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감자 -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 생각하는 돌 7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곽명단 옮김 / 돌베개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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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쪽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나라에게 식량을 수출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가혹한 현실 한 가지는 기근은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근 문제는 식량 이용권을 누가 갖느냐에 달려 있다.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아일랜드인을 굶주리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주, 농민, 도매상, 소매상의 생업에 간섭할 법률을 제정할 뜻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런 법률을 만든다는 것은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지주와 농민도 곡물을 영국과 외국 시장에 수출했다. 자신들이 영리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19쪽
고아 형제가 어느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형은 아홉 살, 동생은 다섯 살이었다. 빵을 좀 달라는 말에 집주인 여자는 아침에 먹고 남은 빵을 형에게 건네주었다. "동생과 꼭 나눠 먹어야 한다." 여자가 이렇게 이르고 문을 닫으려는데 형이 동생에게 빵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 받아. 조니, 넌 나보다 어리니까 배고픔을 참기가 훨씬 어려울 거야. 너 다 먹어."

219~220쪽
영국 정부는 지방세 인상만으로는 아일랜드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잇었다. 수많은 지주가 새로 부과한 지방세를 낼 돈이 없고 토지를 지키기 위해 투자하기도 어렵다는 사정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
터무니없이 값이 떨어진 아일랜드의 토지를 너도나도 앞다퉈 사들였다. (...) 토지를 새로 사들인 사람은 대부분 아일랜드의 부유한 지주나 상인이었다. (...)
(...) 이들은 새로 사들인 땅에서 소작농을 인정사정없이 쫒아냈다. 또다시 무자비한 강제 퇴거와 철거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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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스 필립 K. 딕 걸작선 6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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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쪽
현대인에게 나타나는 마조히즘의 형태에 관한 연구에서 테오도르 라이크는 한 가지 흥미로운 견해를 개진했다. 마조히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널리 퍼져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희박한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기본 역학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어떤 나쁜 일이 불가피한 듯이 다가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무력감은 임박한 고통에 대한 제어 능력을 일부나마 얻어야 할 필요성을 낳는다. 어떤 종류의 제어 능력이건 간에 말이다. 이것은 일리가 있다. 무력감이라는 주관적인 느낌은 임박한 불행보다 더 고통스럽다. 따라서 그 사람은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으로 그 상황에 대한 제어 능력을 장악한다. 즉 임박한 불행의  발생을 묵인하는 것이다. 심지어 재촉하기까지 한다. 이런 행동은 남들 보기엔 마치 고통을 즐기는 것 같다는 잘못된 인상을 조장한다. 물론 그런 인상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더 이상은 무력감, 또는 예상되는 무력감을 견딜 수 없었던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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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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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쪽
분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전교조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아이를 불러 선행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카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 투자로 생계를 이어간다.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 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 만하면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살기 위해서는 삶이 분열되어야 한다. 이 분열의 빈틈에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이 뒤죽박죽 엉킨 채 우리는 살아간다.

80쪽
<< 품위 있는 사회>>에서 마갈릿은 버나드 쇼의 "구시대의 처벌 방식보다 현대의 처벌 방식이 더 모욕적"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모욕의 특징을 설명했다. 구시대의 처벌은 피해자의 고통을 숨기기보다는 공개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구경거리로 삼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에 대한 다른 사람의 연민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처벌은 범죄자를 대중으로부터 숨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감옥을 경험하지 않는 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ㅇ ㅔ절대 공감할 수가 없게 된다.

159쪽
1999년 미국의 초국적 농업 자본인 몬산토는 자신들의 유전자 조작 유채 종자를 무단으로 이용했다며 캐나다의 농부 퍼시 슈마이저를 고발했다. 사실 슈마이저는 자기 밭에 몬산토의 유채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웃 농부가 몬산토의 종자를 밭에 뿌렸고, 그 씨가 바람에 날려 길가와 슈마이저의 밭에 날아들어 번져나갔을 뿐이다. 사실 진짜 피해자는 슈마이저였다. 평생을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온 자신의 밭이 졸지에 유전자 조작 유채밭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몬산토가 슈마이저에게 15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 맞서려고 슈마이저는 은퇴 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돈 전부를 변호사 비용으로 대야 했다. 하지만 몬산토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십 명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결과는 뻔했다. 슈마이저는 패소했다. 법원은 몬산토의 손을 들어주었다.

239~240쪽
"선생님꼐서 하시는 이야기는 다 알겠는데요. 근데 대안이 뭡니까? (...)
이런 경험을 오래전부터 하면서 도리어 나는 '무엇이 대안이냐'는 질문 자체를 의심해왔다. 저 말은 정말 대안을 찾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는 말인지에 대해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상당히 공격적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수동적인 말이다. 대안이 자기 손에 구체적으로 주어질 경우에만 자신은 움직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는 자기가 나서서 대안을 생산하고 실천해보겠다는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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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시를 떠나 살 수 있을까?
보리 지음 / 아비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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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247쪽
시골이란, 아니 시골 생활이란 온전해지기 위한 나를 만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므로 시골에 대한 유용한 정보 같은 것은 없다. 온전함이란 완전함과는 조금 다르다. 완전하다는 것은 단 하나의 결점도 없이 완벽하다는 뜻이다. 온전함이란 눈에 보이는 결함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이 도시에서 나는 부자유스럽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고단하다. 시골 생활을 동경하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언젠가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이유가 적어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인간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식했기 때문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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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원할 자유 - 현대의학에 빼앗긴 죽을 권리를 찾아서
케이티 버틀러 지음, 전미영 옮김 / 명랑한지성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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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저자는 자연사를 막는 과잉치료의 원인으로 치료에 따르는 경제적 보상을 많이 받으려는 의사들을 꼽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기서 일정 부분은 자유롭지 않겠으나, 저자가 한 가지 잘 모르고 있는 점은 의사들이 죽음을 의료의 패배로 여긴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환자가 사망하면 자신이 해온 치료가 실패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끝까지 치료에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다.

10쪽
스콧 니어링은 100살이 다가오자, 마지막이 오면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겪고 싶다면서 스스로 음식과 물을 끊길 원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기 때문에 진정제나 진통제, 마취제 같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90~91
심장의 천연 심박조율기인 '동방결절'이라는 원뿔 모양의 신경섬유다발은 정상적인 노화 과정을 겪으며 전기 신호를 보내는힘을 상당 부분 상실한다. 심장의 우심실 윗부분 꼭대기 근처에 위치한 동방결절은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 크기인데,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밤낮으로 극소량의 전기 신호를 일으켰다 멈추고 다시 일으킨다. 이 신호가 심장 근육 및 신경 섬유를 타고 심실들로 전달되면 양쪽에 나란히 있는 아래쪽 심실ㄹ 두 곳이 동맥으로 혈액을 쏟아 내 사지 및 주요 장기들로 보낸다. 인간이 일흔다섯살이 되면 노화 및 세포 사멸로 인해 동방결절 세포의 90퍼센트가 없어진다. 심장의 다른 부위에 있는 전기전도 관련 신경세포들 역시 위축된다.

119쪽
새로운 기계장치들은 몸의 의미에 변화를 초래했다. 몸은 이제 영혼이 거하는 사원이 아니라 여분의 부품처럼 제거, 변경, 대체 가능한 장기들이 모인 곳으로 변했다. 지혜, 사랑, 용기가 자리한 신비한 기관이자 단단해지고, 깨지고, 부드러워지고, 두드리고 열 수 있는 마음이었던 심장은 단순한 펌프로 전락했다. 폐는 풀무, 신장은 체가 되었다. 전에는 죽음의 무대에서 임종을 앞둔 사람이 주연이었지만 이제 영웅은 의사로 바뀌었다.

187~188쪽
노화는 유전자, 습관, 환경에 의해 7천 가지 이상의 개별적 신체 퇴행 과정이 별개로 진행된 결과가 축적되어 나타난다. 혈류 속의 감시세포들이 잡아먹는 침입 미생물 수가 감소해 독감, 기관지염, 요로감염, 폐렴 등에 갈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지어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마저 떨어진다. 낙관적이며 과학을 숭배하는 우리 문화는 노화를 치료하려 든다. 노화를 의학이 예방하거나 고칠 수 있는 낱낱의 질병으로 쪼개고, 그런 특정 질병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설사 악마와 계약을 맺더라도 우리는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죽음을 미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노화를 치료할 수는 없다.

261쪽
병원 이외의 곳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사람의 8퍼센트만이 살아서 병원을 나가며, 대다수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뇌손상을 입은 채로 요양원으로 옮겨진다. 아버지 연령대에서는 병원 밖에서 심폐소생술 처치를 받은 사람들 중 단 3퍼센트만이 독립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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