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현대과학·인문학·SF를 통섭하는 재미
원종우 지음 / 생각비행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떤 고백


이 글은 은밀한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은밀한이라는 단어를 쓰고 보니, 이미 몇 차례 술자리 안주로 이 고백을 써먹은 기억이 나서,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경우 이런 류의 고백은 부끄러운 경험이 되기 마련이니,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전혀 이 경험이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다시 다른 수식어를 떠올려본다. 나로서는 직접 겪은 일이고, 그럴수도 있을 법한 일이라 여겨지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 황당한 고백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충격적인 고백? 아, 모르겠다. 그냥 앞에 수식어를 빼고 고백이라고 해야겠다. 다시 시작해보자.


이 글은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번에는 너무 밋밋하다. 분명 저 고백이란 단어 앞에 무언가가 들어와야 딱 느낌이 살 것 같은데, 이 첫 문장에서부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다. 벌써 몇 시간을 이 한 문장을 두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늦은 밤, 자꾸 눈은 감기고, 이 글은 꼭 쓰고 자고 싶다. 단 한 줄을 적어놓은 빈 문서를 노려보다가 문득 배가 고프다. 아니 입이 심심하다. 두뇌회전에는 견과류가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땅콩 몇 알을 주워먹고 돌아와서 다시 쓴다. 이번에는 지금 겪었던 과정을 일단 쓰고 보자고 생각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첫 문장의 표현을 두고 고민한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이 책 5장에 나오는 '시간 여행과 평행우주'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나도 내 선택을 강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의 첫 시작을 장식할 수식어 선택을 놓고 여러가지를 고민한다. 이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우주가 갈라져나가는 것이 바로 '평행우주'라고 한다.


이미 술자리 안주로 써먹어서 은밀하다고 표현하기에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글을 읽을 이들은 대부분 모르는 이야기일테니, 그냥 '은밀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나는, 실제로 부끄럽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대개 부끄러워할 거라는 판단에 '부끄러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우주에서 각자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아진다. 어법에 맞지 않는 어떤 단어를 그냥 나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예 수식어를 빼고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첫 문장을 다른 말로 바꿔버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고백은 뭐냐고? 아! 그걸 잊어버렸네. 그냥 말 안하고 넘어가면 안될까? 평행우주를 하나 더 만들어내는 셈치고 그냥 첫 문장을 바꿔야겠다. 다시 시작하자.


종교 논쟁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내세 혹은 다음 생이라고 부르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다. 나는 그냥 살아가면서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뇌에서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뇌가 기능을 멈추는 순간 나라는 존재도 아예 사라진다고 믿는다. 나는 꽤 어려서부터 우리가 신이라고 믿는 초월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답답했다. 아니 신기했다.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데 어떻게 믿는 건지 궁금했다. 진짜로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저 사람들도 사실은 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어떤 이유로 믿는 척 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삶에 잘 어울린다고 여기고 남을 따라 믿는 척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개중에 아주 믿음이 강한 신자를 만나면 저들은 남을 속이려다가 도리어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봤다.


대부분이 믿는 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크게 잘못된 판단이라고 깨달았던 것은 사람들과 신의 존재와 종교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살면서 가장 친했던 친구로 꼽을 수 있는 녀석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어른이 된 이후에도 간혹 만났으니, 오래 사귀기도 했다. 이 녀석이 아주 독실한 기도교 신자였다. 녀석은 나를 걱정해준다며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자꾸만 권했고, 나는 녀석이 걱정되어 사실은 신은 없고, 종교는 인간이 만든 허상일 뿐이라고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시작한 토론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셀 수 없다. 늘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그냥 각자의 생각을 각자 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 외에도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끝없이 이어졌다. 더 많이 알아야 하기에 종교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에도 종교에 대한 책을 구해 읽어야 했다. 이 알라딘 서재에도 종교에 대한 책을 읽은 흔적이 제법 있다. 아무리 논쟁을 하고, 책을 읽어도 본질적인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내세를 믿을까? 왜 초월자의 존재를 믿을까?


이 책을 읽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이 책의 6장에서 '자아'는 인간이 육체안에서 성장해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가는 것이라고 깨닫고 해주고, 7장과 8장을 거치면서 꿈과 환상, 정신적인 활동과 실제 시간 간의 관계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1장에 나오는 소설이 비록 저자의 짧은 소설이긴 하지만 내가 궁금해왔던 지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무척 놀라웠다!


세상이라는 흥미로운 재료


책의 3장에서 저자는 학생운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과학 서적에만 몰두하고, 현실에서 전혀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 선배들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의 저자보다는 한참 후배지만, 나는 오히려 저자가 지적했던 선배들의 태도로 살아온 것 같다. 아마 학창시절에 주입식 교육을 받은 부작용일거라 생각하는데, 물리학과 생물학 등 과학 계열의 지식은 어렵기만 할 뿐, 전혀 관심을 두기 어려웠다.


앞서 말하려고 했던 고백은 사실 수학과 과학 성적에 대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 0점을 두어번 받았다. 실제로 0점 시험지를 돌려받은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 수학 선생님이나 주위 친구들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확률적으로 그냥 찍어도 한 문제는 맞출텐데, 어떻게 0점을 받을 수 있냐는 태도였고, 심지어 모든 문제의 답을 다 알고 일부러 0점을 받은 거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수학과 과학을 제외하면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받는 편이어서 황당한 그 의심을 갖는 친구들이 있었다. 두 과목을 뺀 나머지 평균과 합한 평균이 터무니없이 달랐기 때문에 선생님도 괘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게 더 충격적일텐데 나는 모든 문제를 다 풀려고 노력했고, 대부분의 문제를 풀어서 틀린 답을 골랐다. 수학을 싫어하긴 했지만, 시험 시간에 문제를 풀려는 노력 없이 그냥 답을 찍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려 했던 이유는 학교 교육이 수학과 과학에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도록 만들어, 어린시기부터 전혀 과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접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분명 살아온 시간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보다 더 많을텐데, 이제서야 과학이 사실은 이렇게 재미있는 분야였구나 깨달아서 너무 아쉽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이 책이 이제 막 나온 책이니까, 당연히 그 전에는 만날 수 없었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이 글에서 꼭 드러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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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2-15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감은빛 2014-12-16 05:25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어려운 현대 과학 이론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개 2014-12-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정적으로 11장에 나오는 소설이 비록 저자의 짧은 소설이긴 하지만 내가 궁금해왔던 지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무척 놀라웠다!`--어떤 단서일까요? 저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써 엄청나게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는 수학능력시험에서 수리영역 8점을 맞았어요. 아하하하하하하하.......
모의고사때도 거의 10점대, 과학부분도 뭐 그렇구요.
수학,과학 잘하시는 분들이 제일 부럽더라구요.

감은빛 2014-12-16 05:27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저랑 비슷하시군요.
도토리 키재기 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것 같은데요. ^^

책에 저자의 아주 짧은 소설이 두어 편 있는데,
무척 재미있고 또 흥미로워요!

yamoo 2014-12-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과학 인문학 sf의 통섭이라....이걸 제대로 통섭했다면 대단한 작가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서점가서 들춰보고 괜찮으면 구매해야 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4-12-16 05: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저자의 이력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책에 단편적으로 소개하는데, 평범한 경우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과학 지식이 전혀 없는 편이었고,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GOP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은?

 

뉴스에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아서, 총기 난사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만 얼핏 보았을 뿐,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우연히 22사단이란 부대명을 보고서야 깜짝 놀라 찾아봤다. 그리고 경향신문의 아래 칼럼을 읽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232045505&code=990303



이 글에선 임병장이 전입되어 온 병사라고 했다. 그리고 잔류와 전입 등이 육군본부도 잘 모르는 변칙과 편법이라고 했다.

난 22사단 출신이다. 이등병 때 GOP에 올라갔다가 나중에 페바에 내려왔는데, 병장이 될 무렵 다시 GOP 투입에 대한 소문이 돌았으나, 다행히 내가 제대한 후에야 우리 대대가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당시 매우 비정상적이면서 큰 규모의 부대 이동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대급 규모의 부대 하나가 사라지면서 해당 부대 병사들은 여기저기 쪼개져서 흩어져 남의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에 대략 한 개 소대 규모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편에선 GOP 경험이 없거나 적은 부대에, GOP 경험이 풍부한 부대원들을 무더기로 몰아준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부대를 곧 투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라는 얘기와 함께

즉, 내가 있었던 당시에도 GOP 투입을 앞두고 임병장과 같은 전입 병사가 대거 들어왔단 얘기다. 그리고 당연하게 큰 혼란이 이어졌다! 군생활은 무조건 서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갑작스레 들어온 여러명의 전입 병사들은 기존 소대원들의 서열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들은 전혀 뒤섞이지 못하고, 서로 긴장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당시 우리 소대에 GOP를 경험한 병사는 서열상 내가 마지막이었다. 내 뒤로는 모두 페바에 있을때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서열상 내 바로 뒤에 여럿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원래 소대에서 내 바로 뒷 서열이었던 상병들은 갑작스럽게 자기 앞으로 끼어 들어온 전입 병사들을 고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동안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쓴 사람의 주장이 무조건 옳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 경험과 임병장의 경험이 전혀 관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니, 당시 그 어이없던 대규모 전입 사태가 왜 일어났던 것인지는 조금 이해가 간다. 육군본부조차 모르는 편법이라니.

 

 

살인 충동

 

남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일이 더 대단하다고 여기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여성들은 가본적도 없고,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이 바로 군대 얘기다. 즉, 해봐야 별로 좋을 것이 없는 얘기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풀어놓자면, 군 생활하는 동안 위험한 경우가 제법 많았다.

 

일단 자대배치를 위해 전방으로 투입되는 날, 사상 최악의 지뢰 폭발 사고 소식을 들었다. 전방으로 들어가는 포차 안에서 말이다. 휴일이라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고 들었다. 축구공이 공터를 벗어나 길 옆 풀밭으로 떨어졌고, 평소에 늘 다니던 길에서 불과 몇 발짝 더 벗어났을 뿐이라 아무 생각없이 공을 주으러 갔다. 축구를 하던 중이었으니, 당연히 여러 명이 우루루 공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고, 그 중 가장 가까이 있던 혹은 제일 계급이 낮은 한 명이 공을 주으러 풀밭에 들어가서 공을 집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M16이라는 대인 지뢰가 사람 머리 보다 더 높이 튀어올랐다. 다음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 죽었다고 들었다. 머리 위에서 터진 지뢰가 사람 몸을 찢어 놓아서 시신 수습도 어려웠다고 들었다. 그런 얘길 들으면서 앞으로 경계 근무를 서게 될 소초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배치받은 소초의 소초장은 한 마디로 미친 인간이었다. 신병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경계근무에 바로 투입되지 않고, 순찰을 다니는 소초장이나 부소초장을 따라다니는 임무를 받았다. 소초장은 길이 아닌 곳으로 함부로 돌아다녔다. 또 버젓이 '지뢰지대'라고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곳을 가리키며 저기에 과연 지뢰가 있을까 없을까를 물었다. 그 인간 말은 이랬다. 사실 지뢰는 방심한 적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인데, 저렇게 해골을 그려놓거나, 지뢰지대라고 써놓으면 누가 들어와서 밟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즉, 저건 가짜로 만들어놓은 지뢰지대이고, 저기엔 지뢰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신병이었던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와 "네 그럽습니다!"만 크게 외쳐댔는데, 그 인간이 실제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보고 들어가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첫 날 들었던 소식은 실제로 주변 초소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 때문에 유독 지뢰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소초장이 진심으로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했으니까. 나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그 인간은 자신이 먼저 들어가 볼테니, 나도 꼭 따라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뢰지대라는 안내판이 붙은 철조망을 가볍게 넘어서 안 쪽으로 서너 발쯤 조심스레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건 정말 미친짓이야를 머리 속으로 외치면서도 그가 밟았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려 애쓰며 딱 그가 갔던 곳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수명이 줄었다는 관용어구를 정말 이럴 때 써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지오피에서 경계 근무를 나갈때는 실탄과 수류탄을 받는다. 적과 조우할 수 있는 위험지역인만큼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실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병장이 하나 있었다. 서열은 대략 5위 정도 였던가. 나는 화기분대 탄약수로 배정받았고, 그 병장은 화기분대 기관총 사수였다. 화기분대에는 기관총 사수가 두 명있는데, 그는 내 사수는 아니었고, 다른 한 명의 사수였다. 소초로 발령받아 온 지 며칠이 지나면서 슬슬 이 생활에 적응이 되어간다 싶을 때쯤에 그 병장이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갈군다는 말이 아마 사투리였던가? 잘 모르겠다. 암튼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대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그냥 괴롭힘이었다. 온갖 모욕과 수치를 견뎌내며 하루 하루 지나던 날들. 나는 신병이었기 때문에 맞아도 참아야 했고, 욕을 들어도 참아야 했다.

 

내 바로 위 탄약수는 일병이었는데, 키가 크고, 골격이 크고, 얼굴도 시원하게 잘 생긴 사람이었다. 지오피는 처음 들어올 때 인원을 꽉 채워서 오기 때문에 들어와서 한참동안 신병이 들어올 일이 없다. 그는 꽤 오랜동안 소초 막내였다. 그리고 내가 들어와서야 막내를 벗어났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내게 참 잘해줬다. 뭐든 다 챙겨주고, 가르쳐 주고, 지저분한 일들, 누구라도 꺼릴 일들을 척척 해내곤, 씩 웃곤 했다. 나는 맏이라서 형이 없는데, 만약 가족 중에 형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를 따랐다.

 

나와 그 일병은 화기 분대의 선임 사수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선임사수와 앞서 소개한 또 한 명의 사수, 그 병장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우리 사수는 별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지 못했건만 그 병장은 자주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임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하니까 그 밑에 있던 사람들, 부사수와 두 탄약수를 괴롭혔다. 이것이 내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그가 나를 괴롭히는 이유의 전부였다.

 

어느 날 그는 별일도 아닌 걸로 트집을 잡아 나와 그 일병을 밖으로 불러내 굴리기 시작했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엎드려 뻗쳐 등등 얼마나 굴렀을까, 지쳐서 가쁜 숨을 내 쉬느라 올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군화발이 날아왔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은 얼차려를 받았던 일병이 뭐라고 했던가? 아니면 그냥 눈빛만 보냈을까? 아픔 때문에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그 병장은 이게 감히 어디서 개기냐며, 일병을 패기 시작했다. 아,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 붓고, 할 수 있는 모든 저주를 퍼붓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밤중에 경계근무를 나가 있었는데, 순찰조가 우리 근무지로 접근했다. 근무지에 누군가 접근하면 암구어를 외치고,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멈추게 한 다음, 포박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그가 내 명령에 따르지 않고 계속 접근해온다면 경고한 후에 사격하도록 되어있다. 멀리 있을 때는 알수 없었으나, 대화가 될 정도로 가까이 오고 보니, 순찰조는 부소초장과 그 병장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를 외치고, 곧이어 암구어를 불렀다. 평소대로 였다면 곧바로 답이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한번 더 암구어를 불렀다. 또 답이 없었다. 걸어오던 부소차장이 힐끔 그 병장을 쳐다보았다. 암구어를 외우는 것은 늘 후임의 몫이다. 언제나 2인 1조로 움직이는 전방에서, 선임은 암구어 따위 신경도 안 쓰고, 후임이 외우도록 되어있다. 평소라면 늘 선임이었을 그 병장은 아마 암구어 때위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그리고 부소초장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고. 두 사람은 멈추지도 않고, 속도도 줄이지 않고 우리 쪽을 향해 왔다. 나는 세 번째로 암구어를 불렀다. 역시 답은 없었다. 같이 경계를 서고 있던 선임을 쳐다봤다. 그도 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고, 누군지 알는 상대이므로, 암구어를 모른다고 굳이 포박할 이유는 없었다.

 

순찰조는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 때 내 머리속에는 그 병장을 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살인 충동. 조준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암구어를 불렀던 순간부터 나는 계속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왼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병장을 겨눴다. 조준경의 막대 위에 그의 얼굴이 올라왔다. 이제 장전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그를 꿰뚫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증언 할 것이다. 구름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어두웠고,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안 보였습니다. 그리고 암구어를 세 번 부를 동안 답이 없었고, 멈추라는 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총을 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증언한다면 나는 죄가 없는 것이다. 라는 상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 앞에 도착했다.

 

이어서 그 병장은 손을 들어 내 화이바를 내려쳤다. "이 새끼야, 암구어를 세 번 대는 동안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도록 되어 있어? 왜 가만히 있는거야?" 어이가 없었던 나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암구어를 안 외운 것은 본인 실수인데,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고 나를 때리다니. 몇 번의 욕을 듣고, 몇 번의 구타가 이어진 후 부소초장은 슬쩍 그 병장을 말렸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암구어가 뭐냐고 물었다.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 경계조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다음 근무지에서 또 암구어를 댈 수 없을 것이고 또 망신을 당할테니까. 그 병장은 대답을 빨리 안한다고 나를 한 대 더 때렸고, 보다못한 우리 경계조의 선임이 암구어를 알려줬다. 다음 근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는 그 병장을 쏘아보며,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쏴 버릴걸 하고 후회했다.

 

진짜로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을 느낀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내 사격 실력은 나쁘지 않았고, 그는 내 조준경 안에 들어와 있었고, 손가락만 까딱 했으면......

 

아, 역시 군대 얘길 하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애초 생각보다 글이 훨씬 길어졌다.

 

전쟁과 군대와 남성

 

이건 우연이었을까? 최근 읽고 있던 책이 바로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였다. 작년 지역의 시민신문에 글을 연재하면서 때로는 소액의 도서상품권을 원고료로 받았고, 때로는 책을 받기도 했다. 또 때로는 신문사 측에서도 잊어버리고, 나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연재를 마칠 때쯤 신문사에서 보유하고 있던(여기저기서 기증받았던) 도서 목록을 공유하면서 필자들에게 책을 신청하라고 연락해왔는데, 그때 딱 눈에 들어온 책이 저거였다. 책을 받으러 가겠다고 말해놓고는 거의 반 년동안 신문사를 찾아가지 못했다. 얼마 전 선거가 끝나고 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오후 시간에 신문사를 찾아가서 편집장님과 잠시 수다를 떨고 받아왔다. 그리고 이제 대략 3분의 1 정도를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글이 어렵고, 번역 상태와 교정 상태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도 몰랐던 사실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한참 전쟁과 군대 그리고 남성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차에 총기 난사 사건 소식을 접하고, 그 옛날 군대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올해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유난히 많은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군대의 경우 '사고 사례 전파' 등을 통해 몇 차례 접했던 GOP 총기 난사 및 수류탄 투척 사건들이 기억났다. 세월호는 좀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군대에서의 죽음은 평소에도 늘 있었던 일이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만 유독 무장 탈영과 저항으로 이어져서 알려진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땅에서 무기를 들어야만 한는 젊은 목숨들을 위해 잠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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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6-2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국방부에서 불 나기를 기다리는 병사로 있었지만 못난 선임들을 소방차에 빠트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ㅎ
근데 감은빛님의 글을 읽으니 전방의 그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지네요...
완전 몰입해서 읽었네요 그 병장 저도 쏘고 싶네요...
흠. 군대 문화 끔직해요

감은빛 2014-07-27 01:27   좋아요 0 | URL
루쉰님, 답이 한 달 늦었군요.
사실 7월 초반에 이 댓글을 보긴 했는데,
여유가 없어 답을 쓰지 못하고 넘어갔던게, 한 달이 늦어지게 되었네요.

국방부에 불 나기를 기다렸다니, 무서운 병사였군요!
오랜만에 루쉰님이 제 블로그에 와주셔서 무척 반갑네요!

루쉰P 2014-07-27 17:22   좋아요 0 | URL
나름 군대 문화를 저주하는 병사였죠. ㅋ
감은빛님이 무서운 병사라고 하시니 흠...저도 솔직히 자신에게 소름이 좀 끼치네요. 흠..이게 다 군대 문화 탓이에요. 전 평화를 사랑하는 데...
 
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
고야스 미치코 지음, 임영희.이연현 옮김 / 밝은누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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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자주 듣던 노래 중에 <문제아>라는 동요가 있다. 부산 감전초등학교 김형창 어린이가 쓴 시에 백창우 씨가 곡을 붙였다. ‘문제아가 되는 건 쉽지만~♪ 보통 아이가 되는 건 어려워♫’ 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교육 문제의 핵심을 짚을 수 있다니!

 

박기범 작가의 『문제아』라는 동화책도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오덕 선생이 『어린이 책 이야기』에서 높게 평가한 글을 읽고 찾아본 책이었다. 여기 실린 10개의 글이 대체로 다 좋은데,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특징이 마음에 들었다. 이를테면 어린이들에게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잘 다루고 있다.

 

노래와 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학교는 남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쉽게 문제아로 낙인을 찍고, 온갖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기 마련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 아주 특이한 문제아를 발견했다. 1970년대에 고야스 후미라는 아이가 독일 뮌헨에 있는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를 다닌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발도르프 교육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후미와 같은 반 친구인 파우스트는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포함해 주위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 그런데 파우스트는 이 학교에서 문제아다. 선생님이 학부모 회의에서 이름을 언급해 지적할 정도이고, 부모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른 학부모들은 너무 머리가 좋은 아들을 둔 그 부모를 오히려 위로한다. 머리가 좋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위로를 받을 만큼 나쁜 뜻이 되기도 하는구나.

 

파우스트는 일반적인 교육환경에서라면(독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단한 우등생으로 떠받들어질 만한 학생이다. 파우스트의 담임인 불프 선생님은 “일반 학교를 다녔다면 두세 번은 ‘월반’할 아이입니다. 그리고 열다섯에 대학에 들어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또 그의 엄마는 “파우스트같이 머리가 너무 좋은 아이, 이건 정말 문제예요.”라고 말을 시작해서 “이런 아이는 계속해서 영재 교육을 받게 되죠. 어른이 되면 어떨까요? ‘문제 어른’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설명한다. 파우스트가 왜 문제아인지 짐작이 간다. 앞에서 언급한 <문제아>란 동요에 가사로 넣는다면 ‘공부를 잘해도~♪ 문제아♫’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도 천재가 한 명 있었다. 전교 1등이었고,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가끔 전국 1등도 하는 친구.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다 배우고 들어와서 수업시간에는 별로 집중해서 듣지도 않았다. 가끔 수학 선생님의 실수를 지적하거나, 선생님도 못 푸는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 선생님을 긴장하게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당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특별한 존재였다. 나머지 50여 명의 학생들은 마치 그를 위한 들러리 같았다. 그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서울대를 들어갔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파우스트 엄마의 말처럼 문제 어른이 되었을지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우리 교육은 문제 어른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가와 자본이 원하는 대로 남들과 똑같이 노동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어른. 획일적이고 편향적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가 없고 시험이 없는 학교에서 삶에 대해 배우고 성찰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이 나라의 교육 문제가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1977년 고야스 후미가 뮌헨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에 돌아온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전에 후미가 슈타이너 학교를 다녔던 내용은 『독일의 자존심 발도르프 학교』라는 책에 나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과연 고야스 후미는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77년에 13 혹은 14살이었으니 지금은 50쯤 되었을텐데. 여러 방면으로 검색을 해봐도 이 책의 저자이자 후미의 어머니인 고야스 미치코가 쓴 책들만 나올 뿐 그외의 정보는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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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4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6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남매맘 2014-01-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천재가 오히려 문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보통의 시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인성은 좀 안 되더라도 공부만 잘하고, 천재의 아이큐를 가지고 있으면 성공하리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머리만 비대해지고, 감수성은 작아지게 만드는 교육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감은빛 2014-01-07 18:07   좋아요 0 | URL
재밌죠?
저는 파우스트의 담임인 불프 선생님이 문제아로 지목한 것도 신기했지만,
파우스트의 부모나 주위 학부모들의 반응이 더 황당했어요.
아이가 2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천재라서 위로 받는 부모라니!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한번 읽어보세요.
70년대에 쓰인 책인데,
그로부터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우린 여전히 후진 교육을 받고 있어요.
아니 요즘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 질병의 역습과 인체의 반란
이은희 지음 / 해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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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에 방영된 SBS 스페셜 <환경호르몬의 습격>을 뒤늦게 봤다. 첫 장면부터 충격이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 울고, 벽을 손톱으로 긁고,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많았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생리통이 심한 아이들이 30%가량이었고, 이들은 ‘자궁내막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자궁내막증은 밖으로 배출되어야 할 생리혈이 나가지 못하고 자궁에 고여 있거나 나팔관으로 역류하는 등의 증상을 말한다. 취재팀은 10대 청소년들과 20대 미혼 여성들 그리고 출산을 경험한 주부까지 생리통이 매우 심한 여성들과 함께 자궁내막증을 치료하고 생리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 방법은 매우 큰 효과를 거둬, 실행한 첫 달에 모든 참여자가 생리통이 급격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약을 먹거나, 수술이나 시술을 받지 않았다. 단지 모든 플라스틱 용기, 일회용품, 샴푸, 합성세제, 화장품, 합성섬유 등을 사용하지 않고 유리 용기와 천연 제품만을 사용했다. 자궁내막증과 극심한 생리통의 원인은 바로 환경호르몬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셀 수 없이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과 인공적으로 합성된 온갖 화학물질들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우리 몸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남성호르몬을 공격해 태아의 남성 생식기를 작게 만들거나 아예 여성의 생식기 모양으로 만든 국내외 사례들도 소개되었다. 미국의 한 소아과 의사는 "남성이 점차 여성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또 여성 어린이들의 성조숙증도 환경호르몬의 영향이라고 했다.

 

방송을 본 후 이 책에서 다시 같은 내용을 만났다. 책에 나온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닐스 스카케백 교수의 연구는 충격적이다. 세계 20개 지역에서 50년 동안 조사된 문헌을 비교 분석한 끝에 1990년대의 남성은 1940년대 남성 보다 정자 수는 50% 감소하고, 정액은 25% 감소하는 등 전반적으로 생식능력이 저하되었다고 보고했다.

 

방송에서는 내분비계 장애물질, 이 책에서는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소개된 환경호르몬은 과거에는 없던 물질이다. 석유화학 제품의 급격한 발달과 싼 가격으로 여러 천연 물질들을 밀어내고 우리 주변에 널리 퍼진 후에야 우리는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환경호르몬들이 우리 몸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다 밝혀지지 않았다. 저자는 20세기 중반 이후 늘어나고 있는 각종 암과 아토피성 피부염 역시 내분비계 교란물질의 영향이라는 의혹에 관해서도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질병의 원인이 박테리아(세균), 바이러스, 원생생물(원충), 진균류, 중금속, 독성화합물질, 내분비계 교란물질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과 함께 종류별로 감염되는 질병과 치료방법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설명은 의학의 발달과 전문화로 인해 오히려 내 몸과 건강이 나에게서 소외되어버린 이 아이러니한 시대에 무척 값지고 귀중한 정보다. 평생 병원에서 뭔지 모를 암호 같은 말만 듣다가 이제야 비로소 질병과 내 몸에 제대로 된 설명을 들었다.

 

‘하리하라’라는 필명이 무척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인도 신화에서 창조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가 등을 맞대고 결합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저자는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생물학과 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국내에 몇 안 되는 필진 중 하나다. 앞으로도 저자의 활발한 활동을 바라며, 또 저자와 같은 일을 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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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11-0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리하라가 저자의 필명이군요. 유익한 책 같아요. 몸의 소중함을 나날이 느끼며 사는 계절이 됐어요. 몸과 마음의 계절이요.^^ 좋은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3-11-13 12:11   좋아요 0 | URL
네, 글에도 썼듯이 우리나라에 정말 몇 안되는 귀중한 필자랍니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줍니다.
고맙습니다!

hnine 2013-11-07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생명과학 분야 작가랍니다. 말씀하신대로 국내 몇 안 되는 필진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저자의 다른 책들도 권해드릴만 해요.

감은빛 2013-11-13 14:03   좋아요 0 | URL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시니 무척 반갑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 책도 그렇고 다른 책도 벌써 구해놓고 있었는데,
주욱 훑어보고 나서 제대로 읽진 못하고 있었어요.
최근에 자료 찾다가 이 책은 다 읽었는데,
다른 책들도 하나씩 섭렵해보려구요.
고맙습니다!
 
미래가 있다면, 녹색 이매진 시시각각 1
최백순 지음 / 이매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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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설날,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를 봤다. 늘 가던 친척 어른댁에 안 가게 되어 갑자기 시간이 남았는데, 마땅히 할 일은 없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밀라 요보비치의 얼굴이 그려진 극장 간판을 보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2011년 가을, 밀라 요보비치 못지않은 미모에 잔 다르크로 불렸던, 페트라 켈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때였다.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었기에 잔 다르크라고 불렸는지.

 

잔 다르크는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 말기에 궁지에 몰린 프랑스를 단숨에 일으켜 세운 영웅이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간 프랑스 땅을 휩쓴 전쟁 덕분에 대다수 민중들은 어려운 삶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었다. 천사의 계시를 들었다는 16세의 소녀는 기적과도 같은 승리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잔 다르크는 희망과 믿음의 상징이었다.

 

197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녹색당의 전신인 SPV(Sonstige Politische Vereinigung) 만들어지고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 때, 페트라 켈리는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SPV에 참여했던 여러 단위들에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음에도 그가 비례 1번이 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70년대 반핵, 평화운동 진영에서 그가 국제적으로 많은 활약을 펼치며 이름을 알린 것도 이유일 테고, 68혁명의 상징인 루디 두치케와 함께 제도권 정당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는 정당이었기에 젊고 참신한 인물을 내세웠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1980년 녹색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2개 주(브레멘 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주 의회에 진출하고 또 1982년 3개 주(니더작센 주, 함부르크 주, 헤센 주)에서 주 의회에 진출하기까지 켈리는 당을 대표해 많은 활동을 했다. 1983년 연방의회에 27명의 의원을 보내면서 그 자신이 연방의원이 되었다. 이때 이미 녹색당이란 이름은 자연스레 페트라 켈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켈리 역시 희망과 믿음의 상징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쟁의 시대, 핵발전의 시대에 평화와 반핵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이름. 도무지 승산이 없을 것만 같은 제도권 정치에 겁 없이 뛰어들어 기적과도 같은 연방의회 진출을 얻어낸 이름. 과연 잔 다르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 녹색당은 1998년 적록연정이라 불리는 사민당과의 연정을 시작하여 2005년까지 집권당으로서 다양한 환경정책을 실현했다.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통해 궁극적으로 탈핵을 이룰 것을 천명했고, 인간의 존엄성과 마찬가지로 동물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을 연방법에 올렸다. 또한 캔과 병 제품에 환경부담금을 매기는 ‘반 공해법’을 시행하는 등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책들을 펼쳤다. 독일녹색당의 활약상을 전해 들을 때마다 부러움과 막막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날이 올까? 개그가 따로 없는 정치 현실을 볼 때마다 그런 희망은 쉽게 절망으로 바뀐다.

 

10월 1일은 페트라 켈리의 기일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4대강의 녹조는 해결되지 못하고,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는 이 가을, 페트라 켈리를 기억하며 이 땅에도 새로운 정치, 녹색 정치가 널리 퍼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9월 말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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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0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려야죠.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잖아요.^^

감은빛 2013-11-13 14:07   좋아요 0 | URL
저는 종종 희망을 가지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희망을 가지려면 현재의 조건에서 무언가 가능성을 보아야하는데,
도무지 가능성이 보이질 않으니 말예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전에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놓치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 시절에는 정말 날카롭고 씨니컬한 편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희망을 놓아버렸다.
이 지구와 인류는 이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더니,
오히려 그냥 나라도 하고싶은대로 행동하겠다 생각이 들었고,
이전보다 많이 밝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