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3학년 때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중문학을 전공하던 친구가 색색이 밑줄까지 쳐가며 읽은 책을 그대로 선물로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30페이지 가량 읽고 도중하차하고 말았다가, 거의 6년이나 지난 지금에서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그건 다름아니라 최근 부쩍 지난날 중국에서 있었던 문화 대혁명에 대해 알고 싶은 욕심이 들었고, 더욱이 소설 속에서라면 그 구체적인 실체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렇다. 이 책은 문화 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 혁명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다기 보다는 그러한 역사적 격동이 인간과 인간 관계에 어떠한 충격을 주었으며 또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소설의 전개 방식은 이렇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손유에와 호 젠후를 비롯하여 11명의 중요한 등장 인물이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고 있다. 이들 중엔 호 젠후와 손유에와는 입장을 달리하는, 시대의 흐름에 재빨리 영합했던 시 류와 첸 유리 요뤄쇠 같은 인물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술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작가가 인간의 총체적이고도 본질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채택한 표현 방법인 셈이다. 내 나름대로 이 11명의 주인공들을 그들의 인생관에 따라 세 부류로 분류할 수 있
을 것 같다.

첫 번째 부류는 손유에와 호 젠후를 중심으로 시왕 등이 해당되는데 이에 속하는 사람들의 인생관은 다음과 같다. 인생이나 사물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갖고 독특한 태도를 취하며. 자기가 옳고 아들답다고 생각하는 목표는 열심히 추구한다. 인간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인간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인생이 항상 그러하듯 이들에게는 특별히 모진 시련이 닥쳐오지만 이들 특유의 강렬한 자존심과 자애와 자신감으로 이를 극복해 나간다.

두 번째 부류는 손유에와는 유일하게 자매와 같은 동지애를 느끼는 인물로 설정되어 나오는 '리이닝'과 손유에가 한때는 동정어린 마음으로 생활을 보살펴 주기까지했던 '슈홍종' 등의 인물이다. 젊은 시절에는 사상에 대해서도 생활에 대해서도 높은 이상을 품었으나 지금은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행복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리이닝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들 부류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생활이 계속 필요를 낳고 물질의 필요가 조금씩 내 정신을 빼앗아, 마지막에는 대신해 버렸지. 욕망에는 나이가 없어. 그 하나하나가 분발의 목표가 되어 다른 것 따위는 생각할 틈도 없지. 철학은 철학자에게 맡기고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기고 나는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 살림을 연구하고 있는 거야.'

세 번째 부류는 시류와 첸 유리, 뚱뚱보 왕과 같이 기회주의자로서 세력을 잡고 나면 끝까지 쥐고 흔들며 다음 세대를 위해 양보하기를 주저하는 인물들이다. 손유에와 호젠후가 주동 인물이라면 이들은 주동 인물에 제동을 거는 반동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후기를 보면 1980년에 이 작품을 쓴 것은 작가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였는지도 모른다. 당시는 모더니즘을 부르주아의 예술이라 하여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더니즘이 나온 배경은 리얼리즘이 작가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예술의 혁신을 추구하는 한 방편에서 기인한 것이다. 리얼리즘의 방법은 객관성을 강조하고 작가가 자기를 은폐하도록 강요한다. 이런 기존의 예술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입지를 마련하기 위해 작가는 모더니즘의 형식으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내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손유에도 호 젠후도, 자오 젠호안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얻기까지는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나 커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내가 사는 이 시대가 행복한 시대일리 없으며, 자오 젠호안의 말처럼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 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이빗 랜즈 베스트 콜렉션
아름출판사 편집부 엮음 / 아름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아주 실용적인 악보집이 나온 거 같아, 반갑다. '실용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이유는, 데이비드 란츠의 곡들 중에서 좋은 것들만 가려 모은, 수록곡 중 어느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악보집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데이비드 란츠의 A Whiter Shade Of Pale으로 대답한다.

중학교 다닐 때 저녁 라디오 프로그램을 섭렵하던 나는 주로 <이미선의 FM>다이얼이라는 클래식과 영화 음악으로 선곡표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 나중에는 이 프로그램 듣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머지, 녹음을 해 두어 계속 반복해 듣곤 했었다. 그런 와중에 녹음 테잎에 녹음이 된 음악이 바로 A Whiter Shade Of Pale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제목도 모르고 녹음을 했던 터라... 나중에 테잎 목록을 만들 때 이 곡에 대하여 내맘대로 제목을 따로 부쳐 적어 두었었다. 처음 그 음악이 나오던 방송을 들었던 것이 5월이었고, 주로 아침에 나는 그 음악을 듣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곤 하였으므로 제목을 '5월의 아침'이라고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음악의 실제 제목을 알고파 무척 노력을 하였으나, 알길이 없었다. 그러나 간절하게 알고자 하면 알아내지 못할 것이 없듯이 몇년 후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같은 과 동기로부터 그 음악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그 기쁨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나는 쌈지돈을 모아 음반 가게로 달려 갔고, Cristofori's Dream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는 앨범을 샀다. 그 앨범의 맨 마지막 곡이 바로 A Whiter Shade Of Pale(이 곡은 원래 6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팝가수프로콜 하롬이라는 사람의 곡이었다. 훗날에 데이비드 란츠가 이곡을 편곡한 것인데 원곡보다 훨씬 좋다. 데이비드란츠 본인도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곡에 가장 애착이 많음을 밝히고 있다.)이었고, 첫 곡은 Cristofori's Dream이다.

뭐든 다 그렇겠지만 음악도 한 음악만 자꾸 들으면 무지 지겨운 느낌이 난다. 하지만 이 곡만은 예외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 나는 데이비드 란츠의 앨범을 광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앨범집에 있는 곡 중에서 좋은 것을 들라면 'A Whiter~'를 포함 Cristofori's Dream(크리스토퍼 라는 사람은 현재의 '피아노'의 전신인 합시코드를 창안한 사람이다. 크리스토처의 꿈 그러니까 자신이 만든 악기인 피아노에 대한 꿈, 이란 뜻일 것이다.

상당히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는 피아노 곡으로 샵이나 플랫이 붙지 않은 다장조라서 연주하기에 수월하며 기법 또한 반복된다.)와 Leaves On The Seine(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말 드라마 같은 데굉장히 많이 삽입되었던 아주 익숙한 곡이다. 가을 냄새가 나는 차분한 발라드 곡이라고나 할까), Heartsounds(베토벤 곡의 템피스트가 생각난다. 격정적이지만 밝은 곡으로 손가락 터치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신나는 곡이다.), Nightfall(Leaves On The Seine와 마찬가지로 유수의 드라마에 삽입되었었다. 분위기 좋은 단조 곡이다.), Courage Of The Wind 등이 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없는 이 안 2004-08-05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음 그러니까 어렸을 때 ^^ 데이비드 란츠의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는데 그게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이 악보집 저도 다음에 서점 가서 한번 봐야겠어요. 가끔 편곡이 좀 이상타 싶은 책들이 있어서 영 관심을 끊고 있었는데 님이 칭찬하시니... ^^

icaru 2004-08-0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데이비드 란츠 테이프 늘어지게 들으셨다고요...흑흑흑...저 있잖아요......눈물나게 반가워지는거 있지요...!

저는 A Whiter Shade Of Pale가...좋아요...세상의 음악 중에...제일 좋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거 같아요...

creamclassic 2007-01-1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whiter shade of pale은 정말 최고죠.. 들어도 들어도, 아니 들을 수록 묘한 매력이 생기는.. 이 곡때문에 악보를 주문했습니다..

icaru 2007-01-1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tedpro 님!!!! 반갑습니다!!! ^----^

tlsdudehd 2009-06-1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이글을 댓글을 읽으실지 모르겠습니다.
ㅋ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다비드 란츠는 저도 제일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데요,
이 악보집에 대해서 궁금한게 있는데요...?
악보집을 따로 살 돈두 잘 없고, 윈터 세이드 오브 폴이란 곡이 있는 악보집이 뭔지도 모르는데요, 너무 저렴한 가격에 올라와 있어서 궁금합니다. 다른 악보집에 비해 왜이렇게 싼지모르겠네요 곡은 3배이상 많은데 말이죠 ㅋㅋ
 
카트린 M의 성생활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으로 카트린 M의 사진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책에는 사진이 나와 있지 않아서 말이다. 자신의 성생활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고 세밀하게 이야기하며, 짐짓 담담하기까지한 이 여자의 엄청난 내공을 느끼며, 그 외모가 자뭇 궁금했기 때문이다.

현재 오십대의 이 필자는 전위적인 미술 잡지 <아트 프레스>의 편집장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그의 저서가 두 권씩이나 번역되어 나오기도 한,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이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담담함이란 그런 것이다. 성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도 야하지 않은 점 말이다. 이 여자는 수많은 남자들(씻지 않아 지저분한 사람들이나 몸의 어딘가 불편한 사람 등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상대방이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대상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 여자의 성생활에 있어서 원칙 같은 것이었다. 모든 남자들을 아주 공정한 방식으로 대상화 한 것이다.)과 다양한 공간에서 성적 체험을 하였으며 젊은 시절엔 파피루즈(세 사람 이상이 함께하는 성행위)에도 수차례 가담하였다.

그러나 이 글은 읽는 독자로 불안함이나 자극 같은 걸 일으키지 않는다. 이 책은 네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 공간, 내밀한 공간, 세부 묘사 등이 그것이다. 자신의 성 경험을 이런 형이상학적 카테고리와 묶어 철학적으로 피력하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이 엄청난 성경험을 이야기하는 단순한 외설서로의 전락을 막는 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처음 출판된 필자의 자국인 프랑스에서도 이 책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주의 정신과 타인에 대한 관용이 허용되는 프랑스에서도조차
도 말이다. 그래도 우리 나라처럼 비디오 사건에 휘말린 연예인들이나, 자신의 성경험을 토로한 모 탤런트처럼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책의 출판에도 불구하고 카트린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미술계의 중책을 맡고 있는 실력 있는 인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프랑스라는 나라가 멋있는 나라임에는 확실한 것 같다. 자신의 사생활에 그것도 성생활에 철학과 ~주의 부여할 수 있으며, 남의 사생활에 히히덕덕 왈구왈구 하지 않는 관용 정신. 조금은 부러울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폴 써로우의 중국 기행
폴 써로우 지음, 서계순 옮김 / 푸른솔 / 1998년 9월
평점 :
절판


폴써로우의 <중국 기행>은 페이지 655짜리의 굵은 두께의 장정본 책으로 나는 방금 이책의 끝페이지를 덮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북새통의 기차 안에서, 그리고 설날 연휴 내내 틈틈이, 결국에는 연휴의 끝자락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이 책은 1987 ~ 1988년으로 추정(책의 어느 부분에서도 여행을 하고 있는 날짜의 정확히 연도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보니)되는 시기에 런던에서 출발하여 기차만 타고 중국 대륙 구석구석을 누비는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앞의 80페이지 상당 부분은 런던을 출발하여 프랑스를 지나 동베를린과 폴란드에서의 여정과 러시아에서 보낸 날들에 대한 술회를 차지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와 예술의 도시 파리의 변두리를 낡은 회반죽에 지루하고 단조로운 창을 가진 다닥다닥 붙은 건축물쯤으로 일축해 버리고 당시 동구권의 상징적인 도시 베를린을 위대한 과대망상에매력을 느끼는 대도시 정신 분열증의 표본이라고 서술하였던 부분이다.

하지만 뒷부분으로 오다보면 소로우가 특별히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듯 보여지는 민족도 있다. 몽고인들과 티벳인들이 그 예이다. 몽고인들은 그들의 천진함과 소박함 높이 사고 있었고 티벳인들의 경우는 그들이 몹시 추운 고산 지대에 살고 있어 잘 씻지 않아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천성이 자유롭고 강인하며 행복한 민족이라고 서술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쏘로우의 여행 내내 암거래 달러상이 달라붙는 일이 일상과 같았던 것, 어느 지역을 기차 여행 하던지간에, 새벽녘이 되면 역무원들이 담요를 수거하기 위해 단잠을 자는 승객들을 깨우며 소동을 부리는 일, 영토가 넓다보니 어느 지역은 너무 더워서 곤란하고 어느 지역은 너무 춥다는 것,어느 지역의 기차가 시설이 좋은지에 대한 평, 등등 소상한 하고도 자잘한 기록들을 읽는 맛이 재미있다.

티벳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이야기할 때는 달라이라마의 생을 다룬 영화 <쿤둔>에서 본 명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이 책에서 보여 주는 티벳 고원의 절정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는 알프스 같은 꼬불꼬불한 길이나 시커먼 절벽이 없었다. 로키산처럼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압도적인 위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티벳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과 한적함을 향유하도록 하는 단단히 버티고 선 산과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진 지역'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국의 근대사에 대한 궤적 또한 보여 주고 있다. 쏘로우가 이 근대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료는 다름 아닌 기차로 여행을 하면 만났던 중국의 구비구비에 살고 있는 현인 들의 육성인 것이다. 1957년경에 있었던 과거 문화 대혁명 당시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지식인들의 삶, 그리고 문화 대혁명 수비대인 홍위병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로부터 직접 듣는다.

그리고 1988년 쏘로우가 여행을 하던 당시의 중국인들에게 남아 있는 마오쩌둥의 위상도 확인한다.(지금은 또다시 마오쩌둥의 붐이 일이나서, 그의 저서가 아주 잘 팔리고 있다고 하지만) 쏘로우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생가 및 기념관에 가서 그 자취를 훑지만, 흥망성쇠가 잦은 민족들간의 기질에 기인한 것인지, 여행 당시에는 마오쩌둥의 사진도 잘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기념이 될 만한 유적지는 소수 민족과 한족 간의 흥망과 부침에 따라 몰살되어 자취는 살피기 어렵기 일수라고 쏘로우는 전한다.

맨 뒷장의 번역자 후기를 보니, 중국을 연구하는 분이나, 대학생 그리고 중국과 교역을 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는 말이 붙어 있다. 나는 위의 세 분야 중, 어느 분야에도 속하지 않지 만 이 책을 참 재밌게 읽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중국 구비구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책을 준비해서, 내가 머물게 되는 지역지역마다 쏘로우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참고해 보고 싶다. 그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내게 과연 와 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곳이 멀지 않다 민음의 시 80
나희덕 지음 / 민음사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안치환의 노래 중에 <귀뚜라미>라는 노래가 있다.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아직 내 울음소리는 노래가 아니요,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라는.

대학 2학년 때 이 노래를 첨 듣고, 이 노래는 나를 위한 송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노래를 달리 옮기면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으니. 조용히 때를 기다려라 라고 옮겨야 할까나. 밟히고 짖눌려 버리기 쉬운 사소한 존재에게 견고하고 단단한 의지를 불어넣는 마력을 나희덕은 갖고 있다.

4년 남짓한 사회 생활은 나에게 여운을 두지 말고, 복종하지도 말며, 곁을 터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 단단한 틈을 밀고 들어오는 시심(詩心)이 있다. 그건 바로 나희덕의 시이다. 그의 이 시집 중, <속리산에서>라는 시는 이 시집 전체의 경향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비탈만이 /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산다는 일은 /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평평한 길은 가도가도 제자리 같았다./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이 남아 있는 나에게 /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 산을 오르고 있지만 / 네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 산 속에 갇힌 시간일거라고,'

삶은 그런 것이다.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천장호에서-
던지는 돌멩이에도 제 속을 보이지 않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열정을 갖고 대들기를 반복해 보지만, 얼음장처럼 닫힌 마음이 그러하듯 돌을 아무리 던져도 호수는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시인이 아니, 내(우리)가 삶을 지속시키는 방식은 그렇게 열정과 냉정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희덕은 시에서 노래한다. 냉정을 열정으로 무화시키는 힘을, 과거의 썩은 물웅덩이처럼 남아 있는 상처는 정리되어 이제 현재의 삶을 파헤쳐 놓지는 않는 것이다. 과거를 단정하게 정리하는 기억, 이것은 바로 열정 속에서도 냉정을 찾는 것이며, 냉정 속에서 열정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또 말한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 듯 수의를 위해 실을 짜깁는다.-고통에게1-' 이렇게 조용히 시인은 나에게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처럼, 복종함으로 반항에 이르는 길을 풀어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