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페로니 전략 - 내 안에 숨어있는 20% 매운맛을 찾아라!
옌스 바이트너 지음, 배진아 옮김 / 더난출판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첫 번째 인상, 하, 재밌어.(호감)
두 번째 인상, 정말 그래!(공감)
세 번째 인상, 어디 한 번?(실천)

파프리카처럼 살면 안 된다. 모름지기 매운 맛이 있어야 한다. 한 20%만 페페로니를 가미해라. 그러면 직장생활 오케이다. 명쾌한데다 공감이 팍 들고,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하는 괜한 심술이 발동하는데. 성공전략을 입혀주려는 책이 정장이 아닌 청바지 얼굴을 하고 이렇듯 마구 달려들어도 되는 건지, 나 원. 그렇다고, 뭐, 안될 건 없다. 우선 읽혀야 뭐가 되도 되는 법. 출판 목적과 수입은 나중 문제 아닌가, 아녀?

이 책, 무척 재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얼마 남지 않은 호두 까먹듯 내내 아까워하며 이 책을 읽었다. 페페로니 지수 테스트 설문에 예, 아니오로 답하고 나서 내가 ‘의사관철 능력이 뛰어나고 공격적이지만, 동시에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란 것도 처음 알았고. 바보같이 그래서 그 때 그랬구나 하고 지난 날 내 과오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내가 말이야, 정말 말이야.

미안한 마음에, 내게 편견이 있었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난 통칭 처세서로 알려진 책들에 알러지가 있었다. 저잣거리에 떠도는 그렇고 그런 말들을 적당히 양념해 화려한 포장지로 감춘 책이라고 단정했으니 당연했다. 책다운 책은 아니라는 생각, 난 그 생각으로 20년을 버텼다. 한 번도 안 읽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 책이 20년 만에 처음, 하 오랜만에 임자 ‘지대로’ 만났다. 버릇마저 발동하고 보니 이젠 아연 실색할 지경.

좋은 책을 만나면 며칠씩 읽는 버릇이 있다. 아끼고 아껴 읽느라 그런 것. 다른 책이야 평소 하던 대로 하루를 넘기지 않는데, 유독 좋은 책엔 무슨 병인양 그런 버릇이 허구 헌날 도진다. 20년 세월이니 이젠 고칠 엄두도 나질 않고. 그런데 그렇게 며칠씩 읽는 책은 인문학과 사회과학 서적뿐이었는데, 요번엔 그러니까, 참으로 요상하다는 얘기.

마도 페페로니 전략이 가슴을 파고들었다는 것이겠다. 직장인의 애환이 서린 직장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콩 볶듯 이리저리 볶아대니 누구라고 그 맛에 껌뻑, 하고 넘어가지 않을까. 남의 얘기가 아닌 내 얘기에 솔깃하는 법. 이 책의 마력은 거기에 있다. 굳이 이 책이 알려주는 전략대로 살지 않아도 내가 속한 직장이 그렇게 움직였구나, 하는 애틋한 공감과 다양한 사건 속에는 그런 숨은 관계가 있었구나, 하고 지난날의 실수를 박장대소하며 허리를 뒤로 눕히고 웃어젖힐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면 이 책의 목적은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 책이 제시하는 전략에 충실해서 얻을 수 있는 걸 얻으면 그것도 좋고.

이 책을 이렇게 규정하는 게 이젠 못마땅하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생각나질 않으니 용서하시길. 이 책은 처세서에도 이렇듯 소설 같은 - 재미있는 - 형식이 들어올 수 있다는 좋은 예를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물러 터졌을 거라는 오해는 말길. 이 책은 당신 안에 있는 매운 맛을 불러내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그 매운맛을 다양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실전 지침서다. 그렇다고 무조건 맵기만 해서는 곤란한 일. 적당하게 매워야 감칠맛도 나는 법이다. 적당하게 매운맛. 이 책이 지향하는 바다.

끝으로 저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페페로니 전략의 목적은 물불 가리지 않는 출세 지향주의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힘,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힘, 당신에게 천성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바로 그 힘, 즉 당신의 건강한 공격성을 일깨우는 데 있다.」(P243)

보너스 하나. 《페페로니 전략의 8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첫 번째 원칙 - 목표를 위해 힘있게 밀어붙여라!
두 번째 원칙 - 가망 없는 힘겨루기는 포기하라!
세 번째 원칙 -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하라!
네 번째 원칙 - 불평꾼, 패배자, 회의주의자를 멀리하라!
다섯 번째 원칙 - 맷집을 길러라! 공격자의 강력한 공격에 그로기 상태에 빠졌더라도 내색하지 마라. 오히려 이렇게 말해보라. “멋진 공격이었어. 그런데 내 생각엔 다시 한번 시도해봐야 할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제대로 말이지.”
여섯 번째 원칙 - 방어용 화법을 익혀라! 공격자의 기습적인 질문에 대응하고 반론을 준비할 짤막한 틈을 마련해야 한다. “방금 하신 말씀, 정말 흥미롭군요. 그런데 그 말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곱 번째 원칙 - 나쁜 소문에 즉각 대응하라!
여덟 번째 원칙 - 정기적으로 적을 분석하라!

보너스 둘. 《권력자(상사) 다루는 법》도 소개한다.
1. 직장 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리하고 홍보하라!
2. 권력자에게 당신이 그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라!
3. 믿음직스럽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충성심(설령 자신의 충성심을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고 해도)을 암시하라.
4. 솔직한 비판과 피드백이 현명하고 용감한 전략이라는 생각은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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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창으로 본 과학 - 인문학자 10명이 푼 유쾌한 과학 이야기
김용석.공지영.이진경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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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와 과학자가 만났다. ‘현실 없는’ 인문학과 ‘사람 없는’ 과학의 맹점을 서로 신랄하게 비판했을까? 아니면 창을 든 인문학자가 '황우석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과학자의 아픈 구석을 사정없이 찔러댔을까?

아니다. 물론 인문학자의 질문은 직접적이었고, 그런 만큼 날카로웠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답변 또한 그에 못지 않았다. 오히려 인문학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명쾌했다. 과학적 성취와 연구가 인문학적 사고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도 과학자에게서 먼저 나왔다.

스테인리스 같이 차가운 이미지의 과학을 따뜻한 시선을 지닌 인문학을 통해 들여다보자는 취지의 기획의도(?)가, 과학자가 준비한 의외의 반격으로 멋쩍어진 「‘반도체 사유‘, 미래 화두 던지다」는 영화적 반전이 주는 의외성만큼이나 신선했다.

동양철학자인 성태용 교수가 반도체공학 분야의 리더 유인경 박사와 만나 이루어진 대담에서 철학자는 과학기술에 철학적 사유를 접목하려한 과학자의 시도에 고무됐다. 그리고 그것을 ’과학기술의 창으로 본 동양철학‘의 가능성을 여는 일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질적인 학문 분야에서 각기 일가를 이룬 학자 상호간의 만남과, 그 만남에서 비롯된 상호이해가 각자의 학문을 풍부하게 하고, 상호간에 접점을 찾아가는 성취로 귀결될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술을 다루는 과학과 사람을 다루는 인문학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그것들은 마치 불과 기름의 관계처럼 반목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 위에 서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처음 이 책을 펼치면서 내심 걱정했던 것은, 지금이야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으로 판명 났지만, 애써 마련한 대담이 오히려 서로의 주장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지 않았을까,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10편의 대담 어느 곳에서도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각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차이는 학문의 고유한 차이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대담자들이 적극 나서서 그 차이를 인정하되 그 격차를 줄여 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더욱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조금 더 일찍 만나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들었다.

이질적이라서 만나지 못한다면 학문이 본래 지향하는, ‘인류사회에의 공헌’은 요원하지 않을까. 쉽게 생각해도 사람과 사회가 어디 어느 특정 학문 분야 하나의 놀라운 성취 위에 존립하기나 할까, 의문이다.

여러 학문 분야가 인류사회라고 하는 큰 틀의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잘 된 것은 따라 배우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 필요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우리 학문사회는 그런 풍토 위에 서질 못했다. 이제라도 이런 대담의 기회가 늘어남으로써 학제 상호간 불필요한 오해와 교류를 막는 일방적인 단정이 불식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그 기본적인 틀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과 작년 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황우석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분들과 인문학의 퇴조를 걱정하는 한편 인문학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모색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선뜻 권한다. 아울러 과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사고에 관한 소양을 얻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이 책이 크게 유용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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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
피터 드러커 지음, 권영설.전미옥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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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최대의 화두는 단연 '혁신'이다. 기업이든, 정부든, 개인이든 할 것 없이 모두 혁신을 입에 달고 사는 현상은 얼마 전 '웰빙'에 저마다 올인하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실 그래서 때로 씁쓸한 심정이 들기도 하는데, 아무튼 치열한 경쟁체제 아래서 개인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자원이 많지 않은 시대에 사활을 걸고 혁신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에 크게 시비 걸 생각은 없다. 그만큼 세상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일 테니까.

하여튼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혁신이라면 그것에 맞춰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건 당연할 터. 기왕에 혁신에 몸을 내맡기기로 했으면 제대로 할 일이다. 섣불리 덤벼들기보다 우선 개념을 정립하고 꼼꼼히 준비한 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까지 세밀히 다듬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수많은 책을 썼고, 그가 내는 책은 매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의 글은 일종의 전범이었으며, 그는 자본주의 시대의 전도사였다. 수십 년 동안 경영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해 왔다. 그런 그가 쏟아내는 말 한마디에 주목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

그가 작년 11월 우리 곁을 떠났다. 일각에선 그를 두고 경영학의 본령을 떠나 학문적 경계도 명확치 않은 미래학에 경도된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섣불리 폄하될 만큼 가볍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의 마지막 유작이라고 할 이 책은 어쩌면 그가 평생에 이루어 놓은 경영학적 사고와 실천을 집대성한 것일 수 있다.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임종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필요한 말을 남기듯 생의 마지막에 남긴 이 책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은 이 시대를 향해 폐부로부터 울려나는 고언을 쏟아냈으리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정제된 언어로 기술된 이 책은, 혁신에 관한 한 종합선물세트라고 아름 붙여도 좋을 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유사 선물세트에서 볼 수 있듯이 별반 먹을 게 없다거나, 따져보면 되려 실속 없이 비싸기만 하다든지 해서 선물로 받아들 때만 기분 좋고 뒤끝은 영 아닌 그렇고 그런 선물세트가 아니다.

각 장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실례가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소화해내기가 버거울 정도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핵심을 파고들어 집약적으로 묘파해 냄으로써 난삽하다는 인상을 차단하는 한편,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너지 효과를 아울러 거두고 있다.

또한 8개로 구분한 장은 그 각각의 장을 별도로 떼어놓고 봐도 좋을 만큼 독립적이지만 구분된 장이 서로 교호하듯 상호작용을 강화함으로써 혁신에 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혁신은 번뜩이는 천재성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고된 작업이다. 기업의 모든 작업 단위 및 모든 구성원의 정규 업무로 인식되어야 한다. (...) 혁신가들은 낭만적인 인물이 아닐뿐더러 '위험'을 향해 돌진하기는커녕, 현금흐름분석표를 들여다보며 몇 시간 동안 따지는 사람들에 더 가깝다."(p104-105)

혁신은 하루 아침에 떠오르는 심상이라든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속적 관심과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이 책에서 성공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IBM, 인텔, 블루밍데일 백화점, 포드자동차, 시티뱅크, J.P. 모건 등의 기업들은 끊임없이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직접 시장으로 나가 조사를 벌였으며,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틈새 시장을 파악하고 그곳에 기업의 자원과 인력을 집중했다.

바로 그런 것이 혁신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드 하빌랜드de Havilland와 미국전화전신회사(ATT)와 같은 공룡 기업들은 후발 업체에 시장을 내주고 전보다 크게 축소된 시장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혁신을 거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특성은 무엇일까? 먼저 기회의 원천들이 무엇인지 철저한 분석하고 연구했으며 직접 밖으로 나가 고객을 만났다. 그리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혁신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하는 조정과 수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작은 작게 했다. 그렇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주도권을 잡아가는 데 주안점을 두고 그것에 전력투구했다는 것이다.

원칙에 충실한 혁신이야말로 기업을 재조직화하고 치열한 경쟁구조 하에서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혁신의 밑그림을 그리느라 바빴다. 혁신에 관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혁신을 가리키는 이정표 역할에 머물렀을 뿐이다.

혁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집중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는 또 무엇인지, 혁신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하는 질문에 대해 이 책만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책을 보지 못했다. 반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의 혁신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느라 바빴다. 그 과정에서 오류는 바로 잡았고 안은 구체화됐다. 그만큼 실제적이었다.

원칙에 충실한 혁신이야말로 나와 기업, 공공부문이 공히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임을 믿고 땀흘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 땅의 역군들이 이 책을 통해 더 큰 확신을 갖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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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1
노경실 외 지음, 윤종태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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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오래 전 어느 날, 자주 가던 서점에서 무슨 패러독스라는 제목의 책을 눈으로 밟고 지나간 적이 있다. 그 책은 이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고정관념을 타파해 보자는 취지의 내용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단다. 그리고 조금 다른 얘기지만 또 무슨, 무슨 법칙이라는 제목의 책 출간이 뒤를 이었다. 앞서 말한 책이 고정관념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렸을까?

고정관념은 다른 생각이 끼어 들 틈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그래서 창발성이 요구되는 사안에 고정관념이 개입하고 나면 반짝이는 아이디어 같이 그 사안에 결정적인 단초가 될만한 것들은 여지없이 설자리를 잃고 만다. 처음엔 고정관념도 신선한 아이디어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틀에 박힌 것으로 변질되었을 테고 어느덧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여간해선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순간에 그것이 발목을 잡을 때라야 비로소 그것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땐 이미 늦다. 다른 생각의 여지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괴물의 모습을 어느 누가 제대로 보려 할까.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변화된 고객의 니즈를 따라 ‘기업의 전통적인 구조와 마인드’(일종의 고정관념)를 바꾸지 못해 주저앉고 마는 것이리라.

그만큼 고정관념은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있다. 지속적으로 그 녀석의 정체를 까발리지 않으면 여간해선 뽑히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고정관념이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그것의 본질을 파고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알게 모르게 고정관념이 자리잡은 모양을 알기 쉽게 풀어준 책의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유형의 책이 많이 출간되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고정관념의 타파를 외치며 출간된 책은 이 책이 그 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적으로 내 기억에 의존한 판단이니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진 말기를.

이 책의 출간 소식에 반색했던 것은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이 고정관념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데 있다. 진리 외에는 확고부동한 것이 없다는 기본적인 인식과 달리 과학과 역사, 기타 영역에서 구축된 지식이 마치 진리인양 포장된 것들이 좀 많은가. 그런 것일수록 빠르게 고정관념화한다. 그리고 그런 고정관념을 뒤엎을만한 결정적인 발견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물리치는 데는 또 많은 시일을 잡아먹어야 한다.

문학도 자유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동화 속 이야기가 지배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통치에 순응하는 인간군을 양산해내려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양상이고 보면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불러일으키고 일깨우는 동화라는 기존의 관념은 또 다른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는 잘 알려진 여섯 편의 동화를 패러디해 전혀 다른 형식의 동화로 탈바꿈시켜 놓고 있다. 그러는 새 본래의 동화가 숨겨놓았던 고정관념이 탈을 벗고 전면에 나타난다. 보이는 적은 다루기 쉬운 법이다. 고정관념의 실체가 여지없이 허물어 내린다. 

「흑설공주」는 동화 속에 숨긴 미의 척도를 본래의 미의식으로 환원한다. 일종의 이데올로기화한 현대의 미는 흰 피부에 오똑한 콧날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온통 검은 피부를 자랑한다. 백설공주의 딸로 태어난 흑설공주 이야기라는 설정이 이채롭다. 검다는 이유로 배척 당한 흑설공주가 미의 기준을 바꿔놓으면서 어떤 피부색을 가졌던 본래의 미는 내면 속에 각자 모두 갖고 있다는 결말은 끝을 맺는다. 당연한 결말임에도 신선하다. 고정관념을 벗어 던진 이야기는 머리 속을 맑게 한다.

계모의 딸은 언제나 계모를 닮아 못된 짓만 일삼을까? 그런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돌려세우고 있는 「팥쥐랑 콩쥐랑」은 협력하는 것의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써 전통사회가 강요한 남성위주의 질서에 균열을 낸다. 팥쥐와 콩쥐가 더 이상 아버지와 사또로 대표되는 남성에게 기대 사는 의존적 존재가 아님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유리 구두를 벗어버린 신데렐라」, 「오누이 힘 합하기」, 「잘했어! 인어공주」, 「나무꾼과 선녀」 등의 작품들도 한결같이 각각의 이야기 속에 드리워진 얄팍한 고정관념의 실체를 가차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원작과 다른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명작이라고 읽기를 권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을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가둬두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켠에 주먹만한 먹먹함이 인다. 그래서 반대급부적으로 이런 책의 출간이 봇물일 듯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 아이들의 생각이 균형을 갖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치가 두말할 나위 없이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이 책이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고 해서 아이들만 읽으란 법 없다. 오히려 고정관념의 틀 속에서 갇혀 문제의식 없이 현실 생활에 안주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 땅의 부모들이 먼저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이들이 더 이상 고정관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바로 잡아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먼저 부모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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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쉬
오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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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팬이 힘차게 제 몸을 돌리고 있는 동안에도 무더위와 한치도 물러섬 없이 대치하고 있는 사무실 내 0.5평 사적 공간에서 택배로 한 권의 책을 받았다. 부욱,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꺼운 포장지가 뜯기자 『파일럿 피쉬』가 단박에 속살을 드러냈다.

연 푸른색의 다소곳한 양장처럼 깔끔하게 차려입은 책의 표지가 우선 눈에 꽂혔다. 여름 창가에 뜨겁게 부서지는 햇살과 대비되는 색감, 순간 난 장식이 없이 오히려 담백하고 시원한 표지가 더위를 얼마간 막아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파일럿 피쉬』와의 대면이 시작되었다.

파일럿 피쉬. 수조 속에서 물고기가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신은 수챗구멍으로 내던져지는 신세가 되는 물고기. 명품일 것 같은 이름과 달리 생의 끝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물고기를 소설의 제목으로 한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터였다. 그것은 작가가 그리고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의 세계가 틀에 박힌 수조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들의 일상이 파일럿 피쉬의 그것과 별반 다른 구석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쪽 벽면에 붙어 자기영역을 시시각각 확장하고 있는 누런 이물질을 제거한다고 해도 수일 내에 박테리아가 다시 그만큼의 영역을 점령하고 마는 수조라는 구조물은 우리의 정화되지 않는 현실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헤어지고 떠나보내는 인생이란 결국 다른 사람이 그 안에서 자기들의 인생을 살아가기에 충분하도록 끊임없이 실험하는, 그래서 최적의 환경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역할 이상, 또는 그 이하도 아닌 파일럿 피쉬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도 생각이 미쳤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의 주조를 이루면서 책장의 질량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이 책의 주제의식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닮았다. 노예 노동자의 삶을 부여받은 리플리컨트가 4년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 직후 그들을 죽이기 위해 블레이드 러너가 파견된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총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리플리컨트를 목격하고 임무에 회의를 느낀다. 마지막에 리플리컨트는 자신을 죽이려 한 블레이드 러너를 살려둔 채 죽는다.

리플리컨트와 블레이드 러너 사이를 가르는 경계는 인간성이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로 대표되는 인간이야말로 그 인간성을 담보하는 원형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이는 고도의 인간성은 블레이드 러너가 아닌 리플리컨트, 곧 복제인간에게서 나왔다. 미래가 암울한 것은, 그렇게,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오늘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은 절망하지만 인간성은 한없이 넘치는 리플리컨트일 수밖에 없다. 치환하면 파일럿 피쉬다. 목적이 고정된 파일럿 피쉬. 목적을 다한 순간, 또는 리플리컨트 처럼 목적대로 살기를 거부하는 순간 살해당하고 마는 파일럿 피쉬인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불안을 내면에 달고 산다.

'월간 에레쿠트'의 편집장 사와이는 배추흰나비가 혀 안쪽과 귓속에 무수히 알을 낳는 환영 속에 죽었고, 모리모토는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치다 술과 함께 절망의 끝을 내달렸으며, 가나는 자신의 몸이 온통 망가져가는 줄 모르고 자기 일에 몰두했다. 마치 목적한 대로 끊임없이 내달려야 하듯, 그렇게 프로그램된 리플리컨트들이었다.

우리는 그 극단적인 형태를 주인공, 야마자키에게서 마주한다. 그가 내뱉은 철학적 언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의 혼란스런 중첩, 개의 죽음이 가져온 과도한 자기파괴적 상황, 그리고 유키코가 말했듯 ‘불분명하고도 애매모호한 부드러움’에서 비롯되었을 방향 감각의 상실은 모두 현대인이 안고 있는 강박, 곧 사회가 그어 놓은 선과 룰에서 일탈했다는 자의식이 빚어낸 일종의 정신질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기 확신은 고사하고 자기 정체성마저 흔들려간 현대인에게 주인공은 자기절망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인간존재의 심연으로 내려가 그 심연에서 요동치는 소용돌이를 잠잠히 응시해 낸 저자의 직관력과 관찰력이 돋보였다. 역시 일본소설의 본령을 넘지는 않았지만 마치 가족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듯 잔잔하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임에 분명했다. 작가가 곳곳에 배치해 놓은 야마자키의 고뇌에 찬 언설은 그것만 따로 떼어내도 충분히 음미해 볼만한 경구이자 철학이었으며, 자기성찰의 순도 높은 정금과 같았다. 이 책이 현대를 사유하는 책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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