들이 주변에 계신 걸 보면 나는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 우울한 기분은 맛난 것을 먹는 걸로 날려버려야지. 이제 주말이니 푹 쉬고 기분 전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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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일하다보면 진짜 스트레서는 다 사람에게서 오는거 같더라구요. 일은 많으면 그냥 혼자 욕해가면서 하면 돼요. 그것도 스트레스가 받기는 하지만 그리 오래가는게 아니구요.
그래도 또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건 사람이더라구요. 같이 식사하신 선배님들과 스트레서 받게 하는 인간들 욕 실컷 하시고 푸세요. 전 그러면 좀 풀리던데요. ^^

감은빛 2023-02-21 19:50   좋아요 1 | URL
그렇죠. 바람돌이님.
스트레스는 항상 사람들에게 가장 쎄게 오는 것 같아요.
이 글은 썼던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맛있는 걸 사주신 선배님들 덕분에 쌓인 스트레스를 잘 풀었는데, 지금 화요일 저녁에는 또 스트레스가 쌓였네요. ㅎㅎㅎㅎ

이번 주 정말 바쁜데, 감기몸살이 와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네요. 늘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가는 게 인생 아이가. 이러고 위로해봅니다.

희선 2023-02-18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이 풀어주기도 하는군요 다행이네요 선배 두 분하고 맛있는 거 드시고 이야기했다면 스트레스 풀리셨겠네요 평소에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은빛 님 주말에는 푹 쉬시기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3-02-21 19:53   좋아요 0 | URL
네, 희선님. 고맙습니다.
말씀처럼 지난 금요일에 두 선배님 덕분에 스트레스 잘 풀었습니다.
대신 또 이번 주의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고 있네요.
평소에는 어떻게 풀어야할지 정말 고민이네요.
여름에는 퇴근하고 샌드백을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는데,
겨울에는 찬 바람 때문에 샌드백을 걸어둔 앞 베란다 문을 아예 막아두었거든요.
날 풀리기 전에는 샌드백을 두드리고 싶어도 못 하니 더 아쉽네요.

yamoo 2023-02-18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을 따지는 인간들이 있더이다. 그런 인간들은 아예 상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빌런들 때문에 일터에서 팀이 와해되었습니다. 빌런 하나 때문에 팀 전체가 와해된다는 걸 경험하니 정말 화가 많이 납니다. 이걸 하라고 가르쳐주면 그때 뿐이고 능력이 안되 못한다고 병가를 내 버리고 튑니다. 자기 업무는 나몰라라하고 인수인계도 없죠. 이런 인간들은 바로 짤라야하는데, 이상하게도 감싸고 도는 놈들이 있습니다. 하하 호호하고 놀다가 업무 자리만 앉으면 우울증이 온다네요...이런 인간들이 옆 팀에 2명씩이나 있습니다. 이게 뭔 짓인지..

감은빛 2023-02-21 19:5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야무님.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저는 정말 그 사람 말을 듣고 놀랐어요. 지금 시대에도 아직 그런 사람들이 있구나.

야무님 이야기 듣고 정말 화가 나네요.
저도 한 3년 전쯤 비슷한 빌런 때문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에휴! 얼마나 힘드실까요!
힘 내세요. 야무님.

페크pek0501 2023-02-2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관계에서의 금기 사항 -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버릴 것.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스트레스엔 먹는 게 최고입니당~~~ 저는 기분이 그럴 때 초콜릿이 당겨요.
 

사람 목숨이라는 것에 대해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 일대에 진도 7.8 강진과 90여 차례의 여진이 일어났다. 튀르키예 뿐 아니라 시리아 북서부에서도 엄청난 피해가 났다. 5,600여 개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수만명의 인명피해가 예상된다. 현재 집계된 것만 약 4천여 명의 사망자와 2만명 이상의 부상자가 난 것으로 추정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 규모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는 무시무시한 한파로 인해 대만에서 146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원래 열대기후 지역이라 한파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제트기류가 출렁이며 북극 한파가 그대로 대만을 덮쳤기 때문에 일어난 재앙이었다. 어디 그 뿐일까. 세계 곳곳에서 십여 년 넘게 끊이지 않는 끔찍한 폭염, 한파, 가뭄과 산불, 폭우와 폭설이 정상이 아님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글자 그대로 '살인적'이란 수식어 밖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다.


이제 한 달하고 4일만 지나면 일본 동일본 대지진 12주년이 된다. 지진해일에 이어 쓰나미가 덮쳐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가 일어난 날이었다. 4기의 원자로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건물이 터져나가서 12년째 방사능 물질이 공기 중으로 새어나오고 있으며, 뜨거운 핵연료 덩어리를 어떻게 해서든 식히기 위해 꾸준히 쏟아부어서 방사능에 오염된 바닷물을 더는 저장할 공간이 없다고 일본 정부가 방사능 오염 해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전세계를 위협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장담하건데 일본 정부는 적어도 일이백년 안에 저 터져나간 4개의 핵발전소 건물을 막는 것조차 못할 것이다. 참고로 86년에 있었던 우크라이나(당시 러시아) 체르노빌 핵폭발 사고 당시에는 약 6개월 후에 석관을 만들어 덮어서 방사능 물질이 공기 중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막았었다. 그 와중에 동원된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머어마하게 희생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생각한다. 콩고 내전, 시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내전 등 끊임없는 전쟁들을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벌어진 에너지 위기와 식량 위기 역시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다. 난방비 폭탄이란 말이 요즘 유행인 것 같은데, 폭탄은 언제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가격이 저렴한 나라에서 저 폭탄이란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에너지 공급 구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과거와 비교해 폭탄처럼 느껴지는 그런 요금을 맞이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전염병이 있다. 이는 기존에 알던 전염병이 아니라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다. 인수공통 전염병이지만, 인류에게 전파된 적이 없다가 우연한 접촉으로 인해 새로운 종을 숙주로 맛본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전파되고 계속 진화해 나가며 끊임없이 인류를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는 약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지만, 앞으로 또 언제 새로운 변종이나 전혀 새로운 종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 평균 온도 상승으로 인해 열대 지역에 서식하던 수십여 종의 박쥐들이 온대 기후 지대였던 중국 남쪽으로 이동했음이 어느 과학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


지금 이 순간 지구촌 어딘가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거나 죽어가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해본다. 나 역시 이 위기의 시대에 절대 안전하지 않다. 언제 어떤 일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공중 화장실


한 2주쯤 전이었다. 어느 선배가 불러낸 모임에 나가 놀다가 화장실에 갔다. 당연히 남자 화장실이었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풀어헤친 긴 머리가 너무 산발이 된 것은 아닌지 살피고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문을 열었고, 잠시 후 앗! 하고 어느 남성이 놀라서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곧 죄송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사과했다. 그때까지 나는 거울에서 시선을 돌리려다가 잠시 멈춘 상태여서 아직 상대를 보지 않고 있었다. 상대방 남성 역시 내 뒤통수만 보고 여성이라 착각한 상태에서 아직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휙 뒤를 돌아 보려다가 잠시 멈춘 이유는 만에 하나 상대가 내 얼굴을 보고도 남성임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그랬다. 


사실 2년 가량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가끔 상상한 적은 있었다. 공중화장실에서 긴 머리카락 때문에 여성으로 오해받아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저 때 이전에 그런 오해 때문에 뭔가 일이 생긴 적은 없었다. 간혹 누군가가 오해를 했을지는 모르지만, 내 옷차림이나 모습을 통해 여성이 아님을 금방 깨닫지 않았을까. 그럼 그 날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평소 출근할 때는 머리칼을 묶고 다니지만, 쉬는 날엔 묶지 않고 풀고 다니는데, 그날은 쉬는 날이었다. 답답하게 묶고 싶지 않았다.


암튼 그 남성은 화장실 밖으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고,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빠르게 화장실 밖으로 발을 내디디며 "아닙니다.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 남성은 내 목소리를 듣고, 스치듯 내 얼굴을 보고 '이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성큼성큼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꼼짝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직접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도 한동안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중에 그는 화장실을 다녀와 자신의 일행인 남성 친구에게 돌아가 목소리를 낮춰 내 이야기를 했다. 자리가 멀어서 그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과 몸짓은 분명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라고 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욕을 했을까? 아니면 그냥 놀랐다고만 표현했을까?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건, 그 이야기를 그리 길게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본의는 아니지만, 내 머리스타일 때문에 혹시 자신이 실수로 여성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줄 알고 놀랐을 그 남성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나도 조금 놀랐기에 그 자리에서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 것 또한 미안한 일이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그때는 확실히 상황을 설명해야겠다.


잠과 실수의 상관관계


1월부터 3월까지 세 달은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바쁜 시기라서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힘들다. 야근도 많고 시간에 쫓겨 뭔가 해야할 일들도 많다. 지난 주에 그렇게 시간에 쫓겨 연속으로 야근을 하고 밤새 일을 하면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몇 가지 실수를 했다. 그리고 어느 회의 자리에서 그 실수들을 지적 받았다. 여러 사람들이 다른 실수들을 집어냈는데, 그때마다 정말 부끄러웠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바로 깨닫고 바로잡았을만한 실수들이었는데, 그땐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보이지 않았다.


심리학자 김경일 선생이 책과 영상들에게 계속 반복해서 하는 말이 사람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면 평소라면 하지 않을 나쁜 실수들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읽고 들었고, 직접 경험해서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로 일을 하곤 한다. 나라고 좋아서 그러겠나.  


지금도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8시까지 매장을 보느라 문서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심지어 7시부터 8시까지는 매장 한쪽 테이블에서 회의를 하면서 손님이 오면 응대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8시가 넘어 매장 문을 닫고서야 비로소 문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글을 좀 쓰다 말고 잠시 쉬어야지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마치고 나면 원래 쓰던 문서에 좀 더 집중이 잘 될 것이다. 평소에도 그랬으니까. 오늘은 밀린 다른 일들에 더 손을 대지 않고 아까 쓰뎐 것만 마치고 12시 전에 집으로 가야겠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떠오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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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7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7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3-02-08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장실 에피소드는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너무 놀라셨겠어요^^;;;

오늘은, 감은빛님, 푹 숙면 하시길....

저는 이 밤에 키보드랑 놀고 있네요^^;;

감은빛 2023-02-17 19:0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얄라알라님.
저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제 뒷모습만 본 그 남성분이 훨씬 놀라신 것 같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3-02-24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뿐만이 아니라 먹지 않아 배고픈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날카로워집니다.
수면욕과 식욕, 이라는 기본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약해지나 봅니다.
그러니까 잠을 못 잤거나 배고픈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
 
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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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특한 전개와 시점 변화


하나의 살인 사건과 이 사건 당사자들(피해자와 피의자)의 친구와 가족인 세 명의 여성들 이야기. 살인 사건을 풀어가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은 아니다. 그 사고로 인해 인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은 이들의 이후 삶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 당시 이야기는 담고 있지 않다. 살인 사건이 나기 전의 상황은 세 명의 목격자(한만우, 신정준, 윤태림)가 경찰 조사를 받았을 당시의 내용으로 일부 담고 있는데, 실제로 담긴 내용은 두 사람(한만우, 윤태림)의 내용이고, 더 정확하게 따지면 한만우의 목격담만 담겨있고, 윤태림의 목격담은 그 중 가장 논란의 여지가 되었던 쟁점인 옷차림에 대한 부분만 담겼다.


이 책을 다 읽고 다른 이들의 평들을 여럿 찾아 읽어 봤는데, 두 가지 특징을 깨달았다. 일단 평이 안 좋고 별점이 낮은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대체로 살인 사건 자체가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잘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또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인 시점이 계속 바뀐다는 점 때문에도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려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본질적으로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살인 사건 자체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독자들의 평은 크게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화자는 세 명이다. 피해자 김혜언의 동생인 다언, 피해자와 같은 반 친구였던 김상희, 역시 피해자와 같은 반 친구이자 목격자 신정준의 여자친구였던 윤태림 이렇게 세 명이다. 독특한 점은 이 세 명의 1인칭 시점이 번갈아가며 반복된다는 것이고,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각 장의 화자가 누구인지조차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 점이 이 소설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한다.


반면 그 점이 이 책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세 명의 서로 다른 화자가 1인칭 시점에서 펼쳐가는 이야기는 그저그런 뻔한 전개를 예방하는 조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의를 기울여읽지 않으면 각 장의 화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에 독서에 더 깊이 몰입하도록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 점이 이 소설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내 기준에서 가장 좋지 않은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사건 이후의 이야기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살인 사건 자체는 이 이야기에서 비중이 별로 없다. 이야기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이야기를 주욱 그려나가고 있다. 처음에 나는 이 이야기가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 점은 다른 독자들도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유독 평이 좋지 않고 별점이 낮은 평들을 읽으며 그 점을 느꼈다. 


우리는 뉴스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한다. 그렇게 사고가 일어난 시점에서 며칠 혹은 몇 주 정도 그 사건에 관한 소식들을 접하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자연스레 그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 간혹 법정에서 어느 정도의 형량이 구형되고 선고되었는지를 나중에 언론에서 다루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 잠시 그 사건을 떠올리고 다시 잊는다. 


이 이야기는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이 그 사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고 있다. 결코 그 사건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 평생 그 사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대부분이 잠시 관심을 두었다가 잊어버리곤 하는 그 사건들을 남은 생애 내내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사회 구조와 복수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은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을 내게 건냈던 큰 아이도 그래서 처음에 한번만 읽었을 때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읽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읽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머리 속으로 핵심적인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일단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살인 사건의 진범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건 한 번 밖에 안 읽어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궁금했던 건 복수였다. 이 점은 내 기준에서 가장 쉽게 읽히지 않았던 윤태림 시점의 이야기와 다언 시점 이야기 초반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가 조금 더 생각을 하다가 이해했다. 그리고 내 생각과 큰 아이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면 작가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사회 구조의 모순과 불합리한 현실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불러도 좋고, 권력과 돈을 가진 자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쉽게 처벌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도 좋겠다. 어쨌든 이 소설은 그런 현실의 모순을 잘 그리고 있다.  


아쉬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피해자 김혜언에 대한 내용이다. 아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는 점,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엇다는 점, 속옷을 잘 입지 않았다는 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점 외에 더 알 수 있는 내용이 없다. 살인 사건 역시 피해자가 속옷을 입지 않고 집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집을 나섰다가 피해를 당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야기 초반에 이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옷차림 부분에 작가가 이토록 큰 비중을 부여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아름다운 여성이 속옷을 입지 않은 부주의가 살인의 이유라고 말하는 듯해서 이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해자는 속옷을 잘 챙겨 입고 부주의하게 행동하지 않은 여성이었더라도 그런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을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현실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피해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점, 현실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울만큼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점, 속옷을 입지 않고 다니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깨닫지 못할 정도로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 등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또 복수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이었다면 그렇게 손쉽게 복수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하고 철저하게 점검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늘 불확실한 무언가에 의해 의외의 일들이 벌어지곤 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설사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긴 시간 그 진상을 들키지 않고 살아갔을 리 없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다언이 어떻게든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듯이 그 복수 역시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 당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목 이야기를 해야겠다. 2016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단편으로 실었을 때 이 이야기의 제목은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였다. 이야기의 분량을 조금 더 늘려 단행본으로 내면서 제목을 [레몬]으로 바꿨다. 이야기의 중간에 레몬과 복수라는 단어가 나오며 제목의 의미를 시사해주기는 하지만, 독자로서는 선뜻 이 이야기를 대표하는 단어가 레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단어는 이 살인 사건과 그 이후 삶의 과정 그 무엇과도 이미지가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아,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피해자가 죽은 이후에 피해자의 어머니가 이름을 바꾸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는 한 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이면서도 너무 사족처럼 느껴진다는 이중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경상도 사람이라 해은이라는 이름이 혜언으로 바뀌었다는 설정은 좀 많이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지금의 우리 아버지 세대 이전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졌겠지만, 혜언이 나이 대의 이야기로는 많이 어색하다. 그러니까 단순히 출생신고가 잘 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꾸 부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전혀 자연스럽제 못하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딸을 잃은 엄마가 집착스럽게 이름을 고치는 장면들의 처절함과 처연함은 잘 그렸다고 느낀다.


큰 아이가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건네준 책이 무척 얇고 글씨도 크길래 대략 1시간 반이면 다 읽겠구나 싶어서 읽기 시작했고, 1시간 40분 정도 걸려서 다 읽었다. 몰입해서 읽으며 재미있고 좋았던 점들도 제법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쉬움도 많이 느꼈다. 아마 내가 가진 선입견도 있었을 것이고, 큰 아이의 설명과 이 책에 대한 여러 평들도 그런 느낌을 갖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런 아쉬움들은 달리 보면 이 이야기의 장점이 될 수 도 있음이 분명하다. 아마 내가 원한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분명 좋은 이야기와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짧지만 재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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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2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리뷰네요.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피해 여성이 아주 아름답고 속옷을 입지않았고 같은 부분은 많이 거북하네요. 여성작가임에도 피해여성을 묘사하면서 저렇게 묘사하는거 좀 많이 거슬릴듯해요.

감은빛 2023-02-07 22:5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이 소설 평이 많이 갈리더라구요.
상대적으로 나쁜 평이 더 많던데,
저는 좀 아쉽고 안타깝다는 생각이었어요.
분명 확실한 장점이 있는데,
그 장점을 잘 드러내지 못한 구성이 된 것 같아서요.

피해자에 대한 묘사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커요.
작가의 의도가 꼭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페크pek0501 2023-01-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여선 작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예요. 일단 난해하지 않아 좋아해요.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죠. 내용 면에서 신비스러운 부분도 있고요. 어느 작가나 장단점이 있겠지요...

감은빛 2023-02-07 22:51   좋아요 0 | URL
페크님. 권여선 작가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사실 이 책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yamoo 2023-02-0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여선 작가가 좋다는 입소문은 여기저기 들렸습니다만...아직까지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네요..
2시간이 채 안결려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니...
리뷰를 읽어보니 저는 안 읽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입니다..ㅎㅎ

감은빛 2023-02-07 22:53   좋아요 0 | URL
야무님. 이 책은 분량도 적고 글씨도 커서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 읽어요.
다만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는 조금 있어요.
좀 묘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확실한 장점과 또 그만큼 확실한 단점이 뚜렸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