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따라잡기

 

요즘 운동의 재미에 한창 빠져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번, 하루에 삼사십분, 고강도로 짧게 운동하고 휴식을 많이 가지면서 하다보니 크게 몸에 무리가 가지도 않았고, 아주 피곤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운동을 하는 날엔 술 약속이 없으니 폭식과 폭음도 많이 줄었다.(물론 여전히 자주 술을 마신다.)

 

대개 헬쓰클럽에 가서 프리웨이트로 역기를 들었지만, 가끔은 집에서 타바타 인터벌 음악을 틀어놓고 Tabata Something else 를 했다. Push up, Sit up, Squat, Pull up 4개의 운동을 20초 동안 미친듯이 빠르게 하고, 10초간 쉬고, 다시 20초간 미친듯이 하기를 8회 반복하는 것이다. 하나의 운동에 각 4분씩 총 16분이 소요된다. 이렇게 16분 운동하고 나서 바로 쓰러지지 않으면 제대로 미친듯이 하지 않았단 뜻이다. 집에는 풀업을 할 수 있는 철봉이 없기 때문에 풀업 대신, Burpee 를 했다. 맨 처음엔 각각의 운동을 4분간 8라운드를 뛰고 1~2분 쉬다가 다음 운동을 8라운도 뛰는 방식으로 했다. 그랬더니 6라운드 이후로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서 8라운드엔 거의 몇 개 하지도 못한 채 4분이 지나버렸다. 다음에는 4개의 운동을 차례로 한번씩 번갈아가면서 했다. 2라운드를 돌고 나니(즉 8분을 뛰고 나니) 도저히 더이상 운동을 계속 할 수 없어서 대략 2분간 물도 마시고 쉬었다가 다시 다음 라운드를 뛰었다. 즉 도중에 3회 2분씩 휴식을 해서 총 22분 동안 운동을 했다. 이번에는 운동을 번갈아가며 했더니 후반부 6, 7, 8라운드에도 어느정도 횟수를 채웠다.

 

이렇게 타바타 썸씽엘스를 하고 이틀 후에 또 하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더니 확실히 운동능력이 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록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운동을 하다보니 몸이 확실히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몸이 무거운 느낌으로 살았는데, 가벼운 느낌이 드니 좋았다. 몸이 가벼우니 걸음도 빨리지는 듯 하고, 뜀박질도 더 잘 되는 듯 했다.

 

하루는 거래처 면담을 가려고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문득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떠올라서 부랴부랴 그거만 해놓고 나가야지 했는데, 또 전화를 받고 어쩌고 하다가 시간이 확 지나가버렸다. 면담 시간에 늦었기에 급하게 나왔는데, 눈 앞에서 버스가 지나가버렸다. 저걸 놓치면 적어도 15분 이상은 기다려야 할텐데, 내 다급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버스는 점점 멀어지고, 나는 신호등에 막혀 발을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저 멀리서 버스도 신호에 걸려 멈춰섰다. 가만, 여기서 다음 정거장까지 얼마나 되려나? 한번 뛰어보자 싶었다. 신발끈을 조이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마치 출발선에 선 단거리 선수처럼 몸을 긴장시켰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마자 몸은 튀어나갔다. 점점 버스가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버스도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다. 저 만치 다음 교차로의 보행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사람들이 차도로 내려서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숨을 한 차례 고르고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달렸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블럭을 열심히 달렸고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려는 버스를 간신히 잡아 탔다. 버스를 따라잡은 것이다. 쓰러지듯 좌석에 앉는데 온 얼굴과 목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옷도 마치 비를 맞은 듯 젖어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무릎 부상

 

그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 비탈진 내리막길을 열심히 달려내려가다가 갑자기 아스팔트 균열에 발이 걸렸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내 몸이 중심을 잃고 얼굴부터 땅바닥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눈 앞에 땅바닥이 확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안경이 걱정되었다. 새 안경을 맞추려면 제법 돈이 나간다! 안경만은 살려야 한다. 확 다가오는 땅바닥을 손바닥과 무릎으로 땅을 쳤다. 몸을 홱 돌리면서 어깨로 떨어지는데 성공했고 곧이어 내리막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 안경과 얼굴은 살렸구나! 안도의 순간은 잠시였다. 아직 일어나지 못한 채 감각이 없는 손바닥과 무릎을 살폈다. 손바닥엔 땅을 치면서 시꺼먼 피가 맺힌 물집이 생겼고, 구르면서 긁힌 상처가 여러곳에 생겼다. 무릎은 일단 바지가 찢어지면서 사이로 빨간 피가 흘르고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저 위쪽에서 차가 내려왔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비켜줬다. 절뚝절뚝 한 걸음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찢어진 바지를 갈아입고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다시 집을 향했다.

 

상처 부위를 씻고 나니,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온 아내가 놀라며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설명할 힘도 없어서 그냥 넘어졌다고 답했다. 아내는 구급함을 가져와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였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고 컸다. 바지를 갈아입고 다시 출근했다. 절뚝절뚝 계단을 내려가는 일부터 엄청 힘들었다. 지하철 역이 엄청 멀게 느껴졌다. 평소 뛰어다니던 시간에 비하면 서너배 가량 늦어졌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무릎의 상태를 살펴보니 뼈나 인대에 문제는 없어 보였다. 예전에 무릎을 다친 경험이 많아서 그런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만 상처가 커서 아무는데 시간이 걸릴 듯 했다. 게다가 출퇴근과 거래처 방문 등의 돌아다닐 일이 많아서 회복이 더딜 것이 분명했다. 대략 2주쯤 걸리려나? 아무리 트롤의 치유력을 가졌다고 불리는 나라고 해도 2주는 족히 걸릴 것 같았다. 하루에 두세 차례 소독하고 드레싱을 갈아주는 일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마음은 빨리 걷고 싶은데 절뚝절뚝 걸음이 무거운 것도 무척 힘들었다. 한 쪽 다리로만 걸어다니다보니 그쪽 장단지에 알이 배겼다. 다친 다리는 무릎을 굽힐 때마다 상처가 벌어져서 피가 배어나왔다. 바지 무릎이 피에 물들었다.

 

그렇게 1주일쯤 지나자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상처엔 크고 두꺼운 딱지가 앉았고, 움직이다보면 딱지 사이사이가 벌어지며 피와 진물이 배어나왔다. 그래도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회복되었다. 이제 대략 1주일만 더 지나면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뛰거나 운동을 하지는 못하겠지.

 

처음 무릎의 상태를 파악했을 때, 든 생각은 이제 운동을 못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이제 막 운동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는데, 지금 몇 주간 운동을 쉬어버리면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가버릴까봐 두려웠다. 역기의 무게를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 새로운 자세를 익히기 위해 여러번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자세가 좋아졌다 느껴질 때의 즐거움, 운동을 한 다음 날 온 몸이 적당히 뻐근한 쾌감 등이 한 순간에 깨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모임에서 읽은 책들

 

다리가 불편하니 책이라도 좀 읽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내 몸은 그 전보다 더 바빴다. 회의와 스터디 모임과 사회를 봐야 할 행사 등이 연달아 생겼고, 동네 이웃들을 모시고 집들이도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연재하는 동네 신문에서 만든 행사에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도 받았다. 다리가 아파 운동은 못하건만 자꾸 술자리가 생겨서 마구 먹어대고 있었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는 법칙이 있었던가? 이런저런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일들이 겹쳐 찾아왔다. 일이 잘 해결이 안되니 짜증이 났고, 자연 자꾸 술이 땡겼다. 할일은 많고, 다리는 불편하고,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돈은 없다. 에이! 얼른 다리가 나아서 운동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다.

 

 

요즘 공부모임에서 '교육'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첫 번째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페다고지].

 

파울루 프레이리 선생의 실천하는 삶이 느껴지는

훌륭한 책이었다.

 

한창 바쁜 시기여서 내 발제부분 위주로 읽고,

나머지는 대충 훑었다.

시간 날때 꼭 다시 읽어야 겠다.

 

 

 

 

 

다음은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

이 분의 탁월한 분석과 시선은 분명 대단하다.

그러나 이 책의 기저에 깔린 전제들이 무척 불편했다.

 

'민들레'처럼 좋은 출판사에서

왜 이런 책을 냈을까 무척 궁금하다.

공교육에 복무하는 교사들에게는 좋은 책일 수도 있겠다.

 

요즘 [진격의 거인]의 작가가 극우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데,

텍스트가 깔아놓은 전제를 주의해서 읽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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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3-10-2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여러가지 중독...예를 들면 커피 중독, 컴 중독 등등...을 경험해 봤지만,
운동중독은 아직이어서 말인데요, ㅋ~.
이거 이거 완전 심각하군요~--;

한번 병원에 가셔서 도수정복이랑 근재교육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참에 운동중독에서 독서중독으로 종목을 갈아타 보시는 것도...ㅋ~.

감은빛 2013-11-01 14:32   좋아요 0 | URL
양철님 덕분에 '도수정복'과 '근 재교육'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어요.
염려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행히 제 무릎은 인대와 근육 손상이 아닌 단순 상처예요.
상처가 좀 크고 깊어서 문제였지만,
이젠 거의 아물어가고 있어요.
평소 걷는데에는 큰 무리가 없고,
뛰거나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쪼그려 앉는 동작은 아직 잘 안되네요.
이것도 상처가 완전히 아물면 괜찮아지겠지요.
이제 2주쯤 되었는데, 한 열흘쯤 더 지나면 다 낫지 않을까 싶어요.

독서중독 좋은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

2013-10-30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1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4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1-0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에 한참 열중하고 있어야 할 때에 몸을 다치면 참 안타깝죠.그렇다고 몸까지 상해가면서 운동해서는 안 되고...
요즘은 크로스핏도 그렇고 타바타도 그렇고 서킷 트레이닝의 변형이 대세더군요.

감은빛 2013-11-05 15:17   좋아요 0 | URL
네, 한동안 운동을 못해서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느낌이었어요.
무릎이 어느정도 나아지고 있어서 이젠 슬슬 운동을 시작해볼 생각입니다.

한 가지 운동만 하는 것보다 서너개의 운동을 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크로스핏의 WOD를 보면 대개 3~4개의 운동을 순환하는 것이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3-11-05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친 부위가 다 나을때까지는 운동을 쉴 것을 권합니다. 자칫하면 몸이 비뚤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오래 고생하게 됩니다. 한쪽 무릅에 의지해서 걷느라 고생하셨다는 글을 보니까 더욱 걱정스럽군요. 다치지 마세요.ㅎ

감은빛 2013-11-05 15:20   좋아요 0 | URL
저는 오래전에 오른쪽 어깨를 다친 적이 있는데,
그 덕분인지 상체 근육이 전반적으로 비대칭입니다.
몸이 삐뚤어진다는 그 표현이 어느정도 맞는 것 같아요.
역기를 들어올릴 때마다 한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자세 때문에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예요.

무릎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완치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상체 운동 위주로 슬슬 시작해보려구요.

고맙습니다! ^^

transient-guest 2013-11-05 22:06   좋아요 0 | URL
핫! 무릎이군요. 제가 무릅이라고 쓴게 오타인지, 맞춤법을 틀렸던 것인지 기억이...ㅎㅎㅎ 천천히 꾸준히 운동하세요.

감은빛 2013-11-07 14:55   좋아요 0 | URL
ㅍ과 ㅂ의 위치가 상당히 멀어서 단순 오타는 아닌 것 같은데요. ^^
 

 

달달한 다방커피

 

처음 커피를 마셨던 것이 언제였을까? 기억나는 건 아직 고등학생때였던 것 같은데, 어느 명절 때 큰집에서 큰어머니께서 대접에 타주신 달달한 커피였다. 설탕을 아주 많이 넣어서 커피인지, 설탕물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인 소위 말하는 다방커피. 대학때는 커피를 별로 안 마셨다. 자판기 커피는 별로 입맛에 안 맞았고, 커피숍에 가더라도 커피보다는 쥬스류를 주로 마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서도 커피는 거의 안 마셨다. 여전히 자판기 커피나 인스턴트 커피는 입맛에 맞지 않았고, 따로 커피를 사 마실 일은 거의 없었다. 연애 하면서 자주 들락거렸던 커피숍에선 늘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마셨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맛보기 시작한 것은 지금의 아내와 만나면서였다. 그 시절에도 나는 아내가 사먹는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원두커피를 조금씩 맛만 보는 정도였긴 하지만 암튼 그때가 커피라는 걸 입에 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아내는 신기하게도 커피를 무척 좋아해서 커피 한 잔에 따라 기분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 커피를 잘 못마셔요. 속에서 안 받더라구요."라고 말하며 입맛에 맞지 않는 커피를 안 마셨다. 그런데 거래처를 돌아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미는 인스턴트 커피와 자판기 커피를 계속 거절하는 것이 귀찮았다. 어떤 분들은 사양하면 막 섭섭해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냥 주는대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그 달달한 커피 맛에 익숙해졌다. 뭐 익숙해지니 그냥 먹을만 하다 싶어 일하다가 입이 심심할 때는 내가 직접 타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사무실에 따로 커피 대신 마실만한 음료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진한 드립커피

 

단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입맛 덕분에 아무래도 다방커피는 영 좋아지지 않았고, 가끔 아내와 함께 간 커피숍에서 마신 아메리카노는 쓴 맛 덕분에 별로였다. 아무래도 난 커피 체질이 아닌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였던가? 아내가 직접 커피를 내려주기 시작했다. 어! 이건 그리 쓰지 않고 고소한 맛이 나네. 커피의 깊고 풍부한 맛을 그제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내가 내리는 커피를 조금씩 맛보면서 원산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향이 좋고 때로는 먹을만 하구나 싶은 정도였다.

 

커피를 아주 좋아하는 한 선배는 매일 커피콩과 분쇄기를 갖고 다녔다. 집과 직장 어디서라도 갓 갈아서 내린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라고 했다. 도대체 커피가 뭐길래 저럴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만 해도 아직 커피의 맛을 다 알기 전이었다.

 

어느 지인이 정성껏 내려준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신 후 내 미각은 커피도 맛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아내가 커피숍을 옮겨다니며 말하곤 했던 커피 맛이 좋다 나쁘다의 의미를 대충 알게 된 것 같았다. 내게도 맛있는 집과 별로인 집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거래처 사람들 혹은 동료들과 커피숍을 들러도 이젠 다른 음료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자신있게 주문했다.

 

그래도 아직은 커피 애호가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아내가 시키면 커피콩을 갈고, 아내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곤 하지만 내가 원해서 커피를 내리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알고보면 커피의 세계도 무척 복잡하고 배울 게 많더라.

 

 

 

 

 

 

 

 

 

 

 

 

 

 

 

커피의 역사를 알고 마시면 또 다른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전에는 커피에 관심이 없었던 만큼 커피의 역사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서양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음료였나보지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것은 서양 사람들이 아닌 이슬람 사람들이었다. 아! 나는 이렇게도 교양이 부족한 사람이었구나.

 

이 책은 커피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아주 흥미진진하다. 커피라는 하나의 물질을 주제로 중세 이슬람의 수도원과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을 받은 오스트리아 빈의 성벽과 사치와 낭비가 절정에 이른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 등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그야말로 소설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다고 할까? 이번에는 커피가 나를 어느 시대, 어느 나라로 데려갈지 궁금해서 도저히 책에서 손을 떼기 어렵다.

 

이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맛있는 커피가 먹고 싶어진다. 아니 어디선가 커피 향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젠 커피 한 잔을 받아들면 나도 모르게 쉐호데트 수도원 평화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또 어느 때엔 투르크 군의 포위망을 뚫고 폴란드 군을 데려온 영웅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뿐인가 프랑스 파리 어느 구석 커피숍에서 혁명의 기운에 도취된 시민이 되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명 책 한 권을 읽고 있을 뿐인데, 이 책을 알기 전과 후의 커피 맛이 다르다. 커피는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코와 입으로 향과 맛을 즐기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커피에 녹아 있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마시는 것이 아닐까? 따뜻한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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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0-2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향 가득한 이 글을 그냥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도리는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감은빛 님처럼《커피의 역사》를 읽고 싶은 계절입니다. '커피의 역사'는 이 책 저 책에서 참 자주 만나게 되는 '단골손님'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가끔 듭니다.

* * *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카파라는 지역에서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1,000년 뒤 커피는 볶이고 갈려 아랍인들의 음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해마다 수백만톤의 커피가 재배된다. 수확물의 거의 절반이 소비지로부터 지구 반 바퀴나 떨어져 있는 브라질과 콜롬비아에서 생산된다....... 커피는 살아남았지만 원산지가 아닌 이국땅에서의 불안정은 경제를 계속 위험속으로 몰아넣었다. 1890년대부터 '커피 대통령'들이 브라질을 통치했다. 공급과잉과 가격폭락에 이은 수확 실패는 실직과 혁명의 원인이 되었고, 모든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전투 사이의 회복기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 스티브 존스, 『진화하는 진화론』중에서

감은빛 2013-11-01 13:58   좋아요 0 | URL
그쵸? 커피 향이 참 좋게 느껴지는 계절이네요. ^^

커피의 역사 이야기가 자주 만나는 단골손님이로군요.
인용해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낭만인생 2013-10-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읽고 싶은 책입니다. 평이 좋아 리스트 목록에 올려 놓겠습니다.

감은빛 2013-11-01 13: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낭만인생님.
가을에 딱 어울리는 책이예요.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3-10-2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페이스북에서 보고 사 놓았는데 아직 읽지를 못했어요.
안나 카레니나를 느릿느릿 읽는라.
미시사는 늘 조심스럽게 읽어야하지만 너무 흥미로와서 언제나 관심이 가요.
다 읽으면 저도 후기 남겨야겠어요.
참, 받아보니 책 모양새도 마음에 들어요~

감은빛 2013-11-01 14:00   좋아요 0 | URL
모리님. 벌써 사셨군요! 고맙습니다!
후기 기대할게요. ^^
 

 

어지럽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경찰이 대규모로 투입되었고, 한전은 공사를 강행하려 한다. 한전 본사 앞에는 무기한 단식 농성장이 꾸려지고, 오늘 저녁 8시엔 탈핵버스가 밀양으로 출발한다. 사정상 내려가지 못하는 분들은 저녁 7시 반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예정이다. 어제 집 이사를 했고, 수많은 짐들을 옮겨만 놓았을 뿐, 아직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풀어놓지 못한 나는 그 촛불조차 함께 들지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무겁다.

 

지인 한 분이 SNS에 이렇게 썼다. 수많은 일정과 복잡한 머리 때문에 죽을 것 같았는데, 다 내던지고 밀양으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그랬더니 죽을 것처럼 아프던 머리가 거짓말처럼 싹 나았다고. 그 글을 읽으며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부러웠다.

 

해야할 일들, 맡겨진 일들, 멈춰버린 일들, 놓쳐버린 일들, 하고 싶은 일들 수많은 일들이 머리속에서 얽혀서 돌아간다. 무엇 하나 제대로 처리해내지 못하고, 힘겹게 겨우 버티고 있다. 어지럽다. 이 모든 일들 다 던져버리고 그냥 확 밀양으로 내려가고 싶다.

 

 

무겁다

 

눈꺼풀이 무겁다.

머리가 무겁다.

어깨가 무겁다.

팔이 무겁다.

다리가 무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무겁다.

 

 

바빠도 책 욕심은 줄지 않아

 

통 책을 읽지 못했다. 이사 준비 덕에 책을 왕창 버리거나 파느라 책 제목과 표지는 엄청나게 많이 봤다. 사놓고 오랫동안 읽지 못하고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책들을 보면서 '이젠 정말 꼭 읽을 책만 사야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나는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오가며 주문할 책을 고민하고 있다.

 

 

 

 

 

 

 

 

 

 

 

 

 

 

 

 

에이 모르겠다. 이젠 이사도 했으니 부담없이 질러 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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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3-10-0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문제가 잘 해결되셨군요.
다행이예요~
정말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찌할바 모르겠는 날들입니다...

감은빛 2013-10-07 14:10   좋아요 0 | URL
네, 내용증명을 보냈더니 곧바로 꼬리를 내렸고,
그 후로는 크게 문제 없이 지나왔습니다.

무겁죠.
지금 다쳐서 후송된 할머니들,
산에서 노숙하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연행된 활동가들 소식 때문에 미칠 것 같습니다.

손자뻘 되는 전경들이 할머니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만드는 사회.
이거 제정신이 아닌 사회임이 분명합니다.

yamoo 2013-10-0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공적인 이사 감축드립니다!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즐거운 책읽기 하셨으면 합니다~

이모부의 서재...정말 사서 읽어야 하는데....벌써 산 책이 100권에 육박한다는...ㅜㅜ
이사할 때 감은빛 님처럼 대량 책을 버려야 할 사태가 올 것 같아 불안불안 합니다...그런데도 책은 계속 사니...ㅜㅜ

감은빛 2013-10-07 14: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이 손에 잡히질 않네요.

저도 사고 싶은 책은 정말 많은데,
정작 사고나서 읽지 못할 것 같아서 겁이 나네요.

2013-10-07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7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8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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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애창곡, 악보도 없이 구전되던 금지곡

부용산

 

도서관 서가에서 창비 20세기한국소설 전집을 펼쳐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읽고 있던 책을 서가에 꽂아두고, 아내와 아이들이 일어서기를 기다리려는데, 아직 시간이 몇 분 남았기에 생각없이 서가를 훑다가 무심코 집어들었다. 거기서 '부용산'을 만났다. 최성각 선생은 그저 환경운동가로서만 알았을 뿐, 그의 글은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산문을 스쳐 읽은 기억은 있었지만 소설은 한 편도 접해보지 못했다. 궁금했다. 마침 분량도 짧아서 금방 읽어 갔다. '부용산'이란 노래를 접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가는 내용이었다. 읽으며 이게 실제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내용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등장인물 중에 한겨레 김종철 논설위원이 있어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화라는 생각에 무게을 실어줬다. 

 

역시 나중에 찾아보니 부용산에 얽힌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한국일보 김성우 논설위원이 두 차례에 걸쳐 쓴 글과 경기대 김효자 교수와 월북한 작곡가 안성현과 호주로 이민 간 작사가 박기동에 대한 내용 모두 사실이었다. 여러개의 토막 글을 찾아보다가 이 내용을 잘 정리해놓은 페이지를 발견했다. 이 페이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소설과 다른 지점이 있다. 소설에서는 작곡가 안성현이 무용가 최승희의 남편 안막의 조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이 페이지의 각주에는 그런 추측이 있다고 안내하면서 사실이 아닐거라고 말한다. 근거로는 북한에서 안막과 최승희가 숙청당할 때, 안성현은 살아남았고, 이후 인민예술가 칭호까지 받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노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요 아래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mirror.enha.kr/wiki/%EB%B6%80%EC%9A%A9%EC%82%B0#rfn4

 

그리고 호주로 이민갔던 박기동이 영구 귀국했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와 연극인 손숙의 남편인 김성옥이 호주로 박기동을 찾아가 부용산의 2절 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새롭게 알았다. 아 그리고 박기동이 국내에서 [부용산]이란 제목의 산문집을 출간했다는 이야기도 알았다.

 

 

 

 

 

 

 

 

 

 

 

 

 

 

웹에서 부용산을 검색해서 노래를 들었다. 안치환의 노래와 윤선애의 노래 두 개를 들었는데, 윤선애의 노래가 더 슬프고 애잔하게 들렸다. 노래를 들으며 왜 빨치산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는지, 어떻게 그 긴 세월 악보도 없이 구전되었는지를 알것 같았다. 왠지 형언하기 어려운 서글픈 감정이 흐느낌이 되어 목을 타고 넘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윤선애의 부용산, 전주가 길다. 1분 50초 즈음부터 노래가 나온다.

 

죽음을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글루미 썬데이

 

수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었다는 노래. 노래를 들어보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자살을 해? 영화는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이지만, 그 노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내용은 사실이었다. 슬픈 곡조의 노래였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에리카 마로잔이 부르는 노래가 참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에리카 마로잔이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며 스테파노 디오니시에게 자신을 위해 연주를 하도록 부탁하는 장면(헝가리어 버전)

 

 

한창 이 노래에 빠져 있던 시절, 나는 여러 가수들이 부른 '글루미 썬데이'를 모으기 시작했다. 빌리 홀리데이, 사라 맥라클란, 비욕 등 유명한 가수들이 부른 노래가 많았다. 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는 폴더 하나에 '글루미 썬데이'만 예닐곱 곡이 들어 있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밤, 불을 끄고 누워 글루미 썬데이만 무한 반복으로 듣다보면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쳤다. 아, 자살 충동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여러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기억은 아주 자세하게, 어떤 기억은 흐릿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같은 장면의 독일어 버전, 에리카의 노래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trauriger sonntag' 으로 시작하는 이 장면이 무척 익숙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다. 영혼을 울리는 노래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부용산을 듣고 나서 이 노래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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