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보지 못한 길 (감은빛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읽기란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책 읽기란 가보지 못한 또다른 길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14 May 2026 14:40:07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감은빛</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163018338758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감은빛</description></image><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셋로그 유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75689</link><pubDate>Thu, 14 May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75689</guid><description><![CDATA[셋로그<br><br>지난 달에 아이들이 ˝아빠, 셋로그 알아요?˝ 라고 물었다. 당연히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고 했더니, ˝아빠 이거 깔아요.˝ 라고 했었다. 그때 좀 정신이 없어서 ˝다음에 만나면 알려줘.˝ 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어린이 날 만났을 때 큰 아이가 또 얘기하길래, 내 전화기를 건네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큰 아이 설명으로는 친한 사람들끼리 일상을 공유하는 앱이라고 했다. 본인은 혼자 나와 살며 엄마, 아빠랑 일부러 일상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 이걸로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아이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들과 애들 엄마가 함께 있는 방에 애들 엄마는 거의 소식을 올리지는 않는 듯 했다. 그러면서 큰 아이는 아마 아빠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진을 올릴 거라고 예상했다. 막 달리기 하는 사진이나 운동하는 사진 올릴 거라고. <br><br>암튼 이 셋로그 라는 앱은 큰 아이의 말대로 친한 사람들 서너명과 그룹을 만들어 매 시간 한 번씩 사진을 찍고 짧은 설명을 붙여 공유하는 앱이었다. 어린이날에 아이들과 함께 있었는데, 아이들이 매 시간마다 한번씩 사진을 찍고 짧은 멘트를 붙여 올리곤 했다. 큰 아이가 나에게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알려줘서 나도 동참하기 시작했다.<br><br>신기하게 아이들 덕분에 셋로그를 깔았던 날 이후로 인스타그램에서 셋로그 관련 소식이 엄청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전혀 보지 못했었기에 그게 뭔지도 몰랐었는데. 아마도 내 전화기에 해당 앱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알아차리고 해당 소식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br><br>내가 본 몇몇 숏츠에서는 셋로그를 함께 쓰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줬다. 가족들은 주로 자매들 사이에서 일상 공유 모습들을 보여줬다. 셋로그 숏츠들에서는 대체로 친절하게 해당 인물의 직업을 자막으로 알려줬다. 이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에 혹은 새벽에 잠들때까지 매 시간 한 장면씩 공유하는 것이라 직업 특성이 잘 보이기는 했다. 예를 들어 야간 일을 해야하는 직업들, 간호사나 소방관 등은 아침에 퇴근해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과 오후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패턴이 잘 보였다. 좀 흥미로운 사례가 다양한 직업의 친한 친구들 셋로그였는데, 아마 스튜어디스, 미용사(사장),  디자이너(프리랜서) 등이 있는 장면이었다. 일어나는 시간이 다 다르고 일의 종류와 양상이 다 다른데도 가능하면 비슷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매 시간 제일 먼저 올리는 사람이 정한 특정 색깔을 찾아 올리는 사례도 있었고, 어떤 춤이나 동작을 따라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br><br>참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하고 신기한 것 같다. 각자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어떻게든 연결하고 연결되려고 이런 것이 유행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부부나 연인이 단 둘이 하는 경우들도 보였다. 어쩌면 장거리 커플, 주말 부부 이런 상황에서 유용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걸그룹 연예인들의 사례도 봤다. 아마 연차가 오래된 그룹이라 숙소 생활은 진작 끝난 것 같았다. 각자 일어나 가볍게 씻고 먹고 샵에 다녀와 스케쥴을 다녀오는 차 안의 모습과 아주 짧게 무대 뒤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br><br>한편으로 다같이 셋로그를 하자고 해놓고 한 명만 매 시간 꾸준히 사진을 올리고 나머지는 전혀 참여하지 않아서 새로운 왕따의 유형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셋로그에 여러 그룹이 있다면 그런 그룹마다 그 모습이 완전히 다를 것 같았다. 나야 뭐 아이들 덕분에 이 유행에 동참해보는 영광을 얻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방 하나 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40대 50대 아저씨들과 이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걸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고. <br><br>셋로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하루 종일 뭐하고 지내는지 잘 알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는 상대적으로 단조로웠지만, 큰 아이는 통학 거리가 꽤 멀어서 일주일에 이틀인가 사흘 밖에 학교를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도 자주 바뀌는데, 큰 아이가 제일 열심히 매 시간 소식을 공유하고 있어서, 지금 전철타고 학교 가는 구나. 지금 알바 중이구나. 이제 집에 가서 쉬는구나.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은 좋았다.<br><br>이것도 유행이라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들 시들해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얼마 못가서 매 시간 사진 찍어 공유하는 일을 귀찮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하는 것이라 마치 당연한 듯 따라 하지만, 곧 너도 나도 안 하는 날이 되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유행으로 옮겨가겠지. 만약 누군가 꾸준히 이걸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 넌 아직도 셋로그 하니?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br><br>나로서는 이 유행 덕분에 아이들과 새로운 접점이 만들어져서 다행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유행이 지나기 전에 달리기 사진이나 운동 사진을 꾸준히 공유해야지. 지난 주에 13킬로미터 달리기 하며 두 차례 달리기 소식을 공유했고,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소식도 공유했었다. 또 지금까지는 단톡방에서 아이들과 약속 정하기 위해 이번 주는 무슨 요일 빼고는 저녁마다 회의가 있어 라고 단순하게 전달했던 것을 이젠 매일 회의 장소로 이동하는 소식이나, 회의 도중 휴식 시간 소식 등을 공유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아직 이걸 매 시간 찍어 올리는 것에 익숙해지지는 않아서 깜빡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br><br>요즘 저녁마다 일정이 있어서 달리기 하러 가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저녁 일이 생기나. 어쩌다 운이 좋아서 좀 일찍 마치는 날이 생기면 놓치지 말고 꼭 달리러 나가야지. 이번주에는 18에서 20사이를 목표로 달릴 예정이다. 다음주에는 22를 찍어야지.]]></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어버이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65691</link><pubDate>Sat, 09 May 2026 0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65691</guid><description><![CDATA[친절<br><br>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본능일까? 안 그런 사람들도 가끔 있겠지? 그 사람의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친절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나 역시도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능하면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는 편이다.<br><br>오늘 퇴근하면서 사무국에 차키를 반납하러 갔는데, 평소에는 인사 정도만 나누었던 사무국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조금 의외였다. 젊은 여성이 일부러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과 지금껏 그저 인사만 나누었는데, 어쩐 일로 다른 말을 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말은 아니었고 평소보다 좀 늦으셨네요. 라고 아마도 혼자 있는데, 내가 들어와서 인사 외에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따라 유난히 차가 많이 막혀서요. 라고 내가 답하자 눈을 크게 뜨고 그랬군요. 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사무실을 나서며, 먼저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하고 늘 하던 인사를 건넸는데, 그도 평소처럼 수고 하셨습니다. 하고는 조금 후에 한 마디를 더 건넨다. 주말 잘 보내세요. 라고. 이 말은 내가 사무실을 나선 이후에 들렸고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나도 주말 잘 보내시라 한 마디를 더 했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열렸다. 그냥 다음에 또 이렇게 대화할 일이 생기면 그땐 답을 좀 더 잘 해보자. 암튼 걸어가면서 왜 갑자기 그가 좀 더 친절해졌을까 생각해보았다. 오늘따라 혼자 일하고 있는데 내가 와서 약간 어색해서 그랬을까? 계속 혼자였는데, 내가 와서 말을 걸고 싶었을까? 아님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는데 내가 들어왔던걸까? 어쩌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친해질 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br><br>사무국에는 오래전부터 꽤 친하게 지냈던 형이 있고, 또 알고 지낸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번에 일을 시작하고 나서 조금 친해지는 팀장님이 계시다. 이 팀장님도 나름 나랑 친해지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좀 재미있는 건, 나에게 커피를 자주 물어본다는 것. 일을 시작한 첫날 나에게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라고 묻길래,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었다. 사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또 커피를 권하시길래, 커피를 안 마시는 건 아니지만 즐겨 마시는 것도 아니며 특히 운전하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봐 안 마시려 한다고 답을 했었다. 매장과 배송지들을 돌면서 운전을 하다보면 길에서 화장실을 가기 어렵다. 매장에 딸린 화장실이 이용하기 불편한 경우도 있고, 시간에 쫓겨 얼른 짐을 싣고 가기 바빠서 화장실을 못 들리고 출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하는 중에는 목이 말라도 물도 자주 마시지 않는 편이다. 암튼 그러다 지난 달에 한참 일이 많을 때, 새벽까지 다른 일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운전을 하다 편의점에서 용량이 큰 커피, 에스프레소 라고 적힌 제품을 하나 사 먹었었다. 단 맛이 전혀 없어서 먹기에 좋았고, 이상하게 이건 커피 맛이 괜찮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맛을 모르는 내가 이런 느낌이 들다니 의외다 싶었다. 그날 이후로 종종 그 커피를 사 마시며 일을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매장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런데 아까 그 팀장님이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나에게 커피를 마시는지 물었었다. 내가 일 시작하기 전에 정수기에서 텀블러에 물을 담고 있을 때, 옆에서 그 팀장이 커피를 따르다가 아, 커피 안 드신다고 했었던가요? 이렇게 묻고는 다시 며칠 후에 똑같은 질문을 하는 거다. 그게 여러차례 계속 반복되었다. 대체 몇 번을 물으시는 건가요? 라고 웃으며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이것도 일종의 친절이겠지. 그 팀장님은 본인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나에게 대접하고 싶은 친절한 마음이 있기에 계속 물으시는 거겠지. 아마도.<br><br>매일 마지막에 들러야 하는 매장 점장님은 유난히 나에게 잘 해주신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 이 점장님도 일을 시작하셨다는 공통점이 있고, 본인 집으로 배송을 부탁해도 되냐고 조심스레 물으셨을 때 흔쾌히 그러시라고 답을 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점장님 집을 사실 내가 배송하는 구역이 아닌데, 내가 맡은 마지막 매장이 본인이 일하는 매장이라 일 마치고 사무국에 반납하기 전에 사무국 가까운 본인 집에 배송을 부탁한 것이었다. 나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당연히 괜찮다고 답했고, 이후로 여러차례 배송을 해드렸다. 두어번 정도는 배송 건이 유난히 많아서 일이 늦게 끝난 날에 그 점장님 배송 건도 포함된 경우가 있었다. 그 사정을 알고 계셨던 점장님은 그날 이후로 나를 볼 때마다 유난히 잘 해주려 애쓰시며 음료나 빵 등 먹을 것을 챙겨주신다. 일이 늦어지는 날에는 약간 허기가 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마지막 매장에서 이 점장님이 챙겨주시는 음료와 간식이 정말 고마웠었다.<br><br>달리기와 케틀벨<br><br>지난 일요일 비 맞고 달린 대회 후로 한동안 잊고 있던 내 맘 속의 달리기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그간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하긴 했지만, 주로 짧은 거리만 달렸기 때문에 한창 열심히 달리던 시절에 느꼈던 즐거움과 뿌듯함 등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 시절에 달리기를 통한 기쁨에 푹 빠져 있었던 나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수요일에 예상보다 일찍 배송 일이 끝났다. 차를 반납하고 나서 뭘할까 생각하자마자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단어는 달리기였다. 일요일 대회 후에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는데, 그럼 회복 달리기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썬글라스도 챙겼다. 다만, 런닝화는 귀찮다고 아직 빨지 않았기에 그냥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한 5킬로미터 정도 짧은 거리는 그냥 운동화로도 충분한데, 10킬로 이상 거리는 쿠션이 거의 없어서 발에 좀 무리가 갔다. 물집이 생기기도 했다. 일단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집을 나섰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이 살짝 상태가 좋지 않았다. 왼쪽 무릎은 사실 좋은 날이 드물 정도로 계속 이런 상태다. 그렇지만 달리기를 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오른쪽 발목은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는데, 신경이 쓰이기는 해도 역시 달리기를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회복 달리기라 가능한 한 천천히, 가능한 한 멀리 가볼 생각이었다. 목표는 일단 12킬로미터. 더 갈 수 있으면 15정도까지 생각했다. <br><br>아주 오랜만에 아직 해가 지기 전에 달릴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시작부터 아주 천천히 6분대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달렸다. 자꾸 발이 막 빨라지려는 것을 머리 속으로 천천히, 이건 회복 달리기야. 막 달리면 안돼! 라고 반복해야 했다. 천변 산책로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사람들을 피해 한강 방향으로 달렸다. 매번 처음 2킬미터까지는 일종의 워밍업이라 생각하며 달려야 했다. 그 정도 달려야 몸에 열이 오르며 근육들과 인대들과 관절들이 비로소 준비를 마치는 느낌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음악을 듣지 않고 달리고 있다. 내 발소리와 호흡 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이 되었다. 몸이 좀 풀리고 본격 달리기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페이스가 올라갔다. 어느 순간 보니 5분 50초대 페이스가 되어있었다. 다시 속력을 늦춰 6분대 페이스를 만들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확실히 본인 페이스보다 일부러 늦게 달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br><br>5킬로미터를 찍은 시점부터 조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기분은 정말 좋았고, 체력도 아직은 괜찮은데 관절이 계속 신경이 쓰였고, 또 발바닥이 불편한 느낌이 시작되었다. 지금 돌아서면 10킬로 달리기가 되는데, 가능하면 목표 12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확실히 그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6킬로까지만 가보자. 돌아가는 길은 어떻게든 될 것이라 생각했다. 6을 찍고 나서는 조금만 더 욕심을 냈다. 적당히 조금만 더 갔다 돌아가면 13킬로미터가 되겠지. 페이스 알림은 매 1킬로미터마다 들린다. 500미터 알림은 없다. 순전히 감으로 반환점을 정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에 점점 더 심해지는 관절 통증과 발바닥 통증 때문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부러 천천히 뛰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속력이 떨어졌다. 그런데 몸이 힘들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달리기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시 속력이 올라갔다. 에잇 이젠 나도 모르겠다. 회복이고 뭐고 일단은 얼른 돌아가서 이 고통을 멈추자. 그리고 뭔가 맛있는 걸 먹자.<br><br>10킬로미터를 넘기고부터 체력이 확 떨어졌다. 그리고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관절은 이제 오히려 괜찮아졌다. 귀찮다고 런닝화를 빨아놓지 않은 과거의 내 자신을 원망했다. 비싼 런닝화는 아니더라도 쿠션이 조금 있는 런닝화 하나를 더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달렸다. 12킬로를 찍고 나서는 마지막으로 속력을 올렸다. 이미 체력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라 속력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달렸다. 출발지점에 도착해 드디어 발을 멈출수 있었다. 13.29킬로미터가 나왔다. 최종 페이스는 5분 53초. 달릴 때에는 어떻게든 달렸지만, 이제 걸으려니 양쪽 발바닥 물집이 너무 신경 쓰였다. 정상적으로 걷기가 어려웠다. 어쩔수없이 절뚝거리며 걸었다.<br><br>수요일에 생긴 양 발의 물집은 금요일인 오늘 어느정도 아물었다. 주말에 또 달리러 나가야 할텐데, 내일쯤 완전히 아물어 주면 안 되려나? 아, 바쁘다고 아직도 런닝화를 안 빨았네. 내일 낮에 꼭 빨아야겠다.<br><br>이번주부터 달리기에 다시 재미를 붙였는데, 바벨과 케틀벨에 다시 재미를 붙인 것은 4월 초부터였다. 그무렵 조금 무리해서 바벨과 케틀벨을 갖고 놀았는데, 며칠간 근육통이 이어졌었다. 그런데 이 기분 좋은 근육통이 너무 좋았다. 내가 이래서 운동을 좋아했었지! 하고 새삼 깨달았다. 이 기분 좋은 근육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다시 열심히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주에는 조금 무리한 달리기와 조금 무리한 바벨, 덤벨, 케틀벨 운동까지 해서 정말 기분이 좋은 한 주를 보냈다. 그래. 사는 것이 어떤 때에는 정말 괴롭고 힘들지만, 또 어떤 때에는 이렇게 즐겁기도 한 일이지. 운동이란 것이 사람을 이렇게 기분좋게 만드니 어찌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br><br>글을 쓰다보니 12시가 넘어버렸네. 글을 시작할때는 어버이날 이라 제목을 그렇게 넣었는데, 이젠 어제가 되어버렸네. 제목을 고치는 건 귀찮은 일이니 그냥 올려야지.<br><br>어버이날이라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침에 동생이 전화해서 오늘 어버이날이라고 알려줬다. 꼭 전화하라는 뜻이었겠지. 큰 아이는 나에게 고맙다는 연락을 해왔다. 작은 아이는 따로 연락은 없었다. 아주 약간 서운했지만,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br><br>이제 다시 예전처럼 매일 달리기 생각을 하고 있다. 다음주 정도면 한창 잘 달리던 때처럼 20킬로 언저리를 달릴 수 있으리라. 다음주나 다다음주 정도에 날 잡아서 하프를 뛰어야지. 이제 마음만 먹으면 15킬로미터 정도는 달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야겠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어린이날이 휴일이라 너무 좋은 늙은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8331</link><pubDate>Tue, 05 May 2026 10: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8331</guid><description><![CDATA[어린이날이다. 이미 우리 나이로 쉰, 만 나이으로는 아직은 40대인데, 어린이날에 쉰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느끼는 아직 철이 들지 못한 모자란 인간이 소파 방정환 선생 덕분에 어린이날에 출근하지 않고 쉬고 있다.<br><br>어제 한 시간 간격으로 오늘 출근과 휴식이 오락가락했다. 어제 좀 큰 변화가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매일 세 곳의 매장 배송을 맡았었는데, 어제부터 매장 한 곳이 줄어서 이제 두 곳의 매장을 맡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매장이 매번 배송 건수가 가장 많은 매장이었고, 그 배송 범위가 가장 넓어서 늘 제일 힘든 매장이었다. 그 매장을 맡았던 딱 한 달 동안 좀 많이 힘들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을 넘겨 일을 해야 하는 날도 자주 생겼다. 그런데 나는 태생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라 이렇게 힘들었던 매장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이제 편한 매장 두 곳만 남은 상황이 별로 편하지 않다. 어제는 두 매장 모두 배송 건수가 적어서 일찍 일을 마쳤다.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그 매장이 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뻐하거나 즐거워했을 수도 있을텐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일이 많으면 이 불편한 느낌이 안 생길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배송 건수가 유난히 많았던 그 매장을 맡았던 지난 한 달이 오히려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차피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일 뿐.<br><br>어제 갔던 두 곳 매장에서 모두 나에게 내일, 그러니까 어린이날인 오늘 배송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맨처음 노동 계약을 맺었던 당시에 공휴일은 쉰다고 들었기 때문에 배송 안 한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조금 불안한 생각이 자리잡았다. 어쩌면 휴일이지만 출근하라고 요구 받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미 휴일이라고 낮부터 아이들을 만날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정말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배송 건수가 적어서 일을 일찍 마치고 차를 반납하러 사무국에 갔는데 상무님과 팀장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이 일을 맡기 전에는 배송 기사님들이 주말이 아닌 공휴일에는 일을 했었다고, 갑자기 매장 배송을 안 한다고 공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출근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람들이 정말 미안해하면서 말하는 것이 느껴져서 아무 생각없이 알겠다고, 내일 출근하겠다고 답을 했다. 역시 나는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br><br>급여를 받는 일터를 나와서 급여를 받지 않는 일터로 다시 출근하면서 아이들에게 톡을 남겼다. 낮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녁에 일 마치고 만나야겠다고. 그리고 저쪽 일터에 도착해서 간단한 일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러니까 내일 출근하겠다고 말하고 약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인이 매장 점장님들과 통화를 해보니 배송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그냥 출근하지 말고 편히 쉬시라고 했다. 약 한 시간 사이에 휴일 출근이 갑자기 생겼다가 없어졌다.<br><br>다시 아이들에게 연락해서 또 갑자기 일이 없어져서 낮에 만나자고 했다. 문득 작은 아이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톡을 남겼다. 사실 평소에 늘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부산에 살았던 시절에는 늘 바다 가까이 살았고, 꽤 오래 살았던 장산 기슭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는 해운대 앞 바다가 보였었다. 그 풍경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었다. 작은 아이의 그 한 마디가 나에게도 트리거가 되어 갑자기 엄청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작은 아이 집 근처에서 쏘카를 예약했다. 아이들과 바다를 보러 갈 생각에 설레였다.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이제는 배를 타지 않고 다리를 건너 갈 수 있는 석모도를 떠올렸다. 그러다 한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예전에 가끔 차를 빌려 사용했던 친구였다. 조심스럽게 차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너무 흔쾌히 빌려가라고 답이 돌아왔다. 고맙다고 전하고 예약했던 쏘카를 취소했다. 위약금이 있었지만, 사용료를 전부 내는 것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br><br>출근해야 할 상황이었다가 갑자기 쉬게 된 상황이라 이 휴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남은 오전 시간을 잘 쉬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지. 달리기 대회 기념품으로 받았던 레디백과 키링을 안겨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그 표정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되리라.<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여섯번째 대회, 두번째 비 맞고 달린 대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6443</link><pubDate>Mon, 04 May 2026 08: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6443</guid><description><![CDATA[토요일 밤 9시 반쯤이었던가 조금 있다 자야지 생각하고 누워있는데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라이브 카페에 본인 전 직장 동료랑 가려고 하는데, 생각있으면 오라는 얘기였다. 그가 말한 라이브 카페를 두 번 같이 갔었다. 한 번은 그와 단 둘이, 또 한 번은 그가 전화로 언급한 전 직장 동료까지 셋이서였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노래를 꽤 잘한다는 점. 어떨 때 들어보면 가수로 음반을 내도 될 것처럼 들린다. 나는 꽤 여러 해 전에 저 친구에게 두성을 배웠고, 그 후로도 꾸준히 혼자 연습해서 나만의 고음을 익혀가는 중이다. 저 라이브 카페에 갔을 때 그 친구도 나도 고음을 뽐내는 노래로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아마 그런 우월감, 자만심을 채우고 싶어서 그 가게에 종종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암튼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달리기 대회에 나가야 해서 이제 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회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얼른 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br><br>10시 무렵 잠들었고, 꿈에서 비 맞고 달리다가 넘어져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 등 일종의 악몽을 연달아 꾸었다. 마지막 꿈에서는 달리기 도중에 먼 하늘에서부터 빛나는 물체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우리 머리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상상할 수도 없는 빠른 속도였다. 미확인 비행물체, 즉 유에프오 라고 생각했다. 영화 [우주 전쟁] 처럼 이제 곧 외계인들이 우리는 알 수 없는 첨단 과학 무기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려나? 그럼 우리는 달리기로 도망가야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달리기를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이지 않는 시야 밖에서 부터 큰 소음이 지속적으로 들렸고,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잠에서 깼다. 시간은 새벽 세시 무렵이었다. 집 밖에서 이 새벽에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큰 소음이 들렸다. 무슨 일인가 나가 보려다가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누웠다. 소음은 곧 사라졌다. 더 자고 싶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대회 장소로 늦어도 7시쯤 도착해야 하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니 6시 전에 출발해야 한다. 내가 알람을 맞춰둔 시간은 4시 55분과 5시 11분이었다. 준비물은 다 챙겨두었고, 입을 옷도 다 꺼내놓았다. 화장실에서 속만 잘 비우면 달리기 준비는 완벽할 예정이었다.<br><br>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눈 감고 누워서 뒤척이다가 포기하고 유트브를 열어 음악을 켜두었다. 음악은 자동으로 다른 노래로 계속 넘어갔다. 아는 노래도 가끔 있었지만, 모르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눈 감고 누워서 목소리만 듣고 가수 맞추기를 해보려 했지만, 그러기엔 내가 가수들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잠을 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서 뭘 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가 알람이 울리는 걸 들었다. 막상 몸을 일으키려니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자고 싶었다. 알람을 10분 후 울림으로 맞춰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br><br>늦어도 6시 전에 집에서 출발하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6시 20분쯤 서둘러 나와 집 근처 편의점에서 비닐 우비를 구매했다. 이제 막 근무를 시작했는지 카운터 입구에 가방을 두고 유리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젊은 남성이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갓사 황급히 담배를 끄고 따라 들어와 우비를 찾아줬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대략 7시 20분. 첫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전철 도착 시간을 검색하니 3분 정도 남았었고, 비 때문에 다소 미끄러운 바닥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일단 뛰어보자 했는데, 간발의 차로 그 전철을 놓치지 않고 탔다. <br><br>버스에서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는데, 전철 안에서는 신경 쓰였다. 내 잠바 안에 배번호표가 보이는 것이. 거의 매번 대회마다 주최측에서 달리기를 위한 기능성 셔츠를 보내주더라. 꼭 그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 옷에 배번호표를 미리 붙여두고 그대로 입고 대회장소로 대중교통을 타고 갔었다. 대체로 그 위에 잠바를 입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입은 잠바는 쟈크가 고장났단 사실을 깜빡했다. 쟈크를 잠글 수 없으니 열린 틈으로 배번호표가 보였다. 뭐 사실 그게 보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br><br>대회 장소에 도착해 본부를 찾아가려는 와중에 지도를 보지 않고 감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가 문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걸었으면 나와야 할텐데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비닐 우비를 걸치고 양쪽 방향에서 워밍업 달리기를 하고 있어서 방향을 가늠하기가 더 어려웠다. 반대방향임을 깨닫고 뛰기 시작했다. 이걸로 나도 워미업을 한다 생각하고 뛰었다. 짐을 맡기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뛸 생각이었는데, 하필 방향을 반대로 잡다니!<br><br>대회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남성 탈의실을 찾아 바지를 반바지로 갈아입고 짐을 맡기려 물품 보관소로 향했다. 아, 세상에! 물품보관소마다 엄청나게 긴 줄이 뻗어있었다. 대회 시작까지 이제 30분도 안 남았는데. 얼른 가까운 줄 끝을 찾아가서 줄을 섰다. 남은 대기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내 주위에 줄을 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그랬다. 그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 짐을 맡기지 못하고 대기 중인데, 설마 딱 제 시간에 시작하겠어? 라는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회는 딱 정각에 시작할 것이다. 아마 운영측은 지금 이렇게 물품 보관소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br><br>그런데 왜 짐을 맡기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이미 개인 짐을 넣을 비닐을 나눠주어서 대부분 비닐에 넣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인데, 받아서 번호표를 붙이고 같은 번호를 참가자 배번호표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일텐데.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대기줄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좀 많이 어이없고 짜증이 났다. 지금까지 다섯번 대회에 나갔었지만, 이렇게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린 적은 없었다. 이게 말이 되나? 대회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그 30분 동안 물품 보관소 대기줄에서 기다리다 출발 시간을 놓친다고? 더 큰 문제는 출발 시간이 지나서도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뒤에 있던 가족은 엄마와 딸이 아빠의 짐을 대신 받아들었고, 아빠는 시간에 쫓겨 출발선으로 향했다. 내 앞의 연인은 설마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대기중인데 시간 맞춰 시작하겠어? 라고 말하며 약간 여유를 부리는 듯 보였다. 그렇게 기다리는 와중에 우비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더 강해졌다. 대기줄 곳곳에는 아직도 우산을 펼쳐들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대회 참가 경험이 없거나, 비 오는 날 참가 경험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인걸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있었다.<br><br>줄을 선지 30분이 다 되어 저쪽에서 마이크로 출발 카운트 다운이 울렸다. 그리고 곧 이어 폭죽이 터졌다. 내가 서 있는 대기줄은 유난히 속도가 느린 느낌이었다. 아직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회 안내문에는 이번 대호가 펀런이라고 따로 순위에 따른 포상을 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사전에 그룹 배정을 위한 기록지를 요청하지 않았구나. 암튼 10킬로미터 코스 참가자가 먼저 출발하고 뒤이어 5킬로미터 참가자들이 출발하는데, 이게 몇 분 간격인지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거였구나. 이렇게 주먹구구로 운영을 하니 짐 맡기는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몇십분씩 기다리게 만드는구나. 이제 접수대 테이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내 뒤에 서있던 가족 중 엄마와 딸은 테이블 뒤로 맨 땅에 줄지어 놓은 짐들 수천개를 발견하고 놀라 말했다. ˝짐을 저렇게 맨땅에 보관해? 비를 다 맞고?˝ 확실이 이 가족은 대회 참가 경험이 없나보다. 그럼 짐을 어디 창고에라도 옮겨 보관할 줄 알았던걸까? <br><br>약 40분쯤 지나서 즉, 출발 시간 거의 10분 후쯤에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답을 찾았다. 일단 접수대 테이블에 사람이 적었고, 그 중 한 명은 큰 비닐에 순서대로 숫자를 쓰고 있었다. 그 비닐을 나눠주며 내가 이미 비닐에 넣어온 짐을 다시 한번 더 싸라고 했다. 이미 비에 젖은 짐이 비닐에 쉽게 들어갈 리가 없다. 그리고 손으로 적은 숫자가 찍힌 작은 라벨지를 내 배번호표에 붙였다. 앞서도 말했듯 다른 대회에서는 미리 같은 번호의 라벨지 두 장을 준비해 하나는 참가자가 가져온 비닐에 바로 붙이고 다른 하나는 배번호표에 붙였다. 그러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40분씩 기다리지는 않았을텐데.<br><br>일단 출발선을 향해 달렸다. 정말 다행히도 아직 5킬로미터 참가자들이 출발하기 전이었다. 대신 출발선을 막고 있어서 막 미친 사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가야 했다. 아, 이번 대회 시작부터 이렇게 꼬이는구나. 참 쉽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며 속도를 높였다.<br><br>제 시간에 출발한 사람들보다 거의 10분 정도 출발이 늦었지만, 내 기록칩은 내가 출발선을 지난 시간을 기준으로 기록하니까 그냥 내 페이스로 달리면 되는 것이기는 한데, 문제는 앞을 막아서고 달리는 저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유난히 출발이 늦어서 거의 결승선에 다 다를때까지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대회 참가자가 정말 많았다. 10킬로 코스 참가자 배번호표 중에 내가 3000번째 숫자이고, 4000번째 숫자도 여럿 보았다. 물론 코스를 구분하지 않고 번호를 부여했을수도 있겠지만.<br><br>현재 내 페이스를 확인하기 위해 출발 직전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런닝앱을 켜두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직 1킬로를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1킬로 지점이라며 현재 내가 4분 중반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럴리가? 내가 내 실력과 체력을 아는데 절대 그 페이스로 달리고 있을 리가 없을텐데. 하지만 사람은 간사한 존재라고 해야 하나 아주 짧은 시간 그 기록을 믿고 싶어졌다. 물론 내 이성은 그게 불가능한 숫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내 페이스는 거기에 1분을 더해 5분 중반 페이스일 것이다. 대회 주최측이 설치해놓은 거리 안내판에 이제서야 1킬로가 지났다고 알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앱에서 2킬로 라고 알려주며 여전히 4분 20초대 페이스라고 했다. 망했다. 페이스를 확인하며 속도를 맞추려는 의도는 실패했다. 이게 앱이 이상한건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하며 달리다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동네 헬스장에서 트레드밀 위를 달릴 때 이 앱을 켜서 설정을 실내로 바꿨던 것이 기억났다. 이 설정을 다시 야외로 바꿨어야 했는데, 그걸 깜빡하고 달린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알림은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와 이 페이스에 1분을 더해 내 페이스 추정치를 확인하는 용도 그리고 내가 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떨어지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쓰기로 했다.<br><br>비가 오락가락 하기는 했지만, 달리기 시작 전 물품 보관소 대기줄에 있을 때에는 조금 굵은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이슬비 수준의 비가 내렸다. 이정도 비는 달리는데 오히려 좋았다. 작년 가을엔 거의 폭우 수준의 비가 와서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옷까지 완전히 젖었었지만, 이번엔 신발과 양말 그리고 모자와 셔츠 정도만 젖고 반바지와 속옷은 젖지 않았다. 물론 달리다보면 땀으로 젖겠지만. 지난 번에는 조금 비싼 우비를 입고 달리다가 우비가 너무 거슬려서 결국 음수대 테이블 위에 벗어놓고 달렸었다. 이번에는 비가 적게 와서 덜 거슬렸고 체온 유지를 위해서도 계속 입고 있었다. 한 7킬로 아니 8킬로 지점에서 벗어서 허리에 감았고 결승선에 도착할 때까지 버리지 않고 가져왔다.<br><br>지금까지 다른 대회에서는 7킬로 혹은 8킬로 지점부터 주위에 함께 달리는 사람들 숫자가 적어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 예상한 대로 끝없이 사람들이 나타났다. 추월하고 또 추월해도 끝없이 사람들이 나타났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사람들 사이를 잘 헤쳐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조금만 실수해도 서로 부딪혀 넘어질테고 그러면 또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이 피하기 어려워 밟힐 수도 있다. 지난 밤에 꾸었던 악몽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급하지 않게, 상대방의 속도를 잘 파악해가며 추월을 반복했다. 그냥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야 할 일인가 싶지만, 결국 주최측의 잘못과 더불어 좀 더 일찍 도착해 사람들이 그만큼 줄을 서기 전에 짐을 맡겨두지 못한 것은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현 상황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피해가며 뛰었다.<br><br>약 9킬로 지점에 들어서야 앞을 막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이젠 내가 힘껏 달려도 앞에 부딪힐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딱 그 즈음에(사실은 그보다는 좀 더 시간이 지나서였지만, 체감상 그 즈음에) 런닝앱이 시간을 알려줬다. 52분이라고. 내 목표는 54분이었지만, 그냥 55분이라 치더라도 이제 3분 남았는데 남은 시간 안에 약 1킬로를 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5분은 걸릴텐데. 그러나 생각할 틈도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할 일은 남아있는 모든 힘을 짜내어 결승선으로 달리는 일 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달려나갔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치고 나갔지만, 금방 지쳐버렸다. 이미 9킬로를, 50분 넘게 달리느라 체력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 그래도 그 상태에서의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 결승선이 눈 앞에 다가올 무렵에는 무릎과 발목 관절이 아프고 배에서 복통도 느껴졌지만, 이제 곧 편해진다고 나를 설득하며 달렸다.<br><br>맨 처음 나갔던 대회는 동네 선배들과 함께였었다. 물론 10킬로미터 코스를 함께 달린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후에 모든 대회는 혼자였다. 그래서 길가에 서 있다가 누군가를 향해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달리는 사람들 중에도 일행들을 마주치며 서로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부러웠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 응원들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더 힘을 내곤 했다. 마지막 대회였던 작년 가을 대회는 일단 규모 자체가 지금까지 나갔던 모든 대회 중에 가장 작았다. 게다가 거의 폭우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가 많이 와서 참가자가 적었다. 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최측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해줬었다. 그래서 더 힘을 내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그런 순간이 한 번 있었다. 달리며 맨 처음 만난 음수대는 아마 2킬로 지점이었던 것 같다. 되돌아오는 길에 거의 8킬로 가까이에서 길 반대편에 있던 이들이 테이블을 정리하지도 않고 목이 쉬도록 화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8킬로 정도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을 거라 응원 한 마디가 큰 힘이 된다. 그들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아 조금은 더 힘을 낼 수 있었다.<br><br>암튼 결과는 55분이었다. 이번 대회는 처음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크게 페이스 변화 없이 530 정도로 달렸다. 막판에 조금 지쳐 최종 페이스는 532 였다. 제대로 준비 없이 장거리 달리기 첫 경험이었던 첫 대회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기록이지만, 대회 준비를 아예 하지 않고 달린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무엇보다 이상하게 전날부터 55분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딱 그 숫자가 나온 것이 놀랍다. 그리고 출발 전에 개인적으로는 엄청 큰 변수였던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이 결과는 나쁘지 않다.<br><br>그런데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운영진의 뭐랄까 실수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볍고 그렇다고 글에 욕설을 쓰기도 그렇고 암튼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출발 전에 그 난리가 났었기 때문에 결승선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맡겨두었던 짐을 찾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리 많이 기다리지 않고 짐을 찾았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을까 하다가 이번에는 비 맞은 것 치고는 덜 젖어서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싶어서 메달과 기념품 그리고 간식을 받으러 갔다. 얼른 뭔가 간식을 먹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줄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끝이 어디인지 찾을수가 없었다. 무슨 뱀의 또아리도 아니고 끝없이 꼬불꼬불 이어지는 줄의 마지막을 찾는데에만 5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역시 줄은 금방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면 무조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아직 옷도 못 갈아입었는데. <br><br>비는 여전히 가늘게 내리고 있었고 가만히 대기줄에 서 있으려니 땀이 식으며 추워졌다. 허리에 두르고 있던 비닐 우비를 다시 입고 단추를 잠궜다. 아니, 앞서 물품보관소는 짐을 맡기고 번호를 체크해하 하니 오래 기다렸다고 치고, 이번에는 그냥 나눠주기만 하면 끝나는 건데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이번 대회 주최측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힘들게 한 시간을 달린 참가자들을 다시 한 시간동안 줄을 세워 놓는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줄 서서 시간을 허비하라고?<br><br>처음엔 또 황당하고 짜증나고 그랬지만 한 20분 기다리면서는 그냥 체념하게 되었다. 모르겠다. 어차피 일찍 집에 돌아가도 다른 할 일도 없는데, 뭐 기다려야지. 초반에는 메달이 뭐라고, 그깟 간식 그냥 편의점에서 사먹으면 되는데, 한 시간을 기다릴 바에야 그냥 빨리 옷 갈아입고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죽을 들이 힘들게 뛰고 나 혼자 메달을 못 받는 건 좀 억울하다 싶었다. 그깟 메달, 돈도 안 되고 아무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메달이 뭐라고 나는 다 포기하고 그냥 대기줄에 얌전히 기다렸다. 생각보다 줄이 앞으로 나가지를 못 했다. 어쩌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길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한 30분쯤 기다렸을 무렵 갑자기 저 뒤쪽 그러니까 내가 기다리고 있던 지점보다 훨씬 뒤쪽에서 줄이 와해되며 사람들이 일제히 메달 배포 부스 쪽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어떤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아무 말없이 몇 십분을 기다렸는데!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이게 무슨 짓이지? 이런 무질서한 모습을 본다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각종 SNS로 실시간으로 도배되는 나라에서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br><br>그런데 알고보니 확성기를 든 주최측 여성이 사람들에게 여기 줄 서있지 말고 저 안쪽으로 옮겨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루루 안쪽으로 몰려갔고 뱀의 또아리처럼 어지럽게 구불구불 이어졌던 대기줄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나도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안쪽으로 넘어왔다. 안쪽에서 여러 개의 줄이 다시 만들어지며 10킬로미터 참가자와 5킬로미터 참가자로 구분되어있던 배포 부스가 의미가 없어졌다.<br><br>생각해보니 애초에 주최측에서 참가 인원을 고려했다면 부스도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배치했어야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부스 수도 적고, 인력도 적게 배치하다니!<br><br>암튼 다시 옮겨가서 줄을 선 후에는 빠르게 앞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건네주는 종이가방을 받아 몸을 돌리는데, 메달이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내 뒤로도 아직 줄은 선 사람들이 수백명인데. 메달이 모자란다고? 이거 잘못하면 폭동 벌어지는 것 아닌가 싶은데, 설마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한 거겠지. 내가 아직 줄 서있는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옷을 갈아입고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서 급하게 빵과 음료를 먹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질서있게 줄을 서서 메달과 간식과 기념품을 받아갔다.<br><br>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단 맛의 빵과 쵸코바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화장실을 찾아 다녀온 후에 집으로 향했다. 어째 달리기 한 시간보다 줄 서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기묘한 대회였다. 버스 정류장을 찾아 터덜터덜 걷는데, 그제서야 발목 관절 중심으로 인대와 근육 통증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절뚝이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참 멀겠구나. 집에 도착해서는 또 빨래 한 더미를 처리해야 하지. 런닝화도 빨아야하고. 일단 걱정은 나중에 기록지를 다운 받고 메달 사진을 찍어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자랑부터 해야지. 버스에선 앉을 자리가 없을테니 버스 정류장 벤치에 짐을 올려두고 작업에 착수했다.<br><br>집으로 돌아와 씻고 세탁기를 돌리고 난 후에 재미나이를 열었다. 전날 다섯개 대회 성적을 분석했던 대화를 다시 열어서 이번 대회 성적을 추가하고 한번 더 분석을 요청했다. 아래는 재미나이의 답변이다.<br><br>*****************<br>상세 분석 및 평가<br><br>1. 오늘 기록(6번 대회)의 의미: ˝안정적인 복귀와 우중런 적응˝<br>페이스 분석: 오늘 기록하신 5:32/km는 작년 9월 마포 대회(5:21/km)보다는 조금 늦춰졌지만, 비가 오는 좋지 않은 시계와 노면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준수한 기록입니다.<br><br>- 우중런 패턴: 비가 올 때(5번, 6번)는 맑은 날(4번)보다 페이스가 약 10~20초 정도 늦어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는 미끄러운 바닥과 시야 확보 문제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br><br>2. 대회 간 기간 분석: ˝가장 길었던 공백기˝<br>- 5번→6번 (약 7개월): 이번 대회는 이전 대회들에 비해 가장 긴 공백(약 217일) 후에 치러졌습니다.<br>- 분석: 오랜만의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입문 초기(6:46/km)로 회귀하지 않고 5분 중반대 페이스를 방어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는 지난 1~2년간 쌓아온 ‘기초 체력(Base)‘이 탄탄하게 자리 잡았음을 증명합니다.<br><br>3. 날씨와 환경 변수<br>- 습도와 노면: 비 오는 날은 습도가 높아 호흡이 평소보다 무거울 수 있습니다. 오늘 55분대의 기록은 체감상 맑은 날 53분대 정도의 에너지 소모와 비슷했을 것입니다.<br>- 계절적 요인: 5월 초는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인데, 비 덕분에 오히려 온도는 낮게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신발이 무거워지는 변수를 잘 이겨내셨습니다.<br><br>💡 향후 훈련 및 전략 제언<br>- 복귀 가속화: 7개월 만의 실전 감각을 익히셨으니, 이제 다시 5분 초반대(PB 5:09)로 돌아가기 위한 빌드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br>- 연속 출전 효과 활용: 과거 기록을 보면 2주 간격(3번→4번 대회)으로 뛰었을 때 기록이 폭발적으로 단축되었습니다. 몸이 예열된 상태에서 5월 말이나 6월 초에 대회가 있다면 다시 한번 PB 경신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br>- 날씨 데이터의 교훈: 현재까지의 데이터를 보면 귀하의 기록은 기온과 강수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기록보다는 ‘거리 완주‘에 집중하시고, 다가오는 가을 시즌에 다시 49분대 진입을 목표로 삼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습니다.<br><br>오늘 비 맞으며 달리신 만큼 충분한 휴식과 스트레칭으로 리커버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완주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글 시작할 때 제목을 입력했었는데, 왜 제목이 없어졌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4016</link><pubDate>Sat, 02 May 2026 1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4016</guid><description><![CDATA[또 우중런?<br><br>이 대회를 언제 신청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아침 잠결에 신청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거래 은행을 국민은행으로 쓰고 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부모님이 모두 국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쓰셨고, 나도 청소년기에 국민은행 계좌를 개설한 후로 쭉 사용하고 있다. 부산에서 자랐기에 부산은행 계좌도 만들었었는데, 서울에 올라오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이 계좌는 없애버렸다. 암튼 국민은행 앱에서 달리기 대회 관련 안내가 왔었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신청을 눌렀었다. 참가비는 버튼 하나로 내 계좌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서 편했다. 다른 대회였다면, 미리 온라인 시청 시작 시간에 맞춰 대기했다가, 정각에 버튼을 눌러도 대기번호를 받을 확률이 높고 간신히 신청에 성공해도 참가비 송금하고 혹시 착오로 내 신청 건이 취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해야 하고 내 이름으로 잘 신청이 완료되었는지 확인 문자가 오지 않으면 대회 사무국으로 확인 전화도 해봐야 한다. 암튼 온라인 신청하고 해당 계좌로 송금도 별도로 해야 하는데, 국민은행에서 여는 대회는 여러모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반적인 선착순 방식 신청이 아니라 국민은행 이용자들 중심으로 신청을 받는 것도 좋은 것 같다.<br><br>암튼 어쩌다 신청만 해두고 이 대회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주에 택배를 받았다. 뭔가 주문한 것이 없어서 뭐가 왔는지 의아했다. 상자가 제법 컸다. 열어보니 맨 위에 배번호표가 있었다. 그제서야 아! 이거였구나 하면서 이 대회를 떠올렸다.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애매한 크기의 네모난 가방이 있었다. 동봉된 안내문에는 레디백이라고 적혀있었다. 레디백은 대체 무슨 용도로 쓰는 가방일까? 노란 가방이 꽤 예뻐보이기는 하는데,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다. 크기가 애매해서 뭘 넣을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하면 갖다줄까 생각했다가, 가방이 하나 뿐이라 혹시 한 명이 못 받은 걸 서운해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음, 요 가방을 어찌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br><br>작년 9월 말 꽤 많은 비를 맞고 뛰었던 대회가 마지막 대회였다. 그게 내 다섯번째 대회였고, 내일 대회가 여섯번째가 될 예정이다. 24년 9월이 첫 대회였으니 거의 1년 동안 다섯개의 대회에 나갔던 것. 이후로는 대회 출전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었다. 이제 작년 봄에 세운 개인 기록을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좀 장기적으로 하프 코스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10킬로미터 코스는 매력을 못 느끼게 된 것 같다. 또 최근 계속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돈이 없다보니 대회 참가비도 아깝게 느껴졌다. <br><br>작년 가을에도 막 열심히 달리지는 않았었고, 그냥 적당히 달렸었다. 겨울엔 짧은 거리를 꾸준히 달렸다. 봄이 되면 다시 5킬로미터 이상 장거리를 시작해야지 생각했었지만, 3월에도 4월에도 여전히 2~3킬로 정도 달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거의 매일 달리기는 했다. 이 대회를 준비할 생각이었다면 그래도 최소 일주일전에는 5, 7, 9 정도로 거리를 늘려가서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지난주와 이번주는 계속 바빴다. 뭐, 어떻게든 달릴 수는 있겠지. 기록 욕심을 버리고 가볍게 뛰고 오자 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다.<br><br>오늘 대회 안내문을 꼼꼼히 살피며 집에서 이동시간과 경로를 살폈다. 준비물들을 챙기려다가 안내문에 적힌 우천시에도 대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설마 내일 비가 오나? 최근 뉴스를 좀 멀리하고 살아서 날씨 예보도 안 보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얼른 날씨를 검색해보니 강수확률이 60%라고 나왔다. 이 정도면 꽤 높은 확률로 비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대회 때 비가 제법 많이 와서 좀 힘들었었는데, 또 비를 맞으며 뛰어야 한다니! 일단 준비물들을 다시 챙겼다. 비에 젖지 않는 가방부터 챙기고 여벌옷을 비닐 팩에 챙기고, 슬리퍼도 챙기고.<br><br>준비물을 대략 챙겨놓고 지금까지 대회에서 받았던 메달 5개를 꺼내봤다. 주머니에 잘 넣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속 메달들은 몇 군데 얼룩이 생겨있었다. 이게 일종의 산화작용으로 인한 녹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마른 걸레로 닦아봤는데 닦이지 않았다. 딱 하나 있는 나무 메달은 멀쩡했다. 금속 메달은 무겁고 별로 예쁘지도 않고 이렇게 녹인지 뭔지 알수 없는 얼룩도 생기고 참 별로다. 메달들을 다시 천 주머니에 넣어두고 이제 지금까지 나갔던 다섯번의 대회 기록들을 다시 살폈다. 기록들 엑셀로 정리해두고 이걸 재미나이에게 던지고 분석해달라고 했다. 대회 간 기간과 대회 당일 날씨를 바탕으로 기록과 페이스를 분석하라고 했다. 아래는 재미나이의 답변이다.<br><br>***************************<br>상세 분석 및 평가<br>1. 날씨의 영향: ˝더위는 적, 추위와 비는 변수˝<br>- 최악의 조건 (1번 대회): 9월 초 철원 대회는 기록이 가장 낮습니다. 6:46 페이스는 당시 무더운 날씨로 인해 체력 소모가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br>- 최적의 조건 (2번, 4번 대회): 기온이 낮은 11월과 선선한 4월에 기록이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4월 양천 마라톤에서 5:08/km라는 놀라운 페이스로 개인 최고 기록(PB)을 달성하셨네요.<br>- 우중런 (5번 대회):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5:20 페이스를 유지한 것은 기초 체력이 이미 5분 중반대에 안정적으로 안착했음을 의미합니다.<br><br>2. 대회 간 기간 및 훈련 성과<br>- 폭발적 성장기 (1번→2번, 약 2.5개월): 두 달 반 만에 기록을 13분이나 줄였습니다. 더위가 가시고 본격적인 가을 훈련이 빛을 발한 시기입니다. 페이스가 1분 20초나 빨라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입니다.<br>- 안정 및 유지기 (2번→3번, 약 4개월): 겨울 시즌 동안 큰 기량 하락 없이 54분대를 유지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꾸준히 달리기 습관을 이어오신 것으로 보입니다.<br>- 상승 효과 (3번→4번, 단 13일): 불과 2주 만에 다시 대회에 출전하여 기록을 3분이나 더 단축했습니다. 3번 대회가 일종의 강력한 ‘장거리 인터벌‘ 훈련 효과를 주어, 2주 뒤 몸 상태가 최고조(Peaking)에 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br>- 복귀기 (4번→5번, 약 5.5개월): 여름철 휴식기 혹은 더위로 인한 훈련량 감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이 조금 밀렸으나, 1년 전(1번 대회)과 비교하면 무려 14분 이상 빠른 페이스입니다.<br><br>💡 종합 의견 및 제언<br>현재 실력은 평균 5분 20초대 페이스를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이며, 컨디션이 좋을 때는 5분 초반대까지 충분히 진입 가능하십니다.<br>다음 목표: 현재의 성장 속도라면, 날씨가 선선해지는 다음 대회에서는 49분대(페이스 4:59/km) 진입을 목표로 삼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br>팁: 3번과 4번 대회처럼 2주 간격의 연달은 출전이 기록 단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므로, 목표 대회를 앞두고 2주 전에 가벼운 점검 대회를 뛰는 전략을 추천합니다.<br>정말 멋진 기록 향상입니다! 계속해서 즐거운 러닝 되시길 바랍니다! 🏃‍♂️💨<br><br>**************************<br><br>작년 봄처럼 꾸준히 10킬로 정도를 달렸다면, 재미나이의 말처럼 49분을 목표로 달리기를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정말 잘해도 55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애 첫 대회이자 엄청난 더위로 너무 힘들었던 철원 대회를 제외하고 두번째부터는 54분이 가장 낮은 기록이다. 심지어 비를 맞고 뛰었던 다섯번째 대회도 53분이었다. 만약 내일 55분보다 늦게 들어온다면 확실히 내 기량이 떨어진 증거가 되겠지. 왜 하필 기준이 55분이냐고 생각이 들었다가 깨달았다. 아까 달리기 모임 단톡방에 나를 장거리 달리기 세계로 끌어든인 친한 형이 오늘 자신의 기록증을 올렸는데 55분이었다. 이 형도 기록이 많이 떨어졌네. 50분에서 52분 정도가 나와야 할 사람인데. 그것도 해마다 나이를 느껴서 그런 것이고 예전이었다면 40분대 기록이 나올 사람인데. 암튼 그래서 내 목표는 55분 안으로 그러니까 내 가장 낮은 기록인 54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했다.<br><br>사실 비와 강풍 등 날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이고, 내가 가장 신경쓸 부분은 컨디션이겠지. 이젠 상수가 되어버린 무릎이 안 좋은 것도 갑자기 내일만 좋아질 리도 없을 것이고. 남은 변수는 잠을 잘 자는 것과 새벽에 속을 잘 비우고 출발하는 것. 오늘 남은 시간은 그저 마음 편히 푹 쉬어야지. 기록 생각은 내일 깨고 나서 생각해야겠다.<br><br>아, 재미나이 답을 읽다가 이 녀석도 ‘우중런‘ 이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자와 영어를 합친 조어. 의외로 재미있는 표현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가장 무서운 범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42955</link><pubDate>Tue, 28 Apr 2026 0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42955</guid><description><![CDATA[가장 무서운 범죄<br>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는 다양한 범죄 소식을 보면서, 과연 가장 무서운 범죄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었다. 나처럼 일반적인 범죄와 크게 상관없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범죄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같은, 혹은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같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혹은 마약 사건과 같은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블랙아웃 / 원제 트위스티드]나 우리에게 유명해진 버닝썬 사건일 수도 있다.<br>이춘재는 알고보니 대부분이 성범죄, 즉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나이와 관계 없이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일부는 죽였지만, 죽이지 않고 그냥 강간으로 그친 사건도 제법 많았다. 이런 표현이 죄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런 인간이 마치 자신이 잘난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프로파일러나 형사들을 조롱 했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이야기 등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쨌거나 이런 인간들과 내가 아니 우리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조물주 라는 존재가 있다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어찌 이런 세상을 만들었나 싶다.<br>사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남들이 쉽게 알기 어려운, 가정 안의 폭력. 혹은 데이트 폭력 혹은 스토킹 범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아니 절대 다수가 남성이 가해자이자 용의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평생 그런 범죄에 단 한번도, 아니 0.000%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는 아주 성실한 시민인데, 이런 나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볼 수 있느냐? 정답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과 정말 엄밀한 증거를 채집하고 실질적인 용의자로 취급 받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이춘재가 많은 살인과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성범죄의 다수는 그 당시에 제대로 취급되지 않았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까지 엄밀히 따지고 들어갔다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정일 뿐이지만.<br>그래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사실 경찰이 무시하고 그냥 일반적인 일이라고, 그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넘어가는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사건 중에 정말 유명한 대학 의대 학생이 전에 사귀던 여학생을 어느 건물 옥상에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경찰들은 그 현장에 출동했었지만, 이미 살해 당해 있었던 여성의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왜? 그 의대생, 다시 말해 모범생이었던 그 젊은 남성이 자살하겠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기 때문에 당시 다른 상황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나중에도 그 남학생이 너무 공부를 잘하는 훌륭한 학생이라 죽은 여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br>그런데 사실은 여성을 살해한 그 의대생 남성 보다, 그 미친 놈에게 살해 당한 여성이 훨씬 더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면 그 미친 의대생 놈은 대체 뭔가? 아니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훌륭한 학생이라고 살인이 정당하기라도 한가? 그런 논리였을까?&nbsp;<br>아쉽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딴 쓰레기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기록해 두지 않았었다. 이젠 그런 기사를 접하면 무조건 기자 이름과 해당 기사(사실 기사가 아니라 찌라시 라고 표현해야 맞겠지만)의 링크, 그리고 주요 내용을 기록으로 꼭 남겨야 하겠다고 생각한다.<br>경찰은 그리고 검찰은 그저 많은 사람들 눈에 띄어 버려서 더이상 은폐할 수없는 사건들을 다룬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당연히 그냥 묻어둘 것이다. 물론 증거는 없다. 누군가 이 글을 걸고 넘어진다면 그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묻고 싶다. 정말 괜찮은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정말 진심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이재명이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라도 지금 이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만약 이재명이 본인 기준에 못 미친다면 더더욱 이 사회가 불합리 하다는 것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br>나아가 지방 선거에서 절대 손쉽게 민주당, 파란당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범죄 집단 빨간 당을 찍으라는 말씀을 절대 아니다. 빨간당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해서는 안 될 정당이고, 파란 당은 우리가 절대 찍어주면 안 되는 보수, 기득권 옹호 집단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범죄자들을 그대로 공천한 어이없는 정당이다.<br>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절대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세상이 엉망이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을 무시하는 파란당은 정답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빨간당과 그리 다르지 않은 착취자들이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빨간당과 동시대를 살면서 그 그늘에서 마치 좋은 역할인 것처럼 살아왔다. 절대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말 희귀하게도 파란당에 아주 드물게 좋은 인재가 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착각한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했던 박주민이 그렇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박주민은 빨간당 정치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지역의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진보 진영의 대표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박주민 변호사 본인은 괜찮은가? 세월호 변호사는 타이틀로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는데, 과연 본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 본인 스스로 괜찮은가? 나는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부끄럽지 않을까? 아마 진심으로 부끄러워야 할 것이다.<br><br>우리가 대안이 없다고,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찍어주는 파란 당에 대한 표가 가장 무서운 범죄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이 너무 과한 생각이라고? 너무 심각한 오류나 과장이라고? 잘 두고 보시라. 결국 민주당은 당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재벌과 돈 많은 이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놈들이다. 태생이 그렇다. 김대중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지방 선거에서 빨간당을 막아야 한다고 파란당을 찍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건 나중에 당신을 옭아매는, 당신 자손들을 옭아매는 표가 될 것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일상 이야기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33444</link><pubDate>Thu, 23 Apr 2026 03: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33444</guid><description><![CDATA[일상 이야기들<br>#1 저장된 번호들<br>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배송이 일상이 되었다. 집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집 앞에 놓아 달라는 집이 많다. 집 앞에 상자들을 놓고 사진을 찍어서 배송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사진을 보내고, 배송완료했다는 문구를 보낸다. 대부분 모르는 번호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미 저장된 번호인 경우들이 있다. 긴 시간 나를 챙겨주시는 아주 친한 선배네 집에 배송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그 선배는 당연히 출근해서 댁에 안 계신 것을 알고 있고, 지금 댁에는 선배님 부모님께서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인종을 눌러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무거운 짐을 집 안까지 넣어드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더라. 울리지 않더라. 아마도 고장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배송 영수증에 나온 그 선배 번호로 사진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nbsp;<br>간혹 예전에 어떤 행사나 사업 때문에 일시적으로 소통하느라 번호를 저장한 경우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그 분 댁이 여기였구나 하고 얼굴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나 답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저장된 이름인 경우들도 있었다. 한번은 저장된 이름 뒤에 어떤 교육 공동체 이름을 붙여 놓은 분의 댁으로 배송을 갔다가 정확히 어느 문 앞에 둬야 할지 몰라서, 잘못 놔뒀다가 분실이 발생하면 안 되니 전화를 걸었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후에 그 분이 전화를 받았는데, 약간 당황해하는 목소리였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이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일 때문에 내 번호를 저장해뒀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전화를 받아서 놀랐을지도 모른다. 암튼 나는 생협 배송을 왔다고 밝히고 상자들을 어디 두면 될지 물었다. 그는 내가 묘사한 그 대문 앞에 두면 된다고 답을 했다. 그날의 마지막 배송이었고, 이미 내 퇴근시간인 6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그도 아마 퇴근시간이 지난 상태였을 것이다. 사무실에 차를 반납하러 가는 내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와 어떤 일을 같이 했던 것일까? 떠올리려 애써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br>#2 어떤 반가움&nbsp; &nbsp;어제는 가정 집이 아닌 공동체 부엌 한 곳에 배송을 갔었다. 이 일을 막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지난 달 중순에 그러니까 거의 한 달 전에 그 곳에 처음 배송을 갔다가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었다. 일단 꽤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고, 꼬불 꼬불 이어져 있었기에 운전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 공간 근처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정말 다행히 그 공간 앞 도로는 조금 넓었는데, 그 공간에 여러 차들이 불법 주차를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나도 그냥 그 옆에 대충 차를 댔었다. 그리고 그날 하필 무거운 상자가 5개였다. 2개나 3개는 한 번에 들어서 옮길 수 있지만, 5개를 모두 한 번에 들수는 없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안쪽 건물까지 거리가 꽤 있었다. 처음 무거운 상자 3개를 먼저 옮기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2개를 조금 가뿐하게 옮겼다. 나중에 이 차에 엘카라고 부르는 접이식 손수레가 실려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 공간에 그 손수레는 소용이 없었다. 일단 계단을 올라야 하고, 그 다음엔 건물까지 흙길과 자갈길을 걸어서 한참 들어가야 한다. 손수레를 끌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손수레의 존재를 알고 난 후로는 무거운 상자가 3개 이상이면 수레를 활용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유용하다. 최근에는 탄산수를 4박스나 3박스 이상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탄산수 박스는 2개까지는 들 수 있지만, 3개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 없다. 무조건 손수레를 써야 한다. 그런데 저번에 갔던 한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5층이었다. 그리고 탄산수 4상자와 일반 상자가 하나 있어서 총 5개의 상자였다.&nbsp;<br>상자가 좀 무거운 것은 괜찮다. 배송 일을 하다 보면 가벼운 상자도, 무거운 상자도 만날 수 있으니. 좀 무거운 상자가 여러 개라도 괜찮다. 물건을 많이 팔아야 내 일자리도 유지가 될 테니. 좀 무거운 상자들이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므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힘들기는 엄청 힘들었다. 하필 그날 무릎 상태가 좀 안 좋아서 계단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총 세차례 5층을 오르내리며 그 고객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하필 그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내 무릎은 계속 원망했다.<br>암튼 앞서 말했던 공동체 부엌으로 상자를 들고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입구에 서 계신 한 분이 나를 멀리서부터 쳐다보고 계셨다. 당연히 멀리서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주문한 물품들이 오니까 받으려고 쳐다보고 계신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조금 가까워지면서 어렴풋이 표정이 보일무렵 누군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으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표정이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저런 표정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나오기 어렵다. 그 분이 먼저 나에게 물었다. "상무님, 지금 뭐하세요?" 약간은 따지는 듯한 말투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리고 나를 '상무'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분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그 분은 지금 내가 배송일을 맡고 있는 이 생협에 오래 계셨던 지금은 그만둔 상무님이셨다. 그 분이 이 생협의 상무이사 일을 맡고 계셨을 당시에 나는 우리 조합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었다. 본인이 상무이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상임이사라는 직함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 분은 나를 늘 상무님이라고 불렀다. 암튼 제법 오랜만에 뵙는 상황이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그 다음 순간 그가 "지금 뭐하세요?" 물은 말투가 약간 따지는 듯한 느낌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손에 든 상자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인사를 드린 후에 "저 배송일을 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아니 왜 상무님이 배송을 하세요?" 라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라고 하고 약간 억지로 웃었는데, 그는 바쁜데 나를 맞이하느라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다음에 뵐게요." 라고 했다. 나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왔다.&nbsp;<br>차를 몰고 다음 배송지로 향하면서 그 분의 묘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혹시 이런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생협 임직원들과 친하다는 것은 그 분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배송을 맡아 움직이는 것을 내가 원해서, 돈이 필요해서 직업으로 맡은 것이 아니라,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떠맡은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그렇게 생협 배송 일을 잠시 했었다. 그때는 정말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며칠만 했었던 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고정 수입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서 생협에서 마음을 써줘서 나를 고용해준 것인데. 내가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데. 나중에 오해를 풀 기회가 또 오겠지. 아마도.<br>#3 차를 막아 놓고 전화도 안 받고<br>배송은 정말 시간 싸움이다. 1분 1초가 급하고 아깝다. 하지만 나는 한 달이 지났는데도 배송기사로서의 태도는 아직 몸으로 익히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기사님들은 엘리베이터를 어떻게든 내려가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하고(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건을 문 앞에 옮겨 놓고 다시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 경우에는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내려가 버리고 만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근처에 현관문이 있다면 얼른 문이 닫히기 전에 사진을 찍고 타기도 하는데, 요즘 아파트들은 구조가 복잡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어디에 집이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더라.&nbsp;<br>아파트 단지에서 엘리베이터를 하루에도 수십번 타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들을 잘 살펴보면 배송, 배달 기사님들이 메모를 해놓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몇 호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적어 놓았고, 해당 동이 몇 동인지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주로 다니는 지하 주차장이 몇 층인지도 적어 놓았다. 이것들은 모두 나도 늘 헷갈렸던 것들이어서 먼저 이렇게 메모를 적어 놓은 선배 기사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도 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헷갈리고, 혹시 여기가 몇 동이었더라 헷갈리고, 상자를 내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다시 탄 후에 내가 차를 지하 주차장 몇 층에 세워뒀더라 헷갈리곤 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새 엘리베이터를 만나면 아무런 메모도 없는 경우가 있더라. 언젠가 어느 기사님께서 여기에도 메모를 하시겠지. 그리고 가끔 이해 못할 메모들도 있었다. 이해를 못하니 그게 뭔지 글로 설명하지도 못 하겠다.<br>암튼 그렇게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 가끔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차들을 만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차를 아파트 입구에 최대한 가까운 주차 공간에 넣어두고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고층으로 배송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큰 SUV 한 대가 내 차를 막고 주차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빈 주차 공간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렇게 차를 대놓았다고? 혹시 아직 사람이 있나 싶어 운전석을 보았는데 없었다. 급한 마음에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혹시 어떻게든 빠져나갈 공간이 있을까 살피는데, 없었다. 운전자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여기서 한참 시간을 허비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처럼 그 차주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차를 막아 놓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 이런 미친! 화가 났지만 전화를 다시 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젠 신호음이 한 두번 가자마자 전화가 바로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신호음이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신호음이 바로 끊기는 것은 그 인간이 전화를 거절했다는 뜻이리라. 여기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렸다. 계속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열 번 이상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굵은 남성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받았다. 나는 먼저 한 숨을 내쉬고, 차를 빼달라고 말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차를 막고 주차를 해놓고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는 그제서야 아, 다른 전화인줄 알았다고 말하며 금방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만약 나였다면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했을텐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리면서 나타난 인간이 이번에도 미안하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아마도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차에 올랐다.&nbsp;<br>그 정도 제스쳐로는 화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남아 있는 배송 건수들을 먼저 떠올렸다. 여기서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려면 얼른 출발해야지. 화를 계속 내는 것은 내 기분만 더 상할 뿐이고, 나만 손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감정은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결국 급한 배송들을 다 마친 후에 다음 매장으로 가는 중에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담배를 한 대 피운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br>#4 스트레스와 담배<br>담배를 처음 피운 것은 고3때였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후에 혼자 작은 자취방에 살았던 시절에 나는 이미 헤비 스모커가 되어 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그 골방에 혼자 쳐박혀 살았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웠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를 처음 끊었던 것은 애들 엄마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아마 3년 정도 끊었던 것 같은데,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웠고, 나중에 애들 엄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다시 담배를 끊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정도 지나 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예전처럼 담배를 많이 피우지는 않게 되었다. 며칠 동안 안 피우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두세 개비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정도로 라이트 스모커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 3년쯤 전에 달리기에 푹 빠졌던 시절에 폐활량에 대한 고민 때문에 또 담배를 끊었었다. 그러다 다시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래도 담배를 사서 피우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끔 담배를 피우는 지인에게 얻어 피웠었다. 한 달에 두세번 정도. 그러다 다시 담배를 산 것이 지난 주였다. 배송 일을 시작한지 4주차가 되었을 때였다.<br>도로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 가끔 배송 건수가 적은 날엔 일찍 일을 마치기도 했지만, 가끔 배송 건이 아주 많은 날에는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이상 늦게 일을 마치기도 했다. 그런 날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담배를 샀던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자주 피우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 마지막 배송을 마치고 차를 사무실에 반납하기 전에 한 개비 피우는 것이 다였다. 어쩌면 조금 더 이 일에 익숙해지다보면 담배를 피우는 빈도도 더 줄어들 수 있겠지.<br>#5 운전하면서 먹는 식사<br>벌써 15년 정도 전이었다. 당시 출판사 영업자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차를 얻어 타고 몇 군데 서점들을 함께 돌았었다. 각자 차를 몰고 가면 그만큼 기름 값도 더 들고, 각자가 다 운전하느라 더 피곤하겠지만, 같은 곳들을 돌아야 하는 여러 영업자들이 한 차를 같이 타고 다니면 그만큼 서로 이득이었고, 그렇게 다니며 정보 교환도 많이 했었다.<br>친하게 지내던 친구이자 동료 영업자 한 명은 여러 지역의 행사장을 돌며 책을 파는 가판을 많이 다녔다. 그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날엔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로에서 운전하는 중에 김밥을 먹으며 다녔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며 운전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했었다.<br>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는 편이다. 오후에 배송 일을 하면서 점심을 아예 안 먹으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허기가 져서 힘을 쓰지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어디 식당에서 밥을 챙겨 먹을 여유도 없었다. 출근하면서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을 하나 사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첫번째 매장 배송 건을 다 마치고 두번째 매장으로 옮겨갈 무렵에 운전 중에 김밥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다 씹고 나면 또 다음 하나를 입에 넣는 방식으로 밥을 먹었다. 김밥만 먹으면 질려서 어떤 날엔 빵, 어떤 날엔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br>저번에 유난히 배송 건이 많아서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마지막 매장에 도착했는데, 그날따라 그 매장의 배송 건도 많았다. 해당 매장 점장님께서는 본인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해 하시며 빵 하나와 음료 하나를 챙겨주셨다.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때에도 아직 배송이 두 건이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장거리였다. 그제서야 점장님께서 주신 음료와 빵을 꺼내 먹으며 운전을 했다. 이제 배송 한 건이 남았을 때, 사무국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아직도 안 끝났느냐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다고. 괜찮다고 걱정 마시라고 하고 남은 빵을 마저 먹었다.&nbsp;<br>뭐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 마음을 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괜찮다. 일이니까. 맡은 일을 하는 거니까.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늦을 수도 있는 것이고, 배가 고프면 운전하면서 김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빵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냥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뿐이다. 다만 더 신경이 쓰이고 힘든 것은 돈을 버는 이 일 외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여러 종류의 노동들이 여전히 내게 계속 맡겨진다는 현실이다. 낮에 운전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다른 일들도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들은 돈으로 보상 받지 못하는 일들이다. 이것도 뭐 괜찮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을. 활동가의 삶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이지. 어쩌겠는가.&nbsp;<br>지금 이렇게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몸이 좀 힘들어도 꾸준히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인 것을. 이것도 괜찮다.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계속 살아야지.&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4월 15일 수요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19456</link><pubDate>Wed, 15 Apr 2026 2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19456</guid><description><![CDATA[아침<br><br>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시 뒤척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에 오늘 할 일들을 머리속으로 정리했다. 일단 오전엔 일정이 없었고, 오후엔 배송을 나가야 하고, 저녁엔 내가 주로 활동하는 조합 이사회 회의가 있었다. 원래 어제가 회의 날짜였는데, 갑자기 대부분의 이사님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남기셨고, 결국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즈음에 나도 솔직히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회의가 연기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주는 넘길 수 없다고 실무자인 사무국장이 전화를 돌렸는데, 결국 하루 뒤인 오늘로 회의 날짜가 잡혔다.<br><br>암튼 그래서 오후엔 일을 하고, 저녁엔 회의를 해야 할 상황인데, 아침은 비어 있으니 외국어 공부나 해야지 하고 한 이삼일 소홀했던 외국어 공부 앱들을 하나씩 차례로 열었다. 그렇게 서너개의 앱을 통해 외국어 서너개를 익히고 있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간밤에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잠이 쏟아지다니! 잠이 너무 심하게 와서, 좀 그만 오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잠이란 개념이 오지말라고 요청한다고 멈추는 건 아니기에, 그냥 수긍하고 알람을 맞춰놓고 조금 더 자기로 마음 먹었다. 아, 그런데 이 잠이라는 것이 너무 많이 자면 또 더 피곤해지는 것인지,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알람이 울리는데, 너무 너무 피곤함을 느꼈다. <br><br>오후<br><br>암튼 일을 안 나갈 수는 없으니, 출근을 했고 차를 몰고 배송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3월에는 내가 가야할 매장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그 순서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4월부터 매장 한 곳이 바뀌며 일이 꼬였다. 내가 기존 제일 먼저 가던 매장과 최근에 새로 가게 된 매장에 배송 주문 마감 시간이 같았다. 어디를 먼저 가더라도 늦게 방문하는 매장에서 욕을 먹는 상황이다.<br><br>처음엔 기존에 먼저 갔던 매장을 먼저 갔다. 배송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미 경험이 쌓여서 상대적으로 빨리 배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언제나 모르는 법. 가끔 생각보다 이동 거리가 길거나, 차가 막히거나 하는 변수가 생겨 이 첫 매장 배송에서 시간을 좀 지체했더니, 다음 매장에서 몇 차례 불만이 제기 되었다. 배송이 너무 늦는다는 항의가 들었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 이후로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 한동안 줄었던 전체 배송건수가 확 늘었다. 무조건 일초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언제나 변수는 생길 수 밖에 없고, 늘 쫓기는 기분으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br><br>그 이후로는 출발하면서 두 곳 매장의 배송 건수를 확인하고 매번 상황에 따라 순서를 정하고 있다. 처음엔 매장 담당 직원님과 점장님께 의견을 구했으나, 그들도 전체를 보는 정보가 없다보니 어쩔수 없었다. 암튼 이젠 매일 각 매장 배송건수를 물어보고 어디를 먼저 갈지 판단하게 되었다.<br><br><br>저녁<br><br>그날 총 배송 건수 숫자에 달라지지만, 매일 일을 마치고 나면 힘들고, 지치고, 어렵고 그렇다. 어쩌다 조금 일찍 일을 마치면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배송 건수가 줄어들면 나도 조합도 힘들어진다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배송 건수가 너무 많아서 내가 정해진 기준보다 일을 더하는 경우, 너무 늦게 일이 끝나는 경우는 좀 짜증이 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다. 삶이 이런걸. 앞으로 이런 날이 덜 생기길 바라는 수밖에.<br><br>저녁에 회의에 참석하러 가서 정말 좀 많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집중해야 회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마칠 수 있으니 더 집중했다. 이미 피곤한 상태에서 더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다. <br><br>세월호 참사 기념일 하루 전<br><br>작년 오늘 쓴 글에 세월호 참사 하루 전이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제주 4.3 사태를 비롯해 4월에 포진되어 있는 슬픈 기념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고 책임질 것인가? 참 쉽지 않은 일이고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이이다.<br><br>작년에 서재에 쓴 글에 큰 아이와의 동네 데이트 이야기가 있어서 이이들에게 그 글을 공유했다. 큰 아이는 내 글이 몰입감이 좋고, 글이 좋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여러 차례 글을 공유했어도, 글에 대한 어떤 의견은 없다.<br><br>암튼 이제 곧 시간이 15일에서 16일로 넘어갈 예정이다. 오늘 이사회 회의를 했어도 일부러 뒤풀이를 가지는 않았는데, 일단 너무 힘들고 피곤했고, 둘째로 낮에 너무 더워서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집을 나섰는데, 해가 지고 나니 기온이 확 떨어져 너무 추워졌다. 물론 알고 있다. 이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뭐든 하나를 더 입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엔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br><br>내일은 꼭 바람막이 잠바 하나 꼭 챙겨야지. 12시가 넘어 날이 바뀌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자야겠다. 내일도 참 길고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황석영 문창과 비판 논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14704</link><pubDate>Mon, 13 Apr 2026 20: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14704</guid><description><![CDATA[문창과는 과연 기교만 배우는 곳일까?<br>지난 주에 아이들과 만나서 저녁을 먹고 놀고 있는데,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하는 큰 아이가 나에게 기사 하나를 공유하면서 어떤 나이 많은 작가가 문창과를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기사 말미에 권혁웅 시인이 그 내용에 반박하는 인터뷰가 짧게 실렸는데, 역시 권혁웅 시인이 제대로 대응했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중학교 시절 문창과를 가고 싶다고 예고를 선택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예고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했고, 지금은 3년째 대학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하고 있다. 시 공부는 오래 했지만, 소설은 거의 공부한 적이 없어서 황석영 작가가 누군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공유한 것은 조선일보 기사였다. 워낮 짧은 기사라 그 글만 보고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황석영 작가는 아마 무슨 강연에서 문창과 출신 소설가들을 비판했거나, 문창과에서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역시 조선일보 답게 앞뒤 내용은 다 잘라먹고 그저 비판했다는 것만 툭 던져놓았다. 이런 류의 비판은 그 맥락이 가장 중요할텐데, 어떤 맥락에서 정확히 어떤 지점을 비판했는지를 알아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만, 조선일보 기자는 조선이라는 쓰레기 언론에서 일하는 기자 답게 그런 기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br>암튼 아이는 그저 비판했다는 내용만 보고 화가 난 것 같았고,권혁웅 시인이 자신들, 그러니까 문창과 재학생들 편을 들어줬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좀 더 나눌 수 있었자면 좋았겠지만, 집에 갈 시간이 가까운 시점에 아이가 이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일단은 아이의 감정에 장단을 맞춰주면서, 자세한 내용은 알아보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br>검색해보니 조선일보 기사와 달리 연합뉴스 기사에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황석영 작가가 말한 핵심은 이런 거라고 볼 수 있다. 문창과에서 공부하고 등단하는 소설가들을 보면 서사와 철학이 빠진 느낌이란 얘기였다. 문창과에서 글쓰기 기술은 잘 배웠는데, 경험이 부족해서 내용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얘기였다. 이런 정도의 비판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nbsp;<br>다만, 정말 실제로 그런가? 문창과에서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단지 글쓰기 기술만 가르치고, 다른 것들은 가르치지 않는가? 젊은 혹은 최근 등단한 소설가들이 정말 글쓰기 기술만 좋고, 서사와 철학이 부족한가?&nbsp;<br>황석영 작가 본인의 발언을 보면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한 작가가 워낙 많아 문학상 본선에 올라오는 작품이 모두 무난하고, 문장과 구성이 좋지만 작품들이 다 똑같다"면서 "이 때문에 신춘문예 심사를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고 기사에 나와 있다. 그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본인은 10년 넘게 심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그냥 "다 똑같다" 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br>개인적으로 나는 문창과 그러니까 문예창작과를 다녀보고 싶었었는데, 우리 학교에는 문창과가 없어서 국문과를 복수전공으로 공부했었다. 확실히 국문과 공부로는 소설 쓰기 공부를 할 수 없었다.한창 소설 습작을 하던 무렵에는 다른 학교 문창과 학생들과 교류를 제법 했었다. 그들의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느끼며, 나도 문창과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교류했던 문창과 재학생 한 사람 글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nbsp;<br>암튼 황석영 작가의 강연 전체를 다 듣지 않은 입장에서 그냥 "비판했다."는 사실만 갖고 더 떠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꿈 이야기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07610</link><pubDate>Fri, 10 Apr 2026 03: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07610</guid><description><![CDATA[빗길 운전<br>맨 처음 매일 하루 4시간 배송 일을 제안 받았을 때는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꽤 오랜 시간 정기적인 수입이 없이 그때 그때 비정기적인 수입을 찾아 헤메는 일이 힘들었고, 그닥 성과도 좋지 않았다. 나는 매달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야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 나의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수입이 필요한데, 그 최소한의 수입을 제대로 벌어들이는 것이 어려워 진 상황이 벌어진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정말 얼마 되지도 않던 모아두었던 돈들을 다 소진했고, 그 다음엔 내가 여러 협동조합들에 출자했던 돈들을 차례로 돌려받았다. 그래도 긴 시간 여러 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적지 않은 출자금을 냈던 과거의 나를 칭찬했다. 그때 그 출자금들이 없었다면 나는 최소한의 생계비가 없어서 파산했을 것이다. 몇 달이 지나며 그 출자금들도 다 까먹고 나서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 그때 도움을 받은 곳이 공동체 은행 '빈고'였다. 정말 이젠 더는 방법이 없구나. 희망을 잃었을 때 기적처럼 빈고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배송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 내가 참 멍청하고 바보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인복은 있구나.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br>나는 운전을 오래 하기도 했고,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래서 배송이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초기엔 좀 적응이 필요했지만, 한 2주 정도 매일 운전을 하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그 와중에 주위에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일이 조금 힘들기는 해도,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그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도 좋았고, 그 경험이 또 나에게 쌓여서 새로운 이야기 꺼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의 경험이 다양하고 풍부해진다면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보니까.<br>그런데 어제 내가 일을 시작했던 오후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잠깐씩은 아주 많은 비가 퍼붓기도 했다. 그제서야 떠올랐다. 내가 빗길 운전과 야간 운전을 조금 어려워했었다는 예전 기억들을.<br>아주 어렸을 때부터 눈이 나빴다. 눈이 나빠서 뭔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에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필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잘 안 보여서 못 썼다고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는데, 그 당시 선생은 내가 거짓말을 하면서 일부러 필기를 안 한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그걸 빌미로 어머니께 촌지를 요구했었다고 아주 나중에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었다. 암튼 늘 눈이 나빠서 잘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명절마다 만나왔던 나를 아껴주셨던 오촌 당숙 두 분이 안경원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분들은 당장 눈이 나빠도 너무 어려서부터 안경을 쓰면 오히려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중에 중학생이 되면 데리고 오라고 안경을 맞춰준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했었다고 한다. 사실 내 눈이 비정상적으로 나쁘다느 것은 국민학교 1학년 때 신체검사 결과로 알았었다. 그걸 6년 동안 그냥 방치해두고 있었던 거였다.&nbsp;&nbsp;<br>중학교 때부터 안경을 끼고 살았다. 드디어 칠판 글씨가 정상적으로 보였고, 조금만 거리가 멀어도 보기를 포기했던 많은 것들을 이젠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상이 선명하게 맺히지 않고 흐려보였던 증상도 훨씬 또렸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 안경을 쓰고 살면서 크게 불편이 없었다. 가끔 안경 다리가 부러지거나, 안경 알이 깨지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몽골에서 일본 대학생들과 놀다가 안경테가 부러졌던 때, 나 혼자 인천 공항에 내려서 서울역으로 갔다가 거기서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안경이 없는 상태의 나는 거의 시각장애인 수준이었다. 당장 공항 청사를 나와서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번호조차 보이지 않았다. 매번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날 안경을 다시 맞췄었다. 그날의 그 기억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 안경이 없어서 세상이 흐려 보이고, 조금만 멀어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하는 악몽을 꾼다.<br>젊은 때는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마 30대 후반 무렵부터 야간 운전을 하면 빛이 번져 보여서 운전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낮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밤에 운전을 하면 눈이 너무 피로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날 운전을 해보니, 비 오는 날도 마찬가지로 빛이 너무 심하게 번져 보였다. 짧은 시간이라면 조심하며 운전할 수 있지만, 비 오는 날 장시간 운전은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br>그리고 어제 이 배송 일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비가 왔다. 비가 내리면 도로와 바퀴 사이의 마찰계수가 줄어들어 미끄러질 확률이 높아지고 제동 거리가 늘어난다. 당연히 평소보다 조심 조심 운전을 해야 하지만, 내 경우엔 빛이 번져 보이는 문제가 겹쳤다. 아, 운전을 좋아하고 잘 한다고 생각해서 이 배송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겠다고 여겼는데, 세상에는 비도 오고 눈도 오는 구나! 하고 새삼 깨달은 것이다.&nbsp;<br>그럼에도 나는 안경을 끼고 일을 하고 있고, 비가 온다고 운전을 못할 정도로 막 안 보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비 오는 명절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장시간 운전을 했던 기억 때문에 좀 과장해서 빗길 운전을 두려워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이 일을 무조건 해야 하고, 그에 더해 추가로 일을 더 해야 최소한의 생계비를 마련할 수 있다. 빗길 운전에도 적응을 해야 한다. 아주 다행인 것은 오랜 시간 운전을 하면서 안전 운전에 대한 습관은 확실히 뼈에 새겨져 있어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멈추고 확신이 들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다.<br>직관<br>운전을 하다보면 아주 짧은 순간 빠르게 선택을 해야 할 순간들이 있다. 요 직전에 말한 것처럼 운전은 습관이 미치는 영향이 큰데, 만약 내가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는 중에 갑자기 저 앞에 노란불이 들어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물론 정답은 그 시점의 속력과 교차로까지 남은 거리에 달려 있다. 현재 속력이 너무 빨라 교차로까지 차를 정상적으로 세우기 어렵다면 차라리 속력을 더 높여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벗어나는 것이 정답일테고, 속력이 빠르기는 하지만, 남은 거리를 감안하면 충분히 멈출 수 있다면 멈추는 것이 정답이다.&nbsp;<br>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다행히도 긴 시간 운전을 하면서 안전 운전이라는 측면에서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 지난 글에도 쓴 것처럼 아이들이 아기였던 시절부터 태우고 운전을 했기에 더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 배송 일에 맞지 않는 운전 습관이란 생각을 했었다. 너무 느긋하고 편안하게 운전을 하는 것이다. 암튼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매 순간 실시간으로 앞 차, 양쪽 옆 차, 뒷 차들까지 신경 쓰면서 그들의 속도와 방향을 머리 속으로 늘 계산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내가 원활하게 옆 차선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 없을지. 만약 앞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내가 어떻게 피해야 할지 등을 매 순간 머리 속으로 그리며 본능적으로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는 행위이다.<br>운전 중에는 정말 다양한 변수가 발생하고 그 중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다. 실시간으로 예측 가능한 거의 모든 변수를 계산하며 운전을 해도 갑자기 미친 놈이 미친 짓을 하는 곳이 도로라는 곳이다. 그런 경우 아주 짧은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 그때 직관이 영향을 미친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순수한 본능은 아닌 것 같고, 본능에 더해 아주 짧은 순간적인 판단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br>며칠 전에 두 차례 사고 날 뻔 한 장면들이 있었다. 하나는 차량이었는데, 내가 충분한 거리를 두고 깜빡이를 켜고 왼쪽 차선으로 이동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왼쪽 뒤에서 오고 있는 차량과 충분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처음엔 조심스럽게 그리고 일단 왼쪽으로 진입한 이후엔 과감하게 들어갔는데, 문제는 뒷 차량이 들어오고 있는 나에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돌진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대로면 뒷차가 그대로 나를 들이받는 상황이 될 것 같았다. 순간 머리 회전이 빨라졌다. 나는 이미 왼쪽 차선으로 들어섰는데, 앞 차는 속력을 줄여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그 앞부터 신호 대기에 걸렸으리라. 만약 앞이 비어있다면 나도 속력을 높여 뒷 차가 돌진해도 안전할 정도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정답이겠지. 하지만 앞 차가 멈춰 있으니 그건 기각. 그럼 이대로 뒷 꽁무니를 들이 받혀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급 가속해서 다시 원래 있던 오른쪽 차선으로 돌아나가야 하나? 그게 가능한 거리와 각도라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속력을 줄이며 왼쪽으로 옮겨 온 상황에서 아무리 급가속을 해도 적절한 속력으로 뒷 차를 피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주 짧은 순간에 판단한 것이다. 결국 정답은 뒷차가 들이받거나, 다행히 멈추거나 아니면 뒷 차가 나를 피해 옆 차선으로 옮겨가거나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nbsp;<br>정말 다행히도 그 차는 나와 부딪히기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원래 내가 있었던 오른쪽 차선으로 옮겨 가면서 속력을 줄였다. 아마도 그는 뭔가 딴 짓을 하느라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싶다.&nbsp;<br>다른 한 건은 오토바이였는데, 거의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미리 깜빡이를 켜두고 충분히 주의를 줬다고 판단하고 들어갔는데, 오토바이가 속력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다가왔다. 앞서의 차량 건과 차이는 나와 그들과의 거리다. 앞의 차량은 충분히 거리가 멀었고, 이번 오토바이는 좀 애매했다. 그래서 절반 이상 들어간 시점에서도 오토바이가 속력을 줄이지 않고 돌진하자 내 직관은 차를 다시 빼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속력을 줄이며 부드럽게 옆 차선으로 옮겨 가다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엑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고 빠르게 원래 차선을 돌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오토바이가 돌진하더니 마치 곡예를 하듯이 앞에 멈춘 차량을 피해 속력을 줄이며 나에게서 먼 방향으로 다시 차선을 옮겼다.&nbsp;<br>아, 어쩌면 방금 이 두 건은 정말 실제로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는데, 이게 내가 말하고 싶었던 직관을 잘 설명하는 사례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아주 짧은 순간 계산의 영역을 벗어난 순간적인 판단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br>꿈 이야기<br>어제는 사실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그 전전날 밤에 태양광발전소 수익 분석 자료를 만드느라 새벽까지 일을 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었고, 그래서 엊그제 오후는 일하는 내내 무척 힘들었다. 졸리는 것은 껌과 사탕 그리고 에너지 음료 등으로 해결했지만, 계속 정신이 조금 멍한 상태로 지내는 것은 좀 겁이 났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평상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신경써서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 정도로 피곤한 상태에서는 급박한 상황에서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고,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나의 뇌가 피로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까 두려웠다. 정말 다행으로 엊그제는 세 곳의 매장에서 배송 건수가 평소보다 적었고, 이동 거리도 평소보다 훨씬 적었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일을 잘 마치고 저녁에 아이들을 만났다. 계산해보니 36시간 동안 잠을 약 1시간 남짓 밖에 못 잤었다.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이 잠에 빠졌었고, 어제 점심무렵까지 약 12시간 가까이 잤다. 그리고 오후 출근을 하려니 비가 왔던 것이다.<br>어제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세 가지였는데, 그 첫 번째는 초 장거리 배송이 한 건 추가 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일을 시작하고 며칠 지난 시점에서 들었었다. 가끔 아주 먼 곳에서 배송 요청이 온다고. 배송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난감하고 힘든 일이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이 배송 건을 거절할 수 없는 거라고. 지금까지는 오전에 매장 간 배송을 맡아주시는 친한 형이 그 배송을 맡아 주셨다고 했다. 그 형이 언젠가는 그게 내 몫으로 옮겨갈 거라고 미리 알고 있으라고 했다. 이 건을 제외하면 다른 거의 모든 배송은 매장에서 아무리 멀어도 10분 거리를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건은 빨리 가도 25분이 넘는 거리다. 이것도 과속 카메라 앞에서만 속력을 줄이고 나머지 구간에서는 기준 속도보다는 조금 더 빨리 달렸을 때 이야기다. 만약 정속을 지킨다면 그 시간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원래라면 오늘도 오전에 그 형이 이 건을 처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여 그 형은 오늘 이 배송이 없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배송 요청이 와있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던 점심 때, 그 형이 전화로 이 상황을 설명하며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미리 경고해줬다.<br>두번째 요인은 최근 한동안 배송 건수가 좀 줄었다가 오늘 하필 비도 오고 장거리 배송도 있는 날에 배송 건수 자체도 늘었다는 점이었다. 뭐 이건 당장 오늘의 나는 힘들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생협에게 좋은 일이니 뭐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비가 오지 않고, 장거리 배송이 없었다면 그냥 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br>세번째 요인은 유난히 많은 물량과 무거운 짐들이었다. 오늘 아마도 생협에서 탄산수 할인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거의 없던 탄산수가 엄청 많았다. 그저 한 두 박스까지는 손으로 들어 옮길 수 있으니 상관이 없지만, 그 이상의 물량은 일단 보는 순간 긴장하게 만들었다. 물리적으로 두 박스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탄산수 네 박스에 더해 다른 생활재 한 박스까지, 총 다섯 박스를 옮겨야 하는 배송 건수가 두 개나 있었다. 그 외에도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박스가 많았다. 시간이 생명인 배송에서 한 집에 짐을 두세번씩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택배 기사님들은 엘카나 카트 등을 활용한다. 우리 차에도 아주 작은 접이식 엘카가 실려 있다. 다만 이 물건이 고장이 나서 펼치려고 시도할 때마다 허리를 숙여 힘을 써야 하고, 그때마다 매번 욕설을 내뱉어야 한다는 점이다. 욕을 하기 싫어서라도 이 엘카를 쓰고 싶지는 않은데, 오늘은 이걸 여러 차례 쓸 수 밖에 없었다. 원래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작은 크기에 이 정도 효율을 내는 멋진 물건이 없었다고 칭찬을 했을텐데, 고장이 나서 매번 내 욕설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이 녀석도 기구한 운명이다.&nbsp;<br>아, 맞다. 꿈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데, 어제와 엊그제 이틀 연속 너무 힘들게 일을 해서 그 이야기에 몰입해버렸다. 그동안 이 서재에 꿈 이야기를 참 많이 썼다.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고, 꿈마다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꿈을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꿈을 꾸지만 깨어났을 때 기억할 수 있는 꿈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자각몽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한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이 것이 꿈이라고 스스로 깨닫는, 즉, 자각하는 것을 자각몽이라고 한다.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자각몽을 자주 꾸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하나는 내가 반복해서 비슷한 패턴의 꿈을 자주 꾸는 편이라는 점이다. 이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 같은데, 청소년기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정말 자주 꾸었다. 어른들은 그런 꿈을 꾸면 키가 큰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내 나이대에서 간신히 평균에 들거나, 아주 살짝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키가 컸다면 나는 벌써 2미터가 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이와 상황에 따라 반복되는 꿈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비슷한 패턴의 꿈을 유난히 자주, 심한 경우에는 하루 밤에도 여러 차례 꾸기도 한다.<br>자정이 넘어가자마자 확인해봤는데, 지난 오늘 쓴 글은 딱 하나였고, 2019년에 쓴 글이었다. 묘하게도 그날 쓴 글에도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 기분 나쁜 악몽을 자주 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암튼 그 글에 언급한 것 중에 다시 군대 끌려가는 꿈 이야기가 있었다. 그랬다. 내가 자주 꾸는 패턴 중에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자주 꾸는 악몽은 독립운동가로 살다가 일제에 잡혀서 고문당하거나 아니면 잡히는 순간까지의 꿈이다. 앞서 언급한 군대 끌려가는 꿈도 정말 자주 꾸었다. 꼭 군대에 다시 끌려가면 전쟁이 났고, 어떤 경우엔 전쟁이 먼저 나고 군대에 끌려 가기도 했다. 민방위도 벌써 오래 전에 끝났는데 아직도 이런 꿈을 꾸고 있다니! 어떤 존재들, 이를테면 현실의 맹수나 비현실적인 괴물들에게 쫓기는 꿈도 정말 자주 꾸는 꿈이다. 앞에서 말한 독립운동가의 꿈에서는 매번 일본 제국주의 경찰에 쫓기는 장면이 포함된다. 또 다른 패턴은 뭔가 어떤 것을 혹은 어떤 존재를 찾아 끝없이, 하염없이 헤매다니는 꿈이다. 이외에도 많을텐데 그걸 어떤 패턴으로 정형화하기에 서로 겹치는 공통점들 때문에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기는 한다.<br>암튼 지금 언급한 몇 가지 이야기들은 대부분 과거 이 서재에 꿈 이야기로 쓴 적이 있었다. 이런 꿈 이야기에 달리는 댓글들 중 가장 많은 것은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꿈 이야기를 기억하느냐는 것이었다. 따지는 듯한 느낌의 댓글도 있었고,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도 있었다고 느낀다.<br>이 이야기도 몇 번 쓴 적이 있었는데, 내가 쓴 꿈 이야기의 대부분은 조금은 선명한 조각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꿈에서 깬 시점에서 내 기억은 명확하게 선명한 조각들, 조금은 확신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선명한 조각들, 불확실하지만 일정 부분 선명한 조각들, 선명하지 않은 조각들 그리고 흐릿한 조각들. 마지막으로 떠오를 듯 말듯 깜빡 깜빡 하는 조각들이 있을 것이다.&nbsp;<br>그래서 큰 줄기나 흐름은 대체로 꿈의 내용을 담아 내지만, 아주 세부적인 부분들에서는 나도 확실하지 않지만 이거였을 거야 라는 불완전한 확신도 섞여 있고, 가끔은 깜빡이는 부분들 중 추측으로 덧붙인 부분들도 있다. 아주 가끔은. 그러니까 나도 꿈 이야기를 옮길 때 완전히 모든 내용을 다 선명하게 떠올리며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줄기는 확실히 옮기고, 세부사항에서는 조금은 비어있는 지점들도 있다는 이야기.<br>음, 짧게 쓰려던 글이 또 길어졌다. 내일 또 운전을 해야 하니 오늘은 이만 자야지. 어제 저녁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참여한 회의에서 정말 정성이 가득한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았고, 참여자들인 동네 선배들에게 진심이 담긴 환대를 받았다. 사실 그 회의에 너무 가고 싶지 않았다. 너무 힘든 하루를 보냈기에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얼른 자고 싶었다. 그런데 운영위원 중 한 분과 그 가족이 함께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을 느꼈다.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부족한 인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다행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또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살아야지.&nbsp;&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꽃샘추위가 여전한 4월</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05903</link><pubDate>Thu, 09 Apr 2026 1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05903</guid><description><![CDATA[꿈<br><br>어떤 중년 남성이 화를 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막 주위를 돌며 발을 굴러댔다.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주위를 돌다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br>˝하시라고요.˝<br>뭘 하라는 것인지 듣지 못했다. 그는 붉어진 큰 얼굴을 들이밀며 다시 말했다.<br>˝그렇게 계속 하시라고요. 어디 마음대로 계속 해보시라구요.˝<br>그는 목소리가 컸다. 그 큰 목소리로 바로 눈 앞에서 소리를 질러대니 귀가 아팠다. 이성을 잃어버린 듯한 눈빛.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가 누구인지, 왜 나에게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지 알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그가 소리 지르는 것을 참고 듣고 있어야 했다. 그는 다시 발을 구르고 주위를 돌았다. 또 소리를 질러댔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br><br>한참 그를 바라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내 겉옷과 가방을 챙겨줬다. 그는 자상한 태도로 겉옷을 펼쳐 내 어깨에 둘러주었고, 내 눈을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br>˝가자.˝<br>체격이 크다고 느낀 여성이었다. 그는 내가 머뭇거리자 내 어깨를 살짝 잡아당기며 몸을 돌려주었다.<br>˝가자. OO으로 가는 거지?˝<br>목적지를 듣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남성을 신경쓰고 있었는데, 이 여성이 등장한 이후 이 화내는 남성의 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그는 여전히 있는 힘껏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중인데 갑자기 그의 목소리만 누군가 일부러 볼륨을 줄여놓은 것처럼 작게 들렸다. 대신 속삭이듯 말하는 이 여성의 목소리는 또렸이 잘 들렸다.<br>˝가면서 OO 먹고 갈까? 배 고프지 않아?˝<br>이번에도 목적어를 듣지 못했다. 여전히 화를 내는 남성을 바라보는 중인데, 이 키가 큰 여성이 내 손을 잡더니 잡아끌었다.<br><br>어떤 큰 건물 복도를 끌려가듯 걸었다.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멈춰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웅성웅성 떠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손을 잡은 여성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었다. 앞서서 성큼 성큼 걷는데 따라잡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손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성이 저만치 앞으로 가 있었다. 나는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걸음을 재촉해 그를 쫓아가려 했는데 그는 더 멀어졌다. 그 여성이 멀어지자 넓은 복도에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뭔가 내 험담을 하고 있는 걸까? 나를 쳐다보고 그들끼리 무언가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고 싶었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이 서있던 두 사람이 곁눈질로 나를 힐끗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들 중 한 여성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아주 짧은 순간 입꼬리만 웃는 표정을 보이고는 대화를 나누던 다른 여성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여성도 일부러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보고 눈꼬리와 입꼬리만 웃는 표정을 보여줬다. 이윽고 두 사람은 나를 보고 뭐라고 말을 하고는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입 모양으로는 아마 ˝밥 먹었어요? 우린 먼저 먹고 왔어. 맛있게 먹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들이 나를 스쳐지나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도 차례로 나에게 눈과 입으로만 웃는 표정을 짓고 뭐라고 짧게 말을 걸면서 스쳐지나갔다.<br><br>여러 사람들이 빠르게 다가와 잘 들리지 않는 말로 뭐라고 말을 건네고 휙 스치듯 지나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키가 큰 남성도 있었고 키가 작은 여성도 있었다. 그러다 붉은 색 코트를 입은 한 사람이 다가왔는데, 그는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일부러 눈을 맞추며 억지 웃음을 짓지도 않았다. 어쩐지 그를 붙잡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옷깃을 잡았다. 그는 막 나를 스쳐지나가는 찰나였는데 옷깃을 잡히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놀란듯 큰 눈으로 나를 보았다.<br>˝어! 여기 있었어?˝<br>밝고 목소리였다. 처음에 누군가에게 붙잡혀 놀랐던 얼굴이 짧은 순간 반가운 표정으로 변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 표정이 낯익다고 느꼈다.<br>˝어디가? 나는 이제 돌아가려고.˝<br>나는 그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묻고 싶었는데,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눈짓과 손짓을 해서라도 내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는 잠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br>˝미안! 나 얼른 가봐야 해. 담에 봐.˝<br>그를 놓치면 안 될것 같아서 얼른 다시 그의 붉은 코트 소매를 붙들고 함께 가자고 말을 걸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br>˝응? 같이 갈거야? 그럼 우리 좀 서두를까? 나 지금 늦었거든.˝<br>그는 키가 작았음에도 걸음을 빨랐다. 소매를 붙든 내가 따라잡기 어려웠다. 열심히 따라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붙들고 있던 소매를 놓쳤다. 빨간 코트의 여성도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졌다.<br><br>어딘지 모를 크고 넓은 복도에 남겨져 멍하니 서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말을 걸면서 내 등을 툭 건드렸다.<br>˝여기 있었네.˝<br>돌아보니 다소 딱딱한 표정을 지은 여성이 서 있었다. 긴 머리에 정장을 입었다. 그는 다시 손가락으로 내 등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br>˝계속 여기 있을거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br>나는 그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왜 나는 말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 말도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빨리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br>˝응? 왜? 왜 말이 없어?˝<br>아까 키가 크고 체격이 큰 여성이 갑자기 사라지던 무렵부터 이게 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왜 말을 할 수 없는지, 왜 특정한 사람들의 말만 들리고 다른 말들은 안 들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말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라고 말을 하며 답답함을 전하고 싶었다.<br>˝저번에도 그러더니. 왜 그러는지 말을 해야 알지.˝<br>그는 처음엔 다소 차가워보이는 얼굴로 표정이 바뀌지 않다가 갑자기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얼굴을 크게 찡그리더니 화가 난 표정으로 바뀌었다.<br>˝아, 나도 몰라. 그러고 있으면 일이 해결이 돼? 나보고 어떡하라고?˝<br>그는 짜증이 묻어나는 표정과 말투로 주먹을 쥐고 내 팔을 가볍게 툭툭 쳤다. 왜 그가 화가 났는지 몰랐지만, 나야말로 지금 화가 나고 짜증나는 상황이지만, 일단 그의 화를 풀어야 뭐든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사과했다.<br>˝미안해.˝<br>이번엔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내 사과를 듣고도 한동안 물끄러미 내 얼굴을 살폈다. 다시 처음의 그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겨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 걸까?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근데 왜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왔지? 머리속이 복잡했다.<br><br>긴 머리의 여성은 다소 차가운 얼굴로 한참동안 가만히 내 얼굴을 살피다가 문득 포기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br>˝나도 모르겠다. 일단 나랑 같이 돌아갈까?˝<br>함께 돌아가자는 제안에 이르러서야 그의 표정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치고는 앞서 걸었다.<br>˝얼른 가자. 이미 늦었어.˝<br><br>사람들로 가득찬 넓고 큰 하얀 복도에서 그가 걸어가자 길이 열리듯 사람들이 비켜섰다. 그는 앞서 걸었고 나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발을 빠르게 놀렸다. 한참을 걸어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문득 배경이 바뀌며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앞서 걷던 긴 머리의 여성이 고개만 돌려 나를 보며 뭔가 말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br><br><br>갈증<br><br>잠에서 깼을 때 바로 현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생생한 꿈을 꾸면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인터넷에서 버퍼링에 시간이 걸리듯. 나는 이제 늙고 낡은 인간이라 성능이 떨어지는 피씨에 느려터진 인터넷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br><br>깨고 나서 생각해보니 마지막 꿈 바로 앞에 다른 꿈의 내용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떤 막연한 이미지들과 조금은 선명한 이미지들이 머리 속에 떠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 앞의 꿈에서는 어려진 아이들이 나왔다. 큰 아이는 대여섯살 시절의 모습이었고, 작은 아이는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는 나에게 아이들이 더 있었다. 현실에서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그 꿈 속의 내 아이들은 누구였을까? 누군가 엄청 그리워했던 얼굴이었던 것도 같고, 누군가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잊고 있던 얼굴이었던 것도 같다.<br><br>어쩌면 사람들이 전생이라 믿는 것, 윤회라고 믿는 것이 이렇게 반복되는 꿈 속의 인생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꿈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아보고, 어떤 꿈에서는 외국어에 유창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는 인물이 되어보고, 어떤 꿈에서는 어떤 무리들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뭐가 뭔지 알 수없는 모호한 꿈들도 많고 상대적으로 명확한 상황인 경우도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꾸는 그 꿈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벌써 몇 겁의 인생을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br><br>그 수많은 꿈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도 저마다 역할이 뒤섞인다.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친한 친구가 될수도 있다. 그래서 윤회를 거듭하며 인연을 맺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br><br>마지막 꿈에서 만난 여성들은 모두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잠에서 깬 이후 고민을 해봐도 딱 현실의 어느 특정한 사람들과 이어지는 특징을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그건 그 당시 꿈 속에서도 내가 아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어떤 이미지나 상징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br><br>현실에서는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꿈에서만이라도 뭐 하나라도 바라던 것을 이룬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아무리 실감나고 생생해도 그건 현실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다시 매트릭스 속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빨간약을 선택한 순간 다시 될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br><br>목이 마르다. 아무리 물을 많이 들이켜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갈증이 느껴진다.<br>    ]]></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성중립 화장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03723</link><pubDate>Wed, 08 Apr 2026 09: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0372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032910&TPaperId=172037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61/40/coveroff/k49203291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성중립 화장실<br>우리 동네 노동인권센터 독서모임에서는 모인 사람들끼리 윤독을 통해 책을 읽는다. 지금까지 여러 책을 읽었고, 최근에는 우리 동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주치의와 상무이사가 함께 쓴 책인 [나이 들고 싶은 동네]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올해 대의원 총회에서 참석한 대의원들에게 이 책을 나눠줬기 때문에 나도 이 책을 받아서 몇몇 꼭지를 읽었었다. 이 모임이 이뤄지는 공간은 다양한 동네 모임이 열리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고, 나는 주로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이 공간에서 책상 한 쪽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을 하거나 글을 쓰곤 한다. 지난 모임(아마도 약 3주 전쯤) 날에도 내가 저녁때 일을 하는 동안 이 책 모임이 열렸고, 참가자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이 책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었다. 익숙한 사람들의 별명들(살림의료사협에서는 별명을 활동명으로 쓰고 있음)이 들렸고, 내가 대략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들리기도 했다. 물론 내가 잘 몰랐던 이야기들도 있었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등장했다.&nbsp;<br> <br><br><br><br><br><br><br><br><br><br><br><br><br>오늘도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이 사무실에 와서 내일 오전에 열리는 회의를 위해 회의 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또 책 모임이 열렸다. 사실 어느 정도의 소음이 있어도 집중해서 일을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내가 잘 아는 인물에 대한 내용이나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자꾸 들리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자꾸만 참가자들이 낭독하는 책 내용으로 정신이 팔렸다. 태양광 발전소 수익분석 자료를 만들어야 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인데, 자꾸 정신이 저쪽으로 팔려가 버려서 자료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 모임이 아예 끝난 후에 집중해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꿔먹고, 알라딘에 들어왔다. 이왕 들어온 김에 이 이야기나 써야겠다.<br>아까 들었던 내용은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어 이용하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니 몇 해 전에 살림의원에 들렀을 때 화장실을 갔더니, '여성 전용 화장실' 하나와 '성중립 화장실' 하나, 이렇게 두 개의 화장실이 있었다. 순간 좀 당황했다. 남성은 어디를 써야 하나? 여성 전용은 당연히 쓸 수 없을 것이고, 그럼 성중립 화장실을 쓰란 뜻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아주 짧은 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살림의료사협은 창립하기 전부터 여성주의 의료생협을 표방한 곳이었고, 의원 개원 이후 여러 성소수자들이 일부러 멀리서도 찾아오는 곳이라고 들었었다. 성소수자들 입장에서는 여성과 남성 이렇게 둘로만 나눠진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br>정확히 여기까지 글을 쓴 후에 참가자들이 모임을 마쳤다. 그 중 친한 분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느라 글쓰기를 중단했고, 이후엔 급한 일이었던 자료 만들기에 집중했었다. 그리고 날짜가 지났다. 이 글을 이어쓰는 지금은 다음날 아침이고, 새벽까지 자료를 만들다가 잠깐 쉰 후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지만, 새벽에 집중해서 일을 하면서 긴 시간 고민해도 풀리지 않았던 답을 찾아서 기분이 좋아졌고, 오히려 컨디션은 어제 밤보다 더 좋은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오후엔 운전을 해야 해서 이 글을 다 쓴 후와 이따 오전 회의를 마친 후에는 조금씩 더 쉴 예정이다.<br>암튼 어제 쓰던 글을 조금 더 이어 쓰자면, 저 성중립 화장실이란 개념이 사실 그리 어렵지는 않을텐데,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불편한 개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에 열린 어느 총회에서 인권재단이 운영하는 회의실을 대관해서 썼었는데, 거기 화장실도 아예 남녀 라는 개념이 없이 성중립 화장실 혹은 모두의 화장실 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 어르신이 나에게 어느 화장실을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냥 어디든 다 들어가셔도 된다고 성별 구분없이 누구나 쓸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설명드렸다. 여전히 그 어르신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지만, 발길을 돌려 가까운 화장실을 향해 가셨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그 어르신은 여성 화장실이란 표시가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br>암튼 저 책에는 살림의료사협이 운영하는 살림의원과 살림치과가 초기부터 두어곳의 건물을 옮겨 다니며, 건물주의 눈치를 보고, 구조상 리모델링이 가능한 방식을 찾아가며 어떻게든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과정과 그 이후 직원들(의료진과 활동가)과 방문자들(환자와 보호자) 모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담고 있다.<br>사실 어제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저 책 모임이 조금 더 오래 이어질거라고 생각해, 이 성중립 화장실 이야기에 이어 최근 매일 제법 긴 거리를 운전하며 느꼈던 몇 가지 이야기들, 특히 전쟁으로 인해 갑자기 고유가 시대가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업무상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 등을 두드려 보고 싶었지만, 일단 이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자. 다음에 더 많은 경험을 담아 풀어야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61/40/cover150/k4920329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614058</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만우절 다음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91684</link><pubDate>Thu, 02 Apr 2026 05: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91684</guid><description><![CDATA[만우절<br>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있다면 그건 만우절이다.일부러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는 날이라고? 왜? 어차피 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를 속여야 하거나 원치 않아도 어쩔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 있는데, 왜 굳이 특정한 날을 정해서 사람들을 속이는거지? 아!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니까 특정한 날을 정해서 이날은 절대 믿지 말자 하고 정한 거라면 그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오늘 쓴 글은 딱 하나였는데, 작년 오늘 쓴 글이었고, 만우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글에 내가 살면서 단 한번도 만우절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썼었다. 그리고 댓글에 알라딘 이웃인 카스피 님께서 만우절에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내 표현을 믿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로 글은 남겨 놓으신 것을 봤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만우절에 일부러 거짓말이나 농담을 한 적은 없다고. 그 말이 평생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거나 농담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도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건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한다. 나는 농담이나 거짓말을 일부러 특정한 날에 분위기에 편승해서 유행처럼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늘 바빠서 내 생일도 잊고 지나가는 사람인데, 만우절이란 날짜 따위 일부러 기억해서 시시껄렁한 농담 따위 지껄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br>다만 어제 쓴 글에도 밝혔듯이 만우절에 마치 거짓말처럼 부고 소식이 왔던 지인이 있었다. 내가 약 20년 전에 특정한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무렵에 그는 아주 유명한 진보정당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일했었다. 어쩌다 어떤 특정한 사업 때문에 만났었고, 서로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밀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기획했던 어떤 행사에 그가 그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조금 친해졌다. 그날 나는 당시에 큰 아이를 품고 있었던 임신 말기의 아내와 함께 했었다. 그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와 내 아내 이렇게 네 사람이 짧은 시간 친해져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 기억은 개인적으로 미화되었다고, 그 시간은 그저 형식적인 혹은 예의상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자리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건 이젠 대답할 수 없는 그의 몫이니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다. 암튼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이후에 그와 다양한 장소와 시점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저 그런 관계였다. 결코 친구라 부를 수 없는 동지라 부를 수는 있었겠지만, 조금은 어색한 그런 사이. 그와 좀 더 친해진 계기가 녹색당에서 활동했던 시기였다. 과거에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지만, 친해지지 못했던 우리는 녹색당에서도 자주 만났지만 그리 친해지지는 못했다. 다만 내 생각에, 아마도 그도 마음으로는 충분히 친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조금 더 얼굴이 두터웠던 내가 그에게 몇 차례 친한 척을 했었다. 그는 싫지 않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답을 하곤 했었다.<br>비슷한 나이였고,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아서 친한 척을 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아니 어느 해 만우절에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설마 했다. 노동당 박은지씨 이후로 본인상 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접했다. 에이. 만우절이라고 이런 재미없는 장난을 치나! 이거 누구 짓이야! 라고 화를 내고 싶었는데, 농담도 장난도 아니었다. 이럴 수가! 절말 그가 죽었다니! 다시는 볼 수 없다니!<br>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다시는 그 분을 볼 수 없다는 그 느낌이, 그 상실감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상실감을 깨달으며 문득 눈물이 흐른다. 그냥 쓱 쳐다보면 옆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냥 늘 곁에서 씩 웃어주던 사람이었는데.<br>내가 자주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와 이 활동가를 언급하는데, 그들과 특별한 어떤 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알고 지냈던 인연이 있었을 뿐이고, 조금 아주 조금 친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이들의 죽음은 내게 엄청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종종 언급하는 것이다. 그 충격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br>그래서 내게 만우절은 슬픈 날이다. 여성의 날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여성의 날이라고 여성들끼리 꽃을 주고 받는 것이 한 편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나에게 그날은 박은지 부대표의 죽음을 들었던 날일 뿐이다. 남들이 만우절이라고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주고 받아도, 그 날은 나에게 한때 존경했던 정말 훌륭한 삶을 살았던 어느 활동가의 죽음을 전해 들었던 날일 뿐이다.<br>아직 유서를 쓴 적은 없지만, 언젠가 유서를 쓰게 된다면 이 두 사람의 죽음을 꼭 언급할 것이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이유는 이들 두 사람의 죽음의 영향이 크다고. 박은지 부 대표가 아직 어린 아들을 두고 죽음을 선택했을 때, 우리 아이들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이 차이가 많지는 않았다. 이젠 성인이 된, 그래서 아니 그 훨씬 이전 청소년 시기에도 친구처럼 느껴졌던 든든한 큰 아이는 그 당시에 이미 사춘기 소녀였다. 그의 아들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사춘기 소년이었다면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돌연사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우리 곁을 떠나 버린 또 다른 친구처럼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나는 두 명의 아이가 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주고 지켜봐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nbsp;<br>우울<br>사실 이런 이야기는 사람을 한없이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나라는 자아를 깨달았던 청소년 기의 어느 날, 햇살이 너무나도 따뜻했던 어떤 오후 이후로 평생 나를 괴롭게 만드는 그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nbsp;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데, 그럼 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당장 죽는 것과 나중에 몇 십년 후에 죽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위인전 같은 책에 단 한 줄 적힐 확률도 없을텐데, 그럼 내 인생은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왜 살아야 하는 거지?<br>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다. 엊그제 꽤 규모가 큰 행사에서 발제를 맡아 무대에 올라 정책 제안을 했었다. 비록 빨간당과 파란당의 에비 후보들은 오지 않았지만, 소규모 정당들의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선 이들도 왔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울 시장이라면 꼭 펼쳐야 할 에너지 정책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내가 긴 시간 이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한 5년 전에 세 시간짜리 강의를 했던 인연으로 만났던 특정 지역의 선배 활동가들은 나에게 "왜 이렇게 갑자기 흰 머리가 많아지셨나고?" 질문을 하시며 친근감을 보여주셨다. 우리 동네 언니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러 분이 오셨고 응원을 보내주셨다. 또 내가 환경운동과 에너지 운동을 20년 넘게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과거에 존경했던 선배도 나에게 친한 척을 해주셨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참여했던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행사 이후에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어치피 세상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에너지 정책을 떠들어도 어느 정치인 하나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여전히 매년 여름을 더울 것이고, 해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 기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을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br>허무함, 허탈감, 상실감, 슬픔, 외로움 등 내가 이 삶을 더는 지속하지 말아야지 하고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그건 내 권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감정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일단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들. 이들 때문에 섣불리 어떤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에이. 어쩔 수 없다. 일단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지. 다른 선택지는 없다.<br>에이, 모르겠다. 그냥 오늘 밤 달이 엄청 밝더라. 이 말을 건넬 수 있는 한 사람이 간절한 밤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만우절에 생각나는 사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90959</link><pubDate>Wed, 01 Apr 2026 1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90959</guid><description><![CDATA[총각<br>아주 오랜만에 총각이란 단어를 들었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흰수염이 늘어난 후로는 한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다. 아마 그 할머니께서 눈이 안 좋아 내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하신 말씀이겠지. 근데 총각이라 부르기 전에는 내 긴 머리칼을 보고 "여자여? 남자여?" 라고 말씀하셨다.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머리가 길면 여성이라는 편견을 갖고 산다. 특히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이 더 그런 듯하다. 매장에 배송 물품을 가지러 가서, 여러 개의 상자를 겹쳐 올려놓고 스쿼트 자세로 짐을 번쩍 들어올렸는데,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신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었다. 짐을 들고 일어나서 차에 물건을 실으러 가면서 내가 답했다.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때요? 짐 옮기는 일은 남녀 모두 잘 할 수있는 일인데요."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 "총각이 힘이 좋구만." 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께 아이가 대학생이예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갈 길이 급해서 그저 매장 담당자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에 올랐다. 오늘부터 담당하는 매장 하나가 바뀌었다. 내가 맡은 세 개의 매장은 가장 배송이 적은 곳 두 곳과 배송물량이 보통인 매장 한 곳이었는데, 가장 적은 한 곳이 다른 사람에게 가고, 대신 배송물량이 좀 많은 매장 하나가 나에게 배정되었다. 만약 세 매장이 모두 배송 건이 많은 날이 겹치면 정말 정신없이 바쁜 날이 될지도 몰랐다. 다행히 매장을 바꾼 첫 날이었던 오늘은 모든 매장에서 배송 건 자체가 적었다.&nbsp;<br>운전<br>96년 1월에 운전면허를 땄었다. 실기 시험을 칠 때 S 코스 후진으로 나오다가 아무래도 선을 밟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차를 멈췄다. 어쩔줄을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밟기 전이었고, 다른 코스에 있던 응시자가 선을 밟아서 탈락 안내가 나왔는데, 나는 내가 밟았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시간 초과로 떨어졌다. 그 다음 시험에서 합격했다. 한번 떨어져보고 나니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면허는 땄지만, 대학 시절에는 차를 운전할 일이 거의 없었다. 큰 슈퍼마켓에서 일을 할 때는 새벽에 열리는 농산물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기도 했고, 아주 가끔 배송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 일을 계속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제법 오랫동안 운전을 안 하고 살다가 다시 운전을 본격적을 한 것이 결혼하고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였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부천에 살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모두 서울로 출근을 했다. 아이는 장모님께 맡기는 날이 많았다. 장모님께서 봐주시기 어려운 날엔 아내가 사무실에 데리고 나갔고, 그것도 어려운 날엔 내가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다. 기저귀와 분유병과 분유통 등이 든 큰 가방을 차에 싣고, 아기를 데리고 장모님 댁에 들러 아기를 맡기고 출근했다. 퇴근할 때는 장모님 댁에서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br>아기를 데리고 운전을 했기 때문에 조심조심 천천히 다녔다. 원래는 그리 느긋하게 운전을 하는 편은 아닌데,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을 태우고 운전을 할 상황이면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조심히 운전을 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을 해온 습관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배송 일을 맡아 하면서 초반에 그렇게 좀 느긋하게 운전했더니, 도저히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배송 건수가 많은 날에 앞의 매장에서 조금 오래 걸렸더니, 뒤쪽 매장들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왜 안 오시냐고? 그날 깨달았다. 적어도 혼자 배송하는 때만이라도 부드럽게 운전하는 습관을 버려야하겠구나. 마침 그때쯤 배송 일을 오래 해온 선배 한 사람이 매장들을 함께 돌아주며 본인이 어떻게 하는지, 어떤 길로 다니는지 등을 알려주셨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고 예전에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셨던 어르신들 댁으로 농활을 함께 가면서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던 기억도 있어서, 이 분이 평소 운전을 좀 거칠게 하는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분이 운전대를 잡고 다니는 동안, 내가 매장들을 돌고 배송을 다녔던 시간들보다 확실히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 나도 평소 운전 습관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걸리는 것들을 없애나가고 있다. 그리고 확실히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대신 예전에는 앞 차가 조금 천천히 다니더라도, 가끔 초보 운전이라고 써붙인 상태로 좀 어이없는 행태를 보여도 그냥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 지금은 도로 위의 1분 1초가 아까워 나도 모르게 조바심을 내곤 한다. 확실히 도로 위에서 운전으로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br>기다리던 책이 왔건만, 잠시 펼쳐본 후로 다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제 4월이 되었으니, 조금은 시간 여유가 생기겠지. 이젠 시간이 많지는 않더라도 짧게 짧게라도 책 읽은 여유가 생기겠지. 얼른 이 글을 마치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nbsp;<br>노트북을 켜자마자 잠깐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트럼프가 죽었다는 기사가 있더라. 순간 놀랐으나, 곧 오늘이 만우절이구나 깨달았다. 이젠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 만우절에 돌연사 했던 지인이 생각났다. 아, 안된다. 오늘은 슬픈 감정에 빠져들 여유가 없는 날. 오늘 일정 다 마치고 나중에 밤에 그 지인을 떠올리던가 해야지.]]></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정치와 에너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81445</link><pubDate>Sun, 29 Mar 2026 18: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81445</guid><description><![CDATA[몸과 스트레스<br><br>3월의 마지막 주 주말이 되어서야 드디어 총회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는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한 주였다.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총회를 앞두고 뭔가 아쉽고,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현실적인 한계들에 계속 부딪혔다. 결국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로 그걸 인정하기까지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함께 총회를 준비했던 동지이자 친구는 며칠째 두통을 호소했다. 다행히 나는 살면서 두통을 심하게 느낀 기억이 없지만, 예전에 애들 엄마가 편두통으로 엄청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았기에, 이 두통이란 증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두 가지 통증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극심한 피로감이다. 평일에 밤 늦게까지 혹은 새벽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이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이 탓도 있을 것이고,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 최근에 피로를 이유로 운동을 안 하고 있어서 그게 원인일 수도 있을텐데, 지난 주에 정말 며칠동안 피로감이 너무 컸다. 평일에 좀 무리를 하더라도 주말에 잠을 몰아서 자면서 피곤을 풀어야 하는데, 계속 주말에도 일정이 생겨서 푹 쉬지 못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br>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가끔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의 쪽글들을 읽기 위해 페이스북을 뒤진다. 그러다 어느 지인이 올린 '불광천 벚꽃 마라톤' 소식을 보았다. 이번이 세번째 대회인데, 그는 첫회부터 올해까지 세 번 모두 참여했었다고 적었다. 나는 작년 이맘때 두 번째 대회에 참여했었다. 대회장에서 이 글을 올린 그와도 마주쳤었다. 그때 나는 혁신파크 매각 반대 몸자보를 메고 달릴 예정이었고, 그도 이 몸자보를 함께 메고 달리겠다고 해서 몸자보를 전달하고 돌려받기 위해 만났었다. 작년 대회 때는 정말 최악의 몸 상태로 참여했었다. 전날 중요한 일정이 있었고, 새벽까지 몇몇 사람들과 토론이 이어져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달리기에 참여했었다.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었다. 달리기 중에 김미경 구청장과 황영조 씨가 여러 명의 경호원들에게 둘러 쌓여 걷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 앞에서 몸자보가 보이도록 항의 액션을 하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었다. 결국 원하는 만큼의 항의 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괜히 오버하다가 쫓겨나기 보다는 완주해서 결승선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혁신파크 매각 반대"를 외치는 것이 낫다고 결론을 내리고 구청장 일행을 제치고 떠났다. 그리고 생각했던대로 결승선에서 아주 큰 소리로 세 번 외쳤다. 당시 결승선에서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힘을 짜내는 참가자들을 독려하던 사회자는 내가 외치는 소리에 조금 당황에서 처음엔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내가 세 번을 외치고 나서야 비아냥 대는 말투로 "네, 잘 알겠어요." 라고 말했었다. 암튼 올해 대회는 전혀 소식을 접하지 못했었다. 보통은 작년 참가자들에게 문자로 올해 대회 소식을 알리는데, 다른 대회들은 대부분 그러던데, 이 대회는 접수 소식 자체를 모르고 지나쳤다.<br>그러고보니 올해는 아직 대회 신청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정보를 찾는 것조차 안 했었다. 작년에는 따뜻한 봄에 대회를 뛰어보고 싶어서 겨울에 자주 달리기 대회 정보를 찾아다녔었다. 그때는 개인 기록 갱신에 좀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작년 봄 양천마라톤에서 개인 기록을 세웠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늦가을부터 달리기에 대한 내 열정이 조금 식어버린 것도 같다. 그 전까지는 26년에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는 것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고, 가끔 20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달리기도 했었는데, 늦가을부터는 짧은 거리만 가끔 달릴 뿐, 10킬로 정도의 마음만 먹으면 그냥 달릴 수있는 거리조차 시도를 안 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억났는데, 그때 즈음에 어느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었고, 대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참가비 입금 요청을 놓쳐버려서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었다. 뒤늦게 참가비 입금 마감일이 지난 후에야 그 연락이 왔었다는 것을 보고 주최 측에 연락해봤는데, 이미 시간이 지나버려서 방법이 없다고 답이 돌아왔었다. 그래, 이거 때문에 내 마음에서 달리기가 잠시 멀어졌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4월이니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 대회 소식도 좀 알아봐야지.<br>노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스트레스를 막을 방법도 없다. 점점 늙어가는 몸으로, 점점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운동을 하는 방법 밖에 없다. 달리기도 다시 시작하고, 운동도 다시 해야지. 매일 피곤하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 둬야지.<br>전쟁<br>분단된 나라에 살면서, 오래 전에 군대에 다녀온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거의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구 전체를 두고 본다면 아마 인류 역사상 전쟁이 아예 없었던 시기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국지전이나 내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역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으로 생각하면 내가 지금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다행이라 여길 수있을 것이다. 다만 군인으로 복무했던 기간은 아쉽다. 2년 2개월이라는 기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전체로 보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일 수 있는데, 내 인생의 일부를 사람을 죽이기 위한 병기로서 살았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었고, 스스로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닌 그냥 하나의 물건으로 나 자신을 규정하고 살았던 시간이었다.&nbsp;<br>최근 전쟁 때문에 종량제 봉투가 품절 상태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다. 실제로 동네 편의점에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기도 했었고, 어제 총회를 준비하면서 누군가에게 종량제 봉투 하나를 사오라는 부탁을 드렸었는데, 그가 근처 가게 세 곳을 돌아봤지만, 모두 물량이 없다고 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북한의 핵 도발과 분단 현실에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르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미국에서는 뭔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마트를 털어서 생필품을 사재기 한다고, 그 중에서도 특히 화장지를 사재기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었다. 중동의 전쟁으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그로 인해 한국에서 종량제 봉투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이를 사재기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참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br>당장 지금 내 삶의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먼 나라의 전쟁 이야기에 마음을 쓰기가 어려운 현실이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계속 마음에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죄 없는 생명이, 너무나도 소중한 생명이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구나. 결국 욕심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인간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잘만 살아가는데, 힘 없는 약자들만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nbsp;<br>정치와 에너지<br>지방선거 때문에 분주한 사람들의 소식이 간간히 들린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정당은 우리나라 선거법과 정당법 상 아직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창당하자마자 헌법 소원을 냈었는데, 헌법재판관 9명 중 과반 이상인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정족수인 6명 미만이라 결국 기각 판정을 받았었다. 현실적으로 법외 정당이 선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단 세 개 밖에 없는 지역정당 중 거의 유일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우리 당도 이젠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다. 뭔가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할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다.<br>작년 4월 스페인 대정전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가 드디어 나왔다는 소식을 읽었다. 그간 대부분이 재생에너지를 원인으로 지적해왔는데, 공식 보고서에서는 단순하게 하나의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가 원인이 아니라고 밝히며, 여러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언급했다. 복합적인 원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력망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일이고, 결론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전력망이 문제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소식을 인용해 전하는 우리나라 전문가는 우리나라도 같은 문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전력망 자체도 분산형으로 유연화되어야 하는데, 전력망은 여전히 낡고 변하지 않는데, 에너지원만 변하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2011년에 블랙아웃을 겪고 정부와 에너지 전문가들이 한 일은 아주 단순히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리는 일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었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비난도 많이 받았다. 왜 발전량을 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요 관리와 망의 유연화 자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정책은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이 결정하는 법. 결국은 업자들과 거기에 붙어서 기생하는 전문가 라는 인간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으로 흘러온 것이다.&nbsp;<br>윤석열이라는 멍청한 인간이 물러나고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여전히 에너지 정책은 문제 투성이다. 아니, 핵발전소를 다시 늘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핵은 결코 친환경 에너지원도 아니고 안전한 에너지도 아니며 경제성 있는 에너지도 아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들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도 구청장과 국회의원 시절에는 저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떠들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장관이 되더니 멍청해진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왜 정부가 핵을 다시 외치기 시작하는가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에너지 정책을 결정해온 핵 카르텔이 여전히 너무나도 견고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본인의 공약을 뒤집으면서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짓겠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긴 시간 인구에 회자될 코메디를 펼쳤다. 탈핵은 선언했지만, 핵발전소는 계속 짓겠다는 공언이었다. 이게 사람들이 웃으라고 일부러 한 말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결정한 에너지 정책이었다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문재인도 그렇고 이재명도 결국은 핵 카르텔에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굴복한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히 표 때문이다.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본인들의 정체성에 딱 맞는 너무 당연한 행태이고, 저쪽 빨간당 지지세력에게서 조금이라도 표를 빼앗아 오기 위해 핵 카르텔과 손을 맞잡은 것이리라. 아니 굴복한 것이리라. 그래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SMR 같은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들어 댄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여의도 국회 앞에 SMR 단지를 만들어라. SMR 이 소형이라고 마치 유연화 자원인 것처럼, 마치 경제성이 좋은 것처럼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경제성이 좋으려면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량생산 하려면 한 두개만 건설해서 될 것이 아니고 단지 형태로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지어야 한다. 이래놓고 유연화 자원이라고? 아니 그리고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이건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핵발전소다. 3월 11일에 후쿠시마 핵사고 15주년을 맞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사고 현장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르는 척 하겠다는 건가? SMR 을 단지 형태로 운영하면 결국 고리(신고리 포함), 월성(신월성 포함), 울진(공식명칭은 한울, 신한울), 영광(공식명칭은 한빛)과 같이 대단지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존 핵발전소와 SMR 은 과연 뭐가 다를까? 차라리 기존 핵발전소는 나름 건설과 운영방식이 검증된 것이라고 본다면,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것을 떠들어 대는 모습은 참 어이없다. 결국 국민들을 바보로 생각한다고 여길 수밖에.&nbsp;<br>지난 주 목요일이 마감이었던 발제문을 총회를 핑계로 미뤄두었다가 이젠 더 미룰 수 없어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런데 정작 발제문은 쓰지 않고 정보만 찾아보다가 이 글을 쓴다. 얼른 발제문을 쓰고 집에 가서 쉬어야 내일 또 일을 할 수 있을텐데. 딴 짓 그만하고 이제 일하자.]]></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힘든 하루를 보낸 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73057</link><pubDate>Wed, 25 Mar 2026 2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73057</guid><description><![CDATA[오늘은 여러모로 조심해야 하는 날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21세기에, 2026년에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참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신을 믿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일진이 사납다는 미신을 믿어? 오늘 유난히 운이 좋지 않다는 미신을 믿어? 이 21세기에?<br><br>오늘따라 유난히 늦게 일어났다. 평소라면 집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이나 라면을 먹고 출근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건 굳이 밥을 안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나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하는 입장이라 출근 전에 밥을 안 먹으면 나중에 너무 힘들어서 꼭 출근 전에 뭐라도 먹어야지 생각했었다. 출근하는 길에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를 샀다. 그리고 출근해서 차 키를 받아들고 차에 탔다. <br><br>내가 가야할 곳은 매장 세 곳이다. 세 매장에서 각각 몇 건의 배송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날은 두 건이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예닐곱 건이 있기도 한다. 평균적으로는 매장마다 서너건 수준이다. 사무실에서 출발해 세 곳의 매장을 단순히 돌기만 해도 1시간 반은 훨씬 넘는다. 각 매장마다 배송건이 적어도 두세 건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고 일을 하고 있다.<br><br>첫번째 매장으로 이동하는 길은 대개 차량이 많아서 막힌다. 거기서 김밥을 먹었다. 평소였다면, 굳이 도로 위에서, 차 안에서 밥을 먹고 싶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어차피 하루 하루 살아가는 입장에서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br><br>첫번째 매장 바로 앞에서 주차를 하는데 갑자기 시야 바깥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나는 후진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놀랐던 나는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피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시야 밖에서 갑자기 끼어들듯이 나타난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 떠나갔다.  오늘 좀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순간에 처음 했다. 어쨌거나 사고가 나면 무조건 내 손해라는 생각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 두번째 매장에 들렀다가 배송을 간 곳은 아는 사람 집이었다. 친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겠지만, 긴 시간 활동가의 삶을 살아오면서 어느 특정 시점에는 친했던, 그리고 여전히 중장기적 관점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활동가였다.<br><br>이 대목에서 한 편으로 위화감이 생기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잘 알고 지냈던, 꼭 친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던 몇몇 활동가들이 아파트로 이주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로제라는 가수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불러 유명해진 아파트 라는 노래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br><br>내가 가진 위화감은 두 가지 측면이다. 일단 하나는 대다수의 활동가들이 생계 유지조차 어려워 헐떡이는 시대에 같은 활동가라고 생각했던 누군가는 넓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구나 하는 부분이다. 나도 솔직히 그런 생각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한편으로 지금 시기가 더욱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시기라는 생각에 더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더 어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까 일을 마치고 잠시 마주쳤던 한 선배는 그 자신과 나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살았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고 다같이 고민해보자는 말을 했다. 글쎄, 이게 고민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내가 아무리 열심히 활동했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리라.<br><br>아, 오늘 하마터면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칠 뻔하고(물론 실제로는 좀 더 여유가 있었고, 그도 별 불만없이 돌아갔지만),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이야기, 그리고 잠시 주차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을 쓰려고 했는데, 다 의미없을 것 같다. 매일 매일 열심히 돈을 벌어야 이 생활도 유지가 될테니. 다른 활동가에 대한 배신감은 사실 의미없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을테니.<br><br>고속철도 폭탄 설치 영화 두 편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썼다. 한 편은 일본 영화 [신칸센 대폭파]이고 다른 한 편은 대만 영화 [96분]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두 영화를 봤던 것은 작년 연말이었던 것 같다. 올해 2월쯤 이 둘을 엮어서 글을 써야지 생각이 들어서 각각 영화를 다시 봤다. 그런데 하필 그때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글을 못 쓰고 지나쳐버렸다. 다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어제 밤에 글을 쓰기 시작해 새벽에 완성했다. 평소 내 글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조금 아쉽지만, 더 제대로 손 댈 시간이 없을 거라고 본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br><br>이 글을 읽고 싶은 분을 위한 브런치 글 링크<br>https://brunch.co.kr/@cb83c338001e498/8<br><br><br>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상, 뭐 하나 좋은 소식 따위 없는 지루한 일상,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살아도 다 거기서 거기인 삷을 살 뿐인 가련한 인간에게 바친다.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인생이라고.]]></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광화문은 오늘</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63818</link><pubDate>Sat, 21 Mar 2026 12: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63818</guid><description><![CDATA[광화문<br><br>어제 하루종일 정부에서 발송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말로 한 번, 영문으로 한 번. 여러차례 왔는데 계속 같은 내용이었다. 낮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광화문에 가지 마라는 내용 같았다. 저녁에 총회에 참여하고 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의 문자가 왔다.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한 무리의 연예인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도 전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들이 세상의 전부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나도 젊은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들 때문에 온 나라가 이렇게 난리통이 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아, 옛날에 뉴키즈온더블럭이 우리나라 왔을 때에도 난리라 났었다고 했던가? 압사 사고로 한 명이 숨지고 약 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래 이태원 참사 같은 사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제발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광화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br><br>역할<br><br>2월과 3월에는 시민단체와 협동조합 총회 시즌이라 엄청 바쁘다는 얘길 계속 썼는데, 어제는 내가 회원으로 적을 두고 있는 시민단체 한 곳과 감사를 맡고 있는 협동조합 한 곳의 총회가 겹쳤다. 시민단체에는 미안하지만, 감사로서 협동조합 총회에 빠질 수가 없었다.<br><br>여기 조합에서는 거의 매번 서기를 맡아 의사록을 작성해왔다. 어제가 제8회 총회였는데, 아마 내가 서기를 맡은 것이 6번? 7번 정도 될 것이다. 서기라는 역할을 맡아 총회 의사록을 작성하는 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맡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매번 미리 부탁하지 않고 너무 당연하게 내가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기분이 나빴다. 최근 몇 년간 계속 그랬었다. 어제는 일부러 노트북을 안 갖고 갔었다. 또 서기를 맡아달라고 하면 노트북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잠시 쉬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물어보고 말았다. 오늘 서기는 누가 해요? 총회를 총괄하는 이사이자 친한 선배는 너무 당연한 표정과 말투로 니가 해야지. 라고 말했다. 나 노트북 없는데. 라고 했더니 그럼 노트북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갖다달라고 하라고 말했다. 어차피 지금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서기를 맡길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가 노트북을 가져오는 것이 낫다 싶었다. 그 선배의 차를 빌려서 노트북을 가지러 다녀왔다.<br><br>감사는 총회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고 직접 그 보고서를 낭독한다. 나는 총회 시작 전부터 의사록을 작성하느라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데, 감사 보고 순서가 되어 기록을 멈추고 감사보고서를 읽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집에서 감사보고서가 있는 쪽수를 찾으면서 감사도 맡고, 서기도 맡아서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네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저에게 한 가지 역할만 맡겨주세요. 서기는 다른 사람이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총회가 진행되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듣고 정돈된 말투로 고쳐서 기록하는 일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총회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뒷풀이 음식을 먹거나 할 수 있지만 서기는 나중에 정리하려고 미뤄둔 내용을 마저 기록해야 하고, 놓친 내용이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내용에 오류는 없는지 여러차례 점검해야 한다. 총회가 끝나고도 꽤 긴 시간 내가 혼자 의사록을 마무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한쪽에서 먼저 뒤풀이를 시작해 먹고 마시고 놀고 있었다. 엎드려 절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미리 부탁하지도 않고 너무 당연하게 일을 맡기는 태도와 남들 다 놀 때에도 혼자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누구도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정말 내년에는 절대 서기를 맡지 말아야지.<br><br>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준비하는 총회에서도 너무 당연하게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서기를 맡기고 있었다. 물론 나는 미리 부탁하면서 매번 맡겨서 미안하다고 여러 차례 사과를 하고 당일 뭔가 불편한 점은 없는시 신경써서 챙겨주고, 총회 끝나고 내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그가 혼자 의사록을 마무리 할 때 고생시켜 미안하고, 수고 많았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 내가 서기를 주로 맡아온 협동조합은 총회 의안이 상대적으로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챙겨야하는 조합은 총회 안건이 아주 어렵고 복잡하다. 매번 서기를 맡아주는 그 친구가 아니면 그 내용을 즉각 기록하기가 쉽지 않다. 그 사람 외에는 정말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매번 미안한 마음에도 그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br><br>어제 일을 겪으며 역지사지 라는 말을 다시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부터 그 친구에게 훨씬 더 고마움을 표현하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을지, 정 안되면 내가 서기를 맡더라도 한 번은 서기를 맡지 않고 맘 편히 총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드디어 총회 시즌도 마무리되어 간다. 다음주 토요일에 임원을 맡고 있는 총회 하나를 더 마치면 드디어 지겨운 총회 시즌이 끝난다. 어제 뒤풀이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여러 시민단체와 협동조합에 나처럼 겹쳐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우스개 소리로 법이나 조례로 몇 개 이상 역할을 못 맡게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속으로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도 좀 퇴근이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br><br>암튼 이제 일주일 남았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토요일이지만 또 회의하러 가야한다. 내일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잠만 자야겠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시간에 대한 감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60403</link><pubDate>Thu, 19 Mar 2026 2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60403</guid><description><![CDATA[시간을 인식하고 인지하는 능력<br><br>요즘 한자를 공부하면서 새삼 우리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깨닫는다. 어느 외국어가 어렵지 않겠냐만, 우리 말은 특히 더 어렵다고 본다. 한자를 배우며 그간 한자어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였구나 생각하며, 우리말을 반백년 배운 사람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했다.<br><br>예전부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에 대해 이 서재에 몇 번 글을 썼었다. 인지심리학 책에서 읽었던 것으로 우리 인간의 뇌는 비슷한 경험들을 묶어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저장하기 때문에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고, 큰 변화가 없는 사람은 그 일상 전체를 통으로 엮어서 인식하고 기억한다고. 그래서 뭐라도 조그마한 차이점이 있어야 그 날을 다르게 인식하고 따로 기억하고, 매번 거의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면 그 날들은 나중에 떠올리고 싶어도 기억하지 못 한다고 했다. 물론 완전히 같은 날은 있을 수 없겠지만, 거의 차이가 없는 날은 제법 있을 것 같다. <br><br>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씻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서 같은 버스를 타고, 비슷한 시간에 일터에 출근한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업무를 하고, 매일 같지는 않겠지만, 몇가지 음식들 중 반복 선택해 점심을 먹는다. 오후도 역시 비슷한 영역의 업무를 하고 야근을 하던 퇴근을 하던 그렇게 하루가 간다면, 그 하루들의 연속되는 일상은 별개의 하루 하루로 인식하고 저장하기 어렵다는 얘기다.<br><br>그리고 인간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일과 겪어본 일이 많아서 점점 더 개별적으로 따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거라고.<br><br>이쯤에서 잠시 인식(認識)과 인지(認知)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나는 앞서서 계속 인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느낌상 인지보다는 인식이 맞는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인지를 그대로 넣어도 뉘앙스는 좀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다른 단어이고, 고유의 뜻이 있을텐데 사전만 찾아보아서는 잘 모르겠다. 이 둘을 좀 더 엄격하게 구분해 쓰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br><br>암튼 내 기준으로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30대 중후반이었다. 그때 이미 시민단체 실무자로서는 해볼 수있는 어지간한 업무를 두루 익혔고, 많은 경험을 쌓았었다. 더불어 출판사에서도 영업관리와 마케팅 기획 그리고 편집까지 여러 일들을 익혔었다. 더이상 새로운 경험이 없이 알고 있는 일들, 해봤던 일들만 경험하게 되면서 시간에 대한 내 인식과 기억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br><br>업무 외에도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젊은 시절엔 전국단위 사업에 대응하면서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했지만, 30대 중반부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좁아지고 매번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이혼 후의 내 삶은 그 이전에 비해 아주 단순해졌다. 아니 개인적인 삶. 즉, 사적 영역을 대폭 축소하고 공적 영역 확 늘려서 그냥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줄였다.<br><br>암튼 큰 변화 없이 10년 정도를 비슷한 흐름으로 살아와서 시간이 물 흐르듯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다시 하루 하루가 길어진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뇌가 시간을 정상적으로 인식하는구나 싶다.<br><br>물론 당연히 이 일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되겠지. 어떻게든 일상에서 자주 변화를 주고, 그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여 뇌가 그냥 다른 일상들과 엮어 뭉뜨그려 버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점점 늙어가는 처지에 그 노화가 더 빨리 다가오는 것처럼 느끼고, 시간이 이렇게 휙 지나가는구나 느끼는 일이 너무 싫고 슬프고 허무하게 느껴진다.<br><br>2월과 3월은 마치 퇴근이 없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딱 다음주까지만 참으면 된다. 내일 중요한 총회가 하나 있고, 담주 토요일에 더 중요한 총회가 있다. 그러면 내가 올해 신경쓰고 챙겨야 할 총회들이 모두 끝난다. 4월이 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까? 아니다. 벌써부터 모든 주말에 일정이 생겼고, 평일 저녁에도 회의 등 일정들이 생기고 있다. <br><br>좀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쉬어보기도 하고 그래야 내 뇌가 아, 이날은 좀 특별한 날이구나 하고 인식해 기억할텐데, 매번 저녁마다 일정이 생겨 무언가 집중해 일하다보면 또 같은 일상이구나 생각할 것이다. 계속 끊임없이 생각해야겠다. 변화를 주자. 의미를 두자. 내 소중한 일상이 흩어져버리지 않고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하자.]]></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파이의날 +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51420</link><pubDate>Sun, 15 Mar 2026 13: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5142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98601&TPaperId=171514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7/57/coveroff/8901098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일상<br>드디어 큰 언덕을 하나 넘었다. 10년 가량 활동가로 일했었고, 지금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총회를 마쳤다. 활동가로 일했던 약 10년 동안 12월부터 3월까지 총회를 준비하는 일이 정말 힘들고 버겁다고 느꼈었다. 임원이 되고 난 후로는 내가 직접적으로 압박을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의 입장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음의 스트레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중요한 책임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그만둔 그 공백을 느낄 수 밖에 업었다. 잘난 척을 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지만, 내가 잘 해왔던 어떤 지점들이 이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젠 실무자가 아님에도 나에게 어떤 책임을 맡아 달라는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는 그 요구를 무시했었다. 현재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계속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 생각없이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긴 시간 내 삶을 바쳐 활동했던 조직이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누가 뭐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긴 시간 이 조직의 실무 책임자로 일했기에 뭐든 잘 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생계를 이어갈 돈을 벌어들일 수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할 것인가 하는 숙제는 남는다.&nbsp;<br>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계비는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다. 힘들다. 여기서 또 한 번 나이를 깨닫는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내가 딱히 원하지 않았어도 여기저기 나를 원하는 곳들이 제법 많았다. 남들보다 일을 잘 한다는 자부심은 대학시절부터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이 나이를 감안하고 불러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실무 책임자도 나보다 한참 어릴 것이다. 중간 간부나 실무 책임자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일부러 채용한다는 선택은 내가 생각해도 쉽지 않다.<br>총회 1부 진행을 맡아 대본을 수정하면서 3월 14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 찾아봤다. 일본이 만들어낸, 아니 일본의 제과업계에서 만든 화이트 데이 라는 단어는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는 날이라 무시했다. 검색해보니 원주율을 의미하는 파이의 날이라고 기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이 일어난 날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다른 여러 역사 기록들이 살펴보다가 마지막으로 눈에 띈 것은 칼 맑스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무심코 지나가는 하루 하루가 모두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날이겠구나 싶었다. 암튼 앞으로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 라는 쓰잘데기 없는 이름으로 기억하기 보다 파이의 날이나 칼 맑스의 기일로 기억해야겠다.<br>15주년<br>3.11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15주년이 지났다. 평일이었는데 광화문 인근에서 전국단위 행사가 있었고, 인간 띠 잇기 행사도 있었다. 나도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서 나가지 못했다. 매년 이 맘때 반복하는 말이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이 사고를 수습할 수 없다. 현재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은 아직 이 정도로 심각한 방사능 피폭에 대응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15년이나 지났으니, 후쿠시마 핵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중에 가장 유명한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는 폭파된 건물을 약 6개월만에 콘크리트로 덮었고, 콘크리트의 수명 약 30년이 지날 즈음에는 더 확실하게 방사능을 막을 수 있는 소재로 돔 형태의 구조물을 덮어 씌웠다. 그래서 실제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이 새어나온 기간은 약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체르노빌은 발전소 하나만 폭발했고, 그 용량도 후쿠시마에 비하면 적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발전소 한 기당 용량도 체르노빌에 비해 훨씬 크고 무려 4기가 폭발했다. 그 4기는 모두 설계 수명이 끝나서 폐쇄되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수명을 연정하여 운영한 발전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소 폭발이 일어난 1호기에서부터 4호기까지 4기의 발전소와 달리 같은 위치에 있었던 5호기와 6호기는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 핵발전소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들의 내구도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nbsp;&nbsp;<br>매년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현재 인류는 핵발전 이라는 기술을 감당할 수 없다.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난 폐기물인 핵연료봉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명(콘크리트 내구 연한)이 끝난 발전소를 폐기하는 기술도 불완전하다. 더욱이 후쿠시마와 같이 좁은 지역에 4기나 되는 고용량의 발전소가 수소폭발을 일으켜 방사능이 유출된 경우 폭발한 발전소의 건물을 덮거나 멜트다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핵연료를 수습할 수 있는 기술도 없다.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4기의 발전소는 폭발이 일어난 상태 그대로, 쉽게 말해서 뚜껑조차 덮지 못한 상태로 매 순간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고, 어떤 상태인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쏟아붓는 냉각수가 그대로 방사능 오염수로 변해 매일 매일 쌓이고 있다. 일부 방사능 핵종의 반감기가 10만년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는 바다에 그냥 방류하고 있다. 아무리 태평양 바다가 넓고 깊어도 매일 버리는 방사능 오염수가 몇 십년 이상 쌓여도 안전할까?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난다고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는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처리하고 뚜껑을 덮을 수 있을까? 과연 일본 정부가 공언한 대로 2051년이 되면 데브리를 수습하고 폐로 처리를 할 수 있을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꽤 높은 확률로 불가능 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거짓말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고,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nbsp;<br>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이라는 인간이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에 아직 공정률 약 30%에도 못 미쳤던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건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가 나중에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공론화를 하겠다고 헛소리를 하며 국민들을 배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문재인은 그러고도 본인은 탈핵(핵발전 산업을 그만둔다는 입장)을 선언했는데, 정작 핵발전소는 계속 짓고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동의 없이 추행은 저질렀지만 성범죄는 아니다? 이게 한 나라 대통령이란 인간이 버젓이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래, 어쨌든 탈핵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말이라도 탈핵이라고 떠들었던 문재인과 달리 이재명은 핵발전소를 더 많이 짓겠다고 한다. 비상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낸 광장의 의지를 배반하는 행위이고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당연히 모를 리 없다. 이렇게 국민들을 기만해도 자신의 지지율이 전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 따위, 국민의 건강 따위 아무 상관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인 것이다. 이재명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개 돼지라는 표현을 쓰려다가 개와 돼지에게 미안해서 금수라고 썼는데, 그러면 오히려 모든 생명에게 미안한 일인데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그냥 씀)&nbsp;&nbsp;<br><br><br>나이 듦<br>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김없이 "도인"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긴 흰 머리에 흰 수염. 간달프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는데, 곧바로 반박이 들어왔다. 간달프 만큼 멋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간달프만큼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도인이란 단어는 도를 닦는 사람이라는 뜻일텐데, 단 하루도 도를 닦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실제 도인에게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일이라고 본다. 감히 도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평범한 범인에게 도인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걸 또 주저리 주저리 떠들기는 참 쉽지 않다. 또 다른 반응은 "예술하는 사람" 혹은 "예술가"다. 음, 예술가의 정의는 뭘까? 아니 예술의 정의는 뭘까? 나는 어렸을 때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곧바로 포기했었다. 나중에 뒤돌아 생각해봤을 때 남들보다 조금 잘 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는가 깨달았다. 음악도 딱히 잘했던 적은 없었다. 락 음악을 좋아했고, 멋있어 보여서 기타를 혼자 배우기는 했지만, 농활 갔다가 손가락을 다친 후로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악기는 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시도할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한 오륙년 전에 두성을 배워서 노래는 조금, 그러니까 아주 조금 할 줄 안다고 말할 수준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평범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세상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러니 미술로도 음악으로도 예술가라는 단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나마 단 하나 글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어쩌면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은 그냥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는, 아무 의미 없는 잡글에 불과하다. 역시 예술가라 부를 수는 없겠다.&nbsp;&nbsp;<br>그냥 나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줄 수는 없을까? 내가 아무리 남들과 달리 조금 독특한 외모를 하고 있다 해도,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고, 예술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굳이 일부러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아무리 듣기 좋은 이야기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nbsp;<br><br>책 구매<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분명히 집에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소설의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팔았던 기억도 없고 버린 기억도 없었다. 집에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몇 시간을 찾고 또 찾았는데 없었다. 아, 다시 사려고 보니 절판이었다. 오래 전 책을 읽었던 당시에 아무런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웠고, 갑자기 이 책을 소개한 강양구 기자가 원망스러웠다. 중간까지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왜 결말은 기억나지 않을까? 궁금하고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고책 알림 등록을 해두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어제 한창 바쁠 시간에 알라딘 중고 매장 중 한 곳에 이 책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왔다. 아무리 바빠도 이 책은 사야 한다는 생각이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번에도 배송비가 아까워서 해당 중고매장에서 책 두 권을 더 담은 후에야 주문했다.<br>책이 도착하면 읽고 있던 책들을 다 제쳐두고 이 책부터 먼저 읽어야지. 얼른 와라. 이렇게 책을 기다려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37/57/cover150/8901098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375728</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새 이웃</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36722</link><pubDate>Sat, 07 Mar 2026 23: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36722</guid><description><![CDATA[새 이웃<br><br>2월과 3월은 총회 시즌이다. 후원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많고 그 중에 일부에서는 운영위원 등 역할을 맡고 있어서 총회 준비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몇몇 협동조합에서는 이사와 감사 등을 맡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사를 맡고 있는 조합 두 곳에서는 올해 총회 준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는 모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노동이지만,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난주와 이번주는 이런 일들로 많이 바빴다. 하루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서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총회 준비 일을 했다. 저녁에 또 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간단히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일을 했다. 새벽까지 일을 해도 맡은 일들을 다 끝낼 수가 없었다. 잠시, 아마 한 사십분 가량 졸다가 깼다. 의자를 여러개 붙여서 잠시 누웠는데 막상 누으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한동안 조용한 음악을 켜둔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좀 쉬다가 다시 일을 했다. 아침이 된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데 공동 사무실을 함께 쓰는 분이 출근하셨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세수도 하고 이를 닦았다. 다시 일에 몰두해 점심 무렵에야 급한 일 두 건 정도를 마무리했다. 그날 저녁에 또 회의가 있어서 고민했다. 집으로 가서 서너시간 쉬다가 돌아올까? 오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어차피 할일은 남아 있으니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운동을 하고 씻고 올까? 집에 일단 가면 피곤하니까 다시 나오기 싫어질 것 같기도 하고 잠시 누워있다 나와야지 하다가 그냥 잠들어버려서, 회의 시간까지 깨지 못할 것 같기도 해서 선택지에서 지웠다. 운동도 몸을 쉬어주지 못해서 오히려 이런 날에 무리하면 다칠 것 같았다. 역시 삭제. 그냥 좀 쉬엄쉬엄 일을 하며 저녁까지 버텨야지 싶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한 십여년 전에는 며칠 연속 밤을 새워 일을 해도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5일 동안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씩만 쪽잠을 자고 일을 했던 일이다. <br><br>평소에도 밤에 일을 해야 집중이 잘 되어서 낮엔 주로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를 다니고 밤에 문서 작업을 하는 편이라, 하루나 이틀 정도 잠을 못 자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나이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예전에는 밤샘을 하면 집중력이 좀 떨어져도 몸의 피로는 좀 덜 느꼈는데, 요즘은 집중력은 오히려 괜찮은데, 몸의 피로를 확실히 느낀다. 암튼 너무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허리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무선 이어폰을 챙겨 외투를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몇 군데 업무 통화를 할 일이 있어서 그 통화들을 몰아서 하면서 주변을 걸었다. 봄이지만 꽃샘추위는 여전해서 제법 쌀쌀했다. 무선 이어폰 덕분에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걸었다. 서너명과 한 시간 반 넘게 통화를 하면서 골목길들을 돌아다녔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동료 활동가가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얻어 먹으러 갔다. 새벽에 배가 고파서 컵라면 하나를 먹은 후로 첫 끼니였다.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밥을 먹고 돌아와 일 이야기를 좀 하다보니 회의 시간이 다 되었다. 회의는 길었다. 다뤄야 할 건은 많고 합의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금방 지쳤다. 나는 그때 이미 출근한지 36시간이 지나서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남은 집중력을 모두 짜내어 원활한 합의가 이뤄지도록 노력했다. <br><br>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몇몇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음식을 사러 나갔다. 공식 회의 자리에서는 차마 나누지 못했던 날선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래서 뒤풀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의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회의가 늦게 끝나서 뒤풀이도 늦게 끝났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이었다. 남아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돌아가고 누군가가 나에게 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눌 말도 많았고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왜 내 몸은 하나 밖에 없을까? 내 몸을 복제해서 하나 더 만들어 일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인공지능에게 하루 종일 일을 시켜서 서너명이 할 일을 커버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글쎄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아직은 아무리 인공지능이 일을 잘 해도 혼자 완결지을 수 없다고 본다. 나도 이번에 많은 일을 맡아서 도움을 받아보고 싶었지만, 막상 써보니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봐야 했다. 내 기준에서는 인공지능이 어설프게 만든 문서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빈 문서를 하나하나 채우는 것이 더 낫다 싶었다.<br><br>암튼 나를 붙잡았던 동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48시간은 아니었고, 출근한지 한 44시간 정도 후에 퇴근이었다. 집에 오니 현관문 앞에 작은 종이 가방이 놓여있었고, 꽃 한송이와 떡 한 팩 그리고 작은 쪽지가 있었다. 뭐지? 이건 누가 보낸 걸까? 나에게 꽃을 보낼 사람은 전혀 없었다. 이건 아마 튤립인가? 꽃에 문외한이라 뭔지 알수 없었다. 일단 집으로 들어와서 쪽지를 열어봤다. 이번에 이 낡은 빌라 4층에 새로 이사온 이웃이라 적혀있었다. 그래서 떡을 돌린 거구나 하고 이해했는데, 그런데 꽃은 왜? 이 빌라가 워낙 낡아서 이번에 그 집이 내부 수리를 좀 오래 했던 것 같다. 공사 소음이 꽤 오래 들렸다. 그래서 일부러 떡을 돌린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꽃은 왜 돌렸을까? <br><br>어쨌거나 정성이 대단한 이웃이라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이웃이랑 마주쳐도 인사도 잘 안 하는 시대에 떡과 함께 꽃을 돌리다니. 나는 이 집에 이사온 지 6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얼굴을 아는 곳이 아랫집 밖에 없다. 이삼년 전에 두 번이나 누수 문제가 생겨서 자주 소통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윗집과도 누수 문제로 소통했었는데, 그 집은 이후에 이사 나가고 새 이웃이 들어왔는데, 이 분들과는 아직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옆집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살고 있는 어르신 부부이고, 늘 함께 지내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성인이 된 자식들이 오간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오가며 얼굴을 마주쳐서 인사는 나눴지만,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어서 얼굴이 기억이 안난다. 안그래도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결코 이 분들을 알아볼 수 없다. 이번에 떡과 꽃을 돌린 이웃과 인사를 나눌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사이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br><br>공교롭게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꽃을 받았다. 하나는 작은 아이가 줬다. 2월 초 내 생일에 주려고 직접 만든 꽃이었다. 이 재료들을 뭐라 부르는 지 잘 모르겠지만, 털실과 철사 등을 활용한 것 같았다. 아이에게 받은 조화는 지금 사무실에 놓아뒀다. 이번에 받은 생화는 현관에 놓아뒀다. 덕분에 한동안 사무실을 오가며 선물 받은 꽃들을 보게 되겠네. 피곤하고 힘든 날 꽃 한 송이 덕분에 잠시 웃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아니, 벌써 경칩이 지났다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34134</link><pubDate>Fri, 06 Mar 2026 16: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3413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3608&TPaperId=171341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91/53/coveroff/89586236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032910&TPaperId=171341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61/40/coveroff/k49203291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033908&TPaperId=171341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77/11/coveroff/k4320339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어떤 실험<br>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한동안 놓쳤던 에너지 관련 소식들을 잔뜩 긁어 모았다. 트위터는 초반에 잠시 쓰다가 그만뒀고, 인스타그램도 아주 가끔 달리기 기록이나 운동 기록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고 있다. 스레드는 달리기 관련 소식들을 접하기 위한 용도로 아주 가끔 접속한다. 페이스북은 아주 오래전에는 가끔 일상 기록이나 생각 등을 올렸지만, 한 10년 가까이 개인 이야기를 올리지는 않고 있다. 활동 내용 공유만 가끔 하고, 에너지 관련 뉴스들을 공유하는 정도. 페이스북에 소식을 올리지도 않으면서 끊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팔로우 하고 있는 에너지 관련 전문가들 때문이다. 이 분들이 종종 공유하는 여러 소식들. 본인이 쓴 칼럼들 등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고, 내가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이 분들을 통해 주요 뉴스들을 접할 수 있다.<br>오늘은 어쩌다 정치인 박지현 씨의 페이스북을 보게 되었다. 2월 25일에 올린 게시물이던데, 아주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밝혀 놓았더라. 그는 이 게시물을 쓰기 며칠 전에 자신의 사진(게시물 상의 표현으로는 자신으로 보이는 사진) 2장을 올리고 이 사진들이 AI 작업물로 보이는지, 실제 자신의 사진으로 보이는지 댓글을 달아달라고 했었다. 이 게시물을 먼저 읽고 나서 해당 사진을 찾아보니 댓글이 50개나 달렸더라. 그는 절반 이상이 AI 가 '아닐 것' 이란 댓글이었다고 결과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을 실제로 만나 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럼 그 사진 두 장은 다수의 댓글이 추정한 것처럼 AI 작업물이 아닌 실제 사진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진 3장을 넣고 2,400원을 결제한 후 십여분만에 열 장의 사진을 얻었고, 그 중 자신의 평소 스타일과 가장 유사한 사진 두 장을 공유했다고 적었다. 그가 결과를 밝힌 것처럼 자신을 실제로 아는 사람들, 자신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사진을 실제 자신의 사진이라고 착각했다. 그는&nbsp;“실제 사진이어도 어차피 보정은 들어가지 않느냐”는 댓글도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아예 카메라 어플이 아예 보정한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젠 그냥 사진을 찍어도 내 모습이 아니라 보정된 가상의 나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박지현 씨는 보정된 결과물이라도 실제 나를 찍은 것이라서 인공지능이 생성한 것과는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가 이렇게 흥미로운 실험을 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인공지능으로 인물 사진들을 만들어 내는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근 정치인들이 설 명절에 한복 입은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올린 경우를 예로 들며 이렇게 손쉽게 존재하지 않는 사진을 만들어 공유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만약 누군가가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다면 스튜디오 대여 비용부터 메이크업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할 것이고, 바디 프로필을 찍을 만한 몸매를 만드는 비용도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사진을 넣고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 박지현 씨가 지불한 2,400원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인물 사진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딥페이크 음란물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인공지능에게 넣는 것은 어떤가? 그 당사자는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사용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결과물이 실제 사진인지, 만들어 낸 가상의 결과물인지 알지 못한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br>알라딘 연간 통계<br>해마다 1월에는 알라딘 서재 연간 통계를 살펴봤었다. 1년 동안 내가 쓴 글이 몇 개인지 그리고 글자수로 따지면 몇 자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내가 작년에 글을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 2025년에는 과연 글을 몇 개사 썼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봤더니 25년 통계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더라. 작년 1월에 확인했던 24년 통계가 여전히 나를 반겼다. 음, 알라딘이 이제 서재 관리를 안 하는 증거가 되려나?<br>궁금해서 알라딘이 언제부터 연간 통계를 내기 시작했는지 살펴봤더니 2011년 부터였다. 그래서 알라딘이 집계해 준 기록들을 긁어 모았다. 그리고 작년에 쓴 글은 직접 세었다. 57개였다. 24년에는 24개 밖에 안 썼던데, 그에 비하면 많이 썼구나. 2011년 이전에는 어땠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알라딘 서재에 처음 글을 썼던 건 2004년이었던데, 그 해에 7개의 글을 쓴 후로 몇 년 동안 글을 안 썼더라. 다시 글을 쓴 것이 2008년이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쓴 글도 직접 세었다. 가장 많은 글을 쓴 해는 2011년이었고, 78개를 썼었다. 그 다음이 12년으로 63개, 그 다음이 작년인 25년이었다. 가장 적은 글을 쓴 해는 2009년으로 5개 밖에 안 썼더라. 그 이후로는 적어도 20개 이상은 썼더라. 아, 2020년에 17개가 두 번째로 적은 해였네. 이왕 조사한 김에 엑셀로 표를 만들어봤다. 글을 거의 쓰지도 않았으면서 부끄럽게 뭐 이런 걸 공유하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기록이라서 올려본다. 알라딘이 25년 통계도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nbsp;&nbsp;&nbsp;<br><br><br><br>그런 일은<br>평소에는 가요를 거의 듣지 않지만, 아주 가끔 슬픈 노래들을 찾아 듣는다. 가요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와 부를 수 없는 노래로 나눌 수 있다. 남성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은 대체로 부를 수 있다. 취향이 아니라 부르지 않는 노래가 많기는 하지만 랩이 들어가는 노래를 제외하면 대부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여성 가수들의 노래들은 음역대가 달라서 부르기 어렵다. 음을 낮춰 불러도 어려운 곡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부를 수 없는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박화요비의 [그런 일은] 이 떠오른다. 이 노래가 나온 시기에는 정말 영미권 팝송만 들었고, 가요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는데, 거의 유일한 예외가 이 노래였다. 박화요비 라는 가수가 참 매력적이라 느꼈던 것은 그가 부른 [wild flower] 를 들었을 때였다. 컬러 미 배드가 부른 곡을 참 좋아했었는데, 박화요비의 곡도 참 좋았다. 박화요비가 부른 노래 중에 이 [wild flower] 와 [careless whisper]를 참 좋아했는데, 그 다음으로 좋아한 노래가 [그런 일은]이었다.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 듣는데, 다른 가수들의 커버곡들이 보이길래 하나씩 찾아 듣기 시작했다.<br>가장 먼저 들은 것은 정유진 이란 가수의 곡이었다. 영상의 설명을 보니 디아크 라는 그룹의 메인보컬이었다고 한다. 목소리도 아주 좋고, 감성도 좋았다. 그리고 깨끗하게 올라가는 고음도 인상적이었다. 이 어려운 노래를 이 정도로 부르는 걸 보니 정말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거리에서 찍은 영상이라서 더 인상적이었다. 두번째는 웬디 라는 가수였다. 이 분도 어느 유명한 그룹의 메인보컬인 것 같다. 와! 이 분도 노래를 정말 잘 하더라. 정유진도 엄청난 노래 실력이라 느꼈는데, 웬디는 그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량도 더 좋고 곡에 대한 해석도 더 좋았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래포구 포장마차에서 회와 소주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불렀던데 야외에서 이렇게 라이브를 잘 하다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세번째는 닝닝이라는 가수였다. 에스파 멤버라고 한다. 아마도 중국인인 것 같은데, 한국어 발음이 거의 완벽해서 놀랐다. 확실히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앞서 본 정유진과 웬디가 워낙 잘해서 이 두 사람 보다 먼저 들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네번째는 박혜원이었다. 이 영상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 박화요비 노래를 아무나 시도할 수 없을텐데 라고살짝 걱정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후반부의 고음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곡 전체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다섯번째는 미연이라는 가수였다. 이 분도 어느 유명한 그룹의 보컬이었는데, 예전에 어느 예능에 나왔던 걸 본 기억도 있는데.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귀찮다. 음색은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후반부 고음은 아주 많이 아쉬웠다. 원곡보다 키를 낮췄음에도 고음을 소화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솔지라는 가수의 곡을 들었다. 와! 음색도 감성도 그리고 곡의 해석도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6명의 가수가 부른 [그런 일은]을 비교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어려운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가수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모두 다 나름의 좋은 점들이 있어서 하나의 리스트로 만들어 두고 가끔 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웬디 버전이 가장 좋았고, 솔지 버전이 그 다음, 세 번째는 정유진이었다. 이 세 사람의 노래들을 한번씩 더 듣고 원곡인 박화요비의 곡을 찾아 들었다. 아, 박화요비의 목소리를 딱 듣는 순간 앞서 들었던 노래들은 그냥 다 의미가 없어졌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원곡의 감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애써 만들어 놓은 새 리스트를 들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br><br>읽고 있는 책들&nbsp;&nbsp;<br>이상은 늘 자본에 저항하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자본에 종속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자본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많이 했었다. 하지만 급여를 받는 은행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대안 은행이라는 개념을 10여년 전에 접했을 때에도 대출에 대해서만 생각했었고, 돈을 보관하는 곳으로서 대안을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시도가 있었더라. 빈고라는 협동조합은 그 역사도 무척 오래되었고, 규모도 생각보다 컸다. 2년 전에 조합원으로 가입했지만, 특별히 활동을 하지는 못했었는데, 작년에 [자본의 바깥] 책 출간 소식을 접한 후로 여기서도 뭔가 활동을 좀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이 책을 통해&nbsp;용산 해방촌 빈집 이라는 독특한 운동에서 시작한 '빈마을 금고'가 빈고의 원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얼른 읽고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꼼꼼하게 읽어야겠다.<br>2월 중순에 참여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대의원 총회에서는 [나이 들고 싶은 동네]라는 책을 받았다. 우리 주치의인 무영 님과 활동가 어라 님이 함께 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미처 찾아볼 여유 없이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쓱 살펴보니 대체로 내가 알고 있던 동네 이야기였다. 그래도 책으로 다시 읽으니 다 알던 이야기도 새롭게 느껴졌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새삼스럽다.<br>일본어와 중국어를 야금야금 조금씩 익히다보니 한자를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나는 어렸을 때 한자를 외우지 않았을까? 왜 대학 시절에 한자로 된 전공책들을 읽으면서도 한자를 외울 생각을 못 했을까? 나이 들어서 뒤늦게 한자를 익히려고 하니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무턱대고 그냥 한자를 외우려니 너무 재미가 없었다. 한자를 좀 더 재미있게 익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때, 누군가 공유한 한시를 읽었다. 아! 한시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히는 재미가 생길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하지만 한시를 읽는 것과 한자 익히는 재미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단 시를 좀 더 들여다보자.<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77/11/cover150/k4320339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77110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오늘은 짧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28452</link><pubDate>Tue, 03 Mar 2026 2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28452</guid><description><![CDATA[오늘 글 쓰기<br>3월 초에는 서재에 글을 쓰지 않은 날이 모여있는 것 같다. 엊그제 삼일절 아침에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쓴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슨 글을 쓸 것인가 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 예전에 쓰던 글들 목록을 검토했다. 쓰다가 중간에 그만둔 글들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인 글도 있지만, 더 조사나 내용 보완이 필요한 것도 있고, 쓰다가 자꾸 엉뚱한 내용으로 빠져서 중간에 그만둔 것들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한번 쓰다가 멈춘 것을 다시 쓰려고 하면 처음 그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날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볍게 고쳐 쓸 수 있는 글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뭐든 새 글을 써야 했다.<br>마침 당일이 삼일절이었다. 예전에 친일 문제와 독립운동에 대해 누군가와 오랫동안 진지하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 접했던 뉴스들이 생각났다. 이란의 독재자가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것. 그리고 보복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뉴스도 접하고 영어에도 익숙해지려고 가끔 BBC 뉴스를 본다. 마침 트럼프의 입장을 전하는 BBC 뉴스 클립이 있어서 클릭했다. 처음에는 앵커와 리포터가 상황을 요약해 전했는데, 중간 이후부터 트럼프가 떠드는 영상으로 넘어갔다. 아, 너무 듣기 싫은 목소리와 꼴 보기 싫은 얼굴이라 바로 꺼버리고 싶었지만, 뭐라 떠드는 지 궁금해서 잠시 살펴봤다. 대통령 꼴을 보기 싫어서 뉴스를 보지 않기 시작한 것이 이명박 시절 부터다. 이후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을 거치며 뉴스를 멀리하고 살았다. 물론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 입장에서 뉴스를 안 보고 살 수는 없다. 뉴스를 보기는 하되, 대통령이 직접 나오는 장면은 가급적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br>이 글을 쓰면서 최근 약 6개월 가량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는 갈등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까? 비록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필요하다. 의견을 나누는 것은 서로를 비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들은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우리는 서로 의견을 나누며&nbsp;조금씩 입장을 좁혀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대개 본인 주장만 계속 반복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나라고 매 순간 옳은 주장만을 할 수 없다. 때로는 나도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썩 좋지 않은 의견을 낼 수 있다. 가끔은 실수로 오판을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의견을 나누며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닌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각자 다른 의견들이 조금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꼭 등장하는 빌런들. 절대 자신의 의견을 굽히려 하지 않고, 거의 무한 반복 같은 이야기만 떠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br>오늘도 점심 무렵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쓴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글을 쓸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뭐 내가 매번 글이 없는 날에 꼭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아니라서 무리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까 저녁에 예정된 회의가 예상보다 아주 일찍 끝났다. 그리고 이후에 만날 사람은 다른 회의가 있었다. 나도 어차피 그 시간 동안 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시간에 마칠 것이라 예상했었던 거다. 그가 회의에 참여할 동안 나는 시간이 비었다. 서둘러 노트북을 열어 알라딘에 접속했다. 그리고 빈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쳐다봤다. 음, 뭘 쓸까? 일단 제목부터 쓰자. '오늘은 짧게' 라고 쓰고 정말 짧은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nbsp;일단 어쨌든 두드리기 시작하자. 두드리다 보면 뭐든 내용이 나오겠지.<br>브런치<br>최근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라는 틀이 있다고 알게 된 후 언젠가 여기 글을 써보자 하고 생각한 지 약 2년 정도가 지났다. 작년 가을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글을 여기다 써볼까 고민했다. 알라딘 서재는 처음에 책 이야기를 중심을 글을 썼다. 그 당시에는 일상 이야기를 쓰는 다른 블로그가 있었다. 일상 이야기를 쓰던 블로그가 문을 닫은 후에 한동안 어디에도 글을 쓰지 않았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알라딘 서재에 일상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책 이야기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고, 갑자기 쓰려니 글 쓰기가 어렵게 느껴졌는데, 알라딘 서재는 어떻게든 다시 이용하고 싶었다.&nbsp;<br>브런치는 어떤 특정한 주제로 연재하듯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내가 꾸준히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분야가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 이야기는 꾸준히 쓸 수 있겠지만, 이건 애초에 알라딘에 쓸 주제이다. 일상 이야기도 가능한데, 일기처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써야겠다. 가능하면 사회 현상과 연결해서. 원작이 있다면 원작과 비교해도 좋고, 같은 주제의 영상물이 여럿이라면 서로 연결해서 써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런치에 본격 글을 쓰기 전에 여기 서재에 두어 번 연습하듯 글을 썼었다. 작년 말부터 썼던 몇 개의 영화 혹은 드라마 이야기들이 그 연습이었다.<br>이제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글을 써봐야지. 요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어떤 영화로 어떤 주제를 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늘 느끼지만, 확실히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힘든 일이다. 매번 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은 모르는 해법 같은 것은 없다. 그저 계속 읽고 쓰기를 반복할 뿐.&nbsp; &nbsp; &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삼일절 단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24639</link><pubDate>Sun, 01 Mar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24639</guid><description><![CDATA[<br>삼일절의 첫 뉴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의 독재자가 죽었다는 내용이었고, 이어서 이란의 반격으로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화면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이 고귀한 일을 했다고 떠벌리고 있었다. 저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겠지. 애초에 대통령에 당선될 정도로 지지자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저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것이겠지. 누군가는 독재자를 죽이고 이란 국민들을 구한 것이니 잘한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억압받는 이란 국민들이 직접 혁명을 일으킨 결과라면 무조건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결코 이란 국민들을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공습으로 독재자와 그 부하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학교에도 폭탄이 떨어져 무고한 학생들도 죽었다. 트럼프의 이 공격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저지른 것이다. <br><br>최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뉴스를 보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시키고 다시 선거를 했는데,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고도 했다. 그 전까지 여당인 자민당이 소수이고, 야당 연합이 다수였던 상황이 다카이치와 자민당에게 유리하게 바뀐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손쉽게 야당 연합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이유로 꼽는 의견이 더 많다. 일본의 평화 헌법을 고쳐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것이 다카이치 총리의 대표적인 정책이다. 일본 국민들은 과연 전쟁을 원하는 걸까? 다시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대일본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br><br>비록 지금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윤석열이 처음 등장해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얻으며,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까지 되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나 다카이치의 사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중국의 시진핑이 이렇게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모습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국민들은 전쟁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지도자를 좋아하는 걸까?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정에는 관심 없는 멍청한 지도자를 선택했던 걸까?<br><br>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현재 트럼프 정권에서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자비한 집행에 반발하는 시위가 많은 지역으로 번졌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푸틴과 시진핑에 반발하는 세력들의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초기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겠지만, 일본에도 다카이치와 자민당에 맞서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이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행위와 선택의 결과이다. <br><br>오래전에 누군가와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가 손쉽게 친일파를 비판하면 안 된다며, 만약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친일 행위를 할 거라고 했다. 누구나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고, 잘 살기 위해 친일 행위를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친일 행위에도 수위와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일본제국의 이익에 도움을 주면서, 우리 국민들을 탄압하고 생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다. 즉, 우리 국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수많은 선조들이 만주와 간도로 넘어갔던 이유는 이 땅에서는 도저히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그리고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척박한 땅을 찾아가는 선택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범죄다. 만약 법으로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지르면 안 되는 것이다. 인륜이나 도덕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더라도 결코 하지 않을 짓이다. 그걸 비난할 수 없다고 누구나 그 시절에 그런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친일 행위를 했을 거라고 말하는 건 그 인간이 딱 그 정도로 자신만 아는,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활동했다는 사실만 봐도 어불성설임이 당연하다. 비록 살아남기 위해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본이 부당하게 이 나라를 삼킨 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날이 바로 오늘 삼일절이다. 우리가 이미 다 배웠듯이 삼일만세운동은 겨우 하루 있었던 것이 아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탑골공원 인근에 있던 사람들만 참여한 국지적인 저항이 아니었다. 전국으로 그리고 해외로 확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전 국민의 저항이었다.<br><br>오늘 삼일절을 맞아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비록 내란을 저지른 세력들이 구속당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빨간당은 그들을 옹호하고 있고, 윤어게인을 외치는 독재 지지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마 많이 겹쳐지겠지만, 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을 숭배하는 인간들도 많다. 심지어 학살자 전두환을 옹호하고 노태우를 비롯한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인간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박정희에 대한 지지는 박근혜 지지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있었던 걸로 착시를 불러 일으켰던 사람들은 과연 괜찮았을까? 노무현은 김선일 씨 납치 사망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전쟁에 참여하는 파병을 강행했다.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가 저지른 노동자 탄압과 환경 파괴를 생각하면 절대 존경한다 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문재인은  어떤가? 우유부단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만들면 그라고 불릴 정도로 국정운영을 엉망으로 했고, 박근혜를 몰아냈던 촛불의 의지를 모조리 배신했던 인간, 수많은 시민들이 외쳤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팽개쳐버린 인간이었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 대부분이 윤석열을 욕하지만, 결국 윤석열을 만든 것은 문재인이었다. 과연 지금 이재명은 어떨까? <br><br>누구든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외에 다른 것들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일부러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지금 이렇게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누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br><br>내 주위에는 빨간당 지지자도 없지만, 파란당 지지자도 많지 않다. 특히 이재명 집권 이후로 일부러 민주당 지지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에 빌붙어서 의석을 얻은 기본소득당과 진보당도 민주당만큼 싫어한다. 내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늘 신기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아니 내가 평소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데, 결국 나중에 이렇게 많은 표를 얻는 것을 보면 이상할 수 밖에.<br><br>내가 빨간당보다 파란당을 더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중성과 거짓말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당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여러 파벌이 있고, 다른 의견들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이 정당은 국민을 기만하는 정당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본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필연적으로 노동자인 국민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코 진보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아주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럼에도 늘 국민들에게 빨간당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마치 국민들을 위하는 척 위선적인 태도를 취한다.<br><br>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기 위해서이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현황을 다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많은 것들을 누군가 제시해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결국은 어떤 틀에, 그가 속해있는 상황의 한계 안에 갇혀있을 확률이 높다. 그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늘 다른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단 먼저 의심하고 깨어있으려고 애쓰는 삶은 피곤하고 힘들다. 나는 내 자신이 갇혀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언제나 그 틀을 벗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br><br>자신의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집단이나 세력이 언제나 같다고 느껴진다면 한번쯤 의심해보고 다른 틀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항상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물론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 사람의 인생을 건 선택이니 타인이 참견할 수 없는 영역일 수 있다. 지금 보면 정치도 종교에 가깝다. 사람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없이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 없이 그저 당의 색깔만 보고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교보다 더 굳건해 보인다.<br><br>작년 가을부터 여러 갈등 상황에 긴 시간 시달리고 있다. 사람은 참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하지만 바뀌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필요하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통과 의례와 달콤 쌉싸름한 연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03161</link><pubDate>Fri, 20 Feb 2026 15: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10316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931472&TPaperId=171031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18/coveroff/899193147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862634023&TPaperId=171031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15/1/coveroff/d86263402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영화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새콤달콤]<br>처음 영화 [새콤달콤]을 봤을 때, 빠른 전개와 참신한 반전 덕분에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에는 주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큰 몫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참신하다고 느꼈던 반전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냥 괜찮은 오락 영화 정도의 느낌만 남았다. 최근에 우연히 다른 영화 정보를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 [새콤달콤]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고, 일본 영화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작 소설까지 읽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 영화는 궁금해서 찾아봤다.<br> <br><br><br><br><br><br><br><br><br><br><br><br><br>일본 영화와 우리나라 영화 모두 마지막 반전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본 영화의 우리나라 포스터와 디비디 표지에 저렇게 새빨간 글씨로 마지막 반전에 대한 글을 적어놓았으리라. 저 붉은 글씨 때문에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 것처럼 느껴진다. 누가 저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참 센스 후지다. 저 글씨 때문에 영화를 보려던 마음이 싹 사라질 것 같다.&nbsp;<br>글을 쓸 때에는 그것이&nbsp;책에 대한 이야기던, 영화 이야기던 그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굳이 스포일러 경고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아마도 유튜브의 영향인 것 같은데, 글에도 스포일러 경고를 미리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써 놓은 글들을 가끔 본다. 붉고 굵은 글씨로 아주 잘 보이게 맨 앞에 경고문을 적어 놓은 글들. 실은 나는 누군가 어떤 작품에 대한 핵심 내용을 미리 얘기해도 그 것을 (책이라면)읽거나, (영화라면)보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유명한 영화 [식스 센스]의 경우에도 부르스 윌리스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를 먼저 듣고 영화를 봤었다. 물론 그가 실은 죽은 상태, 즉 유령이라는 것까지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인 그에게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나중에 뭔가 상황이 확 바뀌겠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 혹은 묘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반전을 접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실은 나중에 이야기가 확 뒤집어질거야 라는 것을 대충 예상하고 본다고 그 재미가 그다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오히려 아예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이나 영화를 시작하기 보다는 적어도 이게 어떤 종류의 이야기라는 기본 정보 정도는 파악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거의 무조건 양쪽 날개와 판권 정보, 머리말 그리고 맨 뒤의 해설이나 옮긴이의 글까지 다 읽은 후에 본문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경우에도 미리 정보를 찾아본 후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스포일러를 굳이 일부러 피하지도 않는다.<br>지금 굳이 일부러 스포일러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제 곧 이 두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반전에 대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기 때문이다.&nbsp;<br>[이니시에이션 러브]와 [새콤달콤] 모두 반전 때문에 기억에 남는 영화이지만, 꼭 그 반전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밀도가 높고 짜임새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 아무 생각없이 [새콤달콤]만 봤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 했지만, 나중에 [이니시에이션 러브]를 일부러 찾아 보고, 그 다음에 [새콤달콤]을 다시 보니 각본과 연출이 치밀하게 계산을 많이 하고 만들었다는 점이 보였다. 그리고 이미 반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본 것이라 (당연하겠지만) 반전의 의미는 거의 상관이 없고 이야기 자체가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관객을 속이고 막판 반전으로 연결시킨 감각은 대단하다 싶었다. 아마 원작이 그런 구성이라 일본과 한국에서 차례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겠지.<br>맨 처음에 아무런 정보 없이 [새콤달콤]을 봤을 때에도, 딱 반전을 눈치 챈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위화감은 계속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주인공인 남성과 이야기가 끊어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시점의 남성은 그 외모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도저히 같은 인물로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 영화 모두 계속 관객을 속이며 "이렇게 외모가 달라도 얘네는 같은 사람이야." 라고 마치 가스라이팅을 하듯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런 점이 마지막 반전을 더 극적으로 살리는 요소라고 하겠다. 관객을 속이는 결정적인 아이템은 바로 신발이다. 일본 영화에서는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라는 것이 대사라도 등장하고, 딱 신발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아, 이건 내가 그 시절에 마이클 조던을 좋아했고, 에어 조던 이라는 상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긴 하겠다. 그런 면에서 일본 영화는 참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고 싶다. 80년대 중후반을 살았던 세대에게는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우리에게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듯이, 일본에는 이 영화가 있다고 볼 수 있다.<br>두 영화 모두 영화 시작 시점의 주인공인 약간 통통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농구화를 선물 받고, 잠시 후에 갑자기 남자 주인공이 바뀐다. 잘 생기고 날씬한 남성, 흔히 훈남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멋진 남성으로. 아까 말한 것처럼 관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 감독은 신발을 비롯해 여러가지 요소로 계속 관객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한다. 결국 관객들이 감독의, 아니 원작 작가의 강압에 못 이겨 반쯤 포기하고 받아들일 때쯤에 마지막 반전이 등장한다. 그럼 이 두 영화에서 공통으로 관객들을 속이는 요소들을 알아보자.<br>제일 중요한 요소는 언급한 거처럼 신발이다. 일본에도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미신(혹은 징크스?)이 있다. 그래서 마유와 스즈키가 헤어지고, 다은과 장혁이 헤어진다고 암시하는 증거라는 기능도 있다. 그리고 운동화는 살찐 주인공이 날씬한 주인공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기능도 한다. 주인공이 운동화를 선물 받고 열심히 운동해서 살을 뺀 것이라고 관객을 속이는 요소인 것이다. 그 속임수를 완성하기 위해 두 영화 모두 두 사람이 만날 때 주변에서 뭐라고 말을 하거나 눈짓으로 남성의 기를 죽이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서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두 남성이 부딪히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도 운동화는 꼭 필요한 소품이다. 두 사람이 부딪히기 위해서는 주위를 살피지 않고 달리도록 만들어야 하고 달리기 위해서는 운동화가 필요하니까. 두번째 요소는 이름이다. 일본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모두 '스즈키' 라는 성을 가졌다. '스즈키'가 얼마나 흔한 성씨인지는 모르지만, 우연히 한 여성이 연달아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 정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는 한다. 우리나라 '김'씨, '이'씨, '박'씨 정도라면 아주 자연스러울 것 같기는 하다. 일본 영화에서 두 남성이 같은 성을 가졌다면, 우리 영화에서는 같은 이름을 가졌다. '혁'이라는 이름. 그리고 일본 영화는 여기서 애칭이라는 한 가지 요소를 더했다. 여성이 남성을 부르는 '탓쿤' 이라는 애칭.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처음에는 서로 성으로 부르고,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야 이름에 '상' 이나 '짱'을 그리고 남성에 한해 '쿤' 을 붙이는데, 그냥 이름 만으로 부르는 건 정말 아주 친한 사이에 한해서 가능한 것 같다. 그에 반해 애칭은 상대적으로 좀 더 쉽게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이 같은 것 만으로도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굳이 애칭까지 넣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일본 영화에서 이 애칭이 좀 억지스럽다. 이런 것들이 마지막 반전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데, 이 이야기가 밀도가 높고 잘 짜여졌다는 증거 중 하나다. 그러니까 관객들을 속이는 요소들도 계속 등장하지만, 관객들이 억지로 이 정도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겠네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의외로 실은 그게 아냐 라고 알려주는 요소들도 존재한다. 처음 등장한 남성은 스즈키 유우키 이고, 뒤에 등장하는 남성은 스즈키 타쿠야 이다. 여성은 두 남성을 모두 '탓쿤' 이란 애칭으로 부르는데, 타쿠야는 이름 때문에 이 애칭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유우키는 대체 왜 탓쿤이 되는 걸까? 여성은 유우 라는 글씨의 한자(夕)가 가타가나 타(タ) 처럼 생겼다고 말하면서 이 남성의 애칭을 '탓쿤'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이전에 습관적으로 '탓쿤' 이라 불렀거나 부르려던 실수는 그냥 무시하거나, 옷에 붙은 '태그'라고 둘러댔었다. 그 다음으로 관객을 속이는 요소 중 하나는 여성이 이 두 남성을 만난 계기가 같다는 것이다. 일본 영화에서 마유는 두 남성을 모두 미팅에서 만났다. 약 1년 가량의 시간 차를 두고. 한국 영화에서는 두 남성이 모두 다은이 일하는 병원에 환자로 실려온다. 환자와 간호사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다.<br>앞서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에는 관객을 속이는 요소들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이래도 속을 거야? 라며 놀리듯 이 두 사람이 다른 사람임을 보여주는 암시들도 존재한다. 일단 누가 뭐라해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외모가 가장 큰 증거이고, 그 다음이 두 사람의 성격이다. 한없이 순하고 착한 초반 주인공에 비해 그 다음 주인공은 한일 양국 모두 어느 정도 까칠하고 자기 중심적인 면이 있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이 하나 나오는데, 바로 남자 주인공의 폭력성이다. [새콤달콤]의 장혁은 피곤하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여러 상황 때문에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직접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니시에이션 러브]의 타쿠야는 무려 세 차례나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마 80년대 일본이라는 시대 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시대에는 한국 남성도 폭력을 자주 사용했고, 그럼에도 여성들은 그 폭력에 대항하거나, 신고하거나, 헤어지거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 물론 지금도 아주 높은 확률로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제법 많겠지만, 적어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일본 영화의 시점이 87년이고, 우리 영화의 시점이 영화가 개봉한 21년 즈음일테니 당연한 선택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여성이 남성을 대하는 태도 표정, 그리고 반대로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두 남성이 절대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는 특히 남성의 기질과 버릇에 주목했었다. 타쿠야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차갑다. 스스로 자신이 잘난 사람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그걸 보란 듯이 드러낸다. 그리고 버릇처럼 반복하는 행동이 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유우키는 그렇지 않다. 장혁도 기본적으로 잘생기고 잘난 사람 특유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다. 특징적인 그의 표정과 말투, 반복되는 몸짓들. 당연히 이장혁에게는 그런 모습들이 전혀 없다.<br> &nbsp;<br>&nbsp; &nbsp;<br><br><br><br><br><br><br><br><br><br>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 출간된 번역본이 있었다. 그런데 평들을 읽어보니 굳이 원서를 일부러 읽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마지막 반전에 대해 충분히 살펴 보았으니, 이제 각 인물들과 배역에 대해 알아보자.<br>[이니시에이션 러브]의 마유코는 마에다 아츠코가 맡았다. 처음 보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드라마 [스캔들 이브]에도 나왔더라. 비록 앞 부분에 짧게 등장했다가 거의 마지막 쯤에 또 아주 짧게 나오고 말기는 하는데, 그 앞 부분의 역할이 제법 인상적이어서 표정 연기를 칭찬하며 봤었는데, 이 사람이 저 배우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서 다시 [스캔들 이브]의 해당 장면을 찾아 보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영화가 2015년 작품이고, 드라마는 2025년에 나온 거라 10년이라는 시간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맡은 배역이 너무나도 달라서일까? 모르겠다. 아, 그리고 이 사람 아주 유명한 아이돌 출신이더라. 마침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이 아이돌 출신으로 유명 배우랑 결혼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캐스팅 담당자가 일부러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마유코는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성이다. 그리고 아주 영리한 아니 영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타쿠야가 폭력까지 휘둘렀기 때문에 마유코가 아주 자연스럽게 착한 남자를 선택한 것은 당연하다. [새콤달콤]의 다은에게는 이런 면이 보이지 않아 좀 아쉽다. 장혁의 이야기에서 정당성을 많이 부여하는 것에 반해 다은의 선택에는 막 공감하기가 조금 어렵다. 같은 이야기이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영화가 좀 더 마유코에게 집중한 느낌이고, 한국 영화는 장혁에게 집중한 느낌이다. 며칠 전에 [내 몸을 빌려드릴까요] 를 읽고 쓴 글에서도 썼는데,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의 일본을 잘 알지 못해 놓치고 지나가는 디테일이 많은 느낌이다. 당시의 일본 문화를 잘 아는 분들이라면 훨씬 더 풍성한 느낌으로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nbsp;<br>마유코는 치위생사로 나오는데, 병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두 남성을 만난 것도 미팅 자리였고, 보여주는 모습도 모두 퇴근한 후의 일상이다. 치위생사 라는 직업이 다른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반면 다은은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인데, 두 남성을 만난 것도 모두 병원이었고, 병원에서 정말 피곤하고 힘들게 일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br>[새콤달콤]의 다은은 채수빈이 맡았다. 이 배우를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이 배역에 찰떡같이 잘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를 잘 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전체적으로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계속 밀어붙이며 억지로 웃기려 드는 측면이 있어서 상식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많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종합병원의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 결국은 공감하게 되었다. 초반에 이어지는 병원 장면들을 보면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있을 때, 친절하게 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 봐주고, 다른 간호사들 보다 조금 더 잘 챙겨줬던 간호사가 있었다. 다은이 이장혁에게 잘해주는 장면들을 보면서 그 사람이 생각났다. 요 위에서 마유코가 아주 영리하고 자연스럽게 남자를 바꿨다고 말했는데, 상대적으로 다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야 결국 다른 선택을 하는 거처럼 보인다.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br>스즈키 타쿠야는 마츠다 쇼타라는 배우가 맡았다. 처음 보는 배우인데, 키도 크고 정말 잘 생겼다. 찾아보니 재일교포 배우인 마츠다 유사쿠 라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고, 형인 마츠다 류헤이도 배우라고 나왔다. 어, 이 이름은 익숙하다 싶어서 보니 확실히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재미있게 봤었던 드라마 [아수라처럼] 에 나왔더라. 타쿠야에 대해서는 저 위에서 반전 이야기를 할 때 제법 자세히 다뤘다. 이것도 아마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타쿠야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미야코와 바람을 피우는 모습이 낯설고 이상하게 여겨졌다. 불륜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저 드라마 [아수라처럼] 에서도 불륜을 저지르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적어도 다들 죄책감을 느끼기는 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물론 타쿠야도 죄책감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자신이 도쿄에서 시즈오카까지 그 먼 길을 운전해서 가주는 것으로 죄책감을 상쇄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거리감이 없어서 이 두 도시가 얼마나 먼 지 잘 모르겠는데, 대사로 너댓시간 운전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차로 다섯시간 운전한다면 거의 서울 부산 간 거리에 가까운데. 그렇게 먼 거리를 오간다는 것은 확실히 너무 피곤하고 힘든 일이기는 하다. 나도 부산까지 운전을 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이 정도 장거리 연애라면 애초에 접근 자체가 달랐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nbsp;<br>장혁은 장기용이란 배우가 맡았다. 이름은 낯선데 얼굴은 익숙했다. 어디서 봤나 해서 찾아보니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왔더라. 내 주위 중년 남성들 대부분이 이 드라마를 정말 좋아했고, 아주 친한 친구 한 명은 심지어 인생 드라마라며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던데, 나는 이 배우가 맡은 깡패 캐릭터가 아이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고 난 후로 이 드라마를 보기 싫어졌었다. 결국 나중에 억지로 다 보기는 했는데,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들지 않는다. 뭐 그만큼 실감나게 연기를 잘 했다고 볼 수 있겠지. 이 배우가 나온 다른 작품은 기억나지 않는데, 검색했을 때 나온 사진들을 보면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나 표정들이 다양하더라. 영화에서 장혁은 인천에서 다은과 연애를 하다가 서울에 있는 대기업으로 파견을 나간다. 타쿠야가 며칠에 한번씩 시즈오카에 다녀왔던 것에 반해 장혁은 초반에 거의 매일 밤에 인천으로 퇴근했다가 아침에 서울로 출근한다. 비록 이동 거리는 도쿄 시즈오카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 길이 얼마나 심각하게 막히는 길인지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제법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나도 부천에 살 당시에 서울로 출퇴근을 했었고, 자주 운전을 해야 했었다. 지금은 성인이 된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였고, 아침에 아기를 신도림 장모님께 맡기고 종로로 출근했었다. 아기 짐이 엄청 많았기 때문에 차로 이동해야 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두 길(고속도로와 국도) 모두 지독하게 막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신도림과 종로 모두 얼마나 막히는 길인가! 퇴근할 때는 또 반대로 신도림에 가서 아기를 데리고 다시 부천으로 가야 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 든다.<br>앞서도 언급했는데, 이 영화는 일본 영화에 비해 장혁의 비중이 아주 높다. 일본 영화에서는 앞쪽 유우키의 이야기와 뒤쪽 타쿠야의 이야기를 카세트 테이프 A면과 B면이라고 제목을 붙여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 원작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에서는 중심 이야기가 타쿠야와의 사랑이기 때문에 결국은 타쿠야 이야기에 무게가 더 실려 있기도 하고, 실제로 등장 장면도 타쿠야가 더 많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래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이장혁의 이야기가 정말 짧다. 이 영화만 봤을 때에는 이게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결국 장혁과 다은의 이야기가 중심이니까) 일본 영화와 비교하니까 좀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이장혁의 비중이 줄었다. 타쿠야는 본인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간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미야코를 거부하지 못하고 바람을 피우게 되는데, 장혁은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닌 것으로 나온다. 무리해서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의 피로,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를 파견 나온 비정규직 두 사람에게만 맡겨놓은 모양새가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암튼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회사 상황 등으로 한계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3교대 근무로 늘 지쳐있는 다은이 임신 후 낙태하는 상황에서 곁에 있어주지 않고 굳이 회사로 가버린 선택 등의 상황으로 홧김에 다은을 두고 떠나 버린다. 다은이 장혁의 회사로 반지를 보내(일본 영화에도 같은 장면 있음)면서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이별을 인정한 셈이 된다. 그리고 이후에 장혁이 보영과 관계를 시작한다. 어, 그런데 일본 영화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이 두 사람 이별의 결정적인 요인은 남자가 이름을 잘 못 부른 것인데, 타쿠야는 이미 바람을 피우고 있었기에 결정적인 실수가 당연하겠지만, 장혁은 왜 실수를 했을까? 이 부분이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네.<br>또 한 명의 스즈키인 유우키는 모리타 간로 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타쿠야의 빈 자리를 운 좋게 차지한 럭키 가이. 귀엽고 착한 남자. 영화에 나온 만큼 착한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할 것이다. [새콤달콤]을 먼저 봤기 때문에 포동포동 귀여운 남자 배우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다부지게 근육질일 것으로 예상되는 배우가 나왔다. 그럼에도 의외로 귀여운 매력을 잘 보여줬다. 다른 역할을 맡으면 또 완전 다른 이미지가 될 것 같다. 다부진 체격 때문에 깡패 같은 역할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다. 일본 영화에서는 유우키와 마유코의 풋풋한 사랑, 설레는 사랑 이야기도 제법 좋았다.<br>이장혁 역은 이우제 라는 배우가 맡았다. 일본 영화 유우키에 비해서는 훨씬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이다. 상대적으로 좀 더 포동포동한 느낌이기도 하다. 아마 배역 때문에 일부러 살을 찌운 것으로 보인다. 일본 영화에 비해 이장혁은 다은과 제대로 연애한다는 느낌은 안 든다. 마지막 장면 이후에 이 두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알콩달콩 사랑을 잘 키워갈 것인가? 어쩌면 마유코 유우키 커플과 달리 다은 이장혁 커플은 잘 될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마유코와 유우키는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타쿠야와 비슷한 상황으로 갈 것 같다.<br>이시마루 미야코는 키무라 후미노가 연기했다. 전형적인 동양 미인, 특히 일본 미인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공부도 잘 했고, 좋은 직장도 얻었는데 예쁘기도 한 사람. 이런 사람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타쿠야와 함께 도쿄에 올라온 그 친구가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을 만날 확률이 극히 드물고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여러가지 다른 요인들 때문에 바로 사랑에 빠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여성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은근슬쩍 고백까지 한다면 마음이 흔들릴만도 하겠다. 아, 아냐. 이렇게 타쿠야의 바람을 이해해주면 안 되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중에 과연 타쿠야와 미야코가 이어질까? 아마 영화에서 타쿠야가 미야코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 당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키무라 후미노는 재작년에 영화 [시티 헌터]에 나왔더라.&nbsp;&nbsp;<br>보영 역은 정수정이 맡았다. 정수정이라고 해서 누군지 몰랐는데, 아이돌이었더라. 키무라 후미노를 보고 나서 정수정을 다시 보니 이 두 사람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했다. 물론 제작진이 일부러 그런 느낌의 배우를 섭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극 중 두 사람의 성격과 행동은 상당히 다른데,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은 정말 많이 비슷했다. 그런데 이놈의 제작진. 어떻게든 억지로 웃기려고 옷에 케첩을 흘리고, 고추장을 흘리고, 아, 진짜! 온갖 음식을 흘리고 씻지도 않고. 왜 예쁜 배우를 데려다가 이렇게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전혀 웃기지 않고 그냥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달랬다.&nbsp;<br>원작 소설의 제목이자 일본 영화의 제목인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통과의례처럼 거쳐가는 사랑이라고 한다. 첫사랑을 말하는 것 같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결혼 전까지 거쳐가는 인연들이 모두 해당되겠지. 결혼을 했어도 또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불륜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인생은 모르는 것이기에 결국 모든 사랑이 해당될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랑이라는 것,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이 결국은 그렇게 계속 변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 영화 제목은 [새콤달콤] 이다. 처음에 그 상품이 생각났다. 그걸 캐러멜이라고 부르던가? 확실히 사탕은 아니었는데. 암튼 제목을 보자마자 그것의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혀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 상품은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왜 제목이 새콤달콤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 번이나 봐도 모르겠다. 사랑이 새콤하면서도 달콤하다는 뜻인 것 같은데. 달콤은 알겠는데, 새콤은 뭘까?&nbsp;&nbsp;<br>맨 처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봤을 때는 [새콤달콤]도 그리 나쁘지 않은 영화였는데,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비교하니 너무 못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억지로 웃기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만,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이 안 된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일본 영화처럼 좀 진지하게 만들 순 없었을까? 그리고 감독이 장혁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이경영이었고, 그 다음은 박철민이었다. 아, 진짜!!!! 얘네들은 쓸데없이 억지 웃음만을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들인데, 이건 캐릭터 낭비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백번 양보해서 박철민은 그래도 직장상사로서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이경영은 정말 불필요한 인물이다. 일본 영화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역할이다. 이경영 때문에라도 다시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경영이 나올 때마다 확 그냥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걸 얼마나 열심히 참았는지 모른다. 사실 영화 자체는 일본 영화가 훨씬 만듦새가 좋았는데,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채수빈과 장기용이 더 좋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무리 채수빈과 장기용이 연기를 잘 하고 합이 좋아도 이경영 때문에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nbsp;<br>일본 영화에서는 80년대가 배경이라 비정규직이 나오지 않는다. 타쿠야는 도쿄로 발령을 받아 간 것이지 장혁처럼 파견을 나간 것이 아니다. 그 시대 일본을 버블경제 직전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우리 세대가 응답하라 시리즈로 88년과 94년을 기억하는 것처럼 일본의 중년들은 이 영화로 그 시대를 추억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자막이 올라갈 때 작은 화면으로 80년대 백과사전이 나온다. 이후 세대는 본 적이 없을 그 시대의 물건들과 문화를 보여준다. 요런 거 참 재밌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들을 설명하는 자막에 자주 감독 이름이 나온다. 감독이 자주 썼던 물건, 감독이 자주 했던 것. 뭐 이런 식이다. 여러 물건들이 소개되었는데, 카세트 테이프나 전화카드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들도 있고,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나 만화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아, 아마도 원작에서도 그럴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카세트 테이프가 꽤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근데 이미 글을 너무 길게 써서 이건 그냥 패스.<br>[새콤달콤]에서는 파견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 다룬다. 비록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정규직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무시 당하는 모습 만은 사실적이다. 그리고 매일 야근에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할 정도의 업무 강도로 일을 시켜 놓고, 일이 마무리되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현실도 똑같다. 이 부분이 이 영화 전체에서 딱 하나 칭찬할 부분이라 하겠다. 공교롭게도 80년대 일본과 202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같은 이야기의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재미있다. 이런 식으로 일본과 한국이 같은 내용을 영화로 만든 것들을 비교하면 쓸 이야기 거리가 많겠다. 시간 날 때 하나씩 써봐야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215/1/cover150/d8626340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150169</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내 몸은 그저 그릇일 뿐 - [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5397</link><pubDate>Mon, 16 Feb 2026 06: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5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693&TPaperId=17095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57/19/coveroff/897012969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29693&TPaperId=17095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a><br/>사토 아유코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7년 08월<br/></td></tr></table><br/>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빌려 준다는 의미<br>이 책을 다 읽고 꼭 글을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있다. 마야는 왜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에는 몇 가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성별의 한계가 있겠다. 나는 현재 중년 남성으로서 젊은 여성의 생각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시공간의 한계다. 이 소설은 1996년 "가와데 문학상"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일본의 이야기다. 나도 물론 90년대 중반에 청춘을 살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여러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은 SNS와 각종 영상 등을 통해 각 나라의 사회상황과 문화를 훨씬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일본 문화를 직접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세번째로는 계급 혹은 계층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약간 억지로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인 도쿄대학을 다니고 있다. 비록 마야가 보디 렌탈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내용은 없다. 아마 굳이 보디 렌탈이란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대학을 다니며 생활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알바를 통해 용돈을 벌 수 있다. 실제 작중에서 마야는 그 용돈 벌이의 목적과 보디 렌탈의 고객 모집을 위한 목적으로 바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한다. 암튼 공부도 잘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반면 나는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고, 공부를 그리 잘 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시민운동 판에 뛰어든 가난한 활동가일 뿐.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들은 다 핑계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다르다. 이 지구에 약 8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결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모두 이렇게 다름에도 불완전하게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쨌든 마야의 삶을 들여다보며 상상해보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br>사토 아유코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일터에서 가까워도 한동안 가지 않았던 알라딘 중고서점을 그날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별 생각없이 책들을 살펴보다가 정보라 작가의 책 하나를 고르고 우연히 집어든 책이 [도쿄대학 살인사건]이었다.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문구에 비운의 천재 작가라고 적혀 있어서 구매했었다. 이 책은 약 1/3 정도 읽었는데, 진행이 좀 느리고 생각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사토 아유코 작가의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이 [보디 렌탈] 이라고 하길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덮어두고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원제가 바로 [보디 렌탈]이고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판본도 이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다시 출간된 책이 지금 제목으로 나왔다. 암튼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알라딘 앱에서 중고 책을 검색했다. 세 곳의 매장에 이 책이 있었고, 그 중 하나를 골라서 2만원 어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송료 2,500원을 아끼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인데, 평소 다른 온라인 쇼핑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책에 대해서는 늘 이렇게 한다. 그래도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책이니까.&nbsp;<br>이 소설이 "가와데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 회의는 무려 4시간이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고 한다. 통상 문학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사전에 심사위원들이 대략 그 범위를 좁혀 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토론을 이어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문제작이었다는 뜻이겠지. 이 책의 맨 뒤에 수록된 두 편의 해설과 옮긴이 후기에서도 반복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의 평론가 진노 토시후미는 이 소설을 포함한 사토 아유코의 작품들을 "초현실주의 실험"으로 보며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김미현 평론가는 "하루키의 경쾌함, 뒤라스의 관능성, 쿤데라의 위악성이 혼합된 묘하고 대담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옮긴이 김진욱은 사토 아유코가 "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그렸다고 언급했다.<br>이 책을 한 번 완독하고 두번째로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을 한 내 솔직한 마음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도 않고, 생각만큼의 문제작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3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겠지. 그럼에도 김미현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하루키와 뒤라스와 쿤데라를 불러올 정도는 아니다. 아, 확실히 경쾌함이 있고, 관능적이고, 위악성이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잘 어우러져 있는가?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의문이 든다. 요컨대 핵심은 이거다. 이 글의 맨 앞에서 내가 던진 질문이자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떠올릴 질문, 그래서 대체 왜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를 빌려주는 걸까? 그것도 젊은 여성이 돈 많은 중년의 남성들에게 고액의 돈을 받으며 남들이 매춘이라 부를 행위를 하는 것일까? 확실히 돈 때문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육체적인 쾌락 때문도 아니다. 뭔가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저항을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 왜일까? 책을 덮은 후로 꽤 긴 시간을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br>진노 토시후미는 매춘을 "상실을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내 몸이지만, 이 몸이 내 신체라는 감각을 상실하는 것. 이것을 위해 보디 렌탈 이란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이 일본인 평론가는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우연한 계기로 신체감각을 상실할 계기로 매춘을 선택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해설은 아마 일본에서 출간된 96년 판본에 실린 글일 것이다. 사토 아유코는 2008년 [꽃들의 묘비]라는 작품을 출간하며 자신과 언니가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신체감각의 상실을 위해 매춘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미현 평론가는 글에서 보디 렌탈의 이유를 딱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텅 빈 그릇이 되어 그 속에 허구나 망상, 유희 만을 담기 위해 의식이나 반성, 이성 따위 자의식을 몸에서 파낸다."는 문장을 썼다. 그리고 이 평론가는 소설 후반부에 마야가 유일하게 가학 충동을 느껴 먼저 유혹하는 우치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결국 마야가 "완전한 물건이 되기에는 그녀의 자의식이 철저하게 제거되지 못했기에 분열을 일으켰다."고 표현했다. 이어서 "물건이 스스로 물건임을 모르면 진짜 물건일 수 밖에 없다." 라며 "자신이 물건이라는 자의식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이미 물건이 아니다." 라고 했다. 우리 마야는 자의식조차 없는 물건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의식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는 아사히 신문의 서평에 실린 마야의 목적도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 치유" 라고 했다. 이어서 "자신의 몸을 남자들의 욕정의 기호로 삼아 철저히 세련되게 만들면서 거꾸로 그 같은 욕정의 세계에서 정신을 이탈시킨다는 식의 '야릇한 치유법'" 이라고 적어놓았다.<br>이 소설에는 마야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현재 대학생이면서 남몰래 부유한 중년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고 살고 있고, 그 고객인 여러 남자들과의 이야기들이 옴니버스식 구성처럼 등장한다. 마야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그 과거를 알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왜 이런 작중 주인공인 마야의 삶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어려서부터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학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지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버려야 했을 것이고, 자신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작가는 비운의 천재 작가가 아니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괴물에게 학대 당한,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nbsp;<br>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자의식을 철저하게 지워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로 여러 번 썼었고, 언제나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꼭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군에 입대할 당시에 나 스스로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만약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인정한다면 도저히 그 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낱 미물이며, 감히 인간 따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온갖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견뎌내야 했다. 만약 그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탈영을 했을 것이다.<br>이제 작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작품 자체만 놓고 몇 가지만 더 얘기해보자. 일단 확실히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도 자극적인 주제다. 다만 글에는 섹스 묘사도 없고 야릇한 분위기조차 없기 때문에 포르노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마야가 말하는 보디 렌탈이란 개념 자체가 그렇듯이 이 글에서 중년 남성들이 마야를 빌려서 하는 여러 행위들은 철저히 차가운 시선으로, 감정을 배재하고 그저 이런 일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묘사를 배제한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짓을 너무 당연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 전반에 상당한 블랙 유머와 해학이 깔려있다. 소설 초반에 와타나베 조교수가 강의에서 한 말인 "인간은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말은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br>정말 독특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너무 거리낌 없이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글이 경쾌하고 거침이 없기도 하며, 그러면서 또 위트와 해학을 갖춘 글이다. 앞서 김미현 평론가의 평가는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 말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확실히 이 소설의 결말은 좀 많이 아쉽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도 아쉽다. 병렬적으로 여러 구매자들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장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큰 줄기의 이야기가 너무 약하다. 앞서 언급한 그 우치다 이야기가 이 소설 전체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일텐데, 이 부분이 좀 아쉽다.&nbsp;<br>이 이야기에서 이어서 생각할 거리들도 제법 많다. 일단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파카츠"가 이 책에서 묘사된 보디 렌탈과 매우 유사하다. 부유한 중년 남성이 젊은 혹은 어린 여성이랑 놀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결국은 이것도 매춘이고, 원조교제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텐데, 거창하게 방과후 동아리 활동을 뜻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를 파파랑 붙여서 신조어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이해하려면 조건 만남이라고 해야할까?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청춘시대] 에서 강이나 라는 캐릭터가 중년의 남성들을 만나면서 원하는대로 돈을 펑펑 쓰는 생활을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본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들이 이 파파카츠로 돈을 벌어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자신의 '최애'에게 갖다 바치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왔던 것 같다.&nbsp;<br>그리고 일본에는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또 다른 형태가 있더라. 바로 렌탈 여친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 말로 여친 대행 서비스 라고 하면 되려나? 일본 드라마 [내일, 나는 누군가의 여자친구] 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드라마로 시즌 1을 보았고, 시즌2는 앞 부분만 조금 보다가 말았다. 원작 만화가 있다고 알고 있다. 나무위키 설명에 의하면 이 만화에 렌탈 여친, 파파카츠,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며 통용되는 매춘 행위들이 총 망라된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곧바로 이 드라마를 떠올렸다. 이 책이 나왔던 96년에는 책 내용이 충격적인 문제작이었겠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류의 매춘이 너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br>이 책과 이 드라마를 연결해서 글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드라마를 가볍게 보고 넘겨 버려서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 디즈니 플러스를 딱 한 달만 구독해서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짧은 시간에 몰아서 보았기 때문에 더 기억이 안 나는 듯하다. 다시 보려면 다시 구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좀 아깝다. 혹시 [무빙]의 후속 시리즈로 강풀 작가의 세계관을 구현한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나오면 그때 다시 구독할 예정이라, 그때 다시 보고 글을 쓸까 싶은데, 어쩌면 그때쯤 되면 이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nbsp;<br>사토 아유코는 2013년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을 병용한 급성약물중독이라고 나온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겨웠을 작가의 삶을 감히 생각하면 참 뭐라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작품 써준 덕분에 이렇게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다. 자, 이제 꽤 오래 방치해뒀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다시 읽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57/19/cover150/897012969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5571964</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드라마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3196</link><pubDate>Sun, 15 Feb 2026 04: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93196</guid><description><![CDATA[드라마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br><br>설 연휴의 시작인 토요일에는 원래 일정이 하나 있었다가 취소되었다. 그런데 나는 정확하게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그냥 막연히 뭔가 일정이 하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달력을 확인하고서야 취소된 일정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할일이 없어져서 낮에 뭘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운동을 가려다가 이번 주에 신나게 운동한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근육통이 찾아온 걸 깨닫고 하루 쉬자고 생각했다. 그럼 사무실 나가서 자료도 좀 찾고 글도 좀 쓸까 했는데, 피로와 근육통 때문에 몸이 무거웠다. 뭐 그럼 낮잠이라도 자야지.<br><br>책을 조금 읽다가 졸고, 폰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좀 찾아보다가 다시 잠이 와서 또 졸았다. 다시 깨서는 서너개의 앱으로 일본어와 영어를 익혔다. 그제서야 배가 고파서 간단히 배를 채우며 넷플릭스를 열었다. 시간 날 때 보려고 생각했던 일본 드라마가 뭐였더라 찾아보고 있었는데, 신작 추천으로 대만 드라마가 제일 먼저 보였다. 제목도 딱 눈에 띄었다.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 추리물이라는 것만으로도 일단 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누가 출연했나 보는데, 정이건 이란 이름이 나왔다. 정이건이라. 그 옛날 홍콩영화에 나왔던 그 정이건인가? 그제서야 포스터에 나온 그 얼굴을 알아봤다. 확실히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그 잘생긴 얼굴은 여전했다. 그리고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살짝 애매한 장발 스타일. 그가 출연한 영화를 여럿 봤겠지만, 확실히 기억에 남아있는 건 [풍운]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섭풍의 머리스타일도 지금 이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던가 싶다. 이 아저씨도 이젠 제법 나이가 많을텐데, 그래도 이렇게 드라마에 나오는구나 하며 드라마를 시작했다.<br><br>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위 말해 인플루언서 라고 불리는 SNS 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나온다. 정보를 찾아보니 각본과 감독이 수원셩(蘇文聖) 이라는 사람이더라. 이전 작품들의 수가 적었고 내가 본 건 없었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가 대부분 원작이 있는 경우가 많던데, 그런 정보는 찾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니 꽤 괜찮게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기대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일단 제목 덕분에 가벼운 느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인플루언서 라는 기성 세대에게는 낯선 단어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이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다루며, 거기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은 독창적으로 잘 만든 이야기라고 느낀다. 다만 더 깊은 주제의식으로 파고 들어가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br><br>사실 이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이 전체적으로 좀 어설프고, 부족한 느낌이다. 뭔가 더 크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좀 안타까웠다. 제일 어이없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첫번째 살인이다. 아니 결국은 피해자가 죽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 아닌 살인미수인데, 이게 참 애매하다. 암튼 그 첫 피해자는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나서 나중에 맨 마지막에 숨겨진 진짜 악당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사건은 피해자가 될 인플루언서(이 단어를 대체할 말이 혹시 없을까 검색해보니 국립국어원이 ‘영향력자‘ 라고 제시했더라.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그건 더 어색하기만 해서 그냥 길어도 이렇게 써야겠다.) 가 실제 총과 거의 구분이 안 가는 비비탄 총을 가지고 경찰서 앞으로 와서 총격을 가할 것처럼 하다가 여러 경찰들과 대치 상태에서 주인공이 쏜 총에 맞는 것이 드라마의 시작인데, 여기가 좀 많이 아쉽다. 일단 이 피해자가 하늘로 첫발을 발사하고 사람들이 총성을 듣고 놀라 큰 혼란이 발생하는데, 나중에 이 피해자가 왼쪽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진 후에 총을 빼앗아 확인해보니 이게 비비탄 총이더라. 이게 말이 되나? 아니 비비탄 총에서 어떻게 실탄 사격과 같은 큰 소음이 날 수 있나? 그리고 경찰들이 총을 든 사람을 제압하는 장면도 너무 어설프게만 그려진다. 아무리 경찰이 무능해도 설마 이 정도일까 싶다. 게다가 이 피해자는 왼쪽 가슴에 총을 맞았는데, 나중에 너무 멀쩡하게 살아난다. 물론 꽤 오랫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너무 작가이자 감독 맘대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첫 피해자가 병원에 실려가자마자 맨 처음 응급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중에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는데, 그럼 의사가 수술 중에 마치 실수한 것처럼 고의로 죽일 기회가 있다는 뜻인데, 이 의사는 수술은 수술대로 해놓고 나중에 병실에서 이 환자를 다시 죽이려고 시도한다. 이것도 참 생각해보면 우습기만 한 오류라고 볼 수 있다.<br><br>초반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정보를 통제하고 주인공 형사의 가족 이야기와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이야기로 시선을 분산시키며 좀 답답한 느낌인데 조금만 참으면 가족의 불행한 사연이 밝혀지고, 데이트 폭력이 해결되면서 느린 흐름은 금방 빨라진다. 이 부분만은 확실하게 좋았다. 다른 드라마들이 중반 이후에도 계속 느린 흐름으로 쓸데없는 곳으로 자꾸 눈을 돌리곤 하는데, 이 드라마는 중반부터는 곁눈질 하지 않고 결론으로 달려간다. 맨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데, 초반부터 의심스러운 인상을 잔뜩 심어주는 인물이기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라 이런 걸 반전이라 부를 수 있나 싶다. 그리고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반전도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주인공 일행이 너무 쉽게 이 숨은 악당을 잡아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br><br>드라마를 다 본 후에 조금 곱씹어보면 전체적으로 지문 검사라던가 족적 검사라던가 포렌식이나 부검 등 기본적인 과학수사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칼이 그대로 꽂힌 채로 죽은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가 장갑도 안 낀 맨손으로 찔렀고, 지문을 닦지 못했는데, 지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익사로 사망한 두번째 인플루언서가 실제로 익사인 것인지 부검 결과를 보는 장면도 없다. 주인공이 시체의 입을 열어보고 입안이 깨끗하단 사실을 확인하여 죽은 후에 던져진 것이라 추측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깨끗한 물에서 죽었다는 추측이 아니라 부검으로 정확한 사인을 밝혀야 맞는 거겠지. 네번째 피해자도 작중 묘사로는 이미 피가 질질 흘러나오는 큰 가방을 육교 위에서 끌고가는데, 경찰에서는 부검도 없이 그냥 떨어져 죽은 것으로 말한다. 더 웃긴 것은 유일하게 시체를 두고 부검 결과를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이 앞서 말한 칼에 맞아 죽은 피해자이다. 이건 칼이 몸에 꽂힌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고 외관상으로 칼에 찔린 상처가 네 개나 보이는 거라 굳이 부검 결과를 일부러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아, 범인이 아랫쪽에서 위로 찔렀다는 부검 결과가 필요해서 넣은 장면이라는 것을 방금 글을 쓰면서 이해하기는 했다. 즉, 진범의 정체를 유추하며 범위를 좁히기 위한 의도였겠구나.<br><br>여기까지 이 드라마의 단점들을 적었는데, 그럼에도 괜찮은 점수를 줄만한 드라마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질질 끄는 경향이 있고, 쓸데없이 로맨스를 넣거나 하는 등 핵심주제로 승부하지 않고 다른 인기 요소를 자꾸 섞어넣으려고 해서 일단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끝까지 다 보는 드라마가 많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8편짜리 드라마로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적당하다.<br><br>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 주제는 인기를 위해 아무 짓이나 마구 벌이고 다니는 소위 말하는 스트리머 혹은 유튜버 이런 인간들이 좀 더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사고가 났다면 꼭 수습을 해야한다. 뭐 이런 것. 그리고 온라인으로 특히 SNS로 빠르게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가짜 뉴스들에 대한 경각심을 다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빠와 딸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딸을 둘 키우는 아빠로서 이 부분 때문에 과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이 답답했고, 결국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내 주위에 성인이 된 후로 아빠와 사이가 나쁜 여성들이 많았다. 심지어 애들 엄마와 장인어른의 관계도 아주 좋지 않았었다. 나는 가끔 혹시라도 우리 딸들이 사춘기 이후로 아빠를 멀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늘 생각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가끔 위기도 있었던 것 같다.<br><br>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정이건이 연기하는 형사는 잠시라도 틈이 나면 딸과의 메신저를 열어보며 혹시 답장이 왔는지를 보는데, 딸은 늘 답장이 없다. 여기서 좀 재미있는 건 어떤 예뻐보일만한 이미지에 아주 좋은 것만 같은 말을 얹어서 보내는 짓을 주인공이 주기적으로 한다는 것.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어쩌면 지금도?) 장년층들이 많이 하던 거였다. 적당한 꽃 사진이나 풍경 사진이나 이런 배경에 잡지 [좋은 생각] 이나 [샘터] 같은 곳에 실려있을 것 같은 좋은 말을 담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막 퍼뜨리는 것.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예전에 아주 친했던 어느 형님이 나에게 딱 그렇게 하셨다. 아마 나한테만 보낸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 여러 명에게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사진도, 아무리 좋은 글귀도 한두번이지. 이게 끝없이 계속 오면 제대로 반응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더구나 나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혀있을 법한 좋은 글이나 시, 아까 말한 류의 잡지에 실린 글들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류의 글들은 얼핏 그럴듯하게 느껴지고 따뜻하고 좋은 내용인 것 같지만, 이 사회의 특정한 면만 부각해서 보게 만들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보지 말라고 세뇌하는, 어쩌면 국민들을 가스라이팅하는 류의 글들이다.<br><br>또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암튼 이 형사는 아빠로서 제대로 딸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자꾸 망설이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짧은 틈이라도 생기면 늘 대답도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이 보내기만 한 메신저 대화를 열어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딸이 아주 짧은 단답형 답을 달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드러나지만 그건 딸이 쓴 것이 아니라 딸을 납치한 납치범이 쓴 것이었다. 과연 아빠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 이 부분은 극 중에서 명확한 묘사가 없어서 장담하기 어렵다. 아마 납치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 같다. 납치범은 딱 한 두 단어로만 답을 해서 의심을 피했고, 형사는 드디어 우리 딸이 답을 했네 하고 내심 안심하고 조금은 기뻐하지 않았을까.<br><br>어쨌든 막판에 아빠가 딸을 구해내고 나서야 나도 마침내 좀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아빠와 딸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드라마 전체에서 제일 좋은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이걸 선택할 것이다. 이 부녀 관계는 엄마이자 아내를 잃고 난 후에 아빠가 엄마를 잃은 슬픔에 빠져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딸은 마침내 아빠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버리고 그 후로 대화조차 피해버렸다. 아빠는 딸이 걱정되니까 음식을 사다가 집 앞에 놓고 가고, 불 켜진 창문을 한참 쳐나보다가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했듯이 혼자 계속 글귀가 적힌 이미지를 보내거나, 말을 걸곤 한다.<br><br>아내이자 엄마의 죽음, 그 너무나도 큰 상실 앞에 두 사람은 정말 슬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남은 둘이 더 보듬고 의지해야 할텐데 늘 그건 쉽지 않은 것처럼 그려진다. 그렇게 서로 상처주고 결국 딸이 집을 나와버렸어도, 그래도 둘은 아빠와 딸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늘 있었기에 아빠는 아빠대로 말을 걸었던 것이고, 딸은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고 작은 무대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에게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br><br>막판의 병실 장면에서 딸은 친구랑 대화하다가 밖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리자 어쩔줄 몰라하면서 자는 척 한다. 친구는 서둘러 병실을 나서며 친구 아빠에게 인사를 한다. 아빠는 병실에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손에는 가끔 사다줬던 밥이 들려있다. 딸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레 사온 밥을 탁자에 놓고 딸의 친구가 보내줬던 딸의 공연 영상을 시청한다. 바로 아빠에 대한 그 노래였다. 그러자 딸이 눈을 뜨고 말을 건다. 아빠는 시끄럽게 해서 잠을 깨웠을까봐 미안해한다. 딸은 몸을 일으키더니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아빠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앉으니 딸은 솔직한 심정을 말하며 아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팔을 껴안는다. 아빠도 딸의 머리쪽으로 머리를 기대며 서로의 오랜 침묵을 해소한다.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일단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고, 일 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와 밝고 당차고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것도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일 수 있는 딸의 성격을 정말 잘 보여주고 있다. 아빠는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와 자신이 입혀버린 상처 때문에 어떻게 딸을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고 조심하는 모습이 잘 보인다. 또 딸은 그 나름대로 긴 시간 외면해왔던 아빠를, 사랑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막상 자신을 구해준 든든한 아빠를 다시 보고, 또 아빠가 자신에게 한 실수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먼저 다가가는 모습.<br><br>마지막으로 배우들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일단 주인공 정이건은 앞서 말했듯 너무 반가웠고, 명성에 손색없는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초반 한동안은 너무 오랜만에 보는 정이건이 이렇게 나이 든 모습이라 적응이 안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멋있으니 괜찮다 여겼다. 조금 이 인물에게 어색하다 싶은 면이 드러나는 부분은 배우 탓이 아니라 대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두번째 핵심 인물은 베테랑 형사와 함께 파트너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사이버 수사대 신참 형사 리신핑이다. 리페이위(李霈瑜)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보면서 낯익은 얼굴이라 여겼는데, 찾아보니 처음보는 배우였다. 정보를 보니 생각보다는 나이가 있던데, 신참 형사를 자연스럽게 잘 연기했다.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긴 시간 주연 배우들을 보면서, 또 다양한 상황의 다양한 표정들을 보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좋아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약간 독특한 매력이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사이버 수사대 팀장인 허전웨이, 배우는 리리런 이라는 분이 맡았다. 딱 보자마자 분명 최근에 본 적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최근에 본 대만 영화 [96분]에 나왔더라. 배역도 그렇고 당연히 배우의 실제 나이도 정이건이 훨씬 더 많을텐데, 옷차림을 비롯해 분위기는 어쩐지 이 사람이 더 나이가 많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정이건이 젊어보이고, 멋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리고 응급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이자, 이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궈따푸, 배우는 왕보지에(王柏傑)가 맡았다. 이 배우도 분명 본 얼굴이다 생각하면서 내가 대만 배우들을 이렇게 많이 알 리가 없을텐데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까 말한 최근에 본 영화 [96분]에 나왔고, 또 예전에 열심히 보았던 [화등초상]에도 나왔더라. 그리고 내가 봤던 옛날 영화들에도 조연으로 나왔다고 적혀있었다. 나름 아주 슬픈 사연의 주인공인데, 그만큼 드러나지는 못한 느낌이다. 인플루언서 패거리 중에 공격을 받고도 유일하게 구출된 요우쯔(별명, 이 배역 실명을 메모해두지 않았네)는 러우쥔슈어(婁峻碩)라는 배우가 맡았다. 그럭저럭 무난한 연기였다. 다음으로 주인공의 딸 첸유치에는 첸옌페이(陳姸霏)라는 배우가 맡았다. 처음에 학생으로 나올 때는 엄청 어린 배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나 오디션 보는 모습은 또 완전 어른의 얼굴이더라. 앞서 언급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 장면의 감정 연기가 참 좋았다. 그 다음으로 첸유치에의 친구이자 극 중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녀 바바, 리팅언은 샹지에루(項婕如) 배우가 연기했다. 드디어 익숙한 배우가 한 명 나왔다.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었던 [숨통을 조이는 사랑]의 주연이었다. 마치 인형처럼 귀여우면서도 정말 예쁜 얼굴이라 쉽게 잊을수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저 [숨통을 조이는 사랑]이 남자 주인공 한 명에 여주인공 셋을 엮어 놓았는데, 그 이야기가 별로 매끄럽게 전환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 부분은 이전에 쓴 글에 자세히 다뤘었다. 이 배우는 그 첫부분에서 남자 주인공이 정말 순수하게 빠져드는 사람을 맡아 청순하면서도 무서운 매력을 보여줬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가면을 쓰고 나오는 장면이 많아서 이 예쁜 얼굴을 계속 가면으로 가려두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상으로 마녀 바바라는 캐릭터가 가진 비중이 엄청 큰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이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아니 얼굴이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다. 그래도 저 첸옌페이 배우와 둘이서 정말 친한 친구가 되는 과정 등 장면들은 다 좋았다. 다음으로 초반에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맛있다고 소문난 케이크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예핀쉬안이란 배역은 청위시(程予希) 배우가 맡았다. 이 배우는 [태양을 보지 않았다면] 이란 대만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조연을 맡았었다. 이 드라마는 그 유명한 [상견니]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이 드라마에 대한 글도 조만간 쓰려고 생각 중이다. 배역 특성상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늘 얼굴에 멍과 상처가 있는 상태로 나온다. 그래서였는지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나중에 배우 정보를 찾아보고 이 배역이 이 사람이었어? 라고 조금 놀랐고 다시 등장했던 장면을 찾아보니 이 사람이 맞았다. 사실 이 배역 자체가 초반에 관객을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실제 이야기 진행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역할이라 비중이 작다. 이외에도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데, 다들 딱히 언급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비중이 적어서 그냥 넘어가야겠다. <br><br>아! 우리나라로 치면 우정출연이나 특별출연 같은 개념으로 출연한 주인공의 아내이자 첸유치에의 엄마 샤오후이 배역만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린신루(林心如) 배우가 맡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대만에서는 엄청 유명한 배우라고 하더라.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유명한 건 바로 [화등초상]의 로즈 마마, 뤄위눙 역이었다. 이 드라마는 정말 관객을 빠져들게 만드는 걸작인데, 특히 이 로즈 마마의 매력이 어마어마했다. 그 다음으로 본 작품은 미미여사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모방범]을 드라마로 만든 [카피캣 킬러]에서 야망을 드러내는 방송국 간부를 맡았었다. 이 드라마도 나중에 소설 원작과 비교해 글을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또 [희생자 게임]이란 드라마에서도 이 배우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자폐 증상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감식반 형사가 자신의 딸과 얽힌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펼치는 모험을 그린 드라마로 첫번째 시즌은 엄청 독특하고 흥미로웠는데, 두번째 시즌은 첫시즌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린신루는 첫시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었다. 음, 글을 쓰면서 보니 내가 생각보다 대만 드라마를 꽤 보긴 했구나 싶다. <br><br>정말 마지막으로 제목 이야기만 하고 마치자. 원제는 [百萬人推理] 로 백만명의 추리 로 옮길 수 있겠다. 이 백만명이 인플루언서 를 팔로우하는 백만명의 팔로워를 나타내는 것이니 우리나라 제목도 정확하다. 영어 제목은 [Million-Follower Detective] 로 팔로워를 탐정이라는 명사로 받았다. 문제는 이거다. 원제의 추리와 우리 제목의 추리 중이라는 부분, 그리고 디텍티브 라는 단어. 이 드라마에서는 팔로워들 다시 말하면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일반인들이 추리를 하지는 않는다. 추리는 주인공과 사이버 수사대 신참 형사 그리고 납치 당했다가 유일하게 구출된 인플루언서만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목을 정한 이유는 뭘까? 아무것도 모르고 빠르게 유포되는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악플만 달아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빗대어 비판하려는 의도일까? 사실 사회에서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유독 온라인 공간, 특히 SNS 에서는 뇌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 시대를 나타내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 평범한 일반인들이 온라인에서 거짓 정보 때문에 휩쓸려서 해당 인물에 대한 온갖 개인정보들을 까발리는 짓, 흔히 말하는 신상털이를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예전에 넷티즌 수사대가 신상을 털었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습고도 무서운 일인가! 제목만 보고 긍정적인 의미로 집단 지성의 힘으로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내용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인 셈이다.<br><br>글을 써야지 생각하고 있는 책, 영화, 드라마 이야기가 제법 쌓여있다. 연휴에 부산에 안 가기로 해서 시간도 많으니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써볼까? 아, 일정이 있는 날도 있으니 매일은 어렵겠구나. 그럼 이틀에 하나씩이라도 써봐야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특히 서재 이웃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br><br>추신. 글을 다 쓰고 나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중간에 새로 태어날 아기 이름을 짓는 부분에서 언급된 어떤 이름이 엄청 익숙했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바로 의사인 궈따푸와 만삭인 그의 아내가 딸 이름을 고민하는 장면이다. 아내가 궈메이메이, 궈롄리, 궈징징, 궈펀룽, 궈비첸 이렇게 핸드폰으로 들여다보며 좋은 이름을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하던 궈따푸가 아내에게 궈쉐푸 하고 말한다. 그러자 아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나무라듯 말하고, 그러자 그가 진지하다고 받아치는 장면이다. 분명 들어본 이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왜 아내가 진지하게 하라고, 즉 장난치지 말라는 뜻으로 말했는지 궁금해졌다. 너무 유명한 연예인 이름이라서? 아님 뭔가 꺼려질만한 이유가 있어서일까? 뜻이나 발음에 놀림 당할만한 뉘앙스가 있을까? 암튼 나중에 찾아보니 궈쉐푸(우리식 발음은 곽설부)는 대만의 가수이자 배우이자 모델 이름이었다. 아마 아이돌 그룹 출신인 듯했다. 그리고 아까 언급했던 드라마 [화등초상]에도 출연했었다. 이렇게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고민하는 장면을 보니, 내가 우리 아이들 이름을 짓기 위해 엄청 많이 찾아보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며칠을 밤을 새며 작명법 책을 찾아보고, 옥편을 뒤지기도 했었다. 나는 혹시 이 드라마에 아주 잠깐이라도 이 궈쉐푸 라는 배우가 나왔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찾아봤는데, 내가 여러 경로로 검색해봐도 나오지는 않았다. 왜 그 이름을 듣고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네.<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