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찬양 분도소책 35
러끌레르끄 지음, 장익 옮김 / 분도출판사 / 198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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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동안은 워낙 힘이 드는지라 그 노력에 정신을 온통 쏟게 되지만, 정상에 다다라 멈추게 되면 대기와 빛과 풍경의 아름다움이 가슴을 가득 채웁니다. 때로는 중턱에 멈추어 봐도 또한 그렇습니다. 홀연 그 아름다움에 휩싸여 버립니다. 사방의 화려함에 온몸이 젖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게 됩니다.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런 힘도 안 쓰고 그저 받아들일 따름입니다. 그러고 있으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아름다움이 사람을 휩싸고 맙니다.

기록을 깨기 위해서 쏜살같이 달리거나 또는 비행기를 타고 전속력을 내는 어른은 아무것도 못 봅니다. 하지만 한눈을 팔면서 길을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나절씩 숲 속을 산책하거나 세상모르고 코르코란 대위 탐험기를 읽느라 정신이 없는 아이는 오히려 얻는 것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살로 갑니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행로를 좌우할 예언적 꿈을 꾼 것도 이를테면 무위도식(無爲徒食)상태에서였고, 뉴턴이 나무 밑에,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 안에 각각 드러누운 상태에서 큰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이 아카데모스 정원에서 벗들과 더불어 사색을 한 일도 우리 시대가 말하는 소위 맹렬한 생활 따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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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스피드의 사회로서 무조건 빠른 것만을 추구하다 보니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모른 채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각종 전자기기에 의존하다 보니 혼자서 사색하는 시간보다는 기계에 의존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기계들로 편리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잃고 있는 것도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빨리 달려가는 중에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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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뇌 뇌의 나 1
리차드 레스탁 지음 / 학지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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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1.6kg도 안 되며 말랑말랑하고 주름진 호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게 괴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도 인간의 뇌는 전 세계 도서관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다 담고도 남는다. 또한,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더할 수 없이 높은 이상이 여기에서 나오며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도 여기에서 나온다. 햄릿, 권리 장전, 원자 폭탄을 만들어 낸 바로 이 뇌의 기능은 아직도 신비에 싸여 있다. 뇌는 어떻게 조직되고 발달하였을까?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할 때 그것은 바로 나의 뇌를 지칭하는 것인가?

우리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관련된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영원히 답을 얻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근년에 들어서 신경 과학은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지식을 근거로 신경 과학자들은 언젠가는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이 뇌에서의 전기 화학적 활동으로 정의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 , 욕망, 야망이 언젠가는 신경학자나 신경 생리학자들이 쓰는 용어로 정의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섬뜩해진다. 이 책에서는 이런 문제를 풀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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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1997년에 나온 책이니, 고전은 고전인듯!  서문만 보고 동하리라고.인간의 속성과 뇌의 기능과 관련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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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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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삶이 지닌 주목할 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참사들을 (그 현장에서 멀리 벗어난 채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지켜볼 기회가 셀 수도 없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잔혹한 행위를 보여 주는 이미지들은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작은 화면을 거치면서부터 이제는 점점 더 진부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잔인하게 묘사된 폭력에 익숙해지는 걸까요, 아니면 뭔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되는 걸까요?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 시청자들의 현실 인식이 손상될까요? 그렇다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쟁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타인의 고통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제가 갖고 있었던 궁금증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중략> 저는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이고 전쟁이 진부한 일상이던 곳에서 거주하며, 이런 경험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 이런 경험을 단지 이미지로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쟁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전쟁을 실제로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받았죠. 그렇지만 저는 우리, 그러니까 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고 안전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오늘날의 미디어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저 전 세계적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입니다. 저에게 이 책은 스펙터클이 아닌 실재의 세계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논증입니다. 저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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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먼저 사진과 영상을 이용하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사람들이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는 매체를 접하는 사람들이 단지 그러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일 뿐 사진이나 영상 속의 인물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으로 마음속의 짐을 던다는 내용에서는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글에 대한 반응은 크게 이 글의 내용에 긍정하는 사람과 부정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긍정적인 쪽은 자신이 작업할 때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점을 항상 고민하고, 사진과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진정성 ?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폭력성에 반대하는 ? 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선택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부정적인 쪽은 자신들의 편집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사람들이 전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통로가 없다면 ? 전쟁을 이미지로라도 확인할 수 없다면 ? 전쟁이 이토록 참혹하고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미지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자신은 더 안전한 곳에 있음에 안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도 사진의 기능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해석한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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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6-0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찾는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이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지 반성해 보게 됩니다. 읽은지 좀 됐는데 리뷰읽고 다시 떠올려보네요.^^

icaru 2017-06-02 15:25   좋아요 1 | URL
댓글 달아 주셔서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munsun09 님 ^^
저 또한 남의 불행에 안도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지... ~
저도 예전에 들춘 책들을 한꺼번에 정리하고 있는 중인지라 ㅎㅎ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되었네용 ㅎ

2017-06-02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7-06-07 09:00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 기능 중에 찜하기 기능이 있어서 제가 꽤 많이 님의 사진들을 찜해더랬죠 ㅎㅎ 또 사진하면 이 여성이네요.. 단발머리 님 표현 마따나 카리스마... 이런 카리스마 라니...멋지죵

단발머리 2017-06-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icaru님~~ 요즘 열독 모드시군요~~ 넘넘 좋아요.
전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표지의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 하고 ㅠㅠ ㅎㅎ

icaru 2017-06-05 17:43   좋아요 0 | URL
앙하~~~ 단발머리 님 ㅎㅎ 예전에 들춘 것들 정리했어요 ㅎㅎ 이렇게 안 하면 사실 뭘 읽어두 남은 게 없어서리... 단발머리 님 처럼 저도 맛깔스러운 리뷰 쓸 수 있담 얼마나 좋은까요 어떤 책이든 제가 소화를 덜 시키는 모양인지 잘 익은 글은 안 나오더라고요 겨우 옮기기나 하는 수준이네용
 
러셀 자서전 - 상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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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어려운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둘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 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게 하는 그 지독한 외로움 을 덜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 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며, 비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내가 똑같은 열정으로 추구한 또 하나는 지식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늘의 별이 왜 반짝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유전(流轉) 너머에서 수()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 피타고라스를 이해해 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나는 많지는 않으나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의 범위에서 나를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壓制者)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 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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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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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글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중에서 발췌

 

 

월든에 다녀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호숫가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그리움의 터, 그 월든에 다녀왔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근교에 있는 월든 호반은 10월 말 단풍이 한창이었다. 맑은 호수에 비친 현란한 단풍을 대하자 다섯 시간 남짓 달려온 찻길의 피로도 말끔히 가셨다. “월든을 읽으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그 현장에 다다르니 정든 집 문전을 섰을 때처럼 설렜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은 호수는 아주 평화로웠다. 호수의 북쪽에 150여 년 전 소로가 살았던 오두막의 터가 돌무더기 곁에 있다. 거기 널빤지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한번 내 식대로 살아 보기 위해서였다. ,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한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해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소로

 

22개월 동안 월든 숲 속에서 지낸 이 기간이 소로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기였다. 그는 학생으로서 월든에 갔었지만, 그곳을 떠나올 때는 스승이 되어 있었다. 소로의 생애를 가장 충실하게 기록한 영국의 전기 작가 솔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콩을 심고 콩밭을 매는 일은 자연을 배우고 삶을 배우는 과정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전 미국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여 남길 수 있었던 것보다 월든을 씀으로써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훨씬 더 훌륭한 것이었다.’

소로의 생활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그대의 일을 두 가지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 명료해질 것이다. 그때 비로소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게 된다. 그대의 삶을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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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법정 스님은 사람은 복잡한 현실에 붙들려 살지 말고, 간소하게 여유를 가지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는 일상에 이끌려 살다 보면 정작 중요한 자아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알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휘둘리며 사는 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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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7-06-02 14:51   좋아요 1 | URL
이 발췌글이 너무 마음 무겁게 해드리지는 않았기를요 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