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서 다시 자판을 두드린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사고로 다친 주요 증상 8가지에 대해 쓰려다가 그 첫번째인 안와 내벽과 하벽 골절 이야기만 간신히 쓰고 글을 마쳤다. 오늘은 두번째인 비골(코뼈) 골절부터 다시 써야겠다. 그 전에 잠시 이번 주 일상을 아주 짧게 이야기 하고 시작하겠다.


이번 주는 8월의 마지막 날이 월요일이었다. 만약 일하는 입장이었다면 정말 정신없이 바빴을 날이다. 나는 그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심지어 출근하던 시절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속을 비우고, 다친 몸을 조심스럽게 씻느라 길게 샤워를 하고 (대충 급하게 씻으려다가는 통증 때문에 못 씻는다.) 나와서 전날 저녁 미리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 샌드위치와 두유를 꺼내고, 계란 프라이를 하나 만들고, 견과류를 작은 접시에 담아 책상 앞에 앉아 뉴스를 보면서 먹었다.


내가 이렇게 갑자기 다쳐서 누군가는 고생을 하고 있을텐데,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참 팔자 좋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매 순간 통증을 견디는 입장에서 잠에서 깨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통증 때문에 늦잠을 자기도 어렵도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면 빨리 뭔가를 먹고 약을 먹어야 통증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가, 이내 간밤 내내 통증과 싸우며 땀흘린 몸을 씻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앞서도 말했듯 조심조심 씻느라 오래 씻고 나와서 빨리 먹기 위해 비교적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약을 먹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사고로 다쳐서 출근도 안 하고 팔자가 좋다고 말한다면 출근해서 누구보다 빡세게 정신 없이 일해도 좋으니 다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행히도 약은 강하게 졸리는 약이라 약을 먹고 조금 쉬다보면 금새 졸거나 잠에 빠진다. 오래 자지는 못한다. 금방 깨서 통증에 괴로워하다가 다시 다음 끼니를 준비하고, 먹고, 약을 먹고 조금 쉬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한다.


그 와중에 병원에 외래 진료를 받으러 가거나, 경찰서에 피해자 진술서를 작성하러 가거나, 아이들을 만나러 가거나 밖에 나가야하는 일들도 생기고, 가끔은 오래 나가 있어서 졸린 약을 먹고도 잠들지 못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견디는 날들도 있었다.


오늘이 수요일이니 이번 주는 겨우 3일이 지나가는 상황인데, 그 중 이틀 동안 일정이 많았다. 밖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고, 집에서는 사고와 관련해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보거나,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글을 쓰거나, 내 경과를 자세히 알리는 글을 써야 했다. 결코 팔자가 좋은 일이 아니다. 



-02 비골 골절 / 성형외과


앞서 첫번째 이야기를 하는 중에 성형외과 수술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코 뼈 골절에 대해서도 일부 이야기를 했었다. 쉽게 말하면 왼쪽 눈밑뼈가 부러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코 뼈가 함몰될 정도의 충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코는 그냥 무너져 내려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추정하는 말투를 쓰는 이유는 일부러 사고 초기 일정 시기까지 내 얼굴을 볼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외면했다. 혹시라도 그때 내 얼굴을 보았다면 평생 그 처참하게 망가진 얼굴이 꿈에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는 것도 너무나도 싫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라는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내겐 다행이었다. 이 상황에서 다행이란 말을 쓰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선 그런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다.


우선 코로나 덕분에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무조건 보호자 없이 환자만 입원하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환자에게 필요한 모든 사소한 일들은 직접 하거나, 직접 할 수 없다면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의 손을 빌리거나, 아니면 그냥 포기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게 무척 서운하거나 힘들었다. 혼자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호자 없이 하루종일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의 도움은 무척 고맙지만, 일정 부분 형식적이고 그 한계가 명확했다. 나처럼 혼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에는 절대 보호자의 존재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코로나 덕분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만약 보호자가 늘 내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면 훨씬 더 어려워 졌으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혼자 사는데, 대체 누가 내 보호자로 병실에 오랫동안 머물러 줄 것인가? 사고가 나고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일정 시간동안 이혼한 아내가 내 곁을 지켜줬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너무나도 싫기도 했다. 이미 내 인생과는 관계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내가 발목을 잡는구나 싶은 기분. 진짜 너무 끔찍하게 싫었다. 고통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내 곁에서 내 손을 꽉 잡아주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다음 순간 억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끄집어 내어 돌아가도 된다고, 고맙고 또 미안하다고 울먹이며 말한 이유가 그것이다.


애들 엄마는 새벽에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애들 고모, 즉 내 여동생에게 연락했고, 동생은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걱정을 짊어지고 부산에서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분명 엄마는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렇게 다쳤는데,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엄마가 곁을 지켜준다면 말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몸이 약한 엄마가 내 걱정과 스트레스를 견디며 제대로 된 보호자용 침대 하나 없는 병실에서 나를 돌보는 일은 어마어마한 중노동이 될 터였다. 나 때문에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원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혼한 아내, 엄마, 아버지, 사랑스러운 아이들 등 그게 누구라도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망가진 내 얼굴을 보는 일은 결코 원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랬다. 아이들이 받을 충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고 초기에 애들 엄마가 애들이 나를 너무 보고 싶어 한다고 병원에 데려올테니 잠시 얼굴이라도 보라고 할 때 아직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거절했다. 나도 일부러 내 얼굴을 안 보려고 버티고 있는데, 다른 누군가에게 내 얼굴을 보여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코로나19 덕분에 병실에는 보호자가 머물 수 없었고, 나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 사이에 혼자 남아 묵묵히 견딜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게다가 퇴원한 이후에도 집 밖으로 나설 때엔 늘 마스크를 써야 하니 아직 회복되지 못한 얼굴을 드러내보이지 않아도 좋다. 모자 하나를 눌러 쓰고, 마스크를 쓰고 나면 얼굴에서 눈만 남는다. 


잠시 코로나19 가 미친 영향 덕분에 다행이란 이야기로 새버렸는데, 암튼 성형외과 수술을 통해 무너진 코를 세우긴 했는데, 그것은 의사가 표현한 것처럼 '세워만 놓았을 뿐'이었다. 원래의 내 코보다 낮았고,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록 내 얼굴이 잘생긴 편은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못 생긴 편에 가까웠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얼굴이 좋았다. 아무리 못 생겼었어도 내 얼굴이었으니까. 그 얼굴로 최대한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재수술을 통해 내 코를 되찾고 싶다.


코 수술을 받고 나니 코 속에는 깊이에 따라 3중으로 코가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 물질을 채워놓았다. 제일 바깥쪽에 있는 것들은 수술 후 일주일 후에 의사가 꺼내주었다. 그때까지 코 전체가 지지물질에 꽉 막혀 코로는 숨을 쉴 수 없었고,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니, 말을 하거나 먹는 일이 힘들었다. 미음을 먹다가도 숨이 막히기도 하고,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할 때에도 발음이 잘 되지도 않고, 숨이 차서 말을 길게 하기도 어려웠다.


코 중간쯤을 막은 물질들은 수술 후 약 2~3주 사이에 녹아서 흘러내렸다. 이때는 마치 축농증이나 비염에 걸린 사람처럼 줄즐 흘러내리는 물질을 닦기 위해 늘 손에 손수건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코로 숨 쉬지 못하는 답답함이 많이 해소되었고, 발음도 많이 좋아졌고, 먹는 것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마지막 맨 안쪽을 막아놓은 물질들은 수술 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서야 녹아서 흘러나왔다. 불친절한 성형외과 의사가 잘 설명해주지 않아서 나는 중간을 막았던 물질들이 흘러나온 이후에 더이상 막아놓은 건 없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완전히 코로 숨을 쉴 수 없는 건 다친 상처 때문이 아닐까 예상했다. 앞으로 평생 이 답답함, 혼자서는 제대로 숨을 잘 쉴 수도 없는 답답함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한참 더 시간이 지나서 맨 안쪽을 막고 있던 것들이 흘러나오고서야 비로소 코가 뚫린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은 결코 다치기 전 편하게 숨쉬었던 느낌은 아니었다. 여전히 무언가 답답하고, 불편하고,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아마 아주 오래 갈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코 속에는 지지물질을 채워놓았다면 코 위에는 딱딱한 재질로 되니 코의 굴국을 살린 모양의 보호대를 덮어서 붙여놓았다. 이게 또 참 얼굴을 살벌하게 만드는데 한 몫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이걸 하루종일 붙이고 지내는 것이 참 답답하고 불편했는데, 퇴원하고 나서는 집에서는 벗어 놓고 있다가 자기 전에 다시 붙이곤 했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 수시로 낮잠을 자곤 했기 때문에 집에서도 거의 늘 붙이고 있어야 안심이 되긴 했다. 혹시 자가다 실수로 코가 눌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잘 때는 꼭 붙이고 있으라고 의사가 강조했었다.


그리고 이 보호대는 아직 낮은 나의 코를 오히려 감춰주는 역할과 내가 다친 사람이라고 낯선 이들에게 알려주는 효과를 일으켰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러 가거나 누군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야 할 자리에는 꼭 이걸 붙이고 갔다. 나중에 성형외과 외래 진료 때 이제는 코 뼈가 많이 아물었으니 안 붙여도 된다고 하면서 내게 묻지도 않고 그 보호대를 버려버렸을 때는 좀 화가 나기도 했다.


언젠까지 그 보호대 뒤에 숨어서 내 낮은 코를 감출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갑자기 버려버리다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03 얼굴 열상


사고를 당하자마자 나는 피를 많이 흘렸다. 그 피는 대체로 다 얼굴에서 흘렸다. 피는 코와 뺨의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와 귀를 타고 머리칼을 적시다가 목으로 내려왔다. 온 얼굴과 귀와 머리칼과 목이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가해 운전자는 기겁을 했을 것이고, 출동한 구급대원들과 경찰들도 내가 아주 심하게 다쳤다고 여겼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심하게 다친 것이 맞다.


코 아래쪽은 인대가 다 드러날 정도고 깊게 찢어졌고, 양쪽 뺨으로도 심하게 찢어졌고, 상처로 인해 얼굴이 퉁퉁 부었고, 얼굴이 제대로 된 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의 나를 처음 찾은 보호자는 앞서도 말했듯 이혼한 아내였다. 그는 내 주위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망가진 내 얼굴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이었다. 그래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었을텐데, 꽤 오래 같이 살았던 사람인데, 그런 얼굴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게다가 그는 약 3시간 가량 걸린 1차 봉합수술을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았다. 


처음 실려간 병원 응급실에서였다. 레지던트 두 명이 부분 마취하고 봉합수술을 시작했다. 찢어진 상처로 인한 통증이 부분 마취 덕분에 오히려 안 느껴져서 조금은 견딜만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이 봉합 수술을 하는 동안에는 최대한 몸을 안 움직이려 조심하면서 내 몸의 상태를 어떻게든 파악해보려고 애썼다. 상체를 전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 오른팔도 팔굼치 아래로 손을 쥐거나 손목을 움직이는 건 가능하지만, 팔 자체를 들어올리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다행히 왼팔과 왼손은 아무 이상없이 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봉합수술이 길어지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두 레지던트가 내 얼굴 위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걸 고스란히 느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마취 덕분에 통증은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살갖을 꿰뚫고 잡아당기고 묶는 감촉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봉함수술이 길어지면서 일부 부위에 마취가 풀리기 시작했다. 의사가 먼저 경고했다. 봉합수술이 길어져 곧 일부 마취가 풀릴텐데, 사정 상 다시 마취를 할 수 없으니 최대한 참으라고. 가능하면 빨리 마무리 해보겠다고 했으나, 한 명은 더 일찍 자리를 떠났고, 다른 한 명도 결국은 완전히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 부분 마취가 풀리기 시작한 시점이 내겐 지옥문이 열린 것이나 다름 없는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아팠다. 고통 때문에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입을 꽉 다물고 간신히 낮은 신음 소리만 내며 버티려 안간힘을 썼다. 곁에서 걱정스런 시선으로 계속 지켜보던 애들엄마는 내 손을 찾아 잡고서 꽉 쥐어주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의연하게 통증을 참고 싶었지만, 현실은 늘 찌질하기 마련이다. 점점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겠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점점 신음 소리는 커졌고, 자꾸만 몸이 움직여졌다. 그때마다 눈 앞에 얼굴을 맞대고 있는 레지던트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실은 그가 그렇게 긴 시간 고생하면서 꼼꼼하게 봉합을 해준 덕분에 그나마 얼굴이 이 정도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래도 그 순간에는 그 레지던트가 너무나도 싫고 미웠다.


그리고 너무나도 물이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는 내게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처분을 내려 놓은 상태였다. 부분 마취이긴 하지만 마취를 했었고, 봉합 수술을 한 부위가 하필 입 바로 위쪽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 목이 말라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물이고, 제일 먹고 싶은 것도 물이고, 물 외에는 어떤 산해진미도 다 맛이 없고, 의미도 없다고 여겼다. 더 바라지도 않고 그냥 딱 물 한 컵만 벌컥벌컥 시원하게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타는 목으로 마른 침을 억지로 삼켰다.


아마 1차 봉합 수술을 마치고 서너시간 쯤 지나서 부산에서 출발한 엄마와 아버지가 도착하셨고, 내 곁을 계속 지켰던 애들 엄마와 교대해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울먹이며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고 낮게 말했고, 나는 몸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고 억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엄마라고 한 번 부르고는 눈물에 눈 앞이 흐려져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 간호사가 물을 마셔도 된다고 했고, 상체를 일으킬 수 없어서 빨대로 물 한 모금을 마셨는데, 그렇게 상쾌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 물 맛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오후 늦게 처음 봉합수술을 했던 두 명의 레지던트가 다시 와서 동시에 2차 봉합수술에 들어갔다. 부분 마취를 하고, 오전에 완벽하게 봉합하지 못한 부위들을 짚어가며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두 번의 봉합 수술은 거의 4시간이 걸렸고, 그들은 최선을 다 했으나 찢어진 상처가 워낙 깊었고, 상처 단면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지 않고, 지저분하게 찢어져 있어서 완벽히 꿰맬 수 없었음을 설명했다. 그들은 후유증이 생길 확률이 크다는 말로 나와 엄마를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었다.


봉합 수술이 끝난 후에 해당 병원에서는 그야말로 나를 짐짝처럼 응급실 한 구석에 방치했다. 그들은 더이상 나를 치료할 의지가 없었다. 자기네 병원에서는 더는 치료할 수 없으니 치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났다. 그렇게 밤이 되어서야 이송할 병원이 정해졌다고 했다.


두 번째로 옮겨간 병원은 외상외과가 있는 곳이었다. 아마 사전에 연락이 되어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그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처럼 생겼지만, 다른 환자들과는 분리된 아마 외상외과가 별도로 사용하는 응급실이 아니었을까 싶은 공간에 옮겨져 대략 열 댓명 정도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둘러쌓여 발가벗겨졌고, 온 몸의 피해 정도를 보여주고 설명하고 있었다.


외상외과 레지던트들은 얼굴 상처를 비롯한 온 몸의 상처 치료에 전문가들이었다. 또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메디폼이라는 상처 치료의 새로운 기술을 접했다. 


이 병원에서는 대략 사흘 정도마다 한 번씩 얼굴을 비롯한 온 몸의 상처를 소독하고 메디폼을 갈아줬다. 얼굴은 특히 더 신경을 많이 써줬다. 봉합 수술 후 8일 혹은 9일 정도 지나서 실밥을 제거해줬다. 당시 봉합수술 했던 레지던트들이 코 안쪽은 녹는 실을 사용했고, 바깥쪽과 뺨 부위는 녹지 않는 두꺼운 실을 썼다고 설명했었다. 


나는 그러니가 사고 후 약 10일 가까이 지나서 실밥을 제거한 후에야 비로소 거울로 내 얼굴을 보았다. 붓기가 많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망가진 얼굴. 전혀 내 얼굴처럼 느껴지지 않는 어떤 낯선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피부가 찢어진 상처는 그로 인해 주위 신경 조직이 죽어버려서 감각이 일부 없어지거나 감각 이상 및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는 왼쪽 뺨과 코의 거의 대부분 감각을 잃었다. 코와 뺨을 만지면 내 살이, 내 피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꼭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닌 것이 자꾸 이상한 감각들, 예를 들면 봉합수술을 할 때처럼 실로 꿰어서 잡아당기는 것 같은 감각 혹은 살을 후벼 파내는 것 같은 감각들이 느껴졌고, 자주 통증을 동반하기도 했다. 이런 이상 감각들은 심할 때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특히 밤에 자려고 누으면 더 심해져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행히 내 설명을 들은 의사가 딱 맞는 약을 처방해줬고, 그 약을 먹은 이후로는 잠을 못 이룰 정도는 아닐만큼은 나아졌다. 사고 후 약 한 달 반이 지난 지금도 매일 그 약을 먹고 있으며, 만약 그 약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벌써 정신 병에 걸렸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을지도 모를 만큼 괴롭고 힘든 증상이었다.


문제는 이 증상이 상당히, 아주 오래갈 것이라는 의사들의 예언이 있었다. 적어도 1년. 아니 1년이 넘게 지나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어쩌면 이 감각 부분은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을테니 결국 어느 시점에서 적응하고 평생 살아야 한다고 말한 의사도 있었다.


천만 다행으로 안면 근육을 다치지는 않았다. 양 뺨과 입과 코 근처의 근육들은 다 움직일 수 있다. 다만 아직 붓기가 덜 빠져 원활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근육도 있다. 그래서 조금 이상하거나 어색하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표정은 다 지을 수 있다. 


언젠가 나는 페이스북에 매일 아침 샤워하고 거울을 보는 것이 즐겁다고 썼었다. 벗은 내 몸이 너무 예뻐서 눈이 즐겁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매일 아침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는 일이 너무나도 괴롭다. 


몸에는 일단 오른쪽 가슴 근육 옆으로 길게 수술자국을 봉합한 흉터가 있고, 그 조금 아래로 짧게 폐에 튜브를 삽입했던 흉터가 있다. 뭐 이 흉터들은 다 아물었고, 어차피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빠르게 회복되어 가고 있어서 이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얼굴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저 낯선 얼굴은 대체 누구인가?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나야 내 익숙한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니 정말 다시 볼 수 있는 걸까? 평생 이 낯선 얼굴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고 겁나고 힘들고 괴롭다.


퇴원 후 몇 명의 지인들을 만났다. 어지간하면 내 얼굴을 아는 사람들을 안 만나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어쩔수 없이 만난 사람들이 있었고, 또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었다. 


일 때문에 만난 조합 이사이자 선배들은 얼굴 때문에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고. 이 정도면 바로 복귀해서 일 해도 되겠다고 했다. 물론 이 분들이 표현은 본인들의 솔직한 심정이며, 일부러 나를 건드릴 의도는 없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들의 말이 비꼬는 것처럼 들리거나 왜곡된 의도를 숨긴 것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친한 선배는 몇 해째 독거 어르신 반찬 봉사를 해왔는데, 내가 퇴원한 후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죽과 반찬을 해와서 전해줬다.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안 챙겨줘도 된다고 그렇게 얘기해도 듣지도 않고 계속 가져온다. 그나마 바쁜 양반이라 자주가 아니라 주 1회 정도라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 선배도 마스크를 쓴 상태의 나를 보더니 걱정한 것과 달리 멀쩡하다는 표현을 썼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은 아니 꽤 오랫동안 계속 마스크 쓰고 살아가야 하는데, 찢어진 상처 흉터 몇 개와 코는 마스크 쓰면 안 보이니까 괜찮다고. 나중에 다시 재 수술 받으면 되지 않냐고 말했다. 그래 그 말이 틀린 말은 분명 아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막상 그 말을 직접 듣는 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더라.


역시나 오늘도 글은 길어졌다. 그래도 지난 번과 오늘까지 해서 얼굴 부위 3가지 손상은 마쳤다. 다음에는 아래로 내려와 얼굴 다음으로 큰 손상이었던 가슴 부위 손상에 대해 적어야겠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혼자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 못해 아무거도 할 수 없음을. 그렇게 무기력한 자신을 깨닫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소변과 관련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었다. 이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의 영역이었다. 총 3주 간의 입원 기간 동안 1주일 정도 혼자 움직일 수 없었는데, 그 시간이 뒤의 2주일에 비하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고 괴로웠었다.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다. 다음에 또 언제 책상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컨디션이 괜찮으면 빨리 돌아올 수 있겠지.


매미에 비교할 정도로 위력이 강한 태풍이 올라온다는데, 부디 큰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특히 내 고향 부산에 피해가 없기를. 부산에서도 우리 부모님께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20-09-0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력이 강한 태풍처럼 어마어마한 사건을 담담하게 쓰셨습니다.
이 정도로 긴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몸도 정신도 회복되고 있는 증거라고 믿어요.
글쓰기의 치유의 힘이 발휘되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하루빨리 쾌차하시기를 함께 바랍니다.

2020-10-01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교통사고에 대한 글을 하나 쓰고 이어서 다음 글을 쓰려고 했으나, 두 가지 이유로 일주일이 지난 오늘(또 다시 금요일) 자판을 두드린다. 우선 사고 이후 일상과 여러가지 생각들을 모아놓은 글은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개인정보를 포함해 쓸데없이 자세하고 복잡해서 이곳 알라딘에 공개하려면 글 자쳬를 다시 써야하는데, 그걸 어느 정도로 정리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며칠 전에 아주 자세하게 글을 쓰다가 그냥 지워버리고 며칠이 지났다. 


두 번째 이유는 몸 컨디션이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정도로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태풍이 한 몫하기도 했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태풍을 대비해 태양광발전소 비상 점검을 나가야 한다. 실무책임자인 나를 대신해 현재 모든 업무를 맡고 있는 후배 활동가는 일을 무척 잘 하는 편이라 무척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경험의 차이는 어쩔수 없는 것 같다. 병실에 있을 때부터 가끔씩 조언과 아주 자세한 업무 설명도 해주고 있는데, 이번 태풍 바비가 워낙 강하다는 뉴스를 듣고 뒤늦게 그리고 급하게 그에게 발전소 점검을 꼭 해야 한다고 자세히 알려줬는데, 이미 늦은 상황이라 사전 준비가 어렵고 바로 점검을 나가야 할 상황이었다. 사다리도 여러 개 빌려야 하고, 사다리 및 장비를 실고 움직일 트럭도 빌려야 하는데, 연락처들을 알려줬는데, 연락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어쩔수 없이 내가 나서서 트럭과 사다리를 빌렸고, 점검을 나갈 사람이 이사님 한 분과 그 활동가 밖에 없는 상황이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동행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직접 사다리를 올라가서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노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경험에 따른 조언을 하고, 상황 판단을 해주고, 옆에서 작은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두 분이 점검하는 속도를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고, 그 더위에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결국 나도 사다리에 올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수백개의 모듈을 점검하는 것은 힘든 노동이었고, 3시간째에 접어들고 나서는 다친 부위들과 수술 부위 등의 감각이 이상함을 느꼈다. 결국 무리를 하고 말았구나 싶었다.


결국 다음날부터 꼬박 3일을 컨디션 문제와 약간의 몸살기운으로 힘들게 보냈다. 마침 병원에서 처방해준 가장 효력이 강한 진통제가 다 떨어졌고, 의사 선생님은 이 진통제가 너무 쎈 거라 오래 먹으면 오히려 안 좋으니, 이젠 이거 없이 버텨보자고 했었다. 한참 통증이 심할 때는 이거 딱 한 알만 있었어도 버틸만 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그렇게 책상 앞에 앉지 못하고 며칠을 훅 지나 버렸다.



#3. 2020년의 교통사고


지난 주 30년 전의 교통사고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봤고, 이제 이번 교통사고에 대해 쓸 차례다. 사고의 원인과 경위에 대해서는 지금 경찰서와 보험회사 등을 상대로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라 일단 이 글에서 공개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혹시 나중에 소송까지 갈 지 모르니 이 부분을 지금 쓸 수는 없다.


이 글과 앞으로 쓸 글들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이 될텐데, 나는 병원 내부 시스템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내게 뭔가 정보를 주거나, 나를 치료해주거나, 나를 보살펴 준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헷갈리기도 한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나 이런 분들은 오히려 명확하고 옷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의사들은 헷갈린다. 특히 전문의 밑으로 레지던트부터 인턴으로 가면 알수가 없다. 그래도 일단 전문의(혹은 전공의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는 구분이 가능한데, 해당 과에서 나를 진료하는 책임자 딱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밑에 여러 명의 레지던트와 인턴들이 있고, 사실 그 분들이 내게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기도 하지만, 그 분들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글에서 의사를 언급할 때 명확하게 전문의인 경우에는 전문의라고 쓰고, 나머지는 그냥 의사라고 통칭하거나, (레지던트와 인턴을 구분할 수 없으니 그냥 묶어서) 레지던트라고 부르려고 한다. 


일단 피해자로서 내가 입은 피해를 먼저 공개한다. 8/6(목) 퇴원 당시에 내 주치의였던 외상외과 전문의가 작성해 준 진단서 상에는 총 9가지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한편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폰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된 후에 걱정하시는 몇 분들에게 내가 정리해서 보낸 내용에는 총 8가지 상해를 입은 것으로 적었었다. 내 몸에 입은 상처니까 내 기준으로 내가 정리해보겠다.


-01 안와하벽 및 내벽 골절 / 안과, 성형외과


왼쪽 눈 밑 뼈가 부러졌다. 그래서 눈에도 충격을 어느 정도 입었다. 처음 실려간 병원 응급실에서 아마 뼈가 부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고 당한 날 저녁에 옮겨간 병원에서 CT 촬영 후에 정확하게 나온 진단이 소제목으로 적은 내용이었다. 쉽게 얘기해 눈 밑 뼈가 산산조각 부러져서 안구가 살짝 내려 앉았고, 시신경의 일부가 내려 앉았다고 했다. 그리고 눈동자에 빨갛게 피가 맺혀 있었다. 그건 오른쪽 눈도 마찬가지였는데, 얼굴 오른쪽은 거의 손상이 없었음에도 오른쪽 눈동자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이 맺혀있던 피는 사고 후 약 2주쯤 지난 시점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후로는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안과 외래 진료를 받아보니 아직도 왼쪽 눈동자 한 쪽 구석에는 피가 맺혀있다고 했다. 


눈은 신체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당장 눈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남은 인생을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야말로 절망적일 것이다. 처음 실려간 병원 응급실에서부터 옮겨간 병원까지 안과 전문의가 내 눈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어려서부터 눈이 나빴고, 근시와 난시가 심해 안경이 없으면 거의 눈에 뵈는 게 없는 수준이었던 나는 병원에 머무는 내내 안경 없이 지냈다. 아마 중학교 시절 처음 안경을 맞춘 후로 가장 오랫동안 안경 없이 지낸 것 같다. 대학 시절 사막화방지 운동 차원에서 몽골에 갔다가 실수로 안경이 부러졌었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안경을 맞추기까지 한 나흘이나 닷새 정도 안경 없이 지낸 것이 그 전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아, 신병교육대에서 사격하다가 안경테가 부러졌던 경험도 있는데, 그땐 부러진 부위를 실로 꿰매어 쓰고 다녔으니, 엄밀히 말해 안경 없이 지냈던 건 아니었다.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처음 응급실에 있을 당시부터 무척 다양한 방법의 검사를 받았다. 앞서 말했듯 어려서부터 눈이 나빴기 때문에 눈과 관련한 검사는 꽤 많이 받아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다양한 방법의 검사들이 있었다. 그때 응급실에서는 전문의가 손에 들고 와서 할 수 있는 검사만 했는데, 나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그 안과 전문의의 태도가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도구를 갖고 와서 한참을 검사하다가 돌아가고 한참 후에 다시 뭔가 다른 도구를 갖고 와서 검사하고는 다시 사라졌다가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대여섯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여러가지 검사를 했다. 처음부터 도구들을 다 가져와서 하나씩 차례로 검사했다면 훨씬 더 시간을 절약하지 않았을까? 암튼 가장 기본적인 시력 검사부터 색맹(색약) 검사까지 여러 감사를 마친 후 천만 다행으로 시력과 시신경에 문제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때 사고를 당한 첫 날이었고, 몸의 일부를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엄청난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 쉬려고 하면 다시 나타나 괴롭히는 그 전문의가 밉기도 하고, 그런 모양새가 우습게 여겨지기도 했다. 암튼 결론을 듣고 눈에 이상이 없다는 것에 안도하긴 했다.


그런데 병원을 옮겨가니 다시 그 과정을 반복했다. 여기 병원 안과 전문의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에 한 가지 도구를 가져와서 검사하고 돌아가더니 한참 있다가 다른 도구를 가져와서 검사하기를 반복했다. 이때는 그래도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 병실에 있을 때였고, 초기에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눈곱이 끼곤 했던 상태를 벗어나 있었다. 이미 이전 병원 응급실에서 다 받았던 검사였고, 그렇게 말했지만, 이 병원 전문의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그 과정을 다시 다 반복했다. 한 번에 한 가지 도구를 가져왔다가, 돌아갔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와 검사하기를 반복하는 것도 똑같았다. 암튼 이때는 비교적 여유가 생긴 후라서 별다른 감정 없이 성싷하게 검사에 임했다. 눈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는지, 응급실에 있을 때보다 뭔가 더 잘 보이고, 이게 이런 검사였구나 하고 깨닫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두 번의 수술 후에 혼자 걸어다닐 수 있게 된 후에는 안과 외래 진료실에 내려가 제대로 된 안과 검사를 몇 가지 받았다. 여기서도 결론은 시력과 시신경에 약간의 손상은 있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치료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며, 지켜보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과에서는 약을 쓰거나 치료하지는 않았고, 단지 인공눈물을 처방하면서 수시로 넣으라고 주문했다. 처음 병원 응급실에서도 인공눈물을 처방 받았는데, 이 병원에서도 초기에 한 번 그리고 중간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이나 인공눈물을 처방 받았다. 초기에는 내가 상체를 일으킬 수 없어서 혼자 스스로 이 인공눈물을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넣어줘야 했는데, 어떤 간호사는 꼼꼼하게 챙겨 넣어줬지만, 어떤 간호사들은 이것까지 챙기지는 못해서 의외로 넣지 못하고 넘어가는 날이 많았고, 나중에 혼자 걸어다니게 된 후에는 내가 수시로 챙겨 넣었다. 그래도 한참 많이 남았고, 퇴원할 때 뜯지도 않은 새 박스를 하나 그대로 갖고 퇴원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또 한 박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있던 것이 제일 먼저 받았던 첫 병원 응급실에서 처방 받은 것이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인공눈물 부자가 되었다. ㅎㅎ


아까 잠시 언급했지만, 사고 초기에는 눈에 충격을 받아서 눈동자에 온통 빨갛게 피가 맺혀 있었고, 눈곱이 아주 심하게 끼어 잠들었다가 깨면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누군가 눈곱을 떼어줘야 간신히 눈을 떠서 주위를 볼 수 있었다. 안그래도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텐데, 눈은 시뻘겋고, 눈곱이 엄청나게 끼어대니 얼마나 보기 흉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암튼 그래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잠들었다가 깨면 혼자 눈꺼풀을 들어올려 스스로 볼 수도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도 많이 느꼈다. 그때는 눈곱을 떼서 눈을 틔여주는 간호사가 제일 고마웠다.


병원에서는 일부러 눈의 안정을 위해 눈의 피로를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몸이 회복된 후에는 무척 심심했는데, 책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냥 아니라고 갖고 오지 말라고 했다. 남들이 다 티브이를 볼 때도 나는 소리만 듣고 화면을 보지 않았다. 나중에 폰을 받은 후에는 폰에다 기록을 남기느라 작은 화면을 좀 오래 들여다보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최대한 눈이 무리하지 않도록 애썼다. 그런데 퇴원 후에는 혼자 집에서 너무 심심하니까 자꾸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왼쪽 눈이 쉽게 피로해졌다. 남아도는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긴 했지만, 그건 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으니. 오른쪽은 괜찮은데, 왼쪽 눈만 피로감이 크고 가끔 안에서 찌르는 듯한 이상한 느낌도 들어서 안과 외래 진료를 받았다. 두 번에 걸쳐 다양한 검사들을 받았다. 또 한 번 느꼈다. 안과 검사들은 정말 다향하구나. 내가 몰랐던 검사들이 또 있었구나. 암튼 두 번이나 병원을 방문해 검사들을 받은 결론은 아직 사고로 인한 충격에서 온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안구 한 구석에 빨갛게 피가 맺힌 부위가 여전히 남아있다. 시력과 시신경의 기능 중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심각하지 않아 치료를 요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상태로는 시간이 지나 점차 회복될 지 혹은 더 나빠질 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기적으로 살펴보는 방법 밖에 없다며, 한 달 뒤 진료를 예약하고 나왔다.


여기까지가 안과 영역에 대한 내용이고 이제 성형외과 영역을 정리해보자. 성형외과에서는 얼굴의 주요 부위 손상 중 두 가지 골절(아래 언급할 비골 골절)을 동시에 수술로 해결하겠다고 내게 설명했다. 그리고 수술 날짜를 통보하고 동의서에 싸인하라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해도 잘 움직이지 않았던 오른손으로 펜을 쥐고 힘겹게 싸인을 했다.


여기서 잠시 내가 진료받은 5개 과 전문의 중에서 이 성형외과 전문의가 가장 불친절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넘어가야겠다. 퇴원하고 외래 진료를 받으면서 깨달았는데, 나를 진료한 5명의 전문의들이 대체로 젊은 편이라는 것, 아마도 나와 비교해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나와 자주 접할 수 밖에 없었던 외상외과와 흉부외과 주치의는 외래에서 만났던 날에 의사로서라기 보다는 약간 친구 같은 태도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전적으로 내 느낌이라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입원 당시부터 만날 때마다 무척 털털한 성격을 보였던 정형외과 전문의도 외래에서 만나니 훨씬 친근하게 대했다. 이렇게 3명은 다 남성이고 내 추측으로 나이가 나보다 살짝 많은 정도일 거라고 여겨졌다. 안과는 처음 병실을 오르내리며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나중에 진료실에서 검사하고 결론을 내린 분은 여성이었지만, 외래 진료는 날짜를 맞추다보니 남성 의사로 바뀌었다. 처음 여성 의사는 확실히 친절했다고 기억하는 것이 이번 병원에서 다 검사 받았던 거라고 얘기할 때도 그래도 다시 해야 하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해줬고, 내가 물었던 여러 질문들에 차근차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외래로 두 번 만난 남성 전문의도 처음 여성 전문의 보다는 덜하지만, 그건 굳이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비교적 괜찮았다. 


그런데 유독 성형외과 전문의는 처음 만남부터 마지막 외래 진료 날까지 일관되고 아주 불친절했다. 사실 내가 가장 크게 다친 곳이 얼굴이고, 가장 크게 고통받는 곳도 얼굴이며, 앞으로 어떻게 회복될 지 가장 걱정이 되는 곳도 얼굴이라, 이 성형외과에 제일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이 의사는 그런 말을 원척적으로 막아버린다. 자기가 딱 필요한 설명만 하고 바로 진료가 끝났다는 신호를 간호사나 레지던트에게 보내 나를 내보내는 것이다. 내가 나가지 않고 질문을 하면 아주 짧게 건성으로 답하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러면 0.1초도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나오시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러번 어떻게 하면 이 의사에게 내가 궁금한 점들을 다 물어볼 수 있을지 궁리하기도 하고, 들어가기 전에 연습하기도 하곤 했는데, 매번 실패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나오곤 했다. 이 여성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맨 마지막에 시도한 것은 처음부터 몇 가지 질문이 있다고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질문을 다 할 때까지 답을 하지 못하게, 내 질문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만다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 유일하게 성공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꼭 알아야 할 필수 정보만 간추려서 질문했을 뿐, 원래 묻고 싶은 사소한 궁금증은 훨씬 더 많았다. 그렇게 꼭 필요한 질문에 대한 아주 건성인 답변을 받고 진료를 종료했는데, 다른 전문의들은 다 얼굴이 기억나는데, 이 여성 만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암튼 성형외과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전신마취 수술이었고, 얼굴 부위라서 긴장을 많이 했었다. 수술이 끝나고 당황스러운 점이 있었는데, 그 전에 흉부외과 수술을 받았을 때는 회복실에서 레지던트가 수술 결과를 간단하게라도 알려줬고, 이후 다음날 회진을 돌 때 전문의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복실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혼자였고, 한참을 회복실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통증을 참고 있다가 회복실 간호사가 어쩌다 내가 깨어났음을 깨닫고 나를 병실로 올려줬다. 아무도 수술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성형외과 의사들은 회진도 돌지 않았기 때문에 며칠일 지나도록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수술 후 일주일만에 외래 진료실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갔더니 수술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치료실에 눕혀놓고 수술 부위 소독을 시작했다. 소독이란 것은 늘 통증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나는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통증을 참는데에 집중했고, 결국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돌아갈 뻔 했다. 마지막에 진료실을 나가기 직전에 수술 결과를 무었더니 짧게 아주 짧게 설명해줬다.


왼쪽 눈 아래 뼈는 산산조각 나서 조각들을 다 꺼내고 인공뼈를 넣었다고 했다. 아마 안와하벽에 대한 설명이라 여겼는데, 안와내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리고 코뼈인 비골은 잘 세워놓았다고 말하고 말았다. 왜 내가 그렇게 결과를 궁금해할 수 밖에 없었는가 하면, 수술 후 코 위에 보호대를 덮어 반창고로 붙여놓아서 코가 어떻게 되었는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코의 상태를 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 궁금해 했겠나? 


이 의사가 짜증나는 또 다른 이유는 이거다. 나중에 코 보호대를 잠시 떼어내고 거울을 봤다. 사고 초기에 코가 완전히 뭉개져있을 당시에 나는 일부러 거울을 피했다. 유리나 매끈한 표면의 금속에 얼굴이 비춰보이면 일부러 시선을 돌렸고, 특히 코와 그 아래 찢어진 상처는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망가진 내 얼굴이 내 기억 속에 남는 것이 두려웠다. 유난히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인데, 밤마다 내 망가진 얼굴을 거울로 보고 절망하는 악몽을 꾸게 될까봐 두려웠다. 암튼 수술 후 일주일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나서 처음으로 보호대를 벗기고 얼굴을 보았는데, 보기 직전까지 어느 정도 옛 얼굴이 회복되어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었었는데, 그 희망이 산산히 부서졌다. 내 코는 평생 보아온 그 코가 아니었다. 얼마 전 후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 "뭐 원래 내 코가 그리 높지도 않았지만, 사고로 완전히 뭉개져서 코가 거의 없어졌어. 그걸 수술로 세웠는데, 의사 표현으로는 세워는 놓았다고 하더라고." 그랬다. 의사 표현이 그랬다. 세워는 놓았다. 그리고 외래 진료로 방문하면서 엑스레이를 찍고 왔더니 수술 전과 수술 후 엑스레이를 비교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원래도 코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수술로 코를 세워놓았던 것이 잘 아물고 있네요." 아니! 사고 당하기 전에 내 얼굴을 본 적도 없으면서 내 원래 코가 높았던지 낮았던지 딱 그만큼만 회복되기를 바라는 건데, 이 여자 말투는 원래도 높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세워줬으면 그냥 만족해라 뭐 이런 느낌으로 들려서 무척 기분이 나빴다. 


어쨌든 눈 밑 뼈는 인공뼈로 대체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런 말을 들어서 이상하게 이질적인 느낌이 더 드는 것인지 몰라도 아직 붓기가 덜 빠진 왼쪽 뺨 위쪽은 자꾸 이상한 감각이 들어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이 부분은 나중에 얼굴 열상(찢어진 상처) 부분에서 다시 다루겠다. 그리고 코는 의사 표현대로 세워는 놓았다는데, 원래 내 코보다는 낮아서 보기에도 싫기도 하고, 내가 원래 끼고 다니던 안경도 주루륵 흘러내려 안경을 쓸 수가 없다.


코는 나중에 다시 성형수술을 받아 적어도 내 원래 코와 비슷한 정도로는 만들 생각이다. 문제는 여기 병원에서는 사고로 인한 재건 수술만 할 뿐 미용성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내 원래 코와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재건의 개념이 아닌 미용의 개념으로 언급하더라. 그 의사가. 그러면서 나중에 성형외과를 알아봐서 수술 받으라고 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찢어진 상처를 꿰매었던 흉터를 없애는 것도 미용성형이니 그것도 다른 곳에서 수술 받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고로 인한 붓기가 빠지고 상처가 아물고 뼈가 붙으려면 적어도 6개월에서 길면 1년 넘게 걸리기도 하니 그때가서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몸의 회복에 비해 얼굴의 회복이 유독 더디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직 얼굴은 붓기가 다 빠지지도 않았고, 신경이 손상되어 감각이 다 돌아오지도 않았지만, 외관 상으로 어느 정도라도 회복되려면 적어도 6개월 길면 1년이 넘게 걸린다고. 이제 겨우 1달하고 2주 가까이 지났을 뿐인데.


음, 8가지 종류의 손상에 대해 적어야 하는데, 얼굴의 주요 손상 3개 중에 아직 첫번째 밖에 쓰지 못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났고, 글도 그만큼 길어졌다. 애초 의도는 8개 주요 손상을 다 적고 오늘 글을 마치려고 했고, 중간에 글이 길어지고 있음을 깨달은 후에도 얼굴 손상 3가지는 다 적고 끝내야지 생각했는데, 도저히 못 마치겠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고, 나중에 다시 나머지를 써야겠다.


책상 앞 창문에 반달보다 조금 더 뚱뚱한 달이 보이더니, 지금은 구름 속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보름달이 되어가는 걸까? 아님 보름달에서 점점 작아지는 중일까? 음력 날짜가 10일인 걸 보니 보름달로 점점 살이 찌는 중이구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쓰자. 사고를 당하기 전에 루마니안 백도 새로 구비하고, 케틀벨도 무게를 늘려 새로 질렀고, 한참 운동에 재미를 더해가는 중이었는데, 사고 이후로 한달 반 가까이를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뼈가 다 붙기 전까지는 운동을 할 수 없다. 다만 사고로 다친 부위 외에 맨몸 운동 중심으로 운동 흉내는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의 손상이 없었던 하체 중심으로 조금씩 운동 흉내를 내 보기도 하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줄어드는 근육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다. 입원해 있을 때부터 먹는 양이 적어서 위가 줄어들어서인지 퇴원 후에도 많이 먹지를 못해 사고 이전보다 복근이 더 선명해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까? 아니 10대 후반 이후로 늘 내 자랑이었던 흉근과 광배근 그리고 승모근이 하루가 다르게 크기가 줄어들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선명해지는 복근 따위가 뭐가 중요할까! 뼈가 다 아물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건 아마 3달 후 쯤 되러냐? 그때가 되면 왠지 근육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은 말라깽이가 거울에 보일 것 같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연 2020-08-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큰일을 당하신.. 회복은 다 되신 건가요..? 에궁... 고생이 많으실 거 같아요 ㅠㅠ

감은빛 2020-09-02 22: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비연님.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 다 되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2020-08-28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2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0-08-29 0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정말 큰일 겪으셨네요.
근육은 앞으로 만들면 되니까 지금은 다친 곳부터 차근차근 잘 회복해나가셔야죠.
저도 오늘 달을 보며 ˝좀 뚱뚱한 반달이네~˝ 했답니다.

감은빛 2020-09-02 23: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신기하네요. 뚱뚱한 반달이란 생각을 같이 떠올렸다니.

말씀처럼 먼저 회복하고 근육은 나중에 걱정해야 할 일이 분명 맞는데요.
사람 마음이란게 또 그렇지가 않네요.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근손실‘이란 단어일 거예요.
물론 저는 뭐 그 정도로 운동하는 사람도 아니긴 하지만,
긴 세월 잘 만들어놓은 근육이 단기간에 눈에 띄게 줄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네요. ㅠㅠ

말씀 남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잘잘라 2020-08-29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이번 글은 세 번 읽었어요. 연이어 세 번인데 그때마다 다른 느낌이예요. 역시 콧대 이야기가 가장 궁금해요. 콧대는 소중해요. 미용성형이든 뭐든 감은빛 님이 콧대를 멋지게 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꼭이요.

감은빛 2020-09-02 23: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잘잘라님.
이 길고 재미 없는 글을 세 번이나 읽으셨다니.
괜히 제가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네, 말씀처럼 꼭 재 수술을 받아서 제가 원하는 얼굴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게요.
공감과 응원의 말씀 고맙습니다!

syo 2020-08-29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도 코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지랄.....-_-

그나저나, 이런 와중에도 근육과 운동에 대한 애착, 역시 감은빛님...^-^b


감은빛 2020-09-02 23:08   좋아요 0 | URL
쇼님의 ˝이 지랄˝ 이 한 마디가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네요. ㅎㅎ

이 와중에도 근육 애착은 어쩔 수 없나봐요.

오랫동안 잘 만들어놓은 근육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또 몇 달 동안은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없을텐데,
또 얼마나 더 근육이 줄어들지 알 수가 없네요. ㅠㅠ

나와같다면 2020-08-3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쾌유를 기원합니다
몸도 마음도 어여 나으시기를

감은빛 2020-09-02 23: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와같다면 님.

응원의 말씀 고맙습니다!
몸도 마음도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1. 30년 만의 교통사고

나는 1990년 초가을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2020년 여름 다시 교통사고를 당했다. 두 교통사고는 인과관계는 없다. 단지 한 두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고, 공교롭게도 거의 30년 차이라는 시간 상의 우연이 존재할 뿐이다. 첫 번째 공통점은 사고가 크게 났다는 것과 큰 사고였음에도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고, 영구적인 손상을 입지 않은 점이다. 쉽게 말해 사고가 난 것 자체는 운이 나빴지만, 불행중 다행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런 상태를 다른 말로 악운이 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악운이 강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이상하게 운이 나쁘다고 여겼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아주 심각한 상황은 피해서 나중에는 원만하게 해결되곤 했다. 물론 이런 경험과 표현이 추상적이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나 대입해 볼 수도 있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도 있는데, 내 경우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알아볼 것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그 시기가 어떤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첫 사고를 당한 시점이 하필 중학생이어서 그랬겠지만, 그 사고 이후 많은 변화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사고 이후 나는 갑자기 키가 확 자라고, 근육량이 늘어 육체적으로 성장했지만(실은 그 전에 워낙 키가 작고 비쩍 마른 몸이어서 성장한 후에 간신히 평균적인 키와 몸무게가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도 가족들과 내 삶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올해 당한 두 번째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제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번 사고가 내 삶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갈 것이다.

이번에 당한 사고로 나는 엄청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다들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도 이번에는 어쩌면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사고 직후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때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잠시 들 정도로 힘들었다. 조금씩 회복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내 삶을 하나하나 돌아보기도 했고, 최근의 내 삶에 대해 짚어보기도 했고, 앞으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혹은 어떻게 살아보고 싶은지를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잊지 않으려고 틈틈히 메모를 많이 했다. 퇴원 후 처음 할 일을 그 메모들을 정리해나가면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회복 일기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건 개인적으로 보관만 할 용도의 아주 자질구레한 것들가지 다 기록한 것과 다른 사람들(특히 사고 이후 회복 경과를 궁금해하는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약간 다듬어진 것으로 나눠서 작성할 예정이고, 이왕 이렇게 글을 쓸 거라면 이곳, 알라딘 공간에 이어쓰면서 전자와 후자를 섞은 버전인 세번째 버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번 사고를 내 삶을 바꾸는 계기로 만드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회복 경과에 따라 달라지겟지만, 아주 천천히 적어나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2. 1990년의 교통사고

당시 중학생이었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깜빡이길래, 빨리 건너야지 싶어서 횡단보도 구획선에서 살짝 아래로 뛰어 건너다가 차에 치였다. 당시 가해 차량은 횡단보도 직전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해 있는 걸 보고 중앙선을 넘어 버스를 추월하느라 신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차에 차량 우측 사이드미러 쪽 옆면에 부딪혔다가 몸이 공중으로 떠서 차량 반대편의 차도로 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고 표현해야 하나. 그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뛰어왔고, 차에 치이는 걸 본 친구와 학생들. 버스 정류장에 계시던 어른들이 내 곁으로 동그랗게 모였다. 내 시야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하늘을 가리는 걸로 보였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쓰러진 사람 위로 얼굴들이 하나 둘 등장해 둥글게 에워싸는 장면이 정말 사실이구나. 내 시야에 정확히 그렇게 보였다. 아, 그리고 잠시뿐이긴 했지만 쓰러진 직후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운전자가 괜찮냐고 묻는 질문과 친구가 뭐라고 말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 나는 차에 치인 줄도 몰랐다. 그냥 무언가 아주 빠르고 단단한 것에 부딪혀 몸이 튕겨 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빠르고 단단한 것이 무엇인지 엄청 궁금했는데, 달리는 차였다. 

운전자는 중학생이었던 나를 안아 들어서 차에 태웠다. 혹시 몰라서 옆에 있던 친구도 내 옆에 태웠다. 그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자와 내 친구는 내 상태가 무척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계속 이름, 학교, 집 등을 물어보며 제 정신이 맞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이제 들리기는 했지만, 말은 잘 나오지 않아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점점 감각이 돌아오고 손발 등에 힘이 들어가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몇 군데의 찰과상과 멍을 제외하고는 딱히 아픈 곳이 없다고 여겼다.

나는 2주 진단을 받고 꼬박 2주 동안 병실에 입원해있었다. 차에 치인 충격에 비해 정말 이상할 정도로 다친 곳이 없었다. 어디 부러진 곳도 없었고, 어디가 터지지도 않았다. 의사도 이상하다고 여겼고, 경찰들도 이상하다고 했다. 가끔 이유없이 머리가 아프긴 했다. 가족들과 의사는 혹시 뇌에 어떤 충격을 받았을지를 걱정했고, 혹시 나중에 후유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때 머리를 다치긴 했는데, 결국 그로 인해 크게 어떤 손상을 입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후로 친구들은 가끔 농담을 하긴 했다. ˝네가 그날 머리를 안 다쳤다면 완전 천재였을텐데, 머리를 다쳐서 이런거야.˝ 뭐 이런 류의 농담들. 중,고등학교 시절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성적은 늘 상위권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아주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성적을 보고 말한 것이었으리라.

그 사고 이후 나는 그 전부터 느껴왔던 사회의 부조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선 나중에 교통사고로 인한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는 실제로 나를 친 차량과 나중에 서류 상으로 확인한 차량이 달랐다는 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사고 차량은 픽업이었다. 예전에 우리 집에 픽업이 있었기 때문에, 픽업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내민 서류에는 세단이라고 부르는 승용차였다. 아마도 보험 때문에 차를 바꿔서 신고한 것 같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두 번째 문제는 내가 횡단보도 위를 건너지 않고 횡단보도 구획선에서 몇 미터 아래를 건넜기 때문에 보행자인 나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가해 차량측 보험회사에서 주장했다는 점이다. 이 이슈는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나서 법적으로 횡단보도 인근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보행자 과실이 없는 것으로 법적 보완이 된 것으로 아는데, 아마 그 당시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장소는 약간의 특수성이 있는데, 학교에서 나온 골목길과 그 옆의 산 아래로 내려가는 내리막길과 내가 건너서 올라가려는 임대아파트 진입로 길이 모두 횡단보도 보다 몇 미터 아래에 위치해 있었고,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학생들과 어른들은 모두 횡단보도까지 가서 건너지 않고 그냥 그 몇 미터 아래의 차도를 건넜다. 오히려 횡단보도까지 몇 걸음을 걸어갔다가 횡단보도 구획선 안에서 걸어서 건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루종일 그 교차로에서 서 있어도 몇 명 발견하지도 못 햇을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아버지의 지시로 내가 그 사실을 터트리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우리가 병원 치료를 원활하게 받으려면 보험이 필요하니 그냥 못 본척 하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속으로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계속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문제는 당시 지방법원 행정관으로 일하던 친척의 개입으로 해결되었다. 이런 식의 해결 자체도 나로서는 문제라고 느꼈지만, 나는 중학생이었고, 어른들의 일 처리에 대해 개입하지 못했다. 암튼 그렇게 고위직도 아니었던 친척이 전화 한 통 하자마자 상대측 보험사는 두말없이 이 부분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그 횡단보도는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건너다니는 위치로 내려왔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봐도 신기할 정도로 다치지 않았던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시의 사고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30년이 지나 두 번째 교통사고는 이 사고와는 완전히 다르게 아주 크게 다쳤다. 아주 심각하게 다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고, 나 자신도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은 아무리 후회해도 다시 바꿀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얼마나 잘 회복하느냐 하는 일이다.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고, 지금 쓰는 이 글은 그 회복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일단 첫 글을 이렇게 시작하고 다음 글에서 사고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자.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20-08-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지금은 좀 괜찮으신거죠?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정말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교통사고는 휴유증도 크니까 모쪼록 잘 괸리하셔서 건강 회복하시길 빌어요

감은빛 2020-08-21 19:36   좋아요 0 | URL
네, 바람돌이님. 다행히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요. 염려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조선인 2020-08-2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알라딘에 글을 올릴 수 있을 만큼 회복되신 거죠? 천만다행입니다. 부디 쾌차하시길.

감은빛 2020-08-21 19: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조선인님. 다행히 많이 회복되어 이렇게 알라딘에 글도 남겼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빠른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0-08-21 19:4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더 빨리 회복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08-21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8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0-08-21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쾌유를 기원합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감은빛 2020-08-28 20:0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안녕하세요.
덕분에 빨리 낫고 있나봅니다. 고맙습니다!

syo 2020-08-2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이런 사연이.... ㅠㅠ
얼른 완쾌와 함께 만나요...

감은빛 2020-08-28 20:07   좋아요 0 | URL
쇼님.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그간 이런 일이 있었네요.
다 나으면 연락드릴게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8-22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는 이야기 같군요. 일단 이렇게 글을 쓰신 걸로 보아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읽으면서 명이 긴 분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 또는 경험이 그 사람의 미래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걸로 믿는 저로선 감은빛 님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뭐가 있을 거라 여겨지기에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잘한 것 같습니다. 글 쓰면서 머릿속 정리도 하고 마음 치유도 되리라 봅니다.

얼른 완쾌되시길 바랍니다. ^^

감은빛 2020-08-28 20: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페크님.
말씀처럼 빠르게 낫고 있어서 이렇게 알라딘에 글도 쓰고 있어요.
이번 경험을 잘 갈무리해서 전환점으로 삼고 싶어서
그걸 정리하는 글을 폰에 계속 메모하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또 여기 알라딘에는 어느 정도로 내용을 정리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저 혼자만 보려고 정리한 글은 정말로 양이 많거든요.

덕분에 잘 낫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0-08-29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2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좀전까지 장장 5시간 넘게 지금까지 알라딘 서재에 적은 어떤 글보다 긴 글을 쓰고 있었다. 평소에도 긴 글을 좋아하고 올리는 글 다수가 긴 편이지만, 이번 글은 상상을 초월하는 긴 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지금껐 긴 글을 써도 대체로 2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번엔 같은 속도로 아니 오래 생각했던 거라서 오히려 평소보다 더 빨리 타자를 드드렸는데도 5시간을 훨씬 넘겼다.

막판에 너무 졸려서 급 일차 마무리를 하고 다음 편 예고를 적어주고 등록 버튼으로 눌렀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알라딘 글쓰기 창에 직접 두드려놓은 내용을 따로 저장할 생각까지는 못했다. 그런데 등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로그인 페이지로 넘어갔고 로그인을 한 다음 순간 5시간 넘게 쓴 내 글이 사라져버렸다. 피씨버전에서 쓴 거였다.

너무나도 허탈하고 어이 없어서 화도 못 내고 설마 아니겠지? 6시간 가까운 내 노동이 없어진 것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뒤로가기, 취소하기, 불러오기 등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몇가지 방법을 미친듯이 써보다가 깨달았다. 예전에도 이런 오류 때문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 가량 쓴 글을 날려먹은 적이 여러 번 있어서 아예 처음부터 메모장에 글을 쓰거나, 알라딘 글쓰기 창에 다 써놓고 등록버튼을 누르기 전에 꼭 백업을 해놓는 습관을 들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완전 소 잃고 마굿간 고치는 기분이다.

아악! 알라딘 책임져라. 이 오류를 어떡할거냐? 내 6시간 가까운 노동이 날아가버린 걸 어떻게 책임질거나? 흑흑

도저히 복구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정신이 번쩍들고, 오기가 생겨서 지금부터 다시 메모장에 5시간동안 글을 써서 올리고 나서야 잠을 자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포기했다.

꼭 이렇게 공들었던 글이 날아가버리면 다시는 같은 내용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그 글은 앞으로 나시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너무너무 아깝다 정말 집중해서 쓴 글인데, 이제껏 이렇게 집중했던 적이 없는데 말이다. ㅠㅠ

모르겠다. 잠이나 자야겠다. 내일 맑은 정신으로 다시 생각하자. 그래도 알라딘 서재에 쓴 글이어서 다행이긴 하다. 돈 받고 써야하는 원고를 이렿게 어이없게 날렸으면 진짜 죽고싶었을 것 같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돌이 2020-08-1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그런데 이런 통곡할 일이... ㅠㅠ 제 좋아요는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사실 저도 오늘 북플에서 30분가량 썼던 글을 날리고 허탈해하고 있는데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군요. ㅠㅠ

감은빛 2020-08-21 19: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저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저처럼 허탈하고 억울한 일을 같이 겪고 계셨군요. 그래서 저도 알라딘에 자주 글쓰던 시절에는 항상 메모장에 글을 먼저 쓴 뒤에 붙여넣었던 기억이 나네요.

안타까움과 공감의 표현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로 2020-08-13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좋아요는 동병상련의 공감의 좋아요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정말 맘 잡고 멋진 페이퍼를 쓰겠다며 리포트 쓰는 것처럼 자료까지 찾고(저 그런 사람 아이거든요. 즉흥적인 사람;;;ㅎㅎㅎㅎ) 사진에 등등.....그런데 저도 님과 거의 비슷한 일로 3시간이 넘게 아마도 4시간? 정말 오래 작업한 글이 날라갔어요.ㅠㅠ 그런데 보통으로 알라딘에 임시저장된 글 뭐 어쩌고 하는 기능이 있어서 저장이 되는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고작 두 단락 정도와 사진 몇 가지 정도였어요. ˝너무나도 허탈하고 어이 없어서 화도 못 내고 설마 아니겠지?˝ 그 심정 저 경험자로서 잘 알아요!!!ㅠㅠ 저는 제 자신을 얼마나 혼을 내고 저주하고 그랬는지,,,그런데 돈 받고 써야하는 것이라도 죽고 싶은 마음은 먹지 마세요...우리 그러지 않기로 해요. ^^;; 그냥 반성하고 다음엔 그러지 말자,,,뭐 그런 결심해요, 우리. ^^;;;

감은빛 2020-08-21 19: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라로님. 저랑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일을 겪었군요. ㅠㅠ

우리의 아까운 시간을 어떻게 보상받나요? 우리의 이 허탈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요?

댓글 창을 닫아두시고 당분간 공부에 집중하신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부디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다시 알라딘에 소식 남겨주실 날을 기다릴게요.

다락방 2020-08-1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기가 생겨서 지금부터 다시 메모장에 5시간동안 글을 써서 올리고 나서야 잠을 자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허탈한 건 사실이지만(저도 압니다 ㅠㅠ) 그렇지만 에너지를 아끼세요, 감은빛 님.

감은빛 2020-08-21 19:28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오기가 생겨 그렇게 쓰긴 했지만, 사실 그럴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애초에 너무 졸려서 급하게 글을 올리려다가 이런 일이 생겼던 거구요.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님.

페크(pek0501) 2020-08-1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똑같은 경험이 있어요. 저 역시 다시 같은 글을 쓰게 되지 않더군요. 당장은. 화가 나서. ㅋ
그러나 언젠가 다시 쓸 날이 올 겁니다.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것들은 언젠가 토해져 나오더라고요. 그러니 너무 속상해 하지 마시길...

저는 그래서 아예 폴더를 바탕화면에 만들어 놨어요. 알라딘 걸로.
거기다 글을 쓰고 그 글을 복사 붙이기 해서 메모장에 들어갔다가 다시 메모장의 글을 복사 붙이기 해서 알라딘에 옮기면 됩니다. 아주 안전한 방법이죠. 강추합니다.

감은빛 2020-08-21 19:32   좋아요 0 | URL
네, 페크님. 저도 알라딘에 자주 글쓰던 시절에는 항상 메모장에 먼저 글을 써서 복사해오곤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했어요. ㅠㅠ

조금만 일찍 떠올렸어도 좋았을텐데요. 이런 게 인생인가봐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 어쩌면 허탈하기도 하고, 또 어쩌면 어이없기도 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페크님.
 

길 안내 + 외국어

아마 6월 중순 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착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이 있어서 급히 가야할 상황이었다. 갑자기 덩치가 큰 남성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가왔다. 아마 동남아쪽에서 오신 분일거라고 짐작했다. 이 동네는 관광지와 거리가 먼데, 어쩌다 혼자 여기서 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나 싶었다.

그는 내게 ˝익스큐즈미˝ 라고 말을 걸었다. 길을 물으려는 것 같아서 친절을 가장한 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다가섰다. 그의 한글 지명 발음은 서툴렀다. 두어번을 다시 물어본 후에야 인천의 어딘가 숙소를 묻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인천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동인천의 몇군데 근대문화유산과 월미도 등을 제외하면 거의 가본적이 없었다. 게다가 대중교통으로 인천을 가는 법을 얼른 떠올리지 못했다. 어쩔수없이 나는 인천이 여기서 아주 먼 곳이며, 거기까지 가는 법을 모른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타야할 버스가 왔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하고 버스에 올랐다. 조금 더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 앱으로 검색해서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그가 택시를 타거나 누군가 다른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무사히 숙소를 찾아갔기를 바란다.

떠올려보면 부산에 살 때 외국인들에게 길안내를 많이 했다.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면서 자신감이 붙기도 했고, 주로 놀았던 곳이 해운대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만났다. 가끔은 그들과 친해져서 함께 해변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런 것들도 다 경험이라고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친절을 가장한 웃음을 보이며 다가갈 수 있다. 그때 만난 분으로서는 날 만난 것까지는 행운이었을 수 있는데, 너무 엉뚱한 장소에서 만났다. 아니 내게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결과적으론 운이 나빴다.

과거 오늘 쓴 글들

페이스북처럼 북플도 과거 오늘 내가 쓴 글들을 알려준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글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닌데, 신기하게 그게 같은 날짜인 경우가 가끔 있더라.

오늘 알려준 글은 2개인데, 8년전 쓴 글과 3년전 쓴 글이다. 8년전에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해 일어난 일들을 쓰면서 그 증상을 난치병 혹은 불치병이라고 했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난치 혹은 불치라고 표현했듯이 여전히 이로 인한 해프닝이 생기곤한다. 이제는 이걸로 생긴 각종 곤란하고 난처했던 이야기들을 모아 책 하나를 낼만한 분량이 될 것 같다. 오래전에 엄마를 못 알아보고, 여동생도 못 알아본 적이 있는데, 그런 내용이 뷰티 인사이드 라는 드라마에 나오더라.(물론 나는 단 한번씩이었지만, 드라마에선 아예 다른 사람들을 전혀 못 알아본다는 설정으로 항상 못 알아봄) 또 언젠가 전유성 씨의 딸이 띠비에 나와서 ˝아빠가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못 알아본다.˝ 고 말했던 걸 봤는데, 막상 화장하고 다니는 큰 아이를 길에서 마주쳤다가 못 알아볼 뻔 했다. 언젠가 우리 딸들이 ˝아빠는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못 알아봐요.˝ 라고 말할까봐 겁난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3년전에 쓴 글은 독립운동가 김단야, 박헌영, 주세죽 세 분에 대한 이야기로 이 분들의 삶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도 이젠 제법 오래전 일이다. 이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기에 딸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도 반영했고, 나중에 언젠가 시간이 나면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해서 소설로 써야지 하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3년전에 소설로 나왔다. 내가 구상했던 것과는 살짝 촛점이 다르긴하지만.

우리나라는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아주 많은 역사를 잃어버렸다. 미군정에 의해 제대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그대로 득세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오히려 계속 쫓기고 탄압받는, 독립이 아닌 일본과 미국이 바통 터치만 한 것 같은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수많은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묻히고 잊혀졌고, 수많은 친일파들이 많은 권력과 재산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그것을 누리고 있다.

역사를 잊은 이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더 늦기전에 잃어버린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친일파들의 실체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김단야, 박헌영, 주세죽들이 발굴되기를 바란다.

폰으로 글을 쓰다보니 어제 완성하지 못하고 하루를 넘겨버렸다. 그래서 여기 소개한 글들은 8년전과 3년전 어제 썼던 글들로 정정한다.

오늘도 기분좋은 근육통으로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20-07-12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육통으로 시작하는‘과 ‘기분좋은‘을 병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콜라를 마셨더니 콜라만 먹고 취하던데요? ㅎㅎㅎ

덕분에 잘 먹고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다음 번에는 제가 한 턱...

감은빛 2020-08-21 19:02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네요. 약 한 달 전에 사고를 당해 그간 답을 달 수가 없었음을 양해해주세요. 지난 번에는 아직 회복 중이라 연락을 받고도 못 나갔음을 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 낫고 나면 꼭 뵈어요.

페크(pek0501) 2020-07-1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으로 글쓰기 불편해서 어떻게 쓰십니까? 짧은 글도 아닌데 말이죠.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합니다. 근육통도 날려 버릴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20-08-21 19:08   좋아요 0 | URL
폰으로 글쓰기가 불편하죠. 그런데 많이 쓰다보면 조금은 익숙해지더라구요. 폰으로 회의록도 남기고, 메일도 보내고, 간단한 문서도 작성하고, 어지간한 글의 초안도 쓰는 등 자주 쓰게 되어서요.

답이 아주 많이 늦었어요. 그 중 약 한 달은 교통사고로 인해 답을 남기기 어려웠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