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보급판)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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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작성

 

최근 몇년간 읽었던 책 중에 보기 드물게, 저자와 인생역정의 스토리를 제공한 스티브잡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격정적으로 읽었던 책이다. 주말 이틀을 끼고 3박 4일 흠뻑 빠져 읽었나 보다.  요약 리뷰 따위로 때우지 말고, 책으로 직접 만나 느껴보라고 다시 이야기해야겠다.

인생 1막, 잡스의 유년과 대학시절로 할애된 100여쪽 금새 읽었다. 어느덧 애플 창업 시기, 그리고 이사진들에 의해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쫒겨난 시기인 인생 2막... 을 읽었다. 그리고 제 3막 픽사와 애플 양대 CEO로 활약하는 부분이 그 인생 가장 황금기이다.  그러나 3막 2장에 해당될 암의 재발 시기. 

 

 

책의 앞과 뒤에 실린 사진 또한 많은 것을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뒷면 표지의 스티브가 앞면 표지의 인물로 환골탈태되기까지 스티브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이 저자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서술하려 하였다. 

전 <타임>지 편집장이자 CNN CEO를 역임한 월터 아이작슨은 2004년 여름 스티브 잡스에게 만나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평소 아는 사이기는 하지만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고, 스티브가 아이작슨에게 강력한 친분을 표시할 때는 스티브가 출시한 신제품을 타임지 표지에 싣거나 CNN 특집 방송에 보내고 싶을 때만 그러니까 필요할 때만 친한 척 해왔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스티브에게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이작슨은 거절한다. 그가 아직 경력의 중반부에 있고, 더 많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할 것임이 분명하기에. 그러나 2009년 스티브의 아내 로렌 파월로부터 스티브의 두 번째 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스티브에게 왜 자신을 전기 작가로 택했느냐고 묻자 “사람들의 입을 여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뜻밖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작슨은 스티브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그가 해고하거나 학대한 사람들, 그가 버리거나 그에게 분노한 사람들까지도.

스티브와는 산책 혹은 자택에서 밥 딜런이나 비틀즈의 음악을 틀어놓고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40여차례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맨뒤에 붙어 있는 직접 만나 인터뷰한 사람 목록을 보니, 118명이다. 게다가 애플이 있기까지의 크게 작게 관여한 주요 인물들 몇몇은 그들만의 명암을 드러내며 무대에 나와 활약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잡스의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  

폴 잡스는 차고에서 오래된 자동차를 손질하는 취미를 가진 기계공이었다. 폴 잡스 부부는 간절히 아이를 원했지만 결혼 8년이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 이민자 가족 출신의 위스콘신대학 대학원생이던 조앤 시블은 시리아에 다수의 정유업체를 가진 아버지를 둔 유학 대학원생 잔달리를 만나고 사귀지만, 딸에게 엄격했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친다. 시블은 미혼모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곳에서 아이를 낳고, 반드시 대졸자 출신의 부모에게 입양해 줄 것을 기관에 약속 받는다. (아이의 양부모가 대졸자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만 알게 된 시블은 그렇다면, 꼭 아이를 대학까지 보내 줄 것을 다짐받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엄격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시 시블은 잔달리와 결혼을 하고, 스티븐의 친여동생 모나를 낳지만 다시 둘은 헤어진다. 뒷부분에서 소설가가 된 여동생과 어머님과 재회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부친은 찾지 않는다. 소설가 여동생 모나는 후에 아버지를 사설 탐정 기관에 의뢰하여 아버지를 찾아낸다. 잡스는 자신에게 부친은 자신의 정자 은행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잡스가 친어머니를 만나려고 했던 주된 이유는 잘 지내고 계신지 확인하고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낙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일이 고맙게 여겨졌다고. 그때 어머니가 스물 세살이었으니 스티브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는가. 하는 것. 그럼에도 어머님은 자식을 입양시킨 업보였는지, 이곳저곳 방랑하는 삶을 산다.

양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아버지 폴 잡스의 차고는 어린 스티브 잡스가 장인 정신을 전수받은 곳이기도 하다. 실리콘벨리로 이사를 갔을 때 아이클러가 설계한 주택지의 깔끔한 환경은 훗날 잡스가 애플에서 깔끔하고 우아한 디자인을 창출하고 대중 시장에 공급하고자하는 비전으로 자라난다.

잡스가 때때로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구는 이유와 무엇을 만들든 완전히 통제하려드는 집착은  출생 직후 버림 받은 데 원인이 있다고 그의 측근들은 해석하는데, 잡스는 그런 말들은 다 헛소리라고 한다. 양부모님은 잡스에게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의식을 심어 주었으며, 입양 사실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던 1000% 친부모라고 말한다.

그의 부모는 신앙심이 두텁지 않았지만, 아들은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기 원해 일요일마다 교회에 데려갔다. 그의 나이 열세살 구독했던 <라이프>지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두 비아프라 어린이의 충격적인 사진을 보고 목사님에게 질문한다.

“만약 제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린다면, 하나님은 그 전부터 이미 제가 어느 손가락을 들어 올리릴지 아시나요?”

“그렇단다.”

“(<라이프>지의 표지를 내밀며) 그럼 하느님은 이것에 대해서도 아시고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아시겠네요?”

“스티브, 이해하기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도 알고 계신단다.”

 그 이후 다시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훗날 선불교의 가르침에 귀의하기 위해 수년을 보낸다. 그의 십대의 시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반항기가 가득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성취하려고 하는 반사회적 존재였다. 그는 간교했고, 쉽게 흥분했고, 반항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한 대학에 들어간 스티브. 그는 양부모님이 자신들이 가진 재산의 전부를 대학등록금으로 다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등록금 그리고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대학 시스템이 싫어 한 학기를 마치고 자퇴한다. “자퇴하자마자 관심없는 필수과목들은 제쳐 놓고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들만 골라서 듣기 시작한다.” 그런 과목들 중에 캘리그래피 수업이 있었다.

“그 수업에서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를 배웠고, 서로 다른 글자를 조합할 때 공간을 할애하는 방법, 조판을 멋지게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지요. 과학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심미적이고 역사적인 무엇, 예술적으로 미묘한 무엇을 느낄 수 있는 수업이었어요.”

 “제가 만약 대학 시절에 그 수업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맥은 그렇게 다양한 활자체와 비율에 맞게 공간이 할애된 폰트를 결코 갖추지 못했을 겁니다. 더욱이 윈도는 그저 맥을 모방한 것뿐이니까 어떤 퍼스널 컴퓨터에도 그러한 다양성이 담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기질은 맥이나 아이폰 등을 만들 때 기존의 틀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창조적 열정으로 커나갔다. 잡스는 돈을 버는 것보다 멋진 무언가를 창출하는 것,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역사의 흐름과 인간 의식의 흐름 속에 되돌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히피 생활 방식과 컴퓨터에 대한 열정의 융합, 영적 깨달음과 첨단 기술의 혼합을 몸소 구현하는 토대는 이 즈음에 다져진다.    

 

애플1 애플2

고교 시절 학교 선배이자, 천재였던 또다른 스티브인 워즈니악 또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둘은 컴퓨터에 대한 관심 외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다. 워즈니악의 고안물 애플1을 만들 즈음 1970년대, 컴퓨터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과거 권력자들의 통제도구로 여겨지던 컴퓨터가 개인의 표현과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개인적 능력의 영역이 커지고 있다.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만의 영감의 원천을 발견하고,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나가고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과 모험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

당시 워즈니악은 사업에 투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hp(휴렛패커드) 직원이었고, 그 일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애플의 정식 직원이 된다고 해서 경영 세부 사항들을 챙기거나 엔지니어가 아닌 다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득한다. “그게 바로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에요. 저는 조직의 하단부에 그저 엔지니어로 머물고 싶었으니까요.”

 잡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허세도 부릴 줄 알았고 가끔은 사람들을 조종하기도 했다. 넘치는 카리스마로 상대를 매료하기도 했지만, 냉정하고 혹독한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애플 2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워즈의 뛰어난 설계도 이상의 무언가를 필요로 했다. 완전히 통합된 소비자 제품의 형태를 갖춰야 했고, 그러자면 잡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1977년 1월 드디어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가 공식 출범한다. 이 때 마쿨라(애플의 2대 CEO. 인텔에서 일하다가 스톡옵션으로 거부가 된 그는 애플 초기에 사업 확대 자금을 투자하며 사업에 참여함. 초기부터 그후 20년간 애플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함)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종이 한 쪽으로 정리했다. 이 문서에서 그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공감’이었다. 즉 고객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고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고객의 욕구를 진정으로 이해한다.”

둘째는 집중이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을 훌륭하게 완수해 내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원칙은 ‘인상’. 사람들이 기업이나 제품이 전달하는 신호와 분위기를 토대로 그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특정한 의견을 갖게 된다는 원칙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판단할 때 가장 먼지 기준으로 삼는 것은 표지다. 우리가 최고의 제품, 최고의 품질, 가장 유용한 소프트 웨어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형편없는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은 형편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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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 개정판 그림책이 참 좋아 19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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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8 15:57

         
 

우리집 둘째는 다섯살인데, 아주 어릴 적부터 책 읽어주길 게을리한 엄마 덕에, 그림책 보는 걸 즐기지 않는다.

아주 가끔 책 읽어주면 조용히 듣고 있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세권째쯤 읽기 시작할라치면,

"엄마 이제 나 다른 거 하고 놀아도 돼?" 하고 묻는다.

 마치 여태껏 들어준 걸 고맙게 생각하라는 듯~

왜 집중을 못하나 생각해 봤는데, 재미가 없다고 느껴서 그런 것 같다. 뭔가 재밌는 책으로 책읽기의 물꼬를 트는데 적절한 책을 물색하다가 만났다.

한번 더 읽어 달라고 하는 책이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지구 환경 보호를 생각하자는 문맥도 읽히지만, 할머니가 달물을 여럿에게 나눠주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녹아내린 노란 달방울로 샤베트를 만든 반장 할머니. 동네 사람들은 줄을 서서 반장 할머니가 건네는 달 샤베트를 하나씩 건네 받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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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 일기 1986~1989, 개정판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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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직장생활하면서 이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인생 멘토 혹은 직장 멘토가 허상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직장에 나가 주어진 일을 하면서 일과 일 사이(직업 없이 정말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지낼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에 나는 내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분야로 길 안내 해 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존재들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에서 나오는 시구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이기 십상이었고, 이즈음엔 평론가 김현이 그런 분이셨다. 

 

김현은, <한국 문학의 위상>에서 문학을 해서는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고, 출세를 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따라서 문학이 모든 형태의 억압에 자유롭게 대항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문학이 억압에 대해, 권력에 대해 자유로우면서도 순수하게 항거할 수 있다는 것을 비평을 통해 보여 주었다. 이런 김현을 우리 또래들은 마음의 큰 스승으로 받들지 않을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 나라 세기의 비평가 김현이 아닌, 다분히 소시민적으로 납득이 될 수 있는 인간적인 김현 선생을 보게끔 하는 책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고 와서는 미국 놈들이 밉더라고 그의 아내와 서로 토로하는 부분이나, 김혜순의 시 <도솔가>를 읽으면, 서유석의 노래 <타박네>가 생각난다라는 표현이나, 산행 중에 설사를 일으키고 주차장 근처의 화장실에서 황급히 볼일을 보면서, 머리보다 육체가 더더욱 사유를 주체라고 말하는가 하면, 이제는 갈수록 긴 책들이 싫어진다며 짧고 맛있는 그런 책들에 마음을 끌리고, 두껍기만 하고 읽고나도 무엇을 읽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책들을 읽다가 맛좋은 짧은 책들을 발견하면 매우 기쁘다는 말이나, 사회학자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로 읽지 않고 자료로 읽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학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폄하하는 것은 사회학적 인식이 덜 됐다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그의 저작들을 좋아했던 독자로서, 자뭇 진지하고 엄격하기까지 한 비평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한 인간의 내밀한 독백과 사사로운 기호를 엿보는 즐거움은 아주 크다.그의 일기이자, 이 책 제목인 <행복한 책읽기>에서, 나를 강력하게 매료시킨 문구들은 다음과 같다.

1988년 1월 7일의 일기 - 내 존재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잊음(oubli)이다. 나는 잊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잊음이다. 내 활력은 잊음에서 나온다. 모든 존재가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알집과 같은, 거푸집과 같은 구멍으로서의 잊음.

 <한국 문학의 위상>을 읽고, (남사스러운 기억이긴 하지만) 밥빌어먹는다는 문학의 언저리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생각은 이 짓(문학)을 왜 하려 할까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주위의 환경에 대한 자신의 일차적이고 피상적인 무력감에서 갖게 된 질문인 거 같다. 사실상 모든 예술, 학문은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고 인간에게만 봉사한다.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는 유일한 분야는 아니지만, 가장 대표적인 분야임에는 분명하다.-한국 문학의 위상 중에서-' 

 

"구멍의 공에 제일 깊게 사유한 최초의 인물은 노자이다. 그는 항아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항아리의 텅빈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빈 곳이 있어야 채울 마음이 생겨난다. 공은 행위, 욕망의 행위의 밑바닥이다.

장자는 그것을 더 논리화해서, 구멍을 뚫으면 혼돈은 죽는다. 라고 말한다. 그것을 뒤집으면, 구멍이 있으면 혼돈은 없다. 그 구멍은 질서 , 사회 생활의 기본틀이다. 구멍이 없는 존재는 완전자--신, 악마, 자연.....뿐이다. 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 인간적이다. 인간은 구멍의 모음이다. 채워도 채워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구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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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개정판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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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강연 동영상을 즐겨 본다. 불심자는 아니고,  즉석에서 강연 방청자들 가운데 고민 상담을 받고 해법을 줄 때는 스님의 인간미(? 결론만 말하라 거나, 주제가 뭐냐 라거나, 고민 같지 않은데 고민 없어서 지어낸 거 아녜요? 같은 다그침을 보는 것도 나름 깨알 유머가..)도 엿보고, 말씀의 내용이 우리네 실제 삶과 그 어떤 것도 무관한 것이 없어서 경청을 하게 되더라.

이 책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고 있는 부부들에게도 지침이 되기도 하겠거니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등극하곤 한다. "결혼해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지난한 일인데, 잘 할 수 있겠니? 그러리라 믿으마." 같은. 

물론 직접적으로 예비부부에게 고함, 의 형식은 아니다. 어쩌면, 절에 찾아와 법륜 스님께 상담을 청해오는 분들에게 하는 답변들을 엮은 책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다수의 상담 의뢰자들은 기혼 여성)

흔히들 생각할 때, 스님들이 더 수행을 해야 하고, 속세에 사는 사람들은 안 해도 될 것같지만, 오히려 더 속세 사람들이 수행을 해야 한다고. 스님은 가까운 사람과 민감하게 부딪칠 일 없고, 또 가족이 없기 때문에 피해를 주고 받지 않기 때문이다.

부부가 갈등을 하면,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아줌마들이 흔히 말하는 '지랄(?) 보존의 법칙'이  있는데, 터질 것은 지금 당장이 아녀도 언젠가는 터진다는 것이다. 책을 봐도 그렇지만, 부부가 심한 갈등을 겪는 집 아이의 문제는 그 때 발현되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10대 시절에 크게 터지곤 한다. 그래서 나도 훈련 중이다. 남편하고 갈등 국면에 있어도, 배우자에 대한 미운 마음이 자식들에게까지 전이되지 않도록 감정을 철저하게 컨트롤하는 연습. (아이들을 위한다면 이런 연습까지 하며 살아야 함.)

부부가 왜 갈등을 할까? 사실은 이해 관계가 첨예한데, 이해 관계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랑을 막무가내로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 아닌 줄 아는 게 바로 진리입니다. 이해 관계로 뭉친 사이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타인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 서로가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희생하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란 속성 자체가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각자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 나는 이해관계로 상대를 보면서 상대에게는 사랑으로 대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일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내게 이기심이 있나? 있다. 세상 사람들도 다 이기심이 있다.”

“내 남편도 그럴 것이다.”

“내가 내 남편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좀 있나? 있다.”

“그러면 내 남편도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좀 있을 것이다.”

“내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좀 있지만, 남편 두고 딴짓할 생각은 없다. 그러면 내 남편도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좀 있지만, 딴짓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는 제 성질대로 사는 거예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이렇게 제 성질대로 살면, 즉 자기 카르마, 업대로 살면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아내가 동조를 잘 안 해주면, 나이들어서 실핏줄이 터지든 뭐가 터져 가지고, 드러눕게 됩니다. 그럼, 한 10년쯤 남편의 똥오줌 받아내는 일을 해야 할 거예요.”

“두번째는 부부가 갈등을 일으키면 자식들에게 심리불안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큰 골칫거리가 돼요. 남편 골치 아픈 것의 한 10배쯤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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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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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쪽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는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 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권력 의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35쪽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120쪽
결국 사람들은 또 무엇이 더 결정적이냐고 결론 내고 싶어한다. 마치 민족 모순이나 계급 모순처럼 '큰' 문제를 우선시하는 사람은 구조적 파시즘을 강조하고, 소수자들은 일상적 파시즘에 더 무게를 두는 것처럼 논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상적 파시즘도 구조적 파시즘도 극복하기 어렵다. 구조적 파시즘은 일상적 파시즘을 전제로 작동하는데, 두 가지 파시즘이 어떻게 구별될 수 있단 말인가?

140쪽
한국 남성에게 성폭력당하면 '개인적인 일'이고, 일본 남성에게 당하면 '민족의 아픔'인가? 성폭력은 가해 남성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폭력이라는 사실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순결한' 피해 여성과 '타락한' 성판매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남성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방식이다. 남성의 입장에서 성매매와 성폭력은, '자발'과 '강제'라는 '반대' 현상이지만, 여성의 시각에서는 구별될 수 없는 연속선이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현실이 바로 성폭력과 성매매의 원인이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여성을 남성의 성 권력의 희생자와 '자발적으로 남성의 욕구에 부응한'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누구의 논리인가? 성폭력 피해 여성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모두, 결국은, 남성을 위한 제도의 '희생자'들이다.

177~179쪽
그러나 인간이 원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의지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몸은 단순히 그 몸을 '소유한' 개인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여성의 자기결정은 여성의 정신에 의해 투명하게 구성되거나, 약자인 여성의 결정이기에 그 자체로 올바른 것이 아니다. 성적 자기 결정론은, 개인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 내용이 사회 혹은 상대방과의 상호 작용과 사회적 맥락 안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추상적, 현실 초월적인 논리이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창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폭력이 사적인 피해라는 자유주의 이론 비판에서 출발했지만, 몸을 주체의 소유물, 주체의 재산으로 간주하는 근대 자유주의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이것이 소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과의 차이를 주장하면 남성 사회는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 같음을 주장하면 사회적 조건의 다름은 무시한 채 남성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적 강자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

250쪽
의무는, 수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는 있어도, 이행했다고 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군 가산제 제도는 여성과 장애인 등 처음부터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 사람들에게 그 면제된 의미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격이다. 면제의 기분을 문제삼아 여성과 장애인의 징병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면제된 의무를 안 했다고 해서 개인의 권리와 생존권(취업권)을 박탈하거나 감수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여성은 병역의 의무가 면제된 것이 아니라 배제된 것이다.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으면서 이 책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두 책 모두 공통의 카르텔은 전자의 경우는 검찰, 고위공무원, 위시한 정치계 인사로 대표되는 상류 기득 권력층들에게 고함이라면, 후자는 사회 속 남성 권력층들에게 고함이다. 폐단은 정작 읽혀야 할 그들은 읽으려 들지 않고, 우리 같은 사람들(사회적 약자? ㅎ)만 들입다 읽는다는 점이긴 했다.  공지영은 책 한 권으로(정확한 표현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책 속의 ‘자애학원’이 재조명되게 하였고, 남들이 돌아보려 하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약자를 돕는 사람들 이야기 또한 세상에 알려지게 하였다. 사람들의 관심 하나,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 그리고 책 한 권이 바꿔가고 있는 이 사회가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봐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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