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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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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전에 친한 친구와 '설정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라는 것이었죠. 당시 우리는 관악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일단 어떻게든 관악산을 넘어서 반대편으로 몸을 피한 뒤, 어떻게든 가족이 있는 부산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피난민으로 생활하면서 내 목숨을 부지할 확률은 거의 희박할 것 같으니 어떻게든 적십자나 군간호사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장 한복판에 있으나 피난 행렬에 끼나 목숨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라면, 적어도 내가 가진 재주를 쓰면서 사는 게 좋기도 하거니와, 적어도 그런 병원 시설에 있으면 조금은 화를 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말은 반쯤은 농으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지는 역사는 마치 살아있는 양, 크게 솟구치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분명 그런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그 시대,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일진대, 반대로 그 흐름은 너무 강해서 도리어 그 속의 사람들이 그 흐름에 휘말려버리곤 합니다. 마치 하나하나의 작은 물줄기들은 제각기 제 방향대로 흐르는 듯 하지만 결국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가듯 말입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그러한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졌던 조선 말기의 시대에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굳이 주인공을 꼽자면 이신통과 서일수겠다마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깊이 남는 사람은 연옥일 것입니다. 이신통의 소식을 수소문하며 짧은 인연을 잊지 못하고 평생 그의 뒤를 따르는 연옥의 이야기는 이 책의 프레임에 해당하며, 분량으로 치자면 작지만, 제게는 이 연옥의 이야기야말로 이 책을 계속해서 읽게 만든 동력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연옥과 같은 여인네이기 때문에 더 이입해서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 그와 함께 살았던 날을 하루씩 쪼개어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으랴. 나중에 그가 곁에 없게 되었을 때, 가뭄의 고로쇠나무가 제 몸에 담았던 물기를 한 방울씩 내어 저 먼 가지 끝의 작은 잎새까지 적시는 것처럼, 기억을 아끼면서 오래도록 돌이키게 될 줄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p.88

 

 저는 이기적입니다. 제가 바라는 건 많지 않습니다. 그저 내 한 몸 평안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투닥거리기도 하고 속살거리기도 하며 살을 맞대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정도입니다. 어떤 여자가 이런 삶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만약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화를 입게 된다 한들, 아마 저는 제 남자가 처자식 다 버리고 뛰쳐나가 정의를 부르짖기보다는 비겁하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제 옆에 머물러있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전 연옥의 일생이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연옥의 평생동안 이신통이 그녀의 곁에 머문 것은 손으로 헤아려 볼 정도로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그저 그리움으로 곱씹으며 평생 그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의 나날로 느껴집니다. 당장 일주일만 그와 떨어져 있어도 그리움이 이렇게나 커지는데, 평생이라니요. 차라리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집에서 저와 같이 살면서는 안 되나요? 그 일이 천지도 일이라면 이제 조선 팔도에서 다 망해먹은 일을 당신이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요, 다너러도 입도하라면 같이 하십시다. 당신 말하던 스승이 누구이며,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모르오나 내가 그를 찾아갈 테요. 찾아가서 집사람을 내치고 도를 닦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따질테요.'라고 애원하는 마음이 더 와닿더군요. 그래서 아이를 사산하고나서까지도 그를 원망하기보다는 그리워하며 그를 따라다니는 연옥의 모습에 한탄을 하기도 하고 차라리 재취를 하여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며, 연옥이 만난 사람들의 입에서 줄줄 풀려나오는 이신통의 과거사나 동향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혀를 차며 '쯧쯧, 그래봐야 처자식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는 못난 것...'이라는 소리가 더 먼저 나왔습니다. 저는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가족의 눈에서 피눈물 뽑아내는 인간은 곱게 보지 못하겠기에 이신통의 행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연옥에게도 그렇고, 아무리 부모가 정한 혼사라고 해도 조강지처에게서 딸까지 보았으면서도 소식 한 번 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는 영 돼먹지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의 2/3가 다 되도록도 책을 몇 번이나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존경을 받고 의지가 되면 뭣하나요. 자기 가정 하나 돌보지 못하는 인간인데요.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지금 고생을 옛말하듯 하면서 오순도순 사십시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묻고 있었다. 언제요, 그런 날이 언제 오는데요?
그러나 입 밖으로는 간신이 이렇게 말해버린다.

저에게는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 p.444

 


  하지만 연옥이 이신통의 자취를 더듬어가며 그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그를 만난 이후에 도리어 자신의 그리움이 커져 그를 잡게 될까봐 스스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탄을 하면서도 내심 그녀를 이해할 듯도 했고, 연옥의 마음을 통해 이신통을 이해할 듯도 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신통인들 그렇게 사랑하던 이의 곁을 떠나고 싶었겠으며, 아무리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결의를 했다고 한들, 그 마음이 돌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까지 자신을 따라온 그 마음을 외면하기 쉬웠을까요. 또한 아무리 자신을 괴롭히기만 한 상대라고 한들 자신의 이복 형을 (사실상) 제 손으로 죽이는 마음이 아무렇지 않았을까요. 이 모든 일을 그저 '혼란의 시대였으니...'라는 말로 끝내버리자니, 차마 그럴 수도 없더군요. 임오군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어떻게든 처자식을 먹여보려고 하던 군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갑자기 부당해고를 당하고 농성을 하게 되는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더군요.

  그래요. 우리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우리에게 분명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가족들이 늘어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식을 버리고 도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꼬드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때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저는 어쩐지 한없이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가슴이 메이기도 해서 하릴없이 책장을 쓸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써보기도 하며 아린 마음을 풀어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와서 지금의 고생을 옛 말하듯 오순도순 살 날이 올까요. 그게 언제 쯤일까요. 언제나 그런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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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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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알라딘 신간평가단 12기로 선정된 이후 처음으로 작성하는 도서 리뷰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도입부가 지루하거나 취향이 아닌 것 같으면 과감하게 책을 덮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직장인이 된 이후 생긴 버릇입니다. 늘 시간은 없고, 읽고 싶은 책은 많으니 무슨 계기가 있다거나 선물을 받았다거나 추천을 받은 책이 아니라면, 읽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는데도 계속해서 책을 붙들고 있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놓치게 된 좋은 책이 분명 여럿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를 느끼지도 못할 것 같은데 계속해서 책을 붙잡고 있기에 제 시간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직장인에게 놀 시간은 부족하고 그나마 그 안에서 '독서'라는, 정신력과 시간이 많이 드는 활동에 소비할 시간은 더더욱이나 부족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제가 알라딘 신간평가단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읽어야만'했던 책이라는 점이 중요해집니다. 총 3부로 된 책의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된 이후에도 전 이 책이 별로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12월 초, 이 책을 추천한 사람 중 하나였고, 그래서 먼저 도착한 '여울물소리'보다도 이 책을 먼저 손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당시 제가 쓴 추천문구는 이렇습니다. '가상과 현실의 조화를 그려냈다고 하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 소설을 읽는 재마 하나만큼은 절대 보장해 줄 것 같습니다. (중략) 줄거리 만으로는 자칫 평범한 사건 해결물 같지만, 설정을 보면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해집니다. 경험 상으로, 이런 이야기는 대박이거나 혹은 평균 이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던데, 이 책은 어느 쪽일까요?' 전 도대체 어떤 줄거리를 읽고 이런 추천평(?)을 썼는지 미스테리입니다. 각종 온라인 서점에 소개된 줄거리는 황당하기 그지 없거든요. 대구의 한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보이는 이 사건 뒤에는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존재인 '강화인간'과 그들의 초국가걱 조직인 '공생당'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는 것입니다. 버젓이 나와 있는 이 줄거리를 제가 미처 보지 못하고 그저 '가상세계'와 '현실'의 접목 정도로만 파악했던건지, 아니면 보고도 까먹었던건지, 저는 이 소설이 일종의 현대적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생판 다른 소설이었고, 그래서 제가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습니다. 갑자기 강화인간이니 공생당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펼쳐졌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2부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저는 정신없이 속도를 올려 책을 읽기 시작했고, 결국 이렇게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곧바로 리뷰를 쓰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기 시작한 지금은 새벽 4시 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환점이야말로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책이든 그 책에 대한 정보가 많을 수록 더 많이 보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도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기 위해 줄거리조차도 모르고 가는 것을 가장 선호하는 전, 책에 대해서는 그게 더 심해서 느낌이 오는 책을 골라 작가에 대해서도 줄거리에 대해서도 모르고 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만, 그래도 역시 그 책이 나온 맥락이나 상황 등을 제대로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겠죠.

* 이 부분부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 운이 좋게 이 책을 이해하는데 유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제가 좀 쓸데없이 문어발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온라인 게임을 전혀 즐기지 않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때에는 게임을 꽤 즐겼고, 어쩌다보니 프로게이머 1세대의 이야기를 대충 알고 있고,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기간동안만 한 것이었지만) 재미로 리니지를 잠깐 해 본 적이 있으며, 우연한 기회로 바츠 해방전쟁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으며, 또한 놀라워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의 세 경험은 차치하고서라도 바츠 해방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다름아닌 바츠 해방전쟁에 대한 오마쥬이고, 헌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크게 두 개의 사건이 나옵니다. 먼저 '현실세계'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일어난 대구에서의 살인사건과 그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각성자'라고 불리는 준경이 가상의 세계인 '인페르노 나인(이하 '인페르노')'으로 내려가 경험하는 사건이 그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세계는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닮은 게 당연합니다. 바츠 해방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2부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인페르노가 일종의 게임 속 공간을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암시는 노골적으로 소설 속에 흩어져 있습니다. 주요 인물인 이유진과 준경이 원래 PC방 죽돌이었고, 자연스레 이 둘이 처음으로 만난 곳이 '길드워'라는 온라인 게임 속 공간이었으며, 이들이 강화인간이 된 이후로도 길드워를 일종의 카톡이나 메신저처럼 사용했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인페르노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이야기에서는 노골적으로 '프로게이머'에 대한 이야기며 임요환에서 따온 게 분명한 '요한 명인'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젤다의 전설',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2'까지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등장합니다. 상상의 산물인 게임 속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창조자가 몸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테니, 이유진이 만든 일종의 게임 속 사회라 할 수 있는 인페르노가 현실세계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인페르노 안에서는 늘 전쟁이 있는 것도, 현실을 닮아 있습니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며, 전쟁이 사라진 듯 보이는 현재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를 위한 장치인 듯 보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자면, 현실의 세계는 게임 속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게임 속 '가상 세계'가 다른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소설 속에서 인페르노를 포함한 최면 세계는 그 최면의 창조자가 만든 설계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세계로 설정됩니다. 이 소설에서의 '최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가 제공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그 기원과 끝만이 정해진 하나의 '틀'을 제공하는 것 뿐이라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건 최면에 걸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자신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과 끝은 정해져있고, 아무리 그 안의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한들, 전체적인 이야기를 바꿀 수는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이라고 다를까요. 아무리 우리가 발버둥쳐도 한 번 구축되어있는 시스템을 바꾸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상세계를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지점에서 바츠 해방전쟁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바츠 해방전쟁은 리니지2의 서버 중 하나인 바츠에서 벌어진 전쟁을 말합니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전쟁이야 지금도 수없이 반복되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앞으로도 계속될 일인만큼 특별할 게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바츠 해방전쟁이 특별한 것은 서로 일면식도, 관계도 없던, 힘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절대 우위를 가지고 있던 세력에 대항하여 일어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상 세계에서 일어난 일종의 민중 혁명이자, 그 게임의 시스템 상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사건이었고, 동시에 온라인 게임의 사회가 일종의 사회성을 가진 하나의 사회라는 것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지요. 이 소설은 이 바츠 해방전쟁에 참가했던 작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구축한 바츠 해방전쟁의 연대기입니다. 그래서 인페르노 역사에 길이 남게 되는 '라우엔 대회전'의 불씨가 잠잠히 타오르고 그 절정을 맞게 되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 소설의 호흡은 가빠지고 정신없이 독자를 끌어당기게 됩니다. 이 '라우엔 대회전'의 결말은 다분히 우연적이고, 그래서 어이없기도 하지만, 사뭇 감동적입니다. 실제로 바츠 해방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후 인페르노의 세계 속의 준경(던컨)가 말년에 읊조리는 말은 이후 바츠 해방전쟁의 변질과 결말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 같은 사건, 다른 시선

 

"바츠 해방전의 의의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실로 돌아가버리면 그만인 그 세상에서 자신들을 폭압적으로 억누르는 '누군가'를 쓰러트리고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일으킨 최초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가상 공간에 구현해낸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스스로의 분열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지만 내복단으로, 혹은 바츠 해방군의 일원이나 DK혈맹원 중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실패로 끝난 그 날의 혁명은 이후에 일어날 혁명이 비춰봐야 할 거울이며 같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본보기로써 영원히 의미있는 투쟁의 역사에 첫 페이지를 장식할 겁니다." - 슈리아 님의 '바츠 해방전- 온라인 게임에서 울려퍼지는 자유의 외침'

 

 저는 이 문장이 '바츠 해방전쟁'에 대한 가장 정확한 요약이며, 동시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바츠 해방전쟁은 '내복단'으로 지칭되는 민중들이 'DK 혈맹'으로 상징되는 기득권에 맞선, 게임 시스템 상 있을 수 없었던 전쟁 이야기입니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으나, 이후 실패로 끝났다는 것까지도 현실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결말까지도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은 그 시대, 그 사건이 벌어진 공간의 사람들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주게 됩니다. 어떤 이에게는 어렴풋한 기억 정도로 남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일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게임 속에서 벌어진 가상의 전쟁이, 그 전쟁에 참가한 한 사람의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이후 디지털미디어학부를 창설하고 이런 소설을 쓰게 할 정도로 말입니다.

  누군가는 하나의 사건에서 그 실패만을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한 때의 승리에 큰 의의를 두겠지요. 같은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절망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다음 번 승리를 위한 가능성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이인화 작가는 대부분의 혁명이 어떤 결말로 끝나는지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절망과 체념 속에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 희망을 가져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패로 끝난 전쟁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전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절망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희망은 적어도 하나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야말로 시스템이라는 지옥설계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기 떄문입니다.


+) 덧 : 이야기의 결말부에 이르고, 책을 다 읽고 나면, 개인적으로는 초반에 그냥 넘겼던 공생당의 은유에 묘한 반감을 가지게 되더군요. 그 부분만큼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도 우리의 역사의 분명한 일부니까요. 다만, 그 은유 때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부 왜곡될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안타까움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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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각하
배명훈 지음, 이강훈 그림 / 북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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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년간 참 많이도 참았다!" / "그간 끊임없이 영감을 준 '나의 뮤즈', 각하를 위한 연작소설' / "지난 5년간 쉴 새 없이 영감을 선샇나 총통각하, '그분'에게 이 책을 던진다!"
-- 책의 앞뒤에 써 있는 문구들이다. 이 문구들을 출판사 측에서 선전과 이슈를 위해 삽입한 것인지 배명훈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는 저 문구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우리가 아는 그 가카(MB)'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정확히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를 틀어쥐고 있는 사람들 전반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김영하씨의 팟캐스트를 들을 때 정이현씨의 '삼풍백화점'을 언급하며, 이것이 소설이 하는 역할이라는 말을 했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소설은 기사나 역사의 기록과는 다르게 삶을 재구성하여 그 의미를 오히려 명확히 느끼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소설가든 시인이든 예술가든, 이렇게 세상의 의미를 재조립하여, 오히려 둘러가는 듯 해 보이면서도 더없이 그 의미를 아프게 느끼게 해 주는 글을 읽을 때면, 나는 바로 이것이 동시대의 작가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 생가하게 된다.

  고전은 시간을 초월한 단단한 보석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시간은 누구보다 냉혹한 심판자라 불과 1년 전에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 지금은 기억되지 않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하물며 글임에야. 수십년, 수백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고전을 보다 보면, 처음에는 비록 그 장벽이 높게 느껴질지라도 왜 고전이 고전인지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취향에 상관없이 고전을 읽으면 왜 이것이 고전인지, 왜 이것이 현재까지 살아남았는지 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현대의 문학, 하루에도 수십권씩 쏟아져나오고 있는 책을 잡으면 그 중 대부분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시간이 아까운 글인 경우가 (고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현대의 문학은 또한 고전이 절대 줄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를 비유해보자면, 고전이 이미 회사의 쓴맛 단맛을 볼대로 다 본 사람의 촌철살인같은 충고에 가깝고, 동시대의 문학은 비록 조금 서툴지라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서 누구보다 지금 내가 힘든 점을 공감하고 아파하는 동기와의 술자리 같다고나 할까. 때문에 종종 동시대의 작가를 읽는 것은 그 문장이 조금 서툴고 그 이야기의 진행이 조금 덜 매끄러울 지라도 보다 날카롭게 내 마음을 파고들곤 한다. 김영하의 '퀴즈쇼'에 나오는 위로가 100년 후의 후손들에게는 공감가지 않을지 몰라도 지금 현재 취업난과 암울한 미래에 좌절한 2-30대에게 위안을 주는 것처럼, 그리고 김애란의 '비행운'에 우리가 보다 아파하는 것처럼.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이 혹여 시간을 지나고 살아남아 우리의 아이들이 읽을지라도, 그 아이들은 그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낸 우리처럼 공감하지 못할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저 위에 이 소설이 가카만을 위한 소설은 아니라 했지만, 이 연작 소설의 첫 이야기인 '바이센테니얼 채슬러'가 5년 전, 선거 직후에 쓰여지기 시작했고, 이 소설집이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출판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 음식에도 순이 있듯, 책에도 순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순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괜한 염려겠지만, 이 책을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지 않고 찬찬히 보길 권하고 싶다. 정치적인 색만으로 이 책을 보기에는 이 책의 이야기들이 아깝기 때문이다. 특히 '새벽의 습격'이나 'Charge!', '혁명이 끝났다고?'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띵, 한 여운을 받았던 것은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라는 이야기이다. 엉뚱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늘어놓는 것 같은 앞 부분의 이야기가 결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을 봤을 때, 나는 이 작가의 앞으로를 더욱 기대해봐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길게 풀어놓고 싶기도 하지만, 책의 이야기들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나는 여기서 말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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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거울 속에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헬렌 맥클로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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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거울 속에
- 헬렌 맥클로이 (지은이) | 권영주 (옮긴이) | 엘릭시르(출판)

: 이번에 나온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은 사람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깔끔하게 뽑힌 디자인과 미니북 증정이라는 덕후의 마음을 자극하는 이벤트, 그리고 책 선정까지. 시리즈 1권인 '환상의여인'이야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오히려 별 감흥이 없었다만, 미리 구입한 '가짜 경감 듀'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기에 뒤늦게 이 책, '어두운 거울 속에'를 10월 책 구입 리스트에 올려뒀고, 책이 오자마자 가장 먼저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스포일러 있음)

  줄거리는 이렇다. 이야기는 포스티나 크레일이라는 미술 선생님이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으며 시작된다. 당황한 포스티나 선생님은 동료 교사인 기젤라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고, 그 사정을 딱하게 여긴 기젤라 선생님이 정신과 의사인 남자친구 배질 윌링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낀 배질이 사건에 뛰어들게 되면서 오히려 사건은 점점 커지고 그 동안 가려져 있던 사실들이 하나 둘 드러나게 되면서, 오히려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표지에는 이 책이 정통추리와 심리 스릴러의 만남이라고 써 있다. 정말 이 책의 전개방식은 읽는 사람을 쉬지 않고 끌어들인다. 그리 두껍지 않은 소설인데도 2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마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거나 새로운 단서가 밝혀진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이야기 속 사건이 얼마나 빨리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배질 윌링은 처음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단순히 여자친구의 직장에서 일어난 부당 해고 사건이라 생각했고, 다만 그 사건 뒤에 어떠한 악의가 있다고 보고, 혹시나 그 악의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사건에 뛰어들에 되는데, 그러다가 이내 믿기 어려운 사실을 알게 된다. 포스티나 선생님이 해고된 것은, 그녀가 학교에 온 뒤로 그녀의 도플갱어가 학교에 출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녀의 도플갱어를 봤다는 목격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그 도플갱어에 살해당한 사람이 나오기까지 하면서 사건은 점점 커지게 된다. 이 유령(도플갱어) 이야기는 작품 전체에 으스스한 기운을 드리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기괴하거나 음습하지는 않다. 초자연적인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사건을 과학/이성의 힘으로 파헤치고자 하는 배질 윌링의 노력은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배질 윌링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나 자신도 그 뒤에 숨은 어떤 '음모'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설명 불가능하다고만 보이던 사건들의 진상을 흘깃, 엿볼 수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백미는 그 결말에 있다. 추리소설에서 오픈 엔딩은 있기 어렵지만, 이 책은 바로 그 오픈 엔딩 형식을 띄고 있다. 사건은 끝났지만, 결말은 나지 않는다. 아주 유력한 용의자와의 1:1 상황에서 배질은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용의자는 그에 반박한다. 배질은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와 정황증거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설명일 뿐,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용의자는 일부 인정을 하지만, 배질의 설명에의 헛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반박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마침 딱 맞게 포스티나가 교장선생님을 지나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거나 아무리 수면제를 쓴다고 해도 그 약에 대한 반응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인데 그렇게 딱 맞춰서 도플갱어 행세를 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누구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이 나오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이 책에서 가장 오싹한 장면은 바로 이 마지막 결말부이며, 추리소설에서 치명적일 수 있는 그 추리의 헛점은 그대로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가 된다.(이건 정말 읽어보면 안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책 표지에 적힌 제목, '어두운 거울 속에'를 보면 알 수 없는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기분이 든다.

 

(+) 덧 : <가짜 경감 듀>에 이어 이 책을 읽고 나니,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에 대한 신뢰가 든다. 먼저 선정된 세 권 모두 최근에 나온 어떤 추리소설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고전임에도 식상하지 않고, 이야기는 매력적이며 탄탄한 진행을 보여준다. 한 번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두 번, 세 번은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엘릭시르의 책 선정은 지금까지 상당히 만족스러워서, 이후 나올 시리즈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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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문신을 새긴 사나이와 열여덟 편의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3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무려 크리미널 마인드의 닥터 리드의 추천을 받아 읽은 책이다. 계속해서 'really cool'이나 'super cool'이라며 읇는 줄거리가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다음 날 나도 모르게 대출을 하고 있더라.

  이 책은 한 남자가 온몸에 신기한 문신을 한 사나이를 만나며 시작된다. 목부터 팔목까지 상체가 완전히 문신으로 뒤덮여 있는 그 사내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문신들은 움직이기도 하고,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 한다. 대신 오른쪽 어깨의 비어 있는 부분에는 보는 사람의 미래가 나타나므로 조심하라고 하며 말이다. 남자는 호기심에 이끌러 문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무래도 이 책이 나온 것이 1951년도라고 하고, 또 여기 수록되어 있는 글이 한번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잡지에 발표된 단편을 모은 것이다보니 실제로 그보다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쓰여졌을 것이다. 읽다보면 아주 살짝 고루하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똑같은 미래라고 해도 1950년대에 상상하던 2100년~2200년대의 모습과 실제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100년~200년 뒤의 모습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리고 이 이야기들에 나오는 설정 자체는 이미 우주 시대를 살고 있고, 수많은 SF가 넘쳐나는 현대에서는 그리 특별할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로켓'이니 '화성'이니 우주인이라는 것에 그렇게 눈을 반짝이는 시대는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 자체가 낡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충분히 통할 만한 이야기들인데, 그것은 이 작가가 각 단편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 자체는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표면에서만 사라진 인종차별, 인간의 독점욕, 신앙심의 본질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때로는 섬뜩하고 때로는 감동적이며, 대체로 흥미롭다. 특히나 좋았던 단편을 꼽아보자면, 기나긴 비, 세상의 마지막 밤, 로켓이 생각난다. 특히 세상의 마지막 밤은 세계 종말의 날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만큼이나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눕는 부부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이상하게도 읽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다 읽고 난 후 한동안 진한 울림에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곱씹게 된 그런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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