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보지 못한 길 (감은빛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읽기란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책 읽기란 가보지 못한 또다른 길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4 Apr 2026 03:07:51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감은빛</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163018338758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감은빛</description></image><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만우절 다음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91684</link><pubDate>Thu, 02 Apr 2026 05: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91684</guid><description><![CDATA[만우절<br>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있다면 그건 만우절이다.일부러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는 날이라고? 왜? 어차피 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를 속여야 하거나 원치 않아도 어쩔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 있는데, 왜 굳이 특정한 날을 정해서 사람들을 속이는거지? 아!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니까 특정한 날을 정해서 이날은 절대 믿지 말자 하고 정한 거라면 그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오늘 쓴 글은 딱 하나였는데, 작년 오늘 쓴 글이었고, 만우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글에 내가 살면서 단 한번도 만우절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썼었다. 그리고 댓글에 알라딘 이웃인 카스피 님께서 만우절에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내 표현을 믿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로 글은 남겨 놓으신 것을 봤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만우절에 일부러 거짓말이나 농담을 한 적은 없다고. 그 말이 평생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거나 농담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도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건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한다. 나는 농담이나 거짓말을 일부러 특정한 날에 분위기에 편승해서 유행처럼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늘 바빠서 내 생일도 잊고 지나가는 사람인데, 만우절이란 날짜 따위 일부러 기억해서 시시껄렁한 농담 따위 지껄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br>다만 어제 쓴 글에도 밝혔듯이 만우절에 마치 거짓말처럼 부고 소식이 왔던 지인이 있었다. 내가 약 20년 전에 특정한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무렵에 그는 아주 유명한 진보정당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일했었다. 어쩌다 어떤 특정한 사업 때문에 만났었고, 서로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밀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기획했던 어떤 행사에 그가 그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조금 친해졌다. 그날 나는 당시에 큰 아이를 품고 있었던 임신 말기의 아내와 함께 했었다. 그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와 내 아내 이렇게 네 사람이 짧은 시간 친해져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 기억은 개인적으로 미화되었다고, 그 시간은 그저 형식적인 혹은 예의상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자리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건 이젠 대답할 수 없는 그의 몫이니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다. 암튼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이후에 그와 다양한 장소와 시점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저 그런 관계였다. 결코 친구라 부를 수 없는 동지라 부를 수는 있었겠지만, 조금은 어색한 그런 사이. 그와 좀 더 친해진 계기가 녹색당에서 활동했던 시기였다. 과거에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지만, 친해지지 못했던 우리는 녹색당에서도 자주 만났지만 그리 친해지지는 못했다. 다만 내 생각에, 아마도 그도 마음으로는 충분히 친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조금 더 얼굴이 두터웠던 내가 그에게 몇 차례 친한 척을 했었다. 그는 싫지 않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답을 하곤 했었다.<br>비슷한 나이였고,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아서 친한 척을 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아니 어느 해 만우절에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설마 했다. 노동당 박은지씨 이후로 본인상 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접했다. 에이. 만우절이라고 이런 재미없는 장난을 치나! 이거 누구 짓이야! 라고 화를 내고 싶었는데, 농담도 장난도 아니었다. 이럴 수가! 절말 그가 죽었다니! 다시는 볼 수 없다니!<br>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다시는 그 분을 볼 수 없다는 그 느낌이, 그 상실감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상실감을 깨달으며 문득 눈물이 흐른다. 그냥 쓱 쳐다보면 옆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냥 늘 곁에서 씩 웃어주던 사람이었는데.<br>내가 자주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와 이 활동가를 언급하는데, 그들과 특별한 어떤 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알고 지냈던 인연이 있었을 뿐이고, 조금 아주 조금 친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이들의 죽음은 내게 엄청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종종 언급하는 것이다. 그 충격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br>그래서 내게 만우절은 슬픈 날이다. 여성의 날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여성의 날이라고 여성들끼리 꽃을 주고 받는 것이 한 편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나에게 그날은 박은지 부대표의 죽음을 들었던 날일 뿐이다. 남들이 만우절이라고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주고 받아도, 그 날은 나에게 한때 존경했던 정말 훌륭한 삶을 살았던 어느 활동가의 죽음을 전해 들었던 날일 뿐이다.<br>아직 유서를 쓴 적은 없지만, 언젠가 유서를 쓰게 된다면 이 두 사람의 죽음을 꼭 언급할 것이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이유는 이들 두 사람의 죽음의 영향이 크다고. 박은지 부 대표가 아직 어린 아들을 두고 죽음을 선택했을 때, 우리 아이들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이 차이가 많지는 않았다. 이젠 성인이 된, 그래서 아니 그 훨씬 이전 청소년 시기에도 친구처럼 느껴졌던 든든한 큰 아이는 그 당시에 이미 사춘기 소녀였다. 그의 아들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사춘기 소년이었다면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돌연사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우리 곁을 떠나 버린 또 다른 친구처럼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나는 두 명의 아이가 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주고 지켜봐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nbsp;<br>우울<br>사실 이런 이야기는 사람을 한없이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나라는 자아를 깨달았던 청소년 기의 어느 날, 햇살이 너무나도 따뜻했던 어떤 오후 이후로 평생 나를 괴롭게 만드는 그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nbsp;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데, 그럼 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당장 죽는 것과 나중에 몇 십년 후에 죽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위인전 같은 책에 단 한 줄 적힐 확률도 없을텐데, 그럼 내 인생은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왜 살아야 하는 거지?<br>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다. 엊그제 꽤 규모가 큰 행사에서 발제를 맡아 무대에 올라 정책 제안을 했었다. 비록 빨간당과 파란당의 에비 후보들은 오지 않았지만, 소규모 정당들의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선 이들도 왔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울 시장이라면 꼭 펼쳐야 할 에너지 정책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내가 긴 시간 이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한 5년 전에 세 시간짜리 강의를 했던 인연으로 만났던 특정 지역의 선배 활동가들은 나에게 "왜 이렇게 갑자기 흰 머리가 많아지셨나고?" 질문을 하시며 친근감을 보여주셨다. 우리 동네 언니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러 분이 오셨고 응원을 보내주셨다. 또 내가 환경운동과 에너지 운동을 20년 넘게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과거에 존경했던 선배도 나에게 친한 척을 해주셨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참여했던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행사 이후에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어치피 세상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에너지 정책을 떠들어도 어느 정치인 하나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여전히 매년 여름을 더울 것이고, 해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 기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을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br>허무함, 허탈감, 상실감, 슬픔, 외로움 등 내가 이 삶을 더는 지속하지 말아야지 하고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그건 내 권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감정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일단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들. 이들 때문에 섣불리 어떤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에이. 어쩔 수 없다. 일단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지. 다른 선택지는 없다.<br>에이, 모르겠다. 그냥 오늘 밤 달이 엄청 밝더라. 이 말을 건넬 수 있는 한 사람이 간절한 밤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만우절에 생각나는 사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90959</link><pubDate>Wed, 01 Apr 2026 1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90959</guid><description><![CDATA[총각<br>아주 오랜만에 총각이란 단어를 들었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흰수염이 늘어난 후로는 한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다. 아마 그 할머니께서 눈이 안 좋아 내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하신 말씀이겠지. 근데 총각이라 부르기 전에는 내 긴 머리칼을 보고 "여자여? 남자여?" 라고 말씀하셨다.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머리가 길면 여성이라는 편견을 갖고 산다. 특히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이 더 그런 듯하다. 매장에 배송 물품을 가지러 가서, 여러 개의 상자를 겹쳐 올려놓고 스쿼트 자세로 짐을 번쩍 들어올렸는데,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신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었다. 짐을 들고 일어나서 차에 물건을 실으러 가면서 내가 답했다.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때요? 짐 옮기는 일은 남녀 모두 잘 할 수있는 일인데요."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 "총각이 힘이 좋구만." 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께 아이가 대학생이예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갈 길이 급해서 그저 매장 담당자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에 올랐다. 오늘부터 담당하는 매장 하나가 바뀌었다. 내가 맡은 세 개의 매장은 가장 배송이 적은 곳 두 곳과 배송물량이 보통인 매장 한 곳이었는데, 가장 적은 한 곳이 다른 사람에게 가고, 대신 배송물량이 좀 많은 매장 하나가 나에게 배정되었다. 만약 세 매장이 모두 배송 건이 많은 날이 겹치면 정말 정신없이 바쁜 날이 될지도 몰랐다. 다행히 매장을 바꾼 첫 날이었던 오늘은 모든 매장에서 배송 건 자체가 적었다.&nbsp;<br>운전<br>96년 1월에 운전면허를 땄었다. 실기 시험을 칠 때 S 코스 후진으로 나오다가 아무래도 선을 밟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차를 멈췄다. 어쩔줄을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밟기 전이었고, 다른 코스에 있던 응시자가 선을 밟아서 탈락 안내가 나왔는데, 나는 내가 밟았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시간 초과로 떨어졌다. 그 다음 시험에서 합격했다. 한번 떨어져보고 나니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면허는 땄지만, 대학 시절에는 차를 운전할 일이 거의 없었다. 큰 슈퍼마켓에서 일을 할 때는 새벽에 열리는 농산물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기도 했고, 아주 가끔 배송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 일을 계속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제법 오랫동안 운전을 안 하고 살다가 다시 운전을 본격적을 한 것이 결혼하고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였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부천에 살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모두 서울로 출근을 했다. 아이는 장모님께 맡기는 날이 많았다. 장모님께서 봐주시기 어려운 날엔 아내가 사무실에 데리고 나갔고, 그것도 어려운 날엔 내가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다. 기저귀와 분유병과 분유통 등이 든 큰 가방을 차에 싣고, 아기를 데리고 장모님 댁에 들러 아기를 맡기고 출근했다. 퇴근할 때는 장모님 댁에서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br>아기를 데리고 운전을 했기 때문에 조심조심 천천히 다녔다. 원래는 그리 느긋하게 운전을 하는 편은 아닌데,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을 태우고 운전을 할 상황이면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조심히 운전을 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을 해온 습관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배송 일을 맡아 하면서 초반에 그렇게 좀 느긋하게 운전했더니, 도저히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배송 건수가 많은 날에 앞의 매장에서 조금 오래 걸렸더니, 뒤쪽 매장들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왜 안 오시냐고? 그날 깨달았다. 적어도 혼자 배송하는 때만이라도 부드럽게 운전하는 습관을 버려야하겠구나. 마침 그때쯤 배송 일을 오래 해온 선배 한 사람이 매장들을 함께 돌아주며 본인이 어떻게 하는지, 어떤 길로 다니는지 등을 알려주셨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고 예전에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셨던 어르신들 댁으로 농활을 함께 가면서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던 기억도 있어서, 이 분이 평소 운전을 좀 거칠게 하는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분이 운전대를 잡고 다니는 동안, 내가 매장들을 돌고 배송을 다녔던 시간들보다 확실히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 나도 평소 운전 습관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걸리는 것들을 없애나가고 있다. 그리고 확실히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대신 예전에는 앞 차가 조금 천천히 다니더라도, 가끔 초보 운전이라고 써붙인 상태로 좀 어이없는 행태를 보여도 그냥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 지금은 도로 위의 1분 1초가 아까워 나도 모르게 조바심을 내곤 한다. 확실히 도로 위에서 운전으로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br>기다리던 책이 왔건만, 잠시 펼쳐본 후로 다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제 4월이 되었으니, 조금은 시간 여유가 생기겠지. 이젠 시간이 많지는 않더라도 짧게 짧게라도 책 읽은 여유가 생기겠지. 얼른 이 글을 마치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nbsp;<br>노트북을 켜자마자 잠깐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트럼프가 죽었다는 기사가 있더라. 순간 놀랐으나, 곧 오늘이 만우절이구나 깨달았다. 이젠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 만우절에 돌연사 했던 지인이 생각났다. 아, 안된다. 오늘은 슬픈 감정에 빠져들 여유가 없는 날. 오늘 일정 다 마치고 나중에 밤에 그 지인을 떠올리던가 해야지.]]></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정치와 에너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81445</link><pubDate>Sun, 29 Mar 2026 18: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81445</guid><description><![CDATA[몸과 스트레스<br><br>3월의 마지막 주 주말이 되어서야 드디어 총회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는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한 주였다.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총회를 앞두고 뭔가 아쉽고,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현실적인 한계들에 계속 부딪혔다. 결국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로 그걸 인정하기까지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함께 총회를 준비했던 동지이자 친구는 며칠째 두통을 호소했다. 다행히 나는 살면서 두통을 심하게 느낀 기억이 없지만, 예전에 애들 엄마가 편두통으로 엄청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았기에, 이 두통이란 증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두 가지 통증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극심한 피로감이다. 평일에 밤 늦게까지 혹은 새벽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이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이 탓도 있을 것이고,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 최근에 피로를 이유로 운동을 안 하고 있어서 그게 원인일 수도 있을텐데, 지난 주에 정말 며칠동안 피로감이 너무 컸다. 평일에 좀 무리를 하더라도 주말에 잠을 몰아서 자면서 피곤을 풀어야 하는데, 계속 주말에도 일정이 생겨서 푹 쉬지 못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br>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가끔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의 쪽글들을 읽기 위해 페이스북을 뒤진다. 그러다 어느 지인이 올린 '불광천 벚꽃 마라톤' 소식을 보았다. 이번이 세번째 대회인데, 그는 첫회부터 올해까지 세 번 모두 참여했었다고 적었다. 나는 작년 이맘때 두 번째 대회에 참여했었다. 대회장에서 이 글을 올린 그와도 마주쳤었다. 그때 나는 혁신파크 매각 반대 몸자보를 메고 달릴 예정이었고, 그도 이 몸자보를 함께 메고 달리겠다고 해서 몸자보를 전달하고 돌려받기 위해 만났었다. 작년 대회 때는 정말 최악의 몸 상태로 참여했었다. 전날 중요한 일정이 있었고, 새벽까지 몇몇 사람들과 토론이 이어져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달리기에 참여했었다.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었다. 달리기 중에 김미경 구청장과 황영조 씨가 여러 명의 경호원들에게 둘러 쌓여 걷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 앞에서 몸자보가 보이도록 항의 액션을 하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었다. 결국 원하는 만큼의 항의 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괜히 오버하다가 쫓겨나기 보다는 완주해서 결승선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혁신파크 매각 반대"를 외치는 것이 낫다고 결론을 내리고 구청장 일행을 제치고 떠났다. 그리고 생각했던대로 결승선에서 아주 큰 소리로 세 번 외쳤다. 당시 결승선에서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힘을 짜내는 참가자들을 독려하던 사회자는 내가 외치는 소리에 조금 당황에서 처음엔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내가 세 번을 외치고 나서야 비아냥 대는 말투로 "네, 잘 알겠어요." 라고 말했었다. 암튼 올해 대회는 전혀 소식을 접하지 못했었다. 보통은 작년 참가자들에게 문자로 올해 대회 소식을 알리는데, 다른 대회들은 대부분 그러던데, 이 대회는 접수 소식 자체를 모르고 지나쳤다.<br>그러고보니 올해는 아직 대회 신청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정보를 찾는 것조차 안 했었다. 작년에는 따뜻한 봄에 대회를 뛰어보고 싶어서 겨울에 자주 달리기 대회 정보를 찾아다녔었다. 그때는 개인 기록 갱신에 좀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작년 봄 양천마라톤에서 개인 기록을 세웠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늦가을부터 달리기에 대한 내 열정이 조금 식어버린 것도 같다. 그 전까지는 26년에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는 것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고, 가끔 20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달리기도 했었는데, 늦가을부터는 짧은 거리만 가끔 달릴 뿐, 10킬로 정도의 마음만 먹으면 그냥 달릴 수있는 거리조차 시도를 안 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억났는데, 그때 즈음에 어느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었고, 대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참가비 입금 요청을 놓쳐버려서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었다. 뒤늦게 참가비 입금 마감일이 지난 후에야 그 연락이 왔었다는 것을 보고 주최 측에 연락해봤는데, 이미 시간이 지나버려서 방법이 없다고 답이 돌아왔었다. 그래, 이거 때문에 내 마음에서 달리기가 잠시 멀어졌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4월이니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 대회 소식도 좀 알아봐야지.<br>노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스트레스를 막을 방법도 없다. 점점 늙어가는 몸으로, 점점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운동을 하는 방법 밖에 없다. 달리기도 다시 시작하고, 운동도 다시 해야지. 매일 피곤하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 둬야지.<br>전쟁<br>분단된 나라에 살면서, 오래 전에 군대에 다녀온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거의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구 전체를 두고 본다면 아마 인류 역사상 전쟁이 아예 없었던 시기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국지전이나 내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역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으로 생각하면 내가 지금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다행이라 여길 수있을 것이다. 다만 군인으로 복무했던 기간은 아쉽다. 2년 2개월이라는 기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전체로 보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일 수 있는데, 내 인생의 일부를 사람을 죽이기 위한 병기로서 살았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었고, 스스로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닌 그냥 하나의 물건으로 나 자신을 규정하고 살았던 시간이었다.&nbsp;<br>최근 전쟁 때문에 종량제 봉투가 품절 상태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다. 실제로 동네 편의점에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기도 했었고, 어제 총회를 준비하면서 누군가에게 종량제 봉투 하나를 사오라는 부탁을 드렸었는데, 그가 근처 가게 세 곳을 돌아봤지만, 모두 물량이 없다고 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북한의 핵 도발과 분단 현실에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르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미국에서는 뭔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마트를 털어서 생필품을 사재기 한다고, 그 중에서도 특히 화장지를 사재기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었다. 중동의 전쟁으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그로 인해 한국에서 종량제 봉투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이를 사재기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참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br>당장 지금 내 삶의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먼 나라의 전쟁 이야기에 마음을 쓰기가 어려운 현실이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계속 마음에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죄 없는 생명이, 너무나도 소중한 생명이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구나. 결국 욕심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인간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잘만 살아가는데, 힘 없는 약자들만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nbsp;<br>정치와 에너지<br>지방선거 때문에 분주한 사람들의 소식이 간간히 들린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정당은 우리나라 선거법과 정당법 상 아직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창당하자마자 헌법 소원을 냈었는데, 헌법재판관 9명 중 과반 이상인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정족수인 6명 미만이라 결국 기각 판정을 받았었다. 현실적으로 법외 정당이 선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단 세 개 밖에 없는 지역정당 중 거의 유일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우리 당도 이젠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다. 뭔가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할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다.<br>작년 4월 스페인 대정전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가 드디어 나왔다는 소식을 읽었다. 그간 대부분이 재생에너지를 원인으로 지적해왔는데, 공식 보고서에서는 단순하게 하나의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가 원인이 아니라고 밝히며, 여러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언급했다. 복합적인 원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력망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일이고, 결론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전력망이 문제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소식을 인용해 전하는 우리나라 전문가는 우리나라도 같은 문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전력망 자체도 분산형으로 유연화되어야 하는데, 전력망은 여전히 낡고 변하지 않는데, 에너지원만 변하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2011년에 블랙아웃을 겪고 정부와 에너지 전문가들이 한 일은 아주 단순히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리는 일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었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비난도 많이 받았다. 왜 발전량을 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요 관리와 망의 유연화 자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정책은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이 결정하는 법. 결국은 업자들과 거기에 붙어서 기생하는 전문가 라는 인간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으로 흘러온 것이다.&nbsp;<br>윤석열이라는 멍청한 인간이 물러나고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여전히 에너지 정책은 문제 투성이다. 아니, 핵발전소를 다시 늘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핵은 결코 친환경 에너지원도 아니고 안전한 에너지도 아니며 경제성 있는 에너지도 아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들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도 구청장과 국회의원 시절에는 저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떠들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장관이 되더니 멍청해진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왜 정부가 핵을 다시 외치기 시작하는가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에너지 정책을 결정해온 핵 카르텔이 여전히 너무나도 견고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본인의 공약을 뒤집으면서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짓겠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긴 시간 인구에 회자될 코메디를 펼쳤다. 탈핵은 선언했지만, 핵발전소는 계속 짓겠다는 공언이었다. 이게 사람들이 웃으라고 일부러 한 말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결정한 에너지 정책이었다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문재인도 그렇고 이재명도 결국은 핵 카르텔에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굴복한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히 표 때문이다.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본인들의 정체성에 딱 맞는 너무 당연한 행태이고, 저쪽 빨간당 지지세력에게서 조금이라도 표를 빼앗아 오기 위해 핵 카르텔과 손을 맞잡은 것이리라. 아니 굴복한 것이리라. 그래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SMR 같은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들어 댄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여의도 국회 앞에 SMR 단지를 만들어라. SMR 이 소형이라고 마치 유연화 자원인 것처럼, 마치 경제성이 좋은 것처럼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경제성이 좋으려면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량생산 하려면 한 두개만 건설해서 될 것이 아니고 단지 형태로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지어야 한다. 이래놓고 유연화 자원이라고? 아니 그리고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이건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핵발전소다. 3월 11일에 후쿠시마 핵사고 15주년을 맞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사고 현장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르는 척 하겠다는 건가? SMR 을 단지 형태로 운영하면 결국 고리(신고리 포함), 월성(신월성 포함), 울진(공식명칭은 한울, 신한울), 영광(공식명칭은 한빛)과 같이 대단지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존 핵발전소와 SMR 은 과연 뭐가 다를까? 차라리 기존 핵발전소는 나름 건설과 운영방식이 검증된 것이라고 본다면,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것을 떠들어 대는 모습은 참 어이없다. 결국 국민들을 바보로 생각한다고 여길 수밖에.&nbsp;<br>지난 주 목요일이 마감이었던 발제문을 총회를 핑계로 미뤄두었다가 이젠 더 미룰 수 없어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런데 정작 발제문은 쓰지 않고 정보만 찾아보다가 이 글을 쓴다. 얼른 발제문을 쓰고 집에 가서 쉬어야 내일 또 일을 할 수 있을텐데. 딴 짓 그만하고 이제 일하자.]]></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힘든 하루를 보낸 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73057</link><pubDate>Wed, 25 Mar 2026 2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73057</guid><description><![CDATA[오늘은 여러모로 조심해야 하는 날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21세기에, 2026년에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참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신을 믿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일진이 사납다는 미신을 믿어? 오늘 유난히 운이 좋지 않다는 미신을 믿어? 이 21세기에?<br><br>오늘따라 유난히 늦게 일어났다. 평소라면 집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이나 라면을 먹고 출근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건 굳이 밥을 안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나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하는 입장이라 출근 전에 밥을 안 먹으면 나중에 너무 힘들어서 꼭 출근 전에 뭐라도 먹어야지 생각했었다. 출근하는 길에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를 샀다. 그리고 출근해서 차 키를 받아들고 차에 탔다. <br><br>내가 가야할 곳은 매장 세 곳이다. 세 매장에서 각각 몇 건의 배송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날은 두 건이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예닐곱 건이 있기도 한다. 평균적으로는 매장마다 서너건 수준이다. 사무실에서 출발해 세 곳의 매장을 단순히 돌기만 해도 1시간 반은 훨씬 넘는다. 각 매장마다 배송건이 적어도 두세 건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고 일을 하고 있다.<br><br>첫번째 매장으로 이동하는 길은 대개 차량이 많아서 막힌다. 거기서 김밥을 먹었다. 평소였다면, 굳이 도로 위에서, 차 안에서 밥을 먹고 싶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어차피 하루 하루 살아가는 입장에서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br><br>첫번째 매장 바로 앞에서 주차를 하는데 갑자기 시야 바깥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나는 후진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놀랐던 나는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피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시야 밖에서 갑자기 끼어들듯이 나타난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 떠나갔다.  오늘 좀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순간에 처음 했다. 어쨌거나 사고가 나면 무조건 내 손해라는 생각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 두번째 매장에 들렀다가 배송을 간 곳은 아는 사람 집이었다. 친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겠지만, 긴 시간 활동가의 삶을 살아오면서 어느 특정 시점에는 친했던, 그리고 여전히 중장기적 관점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활동가였다.<br><br>이 대목에서 한 편으로 위화감이 생기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잘 알고 지냈던, 꼭 친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던 몇몇 활동가들이 아파트로 이주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로제라는 가수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불러 유명해진 아파트 라는 노래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br><br>내가 가진 위화감은 두 가지 측면이다. 일단 하나는 대다수의 활동가들이 생계 유지조차 어려워 헐떡이는 시대에 같은 활동가라고 생각했던 누군가는 넓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구나 하는 부분이다. 나도 솔직히 그런 생각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한편으로 지금 시기가 더욱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시기라는 생각에 더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더 어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까 일을 마치고 잠시 마주쳤던 한 선배는 그 자신과 나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살았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고 다같이 고민해보자는 말을 했다. 글쎄, 이게 고민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내가 아무리 열심히 활동했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리라.<br><br>아, 오늘 하마터면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칠 뻔하고(물론 실제로는 좀 더 여유가 있었고, 그도 별 불만없이 돌아갔지만),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이야기, 그리고 잠시 주차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을 쓰려고 했는데, 다 의미없을 것 같다. 매일 매일 열심히 돈을 벌어야 이 생활도 유지가 될테니. 다른 활동가에 대한 배신감은 사실 의미없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을테니.<br><br>고속철도 폭탄 설치 영화 두 편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썼다. 한 편은 일본 영화 [신칸센 대폭파]이고 다른 한 편은 대만 영화 [96분]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두 영화를 봤던 것은 작년 연말이었던 것 같다. 올해 2월쯤 이 둘을 엮어서 글을 써야지 생각이 들어서 각각 영화를 다시 봤다. 그런데 하필 그때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글을 못 쓰고 지나쳐버렸다. 다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어제 밤에 글을 쓰기 시작해 새벽에 완성했다. 평소 내 글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조금 아쉽지만, 더 제대로 손 댈 시간이 없을 거라고 본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br><br>이 글을 읽고 싶은 분을 위한 브런치 글 링크<br>https://brunch.co.kr/@cb83c338001e498/8<br><br><br>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상, 뭐 하나 좋은 소식 따위 없는 지루한 일상,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살아도 다 거기서 거기인 삷을 살 뿐인 가련한 인간에게 바친다.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인생이라고.]]></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광화문은 오늘</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63818</link><pubDate>Sat, 21 Mar 2026 12: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63818</guid><description><![CDATA[광화문<br><br>어제 하루종일 정부에서 발송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말로 한 번, 영문으로 한 번. 여러차례 왔는데 계속 같은 내용이었다. 낮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광화문에 가지 마라는 내용 같았다. 저녁에 총회에 참여하고 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의 문자가 왔다.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한 무리의 연예인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도 전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들이 세상의 전부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나도 젊은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들 때문에 온 나라가 이렇게 난리통이 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아, 옛날에 뉴키즈온더블럭이 우리나라 왔을 때에도 난리라 났었다고 했던가? 압사 사고로 한 명이 숨지고 약 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래 이태원 참사 같은 사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제발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광화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br><br>역할<br><br>2월과 3월에는 시민단체와 협동조합 총회 시즌이라 엄청 바쁘다는 얘길 계속 썼는데, 어제는 내가 회원으로 적을 두고 있는 시민단체 한 곳과 감사를 맡고 있는 협동조합 한 곳의 총회가 겹쳤다. 시민단체에는 미안하지만, 감사로서 협동조합 총회에 빠질 수가 없었다.<br><br>여기 조합에서는 거의 매번 서기를 맡아 의사록을 작성해왔다. 어제가 제8회 총회였는데, 아마 내가 서기를 맡은 것이 6번? 7번 정도 될 것이다. 서기라는 역할을 맡아 총회 의사록을 작성하는 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맡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매번 미리 부탁하지 않고 너무 당연하게 내가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기분이 나빴다. 최근 몇 년간 계속 그랬었다. 어제는 일부러 노트북을 안 갖고 갔었다. 또 서기를 맡아달라고 하면 노트북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잠시 쉬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물어보고 말았다. 오늘 서기는 누가 해요? 총회를 총괄하는 이사이자 친한 선배는 너무 당연한 표정과 말투로 니가 해야지. 라고 말했다. 나 노트북 없는데. 라고 했더니 그럼 노트북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갖다달라고 하라고 말했다. 어차피 지금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서기를 맡길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가 노트북을 가져오는 것이 낫다 싶었다. 그 선배의 차를 빌려서 노트북을 가지러 다녀왔다.<br><br>감사는 총회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고 직접 그 보고서를 낭독한다. 나는 총회 시작 전부터 의사록을 작성하느라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데, 감사 보고 순서가 되어 기록을 멈추고 감사보고서를 읽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집에서 감사보고서가 있는 쪽수를 찾으면서 감사도 맡고, 서기도 맡아서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네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저에게 한 가지 역할만 맡겨주세요. 서기는 다른 사람이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총회가 진행되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듣고 정돈된 말투로 고쳐서 기록하는 일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총회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뒷풀이 음식을 먹거나 할 수 있지만 서기는 나중에 정리하려고 미뤄둔 내용을 마저 기록해야 하고, 놓친 내용이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내용에 오류는 없는지 여러차례 점검해야 한다. 총회가 끝나고도 꽤 긴 시간 내가 혼자 의사록을 마무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한쪽에서 먼저 뒤풀이를 시작해 먹고 마시고 놀고 있었다. 엎드려 절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미리 부탁하지도 않고 너무 당연하게 일을 맡기는 태도와 남들 다 놀 때에도 혼자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누구도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정말 내년에는 절대 서기를 맡지 말아야지.<br><br>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준비하는 총회에서도 너무 당연하게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서기를 맡기고 있었다. 물론 나는 미리 부탁하면서 매번 맡겨서 미안하다고 여러 차례 사과를 하고 당일 뭔가 불편한 점은 없는시 신경써서 챙겨주고, 총회 끝나고 내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그가 혼자 의사록을 마무리 할 때 고생시켜 미안하고, 수고 많았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 내가 서기를 주로 맡아온 협동조합은 총회 의안이 상대적으로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챙겨야하는 조합은 총회 안건이 아주 어렵고 복잡하다. 매번 서기를 맡아주는 그 친구가 아니면 그 내용을 즉각 기록하기가 쉽지 않다. 그 사람 외에는 정말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매번 미안한 마음에도 그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br><br>어제 일을 겪으며 역지사지 라는 말을 다시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부터 그 친구에게 훨씬 더 고마움을 표현하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을지, 정 안되면 내가 서기를 맡더라도 한 번은 서기를 맡지 않고 맘 편히 총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드디어 총회 시즌도 마무리되어 간다. 다음주 토요일에 임원을 맡고 있는 총회 하나를 더 마치면 드디어 지겨운 총회 시즌이 끝난다. 어제 뒤풀이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여러 시민단체와 협동조합에 나처럼 겹쳐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우스개 소리로 법이나 조례로 몇 개 이상 역할을 못 맡게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속으로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도 좀 퇴근이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br><br>암튼 이제 일주일 남았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토요일이지만 또 회의하러 가야한다. 내일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잠만 자야겠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시간에 대한 감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60403</link><pubDate>Thu, 19 Mar 2026 2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60403</guid><description><![CDATA[시간을 인식하고 인지하는 능력<br><br>요즘 한자를 공부하면서 새삼 우리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깨닫는다. 어느 외국어가 어렵지 않겠냐만, 우리 말은 특히 더 어렵다고 본다. 한자를 배우며 그간 한자어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였구나 생각하며, 우리말을 반백년 배운 사람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했다.<br><br>예전부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에 대해 이 서재에 몇 번 글을 썼었다. 인지심리학 책에서 읽었던 것으로 우리 인간의 뇌는 비슷한 경험들을 묶어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저장하기 때문에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고, 큰 변화가 없는 사람은 그 일상 전체를 통으로 엮어서 인식하고 기억한다고. 그래서 뭐라도 조그마한 차이점이 있어야 그 날을 다르게 인식하고 따로 기억하고, 매번 거의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면 그 날들은 나중에 떠올리고 싶어도 기억하지 못 한다고 했다. 물론 완전히 같은 날은 있을 수 없겠지만, 거의 차이가 없는 날은 제법 있을 것 같다. <br><br>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씻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서 같은 버스를 타고, 비슷한 시간에 일터에 출근한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업무를 하고, 매일 같지는 않겠지만, 몇가지 음식들 중 반복 선택해 점심을 먹는다. 오후도 역시 비슷한 영역의 업무를 하고 야근을 하던 퇴근을 하던 그렇게 하루가 간다면, 그 하루들의 연속되는 일상은 별개의 하루 하루로 인식하고 저장하기 어렵다는 얘기다.<br><br>그리고 인간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일과 겪어본 일이 많아서 점점 더 개별적으로 따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거라고.<br><br>이쯤에서 잠시 인식(認識)과 인지(認知)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나는 앞서서 계속 인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느낌상 인지보다는 인식이 맞는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인지를 그대로 넣어도 뉘앙스는 좀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다른 단어이고, 고유의 뜻이 있을텐데 사전만 찾아보아서는 잘 모르겠다. 이 둘을 좀 더 엄격하게 구분해 쓰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br><br>암튼 내 기준으로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30대 중후반이었다. 그때 이미 시민단체 실무자로서는 해볼 수있는 어지간한 업무를 두루 익혔고, 많은 경험을 쌓았었다. 더불어 출판사에서도 영업관리와 마케팅 기획 그리고 편집까지 여러 일들을 익혔었다. 더이상 새로운 경험이 없이 알고 있는 일들, 해봤던 일들만 경험하게 되면서 시간에 대한 내 인식과 기억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br><br>업무 외에도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젊은 시절엔 전국단위 사업에 대응하면서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했지만, 30대 중반부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좁아지고 매번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이혼 후의 내 삶은 그 이전에 비해 아주 단순해졌다. 아니 개인적인 삶. 즉, 사적 영역을 대폭 축소하고 공적 영역 확 늘려서 그냥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줄였다.<br><br>암튼 큰 변화 없이 10년 정도를 비슷한 흐름으로 살아와서 시간이 물 흐르듯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다시 하루 하루가 길어진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뇌가 시간을 정상적으로 인식하는구나 싶다.<br><br>물론 당연히 이 일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되겠지. 어떻게든 일상에서 자주 변화를 주고, 그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여 뇌가 그냥 다른 일상들과 엮어 뭉뜨그려 버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점점 늙어가는 처지에 그 노화가 더 빨리 다가오는 것처럼 느끼고, 시간이 이렇게 휙 지나가는구나 느끼는 일이 너무 싫고 슬프고 허무하게 느껴진다.<br><br>2월과 3월은 마치 퇴근이 없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딱 다음주까지만 참으면 된다. 내일 중요한 총회가 하나 있고, 담주 토요일에 더 중요한 총회가 있다. 그러면 내가 올해 신경쓰고 챙겨야 할 총회들이 모두 끝난다. 4월이 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까? 아니다. 벌써부터 모든 주말에 일정이 생겼고, 평일 저녁에도 회의 등 일정들이 생기고 있다. <br><br>좀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쉬어보기도 하고 그래야 내 뇌가 아, 이날은 좀 특별한 날이구나 하고 인식해 기억할텐데, 매번 저녁마다 일정이 생겨 무언가 집중해 일하다보면 또 같은 일상이구나 생각할 것이다. 계속 끊임없이 생각해야겠다. 변화를 주자. 의미를 두자. 내 소중한 일상이 흩어져버리지 않고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하자.]]></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파이의날 +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51420</link><pubDate>Sun, 15 Mar 2026 13: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5142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98601&TPaperId=171514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7/57/coveroff/8901098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일상<br>드디어 큰 언덕을 하나 넘었다. 10년 가량 활동가로 일했었고, 지금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총회를 마쳤다. 활동가로 일했던 약 10년 동안 12월부터 3월까지 총회를 준비하는 일이 정말 힘들고 버겁다고 느꼈었다. 임원이 되고 난 후로는 내가 직접적으로 압박을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의 입장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음의 스트레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중요한 책임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그만둔 그 공백을 느낄 수 밖에 업었다. 잘난 척을 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지만, 내가 잘 해왔던 어떤 지점들이 이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젠 실무자가 아님에도 나에게 어떤 책임을 맡아 달라는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는 그 요구를 무시했었다. 현재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계속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 생각없이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긴 시간 내 삶을 바쳐 활동했던 조직이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누가 뭐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긴 시간 이 조직의 실무 책임자로 일했기에 뭐든 잘 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생계를 이어갈 돈을 벌어들일 수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할 것인가 하는 숙제는 남는다.&nbsp;<br>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계비는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다. 힘들다. 여기서 또 한 번 나이를 깨닫는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내가 딱히 원하지 않았어도 여기저기 나를 원하는 곳들이 제법 많았다. 남들보다 일을 잘 한다는 자부심은 대학시절부터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이 나이를 감안하고 불러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실무 책임자도 나보다 한참 어릴 것이다. 중간 간부나 실무 책임자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일부러 채용한다는 선택은 내가 생각해도 쉽지 않다.<br>총회 1부 진행을 맡아 대본을 수정하면서 3월 14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 찾아봤다. 일본이 만들어낸, 아니 일본의 제과업계에서 만든 화이트 데이 라는 단어는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는 날이라 무시했다. 검색해보니 원주율을 의미하는 파이의 날이라고 기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이 일어난 날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다른 여러 역사 기록들이 살펴보다가 마지막으로 눈에 띈 것은 칼 맑스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무심코 지나가는 하루 하루가 모두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날이겠구나 싶었다. 암튼 앞으로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 라는 쓰잘데기 없는 이름으로 기억하기 보다 파이의 날이나 칼 맑스의 기일로 기억해야겠다.<br>15주년<br>3.11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15주년이 지났다. 평일이었는데 광화문 인근에서 전국단위 행사가 있었고, 인간 띠 잇기 행사도 있었다. 나도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서 나가지 못했다. 매년 이 맘때 반복하는 말이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이 사고를 수습할 수 없다. 현재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은 아직 이 정도로 심각한 방사능 피폭에 대응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15년이나 지났으니, 후쿠시마 핵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중에 가장 유명한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는 폭파된 건물을 약 6개월만에 콘크리트로 덮었고, 콘크리트의 수명 약 30년이 지날 즈음에는 더 확실하게 방사능을 막을 수 있는 소재로 돔 형태의 구조물을 덮어 씌웠다. 그래서 실제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이 새어나온 기간은 약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체르노빌은 발전소 하나만 폭발했고, 그 용량도 후쿠시마에 비하면 적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발전소 한 기당 용량도 체르노빌에 비해 훨씬 크고 무려 4기가 폭발했다. 그 4기는 모두 설계 수명이 끝나서 폐쇄되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수명을 연정하여 운영한 발전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소 폭발이 일어난 1호기에서부터 4호기까지 4기의 발전소와 달리 같은 위치에 있었던 5호기와 6호기는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 핵발전소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들의 내구도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nbsp;&nbsp;<br>매년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현재 인류는 핵발전 이라는 기술을 감당할 수 없다.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난 폐기물인 핵연료봉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명(콘크리트 내구 연한)이 끝난 발전소를 폐기하는 기술도 불완전하다. 더욱이 후쿠시마와 같이 좁은 지역에 4기나 되는 고용량의 발전소가 수소폭발을 일으켜 방사능이 유출된 경우 폭발한 발전소의 건물을 덮거나 멜트다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핵연료를 수습할 수 있는 기술도 없다.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4기의 발전소는 폭발이 일어난 상태 그대로, 쉽게 말해서 뚜껑조차 덮지 못한 상태로 매 순간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고, 어떤 상태인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쏟아붓는 냉각수가 그대로 방사능 오염수로 변해 매일 매일 쌓이고 있다. 일부 방사능 핵종의 반감기가 10만년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는 바다에 그냥 방류하고 있다. 아무리 태평양 바다가 넓고 깊어도 매일 버리는 방사능 오염수가 몇 십년 이상 쌓여도 안전할까?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난다고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는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처리하고 뚜껑을 덮을 수 있을까? 과연 일본 정부가 공언한 대로 2051년이 되면 데브리를 수습하고 폐로 처리를 할 수 있을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꽤 높은 확률로 불가능 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거짓말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고,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nbsp;<br>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이라는 인간이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에 아직 공정률 약 30%에도 못 미쳤던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건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가 나중에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공론화를 하겠다고 헛소리를 하며 국민들을 배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문재인은 그러고도 본인은 탈핵(핵발전 산업을 그만둔다는 입장)을 선언했는데, 정작 핵발전소는 계속 짓고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동의 없이 추행은 저질렀지만 성범죄는 아니다? 이게 한 나라 대통령이란 인간이 버젓이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래, 어쨌든 탈핵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말이라도 탈핵이라고 떠들었던 문재인과 달리 이재명은 핵발전소를 더 많이 짓겠다고 한다. 비상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낸 광장의 의지를 배반하는 행위이고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당연히 모를 리 없다. 이렇게 국민들을 기만해도 자신의 지지율이 전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 따위, 국민의 건강 따위 아무 상관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인 것이다. 이재명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개 돼지라는 표현을 쓰려다가 개와 돼지에게 미안해서 금수라고 썼는데, 그러면 오히려 모든 생명에게 미안한 일인데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그냥 씀)&nbsp;&nbsp;<br><br><br>나이 듦<br>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김없이 "도인"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긴 흰 머리에 흰 수염. 간달프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는데, 곧바로 반박이 들어왔다. 간달프 만큼 멋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간달프만큼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도인이란 단어는 도를 닦는 사람이라는 뜻일텐데, 단 하루도 도를 닦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실제 도인에게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일이라고 본다. 감히 도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평범한 범인에게 도인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걸 또 주저리 주저리 떠들기는 참 쉽지 않다. 또 다른 반응은 "예술하는 사람" 혹은 "예술가"다. 음, 예술가의 정의는 뭘까? 아니 예술의 정의는 뭘까? 나는 어렸을 때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곧바로 포기했었다. 나중에 뒤돌아 생각해봤을 때 남들보다 조금 잘 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는가 깨달았다. 음악도 딱히 잘했던 적은 없었다. 락 음악을 좋아했고, 멋있어 보여서 기타를 혼자 배우기는 했지만, 농활 갔다가 손가락을 다친 후로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악기는 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시도할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한 오륙년 전에 두성을 배워서 노래는 조금, 그러니까 아주 조금 할 줄 안다고 말할 수준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평범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세상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러니 미술로도 음악으로도 예술가라는 단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나마 단 하나 글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어쩌면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은 그냥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는, 아무 의미 없는 잡글에 불과하다. 역시 예술가라 부를 수는 없겠다.&nbsp;&nbsp;<br>그냥 나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줄 수는 없을까? 내가 아무리 남들과 달리 조금 독특한 외모를 하고 있다 해도,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고, 예술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굳이 일부러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아무리 듣기 좋은 이야기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nbsp;<br><br>책 구매<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분명히 집에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소설의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팔았던 기억도 없고 버린 기억도 없었다. 집에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몇 시간을 찾고 또 찾았는데 없었다. 아, 다시 사려고 보니 절판이었다. 오래 전 책을 읽었던 당시에 아무런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웠고, 갑자기 이 책을 소개한 강양구 기자가 원망스러웠다. 중간까지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왜 결말은 기억나지 않을까? 궁금하고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고책 알림 등록을 해두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어제 한창 바쁠 시간에 알라딘 중고 매장 중 한 곳에 이 책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왔다. 아무리 바빠도 이 책은 사야 한다는 생각이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번에도 배송비가 아까워서 해당 중고매장에서 책 두 권을 더 담은 후에야 주문했다.<br>책이 도착하면 읽고 있던 책들을 다 제쳐두고 이 책부터 먼저 읽어야지. 얼른 와라. 이렇게 책을 기다려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37/57/cover150/8901098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375728</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새 이웃</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36722</link><pubDate>Sat, 07 Mar 2026 23: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36722</guid><description><![CDATA[새 이웃<br><br>2월과 3월은 총회 시즌이다. 후원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많고 그 중에 일부에서는 운영위원 등 역할을 맡고 있어서 총회 준비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몇몇 협동조합에서는 이사와 감사 등을 맡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사를 맡고 있는 조합 두 곳에서는 올해 총회 준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는 모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노동이지만,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난주와 이번주는 이런 일들로 많이 바빴다. 하루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서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총회 준비 일을 했다. 저녁에 또 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간단히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일을 했다. 새벽까지 일을 해도 맡은 일들을 다 끝낼 수가 없었다. 잠시, 아마 한 사십분 가량 졸다가 깼다. 의자를 여러개 붙여서 잠시 누웠는데 막상 누으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한동안 조용한 음악을 켜둔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좀 쉬다가 다시 일을 했다. 아침이 된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데 공동 사무실을 함께 쓰는 분이 출근하셨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세수도 하고 이를 닦았다. 다시 일에 몰두해 점심 무렵에야 급한 일 두 건 정도를 마무리했다. 그날 저녁에 또 회의가 있어서 고민했다. 집으로 가서 서너시간 쉬다가 돌아올까? 오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어차피 할일은 남아 있으니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운동을 하고 씻고 올까? 집에 일단 가면 피곤하니까 다시 나오기 싫어질 것 같기도 하고 잠시 누워있다 나와야지 하다가 그냥 잠들어버려서, 회의 시간까지 깨지 못할 것 같기도 해서 선택지에서 지웠다. 운동도 몸을 쉬어주지 못해서 오히려 이런 날에 무리하면 다칠 것 같았다. 역시 삭제. 그냥 좀 쉬엄쉬엄 일을 하며 저녁까지 버텨야지 싶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한 십여년 전에는 며칠 연속 밤을 새워 일을 해도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5일 동안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씩만 쪽잠을 자고 일을 했던 일이다. <br><br>평소에도 밤에 일을 해야 집중이 잘 되어서 낮엔 주로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를 다니고 밤에 문서 작업을 하는 편이라, 하루나 이틀 정도 잠을 못 자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나이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예전에는 밤샘을 하면 집중력이 좀 떨어져도 몸의 피로는 좀 덜 느꼈는데, 요즘은 집중력은 오히려 괜찮은데, 몸의 피로를 확실히 느낀다. 암튼 너무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허리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무선 이어폰을 챙겨 외투를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몇 군데 업무 통화를 할 일이 있어서 그 통화들을 몰아서 하면서 주변을 걸었다. 봄이지만 꽃샘추위는 여전해서 제법 쌀쌀했다. 무선 이어폰 덕분에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걸었다. 서너명과 한 시간 반 넘게 통화를 하면서 골목길들을 돌아다녔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동료 활동가가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얻어 먹으러 갔다. 새벽에 배가 고파서 컵라면 하나를 먹은 후로 첫 끼니였다.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밥을 먹고 돌아와 일 이야기를 좀 하다보니 회의 시간이 다 되었다. 회의는 길었다. 다뤄야 할 건은 많고 합의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금방 지쳤다. 나는 그때 이미 출근한지 36시간이 지나서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남은 집중력을 모두 짜내어 원활한 합의가 이뤄지도록 노력했다. <br><br>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몇몇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음식을 사러 나갔다. 공식 회의 자리에서는 차마 나누지 못했던 날선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래서 뒤풀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의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회의가 늦게 끝나서 뒤풀이도 늦게 끝났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이었다. 남아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돌아가고 누군가가 나에게 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눌 말도 많았고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왜 내 몸은 하나 밖에 없을까? 내 몸을 복제해서 하나 더 만들어 일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인공지능에게 하루 종일 일을 시켜서 서너명이 할 일을 커버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글쎄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아직은 아무리 인공지능이 일을 잘 해도 혼자 완결지을 수 없다고 본다. 나도 이번에 많은 일을 맡아서 도움을 받아보고 싶었지만, 막상 써보니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봐야 했다. 내 기준에서는 인공지능이 어설프게 만든 문서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빈 문서를 하나하나 채우는 것이 더 낫다 싶었다.<br><br>암튼 나를 붙잡았던 동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48시간은 아니었고, 출근한지 한 44시간 정도 후에 퇴근이었다. 집에 오니 현관문 앞에 작은 종이 가방이 놓여있었고, 꽃 한송이와 떡 한 팩 그리고 작은 쪽지가 있었다. 뭐지? 이건 누가 보낸 걸까? 나에게 꽃을 보낼 사람은 전혀 없었다. 이건 아마 튤립인가? 꽃에 문외한이라 뭔지 알수 없었다. 일단 집으로 들어와서 쪽지를 열어봤다. 이번에 이 낡은 빌라 4층에 새로 이사온 이웃이라 적혀있었다. 그래서 떡을 돌린 거구나 하고 이해했는데, 그런데 꽃은 왜? 이 빌라가 워낙 낡아서 이번에 그 집이 내부 수리를 좀 오래 했던 것 같다. 공사 소음이 꽤 오래 들렸다. 그래서 일부러 떡을 돌린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꽃은 왜 돌렸을까? <br><br>어쨌거나 정성이 대단한 이웃이라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이웃이랑 마주쳐도 인사도 잘 안 하는 시대에 떡과 함께 꽃을 돌리다니. 나는 이 집에 이사온 지 6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얼굴을 아는 곳이 아랫집 밖에 없다. 이삼년 전에 두 번이나 누수 문제가 생겨서 자주 소통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윗집과도 누수 문제로 소통했었는데, 그 집은 이후에 이사 나가고 새 이웃이 들어왔는데, 이 분들과는 아직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옆집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살고 있는 어르신 부부이고, 늘 함께 지내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성인이 된 자식들이 오간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오가며 얼굴을 마주쳐서 인사는 나눴지만,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어서 얼굴이 기억이 안난다. 안그래도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결코 이 분들을 알아볼 수 없다. 이번에 떡과 꽃을 돌린 이웃과 인사를 나눌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사이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br><br>공교롭게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꽃을 받았다. 하나는 작은 아이가 줬다. 2월 초 내 생일에 주려고 직접 만든 꽃이었다. 이 재료들을 뭐라 부르는 지 잘 모르겠지만, 털실과 철사 등을 활용한 것 같았다. 아이에게 받은 조화는 지금 사무실에 놓아뒀다. 이번에 받은 생화는 현관에 놓아뒀다. 덕분에 한동안 사무실을 오가며 선물 받은 꽃들을 보게 되겠네. 피곤하고 힘든 날 꽃 한 송이 덕분에 잠시 웃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아니, 벌써 경칩이 지났다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34134</link><pubDate>Fri, 06 Mar 2026 16: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3413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3608&TPaperId=171341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91/53/coveroff/89586236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032910&TPaperId=171341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61/40/coveroff/k49203291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033908&TPaperId=171341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77/11/coveroff/k4320339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어떤 실험<br>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한동안 놓쳤던 에너지 관련 소식들을 잔뜩 긁어 모았다. 트위터는 초반에 잠시 쓰다가 그만뒀고, 인스타그램도 아주 가끔 달리기 기록이나 운동 기록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고 있다. 스레드는 달리기 관련 소식들을 접하기 위한 용도로 아주 가끔 접속한다. 페이스북은 아주 오래전에는 가끔 일상 기록이나 생각 등을 올렸지만, 한 10년 가까이 개인 이야기를 올리지는 않고 있다. 활동 내용 공유만 가끔 하고, 에너지 관련 뉴스들을 공유하는 정도. 페이스북에 소식을 올리지도 않으면서 끊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팔로우 하고 있는 에너지 관련 전문가들 때문이다. 이 분들이 종종 공유하는 여러 소식들. 본인이 쓴 칼럼들 등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고, 내가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이 분들을 통해 주요 뉴스들을 접할 수 있다.<br>오늘은 어쩌다 정치인 박지현 씨의 페이스북을 보게 되었다. 2월 25일에 올린 게시물이던데, 아주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밝혀 놓았더라. 그는 이 게시물을 쓰기 며칠 전에 자신의 사진(게시물 상의 표현으로는 자신으로 보이는 사진) 2장을 올리고 이 사진들이 AI 작업물로 보이는지, 실제 자신의 사진으로 보이는지 댓글을 달아달라고 했었다. 이 게시물을 먼저 읽고 나서 해당 사진을 찾아보니 댓글이 50개나 달렸더라. 그는 절반 이상이 AI 가 '아닐 것' 이란 댓글이었다고 결과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을 실제로 만나 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럼 그 사진 두 장은 다수의 댓글이 추정한 것처럼 AI 작업물이 아닌 실제 사진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진 3장을 넣고 2,400원을 결제한 후 십여분만에 열 장의 사진을 얻었고, 그 중 자신의 평소 스타일과 가장 유사한 사진 두 장을 공유했다고 적었다. 그가 결과를 밝힌 것처럼 자신을 실제로 아는 사람들, 자신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사진을 실제 자신의 사진이라고 착각했다. 그는&nbsp;“실제 사진이어도 어차피 보정은 들어가지 않느냐”는 댓글도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아예 카메라 어플이 아예 보정한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젠 그냥 사진을 찍어도 내 모습이 아니라 보정된 가상의 나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박지현 씨는 보정된 결과물이라도 실제 나를 찍은 것이라서 인공지능이 생성한 것과는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가 이렇게 흥미로운 실험을 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인공지능으로 인물 사진들을 만들어 내는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근 정치인들이 설 명절에 한복 입은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올린 경우를 예로 들며 이렇게 손쉽게 존재하지 않는 사진을 만들어 공유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만약 누군가가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다면 스튜디오 대여 비용부터 메이크업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할 것이고, 바디 프로필을 찍을 만한 몸매를 만드는 비용도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사진을 넣고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 박지현 씨가 지불한 2,400원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인물 사진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딥페이크 음란물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인공지능에게 넣는 것은 어떤가? 그 당사자는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사용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결과물이 실제 사진인지, 만들어 낸 가상의 결과물인지 알지 못한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br>알라딘 연간 통계<br>해마다 1월에는 알라딘 서재 연간 통계를 살펴봤었다. 1년 동안 내가 쓴 글이 몇 개인지 그리고 글자수로 따지면 몇 자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내가 작년에 글을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 2025년에는 과연 글을 몇 개사 썼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봤더니 25년 통계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더라. 작년 1월에 확인했던 24년 통계가 여전히 나를 반겼다. 음, 알라딘이 이제 서재 관리를 안 하는 증거가 되려나?<br>궁금해서 알라딘이 언제부터 연간 통계를 내기 시작했는지 살펴봤더니 2011년 부터였다. 그래서 알라딘이 집계해 준 기록들을 긁어 모았다. 그리고 작년에 쓴 글은 직접 세었다. 57개였다. 24년에는 24개 밖에 안 썼던데, 그에 비하면 많이 썼구나. 2011년 이전에는 어땠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알라딘 서재에 처음 글을 썼던 건 2004년이었던데, 그 해에 7개의 글을 쓴 후로 몇 년 동안 글을 안 썼더라. 다시 글을 쓴 것이 2008년이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쓴 글도 직접 세었다. 가장 많은 글을 쓴 해는 2011년이었고, 78개를 썼었다. 그 다음이 12년으로 63개, 그 다음이 작년인 25년이었다. 가장 적은 글을 쓴 해는 2009년으로 5개 밖에 안 썼더라. 그 이후로는 적어도 20개 이상은 썼더라. 아, 2020년에 17개가 두 번째로 적은 해였네. 이왕 조사한 김에 엑셀로 표를 만들어봤다. 글을 거의 쓰지도 않았으면서 부끄럽게 뭐 이런 걸 공유하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기록이라서 올려본다. 알라딘이 25년 통계도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nbsp;&nbsp;&nbsp;<br><br><br><br>그런 일은<br>평소에는 가요를 거의 듣지 않지만, 아주 가끔 슬픈 노래들을 찾아 듣는다. 가요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와 부를 수 없는 노래로 나눌 수 있다. 남성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은 대체로 부를 수 있다. 취향이 아니라 부르지 않는 노래가 많기는 하지만 랩이 들어가는 노래를 제외하면 대부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여성 가수들의 노래들은 음역대가 달라서 부르기 어렵다. 음을 낮춰 불러도 어려운 곡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부를 수 없는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박화요비의 [그런 일은] 이 떠오른다. 이 노래가 나온 시기에는 정말 영미권 팝송만 들었고, 가요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는데, 거의 유일한 예외가 이 노래였다. 박화요비 라는 가수가 참 매력적이라 느꼈던 것은 그가 부른 [wild flower] 를 들었을 때였다. 컬러 미 배드가 부른 곡을 참 좋아했었는데, 박화요비의 곡도 참 좋았다. 박화요비가 부른 노래 중에 이 [wild flower] 와 [careless whisper]를 참 좋아했는데, 그 다음으로 좋아한 노래가 [그런 일은]이었다.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 듣는데, 다른 가수들의 커버곡들이 보이길래 하나씩 찾아 듣기 시작했다.<br>가장 먼저 들은 것은 정유진 이란 가수의 곡이었다. 영상의 설명을 보니 디아크 라는 그룹의 메인보컬이었다고 한다. 목소리도 아주 좋고, 감성도 좋았다. 그리고 깨끗하게 올라가는 고음도 인상적이었다. 이 어려운 노래를 이 정도로 부르는 걸 보니 정말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거리에서 찍은 영상이라서 더 인상적이었다. 두번째는 웬디 라는 가수였다. 이 분도 어느 유명한 그룹의 메인보컬인 것 같다. 와! 이 분도 노래를 정말 잘 하더라. 정유진도 엄청난 노래 실력이라 느꼈는데, 웬디는 그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량도 더 좋고 곡에 대한 해석도 더 좋았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래포구 포장마차에서 회와 소주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불렀던데 야외에서 이렇게 라이브를 잘 하다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세번째는 닝닝이라는 가수였다. 에스파 멤버라고 한다. 아마도 중국인인 것 같은데, 한국어 발음이 거의 완벽해서 놀랐다. 확실히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앞서 본 정유진과 웬디가 워낙 잘해서 이 두 사람 보다 먼저 들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네번째는 박혜원이었다. 이 영상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 박화요비 노래를 아무나 시도할 수 없을텐데 라고살짝 걱정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후반부의 고음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곡 전체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다섯번째는 미연이라는 가수였다. 이 분도 어느 유명한 그룹의 보컬이었는데, 예전에 어느 예능에 나왔던 걸 본 기억도 있는데.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귀찮다. 음색은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후반부 고음은 아주 많이 아쉬웠다. 원곡보다 키를 낮췄음에도 고음을 소화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솔지라는 가수의 곡을 들었다. 와! 음색도 감성도 그리고 곡의 해석도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6명의 가수가 부른 [그런 일은]을 비교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어려운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가수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모두 다 나름의 좋은 점들이 있어서 하나의 리스트로 만들어 두고 가끔 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웬디 버전이 가장 좋았고, 솔지 버전이 그 다음, 세 번째는 정유진이었다. 이 세 사람의 노래들을 한번씩 더 듣고 원곡인 박화요비의 곡을 찾아 들었다. 아, 박화요비의 목소리를 딱 듣는 순간 앞서 들었던 노래들은 그냥 다 의미가 없어졌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원곡의 감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애써 만들어 놓은 새 리스트를 들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br><br>읽고 있는 책들&nbsp;&nbsp;<br>이상은 늘 자본에 저항하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자본에 종속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자본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많이 했었다. 하지만 급여를 받는 은행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대안 은행이라는 개념을 10여년 전에 접했을 때에도 대출에 대해서만 생각했었고, 돈을 보관하는 곳으로서 대안을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시도가 있었더라. 빈고라는 협동조합은 그 역사도 무척 오래되었고, 규모도 생각보다 컸다. 2년 전에 조합원으로 가입했지만, 특별히 활동을 하지는 못했었는데, 작년에 [자본의 바깥] 책 출간 소식을 접한 후로 여기서도 뭔가 활동을 좀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이 책을 통해&nbsp;용산 해방촌 빈집 이라는 독특한 운동에서 시작한 '빈마을 금고'가 빈고의 원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얼른 읽고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꼼꼼하게 읽어야겠다.<br>2월 중순에 참여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대의원 총회에서는 [나이 들고 싶은 동네]라는 책을 받았다. 우리 주치의인 무영 님과 활동가 어라 님이 함께 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미처 찾아볼 여유 없이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쓱 살펴보니 대체로 내가 알고 있던 동네 이야기였다. 그래도 책으로 다시 읽으니 다 알던 이야기도 새롭게 느껴졌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새삼스럽다.<br>일본어와 중국어를 야금야금 조금씩 익히다보니 한자를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나는 어렸을 때 한자를 외우지 않았을까? 왜 대학 시절에 한자로 된 전공책들을 읽으면서도 한자를 외울 생각을 못 했을까? 나이 들어서 뒤늦게 한자를 익히려고 하니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무턱대고 그냥 한자를 외우려니 너무 재미가 없었다. 한자를 좀 더 재미있게 익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때, 누군가 공유한 한시를 읽었다. 아! 한시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히는 재미가 생길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하지만 한시를 읽는 것과 한자 익히는 재미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단 시를 좀 더 들여다보자.<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77/11/cover150/k4320339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77110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오늘은 짧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28452</link><pubDate>Tue, 03 Mar 2026 2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28452</guid><description><![CDATA[오늘 글 쓰기<br>3월 초에는 서재에 글을 쓰지 않은 날이 모여있는 것 같다. 엊그제 삼일절 아침에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쓴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슨 글을 쓸 것인가 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 예전에 쓰던 글들 목록을 검토했다. 쓰다가 중간에 그만둔 글들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인 글도 있지만, 더 조사나 내용 보완이 필요한 것도 있고, 쓰다가 자꾸 엉뚱한 내용으로 빠져서 중간에 그만둔 것들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한번 쓰다가 멈춘 것을 다시 쓰려고 하면 처음 그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날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볍게 고쳐 쓸 수 있는 글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뭐든 새 글을 써야 했다.<br>마침 당일이 삼일절이었다. 예전에 친일 문제와 독립운동에 대해 누군가와 오랫동안 진지하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 접했던 뉴스들이 생각났다. 이란의 독재자가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것. 그리고 보복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뉴스도 접하고 영어에도 익숙해지려고 가끔 BBC 뉴스를 본다. 마침 트럼프의 입장을 전하는 BBC 뉴스 클립이 있어서 클릭했다. 처음에는 앵커와 리포터가 상황을 요약해 전했는데, 중간 이후부터 트럼프가 떠드는 영상으로 넘어갔다. 아, 너무 듣기 싫은 목소리와 꼴 보기 싫은 얼굴이라 바로 꺼버리고 싶었지만, 뭐라 떠드는 지 궁금해서 잠시 살펴봤다. 대통령 꼴을 보기 싫어서 뉴스를 보지 않기 시작한 것이 이명박 시절 부터다. 이후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을 거치며 뉴스를 멀리하고 살았다. 물론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 입장에서 뉴스를 안 보고 살 수는 없다. 뉴스를 보기는 하되, 대통령이 직접 나오는 장면은 가급적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br>이 글을 쓰면서 최근 약 6개월 가량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는 갈등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까? 비록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필요하다. 의견을 나누는 것은 서로를 비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들은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우리는 서로 의견을 나누며&nbsp;조금씩 입장을 좁혀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대개 본인 주장만 계속 반복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나라고 매 순간 옳은 주장만을 할 수 없다. 때로는 나도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썩 좋지 않은 의견을 낼 수 있다. 가끔은 실수로 오판을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의견을 나누며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닌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각자 다른 의견들이 조금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꼭 등장하는 빌런들. 절대 자신의 의견을 굽히려 하지 않고, 거의 무한 반복 같은 이야기만 떠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br>오늘도 점심 무렵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쓴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글을 쓸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뭐 내가 매번 글이 없는 날에 꼭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아니라서 무리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까 저녁에 예정된 회의가 예상보다 아주 일찍 끝났다. 그리고 이후에 만날 사람은 다른 회의가 있었다. 나도 어차피 그 시간 동안 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시간에 마칠 것이라 예상했었던 거다. 그가 회의에 참여할 동안 나는 시간이 비었다. 서둘러 노트북을 열어 알라딘에 접속했다. 그리고 빈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쳐다봤다. 음, 뭘 쓸까? 일단 제목부터 쓰자. '오늘은 짧게' 라고 쓰고 정말 짧은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nbsp;일단 어쨌든 두드리기 시작하자. 두드리다 보면 뭐든 내용이 나오겠지.<br>브런치<br>최근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라는 틀이 있다고 알게 된 후 언젠가 여기 글을 써보자 하고 생각한 지 약 2년 정도가 지났다. 작년 가을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글을 여기다 써볼까 고민했다. 알라딘 서재는 처음에 책 이야기를 중심을 글을 썼다. 그 당시에는 일상 이야기를 쓰는 다른 블로그가 있었다. 일상 이야기를 쓰던 블로그가 문을 닫은 후에 한동안 어디에도 글을 쓰지 않았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알라딘 서재에 일상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책 이야기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고, 갑자기 쓰려니 글 쓰기가 어렵게 느껴졌는데, 알라딘 서재는 어떻게든 다시 이용하고 싶었다.&nbsp;<br>브런치는 어떤 특정한 주제로 연재하듯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내가 꾸준히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분야가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 이야기는 꾸준히 쓸 수 있겠지만, 이건 애초에 알라딘에 쓸 주제이다. 일상 이야기도 가능한데, 일기처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써야겠다. 가능하면 사회 현상과 연결해서. 원작이 있다면 원작과 비교해도 좋고, 같은 주제의 영상물이 여럿이라면 서로 연결해서 써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런치에 본격 글을 쓰기 전에 여기 서재에 두어 번 연습하듯 글을 썼었다. 작년 말부터 썼던 몇 개의 영화 혹은 드라마 이야기들이 그 연습이었다.<br>이제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글을 써봐야지. 요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어떤 영화로 어떤 주제를 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늘 느끼지만, 확실히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힘든 일이다. 매번 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은 모르는 해법 같은 것은 없다. 그저 계속 읽고 쓰기를 반복할 뿐.&nbsp; &nbsp; &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삼일절 단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24639</link><pubDate>Sun, 01 Mar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24639</guid><description><![CDATA[<br>삼일절의 첫 뉴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의 독재자가 죽었다는 내용이었고, 이어서 이란의 반격으로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화면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이 고귀한 일을 했다고 떠벌리고 있었다. 저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겠지. 애초에 대통령에 당선될 정도로 지지자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저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것이겠지. 누군가는 독재자를 죽이고 이란 국민들을 구한 것이니 잘한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억압받는 이란 국민들이 직접 혁명을 일으킨 결과라면 무조건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결코 이란 국민들을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공습으로 독재자와 그 부하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학교에도 폭탄이 떨어져 무고한 학생들도 죽었다. 트럼프의 이 공격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저지른 것이다. <br><br>최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뉴스를 보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시키고 다시 선거를 했는데,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고도 했다. 그 전까지 여당인 자민당이 소수이고, 야당 연합이 다수였던 상황이 다카이치와 자민당에게 유리하게 바뀐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손쉽게 야당 연합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이유로 꼽는 의견이 더 많다. 일본의 평화 헌법을 고쳐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것이 다카이치 총리의 대표적인 정책이다. 일본 국민들은 과연 전쟁을 원하는 걸까? 다시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대일본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br><br>비록 지금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윤석열이 처음 등장해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얻으며,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까지 되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나 다카이치의 사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중국의 시진핑이 이렇게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모습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국민들은 전쟁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지도자를 좋아하는 걸까?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정에는 관심 없는 멍청한 지도자를 선택했던 걸까?<br><br>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현재 트럼프 정권에서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자비한 집행에 반발하는 시위가 많은 지역으로 번졌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푸틴과 시진핑에 반발하는 세력들의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초기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겠지만, 일본에도 다카이치와 자민당에 맞서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이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행위와 선택의 결과이다. <br><br>오래전에 누군가와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가 손쉽게 친일파를 비판하면 안 된다며, 만약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친일 행위를 할 거라고 했다. 누구나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고, 잘 살기 위해 친일 행위를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친일 행위에도 수위와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일본제국의 이익에 도움을 주면서, 우리 국민들을 탄압하고 생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다. 즉, 우리 국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수많은 선조들이 만주와 간도로 넘어갔던 이유는 이 땅에서는 도저히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그리고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척박한 땅을 찾아가는 선택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범죄다. 만약 법으로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지르면 안 되는 것이다. 인륜이나 도덕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더라도 결코 하지 않을 짓이다. 그걸 비난할 수 없다고 누구나 그 시절에 그런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친일 행위를 했을 거라고 말하는 건 그 인간이 딱 그 정도로 자신만 아는,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활동했다는 사실만 봐도 어불성설임이 당연하다. 비록 살아남기 위해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본이 부당하게 이 나라를 삼킨 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날이 바로 오늘 삼일절이다. 우리가 이미 다 배웠듯이 삼일만세운동은 겨우 하루 있었던 것이 아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탑골공원 인근에 있던 사람들만 참여한 국지적인 저항이 아니었다. 전국으로 그리고 해외로 확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전 국민의 저항이었다.<br><br>오늘 삼일절을 맞아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비록 내란을 저지른 세력들이 구속당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빨간당은 그들을 옹호하고 있고, 윤어게인을 외치는 독재 지지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마 많이 겹쳐지겠지만, 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을 숭배하는 인간들도 많다. 심지어 학살자 전두환을 옹호하고 노태우를 비롯한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인간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박정희에 대한 지지는 박근혜 지지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있었던 걸로 착시를 불러 일으켰던 사람들은 과연 괜찮았을까? 노무현은 김선일 씨 납치 사망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전쟁에 참여하는 파병을 강행했다.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가 저지른 노동자 탄압과 환경 파괴를 생각하면 절대 존경한다 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문재인은  어떤가? 우유부단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만들면 그라고 불릴 정도로 국정운영을 엉망으로 했고, 박근혜를 몰아냈던 촛불의 의지를 모조리 배신했던 인간, 수많은 시민들이 외쳤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팽개쳐버린 인간이었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 대부분이 윤석열을 욕하지만, 결국 윤석열을 만든 것은 문재인이었다. 과연 지금 이재명은 어떨까? <br><br>누구든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외에 다른 것들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일부러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지금 이렇게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누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br><br>내 주위에는 빨간당 지지자도 없지만, 파란당 지지자도 많지 않다. 특히 이재명 집권 이후로 일부러 민주당 지지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에 빌붙어서 의석을 얻은 기본소득당과 진보당도 민주당만큼 싫어한다. 내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늘 신기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아니 내가 평소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데, 결국 나중에 이렇게 많은 표를 얻는 것을 보면 이상할 수 밖에.<br><br>내가 빨간당보다 파란당을 더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중성과 거짓말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당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여러 파벌이 있고, 다른 의견들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이 정당은 국민을 기만하는 정당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본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필연적으로 노동자인 국민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코 진보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아주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럼에도 늘 국민들에게 빨간당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마치 국민들을 위하는 척 위선적인 태도를 취한다.<br><br>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기 위해서이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현황을 다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많은 것들을 누군가 제시해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결국은 어떤 틀에, 그가 속해있는 상황의 한계 안에 갇혀있을 확률이 높다. 그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늘 다른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단 먼저 의심하고 깨어있으려고 애쓰는 삶은 피곤하고 힘들다. 나는 내 자신이 갇혀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언제나 그 틀을 벗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br><br>자신의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집단이나 세력이 언제나 같다고 느껴진다면 한번쯤 의심해보고 다른 틀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항상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물론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 사람의 인생을 건 선택이니 타인이 참견할 수 없는 영역일 수 있다. 지금 보면 정치도 종교에 가깝다. 사람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없이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 없이 그저 당의 색깔만 보고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교보다 더 굳건해 보인다.<br><br>작년 가을부터 여러 갈등 상황에 긴 시간 시달리고 있다. 사람은 참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하지만 바뀌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필요하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통과 의례와 달콤 쌉싸름한 연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03161</link><pubDate>Fri, 20 Feb 2026 15: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0316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931472&TPaperId=171031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18/coveroff/899193147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862634023&TPaperId=171031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15/1/coveroff/d86263402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영화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새콤달콤]<br>처음 영화 [새콤달콤]을 봤을 때, 빠른 전개와 참신한 반전 덕분에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에는 주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큰 몫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참신하다고 느꼈던 반전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냥 괜찮은 오락 영화 정도의 느낌만 남았다. 최근에 우연히 다른 영화 정보를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 [새콤달콤]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고, 일본 영화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작 소설까지 읽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 영화는 궁금해서 찾아봤다.<br> <br><br><br><br><br><br><br><br><br><br><br><br><br>일본 영화와 우리나라 영화 모두 마지막 반전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본 영화의 우리나라 포스터와 디비디 표지에 저렇게 새빨간 글씨로 마지막 반전에 대한 글을 적어놓았으리라. 저 붉은 글씨 때문에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 것처럼 느껴진다. 누가 저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참 센스 후지다. 저 글씨 때문에 영화를 보려던 마음이 싹 사라질 것 같다.&nbsp;<br>글을 쓸 때에는 그것이&nbsp;책에 대한 이야기던, 영화 이야기던 그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굳이 스포일러 경고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아마도 유튜브의 영향인 것 같은데, 글에도 스포일러 경고를 미리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써 놓은 글들을 가끔 본다. 붉고 굵은 글씨로 아주 잘 보이게 맨 앞에 경고문을 적어 놓은 글들. 실은 나는 누군가 어떤 작품에 대한 핵심 내용을 미리 얘기해도 그 것을 (책이라면)읽거나, (영화라면)보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유명한 영화 [식스 센스]의 경우에도 부르스 윌리스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를 먼저 듣고 영화를 봤었다. 물론 그가 실은 죽은 상태, 즉 유령이라는 것까지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인 그에게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나중에 뭔가 상황이 확 바뀌겠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 혹은 묘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반전을 접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실은 나중에 이야기가 확 뒤집어질거야 라는 것을 대충 예상하고 본다고 그 재미가 그다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오히려 아예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이나 영화를 시작하기 보다는 적어도 이게 어떤 종류의 이야기라는 기본 정보 정도는 파악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거의 무조건 양쪽 날개와 판권 정보, 머리말 그리고 맨 뒤의 해설이나 옮긴이의 글까지 다 읽은 후에 본문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경우에도 미리 정보를 찾아본 후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스포일러를 굳이 일부러 피하지도 않는다.<br>지금 굳이 일부러 스포일러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제 곧 이 두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반전에 대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기 때문이다.&nbsp;<br>[이니시에이션 러브]와 [새콤달콤] 모두 반전 때문에 기억에 남는 영화이지만, 꼭 그 반전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밀도가 높고 짜임새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 아무 생각없이 [새콤달콤]만 봤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 했지만, 나중에 [이니시에이션 러브]를 일부러 찾아 보고, 그 다음에 [새콤달콤]을 다시 보니 각본과 연출이 치밀하게 계산을 많이 하고 만들었다는 점이 보였다. 그리고 이미 반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본 것이라 (당연하겠지만) 반전의 의미는 거의 상관이 없고 이야기 자체가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관객을 속이고 막판 반전으로 연결시킨 감각은 대단하다 싶었다. 아마 원작이 그런 구성이라 일본과 한국에서 차례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겠지.<br>맨 처음에 아무런 정보 없이 [새콤달콤]을 봤을 때에도, 딱 반전을 눈치 챈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위화감은 계속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주인공인 남성과 이야기가 끊어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시점의 남성은 그 외모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도저히 같은 인물로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 영화 모두 계속 관객을 속이며 "이렇게 외모가 달라도 얘네는 같은 사람이야." 라고 마치 가스라이팅을 하듯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런 점이 마지막 반전을 더 극적으로 살리는 요소라고 하겠다. 관객을 속이는 결정적인 아이템은 바로 신발이다. 일본 영화에서는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라는 것이 대사라도 등장하고, 딱 신발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아, 이건 내가 그 시절에 마이클 조던을 좋아했고, 에어 조던 이라는 상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긴 하겠다. 그런 면에서 일본 영화는 참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고 싶다. 80년대 중후반을 살았던 세대에게는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우리에게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듯이, 일본에는 이 영화가 있다고 볼 수 있다.<br>두 영화 모두 영화 시작 시점의 주인공인 약간 통통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농구화를 선물 받고, 잠시 후에 갑자기 남자 주인공이 바뀐다. 잘 생기고 날씬한 남성, 흔히 훈남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멋진 남성으로. 아까 말한 것처럼 관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 감독은 신발을 비롯해 여러가지 요소로 계속 관객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한다. 결국 관객들이 감독의, 아니 원작 작가의 강압에 못 이겨 반쯤 포기하고 받아들일 때쯤에 마지막 반전이 등장한다. 그럼 이 두 영화에서 공통으로 관객들을 속이는 요소들을 알아보자.<br>제일 중요한 요소는 언급한 거처럼 신발이다. 일본에도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미신(혹은 징크스?)이 있다. 그래서 마유와 스즈키가 헤어지고, 다은과 장혁이 헤어진다고 암시하는 증거라는 기능도 있다. 그리고 운동화는 살찐 주인공이 날씬한 주인공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기능도 한다. 주인공이 운동화를 선물 받고 열심히 운동해서 살을 뺀 것이라고 관객을 속이는 요소인 것이다. 그 속임수를 완성하기 위해 두 영화 모두 두 사람이 만날 때 주변에서 뭐라고 말을 하거나 눈짓으로 남성의 기를 죽이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서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두 남성이 부딪히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도 운동화는 꼭 필요한 소품이다. 두 사람이 부딪히기 위해서는 주위를 살피지 않고 달리도록 만들어야 하고 달리기 위해서는 운동화가 필요하니까. 두번째 요소는 이름이다. 일본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모두 '스즈키' 라는 성을 가졌다. '스즈키'가 얼마나 흔한 성씨인지는 모르지만, 우연히 한 여성이 연달아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 정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는 한다. 우리나라 '김'씨, '이'씨, '박'씨 정도라면 아주 자연스러울 것 같기는 하다. 일본 영화에서 두 남성이 같은 성을 가졌다면, 우리 영화에서는 같은 이름을 가졌다. '혁'이라는 이름. 그리고 일본 영화는 여기서 애칭이라는 한 가지 요소를 더했다. 여성이 남성을 부르는 '탓쿤' 이라는 애칭.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처음에는 서로 성으로 부르고,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야 이름에 '상' 이나 '짱'을 그리고 남성에 한해 '쿤' 을 붙이는데, 그냥 이름 만으로 부르는 건 정말 아주 친한 사이에 한해서 가능한 것 같다. 그에 반해 애칭은 상대적으로 좀 더 쉽게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이 같은 것 만으로도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굳이 애칭까지 넣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일본 영화에서 이 애칭이 좀 억지스럽다. 이런 것들이 마지막 반전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데, 이 이야기가 밀도가 높고 잘 짜여졌다는 증거 중 하나다. 그러니까 관객들을 속이는 요소들도 계속 등장하지만, 관객들이 억지로 이 정도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겠네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의외로 실은 그게 아냐 라고 알려주는 요소들도 존재한다. 처음 등장한 남성은 스즈키 유우키 이고, 뒤에 등장하는 남성은 스즈키 타쿠야 이다. 여성은 두 남성을 모두 '탓쿤' 이란 애칭으로 부르는데, 타쿠야는 이름 때문에 이 애칭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유우키는 대체 왜 탓쿤이 되는 걸까? 여성은 유우 라는 글씨의 한자(夕)가 가타가나 타(タ) 처럼 생겼다고 말하면서 이 남성의 애칭을 '탓쿤'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이전에 습관적으로 '탓쿤' 이라 불렀거나 부르려던 실수는 그냥 무시하거나, 옷에 붙은 '태그'라고 둘러댔었다. 그 다음으로 관객을 속이는 요소 중 하나는 여성이 이 두 남성을 만난 계기가 같다는 것이다. 일본 영화에서 마유는 두 남성을 모두 미팅에서 만났다. 약 1년 가량의 시간 차를 두고. 한국 영화에서는 두 남성이 모두 다은이 일하는 병원에 환자로 실려온다. 환자와 간호사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다.<br>앞서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에는 관객을 속이는 요소들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이래도 속을 거야? 라며 놀리듯 이 두 사람이 다른 사람임을 보여주는 암시들도 존재한다. 일단 누가 뭐라해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외모가 가장 큰 증거이고, 그 다음이 두 사람의 성격이다. 한없이 순하고 착한 초반 주인공에 비해 그 다음 주인공은 한일 양국 모두 어느 정도 까칠하고 자기 중심적인 면이 있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이 하나 나오는데, 바로 남자 주인공의 폭력성이다. [새콤달콤]의 장혁은 피곤하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여러 상황 때문에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직접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니시에이션 러브]의 타쿠야는 무려 세 차례나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마 80년대 일본이라는 시대 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시대에는 한국 남성도 폭력을 자주 사용했고, 그럼에도 여성들은 그 폭력에 대항하거나, 신고하거나, 헤어지거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 물론 지금도 아주 높은 확률로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제법 많겠지만, 적어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일본 영화의 시점이 87년이고, 우리 영화의 시점이 영화가 개봉한 21년 즈음일테니 당연한 선택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여성이 남성을 대하는 태도 표정, 그리고 반대로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두 남성이 절대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는 특히 남성의 기질과 버릇에 주목했었다. 타쿠야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차갑다. 스스로 자신이 잘난 사람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그걸 보란 듯이 드러낸다. 그리고 버릇처럼 반복하는 행동이 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유우키는 그렇지 않다. 장혁도 기본적으로 잘생기고 잘난 사람 특유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다. 특징적인 그의 표정과 말투, 반복되는 몸짓들. 당연히 이장혁에게는 그런 모습들이 전혀 없다.<br> &nbsp;<br>&nbsp; &nbsp;<br><br><br><br><br><br><br><br><br><br>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 출간된 번역본이 있었다. 그런데 평들을 읽어보니 굳이 원서를 일부러 읽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마지막 반전에 대해 충분히 살펴 보았으니, 이제 각 인물들과 배역에 대해 알아보자.<br>[이니시에이션 러브]의 마유코는 마에다 아츠코가 맡았다. 처음 보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드라마 [스캔들 이브]에도 나왔더라. 비록 앞 부분에 짧게 등장했다가 거의 마지막 쯤에 또 아주 짧게 나오고 말기는 하는데, 그 앞 부분의 역할이 제법 인상적이어서 표정 연기를 칭찬하며 봤었는데, 이 사람이 저 배우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서 다시 [스캔들 이브]의 해당 장면을 찾아 보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영화가 2015년 작품이고, 드라마는 2025년에 나온 거라 10년이라는 시간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맡은 배역이 너무나도 달라서일까? 모르겠다. 아, 그리고 이 사람 아주 유명한 아이돌 출신이더라. 마침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이 아이돌 출신으로 유명 배우랑 결혼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캐스팅 담당자가 일부러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마유코는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성이다. 그리고 아주 영리한 아니 영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타쿠야가 폭력까지 휘둘렀기 때문에 마유코가 아주 자연스럽게 착한 남자를 선택한 것은 당연하다. [새콤달콤]의 다은에게는 이런 면이 보이지 않아 좀 아쉽다. 장혁의 이야기에서 정당성을 많이 부여하는 것에 반해 다은의 선택에는 막 공감하기가 조금 어렵다. 같은 이야기이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영화가 좀 더 마유코에게 집중한 느낌이고, 한국 영화는 장혁에게 집중한 느낌이다. 며칠 전에 [내 몸을 빌려드릴까요] 를 읽고 쓴 글에서도 썼는데,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의 일본을 잘 알지 못해 놓치고 지나가는 디테일이 많은 느낌이다. 당시의 일본 문화를 잘 아는 분들이라면 훨씬 더 풍성한 느낌으로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nbsp;<br>마유코는 치위생사로 나오는데, 병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두 남성을 만난 것도 미팅 자리였고, 보여주는 모습도 모두 퇴근한 후의 일상이다. 치위생사 라는 직업이 다른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반면 다은은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인데, 두 남성을 만난 것도 모두 병원이었고, 병원에서 정말 피곤하고 힘들게 일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br>[새콤달콤]의 다은은 채수빈이 맡았다. 이 배우를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이 배역에 찰떡같이 잘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를 잘 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전체적으로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계속 밀어붙이며 억지로 웃기려 드는 측면이 있어서 상식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많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종합병원의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 결국은 공감하게 되었다. 초반에 이어지는 병원 장면들을 보면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있을 때, 친절하게 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 봐주고, 다른 간호사들 보다 조금 더 잘 챙겨줬던 간호사가 있었다. 다은이 이장혁에게 잘해주는 장면들을 보면서 그 사람이 생각났다. 요 위에서 마유코가 아주 영리하고 자연스럽게 남자를 바꿨다고 말했는데, 상대적으로 다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야 결국 다른 선택을 하는 거처럼 보인다.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br>스즈키 타쿠야는 마츠다 쇼타라는 배우가 맡았다. 처음 보는 배우인데, 키도 크고 정말 잘 생겼다. 찾아보니 재일교포 배우인 마츠다 유사쿠 라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고, 형인 마츠다 류헤이도 배우라고 나왔다. 어, 이 이름은 익숙하다 싶어서 보니 확실히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재미있게 봤었던 드라마 [아수라처럼] 에 나왔더라. 타쿠야에 대해서는 저 위에서 반전 이야기를 할 때 제법 자세히 다뤘다. 이것도 아마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타쿠야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미야코와 바람을 피우는 모습이 낯설고 이상하게 여겨졌다. 불륜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저 드라마 [아수라처럼] 에서도 불륜을 저지르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적어도 다들 죄책감을 느끼기는 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물론 타쿠야도 죄책감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자신이 도쿄에서 시즈오카까지 그 먼 길을 운전해서 가주는 것으로 죄책감을 상쇄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거리감이 없어서 이 두 도시가 얼마나 먼 지 잘 모르겠는데, 대사로 너댓시간 운전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차로 다섯시간 운전한다면 거의 서울 부산 간 거리에 가까운데. 그렇게 먼 거리를 오간다는 것은 확실히 너무 피곤하고 힘든 일이기는 하다. 나도 부산까지 운전을 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이 정도 장거리 연애라면 애초에 접근 자체가 달랐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nbsp;<br>장혁은 장기용이란 배우가 맡았다. 이름은 낯선데 얼굴은 익숙했다. 어디서 봤나 해서 찾아보니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왔더라. 내 주위 중년 남성들 대부분이 이 드라마를 정말 좋아했고, 아주 친한 친구 한 명은 심지어 인생 드라마라며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던데, 나는 이 배우가 맡은 깡패 캐릭터가 아이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고 난 후로 이 드라마를 보기 싫어졌었다. 결국 나중에 억지로 다 보기는 했는데,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들지 않는다. 뭐 그만큼 실감나게 연기를 잘 했다고 볼 수 있겠지. 이 배우가 나온 다른 작품은 기억나지 않는데, 검색했을 때 나온 사진들을 보면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나 표정들이 다양하더라. 영화에서 장혁은 인천에서 다은과 연애를 하다가 서울에 있는 대기업으로 파견을 나간다. 타쿠야가 며칠에 한번씩 시즈오카에 다녀왔던 것에 반해 장혁은 초반에 거의 매일 밤에 인천으로 퇴근했다가 아침에 서울로 출근한다. 비록 이동 거리는 도쿄 시즈오카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 길이 얼마나 심각하게 막히는 길인지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제법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나도 부천에 살 당시에 서울로 출퇴근을 했었고, 자주 운전을 해야 했었다. 지금은 성인이 된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였고, 아침에 아기를 신도림 장모님께 맡기고 종로로 출근했었다. 아기 짐이 엄청 많았기 때문에 차로 이동해야 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두 길(고속도로와 국도) 모두 지독하게 막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신도림과 종로 모두 얼마나 막히는 길인가! 퇴근할 때는 또 반대로 신도림에 가서 아기를 데리고 다시 부천으로 가야 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 든다.<br>앞서도 언급했는데, 이 영화는 일본 영화에 비해 장혁의 비중이 아주 높다. 일본 영화에서는 앞쪽 유우키의 이야기와 뒤쪽 타쿠야의 이야기를 카세트 테이프 A면과 B면이라고 제목을 붙여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 원작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에서는 중심 이야기가 타쿠야와의 사랑이기 때문에 결국은 타쿠야 이야기에 무게가 더 실려 있기도 하고, 실제로 등장 장면도 타쿠야가 더 많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래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이장혁의 이야기가 정말 짧다. 이 영화만 봤을 때에는 이게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결국 장혁과 다은의 이야기가 중심이니까) 일본 영화와 비교하니까 좀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이장혁의 비중이 줄었다. 타쿠야는 본인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간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미야코를 거부하지 못하고 바람을 피우게 되는데, 장혁은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닌 것으로 나온다. 무리해서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의 피로,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를 파견 나온 비정규직 두 사람에게만 맡겨놓은 모양새가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암튼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회사 상황 등으로 한계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3교대 근무로 늘 지쳐있는 다은이 임신 후 낙태하는 상황에서 곁에 있어주지 않고 굳이 회사로 가버린 선택 등의 상황으로 홧김에 다은을 두고 떠나 버린다. 다은이 장혁의 회사로 반지를 보내(일본 영화에도 같은 장면 있음)면서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이별을 인정한 셈이 된다. 그리고 이후에 장혁이 보영과 관계를 시작한다. 어, 그런데 일본 영화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이 두 사람 이별의 결정적인 요인은 남자가 이름을 잘 못 부른 것인데, 타쿠야는 이미 바람을 피우고 있었기에 결정적인 실수가 당연하겠지만, 장혁은 왜 실수를 했을까? 이 부분이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네.<br>또 한 명의 스즈키인 유우키는 모리타 간로 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타쿠야의 빈 자리를 운 좋게 차지한 럭키 가이. 귀엽고 착한 남자. 영화에 나온 만큼 착한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할 것이다. [새콤달콤]을 먼저 봤기 때문에 포동포동 귀여운 남자 배우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다부지게 근육질일 것으로 예상되는 배우가 나왔다. 그럼에도 의외로 귀여운 매력을 잘 보여줬다. 다른 역할을 맡으면 또 완전 다른 이미지가 될 것 같다. 다부진 체격 때문에 깡패 같은 역할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다. 일본 영화에서는 유우키와 마유코의 풋풋한 사랑, 설레는 사랑 이야기도 제법 좋았다.<br>이장혁 역은 이우제 라는 배우가 맡았다. 일본 영화 유우키에 비해서는 훨씬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이다. 상대적으로 좀 더 포동포동한 느낌이기도 하다. 아마 배역 때문에 일부러 살을 찌운 것으로 보인다. 일본 영화에 비해 이장혁은 다은과 제대로 연애한다는 느낌은 안 든다. 마지막 장면 이후에 이 두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알콩달콩 사랑을 잘 키워갈 것인가? 어쩌면 마유코 유우키 커플과 달리 다은 이장혁 커플은 잘 될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마유코와 유우키는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타쿠야와 비슷한 상황으로 갈 것 같다.<br>이시마루 미야코는 키무라 후미노가 연기했다. 전형적인 동양 미인, 특히 일본 미인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공부도 잘 했고, 좋은 직장도 얻었는데 예쁘기도 한 사람. 이런 사람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타쿠야와 함께 도쿄에 올라온 그 친구가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을 만날 확률이 극히 드물고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여러가지 다른 요인들 때문에 바로 사랑에 빠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여성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은근슬쩍 고백까지 한다면 마음이 흔들릴만도 하겠다. 아, 아냐. 이렇게 타쿠야의 바람을 이해해주면 안 되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중에 과연 타쿠야와 미야코가 이어질까? 아마 영화에서 타쿠야가 미야코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 당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키무라 후미노는 재작년에 영화 [시티 헌터]에 나왔더라.&nbsp;&nbsp;<br>보영 역은 정수정이 맡았다. 정수정이라고 해서 누군지 몰랐는데, 아이돌이었더라. 키무라 후미노를 보고 나서 정수정을 다시 보니 이 두 사람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했다. 물론 제작진이 일부러 그런 느낌의 배우를 섭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극 중 두 사람의 성격과 행동은 상당히 다른데,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은 정말 많이 비슷했다. 그런데 이놈의 제작진. 어떻게든 억지로 웃기려고 옷에 케첩을 흘리고, 고추장을 흘리고, 아, 진짜! 온갖 음식을 흘리고 씻지도 않고. 왜 예쁜 배우를 데려다가 이렇게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전혀 웃기지 않고 그냥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달랬다.&nbsp;<br>원작 소설의 제목이자 일본 영화의 제목인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통과의례처럼 거쳐가는 사랑이라고 한다. 첫사랑을 말하는 것 같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결혼 전까지 거쳐가는 인연들이 모두 해당되겠지. 결혼을 했어도 또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불륜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인생은 모르는 것이기에 결국 모든 사랑이 해당될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랑이라는 것,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이 결국은 그렇게 계속 변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 영화 제목은 [새콤달콤] 이다. 처음에 그 상품이 생각났다. 그걸 캐러멜이라고 부르던가? 확실히 사탕은 아니었는데. 암튼 제목을 보자마자 그것의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혀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 상품은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왜 제목이 새콤달콤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 번이나 봐도 모르겠다. 사랑이 새콤하면서도 달콤하다는 뜻인 것 같은데. 달콤은 알겠는데, 새콤은 뭘까?&nbsp;&nbsp;<br>맨 처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봤을 때는 [새콤달콤]도 그리 나쁘지 않은 영화였는데,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비교하니 너무 못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억지로 웃기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만,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이 안 된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일본 영화처럼 좀 진지하게 만들 순 없었을까? 그리고 감독이 장혁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이경영이었고, 그 다음은 박철민이었다. 아, 진짜!!!! 얘네들은 쓸데없이 억지 웃음만을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들인데, 이건 캐릭터 낭비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백번 양보해서 박철민은 그래도 직장상사로서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이경영은 정말 불필요한 인물이다. 일본 영화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역할이다. 이경영 때문에라도 다시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경영이 나올 때마다 확 그냥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걸 얼마나 열심히 참았는지 모른다. 사실 영화 자체는 일본 영화가 훨씬 만듦새가 좋았는데,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채수빈과 장기용이 더 좋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무리 채수빈과 장기용이 연기를 잘 하고 합이 좋아도 이경영 때문에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nbsp;<br>일본 영화에서는 80년대가 배경이라 비정규직이 나오지 않는다. 타쿠야는 도쿄로 발령을 받아 간 것이지 장혁처럼 파견을 나간 것이 아니다. 그 시대 일본을 버블경제 직전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우리 세대가 응답하라 시리즈로 88년과 94년을 기억하는 것처럼 일본의 중년들은 이 영화로 그 시대를 추억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자막이 올라갈 때 작은 화면으로 80년대 백과사전이 나온다. 이후 세대는 본 적이 없을 그 시대의 물건들과 문화를 보여준다. 요런 거 참 재밌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들을 설명하는 자막에 자주 감독 이름이 나온다. 감독이 자주 썼던 물건, 감독이 자주 했던 것. 뭐 이런 식이다. 여러 물건들이 소개되었는데, 카세트 테이프나 전화카드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들도 있고,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나 만화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아, 아마도 원작에서도 그럴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카세트 테이프가 꽤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근데 이미 글을 너무 길게 써서 이건 그냥 패스.<br>[새콤달콤]에서는 파견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 다룬다. 비록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정규직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무시 당하는 모습 만은 사실적이다. 그리고 매일 야근에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할 정도의 업무 강도로 일을 시켜 놓고, 일이 마무리되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현실도 똑같다. 이 부분이 이 영화 전체에서 딱 하나 칭찬할 부분이라 하겠다. 공교롭게도 80년대 일본과 202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같은 이야기의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재미있다. 이런 식으로 일본과 한국이 같은 내용을 영화로 만든 것들을 비교하면 쓸 이야기 거리가 많겠다. 시간 날 때 하나씩 써봐야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215/1/cover150/d8626340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150169</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내 몸은 그저 그릇일 뿐 - [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5397</link><pubDate>Mon, 16 Feb 2026 06: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5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693&TPaperId=17095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57/19/coveroff/897012969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693&TPaperId=17095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a><br/>사토 아유코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7년 08월<br/></td></tr></table><br/>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빌려 준다는 의미<br>이 책을 다 읽고 꼭 글을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있다. 마야는 왜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에는 몇 가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성별의 한계가 있겠다. 나는 현재 중년 남성으로서 젊은 여성의 생각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시공간의 한계다. 이 소설은 1996년 "가와데 문학상"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일본의 이야기다. 나도 물론 90년대 중반에 청춘을 살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여러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은 SNS와 각종 영상 등을 통해 각 나라의 사회상황과 문화를 훨씬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일본 문화를 직접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세번째로는 계급 혹은 계층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약간 억지로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인 도쿄대학을 다니고 있다. 비록 마야가 보디 렌탈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내용은 없다. 아마 굳이 보디 렌탈이란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대학을 다니며 생활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알바를 통해 용돈을 벌 수 있다. 실제 작중에서 마야는 그 용돈 벌이의 목적과 보디 렌탈의 고객 모집을 위한 목적으로 바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한다. 암튼 공부도 잘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반면 나는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고, 공부를 그리 잘 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시민운동 판에 뛰어든 가난한 활동가일 뿐.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들은 다 핑계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다르다. 이 지구에 약 8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결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모두 이렇게 다름에도 불완전하게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쨌든 마야의 삶을 들여다보며 상상해보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br>사토 아유코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일터에서 가까워도 한동안 가지 않았던 알라딘 중고서점을 그날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별 생각없이 책들을 살펴보다가 정보라 작가의 책 하나를 고르고 우연히 집어든 책이 [도쿄대학 살인사건]이었다.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문구에 비운의 천재 작가라고 적혀 있어서 구매했었다. 이 책은 약 1/3 정도 읽었는데, 진행이 좀 느리고 생각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사토 아유코 작가의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이 [보디 렌탈] 이라고 하길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덮어두고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원제가 바로 [보디 렌탈]이고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판본도 이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다시 출간된 책이 지금 제목으로 나왔다. 암튼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알라딘 앱에서 중고 책을 검색했다. 세 곳의 매장에 이 책이 있었고, 그 중 하나를 골라서 2만원 어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송료 2,500원을 아끼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인데, 평소 다른 온라인 쇼핑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책에 대해서는 늘 이렇게 한다. 그래도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책이니까.&nbsp;<br>이 소설이 "가와데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 회의는 무려 4시간이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고 한다. 통상 문학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사전에 심사위원들이 대략 그 범위를 좁혀 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토론을 이어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문제작이었다는 뜻이겠지. 이 책의 맨 뒤에 수록된 두 편의 해설과 옮긴이 후기에서도 반복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의 평론가 진노 토시후미는 이 소설을 포함한 사토 아유코의 작품들을 "초현실주의 실험"으로 보며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김미현 평론가는 "하루키의 경쾌함, 뒤라스의 관능성, 쿤데라의 위악성이 혼합된 묘하고 대담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옮긴이 김진욱은 사토 아유코가 "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그렸다고 언급했다.<br>이 책을 한 번 완독하고 두번째로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을 한 내 솔직한 마음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도 않고, 생각만큼의 문제작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3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겠지. 그럼에도 김미현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하루키와 뒤라스와 쿤데라를 불러올 정도는 아니다. 아, 확실히 경쾌함이 있고, 관능적이고, 위악성이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잘 어우러져 있는가?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의문이 든다. 요컨대 핵심은 이거다. 이 글의 맨 앞에서 내가 던진 질문이자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떠올릴 질문, 그래서 대체 왜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를 빌려주는 걸까? 그것도 젊은 여성이 돈 많은 중년의 남성들에게 고액의 돈을 받으며 남들이 매춘이라 부를 행위를 하는 것일까? 확실히 돈 때문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육체적인 쾌락 때문도 아니다. 뭔가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저항을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 왜일까? 책을 덮은 후로 꽤 긴 시간을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br>진노 토시후미는 매춘을 "상실을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내 몸이지만, 이 몸이 내 신체라는 감각을 상실하는 것. 이것을 위해 보디 렌탈 이란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이 일본인 평론가는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우연한 계기로 신체감각을 상실할 계기로 매춘을 선택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해설은 아마 일본에서 출간된 96년 판본에 실린 글일 것이다. 사토 아유코는 2008년 [꽃들의 묘비]라는 작품을 출간하며 자신과 언니가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신체감각의 상실을 위해 매춘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미현 평론가는 글에서 보디 렌탈의 이유를 딱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텅 빈 그릇이 되어 그 속에 허구나 망상, 유희 만을 담기 위해 의식이나 반성, 이성 따위 자의식을 몸에서 파낸다."는 문장을 썼다. 그리고 이 평론가는 소설 후반부에 마야가 유일하게 가학 충동을 느껴 먼저 유혹하는 우치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결국 마야가 "완전한 물건이 되기에는 그녀의 자의식이 철저하게 제거되지 못했기에 분열을 일으켰다."고 표현했다. 이어서 "물건이 스스로 물건임을 모르면 진짜 물건일 수 밖에 없다." 라며 "자신이 물건이라는 자의식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이미 물건이 아니다." 라고 했다. 우리 마야는 자의식조차 없는 물건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의식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는 아사히 신문의 서평에 실린 마야의 목적도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 치유" 라고 했다. 이어서 "자신의 몸을 남자들의 욕정의 기호로 삼아 철저히 세련되게 만들면서 거꾸로 그 같은 욕정의 세계에서 정신을 이탈시킨다는 식의 '야릇한 치유법'" 이라고 적어놓았다.<br>이 소설에는 마야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현재 대학생이면서 남몰래 부유한 중년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고 살고 있고, 그 고객인 여러 남자들과의 이야기들이 옴니버스식 구성처럼 등장한다. 마야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그 과거를 알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왜 이런 작중 주인공인 마야의 삶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어려서부터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학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지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버려야 했을 것이고, 자신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작가는 비운의 천재 작가가 아니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괴물에게 학대 당한,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nbsp;<br>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자의식을 철저하게 지워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로 여러 번 썼었고, 언제나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꼭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군에 입대할 당시에 나 스스로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만약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인정한다면 도저히 그 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낱 미물이며, 감히 인간 따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온갖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견뎌내야 했다. 만약 그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탈영을 했을 것이다.<br>이제 작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작품 자체만 놓고 몇 가지만 더 얘기해보자. 일단 확실히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도 자극적인 주제다. 다만 글에는 섹스 묘사도 없고 야릇한 분위기조차 없기 때문에 포르노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마야가 말하는 보디 렌탈이란 개념 자체가 그렇듯이 이 글에서 중년 남성들이 마야를 빌려서 하는 여러 행위들은 철저히 차가운 시선으로, 감정을 배재하고 그저 이런 일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묘사를 배제한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짓을 너무 당연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 전반에 상당한 블랙 유머와 해학이 깔려있다. 소설 초반에 와타나베 조교수가 강의에서 한 말인 "인간은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말은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br>정말 독특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너무 거리낌 없이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글이 경쾌하고 거침이 없기도 하며, 그러면서 또 위트와 해학을 갖춘 글이다. 앞서 김미현 평론가의 평가는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 말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확실히 이 소설의 결말은 좀 많이 아쉽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도 아쉽다. 병렬적으로 여러 구매자들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장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큰 줄기의 이야기가 너무 약하다. 앞서 언급한 그 우치다 이야기가 이 소설 전체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일텐데, 이 부분이 좀 아쉽다.&nbsp;<br>이 이야기에서 이어서 생각할 거리들도 제법 많다. 일단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파카츠"가 이 책에서 묘사된 보디 렌탈과 매우 유사하다. 부유한 중년 남성이 젊은 혹은 어린 여성이랑 놀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결국은 이것도 매춘이고, 원조교제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텐데, 거창하게 방과후 동아리 활동을 뜻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를 파파랑 붙여서 신조어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이해하려면 조건 만남이라고 해야할까?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청춘시대] 에서 강이나 라는 캐릭터가 중년의 남성들을 만나면서 원하는대로 돈을 펑펑 쓰는 생활을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본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들이 이 파파카츠로 돈을 벌어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자신의 '최애'에게 갖다 바치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왔던 것 같다.&nbsp;<br>그리고 일본에는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또 다른 형태가 있더라. 바로 렌탈 여친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 말로 여친 대행 서비스 라고 하면 되려나? 일본 드라마 [내일, 나는 누군가의 여자친구] 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드라마로 시즌 1을 보았고, 시즌2는 앞 부분만 조금 보다가 말았다. 원작 만화가 있다고 알고 있다. 나무위키 설명에 의하면 이 만화에 렌탈 여친, 파파카츠,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며 통용되는 매춘 행위들이 총 망라된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곧바로 이 드라마를 떠올렸다. 이 책이 나왔던 96년에는 책 내용이 충격적인 문제작이었겠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류의 매춘이 너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br>이 책과 이 드라마를 연결해서 글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드라마를 가볍게 보고 넘겨 버려서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 디즈니 플러스를 딱 한 달만 구독해서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짧은 시간에 몰아서 보았기 때문에 더 기억이 안 나는 듯하다. 다시 보려면 다시 구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좀 아깝다. 혹시 [무빙]의 후속 시리즈로 강풀 작가의 세계관을 구현한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나오면 그때 다시 구독할 예정이라, 그때 다시 보고 글을 쓸까 싶은데, 어쩌면 그때쯤 되면 이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nbsp;<br>사토 아유코는 2013년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을 병용한 급성약물중독이라고 나온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겨웠을 작가의 삶을 감히 생각하면 참 뭐라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작품 써준 덕분에 이렇게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다. 자, 이제 꽤 오래 방치해뒀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다시 읽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57/19/cover150/897012969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5571964</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드라마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3196</link><pubDate>Sun, 15 Feb 2026 04: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3196</guid><description><![CDATA[드라마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br><br>설 연휴의 시작인 토요일에는 원래 일정이 하나 있었다가 취소되었다. 그런데 나는 정확하게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그냥 막연히 뭔가 일정이 하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달력을 확인하고서야 취소된 일정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할일이 없어져서 낮에 뭘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운동을 가려다가 이번 주에 신나게 운동한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근육통이 찾아온 걸 깨닫고 하루 쉬자고 생각했다. 그럼 사무실 나가서 자료도 좀 찾고 글도 좀 쓸까 했는데, 피로와 근육통 때문에 몸이 무거웠다. 뭐 그럼 낮잠이라도 자야지.<br><br>책을 조금 읽다가 졸고, 폰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좀 찾아보다가 다시 잠이 와서 또 졸았다. 다시 깨서는 서너개의 앱으로 일본어와 영어를 익혔다. 그제서야 배가 고파서 간단히 배를 채우며 넷플릭스를 열었다. 시간 날 때 보려고 생각했던 일본 드라마가 뭐였더라 찾아보고 있었는데, 신작 추천으로 대만 드라마가 제일 먼저 보였다. 제목도 딱 눈에 띄었다.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 추리물이라는 것만으로도 일단 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누가 출연했나 보는데, 정이건 이란 이름이 나왔다. 정이건이라. 그 옛날 홍콩영화에 나왔던 그 정이건인가? 그제서야 포스터에 나온 그 얼굴을 알아봤다. 확실히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그 잘생긴 얼굴은 여전했다. 그리고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살짝 애매한 장발 스타일. 그가 출연한 영화를 여럿 봤겠지만, 확실히 기억에 남아있는 건 [풍운]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섭풍의 머리스타일도 지금 이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던가 싶다. 이 아저씨도 이젠 제법 나이가 많을텐데, 그래도 이렇게 드라마에 나오는구나 하며 드라마를 시작했다.<br><br>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위 말해 인플루언서 라고 불리는 SNS 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나온다. 정보를 찾아보니 각본과 감독이 수원셩(蘇文聖) 이라는 사람이더라. 이전 작품들의 수가 적었고 내가 본 건 없었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가 대부분 원작이 있는 경우가 많던데, 그런 정보는 찾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니 꽤 괜찮게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기대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일단 제목 덕분에 가벼운 느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인플루언서 라는 기성 세대에게는 낯선 단어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이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다루며, 거기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은 독창적으로 잘 만든 이야기라고 느낀다. 다만 더 깊은 주제의식으로 파고 들어가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br><br>사실 이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이 전체적으로 좀 어설프고, 부족한 느낌이다. 뭔가 더 크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좀 안타까웠다. 제일 어이없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첫번째 살인이다. 아니 결국은 피해자가 죽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 아닌 살인미수인데, 이게 참 애매하다. 암튼 그 첫 피해자는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나서 나중에 맨 마지막에 숨겨진 진짜 악당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사건은 피해자가 될 인플루언서(이 단어를 대체할 말이 혹시 없을까 검색해보니 국립국어원이 ‘영향력자‘ 라고 제시했더라.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그건 더 어색하기만 해서 그냥 길어도 이렇게 써야겠다.) 가 실제 총과 거의 구분이 안 가는 비비탄 총을 가지고 경찰서 앞으로 와서 총격을 가할 것처럼 하다가 여러 경찰들과 대치 상태에서 주인공이 쏜 총에 맞는 것이 드라마의 시작인데, 여기가 좀 많이 아쉽다. 일단 이 피해자가 하늘로 첫발을 발사하고 사람들이 총성을 듣고 놀라 큰 혼란이 발생하는데, 나중에 이 피해자가 왼쪽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진 후에 총을 빼앗아 확인해보니 이게 비비탄 총이더라. 이게 말이 되나? 아니 비비탄 총에서 어떻게 실탄 사격과 같은 큰 소음이 날 수 있나? 그리고 경찰들이 총을 든 사람을 제압하는 장면도 너무 어설프게만 그려진다. 아무리 경찰이 무능해도 설마 이 정도일까 싶다. 게다가 이 피해자는 왼쪽 가슴에 총을 맞았는데, 나중에 너무 멀쩡하게 살아난다. 물론 꽤 오랫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너무 작가이자 감독 맘대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첫 피해자가 병원에 실려가자마자 맨 처음 응급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중에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는데, 그럼 의사가 수술 중에 마치 실수한 것처럼 고의로 죽일 기회가 있다는 뜻인데, 이 의사는 수술은 수술대로 해놓고 나중에 병실에서 이 환자를 다시 죽이려고 시도한다. 이것도 참 생각해보면 우습기만 한 오류라고 볼 수 있다.<br><br>초반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정보를 통제하고 주인공 형사의 가족 이야기와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이야기로 시선을 분산시키며 좀 답답한 느낌인데 조금만 참으면 가족의 불행한 사연이 밝혀지고, 데이트 폭력이 해결되면서 느린 흐름은 금방 빨라진다. 이 부분만은 확실하게 좋았다. 다른 드라마들이 중반 이후에도 계속 느린 흐름으로 쓸데없는 곳으로 자꾸 눈을 돌리곤 하는데, 이 드라마는 중반부터는 곁눈질 하지 않고 결론으로 달려간다. 맨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데, 초반부터 의심스러운 인상을 잔뜩 심어주는 인물이기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라 이런 걸 반전이라 부를 수 있나 싶다. 그리고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반전도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주인공 일행이 너무 쉽게 이 숨은 악당을 잡아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br><br>드라마를 다 본 후에 조금 곱씹어보면 전체적으로 지문 검사라던가 족적 검사라던가 포렌식이나 부검 등 기본적인 과학수사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칼이 그대로 꽂힌 채로 죽은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가 장갑도 안 낀 맨손으로 찔렀고, 지문을 닦지 못했는데, 지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익사로 사망한 두번째 인플루언서가 실제로 익사인 것인지 부검 결과를 보는 장면도 없다. 주인공이 시체의 입을 열어보고 입안이 깨끗하단 사실을 확인하여 죽은 후에 던져진 것이라 추측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깨끗한 물에서 죽었다는 추측이 아니라 부검으로 정확한 사인을 밝혀야 맞는 거겠지. 네번째 피해자도 작중 묘사로는 이미 피가 질질 흘러나오는 큰 가방을 육교 위에서 끌고가는데, 경찰에서는 부검도 없이 그냥 떨어져 죽은 것으로 말한다. 더 웃긴 것은 유일하게 시체를 두고 부검 결과를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이 앞서 말한 칼에 맞아 죽은 피해자이다. 이건 칼이 몸에 꽂힌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고 외관상으로 칼에 찔린 상처가 네 개나 보이는 거라 굳이 부검 결과를 일부러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아, 범인이 아랫쪽에서 위로 찔렀다는 부검 결과가 필요해서 넣은 장면이라는 것을 방금 글을 쓰면서 이해하기는 했다. 즉, 진범의 정체를 유추하며 범위를 좁히기 위한 의도였겠구나.<br><br>여기까지 이 드라마의 단점들을 적었는데, 그럼에도 괜찮은 점수를 줄만한 드라마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질질 끄는 경향이 있고, 쓸데없이 로맨스를 넣거나 하는 등 핵심주제로 승부하지 않고 다른 인기 요소를 자꾸 섞어넣으려고 해서 일단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끝까지 다 보는 드라마가 많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8편짜리 드라마로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적당하다.<br><br>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 주제는 인기를 위해 아무 짓이나 마구 벌이고 다니는 소위 말하는 스트리머 혹은 유튜버 이런 인간들이 좀 더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사고가 났다면 꼭 수습을 해야한다. 뭐 이런 것. 그리고 온라인으로 특히 SNS로 빠르게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가짜 뉴스들에 대한 경각심을 다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빠와 딸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딸을 둘 키우는 아빠로서 이 부분 때문에 과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이 답답했고, 결국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내 주위에 성인이 된 후로 아빠와 사이가 나쁜 여성들이 많았다. 심지어 애들 엄마와 장인어른의 관계도 아주 좋지 않았었다. 나는 가끔 혹시라도 우리 딸들이 사춘기 이후로 아빠를 멀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늘 생각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가끔 위기도 있었던 것 같다.<br><br>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정이건이 연기하는 형사는 잠시라도 틈이 나면 딸과의 메신저를 열어보며 혹시 답장이 왔는지를 보는데, 딸은 늘 답장이 없다. 여기서 좀 재미있는 건 어떤 예뻐보일만한 이미지에 아주 좋은 것만 같은 말을 얹어서 보내는 짓을 주인공이 주기적으로 한다는 것.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어쩌면 지금도?) 장년층들이 많이 하던 거였다. 적당한 꽃 사진이나 풍경 사진이나 이런 배경에 잡지 [좋은 생각] 이나 [샘터] 같은 곳에 실려있을 것 같은 좋은 말을 담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막 퍼뜨리는 것.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예전에 아주 친했던 어느 형님이 나에게 딱 그렇게 하셨다. 아마 나한테만 보낸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 여러 명에게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사진도, 아무리 좋은 글귀도 한두번이지. 이게 끝없이 계속 오면 제대로 반응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더구나 나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혀있을 법한 좋은 글이나 시, 아까 말한 류의 잡지에 실린 글들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류의 글들은 얼핏 그럴듯하게 느껴지고 따뜻하고 좋은 내용인 것 같지만, 이 사회의 특정한 면만 부각해서 보게 만들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보지 말라고 세뇌하는, 어쩌면 국민들을 가스라이팅하는 류의 글들이다.<br><br>또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암튼 이 형사는 아빠로서 제대로 딸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자꾸 망설이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짧은 틈이라도 생기면 늘 대답도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이 보내기만 한 메신저 대화를 열어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딸이 아주 짧은 단답형 답을 달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드러나지만 그건 딸이 쓴 것이 아니라 딸을 납치한 납치범이 쓴 것이었다. 과연 아빠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 이 부분은 극 중에서 명확한 묘사가 없어서 장담하기 어렵다. 아마 납치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 같다. 납치범은 딱 한 두 단어로만 답을 해서 의심을 피했고, 형사는 드디어 우리 딸이 답을 했네 하고 내심 안심하고 조금은 기뻐하지 않았을까.<br><br>어쨌든 막판에 아빠가 딸을 구해내고 나서야 나도 마침내 좀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아빠와 딸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드라마 전체에서 제일 좋은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이걸 선택할 것이다. 이 부녀 관계는 엄마이자 아내를 잃고 난 후에 아빠가 엄마를 잃은 슬픔에 빠져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딸은 마침내 아빠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버리고 그 후로 대화조차 피해버렸다. 아빠는 딸이 걱정되니까 음식을 사다가 집 앞에 놓고 가고, 불 켜진 창문을 한참 쳐나보다가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했듯이 혼자 계속 글귀가 적힌 이미지를 보내거나, 말을 걸곤 한다.<br><br>아내이자 엄마의 죽음, 그 너무나도 큰 상실 앞에 두 사람은 정말 슬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남은 둘이 더 보듬고 의지해야 할텐데 늘 그건 쉽지 않은 것처럼 그려진다. 그렇게 서로 상처주고 결국 딸이 집을 나와버렸어도, 그래도 둘은 아빠와 딸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늘 있었기에 아빠는 아빠대로 말을 걸었던 것이고, 딸은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고 작은 무대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에게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br><br>막판의 병실 장면에서 딸은 친구랑 대화하다가 밖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리자 어쩔줄 몰라하면서 자는 척 한다. 친구는 서둘러 병실을 나서며 친구 아빠에게 인사를 한다. 아빠는 병실에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손에는 가끔 사다줬던 밥이 들려있다. 딸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레 사온 밥을 탁자에 놓고 딸의 친구가 보내줬던 딸의 공연 영상을 시청한다. 바로 아빠에 대한 그 노래였다. 그러자 딸이 눈을 뜨고 말을 건다. 아빠는 시끄럽게 해서 잠을 깨웠을까봐 미안해한다. 딸은 몸을 일으키더니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아빠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앉으니 딸은 솔직한 심정을 말하며 아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팔을 껴안는다. 아빠도 딸의 머리쪽으로 머리를 기대며 서로의 오랜 침묵을 해소한다.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일단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고, 일 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와 밝고 당차고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것도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일 수 있는 딸의 성격을 정말 잘 보여주고 있다. 아빠는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와 자신이 입혀버린 상처 때문에 어떻게 딸을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고 조심하는 모습이 잘 보인다. 또 딸은 그 나름대로 긴 시간 외면해왔던 아빠를, 사랑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막상 자신을 구해준 든든한 아빠를 다시 보고, 또 아빠가 자신에게 한 실수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먼저 다가가는 모습.<br><br>마지막으로 배우들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일단 주인공 정이건은 앞서 말했듯 너무 반가웠고, 명성에 손색없는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초반 한동안은 너무 오랜만에 보는 정이건이 이렇게 나이 든 모습이라 적응이 안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멋있으니 괜찮다 여겼다. 조금 이 인물에게 어색하다 싶은 면이 드러나는 부분은 배우 탓이 아니라 대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두번째 핵심 인물은 베테랑 형사와 함께 파트너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사이버 수사대 신참 형사 리신핑이다. 리페이위(李霈瑜)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보면서 낯익은 얼굴이라 여겼는데, 찾아보니 처음보는 배우였다. 정보를 보니 생각보다는 나이가 있던데, 신참 형사를 자연스럽게 잘 연기했다.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긴 시간 주연 배우들을 보면서, 또 다양한 상황의 다양한 표정들을 보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좋아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약간 독특한 매력이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사이버 수사대 팀장인 허전웨이, 배우는 리리런 이라는 분이 맡았다. 딱 보자마자 분명 최근에 본 적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최근에 본 대만 영화 [96분]에 나왔더라. 배역도 그렇고 당연히 배우의 실제 나이도 정이건이 훨씬 더 많을텐데, 옷차림을 비롯해 분위기는 어쩐지 이 사람이 더 나이가 많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정이건이 젊어보이고, 멋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리고 응급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이자, 이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궈따푸, 배우는 왕보지에(王柏傑)가 맡았다. 이 배우도 분명 본 얼굴이다 생각하면서 내가 대만 배우들을 이렇게 많이 알 리가 없을텐데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까 말한 최근에 본 영화 [96분]에 나왔고, 또 예전에 열심히 보았던 [화등초상]에도 나왔더라. 그리고 내가 봤던 옛날 영화들에도 조연으로 나왔다고 적혀있었다. 나름 아주 슬픈 사연의 주인공인데, 그만큼 드러나지는 못한 느낌이다. 인플루언서 패거리 중에 공격을 받고도 유일하게 구출된 요우쯔(별명, 이 배역 실명을 메모해두지 않았네)는 러우쥔슈어(婁峻碩)라는 배우가 맡았다. 그럭저럭 무난한 연기였다. 다음으로 주인공의 딸 첸유치에는 첸옌페이(陳姸霏)라는 배우가 맡았다. 처음에 학생으로 나올 때는 엄청 어린 배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나 오디션 보는 모습은 또 완전 어른의 얼굴이더라. 앞서 언급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 장면의 감정 연기가 참 좋았다. 그 다음으로 첸유치에의 친구이자 극 중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녀 바바, 리팅언은 샹지에루(項婕如) 배우가 연기했다. 드디어 익숙한 배우가 한 명 나왔다.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었던 [숨통을 조이는 사랑]의 주연이었다. 마치 인형처럼 귀여우면서도 정말 예쁜 얼굴이라 쉽게 잊을수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저 [숨통을 조이는 사랑]이 남자 주인공 한 명에 여주인공 셋을 엮어 놓았는데, 그 이야기가 별로 매끄럽게 전환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 부분은 이전에 쓴 글에 자세히 다뤘었다. 이 배우는 그 첫부분에서 남자 주인공이 정말 순수하게 빠져드는 사람을 맡아 청순하면서도 무서운 매력을 보여줬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가면을 쓰고 나오는 장면이 많아서 이 예쁜 얼굴을 계속 가면으로 가려두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상으로 마녀 바바라는 캐릭터가 가진 비중이 엄청 큰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이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아니 얼굴이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다. 그래도 저 첸옌페이 배우와 둘이서 정말 친한 친구가 되는 과정 등 장면들은 다 좋았다. 다음으로 초반에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맛있다고 소문난 케이크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예핀쉬안이란 배역은 청위시(程予希) 배우가 맡았다. 이 배우는 [태양을 보지 않았다면] 이란 대만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조연을 맡았었다. 이 드라마는 그 유명한 [상견니]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이 드라마에 대한 글도 조만간 쓰려고 생각 중이다. 배역 특성상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늘 얼굴에 멍과 상처가 있는 상태로 나온다. 그래서였는지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나중에 배우 정보를 찾아보고 이 배역이 이 사람이었어? 라고 조금 놀랐고 다시 등장했던 장면을 찾아보니 이 사람이 맞았다. 사실 이 배역 자체가 초반에 관객을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실제 이야기 진행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역할이라 비중이 작다. 이외에도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데, 다들 딱히 언급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비중이 적어서 그냥 넘어가야겠다. <br><br>아! 우리나라로 치면 우정출연이나 특별출연 같은 개념으로 출연한 주인공의 아내이자 첸유치에의 엄마 샤오후이 배역만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린신루(林心如) 배우가 맡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대만에서는 엄청 유명한 배우라고 하더라.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유명한 건 바로 [화등초상]의 로즈 마마, 뤄위눙 역이었다. 이 드라마는 정말 관객을 빠져들게 만드는 걸작인데, 특히 이 로즈 마마의 매력이 어마어마했다. 그 다음으로 본 작품은 미미여사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모방범]을 드라마로 만든 [카피캣 킬러]에서 야망을 드러내는 방송국 간부를 맡았었다. 이 드라마도 나중에 소설 원작과 비교해 글을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또 [희생자 게임]이란 드라마에서도 이 배우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자폐 증상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감식반 형사가 자신의 딸과 얽힌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펼치는 모험을 그린 드라마로 첫번째 시즌은 엄청 독특하고 흥미로웠는데, 두번째 시즌은 첫시즌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린신루는 첫시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었다. 음, 글을 쓰면서 보니 내가 생각보다 대만 드라마를 꽤 보긴 했구나 싶다. <br><br>정말 마지막으로 제목 이야기만 하고 마치자. 원제는 [百萬人推理] 로 백만명의 추리 로 옮길 수 있겠다. 이 백만명이 인플루언서 를 팔로우하는 백만명의 팔로워를 나타내는 것이니 우리나라 제목도 정확하다. 영어 제목은 [Million-Follower Detective] 로 팔로워를 탐정이라는 명사로 받았다. 문제는 이거다. 원제의 추리와 우리 제목의 추리 중이라는 부분, 그리고 디텍티브 라는 단어. 이 드라마에서는 팔로워들 다시 말하면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일반인들이 추리를 하지는 않는다. 추리는 주인공과 사이버 수사대 신참 형사 그리고 납치 당했다가 유일하게 구출된 인플루언서만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목을 정한 이유는 뭘까? 아무것도 모르고 빠르게 유포되는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악플만 달아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빗대어 비판하려는 의도일까? 사실 사회에서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유독 온라인 공간, 특히 SNS 에서는 뇌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 시대를 나타내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 평범한 일반인들이 온라인에서 거짓 정보 때문에 휩쓸려서 해당 인물에 대한 온갖 개인정보들을 까발리는 짓, 흔히 말하는 신상털이를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예전에 넷티즌 수사대가 신상을 털었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습고도 무서운 일인가! 제목만 보고 긍정적인 의미로 집단 지성의 힘으로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내용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인 셈이다.<br><br>글을 써야지 생각하고 있는 책, 영화, 드라마 이야기가 제법 쌓여있다. 연휴에 부산에 안 가기로 해서 시간도 많으니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써볼까? 아, 일정이 있는 날도 있으니 매일은 어렵겠구나. 그럼 이틀에 하나씩이라도 써봐야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특히 서재 이웃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br><br>추신. 글을 다 쓰고 나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중간에 새로 태어날 아기 이름을 짓는 부분에서 언급된 어떤 이름이 엄청 익숙했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바로 의사인 궈따푸와 만삭인 그의 아내가 딸 이름을 고민하는 장면이다. 아내가 궈메이메이, 궈롄리, 궈징징, 궈펀룽, 궈비첸 이렇게 핸드폰으로 들여다보며 좋은 이름을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하던 궈따푸가 아내에게 궈쉐푸 하고 말한다. 그러자 아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나무라듯 말하고, 그러자 그가 진지하다고 받아치는 장면이다. 분명 들어본 이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왜 아내가 진지하게 하라고, 즉 장난치지 말라는 뜻으로 말했는지 궁금해졌다. 너무 유명한 연예인 이름이라서? 아님 뭔가 꺼려질만한 이유가 있어서일까? 뜻이나 발음에 놀림 당할만한 뉘앙스가 있을까? 암튼 나중에 찾아보니 궈쉐푸(우리식 발음은 곽설부)는 대만의 가수이자 배우이자 모델 이름이었다. 아마 아이돌 그룹 출신인 듯했다. 그리고 아까 언급했던 드라마 [화등초상]에도 출연했었다. 이렇게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고민하는 장면을 보니, 내가 우리 아이들 이름을 짓기 위해 엄청 많이 찾아보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며칠을 밤을 새며 작명법 책을 찾아보고, 옥편을 뒤지기도 했었다. 나는 혹시 이 드라마에 아주 잠깐이라도 이 궈쉐푸 라는 배우가 나왔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찾아봤는데, 내가 여러 경로로 검색해봐도 나오지는 않았다. 왜 그 이름을 듣고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네.<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의미 부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4913</link><pubDate>Fri, 06 Feb 2026 1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4913</guid><description><![CDATA[공통점<br><br>새벽에 악몽에 시달리다가 잠에서 깼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물을 마신 후에 눈을 감고 악몽을 음미했다. 지금까지 내가 자주 꾸었던 악몽은 반복되는 어떤 패턴이 있었는데, 이번 악몽은 낯설었다. 가장 낯선 점은 음식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가 깼다는 점이었다. 언젠가부터 먹방이라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소수의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먹는 모습을 중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점점 더 유명해져서 공중파 방송에도 진출했다. 먹방이라는 개념이 대유행하며 세계적으로도 퍼져서 이 단어 ‘먹방‘이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뉴스를 봤었다. 나는 이 먹방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남이 먹는 장면을 왜 굳이 보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면 이야기의 흐름 상 필요하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성향과 기호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먹는 장면을 부각해 화면에 담는 것은 불편하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를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이라고 본다면, 타인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는 것은 마치 타인의 성행위를 보는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것 같다.<br><br>오래전에 보았던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멋진 수트를 입고 아주 달달한 케익을 먹는 장면을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제목 때문에 그리고 이병헌이 연기한 인물의 성향을 드러내기 위한 장면일텐데, 나에게는 이 모습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로 받아들여져서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 일단 나는 어려서부터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 독특한 아이였다. 어른이 되어서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가끔 보았지만, 어려서부터 그랬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달디 단 케익을 먹는 행위는 마치 고문처럼 느껴진다. 혀 끝으로 느껴질 그 아릿한 단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끔찍한 기분이 든다. 그걸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여성이 즐기는 것도 아니고 젊은 남성이 음미하듯 즐기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이병헌이란 배우는  이후로도 다양한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 중에서 [내부자들]에서 라면과 함께 소주를 먹는 장면이 또 인상적이었다. 극중 이병헌이 연기한 인물은 오른손 손목을 잘린 전직 깡패 두목이었다. 왼손만으로 어설프게 젓가락을 쥐고 라면을 후후 불어먹다가 너무 뜨거워서 입에 넣었던 면발을 뱉어내고 소주를 입 안에 털어넣고 입안을 헹구듯이 가글하는 모습은 라면과 소주를 둘 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영화에서 뭔가를 먹는 장면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하정우와 브래드 피트일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러 이유로 꼭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음식을 먹는 장면을 좋아하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먹는 장면들이 PPL 때문에 나온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를 좋아했지만, 특정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때문에 중간에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었다. 뭐 예를 찾으라면 끝도 없을 것이다.<br><br>내가 새벽에 깬 후로 이 악몽이 낯설고도 기이하다고 여긴 것은 마직막에 깨기 직전 상황이 내가 마치 먹방을 연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꾸 접하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듯, 이젠 영상물에서 먹는 장면이 직접 나와도 예전처럼 막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게 되었다. 예능이라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몸을 움직이는 운동과 관련한 것이라면 좋아한다. [무쇠 소녀단]을 좋아했고, 지금 [야구 여왕]을 좋아하고, [피지컬100]과 [강철 부대] 같은 서바이벌 시리즈들을 좋아한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PPL로 먹는 장면들이 나온다. 출연자들이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흐름상 꼭 필요한 내용을 주고 받기도 할텐데 나는 이들이 육체적으로 한계를 넘어서는 미션을 마치고 반드시 등장하는 이 먹방 장면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빠르게 보기를 하거나 그냥 건너뛰어 넘겨버리고 싶지만, 어쩔수 없이 꾹 참고 보기도 한다. 뭐든 익숙해지면 또 그냥 넘어갈수도 있는 법이다.<br><br>새벽에 가만히 누워 악몽을 다시 떠올리다가 어렵게 다시 잠들었는데, 얼마 자지도 못하고 다시 깨고 말았다. 이번에도 악몽이었다. 이번에는 익숙한, 자주 반복되는 여러 패턴 중 하나였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그냥 폰을 집어들었다. 북플에서 지난 오늘 쓴 글을 찾으니 두 개가 있었다. 13년과 14년이었던가 그랬다. 하나는 13년이 확실한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확실하지 않다. 암튼 13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점이었다. 길어도 이삼년 내외였을 것이다. 이 두 글을 읽어보니 둘 다 운전에 대한 글이었다. 당시에 내가 운전에 대한 글을 제법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일했던 출판사의 사장은 젊은 시절 사진 기자로 자동차 잡지에서 일을 했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회에 취재를 나가기도 했고, 슈퍼카로 알려진 차들을 취재하며 직접 타봤던 경험들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 사장이랑 밥과 술을 먹으며 자연스레 차와 운전 이야기를 많이 했었고, 또 내가 영업을 다니기 위해 회사 차를 몰고 다녀야 했으므로 당시엔 일상적으로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때였다.<br><br>첫번째 글을 눈길 운전에 대한 글이었고, 두번째 글을 빗길 운전에 대한 글이었다. 두번째 글은 설 연휴 직후에 썼던데, 그해에는 부산에서 부모님이 서울로 오셔서 명절을 보냈었다. 매번 명절마다 열차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그 스트레스가 엄청 컸다. 틈만 나면 앱으로 접속해서 대기 표가 생겼는지 찾아봐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 부모님께서 서울로 오셔서 제사를 지내자고 제안을 주셨다. 부산행 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서울행 표는 넘쳐났으니까. 그리고 그 해에는 동생 가족들이 동생의 시댁 어른집에 들렀다가 서울로 왔다. 당연히 나를 보러 온 것은 아니고 부모님께서 서울에 계셨으니 서울로 온 것이다. 당시 우리 집은 달동네라고 부를만한 언덕에 있었다. 그 직전까지 좁은 집에 살다가 그래도 조금은 크기가 있는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어른 6명과 아이들 5명이 머물기는 엄청 좁았을 것이다. 그 대가족이 좁은 집에 갇혀 있는 건 답답했을테니 어딘가로 놀러갔다 오는데 그날따라 폭우가 와서 빗길 운전을 했고 매제가 운전하던 차가 사고가 났다는 내용이었다.<br><br>두번째 글에서 나는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매제의 차가 작은 사고를 겪었는데, 첫번째 글에서도 사고가 날 뻔한 이야기였다. 그날의 상황은 지금도 매 순간들이 기억이 난다. 아마 평생 잊지못할 것이다. 눈길 운전 경험이 별로 없는 내 입장에서는 평생 이 정도로 아찔한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으니. 당시 이 글에 여러 이웃님들이 댓글로 적어주셨듯이 혹시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손에 땀을 쥐고 읽어야 할 글이었다. 인기도 없고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내 서재 글 치고는 이례적으로 댓글이 많이 달린 이유도 아마 글에서 느낄 수있는 긴박감 때문이었으리라. 그 글을 지금 다시 읽는 나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도 글을 읽으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이후로 정말 어지간히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눈길 운전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br><br>의미 부여<br><br>최근에 서재 이웃 꼬마요정 님께서 일기장에 이름을 붙였었다는 글을 읽고 나도 오래 전에 일기장에도 이름을 붙이고, 여러 공책들에 이름을 붙었던 기억이 나서 댓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 공책에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인물의 이름을 붙여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당 수업 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일기도 그랬다. 누가 시켜서 쓰는 건 아니었고, 그저 내 삶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썼는데, 일기를 쓰는 일은 좀 낯간지럽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그 특정 인물에게 수다를 떨듯이 이야기를 쓰니까 일기 쓰기가 한결 편해졌다. 그 이름들은 그때까지 읽어왔던 문학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학창시절에 우리 집엔 책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는 제대로 된 도서관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주로 학급문고를 읽었고, 집에서는 이웃 친구들에게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빌려 읽었다.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지만, 다행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후배들은 그래도 우리 집보다는 상황이 나아서 집집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문학전집들을 갖고 있었다. <br><br>한참 나중에 시간이 흘러 도서대여점이 동네마다 생겨 훨씬 더 다양한 책들을 빌려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너무너무 기뻤다. 그 시절의 내 꿈은 작은 시골 동네의 도서대여점 주인이었다. 시골이면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적을테니, 내가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도서대여점이 생기기 전에는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었다. 참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서점에 들여놓고 진열해놓은 책들은 거의 대부분 위탁 판매 상품으로 그 책들은 그 서점이 재산이 아니다. 서점은 위탁으로 들여놓은 도서를 일정 기간동안 갖고 있다가, 책이 팔리면 판매가에서 상호 합의한 공급률에 맞춰 정산을 하고, 만약 책이 오랫동안 안 팔리면 서로 합의한대로 출판사로 반품해버린다. 순진하게도 서점에 그 많은 책들이 다 서점 주인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대여점은 위탁은 아니고 구매한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출판사에 일할 무렵에는 이미 도서대여점이란 개념이 거의 사라진 후여서 직접 거래를 해볼 기회는 없었는데, 아마 대여점들도 소매서점에서 정가로 책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매서점에서 일정한 공급률로 구매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서점도 대여점도 사장이 하루종일 책을 읽고 있을만큼 한가하지 않다. 서점이라면 정말 일이 많고, 대여점은 상대적으로 일이 적겠지만, 결코 맘 편하게 책만 읽고 있을 직업은 아니었던 것이다.<br><br>암튼 나중에 깨달았던 것인데, 어린시절부터 학창시절까지 내가 읽었던 그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이 대부분 제대로 된 문학작품이 아니었고, 축약본이었다. 이걸 깨달았을 때 느꼈던 허무함과 배신감 그리고 절망감은 꽤 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다 읽었던 것처럼 잘난 척하며 다녔던 것이다. <br><br>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좀 복잡한 문제 하나에 엮여있다. 이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을 밟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지난하고 힘들기만 하다. 작년 가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자주 회의도 하고 그걸 단체대화방에서 이어서 생각을 펼치거나 연결하거나 하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작년 12월 중순, 우리 회의 기록을 담은 구글문서의 공개 설정 때문에 단체대화방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회의 기록 중에 외부로 유출이 되면 곤란한 대외비 성격의 내용이 있었는데, 기록을 담은 문서는 링크를 받은 사람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공개문서였기 때문이었다. 이걸 대외비로 하기 위해 회의 참여자들의 이메일을 수집해서 열람 범위를 지정하기로 했다. 이 명쾌하고 간단한 결론에 이르기까지도 좀 소모적이고 지난한 토론이 있었다. <br><br>온라인 대화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오해를 불러오고, 얼마나 쉽게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는 정말 가능하면 만나서 대화하거나, 정 안 되면 전화를 거는 편이지, 온라인으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 그 대화방에서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 분과 좀 넓게 생각하면서 좀 쉬운 방향을 제시하는 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으로 길게 논쟁을 벌리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그 와중에 이메일 주소를 서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자신의 이메일 주소에 적힌 숫자가 자신의 생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메일 주소만 보고 자꾸 특정 연도에 태어난 것으로 오해한다는 말을 꺼냈다. 아마 그 사람도 이 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모적인 논쟁 때문에 약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생각에서 꺼냈을 것이다. 거기까지 읽은 내가 그 다음을 바톤을 받았다. 내가 주로 쓰는 이메일도 나름 많은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 메일 주소를 사용했던 초기부터 메일 주소를 전달받은 상대방들이 그 뜻을 파악하고 딱 내가 원했던 반응을 하곤 했다. 영어 단어는 그랬는데, 그 뒤에 숫자는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숫자는 오래전부터 가장 좋아했던 야구선수의 등번호를 가져온 것이므로. 야구선수에게 등번호는 그 선수를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야구에는 영구결번이라는 개념이 있고, 그 대상은 야구사에 길이 남는 큰 영광을 받는 것이다. 맨처음 이메일 주소를 정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거의 항상 숫자를 붙일 때마다 이 선수의 등번호 숫자를 가져왔다.<br><br>이쯤되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과연 이메일 주소가 뭐길래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나 싶은 생각이 드시겠지. 이메일의 영어는 깨어나다는 뜻의 단어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아주 오래전에 만든 것이다. 그리고 숫자는 17이다. 바로 롯데자이언츠 김응국 선수의 등번호이다. 그랬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최동원도 아니고, 김용희도 아니고, 김용철도 아니었다. 92년 롯데의 마지막 우승 때 주요 멤버였던 윤학길, 박동희, 염종석, 박정태, 전준호 등의 선수들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김응국 선수를 가장 좋아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일단 흔히 말하는 호타준족 스타일이다. 타격이 좋고 발이 빠르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호타준족이 이종범과 전준호이다. 김응국 선수를 보다 잘 설명하려면 팀에서 전준호와 박정태의 장점을 다 가진 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보면 장점이 그 두 선수만큼 못 미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원래 투수로 입단했다가 투수로 등판한 경기에서 타석에 나서서 홈런을 친 이후 타자로 전향했다. 빠른 발과 타격감이 좋았기 때문에 딱 선두타자, 1번 타순이 적합했지만, 전준호 선수가 등장한 이후로는 1번을 전준호에게 넘겨주고 3번이나 5번 타순에 섰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롯데에는 4번은 김민호가 거의 고정이었고, 박정태가 3번 혹은 5번 고정이었다. 클린업 트리오라 불리는 3, 4, 5번 타순에는 클러치 히터라는 장타력이 좋은 선수가 필요했고, 박정태 선수는 전형적인 클러치 히터라고 말할 정도로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발이 빠르기는 하지만, 전준호에는 못 미치고, 장타력이 괜찮고 찬스에 강하지만 박정태에는 못 미치는 선수였다. 반대로 장타력이 좋은 박정태보다 발이 더 빨라서 활용도가 좋고, 발이 빠른 전준호보다 타격감이 더 좋은 선수였다. 다 필요없고 쳤다하면 대부분 2루타였고, 가장 치기 어려운 3루타도 많았다. 사이클링 히트도 기록했고 흔히 그라운드 홈런이라고 부르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도 여러 개 기록했다. 홈런도 소총부대로 불리는 롯데에서 제법 때렸고, 타율은 거의 매해 3할 이상을 기록했다. 도루도 매해 20개 이상을 기록했다. 작년 롯데 선수들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윤나고황손 이 다 덤벼도 못 당할 수준이다. 물론 재작년에 비하면 작년에 이들이 모두 부진했고, 결국 올해 연봉이 다 깎였다는 소식도 접했었다.<br><br>야구 얘기를 했으니 마무리는 롯데 이야기로 가자. 최근까지 스프링캠프 소식이 들리고 이제 곧 시범경기도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부상으로 스프링 캠프에 합류 못한 마무리 김원중과 필승조 최준용 때문에 초반 투수 운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거기다 난데없이 사생활 논란이 터진 정철원까지. 재작년에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던 나균안이 형편없는 경기력과 매너 때문에 조기에 시즌아웃 되었던 걸 떠올리면 매우 심각한 전력 손실일 수 밖에 없다. 과연 김원중과 최준용이 부상을 잘 이겨내고 복귀할 것인가? 정철원은 사생활 논란과 관계없이 예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줄 것인가? 올해 또다른 이슈는 한동희의 복귀로 인해 손호영이 외야로 옮겨간다는 소식이다. 손호영은 내야에서는 유격수를 빼고 모두 맡을 수 있는 귀중한 멀티 능력자인데 주로 3루를 맡았었다. 배테랑 김민성과 함께 3루수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는데, 타격이 좋은 한동희가 복귀하면서 자리를 뺏긴 것이다. 과연 손호영은 외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미 외야는 빈 자리가 없는데 손호영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리고 롯데 팬으로서 가장 바라는 점은 당연히 윤고나황손의 부활이다. 윤동희, 고승민, 나승엽, 황성빈, 손호영이 모두 다시 살아나면 롯데가 못이기고 싶어도 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 외국인 투수와 아시아쿼터도 기대가 되기는 하는데, 작년에 워낙 크게 한 번 데여서 이 부분은 일단 뚜껑을 열어보기까지 말을 아끼겠다. 아, 진짜 마지막으로 거액을 주고 유강남을 데려왔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많은 포수 자리가 올해는 확실히 안정되기를 바란다. 김태형 감독 본인이 포수 출신이라 포수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포수가 야구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도 그렇다. 아다치 미츠루의 [H2]에서 노다 아츠시가 자주 하는 말인 ˝안경 낀 포수는 조심해야 한다.˝ 는 말은 그만큼 포수가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야하고 심리전에 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강남, 정보근 두 명 체제에서 손성빈이 확실하게 치고 올라와 3명이 경쟁하며 시너지를 일으키면 좋겠다. 손성빈이 확실하게 자기 몫을 가져가면 한 경기에 3성빈이 동시에 선발출전하는 날이 그리 드물지 않을 수도 있겠다.<br><br>사진은 롯데자이언츠 공식 인스타계정에서 가져온 것인데 흰 바탕 선수들이 교체 투입되면서 3명의 성빈이 동시에 그라운드에 나섰고, 또 황성빈, 장두성, 김동혁이라는 발빠른 선수 세 명이 또 동시에 외야를 맡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모습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06/pimg_761630183502083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4913</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만약에 라는 잔인하고 부질없는 상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0415</link><pubDate>Wed, 04 Feb 2026 0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0415</guid><description><![CDATA[영화 [먼 훗날 우리]와 노래 [後來]<br>영화는 2007년 섣달 그믐, 그러니까 음력 12월 31일에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기 위해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바삐 떠나는 수많은 인파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기차역이었다. 이어서 보여주는 열차 안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어디선가 목이 쉬도록 울고 있는 아기, 크고 작은 목소리로 저마다 떠들어 대는 사람들. 짐을 선반에 올리거나 반대 방향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계속 비좁은 통로를 막아서기 때문에 쉽게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카메라의 움직임이 답답하다. 남녀노소 저마다 각자의 사정을 짊어지고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 열차 안에서 두 주인공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이 만난다. 둘은 공교롭게도 같은 고향 사람이고, 베이징에서 불안한 청춘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도 같다. 우연한 만남 덕분에 두 사람은 친한 친구가 되고, 나중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br>류뤄잉 감독의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알라딘 서재 이웃 잉크냄새 님 덕분이었다. 최근에 또 잉크냄새님이 중국 노래들을 추천해주셔서 그 노래들을 알아본 내용을 글을 하나 썼는데, 작년 3월에 내가 펑티모와 완쯔요의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는 이야기를 쓴 글에도 잉크냄새님이 다섯 곡의 중국 노래를 추천하는 댓글을 달아주셨었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류뤄잉의 호우라이&nbsp;[後來] 였다.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고 정보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영화가 바로 이 가수가 만든 영화 호우라이 더 워먼 [後來的我們] 이었다. 류뤄잉의 목소리가 워낙 좋았고, 이 노래가 참 좋았기 때문에 이 영화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꼭 봐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 언젠가가 거의 일 년이 지난 후가 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 했었다.<br>노래의 제목은 (잉크냄새님께서 처음 이 노래를 알려주실 때 적어주신 것처럼) "나중에야" 라고 옮길수 있을텐데, 이 영화의 "먼 훗날 우리" 라는 우리말 제목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든다. 두 주인공이 2007년에 처음 만나 2008년에 연인이 되는데, 그 10년 후인 2018년이 과연 먼 훗날 후라고 말할 정도로 먼 훗날인가? 겨우 10년이? 아니 누군가에게는 10년 씩이나 지났으면 먼 훗날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시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테니. 적어도 내 기준에서 10년 후는 그리 먼 미래가 아닌 느낌이다. 그래서 이 제목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개봉한 우리나라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 라는 제목이 훨씬 잘 지은 제목으로 느껴진다. 두 주인공이 현재 시점의 마지막 장면 즈음에서 직접 대사로 말하는 그 만약에 라는 전제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극장에서 저 우리나라 영화도 보고 나서 글을 써야할까 하는 생각을 한동안 했다. 하지만 이 영화 하나로도 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굳이 저 영화까지 보고 엮어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Us and them] 이다. 이 제목도 [먼 훗날 우리] 보다는 훨씬 더 좋은 제목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와 그때의 그들은 같은 사람이지만, 시점이 다르므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때의 그 사랑은 지금 다시 이어질 수 없다. 아무리 만약에 라는 조건을 붙여보고 상상을 해봐도 소용없는 것이다.&nbsp;<br>영화가 끝나면 자막으로 류뤄잉의 단편소설 [춘절 귀가] 라는 작품이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알려준다. 이 영화의 제목만 보고 나는 이 노래 [나중에야] 가 이 영화 [먼 훗날 우리] 의 모티브가 되는 원작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는 비슷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사를 번역본으로 찾아보니 이야기 자체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해당 단편 소설을 구해 읽을 방법이 없어서 원작과 영화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두 시점, 2007년 춘절과 2018년 춘절이 모두 음력 설인 1월 1일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서로 친구로 연인으로 지내는 몇 년 동안 계속 춘절을 맞아 같이 고향에 다녀오는 장면들이 나온다. 여기서 하나 짚어보고 싶은 것은 있다. 영화에서 아라비아 숫자와 한자로 작중 시점을 표기한 이 자막에서 연도가 정확하게 어떻게 표현한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2007년의 섣달 그믐에 시작한다. 그 다음 날인 춘절에 샤오샤오는 고향에서 젠칭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식당을 자주 찾는 단골들(아마도 이웃들)과 함께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다. 그럼 이 2007년이란 숫자가 음력인지 양력인지 하는 점이 헷갈렸다. 만약 음력이라면, 두 사람이 열차에서 처음 만난 날은 음력으로 2007년의 마지막 날이고, 고향에서 밥을 함께 먹은 날은 음력 2008년의 첫 날이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한참 알고 지낸 지 약 1년이 지나서 영화의 이야기가 조금 진행 된 후에 자막으로 2008년의 양력 설이라고 알려준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 부분 때문에 헷갈려서 영화를 멈춰놓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춘절과 섣달 그믐은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짜들이지만, 해당 연도는 모두 양력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은 양력 2007년 2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고, 다음날인 춘절도 여전히 양력 2007년이었다. 약 1년이 지나 다시 자막이 나온 시점은 이제 양력 2007년이 지나고 양력 2008년의 첫 날이었던 것이다.&nbsp;이 단순한 사실이 왜 헷갈렸는가 하면, 내 기준에서 새해는 음력 설이 기준이고, 나에게는 아직 음력 2025년이라서 새해가 오지 않은 것이다. 음력 설이 되어야 비로소 2026년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 즉 섣달 그믐이나 설이나 그 외에도 입춘 등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들을 말하려면 음력으로 해당 연도를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튼 영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쓸데없는 걸로 시간 낭비를 제법 했다.<br>류뤄잉이 쓴 [춘절 귀가]라는 단편소설을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을 기회가 없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대도시로 상경하여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청춘 남녀가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 알게 되고,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나도 예전에 설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만난 여성과의 짧은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서울에 올라온 초기에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렵게 고속버스 표를 구해 탔는데, 하필 그날 밤에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내가 탄 버스가 약 17시간만에 부산에 도착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었다. 하필 그 날 내 옆자리엔 내 또래(즉 20대 중후분) 로 보이는 여성이 탔었다. 그 여성은 창가 자리였고, 나는 복도 쪽 자리였다. 좁디 좁은 버스 좌석에서 두터운 겨울 잠바를 벗어서 품에 안은 채로 구겨져 긴 시간을 가야 했던 그 시간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하필 옆 사람이 여성이라 더 불편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일 수 밖에 없었고,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약간 민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는 스마트 폰도 아니어서 전화기로 뭔가 시간을 때울 것도 없었다. 아마 책을 가져오기는 했었지만, 조금 읽다가 집중이 되지 않아 그냥 가방에 넣어버렸었고, 손바닥만한 휴대용 씨디플레이어를 가져왔었지만, 아마 건전지가 다 닳아 버려서 중반 이후로는 음악도 듣지 못했었다. 깨어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자세도 불편하고, 배도 고프고 또 화장실 문제도 자꾸 생각이 나고 해서 무조건 계속 잠들어 있었으면 했었다. 그런데 그 옆자리의 여성은 주기적으로 남자친구로 여겨지는 남성의 전화를 받고 통화를 했고, 그 전화 소리 때문에 나는 번번히 잠에서 깨어 괴로워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여성의 전화 통화 때문에 잠에서 깬 후로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 여성은 금방 다시 잠이 들어버린 눈치였다. 바로 옆 자리이고, 좁았기 때문에 팔이나 어깨가 자꾸 닿기는 했지만, 버스가 출발한 후로 꽤 긴 시간동안 이 여성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었다. 여성이 깊이 잠들었다는 확신이 든 그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여성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묶어 올린 머리칼은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고, 젊은 사람 답게 유행을 따라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이라 여겼다. 그 순간 지금까지 긴 시간 하필이면 여성이 옆에 앉아서 불편하다고 생각해왔던 불쾌감이 사라졌다. 단순히 그 사람이 예쁘장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가 고향을 떠나 힘든 서울살이를 하는 나와 같은 청춘일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머리 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부산 어느 동네 출신이고, 어느 여고를 나와서 서울의 어느 대학에 입학하고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부산에 남아 있는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고 이런 것들을 나 혼자 제멋대로 상상했던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무진장 많았고,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상상을 조금씩 바꿔가며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 명절이 지나 시간 여유가 생겼을 때 그 상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여 빈 공책에 삐뚤빼뚤 악필로 써내려 갔었다. 나중에 결혼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부산을 가야 할 때에는 절대 고속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무조건 어떻게든 열차를 예매하려고 애썼고, 만약 열차 표를 구하지 못한 명절에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못 간다고 말씀드렸었다.&nbsp;그 해 귀성길 버스 17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기록이긴 했지만, 서울 살이 초기 몇 년 동안 추석과 설에 고향가는 버스를 탔던 시간들은 대체로 평균 10시간이 넘었다. 13시간, 11시간, 12시간 등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속철도를 타고 가면서 이 17시간 이야기를 해줬을 때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놀랐었다. 아이들은 고속철도로 이동하는 겨우 3시간 반 정도의 시간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옛날에 아빠가 젊었을 때는 열차도 8시간 이상 걸렸었다고 이야기하면 열차를 어떻게 그렇게 오래 탈 수 있느냐는 반응이 돌아왔었다.<br>원작 단편소설의 내용을 유추해 보려다가 옆길로 잠시 샜다. 샌 김에 노래 이야기를 조금 이어서 하고 영화로 돌아가자. 작년 3월에 썼던 노래 이야기에도 있었던 내용인데, 이 곡은 일본 여성 듀오가 부른 미라이에 [未来へ] 라는 노래를 중국어로 리메이크 한 것이다. 원곡인 일본 노래는 졸업식에 잘 어울리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담은 내용이지만, 이 노래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담긴 조금 쓸쓸한 내용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 아마도 여성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열일곱 살의 여름, 어느 밤에 사랑하는 혹은 동경하는 사람과의 키스를 했다. 그 후 그와는 인연이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후로 긴 시간 그날 밤의 별빛이, 그 날의 치자꽃 흰 꽃잎이 계속 생각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 때 내가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br>저우동위&nbsp;周冬雨 가 연기한 샤오샤오와 징보란&nbsp;井柏然 이 연기한 젠칭은 젊은 시절 객지에서 열악한 환경과 가난과 실업의 늪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간다. 그 치열한 삶의 동지로 친해진 두 사람은 어쩌다 좁은 방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이 지점이 좀 비현실적으로 아니 너무 극적인 요소로 느껴진다. 당시의 중국 젊은이들의 삶의 문화와 양식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상식적으로 순수한 친구인 이성이 한 사람이 살기에도 좁은 방에 함께 산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리 없다고 본다. 물론 샤오샤오가 하루 아침에 남자친구 집에서 쫓겨나 당장 갈 곳이 없다는 아주 절박한 설정을 인정하더라도 그렇다. 암튼 두 사람은 긴 시간을 함께 친구로 살았는데, 어느 날 술을 마시다가 눈이 맞아 버렸다. 사실 젠칭은 초반부터 확실히 샤오샤오에게 친구 이상으로서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샤오샤오도 역시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젠칭에게 이성으로 끌리고 있다는 언행이 보인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들이 그 두 사람이 서로 용기를 내거나,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면서 점점 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그리고 젠칭의 아버지는 샤오샤오가 자기 아들의 짝으로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가족처럼 대한다.<br>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두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2007년에 시작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컬러 화면으로 아주 예쁘게 그려진다. 2018년에 시작하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흑백 화면으로 아주 차갑고 딱딱한 느낌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우리 사랑 이야기는 비록 좀 찌질하고, 비참하고, 힘들고, 부끄러울지 몰라도 그래도 아름다웠어. 마치 감독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지금은 그저 차분하게 혹은 다소 냉정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nbsp;<br>이 영화는 중국에서 2018년 4월 말, 노동절 휴무를 앞두고 개봉했다. 영화 속의 현재는 2018년 춘절 연휴다.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아마도 여러 마케팅 기획들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유튜브로 [나중에야] 노래를 찾아 듣다가 2018년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 올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들을 몇 개 발견했다. 바로 이 노래를 일반인들 그리고 콘서트의 관중들이 떼창과 이어부르기로 부르는 영상들이었다. 작년 3월에 썼던 글에서 이 가수 류뤄잉이 콘서트에서 이 곡을 시작할 때 "산, 얼, 이" 라고 숫자를 세면 관중들이 "호우라이~" 라고 노래를 시작한다는 내용을 썼었다. 이 가수는 콘서트 장에서 자주 이렇게 이 노래를 시작했던 모양이고, 이것이 하나의 룰이 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 본 영상도 류뤄잉이 숫자를 세는 목소리로 시작해 관중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콘서트 영상에서는 금방 가수가 이어서 불렀지만, 이 이벤트 영상에서는 끝까지 가수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음정, 박자, 음색이 제각각인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노래를 이어서 부르는데, 제법 괜찮게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체로 이걸 들어주고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음치이거나 박치인 것 같은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다. 그러다 다시 콘서트 장의 관중들이 떼창을 부르는 장면으로 넘어가며,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을 담는다. 이 노래가 지나간 과거 어느 시점의 소중했던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이기에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좀 신기하기는 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작은 화면에 제작진 그리고 일반인들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이 흰 종이에 과거 어느 인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써서 말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보며 이 바이럴 마케팅이 제법 잘 먹혀들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당장 나도 과거 어느 인연을 꼭 떠올리며 뭐라고 한 마디를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br>노래나 영화나 옛 사랑 이야기를 다룬 걸 듣고 보면 나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영화는 특히 베이징에 올라온 가난한 젊은 남녀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어서 부산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와 고시원에 살았던 시절의 내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또 영화에서 어느 밤 둘이 버스 막차를 기다리다가 젠칭이 택시를 타자고 하는데, 샤오샤오가 택시비가 밥 두 끼 가격이라고 좀 더 기다리자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결혼식을 앞두고 내 대학 선배 한 명에게 애들 엄마를 소개한다고 서울 남동쪽의 어느 동네에서 만나 밥과 술을 먹었던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보니 버스도 전철도 끊긴 상황이었다. 당시의 우리도 가난한 젊은 연인이었고, 심야 할증이 붙은 택시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하지만 서울 서북쪽 끝에 있는 우리집까지 절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어떻게 겨우 종로 쪽으로 가는 심야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와서, 종로에서 집으로 택시를 탔는데, 사실 그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게 나왔었다. 그때 애들 엄마가 내 대학선배를 원망하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본인이 우릴 재워줄 것도 아니고, 택시비를 내줄 것도 아니면, 이렇게 늦게 붙잡고 있지 말았어야 했다고. 막차 시간 이전에 보내줬어야 했다고. 선배라는 사람이 후배를 챙길 줄 모른다고. 만약 자신이 선배로서 결혼을 앞둔 후배를 만났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사실 내가 보아온 애들 엄마는 실제로 자신의 친구들과 후배들을 그렇게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애들 엄마의 수많은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을 만났지만, 내 지인들은 서울에 거의 없었기에 애들 엄마를 소개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만났던 선배도 대학시절엔 제법 친했지만, 그가 졸업한 후에는 그리 자주 만나지 못했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아 결혼 소식을 전하며 만났던 것이다. 그가 내 결혼식에 왔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이후로 따로 만난 적은 아예 없고, 수도권에 사는 선후배 모임에서 몇 차례 더 봤을 거라는 생각만 든다. 그러다 내가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던 어느 시점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br>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았던 때가 작년 3월이라고 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올해 1월 말에 봤다. 아마 조금 더 미뤘다가 다음 주 정도에 보았다면, 시기적으로 딱 적절한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눈이 내리는 겨울에 그것도 음력으로 해가 바뀌는 설 즈음에 보기에 딱 좋은 영화였다. 이 글에서 나는 유명한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류뤄잉이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연출한 영화의 사랑 이야기에만 촛점을 맞췄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감독은 훨씬 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단 청년 세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먹고 살기 어려운 사회. 시골에서는 더더욱 번번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그렇다고 무작정 도시로 뛰쳐나와 봐도 현실은 어처구니 없이 좁고 더러운 방 하나를 겨우 얻을수 있을 뿐인데, 그 어처구니 없이 허접한 방 하나를 위해 내가 바쳐야 하는 월세는 또 얼마나 비현실적인 수치인가! 그 다음으로 도시와 시골의 환경 변화로 인한 갈등들이 있고, 도시의 실업 문제, 비정규 단기직 노동자들의 문제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중국인들은 느낄 수 있는 배경을 더 다양하게 깔고 있을 것이다.<br>그런 의미에서 조금 궁금했던 것은 대만 사람인 류뤄잉이 왜 베이징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을까 하는 점이다. 대만의 타이베이를 배경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하게 잘 만들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대만을 넘어 중국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영화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었을까?<br>원작인 이 영화는 여러 의미로 참 잘 만든 작품임에 틀림이 없는데, 최근 개봉해서 나름 멜로 영화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는 [만약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괜찮은 영화일지 궁금하다. 과연 극장에서 볼 여유가 생길지, 아니면 언젠가 OTT에 풀린 이후에야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원작과 비교해 또 끄적일 이야기들이 생길 것이다.<br>사실 개인적인 감상으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끄적여 놓았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살려 쓰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더라. 두 사람이 만약에 우리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며 감정이 폭발하는 대목에서 나도 너무 공감해 버려서 너무 감정적으로 글을 두들겨 놓았더라. 덕분에 이 글을 두드리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려버렸다. 아, 피곤하네.&nbsp; &nbsp;&nbsp;음력 2025년의 끝 자락에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만났다. 앞으로 류뤄잉의 [나중에야] 를 들을 때마다 이 영화가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매년은 아니겠지만, 가끔 이때 즈음이 되면 또 이 영화가 생각나겠지. 언젠가 또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본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04/pimg_761630183501878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0415</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아이의 편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69415</link><pubDate>Tue, 03 Feb 2026 21: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69415</guid><description><![CDATA[외모 변화<br>어제 어느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나를 초대한 주최측은 작년에도 토론회에 나를 발제자로 초대했었다. 큰 주제 아래 세부 주제 별로 토론회를 이어가는데, 매번 나를 발제 혹은 토론으로 초대하고 있다. 작년 토론회에서는 발제자가 여러 명이었는데, 당연하겠지만, 사람 별로 편차가 컸다. 특히 주최측이 요청한 내용과 달리 발제자가 본인의 특정한 사항을 과시하는 듯한 내용을 길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좀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실망스럽다고 여겼는데, 나중에는 나름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잘 전달한 것 같아서 조금은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암튼 내 발제는 늘 그렇듯 주최측의 요구를 잘 반영하면서도 내 나름의 특성을 담아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소개했다. 나와 함께 오래 일했던 몇몇 동료들이 자주 했던 말. 발표나 발제나 강의 등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소개하는 일을 내가 맡은 경우에 절대 걱정이 안 된다는 말. 어제 토론도 그랬다. 사실 미리 받아본 발제 내용이 좀 모호하고 쟁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답답했다. 안그래도 주최측에서 이 점이 걱정이 되어 미리 나와 소통을 하기도 했다. 토론문을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 밤에 긴 시간 고민을 했다. 발제문에 대한 토론을 쓰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쟁점을 다 버리고, 일반적인 내용으로, 다만, 참여자들이 잘 알기 어려운 전문적인 정보들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발제문처럼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주최측과 소통을 했다. 이러저러해서 쟁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니, 어설프게 토론문을 쓰는 것보다 이런 방식을 선택했으니, 양해해달라고 했다.&nbsp;<br>어제 토론회 장소에 아주 오랜만에 아마 한 오륙년 이상 못 만났던 선배 한 분이 계셨다. 약간은 거리가 있었는데,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 고개만 숙여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 분은 나를 분명 보았을 것 같은데 그냥 고개를 돌리셨다. 나중에 인사해야지 생각하고 일단은 자리 잡고 준비를 했다. 나중에 그 분이 내 자리로 오시더니 아주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로 그러나 한 편으로는 놀랍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 이 분은 교통사고 이후로 나를 만난 적이 없었구나. 그래서 이 흰 장발과 흰 수염을 처음 보는 거였구나. 그 분은 몰라봤다고. 어떻게 이렇게 외모가 달라질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게. 나로서도 내가 이 정도로 달라질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기가 어려우니, 그냥 어쩌다 이렇게 되었네요 라고 말씀드리고 말았다.<br>어제 토론회에는 발제자 1명과 나를 포함한 토론자 2명으로 비교적 간단한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쟁점 사항들이 있어서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나중에 토론회를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고 난 후에, 주최측에서 중간 중간에 찍은 스냅샷과 단체 사진을 포함한 몇몇 사진들을 보내줬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나를 제외한 모든 남성들은 단정하게 짧은 머리에 말끔하게 면도를 한 얼굴인데, 나 혼자 긴 장발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뭐 별 수 있나. 외모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br>편지<br>내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선물을 준비했다. 작은 아이는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만나러 나올 때 갑자기 준비한 선물을 찾지 못했다고 한참 늦게 나오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투정을 부렸다. 큰 아이는 시집 하나에 작은 편지 봉투 하나를 붙여서 건넸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생일 선물로 혹은 그냥 선물로 시집을 준 경우는 많았지만, 내가 선물로 시집을 받았던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어쩌면 한 두번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일선물로 시집을 받은 것은 처음이 확실하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시집을 살펴보니 중간 중간에 작은 메모지들이 끼어 있었다. 보니까 아이가 읽은 느낌이나 나하고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지에 적어두었다.&nbsp;<br>그리고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예쁜 책갈피 하나, 그리고 아이와의 데이트 쿠폰 하나. 그리고 편지지가 두 장 있었다. 편지지 첫 장은 생일을 맞아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았고, 두 번째 장은 아이가 이 시집을 선택한 이유와 함께 읽고 싶은 시들의 제목과 쪽수를 적어놓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간단히 적어놓았다.<br>아이들이 좀 더 어렸을 때에는 생일 때마다 이렇게 손편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로는 편지도 선물도 없어졌다. 뭐 나도 아이들에게 생일 때마다 편지를 썼던 것은 아니라 당연히 뭘 기대할 입장도 아니고 굳이 그걸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안 준다고 서운하지는 않지만, 받으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한 것이 선물이다.<br>특히 이번에 큰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아빠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런 표현이 있었다. 아빠도 나도 글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니까, 시를 공유하는 것이 좋았다는 표현, 그리고 아이가 아빠의 꿈을 이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표현도 있었다. 할머니(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우리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가 함께 책을 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두번째 편지지 뒷 장에는 자신이 간단히 디자인한 책 표지에 우리 엄마 이름과 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저자로 적어놓고, 출판사는 자신이 만들거라고 맡겨달라는 글씨가 적혀있기도 했다.<br>그래. 언젠가 글을 쓰는 가족끼리 공동저자로 책을 낼 수도 있겠지. 기획을 잘 해본다면 아이템은 분명히 나올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시를 쓰니까 공동 시집으로 작업할 수 있을테고, 나는 그 시와 관련한 산문을 쓰거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기획이 가능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낼 수 있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앞으로는 좀 더 시간을 쪼개어서 글을 좀 더 많이 써야겠다..&nbsp; &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잉크냄새님의 추천곡 두번째</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57253</link><pubDate>Fri, 30 Jan 2026 13: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57253</guid><description><![CDATA[작년 3월에 서재 이웃 잉크냄새님께서 내 글에 댓글로 중국노래 5곡을 추천해줬었다. 그 추천이 정말 고마워서 그 노래들을 열심히 찾아들었고, 각 노래에 대한 느낌이나, 가수 이야기나 그 곡을 다른 가수가 커버한 사례 등을 찾아서 글을 하나 썼었다. 이 글을 쓰면서 노래 가사를 찾아보고, 노래에 얽힌 사연 등을 찾아보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로부터 약 10개월 가량 지난 최근에 잉크냄새님께서 두 번째로 추천곡을 댓글로 남겨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한 두곡은 바로 찾아들었었다. 그런데 작년에 쓴 글처럼 가사를 찾아보고, 가수나 노래 정보를 찾아볼 여유가 없어서 시간이 제법 흘러 버렸다. 그래도 1월이 가기 전에는 이 두번째 추천곡들에 대한 글을 남겨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마침 간밤에 급한 일들을 마쳐서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다. 자, 하나씩 노래를 살펴보자.<br>참고로 작년 3월 19일에 잉크냄새님의 추천곡에 대해 쓴 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다.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6312872<br><br>她来听我的演唱会 그녀가 내 콘서트를 들으러 왔어요<br>첫번째 노래는 4대천왕으로 불린다는&nbsp;张学友&nbsp;Zhāngxuéyǒu 의 곡이다. 우리 발음으로 장학우다. 장학우의 노래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와! 노래를 정말 잘한다. 잉크냄새님께서 따라 부르기 어렵다고 덧붙이셨는데, 확실히 어지간한 가창력이 아니면 못 부르겠다고 느꼈다. 음색도 좋고, 고음을 가볍게 올리는 기교도 대단하다. 가사를 찾아보니 콘서트에 온 여러 관객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17살에서 시작해서 점점 연령대가 올라가는 여성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장학우의 매력적인 저음으로 담백하게 부르는 곡조도 좋고, 가사도 좋았다. 1999년에 발표한 곡이라고 나오는데, 90년대 특유의 감성도 묻어나고, 한편으로 최근의 발라드 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조금 세련된 느낌도 들었다. 약간 독특한 박자 감각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nbsp;<br>유튜브에 이 곡을 검색하면 당연히 원곡 가수인 장학우의 노래가 먼저 나올줄 알았는데, 아니었다.&nbsp;希林娜依·高 라는 가수가 '싱 차이나' 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른 노래가 가장 상단에 나왔다. 이 가수는 나중에 음반으로 녹음도 한 듯, 음반 버전 영상도 있었다. 생각보다 커버곡이 많지는 않았는데, 남자 가수들은 다들 장학우 버전을 넘어서지 못했다. 여자 가수가 부른 건 대부분 위 여성의 영상이었는데,&nbsp;单依纯 이란 가수가 부른 영상도 있었다. 재작년 쯤에 이 산이춘 이란 가수 노래를 제법 찾아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br>一千个伤心的理由 슬퍼해야 할 천 개의 이유<br>두번째 곡도 장학우의 곡이다. 잉크냄새님 말씀으론 이게 더 유명한 노래라고 하셨다. 들어보니 앞의 곡보다는 좀 더 듣기 쉬운, 대중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앞의 노래가 비교적 담담한 느낌이었다면, 이 곡은 확실히 슬픈 느낌이다. 제목 자체가 천 개나 되는 슬픈 이유를 말하고 있으니. 장학우의 음색은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앞의 곡은 처음에는 박자가 살짝 독특해서 그 점이 신경 쓰여 막 좋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으며, 들을수록 좋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노래는 그냥 첫 느낌부터 정말 좋았다.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았다. 1995년에 나온 곡이었다. 역시 90년대 감성이 확 느껴지는 노래로 딱 내 취향이다.<br>이 노래도 커버곡들을 찾아보니 곧바로 내가 좋아하는&nbsp;冯提莫 펑티모가 나왔다. 역시 펑티모는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크롤을 내리다보니 펑티모가 이 곡을 부른 다른 영상들이 여러 개가 더 나왔다. 어쩌면 펑티모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그게 아니라 펑티모가 활동한 기간이 워낙 길어서 많이 불렀으리라 싶었다. 그리고 매우 특이한 커버 영상을 찾았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nbsp;卢旺达青年团 였다. 르완다 청년단이란 이름으로, 아프리카 르완다의 남녀 청년들이 아주 유창한 중국어로 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원곡의 느낌을 아주 잘 살려서 노래도 아주 잘 불렀다. 처음 영상을 켰을 때는 이 기묘한 느낌 때문에 꽤나 신선하고 흥미롭다 여겼다. 갭차이라고 해야하나. 너무나도 유창한 그들의 중국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br>传奇 로맨스<br>세번째 추천곡은&nbsp;王菲 왕페이 의 노래였다. 왕페이 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The Cranberries 의 Dreams 의 번악곡&nbsp;夢中人 이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 에서 짧은 머리에 노란 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크랜베리스의 돌로레스 오리어던이었다. 그리고 크랜베리스 노래 중에 Linger 와 Ode to my family 다음으로 좋아했던 노래가 Dreams 였다. 물론 아직 2집 밖에 안 나왔을 때니까 그랬고, 나중에는 새로운 앨범이 나올 때마다 Zombie 와 Promises 등으로 좋아하는 노래가 계속 바뀌었다. 암튼 지금도 나는 같은 노래의 다른 언어 커버 곡들을 좋아하는데, 이 크랜베리스의 노래와 왕페이의 노래는 이어 듣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또 종종 들었던 왕페이의 노래가 있었는데, 일본 비디오 게임인 파이널 판타지의 주제곡이었던 Eyes on me 였다. 왕페이란 이름은 이렇게 반가웠는데, 잉크냄새 님이 추천해 준 노래 세 곡은 모두 몰랐던, 처음 듣는 노래였다.<br>일단 이 곡은 왕페이가 2010년 음력 설인 춘절에 방송에서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원래는&nbsp;李健 Li Jian 이란 남자 가수가 불렀던 곡이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이 곡은 리젠이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고 쓴 곡이라고 한다. 왕페이의 목소리도 엄청난 미성이라 신비한 느낌이 드는데, 원곡인 리젠의 노래를 들어보니 이 사람도 어마어마한 미성이었다. 와! 왕페이 버전에 못지 않은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노래에 영향을 미친 소설이 [낯선 여인의 편지]라는 글을 읽고 보니 그래도 왕페이의 곡이 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소설을 읽었었다. 한참 전이라 구체적인 내용들이 다 떠오르지는 않지만, 어느 남성이 자신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인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여성이 오래 전부터 평생 자신을 사랑했다는 내용이었다. 여성은 그렇게 긴 시간동안 남성을 깊이 사랑했는데, 남성은 그 여성을 알지도 못했다니! 그런데 노래 가사와 분위기가 이 소설과 어울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은 오스트리아인데, 노래는 너무 중국풍이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이 [낯선 여인의 편지]가 긴 시간동안 여러 나라에서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글을 읽었다. 여기에는 한국 영화와 중국 영화도 있었다. 음, 내가 원래 늘 그러기는 하지만, 너무 많이 옆길로 새면 곤란하니 이쯤에서 돌아오자.<br>아, 그런데 또 내가 좋아했던 그룹 이름이 등장했다. 덴마크 출신 락그룹 Michael learns to rock 이다. 이 그룹이 바로 이 리젠의 노래를 영어로 리메이크 했는데, 제목이 Fairy tale 이었다. 위키 백과를 살펴보니 아마 중국에서 낸 앨범에 이 곡을 끼워 넣었던 것 같다. 곡을 들어보니 가사만 영어일 뿐 노래는 거의 같았다. 마이클 런스 투 락도 오래전에 좋아했던 그룹이었다. 지금도 가끔 노래방에서 25 Minutes 를 부르는데, 그 당시에 정말 좋아했던 노래였다. 이 노래 가사로 단편 소설도 하나 쓰다가 완성을 못했던 기억도 났다.<br>红豆 홍두微风细雨 산들바람 이슬비<br>잉크냄새님께서 이어서 추천한 노래 두 곡도 왕페이의 노래들이다. 이 두 곡은 자세한 정보를 찾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냥 넘어가자. 아, 산들바람 이슬비는 원래 등려군의 노래였더라. 잉크냄새님이 왕페이를 소개하며 대만이 등리쥔, 대륙은 왕페이 라는 표현을 썼었다. 다음에 등려군과 왕페이의 목소리를 비교해가며 들어봐야겠다.<br>刚好遇见你 마침 그대를 만나<br>다음 추천곡은&nbsp;李玉刚 의 노래다. 아, 드디어 아는 노래가 나왔다. 잉크냄새님께서 리위강의 원곡도 좋고 펑티모의 여성스러운 노래도 좋습니다. 라고 쓰셨는데, 나는 딱 이 두 버전의 노래를 엄청 많이 들었었다. 나 역시 원곡도 좋고 펑티모도 좋았다. 처음 잉크냄새님의 추천곡 5곡 중에서&nbsp;林憶蓮 의&nbsp;至少還有你 를 펑티모 버전으로 엄청 많이 들었었지만, 원곡은 전혀 몰랐었는데, 이 곡은 원곡과 펑티모 곡 둘 다 많이 들었었다. 아, 그리고 이 곡도 커버곡을 찾다가 아까 언급했던 르완다 청년단을 또 만났다. 이번에도 너무나도 완벽한 중국어에 완벽한 노래 솜씨를 보여줬다.<br>可惜不是你 당신이 아니라 아쉬워요<br>다음 곡은&nbsp;梁静茹 의 노래다. 이 가수는 말레이시아 출신이라고 한다. 노래를 들어보니, 어, 이 곡도 분명 자주 들었던 노래였다. 요 앞의&nbsp;刚好遇见你 는 확실히 아는 노래라고 말할수 있었던 것이 예전에 가사를 찾아 본 적도 있었고, 노래 제목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자주 듣기는 했지만, 제목을 몰랐다. 가사를 찾아보니 멜로디에 어울리는 사랑 노래였다. 커버곡을 찾아보니 꽤나 많았다. 저 위에서 언급한 산이춘의 커버가 있었고, 이번에도 펑티모가 있었다. 그리고&nbsp;周興哲 이라는 남성 가수 영상이 있었다. 오, 여성들의 목소리로만 듣다가 남성 목소리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특이한 건 이 곡은 유독 펑티모가 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어지간해서는 펑티모 정도의 가창력으로 안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원곡 가수의 목소리가 워낙 익숙해서 펑티모의 목소리는 안 어울리는 듯 느끼나 보다.<br>勇气 용기<br>다음 노래도 량징루의 노래다. 앞의&nbsp;可惜不是你 를 듣고 나면 유튜브가 자동으로 이 노래를 들려준다. 같은 가수의 곡이고, 유명한 곡이라 이어서 들려주나 보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이 노래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마 예전에도 여러 차례 저 앞의 곡에 이어서 나왔던 모양이다.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br>隐形的翅膀 숨겨진 날개<br>자, 이제 마지막 노래다.&nbsp;张詔涵 의 노래. 영어 이름이 안젤라 장이다. 유명한 배우 안젤라 베이비가 생각나는 이름이네. 그런데 이 이름 낯익다 싶었는데, 얼굴과 목소리를 살피니 확실히 예전에 몇 개의 영상을 봤던 가수였다. 당시 들었던 곡들도 기억나지 않고, 잉크냄새님이 추천해 준 이 노래도 아는 노래는 아닌데, 이 가수의 노래를 들었던 것은 확실하다.&nbsp;<br>지난 번 추천곡들과 이번 추천곡들을 모두 하나의 재생목록으로 만들어 두었다. 시간 날때마다 들어야겠다. 이번 글엔 노래 별로 글의분량 차이가 심하다. 앞부분은 많이 찾아보고 글을 썼는데, 뒤로 갈수록 가사 정도만 찾아 읽고 다른 정보들까지 뒤져볼 시간 여유가 없었다. 또 다음에 다시 찾아볼 기회가 생기겠지. 잉크냄새님 덕분에 아는 중국노래가 또 확 늘었다. 노래 부자가 된 기분이다.&nbsp;<br>주말엔 쉬고 싶어<br>이번 주말부터 3월 말까지 거의 대부분의 주말에 일정이 잡혔다. 참여하고 있는 여러 협동조합들과 단체들의 총회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참가만 해도 되는 총회도 있지만, 몇몇 조합과 단체에서는 이사, 감사,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어서 해야 할 역할들이 제법 있다.&nbsp; 그냥 눈 한 번 감았다가 뜨면 3월이 다 지나가고 4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긴 요즘 기분으로는 그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벌써 1월이 거의 다 지나버렸다.&nbsp; 에휴, 아직 음력 설이 안 되어서 나이 한 살 안 먹었다고 우기고 있었는데, 곧 설이 다가오겠구나. 나이를 먹는 일에도 익숙해지려나. 이제는.<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한일 로맨스 드라마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55391</link><pubDate>Thu, 29 Jan 2026 17: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55391</guid><description><![CDATA[머피의 법칙<br><br>저번에 북플에 지난 오늘 글이 없는 날엔 가능하면 글을 써야지 라는 글을 쓴 후로 매일 아침 북플을 열어 지난 오늘 코너를 열어본다. 다행히 그 후 어제까지는 매일 글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열어보니 글이 없다. 뭐라도 하나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오늘 좀 많이 바쁜 날이다. 하필이면 오늘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에 있을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하기로 했는데, 오늘이 그 토론문을 보내달라고 요청받은 마감일이었다. 대략의 내용은 머리 속에 있지만, 쟁점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직 토론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참 마음만 정하면 금방 끝날 일인데, 그 마음을 정하는 일이 참 쉽지 않아서 언제가 될지 예상할 수가 없다. 저녁부터 밤 늦게까지는 장시간 회의를 들어가야해서 지금 끝내지 않으면, 오늘 보내줄 수가 없다. 고민 끝에 담당자에게 죄송하지만, 오늘 밤에 마무리해서 내일 오전 일찍 보내드리겠다고 양해를 부탁했다. 밤 11시쯤 회의를 마치고 마무리를 해야겠다. 거기에 지난 주에 보내달라고 요청받은 보고서가 또 있다. 이건 벌써 한참전에 해주기로 한 건데,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늘은 꼭 보내주셔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아차! 싶었다. 이것도 오늘 밤에 완성해야 한다. <br><br>그러니까 평소 좀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이런저런 작업들을 좀 해두었다면, 이렇게 갑자기 몇가지 일이 몰린, 그것도 오늘 꼭 이라는 단서가 달린 일들이 몰리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텐데, 항상 뭐든 시간에 쫓겨 일을 하다니! 하필 이런 날에 북플에도 글을 하나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런것도 일종의 징크스라고 할 수 있으려나. 흔히 머피의 법칙이라 부르는, 뭔가 일이 꼬이는 날에는 계속 연달아 그런 일이 생기는 징크스가 확실히 있다고 본다. <br><br>며칠 전에 북플을 열었을 때 지난 오늘 코너에 글이 7개나 있었다. 내 기억으론 지금까지 그렇게 많았던 날이 없었다. 그날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난 오늘을 살았던 각 연도의 나는 유독 시간 여유가 있었던가봐. 하필 올해도 그날은 조금 여유가 있어서 글을 하나 써볼까 했는데, 밖에서 좀 오래 머물렀더니 갑자기 몸이 확 안 좋아져서 일찍 집에 돌아와서 잠에 빠져들어버렸다. 그날 짧게라도 뭔가를 두드려 놓았다면 내년에는 8개가 되는 거였지만, 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 반면 어제는 지난 오늘 글이 겨우 하나였다. 오늘도 지금 이 글을 두드리고 있으니, 내년 오늘 확인하면 글이 하나가 되겠다. <br><br>일본 배우와 한국 배우가 함께 촬영한 로맨스 드라마<br><br>지난 주말에는 넷플릭스로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어쩌다 세계적인 배우로 유명해진 사람과 서너개 이상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통역하는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한국 방송사가 예능으로 준비하는 아이템이 일본의 유명한 배우와 한국 배우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서로 호감을 키우며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비록 이 드라마는 남녀 주인공이 모두 한국 배우이지만, 거의 마지막까지 일본 배우가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 유난히 일본 배우와 한국 배우가 서로 사랑하는 역할을 맡는 드라마가 많아진 것 같다. 일단 이세영이란 배우를 처음 알게 된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있다. 이세영이 일본 유학생으로 나오고 상대 배우는 사카구치 켄타로가 맡았다. 이 드라마는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가 공동으로 집필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외모가 돋보이는 배우이고 연기도 상당히 좋았다. 그 다음에는 [Eye love you] 라는 드라마도 있었다. 한국 배우 채종협과 일본 배우 니카이도 후미가 주연을 맡았다. 채종협이 상당히 밝고 귀여운 이미지로 나오고, 니카이도 후미 역시 엄청나게 귀여운 사람을 맡았다. 드라마 내용은 좀 어이없고 황당한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부담없이 즐길수 있다는 부분에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한효주와 오구리 슌이 주연을 맡은 [로맨틱 어나니머스]도 있다. 이 드라마는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과 인지도가 남다른 기획이라 느꼈다. 그에 비해 이야기 자체는 좀 품이 작은 이야기라서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Eye love you] 와 비슷한 느낌이다. 쵸콜릿을 다루는 것이 공통점이고, 뭔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능력이나 장애(혹은 결핍)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리고 아직 보지는 않았는데, 매주 하나씩 공개되고 있는 [첫입에 반하다] 라는 드라마도 일본에 간 한국 유학생과 일본 사람의 로맨스를 다룬다. 한국 배우는 강혜원이라고 하고 일본 배우는 아마 아카소 에이지 인듯. 둘 다 잘 모르는 배우들이다.<br><br>일본어를 익히고 있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려고 한다. 어떤 것은 여러번 반복해서 보기도 한다. 방금 소개한 드라마들은 한국 배우들의 일본어 발음과 일본어 어휘 구사력 등을 살펴보는 것이 좀 도움이 되었다. 일단 공통적으로 한국 배우들의 일본어 실력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당연히 일본인이 보기에는 아닐수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이세영과 한효주의 일본어가 거의 완벽한 것처럼 느껴졌다. 채종협은 뭐랄까 살짝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세 드라마 모두 일본 배우들의 한국어는 정말 많이 어색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일본 사람들도 한국 배우들의 일본어가 어색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br><br>일본 배우가 나오기는 하지만, 한일 남녀 커플이 아닌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에는 재일교포 3세인 일본 배우가 작중 유명한 일본 배우의 매니저 역을 맡아 상대적으로 꽤 괜찮은 한국어 발음을 보여준다. 현리 라는 이름의 배우인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 라는 영화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 이렇게 두 영화에서 보았었다. 아, [Eye love you] 에도 비중이 적은 조연으로 출연했었고, 저번에 글을 쓴 적 있는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세번째 시즌에도 출연했었다. 확실히 재일교포라 한국어 발음이 상당히 좋기는 하지만, 교포라서 또 어색하기도 하다. 이 배우가 원래는 유창하게 우리말을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조금은 어눌한 발음을 연기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말을 알기는 하지만, 평소에 거의 쓰지 않아서 원래 발음이 그렇게 조금 어눌하게 들리는 것인지가 궁금하다.<br><br>일본과 한국 배우가 각각 주연을 맡은 로맨스 드라마들 이야기는 원래 따로 묶어서 좀 더 제대로 다룰 생각이었는데, 오늘 어쩌다 간단히 얘기해버렸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좀 더 많은 내용을 비교해볼 생각이다. 이제 회의 들어갈 준비하자.]]></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그냥 그런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33004</link><pubDate>Tue, 20 Jan 2026 12: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33004</guid><description><![CDATA[글쓰기<br>알라딘 서재에 처음 글을 쓴 것이 2004년 2월이었다. 첫 글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짧은 감상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가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책이고,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고, 가장 많은 부분을 필사 했던 책이다. 젊은 시절 한때 골방에 쳐박혀 라면과 담배만 섭취하며 지냈던 시절에 계속 읽고 필사 하기를 반복했던 책이었다. 알라딘이란 온라인 서점에 만든 새로운 공간에 첫 글을 써야 한다면 당연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첫 글은 썩 잘 쓴 글은 아니었다. 그냥 별로 개성이 없는 짧은 글.&nbsp;<br>온라인 공간에 블로그라는 것을 만들어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아마 2002년 혹은 2003년 정도였던 것 같다. 몇 개의 블로그 서비스를 옮겨 다니며 꾸준히 글을 썼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2010년대 초반에 주로 쓰던 블로그 서비스 하나가 문을 닫으며 약 10년 정도 썼던 글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 후로는 다른 블로그를 다시 만들지 않고 그냥 알라딘에만 글을 쓰고 있다. 알라딘 서재 초기에는 별로 글을 쓰지 않았다. 2004년에 한 서너달에 걸쳐 글 8개를 쓴 후로 다시 글을 쓴 것이 2008년이었다. 몇 년 동안 시민단체 활동가와 학원 강사 등으로 바쁘게 살다가 일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잠시 쉴 때였다. 그리고 노동운동과 노동자 문학을 하던 선배들이 만든 잡지사이자 출판사에 들어갔다. 그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책과 관련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평이나 리뷰 등 어려운 말로 접근하기 보다는 그냥 책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떠드는 방식으로 쓰자 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 혼자 생각으로 책에 대한 수다 라고 여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알라딘 서재는 가능하면 책 이야기만 남기는 곳이었다. 아직은 외부에 일상 생활 수다를 남기는 블로그가 있었으니까. 아까 언급한 것처럼 당시 주로 쓰던 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더 이상 일상 생활에 대한 수다를 남길 공간이 없어지면서 이 알라딘에 일상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7년 가량 이어왔던 출판계 생활을 접고 다시 사회운동 판으로 돌아오면서 책에 대한 글을 점점 안 쓰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알라딘 서재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간혹 들어와도 책에 대한 글을 안 쓰고 일상 이야기만 쓰게 되었다. 이 시기에 알라딘에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시점부터 다시 알라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는 그냥 주구장창 일상 이야기만 썼다. 책 이야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nbsp;<br>2004년 2월부터 약 12년 동안 여기 서재에 약 670개의 글을 썼다. 가장 글을 많이 썼던 해는 2011년이었다. 그때는 몸 담고 있던 잡지사에서 매달 잡지에 서평을 쓰던 때여서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책에 대한 글을 가장 많이 썼던 시기였다. 잡지에 실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매달 독자들에게 공개해야 하는 글이어야 하기에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돌아보면 그 해에 유독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글이 많았다. 2014년에 출판계를 떠나면서 가끔 비정기적으로 취재해서 쓰던 기사도 안 쓰게 되고, 서평 연재도 중단되고 하면서 글을 적게 쓰게 되었다. 이후로 간혹 지역에서 시민신문에 연재 글을 쓰기고 했고, 책 소개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나중에 이 시민신문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며 이 조직과 인연을 끊은 후로는 공개적으로 글을 쓸 기회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단행본 두 권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한번은 독서 커뮤니티 활동에서 이어져 기회를 얻었고, 또 한번은 녹색당 창당 과정에서 기획에 참여하며 지면을 얻었다. 그래봐야 그 두 권 모두 공동 저자 수가 엄청 많아서 내 글의 분량은 아주 적었다. 이후로 출판계의 몇몇 선배들에게 책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기획 단계에 머물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바빠서 글을 쓸 여유가 없다가 변명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명확하게 찾지 못해서 기획에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한 서너번 가량 기획서를 쓰다 말았고, 몇 번인가 영업부장에서 퇴직 후 출판사를 차린 선배들과 책 출간 이야기를 하다가 중단되었다.&nbsp;<br>중학생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대학시절까지는 매일은 아니어도 주기적으로 일기를 썼었다.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몸이 두세개여도 모자라는 삶을 살다 보니 일기라는 것을 떠올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간간히 블로그에 글을 쓰는 재미로 살았다. 너무 바빠 며칠간 글을 단 한 줄도 못 쓰고 지내도, 머리 속으로는 늘 어떤 문장들을 쓰고 있었다. 스마트 폰이 생기면서 메모장에 이런저런 짧은 글들을 남길 수 있었고, 바쁘게 이동하다가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단어 만이라도 써놓곤 했다. 물론 그래놓고 나중에 열어보면 내가 이때 왜 이 단어를 남겨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작년 12월 초에 그 전날 많은 눈이 내린 것을 보고 글을 쓰다가 멈추고 그 다음 날에 북플에서 과거 오늘 쓴 글을 보니, 무려 13년 전에 쓴 글이 어제 쓴 글과 거의 완전히 똑같은 글이라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글은 너무 같은 소재, 같은 패턴에 머물러 있구나. 어쩌면 지금 이 글과 거의 비슷한 글을 언젠가 여기 알라딘에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에 제목으로 넣은 이승환의 노래 제목도 언젠가 제목으로 써먹었을 확률이 높다. 아마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시 제목으로 적은 것은 마땅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저 노래를 참 많이 좋아했고, 자주 불렀기 때문이기도 하다.<br>새해 계획 같은 것을 세우지 않는 편이다. 살면서 딱히 올해는 꼭 뭔가를 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진 적도 거의 없다. 계획이란 거창한 말은 좀 그렇고, 하필 시기가 양력으로 1월이라 좀 그렇기는 한데, 이제부터 이런 거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한 것이 아침에 북플을 열어서 지난 오늘 게시판에 글이 없는 날엔 글을 하나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게 오늘이다. 2011년 전후로 한 삼사년을 제외하면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을 열심히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오늘 쓴 글이 없는 날이 제법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날 마다 매번 글을 채워 넣기는 쉽지 않겠지. 그러니 꼭 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저 가능하다면 짧더라도 글 하나를 보태 놓으려고 노력하자. 뭐 이런 정도의 생각이다.<br>끄적이다 말고 방치 중인 책 이야기가 몇 개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나중에 이걸로 글을 쓰려고 남겨둔 쪽글도 여러 개가 있다. 그리고 꽤 오래 안 보다가 최근 다시 찾아서 보고 있는 여자 프로농구 경기들에 대한 글도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북플을 열어보고 아, 지난 오늘 쓴 글이 없구나 하고 깨달은 후에 무슨 글을 하나 남겨볼까 고민했다. 책 이야기? 영화 이야기? 아님 늘 하듯 일상 이야기? 아니면 농구 관람기? 농구 이야기를 쓰려고 유튜브로 어제 봤던 경기들을 다시 돌려 보려다가 아, 이러면 글 쓰는데 한 서너시간은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기록도 따로 찾아봐야 하고, 그 경기 뿐 아니라 최근 경기들의 흐름도 찾아봐야 하고, 다른 팀들의 경기도 살펴보며 비교해야 한다. 다른 할 일도 있기 때문에 글 하나에 그렇게까지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역시 예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찾아서 완성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겠지 생각하고 끄적여 놓은 글들을 찾아보았다. 확실히 제법 많은 분량을 써놓은 글들도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글들도 다시 살리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비교적 빠르게 쓰는 편인데, 한번 멈추고 나면 그 글을 다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글을 쓸 때 당시의 감정과 느낌이 사라져 버려서 다시 그 맛을 살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결국엔 그냥 최근에 있었던 일들 중심으로 일상 수다를 하나 더 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글감도 두세개 정도 떠올랐다. 그 전에 내가 왜 아침부터 이렇게 글을 두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를 써야지 하고 시작한 것이 벌써 한 30분 가까이 지나버렸다. 결국 글을 다 쓰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있겠구나.<br>스몸비<br>서울역에서 파주 운정까지 GTX 일부 구간이 개통하면서 파주로 가는 시간이 엄청 짧아졌다. 그전에는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반 이상,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지금은 연신내 역으로 가서 GTX를 타면 종점인 파주운정역까지 15분 밖에 안 걸린다. 물론 연신내 역까지 가는데 시간이 꽤 걸리고, 역에 들어서서도 지하 8층인 승강장까지 내려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개통 초기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수차례 갈아타며 오르거나 내려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생기며 시간이 조금 단축되기는 했다. 확실히 이동 시간이 줄어든 것은 좋기는 하지만, 이렇게 깊숙히 지하 공간을 개발하며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은 천상 환경활동가로 살아갈 수 밖에 없구나.<br>어느 날 파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열차 안 커다란 화면에서 방영되고 있는 교통 안전 캠페인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다. 평소 이동 중에 열차 안 곳곳에 배치된 안내판과 영상들을 보며 띄어쓰기 오류나 맞춤법 오류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면 또 한 편으로 천상 출판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영상에서 낯선 단어를 하나 발견했다. 스몸비? 저게 우리말인가? 저런 단어가 있나? 뭔가의 줄임말인가? 스...... 스...... 스 로 시작하는 단어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무심코 스위스를 떠올렸다가 우영우가 생각날 뿐이었다. 귀찮아서 검색해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다시 그 단어를 마주쳤다. 역시 파주에서 돌아올 때였다. 이번에도 무언가 줄임말이 분명할텐데, 스...... 스...... 스님 말고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스를 넘기고 몸은 뭐가 있을까? 몸...... 몸...... 몸은 더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말에 몸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있나? 그날도 검색을 하기는 싫었다. 그냥 머리로만 더 고민해보다가 열차에서 내릴 때가 된 후로는 잊어버렸다. 다시 며칠이 지나서 그 단어와 마주쳤다.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폰을 꺼내서 검색했다. 어! 스몸비(Smombie) 스마트폰과 좀비를 섞은 합성어였다. 줄임말이 아니었다. 어느 언론 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나온다. 벌써 10년도 더 지났는데, 나는 이번에 처음 봤다. 영미권에서 주로 쓰고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안 쓰는 단어가 아닐까? 아니면 나만 몰랐던 걸까? 내가 보았던 영상은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만든 교통안전 캠페인이었는데, 저 스몸비란 단어를 쓸 거라면 친절하게 그 뜻도 적어주면 좋았겠다 싶다. 나처럼 이 단어를 처음 보는 사람이 의외로 제법 있을 것 같은데.<br>두쫀쿠<br>언젠가 두바이 초콜릿이라는 것이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이하게도 어려서부터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탕이나 초콜릿 따위 달달한 것들을 거의 먹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두바이 초콜릿이 아무리 유명해도 먹어볼 일도 없었고, 심지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왜 두바이 초콜릿이라고 부르는지 관심도 없었다. 비슷한 유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중국의 탕후루가 유행할 때는 작은 아이 덕분에 맛을 보았었다. 아, 그 혀가 아릴 정도의 단 맛 때문에 너무너무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이가 먹어보라고 주었기 때문에 아이 앞에서는 잠시 참았다가 음료수를 사서 계속 입을 헹구듯 마셨다. 이런 것을 사람들이 유행처럼 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br>최근에는 두쫀쿠라는 것이 유행한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묻길래, 두바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큰 아이가 맞다며, 두바이 쫀득 쿠키의 줄임말이라고 알려줬다. 쫀득 쿠키라니 이건 또 어느 나라 말인가 싶었다. 근데 두바이가 붙는 걸 보니 두바이 초콜릿과 관계가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이가 두바이 초콜릿이 유행하다보니 그 파생상품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두바이 초콜릿보다 더 유명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은 아이는 이 두바이 초콜릿이라는 것이 실제로 중동이 있는 두바이라는 지역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는 그냥 그런가 하고 말았다. 암튼 이번에도 작은 아이가 두쫀쿠를 사왔다. 애들 엄마와 큰 아이 그리고 작은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안 먹을 생각이었다. 탕후루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내가 꼭 맛을 봐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작게 자른 조각 하나를 입에 넣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달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바삭한 느낌은 생라면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겉을 싸고 있는 초콜릿은 약간 떡과 비슷한 식감이었다. 뒷맛은 찰떡 아이스를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주 옛날에 어린 시절에 한 번 먹어본 것이라 정확한 맛의 기억은 아니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냥 이런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저 내게는 탕후루 만큼의 충격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무슨 맛인지 알았으니 됐다. 다시는 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br>거울 효과<br>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기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었다. 돈을 주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것이 4년 정도 되었다. 아주 가끔 가위로 혼자 끝 부분을 일정한 길이로 자르곤 한다. 어차피 묶고 다니는 일이 많아서 꼭 길이를 맞추지 않아도 상관 없고, 풀고 다닐 때에도 파마를 한 것처럼 반곱슬이라서 길이가 맞지 않아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머리칼이 짧았던 시절에는 짧으면 한 달에 한 번, 길어도 두 달에 한 번은 꼭 미용실에 가야 했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옆머리와 뒷머리가 지저분하게 자란 모습을 싫어하고 못 견뎌했다. 그런데 아예 머리를 기르고 나니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돈을 아끼는 측면도 있지만, 나는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한 10여분 남짓의 그 시간이 좀 싫었다. 누군가, 그러니까 나와 전혀 친밀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내 몸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긴 시간 만지고 다듬는 것이 불쾌 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썩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br>내 주위에는 나처럼 머리카락을 기르고 사는 남성들이 여러 명 있다. 언젠가 어느 회의에 갔는데, 나를 포함해서 참여한 남성 네 명은 모두 머리가 길었고, 여성 세 명은 모두 머리가 짧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과는 반대였다. 지금 내 머리카락의 길이는 애들 엄마와 두 딸들과 비교해도 더 길다. 머리를 기르고 살기 때문에 불편한 공간이 있다. 공중 화장실이나 공중 목욕탕 같은 공간이다. 목욕탕은 평소에는 거의 가지 않지만, 아주 가끔 갔을 때에는 나 때문에 놀랐던 사람들이 있었다. 화장실은 자주 사람들이 놀란다. 뒷모습만 보고 여자 화장실을 잘못 들어왔다고 놀라서 나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는 수염도 기르고 다니기에 앞이나 옆 모습을 본다면 절대 오해할 일이 없는데, 뒷모습은 방법이 없다. 처음에는 전철역이나 공원 화장실 같은 곳에서 자주 이런 일이 생기다보니 좀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놀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해 줄 수는 없으니.<br>작년 연말에 동네에 있는 헬스클럽에 다니고 있다. 이 헬스클럽이란 단어는 아마 콩글리쉬일텐데, 그렇다고 핏니스클럽이나 휘트니스클럽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해서 그냥 익숙한 헬스클럽이라고 하자. 우리 동네에 이 헬스클럽이 문을 연 것이 딱 작년 이맘때였다. 큰 길가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동네에도 생기는구나 하고 약간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시간 날 때 한 번 구경이라도 해야지 생각했지만, 일 년이 다 되도록 갈 일은 없었다. 아마 보일러 문제만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갈 일이 없었을 텐데, 불행하게도 작년 연말에 보일러에 문제가 생겼다.<br>그날 따라 중요한 일정이 있었는데, 보일러에 뭐가 문제가 생겼는지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한 서너번 정도 온수 배관이 얼어 붙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열선을 감아 놓아도 꼭 서너번은 그렇게 되더라. 대개는 드라이기로 녹이지만, 가끔은 저절로 녹을 때까지 친구 집으로 피난을 가기도 한다. 이번에는 보일러를 살펴볼 여유가 없어서 급하게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씻고 가겠다고 부탁했다. 그 친구는 이미 출근해 있었기 때문에 알아서 씻고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에 보니 다시 온수가 나왔다.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저절로 해결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그 친구에게 부탁해도 괜찮았지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nbsp;<br>한 십여년 전에 친하게 지냈던 동네 친구는 동네 뒷산, 산 자락에 살았다. 그 높은 곳까지 따닥따닥 집들이 지어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친구 집 바로 뒤로 등산로 옆에는 텃밭들이 있었다. 그 비탈진 골목길 어딘가부터 도시가스 연결이 안 되는 곳이라고 했다. 겨울마다 기름 보일러를 돌려야 하는데, 낡은 집이라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기름 값만 아깝다고 하며, 그 친구는 매년 겨울이 되면 전철역 근처 헬스클럽을 등록한다고 했다. 아침에 거기서 씻고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거기서 씻고 집으로 온다고 했다. 그 당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게 기름 보일러를 돌리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좋은 방법이네. 씻기 전에 운동도 할 수 있으니 건강에도 좋고. 이런 말을 했었다. 그 말이 이번에 생각이 났다. 이번 겨울에 또 얼마나 자주 보일러가 문제를 일으킬 지 알 수 없는데, 매번 친구네 집을 이용하는 것보다 집 가까이 있는 헬스클럽을 이용하자 싶었다.&nbsp;<br>한때는 꾸준히 헬스클럽을 다녔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을 잘 안 하게 되는데, 그래도 돈을 주고 등록을 해 놓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가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집에 운동기구도 거의 없어서 가벼운 맨몸 운동이 아닌 제대로 된 운동을 하려면 헬스클럽에 가야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바벨을 사고, 실내 철봉을 사고, 케틀벨을 사고, 불가리안 백을 사고, 샌드백을 샀다. 덤벨로 여러 종류를 많이 샀다. 케틀벨도 무게 별로 숫자가 늘었다. 집에 운동기구를 갖춘 이후로는 굳이 헬스클럽을 갈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도 충분히 좋아하는 여러 동작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 심각한 근손실을 겪었고, 이후로 다시 열심히 운동을 해봤지만, 내가 좋아했던 여러 종류의 동작들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리고 운동에 흥미를 잃었다. 대신 달리기에 빠졌다. 교통사고 이전에도 달리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주로 2킬미터 이내로 짧은 거리를 뛰고 쉬는 방식으로 했었다. 본격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먼지만 쌓여가는 저 많은 운동기구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 찔끔 찔끔 운동을 했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부터는 죄책감도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달리기를 열심히 하니까 운동은 좀 쉬어도 괜찮아 라고 생각한 것이다.&nbsp;&nbsp;<br>헬스클럽에 등록한 것은 거의 15년 만이다. 생긴지 1년 밖에 안 된 곳이라 깨끗했다. 공간이 넓지 않은 것에 비해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나는 어차피 기구 운동은 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기구들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스트레칭 공간이 별도로 있다는 것과 좁기는 하지만 프리웨이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처음에는 간단히 몸을 풀고 덤벨, 바벨, 케틀벨 운동만 했는데, 나중에는 워밍업으로 트래드밀을 달린 후에 다른 운동을 시작했다. 원래 집에서 헬스클럽까지 달려가는 것으로 워밍업을 해야 할텐데,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워밍업이 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몸에 열을 좀 내기 위해 트래드밀을 달리기로 했다. 트래드밀을 달리는 것은 참 지겹고 싫은 일이다. 이왕 달릴 거라면 무조건 밖에서 달려야 한다는 생각인데, 겨울이기도 하고, 어차피 돈을 냈으니 다른 기구들은 이용하지 않더라도 이것 만이라도 이용하자고 스스로 타협을 한 것이다. 밖에서 달리면 10킬로미터를 달려도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은데, 트래들밀에서는 1킬로미터도 못 가서 지겹고 힘들더라. 그리고 좁은 폭 안에서 움직이는 기계의 속도에 맞춰 일정하게 달리는 것이 너무 싫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하다 보니 이제는 좀 익숙해지기는 했다.<br>문제는 탈의실이었다. 나는 수염을 기르기는 했지만, 머리가 길어서 내가 탈의실에 있을 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어저씨들이 있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기는 한데, 그래도 나 보다는 한 열 살 이상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 게다가 나는 교통사고로 인한 수술자국이 몸에 있다. 이게 의외로 칼에 찔린 자국처럼 보인다고, 예전에 같이 목욕탕에 갔던 친구가 말했었다. 이래저래 탈의실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수술자국은 최대한 옷을 빨리 갈아 입는 것으로 괜찮지만, 머리는 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운동복을 다 벗고 샤워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탈의실로 어떤 남성이 들어왔다. 깡마른 체격에 키가 작았는데 머리카락은 길었다. 눈이 딱 마주쳤는데, 곱상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여성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옷을 모두 벗은 알몸이었다.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는데,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서 열쇠로 사물함을 열었다. 그제서야 아, 남자구나 생각이 들었다. 샤워장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하고 생각을 시작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거울 치료 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비록 수염을 기르기는 했지만, 머리카락이 긴 내가 탈의실에 들어서면 다른 사람들도 순간 순간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걸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어떤 느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놀라고 당황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놀랐겠구나 싶었다. 엄밀히 말하면 치료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니 거울 효과라고 해야 하려나. 암튼 내가 긴 머리의 남성을 보고 순간적으로 여성으로 착각해 놀라다니. 새삼스럽게 지금까지 나 때문에 놀랐을 많은 남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탈의실에 들어설 때 헛기침이라도 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또 좀비영화 두 편, 주말동안 네 편</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15772</link><pubDate>Mon, 12 Jan 2026 07: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15772</guid><description><![CDATA[이번 주말은 어쩌다 좀비영화를 네 편이나 보고 말았다. 토요일에 두 편, 일요일에 두 편. 모두 넷플릭스에서 보았다. 지난 새벽에 쓴 글에서 소개한 두 편은 인도네시아 좀비영화 [불사의 약]과 필리핀 좀비영화 [아웃사이드]였다. 이번에는 일요일에 본 태국 좀비영화 [지암]과 스페인 좀비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이렇게 두 편을 살펴보고, 맨 마지막에는 주말에 연속으로 본 네 편의 좀비영화를 종합적으로 비교해보자. 어제 본 두 영화는 그간 접해보지 못했던 동남아시아 좀비영화라는 점과 위기에 처한 가족이 좀비 세상을 맞은 이야기 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늘 두 편은 좀비와 싸우는 액션이 주요 내용이란 공통점과 또 제목을 정하는 방식에 공통점이 있다.<br><br>일단 [지암]부터 보자. 감독 및 배우 정보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자. 찾아봐도 쓸만한 정보가 없었다. 어제 본 두 동남아 좀비영화는 영화 초반에 어느나라 영화인지 궁금해하며 봤다. 필리핀 영화는 초반 대사가 다 영어였고, 그 다음에 나오는 타갈로그어를 전혀 몰라서 감을 잡지 못했었다. 인도네시아 영화는 처음에 분위기만 보고 태국 영화인가 생각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약간 동남아 느낌이 나는 영화는 지금까지 태국 영화 밖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국영화는 액션 영화와 호러 영화를 중심으로 한 십여편 정도를 봤었다. 그런데 대사를 듣다보니 아는 단어들이 들렸다. 어, 이거 바하사 인도네시아 잖아.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영화라고 확신하지 못했던 건, 말레이시아어도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구체적인 지명이 나오면서 인도네시아 영화 맞구나 했었다.<br><br>반면에 [지암]은 맨처음 나레이션을 들을 때부터 태국 영화라고 알았다. 태국어를 알지 못하지만, 태국어 특유의 발음은 알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레이션이 세계관부터 설명한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며 해양 생태계가 붕괴되고 전세계는 식량난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여기까지 설정은 현실을 매우 잘 반영하여 근미래를 잘 설계했다고 본다. 실제로 현재 인류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과학기술도 의지도 없다. 매우 빠른 속도로 파국을 향해 가고 있는데, 대부분 그 심각성을 못 느끼는 아이러니한 블랙 코메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태국은 고립된 환경에서 어떤 특정한 한 인물이 식량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만들었고, 그래서 태국만이 거의 유일하게 잘 살아남았다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여기서 과거 태국의 이름인 시암이란 단어가 나온다. 태국 정부는 과거 위대한 시암처럼 더 훌륭하게 이겨낼 거라며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듯한 내용이다. 구체적인 단어나 표현을 다를지 몰라도 뜻은 그랬다. <br><br>여기서 이 영화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지암은 태국의 과거 이름인 시암에서 첫 글자만 좀비의 Z 를 붙여 만든 제목이다. 즉, 좀비 세상이 되어버린 태국을 뜻한다. 이런 작명법은 뒤에서 다룰 스페인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들여오면서 붙인 제목은 영어 제목인 [Valley of the dead] 를 번역한 것이지만, 원제는 [Malnazidos] 이다. 이 단어를 구글 번역에 넣어봐도 뜻이 나오지 않았다. 실제 스페인어에 없는 단어라 당연한 결과였지만, 원제의 뜻이 궁금했던 나는 좀 당황했다. 그러다 저 영화 제목이 시암에서 지암이 된 것을 보고 감이 왔다. 다시 번역앱에 malnacidos 를 넣어봤다. ˝개자식들˝ 이란 욕설이 나왔다. 원어의 어감이 궁금해서 좀 더 검색해보니 영어의 ˝bastard˝ 나 ˝wretch˝ 에 해당하는 욕이라고 했다. 이 욕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최대한 어감이 비슷한 C 자리에 좀비를 뜻하는 Z 를 넣어서 좀비를 향한 욕을 제목으로 정한 것이다. 이 두 영화 모두 잘 만든 제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봉하며 정한 [죽은 자들의 골짜기] 는 너무 재미없는 제목이다. 원제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더 좋았겠다.<br><br>다시 [지암] 으로 돌아가서 조금만 더 배경을 살펴보고 이어서 주인공들을 살펴보자. 많은 디스토피아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현재보다 퇴보한 근미래를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 부부, 아니 결혼했다는 언급은 없고, 둘 다 반지를 끼고 있지는 않으니 동거 중인 연인일지도 모른다. 다만 여주인공은 반지를 목걸이로 걸고 다니기는 한다. 암튼 이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완전한 빈민가처럼 나온다. 여주인공이 수도 방콕에서도 꽤 큰 규모의 병원 의사인데도 그렇다. 그것도 병원장이 인정하는 유능한 의사인데도? 이건 좀 설정 오류인 것 같다. 이렇게 큰 병원의 유능하고 유명한 의사가 가난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망해버린 근미래 세계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세상일수록 의사는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질만한 직업일 것이다. 의사인 여주인공 린이 가난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남주인공 싱이 돈을 위해 폭력에 노출된 위험한 일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는 설정을 맞춰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무에타이 선수였고, 돈을 위해 불법 경기에도 나갔던 것으로 나온다. 현재도 해안에서 도시로 물품을 운반하는 화물차의 경호원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치안이 엉망이라 도시로 들어오는 화물차는 무기를 가진 깡패들의 습격을 받는데, 주인공이 맨손으로 모두 물리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br><br>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이 남자와 좀비들 간의 액션을 보여주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린이 일하는 병원에서 좀비가 등장한 이후로는 싱이 좀비들과 싸워 린을 구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이 액션 장면들이 썩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무에타이는 맨몸 무술이다. 끝없이 몰려드는 많은 수의 좀비를 상대로 맨몸으로 싸운다? 아무리 무에타이 고수라 해도 그게 가능할까? [부산행] 에서 마동석도 맨주먹으로 좀비들을 때려잡기는 했지만, 그는 좀 어설프긴 해도 맨살이 직접 좀비들에게 닿지 않도록 아주 최소한의 방어구(?)를 갖추고 있었다. 아니 하다못해 장갑이라도 하나 끼고 주먹질을 하면 안 되나? 영화마다 설정이 다를 수 있겠지만, 보통 좀비에게 물리지 않더라도 상처를 입어도 감염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좀비의 피나 체액이 몸 안으로 들어가도 감염이 된다. 주먹질을 하다가 주먹이 좀비의 이빨에 맞아 살갗이 긁히거나 살짝 벗겨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좀비를 제압하려면 머리를 관통하거나 뇌에 타격을 입혀야 하는데, 맨주먹과 발길질로 한방에 좀비를 제압하기에는 두개골이 너무 단단하지 않은가? 아무리 무술 고수라도 아니 오히려 무술 고수라면 무조건 무기를 들어야 할텐데, 싱은 링거를 걸어두는 쇠꼬챙이를 활용하거나 소화기를 무기처럼 쓰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맨몸으로만 싸운다. 물론 팔꿈치와 무릎을 잘 쓰는 무에타이 특유의 동작들로 조금은 더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여전히 한계는 명확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좀비는 유난히 약한 것처럼 느껴진다. 좀비의 외모는 아주 흉측하기 짝이 없고, 물고기를 닮아 유난히 가로로 길게 찢어진 입에 아주 날카롭고 큰 이빨을 가진 인상적인 외모의 좀비들이 맨 몸으로 싸우는 단 한 사람을 제압하지 못한다는 건 아주 심각한 오류다. 좀비는 머리가 으깨지거나 관통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 불사와도 같은 존재이며 사람보다 강한 힘을 쓰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이 떼로 몰려오니 경찰이나 군인들도 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걸 한 사람이 맨 몸으로 상대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곤봉이나 삼단봉 아니 그냥 짧막한 쇠꼬챙이 하나라도 들고 싸웠으면 훨씬 편하게 영화를 봤을텐데.<br><br>이외에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다. 전세계가 식량난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어느 한 사람 덕분에 태국만 위기를 극복했다는데, 그 방법이 뭔지 알려주지 않는다. [설국열차] 처럼 단백질바 라도 개발해서 나눠준걸까? 아닌게 아니라 영화 초반에 유난히 바퀴벌레가 우글우글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불길한 느낌의 생선을 먹고 최초의 좀비가 나타난다는 설정인데, 이것도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바다가 오염되어서 그렇다던가 뭔가 이유가 있었어야 했다. 또 병원에 진입한 특공대가 폭탄을 설치해 건물을 폭파시키는데 이 큰 건물을 폭파시키기에는 너무 적은 폭탄을 건물 지하에만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br><br>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영화의 가장 절정부에 해당하는 액션 장면에 있다. 옥상에서 진입한 특공대가 중요한 인물을 데리고 헬기로 탈출하려는 장면인데, 주인공 남녀와 특공대가 각자 좀비떼와 싸우다가 마주치는 부분이다. 이 장면은 감독도 좀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유난히 빠르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들이 딱 마주치는 장면에서 싱은 왼쪽 어깨에 총을 맞는다. 총을 든 이들은 특공대 밖에 없으니 이들이 쏘았을텐데 왜 그랬는지,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이 직전 장면까지 특공대는 계속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공격받고 있었으니 외모상 싱이 좀비가 아니란 것은 알았을 것이다. 아, 아니 다급하면 헷갈릴 수 있고, 아니면 그냥 실수로 쏘았다고 해도 좋다. 일단 총에 맞은 것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 다음에 왜 린은 자신의 남편 혹은 연인이라고 특공대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의사가 필요하다는 중요인물의 말 한마디 때문에 곧바로 탈출하지 않고 좀비떼와 싸워가며 린을 구하러 왔는데, 왜 린을 지켜주고 있던 싱을 공격하는 걸까? 왜 린은 해명하거나 방어하지 않을까? 이어서 특공대의 대장과 싱이 아주 멋있게 일대일 결투를 벌인다.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중요한 장면이자 핵심인데, 이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왜 둘이 싸우지? 바로 옆에 좀비떼가 있는데, 인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 말이 되나?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싱은 린을 보호하고 있던 사람인데. 소수의 특공대원들이 차례로 좀비떼들에게 당하고 좀비랑 싸울 사람이 부족한데, 왜 특공대 대장은 굳이 멀쩡한 사람이랑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걸까?그리고 왜 좀비들은 이 둘이 결투를 벌일 동안 습격을 멈춘걸까? 카메라가 둘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에 집중하는 동안 좀비들은 엉거주춤 곁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걸까? 만약 그 순간까지 주위에 있던 좀비들이 모두 제압당하고 잠시 좀비들이 없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라면 싸우는 컷들 사이에 주위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좀비들이 움직이는 장면들을 넣어줘서 관객들이 이해하도록 보여줘야 한다. 이건 연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싱이 헬기를 타지 않은 것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처음에 싱이 싸우는 과정에서 물렸구나. 그래서 헬기를 포기하고 그냥 보내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장면들과 맨 마지막 쿠키 영상까지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헬기를 안 탄 거냐고?<br><br>아, 이외에도 따지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 시간과 지면이 아까우니 그만하자. 감독은 어쩌면 맨몸 무술이 돋보이는 액션 장면을 멋지게 넣고 싶었는데, 좀비들이랑 싸우는 장면에서는 이게 별로 인상적인 합이 나오지 않으니 특공대 대장이랑 멋진 액션씬이라도 넣자고 생각했던 것일까? 암튼 여러모로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많아서 아쉬운 영화였다.<br><br>이제 다음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로 넘어가자. 이 영화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만약 좀비가 등장했다면 이란 가정에서 출발했다.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좀비가 등장하면 이란 가정에서 출발하는 드라마 [킹덤] 시리즈가 연상되었다. 드라마 상에서 정확한 시점이 제시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병자호란은 일어나기 전이 배경일거라고 생각했었다. 또 실제 역사가 아닌 문학작품에 좀비를 등장시켜서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도 생각났다.<br><br>스페인 내전은 내전이라 부르지만, 유럽 전체에서 많은 나라들이 참전했었고, 전체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공화제 민주주의 등이 부딪힌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배경으로 좀비물을 만들다니 이거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이 영화를 보기 전 내 생각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기대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독창성과 장점을 괜찮게 살린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했다. <br><br>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라고 해서 원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마누엘 마르틴 페레라스라는 작가가 2012년에 쓴 [Noche de Difuntos Del 38] 이란 소설이란 것 외에 다른 정보는 찾지 못했다. 아, 게임이 영화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는 여러모로 만듦새가 썩 좋지는 못한데, 원작 소설은 인물들을 잘 살리고 스페인 내전이란 복잡한 시대 상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br><br>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좀 독특한 인물 구성이다. 일단 주인공인 한 로사노 대위는 전형적인 전쟁영화 혹은 액션영화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을 대변하는 변호사 출신 군 법무관이다. 실전 경험이 없어 손이 부드럽고 깨끗하다는 묘사가 나온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많이 배운 인물(다른 말로 먹물) 답게 위기 상황에서 빠른 판단을 내리고 눈치도 빠른 편이라 흐름을 잘 읽고 일행을 이끌어간다. 파시스트 진영의 꽤 높은 직책의 간부이지만, 프랑코와 그 세력에 대해서는 다소 불만이 있는 듯하다. 그의 동생은 공산주의 세력에 복무하고 있다는 대사도 있었다.<br><br>여주인공은 공산주의 진영의 의용병으로 마지막까지 이름은 나오지 않고 다만 타락한 사제 즉, 성직자를 죽였다고 사제 킬러라고 불린다. 그 사제가 자신의 어린 여동생을 건드려서 죽을만큼 어떤 벌을 준 것처럼 묘사된다. 사람들은 그를 사제 킬러 라고 부르지만, 자신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잘 싸우고,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맨 마지막에 좀 뜬금없는 로사노 대위와의 애정 행각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영화니까 넘어가주자.<br><br>공산주의 진영의 리더는 철도 노동자 출신 중사이다. 이 인물도 이름이 안 나왔던 것 같다. 약간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으나,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꽤 괜찮은 지휘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패색이 짙은 이 전쟁의 판도를 잘 읽고 있으며, 적이라도 불필요한 희생은 줄이려는 생각이 있다. <br><br>비중은 좀 적었지만 멋있는 인물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파시스트 진영의 무어인이자 무슬림인 라피르 일병이다. 저격수로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맨 마지막에 행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아마 무사히 살아남은 것 같다. 마지막에 열차 위를 뛰어다니며 가장 크게 활약하는 인물이다.<br><br>다른 한 명은 공산주의 진영의 행동대장 같은 위치에 있는 미겔 안드레우 라는 인물이다. 정규군이 아닌 의용병이라 계급은 없다. 늘 다이나마이트와 성냥을 갖고 다녀서 성냥이라 불린다. 입대 전에 오토바이 경주로 유명한 레이서였다. 아내와 갓난 아기였던 아들이 파시스트 세력의 폭격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마지막에 폭탄이 잔뜩 실린 차 안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자폭한다.<br><br>이외에도 로사노 대위가 데리고 다니는 어린 운전병이자 정비병이 있고, 중간에 합류하는 파시스트 진영의 간부(중위?)가 한 명 있고, 사나운 성질의 수녀도 등장한다.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체격이 크고 힘이 쎈 소련 출신 의용병이 비교적 초반에 좀비에게 당하고, 미국인 사진 기자도 퓰리쳐 상을 노리고 조작 사진을 찍으려다가 좀비에게 당한다. 그리고 공산당에서 직접 파견나온 것으로 보이는 참모(?)도 등장하는데 전형적인 원칙주의자이며 꽉 막힌 인물이며, 그에 알맞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br><br>이 영화에서는 좀비 사태의 원인을 나치 독일로 설정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결혼식이 열리는 작은 시골마을에 독일군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전부 학살하는 끔찍한 모습이다. 여기에 어떤 파란 가루가 포함된 가스를 살포해 좀비를 만들었다. 이후 로사노 대위와 공산주의 진영 중사 일행이 만나고, 비록 적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모습이 나온다.<br><br>전쟁을 치루는 군인들이니 당연히 총으로 무장했고 덕분에 좀비들을 상대로 제대로 잘 싸운다. 물론 많은 수가 끝없이 달려드는 좀비를 상대로 탄약이 모자라는 등 차례로 당하기는 하지만, 이번 주말에 본 좀비영화 네 편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제대로 싸웠다. 그리고 서로 적으로 목숨 걸고 싸우는 군인이지만,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고 [웰컴 투 동막골]이 떠올랐다. 중반 이후에 조금만 더 인물을 잘 살리고, 결말을 제대로 연출했다면 훨씬 더 괜찮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다.<br><br>이 영화의 만듦새가 이렇게 좋지 않은 건 아마 제작비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비들이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고 별로 긴장감도 들지 않는다. 좀 더 예산을 써서 제대로 좀비들을 꾸미고, 연기자들도 좀 더 잘 지도했다면 훨씬 그럴듯한 장면들이 나올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이 영화의 어설픈 결말 부분은 시나리오 자체가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 직전 장면까지 잘 싸웠던 일행들이 유독 마지막에 멍하니 있거나 도망만 다니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전투에 임할 때 어마어마한 좀비떼가 덮쳐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터널 입구를 막아놓지 않고 그냥 터널로 들어온 것과 터널로 진입하기 직전에 잔뜩 쌓여있는 보급품 상자들에서 총기와 탄약을 보급하지 않고 그냥 들어가는 장면 등은 명백한 오류다.<br><br>자, 이제 주말에 몰아본 좀비영화 네 편을 종합적으로 비교해보자. 일단 좀비영화니까 좀비 얘기부터 하자. 네 개의 영화 중에 가장 형편없는 좀비는 필리핀 영화 [아웃사이드]의 좀비다. 느리고 전투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주인공 가족들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이 좀비들은 좀비로 변하고 직전에 한 말로 짐작되는 짧은 말을 반복한다. 사람을 보면 바로 습격하지 않고 먼저 말을 한다. 이렇게 예의바른 좀비라니!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면, 필리핀은 좀비예의지국이라 불러야겠다. 그 다음 한심한 좀비가 등장하는 건 태국 영화 [지암]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정체모를 생선을 먹고 좀비가 되어서 그런지 물고기처럼 입이 가로로 넓게 찢어져 날카로운 이빨들이 강조된 외모는 정말 흉측하기 짝이 없는데, 변변한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주인공 한 명을 어쩌지 못하는 모습은 참 답이 없다. 아무리 상대가 주인공이라 해도, 그 주인공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밀라 요보비치도 아닌데, 단 한 명을 상대를 못 하다니!세번째로 무기력한 좀비는 마지막에 소개한 스페인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좀비들이다. 이 좀비들도 느리고 떼로 덤비는 것 외에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그나마 이 정도로 점수를 준 건 마지막 장면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가 덤벼들어 군대를 완전히 박살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네 편 중에 가장 강력한 좀비는 인도네시아 영화 [불사의 약] 이다. 이 좀비들은 일단 엄청 빠르게 뛰어다니고, 물린 후에 좀비로 변하는 속도도 빠르다. 결국 한 마을을 완전히 장악했고, 아마 머지않아 나라 전체를 아니, 바다를 건너 다른 섬으로 옮겨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카르타가 있는 제일 큰 섬만은 장악할 것이다.<br><br>다음은 좀비가 되는 원인이다. 어차피 좀비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 그 원인을 무엇으로 돌리던 설득력을 객관적으로 따지기는 어렵다. 단순히 작중에서 얼마나 잘 설명하는가 라는 점을 살펴보자. 네 작품 중에 [아웃사이드]는 좀비 발생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미 좀비 세상이 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점부터 시작한다. 무엇을 원인으로 두더라도 어차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어려울테니 아예 원인은 언급조차 안 하는 전략이라면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하겠다. 그럼 가장 설득력 없는 좀비 발생 원인은 바로 [지암]이다. 무언가 정체를 알수 없는 생선을 먹고 좀비가 되는데, 이게 무슨 생선인지 왜 그런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럼 이 세계관에서는 불안해서 아무런 생선도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다음으로 설득력이 약한 원인은 [불사의 약] 이다. 이 불사의 약이 어떻게 작용해서 좀비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이건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네 편 중에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건, [죽은 자들의 골짜기] 이다. 실험을 통해 만들었다는 설정은 앞의 [불사의 약]과 같지만, 여기에서는 나치 독일이란 존재가 더해져 더 무게를 실었다. 요 좀비 발생 원인 부분은 언젠가 시간날 때 더 많은 작품을 두고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br><br>다음은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으로 평가해보자.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더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지도 포함해서 보겠다. 가장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한 인물들은 [불사의 약]이다. 나름 독특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거기서 더 잘 펼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지막에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면서 프로포즈를 하고, 그 와중에 그걸 받아주는 황당한 연출이 나온 젋은 연인의 경우 이럴 거라면 애초애 왜 이렇게 비중을 높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은 [지암]이다. 처음에는 이 영화를 꼴찌로 생각했었다. 사실 세계관 설정은 열심히 했는데, 인물 설정은 오류 투성이다. 이유는 앞서 얘기했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꼴찌였는데, 3등이 된 건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나아서가 아니다. 제법 흥미로운 설정의 인물들을 너무 살리지 못한 [불사의 약]이 너무 괘씸해서 순위를 내렸다. 그 다음 2등은 [아웃사이드]이다. 여기도 너무 과도하게 남편의 형에게 집착하고, 아이들에게 좀 냉담한 아내라던가, 어릴적 학대를 당했던 고향집에 너무 쉽게 집착하는 남편이라던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이긴 한데,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향성만은 잘 살렸다고 본다. 마지막 그래도 괜찮게 인물들을 살린 영화는 [죽은 자들의 골짜기]이다. 이 이야기도 위에서 했으니 반복하지는 않겠다.<br><br>마지막으로 다른 요소들 다 제쳐놓고 순전히 재미의 측면에서만 보고 평가해보겠다. 일단 [지암]을 가장 낮은 순위로 두고, 그 다음에 [아웃사이드]를 두겠다. 이야기 자체만 보면 [아웃사이드]가 가장 잔잔하고 어쩌면 지루한 이야기이고, [지암]은 반대로 재미있을만한 액션인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지암]이 그만큼 액션을 잘 살리지 못한 측면도 크고, [아웃사이드]의 이야기가 그만큼 신선한 접근이었다는 측면도 있다. 다음으로 [불사의 약]을 2위로 두겠다. 작은 시골 마을에 좀비가 나타나 마을이 그야말로 완전히 망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잘 담았다. 물론 아쉬움이 많은 영화지만, 살짝 내려놓고 보면 그나마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네 편 중에 그래도 재미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는 건 [죽은 자들의 골짜기]이다. 결말의 전투 장면이 너무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래도 꽤 재미있었다. <br><br>어쩌다 우연히 [불사의 약]을 본 것을 시작으로 주말을 좀비영화 네 편과 함께 보내 버렸다. 넷플릭스가 이후로 [아웃사이드]를 추천해주더니, [죽은 자들의 골짜기]와 [지암]까지 보여주면서 좀비 주말을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나 [지암]을 앞부분 한 1/3 정도 지점까지 보다가 그만두었었더라. 병원에서 싱이 린을 구하기 위해 좀비들과 싸우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 당시에도 나는 좀비들과 무에타이 전사의 액션 장면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거기서 딱 그만둔 것을 보면. 저 위에서는 맨몸으로 싸운다는 걸 강조해서 지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주인공 혼자 싸운다는 것도 문제다. 좀비는 쉴 새 없이 떼로 덤비는데, 이에 혼자 맞서서는 도무지 승산이 없다. 어떻게든 동료를 모아서 팀으로 맞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좀비들을 놔두고 특공대 대장과 일대일 결투를 한 것은 이 영화 최대의 실책이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이 너무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br><br>아, 역시 폰 자판으로 글을 두드리는 일은 어렵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 한번 오타가 난 글자는 수십번 반복해도 계속 같은 오타가 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폰 자판도 엄청 빠르게 잘 치던데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br><br><br> <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동남아시아 좀비영화 두 편</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13337</link><pubDate>Sun, 11 Jan 2026 04: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13337</guid><description><![CDATA[[불사의 약]과 [아웃사이드]<br><br>넷플릭스에서 좀비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았다. 날은 춥고 감기 기운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보니 뭔가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웠다. 암튼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볼만한 영화가 뭐 없나 생각하다 고른 영화가 [불사의 약]이었고, 이걸 다 보고 나서 영화 정보 페이지에서 유사한 영화라고 보여주는 영화들 중에서 [아웃사이드]가 눈에 띄어 클릭했다. 둘 다 딱 시간 때우기 괜찮은 영화였다. [아웃사이드]는 살짝 지루한 면이 있는데,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가 괜찮아서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둘 다 좀비영화이지만, [아웃사이드]는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이 별로 없다. 좀비 때문에 망해버린 세상에서 불화로 깨어질 위기에 처했던 한 가족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다룬 이야기다. [불사의 약]은 좀비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후 작은 마을 하나가 좀비로 초토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도 불화로 인해 위기에 처한 가족이 나온다. 그러네. 이 두 영화가 좀비영화이기도 하지만, 위기에 처한 가족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br><br>먼저 보았던 [불사의 약] 부터 이야기 해보자.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 영화다. 처음에는 분위기만 보고 태국영화인가 생각했다가 대사를 듣고 인도네시아 영화라고 알아차렸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인도네시아 말을 익히곤 했었다. 원제는 [Abadi Nan Jaya] 로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면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이라고 나온다. 영어 제목은 [The Elixir] 이다. 엘릭서는 연금술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로 불로장생의 약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니 그건 넥타르 라는 이름의 신들이 마시는 음료였다.<br><br>영화는 한 제약회사에서 만든 시제품을 두 명의 회사 중역에게 배달하라고 지시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한 명은 사장이고, 다른 한 명은 영화 맨 뒷부분에 등장하는 사람으로 아마도 상무이사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 시제품이 바로 영화의 제목인 불사의 약이다. 제약회사의 사장은 이제 회사를 매각하고 은퇴할 예정인 노인이었다. 이 약이 배달되는 날은 공교롭게도 회사 매각을 결정하는 서류에 사인을 받기 위해 사위와 딸이 방문하는 주말이었다. 그리고 이날 사장이 살고 있는 시골마을 촌장 집에서는 무언가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고,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잔치에서 음식을 나르고 설겆이를 하는 젊은 여성 한 명이 이 마을 파출소에서 일하는 젊은 경찰에게 삐진 상태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사장 가족에게로 카메라가 돌아간다. <br><br>처음에는 얼굴들이 낯설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이 가족 좀 독특한 구성이었다. 사장의 현재 아내는 사장의 딸과 어려서부터 절친이었다. 언제인지 시점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장의 아내가 죽고 나서,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아빠와 결혼한 것이다. 대화를 보면 사장의 딸은 당연히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고, 경어를 쓰지도 않는다. 딸은 절친이 자신의 아빠와 결혼한 후로 마음의 문을 닫고 말도 섞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남들에게 말할 때에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사장의 아들, 그러니까 딸의 오빠도 이 현재의 사장 아내에게 존칭을 쓰지 않는다. 여동생의 친구라서 당연한 걸일까? 오직 사장 딸의 남편, 즉, 사위만 장모님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원어에서는 달리 부르는 걸 번역 자막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장 딸과 그 오빠가 모두 이 아내의 이름이나 애칭을 부르는데, 사위는 그러지 않는다. 영화 초반 최고의 갈등 요소는 이 두 사람의 불화이다.<br><br>사장은 회사에서 보낸 시제품인 약을 먹었고, 잠시후 흰머리가 검게 변하고, 주름진 얼굴이 펴졌다. 젊어진 것이다.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놀라고, 나중에 다른 가족들도 모두 놀란다. 사장은 이 약 덕분에 젊어지자, 회사를 매각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고 가족들에게 전한다. 이 젊어지는 약으로 대박을 터뜨릴 거라고도 했고, 늙은 몸이 다시 젊어졌으니 은퇴할 생각이 없어질만도 하다. 하지만 평생 일을 해본 적도 없고 아빠 재산으로 고가의 장난감이나 사 모으고, 게임에 빠져 사는 아들은 반발한다. 회사를 팔면 아빠가 자신에게도 돈을 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리고 아마도 현재 이 회사의 공장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위와 딸도 반발한다. 알고보니 사위는 이 회사를 매입하려는 다른 회사의 여성과 외도한 것으로 나온다. 딸은 사위와 이혼하고 이 회사를 판 돈으로 자신의 사업을 할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사장이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그대로 매각을 했다고 해도 그 돈을 자식들과 사위에게 나눠줬을까?<br><br>딱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제목, 불사의 약이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다. 이후로는 그냥 좀비가 생기고, 퍼져가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불사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맨 먼저 불사의 약을 먹었던 사장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며, 좀비로 변하고 그 집 고용인들과 가족들을 공격한다. 우왕좌왕하다가 고용인 한 명이 물리고, 또 다른 한 명은 피를 뒤집어쓴다. 그리로 아들을 물려고 하다가 아들 손에 들려있던 석궁에 머리가 관통되어 움직임을 멈춘다. 영화의 제목인 불사의 약을 먹었는데, 좀비가 되어버린 것인다. 어쩌면 좀비를 불사의 존재로 볼 수도 있을까? 이 영화와 이따 다룰 영화 [아웃사이드] 모두 하반신과 분리되어 상반신만 움직이는 좀비가 나온다. 거의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머리를 제외한 다른 신체가 분리되어도 죽지 않는다. 오직 머리를 공격했을 때에만 움직임을 멈춘다.<br><br>이후의 내용은 좀비가 점점 퍼져가고, 주인공 일행은 좀 바보같이 억지로 살아 남는다. 파출소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초반에 잠깐 등장했던 젊은 여성의 남자친구가 경찰이라서 활약을 좀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파출소의 경찰들과 또 구조요청을 받고 지원을 나온 이웃 파출소의 경찰들 모두 아무것도 못 하고 손쉽게 좀비들에게 당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에 주인공 일행 세 명이 파출소에서 보호장비들을 착용하고 총기와 방패 등을 챙겨 나서는 장면이 나올 때, 이제서야 좀 속 시원하게 싸우는 장면이 나오려나 했는데 아니었다. 이들은 너무도 무기력하게 수많은 좀비들에게 포위되고 아무것도 못 하다가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려 겨우 살아남는다.<br><br>영화는 전반적으로 개연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답답하고 무기력하다. 애초에 불사의 약이란 개념 자체가 현실성이 없고 이걸 먹었는데 왜 좀비로 변하는지도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으니, 개연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겠지만, 그럼에도 영화 안에서 나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물리 법칙이 작용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다. 전체적인 전개가 좀 많이 답답한데,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고구마 백개 먹은 것 같은 모습이다. 맨 마지막에 약간 신파로 빠질 것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다행히 아주 짧게 쿨하게 넘어가더라. 이거 하나는 칭찬할 만하다.<br><br>인도네시아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라 전반적으로 답답한 상황이었어도 그냥 봤다. 만약 우리나라 영화나 영미권 영화가 이 모양이었다면 그냥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감독이나 배우 등의 정보를 조금 찾아보기는 했는데, 우리말로 된 정보는 많지 않았고 익숙치 않은 인물들이라 그냥 넘어가야겠다. 내용은 많이 유치했지만, 배우들의 연기만은 대부분 다 좋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아직 작은 시골마을 하나만 좀비가 퍼진 상황인데,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수도이자 대도시에 살고 있는 이 제약회사의 또 다른 중역, 맨 처음에 시제품을 보낸 또 다른 인물에게 배달된 약병이 비워진 모습을 카메라가 클로즈 업하며 보여준다. 곧 대도시도 좀비 세상이 될 예정이다.<br><br>다보고 나니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생각난다. 연상호 감독이 이후에 만든 [반도]를 완전히 말아먹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규모의 이야기를 디테일을 살려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여기서 욕심을 부려 큰 이야기로 나아가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 영화는 한 작은 시골마을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라, 한 편의 촌극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촌이 시골이란 의미의 촌이 아니란 걸 굳이 밝혀야 하는 걸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이 영화는 작은 이야기라서 그나마 그럭저럭 봐줄만한 영화였다고 본다.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이 감독이 연상호 감독처럼 이 영화 이후의 내용, 그러니까 도시에서 좀비 사태가 벌어진다거나 나라 전체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을 생각이라면 누군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 대화를 주고 받는 인도네시아 친구가 있는데, 그에게 대신 좀 전해달라고 할까? 한국의 연상호 감독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br><br>자, 이제 두 번째 영화로 넘어가자. [아웃사이드]는 필리핀 영화다. 맨 처음 티비 화면으로 결혼식 장면을 비출 때부터 거의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라서 이게 어느 나라 영화인지 알 수 없었다. 결혼식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여준 후에 한 가족이 어느 시골 빈 집, 낡은 빈 집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저택이라 부를만한 집에 도착하는 장면 부터 시작한다. 아, 여기서부터 좀 한 숨이 나온다. 이제 시작인데, 이 영화 호흡이 너무 느리다. 주인공 가족의 아빠가 공구 하나 들고 이 집을 살피는데, 느릿느릿 너무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br><br>이 가족은 중년의 아빠와 엄마 그리로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큰아들과 한 여덟살이나 아홉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아들까지 네 명이다. 이 집은 아마 아빠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으로 보인다. 아빠는 자신의 부모님을 찾으려고 아주 천천히 집을 살핀다. 이층 침실에서 먼저 아버지를 발견한다. 손목에 좀비에게 물린 자국이 보이는 오른손에 권총을 쥐고 있다. 죽은지 그리 오래 되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오른손에서 은색 권총을 빼내고, 왼손에서는 은빛으로 빛나는 시계를 빼낸다. 슬퍼하는 기색은 전혀없다. 혹시 아버지가 아닌가? 모르는 집을 찾아온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방을 나와서 초첨이 아직 그에게 맞춰져 있어서 뒤쪽 배경이 흐릿하게 보일때 사람인 듯한 형체가 잡히고, 곧이어 그가 ˝엄마˝ 라고 불렀을 때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이 좀 이상했다. 눈에 흰자위가 없이 검은색으로 채워졌고, 관자놀이 쪽에 뭔가 뽈록뽈롤 돋아올라 있었다. 전체적으로 낯빛이 어둡고 수척한 모습이 딱 좀비였다. 그리고 엄마가 말을 했다. ˝미안해˝ 잠시 후 또 미안하다고 반복했다.<br><br>그렇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말을 한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대화하거나 사람과 대화하는 건 아니고, 한 두 마디 말을 그냥 끝없이 반복한다. 아마도 죽기 직전에 한 말을 계속 반복하는듯 보인다. 아니 그러니까 좀비로 변하기 직전에 한 말. 이 엄마는 누군가 좀비에게 물리고 자신이 좀비로 변하기 직전에 자신의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손목을 물었겠지. 그 남편은 침대 위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아주 긴 시간 왕래가 없었던 아들이 가족을 데리고 나타났다.<br><br>이 영화는 좀비영화이지만, 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좀비는 한 마디의 대사를 한다. 만약 내가 이 영화의 단역 배우로 좀비 역을 맡았다면, 좀 당황했을 것 같다. 좀비라 당연히 대사 없이 이상한 소리만 내면 될 줄 알았는데, 한 줄 뿐이지만 대사가 있다니! 좀비인데 이 대사 감정처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죽기 직전 대사니까 슬프게? 아니면 왜 하필 나야 하는 심정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야하나?<br><br>주인공 남자 엄마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첫번째 좀비이고, 두번째 좀비는 철책으로 길을 막아놓은 곳에서 등장한다. 모래주머니로 쌓은 참호 안에서 나온 군인 좀비는 통행증을 보여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은 무척 신사적이다. 다른 영화의 좀비들은 사람을 보면 앞뒤 안가리고 달려들어 물기 바쁜데, 이 좀비들은 절대 먼저 달려들지 않는다. 아주 예의 바르게 먼저 말을 건다. 그것도 천천히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준다. 마치 이런 것 같다. ˝나 좀비야. 나 여기 있어. 내가 지금은 여기 있는데, 곧 너를 물어뜯으려 달려들 예정이야. 그러니 잘 대비하고 있어. 나 곧 간다.˝<br><br>나중에 등장하는 많은 좀비 무리는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데, 그중에 신부 아니 목사라고 해야하나? 암튼 성직자가 있었다. 이 성직자 좀비는 신이 어쩌고 하는 상대적으로 긴 대사를 반복한다. 정확한 말은 기억 안 나지만, 성직자가 할 법한 말이었다. 근데 성직자 좀비라니 좀 재미있는 모습이었고, 게다가 설교를 반복해 말하는 성직자 좀비라니 아주 참신한 설정이었다. 그외 몇몇 좀비들은 피하라고 하거나, 저쪽이라고 방향을 알려주는 등 어쩐지 마지막 순간이 그려지는 대사들을 갖고 있었다.<br><br>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그 좀비가 죽기 직전 한 마디를 반복한다는 설정은 꽤나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아까 소개한 영화 [불사의 약]에 거의 주인공 비중으로 나오는 젊은 연인은 마지막에 함께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는 와중에 프로포즈를 하는데, 남성이 반지를 꺼내 여성의 손가락에 힘들게 끼워주고 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게 각자 여러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좀비가 된 이 연인이 이쪽 영화로 넘어오면 이 두 좀비는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 고백을 하는 아주 로맨틱한 좀비가 될 것이다. 게다가 저쪽 좀비와 달리 이쪽 좀비는 상대적으로 외모도 덜 혐오스럽다. 어쩌면 남녀 모두 외모가 괜찮은 배우를 섭외해 사람들을 홀리는 역할로 해도 재미있겠다.<br><br>앞의 영화도 답답한 측면이 많다고 했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 가족의 상황 자체가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태다. 영화 첫장면에 비디오 녹화 장면으로 나오는 결혼식은 이 부부의 결혼식이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을텐데, 첫째 아들은 남편의 아이가 아니고 남편의 형님과 아내가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들이다. 영화 중간에 둘째가 첫째랑 같이 옛날 사진첩을 보다가 삼촌(우리식으로 부르면 큰아버지)과 형이 닮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부러 캐스팅을 그렇게 했겠지만, 첫째를 연기한 배우도 아빠를 연기한 배우랑 거의 안 닮았고, 중간에 짧게 나오는 아빠의 형으로 나온 배우랑 닮았다. 그리고 첫째가 지금 청소년인데, 아내는 여전히 남편보다는 그의 형을 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이 부부는 긴 시간 불화를 겪고 있고, 그 와중에 좀비 사태가 터졌다. 여기서 더 화가 나고 짜증나는 건, 찌질한 남편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다. 그는 둘째는 아들로 대하지만, 첫째는 마치 남의 집 아이 대하듯 한다. 또 아내는 남편한테 너무 지친 나머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br><br>영화의 제목은 바깥이란 뜻이다. 남편은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던 집으로 가족들을 데려왔다. 자신이 어렸을 때 갇혀있곤 했던 지하실에 들어가면 여전히 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고, 땀을 비오듯 흘린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죽고 없는 이 집에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아내와 첫째 아들은 이 집에 언제까지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고 하루라도 빨리 다른 사람들을 찾아 대피소로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내는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남편의 형이 북쪽으로 대피하라고 말했기 때문에 더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집착하고, 첫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북쪽으로 간다고 해서 역시 북쪽에 집착한다.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이 집에 계속 머물 것인가? 대피소를 찾아 위험한 밖으로 나갈 것인가?<br><br>남편의 아버지는 사탕수수 농장주였다. 집 바로 옆에는 닭장이 있어서 매일 계란을 먹을 수 있다. 농장주였던 부모님이 식량을 좀 비축해두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먹거리 걱정은 덜하다. 그리고 펌프로 깨끗한 식수도 언제든 먹을 수 있다. 그럼 사실 굳이 불확실한 정보를 믿고 대피소를 찾아갈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 모든 상황들보다 가장 큰 장점, 좀비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곳이다. 이 좀비 세상에서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 영화 후반부에 부상당한 군인 한 명이 도움을 청하러 온다. 그는 이 집에서 차로 반나절 떨어진 대피소에서 왔다고 했다. 보급품을 구하러 군인들이 나섰다가 좀비들의 습격에 모두 죽고 혼자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도 아내와 첫째는 집을 나서서 대피소로 가려고 한다. 아마도 일개 분대 규모는 되었을 군인들이 몰살당했는데, 차량도 무기도 없이, 대피소의 위치도 모른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br><br>앞의 영화처럼 이 영화에도 개연성이 떨어지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제법 있다. 답답한 측면들도 꽤나 있다. 그나마 앞의 영화는 줄창 좀비들과 부딪히며 빠른 전개를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흐름도 너무 느리다. 좀비는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긴장 요소인데, 이것만으로 이야기를 끌고가기에는 그 힘이 좀 약해 보인다. 이 영화도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았다. 아역들도 나쁘지 않았다. 영화 후반에 아내와 첫째가 단 둘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둘이 약간 서먹한 듯 하면서도 서로의 정이 느껴지는 모습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괜찮은 장면이라 본다.<br><br>필리핀 영화도 인도네시아 영화 만큼이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한 맛이 느껴진다. 필리핀어? 아니 타갈로그어 라고 해야하나? 암튼 이 언어는 아는 단어가 전혀 없지만, 대사에 영어를 굉장히 많이 섞어써서 알아듣기가 편했다. 이 영화도 감독과 배우들 정보를 찾아보기는 했으나 딱히 얘기할 만한 내용이 없어 넘어가자. 아, 한 가지. 아내인 아이리스 역의 배우는 이름이 뷰티 곤잘레스라고 영어로 쓰여있었다. 영화 시작할 때도 읽었고, 끝나고 배역이 올라갈 때도 확인했다. 아마도 곤잘레스가 성인 것 같은데, 그럼 이름이 뷰티인가? 혹시 필리핀에서는 혹은 사람 이름이 때는 다르게 발음할까? 그럼에도 이름의 철자가 아름답다는 단어와 완전히 같다는 건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아름 이란 이름을 많이 쓰는구나. 어쩌면 그리 어색한 이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br><br>한 번에 몰아서 본 두 영화가 평소 접한 적이 거의 없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영화라는 점, 둘 다 좀비영화라는 점 등이 재미있어서 북플 앱을 열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불편한 폰 자판으로 이렇게 긴 내용을 두드린 내 자신을 칭찬하며 글을 마친다.]]></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