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 4대강,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
최병성 지음 / 오월의봄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의 반대말은 ‘댐’

   

 

어느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4대강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그 분은 ‘강을 파헤치는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홍수 피해를 막고, 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란 말씀을 하셨다. 충격이다! 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꼼수를 다 파악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여지없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았을까? 당시 조금 당황했던 나는 ‘강은 잘 살아있는데, 오히려 지금 삽질을 통해 강을 죽이고 있다’는 주장을 펴면서 3권의 책을 추천했다. 김정욱 선생님의 <나는 반대한다>(느린 걸음), 최병성 목사님의 <강은 살아있다>(황소걸음),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오월의 봄) 이렇게 3권이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를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이 책은 지난 11월 29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한 출판기념회 덕분에 유명해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박원순 시장은 최병성 목사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스스로를 ‘청소부 시장’이라고 하면서 “치워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병성 목사는 물러설 줄 모르는 ‘불독 목사’이자, 국가권력에 맞선 ‘1인 군대’라고 불린다. 그만큼 부지런히 움직이고, 집요하게 파헤친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 또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의 첫 부분은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유역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사진으로만 봐도 아름답다. 만약 실제로 가본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다시는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수 없다. 바로 ‘4대강 살리기’라는 무서운 삽질로 인해 모두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앞부분만 보더라도 이 책의 제목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뒷부분은 그저 사족일 뿐이다. 다만 자연의 가치보다는 인간의 편리와 문명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기에, 뒷부분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겠다. 2번째 장과 3번째 장에서는 4대강사업을 주장했던 정부와 찬성측 세력들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특히 ‘홍수’ 피해를 줄이고, ‘가뭄’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왜 모순인지를 설명하고, 진짜로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특히 공사가 진행된 4대강 본류는 실제로 홍수 피해나 가뭄피해가 거의 없었던 지역임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중간 부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사라지는 생명들을 다룬 내용 때문에 무척 마음이 아팠다. 보(최병성 목사는 댐이라고 부른다.)를 건설하고 모래바닥을 파헤치면서 여울에 살던 피라미를 비롯한 묵납자루, 줄납자루, 각시붕어 등 많은 물고기들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낙동강변의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풍경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만큼 안타까웠다. 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와 제203호 재두루미, 제201호 큰고니, 제199호 황새(멸종위기 야생 조류 1급) 그리고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등 온갖 희귀한 철새들이 가득했던 해평습지가 공사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과연 이 장면을 보고서도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의 사업을 글자 그대로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이 더 널리 읽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공사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늦었다고 말한다. 과거에도 그랬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방조제가 완공된 것은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2년이나 지나서였고, 하나의 개발사업으로서 새만금 간척사업은 아직도 그 절반에도 이르지 못했다. 아직도 새만금 개발사업을 되돌리기에는 늦지 않았다고 본다. 시화호의 교훈을 따라 지금이라도 해수를 유통시키면서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만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최병성 목사의 책 제목처럼 ‘강은 살아있다.’ 지금이라도 16개의 보(댐)을 없애면, 강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갈 것이다. 살아서 흐르는 ‘강’의 반대말은 ‘댐’이다. 댐에 가둔 물은 죽은 물이다. 짧은 구간에 무차별적으로 지어진 16개의 댐들 덕분에 앞으로 또 얼마나 큰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6월 25일에 호국의 다리 ‘왜관 철교’가 무너진 것은 어쩌면 강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준공을 앞두고 상주보와 함안보를 포함한 9개의 보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들의 삽질을 믿고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결론은 하나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삽질을 멈춰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12-30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독서회 토론도서로 정해서 다같이 볼게요.
정말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은 외면하고 표피만 보고 사는 부끄러움~
2008년 6월에 '경부운하,축복일까 재앙일까'도 토론했었는데...

감은빛 2011-12-30 11:0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고맙습니다!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강정마을. 두물머리는 당장이라도 큰 일이 벌어질 태세이구요.
발레오공조, 재능지부, 콜트 콜텍 등등의 장기투쟁 사업장은 또 해를 넘기네요.
쌍차 노동자들은 그 누구보다 어려운 겨울을 보내고 있구요.

큰 힘이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그저 기억하고 마음만이라도 보태려고 노력중입니다.
 
코끼리는 아프다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코끼리에 대한 친밀한 관찰
G. A. 브래드쇼 지음, 구계원 옮김 / 현암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왜 코끼리가 아픈 걸까? 궁금했다. 육중한 몸과 두터워보이는 피부 덕분에 코끼리와 아프다는 단어는 쉽게 연결 되지 않는 이미지다. 제일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는 책의 제목이 <코끼리는 슬프다>라고 되어있다. 아마도 이 제목이 기획과 편집과정 내내 불린 제목이고, 마지막에 제목을 바꾼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책의 원제는 무얼까 궁금했다. 찾아보니 <Elephants on the edge>라고 되어있다. ‘on the edge’를 뭐라고 해석해야 매끄러울지 잘 모르겠지만, ‘위기의 코끼리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코끼리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몇 번쯤 동물원이란 곳을 가본 적이 있다. 호랑이나 악어를 본 기억은 선명하게 난다. 아마 거기에 코끼리도 있었을 법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코끼리를 실제로 본 유일한 기억은 신혼여행에서였다. 아내와 나는 제주도에서 버스관광을 했는데, 이 버스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만 데려가는 게 아니라 종종 무슨 공연장이나 쇼핑시설 같은 곳으로도 데려갔다. 그 중 한 곳에서 코끼리 쇼를 보여줬다. 그때는 거대한 덩치의 코끼리가 보여주는 다양한 묘기에 눈이 팔려 웃고 즐겼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코끼리들이 무대 밖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죄책감이 느껴진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도시와 관광지에서 코끼리들은 감금과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코끼리도 인간처럼 자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간의 폭력에 노출되었던 코끼리들이 보이는 다양한 이상행동을 모두 정신질환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코끼리들은 자연 상태에서 가족과 무리와 함께 작은 사회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아간다. 이들은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이유 없이 다른 동물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코뿔소들이 젊은 수코끼리들에게 공격당해 죽는 일이 반복되고 있단다. 왜 코끼리가 코뿔소를 공격해서 죽였을까? 한편 한 중년의 암코끼리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될 자해행위를 반복하고 다양한 이상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한다. 생물이라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를 피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해행위를 지속하는 코끼리라니!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로 설명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말을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해 이번에 찾아봤다. 말그대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후에 받게된 스트레스 덕분에 다양한 정신적 장애가 생기는 증상이었다. 그럼 코끼리들은 어떤 심각한 외상을 입었을까? 이 책의 5장에는 다른 책에서 인용한 코끼리 도태작업(코끼리의 수를 일정하게 조절하기 위해 죽이는 작업)모습이 아주 끔찍할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경험이 풍부한 사냥꾼들은 3명이 1분 안에 98마리의 코끼리를 죽인다고 한다. 이런 학살의 과정에서 어른 코끼리들은 모두 죽고, 겨우 살아남은 어린 코끼리들은 다른 동물원이나 다른 나라로 팔린다. 여기서 살아남은 어린 코끼리들은 평생 그 상처와 충격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제나'라는 이름의 중년 암코끼리의 증상을 'E. M.'이라는 가명으로(코끼리라는 사실을 숨기고) 5명의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의뢰했다. 그 결과 5명 모두 'E. M.'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단했으며, 치료계획도 비슷했다고 한다. 놀랍다! 인간만이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고 사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도 역시 그런 정신질환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디 코끼리뿐이겠는가? 동물원에 갇힌 다양한 동물들. 자신의 고향에서 강제로 옮겨진 수많은 동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이제야 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코끼리는 아프다. 바로 인간이 저지른 무자비한 폭력과 감금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직까지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바쁜 맞벌이 부부에게 동물원 나들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던 걸까? 만약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갈 일이 생긴다면 저 동물들이 저기 우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꼭 설명해줘야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1-10-2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렵으로 죽은 엄마고릴라 옆에서 발견된 어린 고릴라를 동물학자가 길렀는데 나중에 그림을 지적하며 수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어릴 때 엄마가 총에 맞아 죽은 장면을 재현했다고 하네요.

감은빛 2011-10-24 15:19   좋아요 0 | URL
저런! 그 고릴라가 받았을 충격이 엄청났을 거예요.
영장류에 대해서는 그래도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서
지능이나 감성적인 면에 대해 많이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하면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그런 시도가 없는 것 같구요.

yamoo 2011-10-2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코끼리가 넘 불쌍하네요~

근데, 코뿔소도 코끼리한테는 지는군요~ 첨 알았습니다..ㅎㅎ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감은빛 2011-10-24 15:2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코뿔소가 코끼리보다 더 쎌 것 같은데.
책에 보면 10년동안 100마리 이상의 코뿔소가 코끼리에 의해 죽었다는 군요.
게다가 이 글에는 인용하지 않았지만,
수코끼리가 코뿔소와 교미하는 장면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죠.

마녀고양이 2011-10-2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뿐 아니라, 인간으로 인해 힘든 동물들로 인해 마음이 짠합니다. ㅠㅠ

하지만, 동물원에서 우리 속에 갇혀있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를 가르쳐주시면
아이들은 동물원을 즐기기는 어렵겠네요. 그럼 동물원에 놀러갈 필요가....
아하하, 이거 어려운 문제인데요.

감은빛 2011-10-24 15:28   좋아요 0 | URL
동물원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어린이집에서 다녀온 얘길 듣긴 했어요.
동물원을 통해 거대한 야생동물들을 실제로 접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 동물들이 갇혀있기 때문에 겪는 고통에 대해서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러네요. 어려운 문제이긴 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10-24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들도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이 있더군요.코끼리가 죽은 동료를 사이에 두고 무리지어 모여서 무슨 의식같은 걸 하는 장면도 관찰되었고, 늑대나 원숭이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감은빛 2011-11-07 15:36   좋아요 0 | URL
앗! 제가 왜 이 댓글을 놓쳤을까요? 죄송합니다!
그렇죠. 동물들도 분명히 감정이 있어요.
동물들의 심리와 감정에 대해 더 다양한 사례들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12-22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3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람이 머리칼을 날린다. 미친 듯이 나풀거리는 목도리를 붙잡아 한 바퀴를 더 돌려 묶어보려 했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뺨을 에이는 칼바람 덕분에 얼굴엔 아예 감각이 없다. 오직 나 혼자 외딴 세계에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들려오는 건 오직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 뿐이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겨울이었다. 유람선 2층 난간에 매달려 바람을 맞으며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너무 매섭고 차가웠기 때문에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오직 한 쌍의 남녀가 나와 반대쪽 난간에 매달려 있었지만, 그들조차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곧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높은 파도에 배가 한번 심하게 요동쳤다. 나는 있는 힘껏 난간을 붙잡고 버텼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입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뺨에 감각이 없었지만, 그래서 실제로 내가 웃고 있는지 아닌지 느낄 수도 없었지만, 난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입으로 '허허허'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그 날이 생각났다. 귀를 때리는 바람소리와 배와 함께 몸을 들었다 놓는 파도의 감각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 같다. 그 날의 나는 어떤 이유 때문에 무척 슬펐다. 그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내 몸을 바람과 파도에 맡겨놓았다. 차가운 바람이 내 슬픔을 날려버리고, 난폭한 파도가 내 슬픔을 쓸어가 버리길 원했다. 이상한 건 그때 얼마나 슬픈 마음이었는지는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왜 그렇게 슬펐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속으로만 좋아하던 여성에 대한 마음의 정리였는지. 그해 여름에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는지. 나름 파란만장했던 한 해를 돌아보며 느낀 후회였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바람과 파도 속에서 괴롭고, 슬프고, 외롭고, 허탈했다.

유배지로 떠나는 선비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머나먼 절해고도로 가는 배 위에서 과연 무엇을 생각할까? 아무리 뛰어난 문재(文才)나 대학자라도 그 억울하고 괴로운 길에서 평정심을 갖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술에 취해 배에 오른 줄도 몰랐다는 이규보는 무척 운이 좋았다. 배의 사방에 장막을 쳐서 밖을 보지 못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제주도로 간 광해군이 가장 불안하고 먼 길을 갔으리라. 책에 실린 이들 중에서도 가장 불운했다고 봐야겠다.

책은 절해고도에서 남긴 시와 글을 통해 그들이 유배지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추적해 들어가는데, 나는 자꾸만 그들이 유배지로 향하는 배 안에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궁금하다. 곧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을까? 아니면 이제 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리라 체념했을까? 각각의 인물들이 끌려가게 된 사건과 배경을 두고 추리해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한때 같은 한 공간에서 일했던 활동가들 중 두어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백령도에 점박이물범의 생태를 조사하기 위해 들어가곤 했다. 이 책에서도 설명하듯이 백령도는 종종 배가 못 떠서 발이 묶이곤 한다. 그들도 가끔 섬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면 남아있는 우리는 섬에 갇힌 그들을 한없이 부러워한다. 각종 회의에, 기획안에, 보고서에 늘 바빠서 허덕이는 처지에 휴대폰조차 잘 안 터지고, 인터넷 연결조차 쉽지 않는 절해고도에 한 며칠 갇히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천국이 따로 없을 것만 같다. 짧게는 이삼일, 길게는 일주일씩 발이 묶였다가 돌아온 그들에게 그 꿀 같은 휴가(?)를 어찌 보냈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정말 좋았다고 했다. 당장 써야할 보고서와 회의 등의 급한 일정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어차피 걱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그냥 맘 편히 지냈다고 했다. 여관 근처에 유일한 만화방에서 하루 종일 만화를 읽기도 했다는 얘기에 듣는 이들 모두에게서 부러움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딱 이틀만 좋았단다. 삼일 째부터는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만화책도 이틀을 주구장창 읽고 나니 더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란다. 매일 아침 항구에서 오늘은 배가 뜨는지 안 뜨는지를 확인 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일이 없어서 미칠 것 같더란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막상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그 예상치 못한 고립이 달콤한 휴가와 휴식이 되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발 나를 절해고도에 위리안치 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 누구나 한번쯤을 해보리라. 그런 생각이 들때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9-1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4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1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4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실수 없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 관계와 사랑의 심리학
세르주 에페즈 지음, 배영란 옮김 / 황소걸음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수 

'당신은 늘 남을 가르치려고 들어요. 나는 당신의 애인이지, 학생이 아니예요.' 기억 속 어느 여성이 말했다. '오빠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누군가가 무슨 말만하면 곧바로 그게 아냐! 라고 말해. 일단 먼저 그렇게 말해놓고, 이유를 붙이는데, 솔직히 그 이유를 들어도 왜 그게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기억 속의 또 다른 여성이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는 '아유! 이 운동권 말투! 정말 재수없어!' 이렇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다보면 구체적인 상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태도와 말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 나와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이다. 나는 종종 섬세하고, 남을 배려하는 편이라는 평을 듣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나와 약간의 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 본심을 내보이며 상처를 줄 이유는 없다. 누구에게든 약간의 가식적인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아끼고, 좋아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왜 상처를 주는 걸까?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의 진심을 다 말해서 말하게되고, 있는 그대로의 태도로 대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내가 갖고 있는 성격 혹은 성향 중에 공격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이거나, 혹은 마초적인 면이 나도 모르게 드러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도 말했듯이 구체적인 상황들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대부분 정치적 성향이나, 내가 갖고 있는 나름의 신념에 관계된 일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조금 더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했다면 저런 실수를 안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실수였다고 뒤늦은 변명을 던져보아도, 말그대로 버스 떠난 후에 손 흔드는 격이다.

사랑 혹은 관계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일까? 내게 사랑이 의미하는 바는 무얼까 궁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내렸던 결론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어떤 감정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똑같을까? 잘 모르겠다. 사랑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이 떠오른다. 그 사람들이 내가 갖고 있는 관계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고, 또 실제로든 단지 표면적으로든 나와 사랑이란 감정으로 얽혀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평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그닥 평이 좋지는 않다. 뭐 내 태도로 보아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내가 실제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닥 신경을 안쓰고 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들과의 관계와 소통에 좀 더 신경을 쓴다면 뭔가 달라질수도 있을까? 

한때 사랑과 결혼 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개인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사회적 관계때문에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 그때 읽은 책이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이란 책이었다. 당시 이 책의 도움을 받으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것이 얼마나 개인에게 희생을 강조하는 제도인가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결혼 후에 가사노동과 육아 등 흔히 여성들의 일로만 생각되는 소위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나눠하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가족간의 소소한 일들이 때로는 갈등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행복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그들의 심리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까? 

심리학 

'관계와 사랑의 심리학'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과연 이 책을 읽으면 나는 실제로 '실수 없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일단 흥미로운 건 사진이나 그림, 만화 등의 시각적 이미지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둘째로 각 장마다 시작하기 전에 한페이지짜리 만화가 나오는데, 프랑시라는 이름의 설치류가 주인공이다.(쥐처럼 보이는데, 정확하게 어떤 류의 동물인지 구분하기는 조금 어렵다.) 한 페이지, 6컷짜리 만화로 늘 시작하는 장면은 주인공 프랑시가 들판을 산책하는 장면이다. 이게 프랑스식 유머인지 가끔 이해안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만화이기 때문에 일단 재밌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눠져있다. '너'를 (이해하길) 원하는 '나' 라는 제목의 1장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심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2장은 인간에게 어떻게 사랑이 올까? 라는 제목으로 나와 나외의 존재와의 관계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3장 사랑은 어떻게 모든 걸 복잡하게 만드는가? 과 4장 사랑, 가족, 민족 은 사랑, 결혼, 가족 등의 주제로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나는 이 책의 구성 순서가 마음에 든다. 먼저 나를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 알게되고, 그 다음에 그런 사랑과 관계들로 인해 벌어지게 될 다양한 일들에 대해 살펴보는 순서가 체계적이다. 각 장에는 저자의 의견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으로 다양한 텍스트들이 인용되어 있다. 이 인용문들이 이 책의 가장 독특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솔직히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고, 흐름이 자꾸 끊겨서 그리 효율적이지 못한 느낌이다. 게다가 가장 아쉬운 건 번역인데, 이 글이 심리한 전공자들만 읽는 전문서가 아니라면 좀 더 어휘 선택에 신경을 쓰고, 문체에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실수 없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심리학적으로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연인의 관계, 나와 가족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할지에 대한 재미있는 지식을 얻은 것 같다. 특히 아직 어린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유아기의 행동양태에 따른 심리학적 분석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강조하듯이 인간관계에 촛점을 맞추고 접근하는 새로운 일상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지금까지 나 자신으로만 향해있던 촛점을 이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한번 옮겨봐야 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1-09-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든 약간의 가식적인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

매우 공감하는 리뷰에요. 특히 위 부분은!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아직도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거 같아요..

리뷰를 읽으니, 저도 지난 악몽과도 같은 일이 떠오르네요....말...어떤 말을 내뱉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봤어요~^^

감은빛 2011-09-09 03:2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아휴, 좋은 글이라 말씀하시니 부끄럽네요!
디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읽지 못했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보관함에 갇혀있답니다.
야무님의 덧글을 보았으니, 조만간 장바구니를 통해 해방시켜주어야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곧바로 그 책을 읽을 확률은 많지 않습니다.
다시 책장 어느 구석에 갇혀있는 신세가 될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보관함에서 해방시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 같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08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잘 지내셨어요? 글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저 역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해내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나를 편안하게 내보일 수 있는 관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단 생각도 드네요.. 쉽지 않지만요

감은빛 2011-09-09 03:24   좋아요 0 | URL
솔직히 잘 지내지는 못했지만,
현맘님의 안부인사에 빈말이라도 무척 잘 지냈다는 답을 하고픈 심정입니다.
네, 무척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 편안하게 내보인다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불편함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린이 먹을거리 구출 대작전! - 초등학생을 위한 먹을거리 교과서 고갱이 지식 백과 1
김단비 글, 홍원표 그림, 김종덕 원저 / 웃는돌고래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먹거리 문제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환경단체에 들어가고 나서도 한참 지난 후였다. 대규모 개발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을 지키는 문제는 아주 시급해보였지만, 매일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농약에 찌든 쌀을 먹고 산지 오래되었고,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다양한 화학조미료 맛으로 먹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 선배 활동가들이 대부분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안전한 먹거리를 구매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당장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생협 이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먹거리 문제에 아주 민감해졌다. 젤라틴과 설탕과 타르계 색소들과 합성착향료와 아질산나트륨과 MSG와 GMO 콩과 옥수수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토피, 비만, 알레르기성 비염, 소화불량 등을 달고사는 아이들을 보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절로 깨달을 수밖에 없다.

젤리를 만드는 원료인 젤라틴이 미국에서 공업용으로 수입된 소가죽으로 만들어 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놀랐고, 또 화가 났다. 게다가 공업용 소가죽을 그냥 원료로 쓰는 것도 아니었다. 신발공장, 가방공장 등에서 필요한 만큼 재단하고 버려진 자투리 가죽을 공장 한쪽 구석에 모아놓았다가, 재활용 쓰레기 등을 실어 나르는 집게차가 와서 실어서 젤라틴 공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마당 한 구석에 놓여있던 소가죽 쓰레기 더미는 비를 맞고, 먼지를 덮어쓰면서 썩어가고 있었는데, 독한 화학약품냄새와  가죽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서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쓰레기로 젤리와 각종 과자들(초코파이와 초코바, 캐러멜, 아이스크림 등)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 과자들이 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갔다니!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발암물질인 아질산나트륨이 포함된 햄은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모두 즐겨먹는 음식이다. 한때 환경단체의 경고로 일부 업체에서는 발색제(색깔을 보기 좋게 만들어주는 물질)인 아질산나트륨을 빼고 만든 햄을 내놓기도 했으나,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곧 사라졌다. 우리 아이도 어느 날부턴가 햄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요즘은 반찬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이 없으면 입을 삐죽 내밀고 반찬투정을 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온갖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서 어떻게 얘기해줘야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마침 ‘웃는돌고래’라는 재밌는 이름의 출판사에서 <어린이 먹을거리 구출 대작전>이란 책이 나왔다. <먹을거리 위기와 로컬푸드> 등의 먹거리 문제를 다룬 책을 쓰고, 번역해온 김종덕 선생님의 글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듬었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을 넣어서 만들었다. 딱 애들이 읽기 좋은 만화책 느낌이다. 책 앞쪽에는 ‘음식문맹’인지 ‘음식시민’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OX 퀴즈가 실려 있다. 퀴즈를 보는 순간 혹시 나도 ‘음식문맹’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문제를 풀기가 두려웠지만, 아이랑 함께 차근차근 풀어보았다. 역시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우리 아이에게는 조금 어려운 문제였지만, 하나씩 설명하면서 나도 새롭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딱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 땅의 음식문제 전반에 대해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2장(쌀과 밥), 3장(철없는 과일, 슬픈 고기는 이제 그만!), 7장(도시 아이들 똥은 땅도 못 먹어!), 8장(패스트푸드 공화국) 은 특히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어서 좋았다. 2부에서 다룬 ‘로컬푸드’와 4부에서 다룬 ‘먹거리 대안’ 부분은 상대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이와 함께 읽으려고 해보니, 그 전에 나부터 먼저 공부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책의 뒤쪽에는 친절하게도 참고할만한 책들의 목록을 2쪽 분량으로 실어주었다. 책을 만든 사람의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책을 구매하면 ‘엄마 아빠와 함께 쓰는 음식 일기’라는 소책자가 따라온다. 매일 하루 세끼와 간식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록하고, 가장 먼 곳에서, 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 음식을 생각해보고, 패스트푸드는 없었는지 생각해보고, 아이가 직접 만들어 본 음식을 기록하도록 되어있다. 아이랑 직접 해보면 재미있게 먹거리 문제에 접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척 맘에 든다.

몇 년 전 나와 아내는 아토피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면서 생협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 생협을 이용하고 나니 마트에서 파는 음식들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과자 하나를 집어 들어도 온갖 화학첨가물들이 눈에 보여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먹거리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공부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먹거리 문제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