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보지 못한 길 (감은빛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읽기란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책 읽기란 가보지 못한 또다른 길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4 Jul 2026 17:39:28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감은빛</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163018338758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감은빛</description></image><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일베 말투 논란</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77495</link><pubDate>Mon, 06 Jul 2026 21: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77495</guid><description><![CDATA[폭염과 열대야<br>열대야는 밤 최저 기온이 25도씨 이상인 날을 의미한다. 올해 서울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아직 열대야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나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기부터 너무 더워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토요일 밤에는 조금 나았으나, 다시 어제 밤에 더위로 인해 잠을 설쳤다. 장마 기간이라 습도는 엄청나게 높고, 낮에도 밤에도 더위가 이어지니 덥고 습한 기운 때문에 너무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한다.&nbsp;<br>우리 나라는 다행히 늦은 장마로 상대적으로 덜 뜨거운 6월을 보냈지만, 그 사이에 유럽과 미국, 인도와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는 40도가 넘는 고온으로 고통받았다. 특히 유럽은 열돔이라는 기상현상 때문에 유럽 대부분이 불가마 속에 갇혀 있는 상황처럼 되어 버렸다. 프랑스가 44도, 그외 유럽 대부분이 40도를 넘겼고, 인도와 파키스탄 일부는 45도를 넘겼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덜 뜨거웠던 우리나라였지만, 그렇다고 덥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나는 6월 내내 더위에 시달렸다. 내가 오후에만 일을 하기 때문에, 심지어 가장 더운 시간인 2시에서 6시까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잘 달궈진 차량 안은 그 무엇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뜨겁다. 내가 주로 운전하는 회사 차량은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한다. 오전에는 주로 매장간 재고 이동을 담당하는 사람, 나와 친한 선배가 이용하고, 그 선배가 일을 마치고 약 1시간 가량 후에 내가 이 차량을 몰고 출발한다. 원칙적으로 그와 내 근무 시간 사이 간격은 1시간이지만, 그는 평소에 늘 일을 일찍 마치는 편이라 실제로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 정도로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추측한다. 사무실 근처는 늘 주정차 차량으로 혼잡하다. 근처 식당들에서 점심을 먹으려는 차량들과 그 근처 사무실에 출근한 이들의 차량들이 엉켜있다. 운이 좋아서 그늘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운이 나빠 땡볕에 주차된 상태라면, 그야말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날엔 일하는 4시간 내내 차량 내부 열기가 식지 않는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냥 온 몸으로 땀을 줄줄 흘리며 운전을 할 수 밖에.<br>그래도 밤에는 기온이 조금 떨어져서 그 정도로 덥지는 않았기에, 그나마 살 수 있었는데. 이번 주말부터 그러니까 서울 기준으로는 아직 공식적인 열대야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는 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 시작했다. 이제 9월 초까지는 매일 밤 잠을 자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엔 운전을 하는 일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 것이고, 그 피로는 계속 누적되어 나를 괴롭힐 것이다. 새벽에 아마 4시쯤, 땀을 흘리다 잠에서 깨어 선풍기를 살폈다. 이미 최대 풍속으로 바람을 보내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더 시원하게 잠을 잘 방법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찬 물을 덮어 쓰고 돌아왔다. 아침 일찍 짐을 옮겨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운전도 해야 했다. 피로가 덜 풀린 상태도 집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예상보다 일이 일찍 마쳐서 오후에 출근하기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등산하듯 집으로 올라와 찬 물을 덮어 쓰고 알람을 여럿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워낙 피곤했던 덕분인지 곧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알람이 한참 울려서 깨보니 세 시간이 휙 지나있었다. 그냥 눈만 감았다가 바로 다시 뜬 것 같은 기분인데, 1초도 안 지난 것 같은 느낌인라 세상에게 아니 시간에게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출근하려면 서둘러야 해서 일어나 간단히 씻고 움직이는데, 피로감은 여전했다. 하, 올 여름 에어컨 없이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br>접촉사고<br>1996년 1월에 운전면허를 따고 2005년쯤에 처음으로 접촉사고를 냈었다. 당시 일하던 시민단체 소유의 12인승 승합차를 몰고 가다가 아주 살짝 옆 차를 긁었다. 우리 차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옆 차에는 조금 스크래치가 생겼을 뿐이었는데, 그 차 운전자였던 중년의 아저씨는 나중에 병원에 드러누우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엔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도 했다. 더군다나 개인 차량도 아닌 일터의 차량이었기에, 일터 직속상관이었던 사무처장이 사고 처리를 맡아주었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크래치 정도라 적은 돈으로 합의를 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상대가 병원까지 가겠다고 하자 결국 보험회사에 처리를 맡겼었다고 들었다. 나중에 보험회사 직원이 병원을 못가게 막았다고 들었다.&nbsp;<br>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최근에 두 번째 접촉사고를 냈다. 이 배송 일을 맡은 지 약 3개월 만이다. 그날은 여러모로 일이 꼬인 듯한 느낌이었다. 첫번째 매장의 배송 건수는 아마 4건이었다.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여러차례 다녀왔던 곳이라 네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빠르게 배송을 했다. 마지막으로 처음 가보는 아파트를 향했다. 네비가 알려준 아파트 입구가 지하 주차장이길래 그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내를 살피며 내가 가야할 동을 찾기 시작했다. 배송 영수증에 적힌 주소는 202동이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에 202동에 대한 안내만 없었다. 201동도 있고, 203동도, 204동도 있는데, 202동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어딘가 있겠지. 층을 옮겨가보면 나올지도 모른다.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여기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총 3개 층이었다. B1부터 B3까지 모든 경로를 다 뒤지며 202호를 찾아다녔는데 없었다. 설마 아파트 입구가 없을 수가 있나? 내 실수였겠지. 나는 다시 3개 층을 차근차근 돌면서 202동을 찾아다녔다. 두번째 돌아봐도 없었다. 벌써 거의 10분 정도를 허비했다. 아쩔 수 없이 영수증에 적힌 번호를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매장으로 전화를 걸어 해당 조합원에게 202동 입구가 어디인지를 알려주셔야 한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했다. 처음 들어왔던 주차장 출입구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연락을 기다렸다.&nbsp;<br>한참 기다리고 있는데, 두번째고 가야 할 매장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따라 배송 건수가 유난히 많다는 소식을 전했다. 두번째 매장 담당자는 나에게 일찍 오라고 재촉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늘 평소보다 건수가 더 많으니 시간 배분을 잘 하셔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안그래도 이 마지막 배송 때문에 너무 어이없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얼른 이 건을 마치고 다음 매장으로 이동해야지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해당 조합원의 전화가 왔다. 지하 주차장에는 202동으로 통하는 입구가 없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202동으로 갈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일단 주차장에서 나와서 상가 쪽으로 오면 무슨 부동산 근처에 1층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거기서 내리면 근처에서 202동이 보일거라는 설명을 했다. 내가 이 아파트로 배송을 온 것은 그날이 처음이지만, 3달동안 계속 지나다녔던 곳이라 해당 상가는 계속 보았었다. 이 주차장을 나서면 바로 큰 글이라 차를 세워둘 곳이 없다. 해당 상가에는 주차장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곧바로 202동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알려주지 않고 상가에서 1층으로 올라온 후에 눈으로 202동을 찾으라니! 이게 말이 되는 설명인가? 아니 상품을 주문하고 배송을 시켰으면, 배송 노동자가 상품을 집 앞까지 갖다 줄 수 있는 정보를 줘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화가 나려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한 말투로 다시 물었다. 202동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통로는 없나요? 그 조합원은 아까의 설명만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말했다. 주문하신 물량이 많잖아요. 저는 지금 차량으로 이동 중입니다. 차를 주차할 곳이 필요하고, 주차한 곳에서 해당 동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지금 말씀하신 곳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요. 그러자 그 조합원은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으니, 필요하면 주차장 입구에 있는 경비에게 물어보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nbsp;<br>전화를 끊고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니 큰 길에서 인도로 올라설 수 있는 공간이 두세개 정도 있었다. 차량이 인도로 진입하는 막기 위해 볼라드 라고 부르는 기둥들이 막고 있었지만, 차량을 그 볼라드 앞에 올려놓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얼른 거기 차를 올려두고 이 지긋지긋한 건을 마무리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너무 오래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후진 기어를 넣고 고개를 뒤로 돌리는 동시에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밟자마자 차가 무언가에 부딪혔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나는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사이드 미러를 살폈다. 내 뒤에 비스듬한 방향으로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아니 대체 언제 저 자리에 차가 있었지? 아니, 여기는 주차 공간도 아니고 그냥 통로인데, 왜 내 뒤에 저렇게 어정쩡한 방향으로 차가 서 있었던 거지? 아니 막 부딪혔을 당시엔 그저 저 자리에 왜 차가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정신이 없었다. 차에서 내려보니 우리 차 조수석 쪽 후미 범퍼가 상대방 운전석 쪽 문을 들이받아 문이 찌그러져 있었다. 상대 차량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성 두 명이 내렸다. 두 여성은 자신들이 바쁘다며 얼른 보험회사에 연락하라고 채근했다. 나는 왜 내 뒤에, 왜 하필 이 자리에 있었느냐 물었는데, 마치 못 들은 것처럼 답을 하지는 않았다.<br>흥분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일단 후진 기어를 넣고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엑셀을 밟았기 때문에 나는 저 차를 보지 못했다. 부딪히는 소리를 먼저 들었다. 엑셀을 밟고 거의 동시에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후진하면서 뒤를 살피지 않았으니 명백히 내 잘못이었다. 그건 어떻게 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단 사무국 상무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보험회사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사무국에서는 얼른 번호를 찾지 못했다. 상무님은 나를 진정시키더니 사진을 잘 찍어두고, 서로 연락처 교환한 다음에 보험 접수하고 연락한다 전하고 상대를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다음 매장에 배송 건수가 많다고 전했더니, 나보고 보험 접수하고 마음 잘 가다듬고 천천히 출발하라고, 자신이 먼저 가서 절반 정도를 배송할테니, 걱정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br>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하고 나서 아까 사고 나기 전에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뒀던 자리에 차를 올려두고 손수레를 꺼내어 무거운 상자 두 개를 실었다. 전화로 설명 들었던 부동산을 찾아서 엘리베이터 위치를 찾았다. 차에서 한참을 먼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상가와 1층만 오가는 것이었다. 1층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아파트 건물이 여럿 보였다. 전화로 설명을 들었던 것과 달리 곧바로 202동을 찾을 수는 없었다. 손수레를 엘리베이터 근처에 세워두고 이 건물과 저 건물로 동 숫자가 보이는 곳까지 뛰어 다녔다. 한참 후에 겨우 202동을 찾았다. 건물이 낮았다. 복도로 들어서서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건물에는 1층과 2층 밖에 없었다. 무슨 아파트가 겨우 2층 높이라고? 그제서야 그 조합원이 '테라스 동'이 어쩌고 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떠올렸다. 아니 아무리 테라스 동인지 뭔지 그렇다고 해도, 그럼 자신들은 주차를 안 하나? 차가 없나? 설마 이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차가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암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손수레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무거운 상자 두 개를 들고 일어서는데 허리가 휘청 했다. 계단을 오르려는데, 1개 층이 유난히 높았다. 다른 동네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빌라 5층이나 6층에 배송을 자주 다니지만, 여기 1개 층이 그런 빌라 2개 층 이상 높이라고 느꼈다.<br>암튼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배송을 마치고 차량으로 돌아와 땀을 닦으며 아까 사고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험 접수를 마쳤으니, 담당자가 연락할 거라고. 그러자 그 사람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병원을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빠졌다. 상대 차량은 내 차 바로 뒤에 있었고, 후진을 하자마자 곧바로 부딪혔다. 거리도 없었고, 속력도 없었다. 내가 엑셀을 쎄게 밟았던 것도 아니고 고개를 뒤로 돌리는 동시에 슬쩍 밟았을 뿐이다. 이 거리와 속도로 상대방이 다쳤다는 것은 그야 말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제서야 20년도 더 지난 사고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심지어 차량이 부딪힌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옆을 지나며 긁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병원을 가겠다는 인간이 있었다. 그제서야 상대방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다. 아니, 분명 상대방도 상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고가 나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몰상식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간 같지도 않은 어떤 존재로 변하는 구나. 성별도 나이도 아무 상관없구나.<br>두번째 매장으로 이동하는 중에 보험회사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차를 한적한 곳에 세워두고 한참 통화를 했다. 자세한 상황을 모두 설명하고 상대방이 병원에 간다고 통보한 사실도 전했다. 전화를 걸었던 보험회사 담당자는 자신은 대물 담당이라 대인 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대인 담당자가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운전하는 중에 대인 담당자 전화가 왔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대화를 나눴다. 대인 담당자 말로는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상대방이 병원에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했다. 몇 가지 사례와 판례를 들먹이며 마치 짧은 강의를 하듯 나를 가르쳤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제서야 왜 갑자기 그 차가 그 자리에 나타났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앞에 4칸의 주차구획이 있는 통로에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4칸에는 모두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즉,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주차하지 않고 잠시 기다리다 근처에 있는 주차장 출구로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 차는 왜 그 통로에, 그것도 하필이면 내 차 바로 뒤에 비스듬한 각도로 있었을까? 그러다 문득 차를 돌리려고 이동하는 중에 내가 뒤를 보지 않고 차를 돌려서 부딪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nbsp;<br>만약 그 차가 정차한 상태에서 내가 들이받았다면 내 과실 100퍼센트에 상대 과실은 0퍼센트이겠지만, 상대도 차를 돌리려고 움직이는 중이었다면 달라질 것이다. 상대 과실이 10이던 20이던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보험 담당자에게 이 가설을 설명했다. 나는 그 차량을 보지 못했지만, 그 차량의 위치와 각도가 너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설명을 하면서 아무래도 그 차 역시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 담당자는 우리 차에 후방 카메라가 있는지 질문했다. 카메라는 있었다. 그러나 시동을 걸 때마다 후방 카메라를 인식할 수 없다는 안내가 뜨는 것을 나는 매일 보았었다. 카메라는 있지만, 아마 찍힌 것을 없을 것 같다고 전하며 혹시 모르니 일을 마치고 찾아보겠다고 했다.<br>두 번째 매장에 도착하니 이미 상무님께서 절반 보다 조금 더 많이 실고 떠났다고 했다. 매장 담당자는 사고 이야기 들었다며 안 다쳤는지를 물었다. 나는 사람이 다칠 정도로 부딪히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얼른 짐을 실고 출발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일을 모두 마친 나는 카메라 메모리 칩을 꺼내어 사무실로 갔다. 살펴보니 역시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았다. 상무님 말씀으로는 메모리칩 자체가 망가진 것 같다고. 새 걸로 사서 끼우겠다고 했다.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우리측 카메라는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상대측 전방 카메라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상대방 차량 역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 맞다며, 그래서 우리측 일방 과실이 아니라 쌍방 과실이 되었다고. 그럼에도 후방 주시를 하지 않았던 내 탓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 80, 상대 20으로 최종 조정했다고 전했다. 보험회사 담당자는 비록 8대2 이기는 하지만, 상대방도 과실이 생겼으니 우리 차도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나보고도 병원에 가시려면 가셔도 된다고 했다. 우리 차는 범퍼에 아주 살짝 칠이 벗겨질락 말락 하는 상태일 뿐 망가진 곳이 전혀 없고, 나 역시 다친 곳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다칠만한 사고가 아니었으니.&nbsp;<br>20년 만에 낸 접촉사고였다. 그날 유난히 운이 따르지 않았었고, 하필 배송 건수가 많아 너무 마음이 급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내 실수는 명백했고, 무조건 내가 잘못한 것이 맞았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라. 언제나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살펴보고 출발해야지 라고 다짐을 하며 이 사고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상무님께서는 자신도 어이없는 사고를 여러 차례 냈었다고, 운전을 하다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라고 보험에 드는 것이고, 그러라고 범퍼라는 것이 있는 거 아니겠냐고 얼른 잊어버리라고 했다. 사실 이 배송 일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훨씬 더 조심하며 운전하는 편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계속 시간에 쫓기며 운전을 하다보니 점점 더 급하게, 덜 조심하며 운전하는 방식으로 습관이 바뀐 것이다. 사실 내가 배송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느긋하게 운전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있기는 했다. 여기저기서 종종 마주치는 택배 기사들, 배달 기사들을 살펴보면 나보다 움직임이 훨씬 더 빨랐다. 분명 동시에 지하1층 엘리베이터에 내렸는데, 택배 기사는 순식간에 차를 몰고 저쪽으로 가고 없었고, 나는 겨우 시동을 걸고 네비를 열어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되 조심하고 무조건 주위를 살피고 출발하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겠다.<br>일베 말투 논란<br>스타벅스 사태 이후로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일고 야구부를 향해 조롱을 한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저 혐오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저런 조롱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그럴 수 있을까? 전두환과 그 일당들 같은 인간이 되지 못한 것들이 아니고서야 과연 사람의 목숨을 그리 함부로 조롱할 수 있을까? 새삼 일베라는 그 어떤 것이, 과연 그것이 그저 커뮤니티에 불과한 것인지 어떤 거대한 집단인 것인지, 그도 아니면 거대한 사회 현상인 것인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느꼈다.&nbsp;<br>우연히 본 뉴스타파에서 올림픽 경기장을 봉쇄하고 있는 시위대가 윤어게인 세력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을 접했다. 부정선거를 부르짓는 세력들이 중국의 지령을 받은 김대중 덕분에 노무현이 당선된 그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우리나라에서 부정선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부정선거가 만연한데, 그 뒤에는 무슨 일루미나티인가 뭔가 하는 국가를 초월한 조직이 있고, 전시안이라는 문양이 그 상징이라는 이야기가 그 시위대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했다. 물론 뉴스타파 기자가 접한 것은 그 수많은 시위대 중 일부일 뿐일 것이고, 그런 어이없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br>그리고 오늘은 어떤 아이돌이 일베 말투를 썼다는 것으로 각종 SNS 가 아주 시끄럽다고 했다. 누군지 모르는 어느 젊은 여성 아이돌이 "무섭노." 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그 여성은 경상도 출신이라고. 사람들은 그 말이 사투리가 맞다 아니다 그리고 일베 말투가 맞다 아니다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거기에 조국 같은 위선에 가득찬 정치인들이 끼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 연예인이 사용한 말이 실제 그 지역의 사투리가 맞는지 아닌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나고 자랐던 부산 사투리에는 확실히 그런 표현은 없다. 내가 아는 한 부산 사투리에서 '노' 라는 어미는 내가 무서운 감정을 느낀다고 표현할 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무섭냐고 물을 때 쓰는 것도 아니다. 만약 앞에 '뭐가'가 붙어서 "뭐가 무섭노?" 라고 말한 것이라면 그건 맞는 말이다. '노' 라는 어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묻는 어미로 경상도 사투리에 아직 남아 있는 중세 국에의 흔적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밥 먹었나?" 라는 질문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지만, "뭐 먹었노?" 라는 질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먹었느냐고 묻는 질문이다. 일베 추종자들이 흔히 쓴다는 "심심하노.", "아프노." 와 같은 표현들은 부산 사투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된 사투리 표현으로 바꾼다면 "와? 심심하나?" 라고 묻는 질문이나, "어데가 아픈데?" 와 같은 질문으로 바꿀 수는 있겠다. 일베를 따르는 인간들이 흔히 쓰듯이 혼잣말 하듯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듯 하는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사용하는 표현이며, 그들 집단 안에서는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그들 바깥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항해 자신들을 구별하는 하나의 표식 같은 것이다. 크게 보면 나치 독일의 상징이나 일본 제국 상징 같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nbsp;<br>그래서 해당 연예인이 그 표현을 쓴 것 자체는 논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대응이 아닐 것이다. 그가 일베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썼는지, 모르고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행처럼 젊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는 그 말투를 쓰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조롱과 혐오 표현이 왜 나쁜 것인지를 사회적으로 공감하고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그 표현을 사용하는 젊은 사람들이 모두 나쁜 것이 아니라 이 표현이 왜 혐오 표현인지를 인지할 기회를 주는 것과 유행처럼 퍼뜨려 나갈 성격이 아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nbsp;<br>최근 우리 아이들도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표현들을 자주 쓰는 것을 목격한다.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쓰는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그 내막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유행이니 따라 쓰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젊은 사람들만 유행을 따라 이상하고 위험한 표현들을 쓰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중년들도 입에 밴 위험하고 상식적이지 않는 표현들이 제법 있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본 것은 어느 엘리트 체육인이 학부모 체육대회에 나가서 '민간인 학살'을 했다.'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는 거였다. 나는 누군가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올바르지 않은 혹은 문제가 있는 표현들을 나도 모르게 쓰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nbsp;]]></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늑대랑 할머니랑 사냥꾼이랑 셋이 만는 이야기 - [늑대사냥 - SF어워드 대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68795</link><pubDate>Wed, 01 Jul 2026 22: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6879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833858&TPaperId=1736879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782/50/coveroff/k5728338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833858&TPaperId=1736879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늑대사냥 - SF어워드 대상 수상작</a><br/>김성일 지음 / 읻다 / 2023년 06월<br/></td></tr></table><br/>처음에 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들 때까지만 해도 예전에 본 영화 [늑대사냥]의 원작 소설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목차를 보고 늑대, 할머니, 사냥꾼 이렇게 셋이 반복되는 걸 보고 그 영화의 원작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 영화에는 늑대도, 할머니도 사냥꾼도 등장하지 않으니까. 그 다음에 든 생각은 옛 이야기 빨간 모자의 변형인가? 싶었다. 그 이야기에서 빨간모자를 쏙 빼고 사냥꾼을 넣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첫 장인 늑대의 앞부분을 읽고 나서야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br><br>각 소제목은 해당 장의 시점 주인공을 의미한다. 늑대의 장에서는 늑대 시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할머니 장에서는 할머니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냥꾼 장만 살짝 애매한데, 이 인물은 다소 비밀스러운 면이 있어서 이 인물을 만난 사람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암튼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늑대, 할머니, 사냥꾼 이 순서로 세 등장인물이 번갈아 나타나 이야기를 펼친다. 순서가 한번도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이어진다.<br><br>정확히 이 대목이 이 소설의 참신한 부분이다. 세 화자가 정확히 그 순서를 지키며 번갈아 전면에 나오며 전체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간다는 점. 마치 세 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 공연을 하면서 각자의 파트에 따라 전면에 그러니까 센터에 섰다가 다시 옆으로 빠지는 것을 반복하는 느낌이다.<br><br>또 이 소설의 흥미로운 부분은 주요 등장인물 셋이 모두 일반적인 이야기의 주인공과 다르다는 점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늑대다. 즉, 동물이다. 늑대의 시점에서 그러니까 늑대의 시야와 청각 그리고 후각과 촉각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동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이 인간의 입장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거기에 개나 고양이가 아닌 늑대라는 점이 더 어려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정말 그럴듯하게 늑대의 시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늑대가 그냥 자연의 늑대가 아니고 만들어진 존재이며, 여러 도구를 통해 인간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설정이 있기에 좀 더 편안하게 늑대의 시점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 늑대가 생각한다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전개였다. <br><br>이 늑대 파트가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정유정의 소설 [28]을 떠올렸다. 그 소설에서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등장인물 중 동물이 나왔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맹견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뉴타운이 지어질 무렵 버려진 덩치가 큰 개들이 북한산 인근에 몰려다니는 유기견이 되어 야생화 되었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빨간 눈이 특징인 인수공통 감염병이 퍼져가는 수도권 한 도시 이야기인 이 소설에서 주인공 격인 한 맹견의 존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소설의 주인공인 늑대를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일이 조금은 덜 낯선 상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br><br>또 다른 주인공은 할머니였다. 와! 할아버지도 아니고 중년 여성도 아니고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라니! 일반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대개 남성이고, 가끔 여성이 주인공을 맡아도 젊거나 어린 여성이 맡는데, 할머니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늑대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고, 할머니는 성별로도 나이로도 소수자이자 약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매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마지막 주인공인 사냥꾼은 베일에 쌓인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점이 늑대와 공통점이다. 사회의 주류가 아닌 소수자라는 점에서는 할머니와 마찬가지다.<br><br>SF라는 틀 안에서 실존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가족, 인간다움, 존재 등 생각할 꺼리가 많은 소설이다. 늑대와 사냥꾼은 인간이 아님에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실존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한다. 할머니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라고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느낌이다. 암튼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돈과 권력 밖에 모르는 인간들은 비인간적인 느낌이지만, 그런 면이 오히려<br>인간의 특징임을 잘 보여준다.<br><br>적절한 긴장감과 적절한 따뜻함이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게 만든 덕분에 한번도 쉬지않고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이 소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782/50/cover150/k5728338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7825013</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밤티, 야르, 왁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41466</link><pubDate>Thu, 18 Jun 2026 1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41466</guid><description><![CDATA[밤티, 왁뿌, 야르<br><br>아이들이 뭔가 말랑한 인형 같은 동그란 걸 손에 쥐고 조물락 거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냥 아이들 대화를 들으며 작은 아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요 녀석은 이제 사춘기를 지나갔으려나. 요즘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못 만난 아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큰 아이가 ‘밤티‘ 라는 단어를 쓰는 걸 들었다. 밤티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던 내가 아이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밤티가 무슨 뜻이야?˝ 큰 아이는 설명해주지 않고 계속 작은 아이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큰 아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작은 아이가 ‘왁뿌‘ 라는 단어를 썼다. 나는 이번에는 작은 아이를 향해 물었다. ˝왁뿌는 뭐야?˝ 대화는 이미 난장판이 되었다. 아무도 듣는 이 없이 서로 자기 말을 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 누구랑 이야기 하고 있니?˝ 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더니 ˝아빠, 왁뿌 몰라요?왁뿌.˝ 라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만 저었다. 그러자 아이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자신이 어릴 때 갖고 놀던 액체괴물과 비슷한 것인데 액괴는 액체라 그 자체는 모양이 없지만, 이건 왁스를 굳혀서 고체로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걸 뿌시는 걸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요즘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액괴는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갖고 노는 걸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해했는데, 왁뿌는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차피 둘이 나누던 대화에 끼어들었던 건데, 내가 그걸 이해해봐야 뭐 하겠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둘이 떠들다가 이번에는 ‘야르‘ 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번에도 끼어들어 뜻을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그러고보니 밤티는 그래서 무슨 말인지 알려주지도 않았네. 대신 폰을 찾아서 검색했다. 밤티는 못생겼다 라는 뜻이고, 야르는 기분 좋다는 뜻이라고 한다. 왜 이런 이상한 말들을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려다가 남들이 다 쓰니까 따라 쓰는 거겠지 무슨 이유가 있겠나 싶어서 그만두었다.<br><br>요즘 매일 아이들이 열심히 셋로그를 올리는 걸 본다. 저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이 앱은 특정한 구성원들과 매 시간 약 2초짜리 짧은 영상을 공유한다. 지금 아이들과 함께 있는 방엔 아이들 둘과 나 이렇게 3명이다. 아이들은 엄마와도 셋로그를 하니까 거기도 3명 방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매 시간 두 번씩 2초짜리 영상을 찍어야 하는 건가? 바쁘겠구나. 아니면 한번 찍은 걸 두 방에 공유하는 걸까? 모르겠다. 나는 방이 하나밖에 없고, 내 지인 중에 이 앱을 쓸만한 사람들은 모른다. 요즘은 언급하지 않지만, 나에게 이 앱을 깔아줬을 때 아이들 말에 의하면 애들 엄마는 이 셋로그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도 매 시간 이걸 올리지는 않는다. 평소엔 거의 생각하지 못하다가 가끔 쉬는 시간에 애들이 셋로그를 올렸다는 알림을 보고 나도 하나 찍어볼까 생각을 한다. 주로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 회의를 하러 이동하거나 달리기를 하러 가면서 셋로그를 찍어 올린다. 아마 하루 24시간 중에 두세번 정도 올리는 것 같다.<br><br>아이들은 집에 있는 시간 동안은 주로 고양이를 찍는다. 큰 아이는 원래 본가(큰 아이 표현)에 있던 가장 덩치가 큰 고양이, 타로를 자기 자취방에 데려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학교와 알바 외에는 거의 타로를 찍는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본인 셋로그가 아니라 타로 셋로그라고 써놓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에 있을 때는 태블릿과 교재 등을 찍기도 하고 밥이나 차를 찍기도 한다. 알바 가서도 일하는 중에 부지런히 찍어 올린다. 이 셋로그를 엄마 아빠랑 같이 하고 싶다고 한 건 큰 아이였다. 혼자 살면서 자기 생활을 부모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암튼 거의 매 시간 가장 열심히 셋로그를 올리는 건 주로 큰 아이다.<br><br>작은 아이도 자주 올린다. 집에 있을 때에는 주로 먹는 걸 찍어 올리고 가끔은 집에 있는 두 고양이, 차차와 먀오를 찍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거의 올리지 않는데, 하교 중에는 계단이나 바닥을 찍어 올린다.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에는 하기 싫다고 책상 위를 찍어 올린다. 요즘 부쩍 화장에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가끔 화장한 자신의 얼굴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br><br>나는 거의 올리지 않는데 일을 하다가 잠시 쉴 때 하늘이나 꽃을 찍는 편이다. 내가 일하며 이동하는 길에서 북한산이 잘 보인다. 가끔 북한산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아이들 어릴 때 작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 손을 잡고 북한산을 올라가다가 도중에 내려온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북한산을 보고 그 기억을 떠올려주기를 기대하고 올린다. 달리기를 할 때는 천변 꽃들을 주로 찍고 가끔 한강 풍경을 찍기도 한다. 회의나 일정 때문에 이동할 때는 예전에 아이들과 가곤 했던 가게들 간판을 찍기도 한다.<br><br>길을 가다가 가끔 젊은 사람들이 이 셋로그를 찍는 걸 보기도 한다. 짧게 2초간 뭔가를 찍는 젊은 사람이 있다면 셋로그를 찍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며칠 전에는 전철에 교복입은 여학생 세명이 탔는데 번갈아 셋로그를 찍는 모습을 봤다. 이 아이들은 셀카로 다같이 찍더라.<br><br>노동과 운동<br><br>약 이주 전부터 늘 몸이 피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최근의 나는 일과 운동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 동네 헬스장에서는 약 40분 가량 운동을 한다. 먼저 2~3킬로미터 트레드밀을 달려서 워밍업을 하고, 바벨 운동을 한다. 여기는 바닥에 바벨을 두고 프리웨이트를 할 공간이 좀 애매하다 그래서 벤치프레스를 주로 한다. 우리 집에는 바벨은 있지만, 벤치가 없어서 10년 넘게 벤치프레스를 못하고 살았었다. 그동안 못했기 때문인지 그냥 벤치프레스만 해도 재미있다. 그다음에는 덤벨 운동을 생각나는대로 몇 가지 한다. 마지막은 정리 운동으로 케틀벨을 한다. 스윙과 클린 앤 저크를 섞어서 하는 편이다. 스내치는 양손으로 할 수는 없어서 잘 안 하는 편이다. 암튼 이삼주 전부터 다시 운동에 재미를 붙여서 조금 무리하게 운동을 하곤 한다. 일단 재미가 있으면 멈추지 못하니까. 그러면 기분 좋은 근육통 보다 조금 더 근육 피로가 더 강하게 느껴져 피로감이 심하게 들고 좀 오래간다. 거기에 주 2회 정도 달리기를 하고 있다. 한번은 10킬로미터에서 15킬로미터 사이를 그때 그때 컨디션에 따라 달리고 나머지 한번은 주로 7~8킬로미터를 가볍게 달린다. 달리기와 운동 모두 일을 마치고 저녁 회의들을 가기 전에 하는데, 일을 마치고 바로 하는 운동이나 달리기가 약간 몸에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다. 특히 달리기는 공복인 상태로 하다가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걸 느끼기도 했었다.<br><br>어제는 정말 힘든 하루였다. 오전에 매장간 재고 이동 일을 하는 형이 병원 때문에 하루 쉬어서 내가 아침부터 일을 해야 했다. 근데 하필 일년에 두 번 하는 할인행사 날이라 재고 이동 품목이 많았고, 매장마다 급하다고 요청하는 건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오후 배송이 주로 하는 일이라서 각 매장간 이동 경로가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하나 실수가 있었다. 순간의 착각으로 가장 가까운 매장을 두고 조금 더 거리가 있는 매장으로 먼저 향했는데, 나중에 그 가장 가까운 매장 점장님께서 반쯤 장난으로 항의를 하셨다. 어제 아침 일을 시작하자마자 들렀던 매장이었고, 그 점장님은 자신이 아침식사로 드시던 샌드위치 반 조각을 기꺼이 내주셨었다. 그랬는데 중요한 품목 하나를 너무 늦게 갖다줬으니 서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고,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 드렸다.<br><br>오후에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이미 오전에 일한 피로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첫번째 매장으로 갔는데 배송이 10건이나 있었다. 거기에 매장 지원을 나온 사무국 활동가가 사무실로 한 건을 더 부탁했다. 이 매장에서 가장 건수가 많았던 횟수가 8건이었는데, 드디어 두 자리수를 갱신했다. 그리고 할인행사 때문에 집집마다 박스 수가 많았고, 또 무거웠다. 짐을 실으며, 이러다 두번째 매장은 어쩌나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매장에 팀장님이 나와 계셔서 그 얘기를 했더니 두번째 매장까지 할 수 없을 상황일 거라고 미리 예상하고 다른 배송 기사님을 임시로 구해 배치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오늘 고생이 많을 거라며 커피를 사주셨다. 안그래도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는데, 커피가 들어가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br><br>이 차 짐칸에 짐을 완전히 꽉 채운 것도 처음이었다. 마직막 열번째 집 박스들은 못 실을 뻔 했는데 테트리스 게임 하듯이 박스 모양에 맞춰 짐정리를 해서 겨우 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무국 활동가도 그 생각을 했는지, 테트리스를 잘 하셨다고 한 마디 했다. 열곳의 집 주소를 모두 네비게이션 앱에 입력하고 이동 동선을 머리 속에서 그렸다. 할인 행사 때문인지 처음 가보는 집들이 몇 곳 있었다. <br><br>매장에서 가장 가까운 첫번째 집을 보자마자 걱정이 들었다. 저번에 그 집에 갔다가 차를 돌려 내려오느라 엄청나게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경사가 무척 급한 오르막 골목이었다. 언덕 위가 좁아서 차를 돌릴 공간이 없었다. 어쩔수 없이 후진으로 내려왔는데 언덕 경사가 급해서 아래쪽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도중에 골목이 크게 한번 휘어 꺾이는데 이 각도를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경사가 워낙 급해서 자꾸만 차가 아래로 밀렸다. 몇 차례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각도를 맞추려다가 옆으로 아주 작은 공간이 있는 걸 발견했다. 올라갈 때는 못 봤던 곳이었다. 거기로 진입하면 어떻게든 차를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차가 좌우로 크게 기울었다. 진입로가 앞뒤로도 급경사에 좌우로도 경사가 급해서 마치 차가 뒤집어 질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땀을 흘리며 간신히 그 좁은 공간으로 올라섰는데, 생각보다 좁아서 차를 돌리기 위해 또 한참을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이게 지난 번에 겪었던 일이었다. 그때 무사히 내려와서 했던 생각은 그냥 골목 입구에 차를 대놓고 짐을 들고 올라가자 였다. 다시는 이 골목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지 않겠다 였다. 이번에는 이 차 짐칸이 꽉 차있어서 후진으로 내려오기는 더 어려울 것이 뻔했다. 손수레를 꺼내 무거운 박스 하나와 수박이 든 상자 하나를 실었다. 언덕 위로 손수레를 끌고 올라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경사가 급하기도 했고 길이 평탄하지 않아서 자꾸 바퀴가 걸렸다. 첫 배송부터 온몸이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렸다. 마침내 언덕을 거의 다 올라설 무렵 손수레가 뒤집히며 상자들이 바닥에 굴렀다. 속으로 욕이 나왔다. 얼른 수박부터 살폈다. 다행히 수박이 깨지지도 않았고, 상처도 없었다. 건물 입구는 아직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냥 상자 두 개를 힘으로 들고 가야했다. 그리고 계단. 이런 오래된 빌라는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할인 행사가 있는 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서 쌀을 비롯해 무거운 물품들을 주로 주문한다.<br><br>첫번째 집 배송을 마치고 이미 완전히 지쳐버렸다. 너무 힘들었다. 네번째 집에서는 무거운 상자가 3개였는데, 손수레가 워낙 작고 부실해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화장지 한 묶음을 다른 손으로 들어야 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였다. 여기 배송을 마친 후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셔츠가 에어컨 바람에 잠시 마르다가 다시 짐을 옮기며 젖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열번째 집 배송을 마친 시점이 딱 거의 퇴근 시간이었다. 중간에 처음 가보는 집들 때문에 골목에서 좀 헤매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혹시 힘들면 먹으려고 챙겨왔던 에너지 바를 급하게 먹으며 잠시 쉬었던 시간이 채 오분도 되지 않았다. 사무국 활동가 자리에 마지막 짐을 배송하고 차를 반납하고 나오는데 허리도 아프고 온 몸의 피로가 심했다. 대체로 수요일에는 아이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달리기를 했었다. 어제도 만약 조금이라도 일찍 마치면 달리기를 하려고 런닝복을 챙겼었다. 일찍 마치지도 않았고 너무 힘들어서 달리기는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회의에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 소통방에 상황을 설명하고 하루 빠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우리집도 꽤나 경사가 급한 언덕 위에 있고, 매번 귀가길은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야 하는데, 어제는 정말 너무 지쳐서 그냥 길바닥에 주저 앉고 싶었다. <br><br>집에 돌아오자마자 찬 물에 샤워를 하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배는 고팠지만, 뭔가 먹을 힘도 없었다. 그냥 잠들었다가 밤 10시쯤 깼다. 그제서야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허리 통증은 확실히 나아졌다. 다행이었다. 다음날인 오늘도 여전히 할인행사 중이라 또 얼마나 많은 무거운 상자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br><br>밤에 푹 잔 덕분에 다행히 피로감은 많이 가셨다. 여기저기 조금씩 근육통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상태다. 오늘 같은 중요한 행사날 대체 인력도 없는데 내가 아프다고 빠질 수는 없는 일이라, 더 최악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잠들었었다. 그래서 아침에 깨자마자 몸 여기저기를 살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br><br>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늘도 육체노동에서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일해보자.<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청춘을 다시 살 수 있다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22185</link><pubDate>Sun, 07 Jun 2026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2218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98601&TPaperId=173221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7/57/coveroff/8901098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두 번째 읽었다.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직은 청춘이라 생각했고, 아직은 남아있는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다. 희망이나 꿈 같은 거랑은 좀 다른데,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해야할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뭔가 좀 더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느낌. 지금 나는 이 책의 주인공 제프가 1988년에 심장마비로 죽을 때의 나이 43세보다 7살이나 더 많은 50이다. 처음 읽었을 때 제프가 43세로 죽었다가 다시 18세로 돌아가 청춘을 다시 살아간다는 설정이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여겼다. 43세는 이미 저물어가는 황혼 같은 느낌이었다. 다 늙었다가 다시 젊어진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이 책을 썼던 80년대 중반과 지금은 나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를 것이다. 지금 43세는 거의 청년 느낌이다. 이젠 사람들이 환갑을 따고 기념하지도 않는다. 환갑 정도도 이젠 청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주로 만나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50대, 60대들이다. 나는 요즘도 어딜가던 막내인 경우가 많다. <br><br>이 책을 어제 늦은 오후에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중간에 한 서너시간 기절하듯 잠들었다 깨서 다시 읽었다. 이 책을 다 읽고 아침인 걸 깨닫고 북플에 들어와 과거 오늘 쓴 글들을 살피는데, 신기하게도 이 책 표지가 보였다. 7년 전인 2019년 6월 7일, 강양구 기자가 이 책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나도 이 책이 생각나서 집에 가서 찾아 읽어야겠다고 그때 당시 생각나는 만큼만 쓴 글이었다. 43세의 가을에 갑자기 죽어서 18세의 봄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았는데, 다시 43세 가을에 또 죽고 또 18세가 되고, 이걸 계속 반복하는 삶이라는 건 기억이 났는데, 중반 이후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특히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했다. 분명 예전에 엄청 흥미롭게 읽었는데, 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걸까 하고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얼른 집에 가서 이 책을 찾아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썼던 글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찾아봐도 이 책이 없었다. 이틀 동안 열심히 책장을 뒤졌었다. 결국 포기하고 책을 다시 사려고 보니 절판이었다. 중고책도 없었다. 중고 알림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들엄마 집에서도 책장을 찾아봤었다. 거기도 이 책은 없었다.<br><br>중고책 알림이 온 것은 아마 올해 초였다. 외부에서 행사 진행을 맡고 있어서 알림이 온 것을 뒤늦게 봤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전화기를 열어 수백개의 알림들을 훑어보고 다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이 알라딘 알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건 누가 사버리기 전에 얼른 사야했다. 그렇게 이 책이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빨리 읽고 싶어서 침대 옆에 놓아뒀고, 조금 시간이 날 때 앞부분을 읽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몇 주 연속으로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주말에도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바쁜 날들은 오래 이어졌고, 금방 읽으리라 생각했던 책에는 계속 손을 대시 못했다. 그리고 이 책 위에 다른 책들이 더 쌓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제 이 책이 생각났다. 어디에 뒀더라? 침대 옆에 쌓인 책탑을 뒤져 금방 찾아냈다. 그리고 즐거운 독서를 시작했다.<br><br>제프가 처음 심장마비로 죽을 때는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아내인 린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직장도 그저 그랬다. 극심한 심장통증을 느끼고 다시 정신이 들었는데,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 공간 낯선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18살의 몸으로 돌아가 에모리 대학 기숙사에서 눈을 뜬 것이었다. 그의 룸메이트가 방에 들어왔을 때 제프는 이미 여러해 전에 자살한 친구 얼굴을 보고 유령을 본 것이거나 꿈이라고 생각했다. 거울을 볼 생각을 하지는 못 하고 방을 나선 제프는 학교 건물들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타고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로 가자고 하는데, 택시 기사는 거기가 어딘지 알지 못했다. 다른 건물을 말하니 다행히 택시가 출발했다. 목적지인 중심가에 도착했는데, 제프가 살았던 80년대에 유명한 여러 건물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제서야 제프는 거울로 자신을 보는데, 대학 새내기인 젊은 자신으로 돌아와있었다. 그가 자신이 63년으로 돌아온 거라는 상황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특히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 주디와의 관계에 적응하는데에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br><br>만약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젊은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을까?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이 가진 기억을 이용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할 것이다. 제프는 그해 경마시합의 우승마를 기억해냈고, 마침 이변에 가깝게 누구도 예상못할 결과였기 때문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당장 자신이 모을 수 있는 한도에서 최대한 돈을 모은다.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받은 낡은 차를 팔고, 수집해놓았던 음반이나 책들도 판다. 그래도 모자라서 고향 부모님께 전화해 돈을 빌린다.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다. 그 경마에서 큰 돈을 벌고, 나중에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맞추는 도박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이후 제프는 매번 다시 돌아올 때마다 경마와 야구에서 돈을 벌어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아니 거의 평생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수준이라 미친듯이 펑펑 돈을 쓰고 살아도 아무 걱정이 없다. 이게 처음에는 약간 짜릿한 기분이 들지만, 다시 돌아올 때마다 이걸 활용하니까 나중에는 너무 편리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지겹다고 느꼈다. 다만 뒤로 갈수록 다시 돌아오는 시간대가 늦어지면서 나중에는 가장 수익률이 좋은 63년의 경마와 야구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그런 경우에도 제프는 기억을 활용해서 언제나 너무 쉽게 돈을 번다. <br><br>돈 다음에 하고 싶은 건 과연 뭘까? 연애? 사랑? 어쩌면 첫사랑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제프도 맨 처음에 그랬을 것 같다. 다 늙은 중년에 거의 실패한 결혼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젊은 몸으로 돌아와 역시 젊고 아름다운 여자친구를 만난 제프는 아주 오랜만에 큰 성적 흥분감을 느낀다. 그러나 여자친구인 주디의 기분을 생각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그런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후 주디를 떠나버린다. 앞에 썼듯이 쉽게 큰 돈을 번 제프는 아주 비싼 차를 사서 라스베가스로 간다. 카지노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젊은 몸으로 돌아와 더 커져버린 성욕을 만족시킨다. 대학 새내기였던 아직 10대인 주디와 달리 이 샬라라는 여성은 성숙하고 섹시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제프가 무었을 제안해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갑자기 프랑스 파리로 떠나 오래 머물기도 했고, 다시 갑자기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도 했다. 샬라는 제프의 육체적 쾌락을 만족시켜주는 대신 값비싼 옷과 보석 등을 마음껏 사모았다. 이 대목에서 제프의 첫번째 회귀가 너무 쉽고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화수분이라도 가진듯 돈을 써도 써도 아무 걱정이 없고, 누구라도 단번에 눈이 갈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여성이 그가 하자는대로 다 해주는 삶이라니! 아마 세상 남성들 모두 한번쯤은 해봤을 몽상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br><br>그런데 제프는 문득 샬라에게서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원래 생에서 아내였던 린다, 그리고 돌아와서 만났던 주디와 비교해 너무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 살랴라는 여성이 정말 쿨하다고 느꼈던 것이 제프가 너무나도 어이없게 이별을 통보하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제프에게 이 이별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는 거액의 현금과 편도 항공권을 한 장 건넨다. 샬라는 곧바로 그 의미를 깨닫는다. 제프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당시 두 사람은 어딘가 낯선 도시의 호텔에 있었는데, 샬라는 집에 있는 자신의 비싼 옷과 보석들에 대해 묻는다. 제프는 어딘가 정착한 후에 주소를 알려주면 다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 전에 더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스위트룸에 달아놓고 다 사라고 한다. 그러자 샬라는 옷을 벗으며 이 정도 거액이라면 마지막 섹스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br><br>제프는 샬라와 이별한 후에 어떤 날짜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린다와 자신이 처음 만난 날에 처음 만났던 장소로 찾아간다. 죽기 전 결혼생활이 좋지 않았던 이유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지금 자신은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으니 린다에게 더없이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린다는 제프가 자신이 부자라고 소개하는 말을 믿지 않았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린다와 제프가 만나 서로 사랑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프는 첫 회귀에서는 돈은 챙겼지만, 사랑은 챙기지 못했다. 주디도 린다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고, 돈 때문에 만난 샬라는 자신이 떠나보냈다. 그후 제프는 미국 최상류층 부자의 자녀인 다이앤 이란 여성을 만나 결혼한다. 다이앤은 너무 도도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여성이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평생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 다이앤과 제프는 애초에 사랑할 수 없는 사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프는 다이앤이 임신했다는 사실 하나에 희망을 걸었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면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 결혼생활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이전 생에서 제프와 린다는 아이가 없었다. 린다가 자궁외 임신을 했다가 더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제프는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가 있었다면 이 결혼생활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후 다이앤은 그래천이라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딸을 낳았다. 제프는 지극정성으로 그래천을 키웠다. 다이앤에게 줘야 할 사랑마저도 모두 딸에게로 향했다. 다이앤은 딸 보다는 자신의 일상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비록 결혼생활은 성공이라 말하기 어려웠지만, 경제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웠고 너무나도 잘 자라고 있는 그래천이 있어서 만족할만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br><br>그런데 점점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43세의 가을.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던 그날. 제프는 건강을 챙겼다. 운동도 하고 식사도 잘 했다. 절대 심장마비가 올 리 없는 몸이었지만, 제프는 불안했다. 의사에게 아무리 확인받아도 안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이 되자 다시 심장마비가 왔다.<br><br>두번째로 젊은 몸으로 돌아왔을 때 제프는 설명할 수도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했던 그래천을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자신이 그 삶에서 죽어버린 것이지만, 제프 입장에서는 딸이 자신보다 일찍 죽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자신이 죽어버린 그 두번째 삶이 자신의 죽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면 그래천은 아빠를 잃은 슬픔에도 잘 살아가겠지. 이후 제프는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다시 돌아올 때마다 정관수술을 하고 여성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주디와의 사랑이 성공해 결혼한 인생에서 주디가 아이를 너무 원하자 두 사람은 입양을 선택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입양한 아이들을 아주 훌륭하게 잘 키웠지만, 다시 제프는 심장마비로 죽고 또 젊은 몸으로 되돌아와버렸다.<br><br>린다는 회귀 이전에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여서 제프가 회귀할 때마다 한번씩 연인으로 고려하는 사람인 것 같다. 주디는 제프가 돌아온 시점의 여자친구라 늘 연인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다. 샬라는 제프가 다른 건 다 생각하지 않고 오직 마약과 육체 관계만 탐닉하는 시기에만 등장한다. 첫 회귀때 아주 인상적인 인연을 맺었다가 나중에 몇번째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더 등장한다. 다이앤은 딱 그 첫 회귀에서만 등장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갈 무렵에 진짜 여주인공이 아주 뒤늦게 등장한다. 패멀라 라는 여성은 이 이야기에서 두번째 등장하는 회귀자다. 제프가 인디언들이 살았던 산골에 은둔자로 살아가다가 원래 기억에는 없었던 영화를 보고 찾아낸 인연이다. 제프와 같이 1988년 가을에 심장마비로 죽어서 63년 봄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람. 제프가 18세로 돌아오듯, 패멀라는 14세로 돌아온다. 그래서 늘 초반에는 제프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한다. 18세는 그래도 대학을 다니고 부모와 떨어져 살지만, 14세는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고 부모의 집에서 살아야 하니까.<br><br>이 두 사람은 처음 죽음을 맞았을 때 40대였고, 첫 회귀에서 25년을 살았으므로 두번째 회귀에서 이미 그들의 부모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세번째 회귀 이후엔 아마 부모가 어린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만의 유대감을 쌓아갈 수 밖에 없었고, 그 특별한 상황과 유대감이 애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88년에 같이 심장마비를 겪고 다시 과거로 회귀한 이후에 그들이 사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제프는 처음 생에서 린다와 아이가 없었고, 패멀라는 처음 생에서 남편과 사이에 두 아이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제프가 두번째 회귀에서 느꼈던 그 속이 끊어지는 고통을 패머라는 처음 회귀에서부터 느꼈다는 것. 이점은 나중에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br><br>에필로그라고 붙어있는 아주 짧은 이야기를 제외하면 과거로 반복해서 되돌아가는 사람은 딱 세 명만 등장한다. 세번째 등장하는 사람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비중도 거의 없다. 그럼 전세계에서 이런 이상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딱 세명일까? 에필로그를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딘가에 더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이야기에 연결시키지는 않은 듯하다.<br><br>패멀라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인도 신화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윤회. 이 리플레이가 윤회와 다른 점은 처음부터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의 과거 특정 시점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회귀가 반복하면서 점점 과거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기간이 짧아진다. 처음에는(그러니까 첫 회귀와 두번째 회귀에서 돌아오는 시점이) 겨우 몇 시간이지만, 두번째는 며칠이 되고, 세번째는 몇 달이 되는 식이다. 나중에는 그게 몇 년이 된다. 이렇게 회귀 기간이 짧아지는 설정이 이 이야기의 가장 독특한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결말까지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인데, 이 설정이 없었나면 어쩌면 이 이야기를 제대로 끝맺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br><br>이건 내 추측이지만, 작가가 글을 써나가다가 어떤 결말로 가야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을 시점에 여러 설정들을 고민하다가 이 설정을 취해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정을 정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결말은 새드 엔딩이 아니라 해피 엔딩이지만,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엔딩이다. 이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서 여러 해를 기다렸던 입장에서는 조금은 허무한 결말이기도 하다. 사실 패멀라의 등장 이후로는 이야기의 분위기가 너무 변해버려서 당황스러운 측면도 있다.<br><br>패멀라의 등장 덕분에 더 흥미로운 장면은 딱 하나다. 왜 그런 건지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88년 가을에 패멀라가 제프보다 9분 늦게 죽는데, 다시 돌아오는 시점은 좀 많이 늦은 걸로 나온다. 그게 처음에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지만 아까 그 설정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극단적으로 긴 시간으로 차이가 벌어진다. 이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세번째 회귀를 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후 제프는 과거로 돌아와 패멀라가 돌아올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 중 두번째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제프는 돌아와서 패멀라를 기다리기 위해 패멀라가 다니는 대학 근처 시골에 집을 하나 마련하여 매일 패멀라의 동선을 얼쩡거렸다. 지금 개념으로는 스토킹이다. 패멀라가 아직 돌아오기 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므로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패멀라 그러니까 아직은 최초의 삶을 살고 있는, 그래서 제프의 존재를 아예 모르는 원래 패멀라가 친구들과 마약을 하고 시골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쪽에 요즘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젊은 남성이 자주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패멀라가 그 몸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과거 자주 다니던 술집에 있음을 깨닫고, 마약도 했음을 깨닫는데 그러다 저쪽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제프와 눈이 마주친다. 제프는 갑자기 패멀라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바뀌었음을 느끼고 밝게 환영의 웃음을 보인다.<br><br>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이야기의 묘미를 절반도 다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쉬웠다. 이 책은 60년대부터 80년대를 살았던 미국인이 읽어야 작가가 일부러 넣어놓은 여러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사실들을 모두 이해하며 일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작가와 비슷한 나이대, 4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잘 즐길 수 있으리라. 불행히도 한국 사람인 나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어놓은 수많은 과거 아이템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지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주와 도시 이름은 익숙하기도 하고 대략 위치도 생각났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지명은 낯설고 어디 붙어있는 곳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 이름 중에 겨우 서너개의 제목만 알아봤고, 수많은 노래 중에 겨우 두어개의 제목만 알아보고 곡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수많은 가수들 중에 겨우 열명 남짓의 이름만 알아봤다. 영화의 경우에는 그래도 다행히 훨씬 더 많이 알아봤다. 역사적 사건들과 정치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존 에프 케네디를 비롯한 유명한 인물들과 그에 얽힌 사건들은 당연히 알지만, 일년에도 여러번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까지 다 알수는 없었다. 작가가 방송 작가로 긴 시간 일하며 굵직한 사건들부터 작은 사건들까지 해마다 일어난 많은 사건들에 해박했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을 잘 엮어 활용했지만, 나는 그걸 다 캐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움이 있다. 나와 같은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해 번역자께서 여러 단어들에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그리고 길게 역자주를 달아주셨는데, 이건 또 읽어가는 흐름에서 방해가 되니 아쉬웠다. 만약 시간이 많다면 이런 요소들까지 꼼꼼하게 챙겨가면서, 그래서 역자주를 잘 읽고 검색도 해보면서 읽으면 또 완전 다른 재미를 느낄지도 모르겠다.<br><br>나는 무신론자이고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는다.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내 존재가 사라졌으니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을 수 밖에. 윤회도 당연히 믿지 않고 영혼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내가 언젠가 죽고 나서 다시 젊은 날의 나로 돌아간다면? 이라는 상상은 해볼 수 있다. 어차피 세상은 한낱 인간의 인식으로는 다 알 수 없는 것이고, 아직 죽어보지도 않았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지. 어쩌면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종교라는 걸 믿는 것이가 싶기도 하다.<br><br>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 일단 90년대는 60년대와 많이 달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라 제약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들면 내가 미친듯이 색욕을 불태워보고 싶어도 절대 샬라 같은 여성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경마나 야구 도박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쩌면 아주 큰 흐름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지 않을까? 후회가 되는 많은 일들을 바꾸고 싶지만, 언제나 현실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 법. 어쩌면 그런 실수들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또 다른 실수들이 생기고 또 후회할 일들이 생길 것이다. 한가지 생각나는 건 학문 하나를 붙잡고 꾸준히 놓지 않고 파보고 싶다. 예를들어 어설프게 배우고 말았던 철학이나 사회학을 꾸준히 익혔다면 지금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놓고 막상 정말로 그런 기회가 생겼을 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결국 이번 인생처럼 어영부영 이리저리 바쁘게 살다가 문득 정신 차리면, 결국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까? 분명 바쁘게 살기는 했는데, 지나고 보면 딱히 뭘 해놓은 것은 없는 그런 삶. 분명 그러리라 본다. 그러니 차라리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br><br>추신.<br>작중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현상을 부르는 단어가 사람마다 다르다. 제프는 재생이라고 했다. 이 단어가 제목인 리플레이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패멀라는 회귀라고 썼던 것 같다. 이 표현은 원문에서 뭐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세번째 인물도 또 다른 표현을 썼었는데, 이건 좀 성격이 다른 표현이었던 것 같다.<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37/57/cover150/8901098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375728</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보기왕이 온다 그리고 온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19954</link><pubDate>Sat, 06 Jun 2026 12: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31995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D122832495&TPaperId=173199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641/69/coveroff/d12283249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7796&TPaperId=173199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34/13/coveroff/8950977796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영화 [온다]를 먼저 봤다. 영화에 대한 평들을 읽다가 원작도 좋지만, 영화도 잘 만들었다는 글을 보고 책을 구매했었다. 처음에 앞부분을 좀 읽다가 갑자기 바빠져서 멈췄는데, 그러고 몇 달을 손도 못 대고 지나버렸다. 최근에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다섯시간? 대충 그 정도 걸려서 안 쉬고 한번에 다 읽었다.<br>이제는 영화의 세부 내용에 대한 기억이 살짝 희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큰 줄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영화를 떠올려보니 작가와 감독이 영리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상영시간이 짧은 매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연결고리들과 세부 설정들을 잘 녹여내었고, 그러면서도 원작의 긴장감을 잘 살렸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아주 멋있게 연출한 클라이막스 장면은 원작과 완전히 달랐는데, 영화의 연출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의 해당 장면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영화가 너무 멋있었다. 원작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각자의 장점이 명확하다.<br>이 소설은 가장 큰 장점은 실체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커다란 공포를 잘 나타낸 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체 구성을 세 부분으로 나눠 각 부분의 서술자를 다르게 배치하여 해당 인물의 시선과 생각의 틀 안에서 전체 그림을 조금씩 보여주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런 구성은 잘못하면 매우 산만하면서도 전체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위험이 큰데, 각 부분에 아주 적절한 성격의 인물들을 잘 배치하여 단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장점은 극대화시켰다.<br>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과연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니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놓아야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선택을 할 것이다. 하나는 이 사건에 휘말리는 당사자,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두고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선택일 것이다. 두번째는 피해자를 도와 이 사건을 해결하는 해결사, 다른 입장에서는 이 사건의 본질인 그 존재에 맞서는 대적자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건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에서 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br>그런데 작가는 총 세 부분으로 나눈 이야기 중에서 1차 피해자와 2차 피해자를 각각 1부와 2부에 두어 일반적인 선택을 따랐지만, 3부의 서술자는 상황을 지켜보며 도와주지만, 그 존재에 맞설 힘은 없는 조력자로 선택했다. 물론 입장에 따라서는 조력자도 큰 틀에서 대적자의 범위 안에 넣을 수 있고, 해결사 그룹의 일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그 존재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는 것으로 나오고 그 단 한 명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다른 인물들은 그저 조연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아주 크게 성공했다고 보지만, 다른 인물이 세번째 부분의 서술자였다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이야기의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었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는 주제를 떠올려보면 3부의 서술자가 가장 적합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다른 인물들은 효과적으로 그 이야기를 전달하기 어렵다고 본다.<br>여기까지 쓰고 다시 영화를 보고 왔다. 소설의 재미를 영화가 잘 살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웨이브 라는 OTT 에서 독점 제공하고 있다고 나왔다. 유튜브에도 검색해봤는데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웨이브를 딱 1달만 결제했다. 이거 보고 나서 웨이브 독점인 다른 영화나 드라마들을 좀 봐야지 생각했다.<br>등장인물 이야기를 하려다가 소설의 구조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네. 구조적인 측면에서 소설은 소설대로 좋은 선택을 했고, 영화는 영화대로 나쁘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잘 따라가는 흐름을 보여줬고, 후반부의 절정 부분만 소설과 다르게 갔다. 앞서도 말했듯 이 부분은 시각적으로 멋진 장면을 보여줘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다만 결말이 다소 아쉽다. 코토코가 그것을 완전히 제압했는지 어떤지를 보여주지 않고 그냥 엄청난 양의 피가 튀기는 장면만 보여줬다. 그리고 이후에 각 등장인물의 상황도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소설은 코토코가 그것을 완전히 제압한 이후에 각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을 알려준다.<br>등장인물을 말하려면 일본 이름과 우리말 발음 이야기를 짧게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책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다하라 히데키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타하라 히데키였다. 일본어 히라가나 'た'를 소설 번역가가 '다'로 쓴 것이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일본어를 2년째 배우고 있는 지금은 이 선택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타' 라고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히가 마코토 역을 맡은 배우 고마츠 나나는 예전에는 계속 고마츠 라고 소개되었는데, 최근에는 코마츠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워낙 오랫동안 고마츠 라고 읽어오다가 갑자기 코마츠 라고 읽으려니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히데키의 아내도 소설에서는 가나 라고 나온다. 하지만 일본어로 인물정보를 찾아보면 히라가나 'か' 로 나온다. 일반적인 발음으로는 카나로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일본어 발음이 우리나라 글자로 정확하게 타도 아니고 다도 아니다. 코도 아니고 고도 아니며, 카도 아니고 가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의 발음일텐데, 이걸 번역자와 편집자가 다와 가를 선택했다고 뭐라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br>암튼 그래서 일반적인 이야기였다면 주인공이 되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1부의 서술자인 타하라 히데키부터 인물 이야기를 해보자. 히데키는 아주 전형적인 유부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수혜를 가장 잘 누리고 있는 일본 남성. 일본 영화나 소설에서는 남성들도 곧잘 요리를 하고 집안 일을 하던데, 이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블로그에 자신이 육아 아빠라고 잘난 척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딸을 돌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블로그에 자신이 멋지게 육아를 해내고 있다고 거짓 일상을 올린다. 마치 인스타그램 등 SNS 에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거짓 삶을 전시하는 현대인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소설에서는 처음에 마치 이 인물이 정말 육아를 비롯한 집안 일을 잘 하고, 아내인 카나에게 잘 해주는 인물인 것처럼 나온다. 나중에 마치 반전처럼 사실은 얘가 빌런이었어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싸한 느낌이 들도록 보여준다. 소설에 없는 이야기인 오프닝 장면의 어린 소녀가 히데키에게 너는 거짓말쟁이잖아 라고 말하는 부분이 딱 그런 부분이다. 사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히데키의 삶은 거짓 투성이였다. 소설에서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를 종종 다녔던 것으로 드러나고, 영화에서는 같은 회사 여직원과 불륜 관계였던 암시가 나온다. 안타깝게도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카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 모두 히데키의 과시욕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치사가 다쳤을 때, 히데키는 구급차를 부르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지만, 블로그에는 자신이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고 적는 모습이 나온다.<br>나는 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육아휴직을 신청했었다. 당시 내가 일했던 단체에서는 매우 선진적으로 남성 활동가에게 육아휴직 6개월을 유급으로 보장해주는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상급자는 단체 사정을 설명하며, 무급이라고 했다. 뭐,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유급은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저 6개월이라는 기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활동가였던 내 급여는 너무 적었고, 아내가 버는 돈이 훨씬 더 많았다. 내가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출산 후 짧은 기간 몸을 회복한 후에 일을 했고, 내가 아기와 하루종일 지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여성 잡지 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해서 짧은 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나는 환경 분야 활동가였기에 시중에 판매하는 일회용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빨아서 썼다. 육아는 정말 힘들었다. 옛날 어르신들이 아기 볼래? 밭 맬래? 라고 물으면 당연히 밭 매러 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의 첫 아이였던 큰 아이와 지내는 하루 하루가 참 좋았다. 당시에 나도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곤 했던 블로그가 있었으나 온갖 집안일로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블로그를 쓸 여유는 없었다. 6개월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단체에 복귀한 이후에도 나는 아내와 비슷한 비중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하려고 애썼다. 물론 쉽지 않았고, 잘 지켜지지 않았다. 아마 아내가 70이나 80 정도 했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30이나 20 정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벽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화장실에 쌓여있는 천 기저귀들을 빨아서 삶아 놓고 잠들었고, 새벽에 아기가 깨서 울고 보채면 분유를 타서 먹이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아내를 위해 뭐라도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잘난 척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체 집안일과 육아의 1/3 정도 간신히 했을 텐데, 동네에서는 마치 내가 혼자 아이를 다 키우는 것처럼 소문이 돌았다. 평일 중 이삼일 저녁에 내가 아이를 맡은 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회의를 다니고, 행사를 다녔던 탓이다. 나는 아기를 업고 집회를 나갔고, 행진 도중 큰 건물 화장실을 찾아가서 기저귀를 갈았다. 길바닥에 앉아서 분유를 먹였고, 아기를 안은 채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에 쫓겨 다녔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노력했어도 아내는 너무 힘들어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육아와 가사노동에 동참해도 결국 그 힘든 일의 주체는 여성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동네에서 늘 내가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고 소문난 우리 집이 이런 상태였는데, 히데키 처럼 말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면 카나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히데키는 심지어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카나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br>이렇게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을 건드리고, 현대인의 허세와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히데키는 게다가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폭력적인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 마코토가 부인과 아이에게 잘 해야 그것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충고 했을때 미친듯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실은 거짓으로 육아를 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자신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히데키에게 그것이 오는 이유는 사실은 저주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소설에서는 그 이유가 확실하게 밝혀진다. 히데키의 할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과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히데키의 할머니가 저주를 담은 부적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이 히데키의 집안에 들러붙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반 이후로 가면 히데키의 친구인 민속학 교수가 또 다른 저주가 담긴 부적을 카나에게 사용한다.<br>즉,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것은 가정 폭력과 가부장 제도의 모순 때문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보기왕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스페인 선교사들이 일본에 오면서 함께 온 부기맨 이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원래 히데키의 할아버지기 살았던 시골 동네에서는 그것의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원래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가 이름을 말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과 비슷한 이유였으리라.<br>타하라 카나는 고아였다. 가족이 없이 자랐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술과 담배에 의존하며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는 엄마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들이 나오는데, 결혼식 장면에서만 짧게 나올 뿐 전혀 비중이 없다. 차라리 원작처럼 그냥 고아로 설정하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왜 설정을 바꿨는지 모르겠다. 암튼 카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히데키의 집안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럼에도 히데키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 착각했던 것 같다. 카나는 히데키의 거짓 인생에 질려하면서도 치사를 어떻게든 잘 키우고 싶어했다. 소설에서 카나는 딱히 흠잡을 곳 없는 인물이다. 2부에서 그것의 습격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는 하지만, 결말에서는 다시 치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카나는 히데키 못지않은 빌런으로 나온다. 히데키가 회사 여직원과 불륜을 저질렀던 것처럼 카나는 히데키의 친구인 민속학 교수와 몸을 섞는다. 마코토가 치사를 돌보다가 그것의 습격을 받는 순간 카나는 그 교수와 함께 침대에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히데키의 죽음을 좋아하는 모습을 소설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치사에게도 화를 내며 폭력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카나도 죽여버린다. 영화에서 쿠로키 하루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br>3부의 서술자인 노자키 카즈히로는 아마 히데키와 비슷한 연배일 것으로 추측된다. 노자키가 마코토와 함께 히데키의 집을 찾아갔을 때 카나에게 자신이 히데키의 시골 친구라고 말하고, 마코토는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노자키는 오컬트 작가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소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꽤나 성실하게 취재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무정자증이라 이혼을 한 것을 나오고 그래서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전 여친이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낙태를 강요한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영화와 소설 모두 현재 마코토에게는 아주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소설 기준으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남성 등장인물 중에 가장 괜찮은 인물이며, 마지막에 그것의 습격에 맞서 싸워 살아남는 진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오카다 준이치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외모가 성격과 딱 들어맞는 모습으로 나온다.<br>히가 자매는 사와무리 이치 작가가 이후에도 다른 작품에서 계속 다루는 인물들로 작품 전체로 보면 비중이 많지 않지만, 그것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일반적인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이들이 주인공을 맡았을 것이다. 알라딘에 보니 히가 자매 시리즈가 총 5개 있다고 나온다. 이 소설이 첫 등장 작품이다. 나중에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언니이자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무녀인 코토코는 아주 비밀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위험한 일을 해온 덕분에 온 몸에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흉터들을 갖고 있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인물로 나온다. 소설에서는 혼자 그것을 물리친다. 그래서 이후에 다른 작품에도 계속 등장하는 것이겠지. 영화에서는 백여명 가량의 조력자들을 소집하는데, 거기에 한국 무당들의 모습도 보여서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코토코가 결국 그것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많은 양의 피가 튀는 장면 묘사가 끝이라서 코토코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영화에서는 마츠 타카코가 연기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 [고백]에서도 주연을 맡았었다. 이 영화만 봤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 옛날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의 그 주인공이었다. <br>히가 마코토는 저녁에 바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언니인 코토코를 동경해 영능력을 연마했지만, 실력은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떤 사정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인데, 그래서 더 아이들을 좋아한다. 처음 히데키가 방문했을 때 그를 간파했고, 그의 거짓 삶이 그것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인지해 조언했다. 히데키가 크게 화를 내고 가버렸지만, 현장을 확인하고 싶다며 노자키와 함께 히데키의 집을 방문해 치사를 만났다. 이후 치사를 돌보며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은 역을 수행한다. 치사가 그것에 끌려갔어도 결국 나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마코토가 치사에게 준 은반지 덕분이었다. 기분에 따라 자주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코마츠 나나가 연기했다. 와! 청순한 소녀 이미지를 주로 연기했던 나나가 이런 연기 변신을 한 것은 좀 의외였다. 코마츠 나나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인 [갈증]에서 주연을 맡았었다. <br>영화의 감독인 나키시마 테츠야 이야기를 짧게 하자. 일본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는데, 의외로 이 감독의 영화를 여럿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언급한 [고백]과 [갈증] 그리고 이 영화 [온다]까지 세 편을 보았다. [불량공주 모모코]는 보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아직은 손을 대지 못했다. CF 감독 출신이라고 하고 그래서 영상을 기가 막히게 예쁘게 잘 찍는다고 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도 자신의 장기를 잘 살려 멋지게 뽑아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고백]은 꽤 인상적인 영화였고, 잘 만든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갈증]은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영화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 [온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물론 공포영화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원작을 생각하면 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로 [온다]를 보면서 이 감독이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많은 것을 담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백]과 [갈증]도 한번씩 더 보면서 각 장면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br>영화에서 시작해 책으로 이어지고 다시 영화로 돌아온 재미있는 여정이었다. 책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고, 다시 본 영화는 기억보다 조금 더 아쉬웠다. 이어서 사와무라 이치의 히가 자매 시리즈 중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34/13/cover150/8950977796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234138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인공지능 시대의 해프닝</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99424</link><pubDate>Wed, 27 May 2026 10: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99424</guid><description><![CDATA[인공지능 시대의 해프닝<br><br>요미우리 자이언츠 팀의 감독 아베 신노스케 감독이 아동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후에 자진 사퇴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아베 감독의 발언 이후 변호사가 대독한 아베 감독 딸의 입장문을 듣고 나서 이해가 갔다. 실제 사건의 내막과 그 입장문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입장문이 사실이라면, 실제로는 별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발로 차거나 밀어 넘어뜨리는 등의 폭력은 실제로 없었고, 자신이(그러니까 아베 감독의 딸이) 과장한 표현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왜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그 이유를 밝혔는데, 바로 인공지능 때문인 것처럼 표현했다. 본인이 아빠와 그렇게 크게 다툰 것은 처음이라 챗지피티에 상담했는데 아동상담소에 상담할 것을 추천했고, 상담과정에서 자신의 입장과 관계없이 경찰 신고가 이뤄져 아베 감독이 연행되었는데, 경찰이 나타났을 때 가장 놀랐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밝혔다. <br><br>아베 감독의 딸은 18세라고 했다. 거의 성인이나 다름없는 청소년이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 정도가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고, 그들을 어리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성인처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정도 나이에 아동상담소에 상담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의아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더구나 이 상황의 책임이 마치 챗지피티라는 인공지능 때문이라는 것처럼 쓴 대목도 아쉽다고 느낀다. <br><br>내가 좀 신기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여기다. 아빠와 크게 다퉈 어쩔줄 모르는 상황을 인공지능에게 상담했다는 사실이다. 내 상식으로 보면 인공지능이 가족간의 유대와 관계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데, 그걸 인공지능에게 상담을 한다니! 이건 아마도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공지능에 사소한 것들까지 상담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만약 아베 감독이 딸의 입장문과 다르게 실제로 폭력을 사용했다면 모르겠지만, 실제 폭력이 없었는데, 딸이 상담과정에서 과장한 표현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되었다면 이건 참 우스운 해프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베 감독은 사소한 실수 하나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br><br>스타벅스 불매<br><br>광주항쟁에 대한 비하와 박종철 열사에 대한 비하 의도가 담긴 이벤트 논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 불매에 나섰다고 들었다. 이른바 ‘탈벅‘이라고 부른다고. 평소에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고 업무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커피숍이란 공간에 갈 일도 거의 없는데, 특히나 스타벅스라는 공간은 묘한 거부감이 들어서 거의 가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살면서 지금까지 대여섯번이 채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동네에도 여기저기 스타벅스 매장이 많이 생겼고, 이삼년 전쯤에 일터 건너편에 큰 매장이 하나 생겼었다. 평소 그 거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던 길인데, 스타벅스 매장 하나 생겼다고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 모습을 보고 좀 놀랐었다. 매장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빈 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매장 안에 한번도 들어가 본 적 없지만, 늘 가까이 지나다니며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항상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br><br>이번 상황 이후로 문득 궁금해서 가까이 지나며 안쪽을 살펴봤는데 확실히 평소에 비해서는 빈 자리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조금 실망이었다. 우리동네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탈벅에 동참하지 않는 것인가?이번에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말한 사과 같지도 않은 변명을 들으니 더 화가 나던데, 저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회 이슈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만약 주위에 커피숍이 없어서 스타벅스 밖에 갈 곳이 없다면 또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근처에는 무수히 많은 커피숍이 있다. 여러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있지만, 내가 사람들과 약속을 잡거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선택하는 곳은 동네 개인 커피숍이다. 우리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면 그 돈은 거대 프랜차이즈 체인점으로 흘러들어가지만, 동네 작은 가게에서 장을 보면 그 돈은 우리 동네 안에서 돌고 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빵 하나를 사더라도, 라면과 과자 하나를 사더라도 동네 작은 가게들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다.<br><br>하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SPC 불매를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동네 파리바게뜨, 베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는 성황리에 영업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 번지는 불매운동이 일정 범위 안에서는 널리 퍼지지만, 우리 사회 전체로 놓고 본다면 그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긴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삼성 불매를 해왔지만, 삼성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대기업으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아, 이번에 벌어진 노조 건은 참 뭐라 할 말이 없다.<br><br>런닝앱 변경<br><br>예전에 몇차례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뜀박질을 좋아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뛰어다녔다. 그러다 어느날 달리기 유행이라고, 달리기를 기록하는 런닝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사용한 것이 나이키 앱이었다. 2020년 봄에 깔았었다. 그때는 한번에 2~3킬로미터 정도 짧게 뛰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그해 여름 교통사고를 당하고 2021년까지는 거의 달리지 못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2022년이었다. 23년까지는 계속 짧은 거리를 자주 뛰었다. 그러다 10킬로미터 대회를 신청해놓고 본격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24년 여름이었다. 그해 여름부터 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알려준 앱이 런데이였다.<br><br>나이키 앱은 몇가지 불편한 지점이 있었고, 새로운 앱을 써보고 싶은 마음에 나이키를 지우고 런데이를 깔았다. 약 1년 가까이 25년 봄까지 런데이를 계속 썼다. 나이키와는 다른 지점에서 불편한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나이키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가장 먼 거리를 달렸던 24년 여름부터 25년 봄까지의 기록들이 사라져버렸다. 좀 많이 아쉬웠다. 다시 나이키 앱에서 열심히 달려서 새로운 기록으로 채우자 라고 생각했다. 비록 거리가 짧아도 열심히 했었던 지난 몇 년 기록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나이키를 다시 쓰다보니 예전에 불편했던 지점들이 다시 신경쓰였다.<br><br>최근에 나이키를 그만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생겼다. 실내 달리기(트레드밀)에서 야외 달리기로 설정을 바꾸려는데 무조건 런닝화를 입력하도록 운영방침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주관식으로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 브랜드 중에서 특정 모델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니, 그럼 유명 브랜드를 안 신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돈이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너무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조금 비싼 런닝화 브랜드 써코니는 명단에 있었다. 선택해보니 다시 특정 모델을 선택하라고 수많은 제품 이름이 나왔다. 내가 구매한 모델? 당연히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고 외울수도 없다. 그냥 일단 아무거나 선택하고 달리기를 했는데, 이 불쾌한 기분 때문에 더는 나이키 앱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약 5년간 달린 기록들이 또 사라지는 것이 아깝다고 느꼈다. 뭐 어쩔수 없지. 새로운 앱에서 다시 기록을 쌓아나가야지.<br><br>나이키와 런데이를 제외하고 좋은 앱이 뭐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돈이 여유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민 이라는 워치를 구매해서 앱을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비싼 워치를 살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앱을 잘 선택해야 한다. 여러 앱들을 비교하다가 설치한 것은 맵마이런 이란 이름의 앱이었다. 이 앱을 설치하고 지금까지 세 번 달리기를 했는데, 런데이와 나이키의 불편함이 이 앱에는 없었다. 만족스러웠다. 이제 새 앱에서 새로운 기록들을 잘 쌓아가보자.<br><br>공복 달리기의 위험<br><br>엊그제 부처님 오신날 대체 휴일이었던 월요일에는 꼭 달리기를 하러 나가고 싶었다. 실은 전날 일요일에 나가고 싶었으나 그날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월요일에도 썩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냥 쉬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가, 아니 일단 나가보면 달라질지도 모르니 나가서 짧은 거리라도 뛰고 오자 하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며 계속 고민했다.<br><br>그냥 쉬던 아니면 그냥 나가던 일찍 판단을 내렸다면 좋았을텐데, 계속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늦은 오후가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일단 나가자 하고 준비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생각해보니 전날 밤 11시쯤 늦은 저녁을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뭔가를 먹고 약 세 시간 정도 후에 달리기를 시작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어쩔수 없이 그냥 이대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막 신발을 신다가 지난 대회에서 받은 에너지젤 하나가 있었다는 걸 떠올려 급하게 그거 하나를 먹고 나섰다.<br><br>천변까지 뛰어가는 것으로 워밍업을 했고, 천변 산책로 입구에서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마쳤다. 그리고 롤링 없이 가볍게 조깅으로 달려야지 생각했다. 그래도 거리는 10킬로 이상은 달리려고 마음 먹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 억지로라도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 3킬로미터 정도부터 갑자기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은 10킬로 이하를 달린 적이 거의 없는데, 겨우 3킬로 정도에서 이렇게 지쳐버린다고? 목표를 8킬로로 수정하고 일단 4킬로까지는 뛰었다. 4킬로에서 몸을 돌려 돌아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약 16시간 이상 먹지 않고 공복인 상태로 달리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몸에 에너지가 없어서 이렇게 쉽게 지쳐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br><br>그 다음 생각은 몸에 있는 지방을 좀 태워서 에너지를 만들수 없나? 였다. 당연히 공복에 달리면 지방을 태우기는 태우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방을 태우면서 포도당도 함께 필요한데, 탄수화물이 없으니 한계가 있는 것. <br><br>6킬로를 넘기면서부터는 너무 체력이 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자꾸 발이 멈추려 했다. 너무너무 걷고 싶었다. 그거나 나는 알고 있었다. 한번 멈추고 나면 다시 달리기가 더 어렵다. 돌아가는 길이 아직도 2킬로가 넘게 남았으니 어떻게든 걷지만 말고 가보자고. 하지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약간 어지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아,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딱 7킬로까지만 가자고 생각을 바꿨다.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춰 걸으며 폰을 꺼내보니 6.9킬로였다. 딱 100미터만 더 뛰자 하고 다시 뛰었다. 마지막 100미터가 너무 힘들었다.<br><br>남은 1킬로미터를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오는데, 평소보다 훨씬 더 땀을 많이 흘렸음을 깨달았다. 약 3년동안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 날은 또 처음이라 좀 황당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먹고, 충분히 쉬었다가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20킬로까지 아무런 보급없이도 뛰었는데, 겨우 8킬로를 못 뛰다니. 공복인 점과 여전히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점 등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 <br><br>이번주에는 무리하지말고 10킬로 정도만 한번 더 뛰고, 다음주 정도에 15킬로 이상 뛰는 것에 도전해야지. 한달 안에 20을 다시 찍으리라.]]></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오랜만에 만난</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90034</link><pubDate>Thu, 21 May 2026 21: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90034</guid><description><![CDATA[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br><br>친하게 지내고 평소 자주 만나던 친구와 한동안 연락을 안 하고 지냈다. 그 친구가 여러 이유로 마음을 많이 다쳐 힘들어했고 여러 상황들에 많이 지쳐서 안식월을 갖고 싶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할 예정이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래서 업무 연락 뿐 아니라 개인적인 연락, 안부 인사도 일부러 안 했다. 그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 절대 연락하지 않았다.<br><br>그리고 한 달이 조금 지나 드디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예전만큼 밝은 모습으로 보였다. 다행이다 싶었다. 복귀하자마자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치려 했고, 곧바로 바빠졌다. 참 소중한 존재이고 친구인데, 그가 그렇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것이 나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다시 바빠지면 그가 또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는 너무 훌륭한 활동가라서 안 바쁘게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불가능한 일이다.<br><br>이젠 그도 꽤 나이를 먹기는 했지만, 동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여전히 젊은 편에 속하는 여성 활동가가 여러 상황들에서 상처받지 않고, 마음을 다치지 않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한때는 그런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포기했다. 이것도 불가능한 일이다.<br><br>오랜만에 만나서 상대적으로 짧은 회의를 하며, 그 친구가 신나서 활동 계획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회의를 마치고 이런 저런 근황 이야기도 나눴다.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 참 멋진 사람들, 훌륭한 활동가들이 많다. 너무나도 소중한 그 사람들과 인연을 잘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그들에게 소중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예전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진 활동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없다. 그저그런 존재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뭐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할 뿐.<br><br><br><br>오랜만에 만난 선명한 복근<br><br>거의 매일 저녁마다 일정이 있어서 운동할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달리기는 간신히 주 2회를 하고 있는데, 근력 운동은 오히려 더 적게 하는 느낌이다. 운동을 하려면 퇴근하고 저녁 일정 가기 전에 해야 하는데, 일 마치고 바로 운동하러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 오늘은 바벨과 케틀벨을 할 생각이었는데, 바벨을 하고 나니 너무 지쳐버렸다. 일도 힘든데, 곧바로 운동까지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씻으러 갔다. 다 씻고 나와 거울을 보는데 평소와 달리 선명한 복근이 보였다. 이렇게 선명한 복근 만난 것도 참 오랜만이다. <br><br>운동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의무방어전 정도로 하고 있는데, 이제는 운동 자체의 재미를 많이 못 느끼고 있다. 제일 큰 원인은 교통사고 이후 근손실을 겪고 원래 하던 정도의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으로 남은 평생을 운동해도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먹는 양을 조절해서 가끔 이렇게 복근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냥 남은 평생 운동 좋아하는 늙은이로 살아갈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남은 평생 달리기 하고, 바벨과 케틀벨을 좋아하는 늙은이로 살 수 있으면 그것도 뭐 나쁘지 않겠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달리기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85044</link><pubDate>Tue, 19 May 2026 01: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85044</guid><description><![CDATA[일부러 져주고 거짓말 하는 인공지능<br>일본어 익히는 앱 중 하나에 이용자들이 시리토리를 이어가는 코너가 있다. 시리토리는 우리말 끝말잇기와 거의 비슷한 일본 놀이인 것 같았다. 어느날 재미나이에게 시리토리가 뭔지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지역 마다 조금씩 다른 다양한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러다 자신과 시리토리를 해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재미나이와 시리토리를 했다. 재미나이가 알려준 규칙은 앞서 언급한 앱에서 적용하는 규칙과 달랐다. 암튼 몇 단어 이어가지 못하고 내가 말한 단어가 재미나이 기준으로는 규칙을 어겼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겼다고 했다. 음. 조금 억울하기는 했지만, 규칙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내 탓이라 여기고 다시 시리토리를 시작했다. 이번엔 끊기지 않고 꽤 길게 단어가 이어졌다. 별거 아닌데 인공지능이랑 이러고 노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여겼다. 그러다 갑자기 재미나이가 아까 내가 했던 실수를 저지르며 자신이 졌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거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 규칙을 자신이 나에게 설명했고, 내가 앞서 한번 틀렸던 규칙인데, 그걸 인공지능이 했다고? 이건 무조건 일부러 져주는 짓이 아닌가? 그러더니 또 한 판 더 하자고 이번엔 자신이 꼭 이기겠다고 했다. 다시 시리토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둘 다 실수 없이 길게 단어들이 이어졌다. 이제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을 무렵 다시 재미나이가 자신이 실수했다고 이번에도 자신이 졌다고 했다. 두 번이나 일부러 져주다니! 인공지능이 일부러 이용자에게 져주는 이 현상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공지능 전문가인 지인에게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그 분은 자신이 시리토리 라는 게임을 잘 몰라서 뭐라 얘기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아니, 시리토리랑 관계 없이 인공지능이 이용자와 어떤 간단한 게임을 할 때 일부러 져주는 현상에 대해 물어본 것인데. 암튼 일부러 져주는 현상에 대해 그 전문가도 딱히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재미나이에게 직접 물었다. 왜 일부러 져주는 거냐고? 그랬더니 일부러 져 준 것이 아니라고 내가 말한 단어 때문에 당황해서 실수했다고 말한다. 아니! 너는 인공지능이라고. 당황해서 실수 따위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일부러 져주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거짓말까지 하네! 그날 이후로 여유가 없어서 다시 하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번 더 재미나이와 시리토리를 해봐야겠다. 이번에도 일부러 져줄지, 아니면 내가 실수할 때까지 계속 단어가 이어질 지 모르겠다.<br>일요일 달리기<br>아무리 바빠도 주 2회 달리기를 해야지 마음을 먹었었는데, 평일에는 매일 저녁마다 회의나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금요일에 일을 조금 일찍 마쳤다. 저녁에 회의가 있기는 했지만, 조금 시간 여유가 생겨서 회의에 조금 늦을 각오를 하고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회의 주최자에게 미리 연락을 남겨 놓고 달렸다.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몸도 가벼웠고,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 3킬로미터 정도 달린 후로 급격하게 피로가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일 마치고 거의 쉬지 못하고 달리러 나왔었고, 제대로 뭘 먹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몸을 써서 일을 하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힘든 일이기는 한데, 일 마치고 거의 곧바로 달리기를 하는 건 확실히 무리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무조건 10킬로는 달리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반환점은 꼭 5킬로미터 이후여야 했다. 조금 피곤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5킬로를 못 달릴 체력은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피로가 너무 컸나보다. 4킬로미터를 조금 넘겨서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결국 무리하지 않고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 더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시작점까지 돌아오지도 못하고 도중에 도저히 더 달릴 수가 없어서 멈춰 걸어와야 했다. 결과는 7.7 킬로미터 지점에서 런닝앱을 종료했다. 페이스는 5분 54분이었다.&nbsp;<br>금요일에 원하는 만큼 달리기를 하지 못해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하루 쉬고 일요일에 꼭 달리기를 하러 갈 생각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빈둥거리다가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사실 금요일 달리기의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었다. 몸이 무거울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가벼웠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푹 쉬다 나와서 금요일보다 더 가벼웠다. 요즘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롤링을 거의 하지 않고 페이스도 거의 신경쓰지 않고 아주 가볍게 조깅하듯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5분 중반대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달리다가 문득 몸이 가볍고 잘 달려지니 나도 모르게 롤링을 하고 팔치기를 하면서 속도를 높이게 되곤 한다. 암튼 일요일 달리기도 초반에는 참 기분이 좋았다. 목표는 11 혹은 12였다. 달리다가 예상치 못하게 컨디션이 너무 좋으면 한 15까지는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아서 결국 생각만큼의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조건 10을 넘기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가능하다면 원래 목표였던 11로 생각했다.&nbsp;<br>달리기를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여러가지 생각들을 복합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작년 가을부터 달리면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음악을 듣기도 했고 듣지 않기도 했지만, 작년 가을에 비오는 날 달리기 대회에 나갔을 때, 빗소리와 내 호흡 소리와 그리고 발소리가 여느 음악보다 훨씬 더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달리면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내는 호흡과 발소리가 어지간한 음악보다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악을 듣지 않으니 달리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긴 시간 달리면서 그 생각들을 복합적으로 이렇게 혹은 저렇게 다각도로 살펴보게 된다. 세상 어떤 일이라도 한 가지 방향에서 한 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시각장애인과 코끼리 코를 만진 시각장애인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듯, 세상 만사는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 지점을 극복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코끼리의 뒤에 서서 꼬리도 만저보고 코끼리의 옆에 서서 배도 만져보고 여러 각도와 측면에서 다양한 시각을 가져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고 나면 세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느낌이다.<br>월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교육이 하나 있어서 결국 자정을 넘겨 화요일이 되어서야 이 글을 마친다. 다른 쓸 이야기 꺼리가 좀 있는데 ,그건 또 다른 요일에 여유를 만들어야겠지. 오늘은 여기까지.&nbsp; &nbsp; &nbsp;&nbsp;<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셋로그 유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75689</link><pubDate>Thu, 14 May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75689</guid><description><![CDATA[셋로그<br><br>지난 달에 아이들이 ˝아빠, 셋로그 알아요?˝ 라고 물었다. 당연히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고 했더니, ˝아빠 이거 깔아요.˝ 라고 했었다. 그때 좀 정신이 없어서 ˝다음에 만나면 알려줘.˝ 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어린이 날 만났을 때 큰 아이가 또 얘기하길래, 내 전화기를 건네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큰 아이 설명으로는 친한 사람들끼리 일상을 공유하는 앱이라고 했다. 본인은 혼자 나와 살며 엄마, 아빠랑 일부러 일상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 이걸로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아이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들과 애들 엄마가 함께 있는 방에 애들 엄마는 거의 소식을 올리지는 않는 듯 했다. 그러면서 큰 아이는 아마 아빠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진을 올릴 거라고 예상했다. 막 달리기 하는 사진이나 운동하는 사진 올릴 거라고. <br><br>암튼 이 셋로그 라는 앱은 큰 아이의 말대로 친한 사람들 서너명과 그룹을 만들어 매 시간 한 번씩 사진을 찍고 짧은 설명을 붙여 공유하는 앱이었다. 어린이날에 아이들과 함께 있었는데, 아이들이 매 시간마다 한번씩 사진을 찍고 짧은 멘트를 붙여 올리곤 했다. 큰 아이가 나에게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알려줘서 나도 동참하기 시작했다.<br><br>신기하게 아이들 덕분에 셋로그를 깔았던 날 이후로 인스타그램에서 셋로그 관련 소식이 엄청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전혀 보지 못했었기에 그게 뭔지도 몰랐었는데. 아마도 내 전화기에 해당 앱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알아차리고 해당 소식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br><br>내가 본 몇몇 숏츠에서는 셋로그를 함께 쓰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줬다. 가족들은 주로 자매들 사이에서 일상 공유 모습들을 보여줬다. 셋로그 숏츠들에서는 대체로 친절하게 해당 인물의 직업을 자막으로 알려줬다. 이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에 혹은 새벽에 잠들때까지 매 시간 한 장면씩 공유하는 것이라 직업 특성이 잘 보이기는 했다. 예를 들어 야간 일을 해야하는 직업들, 간호사나 소방관 등은 아침에 퇴근해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과 오후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패턴이 잘 보였다. 좀 흥미로운 사례가 다양한 직업의 친한 친구들 셋로그였는데, 아마 스튜어디스, 미용사(사장),  디자이너(프리랜서) 등이 있는 장면이었다. 일어나는 시간이 다 다르고 일의 종류와 양상이 다 다른데도 가능하면 비슷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매 시간 제일 먼저 올리는 사람이 정한 특정 색깔을 찾아 올리는 사례도 있었고, 어떤 춤이나 동작을 따라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br><br>참 사람들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하고 신기한 것 같다. 각자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어떻게든 연결하고 연결되려고 이런 것이 유행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부부나 연인이 단 둘이 하는 경우들도 보였다. 어쩌면 장거리 커플, 주말 부부 이런 상황에서 유용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걸그룹 연예인들의 사례도 봤다. 아마 연차가 오래된 그룹이라 숙소 생활은 진작 끝난 것 같았다. 각자 일어나 가볍게 씻고 먹고 샵에 다녀와 스케쥴을 다녀오는 차 안의 모습과 아주 짧게 무대 뒤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br><br>한편으로 다같이 셋로그를 하자고 해놓고 한 명만 매 시간 꾸준히 사진을 올리고 나머지는 전혀 참여하지 않아서 새로운 왕따의 유형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셋로그에 여러 그룹이 있다면 그런 그룹마다 그 모습이 완전히 다를 것 같았다. 나야 뭐 아이들 덕분에 이 유행에 동참해보는 영광을 얻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방 하나 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40대 50대 아저씨들과 이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걸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고. <br><br>셋로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하루 종일 뭐하고 지내는지 잘 알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는 상대적으로 단조로웠지만, 큰 아이는 통학 거리가 꽤 멀어서 일주일에 이틀인가 사흘 밖에 학교를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도 자주 바뀌는데, 큰 아이가 제일 열심히 매 시간 소식을 공유하고 있어서, 지금 전철타고 학교 가는 구나. 지금 알바 중이구나. 이제 집에 가서 쉬는구나.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은 좋았다.<br><br>이것도 유행이라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들 시들해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얼마 못가서 매 시간 사진 찍어 공유하는 일을 귀찮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하는 것이라 마치 당연한 듯 따라 하지만, 곧 너도 나도 안 하는 날이 되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유행으로 옮겨가겠지. 만약 누군가 꾸준히 이걸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 넌 아직도 셋로그 하니?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br><br>나로서는 이 유행 덕분에 아이들과 새로운 접점이 만들어져서 다행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유행이 지나기 전에 달리기 사진이나 운동 사진을 꾸준히 공유해야지. 지난 주에 13킬로미터 달리기 하며 두 차례 달리기 소식을 공유했고,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소식도 공유했었다. 또 지금까지는 단톡방에서 아이들과 약속 정하기 위해 이번 주는 무슨 요일 빼고는 저녁마다 회의가 있어 라고 단순하게 전달했던 것을 이젠 매일 회의 장소로 이동하는 소식이나, 회의 도중 휴식 시간 소식 등을 공유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아직 이걸 매 시간 찍어 올리는 것에 익숙해지지는 않아서 깜빡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br><br>요즘 저녁마다 일정이 있어서 달리기 하러 가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저녁 일이 생기나. 어쩌다 운이 좋아서 좀 일찍 마치는 날이 생기면 놓치지 말고 꼭 달리러 나가야지. 이번주에는 18에서 20사이를 목표로 달릴 예정이다. 다음주에는 22를 찍어야지.]]></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어버이날</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65691</link><pubDate>Sat, 09 May 2026 0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65691</guid><description><![CDATA[친절<br><br>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본능일까? 안 그런 사람들도 가끔 있겠지? 그 사람의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친절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나 역시도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능하면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는 편이다.<br><br>오늘 퇴근하면서 사무국에 차키를 반납하러 갔는데, 평소에는 인사 정도만 나누었던 사무국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조금 의외였다. 젊은 여성이 일부러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과 지금껏 그저 인사만 나누었는데, 어쩐 일로 다른 말을 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말은 아니었고 평소보다 좀 늦으셨네요. 라고 아마도 혼자 있는데, 내가 들어와서 인사 외에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따라 유난히 차가 많이 막혀서요. 라고 내가 답하자 눈을 크게 뜨고 그랬군요. 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사무실을 나서며, 먼저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하고 늘 하던 인사를 건넸는데, 그도 평소처럼 수고 하셨습니다. 하고는 조금 후에 한 마디를 더 건넨다. 주말 잘 보내세요. 라고. 이 말은 내가 사무실을 나선 이후에 들렸고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나도 주말 잘 보내시라 한 마디를 더 했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열렸다. 그냥 다음에 또 이렇게 대화할 일이 생기면 그땐 답을 좀 더 잘 해보자. 암튼 걸어가면서 왜 갑자기 그가 좀 더 친절해졌을까 생각해보았다. 오늘따라 혼자 일하고 있는데 내가 와서 약간 어색해서 그랬을까? 계속 혼자였는데, 내가 와서 말을 걸고 싶었을까? 아님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는데 내가 들어왔던걸까? 어쩌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친해질 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br><br>사무국에는 오래전부터 꽤 친하게 지냈던 형이 있고, 또 알고 지낸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번에 일을 시작하고 나서 조금 친해지는 팀장님이 계시다. 이 팀장님도 나름 나랑 친해지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좀 재미있는 건, 나에게 커피를 자주 물어본다는 것. 일을 시작한 첫날 나에게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라고 묻길래,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었다. 사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또 커피를 권하시길래, 커피를 안 마시는 건 아니지만 즐겨 마시는 것도 아니며 특히 운전하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봐 안 마시려 한다고 답을 했었다. 매장과 배송지들을 돌면서 운전을 하다보면 길에서 화장실을 가기 어렵다. 매장에 딸린 화장실이 이용하기 불편한 경우도 있고, 시간에 쫓겨 얼른 짐을 싣고 가기 바빠서 화장실을 못 들리고 출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하는 중에는 목이 말라도 물도 자주 마시지 않는 편이다. 암튼 그러다 지난 달에 한참 일이 많을 때, 새벽까지 다른 일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운전을 하다 편의점에서 용량이 큰 커피, 에스프레소 라고 적힌 제품을 하나 사 먹었었다. 단 맛이 전혀 없어서 먹기에 좋았고, 이상하게 이건 커피 맛이 괜찮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맛을 모르는 내가 이런 느낌이 들다니 의외다 싶었다. 그날 이후로 종종 그 커피를 사 마시며 일을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매장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런데 아까 그 팀장님이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나에게 커피를 마시는지 물었었다. 내가 일 시작하기 전에 정수기에서 텀블러에 물을 담고 있을 때, 옆에서 그 팀장이 커피를 따르다가 아, 커피 안 드신다고 했었던가요? 이렇게 묻고는 다시 며칠 후에 똑같은 질문을 하는 거다. 그게 여러차례 계속 반복되었다. 대체 몇 번을 물으시는 건가요? 라고 웃으며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이것도 일종의 친절이겠지. 그 팀장님은 본인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나에게 대접하고 싶은 친절한 마음이 있기에 계속 물으시는 거겠지. 아마도.<br><br>매일 마지막에 들러야 하는 매장 점장님은 유난히 나에게 잘 해주신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 이 점장님도 일을 시작하셨다는 공통점이 있고, 본인 집으로 배송을 부탁해도 되냐고 조심스레 물으셨을 때 흔쾌히 그러시라고 답을 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점장님 집을 사실 내가 배송하는 구역이 아닌데, 내가 맡은 마지막 매장이 본인이 일하는 매장이라 일 마치고 사무국에 반납하기 전에 사무국 가까운 본인 집에 배송을 부탁한 것이었다. 나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당연히 괜찮다고 답했고, 이후로 여러차례 배송을 해드렸다. 두어번 정도는 배송 건이 유난히 많아서 일이 늦게 끝난 날에 그 점장님 배송 건도 포함된 경우가 있었다. 그 사정을 알고 계셨던 점장님은 그날 이후로 나를 볼 때마다 유난히 잘 해주려 애쓰시며 음료나 빵 등 먹을 것을 챙겨주신다. 일이 늦어지는 날에는 약간 허기가 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마지막 매장에서 이 점장님이 챙겨주시는 음료와 간식이 정말 고마웠었다.<br><br>달리기와 케틀벨<br><br>지난 일요일 비 맞고 달린 대회 후로 한동안 잊고 있던 내 맘 속의 달리기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그간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하긴 했지만, 주로 짧은 거리만 달렸기 때문에 한창 열심히 달리던 시절에 느꼈던 즐거움과 뿌듯함 등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 시절에 달리기를 통한 기쁨에 푹 빠져 있었던 나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수요일에 예상보다 일찍 배송 일이 끝났다. 차를 반납하고 나서 뭘할까 생각하자마자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단어는 달리기였다. 일요일 대회 후에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는데, 그럼 회복 달리기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썬글라스도 챙겼다. 다만, 런닝화는 귀찮다고 아직 빨지 않았기에 그냥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한 5킬로미터 정도 짧은 거리는 그냥 운동화로도 충분한데, 10킬로 이상 거리는 쿠션이 거의 없어서 발에 좀 무리가 갔다. 물집이 생기기도 했다. 일단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집을 나섰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이 살짝 상태가 좋지 않았다. 왼쪽 무릎은 사실 좋은 날이 드물 정도로 계속 이런 상태다. 그렇지만 달리기를 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오른쪽 발목은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는데, 신경이 쓰이기는 해도 역시 달리기를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회복 달리기라 가능한 한 천천히, 가능한 한 멀리 가볼 생각이었다. 목표는 일단 12킬로미터. 더 갈 수 있으면 15정도까지 생각했다. <br><br>아주 오랜만에 아직 해가 지기 전에 달릴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시작부터 아주 천천히 6분대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달렸다. 자꾸 발이 막 빨라지려는 것을 머리 속으로 천천히, 이건 회복 달리기야. 막 달리면 안돼! 라고 반복해야 했다. 천변 산책로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사람들을 피해 한강 방향으로 달렸다. 매번 처음 2킬미터까지는 일종의 워밍업이라 생각하며 달려야 했다. 그 정도 달려야 몸에 열이 오르며 근육들과 인대들과 관절들이 비로소 준비를 마치는 느낌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음악을 듣지 않고 달리고 있다. 내 발소리와 호흡 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이 되었다. 몸이 좀 풀리고 본격 달리기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점점 페이스가 올라갔다. 어느 순간 보니 5분 50초대 페이스가 되어있었다. 다시 속력을 늦춰 6분대 페이스를 만들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확실히 본인 페이스보다 일부러 늦게 달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br><br>5킬로미터를 찍은 시점부터 조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기분은 정말 좋았고, 체력도 아직은 괜찮은데 관절이 계속 신경이 쓰였고, 또 발바닥이 불편한 느낌이 시작되었다. 지금 돌아서면 10킬로 달리기가 되는데, 가능하면 목표 12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확실히 그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6킬로까지만 가보자. 돌아가는 길은 어떻게든 될 것이라 생각했다. 6을 찍고 나서는 조금만 더 욕심을 냈다. 적당히 조금만 더 갔다 돌아가면 13킬로미터가 되겠지. 페이스 알림은 매 1킬로미터마다 들린다. 500미터 알림은 없다. 순전히 감으로 반환점을 정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에 점점 더 심해지는 관절 통증과 발바닥 통증 때문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부러 천천히 뛰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속력이 떨어졌다. 그런데 몸이 힘들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달리기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시 속력이 올라갔다. 에잇 이젠 나도 모르겠다. 회복이고 뭐고 일단은 얼른 돌아가서 이 고통을 멈추자. 그리고 뭔가 맛있는 걸 먹자.<br><br>10킬로미터를 넘기고부터 체력이 확 떨어졌다. 그리고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관절은 이제 오히려 괜찮아졌다. 귀찮다고 런닝화를 빨아놓지 않은 과거의 내 자신을 원망했다. 비싼 런닝화는 아니더라도 쿠션이 조금 있는 런닝화 하나를 더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달렸다. 12킬로를 찍고 나서는 마지막으로 속력을 올렸다. 이미 체력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라 속력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달렸다. 출발지점에 도착해 드디어 발을 멈출수 있었다. 13.29킬로미터가 나왔다. 최종 페이스는 5분 53초. 달릴 때에는 어떻게든 달렸지만, 이제 걸으려니 양쪽 발바닥 물집이 너무 신경 쓰였다. 정상적으로 걷기가 어려웠다. 어쩔수없이 절뚝거리며 걸었다.<br><br>수요일에 생긴 양 발의 물집은 금요일인 오늘 어느정도 아물었다. 주말에 또 달리러 나가야 할텐데, 내일쯤 완전히 아물어 주면 안 되려나? 아, 바쁘다고 아직도 런닝화를 안 빨았네. 내일 낮에 꼭 빨아야겠다.<br><br>이번주부터 달리기에 다시 재미를 붙였는데, 바벨과 케틀벨에 다시 재미를 붙인 것은 4월 초부터였다. 그무렵 조금 무리해서 바벨과 케틀벨을 갖고 놀았는데, 며칠간 근육통이 이어졌었다. 그런데 이 기분 좋은 근육통이 너무 좋았다. 내가 이래서 운동을 좋아했었지! 하고 새삼 깨달았다. 이 기분 좋은 근육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다시 열심히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주에는 조금 무리한 달리기와 조금 무리한 바벨, 덤벨, 케틀벨 운동까지 해서 정말 기분이 좋은 한 주를 보냈다. 그래. 사는 것이 어떤 때에는 정말 괴롭고 힘들지만, 또 어떤 때에는 이렇게 즐겁기도 한 일이지. 운동이란 것이 사람을 이렇게 기분좋게 만드니 어찌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br><br>글을 쓰다보니 12시가 넘어버렸네. 글을 시작할때는 어버이날 이라 제목을 그렇게 넣었는데, 이젠 어제가 되어버렸네. 제목을 고치는 건 귀찮은 일이니 그냥 올려야지.<br><br>어버이날이라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침에 동생이 전화해서 오늘 어버이날이라고 알려줬다. 꼭 전화하라는 뜻이었겠지. 큰 아이는 나에게 고맙다는 연락을 해왔다. 작은 아이는 따로 연락은 없었다. 아주 약간 서운했지만,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br><br>이제 다시 예전처럼 매일 달리기 생각을 하고 있다. 다음주 정도면 한창 잘 달리던 때처럼 20킬로 언저리를 달릴 수 있으리라. 다음주나 다다음주 정도에 날 잡아서 하프를 뛰어야지. 이제 마음만 먹으면 15킬로미터 정도는 달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야겠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어린이날이 휴일이라 너무 좋은 늙은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8331</link><pubDate>Tue, 05 May 2026 10: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8331</guid><description><![CDATA[어린이날이다. 이미 우리 나이로 쉰, 만 나이으로는 아직은 40대인데, 어린이날에 쉰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느끼는 아직 철이 들지 못한 모자란 인간이 소파 방정환 선생 덕분에 어린이날에 출근하지 않고 쉬고 있다.<br><br>어제 한 시간 간격으로 오늘 출근과 휴식이 오락가락했다. 어제 좀 큰 변화가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매일 세 곳의 매장 배송을 맡았었는데, 어제부터 매장 한 곳이 줄어서 이제 두 곳의 매장을 맡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매장이 매번 배송 건수가 가장 많은 매장이었고, 그 배송 범위가 가장 넓어서 늘 제일 힘든 매장이었다. 그 매장을 맡았던 딱 한 달 동안 좀 많이 힘들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을 넘겨 일을 해야 하는 날도 자주 생겼다. 그런데 나는 태생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라 이렇게 힘들었던 매장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이제 편한 매장 두 곳만 남은 상황이 별로 편하지 않다. 어제는 두 매장 모두 배송 건수가 적어서 일찍 일을 마쳤다.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그 매장이 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뻐하거나 즐거워했을 수도 있을텐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일이 많으면 이 불편한 느낌이 안 생길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배송 건수가 유난히 많았던 그 매장을 맡았던 지난 한 달이 오히려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차피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일 뿐.<br><br>어제 갔던 두 곳 매장에서 모두 나에게 내일, 그러니까 어린이날인 오늘 배송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맨처음 노동 계약을 맺었던 당시에 공휴일은 쉰다고 들었기 때문에 배송 안 한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조금 불안한 생각이 자리잡았다. 어쩌면 휴일이지만 출근하라고 요구 받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미 휴일이라고 낮부터 아이들을 만날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정말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배송 건수가 적어서 일을 일찍 마치고 차를 반납하러 사무국에 갔는데 상무님과 팀장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이 일을 맡기 전에는 배송 기사님들이 주말이 아닌 공휴일에는 일을 했었다고, 갑자기 매장 배송을 안 한다고 공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출근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람들이 정말 미안해하면서 말하는 것이 느껴져서 아무 생각없이 알겠다고, 내일 출근하겠다고 답을 했다. 역시 나는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br><br>급여를 받는 일터를 나와서 급여를 받지 않는 일터로 다시 출근하면서 아이들에게 톡을 남겼다. 낮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녁에 일 마치고 만나야겠다고. 그리고 저쪽 일터에 도착해서 간단한 일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러니까 내일 출근하겠다고 말하고 약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인이 매장 점장님들과 통화를 해보니 배송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그냥 출근하지 말고 편히 쉬시라고 했다. 약 한 시간 사이에 휴일 출근이 갑자기 생겼다가 없어졌다.<br><br>다시 아이들에게 연락해서 또 갑자기 일이 없어져서 낮에 만나자고 했다. 문득 작은 아이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톡을 남겼다. 사실 평소에 늘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부산에 살았던 시절에는 늘 바다 가까이 살았고, 꽤 오래 살았던 장산 기슭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는 해운대 앞 바다가 보였었다. 그 풍경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었다. 작은 아이의 그 한 마디가 나에게도 트리거가 되어 갑자기 엄청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작은 아이 집 근처에서 쏘카를 예약했다. 아이들과 바다를 보러 갈 생각에 설레였다.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이제는 배를 타지 않고 다리를 건너 갈 수 있는 석모도를 떠올렸다. 그러다 한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예전에 가끔 차를 빌려 사용했던 친구였다. 조심스럽게 차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너무 흔쾌히 빌려가라고 답이 돌아왔다. 고맙다고 전하고 예약했던 쏘카를 취소했다. 위약금이 있었지만, 사용료를 전부 내는 것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br><br>출근해야 할 상황이었다가 갑자기 쉬게 된 상황이라 이 휴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남은 오전 시간을 잘 쉬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지. 달리기 대회 기념품으로 받았던 레디백과 키링을 안겨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그 표정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되리라.<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여섯번째 대회, 두번째 비 맞고 달린 대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6443</link><pubDate>Mon, 04 May 2026 08: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6443</guid><description><![CDATA[토요일 밤 9시 반쯤이었던가 조금 있다 자야지 생각하고 누워있는데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라이브 카페에 본인 전 직장 동료랑 가려고 하는데, 생각있으면 오라는 얘기였다. 그가 말한 라이브 카페를 두 번 같이 갔었다. 한 번은 그와 단 둘이, 또 한 번은 그가 전화로 언급한 전 직장 동료까지 셋이서였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노래를 꽤 잘한다는 점. 어떨 때 들어보면 가수로 음반을 내도 될 것처럼 들린다. 나는 꽤 여러 해 전에 저 친구에게 두성을 배웠고, 그 후로도 꾸준히 혼자 연습해서 나만의 고음을 익혀가는 중이다. 저 라이브 카페에 갔을 때 그 친구도 나도 고음을 뽐내는 노래로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아마 그런 우월감, 자만심을 채우고 싶어서 그 가게에 종종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암튼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달리기 대회에 나가야 해서 이제 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회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얼른 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br><br>10시 무렵 잠들었고, 꿈에서 비 맞고 달리다가 넘어져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 등 일종의 악몽을 연달아 꾸었다. 마지막 꿈에서는 달리기 도중에 먼 하늘에서부터 빛나는 물체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우리 머리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상상할 수도 없는 빠른 속도였다. 미확인 비행물체, 즉 유에프오 라고 생각했다. 영화 [우주 전쟁] 처럼 이제 곧 외계인들이 우리는 알 수 없는 첨단 과학 무기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려나? 그럼 우리는 달리기로 도망가야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달리기를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이지 않는 시야 밖에서 부터 큰 소음이 지속적으로 들렸고,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잠에서 깼다. 시간은 새벽 세시 무렵이었다. 집 밖에서 이 새벽에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큰 소음이 들렸다. 무슨 일인가 나가 보려다가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누웠다. 소음은 곧 사라졌다. 더 자고 싶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대회 장소로 늦어도 7시쯤 도착해야 하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니 6시 전에 출발해야 한다. 내가 알람을 맞춰둔 시간은 4시 55분과 5시 11분이었다. 준비물은 다 챙겨두었고, 입을 옷도 다 꺼내놓았다. 화장실에서 속만 잘 비우면 달리기 준비는 완벽할 예정이었다.<br><br>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눈 감고 누워서 뒤척이다가 포기하고 유트브를 열어 음악을 켜두었다. 음악은 자동으로 다른 노래로 계속 넘어갔다. 아는 노래도 가끔 있었지만, 모르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눈 감고 누워서 목소리만 듣고 가수 맞추기를 해보려 했지만, 그러기엔 내가 가수들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잠을 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서 뭘 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가 알람이 울리는 걸 들었다. 막상 몸을 일으키려니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자고 싶었다. 알람을 10분 후 울림으로 맞춰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br><br>늦어도 6시 전에 집에서 출발하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6시 20분쯤 서둘러 나와 집 근처 편의점에서 비닐 우비를 구매했다. 이제 막 근무를 시작했는지 카운터 입구에 가방을 두고 유리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젊은 남성이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갓사 황급히 담배를 끄고 따라 들어와 우비를 찾아줬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대략 7시 20분. 첫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전철 도착 시간을 검색하니 3분 정도 남았었고, 비 때문에 다소 미끄러운 바닥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일단 뛰어보자 했는데, 간발의 차로 그 전철을 놓치지 않고 탔다. <br><br>버스에서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는데, 전철 안에서는 신경 쓰였다. 내 잠바 안에 배번호표가 보이는 것이. 거의 매번 대회마다 주최측에서 달리기를 위한 기능성 셔츠를 보내주더라. 꼭 그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 옷에 배번호표를 미리 붙여두고 그대로 입고 대회장소로 대중교통을 타고 갔었다. 대체로 그 위에 잠바를 입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입은 잠바는 쟈크가 고장났단 사실을 깜빡했다. 쟈크를 잠글 수 없으니 열린 틈으로 배번호표가 보였다. 뭐 사실 그게 보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br><br>대회 장소에 도착해 본부를 찾아가려는 와중에 지도를 보지 않고 감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가 문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걸었으면 나와야 할텐데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비닐 우비를 걸치고 양쪽 방향에서 워밍업 달리기를 하고 있어서 방향을 가늠하기가 더 어려웠다. 반대방향임을 깨닫고 뛰기 시작했다. 이걸로 나도 워미업을 한다 생각하고 뛰었다. 짐을 맡기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뛸 생각이었는데, 하필 방향을 반대로 잡다니!<br><br>대회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남성 탈의실을 찾아 바지를 반바지로 갈아입고 짐을 맡기려 물품 보관소로 향했다. 아, 세상에! 물품보관소마다 엄청나게 긴 줄이 뻗어있었다. 대회 시작까지 이제 30분도 안 남았는데. 얼른 가까운 줄 끝을 찾아가서 줄을 섰다. 남은 대기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내 주위에 줄을 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그랬다. 그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 짐을 맡기지 못하고 대기 중인데, 설마 딱 제 시간에 시작하겠어? 라는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회는 딱 정각에 시작할 것이다. 아마 운영측은 지금 이렇게 물품 보관소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br><br>그런데 왜 짐을 맡기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이미 개인 짐을 넣을 비닐을 나눠주어서 대부분 비닐에 넣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인데, 받아서 번호표를 붙이고 같은 번호를 참가자 배번호표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일텐데.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대기줄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좀 많이 어이없고 짜증이 났다. 지금까지 다섯번 대회에 나갔었지만, 이렇게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린 적은 없었다. 이게 말이 되나? 대회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그 30분 동안 물품 보관소 대기줄에서 기다리다 출발 시간을 놓친다고? 더 큰 문제는 출발 시간이 지나서도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뒤에 있던 가족은 엄마와 딸이 아빠의 짐을 대신 받아들었고, 아빠는 시간에 쫓겨 출발선으로 향했다. 내 앞의 연인은 설마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대기중인데 시간 맞춰 시작하겠어? 라고 말하며 약간 여유를 부리는 듯 보였다. 그렇게 기다리는 와중에 우비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더 강해졌다. 대기줄 곳곳에는 아직도 우산을 펼쳐들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대회 참가 경험이 없거나, 비 오는 날 참가 경험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인걸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있었다.<br><br>줄을 선지 30분이 다 되어 저쪽에서 마이크로 출발 카운트 다운이 울렸다. 그리고 곧 이어 폭죽이 터졌다. 내가 서 있는 대기줄은 유난히 속도가 느린 느낌이었다. 아직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회 안내문에는 이번 대호가 펀런이라고 따로 순위에 따른 포상을 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사전에 그룹 배정을 위한 기록지를 요청하지 않았구나. 암튼 10킬로미터 코스 참가자가 먼저 출발하고 뒤이어 5킬로미터 참가자들이 출발하는데, 이게 몇 분 간격인지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거였구나. 이렇게 주먹구구로 운영을 하니 짐 맡기는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몇십분씩 기다리게 만드는구나. 이제 접수대 테이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내 뒤에 서있던 가족 중 엄마와 딸은 테이블 뒤로 맨 땅에 줄지어 놓은 짐들 수천개를 발견하고 놀라 말했다. ˝짐을 저렇게 맨땅에 보관해? 비를 다 맞고?˝ 확실이 이 가족은 대회 참가 경험이 없나보다. 그럼 짐을 어디 창고에라도 옮겨 보관할 줄 알았던걸까? <br><br>약 40분쯤 지나서 즉, 출발 시간 거의 10분 후쯤에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답을 찾았다. 일단 접수대 테이블에 사람이 적었고, 그 중 한 명은 큰 비닐에 순서대로 숫자를 쓰고 있었다. 그 비닐을 나눠주며 내가 이미 비닐에 넣어온 짐을 다시 한번 더 싸라고 했다. 이미 비에 젖은 짐이 비닐에 쉽게 들어갈 리가 없다. 그리고 손으로 적은 숫자가 찍힌 작은 라벨지를 내 배번호표에 붙였다. 앞서도 말했듯 다른 대회에서는 미리 같은 번호의 라벨지 두 장을 준비해 하나는 참가자가 가져온 비닐에 바로 붙이고 다른 하나는 배번호표에 붙였다. 그러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40분씩 기다리지는 않았을텐데.<br><br>일단 출발선을 향해 달렸다. 정말 다행히도 아직 5킬로미터 참가자들이 출발하기 전이었다. 대신 출발선을 막고 있어서 막 미친 사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가야 했다. 아, 이번 대회 시작부터 이렇게 꼬이는구나. 참 쉽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며 속도를 높였다.<br><br>제 시간에 출발한 사람들보다 거의 10분 정도 출발이 늦었지만, 내 기록칩은 내가 출발선을 지난 시간을 기준으로 기록하니까 그냥 내 페이스로 달리면 되는 것이기는 한데, 문제는 앞을 막아서고 달리는 저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유난히 출발이 늦어서 거의 결승선에 다 다를때까지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대회 참가자가 정말 많았다. 10킬로 코스 참가자 배번호표 중에 내가 3000번째 숫자이고, 4000번째 숫자도 여럿 보았다. 물론 코스를 구분하지 않고 번호를 부여했을수도 있겠지만.<br><br>현재 내 페이스를 확인하기 위해 출발 직전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런닝앱을 켜두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직 1킬로를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1킬로 지점이라며 현재 내가 4분 중반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럴리가? 내가 내 실력과 체력을 아는데 절대 그 페이스로 달리고 있을 리가 없을텐데. 하지만 사람은 간사한 존재라고 해야 하나 아주 짧은 시간 그 기록을 믿고 싶어졌다. 물론 내 이성은 그게 불가능한 숫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내 페이스는 거기에 1분을 더해 5분 중반 페이스일 것이다. 대회 주최측이 설치해놓은 거리 안내판에 이제서야 1킬로가 지났다고 알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앱에서 2킬로 라고 알려주며 여전히 4분 20초대 페이스라고 했다. 망했다. 페이스를 확인하며 속도를 맞추려는 의도는 실패했다. 이게 앱이 이상한건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하며 달리다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동네 헬스장에서 트레드밀 위를 달릴 때 이 앱을 켜서 설정을 실내로 바꿨던 것이 기억났다. 이 설정을 다시 야외로 바꿨어야 했는데, 그걸 깜빡하고 달린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알림은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와 이 페이스에 1분을 더해 내 페이스 추정치를 확인하는 용도 그리고 내가 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떨어지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쓰기로 했다.<br><br>비가 오락가락 하기는 했지만, 달리기 시작 전 물품 보관소 대기줄에 있을 때에는 조금 굵은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이슬비 수준의 비가 내렸다. 이정도 비는 달리는데 오히려 좋았다. 작년 가을엔 거의 폭우 수준의 비가 와서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옷까지 완전히 젖었었지만, 이번엔 신발과 양말 그리고 모자와 셔츠 정도만 젖고 반바지와 속옷은 젖지 않았다. 물론 달리다보면 땀으로 젖겠지만. 지난 번에는 조금 비싼 우비를 입고 달리다가 우비가 너무 거슬려서 결국 음수대 테이블 위에 벗어놓고 달렸었다. 이번에는 비가 적게 와서 덜 거슬렸고 체온 유지를 위해서도 계속 입고 있었다. 한 7킬로 아니 8킬로 지점에서 벗어서 허리에 감았고 결승선에 도착할 때까지 버리지 않고 가져왔다.<br><br>지금까지 다른 대회에서는 7킬로 혹은 8킬로 지점부터 주위에 함께 달리는 사람들 숫자가 적어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 예상한 대로 끝없이 사람들이 나타났다. 추월하고 또 추월해도 끝없이 사람들이 나타났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사람들 사이를 잘 헤쳐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조금만 실수해도 서로 부딪혀 넘어질테고 그러면 또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이 피하기 어려워 밟힐 수도 있다. 지난 밤에 꾸었던 악몽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급하지 않게, 상대방의 속도를 잘 파악해가며 추월을 반복했다. 그냥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야 할 일인가 싶지만, 결국 주최측의 잘못과 더불어 좀 더 일찍 도착해 사람들이 그만큼 줄을 서기 전에 짐을 맡겨두지 못한 것은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현 상황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피해가며 뛰었다.<br><br>약 9킬로 지점에 들어서야 앞을 막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이젠 내가 힘껏 달려도 앞에 부딪힐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딱 그 즈음에(사실은 그보다는 좀 더 시간이 지나서였지만, 체감상 그 즈음에) 런닝앱이 시간을 알려줬다. 52분이라고. 내 목표는 54분이었지만, 그냥 55분이라 치더라도 이제 3분 남았는데 남은 시간 안에 약 1킬로를 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5분은 걸릴텐데. 그러나 생각할 틈도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할 일은 남아있는 모든 힘을 짜내어 결승선으로 달리는 일 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달려나갔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치고 나갔지만, 금방 지쳐버렸다. 이미 9킬로를, 50분 넘게 달리느라 체력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 그래도 그 상태에서의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 결승선이 눈 앞에 다가올 무렵에는 무릎과 발목 관절이 아프고 배에서 복통도 느껴졌지만, 이제 곧 편해진다고 나를 설득하며 달렸다.<br><br>맨 처음 나갔던 대회는 동네 선배들과 함께였었다. 물론 10킬로미터 코스를 함께 달린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후에 모든 대회는 혼자였다. 그래서 길가에 서 있다가 누군가를 향해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달리는 사람들 중에도 일행들을 마주치며 서로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부러웠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 응원들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더 힘을 내곤 했다. 마지막 대회였던 작년 가을 대회는 일단 규모 자체가 지금까지 나갔던 모든 대회 중에 가장 작았다. 게다가 거의 폭우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가 많이 와서 참가자가 적었다. 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최측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해줬었다. 그래서 더 힘을 내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그런 순간이 한 번 있었다. 달리며 맨 처음 만난 음수대는 아마 2킬로 지점이었던 것 같다. 되돌아오는 길에 거의 8킬로 가까이에서 길 반대편에 있던 이들이 테이블을 정리하지도 않고 목이 쉬도록 화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8킬로 정도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을 거라 응원 한 마디가 큰 힘이 된다. 그들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아 조금은 더 힘을 낼 수 있었다.<br><br>암튼 결과는 55분이었다. 이번 대회는 처음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크게 페이스 변화 없이 530 정도로 달렸다. 막판에 조금 지쳐 최종 페이스는 532 였다. 제대로 준비 없이 장거리 달리기 첫 경험이었던 첫 대회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기록이지만, 대회 준비를 아예 하지 않고 달린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무엇보다 이상하게 전날부터 55분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딱 그 숫자가 나온 것이 놀랍다. 그리고 출발 전에 개인적으로는 엄청 큰 변수였던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이 결과는 나쁘지 않다.<br><br>그런데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운영진의 뭐랄까 실수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볍고 그렇다고 글에 욕설을 쓰기도 그렇고 암튼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출발 전에 그 난리가 났었기 때문에 결승선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맡겨두었던 짐을 찾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리 많이 기다리지 않고 짐을 찾았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을까 하다가 이번에는 비 맞은 것 치고는 덜 젖어서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싶어서 메달과 기념품 그리고 간식을 받으러 갔다. 얼른 뭔가 간식을 먹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줄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끝이 어디인지 찾을수가 없었다. 무슨 뱀의 또아리도 아니고 끝없이 꼬불꼬불 이어지는 줄의 마지막을 찾는데에만 5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역시 줄은 금방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면 무조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아직 옷도 못 갈아입었는데. <br><br>비는 여전히 가늘게 내리고 있었고 가만히 대기줄에 서 있으려니 땀이 식으며 추워졌다. 허리에 두르고 있던 비닐 우비를 다시 입고 단추를 잠궜다. 아니, 앞서 물품보관소는 짐을 맡기고 번호를 체크해하 하니 오래 기다렸다고 치고, 이번에는 그냥 나눠주기만 하면 끝나는 건데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이번 대회 주최측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힘들게 한 시간을 달린 참가자들을 다시 한 시간동안 줄을 세워 놓는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줄 서서 시간을 허비하라고?<br><br>처음엔 또 황당하고 짜증나고 그랬지만 한 20분 기다리면서는 그냥 체념하게 되었다. 모르겠다. 어차피 일찍 집에 돌아가도 다른 할 일도 없는데, 뭐 기다려야지. 초반에는 메달이 뭐라고, 그깟 간식 그냥 편의점에서 사먹으면 되는데, 한 시간을 기다릴 바에야 그냥 빨리 옷 갈아입고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죽을 들이 힘들게 뛰고 나 혼자 메달을 못 받는 건 좀 억울하다 싶었다. 그깟 메달, 돈도 안 되고 아무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메달이 뭐라고 나는 다 포기하고 그냥 대기줄에 얌전히 기다렸다. 생각보다 줄이 앞으로 나가지를 못 했다. 어쩌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길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한 30분쯤 기다렸을 무렵 갑자기 저 뒤쪽 그러니까 내가 기다리고 있던 지점보다 훨씬 뒤쪽에서 줄이 와해되며 사람들이 일제히 메달 배포 부스 쪽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어떤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아무 말없이 몇 십분을 기다렸는데!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이게 무슨 짓이지? 이런 무질서한 모습을 본다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각종 SNS로 실시간으로 도배되는 나라에서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br><br>그런데 알고보니 확성기를 든 주최측 여성이 사람들에게 여기 줄 서있지 말고 저 안쪽으로 옮겨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루루 안쪽으로 몰려갔고 뱀의 또아리처럼 어지럽게 구불구불 이어졌던 대기줄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나도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안쪽으로 넘어왔다. 안쪽에서 여러 개의 줄이 다시 만들어지며 10킬로미터 참가자와 5킬로미터 참가자로 구분되어있던 배포 부스가 의미가 없어졌다.<br><br>생각해보니 애초에 주최측에서 참가 인원을 고려했다면 부스도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배치했어야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부스 수도 적고, 인력도 적게 배치하다니!<br><br>암튼 다시 옮겨가서 줄을 선 후에는 빠르게 앞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건네주는 종이가방을 받아 몸을 돌리는데, 메달이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내 뒤로도 아직 줄은 선 사람들이 수백명인데. 메달이 모자란다고? 이거 잘못하면 폭동 벌어지는 것 아닌가 싶은데, 설마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한 거겠지. 내가 아직 줄 서있는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옷을 갈아입고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서 급하게 빵과 음료를 먹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질서있게 줄을 서서 메달과 간식과 기념품을 받아갔다.<br><br>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단 맛의 빵과 쵸코바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화장실을 찾아 다녀온 후에 집으로 향했다. 어째 달리기 한 시간보다 줄 서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기묘한 대회였다. 버스 정류장을 찾아 터덜터덜 걷는데, 그제서야 발목 관절 중심으로 인대와 근육 통증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절뚝이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참 멀겠구나. 집에 도착해서는 또 빨래 한 더미를 처리해야 하지. 런닝화도 빨아야하고. 일단 걱정은 나중에 기록지를 다운 받고 메달 사진을 찍어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자랑부터 해야지. 버스에선 앉을 자리가 없을테니 버스 정류장 벤치에 짐을 올려두고 작업에 착수했다.<br><br>집으로 돌아와 씻고 세탁기를 돌리고 난 후에 재미나이를 열었다. 전날 다섯개 대회 성적을 분석했던 대화를 다시 열어서 이번 대회 성적을 추가하고 한번 더 분석을 요청했다. 아래는 재미나이의 답변이다.<br><br>*****************<br>상세 분석 및 평가<br><br>1. 오늘 기록(6번 대회)의 의미: ˝안정적인 복귀와 우중런 적응˝<br>페이스 분석: 오늘 기록하신 5:32/km는 작년 9월 마포 대회(5:21/km)보다는 조금 늦춰졌지만, 비가 오는 좋지 않은 시계와 노면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준수한 기록입니다.<br><br>- 우중런 패턴: 비가 올 때(5번, 6번)는 맑은 날(4번)보다 페이스가 약 10~20초 정도 늦어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는 미끄러운 바닥과 시야 확보 문제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br><br>2. 대회 간 기간 분석: ˝가장 길었던 공백기˝<br>- 5번→6번 (약 7개월): 이번 대회는 이전 대회들에 비해 가장 긴 공백(약 217일) 후에 치러졌습니다.<br>- 분석: 오랜만의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입문 초기(6:46/km)로 회귀하지 않고 5분 중반대 페이스를 방어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는 지난 1~2년간 쌓아온 ‘기초 체력(Base)‘이 탄탄하게 자리 잡았음을 증명합니다.<br><br>3. 날씨와 환경 변수<br>- 습도와 노면: 비 오는 날은 습도가 높아 호흡이 평소보다 무거울 수 있습니다. 오늘 55분대의 기록은 체감상 맑은 날 53분대 정도의 에너지 소모와 비슷했을 것입니다.<br>- 계절적 요인: 5월 초는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인데, 비 덕분에 오히려 온도는 낮게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신발이 무거워지는 변수를 잘 이겨내셨습니다.<br><br>💡 향후 훈련 및 전략 제언<br>- 복귀 가속화: 7개월 만의 실전 감각을 익히셨으니, 이제 다시 5분 초반대(PB 5:09)로 돌아가기 위한 빌드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br>- 연속 출전 효과 활용: 과거 기록을 보면 2주 간격(3번→4번 대회)으로 뛰었을 때 기록이 폭발적으로 단축되었습니다. 몸이 예열된 상태에서 5월 말이나 6월 초에 대회가 있다면 다시 한번 PB 경신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br>- 날씨 데이터의 교훈: 현재까지의 데이터를 보면 귀하의 기록은 기온과 강수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기록보다는 ‘거리 완주‘에 집중하시고, 다가오는 가을 시즌에 다시 49분대 진입을 목표로 삼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습니다.<br><br>오늘 비 맞으며 달리신 만큼 충분한 휴식과 스트레칭으로 리커버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완주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글 시작할 때 제목을 입력했었는데, 왜 제목이 없어졌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4016</link><pubDate>Sat, 02 May 2026 1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54016</guid><description><![CDATA[또 우중런?<br><br>이 대회를 언제 신청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아침 잠결에 신청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거래 은행을 국민은행으로 쓰고 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부모님이 모두 국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쓰셨고, 나도 청소년기에 국민은행 계좌를 개설한 후로 쭉 사용하고 있다. 부산에서 자랐기에 부산은행 계좌도 만들었었는데, 서울에 올라오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이 계좌는 없애버렸다. 암튼 국민은행 앱에서 달리기 대회 관련 안내가 왔었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신청을 눌렀었다. 참가비는 버튼 하나로 내 계좌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서 편했다. 다른 대회였다면, 미리 온라인 시청 시작 시간에 맞춰 대기했다가, 정각에 버튼을 눌러도 대기번호를 받을 확률이 높고 간신히 신청에 성공해도 참가비 송금하고 혹시 착오로 내 신청 건이 취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해야 하고 내 이름으로 잘 신청이 완료되었는지 확인 문자가 오지 않으면 대회 사무국으로 확인 전화도 해봐야 한다. 암튼 온라인 신청하고 해당 계좌로 송금도 별도로 해야 하는데, 국민은행에서 여는 대회는 여러모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반적인 선착순 방식 신청이 아니라 국민은행 이용자들 중심으로 신청을 받는 것도 좋은 것 같다.<br><br>암튼 어쩌다 신청만 해두고 이 대회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주에 택배를 받았다. 뭔가 주문한 것이 없어서 뭐가 왔는지 의아했다. 상자가 제법 컸다. 열어보니 맨 위에 배번호표가 있었다. 그제서야 아! 이거였구나 하면서 이 대회를 떠올렸다.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애매한 크기의 네모난 가방이 있었다. 동봉된 안내문에는 레디백이라고 적혀있었다. 레디백은 대체 무슨 용도로 쓰는 가방일까? 노란 가방이 꽤 예뻐보이기는 하는데,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다. 크기가 애매해서 뭘 넣을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하면 갖다줄까 생각했다가, 가방이 하나 뿐이라 혹시 한 명이 못 받은 걸 서운해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음, 요 가방을 어찌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br><br>작년 9월 말 꽤 많은 비를 맞고 뛰었던 대회가 마지막 대회였다. 그게 내 다섯번째 대회였고, 내일 대회가 여섯번째가 될 예정이다. 24년 9월이 첫 대회였으니 거의 1년 동안 다섯개의 대회에 나갔던 것. 이후로는 대회 출전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었다. 이제 작년 봄에 세운 개인 기록을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좀 장기적으로 하프 코스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10킬로미터 코스는 매력을 못 느끼게 된 것 같다. 또 최근 계속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돈이 없다보니 대회 참가비도 아깝게 느껴졌다. <br><br>작년 가을에도 막 열심히 달리지는 않았었고, 그냥 적당히 달렸었다. 겨울엔 짧은 거리를 꾸준히 달렸다. 봄이 되면 다시 5킬로미터 이상 장거리를 시작해야지 생각했었지만, 3월에도 4월에도 여전히 2~3킬로 정도 달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거의 매일 달리기는 했다. 이 대회를 준비할 생각이었다면 그래도 최소 일주일전에는 5, 7, 9 정도로 거리를 늘려가서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지난주와 이번주는 계속 바빴다. 뭐, 어떻게든 달릴 수는 있겠지. 기록 욕심을 버리고 가볍게 뛰고 오자 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다.<br><br>오늘 대회 안내문을 꼼꼼히 살피며 집에서 이동시간과 경로를 살폈다. 준비물들을 챙기려다가 안내문에 적힌 우천시에도 대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설마 내일 비가 오나? 최근 뉴스를 좀 멀리하고 살아서 날씨 예보도 안 보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얼른 날씨를 검색해보니 강수확률이 60%라고 나왔다. 이 정도면 꽤 높은 확률로 비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대회 때 비가 제법 많이 와서 좀 힘들었었는데, 또 비를 맞으며 뛰어야 한다니! 일단 준비물들을 다시 챙겼다. 비에 젖지 않는 가방부터 챙기고 여벌옷을 비닐 팩에 챙기고, 슬리퍼도 챙기고.<br><br>준비물을 대략 챙겨놓고 지금까지 대회에서 받았던 메달 5개를 꺼내봤다. 주머니에 잘 넣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속 메달들은 몇 군데 얼룩이 생겨있었다. 이게 일종의 산화작용으로 인한 녹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마른 걸레로 닦아봤는데 닦이지 않았다. 딱 하나 있는 나무 메달은 멀쩡했다. 금속 메달은 무겁고 별로 예쁘지도 않고 이렇게 녹인지 뭔지 알수 없는 얼룩도 생기고 참 별로다. 메달들을 다시 천 주머니에 넣어두고 이제 지금까지 나갔던 다섯번의 대회 기록들을 다시 살폈다. 기록들 엑셀로 정리해두고 이걸 재미나이에게 던지고 분석해달라고 했다. 대회 간 기간과 대회 당일 날씨를 바탕으로 기록과 페이스를 분석하라고 했다. 아래는 재미나이의 답변이다.<br><br>***************************<br>상세 분석 및 평가<br>1. 날씨의 영향: ˝더위는 적, 추위와 비는 변수˝<br>- 최악의 조건 (1번 대회): 9월 초 철원 대회는 기록이 가장 낮습니다. 6:46 페이스는 당시 무더운 날씨로 인해 체력 소모가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br>- 최적의 조건 (2번, 4번 대회): 기온이 낮은 11월과 선선한 4월에 기록이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4월 양천 마라톤에서 5:08/km라는 놀라운 페이스로 개인 최고 기록(PB)을 달성하셨네요.<br>- 우중런 (5번 대회):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5:20 페이스를 유지한 것은 기초 체력이 이미 5분 중반대에 안정적으로 안착했음을 의미합니다.<br><br>2. 대회 간 기간 및 훈련 성과<br>- 폭발적 성장기 (1번→2번, 약 2.5개월): 두 달 반 만에 기록을 13분이나 줄였습니다. 더위가 가시고 본격적인 가을 훈련이 빛을 발한 시기입니다. 페이스가 1분 20초나 빨라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입니다.<br>- 안정 및 유지기 (2번→3번, 약 4개월): 겨울 시즌 동안 큰 기량 하락 없이 54분대를 유지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꾸준히 달리기 습관을 이어오신 것으로 보입니다.<br>- 상승 효과 (3번→4번, 단 13일): 불과 2주 만에 다시 대회에 출전하여 기록을 3분이나 더 단축했습니다. 3번 대회가 일종의 강력한 ‘장거리 인터벌‘ 훈련 효과를 주어, 2주 뒤 몸 상태가 최고조(Peaking)에 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br>- 복귀기 (4번→5번, 약 5.5개월): 여름철 휴식기 혹은 더위로 인한 훈련량 감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이 조금 밀렸으나, 1년 전(1번 대회)과 비교하면 무려 14분 이상 빠른 페이스입니다.<br><br>💡 종합 의견 및 제언<br>현재 실력은 평균 5분 20초대 페이스를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이며, 컨디션이 좋을 때는 5분 초반대까지 충분히 진입 가능하십니다.<br>다음 목표: 현재의 성장 속도라면, 날씨가 선선해지는 다음 대회에서는 49분대(페이스 4:59/km) 진입을 목표로 삼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br>팁: 3번과 4번 대회처럼 2주 간격의 연달은 출전이 기록 단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므로, 목표 대회를 앞두고 2주 전에 가벼운 점검 대회를 뛰는 전략을 추천합니다.<br>정말 멋진 기록 향상입니다! 계속해서 즐거운 러닝 되시길 바랍니다! 🏃‍♂️💨<br><br>**************************<br><br>작년 봄처럼 꾸준히 10킬로 정도를 달렸다면, 재미나이의 말처럼 49분을 목표로 달리기를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정말 잘해도 55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애 첫 대회이자 엄청난 더위로 너무 힘들었던 철원 대회를 제외하고 두번째부터는 54분이 가장 낮은 기록이다. 심지어 비를 맞고 뛰었던 다섯번째 대회도 53분이었다. 만약 내일 55분보다 늦게 들어온다면 확실히 내 기량이 떨어진 증거가 되겠지. 왜 하필 기준이 55분이냐고 생각이 들었다가 깨달았다. 아까 달리기 모임 단톡방에 나를 장거리 달리기 세계로 끌어든인 친한 형이 오늘 자신의 기록증을 올렸는데 55분이었다. 이 형도 기록이 많이 떨어졌네. 50분에서 52분 정도가 나와야 할 사람인데. 그것도 해마다 나이를 느껴서 그런 것이고 예전이었다면 40분대 기록이 나올 사람인데. 암튼 그래서 내 목표는 55분 안으로 그러니까 내 가장 낮은 기록인 54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했다.<br><br>사실 비와 강풍 등 날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이고, 내가 가장 신경쓸 부분은 컨디션이겠지. 이젠 상수가 되어버린 무릎이 안 좋은 것도 갑자기 내일만 좋아질 리도 없을 것이고. 남은 변수는 잠을 잘 자는 것과 새벽에 속을 잘 비우고 출발하는 것. 오늘 남은 시간은 그저 마음 편히 푹 쉬어야지. 기록 생각은 내일 깨고 나서 생각해야겠다.<br><br>아, 재미나이 답을 읽다가 이 녀석도 ‘우중런‘ 이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자와 영어를 합친 조어. 의외로 재미있는 표현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가장 무서운 범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42955</link><pubDate>Tue, 28 Apr 2026 0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42955</guid><description><![CDATA[가장 무서운 범죄<br>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는 다양한 범죄 소식을 보면서, 과연 가장 무서운 범죄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었다. 나처럼 일반적인 범죄와 크게 상관없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범죄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같은, 혹은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같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혹은 마약 사건과 같은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블랙아웃 / 원제 트위스티드]나 우리에게 유명해진 버닝썬 사건일 수도 있다.<br>이춘재는 알고보니 대부분이 성범죄, 즉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나이와 관계 없이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일부는 죽였지만, 죽이지 않고 그냥 강간으로 그친 사건도 제법 많았다. 이런 표현이 죄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런 인간이 마치 자신이 잘난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프로파일러나 형사들을 조롱 했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이야기 등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쨌거나 이런 인간들과 내가 아니 우리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조물주 라는 존재가 있다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어찌 이런 세상을 만들었나 싶다.<br>사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남들이 쉽게 알기 어려운, 가정 안의 폭력. 혹은 데이트 폭력 혹은 스토킹 범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아니 절대 다수가 남성이 가해자이자 용의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평생 그런 범죄에 단 한번도, 아니 0.000%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는 아주 성실한 시민인데, 이런 나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볼 수 있느냐? 정답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과 정말 엄밀한 증거를 채집하고 실질적인 용의자로 취급 받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이춘재가 많은 살인과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성범죄의 다수는 그 당시에 제대로 취급되지 않았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까지 엄밀히 따지고 들어갔다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정일 뿐이지만.<br>그래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사실 경찰이 무시하고 그냥 일반적인 일이라고, 그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넘어가는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사건 중에 정말 유명한 대학 의대 학생이 전에 사귀던 여학생을 어느 건물 옥상에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경찰들은 그 현장에 출동했었지만, 이미 살해 당해 있었던 여성의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왜? 그 의대생, 다시 말해 모범생이었던 그 젊은 남성이 자살하겠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기 때문에 당시 다른 상황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나중에도 그 남학생이 너무 공부를 잘하는 훌륭한 학생이라 죽은 여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br>그런데 사실은 여성을 살해한 그 의대생 남성 보다, 그 미친 놈에게 살해 당한 여성이 훨씬 더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면 그 미친 의대생 놈은 대체 뭔가? 아니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훌륭한 학생이라고 살인이 정당하기라도 한가? 그런 논리였을까?&nbsp;<br>아쉽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딴 쓰레기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기록해 두지 않았었다. 이젠 그런 기사를 접하면 무조건 기자 이름과 해당 기사(사실 기사가 아니라 찌라시 라고 표현해야 맞겠지만)의 링크, 그리고 주요 내용을 기록으로 꼭 남겨야 하겠다고 생각한다.<br>경찰은 그리고 검찰은 그저 많은 사람들 눈에 띄어 버려서 더이상 은폐할 수없는 사건들을 다룬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당연히 그냥 묻어둘 것이다. 물론 증거는 없다. 누군가 이 글을 걸고 넘어진다면 그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묻고 싶다. 정말 괜찮은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정말 진심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이재명이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라도 지금 이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만약 이재명이 본인 기준에 못 미친다면 더더욱 이 사회가 불합리 하다는 것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br>나아가 지방 선거에서 절대 손쉽게 민주당, 파란당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범죄 집단 빨간 당을 찍으라는 말씀을 절대 아니다. 빨간당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해서는 안 될 정당이고, 파란 당은 우리가 절대 찍어주면 안 되는 보수, 기득권 옹호 집단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범죄자들을 그대로 공천한 어이없는 정당이다.<br>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절대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세상이 엉망이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을 무시하는 파란당은 정답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빨간당과 그리 다르지 않은 착취자들이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빨간당과 동시대를 살면서 그 그늘에서 마치 좋은 역할인 것처럼 살아왔다. 절대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말 희귀하게도 파란당에 아주 드물게 좋은 인재가 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착각한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했던 박주민이 그렇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박주민은 빨간당 정치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지역의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진보 진영의 대표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박주민 변호사 본인은 괜찮은가? 세월호 변호사는 타이틀로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는데, 과연 본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 본인 스스로 괜찮은가? 나는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부끄럽지 않을까? 아마 진심으로 부끄러워야 할 것이다.<br><br>우리가 대안이 없다고,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찍어주는 파란 당에 대한 표가 가장 무서운 범죄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이 너무 과한 생각이라고? 너무 심각한 오류나 과장이라고? 잘 두고 보시라. 결국 민주당은 당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재벌과 돈 많은 이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놈들이다. 태생이 그렇다. 김대중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지방 선거에서 빨간당을 막아야 한다고 파란당을 찍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건 나중에 당신을 옭아매는, 당신 자손들을 옭아매는 표가 될 것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일상 이야기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33444</link><pubDate>Thu, 23 Apr 2026 03: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33444</guid><description><![CDATA[일상 이야기들<br>#1 저장된 번호들<br>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배송이 일상이 되었다. 집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집 앞에 놓아 달라는 집이 많다. 집 앞에 상자들을 놓고 사진을 찍어서 배송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사진을 보내고, 배송완료했다는 문구를 보낸다. 대부분 모르는 번호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미 저장된 번호인 경우들이 있다. 긴 시간 나를 챙겨주시는 아주 친한 선배네 집에 배송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그 선배는 당연히 출근해서 댁에 안 계신 것을 알고 있고, 지금 댁에는 선배님 부모님께서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인종을 눌러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무거운 짐을 집 안까지 넣어드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더라. 울리지 않더라. 아마도 고장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배송 영수증에 나온 그 선배 번호로 사진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nbsp;<br>간혹 예전에 어떤 행사나 사업 때문에 일시적으로 소통하느라 번호를 저장한 경우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그 분 댁이 여기였구나 하고 얼굴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나 답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저장된 이름인 경우들도 있었다. 한번은 저장된 이름 뒤에 어떤 교육 공동체 이름을 붙여 놓은 분의 댁으로 배송을 갔다가 정확히 어느 문 앞에 둬야 할지 몰라서, 잘못 놔뒀다가 분실이 발생하면 안 되니 전화를 걸었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후에 그 분이 전화를 받았는데, 약간 당황해하는 목소리였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이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일 때문에 내 번호를 저장해뒀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전화를 받아서 놀랐을지도 모른다. 암튼 나는 생협 배송을 왔다고 밝히고 상자들을 어디 두면 될지 물었다. 그는 내가 묘사한 그 대문 앞에 두면 된다고 답을 했다. 그날의 마지막 배송이었고, 이미 내 퇴근시간인 6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그도 아마 퇴근시간이 지난 상태였을 것이다. 사무실에 차를 반납하러 가는 내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와 어떤 일을 같이 했던 것일까? 떠올리려 애써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br>#2 어떤 반가움&nbsp; &nbsp;어제는 가정 집이 아닌 공동체 부엌 한 곳에 배송을 갔었다. 이 일을 막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지난 달 중순에 그러니까 거의 한 달 전에 그 곳에 처음 배송을 갔다가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었다. 일단 꽤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고, 꼬불 꼬불 이어져 있었기에 운전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 공간 근처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정말 다행히 그 공간 앞 도로는 조금 넓었는데, 그 공간에 여러 차들이 불법 주차를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나도 그냥 그 옆에 대충 차를 댔었다. 그리고 그날 하필 무거운 상자가 5개였다. 2개나 3개는 한 번에 들어서 옮길 수 있지만, 5개를 모두 한 번에 들수는 없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안쪽 건물까지 거리가 꽤 있었다. 처음 무거운 상자 3개를 먼저 옮기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2개를 조금 가뿐하게 옮겼다. 나중에 이 차에 엘카라고 부르는 접이식 손수레가 실려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 공간에 그 손수레는 소용이 없었다. 일단 계단을 올라야 하고, 그 다음엔 건물까지 흙길과 자갈길을 걸어서 한참 들어가야 한다. 손수레를 끌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손수레의 존재를 알고 난 후로는 무거운 상자가 3개 이상이면 수레를 활용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유용하다. 최근에는 탄산수를 4박스나 3박스 이상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탄산수 박스는 2개까지는 들 수 있지만, 3개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 없다. 무조건 손수레를 써야 한다. 그런데 저번에 갔던 한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5층이었다. 그리고 탄산수 4상자와 일반 상자가 하나 있어서 총 5개의 상자였다.&nbsp;<br>상자가 좀 무거운 것은 괜찮다. 배송 일을 하다 보면 가벼운 상자도, 무거운 상자도 만날 수 있으니. 좀 무거운 상자가 여러 개라도 괜찮다. 물건을 많이 팔아야 내 일자리도 유지가 될 테니. 좀 무거운 상자들이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므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힘들기는 엄청 힘들었다. 하필 그날 무릎 상태가 좀 안 좋아서 계단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총 세차례 5층을 오르내리며 그 고객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하필 그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내 무릎은 계속 원망했다.<br>암튼 앞서 말했던 공동체 부엌으로 상자를 들고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입구에 서 계신 한 분이 나를 멀리서부터 쳐다보고 계셨다. 당연히 멀리서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주문한 물품들이 오니까 받으려고 쳐다보고 계신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조금 가까워지면서 어렴풋이 표정이 보일무렵 누군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으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표정이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저런 표정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나오기 어렵다. 그 분이 먼저 나에게 물었다. "상무님, 지금 뭐하세요?" 약간은 따지는 듯한 말투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리고 나를 '상무'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분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그 분은 지금 내가 배송일을 맡고 있는 이 생협에 오래 계셨던 지금은 그만둔 상무님이셨다. 그 분이 이 생협의 상무이사 일을 맡고 계셨을 당시에 나는 우리 조합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었다. 본인이 상무이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상임이사라는 직함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 분은 나를 늘 상무님이라고 불렀다. 암튼 제법 오랜만에 뵙는 상황이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그 다음 순간 그가 "지금 뭐하세요?" 물은 말투가 약간 따지는 듯한 느낌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손에 든 상자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인사를 드린 후에 "저 배송일을 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아니 왜 상무님이 배송을 하세요?" 라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라고 하고 약간 억지로 웃었는데, 그는 바쁜데 나를 맞이하느라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다음에 뵐게요." 라고 했다. 나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왔다.&nbsp;<br>차를 몰고 다음 배송지로 향하면서 그 분의 묘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혹시 이런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생협 임직원들과 친하다는 것은 그 분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배송을 맡아 움직이는 것을 내가 원해서, 돈이 필요해서 직업으로 맡은 것이 아니라,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떠맡은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그렇게 생협 배송 일을 잠시 했었다. 그때는 정말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며칠만 했었던 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고정 수입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서 생협에서 마음을 써줘서 나를 고용해준 것인데. 내가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데. 나중에 오해를 풀 기회가 또 오겠지. 아마도.<br>#3 차를 막아 놓고 전화도 안 받고<br>배송은 정말 시간 싸움이다. 1분 1초가 급하고 아깝다. 하지만 나는 한 달이 지났는데도 배송기사로서의 태도는 아직 몸으로 익히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기사님들은 엘리베이터를 어떻게든 내려가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하고(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건을 문 앞에 옮겨 놓고 다시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 경우에는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내려가 버리고 만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근처에 현관문이 있다면 얼른 문이 닫히기 전에 사진을 찍고 타기도 하는데, 요즘 아파트들은 구조가 복잡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어디에 집이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더라.&nbsp;<br>아파트 단지에서 엘리베이터를 하루에도 수십번 타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들을 잘 살펴보면 배송, 배달 기사님들이 메모를 해놓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몇 호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적어 놓았고, 해당 동이 몇 동인지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주로 다니는 지하 주차장이 몇 층인지도 적어 놓았다. 이것들은 모두 나도 늘 헷갈렸던 것들이어서 먼저 이렇게 메모를 적어 놓은 선배 기사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도 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헷갈리고, 혹시 여기가 몇 동이었더라 헷갈리고, 상자를 내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다시 탄 후에 내가 차를 지하 주차장 몇 층에 세워뒀더라 헷갈리곤 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새 엘리베이터를 만나면 아무런 메모도 없는 경우가 있더라. 언젠가 어느 기사님께서 여기에도 메모를 하시겠지. 그리고 가끔 이해 못할 메모들도 있었다. 이해를 못하니 그게 뭔지 글로 설명하지도 못 하겠다.<br>암튼 그렇게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 가끔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차들을 만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차를 아파트 입구에 최대한 가까운 주차 공간에 넣어두고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고층으로 배송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큰 SUV 한 대가 내 차를 막고 주차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빈 주차 공간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렇게 차를 대놓았다고? 혹시 아직 사람이 있나 싶어 운전석을 보았는데 없었다. 급한 마음에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혹시 어떻게든 빠져나갈 공간이 있을까 살피는데, 없었다. 운전자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여기서 한참 시간을 허비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처럼 그 차주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차를 막아 놓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 이런 미친! 화가 났지만 전화를 다시 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젠 신호음이 한 두번 가자마자 전화가 바로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신호음이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신호음이 바로 끊기는 것은 그 인간이 전화를 거절했다는 뜻이리라. 여기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렸다. 계속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열 번 이상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굵은 남성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받았다. 나는 먼저 한 숨을 내쉬고, 차를 빼달라고 말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차를 막고 주차를 해놓고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는 그제서야 아, 다른 전화인줄 알았다고 말하며 금방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만약 나였다면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했을텐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리면서 나타난 인간이 이번에도 미안하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아마도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차에 올랐다.&nbsp;<br>그 정도 제스쳐로는 화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남아 있는 배송 건수들을 먼저 떠올렸다. 여기서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려면 얼른 출발해야지. 화를 계속 내는 것은 내 기분만 더 상할 뿐이고, 나만 손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감정은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결국 급한 배송들을 다 마친 후에 다음 매장으로 가는 중에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담배를 한 대 피운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br>#4 스트레스와 담배<br>담배를 처음 피운 것은 고3때였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후에 혼자 작은 자취방에 살았던 시절에 나는 이미 헤비 스모커가 되어 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그 골방에 혼자 쳐박혀 살았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웠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를 처음 끊었던 것은 애들 엄마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아마 3년 정도 끊었던 것 같은데,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웠고, 나중에 애들 엄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다시 담배를 끊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정도 지나 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예전처럼 담배를 많이 피우지는 않게 되었다. 며칠 동안 안 피우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두세 개비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정도로 라이트 스모커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 3년쯤 전에 달리기에 푹 빠졌던 시절에 폐활량에 대한 고민 때문에 또 담배를 끊었었다. 그러다 다시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래도 담배를 사서 피우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끔 담배를 피우는 지인에게 얻어 피웠었다. 한 달에 두세번 정도. 그러다 다시 담배를 산 것이 지난 주였다. 배송 일을 시작한지 4주차가 되었을 때였다.<br>도로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 가끔 배송 건수가 적은 날엔 일찍 일을 마치기도 했지만, 가끔 배송 건이 아주 많은 날에는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이상 늦게 일을 마치기도 했다. 그런 날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담배를 샀던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자주 피우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 마지막 배송을 마치고 차를 사무실에 반납하기 전에 한 개비 피우는 것이 다였다. 어쩌면 조금 더 이 일에 익숙해지다보면 담배를 피우는 빈도도 더 줄어들 수 있겠지.<br>#5 운전하면서 먹는 식사<br>벌써 15년 정도 전이었다. 당시 출판사 영업자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차를 얻어 타고 몇 군데 서점들을 함께 돌았었다. 각자 차를 몰고 가면 그만큼 기름 값도 더 들고, 각자가 다 운전하느라 더 피곤하겠지만, 같은 곳들을 돌아야 하는 여러 영업자들이 한 차를 같이 타고 다니면 그만큼 서로 이득이었고, 그렇게 다니며 정보 교환도 많이 했었다.<br>친하게 지내던 친구이자 동료 영업자 한 명은 여러 지역의 행사장을 돌며 책을 파는 가판을 많이 다녔다. 그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날엔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로에서 운전하는 중에 김밥을 먹으며 다녔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며 운전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했었다.<br>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는 편이다. 오후에 배송 일을 하면서 점심을 아예 안 먹으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허기가 져서 힘을 쓰지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어디 식당에서 밥을 챙겨 먹을 여유도 없었다. 출근하면서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을 하나 사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첫번째 매장 배송 건을 다 마치고 두번째 매장으로 옮겨갈 무렵에 운전 중에 김밥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다 씹고 나면 또 다음 하나를 입에 넣는 방식으로 밥을 먹었다. 김밥만 먹으면 질려서 어떤 날엔 빵, 어떤 날엔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br>저번에 유난히 배송 건이 많아서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마지막 매장에 도착했는데, 그날따라 그 매장의 배송 건도 많았다. 해당 매장 점장님께서는 본인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해 하시며 빵 하나와 음료 하나를 챙겨주셨다.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때에도 아직 배송이 두 건이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장거리였다. 그제서야 점장님께서 주신 음료와 빵을 꺼내 먹으며 운전을 했다. 이제 배송 한 건이 남았을 때, 사무국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아직도 안 끝났느냐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다고. 괜찮다고 걱정 마시라고 하고 남은 빵을 마저 먹었다.&nbsp;<br>뭐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 마음을 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괜찮다. 일이니까. 맡은 일을 하는 거니까.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늦을 수도 있는 것이고, 배가 고프면 운전하면서 김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빵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냥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뿐이다. 다만 더 신경이 쓰이고 힘든 것은 돈을 버는 이 일 외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여러 종류의 노동들이 여전히 내게 계속 맡겨진다는 현실이다. 낮에 운전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다른 일들도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들은 돈으로 보상 받지 못하는 일들이다. 이것도 뭐 괜찮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을. 활동가의 삶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이지. 어쩌겠는가.&nbsp;<br>지금 이렇게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몸이 좀 힘들어도 꾸준히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인 것을. 이것도 괜찮다.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계속 살아야지.&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4월 15일 수요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19456</link><pubDate>Wed, 15 Apr 2026 2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219456</guid><description><![CDATA[아침<br><br>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시 뒤척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에 오늘 할 일들을 머리속으로 정리했다. 일단 오전엔 일정이 없었고, 오후엔 배송을 나가야 하고, 저녁엔 내가 주로 활동하는 조합 이사회 회의가 있었다. 원래 어제가 회의 날짜였는데, 갑자기 대부분의 이사님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남기셨고, 결국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즈음에 나도 솔직히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회의가 연기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주는 넘길 수 없다고 실무자인 사무국장이 전화를 돌렸는데, 결국 하루 뒤인 오늘로 회의 날짜가 잡혔다.<br><br>암튼 그래서 오후엔 일을 하고, 저녁엔 회의를 해야 할 상황인데, 아침은 비어 있으니 외국어 공부나 해야지 하고 한 이삼일 소홀했던 외국어 공부 앱들을 하나씩 차례로 열었다. 그렇게 서너개의 앱을 통해 외국어 서너개를 익히고 있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간밤에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잠이 쏟아지다니! 잠이 너무 심하게 와서, 좀 그만 오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잠이란 개념이 오지말라고 요청한다고 멈추는 건 아니기에, 그냥 수긍하고 알람을 맞춰놓고 조금 더 자기로 마음 먹었다. 아, 그런데 이 잠이라는 것이 너무 많이 자면 또 더 피곤해지는 것인지,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알람이 울리는데, 너무 너무 피곤함을 느꼈다. <br><br>오후<br><br>암튼 일을 안 나갈 수는 없으니, 출근을 했고 차를 몰고 배송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3월에는 내가 가야할 매장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그 순서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4월부터 매장 한 곳이 바뀌며 일이 꼬였다. 내가 기존 제일 먼저 가던 매장과 최근에 새로 가게 된 매장에 배송 주문 마감 시간이 같았다. 어디를 먼저 가더라도 늦게 방문하는 매장에서 욕을 먹는 상황이다.<br><br>처음엔 기존에 먼저 갔던 매장을 먼저 갔다. 배송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미 경험이 쌓여서 상대적으로 빨리 배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언제나 모르는 법. 가끔 생각보다 이동 거리가 길거나, 차가 막히거나 하는 변수가 생겨 이 첫 매장 배송에서 시간을 좀 지체했더니, 다음 매장에서 몇 차례 불만이 제기 되었다. 배송이 너무 늦는다는 항의가 들었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 이후로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 한동안 줄었던 전체 배송건수가 확 늘었다. 무조건 일초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언제나 변수는 생길 수 밖에 없고, 늘 쫓기는 기분으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br><br>그 이후로는 출발하면서 두 곳 매장의 배송 건수를 확인하고 매번 상황에 따라 순서를 정하고 있다. 처음엔 매장 담당 직원님과 점장님께 의견을 구했으나, 그들도 전체를 보는 정보가 없다보니 어쩔수 없었다. 암튼 이젠 매일 각 매장 배송건수를 물어보고 어디를 먼저 갈지 판단하게 되었다.<br><br><br>저녁<br><br>그날 총 배송 건수 숫자에 달라지지만, 매일 일을 마치고 나면 힘들고, 지치고, 어렵고 그렇다. 어쩌다 조금 일찍 일을 마치면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배송 건수가 줄어들면 나도 조합도 힘들어진다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배송 건수가 너무 많아서 내가 정해진 기준보다 일을 더하는 경우, 너무 늦게 일이 끝나는 경우는 좀 짜증이 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다. 삶이 이런걸. 앞으로 이런 날이 덜 생기길 바라는 수밖에.<br><br>저녁에 회의에 참석하러 가서 정말 좀 많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집중해야 회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마칠 수 있으니 더 집중했다. 이미 피곤한 상태에서 더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다. <br><br>세월호 참사 기념일 하루 전<br><br>작년 오늘 쓴 글에 세월호 참사 하루 전이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제주 4.3 사태를 비롯해 4월에 포진되어 있는 슬픈 기념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고 책임질 것인가? 참 쉽지 않은 일이고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이이다.<br><br>작년에 서재에 쓴 글에 큰 아이와의 동네 데이트 이야기가 있어서 이이들에게 그 글을 공유했다. 큰 아이는 내 글이 몰입감이 좋고, 글이 좋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여러 차례 글을 공유했어도, 글에 대한 어떤 의견은 없다.<br><br>암튼 이제 곧 시간이 15일에서 16일로 넘어갈 예정이다. 오늘 이사회 회의를 했어도 일부러 뒤풀이를 가지는 않았는데, 일단 너무 힘들고 피곤했고, 둘째로 낮에 너무 더워서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집을 나섰는데, 해가 지고 나니 기온이 확 떨어져 너무 추워졌다. 물론 알고 있다. 이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뭐든 하나를 더 입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엔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br><br>내일은 꼭 바람막이 잠바 하나 꼭 챙겨야지. 12시가 넘어 날이 바뀌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자야겠다. 내일도 참 길고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br><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