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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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와 어떤 장소나 그만의 냄새가 있다. 심지어는 우리집 강아지에게서도 아무리 샴푸질을 해도 그 녀석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질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낯선 장소에 떨어져도 전에 맡은 적이 있는 냄새를 맡게 되면, 마음이 편해져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생선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태어나고 버려진 그르누이는 천성적으로 몸에 냄새를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런 그는 냄새에 유난한 집착하며, 가히 후각에 있어서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급기야 향수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그르누이에게는 야심이 하나 생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향수계의 스승인 발디니나 드뤼오가 자신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그를 죽도록 혹사시키거나 이용해 먹거나, 다른 동료나 세상 사람들이 그 자신을 지루한 바보 멍청이라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 밖에 없다. 향수를 만드는 일. 그 향수로 말할 거 같으면, 그걸 뿌린 사람을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향수. 일단 그 향수를 만들면, 세상은 자기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모두가 자신의 편이 되니까. 정말 시작은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편을 만들기 위해서 처절하게 외로운 사람이 사랑을 갈구하는 전형적인 모습인가? 

세월이 흘러 드디어 그르누이가 원하는 대망의 향수를 완성하게 되었을 때, 그의 그동안의 살인 행각이 밝혀지고, 시민들이 모인 광장 앞에서 처형을 당하기 직전까지 다다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스물 여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이 살인마를 잔인하게 처형시켜야 한다며 아우성이던 사람들이 그르누이가 처형장에 당도한 순간, 처형이 다 뭔가, 그에게 연민과 호감을 느끼며 급기야 사랑하게 된다. 모두 그 향수 덕분이다.

그르누이가 꿈꾸던 것이 드디어 성공했다. 일생일대의 기다리던 그 감격의 순간이 찾아왔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 그런데 가만있자 그렇지가 않다. 그르누이 마음이 달라졌다. 사람들로 사랑을 받는 이 상황이 혐오스럽다.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거지. 사람들은 진짜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태생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그 무엇이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그에게서 단지 그가 연출한 분위기만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르누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 그리고 그르누이는 그가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이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유 고약해라. 

그가 만든 향수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존재가 들키지 않도록 하는 향수, 다른 사람에게 순진하고 가여운 느낌을 주는 향수, 다른 사람들에게 단정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향수.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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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3-27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너무 재밌게 만들어졌죠. 결말이 다소 충격적이죠.

icaru 2021-05-03 15:11   좋아요 1 | URL
우앗 두문불출한 사이에 댓글도 달아주셨네요. 이제야 확인이라니 ;;;; 저도 참~~
ott 서비스의 축복인지 재앙인지~ 요즘에 넷플릭스나 왓챠로 오랜전에 봤던 영화들을 보거나 엄두도 못 냈던 영화들을 보고 있는데요~ 향수는 원작으로 읽었지만 영화로는 아직 .. 마음의 준비가 덜 됐나봐요 ㅋㅋ
 
불평등 트라우마 - 소득 격차와 사회적 지위의 심리적 영향력과 그 이유
리처드 윌킨슨.케이트 피킷 지음, 이은경 옮김, 이강국 감수 / 생각이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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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국의 두 저자가 쓴 책이다. 어째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과도하게 물질을 추구하려 할 정도로 지위에 민감한 생명체로 진화했을까? 저자들은 불평등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사회역학, 진화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경제학 등 최신의 연구들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저자들의 전작 <평등은 답이다>_불평등이 온갖 사회문제들을 일으킨다고 주장하여 세계적인 반향을 얻음. -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불평등이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개인의 일상 생활 수준에서 분석한다. 불평등은 타인의 시선과 판단 즉, 사회적 평가에 대한 위협을 높이고 지위 불안과 스트레스를 심화시키며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한다. 비교적 평등한 국가(스웨덴 등)와 대비하여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술에 빠지고 도박이나 쇼핑에 더 많이 중독되는 현상을 통계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사회적인 만남과 상호작용을 꺼리게 되고, 더 나아가서 공동체 활동과 신뢰가 낮아져 이는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통합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된다. 불평등이 심각함에 따라 사회적 이동성이 낮아지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부모의 소득에 의해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된다.

 

오마이갓.

 

저자들은 이제 우리가 불평등으로 인한 불안과 위계를 더욱 강화할지 아니면 불평등을 극복하여 사회적 협조와 행복을 추구할지 선택해야 하는 전환기로 보고,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노동조합과 소득재분배의 강화와 같은 정치적 노력을 해야 함을 역설한다.

 

“1970년대 후반 이후로 진보 정치는 더 나은 사회 형태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잃었거나 사람들에게 정치가 더 나은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경로라고 설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거의 아무런 반발 없이 신자유주의가 부상했다. 지구 온난화와 재앙을 초래할 기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에 맞서, 세계는 급진적 대안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미래사회의 뚜렷한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야만 사람들이 그런 사회를 실현하는 기나긴 과업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더 큰 성취감을 부여하고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동시에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적인 진보 네 가지.

 

첫째, 평등이 더욱 확대되면 지위가 덜 중요해지고 어색한 계층 구분이 해소되기 시작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억제하는 사회 불안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낮은 자존감, 자기회의, 자신감 문제로 덜 시달리는 세상을 얻는다.

둘째, 소비와 지위가 극대화된 사회에서 생산성의 증가로 더 많은 여가시간을 확보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가족, 자녀와 함께 더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친구와 노약자를 아끼고 돌보며 공동체 생활을 즐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셋째 고용에서 민주주의 확대가 가져다주는 노동생활의 질적 향상. 직장은 인간이 자존감을 발견하고 가치있는 공헌을 한다는 경험을 발견하는 곳이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잠재력을 손상시키는 고용체제를 더 이상 수용해서는 안 된다.

 

넷째, 더 평등한 사회에 살면 얻게 될 건강과 사회적 혜택이다. 지위 불안이 감소하면 가장 뚜렷한 과시적 소비뿐만 아니라 수준을 유지하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방어적으로 행하게 되는 엄청난 낭비적인 소비도 줄어든 것이다. 사람들이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분열할 일이 줄어들고 공익을 위해 더 쉽게 행동할 수 있을 것.

 


“우리는 신체적으로 전례없는 편안함을 누리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으며 정신질환이라는 거대한 짐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은 불평등이 이미 끼치고 있는 피해와 기후변화가 유발할 끔찍한 혼란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대응책. 그러나 탄소배출 감소와 환경보호에 실패한다면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것.”

 

“더 나은 사회라는 개념을 공유하면 정책에 일관성이 생긴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인간의 특성은 단순히 본능적 행동이라기보다 학습된 생활방식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인간의 독특한 발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인간 영장류들도 땅에서 캐낸 덩이줄기를 먹기 전에 흙을 씻어낸다거나 막대기로 흰개미를 파내 먹는 등 몇 가지 학습행동을 보이지만, 오직 인간 사이에서만 완성된 생활 양식을 구축할 수 이쓸 만큼 학습 행동이 축적된다. ”


“성장이란 타인들이 수용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법을 학습하는 일이다. 따라서 특정한 기술을 습득하든, 지식을 쌓든, 남의 웃음이나 조롱을 사지 않게끔 단어를 발음하든 간에, 학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듣고 싶다는 갈망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인류는 극단적으로 다른 불평등 수준과 위계에 적응하면서 살아왔지만 그 수준은 행복에 현저하게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다. 지위 경쟁에 근거한 사회 관계는 불필요한 대립을 키우며 평등과 호혜에 근거한 사회관계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심히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수는 없다. 누군가의 지위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내려간다.”


“실제로 인간은 애초에 자신이 잘하는 일에 능력을 키우는 활동과 환경을 선택한다. 그 결과 작은 생물학적 소질의 차이가 인간을 어떤 방향을 몰아가게 되고 그렇게 해서 작은 초기의 차이가 선택으로 확대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연습과 훈련을 통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적응해간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인간은 마음 속에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사회 전략을 품고 있다.”


“하나는 우정을 기반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우월성과 열등성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이다. 상호성과 호혜, 공유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각자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기본 메시지가 강해진다. 지위와 자기 발전에 더욱 관심을 쏟게 되면서 한층 더 반사회적 형태로 내몰리는 동시에 공동체 생활과 신뢰, 서로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 등이 위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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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7년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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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카프카라고 찬사를 받는다는 에트가르 케레트의 첫 에세이를 읽었다. 제목이 좋았던 7년인데 왜 그런고 하면 아들이 태어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7년을 담았기 때문이다. 유머와 감동으로 풀어낸 참 따뜻한 책이다. 책에도 온도가 있다. 사람도 따뜻한 사람이 좋고, 책도 따뜻한 책이 적어도 위로 받고 싶은 목적으로 읽을 때는 딱이지 않을까. 그냥 따뜻한게 아니라 따뜻한 유머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앵그리버드를 종교근본주의자의 테러리스트 정신과 비교하는 부분이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작가가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요가 센터에 등록하는데, 초보반에도 못 끼워준다해서 임산부 반에 들어가서 유일하게 배가 덜나온 수강생으로 운동을 했는데, 출산을 앞두고 수강생이 하나둘씩 빠져 결국엔 혼자만 남게되었는데, 요가선생님께서 인도로 가는 편도비행기를 끊었고, 돌아오게 될지 장담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부분이나, 이십육년전에 처음으로 단편을 썼을 때, 군대에서 였는데, 교대를 설 하사에게 건네고 읽어달라고 했더니 "꺼져"라고 말하는 장면 포기하지 않고, 형의 집을 찾아가 형에게 읽어줬으면 한다고 말하니, 다 읽고 나서 "이 단편 멋지다"라며 "복사해둔 거 하나 더 있어?" 라고 물은 후 그렇다고 하니, 그 종이로 함께 산책 나온 개의 똥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 흔히들 페이소스라고 표현하는 어떤 것. 여러 부분들에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좋은 것을 발견해야만 하는 (히브리어로 글을 쓰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사는 유대인이다.) 인간의 필사적인 욕구가 보인다. 현실을 미화하지 않되, 추한 것을 좀더 나아 보이게 하고, 흉터 남은 얼굴의 사마귀와 주름살에 애정과 공감을 일으키는 각도를 찾고자 하는 욕망.

오탈자인가 긴가민가 하게 되는 부분

84쪽 아홉째줄 : 모든 축제의 아이폰. 아이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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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2-0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예전 페이퍼랑 성격이 비슷한듯 하네요.

icaru 2021-02-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요? 비슷하다시니까 묻고따지지 않고 마냥 좋아서 헤헤헤... 이 책 너무 좋았어요
 
일하는 마음 - 나를 키우며 일하는 법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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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직장을 생활을 하면서 이쯤까지 지내다 보니 드는 생각은 버티는 것은 마음 관리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을 하지 않고도 여유 있게 살기를 꿈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기만 할 것인가 생각해 봤을 때 의문이다.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보내는 한 방식일 뿐이다 라고 봤을 때도 생계에 대한 절박이 있으니, 그렇게 낭만적으로 볼 일도 아니고 말이다.



이왕 일을 하는 거라면 더 신나게 할 수 없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만나는 책이기도 하면서 다른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괴로워하며 회사생활 하기엔 인생이 길지 않은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만난 책이라 더 단비같다.



저자가 열심히 일을 하면서 느껴왔던 건강한 불안감과 하나하나 쌓아올린 내용인데,





탁월하게. 이 단어가 내 눈길을 잡아끌며 튀어 올랐다. 전문성이 아니라 탁월함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해오던 터이기도 했다.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함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다.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되는 직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내 직업 삼아 살고 있다는 느낌.

전문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30대 중후반에 접어드는 것.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자의로든 타의로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일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시대다. 전문성을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전문성은 점점 더 닿기 어려운 도착지가 되고 있다. 전문성은 오랜 기간 동안 한 우물을 판 사람에게 주어지는 훈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무개지.”라는 식으로 전문성의 훈장이 주어진다. 호칭은 대체로 사후적인 평가라기보다는 사전적인 인정이라는 점에서 이 두 가지가 전문성의 조건인 것만은 분명. 사람들은 누군가와 직접 일해보기 전에 이력서의 몇 줄, 그러니까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했느냐를 가지고 전문가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시스템의 교복을 입고 차곡차곡 모범생으로 보낸 시간의 총량이 전문성의 훈장으로 환원되는 셈이다. 이렇게 전문성이라는 이름의 디딤돌은 한곳에서 오래 일할 기회를 누리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에 딱 그만큼 점점 더 희소한 자원이 된다. 이런 식으로 규정되는 전문성은 불가피하게 배타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탁월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럼에도 더욱 가지기 어려운 것이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자격 조건 같은 것은 없지만, 시스템의 내부에 안착해 그저 시간을 쌓는 것만으로 탁월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별개로, 자기만의 만족 기준, 달성하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탁월성을 만들어낸다. 탁월성은 또한 자신이 해온 일,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반추하며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핏 보아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일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만들어내는 탁월성은 전문성으로 치환되지 않더라도 굳건한 디딤돌이 되어준다. 탁월성의 세계는 교복 입은 학생의 세계와 다르다. 탁월한 사람이 언제나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한 조직 내에서 가장 먼저 승진하고 가장 좋은 고가를 받는 사람이 언제나 가장 탁월한 사람이란 법은 없다는 의미다. 스스로 탁월성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 목표를 향해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외부의 훈장이 주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일의 보상을 누린다.

전문성이라는 디딤돌이 정적인 것, 자격증이나 회사 타이틀, 직책의 이름을 획득하기 위해 한참 머물러야 얻어지는 것이라면, 탁월성은 끊임없이 이것과 저것을 조합하고. 그 모든 경험을 관통하면서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역량이자 고유한 스토리일 것이다. 1~2년짜리 계약직만이 가능한 선택지일 때, 그게 아니라도 이 직장에서 3년 이상은 일하기 어렵겠다는 전망이 들 때, 혹은 처음부터 프리랜서의 길로 뛰어들었을 때, 이런 경험을 통해서라도 디딤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성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언제나 머뭇거렸다. 전문성의 자리에 ‘디딤돌’이라는 단어를 넣고, 그 디딤돌을 전문성과는 다른 종류의 탁월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은 어쨌든, 나의 제한된 경험 안에서만 유효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일의 현장으로 가져와 일을 고용주와 나 사이의 거래 관계로 생각하면, 과잉의 노력을 쏟아 붓는 시간을 셀프 착취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크건 작건 스스로 목표를 정하면, 고용주와 나 사이의 제로섬 게임 바깥에 내 일의 또 다른 층위가 생겨난다. 과잉의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은 고용주에게 필요 이상의 노동력을 갖다 바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내 삶에서 개인적 충만함을 위한 기울기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가파른 기울기의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다른 경험에 직면해서도 그런 기울기를 추구한다. 가파른 기울기는 즐거움의 총량을 늘린다. 즐거움은 탁월함의 다른 이름이다. 무엇이 즐거운지는 나만이 정할 수 있고, 탁월함 또한 그렇다.


#일하는마음
#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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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0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저로서는 좀 먼 이야기 같지만 탁월함에 대한 이야기는 좋으네요. ˝외부의 훈장이 주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일의 보상을 누린다˝ 이 문장도 희망적으로 다가오고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icaru님!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온 국민 집콕이라 저도 그렇게 애들이랑 옹기종기 ㅠㅠ 자주 안 오셔서 궁금했는데 오늘 글 읽으니 반가운 마음이에요.
즐거운 토요일 저녁 되시어요^^

icaru 2020-09-07 13:07   좋아요 0 | URL
우아 전 정말 가끔 이곳에 들어오네요.. 그래도 이렇게 막리뷰라도 남기면 댓글 달아주시는 반가운 분이 계셔서 이런 게 마음의 고향이지 이런 맘도 들고...
아이들이 이 시국에 정말 딱해요~! 중딩은 몰라도 유치원 초딩들은 밖에서 놀며 땀깨나 빼야 하는데 ㅎㅎ
 
마켓컬리 인사이트 - 스케일을 뛰어넘는 디테일로 시장을 장악하는 방식
김난도 지음 / 다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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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접점이 있는 책이라서 읽게 되었다. 책에서는 김난도 님의 부인은 자주 애용한다고 했지만, 나는 더러더러 이용하는 정도이다. 첫구매 고객 1000원상품 이런 것에 혹(?)해서, 동생 추천하고 받은 쿠폰으로 또 한번, 적립금이 얼마간 모아서 또 한번, 달마다 할인쿠폰이 나올 때 또 한번.

 

주로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식제품에 품질은 높지만, 가성(가심비는 좋다) 비가 좋진 않아서이고, 포장재가 너무 많이 나와서인데,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으로 비용이 들더라도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에 이 방면에서 오너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김슬아 대표를 인터뷰하고 이 책을 주로 끌고가는 저자 김난도는 알다시피 미래트랜드를 연구하는 전문가인데, 이 책에서도 '코로나 사태 이후 이후 어떤 트렌드가 펼쳐질까?' 를 화두로 해서 마켓컬리의 경영 노하우를 살펴본다.

 

코로나 이후의 사태란 집의 중요성이 커진다. 실업의 확산이 우려된다. 공유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재택 원격 유연 근무가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방향보다는 속도를 바꾸는 것.

비용 절감이나 소비자 편의를 자향점으로 삼아 기업 경영을 해야 한다. 언컨택트 즉, 접촉하지 않는 트렌드가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증이라도 하듯 세계 곳곳에서 사재기 열풍이 불어도 한국에서만 불지 않았던 것은 배송경제의 발달 때문

 

포스트 코로나, 그 격변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고 성장할 것인가? 가 키워드인 책이다.

 

마켓컬리는 고객 지향성을 모범적으로 실천해낸 조직으로 이 책에서는 새벽배송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해내기까지의 디테일한 과정을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비대면 유통사의 축이랄까.

-고객: 공급의 효율이나 비용의 절감보다 고객의 가치와 품질을 선택 , 공급사, 운영 프로세스, 라스트핏, 조직문화

-공급사 : 플랫폼의 이윤보다 공급사의 입장 반영

그런데 마켓컬리는 상품의 품질, 재고 관리와 더불어 배송까지 책임 직접 구매해 자체 냉장, 냉동, 상온 물류창고 보관 낭장 차량 이용. 지금까지 대개의 유통사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플랫폼 역할만 해왔다. 이에 투자자들은 대표와 구성원들이 가진 고객 가치에 대한 집념과 그것을 현실과 만드는 실행력을 보고 투자함. 마켓컬리의 큐레이션은 상품을 선택하고 고르는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의 결정 장애를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춰짐.

 

당장은 단기적으로 손해가 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가야 한다. 가심비와 나코노미가 늘어간다.

 

마켓컬리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는가? 음식에 관한 의미가 들어가길 원했고, ㅋ, ㅍ같은 강한 음절을 사용해 각인 효과를 주고자 했다고 한다.

이름과 브랜드만 조금씩 다른 상품들을 여럿 진열하기보다는 꼼꼼히 비교해 특정 측면에서 월등한 상품들, 즉 존재의 이유가 있고 고객의 취향을 관통하는 상품을 선별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생산에게 물량을 몰아주면서 단가를 낮추고 고객에게 더 싼 가격을 누릴 수 있게 한다. 핵심역량은 대표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고객의 소리라고 한다.

 

고객의 니즈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타깃 고객층이 주로 이용하는 맘카페나 sns를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한다.

고객을 단순히 물건 사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인격체로 대하고 있고, 본인은 이런 일을 스스로 재미있어하는 자질이므로 이런 사업을 하는데 주어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함.

에스엔에스 시대에는 현상을 진단하는 설문조사 보다는 회사 제품에 대한 악플만 모아서 본다거나 에스엔에스 안에서 날것의 의견을 파악하는게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공급사 소비자 플랫폼(유통업체)

기존 유통업의 방점은 플랫폼에 찍혀 있었다. 마켓컬리는 균형을 모색하는 변수로 가격이 아닌 상품에 초점을 맞춘다

 

공급 가능한 금액을 생산자에게 묻는다. 100퍼세트 직매입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도 생산자가 재고 부담없이 품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류비 30만원 치르곡 원가 15만원의 10구짜리 36판 달걀을 사오다.

시장은 가성비와 프리미엄이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마장동에만 파는 그 고기를 상품화함. 킬러 컨텐츠 킬러 컨텐스가 모여 해당 기업의 정체성을 만든다.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입점시킴

-pb상품 : 유통사가 기획해 주문자 생산을 한 후 유통사의 브랜드로 출시하는 상품.

마켓컬리 입점이 공급사로서는 하나의 자격증이 되어 가고 있는 상황.

스토리텔링

유통에서는 크리에이티브 영역이 존재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정해진 틀에 EK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핵심. 영업사원이 고객을 일일이 설득할 수 없는 비대면 구매 채널에서는 제품 하나하나에 녹아든 크리에이티브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함. 구매 목적성과 이유에 초점을 맞춘 핵심 콘텐츠 개발 마켓컬리의 사진에는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라는 스토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담겨 있다.

 

티비 마케팅

마케팅에 힘쓰지 않아도 고객 마케팅 좋은 상품을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은 기술주도형 스타업에서 자주 발견되지만, 실제로는 고객이 알아야 상품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

기업의 모든 업무중에서 고객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하는 활동이다.

엄청난 물량의 매스미디어 광고보다 동료 소비자들의 진정성이 큰 효과를 발휘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고객에게 브랜드를 인식시키려면 대중매체를 활용한 광고가 꼭 필요함. 서울 경기 지역의 30~40대 여성에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구매고객과 비슷한 페르소나를 갖춘(먹거리에 깐깐한 30~40대 일하는 워킹맘) 모델로 전지현이 부합했음.

 

“ 요리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식재료에 데우거나 끓이는 등 간단한 조리만 하면 되는 rtc 시장은 가장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영역이다. 전지현 광고 효과 30%에서 94퍼센트로 상승.

데이터의 개방

의사결정을 위한 운영 프로세스는 기술, 특히 데이터 과학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대안.

이 책뿐만이 아니라 많은 책에서 나오는 부분이다. 1년 정도 쌓인 데이터는 유의미한 분석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1년이 아니라 몇십년에 가까운 데이터가 있으니 더욱 유의미한 수요를 예측할 수 있어 적어도 재고 불만은 나오지 않을 수 있어야 할텐데. 데이터는 쌓이라고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관계성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어느 회사나 데이터 경영이 제일로 어렵다고도 한다. 데이터는 그것이 유효한 시점에 제대로 잘 전달될 때 가치를 발한다. ‘데이터 물어다 주는 멍멍이’라는 알람 시스템이 있다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도 본질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분석은 과정일 뿐이다. 특정 전문가 일부에게만 데이터 분석을 맡기고 거기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각자가 필요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데이터가 열려 있을 필요를 강조했다. 가장 최선의 이사 결정을 하기 위함이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데이터 접근성을 높이고자 고안한 데이터농장 모든 구성원이 매일 본인의 업무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켓컬리의 혁신 커다란 한 방이 아니라 작은 개선들의 집합이라고 한다.

 

‘어제의 최적화가 오늘의 비효율이 되곤 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주얼이다.

한 분야의 선두에 설 에너지를 만들고, 그걸 성과로 만드는 방법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마켓컬리’의 조직문화

 

1. 효율적인 회의 문화

⑴ 회의 전, 중, 후 과정을 간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한다.

- 참석자가 노트북을 들고 회의에 참석하기

- 별도의 프린트물 없이 사전에 파일과 주요 논의 사항 공유하기

- 회의 중에는 주요 논의 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내용을 각자가 업데이트하기(회의록 작성X)

⑵ 회의 시간은 1시간 이내로 짧게 진행한다.

⑶ 회의 장소를 더 확보하고, 에어컨이나 환기 시설을 보완한다.

 

2. 진정한 의미의 수평적 조직 문화

⑴ 수직적, 하달식 업무 지시나 의사결정 과정을 지양한다.

⑵ 주요 이슈나 아이디어에 관해 임직원이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함께 의견을 주고받고 이 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존중해 주는 과정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3. 회사의 주요 이슈를 공유하는 장 마련

‘카더라’와 같은 입소문을 통해 회사 이슈를 아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 공적인 자리에서 함께 주요 이슈를 공유하고, 이에 관한 토의를 하는 장을 마련한다. (팀 또는 본부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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