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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화근은 그것이었다.
큰아이가 집에 있는 책들 중에서 철지난 어린이과학동아를 자주 들춰본다. --우리는 2월에 이사를 했는데, 그때 아이아빠가 이번 기회에( 이사) 애들 책들 좀 정리하자고, 잡지를 콕 찝은 것은 아니지만 에둘러 포함시켰던 것. 그러나 험하게 봐서 표지가 너덜한 것들만 버리고 절반 이상을 들고 왔다. --- 그래서 나는 아이아빠에게 저것 보라고, 버리라고 했던 책들인데 아이가 잘 보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씀인즉, 당연히 잡지는 잘 본다. 지난 것도 본다. 처음에 구독 받았을 때는 만화만 보지만, 두번 세번 다시 읽을 때는 기사도 본다. 라고. 그게 문제가 아니고, 백과사전류를 가리키며 저것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정보를 찾고, 지식을 암기하는 산업화 시대는 지났는데, 나보고 트랜드를 못 읽는다고 한다. 남편은 나의 책 소유 방식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나보다.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또 '흥, 알게 뭐야! '하고 같이 퉁을 놓거나 흘릴 수가 없으니 원!
물론 조금 더 넓은 데로 이사를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결심한 바가 있어 과거의 것들을 정리하고 왔다. 내가 고이고이 모아두었던 10년도 더 지난 문학계간지들, 첫직장에서 만들었던 문제집, 그것을 만들기 위해 참고했던 자료들 파지 모으는 업자분에게 열 박스도 더 넘게 넘기고 왔다. 정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판단이 안 되는 것은 이사가서 정리하자며 싸가지고 왔는데, 남편 눈에는 띄지 않게 할 요량으로 옛책들은 주방쪽 다용도실 수납장에다가 무쇠압력밥솥 같은 거랑 같이 차곡차곡 넣어두었다.(북쪽 서랍장 안에서 빛도 못 쪼이는 불쌍한 것들) 그걸 또 지적해 주신다. 낡은 사고방식이다, 의미없다, 라는 말잔치를 벌이면서....
그래서 나는 최근에 산 책들은 회사에 두고 있다. 집에 잘 안 가져간다.(회사 그만두면 어디에 두어야 할까?ㅠ) 이 책도 재작년에 한참 알라딘 화제의 책으로 나왔을 때 사서 읽은 책인데, 리뷰는 못 썼고, 아무데나 펼쳐도 한 눈에 마음에 드는 구절이 등장하는 신기한 책이라고만 어디다 써놓은 거 같다.
일테면 지금 내가 펼쳐 놓은 부분은 "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그리고 또 펼쳐놓으니 나오는 부분은
"그해 여름에 그는 강의를 맡지 않았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병을 앓았다. 그는 원인이 불분명한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기운이 쭉 빠져서 수척해졌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으로 청각마저 일부 잃어버렸다. 여름 내내 그는 너무나 쇠약해져서 겨우 몇 발짝만 걸어도 녹초가 되었다. 그래서 집 뒤편의 작고 사방이 막힌 일광욕실에서 소파 겸용 침대에 눕거나 지하실에서 직접 가져온 낡은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슬레이트로 된 천장이나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가서 요깃거리를 가져오곤 했다. "
나는 스토너의 상황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사는 모습은 달라도, 그럼에도 나는 스토너다.”
조용하고 절망적인 생에 관한 소박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생각한다.
"오늘 회사에 나가 잘 해낼(뭐 중뿔난 것을 하는 것도 아닌데...) 수 있을까, 온힘을 끌어모아도 의지가 부족하구나." 라고.
"아침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산뜻하게 눈이 떠지는 삶을 나는 죽을 때까지 살 수 없는 것일까?"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절망의 순간에도 나 자신이 이 (직업, 엄마와 아내라는 타이틀) 세계를 싫어하지 않고 있으며, 아무리 시름이 깊다 해도 이 삶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스토너의 말년은 자네는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 까지는 아니어도 젊은 동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번듯한 생활에 대한 꿈이 깨어지면서 함꼐 망가져서 서서히 절망을 향해 스러져가는 것이 보였다.
언제 읽어도 그냥 한줄한줄이 지금의 삶과 대입되는데,,,, 왜왜 남편님은 다 읽은 책은 치우라고 하는 것일까? 남편님은 이런 경지를 몰라...저런저런...
199쪽 : 12째줄 그저 한밤중에 붉을 밝히고->불을 밝히고