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가보지 못한 길 (감은빛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읽기란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책 읽기란 가보지 못한 또다른 길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9 Oct 2026 13:04:59 +0900</lastBuildDate><image><title>감은빛</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163018338758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감은빛</description></image><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만약에 라는 질문은 언제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552543</link><pubDate>Sat, 03 Oct 2026 18: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552543</guid><description><![CDATA[<br>어떤 글을 쓸 때마다 그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그저 가볍게 두드리는 별 것 아닌 글 하나라고 해도 그렇다. 중국 영화 [먼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영화 [만약에 우리]에 대한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라고 고민을 해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다시 생각해보면 꼭 해야 할 말이 그리 많지도 않은 묘한 영화였다. 어찌보면 원작에 충실한 영화이고, 한국 상황에 맞게 잘 만든 영화이기도 했다. 중국 원작과 달리 전형적인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걸 지난 번 글에 "세속적이고, 적당히 후려치고, 적당히 뭉개고, 적당히 빠져나가는" 이라고 표현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표현은 좀 많이 과했다. 내용은 익숙한데 전혀 같은 영화 같지 않고, 한국식으로 잘 바꿨다는 점은 리메이크를 잘 했다고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원작의 그 처연하고 아련한 느낌을 이 영화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다. 그 지점에서 나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영화라고 본다.<br>류뤄잉 감독의 영화 [먼훗날 우리]에 대한 글 "만약에 라는 잔인하고 부질없는 상상" 읽으러 가기:&nbsp;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0415<br><br>[먼훗날 우리]를 보고 쓴 글의 제목을 "만약에 라는 잔인하고 부질없는 상상" 이라고 썼었더라. 그런데 이 글도 똑같은 제목을 붙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만약에' 라는 상상은 잔인하고 부질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같은 제목을 다시 쓸 수는 없어서 조금 바꿨다.&nbsp;<br>원작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린젠칭도 그리고 이 영화에서 구교환이 연기한 이은호도 모두 현재 시점에서 팡샤오샤오와 한정원을 향해 만약에 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샤오샤오도 정원도 아니라고 답한다. 원작에서는 이 부분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렸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면서 계속 내 젊은 시절 실패한 사랑의 기억을 떠올렸었다. 이 장면 덕분에 너무 감정적으로 흔들려 이런 저런 글들을 메모장에 잔뜩 적어 놓았었다. 이 영화에서는 이 장면에서 그렇게 슬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여전히 이 만약에 라는 질문이 가진 특유의 성질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이어지는 두 남녀 주인공의 연기는 그 이상 더 감정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처음에 한번 보았을 때는 그걸 두 배우의 연기 탓으로 돌렸다. 확실히 한정원 역의 문가영의 연기는 뭔가 조금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구교환의 연기는 언제나처럼 괜찮았지만, 문가영 과의 합이 잘 맞는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건 원작의 저우동위와 징보란의 연기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잘 어울린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암튼 처음에는 연기 때문에 그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감정을 잘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이 장면을 다시 찬찬히 돌려보고, 그리고 원작의 해당 장면을 다시 찾아본 후로 생각을 바꿨다. 이 우리나라 영화가 원작의 내용들을 충실히 잘 따라가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 미묘하게 감정선이 다른데, 이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원작에서 두 사람은 훨씬 더 진지하고 절박한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화면의 구성이나 풍경도 원작 쪽이 훨씬 더 스산하고 쓸쓸했다.&nbsp;<br>그리고 이건 두 남녀 주인공의 성격과 현재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작의 린젠칭과 한국영화의 이은호는 둘 모두 직접 만든 게임이 잘 풀려서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상태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격은 좀 다르다.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잘 몰라서 린젠칭이 얼마나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은호는 정말 전형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 주인공은 훨씬 더 많이 다르다. 샤오샤오는 예측하기 어려운 통통 튀는 매력이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속이 깊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에 비해 한정원은 현실적인 인물인 점만 보이고 다른 매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정원은 건축가가 되어서 은호에게 명함을 내민다. 하지만 현재 시점의 샤오샤오는 여전히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하게 직업을 밝히지도 않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지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옷차림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나고 젠칭이 데려다 준 집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정원은 그렇지 않다. 옷차림도 세련되었고, 자신이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직접 말하기도 한다. 이런 설정의 차이가 그 결정적인 장면에서의 감정선을 다르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br>두 영화의 해당 장면을 몇 번씩 돌려보다가 처음 원작을 봤을 때는 캐치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샤오샤오가 마치 젠칭의 내연녀 처럼 보일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샤오샤오가 젠칭의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면서 두 사람이 렌터카를 빌려서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후에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었다. 젠칭은 자신의 성공이 샤오샤오 덕분이었음을 밝히며 샤오샤오에게 '최우수 전 여친상'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샤오샤오는 그 말에 크게 웃으며 언제나 자신의 전 남친들은 모두 성공했다고 말한다. 영화의 내용으로 보면 젠칭의 성공은 확실히 샤오샤오 덕분이다. 그리고 샤오샤오는 그 전 연애에서도 불행했고, 젠칭과도 결국 행복하지 못했고, 이후로 10년 동안의 연애 역시 순탄치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어쨌든 '최우수 전 여친상' 이라니! 이런 개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재미있기도 하면서 단번에 샤오샤오를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br>원작이 전체적으로 훨씬 더 절박하게 여러 상황들을 보여준다면, 한국 영화에서는 매번 그 절박함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샤오샤오와 젠칭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젠칭은 베이징에서 집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그걸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나온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남성을 만나 그 꿈을 이루려고 한다. 절박하다. 왜냐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베이징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원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없다. 정원은 보육원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고시원에 잘 살고 있다. 고시원과 잘 살고 있다는 말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암튼 샤오샤오 만큼의 절박함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는 정원이 은호의 방에 들어가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샤오샤오는 아예 자신의 방을 빼고 남자친구와 동거하다가 남자친구와 갑자기 헤어지면서 갈 곳이 없어서 젠칭을 찾아간다. 하지만 정원은 남자친구와 헤어졌지만, 고시원에 방은 남아 있었다. 다만 그 방에 겨우 한 뼘도 안되는 햇빛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은호를 찾아와 동거를 시작한다. 저번 글에서도 이런 설정이 현실적이지 않고 남성 판타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썼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남녀가 유별한 상황에서 그렇게 손쉽게 여성이 남자 혼자 사는 작은 방에 들어갈 수 있나?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도? 이번 영화에서 정원은 좀 더 어이가 없었다. 샤오샤오는 정말 잘 곳이 없었지만, 정원은 여전히 고시원이 있었다. 그런데 햇볕을 이유로 사귀지도 않는 남자 방에 들어간다고? 이게 현실에서 설득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br>그리고 젠칭의 방은 정말 좁다. 도데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잘 알기 어렵게 복잡하게 작은 방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집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살고 있었다. 정말 당시에 아니 심지어 지금도 베이징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은호의 방은 넓고 쾌적하다. 책상과 침대 외에도 공간이 넓다. 고향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서울에 그렇게 괜찮은 방을 제공해 줄 수 있나? 아무리 2008년 이었다고 해도 저 정도 방이면 월세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 물론 언덕길에 계단을 빙빙 돌아 올라가는 장면으로 보아 교통이 편리한 좋은 동네는 아니고, 방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닌 것은 맞다. 다만 젠칭에 비하면 은호가 덜 절박하게 보인다는 것. 그러니까 한국 영화는 여러 모로 계속 평이하고 무난한 느낌을 받는다.&nbsp;<br>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대는 춘절이다. 류뤄잉 감독이 자신의 소설 [춘절 귀가]라는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 시작하는 장면도 춘절에 고향인 야오장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마지막은 춘절 연휴가 끝나는 무렵 고향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둘이 처음으로 육체 관계를 맺는 것은 양력 1월 1일 새해이기는 하지만, 계절로는 겨울이다. 그러니까 흔히 연말연시라고 부르는 시기에서 음력 설인 춘절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간대로 계속 반복된다. 한국 영화에서는 여름이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나는 시기가 여름 휴가 시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현재 시점인 2024년 여름에 베트남 호치민에서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작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바꾼 것이다. 이 선택은 꽤나 괜찮은 것 같다. 흑백으로 시작하는 현재 시점의 꽤나 세련된 정장을 입은 정원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관객들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원작처럼 과거는 컬러 화면으로, 현재는 흑백 화면으로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의 현재 시점 장면은 원작에 비해서는 분량이 제법 줄어들었다.&nbsp;<br>과거 상황의 첫 장면은 버스 정류장이다. 원작에서 열차 풍경이 독특하고 좋았는데, 버스 장면은 좀 너무 뻔한 느낌이었다. 저 위에 링크를 걸어 놓은, 원작을 보고 쓴 글에서 과거 서울로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상황을 길게 썼었다. 설연휴에 였고 폭설이 내려 버스를 17시간이나 탔었다. 하필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옆 자리(창가 자리)에 앉아 있어서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었던 기억이었다. 이 영화에서 은호와 정원이 서울에서 고흥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하필 서로 옆 자리였다. 은호는 자신의 자리였던 창가 자리를 엉겁결에 정원에게 양보하는데, 이 부분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한 눈에 호감을 갖게 된 여성이라고 해도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저렇게 손쉽게 양보를 할까? 은호가 정원을 처음 보는 장면에서 정원은 빨간 우산을 펼쳐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빨간 우산을 보고 나도 모르게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쩌면 문가영의 표정이 마츠 다카코와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nbsp;<br>이 영화는 과거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과 현재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나머지 주요 내용들은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육체 관계를 맺는 것도 남자친구의 외도를 깨닫고 12월 말일에서 1월 1일 새해로 넘어가는 밤 술을 진탕 마시고 놀다가 눈이 맞은 것으로 똑같다. 현재 시점에서 두 사람이 호텔 방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남성이 딸의 전화를 받고 영상통화를 방안 곳곳을 보여주는 장면도 똑같다. 과거 시점의 마지막, 여성이 남성을 떠나는 장면, 남성이 여성을 따라갔다가 전철을 따라 타지 않고 결국 헤어지는 장면도 똑같다.<br>원작에서 훨씬 큰 비중을 가졌던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이 이 영화에서 많이 축소된 점은 좀 아쉽다. 원작이 춘절이라는 시간 배경에서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 즉 연로한 아버지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고 여자 주인공도 아주 잘 따르는 것으로, 그러니까 젠칭과의 사랑과는 별개로 젠칭의 아버지와의 인간관계라 형성되었던 것에 비해 이 영화의 정원은 은호의 아버지와 그 정도로 교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읽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의 감동을 가져오려면 그 감동으로 연결해 줄 두 사람의 이야기도 따라서 만들었어야 했다.<br>음, 이래저래 주저리 주저리 영황에 대해 많이 떠들었다. 리메이크로서 나쁘지 않았다. 꽤나 괜찮은 지점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를 원작이 훨씬 더 잘 살린 것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즉, 계속 원작과 비교하다 보니 더 아쉬웠던 것이다. 비교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나았으리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여러가지 아쉬움 중에서도 한정원 역의 배우 문가영에게 아쉬움도 있다. 저우동위와 비교해 연기와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아쉬웠다.&nbsp;<br>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영화를 두 번 보고 몇몇 장면들은 더 많이 돌려봤다. 그리고 원작을 다시 한 번 봤다. 쭉 이어서 보지는 않았고, 중간에 조금씩 건너 뛰면서 보기는 했지만, 저 위에서 강조했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여러차례 돌려서 보고 또 보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 영화 덕분에 원작의 해당 장면을 다시 본 것이 가장 좋았다.<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3/pimg_63926646801783974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552543</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그 시절 우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548290</link><pubDate>Thu, 01 Oct 2026 05: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54829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137908&TPaperId=175482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3/29/coveroff/k6421379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039620&TPaperId=175482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27/50/coveroff/k98203962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사랑, 인연, 그리고 첫사랑<br>지난 주에 했던 SF모임은 역대 최고의 흥행을 이뤘다. 일단 3개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참석자 수가 많지 않았던 경험을 극복하고 현재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이 모두 다 참여했다는 점이 중요하고(그래봐야 몇 명 되지도 않지만 ㅠㅠ) 그 다음으로 참석자 대부분이 이 책이 참 좋았다는 것을 고백하듯 이야기를 나눈 점이 정말 좋았다. 한동안 소원했던 이 모임을 다시 활성화 시키고자 내가 제안한 방법, 미리 공유 문서에 나누고 싶은 주제와 내용을 간단히 적어 달라고 한 것이 꽤 괜찮은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중에 기록으로 남아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br>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오늘 하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다. 나는 책 모임에서 주제나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쓰는 부분이 바로 연결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소설을 읽고 떠오르는 혹은 연상 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소설이던, 만화나 웹툰이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던 상관없이 그로 인해 확장해서 다른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정말 재미있다고 여기고 또 중요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꽤 재밌게 읽었던 이 책의 두 번째 단편소설 [우리를 아십니까]를 두고 연결되는 작품들을 생각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것이 딱 없었다. 조금 더 고민하거나 조금 더 확장하면 연결되는 작품들이 없을 수 없지만, 그 당시엔 나도 여유가 없어서 조금 고민하다 그만 비워두고 다음 단편으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모임을 앞둔 시점에 뭐라도 하나는 적어야 할텐데, 계속 생각나는 작품들이 조금씩 애매하다는 생각에 고민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이렇게 순수한 사랑, 게다가 작중 두 사람은 첫사랑이었을텐데, 첫사랑을 그려낸 작품은 생각보다 많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순간 번뜩하고 뭔가를 떠올렸다. 바로 내 첫사랑. 그 달콤하고도 쓰린 기억을 담았던 단편 소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1996년으로 가야 한다. 학생회 활동과 학회 활동과 동아리 활동 그리고 짝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감정 때문에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던 시절. 대학교 2학년은 사실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시기였음에도 외부에서 끊임없이 많은 것을 요구 받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욕심이 많았던 나는 빨갱이 운동권으로서 학생운동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학회와 동아리 활동도 하느라 정말 너무 바쁜 시간을 보냈고, 그 와중에도 너무 좋아했던 여성에 대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물론 곧 군대를 갈 에정이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라는 생각으로 거의 자포자기와 가까운 마음이기는 했다. 그런 와중에 동아리 후배 하나가 본인이 동아리를 잘 지키고 있을테니, 군대에 잘 다녀오라는 얘길 하면서 자신이 동아리 소식지를&nbsp;만들테니, 나에게 단편 소설 하나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고, 입대를 위해 부산을 떠나는 바로 전날까지 단편소설을 하나 썼다.<br>그 시절엔 피씨도 타자기도 없어서 나는 공책에 손으로 직접 글을 써서 소설을 적었었다. 나는 꽤 유명한 악필이라 이 글씨를 과연 누가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다만, 그 후배도 나 못지않은 악필이라 생각해서 그 녀석은 알아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대를 앞두고 소설을 써나갔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자세히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이 첫사랑은 묘하게도 신경숙 소설가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의 제목과 형식을 신경숙의 소설들에서 차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창작이라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들고 어렵다. 그 당시에도 그랬다. 나는 생전 처음 군대를 가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더 많이 흔들렸고, 당시 짝사랑했던 여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많이 괴로웠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도 더딜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약속은 했으니, 지켜야 하는 법. 나는 입대하기 바로 전 날 이 소설을 완성했고 두꺼운 공책 한 권을 후배에게 넘기고 열차에 올랐다.<br>나중에 한참 나중에 들은 소식은 그 후배가 결국은 제대로 동아리를 운영하지 못하고 잠수를 타버렸고, 준비했던 소식지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는 거였다. 뭐, 세상에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일이 뭐가 있을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그렇게 완전히 포기하고 있던 어느 시점에 휴가를 나와서 한참 후배들과 만났을 때 묘한 상황을 겪었다. 그때 나는 아마 상병 말호봉 정도, 곧 병장이 될 것이고, 병장이 되고 나면 조금만 더 버티면 제대할 수 있는 시기였다. 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고, 군생활 자체를 경멸하면서도 이왕이면 잘 해야 한다는 어찌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본능 때문에 포상휴가도 제법 받았었는데, 그 날도 포상 휴가를 나왔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동아리 선후배들 자리에 낄 수 있었고 별 말 없이 시간을 지나고 있었는데, 내 이름을 물어본 한 후배가 깜짝 놀라며 자기 옆 친구에세 호들갑을 떨며 내 이름을 강조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다. 동아리를 책임지고 소식지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쳤던 후배 녀석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적해 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주고 갔던 그 공책을 두 세명의 여성 후배들에게 던져 주고 타자를 쳐서 문서 파일로 만들라고 지시 했었다고, 그리고 그 지시를 받아서 순진하게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를 억지로 타이핑 했던 사람들이 바로 내가 만났던 후배들이었다. 그런데 그 후배들의 반응이 좀 심상치 않았다. 내 소설은 첫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것인데 당연히 100퍼센트 경험은 아니고 허구의 이야기이다. 아직 어렸던 여성 후배들은 내 소설을 소설이 아닌 에세이 처럼 받아들였고, 나를 마치 비련의 주인공처럼 대하며 자신들이 내 소설을 열심히 타이핑 했다는 것을 알려줬다.<br>입대하기 바로 전 날까지 공책에 써서 넘겼던 소설이었기에 나에게 복사본은 없었다. 다만 정말 긴 시간 고심해서 썼기에 전반적인 내용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우연히 만난 후배들이 자신들이 타이핑한 문서, 결국 소식지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문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첫 사랑의 기억을 소설로 남긴 운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 소설의 작품성이나 내용은 절대로 다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지만.<br>암튼, 나는 그 두번째 단편에서 연결되는 작품을 내가 썼던 단편 소설을 언급했다. 그때는 시간에 쫓겨서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썼고,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 읽은 이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단편 소설이기는 하니까 그게 뭔 문제야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모임에서 내가 이 이야기를 전하자 모임 구성원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 소설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하던가. 아무도 모르는 소설을 제목과 내용만 던지고 그렇다고 하면 누가 납득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이건 내가 쓰긴 했지만, 발행된 적이 없는 어쩌면 그럴 가치조차 없는 글이었기에 언급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암튼 나는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글을 썼는지, 입대를 앞둔 어린 청년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는지를 전달하며 달랬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그리고 며칠 시간이 지나서 꿈을 꾸었다. 저번에 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여러 상황에 처한 꿈을 꾸었지만 반대 성별인 여성이 되어 보는 꿈을 꾼 적은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을 썼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글을 쓰고 며칠 후에 거짓말처럼 여성으로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좀 신기했다. 꿈에서 나는 꽤나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현실의 나는 외모로는 정말 볼품없는 늙은 남성일 뿐인데, 꿈 속의 나는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를 좋아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꿈도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어서 꿈 속에서의 내 삶도 그리 평탄치 않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 꿈은 확실히 신기했다. 꿈을 한창 꾸는 과정에 중간에 깨달았는데, 내가 여성이 되었구나. 내가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이게 꿈이라고 깨달은 시점이었고, 이후로는 그 전과 달리 좀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상황이었다. 아, 내가 여성이 되었구나 하는 순간 그게 꿈이란 걸 깨달은 것이고, 그게 꿈에서 깨어나는 흐름으로 넘어갈 확률을 높인 것이다.<br>그리고 며칠 후에는 대학 시절 꽤 긴 시간 짝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꿈을 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너무나도 소심해서 아주 오래 좋아하고도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꿈 속의 나는 너무 대담하게 그 시절 그 여성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꿈이구나. 현실은 절대 그랬을 리 없으니. 그리고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너무나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결말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 여성은 나를 거절했고,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져 삶을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없었다. 비록 꿈 속의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멍청하고 바보같은 일이 아닌가. 나 같은 인간을 누가 어찌 좋아할 거라고 그렇게 바보처럼 고백을 한 단 말인가. 제발!&nbsp;<br>딱 그 시점에서 꿈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샤워를 하며 꿈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정말 긴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떠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한 편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설레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30년 전 일이다. 이미 나는 이렇게 늙어버렸다.<br>그 시절 우리<br>원래는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건데, 이건 다음에 써야겠다. 올해 2월 4일 나는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 라는 작품에 대한 글을 썼었다. 내 소중한 이웃 잉크냄새님께서 소개해 주신&nbsp;[後來]&nbsp;라는 노래 덕분에 알게 된 류뤄잉 감독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실제로 본 것은 25년 연말이었다. 아주 좋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에 두 번을 더 보고 류뤄잉의 노래를 수백번 들으며 곱씹고 또 곱씹어 쓴 글이었다.<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그리고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 리메이크 영화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아니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원작 영화가 꽤나 좋았기 때문에 리메이크 작을 보고 다시 꼭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영화를 봤는데 실망이 컸다. 어쩌면 기대가 큰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원작인 중국영화를 꽤나 좋아했으니까. 한국 영화는 정말 너무나도 그냥 한국 영화였다. 세속적이고, 적당히 후려치고, 적당히 뭉개고, 적당히 빠져나가는. 너무나도 젼형적인 한국 영화였다. 원작의 감흥이나 감동은 많이 사라졌다. 다만 그렇다고 이야기 자체의 감동이나 감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식으로 포장된 이야기는 중국 이야기 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나는 해당 이야기의 주인공 세대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많기 때문에 곧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들이 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시절의 그런 감성들을 잘 살려냈다고 본다.<br>SF 모임에서 읽었던 책 이야기와 [먼 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로 글을 쓸 생각이다. 다만 오늘은 그냥 그냥 그냥 멍하니 자판을 두드려 본다. 생각의 끝에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첫 사랑의 그 분을 꿈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쁜 현실에서 내가 늘 놓치는 어떤 것들을 꿈에서라도 챙겨 가기를.<br>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27/50/cover150/k9820396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275059</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가을이 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506901</link><pubDate>Thu, 10 Sep 2026 1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50690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838128&TPaperId=17506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60/1/coveroff/k58283812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02011&TPaperId=17506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4/85/coveroff/899140201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춤을 추고 싶지는 않지만......<br>한때는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많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여하는 단체나 단위에서 책 모임이 있다면, 혹은 새로 생긴다면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일부러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해 보다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생명 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심으로 모인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한 독서모임이 하나 있었다. 내가 그 모임에 참여했던 시절에는 전성기는 지난 후여서 얘기를 들었던 정도로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고, 예상했던 정도의 적극적인 활동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그 모임에는 꼭 참여하고 싶었었다. 만약 일정이 안 맞으면 늦더라도 꼭 뒤풀이는 가고 싶었었다. 그만큼 그 모임 참가자들이 정말 좋았었다.&nbsp;<br>독서모임을 거의 나가지 않게 된 건 녹색당을 탈당하면서였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는 만독(만만한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매번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녹색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는 반민주적인 만행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한 후로 우리 지역에서 함께 활발하게 활동했던 당원들 20여명은 다같이 탈당했다. 그리고 만독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 우리가 탈당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활동은 이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만독도 유지하고 싶었으나, 모임을 주도하셨던 분들은 의욕을 잃었던 것 같았다.<br>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독서모임이 많았던 시절에는 읽어야 할 책들과 바쁜 일정 중에 억지로 모임에 참여할 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는데, 막상 참여할 독서모임이 없어지고 나니 많이 허전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 몇 분들께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다들 좋다고는 했지만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첫 모임이 이뤄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면서 또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러다 예전에 만독을 주도하셨던 선배 한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분이 최근(그러니까 그 당시에) SF를 읽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의외였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는 분이시지만, 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 책들을 읽으셨고, 문학 쪽은 그리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 분이 SF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같이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역시 그 선배님이 움직이니 드디어 첫 모임이 만들어졌다. 막상 모이고 나니 아주 중요하지는 않지만, 꼭 짚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 소모임을 어느 단위에 속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다들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들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인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든 이들이 최우선 순위로 활동하는 단위가 달랐다. 이런 문제는 의외로 사람 마음을 건드려 불화의 씨를 퍼뜨릴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연합 소모임으로 만들자고. 그래서 모인 사람들 다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세 단위(협동조합 두 곳과 지역정당 한 곳)가 연합해서 만든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br>처음 몇 번의 모임은 정말 좋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녹색당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자주 만나고 함께 고생했었지만, 탈당 이후로 몇 년 동안은 그만큼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모두 정말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그 애정과 관심이 식을 수 밖에 없는 법. 늘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이 모임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번 빠졌는데, 그날 이후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첫 모임을 만든 구심점이 되어 주셨던 선배가 갑자기 "이젠 SF에 관심이 없어졌어." 라는 이유로 모임에 안 나오셨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 바빴던 구성원들은 각자의 바쁨을 이유로 모임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모임 날짜를 잡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br>나 역시 계속 바빴기 때문에 한동안 이 모임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나는 주로 추리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SF 소설을 떠올리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날 다시 SF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다들 "그래. 모여야지. 모이면 너무 좋지." 라고 말을 했지만, 일정 정하는 것이 늘 숙제였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일단 투표창을 띄워서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날짜를 정하자. 일단 다시 모이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굴러갈 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SF 모임은 꽤 성공적이었다. 세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게 소수의 참가자들만 남았지만, 새로운 참가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뭐든 저절로 잘 굴러가는 일은 없다. 누군가 시간과 노력을 부어야 굴러갈 수 있다. 어렵게 다시 모인 이 모임이 다시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리라 마음 먹었다.<br>사실 나는 SF 라는 장르를 한참 늦게 만났다. 아마 제일 먼저 접한 작가는 필립 케이 딕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아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SF 라는 장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 계기는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라는 책을 읽은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시 운동가로서 내가 가진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를 확인했고,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내 태도와 자세가 너무 경직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SF 라는 장르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소중한 SF 읽기 모임이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br>이 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이 책을 냈던 메이데이 출판사에 영업 담당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메이데이 출판사의 영업 업무 일부를 도와주기도 했었다.<br><br> <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SF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저번에 읽고 짧은 글을 쓰기도 했던 이 책 [모두를 파괴할 힘]에서는 차별에 맞선 전세계적 규모의 혁명이 일어난다. 그 혁명은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해방구가 된 도시에 모인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혁명을 즐겼다. 그래서 다시 저 책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가 생각났다.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책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이 집에서의 기억이 아니었던가? 이사 오기 전의 집이었나?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오고 난 후에는 내 취향대로 책 정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찾아볼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 주말에 짬이 나면 다시 찾아봐야지.<br>암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혁명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혁명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그 혁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몸치라서 춤을 추지는 않겠지만, 노래라면 함께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함께 할 수 있겠지. 모든 차별을 무너뜨리고 모든 억압을 깨부수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덕분에 아주 짧은 시간 기분은 좋았다.<br>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8월 말에는 가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갑자기 훅 가을이 와버렸다. 이젠 반팔과 반바지가 안 어울리려나. 다시 긴팔, 긴바지 입는 것이 너무 어색한데 말이야.<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4/85/cover150/89914020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4850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의 수혜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90204</link><pubDate>Wed, 02 Sep 2026 22: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90204</guid><description><![CDATA[피로<br>이번 주는 시작부터 너무 힘들었다. 낮에 배송할 때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가끔 미친듯이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짧은 순간에 옷이 다 젖어 버려 당황스럽기도 했다. 짐을 옮길 때에는 우산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몇 번은 우비를 입고 일하기도 했는데, 우비를 입고 운전석에 앉으면 운전석이 다 젖어 버려서 내리고 탈 때마다 매번 우비를 입고 벗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번거로워서 나중에는 그냥 비를 맞고 일하고 있다. 암튼 이틀 동안 비를 맞아가며 일을 했고, 하필 그 기간에 매장 한 곳의 할인 행사가 있어서 배송 건수도 많았고, 물량도 많았다. 이런 할인 행사를 할 때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이상 빌라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무거운 물건들 주문이 제법 들어온다. 배송 주문을 하시는 조합원들 중 고령인 분들이 많고, 본인이 무거운 상자들을 옮기기 어렵기 때문에 배송 주문을 하는 심리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한번에 옮겨야 할 상자들이 너무 많고, 너무 무거우면 나도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상자 하나만 다음에 주문했어도 좋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nbsp;<br>아마 7월 중순부터 약 1달 반 이상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폭염과 열대야의 영향이 크다. 내가 일하는 오후 시간에는 폭염 때문에 땀을 많이 흘릴 수 밖에 없고, 열대야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피로를 회복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친구들 집을 떠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매일 그럴 수는 또 없었기도 했고,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고 해도 남의 집을 떠돌아다니는 일이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니기도 해서 결과적으로는 피로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 밤에 조금 기온이 떨어져서 집에서 잘 수는 있지만, 이 낡은 빌라는 여전히 밤에도 덥다. 최근 몇 년을 생각해보면 9월 말까지는 그럴 것 같다.<br>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의 수혜자는 누구?<br>오랜만에 최신 에너지 뉴스와 자료들을 좀 찾으려고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지금 페이스북은 온통 용혜인 이야기 밖에 없었다. 이 정치인이 2차례나 위성정당에 참여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던 사실이고, 이렇게 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이 스스로를 진보정치인으로고 내세우는 꼴이 너무 보기 싫어서 그 이름을 듣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이번에 장관 후보를 수락하면서도 의원직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데, 그야말로 기름을 덮어쓰고 불에 뛰어든 꼴이다. 내가 이 인간을 과소평가 했구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이었구나. 그 정도가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nbsp;<br>용혜인에 대한 다양한 비판 중에 과거 언더 조직에서 있었던 활동들을 들춰내는 부분들도 있었다. 사실 운동판에 몸 담은 사람들이라면 기본소득당 이라는 정당 자쳬가 어떤 언더 조직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일종의 가면 같은 거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 거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당을 대표해 두 차례나 위성정당에 파견 나가서 국회의원이라는 엄청난 과실을 따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언더 조직에서 엄청난 위치에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nbsp;<br>민주당이라는 보수 정당의 하수인을 자처해 국회의원이라는 더러운 과실을 챙긴 기본소득당과 진보당에 대해서 절대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용혜인 개인과 당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듯 일을 벌리는 상황은 정말 놀랍다. 그야말로 전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br>오늘 소위 말하는 진보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공동 성명을 냈다. 그 성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장관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는 요구사항을 적어놓았더라. 이걸 읽고 의문이 들었다. 이게 지금 대통령에게 요구할 사안인가? 지금 철회할 거라면 애초에 후보로 올리지 않았겠지. 사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위성장당이라는 편법의 최대 수혜자는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인 것 같지만, 아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민주당이며, 이재명이라는 인간이다. 이재명은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을 하수인으로 부려 먹으면서 지금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간이다. 용혜인을 어울리지도 않는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로 올린 것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향후 기본소득당을 더 충성스러운 하수인으로 부려 먹기 위해서다. 그런데 무슨 대통령에게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단 말인가? 애초에 녹색당 역시 과거에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려고 시도했다가 민주당의 외면을 받아 결국 의석을 얻지 못한 정당이다. 결과적으로 위성정당에 들어가는 것조차 실패했지만, 그들은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고 공식적인 결정을 내렸던 집단이다.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br>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br>우연히 박권일 씨의 페북을 봤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다. "페친께서 "진보진영의 리트머스 시험지는 '박원순', '조국', '위성정당'"이라 하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뢰도 99.99% 수준의 시험지임." 이 말을 읽자마자 정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컨 한때 존경했던 박래군 선배가 용혜인을 감싸고 도는 어이없는 글을 올린 것을 보며, 이 사람도 이젠 진보라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위성정당으로 인한 논란은 긴 시간 다양한 곳에서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참여 건으로 벌어진 논쟁이었다. 결국 표결을 통해 위성정당에 참여한 두 정당이 자유롭게 참여하게 되면서 운동 진영 안에서도 위성정당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nbsp;<br>위성정당은 분명한 잘못이며, 해당 잘못을 저지른 정당과 인물에 대해서는 명확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로 흘러왔고, 그 결과가 이번 용혜인 사태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슈가 없어서 잠잠하지만, 여전히 고 박원순 씨를 옹호하는 인간들, 조국 씨를 옹호하는 인간들이 진보라고 자처하는 꼴을 볼 수 있다. 만약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진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걸린거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차별에 맞선 혁명의 최후 - [모두를 파괴할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80544</link><pubDate>Sun, 30 Aug 2026 14: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805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838128&TPaperId=174805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60/1/coveroff/k5828381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838128&TPaperId=174805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두를 파괴할 힘</a><br/>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07월<br/></td></tr></table><br/>지난 번에 읽었던 [테세우스의 배]를 쓴 이경희 작가의 소설이다. 혹시 그 작품과 연결되는 것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읽다보니 익숙한 이름이 하나 나왔다. 바로 ‘트라이 플래닛‘ 이라는 대기업. 저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석진환이 회장 자리에 앉아있는 군수산업으로 성장한 엄청난 대기업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그 영향력이 막강한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몇차례 이름이 언급될 뿐, 핵심 이야기에 얽혀있지는 않았다.<br><br>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맨 뒤쪽 작가의 말 바로 앞에 있는 짧은 부록 ‘데비안트 능력에 대해‘ 부분을 잘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맨 앞에 나와있는 등장인물 페이지도. 책을 읽을 때마다 오랜 습관 때문에 앞, 뒤 양 표지와 책 날개 그리고 판권 면을 가장 먼저 읽은 후, 맨 뒤쪽 작가의 말 혹은 옮긴이 후기, 추천사나 해설 등을 먼저 읽는 편이다. 이번 작가의 말에는 그 맨 앞에 굵은 글씨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경고가 있었다. ˝세상에는 책을 펼치자마자 맨뒤로 달려와 후기부터 읽어대는 폭주족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경고. 이 경고에서 멈추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 책을 다 읽고 이 후기로 돌아오라는 얘기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폭주족 같은 부류라고 지칭한 것이 흥미롭다. 이렇게 후기를 먼저 읽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스포일러 경고와 같은 효과일 것이다. 나는 스포일러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소설도 영화도. 그래서 언젠가부터 맨 앞에 스포일러 경고를 적는 것이 유행하는 상황이 좀 우스웠다. 원래 어떤 이야기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내용을 다룰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게 소설이던 영화던 그걸 쓰는 건 당연히 내용 중 일부를 드러내는 행위다. 당연한 걸 굳이 빨간 글씨로 그리고 굵은 글씨로 경고까지 해야하나?<br><br>다시 강조하지만,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꼭 사전에 복잡하기만 한 ‘데비안트‘ 라는 존재와 그들의 기이한 능력들을 꼭 제대로 숙지해야 한다. 점퍼, 텔레파스, 키넨시스, 보이안트 라는 네 가지 초능력을 지닌 데비안트의 유형과 그 각각의 유형이 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간단히 소개한 내용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다.<br><br>일단 데비안트 라는 용어부터 낯설고 입에 붙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와 비슷한 느낌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설명에도 뮤턴트 혹은 코리안 프릭 등 멸칭 대신 사용하는 공식명칭이라고 나와있다. 주로 2020년대 한국을 중심으로 많이 발현되었다고 했다. 이런 설정은 이 소설보다 더 이후에 출간한 [SF 보다 vol.2 벽]에 실린 첫 단편 소설 [아레나]의 설정과 거의 비슷하다. 듀나의 아레나에서도 주로 한국에서만 초능력자들이 나타난다는 설정이었다. 이경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듀나의 소설 두 개를 언급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둘을 읽어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설정도 영향을 받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br><br>맨 처음 엑스맨 1편을 보았을 때 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를 잘 드러낸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영화에도 나오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에 대한 억압, 일본 제국이 저지른 조선인에 대한 억압 등. 이 이야기에서도 데비안트 능력이 발현되는 청소년들은 수용소 같은 곳에 갇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나는 소록도를 떠올렸다. 일제가 한센인들을 격리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지옥. 최근 거의 모든 이슈를 삼켜버렸던 하영이라는 여배우가 자랑스럽게 언급했던 그 소록도. 그리고 예전에 소록도에서 읽었던 당시 학생들의 시집들과 일기들을 통해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소설의 초반에 주인공 화경이가 갇혀 지냈던 그 수용소 같은 학교 생활을 읽으며 소록도의 희생자들이 떠올라 괴로웠다.<br><br>엑스맨도 그렇고 이 소설도 평범한 인간과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가 나타난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 차별의 문제까지 연결한다. 성별, 인종, 성 정체성, 장애 여부, 종교, 신념, 이념 등등. 등장인물들 중 일부는 데비안드이자 성 소수자이며 흑인이었다. 주인공 일행 다수는 여성이자 데비안트였다. 데비안트이지만 장애를 가진 인물들도 나온다. 이 사회에서 특정 개인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차별의 굴레에 처해있음을 잘 드러내는 지점이다. 예컨대 나는 중년 남성으로 사회적으로 절대 약자로 볼 수 없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방 출신이라는 차별을 당해왔고, 경제적 가난이라는 구조적 차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br><br>엑스맨이 아주 다양한 초능력들을 보여주는 반면, 여기서는 네 가지 범주로 묶이는 한정적인 능력들이 발현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단 점프. 이건 아마도 영화 [점퍼]에서 개념을 가져온 것 같다. 순간이동이나 텔레포트 라는 단어 대신 점프 라는 단어를 쓴 것 부터 그렇고, 작중 점퍼들이 활약하는 모습들도 이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음은 키넨시스. 부록의 설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 능력은 염력 혹은 염동력이라 부를만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에 언급된 영화 [푸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능력인 것 같다. 키넨시스의 다양한 능력들 중에 스윙은 스파이더맨에게서 따왔음을 암시해놓았다. 그리고 파이어스타터 라는 개념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중 등장인물인 리웨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비밀스러운 인물이라 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보이안트는 천리안 능력과 투시 능력이 결합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일 난해한 능력이 텔레파스다. 부록의 설명도 난해하고 모호하며, 작중 등장하는 주요 텔레파스들의 능력도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 이야기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능력이다.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인 세 명의 여성이 모두 이 비밀스러운 능력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다른 작품들에서 접했던 텔레파시 능력은 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한 사람 혹은 여러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에 머물렀다면, 이 작품의 텔레파스는 다수의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는 허브 능력과 상대와 심리적 매듭을 묶는다는 바인드 능력 그리고 상대의 기억을 읽고 지우는 능력 등이 있고 심지어 상대를 조종하기도 한다. 이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데비안트는 모두 텔레파스로 묘사된다. 제1차 텔레파스 전쟁의 팔레스타인 쌍둥이와 제2차 텔레파스 전쟁의 홍콩 출신 아이리스 쳉이 모두 아주 강력한 텔레파스였다. 그리고 주인공 신화경 때문에 제3차 텔레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구체적으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주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강력한 텔레파스는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일종의 정신지배자로 보인다.<br><br>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데비안트들이 손을 잡거나, 신체접촉을 통해 서로 다른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현한다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여기서부터 명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 같다.<br><br>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아서 인물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 작가는 여성 등장인물들에게 많은 신경을 썼다. 일단 절대적으로 여성들이 많다. 주인공 일행 중 남성은 하태빈이 유일한데, 나는 중반까지 이 인물도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중간에 수염 묘사가 있어서 남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화경의 엄마 동료들 중에서도 장 폴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다. 가장 악랄한 악역처럼 그려지는 급진주의 데비안트 단체 ‘여성들의 목소리‘ 주요인물들도 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이다. 특히 무니야 알 바크르는 악녀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또 극초반과 극후반에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존재 최서윤도 전체 이야기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악역 여성이다.<br><br>이 많은 여성 등장인물 중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리야 사무체예바 이다. 아주 짧게 등장하여 비중이 별로 없는 인물이지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이리스 쳉 역시 인상적인 인물이지만, 마리야의 활약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br><br>주인공 3인방으로 칭할 수 있는 신화경, 조유영, 리웨이 이 세 여성은 좀 많이 답답하다.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이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이자 문제라고 느낀다. 이건 이 소설의 구조와 시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작가가 다른 구조와 시점을 사용했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그려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br><br>이 소설에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 바로 시점이다. 맨 첫장면은 3인칭 시점으로 시작한다. 이 부분이 가장 자연스러운 서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1인칭 시점으로 서술 주체가 바뀐다. 부자연스러웠다. 바로 앞의 시작 부분이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그 부자연스러움이 더 잘 느껴졌다. 이거 등장인물이 엄청 많은데 매번 서술자를 바꿔가며 1인칭으로 가려나 하고 우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참 지나고 나니 다시 2인칭으로 바뀌었다.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서술자가 너, 바로 주인공 신화경 그리고 독자에게 말하는 방식이었다. 이건 앞서 1인칭 보다 훨씬 더 부자연스러웠다. 2인칭이라면 서술자가 계속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설명해야 한다. 주인공 옆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아니, 주인공의 어린시절을 왜 2인칭으로 서술하지? 주인공 곁에 유영이 등장하는 것 조차 한참 후인데, 그보다 더 과거를 과연 누가 주인공에게 설명할 수 있지? 이건 일종의 오류이고 잘못된 서술 방식이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이후 다시 3인칭과 1인칭이 나오기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2인칭으로 서술한다.<br><br>이경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내‘가 ‘너‘에게 하는 이야기다. 제가, 당신들에게.˝ 라고 적었다. 작가가 굳이 가장 중요한 시점의 많은 분량을 2인칭으로 고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작가의 의도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것이 문제이자 패착이라는 생각이 든다.<br><br>작가는 마지막 장면의 반전 효과를 노리고 2인칭 시점을 사용하며, 그 서술자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도록 정보를 차단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조유영의 능력과 리웨이의 능력이 주인공 화경의 능력과 엮이며 뭐가 뭔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전개를 그려낸다. 게다가 작가의 말 이후에는 쿠키 라고 결말까지 보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에 대해 리웨이 시점을 추가로 적어놓았다. 마블 시리즈 덕분에 쿠키 영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과 그 기능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했는데, 소설에도 쿠키 분량을 넣다니! 참신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br><br>이 소설의 가장 안 좋은 점은 세 개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2인칭의 과거 시점이자, 인터넷 방송 대본 및 댓글 형식을 차용한 2장의 서술 방식이다. 일단 너무 산만하고 쓸데없이 분량을 키운 방식이다. 이 책이 이렇게 두꺼운 이유는 여기서 내용에 비해 공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본의 형태로 서술한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댓글들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달았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말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나는 작가의 욕심이 과했다고 본다.<br><br>두번째는 해방구였던 예카테린부르크가 함락되는 날의 최종 묘사가 너무 모호하다는 점이다.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이 강력한 텔레파스가 폭주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라고 보인다. 앞서 팔레스타인의 쌍둥이와 아이리스 쳉의 전례가 있었듯이. 그러면 이게 왜 어떻게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 에반게리온을 언급했던데, 가장 중요한 폭주의 순간을 화경에게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도록 수많은 글씨들을 중첩되게 겹쳐 인쇄한 방식으로 연출한 것이 에반게리온의 결말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라는 질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br><br>마지막 문제는 주인공 3인방의 관계와 능력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은 점이다. 유영은 조용하고 튀지 않으려던 화경이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수용소와 같은 학교를 지배하고 있던 존재임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인 것처럼 나온다. 그래서 유영은 이후에 마치 도장깨기 하듯 전국의 수용소와 같은 학교들을 해방하러 다닌다. 유영과 화경의 관계와 애증은 그래도 좀 드러나는 편이다. 하지만 일부러 꽁꽁 감춰두었던 리웨이와 화경 그리고 유영이 얽힌 관계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화경의 엄마가 분신할 때 불은 붙인 존재가 리웨이임을 밝히며 리웨이가 왜 화경에게 집착하는지 그 단서는 보여줬지만, 본질적으로 리웨이가 화경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화경을 무조건 보호하려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예카테린부르크 함락 시점에서 화경을 죽이려 했던 리웨이가 나중에 달에서 다시 살리려고 하는 것도 단순히 의뢰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 이 소설의 시작시점에서 화경이 느낀 명백한 살의는 리웨이가 거의 확실한데, 리웨이가 왜 이 우주선의 모두를 죽이려 한 것인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왜 유영의 능력인 몸을 바꾸는 것을 리웨이가 쓸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혹시 리웨이의 몸은 유영이 장악한 상태였던 걸까? 그래서 사실 죽은 것은 유영이 아니라 리웨이였던 걸까? 이런 부분들은 단순히 난해하다기 보다는 작가가 확실하게 드러냈어야 할 부분들을 독자의 상상에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br><br>이외에도 사소한 단점들이 몇가지 눈에 띄지만, 글에 반해 장점들도 명확한 소설이다. 일단 68혁명으로부터 68년 후를 시간 배경으로 정한 것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역사상 존재했던 대표적인 혁명을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혁명의 한가운데 해방구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담아내려고 애쓴 것이 인상적이다. 파리 꼬뮌, 68혁명,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홍콩 민주화 운동,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독립을 이끈 발트의 길 비폭력 저항운동 등이 이 해방구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살바도르 아옌데 등 남미의 혁명가들과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을 떠올릴 수 있는 상황들도 인상적이다.<br><br>사회의 부조리를 바꾸는 일을 주로 하는 활동가로서 전 지구적 혁명이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화경이라는 엄청난 능력자가 만든 예카테린부르크 라는 해방구가 너무나도 멋진 무대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해방구를 지키려 애쓰는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존재들을 떠올렸다. 한편으로 선의로만 가득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부조리한 인간의 본능을 마주하는 상황도 인상적이었다. ˝구제하지 못할 모순덩어리들. 독재에 맞서는 숭고한 존재인 동시에 누군가를 성적으로 음행하는 존재며,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왔으면서도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존재며, 퀴어 퍼레이드를 주관하면서도 인종이 다른 누군가를 우스개 삼는 존재며, 전쟁 난민을 포용하는 일에 기부금을 내면서도 타국에서 온 소녀의 몸을 돈으로 희롱하는 존재며, 자신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누군가의 가족을 파괴하는 존재며......˝<br><br>완벽한 인간이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숭고한 영웅이자 혁명가라고 해도 인간적인 결함들은 존재할 것이다. 그런 혁명가들이 아무리 선의로 해방구를 열었다고 해도 그 안에서는 온갖 부조리한 더러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혁명은 너무나도 가슴 뛰는, 매력적인 단어이지만 그 혁명의 이면과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촛불을 통해 내란 수괴를 몰아냈지만, 그 다음 대통령은 촛불과는 관계없이 기득권의 편에 서있다.<br><br>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글을 마치자. 소설을 읽으며 너무 오글거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예카테린부르크를 점령한 직후 노래를 이어부르는 장면이다. 앞서 언급한 발트3국 독립을 이끈 당시에 불렀던 노래라던가 프랑스 국가 라던가 혁명과 관려한 외국 노래들을 이어부르다가 한국인인 주인공 일행들로 순서가 이어지자 처음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더니 그 다음에는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시간 배경은 1968년으로부터 68년 후라고 했으니, 2036년이다. 2036년의 10대들은 여전히 소녀시대 노래를 듣고 부를 것인가? 이화여대 시위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고 들었고, 이번 윤석열 탄핵 시위에서 소녀시대 뿐 아니라 여러 아이돌들의 노래가 불렸다고 들었다. 그래서 작가가 소녀시대의 노래들을 사용했으리라 본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60/1/cover150/k5828381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600159</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3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69289</link><pubDate>Mon, 24 Aug 2026 19: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69289</guid><description><![CDATA[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3년<br>탈핵신문 기사를 읽고 오늘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3주년이 되었음을 알았다.해당 기사 보러 가기:&nbsp;http://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2048<br><br>기사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던 2023년 8월 당시 약 134만톤의 오염수가 저장되어 있었고, 3년 동안 16만 7천톤을 버렸지만, 그 사이에 약 7만톤의 새 오염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후쿠시마에서 수소폭발을 일으킨 발전소 4기 모두 데브리 라고 부르는 녹아내린 핵 연료봉 다발이 어떤 상태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흘러 들어가는 지하수와 온도를 낮추려고 일부러 붓고 있는 냉각수 등이 매일 끊임없이 나온다. 핵폭발 사고가 일어난 것이 2011년 3월 11일인데, 지금 2026년 8월 중순까지 공기 중으로 그리고 지하수로 그리고 오염수 방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방사능이 새어 나오고 있다. 탈핵 강의를 할 때마다 반복하는 얘기인데, 아마 백여년이 더 지나도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이 사고를 수습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지금 이 4기의 발전소 잔해를 수습할 기술이 없는데, 사오십년 혹은 칠팔십년 지난다고 그런 기술이 금방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br>기사를 보니 일본의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가 어제 "어업인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계속되는 ALPS 처리수 해양 방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바다에 버리는 오염수는 일본의 동쪽 바다를 통해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과연 일본 국민들은 안심하고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까?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해산물을 정말 좋아하는 나는 일본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 살고 있었다면 못 먹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 아니다. 방사능은 계속 새어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새어나올 것이다. 현재 인류는 이걸 막을 기술 자체가 없다. 꾸준히 새어 나온 수백가지 방사능 물질들은 해양 생물들에게 축적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방사능에 오염된 해양 생물들이 태평양 전체를 돌아다니게 되므로 한국에서 먹는 해산물들이 완전히 안전한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해양 생물들이 한국 어민들의 배와 그물만 피해갈 리는 없으니까.<br>이재명 대통령은 2023년 8월 23일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린 방사능 오염수 방류 규탄 촛불집회 자리에서&nbsp;“대통령의 직무가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제일인데 대한민국의 영토와 바다를 오염시키겠다는 일본에 왜 우호적인 것이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본인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원전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방사능 오염이라는 현실에 대해 눈과 귀를 닫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통령에 대해 거의 기대하는 바가 없었기에 본인이 했던 말조차 안 지키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본인이 다른 정치인들을 비판할 자격은 절대 없을 것이다.&nbsp;<br>모기<br>며칠 전 차에 모기가 한 마리 들어왔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팔과 다리 등 여기저기 가려운 곳이 생겨 살펴보니 방금 막 모기에 물린 상태였다. 그때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사이로 유유히 날고 있는 모기를 보았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모기를 잡기 위해 휘저었다. 처음 몇 번의 시도는 계속 빗나갔지만, 신호에 걸려 잠시 정차 중일 때 모기도 잠시 차 천장에 내려 앉은 것을 보고 얼른 손을 휘둘렀다. 감각이 있었다. 모기는 죽었고, 내 손가락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모기 피가 아니라 내 피였다.<br>한창 더웠던 8월 초까지는 모기를 거의 보지 못했는데, 아주 조금 기온이 떨어지자 마자 모기들이 엄청 기승을 부리는 느낌이다. 거의 매일 대여섯 곳 이상 물리는 느낌이다. 대체로는 물리고 몇 시간 지나면 크게 가렵지 않고 물린 자국이 작아지는데, 가끔 물리자 마자 긁지 않았는데도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엄청나게 가려운 경우가 있다. 지금은 팔에 두 군데, 허벅지에 하나, 등에 하나 크게 부푼 자국들이 있다. 아무 미칠 것 같다. 참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벌레 물린 곳에 바르는 약을 사서 갖고 다니며 가려울 때마다 바르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 가렵지만 않으면 내 피를 좀 빨아먹는 것 정도는 참아줄 만한데, 가려워도 너무 가려워서 견디기가 어렵다.&nbsp;<br>다시 날이 더워졌다. 아마 9월 초 정도까지는 다시 폭염과 열대야가 나타날 것 같다. 가을이 오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가을을 기다리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62399</link><pubDate>Thu, 20 Aug 2026 2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62399</guid><description><![CDATA[반가움의 표현<br>배송 일을 하면서 간혹 아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아는 분의 집으로 배송을 가는 경우도 있고, 운전하는 중에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한다. 나는 평소에도 무표정인 경우가 많은데,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막 그렇게 반가운 표정을 짓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만난 것이 좋으니 웃기는 하지만, 그게 약간 억지 웃음처럼 활짝 웃는 표정은 아니고, 반가움의 표현 역시 그저 인사말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내가 그저 적당히 반가움을 표현할 때 상대방이 격하게 반갑다는 표현을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다. 이건 아마 성격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얼굴 표정에서부터 온 몸의 동작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사람들.&nbsp;<br>어제 그런 분들을 두 분이나 만났다. 한 선배 활동가는 내가 일터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유리로 된 작은 방에서 회의중이었다. 나는 회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내가 챙겨야 할 것들만 얼른 챙기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의 중이던 선배 한 분이 나를 보더니 양 손을 번쩍 들어 격하게 흔들었다. 얼굴도 활짝 웃는 모습. 그렇게까지 안 해도 그저 인사만 나눠도 서로 반갑다는 것은 전해지지 않을까?<br>그리고 한참 후에 일을 완전히 마치고 동네 헬스장으로 가고 있었다. 일을 마치면 한 삼사십분 가량 운동을 하고 씻기 위해 곧바로 헬스장에 가는 편이다. 한참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 일방통행 길에서 천천히 다가오던 경차 하나가 내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열리더니 한 여성이 큰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에 양 손을 격하게 흔들었다. 가끔 마주치는 동네 활동가 중 한 분이다. 자주 만날 때는 매주 마주치기도 했는데, 최근 몇 달은 그리 자주 만나지 못했었다. 서로 다른 일들로 바빴던 듯.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반갑다고 표현할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건 성격의 영향일 것이다. 이 두 사람 외에도 늘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는 몇몇 분들을 안다. 지금도 그 분들의 그 환한 웃음과 큰 몸동작들이 눈에 보일 지경이다. 누군가 나를 반가워 해준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나도 그 순간에는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누군가를 반가워하는 편이 아니라서 조금은 불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상대방이 저 사람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네 하는 오해를 할까 싶기도 하고.&nbsp;<br>근손실 이후<br>어제 운동하고 샤워를 마친 후 평소와 달리 탈의실에 사람이 없길래 잠시 거울로 내 몸을 관찰했다. 지난 세 달 가량은 꾸준히 운동을 열심히 했다. 7월부터는 폭염 때문에 달리기를 멈췄지만, 가끔 헬스장 트래드밀에서 달리기도 했다. 9월이 되어 날이 조금 선선해지면 다시 밖에서 달려야지. 암튼 최근에는 벤치프레스와 케틀벨 운동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 벌써 6년이 넘게 지난 교통사고 때문에 나는 긴 시간 운동을 할 수 없었고, 긴 시간 열심히 운동하며 만들어진 근육들이 사라졌다. 근손실 이후 다시 운동을 해도 되는 시점이 왔을 때 좀 열심히 운동을 했었는데, 과거만큼 효과적으로 운동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여러모로 의욕을 잃었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했던 몇몇 동작들을 할 정도의 근력과 유연성을 모두 잃어버렸던 영향이 컸다. 운동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제법 오랫동안 아주 간단한 맨몸 운동 수준의 가벼운 운동만 했다. 그 시기에 달리기를 좀 열심히 했고, 근력 운동은 손을 놓고 있었다.<br>최근 3개월 열심히 운동을 한 결과는 아직 몸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 어깨가 넓어지고 흉근이 드러나 보이는 느낌 정도. 근손실 이전에도 나는 근육의 크기가 큰 편은 아니었다. 이건 유전의 영향도 크고 또 펌핑 운동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근 선명도가 조금 좋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바벨 스내치, 케틀벨 스내치 등의 난이도가 조금 있는 운동들을 좋아하고 잘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근손실 이후 이런 운동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근력과 유연성을 잃었다. 흔히 3대 운동이라고 부르는 무게를 늘리는 운동들,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이런 류의 운동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가끔 하기는 했지만, 자주 하는 운동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그래도 어려서부터 역도를 해서 흉근이 발달한 것이 내 자랑 중 하나였다. 근손실 이후로는 그런 자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 가장 열심히 하는 운동 중 하나가 벤치프레스와 인클라인 벤치프레스이다. 사라져버린 내 흉근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br>어제 잠시 살펴보고 과거 운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잠시 생각해봤는데, 이대로 1년 정도를 열심히 운동한다면 근손실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어느 정도 지금보다 탄탄한 토대는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1년 후 정도에는 과거에 좋아했었던 스내치 운동을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지금 다니는 헬스장이 집에서 가깝고 깨끗하고 다 좋은데, 프리웨이트 공간이 좀 애매하다는 점이다.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게다가 퍼스널 트레이닝, 그러니까 트레이너가 붙어서 1대1 교육을 하는 이용자들이 주로 그런 공간들을 쓰고 있어서 빈 프리웨이트 공간을 쓸 기회가 거의 없다. 게다가 빈 바벨도 부족하다. 그래서 대체로 본 운동으로 벤치프레스와 간단한 덤벨 운동들을 하고 정리 운동으로 케틀벨 운동을 하고 끝내는 편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체력이 좋아지면 점점 더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아니면 일 마치고 바로 가지 않고, 좀 더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를 찾아본다던가 해야지.<br>쓰고 싶은 말들은 좀 더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읽고 싶은 책들과 읽어야 할 책들 그리고 쓰고 싶은 글들과 써야 하는 글들이 있는데, 언제나 시간은 부족하다. 물론 좀 더 부지런해지거나, 좀 더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이것도 여름이 가고 조금 선선해지면 나아질지도 모르겠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북플이 바뀌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7029</link><pubDate>Tue, 18 Aug 2026 07: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702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28587892X&TPaperId=174570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800/37/coveroff/928587892x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553278118&TPaperId=174570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1/95/coveroff/055327811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어제 낮에 피씨로 브런치에 썼던 글을 하나 옮기고 저녁에 긴 회의에 참여했다. 밤 늦게 해당 글을 북플에서 확인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갑자기 다시 로그인을 하라고 나왔다. 로그인을 하고 보니 북플 앱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중에 계속 쓰다보면 다시 익숙해지겠지만, 지금은 메뉴가 완전히 바뀌어 무척 불편하다. 12시가 지나서 늘 그렇듯 ‘지난 오늘‘ 게시판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메뉴의 포맷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있어서 한참동안 못 찾았다. 나중에서야 결국 찾아냈다. 뭔가 더 좋아졌다는 느낌은 없고, 그냥 불편해졌다는 느낌만 든다.<br><br>닥터스<br><br>지난 오늘 메뉴에서 과거 오늘 내가 쓴 글들을 가볍게 살펴보다가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와 [닥터스] 를 언급한 부분을 읽었다. 통속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대중적인 소설이자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비슷한 이미지의 시드니 셸던이 많은 책을 낸 것에 비하면 이 작가는 딱 저 두 권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80년대 말에 당연히 저 두 권을 읽었었다. [러브 스토리]는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닥터스]는 역시 뻔한 이야기였음에도 이상하게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다. 그리고 문득 이 책을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에 이 책을 사서 읽었을까? 모르겠다. 서울로 가져온 책 중에 이 책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 집 책장에는 없다. 혹시 부산에 이 책이 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부산에 갈 때마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쓱 훑어보곤 하는데, 이 책은 없었다. 지금 이 책을 다시 구매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닥터스 라고 검색하니 책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럴리가! 이렇게 유명한 책이, 한때 엄청난 베스트 셀러였던 책이 없다고? 정말 없었다. 다시 에릭 시걸을 검색해보니 [러브 스토리]와 그 후속작인 [올리버 스토리]는 나오는데 [닥터스]는 번역본이 없고 영어 원서만 나왔다.<br><br>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책이 없으니 괜히 사람이 더 집요해졌다. 알라딘 앱을 열어서 중고책을 검색했다. 책이 나왔다. 당시에 1권, 2권 두 권으로 출간했었나보다. 1권은 중고조차 거의 없었다. 우주점이라 표현되는 전국 알라딘 중고 매장에도 거의 없었고, 판매자 중고로 표현되는 곳에만 물량이 좀 있었다. 2권은 우주점에도 다수 있었고, 판매자 중고에도 제법 많았다. 음, 우주점 중에서 1권과 2권을 모두 가진 매장이 있으면 구매할까 했는데 없었다. 각기 다른 매장에서 각각 따로 구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쉽지만 구매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다. 책 구매를 포기하고 나니 문득 그 당시에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던 책 광고가 기억났다. [러브 스토리]를 쓴 세계적인 작가 에릭 시걸의 신작 이라고 말하는 여성 성우의 음성이 머리 속에서 재생되었다. <br><br>어긋나는 사랑<br><br>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을 극장에서 봤을 때 서로 어긋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영화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앞서 [닥터스]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거였다. 서로 어긋나는 인연의 모습이 떠올라서.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쓴다면 안타깝게도 서로 이어지지 않는, 어긋나는 인연을 그려보고 싶었다. 원래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은 비뚤어진 마음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다.<br><br>며칠 전에 한 친구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가 나를 부러워한다는 얘길 했다. ˝형은 결혼도 해봤고 아이들도 있잖아.˝ 좀 충격이었다. 결혼을 해봤지만, 현재는 이혼한 늙은 홀아비일 뿐이고, 아이들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게 뭐가 부럽다는 걸까? 물론 아직 결혼을 해보지 못하고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그 친구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나보다 한참 젊고 아직 얼마든지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야말로 이젠 늙은이 처지라 더는 연애 경험을 하기 어려운데, 오히려 내가 그를 부러워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br><br>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자. 내가 지금 현실에서 연애를 할 수 없다면, 내가 만든 세상 안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만들며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골방에 처박혀 소설을 썼던 시절에도 그런 측면이 있었다. 내가 짝사랑했던, 현실에서는 이어지기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와 나를 투영한 주인공 캐릭터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그리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소설이라도 현실성을 감안해야지.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을 담고, 연애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구상하더라도 무조건 그냥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현실성이 없지 않은가. 시련이 주어지고 서로 어려움을 겪어야 하겠지,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어긋나는 것이 현실적인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에 썼던 단편들과 구상해놓고 써나가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했던 장편들에서도 주인공들의 사랑은 대개 이어지지 못했었다.<br><br>고민들<br><br>누구나 그 시기에 혹은 그 나이대에 걸맞는 고민들이 있다. 이번에 아이들을 만났을 때 각자의 고민들을 들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작은 아이가 약속 장소에 한참 늦게 왔다. 큰 아이와 나는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지난 번처럼 이번에도 작은 아이는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도착하겠지 생각하며 천천히 먹었다. 큰 아이는 음식을 먹으며 재잘재잘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런 와중에 같이 알바를 하고 있는 동료들의 태도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을 대하는 내 태도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이라 그로 인한 문제점들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이도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동료에게 짜증을 느끼는 부분들이 내가 과거 다른 동료들에게 느꼈던 지점들과 거의 같았다. 이런 성향도 유전일까? 아이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아이가 충분히 이야기 했다고 느낄 즈음에 내 과거 이야기를 전해줬다. 세상이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걸 늘 생각해야 삶이 조금 편해질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다. <br><br>큰 아이가 피곤하다고 집으로 들어가고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집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버스로 약 30분, 걸어가면 1시간 10분 가량 걸리는 거리였다. 지난 번에도 아이가 걷고 싶다고 해서 같이 걸어갔었다. 그때는 중간에 길을 좀 잘못 들어서 훨씬 더 오래 걸렸었다. 걸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내가 다시 전철을 타러 이동하면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 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걸음이 빨라졌다. 작은 아이는 걸으며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도 산책하면서 여러 차례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는 친구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홀로 다른 학교에 진학해서 친구가 없었다. 새학교에서 새 친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같이 약 한 시간을 걸으며 아이는 과거 친했던 친구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외톨이로 지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친한 척해야 하는 친구 같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작은 아이에게도 현실이란 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길 해줬다.<br><br>두 녀석이 각자의 고민으로 나름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의 고민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 아이들 스스로 고민들을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며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나이 대에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고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고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 아이들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기를. 아이들이 힘들때 언제든 아빠 하고 부르면 내가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내 남은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br clear="all">]]></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1/95/cover150/055327811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19582</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고속철도 폭탄 영화 두 편</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5850</link><pubDate>Mon, 17 Aug 2026 16: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5850</guid><description><![CDATA[이 글은 올해 3월 25일 브런치에 썼던 글이다. 작년부터 브런치 라는 곳에 글을 연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정을 만들어 두었었다. 하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못했고, 일단 어떻게든 시작은 해보자는 생각에 올해 2월에 여기 알라딘 서재에 썼던 글들을 거기다 옮기며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다. 처음 생각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처럼 쓰려고 했다. 연재라는 제약을 두면 나도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영상매체들의 유사성이나 대조되는 측면들을 비교하는 글과 원작이 있다면 원작과 비교하는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늘 현실은 생각하는대로 되지 않는다. 브런치에 연재하고 싶다는 욕심과 달리 바빠서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고, 가끔 올린 글들은 모두 알라딘에 과거 썼던 글들을 가져간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2월부터 3월까지 몇 개 올리지 않은 글들 중에 브런치에만 쓴 글은 아래 글이 유일하다. 그리고 나는 약 5개월 동안 브런치를 잊고 살았다. 역시 익숙한 알라딘 서재가 제일 마음이 편했다. 브런치를 아예 포기하는 마음으로 아래 글을 알라딘으로 가져온다. 영상 매체들을 비교하는 글과 영상 매체와 원작을 비교하는 글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 알라딘에 계속 써야겠다.<br>**************************************************<br>고속철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를 떠올릴 수 있다. 007을 비롯한 무슨 첩보 액션 영화 같은 곳에서 아주 빠른 고속열차 안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들을 보여줬던 것이 생각난다. 우연히 폭탄이 설치된 고속철도를 다룬 영화 두 편을 비슷한 시기에 보았다. 일본영화 [신칸센 대폭파]와 대만영화 [96분]이다. 두 영화 모두 설치된 폭탄이 열차의 속도와 연동되어 일정 속도 이하로 달리면 터진다는 설정이었다. 이 설정은 곧바로 영화 [스피드]를 떠올리게 한다.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의 이 영화는 1994년 개봉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터지지 않는 폭탄이 설치된 설정의 고속철도 영화가 저 [스피드] 보다 더 재미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고속철도는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이다. 그것도 고속으로. 이미 고속으로 달릴 길이 보장된 고속철도에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한다는 제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 반면, 영화 [스피드]에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 터지지 않는 폭탄이 설치되었던 건 버스였다. 버스는 도로를 달리고, 도로는 다른 차량으로 막혀 속도라 떨어질 확률이 높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영화는 일단 기본 설정에서부터 30년 전 영화보다 더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물론 열차는 정차역을 만나면 멈춰야 한다. 다만, 고속철도는 애초에 일반 철도보다 정차역의 수가 적다. 그리고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비상 상황이라면 정차해야 할 역을 지나치는 것이 물리적인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br>우리나라 고속철도인 KTX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하고 본론인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자. 우리나라 고속철도 사업을 처음 입안한 것은 학살자인 전두환의 친구이자 그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시절이었다. 처음 계획은 경부선 철도 옆으로 나란히 고속철의 선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구 경북 출신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 세력은 대구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기를 원해서 경주역을 집어넣었고, 덕분에 경부선 선로와 다른 노선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경주에서 부산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천성산과 금정산을 지날 수밖에 없는데, 이 큰 두 산을 관통하는 아주 긴 터널을 뚫어야 하기 때문에 경부선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노선과 달리 많은 자본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양산을 대표하는 천성산과 부산을 대표하는 금정산은 그 자체로 큰 환경적, 생태적 가치를 가진 명산이기 때문에 두 명산을 뚫어 고속철도를 건설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노태우 시절에 이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제 본격적으로 공사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기였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노무현은 공약으로 고속철도 사업 백지화를 공언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후에는 공사가 계속되는 상황을 방치했고, 결국 천성산의 내원사와 금정산의 범어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에서 대대적인 반대 운동에 나섰고, 크고 작은 환경단체들이 힘을 모아 고속철도 사업 강행으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정치적인 맥락으로 억지로 끼워 넣었던 경주를 제외했다면 답은 간단했을 것이다. 기존 경부선 옆으로 고속철도를 설치했다면 시간도 사회적인 자본도 모두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다 보았듯이 공사를 강행하여 개통했다. 그러면 고속철도 설치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더 편해졌는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나? 글쎄, 잘 모르겠다. 일단 철도공사는 KTX 개통 후에 기존 경부선의 열차들을 대폭 줄이고, KTX 만 대량 편성했다. 사실 선로 자체가 분리되어 있는데, 왜 고속철도를 개통했다고 해서 기존 일반 열차들의 편성량을 줄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 짓을 강행했다. 그리고 개통 초기 KTX 선로는 본인들이 자랑삼아 말하는 300 kmh로 달릴 수 있는 선로만 깔렸던 것이 아니었다. 고속열차가 300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은 일부 구간뿐이었고, 특히 대구 이후 부산까지는 경전선 선로를 깔아 뒀기 때문에 설계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나중에 한참 후에야 모든 구간을 300kmh 가 가능하도록 개선했지만, 이때는 여기저기 더 많이 생긴 정차역들이 문제였다. 실제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예매해 보면 철도공사의 말대로 2시간 40분에 부산에 도착하는 열차 외에 다른 정차역들 때문에 3시간 이상 걸리는 열차들도 많다. 25년 9월 철도경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실제 KTX의 평균 속도는 시속 300km가 아니라 시속 165km라고 한다. 고속철도를 어렵게 만들어 놓고도 고속으로 운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br>잠시 우리나라 고속철도 설치 과정의 문제와 운행의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만 살펴봤는데, 이제 본론인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선 [신칸센 대폭파]는 같은 제목의 과거 영화를 리메이크 한 영화이자, 그 후속작의 성격도 겸한 영화라고 한다. 작중에서 주요 인물이 과거 영화 시점과 관련한 사람으로 나온다. 1975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과거 작품과 이번 작품의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겠지만, 일본인이 아닌 해외에서 저 옛날 영화를 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과거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보는 것에 지장은 없었다. 그냥 특정 인물이 과거 사건에서부터 시작된 어떤 특정한 상황 때문에 문제가 되어, 이번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흐름만 이해하면 상관없는 설정이다. 다만 일본 내에서 과거 영화를 보았던 장년층들은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겠지.<br>영화의 첫 장면은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탐방온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인공인 타카이치 카즈야가 차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 배역을 맡은 배우는 쿠사나기 츠요시 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초난강으로 불리는 인기 있는 가수라고 나온다. 나는 이 사람이 국내에서 활동하던 당시에는 티비를 안 보고 살아서 이런 사람이 활동했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배우를 오랜만에 보아서 반갑다는 평들도 제법 많더라. 암튼 학생들에게 설명을 마친 후에 질문을 받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왜 차장이 되셨나요? 보통은 기관사를 꿈꾸지 않나요?" 라고. 음,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으로서 고속철도 승무원을 꿈꾸는 거라면 대개 기관사를 꿈꾸겠지. 하지만 현실에서는 차장을 비롯해 열차 내에서 승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챙기는 승무원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기관사를 꿈꾼다고 누구나 기관사가 될 수는 없는 법이겠지. 하지만 이 질문에 쿠사나기 차장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답을 한다.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갔다가 도착하면 흩어지는 뒷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나?" 차장이 된 이유를 물었기에 답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현실에서 과연 이런 답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다음 장면에서 젊은 차장이 다가와 학생들 상대하시느라 수고하셨다고 하면서 다음에는 본인이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맡겠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아주 정색을 하면서 대하는 모습도 좀 이상했다. 초반에 이 등장인물이 원칙주의에 따라 철저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일 것 같은데, 그냥 썩 좋지 않은 상관이자 선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 두 차장이 경례를 하는 장면도 이상했다. 군인도 아닌 철도 승무원들이 경례를 하나? 일본은 그런가? 우리나라도 설마? 아니 장난처럼 경례를 하고 그를 받아줄 수는 있겠지만, 해당 장면은 장난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군인인 것처럼 아주 진지하게 경례를 하고 받아주는 모습이었다. <br>다음으로 아오모리 역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열차에 타서 자리를 잡는 모습들이 차례로 나온다. 이 영화처럼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라면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짧은 등장 장면에서 해당 인물의 주요한 특징들을 보여줘야 하니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역시 여성 정치인이었다. 아마도 중의원인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성 보좌관과 함께 열차에 탔다. 그런데 그의 앞자리에서 뒤돌아 이 의원을 유심히 보던 아이가 갑자기 "마마카츠" 라는 단어를 말했다. 어! 최근에 본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파파카츠" 라는 단어를 계속 들었었다. 그리고 2월 중순에 알라딘 서재에 쓴 [내 몸을 빌려드릴까요] 의 서평에서도 파파카츠를 비롯해 렌탈 여친,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을 교묘히 오가는 일본의 성매매 문화에 대해 언급했었다. 파파카츠 라는 단어는 일본 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을 말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에 중년 남성을 뜻하는 파파를 붙여 만든 것으로, 젊은 여성이 나이 많은 중년 남성들에게 성적 만족감을 주고 경제적 혜택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게 미성년자라면 원조교제인 것이다. 여기서 파파를 마마로 바꿨으니, 이 여성 정치인은 젊은 남성과의 성추문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이 정치인이 이후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빌런 혹은 민폐 캐릭터가 될 것인가? 상식적으로 행동하여 이미지 쇄신을 꾀할 것인가? 나는 후자에 걸고 영화를 계속 봤다. 이따가 배역에 대해서 따로 다루기는 하겠지만, 카가미 유코 라는 중의원을 맡은 배우는 오노 마치코 배우였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고 아는 얼굴이라 일단 반가웠다.<br>열차가 출발하는 장면에서는 각 역할을 맡은 직원들이 모두 손가락으로 확인 작업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관제실의 관제사도 화면을 보며 주로 쓰는 손(아마도 오른손) 검지를 오른쪽 관자놀이에 갖다 대었다가 해당 공정의 특정 부위에 손가락을 움직여 지칭하는 작업을 하고, 이후 역무원이 승강장에서 같은 동작을 취한다. 다음으로 주인공인 다카이치 차장이 여러 차례 이 동작을 취한다. 이어서 기관사가 이 동작들을 취하며 열차를 출발시킨다. 마츠모토 치카 기관사는 아마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다. 여기서 젊은 여성 기관사와 중년의 남성 차장을 배치한 의도가 읽힌다. 맨 처음 언급한 [스피드]의 산드라 블록이 떠오리기도 하고. 자, 드디어 열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감독은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열차 출발 직후 범인은 관제실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폭탄을 설치했다고 알린다. 그리고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폭탄을 다른 열차에 설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한 속도 이야기를 하는데, 다음 장면에서 그 다른 열차가 제한 속도(아주 낮은 속도)를 넘기자 폭발이 일어난다. <br>다음은 일본의 관료주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관제실에 고속철도 회사(JR 동일본) 간부, 관할 경찰, 정부 관계자와 총리실 보좌관 등이 모인다.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 중에 최고는 아마 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질라]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이야기로 빠질 여유는 없으니 일단 넘어가자. 암튼 이후로 관제실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아주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거의 마지막까지 한 차의 오차도 없이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총리실 보좌관은 딱 생긴 대로 무례하게 굴며, 책상머리 공무원의 한계를 보여주다가 나중에 각성하여 진정성을 보이고, 형사들도 이런 영화 특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담당 관제사와 관제소 책임자(찾아보니 종합지령소 총괄 지령장이라고 나온다.) 역시 딱 필요한 만큼의 역할을 하고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감동을 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했던 틀대로 흘러가는 것은 열차 안에서의 장면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며 폭탄 설치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처음 등장했던 승객들이 딱 외모와 성격에 걸맞은 행태를 보인다. 민폐 캐릭터가 나타나고, 이를 말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차장이 나타나 수습을 하고 기관사는 위기를 겪고 등등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br>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대부분 인지도도 있고 연기력도 괜찮은 배우들이고 그에 걸맞은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1975년 개봉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JR 동일본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특히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선로를 갈아타면서 열차가 스치는 장면은 아주 멋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인 특유의 직업윤리를 보여주는 장면들, 위기 상황에서 기관사, 차장 등 승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런 장면들 때문에 JR 동일본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 것이겠지. 아, 그리고 승객 구출용 열차를 출동시켜 구출 작전을 펼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모두 구출하지 못하고 일부가 남을 수밖에 없도록 설정하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기는 했다.<br>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은 역시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부분이다. 일단 범인의 정체가 너무 어이없다. 여고생이라니! 수학여행 일정 중 하나로 견학을 온 여고생이 언제 어떻게 이 열차에 여러 개의 폭탄을 설치할 수 있을까? 속도 감지 장치는 어떻게 설치했을까? 이 열차뿐 아니라 초반에 아주 느린 속도에서 터진 화물열차에는 또 언제 폭탄을 설치했을까? 영화 중반에 폭탄을 제조한 기술자는 등장하지만, 폭탄을 실제로 설치한 다른 공범의 존재는 나오지 않는데, 이 고등학생이 혼자 이걸 다 했다고? 아니, 여성이 문제가 아니라 고등학생이 혼자 했다는 설정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br>1975년 개봉작을 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이 후속작은 열차 승객들의 모습에서 현재의 사회를 잘 보여줬다고 본다. SNS 스타와 이슈만 쫓아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유튜버 등이 등장하고, 실시간으로 빠르게 정보가 유통되는 모습들을 잘 담았다. 너무 전형적인 모습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중에 한 50년 후에 또 후속작이 나온다면, 그때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찾아보며 저 시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될 수 있으리라.<br>자, 이제 배우들을 알아보자. 아, 먼저 감독부터. 히구치 신지 감독은 유명한 애니메이션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신 고질라] 영화에도 안노 히데아키와 함께 참여했는데, 이 영화를 안노 작품이 아니라 히구치 신지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 감독 영화 중에는 저 [신 고질라]와 [일본 침몰] 이렇게 둘을 봤었다. 앞서 말한 주연 배우인 쿠사나기 츠요시는 아이돌 출신이라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도 많이 찍었던데, 내가 본 것은 [일본 침몰] 밖에 없었다. 이번에 맡은 차장 역할은 전형적인 일본 직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연기는 아주 좋았다. 예전에 [일본 침몰]을 대충 봤었는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츠모토 치카 기관사는 논이라는 배우가 맡았다. 이 영화에서 열차 내 상황은 대체로 객실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기관사의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속도가 떨어지면 폭탄이 터진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는 장면 등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열차가 출발하는 장면과 폭탄이 설치된 후에 자동운행장치를 해제하는 장면 등에서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붙였다가 앞으로 내뻗는 동작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배우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던데, 내가 본 것은 드라마 [미스킹] 밖에 없었다. 일본식 장기인 쇼기(将棋)를 다룬 드라마로 이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고, 돌풍을 일으키는 장기 기사로 꽤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다. 위에서도 언급한 카가미 유코는 오노 마치코 배우가 연기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드리마 [아수라처럼] 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4자매 모두 좋은 배우들이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오노 마치코가 맡은 둘째였다. 앞으로도 믿고 볼 수 있는 좋은 배우라 생각한다. 토도로키 미츠루 라는 기업인이자 유명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인플루언서로 나오는 배역은 카나메 준 배우가 맡았다. 이 배우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유명 배우라고 한다. 영화 [킹덤] 시리즈에 계속 나왔다고 되어 있는데, 솔직히 워낙 분장이 심한 영화라 누구인지 기억할 수가 없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도 출연했다는 정보가 있는데, 주요 인물이 아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일본 영화 시리즈와 한국 영화를 엮어서 글을 써볼 생각도 있는데, 나중에 다시 볼 때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관제실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총괄 지령장 카사기 유이치는 사이토 타쿠미 배우가 맡았다. 역시나 유명한 배우로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던데,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실: 인연의 시작] 하나밖에 없었다. 폭탄을 설치한 범인인 고등학생 오노데라 유즈키는 토요시마 하나가 연기했다. 아역 배우로 시작한 이 배우도 많은 작품에 출연했더라. 내가 기억하는 건 [치히로 상] 나오는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br><br>이제 대만 영화 [96분]을 살펴보자. 제목인 96분은 타이베이에서 가오슝까지 실제 고속열차 운행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대만에 대해 별로 관심 없이 살아서 지리를 전혀 몰랐었는데, 최근 대만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면서 조금씩 지리 감각이 생기고 있다. 타이베이는 대만 북쪽의 제일 큰 도시이자 수도이고, 가오슝은 남쪽에서 큰 도시인 것 같다. 대만 지도를 보면 서쪽 해안 쪽만 개발이 된 것으로 보이고, 섬의 동쪽에서는 큰 도시가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 지형의 영향 탓이겠지. 암튼 우리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로 일종의 '부산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br>영화는 과거의 폭탄 테러 사건에서 폭탄을 직접 해체하는 폭탄처리반 특수 요원인 주인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아, 아니, 그 전에 터널에서 어떤 사고가 난 현장에서 당시 현장에 투입된 인력이 한계가 있으므로 우선 터널 밖의 생존자 먼저 구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방송 장면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한참 전에 이 두 영화를 봤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두 영화를 다시 봤었지만, 그 후로 또 갑자기 바빠져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영화를 보고 글을 쓸 수는 없어서 일단 쓰고는 있는데, 디테일이 기억이 안 난다. 암튼 이 장면이 나중에 범인의 범행 동기가 되는데, 영화를 두 번이나 보고도 이해가 안 가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데, 얼마나 크든 규모에 상관없이 사고가 나면 수습하기 위해 공권력이 투입이 되어야 하고, 그들은 적절한 전략을 세워 최대한 안전하게 최대한 많은 생존자를 구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너무 경솔하게 언론에서 떠드는 모습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과연 대만에서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br>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은 세 개다. 맨 처음 등장하는 터널 사고, 두 번째는 극장과 백화점에 동시에 폭탄이 설치되어 극장은 무사히 해체했지만, 백화점이 터져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 그리고 현재 벌어지는 고속열차에 폭탄이 설치된 사건. 이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과거의 사건에서 중요한 사람을 잃었던 범인이 경찰의 무능과 비밀을 파헤치고 국민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폭탄을 설치하는 함정을 판 것이다. 그 첫 시도가 극장과 백화점 동시 폭탄 설치 건이었는데, 경찰은 하나만 막고 다른 하나는 막지 못해(영화 후반에 밝혀지지만 못 막은 것이 아니라, 막을 수도 있었지만 폭발이 일어나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음) 엄청난 인명 피해가 벌어졌다. 당시 경찰은 사건을 조작하여 폭파범이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진범이 아니었다. 진범은 다시 함정을 판 것이었다. 여기서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인명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맨 처음 터널 사고에서도 터널 안에 갇힌 생존자들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현실적으로 거기까지는 무리라 우선 터널 밖의 생존자들부터 구하겠다는 입장. 그리고 두 번째 사건에서 이미 시민들은 대부분 대피하고 소수의 경찰들이 남아 있던 극장과 아주 많은 시민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던 백화점. 둘 중 하나가 무조건 희생되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두 개의 고속열차에 설치된 폭탄. 하나는 대다수의 승객이 내렸지만, 주인공인 폭탄해체 전문가가 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가족을 포함해 아주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는 상황. 이번에도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터진다고 하면, 어느 열차를 포기하고 어느 열차를 살릴 것인가?<br>이걸 다른 말로 하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운전자가 없이 무인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질문이 자주 보인다. 만약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갈림길을 만나 무조건 둘 중 하나로 핸들을 꺾어야 한다면 인공지능은 어떤 선택을 하도록 설정해야 하는가? 직접 설정하지 않는다면 과연 인공지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람이라면? 당신이라면? 차를 바로 멈출 수는 없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두 명이 죽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열 명이 죽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조건 다수를 살려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소수는 그냥 죽어도 되는가? <br>이 영화의 핵심은 이런 내용일 텐데 사실 썩 그렇게 흥미롭게 풀어내지는 못했다고 본다. 일단 앞서도 터널사고 당시 방송 장면을 말하면서 언급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실에서 벌어질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하다못해 작중의 어떤 세계관에서라도 있을만한 일이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 몰입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열심히 노력했다. 그냥 오락 영화로는 썩 나쁘지는 않다. <br>대형 참사가 벌어진 후 추모제를 여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 무안 공항 참사도 잊지 말아야지. 추모제 참가자들이 큰 노란 리본을 매고 있어서 특히 세월호 참사 생각이 많이 났다. 작중 7살 어린이가 희생됐기 때문에 범죄자의 편에 동조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사연을 보면서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가만 보면 신파적 요소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은 무조건 관객을 울리기 위해 만든 것이고.<br>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폭탄이 터지는 조건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스피드]와 앞서 살펴본 [신칸센 대폭파]는 단순했다. 특정한 속도 이하로 떨어지면 터지는 것이었다. [신칸센 대폭파]에서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파한다는 상황이었기에 시속 300을 달릴 수 있는 열차를 120 정도에 맞춰 달리도록 만들어 시간을 벌면서 어떻게든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100 이하는 폭발하기에 정류장에 설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속도가 &nbsp;줄어들면 터지기는 하는데, 그 속도가 딱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두 번이나 봤는데도 정확하게 그 조건이 뭔지 알 수 없다. 대신 영화에서는 유명하고 유능하다는 물리학 강사를 등장시켜서 그가 그 속도를 계산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폭탄이 설치된 두 열차 중 하나의 속력을 가능한 한 줄여서 약 시속 30킬로미터로 달리면서 승객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리라고 안내한다. 그 와중에 잘 뛰어내려서 별로 다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떨어지면서 다치고, 심지어 사람들이 미는 와중에 밟히는 사람들도 생긴다. 속도를 줄이는 와중에 사람들은 앞다퉈 출구 쪽으로 나가려고 밀고 난리가 나고, 사람들이 넘어져 밟히고 깔리는 장면은 이태원 참사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영화를 멈춰야 했다. <br>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려면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는 핵심 원인은 단순해야 한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그만큼 더 집중할 수 있다. 관객들이 모두 물리학자가 아닌데, 물리학자를 등장시켜서 폭탄이 폭발할 속도를 계산한다고? 어느 누가 그런 장면을 보고 몰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물리학 강사는 폭탄을 설치한 범인도 아닌데, 어떻게 그 원리를 그렇게 잘 아는지, 그렇게 자신있게 장담할 수 있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두 열차를 나란히 &nbsp;달리게 만들어서 주인공이 다른 열차로 건너가는 장면도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는 정말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되면 물리 법칙 따위 다 무시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시속 30으로 달리며 많은 승객들이 내린 이 열차에는 이젠 미처 뛰어내리지 못한, 뛰어내릴 수 없는 노약자들만 남아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지루해지기 시작하는데, 영화에서는 이걸 액션 장면을 커버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액션도 그닥 볼만하다고 볼 수 없다.<br>이쯤에서 이 두 영화를 비교하며 작품 속 설득력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이 두 영화 모두 두 개의 열차가 나란히 같은 속도로 달리며 무언가를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신칸센 대폭파]에서는 승객을 구출하기 위한 기자재들을 담은 짐을 옮기는 것으로 나온다. 시속 100 이하로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속도감과 함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잘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렇게 두 열차가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리게 하기 위해 관제소에서 관제사가 집중해서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반면 [96분]에서는 주인공인 사람이 나란히 달리는 열차 사이를 뛰어서 건너간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관제소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관제사의 지시도 없이 두 열차가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릴 수 있나? 불가능하다고 본다. 설득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br>아, 앞서 이 영화는 선택의 문제를 강요한다고 했었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각각 폭탄이 설치된 두 열차에 두 쌍의 부부가 각각 나눠타고 있다. 자, 선택해. 누구를 죽일거야? 라고 묻는 느낌이다. 맨처음 주인공 부부(신혼여행 이야기는 나오는데, 결혼식 얘기는 없는 걸 보면 사실혼 관계일지도)가 탔던 열차에는 주인공의 아내가 &nbsp;있고, 물리학 강사가 있다. 주인공이 건너간 열차에는 주인공과 물리학 강사의 아내가 있다. 이렇게 일부러 설정해 놓고 하나가 터지면 하나가 산다는 설정은 참 잔인하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에는 참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시간이 좀 지나서 글을 쓰려고 보니 더 디테일을 따지고 드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br>어쨌거나 각본가와 감독은 주인공이 죽어서 속죄하는 그림을 원했다고 본다. 결국 영웅의 희생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살아남는 모습으로 끝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동안 좀 묘한 장면이 작은 화면에 펼쳐진다. 터널에서 무용수 아내를 잃은 진범의 존재 외에 공범이 있는 것처럼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이건 뭘까? 후속작을 예고하는 걸까? 해석해보려고 두어 번을 돌려봐도 알 수 없었다.<br>감독은 홍쯔쉬안이라고 한다. IMDB를 보면 5편의 영화와 1편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으로 나온다. 각본을 맡은 것은 3편이었다. 이 영화 외에 본 것은 없었다. 주인공인 송캉런(宋康任 / 작중에서 아런&nbsp;阿任 으로 불림)은 린바이홍(林柏宏 / 우리말로는 임백굉)이 연기했다. 이 배우가 그 배우였는지 전혀 몰랐는데, 찾아보니 인상적으로 보았던 영화 [괴짜들의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저번에 글을 썼던 영화 [숨통을 조이는 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와! 확실히 연기는 잘하는 배우였구나. 영화가 별로여서 그렇지 배우들은 열심히 연기를 한 것이 확실히 맞다고 느낀다. 주인공의 연인이었다가 아내가 된 황신(黃欣)은 송윤화(宋芸樺) 배우가 맡았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 라는 영화가 유명하다고 하고, 그 외에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더라. 류카이 라는 물리학 학원 강사는 왕보제(王柏傑)가 연기했다. 이 배우는 저번에 소개한 영화 [백만 팔로워는 추리중] 이란 영화에도 나왔었다. 그때도 썼지만, 드라마 [화등초상]에서 보았었다. 또 최근에 본 영화 [역병]에도 출연했더라. 신기하게 내가 최근에 본 세 개의 영화에 출연했다. 주인공 아런의 상관으로 주인공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자, 폭발사건을 조작해 마치 범인이 현장에서 폭발에 휩쓸려 죽은 것처럼 조작한 경찰 그리고 막판에 그 모든 책임을 지는 것처럼 비참하게 죽는 리제 역은 리리런 배우가 맡았다. 이 사람도 왕보제 배우와 함께 [백만 팔로워는 추리중]에 나왔었다. <br>단순히 오락 영화로만 접근한다면 이 두 영화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폭탄이 설치된 고속 열차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이야기일테니까. 다만 사건을 다루는 디테일과 등장인물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일본 영화 [신칸센 대폭파]가 훨씬 낫다고 본다. 그리고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명확하고 단순한 구조라서 훨씬 더 몰입할 수 있다고 본다. [96분]은 감정적으로 사람을 많이 뒤흔드는 영화였다. 만약 오락 영화도 즐기며 적절한 감동과 눈물을 원한다면 이 영화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br><br><br style="color: rgb(51, 51, 51); letter-spacing: 0.8px;"><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7/pimg_63922580558765404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5850</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다시 꿈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2530</link><pubDate>Sat, 15 Aug 2026 1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52530</guid><description><![CDATA[<br>시간에 쫓기는 꿈<br>뭔가 마감일이 되면 시간에 쫓기는 꿈을 종종 꾼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한참 전에 기고문 하나를 요청 받았었다. 마감일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휙 지나서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목요일 밤에 글을 쓰고 금요일에 한번 더 살펴보고 수정한 후에 보내야지 생각했었다. 목요일 저녁에 일을 마치고 글을 쓰려고 사무실에 갈 생각이었는데, 그날 회의가 하나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무실에 가면 무조건 회의에 참여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 회의는 내가 꼭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고, 회의에 참여하느라 글을 못 쓰면 이래저래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왔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씻고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에 깨서 사무실에 갈까 더 잘까 하는 고민을 한참 했는데, 결국 잠을 선택하고 말았다. 최근에 일이 좀 힘들었고, 계속 잠이 모자라서 많이 피곤했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선택한 나 자신을 변호했다.&nbsp;<br>금요일 밤에 무조건 글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금요일 저녁 회의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집중해야 할 회의였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할 회의라서 좀 힘들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팠고, 피로감이 컸다. 회의 중간에 한 친구 연락이 왔었다. 회의 중이라는 정해진 문장을 문자로 보냈는데, 나중에 답이 왔다. 추어탕 먹으러 가자고 할 생각이었다고.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나서 추어탕을 먹으러 갈 상황은 안 되겠지만, 일단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그 친구가 전화를 받으면 그 친구 집으로 가서 놀고, 만약 전화를 안 받으면 사무실에서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첫번째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래 글을 써야 해.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가서 김밥이라도 사올까 싶었다. 편의점으로 걸어가면서 두번째 전화를 걸었다. 이 친구가 전화를 받으면 친구 집에서 맛있는 걸 먹고, 안 받으면 그냥 김밥을 먹으며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편의점에 거의 다 와서 잠시 고민했다. 마감일은 토요일이다. 토요일 낮에 한 세시간 정도 집중해서 글을 쓰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긴 회의도 했고, 너무 힘든 하루였으니 그냥 맛있는 것 먹고 놀자. 이런 날 편의점 김밥이라니.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받았다. 본인 집으로 오라고 뭔가 만들어 놓겠다고 했다. 얼른 짐을 챙겼다.<br>아침 나절에 잠을 깼다가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때 몇 개의 꿈을 꾸었는데, 그 중 두어 개가 마감에 쫓기는 꿈이었다. 마감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나는 빈 문서 창을 두고 단 한 줄도 못 쓰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글을 쓸 수 없었다. 결국 기고문을 청탁했던 분에게서 왜 아직 글을 안 보내느냐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괴로워하다가 잠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인가? 원고료 언급이 없었으므로 아마 원고료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에 보내는 기고문이라 잘 써야 한다. 그냥 대충 쓸 수는 없었다. 대략 이런 흐름으로 써야지 하는 얼개는 잡아 놓았었다. 그런데 폰으로 미리 조금 써보려고 하니 미리 구상했던 아이디어가 생각보다 별로라고 여겨졌다. 아마 여기에서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된 것 같다.&nbsp;<br>암튼 점심 무렵에 사무실에 나왔고, 두어시간 동안 여러 자료들을 뒤지며 다시 글을 어떻게 구성할 지 고민했다.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뚝딱 해줄건데 뭐 그리 힘들게 하냐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지만, 내 자존심은 인공지능에게 글을 맡기는 걸 허락할 수 없었다. 맨 처음 구상했던 아이디어로 글을 한 번 써봤는데, 역시나 뭔가 잘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대로 쭉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거의 쉬지 않고 두드려서 분량을 채웠는데, 다시 읽어보니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 글을 그대로 두고 다시 맨 처음 구상했던 글을 열었다. 이건 이거대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감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다른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결국 완성한 글을 보내기로 했다.&nbsp;<br>외국인이 되는 꿈<br>며칠 전 꿈에서 나는 일본인이었다. 게다가 젊은 사람이었다. 꿈에서 거울을 보았는데, 젊고 잘생긴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꿈에서 깨면서 그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꿈 속의 친구들이 나를 일본인 이름으로 불렀다. 느낌으로는 흔한 일본인 이름 같았다. 그 거울을 보는 장면에서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꿈 속의 나는 친구들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었다.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기념하는 여행 같았다. 아마도 졸업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여행지에서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낯선 여성과 마주쳤고, 친구들을 버려두고 그 여성과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었을 때 내가 일본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적은 많았지만, 외국인이 되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았다. 확실하지 않았지만 명확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그래서 또 생각해봤다. 젊어지거나 어려진 꿈은 많았다. 이건 기억나는 것만 해도 수십번이었다. 그럼 혹시 성별이 바뀌어 여성이 되는 꿈을 꾼 적은 없었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것도 없는 것 같았다. 역시 명확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br>생각해보니 외국어를 듣고 말한 기억은 제법 있었다. 영어가 제일 많았고, 일본어와 중국어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어로 대화를 나눴던 꿈도 기억났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인이 되었던 꿈에서는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았다. 예전에 외국어를 사용했던 꿈에서는 우리말을 쓰다가 특정한 시점에서만 외국어를 사용했고, 그게 외국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했었다. 이번에 일본인이 된 꿈에서는 나 자신이 일본인이라서 굳이 일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걸까? 내가 그러니까 일본인인 내가 알아듣고 말할 수 있으니 한국인인 내 기준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서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우에노 주리 등장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인종, 성별, 연령 모두 변한다. 할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여성이 되기도 하며, 외국인이 되기도 한다. 어느날 일본인 여성이 된 우진을 여주인공 이수가 찾아오는데, 이때의 우진을 맡은 배우가 우에노 주리였다. 상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안 이수는 일본어로 묻는데, 오히려 우진은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또 말은 일본어로 했다. 말할 때는 일본어로 하고, 들을 때에는 한국어로 들어야 한다. 이 설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우진은 한국인이고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없어서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우진이 일본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말하지 못화고 일본어로 말한다. 이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br><br>초능력자가 되는 꿈<br>이건 몇 달 전에 꾸었던 꿈인데, 당시에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지만, 잊고 안 썼던 것 같다. 꿈 속의 나는 아주 짧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었다. 강풀 작가의 타이밍이란 만화에서 강민혁 이라는 인물이 10초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나오는데 아마 그 인물에서 영향을 받아서 꿈 속의 능력이 나온 것 같다. 정확히 10초라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호감이 있는 어느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뭔가 말이 계속 꼬이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말실수를 할 때마다 계속 시간을 되돌려서 벌써 수십번을 말을 걸고 있는 중이었다. 단순히 내 말실수 뿐 아니라 말을 하는 중에 이 여성이 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그냥 확 시간을 돌려버렸다. 그래서 같은 장면에서 수십번째 반복 중이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말을 해도 이 여성은 계속 거절할 거라는 것을 깨닫고 시간을 되돌리길 포기했다. 예상대로 여성은 거절했고 나는 깨끗이 승복했다. 이 장면은 아마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거 어느 특정한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시간의 제한이 없고 횟수의 제한도 없다. 이 주인공이 잠깐 짝사랑 했던 먼 친척(?)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하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신청하는 장면이 나왔었다.&nbsp;<br>특정한 시점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다는 능력은 비디오 테이프나 카세트 테이프를 뒤로 감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이렇게 쓰면 비디오 테이프와 카세트 테이프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느낌을 알 수 없겠구나. 영화 [테넷]의 인버전과는 약간 비슷한 느낌일 수 있지만 개념 자체가 다르기는 하다.&nbsp;<br>이 능력은 방금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그게 실수라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 중요할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달으면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나버릴테니. 그리고 실수를 바로 잡으려 되돌렸음에도 다른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꿈 속 데이트 신청 장면처럼 계속 돌리고 또 돌려도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거겠지. 생각보다 썩 좋은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써먹을 일이 많을 것 같기는 하다.&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글 쓰기, 삶 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43861</link><pubDate>Tue, 11 Aug 2026 0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43861</guid><description><![CDATA[생각해보면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을까? 무슨 근거로? 무슨 자신감으로? 뭐가 그리 잘나서?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그보다 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어렸을 때 꿈은 책방 사장이었다. 지금은 안다. 책방 사장은 결코 마음대로 책을 읽고 사는 직업이 아닌 것을. 오히려 책방 경영과 생계 문제 라는 이중고에 부딪혀 훨씬 더 책을 읽기 어려운 직종의 사람이라는 것을.<br>암튼 어렸을 때 내 꿈은 서점 사장이었다. 어느 작은 시골 동네의 조그마한 책방 사장. 얼마나 낭만적인가 라는 생각을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했었다. 바보였지. 현실을 보지 못하는 멍청한 인간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이던 당시까지는 도서 대여점이라는 가게들도 동네마다 두세개씩 있었다. 가끔은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과 도서 대여점을 같이 하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 당시에 조금 고민을 했었다. 도서 대여점 사장을 할 것인가? 비디오 테이프랑 도서를 같이 빌려주는 대여점 사장을 할 것인가? 그 고민의 뒷 배경에는 그 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난립했던 만화방과 무협 소설 및 무협 만화 양산소 시스템이 있다. 내가 한창 현실 감각 없이 대여점에 대한 고민을 했을 했을 무렵에는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왔던 판타지 소설(글로는 소설이라고 쓰지만 읽을 때는 쓰레기 라고 읽어야 한다.)들이 있었다. 암튼 그 90년대 초중반 무렵에 나는 현실 감각과 무관하게 내가 어느 조그만 시골 동네의 서점 주인 혹은 도서 대여점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br>이것도 조금 웃긴 이야기인 것 같다. 동네에서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 나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감은빛 이라는 덧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어느 정도 쓴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건 그 이야기를 전달한 화자의 착각일 뿐일 것이고, 대중적으로 나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인간이다. 아주 가끔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정도. 암튼 최근에 의외의 인물들에게 글을 엄청 잘 쓰신다면서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40년 가까이 글을 썼고, 20년 이상 남의 글을 고쳤던 입장이라 글을 못 쓰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글을 잘 쓰는 것과는 1대 1로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서 절대 긍정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최근의 나는 아주 긴 시간의 훈련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글을 못 쓰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br>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특정한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하고 꼭 필요한 일인지는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주제로 아주 참신한,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 몇몇 주제에서는 그렇다. 다른 주제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태도가 부담스럽다. 뭔가 내가 글을 쓰면 다를 거라는 그런 기대가 느껴져서 부담스럽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나라고 특별히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타락한 천박한 사회에서는 돈이 있으면 특별한 방법이 생기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대한민국 전체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도 거의 손에 꼽힐만큼 가난한 사람이라 아무런 방법이 없다. 사실 그런 것은 알고 있다. 유명한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준비를 안 하고 특정한 분야에 지식을 전달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많은, 정말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돈을 받는 다고 했다. 그래서 잠깐 동안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강사료가 거의 없어도 강의를 거절하지 않고 다 한다.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내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빈 말이라도 거의 무조건 다시 다른 강의를 청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건 내가 기후위기, 환경, 에너지, 자원순환 분야 다양한 이야기 꺼리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 30퍼센트 정도 약속을 지킨다는 느낌이다. 나는 거의 매번 내 강의에 만족한다. 물론 매번 조금씩 아쉬운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그리 크게 변하는 요소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은 중요하다. 나는 어느 특정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특화된 어떤 중요한 위치를 가진 강사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사람이겠지.<br>아. 글도 말도 다 쉽지 않다. 나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제법 많이 받았지만, 말을 참 잘 한다는 칭찬 혹은 비아냥을 많이 들었다. 나는 확신했다. 상대적으로 순간 기억력이 좋아서 남들의 말들을 잘 요약하고 전달할 수 있으며, 여러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상대적으로 잘 기억해서 틀리지 않게 요약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 능력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억력이 좋아서 특정한 이슈를 만들어 낼 수 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br>최근에도 들었다. 글을 잘 쓰는 양반이 현실은 왜 그렇게 사냐고?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현실도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늙은이를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더니, 약간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멀어졌다. 나는 이미 늙었다. 그냥 좀 내버려 둬라. 글을 쓰고 싶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쓸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내 나이가 점점 늘어날 수록 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수 밖에. 그냥 냅둬라. 좀.<br><br>&nbsp;]]></description></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삶의 흔적속으로</category><title>사이버 펑크 - [테세우스의 배]</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35526</link><pubDate>Thu, 06 Aug 2026 13: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355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636473&TPaperId=174355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017/29/coveroff/k4326364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636473&TPaperId=174355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테세우스의 배</a><br/>이경희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09월<br/></td></tr></table><br/><br>책 표지가 독특해서 일단 꺼내 펼쳐봤다. 그리고 제목도. 아테네 인들이 긴 시간동안 테세우스의 배를 보존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목재가 낡고 썩어서 새로운 목재로 교체하곤 했다는 이야기.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 테세우스의 배는 처음 보존을 시작했던 때의 목재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새로운 목재로 교체했는데, 그렇다면 그 배는 과연 테세우스의 배가 맞는 것일까? 만약 교체되었던 낡고 썩은 목재들을 모두 모아 다시 배를 만든다면 어느 쪽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일까? 당신은 어느 쪽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것인가? 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소설은 그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존재와 정체성 그리고 의식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도록 만든다.<br>한국어 제목은 [테세우스의 배] 이지만, 책 표지에 적힌 영어는 Theseus's paradox 이다. 외국에서는 이 표현이 정식 명칙인 것 같고, 우리는 여기서 역설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인 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 뒷표지에는 Cyberpunk is now 라는 문장이 크게 쓰여있다. 이 책의 장르가 사이버펑크임을 명시한 것이다. 사실 사이버펑크 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데, 그냥 머리속으로는 신체 개조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랐고, 괴상하게 생긴 기계 신체가 덕지덕지 달린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나 기계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리고 온 몸이 기계로 대체된 사람이 기계가 되기 전의 그 사람과 동일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제도도 등장한다. 그걸 증명하지 못하면 기계가 되기 전에 가졌던 재산과 가족관계 등을 모두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br>주제와 접근방식은 정말 좋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좀 아쉽다. 이 책에 대한 다른 100자 평들과 글들을 훑어보니 '클리셰 덩어리'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좀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정도로 이야기가 너무 뻔하기는 했다. 한 편으로 조금 더 정교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과 다른 한 편으로 너무 손쉬운 소재만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결말이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결말은 조금 허무하기는 했지만,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해보니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아니 가장 무난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끝나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br>그리고 묘사도 조금은 아쉽다. 특히 이 소설이 사이버펑크라고 크게 써놓았는데, 미래의 공간 배경에 대한 묘사와 기계로 신체를 대체한 여러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적어서 아쉬웠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머리 속으로 어떤 이미지를 상상해보려고 하는데, 구체적인 묘사가 적어서 막연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하는 부분이 적었던 점이다. 마천루라는 초고층 건물들 안에서만 생활하고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미래 생활을 말하면서 건물 안에서는 주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수직, 수평 이동을 한다고 했고, 건물 밖으로 나올 일이 생기면 건물 간에 연결된 튜브카를 탄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게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외에도 다른 교통수단들도 등장했는데, 역시나 묘사가 별로 없었다.<br>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nbsp;우선 너무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인 주인공을 보자. 주인공 석진환은 거대 재벌 그룹의 회장이다. 상식적인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을만한 부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정략 결혼을 통해 딸을 낳아서, 아내와 딸이 있는데, 사고로 모두 죽었다. 그리고 본인은 그 사고로 크게 다쳐서 신체 대부분을 아니 전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옛날 영화의 주인공인 로보캅은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기계인데, 진환은 뇌 마저도 기계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노 머시기를 통해서 뇌세포를 1대1로 기계로 바꿨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신쳬가 계속 바뀌는데, 맨 처음 신체는 군용 스펙으로 키가 2미터가 넘고, 두꺼운 철판이나 콘크리트도 때려부술 정도의 팔다리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이야기의 중간쯤에는 일반 사람 체격이지만, 총알을 튕겨내는 몸체를 가진 신체로 바뀌고, 맨 마지막에는 실리콘인가 뭔가 사람처럼 부드러운 살결 같은 외관의 신체로 바꾼 것으로 나온다. 아마 필요에 따라 여러 신체를 바꿔 끼운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갈아탄다고 표현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다.<br>이 이야기의 악역은 석진환의 배다른 여동생 석미진이다. 온갖 불법적인 짓들을 통해 거대 재벌 그룹을 일으킨 진환의 아버지가 러시아계 여성을 통해 얻은 딸이며, 금발에 파란 눈이다. 이야기의 공간이 한국이다 보니 평소에 금발을 갈색으로 염색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남성인 진환보다 체격이 더 크고 힘도 좋은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안하무인에 아무것도 거리낌 없이 막나가는 인간이다. 사람 죽이는 것을 벌레 죽이는 것 정도로도 여기지 않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한 사람을 죽였다가 살렸다가 또 죽이기를 수십번 반복하는 것으로도 나온다. 아, 이 소설에서는 마침애 인류가 죽음을 극복했다며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기술이 나온다. 이 재벌그룹 안에서 진환이 주도하는 인공장기와 인공신체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과 미진이 주도하는 손상 신체를 되살리는 기업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두 사람 갈등의 시초다.<br>이 두 남매 외에 가장 비중이 높은 등장인물은 여울이라는 사람이다. 진환이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살려보려고 전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의료, 생명과학 분야 기술들을 섭렵하고, 그중 가장 뛰어난 연구소나 기업을 사들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때 만난 사람이다. 그때는 아직 미혼이었던 진환이 여울에게 빠져들어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이 과거 시점으로 나온다. 그리고 현재 어떤 무리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기며 갈 곳이 없었던 진환이 의지해서 찾아가는 사람이다. 여러모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지하세계에 어지간한 대기업 연구소보다 훨씬 더 기술력이 뛰어난 인물들과 설비가 있고, 진환을 그들에게 연결해서 새로운 신체를 구매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 여울이라는 인물 역시 신체 대부분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원격 조정하는 자신의 대체 신체를 사용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는 이 이야기 전체의 최종 승자로 나온다. 다 좋은데, 조금 더 정보를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마 작가가 마지막 반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덜 주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감정 이입을 할 기회가 적은 인물이 되어버린 느낌이다.<br>그 다음으로 비중있는 인물은 현석이다. 석진환 회장의 심복으로 등장한다. 배다른 동생이 장악해버린 회사에서 단 한 명 믿을 수 있는 인물이자, 개인적인 일들까지 모두 처리해주는 가장 의지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초반에는 이 인물이 조금 더 많은 비중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울이 등장한 이후로는 비중이 확 줄어버렸다. 그러다 되살아난 진환 때문에 다시 조금 비중이 늘어날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비중이 더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마지막 모습은 너무 뻔한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nbsp;<br>친족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동생들, 즉 삼촌들은 세트로 등장한다. 이 거대 재벌 기업에서 지분으로 따지면, 진환, 미진과 거의 대등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너무 손쉽게 제압당해버리면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다만, 그들이 갖고 있었던 차명 지분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그룹 내 권력 다툼 결말을 결정지을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이 부분도 이 이야기가 너무 뻔한 이야기로 느껴지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br>나머지 인물들은 거의 비중이 없는데, 꼭 소개하고 넘어가야 할 사람이 있다. 다섯명이던가 여섯명이던가 다수가 다수의 몸을 함께 사용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이름이 아니라 그냥 '교수'라고 불린다고 한다. 처음 여울이 진환에게 소개할 때는 아직 어린 여성의 신체를 가진 사람인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중에 다른 인격들이 자꾸 튀어나와 여러 차례 말하는 주체가 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인물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어쩌다 여러 인격 혹은 여러 존재가 되어버린 진환이 결국에는 이 인물처럼 함께 공존하는 결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신체도 여럿이고 그 신체들을 공유하는 인격도 여러 명인데, 어째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개념이 떠올랐다. 하나의 몸에 여러 영을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는 '군령자' 라는 존재인데,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했다. 이 군령자는 죽음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나온다. 군령자의 몸에 흡수되거나 자의로 합류하면 계속 몸을 옮겨 다니며 계속 살아가는 개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역사 속 위인으로 분류될만한 여러 인물들이 의외로 군령자의 영들 중 하나로 나오는 부분에서 의외라는 반응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아주 용맹한 장군이 죽음을 앞두고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자." 라는 유혹에 빠져 군령자의 몸에 합류를 한다던가, 어떤 훌륭한 성취를 이룬 과학자나 예술가가 평생의 업적을 이루기 직전에 죽음을 앞둔 상황이라면 영이 되어서라도 그걸 이루고 싶어서 군령자에 합류한다던가 이런 개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긴 시간을 살아온 군령자는 그만큼 수많은 영을 거느리고 있기에 어떤 영들은 그 하나의 몸에서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라는 인물은 각자의 장점이 필요한 순간 서로 몸을 옮겨 다니며 활약할 기회가 충분하리라. 아, 지금 막 생각났는데, 워쇼스키 자매가 오래 전에 제작했던 드라마 시리즈 [센스8]도 8명의 주인공이 짧은 시간 동안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몸을 공유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처음에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 몸이 바뀌기도 하는데, 나중에는 이런 능력을 활용해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자신들과 적대하는 세력에 맞서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배우 배두나는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무술인으로 등장하는데, 무기를 든 다수의 적들을 상대할 때면 어김없이 배두나가 등장해 적들을 쓰러뜨린다. 또 남미쪽 인물 중 카 레이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적들에게 쫓기는 상황이면 반드시 이 인물이 등장하여 경이적인 실력으로 자동차 추격전을 펼친다. 주인공 일행이 8명이나 되다보니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고, 이 8명이 서로 몸을 바꿔가며 위기를 극복해간다는 설정이 신선해서 즐겨 봤었는데, 세번째 시즌까지 찍은 후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막대한 제작비 때문이 아닐까 싶다.<br><br>이&nbsp;이야기가 펼쳐지는 도시는 평택인데, 이 미래 시대의 평택은 평택혁신도시라고 불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간 같은 느낌이다. 책 속 설명에 의하면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서 미군 기지가 축소되고, 그 자리에 한미연합군사연구소가 들어서고,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첨단 기술들을 연구하고 그 성과를 시험하는 공간으로 신기슐에 대한 모든 규제를 면제하는 특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설정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nbsp;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총격전이 벌어지는데, 경찰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중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잔인한 살인극들이 등장하는데, 공권력의 개입은 아예 없다. 마지막에 검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국가 권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구나 싶기는 한데, 여러모로 우리나라가 배경인데, 이렇게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지고,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 어색하다.<br>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우리나라 모습이 아니라 첨단 기술에 대한 대부분의 규제가 사라진 좁은 영역, 특구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는 단서를 잊지 말아야 조금 억지로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특구 안에서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악착같이 돈을 끌어모았다는 진환과 미진의 아버지 덕분에 그들이 비정상적인 재력과 권력을 손에 쥐었다는 부분도 전제조건으로 달아놓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설정들이 너무 손쉬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이야기가 뻔한 이야기라고 느끼게 되는 부분인 것이다.<br>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진환의 존재는 두 번 더 등장한다. 즉 막판에 진환은 세 명이 된다. 이 세명 중 누가 진짜 진환인가? 우리는 과연 누구를 진짜 진환이라고 인정할 것인가? 여기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등장한다. 의식이 계속 이어져 온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계 몸을 가진 진환이 진짜 진환인가? 소설에서는 이 인물에게 컨티넘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 시점의 진환의 의식을 백업해 놓은, 그러나 신체는 없이 메모리 칩으로만 존재하는 의식(몸이 없으니 인물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어색한 느낌)이 진짜 진환일까? 이 녀석의 장점은 가장 완벽한 기억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며, 그래서 메모리로 불린다. 그리고 기계로 완전히 대체해버런 진환이 가졌던 원래 신체 부위들을 모두 가져다가 다시 소생시킨 진환이 존재한다. 이 진환은 그러나 기억이 아예 없다.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 모습으로는 이 인물이 가장 완벽한 진환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차명 지분이 담긴 태블릿을 열기 위해서는 신체 인증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미 기계 몸으로 바뀐 진환은 이 신체 인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암튼 이 진환은 보디라고 불린다.<br>일단 의식을 백업 받아놓은 메모리는 제쳐두고, 원래의 의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기계 몸의 진환이 진짜 진환일까, 아니면 기억은 없지만 원래 신체를 그대로 갖고 있는 진환이 진짜 진환일까? 처음에는 너무 당연히 컨티넘으로 불리는 의식이 이어진 진환이 너무 당연히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막판에는 정말 그게 너무 당연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 지점에서 이 이야기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싶다. 그리고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이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br>이 소설 초반에도 언급되는 내용인데, 실제로 인류가 노화라는 현상의 원인으로 밝힌 유전자 텔로미어를 유지하거나 복구하는 기술들이 개발 중이라고 들었다. 언젠가는 인류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또는 이 소설에 나온 것처럼 점점 기계로 신체를 대체하는 미래가 올 수도 있겠지. 그런 미래가 되면 이 소설은 일종의 예언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현재의 과학기술들도 아주 오래 전에 SF 소설에 나온 개념들을 살린 것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SF를 읽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017/29/cover150/k4326364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0172936</link></image></item><item><author>감은빛</author><category>제목없는 게시판</category><title>덥다 더워</title><link>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16252</link><pubDate>Tue, 28 Jul 2026 06: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416252</guid><description><![CDATA[폭염과 열대야<br><br>언제였던가? [뉴 노멀] 이라는 영화를 봤었다.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바탕으로 여러 상황들을 그려내는 옴니버스식 영화였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몇 있어서 나중에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실 최근의 나는 조금 무기력증에 빠진 것처럼 뭔가 의미있는 일들에 잘 집중을 못하고 있다.<br><br>북플 앱에서 작년 오늘 쓴 글을 열여봤다.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며, 에어컨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생활하는 이야기였다. 벌써 몇 해째 여름마다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아직 혼자 사는데, 무더위 때문에 에어컨을 설치한 친구와 혼자 신축 빌라로 이사한 친구 등 친한 친구이며, 에어컨이 있는 사람들 집을 옮겨다니며 열대야와 폭염이 심한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다.<br><br>올해는 조금은 양상이 달랐다. 애들 엄마와 아이들이 태국으로 며칠 여행을 간다고 애들 엄마 집으로 와서 고양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고양이들이 더위에 힘들어하면 안 되니까 사람이 집에 없어도 에어컨을 늘 켜두고, 조금 높은 온도와 제습 운전을 설정해 두라고 요청 받았다. 생각해보니, 친한 친구이자 가끔 이삼년째 가끔씩 한 여름에 신세를 지곤 했던 지인도 고양이 때문에 에어컨을 끄지 않고 조금 높은 온도로 계속 켜두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전기 요금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인버터 형 에어컨과 전기요금 누진 요금제 개편 등으로 가능한 상황이었다. 암튼 한 편으로 이 열대야에 집에서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고,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데, 어느 집 고양이들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고양이들이 나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에 살고 있구나. 나는 그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 매달 양육비를 대주고 있는데도, 에어컨도 없이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며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매일 누군가 나를 재워줄 지인과 친구를 찾아다니고 있구나.<br><br>애들 엄마와 아이들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시점에 나는 또 어느 집으로 혹서기 대피를 가야할까 고민이었다. 정말 다행히 친한 친구 하나가 며칠간 자신의 집을 쓰라고 출입 정보 등을 알려줬다. 가족 모두가 약 10일 가량 일본 여행을 다녀온다고, 그 동안 집이 비니까 자기 방에서 생활하라고 제안했다. 아주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 집으로 이사하는 날 이삿짐 옮기는 걸 도와주기도 했던 친구이다. 그 친구는 이사짐 옮기는 걸 도왔던 사람을 집이 비는 동안 묵게 해주는 걸 부모님도 모두 승낙했다고 알려줬다. 평소 여름마다 내가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살아가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본인은 가족들 때문에 나를 돕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라서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았다. 암튼 감사한 마음으로 그 집에 며칠 머물 예정이다.<br><br>정말 에어컨 없이 밤에 잠을 자는 것이 두려운 날씨다. 선풍기 정도로는 이 온도와 습도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매년 이런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는 이 땅에서 언제까지 에어컨 없이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br><br>장마? 열대지방 국지성 폭우, 스콜?<br><br>기후위기 수업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한 것도 벌써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나라는 이제 아열대 기후에 가깝게 변해서 장마의 양상도 달라졌다고. 이젠 비가 와도 중부 지역, 남부 지역 이렇게 넓은 지역에 긴 시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좁은 특정한 지역에 강력한 폭우를 내리고는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고. 최근에 본 기상청 기후 예보관의 인터뷰에서는 비구름이 좁은 지역에서 생성되어 주위 기압의 영향으로 쉽게 움직이는 탓에 정확한 일기예보를 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점 장마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내가 이런 장마의 양상을 설명한 단어 중 하나는 열대지방의 국지성 폭우인 스콜이었다. 정말 아주 짧은 시간 엄청난 폭우를 퍼붓고는 금방 떠나버리는 비를 몇 년째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도 한참 엄청난 폭우가 퍼붓길래 잠시, 거의 5분 가량 어느 건물 아래서 비를 피했는데, 미친듯이 퍼붓던 폭우가 약 5분이 지나자 그쳤던 기억이 있다. <br><br>최근 나는 낮에 배송 일을 하다가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낮이었고 햇살이 강한 뜨거운 날씨였다.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이슬비 수준이었다. 그날은 배송 건수도 많았고, 장거리 이동이 대부분이라 서둘러 이동 중이었다. 한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햇빛이 쨍한데 비가 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저 멀리까지 시야가 닿는 곳을 보고 있었는데 문득 깨달았다. 저 멀리에서는 비가 내리는 양상이 달랐다. 폭우였다. 아직 내가 머무는 곳엔 이슬비 수준의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왁 쏟아붓는 폭우가 저 멀리에서부터 실시간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냥 감으로 느낀 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평소 매일 운전하면서 느끼는 거라 막 틀린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는데, 폭우가 저기 약 700미터 거리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약 400미터 거리로 다가오자 소리가 먼저 들렸다. 익숙한 폭우의 소리가 들리는데, 아직 내 차가 있는 곳에는 조금씩만 비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폭우가 빠르게 다가와 내가 정차해 있는 교차로에 들이쳤다. 순식간에 엄청난 소음과 함께 비가 쏟아졌고, 와이퍼 속도를 최대로 설정해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폭우 때문에 약간 번져 보이는 시야 너머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는 걸 확인했다.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차를 움직였다. 자동차라는 문명의 도구도 폭우라는 자연 현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50킬로미터 제한 속도 도로에서 약 20킬로도 안되는 속도로 거북이처럼 움직이며 그 동네를 벗어나고 있었는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비가 퍼붓는 소리가 달라졌다. 앞을 보니 점점 더 빠르게 비가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폭우가 저 멀리에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또 비가 잦아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했다. 이런 것이 바로 열대지방에서 자주 일어나는 국지성 폭우인 스콜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 본 기상청 소속의 한 기후학자는 스콜이랑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폭우의 양상은 비슷하지만, 그것이 일어나는 원인과 성격이 달라 스콜이라 부를 수는 없다고 말하더라.<br><br>고층 아파트와 엘리베이터<br><br>몇 차례 배송을 갔던 조합원 집은 47층에 있었다. 47층이라! 젊은 시절에 한창 막노동을 하며 아파트 공사장을 다녔던 때에 제일 높은 현장은 20층 언저리였다. 어쩌다 10층 이상 고층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아직 뼈대 외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 때문에 고소공포증을 느끼곤 했었다. 그땐 그래도 20층 언저리가 가장 높은 아파트였는데, 이젠 50층 정도로 바뀌었구나. 궁금한 것은 엘리베이터 버튼이었다. 20층 정도까지는 지하4층 정도부터 꼭대기 층까지 모든 층의 버튼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당 층수를 찾아서 누르는 구조다. 하지만 이 건물 엘리베이터는 달랐다. 층수를 표기한 버튼이 아예 없었다. 디지털 키패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47이라는 숫자를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무사히 배송을 마치고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는 화면에서 영문 B와 숫자 2를 눌렀더니 다시 빠르게 하강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조금은 겁이 날 정도였다. 처음엔 엄청 신기했는데, 몇 달 동안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지기는 했다.<br><br>며칠 전에는 14층으로 배송을 갈 일이 있었다. 지하주차장 3층에서 공동현관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찾아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는 표시가 보이며 운행하지 않는 상태였다. 내가 든 상자는 제법 무거웠고, 올라갈 곳은 14층, 여기는 지하3층. 요즘 아파트는 별도로 L층이 존재하는 곳도 많다. 적어도 17층, 아니면 18층을 계단으로 올라야 할 상황이었다. 불가능했다. 이후에 배송할 곳들도 많은데, 여기서 이 무거운 상자를 들고 17층 이상을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냥 맨몸으로 가도 10층 이상은 체력적으로 힘들다. 아직 20대였던 시절에는 40킬로그램 짜리 쌀 가마를 메고 16층 가량 계단을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날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그때는 젊어서 별 생각 없이 당연히 계단을 그냥 올랐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조합원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 분은 상황을 이해하고 계단실 입구에 상자를 두고 가시면 나중에 엘리베이터 점검이 끝나고 찾아가시겠다고 했다. 나는 계단실 입구에 상자를 놓아둔 사진을 찍어 보내고 다음 배송지로 출발했다. 만약 이 건을 계단을 올라야 했다면 아마 그날 전체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br><br>교통사고 결과<br><br>저번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던 상황을 썼었다. 그날따라 지하주차장에서 직접 올라갈 통로가 없는 배송 건 때문에 시간을 많이 허비했는데, 하필 다음 매장에서는 배송 건이 유난히 많으니 얼른 오라는 연락이 왔었다. 계속 전화를 받지 않던 조합원과 어렵게 통화 연결이 되었는데, 그는 지하주차장에서는 직접 연결되는 통로는 없으니 지상으로 올라와서 해당 건물을 찾아오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했다. 내가 해당 아파트 단지를 여러차례 다녀봤는데, 지상으로는 차로 접근할 길이 없었다. 오직 지하주차장으로만 차량이 드나들도록 설계된 아파트였다. 그럼에도 그 조합원은 그런 건 경비실에 문의하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급한 마음에 일단 지하주차장을 나가려고 후진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뒤에 갑자기 없던 자동차가 있었고 접촉사고가 생겼다. 황당한 건 그 운전자의 태도였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 듯 행동하며, 속도가 거의 없는 상태의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였음에도 자신과 동승자가 놀랐으니 병원을 가겠다고 했다. 참, 어이가 없었다. 보험회사 담당자는 예전과 달리 이런 경우 병원 가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사고가 난 책임이 내 쪽에 조금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경미한 접촉으로 병원을 간다는 것, 그것도 운전자와 동승자가 모두 가겠다는 것은 납득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려웠지만,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며칠 전에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상대측 과실도 일부 인정이 되었고, 상대방이 병원을 갔으나 딱히 사고로 인한 부상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너무 당연한 결과였는데, 결국 이렇게 된 상황 자체는 여전히 납득도 용납도 되지 않았다. 그 여성들은 도대체 뭘 믿고 병원을 가겠다고 했을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그런 몰상식한 짓을 저지르는 걸까? 참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br><br><br>아침 일찍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일찍 자려고 했는데, 남의 집이라 그런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꿈에서도 이런 저런 악몽들이 반복되며 새벽에 깨버린 후에 다시 잠들지 못했다. 어차피 잠도 못 자는 상황이면 글이나 쓰자라고 생각해, 작고 불편한 폰 화면으로 이 글을 두드렸다. 오전 일정은 어떻게든 되겠지만, 오후에 운전할 때 졸릴까봐 걱정이다. 오늘은 커피를 좀 많이 마셔야 할 것 같다.]]></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