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투리드 롱패딩 (셜록, 앨리스, 프랑켄슈타인) - (M)_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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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널찍한 포켓이 있다는 게 너무 마음에 들어 사려고 보니 동물털이라 패스하려 합니다. 이왕이면 웰론 등 신소재로 하면 가격적인 매리트도 있고, 환경에도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벨크로보다는 단추로 하는 게 조금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벨크로는 많이 쓰면 헤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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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주토피아 - 디즈니 주토피아 아트북
제시카 줄리어스 외 지음 / 참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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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주토피아
- 리치 무어 | 바이런 하워드 | 제시카 줄리어스 | 존 래시터 | 재러드 부시 (지은이) | 참돌 (출판사)
 
 : '주토피아'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그 포스터 때문에 '뭔가 유치할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어 보지 않으려 했다. 내가 아무리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든 작품을 보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예를 들어 카(Car)라던지...)


 

(*문제의 그 포스터. '재미있겠 Zoo'라는 유치해보이는 말장난과 '추격전의 신세계'라는 말에 하마터면 이 작품을 지나칠 뻔했다)


 그런데 어라? 이거 들려오는 평이 심상치 않더라. 으음? 혹시 모르니 한 번 보기라도 해 볼까? 설마 디즈니인데 평타는 해 주겠지... 이런 마음으로 가서 본 주토피아에 나는 완전히 흠뻑 빠져버렸다. 정말 내가 지금껏 본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최고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간 픽사가 디즈니보다 스토리 면에서는 우위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으로 디즈니 에니메이션이 단순히 꿈과 희망, 가족애를 이야기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주토피아는 아이들이 보기에도 무리가 없고, 어른들에게는 깊은 사회학/인문학적 고찰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80년간 축적된 디즈니의 동물 덕후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고. 주토피아를 처음 봤을 때 스토리 따라가기 바쁘면서도 그 동물 표현에 감탄했었는데, 재관람 할 때 보이는 동물들의 삶에 몇 번이나 속으로 탄성을 터뜨렸는지 모른다. 화면으로 쓱쓱 지나가버리는 동물들에 대해 너무 궁금했는데, 그 설정을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그럼 당연히 지르고 보는 거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내가 여우와 토깽이의 러브라인을 지지할 줄 몰랐었다. 한낱 미물 주제에 이렇 심쿵심쿵하게 만들다니. 요망한 것들)


 '주토피아 아트북'은 단순히 예쁜 동물 일러스트만 가득한 그런 책이 아니라 읽으면 읽을 수록 제작진들의 노고(라고 쓰고 덕심이라 읽는다)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책이다.(물론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귀여운 동물들이나 화려한 배경들은 그 자체로 작품이다) 서문에서부터 바로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제작 초기부터 동물이 만드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며 무척이나 설레었다. 사실 기존의 동물 영화는 주인공을 동물에서 인간으로 바꾸기만 하면, 인간이 등장하는 스토리와 거의 다를 바 없이 똑같은 내용이 된다. (중략)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제작진들은 단순히 동물들이 사는 인간 세계를 설계하길 원치 않았다. 주토피아는 반드시 동물을 위한, 동물에 의한 왕국으로 보이며서도 관객들이 이를 대도시와 연관시킬 수 있어야 했다. (p.6, 서문 중)"
 
 내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감탄하고 또 감탄한 부분도 바로 이 점이었다. 저렇게 많은 동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데, 각각의 동물들을 억지로 합쳐놓은 게 아니라 자신의 본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는 게 몇 장면만으로도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된 배경이라니!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방이지만 이곳이 '토끼가 사는 집'이라는 걸 무의식중에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역동성을 주지만 너무 번잡스럽지는 않게 일종의 '흐름'이 있다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 점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세세한 설정을 보라지. 주토피아 제작팀은 캐릭터를 만들 때 단순히 모습이나 행동만 디자인한 게 아니다. 그 캐릭터가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걸 '이렇게까지 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집요하리만치 상세하게 설정해놨다. 마지막 사진의 저 '코즐로프'는 툰드라 타운의 갱 '미스터 빅' 뒤에 서 있는 북극곰 경호원 중 1마리인데, 하다못해 그 북극곰에게도 이런 설정이 붙어 있다. 심지어 이 곰에게는 영화상에 등장하지 못했지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모리스이고, 모리스는 코즐로프와 달리 아직 때 묻지 않은 깨끗한 털과 진주알같은 발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가젤의 백댄서들이 왜 호랑이인지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는데, 초식동물인 가젤이 육식동물인 호랑이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우러져서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 된단다.(참고로 이 호랑이 백댄서들은 내가 본 어떤 인간 남자보다도 몸 좋고 섹시한 느낌이 들었다. ㅎㅎ 가젤과 백댄서들의 뮤직비디오를 더 내놓으란 말이다, 디즈니!)

 클로하우저 부분을 읽으면서는 저 '히든 미키' 부분을 읽으면서 키득대기도 했다. 주토피아에는 수많은 패러디와 이스터에그들이 있는데,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다.


 물론 영화 속에서 가장 크게 웃음이 터진 장면은 바로 이 나무늘보 씬이 아니었을까. 나무늘보와 관공서의 조합이라니!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라 생각했는데, 책에서 이 부분을 볼 때도 비시비실 배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주토피아 의 네 구역(사바나 센트럴, 툰드라 타운, 사하라 스퀘어, 열대우림 구역)에 대한 설정도 읽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왜 이곳에 '주토피아'가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정부터(물이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동물이 모이므로 주토피아는 큰 강을 중심으로 생성된다), 왜 각 구역이 그렇게 나뉘게 되었는지를 읽다보면 에니메이션을 볼 때 별 생각없이 넘긴 부분들에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가 있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최종적인 거주 구역의 배치는 기후라는 논리적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중략) 제작진에게 기후 장벽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그 어떤 방법도 적당해 보이지 않았따. 기후 장벽이란 원하는 방향대로 거주 구역을 덥힐 수 있는, 엄청나게 큰 난방기로 채워진 거대한 장벽이다. 이 난방기는 반대 지역으로 냉풍을 보내는, 또 다른 거대한 에어컨에서 배출되는 가스로 작동된다. (중략) 그렇게 기후 장벽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사하라 스퀘어 사박과 툰드라타운의 얼어붙은 땅이 항상 인접해 있어야 한다.(p.44 주토피아 동물들의 서식지 중)"

 

 애니메이션에 겉모습만 등장하는 건물에도 이렇게 상세한 내부 구조도가 붙어 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렇게 자세한 설정이 붙어 있는데 애니메이션에 아예 등장조차 못해 본 건물도 있다. '포식 동물들을 위한 놀이공원'이라는 저 wild times의 놀이들이 어찌나 상세히 설정되어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 놓고 과감하게 삭제해 버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당연히 내가 쓴 내용 말고도 이 책에는 각종 설정들이 가득가득 담겨져있다. 주토피아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제작진의 노고에 절로 혀를 내두를 거라 확신한다. 동물들의 모습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사파리에 날아간 내용이나, 벤쿠버에 살던 제작진이 결국 캘리포니아로 이사왔다는 것, 동물들의 털을 현미경으로 보면서 제작했다는 것도 일부에 불과하다. 내가 정말 놀란 건 기후에 따라 공기 중에 퍼지는 빛의 느낌이 달라지고, 같은 기후대라도 오전과 오후의 빛이 차이나 보이는 것까지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카메라의 흔들림을 '일부러' 집어넣어서 고정되지 않은 카메라로 촬영한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는 부분까지 읽으면 그 집요함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부디 관객들이 우리의 촬영 기법이 전형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기법들이 영화상에서 장녀스럽게 느껴지고, 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하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P.152 주토피아의 촬영 중)"

 
 나는 아트북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영어로 된 아트북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읽기는 하지만 이내 언어의 차이 때문에 그림들만 보며 즐기는 경우가 많다. 이 아트북을 사서 처음에 훌훌 넘기며 그림만 봤을 때도 좋긴 했지만, 그래도 이 많은 내용과 섬세한 설정들을 읽지 못하고 그냥 넘겼다면 얼마나 아까운 일이었을지! 가끔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참 고마운 책이 있다. 이 아트북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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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 십이국기 5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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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는 단편집입니다. 이 단편들은 모두 왕을 잃고 황폐해지기 시작했거나, 황폐해진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지금의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십이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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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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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챙겨보는 것도 아니지만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그래도 그 작가의 작품을 한 번씩 찾아보기는 한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굳이 일부러 찾지 않아도 온라인 서점에서 수상자 발표가 나면 선전을 빵빵 해 주니 자연스럽게 작품을 찾아보게 되는 것에 가깝달까.


 어쨌거나 올해 수상자인 스베클라나 알레시예비치의 작품이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이다. 제목 자체로도 흥미롭고, 내용 소개를 보니 더 흥미로웠다. 이 작품은 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여자들, 하지만 기억되지 못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성들은 참전하여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변했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떤 체험이었나? 이 책에서 입을 연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쟁 가담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은 전쟁 베테랑 군인이나 남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온 이야기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 중에서)

 초반에 '어떻게 이 책이 세상에 나왔나'를 운운하는 부분은 조금 힘겨울 수도 있지만, 일단 이 부분을 넘어 각종 인터뷰들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부분들이 시작되면 그 때부터 책장은 쉼없이 넘어간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정말이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이 말 그대로 '여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쟁이 나면 아이들과 여자들이 제일 불쌍하지' 식의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전쟁의 참상에 대해 말하는 부분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 중에 문득 문득 드러나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후 그녀들의 삶 자체에서 짙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짙은 감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지금은 책을 반납해버려서 정확히 인용하기는 어렵지만, 에피소드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한 여성이 행군 중인가 제비꽃을 보고 그것을 꺾어 총에 꽂아두었다가 깜빡 그것을 빼는 걸 잊었다. 그걸 본 상관은 화를 내며 당장 빼라고 하며 벌로 3일 간 밤샘 경계 근무인가를 서라고 하는데 자신은 그 꽃을 주머니에 간직하고서는 기쁘게 근무를 서며 새벽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단다. 아, 그렇지.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빨간 목도리에 집착하다가 그 목도리때문에 죽게 된 동료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해 주는 여자는 안타까움을 보일 지언정 그 친구를 보고 참 바보같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랬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적군이라도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서 친구와 함께 네가 먼저 하라고 미뤘다는 이야기에는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올 것 같았다. 이들에게 누가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가방을 잘라서 치마같은 군복을 만들었다거나, 여자 속옷에 감격한 이야기들(이건 정말 많다), 그리고 전쟁 중에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었던 이야기들. 하지만 그렇게 전쟁 중에 목숨바쳐 싸웠으면서도 기억되지 못하고, 배척받고, 입을 봉하고 살아야 했던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말이다.

 내가 정말 놀라며 이해되지 않았던 건 이들이 전쟁에서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느꼈느냐가 아니었다. 먼저 놀란 건 이렇게 전쟁에 참가한 여성들이 생각보다 너무 어렸다는 점이다. 스무살, 서른살의 여성들이 아니라 십대의 소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열세살 짜리 아이가 자원해서 나갔다는 말도 있었다. 십대라니! 아니, 십대가 뭘 안다고! 두 번째로 놀란 건, 그렇게 어린 소녀들이 '자원해서' 나갔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열이면 열 모두 '그 여성들은 징집되어 전쟁터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다. 대부분은 자원해서 나갔다. 물론 그렇게 '징집되어' 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의사였다거나 특기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 말이다. 그런 건 나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채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았던 십대들까지, 그것도 '넌 전쟁에 나가기 너무 어리니 돌아가라'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몇 번씩이나 관청에 찾아가 간청을 해서 갔다는 이야기도 많았고, 친구들 배웅갔다가 트럭에 몰래 숨어타서 전쟁에 나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게 전쟁에 나간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쟁이 났으니 자신은 당연히 전장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눈을 뜨면 전쟁에 나가라고 독려하는 선전물들에 둘러싸여 있고' '학교에서는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란다. 최근 국정 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워서 그런지 나는 이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교과서 하나 바뀌는 걸로 뭐가 그렇게 달라지겠느냐고. 그런데 정말 달라질 수 있다. 그게 교육의 무서운 점이다. 십대 아이들을 전쟁에 내몰만큼. 그것도 자신이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말이다. 어려서 그렇다고? 내 친구는 20대에 들어간 학교의 채플 시간에 영향을 받아 그 종교를 가지게 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 종교에 대한 반감은 없어졌던 걸.(심지어 소위 말하는 '이단'이라는 종교인 걸 알면서도) 그 친구가 어리석어서 그랬을까? 교과서 말고도 역사를 알려주는 다른 자료는 많지 않냐고? 그걸 '잘' 판단해서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아이들 근처에 몇이나 되는데?

정말 여러모로 무서운 책이었다. 정말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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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1-1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들지 않고 배워야 한다고...
참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지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카 2015-11-15 17:11   좋아요 0 | URL
하지만 그것이 또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삼인성호라고 주변에서 한 목소리로 떠들면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고, 혼자서 휩쓸리지 않고 있다고 한들 영향을 안 받을 수 있을까요.

당장 저희 어머니만 해도 `교과서? 잘못된 거 고치겠다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어머니가 특별히 어리석어서일까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는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받아서 말하는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나봤습니다.

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
 
어느 독일인 이야기 - 회상 1914~1933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 돌베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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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스릴러나 호러에도 한 발을 담그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단 추리물이라거나 호러물이라면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책으로 치자면 호러물은 (의외로) 추리물보다 더 협소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호러물 자체는 굉장히 대중적인 장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어릴 때 '학교 7대 불가사의'류의 괴담을 속닥거리며 나누던 시절이 있을 것이고,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 영화가 스크린에 오르지 않던가.

 어디에서인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공포물을 접할 때는 일종의 카타스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화면이나 책 속에는 무섭고 기괴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보는 사람 자신은 안전한 곳에 있다. 때문에 그 공포는 '현실의' 공포가 아니라 '안전한' 공포이며, 오히려 무서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현실의 안전함을 재확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문에서 사건/사고를 읽으며 끌끌거리는 마음이나 각종 재난을 다룬 이야기를 읽는 마음 역시 비슷할터이고, 조금 더 확장해보자면 내가 홀로코스트 이야기면 일단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다 이런 마음에서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끔찍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접해도, 비록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해도 결국 나와는 거리가 있는 사건이다. 때문에 나는 안전하며, 지금의 인류는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의 잔혹성을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마음 놓고 편안한 쿠션에 몸을 묻은 채 끌끌거리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일 테고. 홀로코스트 이야기는 내게 세련된 공포 영화와 다름이 없는지도 모른다. 응. 어쨌거나 다 지난 날의 이야기니까. 나는 안전하니까. 이런 종류의 책을 다 읽을 때면 늘 생각하곤 한다. '정말 끔찍한 일이야!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 이 때 태어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지 뭐야. 그리고 설마 이런 일이 또 일어나겠어.'

2. 
 도서관에서 이 책을 뽑으면서 나는 이번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시점만 바뀌어서 다시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사는 사람의 시점에서 쓰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누구나 홀로 죽는다(http://icarus104.egloos.com/5733603)'와 비슷한 류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에 그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들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만.

 이 책은 나치 치하에 얼마나 독일이 비참했는지,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고발하는 그런 글은 아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앞으로 있을 전쟁을 예감하며, 1차 세계대전의 발발부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3년까지의 일을 회상하고 있는 글이다.(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1939년 9월 1일이며, 이 글의 구상이 나온 것은 1939년 봄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죽음의 수용소 이야기나 게토 이야기, 유대인들을 거리에서 쏴 죽이는 이야기, 강제 노동 등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하다. 히틀러와 나치에, 각종 유대인 탄압이나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많아도,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이 시기는 내게 거의 '미싱 링크'에 해당한다. 게다가 저자는 '개인적'인 시선으로 그 시기를 써 내려간다. 이런 시선 역시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모든 세계사 교과서에 꼭 나오는 1차 세계대전에 대해 쓰면서도 '사라예보 사건'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전쟁의 발발은 '휴가가 취소되어 슬펐던 날'로 기억되며, 전쟁 중 시기는 매일같이 게임을 하는 듯 즐거웠던 시기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역사적인 사건은 집중도가 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역사적인 사건'은 실제 현실, 즉 개인의 사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사건도 있다. (중략) "1890년,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해임하다." 분명 독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에 관련된 몇몇을 제외하면 어떤 독일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생활은 전과 다름없이 계속되었다. (...) 데이트 약속이나 오페라 공연조차 취소되지 않았다. (...) 이를 다음 사실과 비교해보자. "1933년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다." 6,600만 명의 인생에 지진이 일어난다! (p.18)


 이 말 그대로다.



3.

 처음에는 흥미롭게 읽기 시작한 이야기가 점점 힘겨워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뒤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 하는 동시에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아 책장을 덮고 한숨을 쉰 것이 수십번이다. 중간에는 너무 읽기가 힘들어서 잠깐 책을 덮고 만화책으로 도피하기까지했다. 어째서일까? 이 저자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냥 딱히 정해진 정치색 없이 그 날 그 날의 일상을 살아내기 바빴던 사람이었다. 사회면을 보고 끌끌거리면서도 올림픽 등에서 자국의 우승에 가슴 설레하던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사회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취업을 해 보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나 나나 사람 자체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2015년에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민주주의' 나라라는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이고 저자는 1933년(마지막 회상 기준) 독일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가던 딱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 정도이다. 그런데.......그런데 왜 이렇게 그와 내 삶이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보이는 걸까? 왜 저자가 묘사하는 삶이 지금 내 삶과 이렇게 비슷하지? 그걸 처음 자각하던 순간 등 뒤가 서늘해졌고, 이후 페이지 페이지마다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에 원래 표시를 하지 않는 나지만, 중간 중간 인상깊은 장면마다 체크를 해 놓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내 다시 체크하길 포기해야 할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법이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하고 일상생활도 아무 문제 없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 자체를 나치에 대한 승리로 보려 했음을 고백한다. 저들이 아무리 거칠고 요란하게 행동해도 기껏해야 정치적 표면만 휘저을 수 있을 뿐 그 아래 현실 생활이라는 대양의 깊은 곳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있었다.


 그런데 정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을까? 그 때 이미 수면에서 무엇인가가 아래까지 뚫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 사적인 정치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화해할 수 없거나 격렬하게 증오하게 되는 것으로, 부엇보다도 늘 정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담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p.138)


 정말 비슷한 장면은 계속 나온다. 이 시기 독일에서 어떤 법이 제정된다. 이 법은 정부의 행위를 숨기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행위를 숨기기 위한 게 아니라 '그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위험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p.158) 이 때부터 누군가가 정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하려고 하면 '너 그러다 어떻게 될 줄 알고?'하며 쉬쉬하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안 그런가? 내가 정부에 비판적인 말을 공개적으로 하려 할 때마다 내 주변의 동료들은 그러다 큰일난다며 말리던데? 심지어 선거에서 나치당이 패배(44%지지)했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나치는 '패배를 승리처럼 축하하고 테러를 강화하고 축제는 열배로 늘렸다'(p.159) 그러니까 지금은 안 그러냐고. 국민들이 반대하고, 각종 역사 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하면 뭐 해. 그냥 국정 교과서 밀어붙이지 않던가. 아무리 시민 단체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도, 사회의 각계에서 우려를 나타냈어도 4대강 공사는 시행되지 않았던가. 한때 힐링 문학이 유행했고 사람들이 현실에 눈을 돌려 일상의 소소한 먹방, 쿡방에 몰두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전원문학이 유행했었다. 각종 풍경 화보집, 전원시, 가족 소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나왔다고 한다.


 왜 유대인을 보이콧해야 하는지 그 이유라고 갖다붙인 것을 보면 나치가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헌법을 무시하고 개인적 자유를 제한하려고 공산주의자들이 쿠데타를 계획했다는 전설을 퍼뜨릴 때만 해도 나치는 신빙성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지어냈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국회의사당에 불까지 놓았다. 이에 반해 유대인에 맞서 불매동맹을 맺어야 하는 이유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보면 그 말을 믿는 척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뻔뻔스러운 모욕이고 조소였다.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이 새로운 독일에 대해 온갖 꼬투리를 잡아 아무 근거 없는 끔찍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으니 이를 막고 처벌하기 위해 불매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p.173)


 1933년 나도 화를 내고 분통을 터뜨리기는 했다. 이제 법원에 나가지 않겠다고, 이민을 가겠다고, 보란 듯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말해서 식구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저 말뿐이었다.(p.170) 이렇듯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기다리면서 나는 틀에 박힌 일상을 계속 채워나갔다. 분노와 공포는 그냥 억누르거나, 우습고 비생산적이지만 집 안에서만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 수백만 명처럼 관심을 끊은 채 살아가면서 그 일이 나에게 다가오게끔 했다.


 그 일은 나에게 다가왔다.(p.171)


 지금은 이 부분을 인용하는 것 이상 내가 책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언젠가 생각이 지금보다 더 정리되면, 그리고 감정이 지금보다 더 가라앉으면 다시 한 번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기에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책 속의 세상과 너무 닮아있다. 나는 분명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이 책을 뽑아들었는데,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이 전혀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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